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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이순재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연기대상 대상 | ||||
신설 | → | <colbgcolor=#ffffa1,#5d5e00> 이순재 김성원 여운계 김희준 사미자 (1970년) | → | 김순철[1] (1971년) | |
연기대상 남자 주연상[2] | |||||
김성원 (1972, 1973년) | → | 이순재 (1974년) | → | 정해창 (1975년) |
방송연예대상 대상 | ||||
유재석 (2006년) | → | 이순재 무한도전 팀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2007년) | → | 강호동 (2008년) |
연극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 ||||
백성희 (1965년)[A] | → | 이순재 김동훈 (1966년)[A] | → | 김동원 (1967년) |
영화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 ||||
제12회 (1976년) | → | 제13회 (1977년) | → | 제14회 (1978년) |
김희라 (마지막 포옹) | → | 이순재 (집념) | → | 신성일 (겨울여자) 황해 (부초) |
한국방송대상 | ||||
탤런트상 | ||||
최불암 이경진 (1981년) | → | 이순재 (1982년) | → | 박규채 (1983년) |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 |
<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2018년 |
이름 | 이순재 |
분야 | 배우 |
은관문화훈장(2등급) | |
연도 | 2002년 |
이름 | 이순재 |
분야 | 배우 |
보관문화훈장(3등급) |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 |||||||||
2004년 | ||||||||||
※ 200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최불암 | 이영애 | 권상우 | 김혜자 | 고두심 | ||||||
6위 | 공동 7위 | 9위 | 10위 | |||||||
최수종 | 송혜교 | 장동건 | 채시라 | 이서진 | ||||||
2009년 | ||||||||||
※ 2009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김혜자 | 최불암 | 김태희 | 이순재 | 소지섭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김남주 | 강부자 | 장동건 | 이민호 | 고두심 | ||||||
2014년 | ||||||||||
※ 201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김수현 | 최불암 | 조인성 | 김태희 | 고두심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6위 | 공동 7위 | 9위 | 공동 10위 | ||||||
이순재 | 김혜자 | 김희애 | 이유리 | 유동근 | 현빈 | }}} | ||||
12위 | 13위 | 14위 | ||||||||
송일국 | 전지현 | 이영애 | ||||||||
2019년 | ||||||||||
※ 2019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공동 4위 | |||||||
최불암 | 김혜자 | 박보검 | 공유 | 송혜교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이순재 | 고두심 | 최수종 | 송중기 | 전지현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1위 | 공동 12위 | ||||||||
현빈 | 차인표 | 한지민 | 김혜수 | 조인성 | 남궁민 | |||||
공동 17위 | ||||||||||
김해숙 | 소지섭 | 김태희 | 장동건 | 김수현 | 정우성 | }}} | ||||
공동 23위 | ||||||||||
박보영 | 이영애 | |||||||||
2024년 | ||||||||||
※ 202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 ||||||||||
1위 | 공동 2위 | 공동 4위 | ||||||||
김수현 | 남궁민 | 김지원 | 차은우 | 김남주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최수종 | 송중기 | 최불암 | 고두심 | 김고은 | ||||||
공동 11위 | 14위 | 15위 | ||||||||
한소희 | 김혜자 | 박은빈 | 박서준 | 손예진 | ||||||
공동 16위 | 공동 18위 | |||||||||
송혜교 | 김유정 | 전지현 | 김혜수 | |||||||
공동 20위 | ||||||||||
조정석 | 이보영 | 공유 | ||||||||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좋아하는 유튜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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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BTS | 강하늘 | 강형욱 | 강호동 | 고두심 |
공효진 | 김강섭[A] | 김동건 | 김병만 | 김수현 | |
김숙 | 김신영 | 김영철 | 김은숙 | 김종민 | |
김혜수 | 김혜자 | 나문희 | 나영석 | 나훈아 | |
노희경 | 문세윤 | 박명수 | 배용준 | 소녀시대 | |
손범수 | 송은이 | 송중기 | 송해 | 송혜교 | |
신구 | 신동엽 | 아이유 | 안국정[B] | 유동근 | |
유재석 | 윤석호 | 이경규 | 이금희 | 이병헌 | |
이순재 | 이영자 | 임성훈 | 전현무 | 조용필 | |
최경영 | 최불암 | 최수종 | 허참 | 황수경 | |
한국방송공사가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이하여 선정한 50인의 인물로, 순서는 가나다순으로 정렬하였다. 선정을 위해 KBS와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이 공동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사내외 전문가그룹 100명과 인구 통계학적 분포에 따라 성별, 연령별로 구성된 KBS 국민 패널 1,800여 명이 참여한 1차 설문 조사로 100명의 후보군을 우선 선정하였다. 이어 3주간 KBS 공영방송 50주년 홈페이지(kbs50.kbs.co.kr)를 통해 일반 시청자 7만여 명을 대상으로 최종 투표를 실시하였다. 시청자 투표로 선정된 최종 50인은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추천을 받아 미디어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KBS를 빛낸 50인 선정자문위원회’에서 적격성 검토를 거쳐 확정되었다. [A]: 가요무대 음악 감독을 맡은 KBS 악단장으로, 2022년 사망하였다. [B]: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을 기획, 연출한 PD. |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중랑구 갑) | ||||
제13대 이상수 | → | 제14대 이순재 | → | 제15-16대 이상수 |
<colbgcolor=#292929><colcolor=#fff> 이순재 李順載|Lee Soon-jae | |
출생 | 1934년 11월 16일[5] (90세) |
함경북도 회령군[6]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
본관 | 광주 이씨 (廣州 李氏)[7] |
신체 | 165cm[8]|68kg|260mm |
학력 | 경성아현공립국민학교 (졸업) 서울중학교 (졸업) 대전고등학교[9] (전학) 서울고등학교 (5회 /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10] (철학 / 학사) |
가족 | 아버지 이용남(1908 ~ 1970)[11], 어머니 전분녀(1913 ~ 2008)[12] |
배우자 최희정(1940년생, 1966년 결혼) | |
아들 이종혁(1967년생), 딸 이정은(1970년생)[13] | |
직업 | 배우 (1956년~현재[14])[15] 국회의원 (1992년 5월 30일~1996년 5월 29일)[16] |
의원 선수 | 1 |
의원 대수 | 14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1958~1961)[17] |
종교 | 무종교 (무신론)[18] |
현직 | 사단법인 한반도평화네트워크 총재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과 명예석좌교수 SG연기아카데미 원장 |
데뷔 | 1956년 연극《지평선 너머》 |
별명 | 이순대[19], 야동순재[20]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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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겸 연극 연출가. 제14대 국회의원. 현재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이다.2. 생애
3살 때이던 1937년 가족들과 함께 생계를 위해 만주국 간도성 연변(延邊) 지역으로 이주했다가 이듬해인 1938년 홀로 조부모가 살던 경기도 경성부로 돌아와 6.25 전쟁 때 충청남도 대전군으로 피난간 것을 빼면 대부분의 생애를 서울특별시에서 보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이던 1943년 잠시 고향인 회령군을 방문하기도 했으며, 1945년 8.15 광복 후 부모님도 서울특별시로 내려왔다. 유년 시절에는 유치원까지 다닐 정도로 부유했으나, 이후 집안 사정이 나빠져 국민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와 함께 비누 장사를 했는가 하면, 중학생 때는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고 나서 월사금(수업료)을 안 내도 아무 말 없었다고 한다.
