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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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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번역 문제3. 군주
3.1. 세속 군주3.2. 성직 군주
4. 주요 작위5. 기타 작위6. 관련 문서7. 참고 자료

1. 개요


유럽 귀족 작위의 명칭은 대개 고대 로마에서 기원하여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왕조 때 정립된 것이다.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와 같이 중세 성기에 봉건제가 확립된 나라의 행정 문서를 보면 라틴어로 해당 작위명을 쓴 것을 볼 수 있다. 왕은 REX, 공작은 DUX, 백작은 COMES, 남작은 BARO 같은 식.

고대 말~중세 초기 서로마 제국이 한순간에 뿅 붕괴한 것 혹은 게르만족들이 로마의 영토를 침탈하기 위해 로마의 국경 안으로 들어와 영토를 뜯어먹은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대부분의 게르만족은 오랜 기간 교류해 온 로마 문명을 스스로 선망해서 로마의 시민권과 관직을 원했고 서로마 각지에서도 분리주의적 움직임이 나타나 양자가 결합하면서 해체된 것에 가까웠다. 실제 군사력이 사실상 없던 서로마 황제는 영토를 이미 점유한 게르만족들에게 사후승인 식으로 해당 지역에 대한 지방관직을 뿌렸다. 이때 관직의 칭호는 일정한 기준에 따른 것은 아니어서 전통적인 로마 관직인 프라이펙투스(Praefectus)에서부터 장군(Dux), 대관구장(Patrician), 행정관(Comes) 등 일정한 법칙 없이 주어졌다. 로마에서는 5세기경 이미 직위가 세습 가능한 재산의 일종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로마의 제도를 따라 한 게르만족의 봉건제에서도 저런 직위들이 세습 가능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8세기에 이르러 유럽 대륙 대부분의 게르만 세력은 카롤루스 대제에게 무력으로 통합되었지만, 기존의 강력한 게르만 대족장들의 지위를 완전히 박탈할 수는 없었기에 실질적으론 이들이 반독립적인 세력으로서 프랑크 왕국에 종속되는 것에 불과했다. 카롤루스 대제는 이러한 대족장들에게 'Herzog'라는 관직을 수여했는데, 이는 고대 게르만족에서 '부족을 전쟁터로 이끌고 나갈 지도자로 선출된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던 'Harjatugô'에서 유래한 것이었기에, 이것이 법률 언어인 라틴어로 번역될 때는 고대 로마의 'DUX'로 번역되는 것이 가장 적절했다. DUX라는 관직이 단순한 자칭 칭호로 여겨지기 쉬움에도 불구하고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군주 다음 격의 지위의 작위로 공식화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례에 따른 것이며, 한자문화권에서 DUX 계열의 작위는 보통 공작으로 번역된다.

한편, 프랑크 왕국은 행정관이라는 의미의 COMES라는 관료직을 만들어 소규모 유력자들에게 행정 구역을 할당했다. 이때 유력자들은 봉급을 화폐로 된 급여 대신에 은대지(BENEFICIUM)를 지급받았다. 이것은 특정한 토지의 조세권이 수여되는 것으로, 고려의 전시과나 조선의 과전법이랑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편하다. 원래 법적으로 은대지는 직위가 끝나면 왕이 회수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귀족 사회는 이 은대지의 세습을 끝없이 요구했고, 직위 역시 별문제가 없으면 세습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결국 은대지는 세습화되어 영지로 발전한다. 다만 카운티를 비롯한 후대의 영지는 은대지와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사법이나 행정 및 군사 업무 등의 관할권 가운데 일정 부분이 은대지로 지정된 것이나, 사유화와 가산화가 진행되면서 관할권 전체를 영지로 삼게 되었다.[1]

시간이 흐르면서 더 다양한 작위가 나타나고 복잡해지지만, 적어도 서로마제국 붕괴기~중세 전기 동안에 생긴 제일 핵심적인 작위 구조는 렉스(REX, 왕)-둑스(DUX, 공작)-코메스(COMES, 백작)[2] 셋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DUX나 COMES 등은 본래 관직에서 출발한 개념이었고, 특히 프랑크 왕국의 법률에는 한 사람이 복수의 관직(작위)을 겸임하거나 복수의 지역을 관할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나 프랑크 왕국이 분할되면서 이러한 원칙은 유명무실해지고, 크고 작은 유력자들 사이에서 서로의 관직과 영역을 쟁탈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펼쳐졌다. 본래부터 반독립적인 세력이었던 DUX는 자연스럽게 거대한 세력을 이뤘으며, 하위 행정관 개념이었던 COMES도 약소 세력들을 흡수하여 큰 세력으로 성장하기도 했다.[3] 명분상이나마 관료였던 유력자들은 이렇듯 영역제후로 변신하여 반독립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관할구역은 영지가 되었다.

그 외에도 10세기 이후 축성술의 발전으로 지방의 소규모 유력자들이 성을 쌓고 사병을 기른 다음 주변 성들을 점령해서 스스로 영주로 오른 경우도 나타났다. 이들은 프린스, 로드(Lords), 대백작 등 일관적이지 않은 칭호를 자칭하기도 했으나, 나중에 인근의 군주와 봉건 계약을 맺게 되면서 기존에 통용되어 온 보편적인 작위 칭호를 사용하게 된다.

영역제후령이 해체된 근세에도 왕국 중앙 귀족이나 관료들이 대부분 백작 작위인 것도 백작의 유래 자체가 왕이 임명한 행정관이라는 관념이 이어진 결과였다.[4] 덕분에 '백작이 공작보다 (권력으로 보나 권위로 보나) 하위의 작위'라는 흔한 인식과 달리, 지방 귀족의 세력이 약화한 근세에는 공작보다 백작이 더 정계에 많이 나타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카롤링거 프랑크 왕국의 위계는 장기적으로 전 유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각국이 저마다 다른 환경에 놓여있었기에, 상호 간에 작위체계가 완전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 전통을 가장 잘 계승한 프랑스와 독일 간에도 차이점이 여럿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중세 초 기독교 세계의 변경이었던 독일에서는 이민족 침입에 대응하고자 후작(변경백) 작위를 활발히 생성하는가 하면, 더 늦게 봉건제를 도입한 탓에 독립적 세력이 오래 존재하여서 중앙집권적 황제권력과 지방분권적 제후권력, 중간자적 교회권력 간 상호작용 속에서 선제후궁정백, Fürst, 주교후, 제국백, 제국기사 등 독특한 작위들이 탄생하였다. 프랑스의 경우 독립적인 영역제후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왕실 강화책으로 왕자나 친족을 새로이 신설한 여러 도팽(Dauphin)이나 공작(Duke) 등으로 서임하였다.

영국은 5세기부터 침략해 온 앵글로색슨족이 6세기에 칠왕국을 만들면서, 왕의 밑에 사실상 독립적인 백작(Earl)이 있고, 그 밑에 또 넉넉한 토지를 가진 자유민 전사 계급인 테인(Thegn)이 있는 앵글로색슨식의 계급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후 잉글랜드 왕국이교도 대군세앵글로-노르드 왕조 시대처럼 한 차례 노르드인의 영향을 받았다가, 정복왕 윌리엄노르만 정복으로 체제를 재구성하면서 다양한 전통이 혼합되었다. 특히 윌리엄이 잉글랜드의 대부분을 직간접적인 영지로 가졌던 해럴드 2세를 격파하고 노르만 왕조를 세운 뒤에, 대륙의 남작(Baron) 제도를 도입하여 공을 세운 기사들을 남작으로 분봉하였다. 하지만 영국의 남작은 대륙의 남작과는 다르게 20명 이상의 기사를 동원할 수 있을 만큼 큰 영지를 보유했으며,[5] 오직 간접적으로만 백작과 같은 상위 귀족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백작도 영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남작을 분봉하면서, 영국에는 국왕 직속의 남작과 백작 예하의 남작이 혼재하게 됐다. 또한 원래 영국 본토에는 공작(Duke)이라는 작위가 없었으나, 영국 왕이 겸하던 노르망디 공국을 전쟁에 져서 빼앗겨 버린 뒤에, 왕자를 영국 땅에 공작으로 분봉하기 시작하여 공작 작위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웨일스와의 국경 지대의 백작을 후작(Marquess)으로 격을 올리거나, 백작과 남작 사이에 자작(Viscount)을 만들기도 했다.

동유럽 슬라브인의 경우, 역시 봉건제 도입에서 독일의 영향을 받았지만, 공작(Herzog)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고 전통적인 Князь(Prince; Fürst)가 그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2. 번역 문제

유럽의 작위를 번역하는 것에는 이미 많은 견해의 차이가 존재하는 관계로, 본 문서는 특정 역어를 내세우기보다는 일반 언중에서 자주 쓰이는 번역어를 채택하되 혼동을 막고자 원어(주로 라틴어)를 병기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등작식 역어는 일본에서 탄생하였다. 메이지 유신 시대 일본이 유럽식 작위제를 도입하면서, 동아시아 오등작에 맞추어 번역하였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작위들을 동일하게 번역하는 바람에 유럽 작위의 서열 문제를 오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이것은 그 당시부터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귀족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정치를 할 수 있었고 귀족들의 작위가 서열화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여러 유럽 국가에서도 이런 번역을 차용해, 독일의 Burggraf 라는 작위는 Viscount로 쓰지 않고 Burgrave로 옮기지만, 유래가 같은 네덜란드벨기에의 Burggraaf는 자국에서도 아예 자작(Viscount)로 번역하고 서유럽권에서도 Viscount로 옮긴다.

