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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6:01:05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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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인공 일가3. 미국
3.1. 대통령3.2. 군인
3.2.1. 육군3.2.2. 해군3.2.3. 육군 항공대 → 공군
3.3. 무기3.4. 기타
4. 필리핀5. 소련
5.1. 코민테른
6. 영국7. 중국8. 일본
8.1. 무기
9. 대한민국 임시정부 → 대한민국10. 독일
10.1. 무기
11. 이탈리아12. 프랑스13. 기타 인물

1. 개요

웹소설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2. 주인공 일가

경주 김씨계 가문인데, 샌프란시스코의 한자명칭인 구금산(舊金山)에서 일문을 이뤘다고 팬덤에서 '금산 김씨'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모두 오리지널 인물이다. 샌-프랑코(San-FranKo) 주식회사를 운영하며[1] 미래인인 김유진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여러 분야에 진출하는 바람에 문어발식 재벌그룹의 형태다. 유진이 죽기 전 상속 문제도 있으니 유진의 후손들이 계속 경영하는 샌-프랑코 그룹과 유신의 후손이 경영하는 항공사 중심의 퍼시픽 그룹으로 개편했다. 유인의 후손들은 아시아 쪽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이렇게 세 갈래로 찢어지긴 했지만 상호 협력 관계를 맺고 있어서 완전히 찢어진 것은 아니다. 유진 킴의 유훈에 따라 미국 내 소수민족들의 대표로 자리매김하였는지 세계 곳곳에 흩어져서 사는 가문 사람들이 유진 킴의 생일을 기념하는 유진 킴의 날에 모이는 행사를 소설 내에서는 속칭 쿠릴타이라고 할 정도. 그리고 정치가나 기업인 같은 거물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고 하니 세계에서 알아주는 명문 가문이 된 듯하다. 다만 어째서인지 유진 킴을 대상으로 한 음모론[2]을 역으로 이용해 관련상품을 적극적으로 팔아먹는 자낳괴 집안이 돼버렸다. 자업자득인가 유진 킴이 금주법으로 꿀좀 빨려다 미국 대통령을 위시한 정재계 거물들의 교류의 장이 된 우보크의 전통에 따라(...) 매우 커다란 Je-Sa를 지내는 것[3][4]이 특징.
김조윤
유진 킴의 현손이자 헨리 킴의 증손. 헨리의 장남 '유진 킴 주니어'의 삼남의 외동아들이다. 대한민국 예비역 국군 대위로, 아버지가 미군에서 복무했다가 한국으로 넘어와서 말뚝을 박았기에 아들인 조윤도 한국인이 되었다. 어릴 때 헬기 추락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본인만 살아남았다. 무슨 우연인지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전역날에 레토나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려다가 차에 치였다. 그리고 국군 수도병원 중환자실에서 3일 만에 의식을 차렸는데, 죽은 지 50년은 된 유진의 정신이 현손인 조윤의 몸에 그대로 정착했다.[18] 유진의 빙의 전 이름도 조윤이고 애 구하다 레토나에 치인 것까지 동일해서 유진은 자신이 겪은 70년이 일장춘몽인 줄 알았으나[19], 알고 보니 돌아오긴 돌아왔으되 자신이 바꾼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이걸 보고 유진, 아니 조윤은 히틀러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본 '당신의 헌신' 드립에 대해 오지게 제대로 보답받은 것 같다고 답하며 히틀러를 욕한다. 한미 양국에 걸친 명가의 직계 종손에 가까운 만큼 상당한 금수저로,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아 서울에 전생에선 꿈도 꿀 수 없던 넓은 집과 자가용 비행기와 자동차를 보유하고, 가진 현금과 주식까지 합치면 늙어 죽을 때까지 놀고 먹어도 될 지경이다. 권력 또한 무시무시해서 병실에 누워있을 때 포스타 견장을 단 조범석이 손수 과도로 깎아준 사과를 받아먹을 정도. 조윤 본인은 돈도 썩어 넘칠 만큼 많으니 전생에서 2차대전과 조선 독립과 신생 대한국의 기틀을 만드느라 개같이 구른 만큼 그냥 한량 생활을 하고 싶어 했지만 조실부모한 본인에 대한 집안의 과도한 관심으로 취직과 결혼 압력을 받는다. 오죽하면 그거 때문에 본인이 혹시라도 3회차를 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놓은 비밀 금고를 털어서 도망가려고 하지만, 집안의 압력 때문에 결국 패튼 가문의 딸과 맞선을 보게 되면서 엔딩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맞선 보게 된 패튼 가문의 딸은 주인공 김유진의 아내 도로시의 환생임이 암시되었다. 첫 만남에서 헤어지려고 할 때 우산을 같이 쓰다가 담배를 물 때부터 기시감을 느끼더니 환생 전의 행동을 서로가 기억하고 있었다.
외전에 따르면 실제 주인공과 동일인물이었으나 주인공이 스스로 바꾼 미래에 따라 현재의 모습으로 인생이 바뀌게 된 것이라 한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말썽 꽤나 피운 망나니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3. 미국

3.1. 대통령

3.2. 군인

3.2.1. 육군

3.2.2. 해군

3.2.3. 육군 항공대 → 공군

3.3. 무기

전차

유진은 미래인으로서 MBT를 추구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가능한 한 잡스러운 전차들을 빼려고 했기 때문에 2차대전 당시 묘사되는 전차 종류가 적다. 전간기 당시에는 기술 문제로 경전차, 중(中)전차, 중(重)전차의 동시 사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하기는 했지만 막상 전간기에는 미군 군축이 심해서 다포탑 전차 같은 삽질을 유진이 컷하는 등의 온갖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에 만들기는 어려웠고, 결국 유진이 사재까지 동원하며 개발을 밀어붙인 덕분에 중(中)전차 개발이 매우 빨라져 1940년 1세대 MBT급 성능의 M26 퍼싱을 개발하는데 성공하고 이후 퍼싱 전차를 그냥 많이 만들었습니다로 응수해 밀어붙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보면 경전차와 중(重)전차는 아예 안 만들었거나 별 존재감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


항공모함

3.4. 기타

4. 필리핀

5. 소련

5.1. 코민테른

6. 영국

7. 중국

8. 일본

8.1. 무기

순양전함


전함


항공모함


경항모

원 역사에서는 경항모라는 분류가 없었으나, 본작에서는 편의상 호칭인지 경항모라고 표기된다. 다만 경항모 분류를 정말로 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본작에서는 육군이 해군보다 세력에 우세를 점해 해군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전함파가 패배하고 항모파가 승리해서 야마토급 전함 건조를 포기하고 항공모함 건조에 집중했다. 그런데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항공모함도 수량 제한이 있기 때문에 '경항모'는 제한이 없다는 점을 이용해 경항모 분류를 신설해서 경항모를 여럿 찍어내는 편법을 썼을 수도 있기 때문.


중순양함

9. 대한민국 임시정부 → 대한민국

10. 독일

10.1. 무기

육군

아돌프 히틀러의 성격상 자세한 묘사가 없어서 그렇지 원 역사에 있던 무기 대부분이 있던 걸로 보인다.[287] 본작에서는 전차 개발 속도가 워낙 빨라서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독일군 쪽에서 히틀러의 요구 때문에 군수체계가 지나치게 난잡하다고 불평하는 장면이 있다.[288]


크릭스마리네

비스마르크급 전함을 만들지 못한 채 2차대전을 시작해서 "우린 이제 죽는 일만 남았다"라고 되니츠가 불평하는 모습이 있는 걸 보아 U보트 원툴로 버틴 모양이다. 발터 모델도 크릭스마리네는 영국 해군 절대 못 막는다고 평한 걸 보면 어그로용으로 소소하게 활약한 티르피츠 포지션도 없었으니 U보트로 버텨도 더 쉽게 발렸을 가능성이 높다.


루프트바페

기종은 묘사되지 않으나 괴링이 삽질을 덜 해서 평범하게 비행기 뽑으며 일했다는 묘사가 있다.

