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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티노 황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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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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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카모니카의 암각화
Incisioni rupestri della Val Camo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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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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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Chiesa e convento domenicano 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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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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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전
Centro storico di Roma, le proprietà extraterritoriali 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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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역사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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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assi e il parco d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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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spi d'Ad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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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alatine1.jpg
파일:palatinepalace2.jpg
파일:palatino.png
팔라티노 황궁의 복원도. 맨 아래가 현재 모습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글 로마 역사 지구 – 바티칸 시국의 유산들과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전
영어 [1]
프랑스어 [2]
국가·위치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시국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0년
등재기준 (i)[3], (ii)[4], (iii)[5], (iv)[6], (vi)[7]
지정번호 91

영어: Palatine Hill
이탈리아어: Palatino
라틴어: Collis Palatium
프랑스어: palais

1. 개요2. 명칭3. 역사4. 건축5. 복원도

[clearfix]

1. 개요

팔라티눔 황궁은 로마의 일곱 언덕들[8] 중 팔라티노 언덕 위에 자리했던 황궁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부터 정식 황궁으로 사용되었으며 후대 황제들이 끊임없이 개축하면서 500여 년간 로마 제국의 정궁으로 쓰였다.

팔라티노 황궁은 단일 건물이 아니다. 여러 차례 황제들이 확장 작업을 실시하면서 각기 들어선 건물들이 층층이 늘어선 구조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크게 도미티아누스 궁전, 아우구스투스 궁전, 티베리우스 궁전, 도무스 세베리아나, 키벨레 신전, 아폴로 신전, 셉티조디움, 도무스 트란시토리아 등으로 구성된다.

2. 명칭

고대 역사가 리비우스에 따르면 '팔라티노'라는 이름은 고대 이탈리아 반도의 '팔라티움'이라는 도시의 항해자들이 이 언덕을 처음 발견하고 붙인 것이 이어져 내려왔다고 한다. 다만 '천상'이나 '하늘'을 의미하는 에트루리아 언어인 'falad'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팔라티노'라는 단어는 영어로 궁전을 의미하는 '팰리스'(palace)의 어원이다. 또한 이탈리아어로 궁전을 의미하는 '팔라초'(palazzo), 프랑스어인 '팔레'(palais), 포르투갈어인 '팔라시오'(palácio), 독일어인 '팔라스트'(palast)와 '팔츠'(pfalz) 등 유럽권에서 '궁전'을 의미하는 단어들 대부분이 바로 이 언덕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9]

3. 역사

팔라티노 언덕에는 기원전 10세기 경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이후 이 곳에 건국된 로마는 개국 초기부터 팔라티노 언덕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확장되었으며, 적당한 높이에 상층부에 평평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 등 로마의 일곱 언덕들 중 그나마 가장 사람이 거주하기 좋은 환경을 지니고 있어 로마 극초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언덕에 몰려 살았다. 이후 로마가 계속 확장을 거듭하며 인근의 사비니족이나 라비니아족 등을 흡수하였을 때에도 로마의 전통적인 명문가들은 팔라티노 언덕에 모여 살았으며, 외부인들이나 일반 평민들은 언덕 아래로 밀려 내려가거나 새로운 시가지를 개척해야 했다. 이때 이래로 팔라티노 언덕은 점차 유력 가문이나 권력자들의 거주지로 떠오르기 시작하였으며, 점차 로마인들은 '팔라티노 언덕'이라는 단어를 권력자들과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27년, 로마 제국의 첫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이 곳에 자신의 거주지이자 황궁을 처음으로 지었고, 아폴로 신에게 바치는 신전도 지었다. 이때 이래로 그의 후임자인 티베리우스, 도미티아누스 황제 등이 궁전을 확장하면서 정식적인 궁궐로 기능하게 되었다.

서기 14년 즉위한 티베리우스 황제는 선황 아우구스투스에게 물려받은 사저 일부와 소유 중인 팔라티노 언덕 부지에 티베리우스 궁전으로 불린 새로운 황궁을 지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드루수스 카이사르가 석방 명령을 받고도 굶어 죽고, 세야누스의 음모 등이 벌어진 이유 등으로, 37년 즉위한 가이우스(칼리굴라) 황제는 형 드루수스 카이사르가 굶어 죽고, 일족들이 의문사한 티베리우스 궁전을 저주받은 곳으로 여겨,[10] 아우구스투스 생전부터 안가가 있던 기쁨의 정원으로 거처를 옮겨 살았다. 그 다음 황제로 즉위한 칼리굴라의 숙부 클라우디우스 1세는 기쁨의 정원에 있던 안가를 개조한 뒤, 아우구스투스 궁전과 정원 내 안가를 오고 가며 거주했다.[11]