굳이 일본의 시도 자체를 비판할 것까지는 없지만, 저렇게 대충 번역한 것에 맞추어 중·근세의 사회상을 이해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가 된다. 동양의 작위는 친족에게 세습되며 체계화되었고 동양 전역에 걸쳐 공용으로 사용하였지만, 서양의 작위는 철저한 능력주의에 따라 새로이 만들어져 주어지거나 찬탈, 참칭되어 계속 변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오등작으로 구분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고 국가마다 달랐다. 따라서 체계적인 동양과 가변적인 서양의 작위는 일대일 대응할 수 없었지만 이를 단순화하여 번역한 것이 일본의 오등작이다.

일단 상기했듯 유럽 작위 체계는 그 골자를 최초 관료제 시절에 비추어 왕(REX)-공작(DUX)-백작(COMES)의 3단계 혹은 일반적인 귀족과는 어느 정도 구별되는 지위인 군주를 제외하고 자유영주의 작위 체계 편입을 염두에 두어 공작(DUX)-백작(COMES)-남작(BARO) 3단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6] 일본식 번역에서 후작으로 번역하는 Markgraf는 백작의 파생 작위이며, 자작으로 번역되는 Viscount도 백작의 보좌역으로 파생 작위에 해당한다.

또한, 백작은 그 근본이 군주의 행정관이고 후대 작위 수여에서도 충실히 반영되지만, 공작은 군사령관에서 출발하였어도 점차 지방 세력으로서 성격이 강해지면서, 후대에는 (명목상으로는 공작이 상위인데도) 백작이 (각종 궁중직 등 중앙 관직을 역임하면서) 실질적 권력을 더 크게 가지는 일도 흔했다. 이 역시 중세 유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저 오등작 체계로만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비칠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유럽 내에서도 어원은 같은데 사회·문화적 차이로 지위가 달라진 작위가 있기에 번역 문제가 커진다. 대표적 사례는 로마의 프린켑스(PRINCEPS)에서 유래한 Prince인데, 이 작위는 영어·프랑스어권과 독일어권에서 그 지위가 상이하다. 영어·프랑스어권에서는 왕국(Kingdom)에서 군주의 친족(특히 후계자)에게 주는 칭호로 자주 쓰였기에 흔히 왕자라고 번역되나, 동시에 '(태생·혈통이) 고귀한 자'라는 원관념에 충실한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부족제적 관념이 이어진 독일어권에서는 각지의 영주들이 저 '고귀한 자'라는 칭호를 쓰기에 충분한 자로 간주되어 황제에게 서임된 영역제후, 즉 백작과 변경백도 프린스(Fürst, 퓌르스트)를 자칭했다. 결과적으로 영어·프랑스어권에서는 프린스가 '왕자'나 '대군(大君)'으로서 왕에 버금가는 우월한 작위가 되었으나, 독일어권에서는 공작(Herzog)보다 낮은 격인 칭호가 되었다. 덕분에 현대에도 모나코안도라, 리히텐슈타인의 군주가 졸지에 왕자로 번역되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여간 프린스를 독립 국가의 군주로 칭할 때는 흔히 대공이라고 번역하나, 이 역시 공작으로 번역되는 Duke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7] 오스트리아같이 'Erzherzog(Archduke)'를 칭한 것[8] 역시 대공이라고 번역되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오해의 여지가 크고, 심지어 Grand Duke[9] 및 High Duke 등을 포함하면 더 복잡해진다.

과거에는 이러한 작위가 유럽 군주들의 의전서열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었기에 정치·외교적으로도 아주 민감한 문제였으나, 현대로 올수록 작위가 실제 정치·사회적 우열성에 끼치는 영향이 무의미해졌으므로, 작위의 종류와 연원을 세세히 따지는 것 자체가 한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국제법주권국 간에는 서로 대등하므로 실제 정치·외교에서는 별 영향력이 없으며, 사학에서도 개별 사건을 분석할 때 분쟁의 명분 등에서 원인이 되는 경우라면 나름 의미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봉건제장원제, 공화주의 등 다른 정치·제도나 사회·경제 차원의 거시적인 구조 문제보다는 한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편 작위에 대한 이해는 동아시아에서도 역사적 맥락에 따라서 시시때때로, 나라별로 다르고 바뀌었다는 점도 일원적인 번역을 어렵게 만든다.

이를테면 춘추시대 이전에는 중원의 패권을 장악한 주나라의 군주만 왕을 자칭했고, 주나라의 종법 질서에 따르는 주변부의 수많은 도시국가의 군주들은 제후를 자처해, 제후가 오히려 더 보편적인 군주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전국시대에 모든 제후가 을 자칭하면서 기존에 제후의 칭호였던 후작은 제후(군주)의 신하에게 수여되는 명예 작위로 격이 낮아졌고, 고조선에 관해서도 "조선후가 왕을 칭하였다"라는 기록을 남길 정도가 되었다. 진나라가 통일 이후 황제 칭호를 만들고, 한나라 때부터 황족들을 왕작으로 책봉하는 관례가 정착되면서, 왕조차도 신하에게 수여하는 작위 칭호로 또 격하되었다.

이러한 작위 인플레이션으로 격이 떨어지는 일이 빈번했기에, 봉건시대 국가들은 자기 칭호를 실제 위신에 맞추려고 노력했는데, 가깝게는 구한말 조선대군주라는 칭호를 자칭한 사례가 있다. 당시 서구에서도 이미 동아시아에서는 왕이 황제에게 책봉된 제후 작위의 개념으로 쓰인다는 점이 널리 알려졌기에, 서구 세력과의 교류에서 조선의 자주성을 강조하고자 새로운 칭호를 만들 필요가 있던 것이다. 서양에서 서술한 동아시아사를 봐도, 독립국 군주는 Emperor로 옮기고 King은 황제국의 속국이라는 점을 강조해서 설명한다. 일본의 덴노를 일반적으로 Emperor라고 번역하는 것도 그 영향. 베트남도 외왕내제를 철저히 실행했기 때문에 대월응우옌 왕조에 대해서도 군주를 Emperor라고 번역해 준다.

3. 군주

3.1. 세속 군주

3.2. 성직 군주

4. 주요 작위

사실 유럽에는 동양의 '제후'와 동일한 신분 개념은 없었다. 하지만 군주와 그에 예속되는 영주가 구별되는 것은 동양과 동일했고, 귀족 계층 내에서도 정규 작위가 있는 Major nobility와 비정규 작위를 보유하거나 단순한 지주인 Minor nobility의 구분도 있다. 따라서 보통 봉토와 정규 작위가 있는 계층을 영역제후로 인식하며, 그 작위 칭호는 오등작에 상응하여 번역되고 있다.

라틴어를 기준으로 하여, 독일어-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러시아어 순으로 각각의 칭호를 표로 정리하였다. 언어 칸에 연한 초록색으로 칠해진 것은 해당 언어를 사용한 나라에서 실제 사용된 작위가 아니라 번역어임을 의미한다. 여성형 및 영지를 가리키는 파생어는 통용되는 표현만 기재했다.

4.1. 선제후

<colbgcolor=white,#505050> 언어 남성형 여성형 영지
라틴어 Princeps Elector Electoratus
독일어 Kurfürst Kurfürstin Kurfürstentum
영어 Prince-elector Prince-electress Electorate
프랑스어 Prince-électeur Princesse-électrice Électorat
이탈리아어 Principe Elettore Principessa Electrice Elettorato
스페인어 Príncipe Elector Princesa Electora Electorado
러시아어 [ruby(Курфюст, ruby=Kurfyust)] [ruby(Курфюстина, ruby=Kurfyustina)] [ruby(Курфюршество, ruby=Kurfürshestvo)]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황제를 뽑는 권한을 가진 제후들. 1356년 황제 카를 4세가 금인칙서에서 모든 제후 중 가장 우월한 지위로 공표했다. 이후 선제후를 겸하는 작위의 소유 가문 변동 같은 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때때로 선제후를 겸하는 작위가 바뀌기도 하였으나, 선제후 제도 자체는 제국이 해산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금인칙서에 따라 선제후로 지정된 작위들의 격은 (보헤미아), 공작(작센 등), 궁정백(라인팔츠), 변경백(브란덴부르크), 대주교후(성직 제후) 등 다양했으나, 황제를 선출하는 특권 자체가 독보적이었기에 선제후라는 칭호를 더 내세웠다.[10]

나폴레옹 전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이 해산되는 과정에서 성직 선제후는 폐지되었다.[11] 세속 선제후인 보헤미아 왕은 오스트리아 황제로 통합되었으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프로이센 국왕을 내세우게 되었지만, 그 외는 나폴레옹에 의해 왕(König)이나 대공(Grossherzog)으로 지위가 바뀌었다. 빈 체제 이후에도 헤센-카셀 선제후 만이 선제후 칭호를 유지하여 헤센 선제후국으로 남았으나 1866년에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어 사라졌다.[12]

4.2. 세속 제후

4.2.1. 프린켑스(PRINCEPS)

<colbgcolor=white,#505050> 언어 왕족 칭호로써 제후 칭호로써
남성형 여성형 남성형 여성형 영지
라틴어 Princeps Principissa (좌측과 동일) Principatus
독일어 Prinz Prinzessin Fürst Fürstin Fürstentum
영어 (Royal) Prince (Royal) Princess (Sovereign) Prince (Sovereign) Princecess Principality
프랑스어 Prince (Royal) Princesse (Royale) Prince (Souverain) Princesse (Souverain) Principauté
이탈리아어 Principe (Reale) Principessa (Reale) Principe (Sovrano) Principessa (Sovrano) Principato
스페인어 Príncipe (Real) Princesa (Real) Príncipe (Soberano) Princesa (Soberano) Principado
러시아어 [ruby(Царевич, ruby=Tsarevich)] [ruby(Царевна, ruby=Tsarevna)] [ruby(Князь, ruby=Knyaz)] [ruby(Княгиня, ruby=Knyaginya)] [ruby(Княжество, ruby=Knqzhestvo)]
우리말에서는 주로 남성은 왕자, 여성은 공주왕녀 정도로 옮기는 경우가 많으나, 하술하듯 실제로는 구체적인 의미를 가려서 군주, 제후, 공(또는 후) 등 적절한 역어로 구별하여 번역해야 한다.