11. 이탈리아

12. 프랑스

13. 기타 인물



[1] 샌 프란시스코와 코리아를 합쳐서 명명한 이름이다.[2] 유진 킴은 사실 그레이였다던가 프리메이슨과 결탁한 렙틸리언이였다던가 등등.[3]제사를 저렇게 썼냐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제사와는 완벽하게 다른, 그야말로 놀자판이기 때문. 무려 가장 커다란 제사를 지냄에도 한 쪽에서는 듀얼을 하고, 한 쪽에서는 포커 치고 있는 그야말로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완연한 개판...이지만 저기에서는 저게 전통이다. 참고로, 우보크 역시 제사의 형식 중 하나인 음복을 음차한 것이다. 왜 음복이냐면 제주(祭酒), 즉 술을 나눠먹는 전통이 있기 때문.[4] 여담으로 이 Je-Sa의 경우 미국의 금주법을 피하기 위해 전통 의식으로 위장하기 위한거다....[5] 워낙 역사가 길고 문중 소속자가 많은 만큼 조선 후기에는 같은 경주 김씨라도 분파와 출신 집성촌마다 지위 차이가 매우 났다.[6] 물론 이게 신라계 김해 김씨라는 뜻은 아니다.[7] 금주법 시대 마피아들에게 있어 공식적인 경로로 밀주를 팔 수 있고 높으신 분들과 유착하기도 편한 라인인 우보크에 눈독 들이고 협력을 요구한 건 이상한 게 아니다. 루치아노의 본거지인 뉴욕에도 우보크가 있었고 루치아노가 유통업으로 친하다고 언급한 걸 보면 밀주 문제로 친해진 게 맞는 모양.[스포일러] 유진 킴이 사망하는 날까지도 멀쩡히 살아계신다. 어머니보다 먼저 골로 간 대원수. 남편 상준의 경우 조선이 막 독립한 뒤에 막내 유신이와 같이 귀국하고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자문 위원회에 초대 받아서 맹렬히 활동 하다가 급격히 약해지면서 사망한다.[9] 실제 역사에서 찰스 커티스의 자녀는 1남 2녀만 있었다.[10] 실제로 동기들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러 캔자스로 갈 때, 캔자스가 고향인 아이크 집에서 자다가 토네이도에 휘말려 날아간다는 드립을 쳤다. 이때부터 복선이 깔려 있었던 셈.[11] 작중 표현에 따르면 유진에게 청혼받으며 반지를 꼈을 때 타노스 같았다고 한다.[12] 유진이 아미앵 전투에서 타던 군용 차량. 이때 최전선에서 싸우다 전투의 흔적으로 수많은 연꽃 모양 총탄 자국이 생겼으며 이후로도 계속 탑승하면서 사람들에게도 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차량이기도 하다.[스포] 에필로그 마지막화에 유진처럼 패튼 가의 딸로 환생했고 다시 김조윤과 이어졌다. 유진처럼 미래인 출신도 아니었던 일반인이지만 환생을 한 것은 프리퀄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에서 밝혀진 정황상 조범석과 아르민이 산신령과 담판을 지으면서 유진이 일을 마친 후 연인과 재회할 수 있도록 조건을 넣어줬을 가능성이 높다.[14] 퍼스트네임 '헨리'는 유진 킴의 후원자인 헨리 포드가 사실상 대부로서 직접 요구한 이름이며, 미들네임 '드와이트'는 유진 킴의 절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원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름에서부터 금수저라고 광고하는 격.[15] 1915년~1997년. 현리보다 1살 연상의 실존인물로, 원 역사에서는 독신으로 살았다.[16] 정확하게는 참전 경력 없이는 유진의 유산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이후 이는 아예 킴 가문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각 가문을 잇고 싶다고 한다면 무조건 군 경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17] 다만 그게 큰 흠은 아닌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비행기보다야 파일럿이 훨씬 더 귀한 군사자산인데다가, 어쨌든 KDA가 1은 넘어가고 그 중 군함 격침도 한 개 포함되기 때문에 격추를 좀 당했더라도 파일럿이 살아돌아온 시점에서 무조건 교전비상 미군 쪽 이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방 기총사수석도 없는 1인승 전투기를 몰았기 때문에 전우가 죽어나가는데도 혼자만 꾸역꾸역 살아왔다는 오명도 없고, 수천미터 상공에서 추락하여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꾸역꾸역 살아돌아와서 다음 전장에 출격했다는 것 자체가 죽을 위기를 여러번 넘겨가면서 전쟁에 기여했다는 증거이니 흠이 아니라 오히려 훈장인 셈이다. 물론 생각이상으로 자주 격추당하다 보니 후술되있듯 비행기좀 작작 날려먹으라는 가벼운 훈계와 놀림은 많이 받았다.[18] 이 때문에 사고를 당하기 전 조윤의 기억이나 상식 같은 것이 전혀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받을 일은 없긴 하지만.[19] 이 화 제목이 밈이 된 샤이닝 로드의 결말부 '이 새끼 웃는데요?'여서 졸지에 독자들도 함께 진짜 아시발꿈 엔딩이 나올까 봐 공포에 떨었다.[20] 다만 이것은 흔히 보이는 상속 싸움과는 다르다. 헨리나 앨리스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가문의 이름과 명예를 잇기 위한 면이 강하다.[21] 작중에서 언급은 안 되지만 사실 사교계에서 아버지에게 여자가 꼬이는 걸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사교계에서는 전쟁영웅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이 많았고 그 때문에 불륜 해프닝도 잦았는데 김유진은 돈 많음+외모 무난+상대적으로 젊음+가정적으로 소문남 콤비 때문에 많은 여자가 접근하기 쉬운 인물인데,(이 정도 조건이면 사교계 여자 입장에선 아시안도 큰 디버프가 안 된다) 사교계에서 앨리스가 유진의 파트너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 문제를 막기 위한 것도 있던 모양이다. 퍼싱도 1차대전 때 약혼녀인 패튼 여동생(...)을 데려갔다 프랑스 사교계에서 더 젊은 여자와 눈 맞아서 깨지는 사건도 있었다.[22] 가정적인데 웬 불륜이냐 싶지만 당시 상류층 남성들의 '가정적'이라는 기준은 (안 피면 최고지만) 바람을 안 피는 게 아니라 와이프든 애인이든 자기 여자에게 젠틀하단 뜻이라서 집에서는 처자식에게 잘하면서 밖에서 바람 피는 경우도 많았다. 어려운 남자로 소문 나서 오히려 의욕을 불태우는 여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오죽하면 도로시는 1차대전 때부터 남편에게 여자 꼬이는 거 아니냐고 걱정했다. 황색언론 기자들이 그리 파헤쳤음에도 염문 하나 찾을 수 없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동안 도로시가 사교계에서 철저히 막은 듯하지만, 2차대전 당시에는 도로시가 런던에 갔을 때도 파리 사교계는 앨리스가 대신한 걸 보아 프랑스에는 안 간 걸로 보인다.[23] 연합군 총사령관 딸과 영국 총리 아들이 엮인 해프닝이라서 유야무야시켰다고 한다. 참고로 그 망나니 아들은 당시 국회의원이자 현직 장교였다고. 이래저래 막장.[24] 도로시도 앨리스를 시집 보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유진과 합의 하에 선을 보게 만들었다.[25] 결혼하기 전 셜리가 지금의 남편과 동침했고, 이걸 알게 된 유진이 샷건을 들고 쫓아간 적이 있는 듯하다.그리고 그 썰을 몰로토프에게 풀었다[26] 예를 들면 헨리가 플로렌스에게 잘 보이려고 일부러 앞에서 비행기 운전을 하면서 관심을 끌려고 했는데, 저런 일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그 내용이란, 기름 채워놔라. 그거도 다 돈이다...[27] 쿼터백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쿼터백은 피지컬과 머리 모두가 따라줘야 한다.[28] 시카고대로 옮기고 나서도 여전히 미시간대를 관리했다.[29] 작중에 조병옥, 우장춘, 최린(친일파라서 서대문 형무소에서 갇혀있다 비밀리로 임시 석방되었다.)이 위원으로 선정되었다.[30] 초대 대통령은 여기에서도 이승만이고, 이승만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딴 바 있다.[31] 비글의 악명이 하도 잘 알려져 있어서, 댓글란에서는 '유진과 같은 미친놈과 지랄견이라면 딱 어울린다'라는 칭찬(?)들이 나왔다.[32] 몰로토프에게 소개해주니 유진을 평화의 사도라고 칭하며 전쟁 같은건 깔끔하게 포기했다고한다. 하지에게 그일을 전했더니 평은 진짜 미치광이를 만나서 그냥 짓눌려버린 것 같다고...[3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된 것은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 상 이런저런 거창한 정책을 시민들이 하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윌슨의 비선실세 논란으로 인한 하야라는 초유의 사태 때문에 질려버린 미국인들이 '4년만 좀 쉬자'라며 일부러 하딩을 뽑았던 것. 천조국이 아니라 방구석에 틀어박힌 열강이었던 당시의 미국이라 가능했던 일이다.[34] 당시 미국에서는 양심 없는 우유 유통업자가 상한 우유에 분필이나 마약을 타서 파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35] 당시 미국은 편지 배달 하나도 카우보이와 마피아, 원주민들과 전투를 벌이며 옮길 정도로 유통업자의 무력이 요구되었다. 같은 이유로 세금징수원이 시크릿 서비스(대통령 경호원)의 기원이 될 정도. 대전의 참전용사인 만큼 전투력은 확실하니 어울리는 직업이긴 했다.[36] 그 외에도 장인인 커티스의 지역구가 낙농업 중심이라 커티스에게 도움이 된다는 정치적 이유도 있었다.[37] 맥아더의 임기에서 프랭클린과 함께 등장하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2023년 5월 15일 공개된 외전에서 주인공과 FDR 유령의 듀얼을 심판 보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38] 공화당 중진이 이 말을 하자 충격받은 민주당이 대통령에게 해명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윌슨이 백악관 밖에 나오지 않자 이상함을 깨달은 민주당의 반 윌슨 세력이 대대적으로 조사해서 진상을 밝혀냈다.[39] 검마대에서 그 천하의 유진이 거의 유일하게 겁을 먹어서 쫄게만든 인물이여서 그 이후로도 가끔씩 유진은 이 경고를 떠올릴때마다 잠깐잠깐 소름돋는 장면을 보여준다.[40] 광란의 20년대의 부작용 때문에 어차피 대공황은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41] 미국 부통령이 진정한 미합중국의 2인자가 된 것은 2차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이 천조국 황상이 되면서 업무량을 버틸 수 없게 된 이후부터다.[42] 애초에 U.S.Milk가 만들어진 주 이유가 민영 우유유통기업들이 상한 우유에 분필을 타서 파는 등의 행동으로 민영에 대한 신뢰도를 상실한 게 원인이었다. 이 때문에 원 역사에서는 우유 유통 문제를 알 카포네가 해결했다.(...)[43] 이 때문에 본작의 트루먼은 상원의원 시절 유진에게 공화당이 링컨의 진보정당이었던 시절은 이때부터 이미 끝났다고 평했다. 실제로 민주당의 진보화는 루스벨트부터지만, 공화당의 보수화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44] 잠깐 상황 보러 갔다가 1차대전 때 전우였던 93사단 전우회 멤버들을 보고 당황한 사이 경찰들이 기관총 들고 진압하러 온 탓에 얼떨결에 시위대에 말려들었다. 상황을 알게 된 유진은 시위대에게 무장해제와 자신들의 처지를 자세히 설명한 서류작성을 요구한 뒤 서류를 들고 탱크로 진압하러 온 맥아더에게 달려가 진상을 보고했다.[45] 사실 후버 국장과 함께 자작극을 계획 중이었지만 위험성 때문에 망설이다가 나치가 알아서 해줬다.[46] 유진과의 첫 만남에서 노련한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헤어진 후에 큰 실수를 저질렀다며 전설 카드 좀 달라고 해볼걸...이라고 후회하는 게 개그 포인트.[47] 루즈벨트의 약칭인 FDR을 악의적으로 나쁜 단어들로 채워넣은 전설급 카드이다.[48] 이후 주인공과 아이크의 목숨을 걸고(…) 듀얼을 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49] 이는 유진 킴과 개인적으로 친했던 맥아더, 아이젠하워, 패튼 등의 군부와 그의 정치력을 가장 절실하게 알고 있었던 장인 커티스, 에드거 후버 등의 인물들도 정확히는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유진 킴의 아내인 도로시는 유진 킴이 대통령이나 상원의원 직책 등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언제라도 남편이 정치적으로 높은 자리를 원할 때 쟁취할 수 있도록 안배는 하고 있었다.