서울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0년 6월 25일, 남동생 이명재(1937[23]~1994)[24]의 수영복을 사러 갔다가 군인들의 부대 복귀를 종용하는 즉, 6.25 전쟁이 일어났다는 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꽃보다 할배 사전 미팅 당시 "배낭 여행을 해본 경험이 있으신지?"라는 PD의 질문에 "6.25 때!"라고 대답해 PD를 놀라게 하거나, 2019년 해피 투게더에서 신구와 함께 출연하면서, 만화영화 얘기를 하는데, 유재석이 두 사람에게 어릴 적 본 만화가 있으셨냐는 질문에는 "일제 때 태어나서 볼 리가 있겠나마는 손오공이나 디즈니 만화는 본 적 있는 것 같다."(#)고 하는 등.[25] 6.25 전쟁 발발(勃發)시 고등학생이었다는 언급을 다룬 기사: 스포츠투데이 기사 오마이뉴스 기사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소속으로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반면 2005년에는 열린우리당 이상수의 후원회장을 맡아 화제가 됐었다.
3. 위상 및 영향력
2024년 현재 한국 현역 최고령 연예인이자 배우이며, 한국 방송 역사의 산증인 중 한 사람으로 동시대 많은 배우들의 롤모델이자 멘토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배우다.[26]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27] 이후 젊은 시절부터 지성적인 이미지와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영화, 연극, 브라운관을 오가며 70년 가까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완벽한 자기 관리와 지치지 않는 열정,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열린 마인드로 젊은 세대에게도 진정한 어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tvN 꽃보다 할배를 통해 보여준 여러 모습들이 계기가 된 것 같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그에 대한 존경이 담긴 미담이 많기로 유명하다.또한 모음 체계상 장단음 구분과 10모음 체계를 가진 옛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배우이다. 연기론적 측면에서는 후배인 박근형, 윤여정과 전통적인(재현적) 연기론을 지향하는 대표적인 배우이다. 재현적 연기는 메소드 연기와 함께 현대 연기론의 큰 줄기를 이루는 연기이론이다. 메소드 연기와 재현적 연기는 대비되는 연기 철학을 가진다. [28] 90대의 고령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뛰어난 암기력, 해박한 지식인의 소양에서 나오는 깊이 있는 작품 분석력, 정확한 한국어 구사에서 나오는 대사 전달력, 허스키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시원한 발성은 대배우 이순재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장점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현재까지도 아흔에 근접한 고령에도 연극, 드라마, 영화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4년 현재까지도 이 세군데를 모두 섭렵하는 배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 2021년에는 연극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작 리어왕에서 최고령 리어왕역을 맡아 3시간이 넘는 장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2022년에는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인 대작 연극 갈매기의 연출을 맡아 연극 연출가로서의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진정한 어른이 별로 없는 현 시기에서 대중문화예술계에 몇 남지 않은 사표(師表)로서 평가 받으며 올곧게 배우라는 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60년이 넘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발전 공로를 국가로부터 인정 받아 2018년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TV방송사인 대한방송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한국 TV산업 초창기부터 활동해온 남자 배우로서 생존해있는 마지막 인물[29]이라고 할 만큼 경력이 오래되었다 보니, 연기계를 떠나 연예계에서 원로로서 받는 위상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클래식 할리우드 세대 중 말년인 201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연기활동을 했던 미키 루니가 평가받았던 것과 비슷하다.
이정재, 최지우, 김태희, 김명민, 이서진, 하지원, 이승기, 한지민, 유연석, 신세경, 황정음 같은 젊은 배우들부터 이덕화, 유동근, 김영철, 백일섭, 장용, 정보석, 최수종, 배종옥 같은 중견 배우들도 대표적으로 이순재를 항상 롤모델이자 멘토로 뽑는 후배 배우들이다.
4. 연예계의 큰어른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서 어른 행세하고 대우나 받으려고 주저앉아 버리면 늙어버리는 거고, 난 아직도 한다 하면 되는 거예요. 인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쭉 가면 되는 거야. 이제 우리 나이쯤 되면은 언제 어떻게 될 수 있다는 건 잊어버리고 닥치면 닥치는 대로, 당장 나는 내 할 일이 있으니까. 그거 하다 보면 이제 끝내야 될 때가 올 거 아니냐 이거야. 그럼 그 때 끝내면 되는 거고. #
- 꽃보다 할배 시즌 3 스페인 편에서 한 발언.[30]
- 꽃보다 할배 시즌 3 스페인 편에서 한 발언.[30]
저 개인적인 편견일지는 모르지만은 저는 스타를 두가지로 분류를 합니다. 하나는 이쁘고, 아름답고, 멋지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연예인이, 프로그램 하나 잘 만나가지고 떠가지고 광고 많이 하고 돈 많이 버는 스타. 출연은 잘 안 하면서. 나는 이런 스타를 모델 스타라고 합니다. 근데, 인기도 높으면서 또 연기를 알차게 하는 스타. 이 스타를 나는 액팅(Acting) 스타라고 구분합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액팅 스타가 되길 바라면서.. #
- 2013 SBS 연기대상에서 10대 스타상을 시상하면서.[31]
- 2013 SBS 연기대상에서 10대 스타상을 시상하면서.[31]
배우로서 연기는 생명력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몸살에 걸려 누워있더라도 레디 고 하면 벌떡 일어나게 돼 있어요. 이게 바로 배우의 생명력입니다. 그런데 연기가 쉽지가 않아요. 평생을 했는데도 아직도 안 되고 모자라는 데가 있습니다. 그래서 늘 고민하고, 또 연구하고, 새로운 배역이 나올 때마다 참고하는 겁니다.