본격적으로 팔라티노 언덕이 팔라티노 황궁과 동일한 개념으로 현대인에게 인식된 시절은 플라비우스 왕조때였다. 네 황제의 해의 승리자가 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장남 티투스 황제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처럼 아우구스투스 궁전을 증축, 보수해 정궁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티투스 뒤를 이은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건축가 라비리우스에게 설계를 명하고, 새로운 궁전을 지었다. 그가 지은 도미티아누스 궁전이 그것인데, 이 건축물은 가장 규모가 거대하였으며, 3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주거 구역과 공적 구역, 그리고 정원으로 기능을 엄격하게 구분하기도 했다. 황금과 제국 전역에서 가져온 대리석, 귀석으로 치장하여 극도로 호화로웠으며,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특히 그 복도는 천국을 연상케 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천장은 하늘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고 한다. 참고로 도미티아누스가 거액을 들여 지은 도미티아누스 궁전은 그 유명한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 '도무스 아우레아'가 있던 곳을 헐고, 새로 바꾼 곳이다. 즉, 도미티아누스가 라비리우스에게 명해 설계하고 지은 이 황궁은 네로 사후 제대로 완공되지도 못한 채로 흐지부지되면서 자재는 다른 곳으로 헐려 나가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등 완전히 지어지지도 못하고 도미티아누스 궁전이 그 자리에 들어서면서 아예 끝장났던 결과물이었다.

플라비우스 왕조가 무너지고 등장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시절이 되면, 황궁은 오현제로 흔히 알려진 이 시절의 황제들 아래에서 화려하고 이국적으로 변모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황궁에는 돈을 전혀 쓰지 않던 선황 트라야누스 황제와 달리,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세운 도미티아누스 궁전과 이전의 아우구스투스 궁전을 화려하고 이국적으로 인테리어하고, 높고 웅장한 주랑을 새로 만들게 했다. 콤모두스 황제는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가 안락하게 여겨 살았던 기쁨의 정원과 정원 내 안가를 이국적이고 향락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완전히 뜯어 고쳤다. 하지만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시절 동안, 팔라티노 황궁은 대체로 두 황제 외의 시절에는 일반적으로 건축물 내부 수리 공사 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팔라티노 황궁은 콤모두스 황제가 암살되고, 다섯 황제의 해 속에서 무력으로 모든 경쟁자를 제거하고 세베루스 왕조를 세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시절이 되면서 또 한 번 크게 바뀐다. 세베루스 황제는 본인과 두 아들 카라칼라, 게타의 권위를 강조하면서, 귀족들이 거주한 팔라티노 언덕 일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 토지를 활용해, 황궁을 크게 증축했다.[12] 세베루스는 이때 이 곳에 도무스 세베리아나를 짓는 등 마지막으로 확장 공사를 진행하였고, 아피아 가도를 통해 로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황제와 세베루스 왕조의 위엄을 강조할 목적으로 셉티조디움을 지었다.

하지만 세베루스 황제 사후부터는 황궁을 크게 짓거나, 헐고 다시 짓는 일이 없어졌다. 카라칼라 ~ 군인황제시대의 후대의 황제들은 외적의 침략, 재정 위기 등으로 황궁을 보수하는 수준에서 황궁에 많은 돈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것보다 근본적으로 후대 황제들이 황궁을 뜯어 고치지 않은 원인은 재정도 재정이지만 기본적으로 더이상 팔라티노 언덕에 남아있는 부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에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세베루스 황제 시기의 개축 공사가 팔라티노 황궁에 이루어진 마지막 대대적 공사가 되었으며, 후대에는 유지 및 보수에만 힘쓰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고, 갈리에누스 황제가 암살된 뒤부터는 이마저도 황제 권위를 위해 보수하는 수준으로 건물 상태는 유지됐다.

