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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1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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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오귀스트 베르나르트 국제평화국 알프레트 프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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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아스 아서르 엘리후 루트 앙리 라퐁텐 국제적십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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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로 윌슨 레옹 부르주아 얄마르 브란팅 크리스티안 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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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쇼프 난센 오스틴 체임벌린 찰스 G. 도스 아리스티드 브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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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슈트레제만 페르디낭 뷔송 루트비히 크비데 프랭크 켈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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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모트 퀘이커 봉사협회 존 보이드 오어 랠프 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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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 주오 알베르트 슈바이처 조지 마셜 유엔난민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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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그 함마르셸드 라이너스 폴링 국제적십자위원회 마틴 루터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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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안와르 사다트 메나헴 베긴 마더 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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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포 에스키벨 유엔난민기구 알바 뮈르달 알폰소 가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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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흐 바웬사 데즈먼드 투투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 엘리 비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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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르 아리아스 유엔 평화유지군 달라이 라마 14세 미하일 고르바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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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1777년 1779년 1781년
조지 워싱턴 소장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 앤서니 웨인 사령관 헨리 리 3세 준장 대니얼 모건
1781년 1787년 1800년 1805년 1813년
소장 너새니얼 그린 존 폴 존스 대령 토머스 트럭스턴 준장 에드워드 프레블 대령 아이작 헐
대령 스티븐 디케이터
대령 제이콥 존스
1813년 1814년
대령 윌리엄 베인브리지 대령 올리버 해저드 페리
대령 제시 엘리엇
대위 윌리엄 워드 버로스 2세
대위 에드워드 매콜
대령 제임스 로렌스 대령 토머스 맥도너
대령 로버트 헨리
대위 스티븐 카신
1814년 1814년, 1848년 1814년
대령 루이스 워링턴 대령 존스턴 블레이클리 소장 제이콥 브라운 소장 윈필드 스콧 소장 피터 부엘 포터
준장 엘리저 윌락 리플리
대령 제임스 밀러
1814년 1815년 1816년
소장 에드먼드 P. 게인스 소장 알렉산더 마콤 소장 앤드루 잭슨 대령 찰스 스튜어트 대령 제임스 비들
1818년 1835년 1846년, 1847년, 1848년 1847년 1854년
소장 윌리엄 해리슨
주지사 아이작 셸비
대령 조지 크로간 소장 재커리 테일러 소머스 호
장교 및 승무원 구출
중령 덩컨 잉그함
1858년 1863년 1864년 1866년 1867년
프레더릭 로즈 소장 율리시스 S. 그랜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로버트 크레이튼
에드윈 J. 로
조지 C. 스투퍼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
1867년 1871년 1873년 1874년, 1904년 1883년
조지 피바디 조지 F. 로빈슨 대령 재러드 크랜달 그 외 존 혼 주니어 존 폭스 슬레이터
1888년 1890년 1900년 1902년 1909년
조셉 프랜시스 수석 엔지니어 조지 W. 멜빌 그 외 중위 프랭크 H. 뉴컴 중위 데이비드 H. 자비스
소위 엘스워스 P. 버트홀프
새뮤얼 J. 콜 박사
라이트 형제
1912년 1914년 1915년 1928년
선장 아서 로스트론 폴 H. 크라이봄 그 외 로물로 세바스티안 나온
에두아르도 수아레스 무히카
찰스 린드버그 로알 아문센
움베르토 노빌
1928년 1929년 1930년 1936년
토머스 에디슨 최초로 성공한 대서양 횡단 비행사 소령 월터 리드 준장 리처드 에벌린 버드 링컨 엘즈워스
1936년 1938년 1939년 1940년
조지 M. 코핸 리처드 올드 리치 부인
안나 불리니
하워드 휴즈 목사 프랜시스 퀸 윌리엄 시넛
1942년 1945년 1946년
롤런드 바우처 1939~1941년 미국 남극 탐험대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해군 원수 어니스트 킹
육군 원수 존 조지프 퍼싱 준장 빌리 미첼
1949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58년
앨번 W. 바클리 어빙 벌린 조너스 소크 박사 남북 전쟁의 참전 용사 준장 하이먼 리코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로버트 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토머스 앤서니 둘리 3세 밥 호프 샘 레이번
1962년 1968년 1969년 1973년 1977년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월트 디즈니 윈스턴 처칠 로베르토 클레멘테 매리언 앤더슨
1978년 1979년
중장 아이라 이커 로버트 F. 케네디 존 웨인 벤 아브러조
맥시 앤더슨
래리 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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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980년 1982년
미국 적십자 케네스 테일러 1980 미국 하계 올림픽 팀 베아트릭스 여왕 대장 하이먼 리코버
1982년 1983년
프레드 워링 조 루이스 루이스 라머 레오 라이언 대니 토머스
1984년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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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 거슈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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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탈 샤란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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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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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 보병연대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전사한 13명의 장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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བསྟན་འཛིན་རྒྱ་མཚོ
파일:14thdalailama.jpg
이름 제쮠참빼아왕로쌍예셰땐진갸초[1] (법명)
라모된줍 (속명)
출생 1935년 7월 6일 ([age(1935-07-06)]세)
파일:대만 국기.svg중화민국 칭하이성 시닝현 탕룽타이향 탁체르 촌
(現 파일:중국 국기.svg중국 칭하이성 하이둥시 핑안구 스후이야오 민족향 탁체르)[2]
재임기간 제14대 달라이 라마
1940년 2월 22일 ~ 현직
국적 파일:티베트 국기.svg 티베트(1935~1951)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1951~1959)
파일:티베트 국기.svg 티베트 망명정부(1959~)[3]
서명
파일:달라이 라마 14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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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9166F><colcolor=#F4E109> 직업 종교인, 정치가
신체 170cm
학력 궁중교육
종교 티베트 불교
수상 노벨 평화상 (1989)
템플턴상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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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환생 관련 입장3. 비판
3.1. 야스쿠니 신사 방문 논란3.2. 수미산 부정 논란3.3. 인도 소년 성희롱 논란
4. 여담5. 매체에서6.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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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달라이 라마 14세. 본명은 "제춘 잠펠 아왕 롭상 예셰 뗀진 갸초"[4]