그동안에 연기를 아주 쉽게 생각했던 배우들, 또 '이만하면 난 그래도 이제 다 된 배우 아닌가' 했던 배우 수백 명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없어져 버렸어요. 배우라는 것은 항상 새로운 작업에 대한 도전입니다. 어떻게 연구 안 하고, 공부 안 하고 창조가 되겠느냐 하는 얘기예요. 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한 사람들이 지금 남아있는 거예요. 연기라는 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연기에 완성이 없다는 얘기가 바로 그겁니다. 잘할 순 있어도 완성은 아니다 이거예요.
- 제60회 백상예술대상 특별무대 '예술이란 무엇인가?' 中
2022년 대한민국 최고령 연예인이었던 송해가 사망하자 국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최고참 현역 연예인 타이틀을 이제 그가 물려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연기 역사의 산증인. 그리고, 이순재는 2024년 생일을 맞아 졸수를 맞이했다. 송해가 생존해 있던 당시에도 연기자들 가운데서는 오래전부터 최고령 현역 연예인이자 최고참 선배의 대우를 받아왔으며, 가장 상징적인 원로 배우로 여겨져 왔다.[32]그동안에 연기를 아주 쉽게 생각했던 배우들, 또 '이만하면 난 그래도 이제 다 된 배우 아닌가' 했던 배우 수백 명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없어져 버렸어요. 배우라는 것은 항상 새로운 작업에 대한 도전입니다. 어떻게 연구 안 하고, 공부 안 하고 창조가 되겠느냐 하는 얘기예요. 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한 사람들이 지금 남아있는 거예요. 연기라는 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연기에 완성이 없다는 얘기가 바로 그겁니다. 잘할 순 있어도 완성은 아니다 이거예요.
- 제60회 백상예술대상 특별무대 '예술이란 무엇인가?' 中
선배나 동년배 중에 더 이상 현역 연예인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이순재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연예인은 거의 없다. 안티 컨셉인 왕비호로 분한 윤형빈도 이순재를 까라는 요청을 본인이 진짜로 욕을 먹을까봐 계속해서 거절했는데 그나마 농담조로 "어이 이순재" 라고 했고[33] 그마저도 바로 "죄송합니다" 라고 꼬리를 내렸을 정도. 2020년 12월 아는 형님에 신구와 함께 출연했을 때, 프로그램 특성상 모두가 반말로 진행하는 컨셉이었음에도 멤버들 모두가 반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극존칭을 썼다.
그 특유의 먼저 모범을 보이는 태도는 항상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보통 이순재 정도 되는 원로배우는 촬영 시간을 앞당겨 주는 것이 관례인데도 다른 배우들이 자신 때문에 촬영 시간이 늦춰지는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몇 시간씩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야인시대 김두한과 태조 왕건 궁예로 유명한 배우 김영철은 당시까지만 해도 촬영장에서 제작진들을 갈구며 가장 먼저 촬영하게끔 하는 촬영장의 호랑이로[34] 유명했는데, 본인보다 한참 선배인 이순재의 이러한 마인드를 보고 크게 반성했다고 한다.[35]
송해는 공적인 자리에서 젊은 연예인들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이순재는 그와 다르게 후배 연예인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했을 때 따끔한 소신 발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연예계에서 사고가 터질 경우 언급 자체를 안 하려고 하지만, 이순재는 그런 거 없이 일침을 가한다.
2018년 3월경에는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일침을 날렸다. 한 방송에서 '미투운동을 접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제자나 부하를 내 마음대로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분들 다 아는 분들이라 깜짝깜짝 놀란다. 설마설마했는데 사실화됐다"며 "관객들이나 국민들한테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 꿈을 접은 후배들을 향해서는 "자기 탓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연기) 할 수 있게 돼야 한다"고 연기 재개를 권유했다. 반면 가해자들을 향해서는 "이 분야를 다 떠나야 한다. 다 끝을 내야 하지 않겠나"라며 "다들 깊이 반성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금 한 약속을 잘 지키고 '나 죽었소'하고 평생 엎드려 있으라"고 충고했다.
2018년 4월 20일에 공개된 차이를 넘어 묻고 차이를 넘어 답하다(차문차답) 캠페인에서 5세, 8세, 10세 어린이들이 평소에 궁금해하던 것을 이순재에게 묻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 중 한 여자아이가 '미투가 뭐예요?'라고 묻자 '그런 말을 알 필요도 없고 그런 말을 생각할 필요도 없어. 너희 때는 그럴 일 절대 없을 테니까' 라고 답을 해 주었다.