라틴어 PRINCEPS는 고대 로마 시절 원로원의 명예직에서 기원하여 원수정 시기 황제의 칭호로 사용된 것으로, 으뜸인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로마 제국은 공식적으로 공화정 체제였기에 국가원수인 황제는 군주 신분이 아니었으며, 제국 내부에서는 PRINCEPS보다는 점차 IMPERATOR가 황제의 대표 칭호로 여겨지게 되었지만, 대외적으로 PRINCEPS 칭호가 로마의 군주처럼 인식되었기에 주변 이민족 지도자들도 이를 모방하여 PRINCEPS를 자칭했다. 게르만어 Fürst는 First와 어원을 공유하며, 태생이나 혈통이 고귀한 자 또는 으뜸인 자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자연히 봉건제 이전 부족제 시절에는 혈통적 우월성이 짙은 족장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그러한 점에서 중세의 법률 언어인 라틴어로 번역될 때는 대개 PRINCEPS로 옮겨졌다.

PRINCEPS는 독립국 군주가 쓸만한 칭호였으나, 서유럽에선 시간이 흐르면서 격이 떨어지고 왕실·가문 작위로 변용되어 군주·고위 제후의 후계자나 일족을 지칭하는 칭호가 되었고, 결국 독일어권과 영어-프랑스어권의 사회문화적 차이로 그 관념이 달라져서, 독일어를 기준으로 Fürst와 Prinz로 분화하게 되었다. 비교사적으로는 중국왕작[13]이나 조선군(君)과 매우 유사하다.

이와 같이 개념이 분화된 것은 단어의 원관념, 즉 '고귀한 자'라는 관념과 큰 관련이 있다. 프린스는 그 권위가 혈통에서 비롯하였으며, 그 자체로 독립적인 세력의 수장이 사용하기에 충분한 칭호로 여겼던 것이다. 이 점은 그러한 의미가 분화되고 강화되면서 탄생한 Prince(Prinz)가 특히 군주의 일족에 대하여 쓰였다는 점, 그것도 Emperor(Kaiser)나 King, Grand Duke, Grand Prince 등을 막론하였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프랑스고대 로마부터 공적 지배체제를 경험하고서 봉건제로 이행하였으며, 영국도 비록 초기 앵글로색슨이주 시기로만 브리튼의 전통이 상당수 파괴되었기는 해도 프랑스와의 지리적 인접성에 따른 지속적 교류로 기독교와 로마의 유산을 앞선 시기에 재도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아무리 세력이 큰 제후라도 왕이 권위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였으며, 이미 자리 잡은 관료제적 지위(Duke, Count 등)를 가산화하여 봉건귀족이 되는 방식을 취하였기에 굳이 부족제 전통인 프린스 칭호를 자칭하려 하지 않았다.[14] 서유럽에서 Principatus(Principality)를 소유하는 Prince(Fürst) 작위들은 외부에서 유입된 것으로, 예컨대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잉글랜드 왕국 외부에서 웨일스인 스스로 건국한 웨일스 공령을 정복하면서 편입한 것이다.

한편으로 중세 시절부터 서유럽의 왕족들은 관직이나 작위 등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여러 가지 수식어들로 구성된 본인의 장황한 호칭을 사용할 때 '고귀한 자'의 개념으로 Prince라는 수식어를 사용해 왔는데, 이는 왕족 신분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근세에 들어서 수식어 사용이 자제되고 공식화된 칭호와 경칭만을 표기하는 경향이 대세가 되자, 서유럽의 왕실에선 왕족 전용의 공식 칭호를 도입하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Prince가 도입되기도 했다. 이런 칭호들은 영지와 수반되는 작위와는 별개로 주어진 칭호였으나, Principatus(Principality)를 소유하는 Prince 작위 또한 17세기쯤에 왕족이나 그에 준하는 신분의 전유물이 되었기에, 결과적으로 Prince는 왕족이 전용하는 칭호라는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어 관료제적 작위보다는 우월한 지위로 인식되었다.

반면 독일 지역에선 프랑크 왕국 시대 이후에도 부족제가 유지되었다.[15] 부족 공국들을 위시한 유력자 집단은 '고귀한 자'로써 Prince(Fürst)를 칭해왔고, 그에 따라 독일에 난립한 (반)독립적 군소세력들은 오랜 기간 Fürst(퓌르스트)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신성 로마 제국에서 퓌르스트는 부족제 시절 유력자의 후예로서 선제후(Kurfürst) 탄생 전까지는 제위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선제후가 형성된 뒤에도 황제 직속 제후라면 다들 사용할 수 있는 그럭저럭 지체 높은 칭호로 여겨졌다. 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에서 선제후가 황제(독일왕) 다음의 최고위 격으로 설정되고 Herzog(공작)를 선제후에 다음가는 격으로 명확하게 규정하면서, 선제후나 Herzog는 점차 Fürst를 자칭하려 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Fürst는 Herzog보다 낮은 황제 직속 제후를 통칭할 때 사용된다. 또한 점차 선제후나 Herzog가 휘하 봉신을 Graf(백작)로 서임하는 사례가 흔해지면서, 황제의 직속 제후인 Markgraf(변경백)·Landgraf(방백)·Graf(백작) 등은 점차 Fürst 신분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16]

16세기 무렵부터 Herzog보다 낮은 작위의 영지들을 Fürstentum(후국)으로 통합하는 것을 황제에게 승인받아, Fürst를 공식 칭호로 내세우는 제후들이 등장했다.[17] 즉, Fürst는 앞서 살펴본 제후(諸侯)를 지칭하는 통칭 개념이 아니라 고유 작위로서 쓰이는 경우에도 Herzog보다는 격이 낮았다. 특히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영방 제후에게 주권이 공인되자 Herzog보다 낮은 제후들은 본격적으로 자신이 보유한 영지들을 Fürstentum으로 통합했다.[18]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된 뒤 라인 동맹에서 Graf 계통의 칭호를 유지하고 있던 제후들은 모두 Fürst로 단일화되었다.[19] PRINCEPS 계열의 칭호가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군주에 준하는 칭호로, DUX와 동격이거나 그보단 약간 높은 정도의 서열로 취급되는 데 반해, 독일 지역에서 Fürst가 DUX(Herzog)의 아래 서열로 규정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 따른 것이다.[20]

또한 19세기 초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될 무렵부터는 유력 선제후들이 자국 내 일반 귀족 작위에도 Herzog와 Graf 사이에 Fürst 계급을 도입했는데, 나폴레옹 전쟁 때 활약한 블뤼허메테르니히 등이 귀족 작위인 Fürst로 서임된 대표적인 사례다. 독일 연방 이후에는 슈탄데스헤어 중에도 Graf에서 Fürst로 승격되는 가문이 생기기도 했다.

따라서 독일어권의 Fürst는 맥락에 따라 제후나 후작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21] 영어-프랑스어권에서도 엄밀한 구분이 필요하다면, 영역제후로서의 Fürst는 "Sovereign Prince"라고 부연한다. 반대로 독일어에서는 군주나 영역제후 Prince는 Fürst로 옮기고, 같은 단어에서 파생된 Prinz는 군주나 고위 제후의 후계자 혹은 귀족 가문원의 칭호를 가리킨다.

한편 동유럽에서는 프랑크 왕국에서 기원한 Herzog(Dux)를 칭하는 사례가 없었기에, 자연히 PRINCEPS와 같은 격인 Voivode 또는 Князь가 영역제후의 최고 서열 칭호로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같은 Principality(Fürstentum)라도 독일 내 작은 영방국가와 동유럽의 Voivode나 Князь가 다스리던 거대한 나라는 그 규모부터 다르기도 하다. 따라서 Voivode와 Князь는 다른 유럽 언어로 Prince(Fürst)로 번역되지만, '공작'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처럼 PRINCEPS는 번역이 대공(大公)·공(公) 또는 후(侯) 등 어느 하나로 정해지지 못하여, 여러 가지가 난립하는 어려움이 있다. 작위 서열을 자세히 따지지 않아도 '왕자'라는 의미인지 '군주'라는 의미인지 헛갈려 오역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4.2.2. 둑스(DUX)

<colbgcolor=white,#505050> 언어 남성형 여성형 영지
라틴어 Dux Ducissa Ducatus
독일어 Herzog Herzogin Herzogtum
영어 Duke Duchess Duchy
프랑스어 Duc Duchesse Duché
이탈리아어 Duca Duchessa Ducato
스페인어 Duque Duquesa Ducado
러시아어 [ruby(Герцог, ruby=Gertsog)] [ruby(Герцогиня, ruby=Gertsoginya)] [ruby(Герцогство, ruby=Gercogstvo)]
공작 작위 개념의 기원이자 로망스어군에서 이를 가리키는 낱말들의 어원이 된 'DUX'는 원래 로마군에서 국경 방어군인 리미타네이(Limitanei)의 사령관으로서 둘 이상의 군단장(Legatus)를 통솔하는 직책이었다. 이것이 서로마 제국의 장기적인 해체 동안 차츰 동맹군이나 용병군인 포에데라티(Foederati)의 수장들에게도 부여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들 수장은 대부족을 이끄는 대족장이나 부족연맹체를 거느린 왕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DUX'라는 말에 꽤 큰 세력을 거느린 (반)독립적 군주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서로마 제국 해체 전후로 로마 제국에서는 이미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여 자체적으로는 왕(REX)으로 행세하고 있던 주요 이민족 수장들에게 Dux, Consul, Magister militum 같은 관직을 수여해 그들을 포섭하기도 했다.