달라이 라마 14세는 1935년 7월 6일 농촌에서 태어났다. 2살 때 전대 달라이 라마의 현신임을 인정받고[5] 4살의 나이에 달라이 라마의 직위에 올랐다. 하지만 중국티베트를 강제점령한 1959년 이래 인도에 망명하여 50여 년 넘게 다람살라에서 망명 정부를 이끌며, 티베트 불교를 전 세계에 널리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망명 당시 사진.
타임지에 1959년 실린 망명길 지도. 노새와 조랑말만 타고 히말라야를 넘었다. 국경 지대로 오기 전까지는 호위도 없었다고.
인도 외 해외 공식 방문 국가(영문 위키)

한결같이 폭력노선을 지탄하고 비폭력운동을 전개했는데, 그 때문인지 1989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다만 2008년 티베트 유혈사태에선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를 보여 티베트 진영 내에서도 티베트 독립운동 혹은 자치를 위한 노선을 놓고 의견 대립이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추정도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이미 80대의 고령이라 건강에 대한 루머도 종종 나오는데, 한때 말기암을 진단받았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만, 얼마 안 되어 반박 기사가 나왔다.# 달라이라마 유튜브 공식 채널에 들어가면, 바로 최근의 활동 영상을 볼 수 있으니 확인해볼 것.

