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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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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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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山 金氏
광산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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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광주광역시[A]
원시조 김알지(金閼智)
비조 김우징(金祐徵)
시조 김흥광(金興光)[2]
집성촌 광주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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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광산김씨대종중
광산김씨대종회

1. 개요2. 분파3. 관련 성씨4. 항렬5. 인물
5.1. 계보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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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주광역시[A]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시조 김흥광에 대해 김씨 분관록에는 헌강왕의 왕자[4]로, 동국만성보 및 조선씨족통보에는 신라 49대 헌강왕의 3자로, 광산 김씨 정유보에는 신라 45대 신무왕의 3자로 기록되어 있는 등 선계를 정확하게 상고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왕의 왕자인지 억지로 단정짓지 않고 '우리는 신라 왕실의 후손이긴 한데 어느 왕의 후손인지는 모름!' 하고 깔끔하게 넘어간다.
舊譜諸本云, 或云憲康王第三子.
옛 족보 여러 본에 이르길, 혹자는 '헌강왕의 삼남이다.' 라고 하였다.
而宋史會綱及崔致遠納旌節表云, 憲康有一子嶢.
그런데 송사회강 및 최치원의 납정표에 이르길, '헌강왕은 한 명의 아들 (嶢)가 있다.'라고 하였다.
慶州金譜云, 神武王子, 未知何據.
경주 김씨 족보에 이르길 '신무왕의 아들이다' 라고 하였는데, 어떤 근거인지 알 수 없다.
今依諸本, 書以新羅王子.
이제 여러 본에 의거하여, 신라왕자라고 서술한다.
광산 김씨 정묘보(1747)

그 외 야사인 삼한습유기(三韓拾遺紀)에 의하면 광산 김씨는 고구려에서 나왔다 한다.(光州之金出高句麗) 호남 지방에 고구려 유민이 많이 사민된 것을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아무튼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통일신라 말기 나라가 장차 어지러울 것[5]을 알고 금성(경주시)을 떠나 무진주 서일동(현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6] 평장리)에 은거하였다. 손자 김길은 고려에 귀의하여 무공을 세움으로써 개국공신이 되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고려 태조(고려) 왕건은 김길의 조부인 김흥광을 광산부원군에 봉하였다. 이후 조부의 작호이자 세거지인 광산(光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으며, 후손들 중 평장사(정2품)가 8명이나 배출되자 사람들이 서일동을 평장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명칭은 지금까지도 남아 평장리로 불리고 있다.

조선 시대 들어와서 유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문묘(文廟)에 종사된 '현인 18인' 중 김장생, 김집 부자를 배출하였고, 김집은 종묘(宗廟)에 배향[7]되어 '국반(國班)'이라 불렸다고 한다. 또한, 김장생의 증손인 김만기김만중 형제는 현종과 숙종 대 정치에 활약했으며, 특히 김만기의 딸은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가 되었고 그 후손들도 영조 대까지 노론의 핵심 인물로 자리한 명문가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정승이 5명, 청백리가 4명, 왕비가 1명, 대제학이 8명[8] 나왔다. 또한 문과 갑과 장원 급제자 12명, 무과 급제자 276명, 문과 급제자 263명을 배출했다.

김장생(金長生)의 4대 조부 김극뉴의 묘는 '천마(天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라는 말(馬) 명당으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도 있다. 대표적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마리아, 그녀의 삼촌으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살해당한 김필순, 그의 아들이자 김마리아의 사촌 동생인 중국 배우 김염도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항일영화 촬영만을 고집했다. 또, 이상재의 측근으로서 임시정부 수립을 도운 김갑수도 있다.

현대에 와서 인구 수를 보면 김해 김씨, 경주 김씨에 이어 김씨 본관 인구 수로는 3위이다. 광주광역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집단이라 수도권을 제외하면 전라도 지역에 거주 비율이 높다. 반면 경상도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충북보다는 많다. 심지어 충청도 전체보다 경남 경북 합친게 더더욱 많다.[9]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전국에서 8번째로 많은 성씨답게 경상도 지역에도 많이 살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도 마찬가지이다.

종가 중에는 남북분단으로 인해 종손과 종부가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사례도 있다. 안동의 유일재(惟一齋) 종가의 종손인 김용진 씨는 해방 직후 좌익 활동 혐의로 수감되었다가 한국전쟁 때 월북을 했고, 종부인 김후웅 씨는 종가에 남았다. 2003년 이산가족 상봉 때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식도 병으로 일찍 죽어서 없고 종가를 김후웅 씨 혼자서 지킨다고. 광산 김씨 유일재 종부 김후웅 “왜 살아도 살아도 끝이 안나노?”