[50] 물론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독재자로서 권모술수를 부린 것과는 스타일이 다르다.[51] 맥아더가 당선된 이유가 이 분당으로 인한 표 분산이 원인이었다.[52] 장인이 공화당인 데다 20세기 초반 미국 군부는 당시 딕시크랫이 주로 민주당에 속해 있던 문제 때문에 민주당을 싫어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몇 세대 안 되었던 게 원인. 이런 상황에서 맥아더와 아이젠하워 모두 공화당 대통령이었고, 비백인인 유진이 두 정부에서 모두 본의는 아니지만 실세로 군림하면서 공화당의 성향 역전이 덜 일어났다.[53] 근데 그것도 루즈벨트가 봤으면 멱살을 잡았을 정도로 자기 식대로 멋대로 해석한 방식이었다.[54] 문제는 유진 킴과 대화에서도 유진 킴이 자신의 뜻을 좋아할 거란 망상에 빠져있었기에 이런 유진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반복했다. 유진은 이 때, 조선 상륙을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상륙과 무관하게 갑자기 일본으로 빠지게 하려고 하는 것에 제대로 꼭지가 돌아버린 상태였다.[55] 하지만 멍청한 헛소리와 괴상한 망상을 반복해서 처칠과 스탈린조차 외계인으로 볼 정도로 비상식적인 인물이었으며, 군부에서도 그냥 미친놈으로 취급할 정도로 평균적인 지능조차 없는 수준이었다. 이승만의 평가로는 뭐 하나 제손으로 얻어 본적 없는 정치 초보자.[56] 원 역사의 월리스는 농무 장관으로서는 역대 최고라는 평을 들으며, 행정과 농무, 상무 장관으로서는 뛰어났지만 정치 감각은 부정적인 평을 듣는다. 본작에서도 농무 업무는 잘했다는 언급이 있으므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마디로 허버트 후버처럼 전형적인 행정관료 타입의 인물.[57] 이를 본 유진은 '저 머저리 도박쟁이가 그 아이젠하워냐'라고 어이없어하는데, 사실 원 역사에서도 아이젠하워는 '포커 잘 쳤던 미국 대통령'으로 알음알음 알려져 있으니 사관학교 시절 동기들과 내기를 벌여서 털어먹는 모습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58] 당시 민주당은 내부 분쟁이 심해서 아이젠하워를 끌어들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당시 군부가 민주당 딕시크랫들과 악연이 심해서 꺼리기도 했고.[59] 그 외에도, 1921년 자신의 장남을 사별하게 된 아이젠하워가 군인직을 내려놓을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진 킴이 찾아와서 후일 5성 장군과 대통령이 될 사람일 아이젠하워라면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통해 그의 퇴역을 막기도 했다. 후일 이 일화를 선거 캠프에서 일하면서 듣게 된 리처드 닉슨은 단순한 혜안을 넘어선 유진 킴의 예지력에 경악하고 유진 킴의 예언을 맹신하는 수준에 다다랐다.[60] 유진은 JKF가 아니라 JPK가 출마했다는 말을 듣고 의아해서 조사하고 나서야 알았다.[61] 당시 가톨릭은 반공주의 성향이 굉장히 강했으며, 나치의 홀로코스트 피해자들 중 하나였다. 아직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다.[62] 본작의 민주당은 유진의 영향으로 공화당과 성향 역전이 덜 일어나 유진이 죽을 때까지 진보파와 보수파가 반반씩 나뉘어 충돌했다.[63] 당장 패튼도 그의 임기 중에 전사했다. 또한 드럼이나 마셜도 죽었고 맥아더 역시 그의 임기 중에 병원에 실려갔다가 결국 죽었다. 맥아더 曰 그가 뭔 짓 꾸민 것도 아니고 나이든 인간이 죽을 때가 돼서 죽은 것뿐인데 별 소리 다 듣는 재수없는 놈.[64] 맥아더가 재출마를 포기하고 아이젠하워에게 공화당 후보 자리를 넘기는 것. 유진과 아이젠하워 모두 전쟁영웅으로 명성이 자자하며 유진은 소수민족, 아이젠하워는 백인 표를 끌어모을 수 있다. 당시 민주당은 보수파와 진보파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아 아이젠하워를 데려올 여력이 없었다.[65]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1934년에 트루먼이 상원의원에 처음으로 당선됐다면 대선에 출마할 때 얼추 3~4선의 중진의원일 것이다.[66] 유진은 원 역사의 트루먼이 대통령이었던 것 때문에 나름 부채를 느끼고 있어서 진심으로 도와줄 의향이 있었다.[67] 원역사보다 약 8년 일찍 사망했다.[68] 대통령이 되긴 했으나, 그가 냉소적으로 받아친 것처럼 나라가 위기에 처한 때 대통령이 되어서 상술한 유진과의 대화가 둘 다 실현되었다(...).[69] 본작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성향 역전이 덜 일어나 진보파와 보수파의 세력이 반반이며, 케네디 형제는 당시 민주당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이었다고 한다. 케네디 가가 당대 '하얀 흑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백인 사회에서 멸시당하던 아일랜드계-가톨릭 출신이었기 때문. 미국 사회의 집권층은 예나 지금이나 WASP로 대표되는 잉글랜드계-청교도 출신이다.[70] 유진이 죽기 며칠 전 미국 민권 운동을 주장하다가 백인우월주의자에게 죽을 뻔했다. 유진이 지팡이 총으로 제압해서 미수로 끝났지만 이 때문에 유진이 죽을 당시 딕시가 유진을 죽게 만들었다고 논란을 빚었다.[71] 해당 장학금은 동양교육발전기금과 별개로 킴가가 미국인들을 지원해주는 별도의 자선사업으로 이루어졌다. 유진은 일찍부터 캘리포니아 사회에서 킴가의 영향력을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인종을 가리지 않고' 교육지원과 자선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쳤고 대공황 당시에는 무료급식소 같은 자선사업으로 캘리포니아인들이 킴가에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출신이었던 닉슨도 자연스레 킴가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72] 본작의 닉슨은 킴가에 큰 도움을 받은 처지라 보수파에게 있어 '옐로 몽키 똘마니 백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에 더 가깝다. 닉슨 개인의 입장에서도 어려운 때 유색인종의 도움을 받았는데 보수 정책을 주장하는 건 배은망덕하다는 프레임에 휩싸이기 쉽고.[73] 3차 대전의 위기가 지나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모스크바에 핵을 쏴야 한다고 말했다.[74] 작중 캘리포니아가 킴 가문의 영향으로 공화당 텃밭인 점, 후일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데 대선 후보로 선출되려면 예나 지금이나 상원의원이 필수 코스인 점을 미루어 보아 아마 캘리포니아 주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된 것으로 보인다.[75] 유진이 사망할 당시는 JFK 집권기였다.[76] 유진 킴이 아프간 참전에 대해 마켓 가든 작전만큼이나 대차게 말아먹을 것'이라고 닉슨에게 언급을 했고, 일전에 아이젠하워의 선거캠프에서 일하면서 유진 킴이 아이젠하워에게 했던 위로 아닌 위로(장남을 잃었던 아이젠하워에게 너는 5성 장군이자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고 했던 말)를 전해듣고 그의 (원 역사에 기반한) 탁월한 혜안에 감복해있던 닉슨은 유색인종 권리 증진을 위한 기부랍시고 지갑을 탈탈 털고 나오기도 했다. 그때 닉슨의 묘사는 '저 하늘로 치솟는 입꼬리를 도저히 가릴 수가 없었다.'고...[77] 원 역사의 닉슨은 하버드대에 합격하고 장학금까지 받았는데도 생활고에 발목 잡혀서 진학하지 못했다.[78] 심지어 유진조차 마셜이 먼저 진급해 유진의 상관이었던 짧은 시기 동안 여기 잡혀와서 갈려나갔다.[79] 패튼의 여동생이라든가 맥아더와 연적이 된다던가...[80] 이때 경쟁은 원역사에서 베를린 전투를 두고 벌어진 소련의 주코프이반 코네프의 경쟁을 연상시키는 부분.[81] 에디슨전기협회(EEI)의 전신으로 전미 전기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다.[82] 전임자 曰 저기서는 총 소리가 나도 신경 쓰지 마.[83] 프레덴달은 원 역사에서도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 마셜, 맥네어, 아이젠하워, 패튼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참패를 당해 문제가 드러나기 이전까지만.[84] 다만 유진이 생각한 진짜 문제는 인종 문제였는데, 이걸 꺼내들었다가는 중에 한 사람이 죽거나 옷을 벗을 때까지 싸울 것이기 때문에 보고서에서는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마셜과 멕네어도 유진이 인종 문제를 진짜 원인으로 꼽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것만 보면 끝장을 보는 것까지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이지만, 유진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프레덴탈 대신 깽값을 내줄 마셜과 멕네어에게 청구서를 내민 것이다.[85] 훈장 수여식에서 알아챘는데, 이전에 아미앵 전역에서 은성훈장을 서훈받았으니 유럽 전선 종결 후 받은 훈장은 아마도 육군 수훈십자장일 것으로 추정된다.[86] 한반도의 말도 안 되는 추위를 알고 있던 유진은 미군에게 미리 방한 장비 갖추라고 쪼아댔지만 미군에서는 말이 되냐며 대충 준비했는데 나폴리보다 위도가 낮은 평양에 도착한 당시부터 -1℃를 찍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기온이 내려가 미군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결국 유진은 청천강 일대에서 북진을 정지시켰고, 미군과 소련군 양쪽에 치인 일본군은 개마고원으로 도주했다가 모두 얼어죽었다.[87] 어느 팬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군산상륙작전이 있던 1942년 10월 3일 당시 최고기온은 29℃였고, 11월에 접어들자 북한 일대가 -10℃로 하락했다고 한다. 겨우 1개월 만에 40℃가 하락한 것이다(!) 평양, 신의주나폴리보다 위도가 낮고, 중강진은 북위 41.47도로 로마보다 위도가 낮다. 남유럽은 겨울 평균기온 12℃고 한반도에 무슨 알프스산맥, 히말라야산맥, 로키산맥 수준의 고산지대가 있는 것도 아니니 추워 봐야 얼마나 춥겠냐고 착각한 건 무리가 아니었다. 심지어 10월 초까지 후덥지근했던 만큼 더더욱.# 원 역사의 6.25 전쟁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서 UN군을 충공깽에 빠뜨렸으며 미 해병대가 한반도=극기훈련지역(...)으로 인식하는 주 원인이기도 하다.[88] 추가로 1942년 백두산-중강진 일대는 -47.5℃라는 비공식 최저기온이 나왔는데 (후대 이 기록은 갱신된다) 원 역사에서 그 소련군이 30만의 사상자를 내게 만든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의 겨울은 평균 -15℃에 최저기온 -43℃였다. 현장에서 측정한 '비공식 기록'이 '공식 기록'보다 더 정확한 사례가 많으며(두만강 전방부대에서 비공식 측정한 기온이 -45℃인데 뉴스에는 -30℃ 찍는 사례가 수두룩하다고) 한반도의 추위가 워낙 비상식적이다 보니 -47.5℃는 실제 온도일 가능성이 높으며, 백두산-중강진은 공식 기온도 몇 년에 한 번씩 -40℃를 찍어주는 미친 동네다. #[89] 참고로 관동군을 패퇴시키고 남하하던 소련군도 압록강-두만강 라인에서 진격을 멈추고 포격만 퍼부었는데,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팬덤에서는 남유럽 급으로 남하했음에도 기온이 올라가기는커녕 시베리아 기준으로도 극한지의 기후를 찍고 있는 것에 경악해서 '어차피 중공에게 넘겨줘야 하는데 고생해서 더 남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멈췄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90] 유진 킴이 전쟁 끝났다고 전역하려는 장교들을 붙잡아 두려고 '내 딸 소개시켜줄게' 하고 꼬드겼는데, 막상 앨리스는 마초맨들뿐인 군바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같은 한국계에 순둥순둥한 성격이니 마음이 간 것.[91] 아예 도경 킴이라는 인물의 1차 대전 행적도 유진 킴과 닮은데다 성격도 이러니, 아예 막내동생 설리는 도경 킴을 보자마자 앨리스 킴에게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92] 이 때문에 유진 킴을 목표로 한 매카시즘의 첫 번째 대상자가 되었고, 유진 킴의 조언을 받아들여 전역 타령은 집어치우고 바로 약혼 관계였던 앨리스 킴에게 청혼을 하고, 결혼까지 골인한다.