2018년 11월 중순에 방일 전에 달라이 라마는 "후계자를 민주적으로 뽑는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2019년 3월에는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달라이 라마 제도의 폐지를 시사했다. 또, 사후 환생은 인도에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는 2011년 8월부터 총선으로 구성된 티벳중앙정부(Central Tibetan Administration, CTA)[6]의 총리(President)에게 정부 수반 지위를 이양하였다. 또한 달라이 라마가 속한 티베트 불교 종파인 겔룩의 공식적인 최고지도자는 예전부터 달라이 라마가 아니라 교단 원로들 중에 선출되는 간덴 티빠(Gaden Tripa)였다. 따라서 현재 달라이 라마는 공식적으로 정치적 권한을 모두 이양한 상태이며, 겔룩빠의 최고지도자도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티베트 망명정부의 국가 원수이자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는 종교 지도자로서 예우를 받고 있다.

2. 환생 관련 입장

달라이 라마가 환생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언론 기사들로 인해 달라이 라마가 더 이상 환생하지 않을 것이란 오해가 퍼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비공식 재외공관/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는 티벳하우스(Tibet House)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의 환생은 지속될 것이나, 자유가 없는 땅에서는 환생하지 않을 것이며 달라이 라마에 의한 티베트 통치는 종식되어야 한다는 것이 현재 달라이 라마 측의 공식 입장이다.# 달라이 라마는 2011년 정치적 권한을 티베트 망명정부에 이양하여 달라이 라마를 국가원수로 삼는 입헌군주제 하 내각책임제 정부를 구성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관영언론인 환구시보를 통해 "現 달라이 라마가 환생제를 갖고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는 없다. 티베트 불교를 믿는 신도들은 달라이 라마 개인을 믿는 게 아니라 환생제 그 자체를 믿는 것이며, 우리는 다음에 환생할 달라이 라마는 이전보다 더 큰 업적을 이룰 것이며 조국을 사랑하고 불교를 발전시키는 승려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비판했다. 거기에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중앙정부가 수백 년간 달라이 라마를 책봉했다는 성명을 내면서 現 달라이 라마 사후 후계 문제에 개입할 뜻을 밝혔다. 2015년 4월에는 한술 더 떠서 "달라이 라마 개인이 환생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 달라이 라마의 환생은 중국 정부의 소관인데, 달라이 라마가 월권을 행사하려 한다." 라는 망언까지 하였다. 미국뉴욕타임스는 "카를 마르크스가 이 사실을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라며 비웃었고, 영국 <인디펜던트>도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던 공산주의자들이 환생 운운하는 게 우습다"며 조롱했다.중국 정부의 능력이 드디어 염라대왕의 영역에까지 도달했다. 남들의 윤회까지 좌지우지.

다만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과 다분히 풍자의 대상이 될 만한 상황과는 별개로, 이것을 단순히 '공산당이 유물론을 무시하고 환생을 인정하고 요구했다'고 볼 수는 없다. '티베트 불교 신도들은 환생제 자체를 믿는 것'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중공은 환생을 '종교적, 문화적으로 구성된 티베트 불교 특유의 의례 및 현상'이라고 보고 (다른 모든 종교의 중국 내 활동에 대하여 그들이 그러하듯) 이 의례를 중국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가톨릭과 비교해 보자면, 가톨릭은 세 명의 주교가 정해진 형식을 갖춰 성품성사를 행할 때 무조건 성령이 내려와 새 주교에게 지워지지 않는 주교품의 인호를 새긴다고 믿는다. 하지만 중공은 그런 건 모르겠고 아무튼 새 주교를 뽑을 땐 중국의 통제 아래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독자적으로 주교를 임명하며 서품식도 행한다. 가톨릭 입장에선 서품식이 형식을 갖췄고 동원된 주교가 유효한 주교인 한[7] 중공 측 주교도 '불법이지만 유효'하지만, 이를 두고 중국이 성령의 강림을 믿는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환생이 서품식에 비해 신비주의적이란 편견 때문에 더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중국 입장에선 별반 다를 바 없는 태도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환생자 제도라는 티베트 불교의 종교적 의례가 중국 정부에 불리한 방향으로 수정될 조짐이 보이자 공산당이 원래의 교리만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꼴이 된 것이므로 어떤 의미에선 촌극이 맞다.