버닝썬 게이트가 터지자 2019년 3월 2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영화 ‘로망’ 기자회견에서 이 사태에 대해 "연예인은 공인은 아니지만, 행위 자체가 전파성이 있어서 공인 역할과 개념이 있다. 조심하고 절제해야 한다", "연예인이 특권이 어디 있나. 특권의식은 의식에 달린 거다. 연예인이란 결국 인기가 필요한 직업이지만, 요새 착각하는 친구들이 많더라", "'내가 연예인인데 자유분방하면 어때, 그게 예술이야’라고 주접떠는데, 그러면 안 된다", "빌붙어 비즈니스 같은 게 들어와도 넘어가면 안 된다.", "승리 같은 경우도 그렇다. 30살밖에 안 됐는데, 주변에서 바람을 넣는다.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는 일에 끼어들면 잘못 말릴 수 있다. 우리 선배들도 예전에 그러다가 거덜 난 사람 많다. 나 때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자기들이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고 좋은 연기, 좋은 노래 하면 되는데 왜 그런 사업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고 지적하며 "버닝썬 사건은 사회적 패악에 대한 문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고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주변의 유혹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
2022년 5월 19일 영화 <안녕하세요> 인터뷰에서도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였는데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공인적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있고, 특히 젊은 친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부터 법규를 잘 지켜야 한다." 라고 언급을 하였다.[37] 정황 상 바로 전날에 있었던 김새론 음주운전 사건에 대해 간접적으로 에둘러 설명한 듯한데, 그 기사를 보았다고 했으며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연예인은) 대중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정치인과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항상 절제를 하고 조심해야 한다. 나로 인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근신해야 하며 돈을 많이 벌고 인기가 있다고 해서 어깨에 힘주고 다니지 말고 늘 겸손하고 감사해야 한다." 라며 쓴소리를 하였다.
하지만, 호통뿐만이 아니라 칭찬도 많이 하는 편이다. 범죄도시 2 마동석 때문에 본인의 영화가 기를 못 편다고 너스레를 피우며 한국뿐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설치게 되어 너무나도 좋다고 범죄도시 2를 칭찬하였으며 방탄소년단에 대해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리 방탄소년단'이라고 부를 줄을 누가 알았겠냐고 단순히 알려진 정도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방탄복을 벗고 전세계를 석권하러 다닌다고 표현하였다.
5. 주요 활동
자세한 내용은 이순재/주요 활동 문서 참고하십시오.6. 정치 활동
6.1. 정치 경력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선거벽보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선거벽보 |
선거 자금 문제와 본인의 연고가 없는 지역구 공천으로 인해 난색을 표했으나, 당에서 선거비를 전액 지원 받아 1988년의 13대 총선에 민주정의당 후보로 중랑구 갑 선거구에 나왔지만, 평화민주당의 이상수에게 근소한 차이(32.3% 대 31.4%, 759표 차이)로 패했다. 첫 번째 선거에서는 따로 선거운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당시 현역 의원이었던 민주당 이상수 후보를 제치고 서울 중랑구 갑에서 당선되었다(48.7% 득표, 46,297). 이후 1993년 잠시 민자당 부대변인을 맡기도 했다.[38] 비록 선거에서 경쟁 후보로 만났지만 이때 만난 이상수 전 의원과 친해져서, 이후 총선에서 이상수 전 의원이 2005년 재보궐선거에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했을 때 선거운동(정확히는 선거후원회장)도 약간 해줬다고 한다. #
선거 이력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본래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 소속이었지만 1996년에 정계를 은퇴함과 동시에 탈당한 이후로는 당적을 가진 적이 없다. 17대 대선 때와 18대 대선 때는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을 지지했다. 18대 대선 당시에는 박근혜 후보의 자문기구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합류했다.
다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탄핵 정국이었던 2017년 1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서 성적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던 학생과의 일화를 이야기하던 와중 '내가 최순실이도 아니고...'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정치 활동을 해도 연예 활동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어서 당선 후에도 계속 연예 활동을 이어갔고 국회의원 신분으로 제3공화국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각 당에서 얼굴마담 형식으로 배우들을 뽑았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 드라마 출연을 막진 않았으나 공무원 겸직에 관련된 지속적으로 논란이 생겼다.[39] 결국 제14대 국회의원 임기 중 연예활동 겸직 금지 규정이 명문화 되었고 1995년부터 실행되었다. 이로 인해 이순재는 잠시 방송활동을 중단하게 된다.[40]
제15대 대통령 선거와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으며,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하면서 선대위 기자회견에도 참석했다.[41]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의 선대위에 참여했다.
이 후에는 딱히 정치적 성향을 들어내거나 정치 관련 활동을 한 적이 없으나, 오랜 시간동안 보수진영을 지지했던 이력 때문에 많은 대중들은 이순재를 우파 성향의 연예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다만 정치성향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는만큼 그의 정치성향이 활동에 제약을 주거나 한 적은 없고, 이순재 본인도 언제나 연기활동을 1순위로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적 이미지가 강한 편은 아니다. 또한 이순재는 송해와 마찬가지로 다각적인 면이 존재하기 때문에 타협없는 보수성향이라고 하긴 어렵다.
6.2. 소속 정당
<rowcolor=#fff> 소속 | 기간 | 비고 |
| 1981 - 1990 | 창당 정계 입문 |
[[민주자유당|]] | 1990 - 1995 | 합당[42] |
[[신한국당|]] | 1995 - 1996 | 당명 변경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96 - 현재 | 탈당[43] 정계 은퇴 |
6.3.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중랑 갑 | | 26,483 (31.40%) | 낙선 (2위)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자유당|]] | 46,297 (48.71%) | 당선 (1위) | 초선 |
역대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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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총선 (서울 중랑구 갑) | 14대 총선 (서울 중랑구 갑) | }}}}}}}}} |
7. 출연 작품
자세한 내용은 이순재/출연작 문서 참고하십시오.8. 홍보 대사
- 2024년 2024년 꿈의 극단 홍보대사
9. 수상 경력
- 1966년 제2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연극부문 연기상
- 1968년 제11회 부일영화상 신인남우상
- 1970년 TBC 연기대상 대상
- 1970년 제6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애독자 인기상
- 1971년 제7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애독자 인기상
- 1972년 제8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애독자 인기상
- 1972년 제15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 1974년 제10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애독자 인기상
- 1974년 TBC 연기대상 남자 주연상
- 1977년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 1979년 TBC 연기대상 특별공로상
- 1982년 제9회 한국방송대상 TV 연기상
- 1984년 제11회 KBS 우수프로그램평가상 연기상
- 1996년 KBS 연기대상 공로상
- 2000년 MBC 연기대상 연기자 부문 특별상
- 2000년 SBS 연기대상 공로상
- 2002년 MBC 명예의 전당
- 2002년 문화관광부 문화의 날 보관문화훈장
- 2004년 SBS 연기대상 연속극부문 연기상
- 2007년 제41회 납세자의 날 동대문세무서장 표창
- 2007년 제1회 엠넷 20's 초이스 베스트 캐스팅상
- 2007년 제1회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 공로상
- 2007년 제8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탤런트 부문 포토제닉상
-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 2007년 MBC 연기대상 사극 부문 황금연기상
- 2008년 MBC 연기대상 PD상
- 2009년 제45회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 2009년 제9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원로배우 부문 인기영화인상
- 2009년 MBC 방송연예대상 공로상
- 2010년 제1회 서울문화예술대상 문화예술인 부문 대상
- 2010년 제10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원로배우 부문 인기영화인상
- 2011년 제20회 금계백화장영화제 남우주연상
- 2011년 제11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원로배우 부문 인기영화인상
- 2011년 대한민국 CEO 그랑프리 특별상 문화CEO부문
- 2012년 제1회 K-드라마 스타 어워즈 공로상
- 2016년 tvN10 Awards 예능 아이콘상
- 2017년 제27회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 2018년 대한민국지식기업인 문화부문 대상
- 2018년 제13회 골든티켓어워즈 인기상
- 2018년 제13회 골든티켓어워즈 연극 남자 배우상
- 2018년 제9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 2018년 제7회 대한민국 베스트 스타상 베스트 주연상
- 2018년 제18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원로배우 부문 인기영화인상
- 2019년 제27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문화연예대상
- 2023년 제13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 공로상
10. 사건 사고
10.1. 매니저 관련 사건
자세한 내용은 이순재 매니저 관련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11. 여담
- 한국방송연기자협회의 설립자로서 초대~2대 회장을 지냈다가, 여당 민주정의당의 지구당 위원장(현 당협위원장)에 재직 중일 때 회장으로 복귀하여 11대 회장을 겸직하면서 정계와 협회를 연결할 수 있었다.