[93] 원로들은 우리 시절에는 안 저랬는데 갈수록 미친놈들이 늘어난다고 한탄했으며, 목줄 쥔 유진이 제일 미친놈이라서 마셜이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고 평했다. 얘들을 정신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게 마셜이었기 때문.[94] 유진과는 아예 주먹다짐을 한 적도 있다. 유진의 1인칭 시점으로 묘사될 때는 얼굴을 판다로 만들었다며 일방적으로 발라버린 양 으쓰대더니 정작 시점이 바뀌자마자 본인도 쌍코피가 터졌다는 게 밝혀지면서 그냥 개싸움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묘사가 매우 웃기다.[95] 유진은 맥나니를 종종 속으로 '점순이'라고 부른다.[96] 실제로 맥나니는 흑인을 자기 휘하에 두는 것을 꺼렸으며, 흑인이 백인들과 같은 수준을 갖추려면 아직 멀었다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후술할 커티스 르메이는 반대로 훈련 과정이 동일하면 흑인인지 백인인지 여부는 임무 수행 능력과 관계가 없고 일하려는 사람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면서 흑인의 조종사/기술자 보직으로의 진출을 적극 추진했다.[97] 실제 인물은 대장까지 진급했으며, 아이젠하워가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후 미국 독일 군정 사령관을 맡았지만 이때 모종의 이유로 업무에 의욕을 보이지 않아서 귀국, 미합중국 공군물자사령부 사령관이 되었다. 그 시기가 칼 스패츠가 공군참모총장이 된 때이다.[98] 이건 처칠이 틀린 말한 게 맞는데 처칠이 거론한 리틀 윌리는 개발부터 1개월 뒤였는 데다 리틀 윌리의 특성상 후대 전차에게 자신의 특성을 전혀 물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전차의 원조라고 하기도 애매한 무언가다. 굳이 따지면 프랑스에서 비슷한 시기 독자적으로 비슷하게 개발한 르노 FT를 주장하는 게 더 개연성이 있다.[99] 당시 조선 주둔 일본군은 유진과 밀약을 맺고 총독부 수뇌들과 함께 만주로 도망쳤다가 만주로 내려온 소련군에 밀려 관동군과 함께 개마고원으로 도망쳤다 1942년 유례 없는 한파를 맞이한 개마고원에서 거의 다 얼어 죽었다고 묘사된다.[100] 도중에 태국과 베트남 경로를 거쳐야 해서 태국 정부와 호찌민이 상당수를 유진과의 담합 하에 슬쩍했다고 한다.[101] 중일전쟁 초반에 중국군 전차들이 대부분 일본군에게 격파당해서 남아있는 전차가 별로 없었다.[102] 그 와중에 일본군이 이 전차에 대전차총검술을 하자 가시 등을 용접하여 거북선처럼 만들었다.[103] 정확히는 1939년 후반에 이미 개발되었지만 엔진 문제로 인해 유진과 채피가 논의하여 해결하는데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아마 그 '엔진 문제'가 있던 시제형이 원 역사의 M26 퍼싱이었을 것이다. 퍼싱의 엔진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든 게 M46 패튼이고 여기에 파워팩 문제까지 해결한 게 M47 패튼이다.[104] 스탈린이 산업스파이를 보내 미군 전차 설계도를 빼갔다는 언급이 있기 때문에 묘사가 없어서 그렇지 T-54도 2차대전 도중에 완성되어 싸웠을 수도 있다. 원 역사에서도 T-54는 2차대전 말기에 개발이 거의 끝난 상태였다.[105] 본작에서는 야마토급 전함의 건조를 포기하고 항공모함 중심으로 건조했다는 것으로 보아 총톤수는 밀렸을 수도 있으나, 두 전투를 합친 수준인 만큼 크게 꿇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야마토급이 없어도 양군 합쳐 전함만 수십 척이 충돌했다는 서술이 있으며 일부 항공모함과 수송함을 제외한 나머지 수상함이 전부 격침당했다고 서술되기 때문.[106] 본작에서는 야마토급 전함의 건조를 포기하고 항공모함 중심으로 건조했다는 것으로 보아 총톤수는 밀렸을 수도 있으나, 두 전투를 합친 수준인 만큼 크게 꿇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야마토급이 없어도 양군 합쳐 전함만 수십 척이 충돌했다는 서술이 있으며 일부 항공모함과 수송함을 제외한 나머지 수상함이 전부 격침당했다고 서술되기 때문.[107] 킴가의 사업은 록펠러와 겹치지 않기 때문에 큰 갈등 없이 공존한 것으로 추측된다. 오히려 킴가의 주 사업 중 하나는 군수사업이었는데(유진 말년에는 손 뗐지만) 탱크, 비행기 등은 대량의 석유를 요구하기 때문에 석유 사업이 주였던 록펠러와 친했을 가능성이 높다.[108] 1933년으로 원 역사보다 3년 이르다.[109] 그 카드게임이 문화적 흐름이 되어버려서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110] 당시 미국은 대공황으로 인해 가장들의 주머니 사정이 비싼 장난감을 사주기 힘들게 가벼워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비싼 장난감보다 싼 카드팩 몇개를 사가는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도 있다.[111] 딕시를 비롯한 치킨 호크 인종차별주의자들이 깜둥이가 건방지다며 93사단 참전용사를 박해하고 죽이자 유진이 향우회를 조직해서 구출했다.[112] 이 과정에서 팔머가 고용한 후버가 잠깐 짤리는 사건이 있었지만, 이후 후버가 FBI의 국장이 되었다는 묘사를 보면 어찌어찌 복귀한 모양이다.[113] 에필로그에서 유진이 후버에게 스파이 요령도 이것저것 배웠다고 언급된다.[114] 일본계 집단들은 집단 전체가 수용소가 갇히는 것보다 일부를 팔아넘기는 게 나아서 자신들이 '알아서'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115] 2차대전 당시 OSS는 주로 태평양 전쟁에서 활동했는데 본작의 아이젠하워는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 방면 총사령관이었다.[116] 그와 별개로 유진이 아이젠하워 정부 시절 국무장관 하던 당시에는 CIA의 여러 삽질을 저지했다는 것으로 보아 CIA를 직접 통제했던 것으로 보인다.[117] 작중에서는 홀로코스트가 강조되지만 T-4 프로젝트도 넘어갔다.[118] 독한 사기꾼으로 유명했던 폰지는 보자마자 구토를 하고 잠을 못 이뤘으며, 정보기관의 잔인한 수장으로 이름난 그 후버조차도 증거를 보고 동요해서 손을 떨다 담뱃불을 못 붙일 정도였다.[119] 독자들은 폰지가 본래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라는 점과, 이후 신분세탁한 가명이 이탈리아어라는 점에서 이탈리아로 도망쳐 신분세탁한 뒤 스페인이나 남미로 도주한 것으로 추측한다.[120] 찰스 폰지 본인이 아두이노 로렌초는 사실 과거에 찰스 폰지였다고 밝히고 죽어야 동일인물로 기록될텐데, 정작 아두이노 로렌초는 도덕적인 나치 사냥꾼이고 찰스 폰지는 그저 사기꾼이니 굳이 동일인물이라고 밝혀봤자 아두이노 로렌초라는 이름의 명예만 더러워질 것이라고 본 듯하다.[121] 알 카포네가 세간에 유명해서 그렇지 당애 마피아 업계에서는 이 사람을 제일로 쳤다.[122] 마피아들 입장에서 불법 경로로 밀주를 파는 것보다 일단은 합법인 우보크로 파는 게 법망에 안 걸려서 편하기도 하고, 우보크가 합법이라는 점을 이용해 높으신 분들이 드나들며 밀실정치에도 애용했기 때문에 김가와 친하게 지내도 이상하지 않다. 알 카포네 우유 유통 일화를 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뒷세계 범죄조직은 범죄로 버는 돈보다 건전한 사업으로 버는 돈이 더 많아서 정상적인 사업체도 한둘 정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123] 독자들은 김가가 루치아노뿐만 아니라 이탈리아계와 아일랜드계 마피아들과 사실 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124] 금주법 시대 우보크가 전형적인 마피아 발상이라는 것, 초기 샌프랑코가 범죄조직들과 싸우며 재산을 사수했다는 것, 김가가 캘리포니아에 세를 굳힌 게 금주법 시대인데 당대 중국계와 일본계를 비롯한 여러 인종과 민족들이 각자의 깡패 세력을 거느린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을 모두 제압하고 김가의 밑에 넣은 점, 마피아들의 본보기나 다름없는 순환출자나 탈세 수법 같은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사업 수완, 라스베가스 건립에 김가가 크게 보태고 있는 것, 류큐에 마땅한 사업이 없자 마카오마냥 대형 카지노를 연 것 등.[125] 거기다 현실의 마약상들은 대리 화폐로 야구 카드나 유희왕 카드를 애용하는데, 샌프랑코가 개발한 TCG 카드는 당시 가치가 매우 높았고 본작의 21세기 금주법 시대 마피아의 상징 중 하나가 TCG인 걸 보면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던 걸로 보인다.[126] 당시 본작에서는 공화당 의원이었던 맥아더가 루즈벨트의 거국내각 제안으로 전쟁부 장관에 입각한 상태였지만, 루즈벨트가 죽고 정치 초짜였던 부통령 월레스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상황에서 야당 거물과 여당 내 반대세력이 손잡고 힘없는 대통령을 날려버리려는 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127] 본작에서는 1939년 홀로코스트가 전세계에 폭로되었기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한 아인슈타인이 이를 알고 충격을 받아 핵실험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128] 전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공산당 세력들을 매수해서 미국에 우호적으로 만들어 소련의 세력을 꺾는 것.[129] 참고로 상원의원이었던 트루먼에게 부통령 후보 제안이 들어왔지만 상황 파악이 빨랐던 트루먼은 거절했다.[130] 주권민주당 분당 사태가 없었으면 민주당이 선거인단에 앞서서 이길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딕시크랫은 민주당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딕시크랫과 가문 단위로 악연이 있던 맥아더에게 합류할 수 없어 민주당으로 복당했다.[131] 당시 군부는 남북전쟁 당시 딕시크랫과의 악연이 이때도 남아있어서 공화당 지지세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매카시의 개소리로 인한 빡침+딕시크랫 대선후보니까 당연히 거부할 수밖에.[132] 이를 우려한 유진은 공직을 맡지 않으려 했지만 아이젠하워는 유진 지지층을 확실히 규합하고 유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일방적으로 국무부 장관직을 못박아버렸다.[133] 한편 공화당은 매카시즘 역풍을 피하는데 성공한 보수파가 로버트 태프트를 경선 상대로 내세웠지만 최초의 경선 토론 방송에서 아이젠하워가 가볍게 승리해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되었고 공화당은 그대로 대통령직부터 상하원 의석까지 모두 휩쓰는 대승리를 거두었다.[134] 20세기 초반 유진의 발상으로 나온 U.S.Milk(우유 유통 연방정부 공기업)가 공화당의 마지막 진보 정책으로 하딩 시절에 만들어졌지만 공화당의 허버트 후버 집권기 대공황을 핑계로 해체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오죽하면 트루먼은 유진을 처음 만났을 때 공화당이 링컨의 진보정당이었던 시절은 20세기 초반에 이미 끝났다고 평했을 정도.[135] 당연하지만 매카시즘 역풍에 제대로 말려들었던 공화당 보수파들은 정치적 생명 연장을 위해 엎드리느라 바빴다.[136] 본작의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한 이유가 나치가 금산 김가에게 저지른 테러와 홀로코스트 및 T-4 프로젝트 사전 폭로, 바르바로사 작전과 진주만 공습이 우연히 같은 날 일어나 독일과 일본이 짜고 미국을 공격했기 때문이라 미국이 착각한 게 발단이라는 걸 고려하면 정말로 강력한 고립주의자였던 셈.[137] 금문교를 접하고 있는 공원이다.[138] 참수당했다는 설도 있다.[139] 그것 말고도 인민영웅 칭호와 러시아 미녀 30명미동 30명을 주겠다고 약속했다(...).[140] 스탈린부터 시작해 호치민, 티토, 흐루쇼프까지 해당 책에 서명을 남겼다.[141] 정확하게는 스탈린에게 처음 받았을 때는 유진의 요구로 찝찝해 하면서 서명을 했지만 이후 호치민을 설득할 때 자신은 민주주의 인물이면서 사회주의 두목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증명으로 보여주면서 사인 받았지만 이후 티토를 만났을 때 둘이 회담 잘하고 난 뒤에 그책을 왜 안보여주냐고 언급하면서 반 강제로 싸인했다. 