3. 비판

3.1. 야스쿠니 신사 방문 논란

It should be mentioned that the Dalai Lama visited 1980 also the Yasukuni Shrine for the war dead, including war criminals, in Tokyo which forms a symbolic center for the Japanese right-wing extremists.
달라이 라마도 1980년대에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도쿄의 이 신사는 전쟁 범죄자들을 포함해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며, 일본 극우들의 상징적 중심이 되었다.
H.H. The 14th Dalai Lama and the Japanese Buddhists An Account and Analysis of Complicated Interactions. Martin Repp #

현 제14대 달라이 라마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아카이브# 이를 두고 일부 옹호론자들은 '달라이 라마가 방문했던 것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닌 메이지 신궁일 뿐이며, 따라서 우려할 것 없다.'고 가짜 뉴스로 대응한 적이 있으나, 실제로는 메이지 신궁과 야스쿠니 신사 두 곳 모두 방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각각 야스쿠니 방문은 1981년에, 메이지 방문은 2005년에 했다.#

달라이 라마에 있어서도 흑역사로 간주되는 사건인데, 전범들이 안치된 곳인 만큼 평소 평화를 강조하는 그의 모습과 비교하면 그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외면했다고 보일 소지가 있는 모순적인 행동임은 사실이다. 또한 일본인도 좋은 의도로든 나쁜 의도로든 야스쿠니에 참배했다가 안 좋은 결과로 끝날 정도로 이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될 금기적 행위나 마찬가지이니…

한편 옹호하는 의견으로 달라이 라마 입장에서는 단순히 "전몰자들이 모셔진 곳"이라는 정보만 접한 상태에서 모르고 참배했거나 이용당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 우익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티베트 독립운동을 지지해왔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의 일정에 일본 우익의 의사가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달라이 라마 측은 야스쿠니 신사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우호 관계인 일본 우익의 요구에 협조한 것으로 보인다.[8] 반전주의의 상징 같은 존재인 달라이 라마의 평소 행보를 생각해본다면 이 쪽이 더 타당성 있다. 달라이 라마의 야스쿠니 신사 방문은 1981년 단 한 차례에 그쳤고, 이후 2018년까지 총 25차례 방일(訪日)하는 동안 야스쿠니 신사를 더는 방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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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수미산 부정 논란

지금 우리는 21세기를 보다 더 지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도전이 있습니다. 도전은 유용합니다. 인도의 2500년의 역사에서 불교와 법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거대한 비불교의 세력은 몇 가지 불교의 개념에 대해 도전했습니다. 그들이 도전했기 때문에 불교논사도 똑같이 도전했습니다. 도전이 없으면 발전도 없습니다.
도전은 매우 중요합니다. 21세기에 우리는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교와 법에 대한 이해를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몇몇 경우에 좀 더 확인해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사론> 3장에서 이 세상의 중심에는 수미산이 있고, 태양과 달이 비슷한 높이에 있고, 그 주위를 수미산이 둘러싸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여전히 불교도이고, 단순한 불교승려입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수미산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세친이 언급했기 때문에 여전히 땅이 평평하고, 수미산이 중간이라고 고집한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불교적인 시각으로 보더라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모든 체계를 알면, 이유, 논리, 실험을 통해 우리가 불교를 발전시킬 것을 안다면 도전이 있더라도 불교에 대한 여러분들의 신념이 점점 더 깊어질 것입니다. 만약 신념을 단지 전통으로 받아들인다면 도전이 생길 경우 약간 불편해지고 흔들립니다. 이것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강한 불교적 신념을 가진 것을 찬탄합니다.
출저 : ( [전문] 달라이라마, 한국불자들과의 만남 - http://www.btn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23713 )
나는 더이상 수미산을 믿지 않는다. 이는 사성제(四聖諦 苦集滅道)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주론이 아니라) 사성제에 있다. 부처는 인도와 태국의 크기를 잰 적이 없다. 부처는 지질학자가 아니다. (사성제는) 지구가 구형인지 평평한지와 관계 없다. 하하하하. 빅뱅이론을 우리 불교도들은 매우 쉽게 받아들인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빅뱅은 한 차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전, 그그전...' 하는 식으로 무한 번 있었다. 하나의 빅뱅이 일어나려면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직전의 빅뱅이다. 그런 식으로 끝없이 과거의 빅뱅으로 연결된다. 불교 우주론은 성주괴공(性住壞空)[10]이 끝없이 반복된다.