- 연로한 나이 때문에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 제도가 있던 시절 송해와 함께 이름이 검색어 1위에 오르면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연예인 중 한 명이었다. 나무위키에서는 현재도 해당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송해가 2022년에 사망하면서 더이상 동년배와 윗세대는 없고, 2살 연하의 신구정도만 남아서 함께 연예계를 지키고 있다.
-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인배. 연예계 최고참 연배이며 더군다나 이력서를 열어보면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에 독일어·영어·일본어 구사[44], 심지어는 국회의원 활동의 정치 경력까지 있는, 그야말로 넘사벽 스펙의 보유자이다. 이런 엄청난 경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배역이든 불만없이 묵묵히 수행하며, 어떤 연기든 연출자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편이라 한다. 촬영이 아무리 길어져도 아무 군소리 없이 그냥 조용히 기다려주기만 할 뿐이다. 사랑이 뭐길래에서 악역을 맡아도, 야인시대에서 고문 당하는 연기도,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그 유명한 야동순재까지도 해낸걸 보면 정말 대인배가 따로 없다.[45] 또다른 사례로 공주의 남자 출연 당시 촬영장의 호랑이로 유명(?)했던 배우 김영철이[46] 차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쉬고 있는 이순재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먼저 찍으시라고 권했는데 이순재는 "나는 신경쓰지 말고 너희 먼저 찍어." 라고 했지만 김영철이 계속 권하자 그제서야 일어나 해가 뜰 때까지 촬영을 마치고 돌아갔다고 한다. 후에 이순재가 밤 10시에 촬영장에 도착해 새벽 3시까지 불평 한 마디 없이 후배 배우들이 다 찍을 때까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자 김영철은 크게 뉘우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 진짜 배우와 광고쟁이의 구분을 명확히 한다. 액터(Actor)와 스타(Star)는 엄연히 다르다며, 진짜 배우는 아끼고 좋아하지만 광고쟁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배용준에 대해 겨울연가 하나밖에 없는 배우이다. 태왕사신기는 배용준이 할 배역이 아니었다.#라며, 배우가 아닌 스타가 된것에 대해 매우 쓴 소리를 했다. 사실 배용준은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여러편을 히트시키고 데뷔초부터 연기력 논란도 없었던 배우지만, 겨울연가의 예상치 못한 일본 대흥행으로 인해 배우 노선이 완전히 달라져 사실상 연기 활동이 끝나버린 것에 대한 비판인 듯.
- 연기자들에게는 박근형만큼이나 엄한 선배로 통하는 듯. 촬영장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제대로 못하거나 프로답지 않은 행동을 하면 화를 내며 지적한다고 한다. 한번은 촬영장에서 신인배우들이 대본을 다 외운 뒤 손에서 놓고 태평하게 있자, 감독에게 불 같이 화를 내면서 신인배우들을 벌벌 떨 게 만든적이 있었다. 이 때 스텝이 "선생님, 이번 씬은 오케이인가요?"라고 묻자 "나는 노케이다."라고 맞받아쳐 그 스텝이 당황했다고...
- tvN 꽃보다 할배에선 유럽을 누비는 와중에 배운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독일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데다 남다른 시사 상식을 뽐냈고 집사부일체와 아는 형님에서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의 역대 미국 대통령들을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진행자와 게스트들 할 것 없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47]
- 건강의 비결에 대해선 술과 담배를 안 하는 것을 꼽았다. 술은 일찍부터 배운 적이 없으며[48], 담배는 1982년도에 끊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당으로 유명한 신구에게 회식 때면 "술 맛 떨어지니까 빨리 가라"라며 쫓겨난다고 한다.[49]
- 일본 대부업체 아프로서비스그룹 계열사인 OK저축은행에 광고모델인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있다.
- 주민등록상으로는 1935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34년생인데, 이는 이북 출신자들이 6.25 전쟁 이후 가호적을 신청할 때 흔히 생겼던 착오라고 한다. 본인의 할머니가 그냥 나이를 말하면 동사무소 직원이 역산해서 생년을 적었는데 이 때 죄다 음력 기준으로 되어버려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추측하고 있다.
- 일제강점기에 출생하였으며, 창씨개명을 했다. 사용했던 이름은 히로키 준사이(廣城順載). 성은 출신지인 광주의 광 자를 썼고, 이름은 순재를 그대로 써서 음독하였다. # 당시에는 한용운이나 김영랑 정도의 강성 독립운동가들이나 산속에 숨어 지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창씨개명을 했으므로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50] 쌀을 배급하지 않거나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거나 병원 진료, 행정 민원, 상급학교 진학 등을 거부당하거나 심지어 끌려가기까지 하던 시대였다.