흐루쇼프의 경우 후술했다시피 본인이 거의 강제로 사인을 남겼다.[142] 상성상 우위인 독일군을 처절하게 발라버리고 베를린도 미군이 함락시켰으며 국공내전 때는 독소전을 겪은 소수민족 부대를 의용군으로 보냈더니 아시아 주둔 2선급 미군에게 발렸다. 냉전 초기에 킴 플랜으로 세계 각국의 공산당이 쇼미더머니 때문에 미국과도 양다리를 걸친 건 덤.[143] 유럽 경로로는 미국과 양다리를 걸친 유고슬라비아가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마피아를 통해 밀수입한 다음 주변 동유럽 국가로 밀매하고 이를 유럽 지역의 소련인들이 밀수입하는 구조이며, 아시아 경로는 한국, 일본, 남중국이 장강 비무장지대를 통해 북중국에 밀매하고 북중국이 이를 소련에게 밀매하는 구조였다. 그 외에도 두만강 일대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물건을 밀수입한 다음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유럽 일대에 뿌려지는 경로도 있었으며, 이를 뒤늦게 안 유진은 '보이지 않는 손이야말로 신이다'라고 경악했다.[144] 대약진 운동 이후 북중국 일대에서 대규모 탈북자가 형성되었고 이들이 자본주의의 맛을 알고 대규모 밀수 루트를 형성했다고 하니 소련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145] 원 역사에서 쿠르스크 전투에서 바그라티온 작전을 거쳐 베를린 전투까지 도달한 게 1년 9개월이었다. 아헨에서 베를린까지는 520km로 연합군이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의 섬멸을 해서 뚫었다는 걸 고려하면 아무리 본작의 서부전선이 독일군 정예 수백만을 갖고 갔다지만 대체 소련군이 얼마나 무리한 건지 상상이 안 갈 정도다.[146] 다만 베를린을 비롯한 동유럽 분할은 사전에 합의되었기 때문에 원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냉전권 판도를 만들기는 했다. 하지만 프라하를 연합군이 점령했던 사건은 스탈린 사후 정쟁이 일어났을 당시 체코와 슬로바키아를 분할해 체코를 1세계가 가져가는 결과를 불렀다. 본작의 21세기에도 소련과 동독이 존재한다는 언급을 보면 그 외에는 구도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지만.[147] 독소전쟁을 경험한 소련군 출신 소수민족 의용군이 2선급 전력으로 취급받던 아시아 주둔 미군에 일방적으로 패배했다.[148] 그런데 이 꼼라드 콜라의 마스코트가 북극곰 코스프레를 한 쿠마미미 스탈린(...)이다.[149] 주코프가 선호한 콜라는 흰 콜라이기 때문에 사이다 탄산음료와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산 검은 콜라도 본작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검은 콜라도 완전히 명맥이 끊어지지는 않았을 듯하다.[150] 시베리아급의 추위를 자랑하는 북한에서 왜 소주가 전통적으로 유행했는지 생각해보자. 북한은 현대에도 도수가 20도 미만이면 술 취급도 안 한다.[151] 사실 이거 굉장한 업적인데, 꼼라드 콜라의 시장 지배 한방으로 음주운전, 주폭, 알코올계 질병발병률, 알콜중독 문제 등등이 깔끔하게 히틀러랑 같이 지옥에 처박히고, 평균수명 떡상에 가정환경의 안정화로 인재풀의 질이 한순간에 고속으로 상승해 버리는 결과가 나온다. 주코프가 콜라로 알콜중독 때려잡은 것만으로도 주코프는 스톨리핀, 스탈린, 알렉산드르 넵스키, 표트르 1세 등등과 동급 취급 받을 수 있다. 대신 설탕중독 문제가 있겠지만 알콜중독으로 인한 사건사고보다는 나으니까. 오죽하면 본작의 소련이 2020년대에도 해체되지 않고 현대까지 존속하는 이유가 1990년대 옐친 시절 소련에 덩샤오핑이 개입한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알콜중독에서 벗어나니까 이성이 돌아와서 그런 게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152] 독자들은 콜라에 알콜을 섞는 게 맛이 괜찮기 때문에 섞어 먹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래도 콜라를 넣으면 생으로 먹는 것과 달리 당분과 수분이 보충되어 취기와 숙취는 확실히 덜해진다. 적어도 만취로 인한 사건사고는 안 일어날 테니 생보다는 낫긴 하다.[153] 군부(와 주코프)를 견제하기 위해 유화책을 펴다가 그만 체코를 서방 세계에 넘겨주고 말았다.[154] 객관적으로 유진은 처칠의 생명의 은인이다. 마켓 가든을 본작에서 너무 말아먹은 나머지 하마타면 영국 육군 그 자체가 소멸할 뻔했고, 이에 분노한 영국 시민들이 처칠을 생물학적으로 죽이려고 했다.(...) 유진이 포위당한 영국군을 구출한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거지 그대로 영국 육군이 소멸당했으면 그 시점에서 대영제국은 끝이었다. 영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유진에게 크게 빚을 진 거나 다름없는데, 정작 본작에서 영국군의 전적은 형편없다 못해 유진이 지휘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말기 전까지 트롤러 수준이었다.(...)[155] 반공과 소련 견제에서는 뜻이 맞지만, 미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찬 맥아더는 제국주의자 처칠을 마뜩치 않게 생각하는 데다가 처칠이 후원한 몽고메리의 삽질로 미군 군단이 소멸하는 대참사를 겪은 후엔 '친영파' 딱지가 붙는 건 정치인으로서 자살행위가 됐기 때문.[156] 본작에서는 미국이 진주만 공습 전에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원 역사보다 초기 상황이 나았는데 처칠이 당시 중립국이었던 노르웨이를 일방적으로 침공했다가 오히려 독일에게 북유럽을 통째로 털리는 역효과를 냈다. 이 때문에 북유럽 전선 상황이 원 역사보다 더 나은 결과를 초래했지만 이 문제는 히틀러가 이탈리아와 발칸에 원 역사보다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하는 것으로 겨우 상쇄되었다.[157] 당장에 아프리카 전선에서도 결국은 영국이 이기긴 했겠지만 유진 킴의 활약으로 그 기간이 확실하게 단축된 데다 주로 활약을 했던 것도 미군이었고, 마켓 가든 작전은 유진 킴이 아예 지휘권을 놓았던 상황에서 몽고메리의 강력한 주장으로 입안된 작전이라 몽고메리의 역량은 축소되고 실책은 훨씬 드러난 상황이기 때문이다.[158] 몽고메리가 막 북아프리카로 파견될 당시 처칠 앞에서 그 눈 찢어진 스키타이인(유진)은 여우 면상도 못 볼 거라 의기양양하는 장면이 있다. 당시 유진은 북아프리카 전역 파견이 확정된 상태였으니 거의 같은 시기다.[159] 본작에서는 1939년 6월 25일 바르바로사 작전과 진주만 공습이 동시에 일어났고 유진과 몽고메리가 북아프리카 전역에 파견된 건 1939년 10월이다.[160] 물론 이집트 수에즈 운하 사수도 중요하지만, 북아프리카 전역은 당시 롬멜이 이집트까지 도달하지 못한 반면 당시 인도는 일본군이 인도차이나 반도를 휩쓸고 인도 직전까지 몰려오고 있었다.(태국은 점령당하진 않았지만 과달카날 해전에서 일본군이 미군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친일에 가까웠다)[161] 원 역사에서는 인도로 좌천된 이후 버마,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동했고 이탈리아의 몬테카시노 전투에서 이름을 날렸는데, 본작의 이탈리아 전선은 미군이 빠지고 이탈리아 왕국군과 영국군만 싸웠음을 고려하면 인도에서 일본군 관련으로 성과를 내고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약해서 승진한 모양이다.[162] 제21집단군 예하 제2군 사령관이 저지대 집단군 사령관을 겸한다는 지령을 보아 2군 사령관이었다 저지대 집단군 사령관으로 승진한 모양이다.[163] 저지대 집단군은 원 역사에서도 본작에서도 서부전선 연합군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갖고 있었다.[164] 알기 쉽게 설명하면, 남쪽 탈출구를 만드는 걸 포기하고 북상해서 앤트워프 항구 장악을 노린 것이다.[165] 원 역사에서는 전후인 1946년에 원수가 되었다. 이때의 유진은 미영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전권을 쥐고 있었기에 가능했거나 영국군을 설득한 모양이다.[166] 마켓 가든 전투 시작 당시 영국군 50만, 캐나다군 10만이었고 이 시점에서 영국군과 캐나다군 합쳐 50만 있었다고 한다.[167] 알자스-로렌 일대 방어선이 제법 견고해서 프랑스군을 고기방패로 쓴 거지만, 독일에게 3공화국이 멸망당하고 3년 동안 나치강점기를 겪다(1938년 11월~1941년 6월 25일) 파리가 해방된 지 2달만에(8월) 파리가 다시 노려지는 상황에서 알자스-로렌 일대의 수복은 프랑스의 위신과 직결된 문제라 많은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독일과의 오랜 국경분쟁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꼭 점령해야 했다.[168] 스트라스부르는 당시 B집단군 주력이 있던 벨기에와 아미앵 일대에 비해 너무 동쪽 아니냐 의아할 수도 있는데, 당시 독일군은 베네룩스를 거쳐 파리를 공격했던 B집단군 본대만이 아닌 알자스-로렌을 포함한 프랑스 동부 일대에도 많은 독일군이 있었다. 이 때문에 변수를 줄이고자 조공으로 스트라스부르 공격을 행한 것이다. 파리 사수 연설과 동시기에 패튼에게 메츠 점령을 지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169] 당시 브래들리가 지휘하던 미 12집단군은 1군, 7군, 9군, 15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7군은 메츠 함락으로 힘이 다 빠져 후방으로 물러났고 15군은 한창 편성 중이라 제외, 1군은 저지대 집단군을 구출하러 간 영 제21집단군을 호위하러 동쪽으로 진격해서 9군이 아미앵시를 포위하고 1군은 SS 제1사단을 포함한 독일군을 사정없이 궤멸시키며 진격했다. 당시 독일군은 차량이 아닌 우마(牛馬)에 보급하는 열악한 보급 상황, 지속적인 격전으로 인한 소모, 끝없는 폭격으로 인해 역량이 소진된 상황이라 막을 수 없었다.[170] 다른 곳에 있던 독일군이야 낫지만, 아미앵에서 아헨까지 가는 데만 330~350km다.(...)[171] 퇴각 당시 아미앵이 아니라 릴, 몽스, 아라스, 캉브레에서 시작해 탈출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만토이펠을 비롯한 일부 부대는 탈출에 성공했다.[172] 독일의 1개 집단군을 궤멸시키고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해방하는데 성공한 상황에서 현재 독일 본토인 아헨을 공격하는 건 무리지만 이 시점에서 마지막 남은 농경지인 네덜란드를 해방시키면 순무의 겨울이 재림하기 때문.[173] 유진이 식량을 공중 수송하는 동안 독일군이 건드리지 않으면 그곳을 폭격하지 않을 테니 이걸 거절하면 유고에서 1명당 백 명 죽였듯 아사자 1명당 나치당원 10명 처형하겠다 엄포를 놨고, 그 말을 들은 스탈린은 "일단 만 명 총살하고 시작해야 할 거 아니냐"고 대답하자 결국 독일군이 물러났다.[174] 그가 있을 때는 비난이 많았지만 그를 몰아내고 난 뒤에 군벌들의 행적이 더 엉망이라 장제스가 더 나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복귀하여 지지를 얻는다. 장제스가 하야한 이유도 이를 예상한 유진이 몇 년 안에 돌아올 테니 안심하고 잠깐만 물러나라고 장제스를 설득했기 때문.[175] 이 영화도 제법 괴랄한데, 수상할 정도로 마오쩌둥을 닮은 조조가 참새 먹방을 선보이고 엑스트라를 진짜 백만 명 동원해서 찍는 대륙의 기상을 보여주었다.[176] 원래는 미국이나 남중국으로 가려고 했지만 남중국은 장강 난민이 너무 많아서 불하, 미국은 간 사람도 있고 여러 이유로 대한민국에 정착한 사람도 있다.[177] 북한 일대는 남한 일대와 달리 제1세계 무역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어서 남한 일대보다 경제 성장이 확연히 늦었다. 이 때문에 스탈린 시대부터 두만강 일대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한 소련 밀무역이 성행했지만, 이것만으로 북한 경제가 발전하는 건 무리였다.[178] 남중국 일대가 건재한 데다 미국이 PATO라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군사동맹이 체결되어 군사적 위협을 강하게 느낀 탓에 다롄을 소련에게 돌려받은 이후에도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었다.[179] 이걸 알게 된 중공과 중화민국은 각각의 이유로 신병 인도를 요청했지만, 양쪽에서 시달리자 짜증이 난 한국이 그냥 제3국으로 보내버리는 것으로 응수했다.