2. 분파

광산 김씨는 크게 '문정공파', '문숙공파', '양간공파'[10], '낭장공파', '광절공파[11]' 5파로 분류 되어있다. 이외에도 중파, 소파, 지파로 구성되어있다.

여담으로 양간공파, 낭장공파, 광절공파는 고려의 여진 정벌 당시 활약한 김의원을 조상으로 두고 있다. 또한 문정공파와 문숙공파까지 해서 오늘날 광산 김씨는 전부 고려 때 제각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권세가와 여요전쟁을 계기로 성장한 문벌귀족 가문으로 이름났던 인천 이씨청주 이씨의 피도 흐르는데, 이는 김양감의 두 아들인 김의영과 김의원 모두 장화공 이자연의 장남인 이정의 딸들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이정의 부인은 왕가도의 딸이기 때문에 청주 이씨의 피도 흐른다.

3. 관련 성씨

4. 항렬

대략적으로 근현대에 분포하고 있는 항렬자는 다음과 같다.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한데 보통 37~41세손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많다. 김씨 여자 이름에 용, 중, 동, 환, 규 등의 글자가 들어있다면 십중팔구 광산 김씨. 애초에 여자들은 항렬을 잘 안 쓰고, 이 글자들이 모두 남성적이지만 경우에 따라 여자에게 쓰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

아래 항렬자는 최근 광산 김씨 상대 계보를 정리하면서 한 세대씩 위로 올린 것[12]일 뿐, 항렬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현대의 인물도 모두 기존의 세수에서 한 세대씩 올라가는 것으로 정정되었다.
33세기(箕)○
34세재(在)○
35세○현(鉉)
36세영(永)○
37세○수(洙)
38세용(容)○
39세○중(中)
40세선(善)○
41세○순(淳)
42세동(東)○
43세○환(煥)
44세규(奎)○
45세○용(鏞)
46세연(淵)○
47세○식(植)
48세형(炯)○
49세○곤(坤)
50세수(銖)○
51세○홍(洪)
52세종(種)○
53세○헌(憲)
54세중(重)○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또한 광산 김씨 일문이다. 부친 김용하의 경우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 출신이지만 김우중의 경우 출생지는 대구이다. 김우중의 아버지 김용하는 박정희의 스승이었는데, 당시 김용하는 소년 박정희를 매우 총애하여 비가 오는 날이면 귀가시키는 대신 관사에서 숙식시키면서 유명한 박정희의 글씨를 가르쳤다고 한다. 김용하는 이후 1940년대 말에 제주도지사를 역임했으나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실제로는 36세손 영○ 항렬이나 조부 대부터 3세 아래의 항렬을 쓰면서 부친, 자신, 아들, 손자까지도 3세 아래의 항렬을 써왔는데, 실제로 제주 지역의 경우 대체로 타 지역보다 항렬들이 2~3세대 높다.[13] 현재 나이로 40대 연배에 33세손인 사람 또한 생존해 있다. 김○중(中) 항렬인 39세손인 경우 원래 토박이인 문정·문간공파라면 아무리 빨라도(거의 각가지의 종손 중에도 드물다) 40대 초~중반 연령이다. 참고로 제주 지역에 광산 김씨가 정착한 것은 문정공 김태현의 3남 문간공 김광재의 2남 김윤조가 신돈 집권기에 제주로 피신하면서부터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광산 김씨가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한데, 김용(容)○(38세손), 김○중(中)(39세손), 김선(善)○(40세손)을 쓰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까 이름에 김용(容)○이 들어가 있으면 70%[14]가 광산 김씨라 보면 되겠고, 특히 김○중(中)이 들어가 있으면 김대중[15], 김현중[16] 등 희귀 사례를 제외한 8~95%가 광산 김씨라 보면 되겠다. 이 중(中)자는 가운데가 오행상 토(土)에 해당하기 때문에 배정된 것이다. 또한 해당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워낙에 많아서인지 세대가 같더라도 나이 차이가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아래에 서술한 인물들은 대부분 가까운 친척 관계가 아니다.