- 서울고등학교 5회 졸업생이다. 2007년 5월 스승의 날을 맞아 유명인사 일일교사 체험으로 모교를 방문했는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다. 그 당시에 하필 '야동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던 시기였다. 강연 시에 '학생들은 야동 보면 안 된다고' 강의했다.
- 출연작 중 지붕뚫고 하이킥은 서울대학교 출신으로 오해받아 각종 에피소드를 만드는 가짜 서울대생 과외선생에 의해 벌어지는 학벌 관련 에피소드가 주요 갈등 소재인데, 출연진 중 유일하게 진짜 서울대 출신인 이순재의 학력(서울대학교 철학과)이 뒤늦게 주목을 받기도 했다.[51] 아들 역할을 맡았던 최다니엘은 서울대 출신 의사 배역이고, 과외교사 역할이던 황정음은 서울대 영문과 출신으로 사칭하는 배역이지만 이순재는 진짜로 서울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 위에 언급된 주례 대상들 외에도 제자들 결혼식 주례 볼 때 '부부싸움 후에 야동을 봐라'라고 하였다.
- 인기 연예인일 때는 예명 이순재(李純才)를 사용하였으나,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 경력 이후에는 본명인 이순재(李順載)로 한자 표기가 바뀌었다.
- 1930년대 서울 출신의 배우이자 의식적으로 발음을 신경쓰는 측면에서, 60-7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현대 한국어 변화를 겪지 않은 보수적 발음을 구사한다.
- 대표적인 10모음 체계 구사 배우이다. 이순재는 ㅙ를 /wɛ/, ㅚ/ø/로 구분하여 구사한다. 이는 20세기 초반의 한국어 형태로서, 오늘날 두 모음은 /we̞/로 중화된 상황이다. ㅟ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단모음 [y] 으로 발화한다.
- 모음의 장단음을 구분한다. 20세기 초반의 장단음의 구분은 제1음절에서만 선택적으로 이루어지고 그마저도 선명성이 뚜렷하지 않아 언어변화이론 상 이미 매우 과정적인 상황이었다. 의식적으로 규범주의 훈련을 하지 않았다면[52], 그 시대에 출생한 화자더라도 장단음의 구분이 가능한 한국어 화자는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다.
- 이순재는 지금도 '후배들 중 발음을 틀리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자주 지적할 정도로 오래된 규범주의적 언어관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장단음의 소실과 이중모음화 및 전설모음중화는 60-70년대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인구이동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한국어의 발전과정이므로 어떤 발음이 '맞다/틀리다'할 내용은 아닐 수도 있다.[53]
- 녹음 중에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 삼국지 라디오 드라마 녹음 중에 음향효과를 녹음용 마이크에서 그대로 내다보니, 당시 음향 담당이었던 김벌래가 칼 부딪치는 소리를 실제 부엌칼로 내다가 부엌칼 날이 빠져서 이순재의 목 뒤를 스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녹음실에 효과음 콘솔이 따로 생겼다.
- 66년의 연기 인생을 걷는 동안 빌딩 한 채 소유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간 모은 돈은 다 어디 갔냐는 질문에 이순재는 "돈 없어. 우리는 돈이랑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예술가가 돈이랑 무슨 상관있냐"라고 답했다. #
- 2010년대에 들어 자신의 이름을 딴 SG연기아카데미라는 학원을 설립하고 원장으로 재직중이다.
- 하이킥 촬영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로 '야동순재'를 말했다. 처음에는 동창들이 욕할까 봐 거절했으나 너무 재밌을 것 같다는 김병욱 PD의 의견에 따라 촬영을 강행했다고 한다. #
- 영화 〈덕구〉에서 후배 배우 정지훈을 초달했다. 이때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고 회고했다.
-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해 기부했다. #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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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현 | }}} }}}}}} |
[1] 1971년에는 대상 없이 남자·여자 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2] 당시에는 대상이 따로 없었고, 남자·여자 주연상이 최고의 상이었다.[A] 남녀 구별없이 시상[A] [5] 주민등록(호적)상으로는 1935년 10월 10일생인데, 실제로는 1934년 11월 16일생이라고 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던 당시나 현재 대한민국 헌정회에는 1935년으로 표시되어 있다. 당시 출생 신고를 했던 할머니의 착오로 잘못 기재되었다고.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1935년 10월 10일 생으로 표기되어 있다.[6] 現 함경북도 회령시[7] 광주 이씨 21세손 ○재(○載) 항렬.[8] 이순재 본인이 170cm만 되었어도 키에 대한 아쉬움이 적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여담으로 노인의 신체 항목만 보면 노화로 인해 키가 많이 줄었고 그 시절 평균신장은 작았으니 현재로 치면 평균 이상이라는 코멘트가 항상 달리는데 이순재 본인은 아는형님에서 학창시절에 키가 작아 별명이 꼬마였다고 언급했다. 자료가 부족한 1930년대 출생자의 평균 키를 확인하긴 어렵지만 동아일보에서 교육부 통계라고 밝힌 자료에 따르면, 1965년도 만 17세(1948년생) 남성의 평균키는 163.7cm로 알려져 있다. 다만 저 당시에는 만 17세랑 성인의 키 차이가 다소 존재했다. 또한, 월간조선의 기사에 나온 표에서는 1956년도 한국 남성의 평균키가 166.4cm로 나온다. 이순재가 청년기를 보내던 1953년~1965년에 한국 남성의 평균키는 최소 163cm 이상, 최대 167cm 이하 정도로 보이기에 이순재는 평균 정도의 키였다. 하지만 학창시절에는 성인 때보다 많이 작았을 수도 있고, 현재 한국 20대 남성의 평균 키는 174cm지만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180cm 이상의 남자배우들이 많은 걸 생각해보면 당시에도 일반인으로서 평균 정도의 키가 배우의 평균 키보다는 작을 가능성이 높다.[9] 6.25 전쟁으로 대전으로 피난을 가 1년 반 정도를 청강생으로 재학했으며 이후 다시 상경하여 서울고등학교에서 졸업을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대전고 재학 시절 처음으로 연극을 관람했다고. #. 