[180] 이때 중공이 장칭을 죽이겠다고 이를 간 걸 보면 그 잠깐 사이에 대체 뭔 난리를 쳤나 싶을 정도. 이 때문에 덩샤오핑은 인도까지 가서 대한민국 외교관들과 접촉했을 정도였다.[181] 1920년대부터 소련에서는 김유진을 '조선 차르'로 인식하고 있었다. 2차대전 당시에는 미국 정계에서의 폭발력 때문에 미국 정계에 진출할 바에는 한반도에 처박히는 게 낫다고 여겼을 정도.[182]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일본군 소속 조선인이 배신할 것을 우려해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간도특설대를 만들어 김일성을 죽였다고 언급되며, 본작의 시기를 계산하면 1939~1940년에 벌어진 일이다.[183] 설령 김정일이 태어났더라도 본작의 정황상 소련에 귀화해 일반인 유리 킴으로 살다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184] 1946년에 매카시즘이 시작되었는데 1947년에 역풍이 불기 시작해 1948년에 매카시즘이 완전히 진압되었다.[185] 유진은 자신은 어디까지나 미국인이며 미국과 일본은 선린우호 관계임을 강조하며 민족감정을 건드리는 도발을 가볍게 넘겨버렸다. 이에 도고가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을 할 재목이라며 감탄하자 제 피부색이 워싱턴에 일자리가 없다고 알려줬다는 개드립을 날려주며 도고를 폭소시키고, 도고는 유진 같이 야심과 재능이 있지만 혈혈단신인 젊은이라면 군대는 최고의 선택이라며 맘에 들어한다.[186] 당시 일제 해군이 유진의 존재가 조선에 알려져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걱정했지만 도고는 공식적으로 미 육군에 속한 유진과 일제 해군인 자신들이 직접 맞부딪힐 일이 뭐 있냐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일본과 미국이 전쟁하지 않는 한.[187] 실제 역사에서는 고노에 총리가 급발진하면서 중국 토벌!!을 주장하자 군부도 질 수 없다!! 하고 급발진해버렸다.[188] 유진은 전쟁이 일어나자 히데타카를 남미로 보냈지만 전쟁 중이라는 걸 고려하면 사실상 석방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도조가 행복회로를 불태우기도 했을 정도.[189] 이게 뭔 해괴한 짓이냐 싶겠지만, 사실 일본 역사의 집권층이 자신이 패배했을 경우에도 가문을 존속시키기 위해 반대편에 자식 하나를 딸려보낸 건 전국시대부터 있던 관습이다. 원 역사의 미국과 달리 유진과는 이래저래 인연이 있고 유진은 미국에 온 일본 상류층을 활용하는 타입이지 숙청해서 미국에서 지지 얻는 타입은 아니기 때문에 당시 일본 고위층의 태도는 도조와 별 차이가 없었다. 실제로 이들이 전후 귀국해서 그대로 신 일본의 집권층이 되기 때문에 '가문'만 보면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190] 이는 고노에 후미타카와 마찬가지다.[191] 사실 원 역사의 도조도 전범재판 초기에는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을 규탄했지만 연합군이 히로히토를 세탁해서 써먹으려는 것을 알자마자 태도를 바꿨기 때문에, 이런 도조의 행동은 고증이 맞다. 본작에서는 유진이 자기 가족들을 보호하는 게 확실한 이상 자연스러운 반응이다.[192] 원 역사에서는 중국에서 고위층 딸과 눈 맞아 충칭 가려다 헌병대에게 붙잡혀 강제 귀국했지만 본작에서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전쟁 기간에 미국에 남아있었고 공가나 구 다이묘 가문들은 특히 '보험'으로 아들 하나 남겨두는 풍습이 있었으므로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193] 원 역사에서는 차녀 고노에 아쓰코의 차남 호소카와 모리테루가 고노에家의 양자가 되었다. 여담으로 모리테루의 형이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다.[194] 만약 검각 때까지 살아남은 게 맞다면 이 인간 진짜 운이 좋은 거다. 원주민조차 넘는 걸 포기한 오언스탠리 산맥을 넘는 데만 엄청난 희생을 치렀는데,(이건 원 역사도 마찬가지다) 고생하며 넘어 공격한 포트모르즈비 전투 이틀 만에 퇴각 명령이 떨어져서 다시 오언스탠리 산맥을 넘어 중국으로 가야 했다. 이 때문에 장병들이 지금 장난하냐며 대본영 놈들 대가리 다 날려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었을 정도. 실제로 오언스탠리 산맥을 다시 넘을 때는 원주민들과 갈등을 빚어 원주민들에게도 공격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평소에도 부하들이 죽이겠다고 이를 갈던 하나야인데, 이 정도면 진짜 살해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195] 일본군 참모진들은 그 삼국지의 검각인데 말이 되냐고 반대했지만 도조 히데키는 어차피 대륙타통작전의 필요성도 줄어들었겠다 중경을 어떻게든 함락시키는 게 낫겠다며 결재해버렸다.[196] 여담으로 검각을 넘을 당시 검각에서 장병들이 사고사하든 말든 검각을 넘으라고 장병들을 갈구는 사단장이 나오는데, 정황상 하나야 타다시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197] 다만 해당 세계선에서는 과달카날 전투에 패배하자마자 동남아 전선을 대폭 축소하고 중국 전선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굳이 대륙타통작전을 감행할 필요성이 줄어든 것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과달카날 직후 사이판, 이오지마, 오키나와에 강력한 요새를 건설했기 때문에 이 노선으로 갔으면 원 역사보다 큰 피해가 났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무타구치가 한 건 했다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동남아에 안 박아넣으니까 중국에서 그만큼 더 삽질한 셈...[198] 사실 검각 작전이 무타구치가 아무렇게나 만든 작전이긴 하지만 당시 일본군 입장에서 중국군에게 항복을 받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자타공인 미친 작전이라서 당연히 망했지만.[199] 미쓰비시 그룹을 하사받았다고 언급된다.[200] 같이 취해 있던 헨리는 다른 병사들끼리 벌이는 스모를 구경하다가 옆에서 '끼에엑 일본군 너무 무서워 끼에엑'하고 맞장구를 치다가 그대로 필름이 끊겨서 둘이 같이 나동그라진다.[201] 물론 당시 2차 세계대전의 패색이 짙은 일본군이었음을 감안하면 더 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202] 히로히토는 이미지상 안 되고, 첫째 숙부 야스히토는 1940년부터 폐결핵으로 인해 내내 요양하다 1953년에 죽었기 때문에 공무는 무리다.[203] 그 과정에서 유진의 부친 김상준과도 원수가 됐지만, 김상준도 그의 애국심은 인정하고 있었기에 해방 후에 자연스럽게 응어리를 해소했다.[204] 실제로 유진은 이승만의 권력욕과 암살을 포함한 권모술수 능력을 경계하고 있어서 여차하면 그냥 태평양에 담가버리려고 했다. 이승만은 유진을 초면부터 군인보다 정치인에 가까운 사람이라 바로 알아봤기 때문에 이런 결말을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205] 이승만에게 프린스턴대 박사 학위를 수여한 사람이 바로 우드로 윌슨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폭로였다. 아예 무관계한 사람이, 그것도 동양인이 폭로를 했다고 하면 헛소문으로 일축될 수 있었을 것이다.[206] 원 역사의 이승만과 같이 처음에는 실력을 배제한 외교독립론을 주장했었으나,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에도 독립 못한 자신들을 포함한 다른 사례를 예시로 들면서 독립에 필요한 외교력의 확보를 위해서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논리로 전환하면서 본인의 입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실력양성론이 주류이던 임정의 주요 인물들을 설득할 수 있었고, 유진 킴이 자신을 후원해준다는 배경에 힘입어 임정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207] 덤으로 김일성은 간도특설대에게 마적 두목으로 사살당해서 이승만이 손쓸 필요도 없었다.[208] 한반도가 당시부터 동양에서 가장 개신교도가 많은 편이었던 건 사실이다.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렸을 정도. 실제로는 천도교가 더 강세였지만 유의미하게 많았던 건 사실이다.[209] 그 외에는 호남과 호서의 지주들이 창당한 한국민주당이 있는데, 한국민주당은 이후 등장하지 않으며 호남과 호서에서 한국독립당이 세를 굳혔다는 것으로 보아 합당했을 가능성이 높다.[210] 여운형이 좌익이라는 걸 싫어한 CIA가 쿠데타를 계획했다 유진에게 대판 까이고 여운형이 정권 잡게 놔뒀으며 곧바로 줄을 갈아타서 한국독립당이 미국 정부에게 불만을 가졌다는 언급이 있다.[211] 원 역사와 정반대 구도라서 놀랍긴 하지만 원 역사에서도 해방 직후 정치 성향은 이랬기 때문에 통일 한국과 중국 분할로 성향이 그대로 내려왔다고 보면 된다.[212] 원 역사에서도 김구가 죽인 독립운동가들의 시체로 산을 쌓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백색테러가 심했다.[213] 전차만 100대 넘게 굴리고 있었다고 언급될 정도면 임시정부의 규모 자체가 원 역사와 비교할 수 없는 규모였다는 뜻이다. 단순히 돈만 대준 게 아니라 김가를 보고 '어? 조선 독립 되겠네?'라고 생각해서 독립에 뛰어든 사람들도 원 역사보다 많았을 것이고.[214] 이때 김두한도 체포당해 수감되었다고 언급한다.[215] 유일한은 원 역사에서 나이 50세에 OSS 산하 국내 침투 작전인 냅코 프로젝트에 투신할 정도로 전투를 꺼리지 않은 성격이었다.[216] 조선 유학생들의 상상수가 종교단체나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아서 갔기 때문에 일제 시절 상당한 세를 가진 천도교 유학생들도 제법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217] 직접 만나본 유진 킴 왈, 2020년대에 맨몸에 웹캠 달린 PC만 안겨서 집어던져 놔도 구독자 100만 스트리머가 될만한 재능 이라고 평한 바 있다.[218] 김유진도 티토에게 소련은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게 되자 러시아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다며 소련이 주장하는 모든 인민의 소비에트 연방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219] 본인의 권력욕과 미국의 인종차별 매운맛을 겪은 실망, 당시 박상희가 공산주의자라는 것이 밝혀져 위험에 처해 구명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220] 박상희가 대구에서 꽤 유명한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에 박상희 동생이라는 연을 통해 사람들을 포섭했다고 한다.[221] 김유진이 죽고 온갖 루머가 떠돌았는데, 이를 늘 하던 대로 폭력 진압하려 했으나 오히려 이것이 국민들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222] 작가의 후속작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에서 조 중장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제복군인의 정점까지 올라갔다는 말이 있는데, 원 역사에선 박기태와 김유진의 아들이 만날 일도 없었고, 그렇기에 징용에 끌려간 박기태도 돌아오지 못했거나 온전치 못한 상태로 돌아와서 집안이 가난한 채로 남았을 것으로 보인다.[223] 이 말을 들은 김유진은 김일성도 박헌영도 없음에도 공산주의자의 세력이 한반도에서 꺾이지 않은 것에 전율했고, 이참에 소련의 프락치 노릇을 할 공산주의자와 타협 가능한 사회주의자를 걸러내기로 결심한다.[224] '아버님께선 마음만 먹으셨으면 백악관까지 도전했을 분인데도 현 위치에 만족하시는 분입니다. 대체 이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런 욕심을 부리겠습니까?'라고 내질러버렸다. 단 헨리 입장에서도 처음부터 여운형과 한국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유진을 의심하는 여운형이 답답해서 유진에게 그런 불순한 욕심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다가 한 실수였다. 이 말을 들은 여운형은 '애초에 김유진 장군과 미국은 우리와 수준 자체가 다르구나.'라며 허탈해 한다.