프랑크 왕국 시절에는 상기하였듯 카롤루스 대제가 게르만 대족장에게 수여한 관직인 'Herzog'가 라틴어로 번역될 때는 고대 로마의 'DUX'로 번역되는 것이 가장 적절했으므로, 이 사례에 따라 서유럽과 중부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군주에 준하는 최고위 작위가 되었다. 특히 후일 신성 로마 제국선제후가 제정된 이후에 선제후의 다음가는 작위의 격으로 Herzog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이렇듯 중세 초기에는 독립성이 강한 제후였으나, 중세 사회가 안정화 되어감에 따라 군주의 권한이 점점 확대되면서 광활한 영역을 다스리던 기존의 공작 작위는 혁파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제후들을 견제하려는 군주의 필요로 말미암아 이전보다 훨씬 작아진 영역과 권한만을 지닌 신규 공작 작위가 신설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경우 왕족의 방계 가문이 가질 영지를 만들기 위해 여러 백작령을 묶어 공작령을 만들었고,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 공위가 된 부족 공국을 적당히 약화하기 위해 옛 부족 공국을 분할해 더 작은 규모의 공작 작위를 신설하기도 했다.[26]

러시아에선 독일어 Herzog의 번역어인 'Герцог'를 다른 유럽의 DUX 계열 작위를 번역하는 데 사용했다. 특히 러시아 제국에서 Герцог를 서임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모두 외국인이 받은 명예상의 칭호에 불과했으며, 국내의 작위로 사용된 적은 없다. 슬라브권에선 보통 Князь(PRINCEPS)가 '공작'으로 번역된다.

4.2.3. 마크그라프(Markgraf)

<colbgcolor=white,#505050> 언어 작위 칭호 독일권 Markgraf의 번역
남성형 여성형 영지 남성형 여성형 영지
라틴어 Marchio Marchionissa Marchionatus (좌측과 동일)
독일어 Markgraf Markgräfin Markgrafschaft
영어 Marquess Marchioness Marquisate Margrave Margravine Margraviate
프랑스어 Marquis Marquise Marquisat Margrave Margravine Margraviat
이탈리아어 Marchese Marchesa Marchesato Margravio Margraviato Margraviato
스페인어 Marqués Marquesa Marquesado Margrave Margravina Margraviato
러시아어 [ruby(Маркиз, ruby=Markiz)] [ruby(Маркиза, ruby=Markiza)] [ruby(Маркизат, ruby=Markizat)] [ruby(Маркграф, ruby=Markgraf)] [ruby(маркграфин, ruby=Markgrafin)] [ruby(Маркграфство, ruby=Markgrafstvo)]
프랑크 왕국에서 서임된 백작(COMES; Graf)의 일종으로, 국경 일대에 설치된 변경주(Mark)를 담당하여 자체적인 군사력을 갖추고 외세로부터 제국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변경주는 다른 영지에 비해 폭넓은 군사권과 사법권이 인정되었으며, 국경 밖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이를 가신들에게 분봉할 수도 있었기에, 중세 초기에는 상당한 세력을 떨치던 영역제후였으며 자연히 백작 계층 내에서도 그 서열이 높았다.

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에선 주변 나라들이 카톨릭화되고 영역제후들이 여러 영지를 보유하는 사례가 흔해지면서 변경주의 가치가 퇴색되고, 유력한 Markgraf들은 선제후나 공작(Herzog)으로 승격했기에, 남아있는 Markgraf는 백작(Graf)과 특별히 격이 다른 지위라 하긴 어려워졌다. 반면에 서유럽에서는 본래 Markgraf에 해당하는 작위가 백작보다 높은 별도의 작위 계층으로 정착했기에, 오히려 신성 로마 제국 등 중유럽의 Markgraf에 한정해 Margrave 등 별개 어휘를 사용해 구분할 정도가 된다. 한편 러시아에선 서유럽 Marchio 작위의 번역어로 'Маркиз'를 사용했는데, 러시아 제국에서 Маркиз를 서임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모두 외국인이 받은 명예상의 칭호에 불과했으며, 국내의 작위로 사용된 적은 없다.

일본이 근대화 때 당시 서유럽 작위 체계를 오등작에 맞추어 Marquess를 후작에 대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일반적으로는 후작으로 번역한다. 신성 로마 제국의 Markgraf에 대해서는 그 어원을 살린 대체 번역으로 변경백이라는 단어가 쓰인다.

4.2.4. 코메스(COMES)

<colbgcolor=white,#505050> 언어 남성형 여성형 영지
라틴어 Comes Comitissa Comitatus
독일어 Graf Gräfin Grafschaft
영어 Earl[27] Countess Earldom[28]
Count[29] County
프랑스어 Comte Comtesse Comté
이탈리아어 Conte Contessa Contea
스페인어 Conde Condesa Condado
러시아어 [ruby(Граф, ruby=Graf)] [ruby(Графиня, ruby=Grafinya)] [ruby(Графство, ruby=Grafstvo)]
라틴어 COMES는 원래 "측근", "가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30] 로마 제정 성립 후 그러한 총신들을 각종 관직에 임명하게 되면서 행정관을 가리키는 말로 변모하였다. 고대 말까지 Comes들은 자잘하게 나뉜 행정단위 하나하나에 임명되어 행정관 역할을 하거나 중앙에서 관료 역할을 했다. 중세에도 사실상 영지를 보유하는 작위 중 제일 핵심적인 지위이며, 이 작위보다 세력이나 권위에 얼만큼 차이가 있는지에 따라 여러 파생 작위가 발생했다.

근세 유럽에서 DUX(공작)과 BARO(남작) 사이의 계급으로 정착되었기에 일반적으로 '백작'으로 번역되고는 있지만, 고대 로마 시절에는 오히려 Comes가 Dux보다 더 높은 지위였다. Dux가 지방군 국경부대인 리미타네이(Limitanei)나 동맹군 용병부대인 포에데라티(Foederati)의 지휘관이었다면, Comes는 중앙군 기동부대인 코미타텐세스(Comitatenses)의 지휘관이나 광역 군관구 방어사령관, 근위대 대장, 중앙정부의 경비대장, 황금조달관, 군마조달관, 궁내부장 등 다양한 직책에 사용된 직함이었다.[31] 중세 프랑크 왕국 시절에 Dux(Herzog)와 Comes(Graf) 간의 권위가 역전되긴 있었지만, 당시까지도 Comes가 Dux의 하위 봉신 개념인 것은 전혀 아니었다. 프랑크 왕국이 붕괴한 뒤에 일부 Comes는 본연의 관할 구역이었던 Pagus(Gau) 단위를 뛰어넘어 어지간한 Dux에 못지 않은 대세력을 이루기도 했으며, 중세 성기 무렵에 자생적으로 등장하여 Comes를 자칭하던 유력자(성주)는 프랑크 왕국 시절의 Pagus보다 작은 세력을 가진 경우가 흔했다. 즉, 지금은 일반적으로 '백작'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되고는 있지만, 시·공간에 따라서 그 지위와 역할은 천차만별이었으며, 명목상(de jure)의 서열 관계와 사실상(de facto)의 세력 우열은 항상 동일하지 않음을 항상 유의해야 한다.

영국에서는 웨식스 왕국이 잉글랜드를 통합할 즈음에 노르드인의 영향으로 야를(Jarl)에서 파생한 Earl을 사용하였으나, 정복과 함께 대륙식 봉건제를 도입한 노르만 왕조 기준으로는 그 역할이나 지위가 대체로 대륙의 Count와 유사해졌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Earl이 영국 고유의 백작 칭호로 쓰인다. 영어 Count는 외국의 백작급 작위를 번역할 때 사용되지만, Earl은 여성형이 없는 관계로 여백작이나 백작 부인은 Countess로 표기한다.

4.2.5. 카스텔라누스(Castellanus)