5. 인물

이름 생몰년도 비고
1~32세
김련(金鍊) 1215 ~ 1278 양간공파 13세, 고려의 문신
김장생(金長生) 1548 ~ 1641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26세, 조선의 문신
김집(金集) 1574 ~ 1656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27세, 조선의 문신
김만기(金萬基) 1633 ~ 1687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27세, 조선의 문신
김만중(金萬重) 1637 ~ 1692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29세, 조선의 문신
인경왕후 1661 ~ 1680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30세, 숙종의 정비
김춘택(金春澤) 1670 ~ 1717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31세, 조선의 문신
33세(箕)
김성제(金聖濟) 1960 ~ 문정공후 의랑공파 자치단체장, 족보명 성기(聖箕)
34세(在)
김필순(金弼淳) 1878 ~ 1919 문숙공후 판도판서공파 독립운동가
35세(鉉)
김마리아(金瑪利亞) 1891 ~ 1944 문숙공후 판도판서공파 독립운동가
김용하(金容河) 1896 ~ ? 문정공후 문간공파 교육인, 관료
김염(金焰) 1910 ~ 1983 문숙공후 판도판서공파 배우, 족보명 인현(麟鉉)
36세(永)
김영조(金永祚) 1923 ~ 1981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체육
김영광(金永光) 1931 ~ 2010 문정공후 문민공파 정치인
김덕중(金德中) 1934 ~ 문정공후 문간공파 교육인, 관료
김우중(金宇中) 1936 ~ 2019 문정공후 문간공파 기업인
김우남(金宇南) 1955 ~ 문정공후 문간공파 정치인
김태년(金太年) 1964 ~ 문숙공후 상호군공파 정치인, 족보명 영남(永南)
김영삼(金永三) 1975 ~ 양간공후 전리판서공파 희극인, 의료인
김영빈(金永彬) 1993 ~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아이돌
37세(洙)
김양수(金良洙) 1896 ~ 1971 양간공후 전리판서공파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인
김성복(金聲福) 1902 ~ 1982 문정공후 문민공파 정치인, 족보명 성수(成洙)
김명수(金命洙) 1907 ~ 1986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정치인
김인선(金仁善) 1922 ~ 2013 문숙공후 밀직사사공파 정치인
김창수(金昌洙) 1922 ~ 2015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정치인
김수환(金壽煥) 1922 ~ 2009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종교인
김경한(金慶漢) 1944 ~ 양간공후 밀직부사공파 관료
김황식(金滉植) 1948 ~ 문숙공후 삼사좌사공파 관료
김성수(金性洙) 1953 ~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정치인
김소연(金沼延) 1953 ~ 문숙공후 상호군공파 방송인
38세(容)
김천수(金天洙) 1920 ~ 2003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정치인
김용창(金容昶) 1926 ~ 1945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독립운동가
김용옥(金容沃) 1948 ~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교육인
김용익(金容益) 1952 ~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정치인
김용태(金容兌) 1968 ~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정치인
김은혜(金銀慧) 1971 ~ 문숙공후 상호군공파 정치인
김용호(金容浩) 1976 ~ 2023 광절공파 언론인
김유진(金梄眞) 1981 ~ 문숙공후 화평부원군파 방송인
39세(中)
김화중(金花中) 1945 ~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관료
김하중(金夏中) 1947 ~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관료
김희중(金喜中) 1947 ~ 문정공후 록사공파 종교인
김가을 1978 ~ 문정공후 문민공파 프로게이머
김다래 1991 ~ 문정공후 록사공파 인터넷 방송인
김세혁(金世革) 1992 ~ 양간공후 전리판서공파 정치인
40세(善)
김선우(金善佑) 1915 ~ 1987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정치인
김선동(金善東) 1963 ~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정치인
김선우(金善宇) 1977 ~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체육인
김선일(金善一) 1978 ~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래퍼
김선태(金善泰) 1987 ~ 광절공파 공무원
김채연(金采嬿) 2004 ~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아이돌
41세(淳)
김규남(金圭南) 1929 ~ 1972 문정공후 문민공파 정치인, 족보명 규순(圭淳)
김춘순(金瑃淳) 1963 ~ 양간공후 판군기감사공파 교육인, 관료
김태평(金泰坪) 1982 ~ 문정공후 록사공파 배우
42세(東)
43세(煥)
44세(奎)
김규민(金奎玟) 1990 ~ 문정공후 문민공파 체육인

5.1. 계보 미상


아래는 항렬자(발음만 같은 별개의 한자도 포함) 사용 등으로 인해 세수를 추정할 수는 있으나 족보에 등재되지 않아 파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이거나 아니면 광산 김씨가 아닌데 이름만 보고 광산 김씨라고 눈대중으로 추측해서 기재된 인물들일 수도 있으므로 족보에서 찾은 인물들은 위로 옮기고 광산 김씨가 아니라면 삭제하길 바란다.