이처럼 장대했던 팔라티노 황궁도 로마 제국의 쇠퇴로 인하여 점차 쇠락하기 시작한다. 로마 제국이 껍데기만 남아버린 서로마 제국과 핵심 지역들을 모두 가져가버린 동로마 제국으로 분열되고, 옛 수도인 로마가 서로마 제국에 소속되면서 로마 역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약 몇 백년에 걸쳐 야만족들이 로마를 침략하여 약탈을 일삼았으며, 몇 차례에 걸친 사코 디 로마 때에 특히 화려함의 중심이었던 황궁이 집중적으로 약탈당하면서 황궁은 옛 영광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서로마 제국 말기에 이미 폐허 수준으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중세 시대에는 포로 로마노와 함께 로마 제국의 옛 영광을 추억하는 장소 수준으로 의미가 퇴색되었으며, 특히 가톨릭 교회와 로마 시민들이 자신들의 교회나 집을 짓기 위하여 가장 가까운 채석장(...)이었던 황궁에서 고급 석재들을 대거 떼어가면서 황궁은 옛 모습을 찾아보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16세기에는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유력가문이었던 파르네세 가문이 팔라티노 황궁을 사들였으며, 티베리우스 궁전 위에 파르네세 정원과 저택 등을 지어 꾸미기도 했다. 1830년에도 여러 개의 빌라가 이 곳에 지어졌으며,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점차 문화재 보존에 대한 의식이 싹트면서 문화재 보전과 복원, 발굴 작업을 위하여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유적이 정리되고 발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4. 건축

파일:palatin.jpg
사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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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티아누스 궁전(Palace of Domitian)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기원후 82년에 세운 거대한 궁전으로, 팔라티노 황궁의 핵심부에 자리하고 있었다. 황궁 중 크기가 가장 거대했고, 크게 '도무스 플라비아(Domus Flavia)', '도무스 아우구스타나(Domus Augustana)', 정원(Stadium) 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도무스 플라비아는 정무를 돌보고, 손님과 만찬을 여는 대전 역할을 했고, 도무스 아우구스타나는 황제와 그 가족들이 거주한 공간이었다. 정원은 비밀 정원과 함께 경기장, 사우나 등이 조성되어 있었고, 도미티아누스가 처음 건축할 때부터 황제가 가족이나 정부, 친구들과 유흥을 즐기는 곳으로 활용됐다. 모두 건축가 라비리우스가 설계했고, 도미티아누스 암살 사건 뒤에도 여러 황제의 명으로 증축되거나 개조됐다. 특히 도미티아누스 궁전 특유의 곡선 구조 주랑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취향이 반영됐다고 하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절에는 안에 사우나를 겸한 세베라누스 목욕탕이 따로 설치됐고, 중앙에는 황제의 황금 전신상과 함께 분수대 등이 설치됐다. 5세기 경 서로마 제국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로마 제국의 정궁으로 기능하였다. 도미티아누스 궁전은 본디 네로 황제가 세운 황금궁전, '도무스 아우레아'의 잔해 위에 세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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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궁전(Domus Augusti)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사용했던 사저를 개조해 후대에 이르러 궁전으로 부른 공간이다. 이곳이 역사가들에게 아우구스투스 궁전으로 불린 이유는, 옥타비아누스가 제2차 삼두 정치 활동 당시 퀸투스 호르텐시우스에게서 부지를 사들여 포로 로마노에서 이사를 온 뒤, 일평생 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대한 규모와 달리 아우구스투스 생전에는 현대의 모습과는 달랐고, 이곳이 본격적으로 궁전이라고 할 정도로 외관이 바뀐 시절은 티베리우스 황제가 이곳 일부를 일명 티베리우스 궁전으로 불린 곳으로 개조한 뒤였다. 하지만 티베리우스 ~ 클라우디우스 1세 시절까지도 이곳은 정궁이지만, 4~5세기 무렵 복원도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네로 시절부터 정궁 역할을 상실한 상태였고, 네로가 황금 궁전 계획을 밝혀 착공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네 황제의 해를 거쳐 플라비우스 왕조가 시작되고 베스파시아누스 ~ 티투스 황제때 이르러 네로의 황금 궁전 계획이 철회되면서 다시 황제가 거주한 공간으로 활용됐다. 그러다가 도미티아누스가 즉위한 뒤, 도미티아누스 궁전이 건축되면서 정궁 역할을 사실상 상실하고, 넓게는 도미티아누스 황궁 일부가 됐다. 로마인 사이에서 돈 전설 같은 길거리 이야기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시작한 기원전 29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궁전에 낙뢰가 떨어지자 아우구스투스는 이 궁전을 공공 건물로 선포하고 아폴로의 신전을 지어 하늘을 달래려 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 궁전은 3세기 경 로마에서 일어난 화재로 파괴되었고, 복구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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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베루스 궁전(Domus Severiana)
세베루스 궁전은 팔라티노 언덕의 동남부 경사에 축대를 쌓아 만들어진 거대한 궁전이다. 키르쿠스 막시무스와 카라칼라 대목욕탕을 바로 내려다 볼 수 있었으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건축하였다. 이 궁전이 지어진 후에는 도저히 팔라티노 언덕에 부지가 남아있지 않아 더이상은 황궁 확장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중세 시대를 거치며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는 일부 건물 잔해와 축대를 이루던 벽돌아치 무더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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셉티조디움(Septizodium)
셉티조디움은 203년 경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지은 회랑으로, '일곱 태양의 사원'이라는 뜻의 '셉티조디움'이라고 불렸다. 실용적인 목적은 없었으며, 장식용 파사드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셉티조디움은 아피아 가도포로 로마노 쪽을 바로 마주하고 있었는데, 고대의 기록에 따르면 세베루스 황제가 아피아 가도를 따라 황궁으로 들어오는 외국의 사절들에게 황궁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하여 일부러 지었다는 설도 있다. 다만 8세기 경에는 이미 쇠락하여 요새의 벽 따위로 쓰이다가, 이후 점차 헐려나가 현재는 기단부 일부만을 제외하곤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5. 복원도