<colbgcolor=white,#505050> 언어 직책으로써
성주(城主)
작위 칭호
남성형 여성형 영지
라틴어 Castellanus Burgravius[33] Prefectura
Praefectus[34] Praefectissa
독일어 Kastellan Burggraf Burggräfin Burggrafschaft
영어 Castellan Burgrave Burgravine Burgraviate
프랑스어 Châtelain Burgrave Burgravine Burgraviat
이탈리아어 Castellano Burgravio Burgraviato Burgraviato
스페인어 Castellano Burgrave Burgravina Burgraviato
러시아어 [ruby(Кастелян, ruby=Kastelyan)] [ruby(Бургграф, ruby=Burggraf)] [ruby(Бургравин, ruby=Burgravin)] [ruby(Бургграфство, ruby=Burggrafstvo)]
본래는 성벽을 두른 도시 또는 요새에 파견된 관리였다. 특히 전통적으로 유럽의 도시는 고대 로마 제국 말기에 주교구와 연계되었던 영향으로 주교가 도시 영주인 경우가 많았다.[35] 따라서 성주는 보통 인근 주교나 세속영주의 봉신이었다.[36] 9세기 무렵에 축성 기술이 발전하면서 방어력이 향상되자 일부 성주는 성관(castle)을 거점으로 삼아 본래의 주군인 영주를 무시하면서 독자 세력을 키우기도 했고, 토착 유력자가 스스로 축성하여 영주를 자처하기도 했다. 10~12세기에 이런 현상이 만연해져 영주 행세하는 자생적인 유력자들의 할거로 일부에선 기존의 영역제후령(Principatus; Principaute; Principality)이 해체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역사학에선 이러한 현상을 "Castellany"라고 부른다.[37]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통치 질서가 확보되어 상대적으로 중앙집권이 먼저 진행되고 있던 서유럽 지역에선 11~12세기 당시부터 국왕의 봉신으로 편입되거나 국왕 직속의 지방관이 되는 신분 전환이 신속하게 이뤄졌다.[38] 반면에 독일어권이나 폴란드 왕국·헝가리 왕국 등 중부 유럽에선 오랜 기간 토착 세력으로 자리 잡아, 13세기 이후까지 할거하기도 했다. 결국 통치 질서가 확립되어 인근의 군주나 유력 제후에게 종속되었을 때 어느 정도 세력이 있는 성주층은 그라프(Graf) 계층으로 편입되었는데, 성(Burg)과 그 주변 일대만 장악하고 있어 일반적인 그라프의 세력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영세한 경우에는 'Burggraf'라는 칭호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39] 때문에 Burggraf는 그라프 계층 안에선 하급 서열로 취급되었지만, 자기 영지 안에서는 다른 그라프들과 동등한 권한을 행사했다. 따라서 신성 로마 제국의 Markgraf처럼 다른 유럽언어로 번역될 때는 Burgrave 등으로 번역되고, 한자문화권에서는 그 어원을 살려 성백(城伯) 등으로 번역된다.

4.2.6. 바이콩테(Vicomte)

<colbgcolor=white,#505050> 언어 남성형 여성형 영지
라틴어 Vicecomes Vicecomitissa Viscomitatus
영어 Viscount Viscountess Viscounty
프랑스어 Vicomte Vicomtesse Vicomté
이탈리아어 Visconte Viscontessa Viscontea
스페인어 Vizconde Vizcondesa Vizcondado
독일어 Vizegraf Vizegräfin Vizegrafschaft
러시아어 [ruby(Виконт, ruby=Vikont)] [ruby(Виконтесса, ruby=Vikontessa)] [ruby(Виконтство, ruby=Vikontstvo)]
중세까지는 일반적으로 영지를 받은 제후가 아니었다. 바이카운트는 카운트의 보조자 중 하나로, 백작을 보좌하거나 백작의 부재 시 대리 업무를 본 직위다. 어원도 "vis"(vice) + "count" 꼴로 조어한 것이다. 즉, 현대적 표현으로 쓴다면 "Vice Count", 번역하면 "부백작(副伯爵)"이 된다. 그래서 봉건제에서 관료제로 전환되던 근대에 작위 체계가 재편되기 전까지, 바이카운트는 상설된 관직이 아니었고, 따라서 바이카운티(자작령) 같은 영지도 원칙적으론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봉건제의 특성상 무수히 많은 개별 사례가 있기에 드물게나마 특이한 사례는 있었는데, 일례로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9세기부터 자작령이 등장했다. 당시에는 바르셀로나 백작이 기존의 에스파냐 변경주를 차지하면서, 그 광활한 영지를 여러 부백작(자작)들이 나눠 관리하게 되었기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처럼 이른 시기부터 부백작이 영역제후처럼 보이는 경우는 이처럼 그 주군이 백작이고 그 세력이 비정상적으로 강대하여 여러 부백작을 임명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발생했다.

부백작은 프랑크 왕국의 분해로 혼란스러운 시절 상급자인 백작이 약화하였을 때를 노려 백작위를 탈취하거나, 10~12세기 무렵에 각지에서 성주들이 할거하는 흐름에 따라 성을 차지한 부백작이 그 주군인 백작에게 독립하여 국왕과 봉건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영역제후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리옹 자작령은 부백작이 리옹 백작령을 탈취한 사례이며, 베안 자작령은 성주처럼 독립한 사례에 해당된다.

서유럽에 '바이카운트'가 군주가 수여하는 공식적인 작위로 도입된 때는 중앙집권이 가속화 되는 중세 말기~근세로, 영국처럼 다른 남작들과는 구분할 필요성이 있지만 정식으로 백작까지 하사하기는 애매하여 바이카운트를 임시 작위로 수여하다 보니 그것이 공식 작위로 굳어져 버린 경우가 많다. 스페인에선 17세기에 백작 이상의 작위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자작 작위를 매입해야 한다는 자격요건을 제정하여 왕실의 재정을 충당하기도 했는데, 이를 강매'선자작령'으로 부른다.

독일 지역에서는 Graf의 보좌직 자체는 많았으나, 그것이 제후의 작위로써 여겨진 바가 없기 때문에 완전히 대응하는 작위는 따로 없으며, 독일어 Vizegraf는 다른 나라의 바이카운트를 번역할 때만 사용된다.[40] 신성 로마 제국 안에서는 그라프 가운데 최하위 서열로 여겨지던 Burggraf(성백)와 동격으로 취급되었다. 러시아에선 프랑스어 Vicomte 작위의 번역어로 'Виконт'를 사용했다. 러시아 제국에서 Виконт를 서임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모두 외국인이 받은 명예상의 칭호에 불과했으며, 국내의 작위로 사용된 적은 없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공식 자작 작위가 없던 시절에는 외국의 바이카운트 작위는 보통 남작과 백작 사이의 지위로 취급했다.

일반적으로는 오등작을 빌어와서 번역하던 일제의 영향으로 자작으로 옮긴다.

4.2.7. 바로(BARO)

<colbgcolor=white,#505050> 언어 남성형 여성형 영지
라틴어 Baro Baronissa Baronatus
독일어 Freiherr[41] Freifrau[42] Freiherrschaft
Baron[43] Baronin Baronie
영어 Baron[44] Baroness Barony
프랑스어 Baron Baronne Baronnie
이탈리아어 Barone Baronessa Baronia
스페인어 Barón Baronesa Baronía
러시아어 [ruby(Барон, ruby=Baron)] [ruby(Баронесса, ruby=Baronessa)] [ruby(Баронский, ruby=Baronskiy)]
Baron 계열은 프랑크 왕국 및 그 영향을 받은 나라들, 즉 프랑스와 노르만 정복 후 잉글랜드, 근대 프랑스로부터 이를 도입한 러시아 등지에서 주로 사용되었고, Freiherr는 상대적으로 독자 어휘를 많이 보존한 독일어권에서 사용되었다. Baron과 동치된 Freiherr는 'Frei'(자유) + 'herr'(영주) 꼴로 조어되어, 역시 의미상 자유인이자 유력자였음을 나타낸다.

자유인, 전사, 영주 정도의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특별히 군주에게서 지위나 행정구역을 받은 건 아니고, 장원을 소유해서 경제적 여유 좀 있는 자유민들이 중무장하여 전사로서 봉사한 것에서 비롯하였다. 즉, 군주에게 봉토를 하사받은 '영역제후'가 아니라 게르만족의 종사제 속에서 자연 발생한 지역 유력자, 호족의 성격을 가진 영주가 유래이다. 이것이 후대에 명예 지위화 되어 작위가 되었다.

어원에서 보다시피 자유민, 전사 등의 의미가 있다 보니, 소규모 호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서 '(군주의 직속) 봉신'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여, 남작 외에도 공작이든 백작이든 왕의 봉신을 모두 일컬었다. 이때는 'pair·peer(동료·동지)'라는 말과 상통하였다.

남작 작위의 활용은 11세기 노르만 정복 이후의 잉글랜드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정복왕 윌리엄을 따라 온 수많은 노르만족 가신은 잉글랜드의 땅을 분봉받아 영주가 되었으며, 왕 직속 가신인 채로 남작이 되었다. 유럽 대륙의 남작은 지역에서 자연 발생한 소규모 호족인 까닭에 군주의 직속 봉신이기보다는 현지 공작, 백작 등 영역제후의 가신인 일이 흔했지만, 영국의 남작은 시골구석 하나하나까지 왕 직속이었다. 이렇게 발생한 수많은 남작은 잉글랜드 특유의 '중앙집권적 봉건제'를 만드는 기반이 되었으며, 이전부터 잉글랜드에 존재하던 관직인 셰리프 등 관료직에 임명되어 지방 행정의 주축이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잉글랜드의 백작위도 대륙의 그것과는 달리 영역제후가 아니었는데, 비록 법으로 정한 만큼 세입을 나누어 가지거나 셰리프가 소집해 준 병력을 지휘하는 등 몇몇 권리가 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프랑크 왕국 시대처럼 백작령이라고 이름 붙은 좀 커다란 행정구역을 맡는 관료에 불과했으며, 따라서 독자적으로 백작령 내의 남작에게 충성을 받지도 못했다. 잉글랜드에서 이러한 실세 남작의 경우는 Lord라는 별도의 경칭을 받기도 했고, 존 왕 시대의 반란 등에서 보듯 중앙정치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못해도 백작 정도는 되어야 비슷하게 힘을 행사하던 대륙하고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45]

프랑스의 경우, 중세 성기 이후 소규모 호족들에게 명예직으로써 으레 주는 칭호 정도로 정착하였다가 근세 무렵에는 더 흔해져서 대검 귀족(Noblesse d'épée)[46]에 속하는 하급 귀족 가문이라면 다들 가지고 있는 칭호가 된다.[47] 남작령으로 불리는 토지를 가진 경우도 있었고, 그런 토지가 딱히 없는 경우도 있었다.[48]

4.3. 성직 제후

5. 기타 작위

5.1. 왕실

5.2. 부왕(副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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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영주

<colbgcolor=white,#505050> 언어 남성형 여성형 영지
라틴어 Dominius Domina Dominium
독일어 Herr[52] Frau Herrschaft[53]
프랑스어 Seigneur Seigneuresse Seigneurie
이탈리아어 Signore[54] Signora Signoria
스페인어 Señor Señora Señorío
영어 Lord[55] Lady Lordship
러시아어 [ruby(Сеньор, ruby=Senʹór)] [ruby(Сеньора, ruby=Senʹóra)] [ruby(Сеньория, ruby=Sen'oriq)]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영지를 세습하는 귀족이지만, 군주나 상급 제후로부터 정식 작위를 받지 못한 관습적 봉신이 드물게 남았다. 또한 군주나 제후가 자신의 통치권 밖의 영지를 상속받으면서, 해당 지역의 통치자와 따로 봉건 계약을 맺지 않고 직접 영주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처럼 작위 없는 영주는 정식 작위를 보유한 남작보다는 낮은 계급으로 취급되었으나 대체로 기사 작위보다는 높은 신분으로 여겨졌는데, 봉건 영주가 사라진 근대에 작위 제도가 정립된 경우에는 핀란드처럼 기사보다 낮은 지주 계급 귀족의 칭호로 쓰이기도 했다.