33세 기◯
35세 ◯현
36세 영◯
37세 ◯수
38세 용◯
39세 ◯중
40세 선◯
42세 동◯
[A] '광산'군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광주의 별호(고을의 별칭)였다. 여기서 따와 훗날 광산군, 광주광역시의 광산구가 명명됐다. 광산 김씨 유허비가 있는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는 원래 광산(광주)에 속했는데 1914년 전라남도 광주군 대치면에서 담양군 대전면으로 편입되었다.[2] 신라의 제33대의 왕인 성덕왕과는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이다.[A] [4] 49대 헌강왕의 아들은 1명으로, 51대 효공왕 김요 이다.[5] 통일신라 말기 왕권쟁탈전을 눈으로 확인하였기에, 나라가 장차 어지러워 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왕위에 6개월 있었으니 말 다했다.[6] 대전광역시와는 한자까지 '大田'으로 같지만 서로 무관하다. 다만 1914년 행정구역이 바뀌기 이전에는 전라남도 광주군 대치면이었기 때문에 현재도 '대치'라고 불리긴 한다. 하지만 실제 대전광역시에도 광산 김씨가 은근히 많다고 하는데, 이는, 인근인 논산 등지에도 집성촌이 있고, 전북 지역에서 가까운 대전으로 이주한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7] 문묘 종사와 종묘 배향을 모두 이룬 조선조 인물은 김집 외에 이언적, 이황, 이이, 박세채, 송시열 등 단 다섯 명 뿐으로, 이들을 배출한 집안이 반남 박씨, 은진 송씨, 덕수 이씨, 여주 이씨, 진성 이씨가 '국반(國班)'이다.[8] 흔히 문형으로 불리는 양관 대제학은 7명이나, 예문관 대제학(홍문관 설치 이전)을 지낸 김한로를 포함하면 8명이 된다. 또한, 아계 김일경도 대제학을 지냈다는 기록도 있으니 이를 포함하면 9명까지 집계할 수 있으나 확실치 않으므로 제외한다.[9] 안동시에 예안파 후손들이 거주한다. 이언적의 학설을 지지하고 이황의 가르침을 받은 전형적인 영남 남인 계통이다. 합천군에도 집성촌과 종중이 있다. 전남과 가까운 서부경남은 비교적 많다.[10] 광산 김씨의 70%를 차지하며 13세손(世孫) 김연(金璉)을 파조로 한다.[11] 2016년 평장대보 발간때에 예전의 사온직장공파의 상계를 수정하면서 광절공파로 변경하였다.[12] 기존 족보에는 10세손 김체(金蔕)의 아들로 김위(金位), 김주영(金珠永) 형제가 기록되어 있었다. 즉 김위와 김주영이 11세손으로 기록되어 있던 것인데, 김위는 8세손 김의영(金義英)의 손자로, 김주영은 마찬가지로 8세손인 김의원(金義元)의 손자로 정정하면서 김위와 김주영은 모두 10세손으로 바꿔 기록되었다. 광산 김씨는 모두 김위와 김주영의 후손이므로 항렬의 혼란은 없다.[13] 다른 가문에서도 서울에서 제주도나 또는 제주도만큼 먼 함북, 평북 지역 집성촌의 항렬이 높은 편.[14] 경주 김씨 상촌공파 17세손이나 김해 김씨 삼현파 21세손이 김용(容)○ 항렬이지만 꽤 높은 항렬이라 살아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고령이다. 흔히 보이는 김기(基)○, 김○호(鎬), 김택(澤)○ 항렬은 경주 김씨 상촌공파 21, 22, 23세손이고 김○곤(坤), 김종(鍾)○, 김○수(洙) 항렬은 김해 김씨 삼현파 22, 23, 24세손이다.[15] 김대중 형제들은 '대' 자를 돌림자로 사용하며, 이름 끝의 '중'이 겹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이다.[16] 가수 김현중. 그런데 이쪽은 '중'자의 한자가 다르다. 이쪽도 우연이다.[17] 김상은에서 개명.[18] '永(길 영)' 자 돌림인데 '姈(영)'이라는 희귀 한자를 쓴다.[Y] 아버지가 배우 김용건이다.[Y] [21] 친형의 이름이 김석중이다.[22] 친형의 이름이 김범중이다.[23] 아버지가 김언중에서 김도윤으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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