[225] 단 완전히 경계를 풀지는 않았다. 김유진이 가난한 조선에서 부와 권력을 노릴 이유가 없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가 조선에서 원하는 것이 돈과 권력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면 '그 무언가'를 충족한 뒤 다른 나라에 조선을 팔아넘기고 손 터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 하지만 그 '무언가'에 대해서 도저히 짐작 가는 것이 없었고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기에 결국 미군정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226] 원래 생각했던 이름은 조선로동당이었는데 유진이 반대해서 노동당이 되었다. 여운형은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227]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김유진의 미군정과 인수인계가 워낙 잘 되어서 많은 정당들이 안정적으로 등장하였고 분당과 합당을 반복하며 제헌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동당은 빅텐트를 추구한 부작용으로 색깔이 희미하다 보니 자기 색깔이 강한 사람들이 떠나간 탓에 결과적으로 스탈린주의, 마오주의자 같은 진성 공산주의자거나 여운형 직속 세력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228] CIA는 이외에도 세계 각국에서 반공 쿠데타와 내전을 계획했다가 유진에게 모조리 반려당했다. 독자들이 저것만으로도 유진이 노벨 평화상 받을 자격이 있다고 평할 정도.[229] 반대로 이승만의 한국독립당은 호남과 호서(충청)를 텃밭화하는데 성공했다. 이승만 정부 당시 경제개발 정책이 남중국 무역의 중심지인 호남과 호서 지역에 집중되었기 때문.[230] 애초에 본작의 한국은 통일 한국이라 북중국, 소련과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어서 조금만 잘못되어도 둘에게 침공당할 처지다. 그런 상황에서 티베트 같은 별 상관도 없는 듣보잡 나라 때문에 개입하라는 요구를 들으면 돈 받아내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철강소 정도면 미국 정부 예산은커녕 샌프랑코나 김유진 비자금 정도로 충분한 푼돈(?)이니 여운형 입장에서는 겨우(...) 이 정도도 못 받아내냐고 반응하는 게 더 당연하다.[231] 누군지는 안 나온다. 독자들은 대체로 장면이나 윤보선으로 추정한다.[232] 당시 좌익 세력은 김가가 비정상적으로 지원을 많이 한지라 김유진이 미국의 힘을 빌어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건가 의심했다. 여운형조차 김유진이 조선의 독재자가 되려는 게 아닌지 의심했을 정도. 이 문제는 찢어지게 가난한 조선 따위가 미국에서 엄청난 부와 권력을 쥔 유진의 눈에 차겠냐는 헨리 킴의 말로 해결되었지만.[233] 하지만 이들은 김유진의 치밀한 공작으로 인해 중공의 힘으로 귀국한다는 계획과 달리 다시는 귀국하지 못했다.[234] 이후 이왕가는 노동당 내란음모 사건 직전 좌익의 언론플레이를 차단하기 위해 귀국시켰다. 이후 행적은 불명.[235] 김유진을 계속 제국주의자라고 여겼으면 김원봉 특유의 앞뒤 없는 성격상 노빠꾸로 암살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자문위원회에 합류해 성실하게 일한다는 건 결국 그럭저럭 신용한다는 뜻이다.[236] 김원봉 본인이 손자처럼 아끼던 애가 경찰 손에 죽었는데도 가만 있겠냐며 설득받았다.[237] 노동자 고문 현장에 난입하며 이게 대한민국 경찰인지 미와 경부인지 모르겠다 말한다. "내 이름은 지옥에서 도조 히노끼한테 물어봐, 이 인간말종 새끼들아."라며 시밤쾅을 시전했고, 서장은 벌집핏자로 만들었다.[238] 김원봉은 1898년생이라 60년대 말~70년대 초면 70 전후로 살아있어도 이상하지는 않다. 워낙 젊은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지라 세간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 듯.[239] 원 역사에서도 1960~80년대 노동운동계는 좌익계가 많았고 본작에서는 사민주의 세력이 해방 직후부터 건재하기 때문에 특이한 건 아니다. 자생적으로도 좌익이 생기던 시절에 전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정당까지 있으면 그 규모는 말할 것도 없다.[240] 김유진 건은 그렇다 쳐도 노동당 내란음모 당시에 공범으로 몰렸을 때도 자기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숙여야 하냐고 상황 파악을 못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여운형이 한숨을 쉴 정도였다. 멍청한 건 아니지만 눈치 없는 성격이라고.[241] 이봉창의 일본인 호적은 전향 전에 얻은 것이며 이봉창은 처음에는 일본인으로 살려다 조선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데 충격을 받아 전향한 사람이다. 조선총독부라도 이봉창의 일본인 호적이 진짜니까 의심 안 한 게 당연하다.[242] 팬덤에서는 원 역사에서는 히로히토 즉위식에 참가하려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것 때문에 전향한 것과 달리 본작에서는 위버멘쉬인 김유진을 숭배하게 되어 김유진의 수족 노릇을 하는 게 아니냐 추정하고 있다.[243] 사실 여운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당수가 당원을 믿지 않으면 어떡하겠냐고 망설이다가 죽을 뻔했다.[244] 작중에서는 과달카날 해전에서 처발리자마자(미드웨이 해전을 안 한 대신 과달카날 해전에서 둘을 합친 피해가 동시에 나왔다.) 동남아 전선을 대폭 축소하고 중국 전선에 집중해서 대륙타통작전을 할 이유가 없었다.[245] 김유진에 의해 최초로 해방된 대한민국 영토인 데다가 국지적인 공산당 봉기를 겪었고, 중화민국이 장강 이남에서 생존에 성공하면서 중계무역지로 더 발전하고 한독당이 확고한 지역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투자를 했다. 특히 노동당 내란음모 사건 때 마오주의자들이 호남에서 깽판을 친 탓에 호남에서 좌익 세력이 전멸하고 가장 강한 반공 성향을 띠게 되었다고 한다.[246] 당시 연안파들이 호남에서 해방구를 만들겠답시고 지주 계층을 족치려다 역효과를 냈는데, 김대중의 아버지가 일제시대 하의도의 의장이었고 김대중도 서자로 태어났다 첩인 어머니가 정실이 되면서 적자로 승격되었던 이력을 고려하면 오히려 김대중이 연안파에게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247] 이걸 본 기자들은 '임정 시절처럼 총은 없으니 좀 낫나?'라는 블랙 유머를 기사에 실었다.[248] 그런데 경선 당시 한 말을 들어보면 보수 정치인임에도 원 역사와 성향이 마냥 다른 것도 아니다. 당시 한국 정치사회의 문제점이었던 지나친 저임금, 없다시피한 의료보험, 지나친 밀실정치와 골품제 관료주의를 비판하며 젊은 세대가 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 다만 우보크 밀실정치를 비판한 것과 별개로 이승만과 김유진의 뜻을 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김유진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은 듯하다. 미국이 아닌 한국에 우보크를 도입한 건 김유진이 아니기도 하고.[249] 윤동주가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닌 건 1935년이기 때문에 이즈음에 뽑힌 것으로 보인다.[250] 본작에서 중공 만주 일대와 한국이 밀무역으로나마 대규모로 교류하기 시작한 건 마오쩌둥이 대약진 운동을 말아먹어(...) 대규모 난민을 초래한 1960년대부터였다.[251] 주인공 유진 킴이 독백으로 '윤동주나 이육사가 문학을 했던 것은 당시 식민지 조선인들이 할 수 있는 게 문학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현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가장 전도유망한) 의대를 가지 않았겠는가'라는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이와도 일맥상통하는 결과인 셈이다.[252] 전면적인 내전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최초의 정규 육사 생도라는 공통점으로 뭉친 하나회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253] 물론 전두환의 육사 성적이 안 좋은 편이긴 했지만 어쨌든 오늘날에도 입학에 높은 고교입시 성적을 요구하는 육사이고 전두환이 입학한 5~60년대라면 입학이 더더욱 빡셌을 것인데, 그 육사에 입학해서 졸업까지 한 걸 보면 육사 내부에서만 딸릴 뿐 머리가 아예 멍청이 수준으로 나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소설 속 전두환은 특급 귀빈을 호종시킬 정도의 육사 생도였으니, 실제 역사와 달리 육사 성적도 우수했을 가능성이 높다.[254] 사실 유진이 빗댄 멩스크나 위연도 그 인격이나 악행을 제하고 보면 능력 하나만큼은 출중했던 인물들이다. 어찌보면 유진의 평가가 맞아 떨어진 것.[255] 명원 작가의 댓글에 따르면 실제 정치인과는 무관하게 그냥 친구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256] 그러나 그들 중 가장 짬이 딸렸다.[257] 당시 만토이펠은 아미앵이 아니라 릴에 있었기 때문에 아미앵의 본대가 퇴각하자마자 본대와 합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탈출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자기 살아남는 것도 힘든데 아미앵에서 330km를 돌파해야 하는 본대와 합류할 바에는 그냥 알아서 도망치는 게 더 합리적이긴 하다.# 이외에도 50만도 들어가기 힘든 당시 아미앵의 도시 규모와 여러 정황상 아미앵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에 있던 나머지 잔존 부대들은 정황상 일부나마 독자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것으로 추측된다.[258] 해적판을 만든 이유도 골때리는데, 자기가 원하는 카드가 안 나와서 없으면 내가 만들면 되잖아?라는 이유였다.[259] 본작의 보어만은 히틀러 암살미수 때 사망해서 원 역사처럼 보어만의 누명으로 실각하지 않았기 때문.[260] 여담으로 유진이 보내준 아내가 만들어준 케이크를 먹으며 개인적인 식료품을 보급해줄수있는 미군의 보급 역량에 대해 속으로 기겁하긴했으나 독을 탔을지도 모른다는 부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먹긴했다. 먹고 바로 배탈나긴 했지만... 물건에 뭐 탄게 아니라 굶주린 배에 기름지고 단걸 집어 넣었으니 배탈나는건 당연했다.[261] 유진은 롬멜은 에고가 강하니 항복하거나 자살하면 모를까 도주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나름 정확한 예측이었다.[262] 그래서 자기는 모른다고 오리발 내밀던 만슈타인구데리안은 가석방되지 못한 채 계속 수감되게 되었다.[263] 이 생활고라는 것도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수준은 아니고 그냥 자식들 대학 등록금을 내고 혼수 마련하기 빠듯한 정도.[264] 모델은 미군이 남의 나라 원정임에도 이 정도로 의욕이 넘치는 것에 의아해했는데 이게 그 때문이다. 거기다 홀로코스트가 일찍 폭로당해서 자신들이 지면 나치가 맨해튼에다 가스실을 만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더욱.(미국 유대인은 더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홀로코스트가 폭로되자 당시 부자가 아니었던 미국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미군에 입대했기 때문)[265] 비제르테의 이탈리아군은 크리스마스 휴일 동안은 미군 기지에 가서 놀고 싶어했지만 SS 멤버들이 총통에 대한 반역이네 뭐네 깽판을 쳐서 말싸움을 벌이다 SS가 먼저 총을 쏘자 분노한 이탈리아군이 SS를 두들겨 패서 크리스마스 트리에 매달아 버렸다. 이때 이탈리아군은 숫자에서 앞선 것과 별개로 SS를 일대일 격투에서도 발라버렸다고. 원 역사에서도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이 격투에 능했다는 일화가 있으므로 고증이 맞다.[266] 미군이 비제르테에 쳐들어왔다는 것. 당시 미군은 크리스마스 휴전을 즐기고 있었고 협정대로 다음 날 06시에야 진입했다. 착각한 국방군 사령관이 자살한 건 덤.