신성 로마 제국 등 독일어권에서 남작은 'Freiherr(자유영주)'로 불렸는데, 그보다 낮은 'Herr(영주)'는 귀족 신분이지만 정식으로 승인되지 않은 지위인 점에서 Freiherr와 구분된다.[56] Freiherr는 원래 황제에게 돈을 내고 승인을 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 칭호였으며, 일부 유력자는 Freiherr(남작)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Graf(백작)급 작위를 받기도 했다. 이후 선제후·공작·백작 등 상급 제후들도 이를 따라 하여 돈을 받고 Freiherr를 승인하기 시작하면서 보편적인 작위가 되었다.[57] Freiherr가 보편화되었어도 상술한 통치권 밖의 제후가 영지를 상속받게 된 사례를 포함하여, 독자성이 강한 토착 세력이거나 종가에 예속된 분가처럼 황제나 제후와 직접적이고 분명한 주종관계를 확립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Herr도 잔존한 것이다.

5.4.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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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white,#505050> 언어 남성 칭호 여성 칭호
라틴어 Eques[58]
독일어 Ritter[59]
영어 Knight Dame[60]
프랑스어 Chevalier Chevalière
이탈리아어 Cavaliere Dama
스페인어 Caballero Caballera
러시아어 [ruby(Рыцарь, ruby=Rytsar)] [ruby(Дама, ruby=Dama)]
유럽 고유의 신분으로 본래는 직업에 가까운 개념이었으나, 신분 계층으로 정착되면서 평민과는 확연히 구분되었다. 나라와 시대를 막론하고 개별 사례마다 명백한 귀족 신분인 경우가 있고, 법적으로는 귀족이 아니나 사회적으로 그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 경우가 있고, 명확하게 귀족이 아닌 경우도 있어 일률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세습 작위 성격을 갖는지의 여부도 18세기까지는 개별 사례마다 달랐으나, 근대에 들면서 유럽 대부분의 군주정 국가에선 법제화된 작위가 되었다.