당시 같이 수학한 이가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로 이후 민주정의당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10] 1년 재수해서 54학번이다. 원래는 정치학과에 가고 싶어했으나 낙방하고 이듬해에 철학과로 진학했다. 입학한 후에도 전과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철학과에 관련 석학들이 모두 교수로 있어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11] 2009년 4월 3일 인터뷰365 기사에서 "아버님이 63세 되시던 1970년에 별세하셨다"고 언급했다. #[12]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 기간 도중에 96세로 사망했다. 드라마 촬영기간 도중에 사망해서 부모님 두 분 다 임종을 못 지켰다고 유퀴즈에서 언급했다.[13]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배우 이서진과 뉴욕에서 함께 공부했다고 한다.[14] 만약 2029년 12월 4일까지 계속 활동을 한다면 송해를 제치고 최고령 기록을 가지게 된다.[15] 한국 드라마가 아직 후시녹음 체제이던 1950-60년대에는 모든 연기가 다 더빙이었다. 사실상 성우로서 먼저 데뷔한 셈.[16]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소속 중랑구 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17] 서울에 위치한 부서에서 군 생활을 했다고 한다.[18] 출처[19] 지붕뚫고 하이킥에서부터 유행한 별명.[20]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부터 유행한 별명.[21] 그 유명한 김종서의 4군 6진 개척에 나오는 6곳 중 하나. 소설가 최인훈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이순재가 최인훈에겐 고향 2년 선배지만, 최인훈이 대학에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이순재가 최인훈에게 서울대학교 2년 후배가 된다. 다만 그 당시엔 출생신고가 실제 출생연월일과 크게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아서 두 사람의 정확한 실제 나이는 불명. 최인훈이 실제로는 이순재와 동갑인 1934년생이라는 말도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최인훈이 중학교 시절 1년 월반을 했고, 이순재가 서울대에 재수해서 들어갔음을 생각할 때 동갑인 두 사람의 서울대 학번 2년 차이는 설명이 된다. 현대에는 북한에서 탈북이 가장 흔한 지역이기에 탈북민 출신으로 여러 유명 인사가 있는 곳인데, 그곳 출신 당시 20대였던 배우 김아라 씨를 두고 KBS 인간극장에서 고향이 같다고 하기도 했다. #[22] 본인이 얘기하기로는 그 지역에 유배를 온 몰락양반의 후예라고 한다.[23] 1992년 당시 55세라는 기사가 있다.[24] 남동생의 아내 이름은 중견 탤런트 정혜선과 동명이인이다.[25] 의외로 일제강점기 때에도 잡지나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들이 있었다. 물론 검열 제도가 있어 체제에 비판적인 내용이 있으면 삭제 조치로 끝나면 다행이고 즉시 서대문형무소로 끌려가서 코로 오야코동을 먹을 수도 있었다.[26] 감이 잘 안오겠지만 이순재는 1934년 생으로 차지철과 나이가 같으며,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1살 형이다. 할리우드로 비교하자면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동년배로 생각하면 된다.[27] 명문 서울고-서울대를 졸업한 당시로는 초엘리트 출신이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대중예술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하위 중에서도 최하위 인식을 갖고 있던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이순재 같은 엘리트 출신들의 연예계 참여는 사회전반에 연예인이라는 직업 인식을 상승 시키는데 굉장한 영향을 미쳤고 실제로 배우 윤여정이 배우에 길을 가고자 할 때 이순재 같은 당시 초엘리트도 하는 일이니 결코 창피한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해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방송사 시험을 봤다고 한다.[28] 이순재는 젊은 시절부터 가장 존경하는 배우로 영국의 위대한 배우 중 한 명인 로런스 올리비에를 뽑는데 그의 작품을 통해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다만 앤서니 홉킨스, 게리 올드먼, 케이트 블란쳇과 같이 메소드 연기를 이해할 수도 없는 연기론이라며 냉혹하게 비판하는 배우들과 달리 이순재의 경우 메소드 연기를 비판적으로 보지 않고 하나 연기론으로 인정하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자신이 한국 배우 중 가장 존경하는 배우로 선배 최무룡을 뽑으며 한국 메소드 연기의 시초이자 최고의 배우로 평가한 적이 있어. 오히려 메소드 연기에 대해 긍정을 넘어 좋아하는 듯한 느낌도 드러낸 적이있다.[29] 대한방송 드라마에 출연한 경험이 있으면서 아직 생존해 있는 여자 배우는 김영옥이 있다.[30] 이서진 없이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스페인행 비행기 안에서 잠도 안 자고 식사도 걸러가며 스페인어를 속성 공부해서, 이서진의 통역 가이드 없이 숙소로 멤버들을 인도하고 난 후에 한 말이다.[31] 운 좋게 작품 1~2개 잘 만나서 떴을 뿐인데 그게 자기 능력인 양 착각해서 콧대 높이고 오만해지지 말고 겸손해지고 활동도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연예인병 걸려서 거만하게 행동하는 일부 연예인들에게 일침을 날린 것.[32] 배우 파트에서는 이순재보다 나이/경력이 더 오래된 인물이 없다.[33] 이 때 옆에 있던 동료 개그맨들이 놀라서 전부 굳어버렸고 관중석 반응도 쇼크였다.[34] 본인 말로는 그 당시 성질 더럽기로 악명 높았던 배우가 3명 있었다고 했는데, 그 중 자신이 압도적인 1위였다고 했다. 사극 촬영 중에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대기를 시키면 바로 수염 떼고 촬영장을 엎어버리고 일정 펑크 낸 적도 있다고 밝혔다.[35] 공주의 남자를 촬영하던 시기, 김영철은 예전처럼 1순위로 촬영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려고 나오던 도중 못 보던 차 한 대가 서있는 모습을 보고 그 안을 봤다. 그 안에는 이순재가 잠을 자며 대기 중이었고, 김영철은 '선생님 이렇게 불편하게 기다리지 마시고 얼른 먼저 찍으시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순재는 '나 신경 쓰지 말고 너희 먼저 찍어라'라며 단칼에 거절했고, 동이 틀 무렵에서야 촬영을 마치고 귀가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전날 밤 10시에 와서 기다린 것이었다고 한다. 