[267] 당시 국방군은 당시 SS가 죽든 말든 무시하고 미군 기지에 놀러가서 초콜릿 얻어먹고 있었다. 평소 국방군과 SS의 사이가 나빴는 데다 당시 비제르테는 대부분 이탈리아군이라서 숫자에서도 밀렸기 때문.[268] 이탈리아군이 졸전 일화로 유명해서 그렇지 북아프리카에서는 전형적인 파시스트 학살자였다. 그런 이탈리아군조차 토텐코프의 행동이 지나치다며 질색했다는 묘사가 있을 정도면 진짜 답이 없다.[269] 이때 대령 신분으로 중장인 롬멜에게 거만하게 굴다 걷어차였다. 롬멜이 싸움은 제대로 못하는 게 힘없는 사람만 마구 죽이는 1급 인간백정이라고 디스한 건 덤.[270] 이때 국방군와 이탈리아군의 발언을 보면 본인들도 악행을 많이 했지만 아인자츠그루펜은 조직 자체의 특성상 쓰레기라고 엄청나게 경멸을 샀던 모양. 롬멜도 1급 인간백정이네 뭐네 욕한 걸 보면 이들 입장에서도 도저히 답이 안 보이는 놈들이었던 모양이다. 사실 본작의 롬멜이 감옥에 몇 년 살다 나오는 수준의 경형으로 끝난 걸 보면 롬멜은 전쟁범죄를 덜 한 모양이지만.[271] 좌익 레지스탕스라고 언급되는데 원 역사와 본작의 정황을 보면 프랑스 공산당일 가능성이 높다.[272]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필로폰을 비롯한 각종 고위험 마약 중독자가 폭탄 맞아 파편이 몸에 박히고 화상에 대량의 출혈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파편 빼고 혈압 조절하고 화상 치료해서 한 달은 걸렸지만 의식 차리게 만드는 걸 성공했다는 뜻이다. 21세기에도 중증 마약중독자의 혈압을 조절하며 대수술하는 건 매우 성공 확률이 낮은데, 모렐은 마약을 비롯한 고위험 약물들을 가지고 1941년에 이걸 해냈다. 진짜로 명의가 맞는 것.[273] 참고로 유진은 당시 의사의 답도 없는 평균 수준 때문에 절대로 병원을 찾지 않았다.[274] 물론 어지간한 역덕이 아닌 이상 칸나이 전투의 패장을 기억하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오명이 크진 않을 수 있다.[275] 이 전투력은 배나온 아저씨가 되어서 국민돌격대에 징병된 때도 여전해서 7:1로 무쌍을 찍는다. 독자들은 '게르만 슈퍼솔져'라고 부른다.[276] 이외에도 금융업에 종사했으며, 4개 국어가 가능한 비범한 인물이다.[277] 1차대전과 2차대전 때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다 보니 지하실에 반년은 버틸 만한 식량을 늘 모아두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1차대전은 몇 년이나 전 국민이 순무와 톱밥만으로 버텼다고.[278] 콘라드가 사위 오토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사실 프란츠는 친아들이 아니라 여동생이 유대인 남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조카를 양자로 거둔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다 죽었고 아버지까지 죽은 뒤 거둘 친인척이 없어서 자신이 거두었다고.[279] 거기다 콘라드가 프란츠가 공부를 평소에 안 해서 자신이 왜 부모와 안 닮았는지 의문을 안 느꼈다는 것으로 보아 금발벽안은 오히려 유대인 친부의 영향일 가능성이 더 높다. 나치의 아리아인 제일주의가 얼마나 웃긴지 말해주는 예시. 물론 히틀러가 그걸 알아도 그에게 사실 아리아인의 피가 흐리기 때문이라고 정신승리하겠지만...[280] 정작 아버지는 1차 대전의 모든 격전지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생존한 베테랑이었고, 수훈한 철십자훈장 덕분에 친위대에 입대할 수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281] 모허이 학살마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중기관총으로 포로들을 쏴죽이거나 노인을 쏴죽이고 그 시체 옆에서 손녀를 강간한 적도 있다고 한다.[282] 콘라드가 기어코 프란츠를 살려내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고, 이때 오토 마이어와 만나 마이어에게 모든 진실을 밝힌 뒤 SS 제복을 몰래 벗겨서 숨겼다. 콘라드는 마이어에게 가족을 부탁하며 여차하면 출생의 비밀을 가르쳐줘 SS라는 걸 숨기라고 요청했는데, 결과적으로 둘 다 살아남기는 했지만 이후 그의 행적을 보건대 신(작가)이 그가 편히 죽는 걸 바라지 않았던 듯.[283] 콘라드 슈미트가 오토 마이어를 처음에 만프레드 마이어라고 잘못 불렀던 데에서 따온 이름[284] 생환한 콘라드가 오토에게 밝히길 사실 양자로 유대인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러니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 맞긴 한 것.[285] 원 역사에서도 나치 잔당이 주로 도망친 곳이 아르헨티나였다. 폰지 사기로 유명한 폰지가 본작에서 독일에 잠입했을 당시 홀로코스트와 T-4를 알고 나치를 극혐하게 되었는데 이를 이용해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기 전에 전 세계에 알베르트 괴링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뿌린 뒤 신분세탁했고, 세탁한 신분으로 전후 나치 잔당을 남미에 보낸 뒤 모사드에 인물 정보를 넘겨 돈도 받고 극혐하던 나치 잔당도 죽이는 일석이조를 취했다고 한다. 현대에는 둘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21세기에 돌아온 김유진=김조윤은 '내가 아는 폰지가 이랬나?'라며 믿지 않았다. 미국에서 쫓아낸 뒤 만난 적이 없어 심정 변화를 알 리 없었기 때문.[286] 본작 세계의 이스라엘은 3차 중동전쟁 이후 몰락했지만 친소 정책과 핵우산 덕분에 완전히 멸망하지 않고 현대에도 남아있기는 하며 유대인 네트워크도 완전히 죽지는 않아 여전히 모사드가 꽤 악명을 떨쳤다고 한다.[287] 다만 2차대전이 1938~1942년으로 대거 압축되어 진행된지라 전부 완성되지는 못한 걸로 보인다.[288] 학계에서도 나치 독일은 강력한 전차를 추구하는 방향성은 옳았지만 지나치게 난잡해서 군수체계 파편화 문제가 심해 종류를 줄였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289] 전간기에 M1917이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로 많이 팔렸다는 언급이 있기 때문에 구식 전차로 어떻게든 버틴 걸 수 있다.[290] 다만 본작의 셔먼은 북아프리카 전역 당시 이미 후기급 성능이라서, 4호 전차가 초기형이었다면 불리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개발자들이 이후 4호 전차 개량을 한계까지 했다는 언급을 보면 중후기 정도였을 수도 있고.[291] 본작에서는 원 역사보다 셔먼 때부터 파워팩을 비롯한 엔진 강화가 이루어졌다.[292] 독일군이 원 역사보다 기민하게 움직여서 무솔리니를 빼돌릴 때 왕을 인질로 잡았기 때문이다.[293] 원 역사에서도 드골을 싫어한 미국이 앙리 지로프랑수아 다를랑을 밀어주다 지로는 정치력에 밀려 실패했고, 다를랑은 암살당해서 실패했다.[294]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는 70% 이상이 프랑스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좌익 세력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1946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프랑스 공산당은 당시 크렘린의 시녀 소리 들을 정도로 소련에 충성했기 때문에 하마타면 프랑스가 적화될 뻔했을 정도.[295] 그도 그럴 게 드골의 입지는 사실 별로 좋지 않았다. 원 역사에서도 드골이 호가호위나 했다는 이유로 1946년 총선에서 3%의 득표율밖에 못 건진 채 개털렸고 3공화국과 나치강점기의 대혼란을 모두 버틴 프랑스 공산당과 기독교당 같은 진성 썩은물들이 연합해 72%의 득표율을 건졌는데, 본작에서는 비시 프랑스가 빨리 몰락했지만 놀렛 생전에는 놀렛과 스포트라이트를 나눠 가졌고 파리 해방에서 드골은 결과적으로 한 게 0이기 때문. 파리 익스프레스는 패튼과 르클레르가 주도했고 프랑스 총독인 하이드리히와 게슈타포는 프랑스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레지스탕스가 죽였다.[296] 기갑 전공이기 때문. 기갑을 이용한 기동전의 개념을 역사상 처음으로 선보인 1차대전 아미앵 전투는 기갑에 속한 군인이라면 누구나 배운다고 한다. 독일군도 예외는 아니었을 정도.[297] 만약 한반도가 해방되고 조선이 독립이 된 뒤에, 조선인들에게 국토를 재건시키는 일과 바다 건너 일본에게 반격하는 일 중 하나를 택하라 하면 조선인들은 무엇을 고르겠느냐고 반론한다.[298] 1차대전 당시 드골은 일개 위관이었고, 백일 공세 당시에는 독일군 포로 신분이라 한 게 없었다. 오히려 사단장으로 아미앵과 뫼즈-아르곤 전역에서 큰 공을 세웠던 유진이 프랑스에서 더 유명했을 것이다. 2차대전이 개전되면서 아미앵 전투가 영화화되어 히트를 쳤으니 프랑스에서도 주목을 받았을 것이고.[299] 알제리는 프랑스 본국과 지중해 바로 너머일 정도로 가깝고 해안지대의 기후가 프랑스 남부와 유사해 본토 행정구역에 넣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검은 발'이라 불린 프랑스 이민자 집단의 수가 다른 식민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알제리 원주민들에 대한 지나치게 가혹한 태도와 이런 검은 발 문제는 알제리 독립 과정이 매우 잔혹했던 원인이 되었다.[300] 그 외에는 하이드리히와 게슈타포를 죽이고 철도 까는 걸 도왔던 프랑스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좌익 레지스탕스가 있다.[301] 阮愛國. 실제로 호치민이 베르사유 회의에 참가할 때 사용한 가명이다. 베트남어로는 응우옌아이꾸옥(Nguyễn Ái Quốc).[302] 정확하게는 체르니크의 배신으로 그들에게 포위당했으나 유진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자 그를 잡거나 죽여봤자 그 뒷감당이 힘들거라는 인식을 일깨워줘서 포위했던 병력이 그들을 풀어주고 탈출하게 해줬다.[303] 한국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체성이 삼한으로 완전히 통합되었던 시기가 40년에 걸친 대몽항쟁이 원인이었고 역사적으로 '독립전쟁'을 통해 일국의 정체성을 형성한 사례는 제법 된다. 원 역사보다 훨씬 가혹하지만 그만큼의 성과가 돌아온 전쟁이었으니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문제만 잘 해결된다면 유고슬라비아 유지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304] 네덜란드, 프랑스는 이때도 해방이 안 되었고, 영국은 당시 전과가 없었다.[305] 어떻게 성공했는지는 안 나왔지만 M1917 일본 라이센스 버전을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현지 세력에게 넘기고 후퇴했고 정글 게릴라전까지 합쳤다면 불가능하진 않다. 영국군의 동기가 덜했던 것도 있고.[306] 이대로 쥐어짜봐야 이란은 소련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근시안적이라 지적하면서, 대신 영국이 그토록 원하던 핵무기를 이전해주겠다고 설득했다. 영국은 미국과 같이 핵개발을 했지만 미국이 핵을 완성하자마자 약속을 어기고 핵확산금지조약을 체결했는데, 이에 분노한 영국이 프랑스를 끌어들여 자체 핵개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은 1950년대까지도 대전 후유증으로 자본이 모자라서 고생하고 있었는데 이를 노린 유진이 영국에게 핵 이전을 약속했고, 영국은 이를 받아들였다. 핵 받자마자 영국이 프랑스를 통수친 건 덤.[307] 본작에서는 스페인 내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프랑스 침공이 일어났기 때문에 원 역사보다 더 빨리 프랑스가 무너졌다. 독자들이야 원 역사의 프랑스 6주컷을 알지만 본작의 프랑스는 스페인 견제 때문에 병력 분산이 일어나 독일에게 털렸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게 다 프랑코 때문이다!'라며 이를 갈게 된 것.[308] 중립국인 미국을 중개인으로 끼고 수십년에 걸쳐 수에즈 운하 지분을 매입하게 하는 것.[309] 작중에서는 아스완 댐이 미국의 기술과 자본으로 지어지게 되었다.[310]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스라엘은 종전후 소련에 붙어 겨우 명줄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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