5.5. 기타

6. 관련 문서

7.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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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에 관해서는 영지(역사) 문서 참고.[2] 여기에 향촌 사회 토착 유력자의 칭호인 바로(Baro, 남작)를 최하위로 둘 수 있다. 그 외의 유럽 작위는 대체로 코메스에서 세분되어 나타난 파생 작위다.[3] 예컨대 툴루즈 백작이나 플랑드르 백작이 그 대표적 사례. 비슷하게 최초에는 루앙 백작에서 시작한 노르망디 공작도 비록 그 지위를 군주에게서 받았다고는 해도 세력 기반은 자신이 이끌던 노르드인 바이킹이었고, 그래서 오랜 기간 독립적이고도 강력한 권력을 누렸다.[4] 그와 더불어 지나치게 높지도(공작) 낮지도(남작) 않은, 적절한 위치인 점도 한몫한다.[5] 다만 부계를 따라 내려가는 가계가 끊기면 복잡한 상속을 하곤 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땅이 줄어들어 단지 몇 명의 기사만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영지를 가진 남작도 늘어났다.[6] 오늘날 보편적인 행정구역 단위의 3단계(광역-지방-동네)를 연상할 수 있는데, 사실 근대적인 지방행정 제도 자체가 원래 봉건 영주의 영지들을 개편하면서 성립된 결과물인 만큼 연관이 있다. 더 정확하게는 전근대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각 왕국이나 영역제후령은 하천이나 산맥 등 자연 경계로 나뉘었으며, 그 아래에 세부적으로 하급 봉신이나 자치 도시 등 독자적인 세력이 형성되었으므로, 이러한 사회구조가 근대까지 연속된 까닭이다.[7] 무엇보다도 대공 문서에서도 설명하듯, Prince 외에 Grand Duke를 대공으로 번역하는 것도 맞는지라 혼동하기가 더욱 쉽다.[8] Archduke는 '아크 듀크'가 아닌 '아치 듀크'로 발음한다.[9] 보통 슬라브계 국가의 대공 칭호를 정확하게 옮기면 Grand Prince이지만, 서유럽권에서는 전통적으로 Grand Duke로 번역해 왔고, 독일의 Grossherzog 또한 서유럽의 번역 관례에서 유래한 칭호다. Grand Prince와 Grand Duke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언어는 독일어나 슬라브 계통 언어 정도이다.[10] 본래 선제후 제도가 성립하기 전까지는 제국 내 제후(Fürst)라면 누구든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11] 1803년에 황제가 제후들이 프랑스에 빼앗긴 영토를 보상해 주는 과정에서 남아있던 성직 제후령을 세속화하여 배분했기에, 성직 제후는 공식적으로 소멸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의 간섭으로 기존의 수석 선제후인 마인츠 대주교는 레겐스부르크 대주교로 전임하여 수석 선제후 지위를 이어가긴 했으나, 레겐스부르크 선제후 또한 세속화된 영지가 배정되었으며, 선제후 지위가 후임 대주교에 승계되는지의 여부 또한 명확하게 결정되지는 않았다. 결국 라인 동맹 시기에 레겐스부르크 선제후국이 프랑크푸르트 대공국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후임 대공은 나폴레옹의 의붓아들인 외젠 드 보아르네가 승계하도록 설정되었다.[12] 본래 헤센 가문의 종가인 헤센-카셀은 나폴레옹의 간섭으로 1803년에 선제후 반열에 올랐으나, 라인 동맹 가입과 신성 로마 제국 해산에는 반대했다. 이에 나폴레옹은 방계인 헤센-다름슈타트를 대공으로 승격시켜 '헤센 대공국'을 만들었고, 헤센-카셀의 선제후국은 해체하여 베스트팔렌 왕국에 합병해 버렸는데, 이후 대프랑스 동맹에 합류한 헤센-다름슈타트는 빈 회의에서 그 지위를 그대로 승인받았다. 원래 선제후였던 헤셀-카셀 또한 독일 연방에서의 대공 지위를 보장받았지만 분가가 '헤센 대공'을 선점한 상황이었기에, 빌헬름 1세는 이에 반발하여 자신을 헤센 지방의 고대 게르만 부족인 카티족에서 따온 '카텐 왕(König der Chatten)'으로 승격해달라고 청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헤센-다름슈타트의 헤센 대공국보다 우월함을 내세우고자, 헤센-카셀은 종전대로 '헤센 선제후' 칭호를 유지하면서 보조 칭호로 '풀다 대공'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13] 본래 천하에서 유일한 존재인 천자의 지위였으나 황제 개념이 탄생하면서 제후 신분의 칭호가 되었고, 황권이 안정화되면 황족에게만 수여되는 명예적 작위로 성격이 바뀐다.[14] 이들 지역에서는 왕의 봉신인 유력 제후를 통칭할 때도 Prince보다는 Baron(자유민, 직속 봉신)이나 Peer·Pair(동료·동지)라는 말을 사용하였다.[15] 엘베강 서안은 카롤루스 대제 때에야 막 정복되고 기독교화하기 시작한 참이었고, 동안은 북방 십자군이나 동방식민운동 과정에서 신성 로마 제국으로 편입하였다. 엘베 강 동역을 정복할 즈음에는 슬라브인 영역이라고는 하여도 기독교나 봉건제를 이미 수용한 상태였으나, 민족 구성이 달랐기에 현지에 정착한 독일인 공동체와는 또 다른 지위를 차지하였다.[16] 황제 직속의 상급 제후가 Graf급 봉신을 두는 사례는 13세기 무렵에도 있었는데, 대체로 주변에 위치한 성주 출신의 자생적 유력자들을 제도권 내로 편입시키고자 봉건 계약을 통해서 Graf나 Burggraf 등으로 승인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선제후 및 Herzog 서열의 우위성이 명백해진 14세기 후반부터는 적극적으로 기존의 가신들까지 명목상의 Graf로 서임하게 된 점에서 그 이전과 큰 차이가 있다.[17] 16세기 이전에 황제가 공식적으로 Fürst로 승인했다는 이야기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의 'Reichsfürst(제국제후)'로 지정한 것인 경우가 많다.[18] 리페 후국, 발데크피르몬트 후국,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후국,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리히텐슈타인 등이 해당된다. 리히텐슈타인의 경우 합스부르크 가문의 봉신 지위에서 황제의 직속 제후로 신분을 변경하기 위한 것이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자신들을 선제후나 공작 예하의 백작들과 구분하기 위해 Fürst 칭호를 공식화한 것이다.[19] 샤움부르크리페 후국, 라이엔 후국 등이 이 사례에 해당된다. 빈 체제로 복구된 헤셀-홈부르크 만이 독일 연방에서 기존의 방백(Landgraf) 작위를 유지했지만, 1866년에 헤센 대공국으로 재합병되었다.[20]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근대 유럽의 귀족 사회에서는 주권국의 군주 신분과 군주에게 예속된 귀족 신분의 격은 다르게 구분했다. 즉, 황제나 국왕 휘하의 DUX(공작)는 독립국의 군주인 Fürst 보다 높다고 여겨지진 않았다는 의미이다. 사실 독일의 슈탄데스헤어도 원칙상 군주와 대등한 신분으로 예우하도록 되었음에도 실질적으로는 군주보다 낮은 신분으로 여겨졌는데, 독일 내에서도 왕실과 슈탄데스헤어 일족 간의 혼인을 귀천상혼으로 취급했을 정도였다.[21] 상기하였듯 중세에서 근세 초기까지는 Markgraf와 Graf 등 Herzog 미만을 전부 퉁쳐서 부른 칭호이므로, 그 역어는 후작이 아닌 제후가 된다. 16세기 무렵 공식 작위화된 Fürst는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영방국가의 주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다른 군주나 제후에게 예속된 Graf보다 우월한 지위로 여겨진다. 이러한 고유 작위로서의 Fürst를 번역할 때는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를 활용하여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Markgraf는 자연스럽게 '변경백'으로 번역된다.[22] 황제가 Reichsfürst로 지정했다고 제국의회 투표권이 무조건 인정되지는 않았다. 일례로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1608년에 Reichsfürst로 지정되었지만, 황제 직속의 제후가 아니라 합스부르크 가문의 봉신 신분이었기에 제국의회에 참석은 거부당했다. 이에 1699년에 셸렌베르크 령과 1712년에 파두츠 백작령 등 황제 직할의 영지를 매입했고, 1719년에 두 영지를 통합하여 Fürstentum으로 승인된 뒤에야 정식으로 황제 직속 제후의 신분을 인정받게 되었다.[23] Reichsfürst로 지정되면서 관례상 Fürst를 칭하고 있지만 황제에게 Fürstentum으로 정식 승인되지 않은 백작령은 'Gefürstete Grafschaft'로 지칭되었다. 일반적으로 '후백국'으로 번역되며, 영어로는 'Princely County'로 번역된다.[24] 마찬가지로 콘월 공작(Duke of Cornwall) 역시 잉글랜드 왕국의 확정상속인에게 관습적으로 수여된다. 타국에서도 이러한 관행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Prince 중 Fürst가 아닌 것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프랑스 왕국의 도팽(Dauphin), 보헤미아 왕국모라비아 변경백작 등이 있다.[25] 간혹 Prinz von Wales로 쓰기도 하지만, 독일어 위키백과에서도 이러한 번역을 오역으로 지적하고 있다. 마치 영어 위키에서 동유럽의 Великий Князь를 Grand Prince로 옮겨야 하는데도 Grand Duke로 오역하고는 한다고 지적하듯, 이 역시 오늘날에는 왕실이나 가문 작위로서 Prince(Prinz) 개념이 더 익숙한 데다가 해당 작위가 관습적으로 확정상속인에게 수여된 탓에 발생하는 오역이다.[26] 대표적으로 작센은 하인리히 사자공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황제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후 작센-비텐베르크나 작센-라우엔부르크, 베스트팔렌 등 공국(Duchy)과 기타 군소 백작령, 주교후령 등으로 분할되었다.[27] 영국 고유 작위에 사용된다.[28] 후대에는 County와 동일시되었다. 영어에서 파생어를 만들 때 사용하는 접미사는 그 어휘 본래의 언어 계통에서 사용하는 방식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통치 영역을 가리키는 파생어의 조어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컨대 게르만어 계통의 어휘에는 게르만어식 접미사를 붙여 'Kingdom'(King+dom)이나 'Earldom'(Earl+dom) 등으로, 로망스어 계통의 어휘에는 로망스어식 접미사를 붙여 'Duchy'(Duch+y)나 'County'(Count+y) 등이 된다.[29] 외국의 작위를 번역할 경우 사용된다.[30] 흔히 봉건제 및 가신제의 주요한 기원 중 하나로 언급되는 게르만 종사제를 가리키는 라틴어 Comitatus도 여기서 비롯한 말이다.[31] 이중 일부는 중세에도 계속 고위직이었는데, 대표적으로 현대 원수 계급의 기원이 되는 Marshal보다도 더 상위의 사령관이었던 Connétable(Constable)이 있다.[32] 어느 정도 독립적인 세력이라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컨대 비엔누아 지방을 장악한 알봉 백작은 기존에 불리던 별명인 '도팽(Dauphin)'을 공식 칭호로 내세웠으며, 12세기 초에 황제로부터 독립에 성공한 부르군트 백작은 '자유백(Freigraf)'을 자처했다. 또한 똑같은 백작(Comes) 칭호를 쓰더라도 긴느나 아르드르처럼 사실상 성주령 수준인 곳이 있었는가 하면 플란데런처럼 영역제후로서 그들 상위에서 명목상이나 사실상의 군주로 군림하는 곳이 있는 등 그 지위가 상이했다. 보통 강대한 세력을 이룬 영역제후는 공작을 자칭하다가 국왕의 승인을 받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플란데런이나 툴루즈 등처럼 백작 칭호로 만족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도팽은 도피네, 자유백은 프랑슈콩테(Franche-Comté) 지명의 어원이기도 하다.[33] 독일어 Burggraf를 라틴어화한 번역어이다.[34] 고대 로마에서는 다양한 행정직으로 분화되었는데, 중세에는 종종 성주 직책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었다.[35] 그래서 중세 성기에 도시민들이 자치권을 얻고자 코뮌 운동을 전개하였을 때 첨예하게 대립했던 존재는 세속영주보다 도시 주교인 경우가 많았다.[36] 예컨대 성주들은 보통 자기 성채와 거기에 딸린 소규모 토지 및 도시 내 권리 정도만 행사하였고, 백작들은 도시 내에서는 주교 우위권을 인정하거나, 구역을 나누어 다스리거나, 아예 그 자신이 주교의 봉신인 경우도 있었다. 물론 예외도 있어서, 백작이나 Vicarius 등 세속인이 역으로 교회의 보호자 자격으로서 통치에 관여하거나 사실상 지배자 노릇을 하기도 하였다.[37] castellany는 일반적으로 성주가 관리하는 영역, 즉 성주령(城主領)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를 구분하고자 성주령을 가리킬 때는 일부러 'castellania'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어휘는 아니다. 