김영철이 이순재의 차를 발견한 것이 새벽 3시였으니 그 이후로도 5시간을 대기한 것이다. 공주의 남자 촬영 당시 이순재는 80세를 바라보고 있는 78세의 고령의 나이였으며 김영철은 59세였다. 공주의 남자 촬영 당시 김영철의 깨달음 이 사건(?) 이후 김영철은 여태까지의 자신의 태도를 크게 반성한 뒤,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느긋하고 부드러워졌으며, 지금은 그 또한 이순재처럼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명배우로 거듭났다.[36] 그러면서 "신구나 나나 평생 연기를 했지만 빌딩 한 채 없다"고 발언했다. 틀린말이 아닌것이 연예계는 과거 정산 문제로 악명이 드높았다. 룰라만 해도 2집 날개 잃은 천사가 밀리언셀러가 되었는데도 정산은 엉망으로 받았었다고 한다.[37] 이는 국내 연예인 뿐만 아니라 전세계 연예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38] 이순재의 정치인 시절 대표 공약이 바로 면목천 복개공사였다.[39] 인기 드라마에 힘입어 출마했는데 그 과정에서 유열이 진행하던 라디오에 출연했던 것이 사전 선거 홍보 아니냐는 내용. 참고로 고바우 영감에서 이를 다룬 적도 있다.[40] 마찬가지로 14대 국회에서 같이 당선된 최불암과 이주일 역시 국회의원 임기 동안 방송활동을 중단해야 했다.[41] 선거운동 막판에 이회창이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대선에 출마했으나, 이순재는 이회창이 경선을 통해 후보가 된 것이 아닌 뒤늦게 합류한 것이라 순서에 따라 이명박을 지지하게 되었다고 밝혔다.[42]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43] 총선 직후 탈당[44] 당시에는 아직 한국 학계 사정이 열악하여 한국어 번역판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서울대학교에서는 영어, 독일어 등 서양어 원어와 일본어 원서로 공부를 했었다. 특히 철학과에서는 독일어가 필수나 다름없었다. 일본어는 그 세대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다녀서 더 잘 구사하는 편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여전히 외국어를 제법 술술 잘 말하고 심지어 늘그막에 스페인어까지 공부할 정도면 정말 배움의 열의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45] 단 '야동순재' 때는 PD에게 이런 걸 해도 괜찮겠느냐 물었다고 한다. 본인의 품위 때문이라기보다, '야동'이란 소재가 텔레비전에 대놓고 나오는 게 걱정스러웠던 듯하다.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받아들이고 좋아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했다고.[46] 본인이 회고하길 그땐 무조건 자신이 1순위로 촬영을 해야 한다고 스탭들을 달달 볶았다 한다.(...)[47] 여담이지만 이순재의 출생 당시 미국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1932년 취임, 1945년 임기 중 사망)이고, 이순재의 출생 이후 루즈벨트와 현직인 바이든까지 총 15명의 미국 대통령과 5명의 영국 국왕 (조지 5세,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 찰스 3세 4대를 보고 계시네...)이 재임했으며 출생 당시 신생국이던 소련은 이순재가 정치 활동 할 당시 붕괴되어 러시아 및 여러 공화국으로 바뀌었고 스탈린부터 고르바초프까지 7명의 소련 최고지도자와 3명의 러시아 대통령이 지나갔다. 또한 동독 및 서독, 유고슬라비아는 덤이다.[48] 뉘앙스를 봐서는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인 것 같다. 다만 꽃할배 시즌 3까지는 딱 한 잔 정도는 가능은 한듯. 하지만 80대 후반인 현재는 아예 마시지 않는 듯하다.[49] 그래도 신구 역시 나이가 든 후 건강관리 차원에서 술을 많이 줄였으며 예전 사람들처럼 하루 종일 술자리에서 폭음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 배우 김영옥과 식사 중 간단하게 반주를 하면서 자신이 젊었을 때 밤새도록 술마시고 담배피웠던 연극계 선배나 동료 배우들 모두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다며 술회하기도 했다.[50] 연예계 선배인 송해도 창씨개명을 했고, 독립운동가인 윤동주조차도 일본 유학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창씨를 했다. 창씨를 안 하면 도일 허가를 안 내줬기 때문.[51] 물론 예전엔 가난한 사람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거나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중학교를 보내지 않는 등 부유한 사람끼리의 경쟁이었기 때문에 문사철의 위상이 낮았고, 서울대라고 하여도 만족할만한 직장에 취업하기 어려운건 사실이나 당시 서울대보다는 주목받을 당시(2009년)의 서울대 철학과가 대학지원을 가능한 사람들 사이에선 경쟁이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본인도 무릎팍도사에서 서울대에 들어가는 건 지금(2009년)보다 그때가 더 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순재가 대학을 갈 당시는 교육을 마음껏 시킬 수 있는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입시는 경쟁이 적었지만, 이순재의 집안처럼 월사금을 못 내고 할아버지와 함께 비누장사를 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집안 자제들의 경우 입시까지 도전할 수 있는 고등교육을 받는 것이 어려웠던 것은 맞다. 정리하면 이순재가 대학 진학할 위에 언급된 대로 부유한 사람들의 경쟁이라 부자짓 자식이라면 서울대를 가는게 더 쉬운게 맞지만, 이순재는 애초에 집에서 편히 공부할 정도로 부잣집 자식이 아니니까 이 사람들의 케이스를 직접 대입할순 없다.[52] 지속적으로 발성 연습을 해야 하는 배우 생활을 반백년 넘게 한 만큼 훈련을 의식적으로 계속해온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규범주의를 지켜가며 훈련을 한 것은 놀랍다고 할 수 있다.[53] 참고로 현대 한국어 음운론에서는 60년대 출생자 이후는 장단음 구분이 없는 7모음체계, 그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 장단음 구분이 없는 8모음체계를 가진 것으로 본다. 매우 규범주의적인 '표준어발음법'에서조차 이순재식 10모음도 허용되지만 'ㅚ' 'ㅟ'를 이중모음으로 취급하는 8모음체계도 허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