팔라티노 황궁은 이미 4~5세기의 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쇠락했고, 그로부터 1600여 년이 흐른 지금 당시의 내부 모습을 완전히 알아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만 프랑스 고고학자이자 CNRS 연구원인 장 클로드 골뱅[13] 등 몇몇 로마 건축 전문가들의 추정으로 황궁의 분위기와 일부 건축 양식들을 재현할 수 있었으며, 이탈리아 정부 차원에서 네로의 황금궁전의 외관과 내부를 3D로 재현하여 관람객들에게 개방하는 등 끊임없이 고고학적 재구성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래의 그림들도 고고학자들이 당대 황궁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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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사진은 실제 아우구스투스 궁전의 지하 방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벽화의 색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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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티아누스 궁전 내부 재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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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 장 클로드 골뱅이 그린 알현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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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로 재현한 알현실의 모습

[1] Historic Centre of Rome, the Properties of the Holy See in that City Enjoying Extraterritorial Rights and San Paolo Fuori le Mura[2] Centre historique de Rome, les biens du Saint-Siège situés dans cette ville bénéficiant des droits d'extra-territorialité et Saint-Paul-hors-les-Murs[3]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4]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5]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6]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7]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8] 초기 로마市를 세울 때에 로마 영역에 있던 일곱 언덕을 의미한다. 건물들이 들어서고 언덕들 사이사이가 메워지면서 점차 지형으로서 의미는 퇴색되었으나 여전히 로마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9] 그 밖에도 고대 로마군 친위대동로마군 정예 타그마였던 '스콜라이 팔라티나이'(Scholae Palatinae)나 '궁정백'(pfalzgraf), '궁정기사'(paladin) 등 여러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10] 티베리우스 황제 생전부터 티베리우스 궁전, 티베리우스 황궁으로 후일 불린 곳에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드루수스 카이사르의 원혼이 떠돌아다니고 있고, 의문사한 티베리우스의 친아들 소 드루수스의 원혼 등이 감돌아, 드루수스 카이사르가 침대 매트리스인 짚을 씹어 먹다가 아사했다는 말이 돌았다.[11] 2020년대에 발굴 후 복원된 해당 유적지에는 이런 역사 때문에, 이국적이고 화려한 유적지 흔적이나 유물은 콤모두스 ~ 세베루스 왕조 시절의 것임이 확인됐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시절의 흔적은 칼리굴라가 아우구스투스 시절 안가를 개조하면서 거주할 때 필요해 만든 평범한 계단, 꽃과 정원을 그려 넣은 프레스코 벽화가 전부였고,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의 유물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서명(TI.CLAV.CAESAR)이 적힌 납 수도관 유물과 함께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경호를 담당한 프라이토리아니 병사들의 단검, 브로치 등이 끝이었다.[12]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이를 위해, 정적들의 재산을 몰수하면서, 자신에게 지지를 표하지 않은 팔라티노 언덕 단독주택 보유 인사들에게도 재산 일부 몰수 등을 명했다. 그와 함께 그는 귀족들의 불만을 억누르고자, 첼리오 언덕에 대규모 정비 공사를 감행해 정비 후 이곳을 고급 부촌으로 만들어, 그들에게 하사해 이주시켰다.[13] 1942년 생 프랑스 고고학자이자 건축가로, 로마 건축을 전공하였으며 보르도 대학교의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의 연구원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의 건물들의 복원도 제작으로 나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