따라서 'castellany'라는 단어는 그 문맥에 따라 어떤 의미인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번역해야 한다.[38] 성주 출신 유력자들은 대체로 백작을 자칭하거나 기존의 Vicecomes(부백작) 칭호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국왕과 봉건 계약을 맺으면서 이를 정식으로 승인받았으며, 특이한 칭호를 자칭한 경우에는 백작~남작으로 서임되었다. 봉신이 될 수 없는 수준으로 세력이 영세한 경우에는 세습 관직이 주어져 기존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따라서 Castellanus 계열의 단어는 일반적으로 '성주'로 번역할 뿐, 별도의 작위 개념이 아니다.[39] 원래 Burggraf는 11~12세기 동안 동방식민운동 차원으로 설치된 황제 거성(Kaiserburg)의 책임자가 임명되면서 등장했으며, 당시의 지위나 권한은 Landgraf와 유사한 영역제후였다. 이 시기 Burggraf가 임명된 성관 중 하나가 뉘른베르크호엔촐레른 가문의 촐레른 백작이 겸임하다가 분할 상속되었는데, 뉘른베르크를 물려받은 쪽이 훗날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로 서임되고 프로이센 공국을 상속받아 프로이센 왕국으로 성장했으며, 독일을 통일하여 독일 제국을 선언했다. 이러한 기존 영역제후 성격의 Burggraf는 이미 다른 지위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13~14세기 무렵에 성주 출신이 황제나 인근 제후의 하급 봉신이 되면서 Burggraf가 되었어도 자연히 구분되었다.[40] 19세기에 독립 국가로 형성된 네덜란드벨기에는 서유럽의 작위 제도를 도입했는데, 국내의 자작 작위를 독일어로 옮길 땐 Burggraf로 옮긴다.[41] 신성 로마 제국 내 작위인 '자유영주'로, 법률 언어인 라틴어로 번역될 때 'BARO'로 쓰였기에 외국의 Baron과 동격의 개념이 되었다.[42] 'Freiherr'는 황제나 상급 제후에게 승인을 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 칭호였기에, 종종 이를 가문의 구성원들이 공유해서 쓰기도 했다. 이런 경우에 남작의 자녀들도 'Freiherr'와 'Freifrau'를 칭할 수 있었는데, 미혼인 딸일 경우에는 'Freiherrin'으로 불렀으나 나중에는 이를 줄인 'Freiin'의 사용이 일반화된다.[43] 외국의 남작급 작위를 번역할 때나 Baron 칭호를 옮길 때 사용된다.[44] 스코틀랜드는 제외. 스코틀랜드에서는 'Lord' 또는 'Lady'가 남작에 상응하는 지위며, Baron은 일개 지주를 가리킨다. 잉글랜드 등의 Baron에 상응하는 신분임을 분명하게 하고자 'Lord(Lady) of Parliament'로 표기하기도 한다.[45] 애초에 중세 유럽에서는 섬기는 행위조차 신분에 따라 제약되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나 대뜸 섬기겠노라 청원한다고 유력 군주나 제후의 가신이 될 수 있던 것이 아니다. 같은 주군을 섬긴다는 것은 (실제로는 어느 정도 위계를 구분하기는 하였지만) 본질적으로는 격이 같다는 뜻이다. 같은 이유로 똑같이 봉사하는 것이 임무였음에도 기사(Knight)와 미니스테리알레스(Ministeriales) 등은 고귀한 태생에 따라 격이 나뉘었으며, 농민들도 자유민과 비자유민을 구별하였다. 격이 낮은 사람은 같은 탁자에 앉지 못하며, 특정 복장이나 도구를 쓸 수 없고, 재판소에서도 참여하거나 증언하지 못하는 등 불이익이 있었다. 특히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황제의 봉신이었던 제국백작이나 제국기사, 자유 제국시, 주교후, 제국수도원 등은 제국의회에 참석할 특권 등을 누렸다.[46] 프랑스의 귀족 분류 중 하나로 근세에 평민 출신의 신귀족이 출현하면서 종래의 세습 귀족들이 자처한 표현이다. 자신들이 중세 시절의 기사 계급에서 유래하여 복무의 대가로 영지를 하사받아 세습되어 온 부류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혈통 귀족'이나 '구(舊)귀족'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47] 사실 다른 유럽 국가에선 부르주아 계급을 귀족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작위를 남발하더라도 주기적으로 명감을 갱신하며 수여된 작위들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프랑스에선 국왕이 하사하는 정식 작위로 남작이 도입된 것이 13세기 후반이었는데, 역대 국왕들이 임시 수입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명목상의 남작 작위를 자주 판매해왔고, 특히 루이 14세 때에는 명목상의 남작령조차 지정할 수 없게 될 정도로 대대적인 매작이 여러 차례 단행되었다. 또한 왕실부터 국내·외의 작위를 매입하여 직할령을 늘리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기에 귀족들이 사적으로 작위를 매매하는 것도 규제할 수 없었다. 결국 작위는 엄격하게 관리되지 못했고, 17~18세기에는 귀족들이 아예 작위를 사칭하는 일이 흔해졌다.[48] 오해와는 달리, 영국을 제외하면 봉토나 작위 보유가 꼭 귀족 신분과 결부되는 것은 아니다. 현세대에 작위도 봉토도 없더라도 선조가 귀족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귀족으로 인정되었다. 다만, 귀족 신분 자체가 밥 먹여주지는 않았기에 용병이나 관료, 가신, 하인, 시종, 성직자 등 밥벌이 방법을 찾아야 했을 뿐이다. 후대로 가면 오히려 귀족이고 영주이면서도 작위는 없는 경우도 발생하였다.[49] 물론 기사수도회 소속 기사와 일반적인 세속 귀족에 속한 기사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유념해야 한다.[50] Principauté(공국)는 프랑스 왕국의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토착 세력이나 신성 로마 제국 출신인 제후들이 기존에 써왔던 칭호가 그대로 유입되었고, 국왕의 의중에 따라 신설되기도 했다. 이러한 공국과 수반되는 작위 성격의 Prince를 'Prince de titre(명목상 프린스)'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대체로 공작(Duc)과 격은 같지만 서열은 낮은 것으로 통했다. 마찬가지로 왕족·준왕족들이 겸임 작위를 표기할 때도 소속 가문의 이름과 관련된 지위를 먼저 내세우는 경우가 아닌 이상 Duc을 우선하여 사용했다. 다만 17세기 무렵부터는 일반 귀족이 정식으로 이러한 Prince 작위를 보유한 경우도 사라지긴 했다.[51] 장녀는 'Madame Première', 차녀는 'Madame Seconde', 삼녀는 'Madame Troisième' 라는 식.[52] 원래 고대 말~중세 초까지 주군·군주·영주·부족장 등의 뜻하던 말이다. 이 말은 근대까지 그 위상이 계속 낮아진 결과 지금은 영어의 'Mister'(미스터)처럼 그저 선생님 정도의 의미 정도로 쓰이는 경칭이 되었다. 물론 이는 세계적으로 아주 일반적인 현상 중 하나인데, 예컨대 영어 미스터도 'Master'(마스터)가 어원으로 과거에는 젠트리 등 귀족 및 준귀족의 경칭이었고, 한국어에서도 선생이 경칭이 되는가 하면 양반은 멸칭, 영감도 격식 없는 칭호로 변했으며, 일본어에서도 키미(君)가 그냥 2인칭 대명사로 변했다.[53] Freiherrschaft(남작령)와 실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또한 Freiherr가 단절된다면 더 이상 남작령이 아니므로 그 영지는 Herrschaft로 전환된다.[54] 중세 이탈리아 한정. 이탈리아 왕국에선 작위로 사용하지 않았으며, 대신 남작보다 낮지만 기사 보다 높은 칭호인 'Nobile(귀족)'을 수여했다.[55] 상술했듯 노르만 왕조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잉글랜드 각지는 국왕 직속의 노르만 출신 남작들에게 분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잉글랜드의 토호는 귀족이 아닌 자유민 신분으로 취급되었고, 토지의 소유권만 인정받았을 뿐 통치권은 인정되지 않았다.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작위 없는 영주'가 존재할 수 없었다. 이 점은 스코틀랜드 또한 비슷했으나, 'Lord' 또는 'Lady'를 남작 신분의 칭호로 쓰고 이를 'Lord(Lady) of Parliament'로 표기하기도 하며, Baron은 일개 지주를 가리킨다. 스코틀랜드 이외의 영연방에서 'Lord'는 영지와 작위를 보유한 귀족에게 사용되는 경칭이나 관직명을 구성하는 어휘로 쓰이며, 다른 나라의 작위 없는 영주의 칭호를 번역할 때에도 사용된다.[56] 독일의 Herr는 남작보다 격이 낮은 만큼 준남작으로 번역해도 무방하겠으나 그러한 번역례는 찾아보기 어렵고, 도리어 Freiherr와 구분하지 않고 남작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57] 참고로 제국백과 달리 '제국남(Reichsfreiherr)'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단순히 황제 직속 남작들의 자칭이었을 뿐인데, Freiherr 자체가 이미 공식 승인된 칭호이여서 굳이 제국남을 지정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제후들이 Freiherr를 서임하기 시작하자, 스스로 제후 소속의 Freiherr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58] 신분 계층이 아닌 직업·병종의 의미일 때는 Miles를 사용했다.[59] 독일어에서 여기사는 'Ritterin'으로 지칭되지만, 이 단어는 여성인 기사단 단원을 지칭할 때 주로 쓰였다. 독일 지역에선 살리카법이 통용되었으며, 세습 작위인 Ritter를 가문 구성원들이 공유하더라도 딸은 Ritterin을 칭할 수 없었고, 기사의 아내는 예우상 'Frau'로 호칭했다. 현대 네덜란드에서 여성에게 기사급 작위를 수여할 땐 'Jonkvrouw'로 칭하며, 벨기에에선 남녀 구분 없이 'Ridder' 칭호를 수여한다.[60] 영국에선 여성 본인에게 기사급 작위를 서임하더라도 기사 부인과 동일한 'Dame' 칭호를 수여한다. 여기사를 뜻한다는 'Knight(r)ess'는 근래에 만들어진 어휘로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으며, 영어에선 'Knight' 자체가 사실상 성별 중립적인 어휘다. 영어에서 여성형 명사를 조어할 때 그 접미사로 로망스어 계통 단어에는 '-ess', '-ress', '-ine', '-a' 등이 게르만어 계통 단어에는 '-in', '-inne', '-en' 등이 그대로 쓰였다. 하지만 차츰 파생어를 만드는 대신 'female'이나 'lady' 등 여성을 가리키는 형용사나 명사와 합성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같은 이유에서 'Earl'의 여성형은 존재하지 않아 동격의 로망스어 'Countess'를 빌어다가 쓰고 있으며, 얼핏 비슷해보이는 'King'과 'Queen'은 사실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서로 유래가 다르다.[61] 고대 프랑스어 "Bacheler" 및 중세 프랑스어 "Bachelor", 라틴어 "Baccalaureus" 및 "Baccalarius"에서 온 말이다. 라틴어의 경우 그 이전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Baccalaureus"는 본래 로마에서 졸업생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Baccalarius"는 봉신이나 가신이 없는 기사나 보유지가 없는 농노를 이르는 말이었다. 여기서 비롯한 동원어로는 프랑스 고교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나 중세 이래로 대학의 학사 학위를 가리키는 "Baccalaureus", "Bachelor's degree" 등이 있다.[62] 현대 영어로 치면 "young man" 정도의 뜻이다. 어원이 아니라 의미를 놓고 보면 "Yeoman"이나 "junker", "Drengr" 등과 동일하거나 유사하다.[63] 특히 후자의 경우 'Vavasour'와 같은 말로 쓰였다. 이 말은 '배신(陪臣)'으로 의역되기도 하는데, 원어와 완전히 일치하는 역어는 아니다. vavasour는 본래 '봉신의 봉신'이라는 뜻이지만, 보통은 봉신의 봉신이나 봉신의 봉신의 봉신급 정도만 되어도 가신이나 봉신을 거느릴만한 재산이 없어서 입에 풀칠하고 사는 수준이었기에, '빈곤한 말단 봉신'을 뜻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여기서는 그중 확장된 뜻과 상통한다.[64] Banneret은 종종 젠트리의 상위층인 준남작(Baronet)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서로 관계는 없다. 그보다는 남작과 대비되고는 했는데, 서열상으로는 남작이 더 높았다. 독립적 지위로 굳어진 Banneret은 대지주로서 기사 계층의 상류를 구성하였고, 전통적으로 군무 관련으로 기용되었다. 반면 남작들은 주로 정치나 민사 관련 직책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