신경생물학과 뇌과학은, 신경과 여러 감정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다. 밀교 수행도 신경계와 관계가 있다. 그래서 불교 수행자들과 신경생물학자들과 뇌과학자들 사이의 대화가 유익하다. 그들의 과학적 발견은 우리에게, 우리의 불교적 설명은 그들에게, 서로 도움이 된다. 아원자물리학과 양자물리학과 불교 연기론에 의하면, 그 어떤 것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다른 것들로 인해 존재한다. 하나의 사건은 수많은 다른 요인으로 인해 일어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과 기술을 좋아했다. 인도로 망명한 후에 과학자들과 대화와 토론을 했다. 어느 날 한 미국인 선불교도에게 '과학자와 토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조심하세요. 과학은 종교를 살해합니다." 그때 산스크리트어 불경이 생각났다. 부처님은 "내 말을 나에 대한 귀의나 믿음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말고 철저히 조사하고 실험해 본 다음에 받아들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과학자들과의 대화는 전혀 위험한 일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이 아직도 불교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이상 수미산은 믿지 않는다. 그런다고 불교가 위태로와지는 것은 아니다. 하하하하 하하하. 기본적으로 사성제와 순수한 의식과 이런 (수미산을 믿는) 무지의 제거 가능성에 대해서, 현명하고 실제적인 과학자들은 그냥 부인하지 않고 흥미를 보인다."
출저 : ( 2011.3.15.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 태국 불교들과 설법 대화 - https://www.youtube.com/watch?v=eIRmpQbebQk&feature=youtu.be )

달라이 라마 14세는 위에 서술했듯이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현대 과학에 의거하여 불교에서 주장하는 수미산 중심의 공간관을 부정한 바 있다.

특히 이를 두고 수미산을 배경으로 설해진 대승 경전까지 부정하는 것이라는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인데, 안그래도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불교 경전에 나온 요소들이 허구이거나 판타지라는 의견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불교측 인물들 중에서도 위 연구자료를 응용하거나 본인의 독자적인 조사를 통해 같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황에서, 14세의 위 의견은 그런 반론이 나오기에 딱 좋은 발언이 아니겠느냐는 것.

그러나 이는 지나친 억측이다. 달라이 라마의 인터뷰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달라이 라마는 수미산같은 일부 공간적 요소만을 부정했을 뿐 사성제(四聖諦)나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반복하는 불교 우주론 등 불교 교리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다. 물질주의에 입각하여 윤회의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과학자들과 달리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전통적인 불교 윤회설의 강력한 지지자이며 그가 부정한 수미산은 윤회설의 공간적 세계관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11] 달라이 라마, U.C. 산타바바라 강연《마음의 본성》1부 2부 3부

또한 수미산이 실재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고대 인도 세계관에서 차용한 상징적 공간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수미산같은 공간적 배경 뿐만 아니라 대승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수많은 불보살들 또한 역사적 실존 여부를 입증할 수 없는 신화적 인물들이며, 그들의 발언과 행적을 담은 대승 경전 역시 역사적 기록이 아닌 종교적 저술에 해당한다. 때문에 불교학계에서는 대승 불교 경전을 석가모니의 친설(親說)이 아닌 일종의 종교 문학(religious literature)이나 계시 문학(revelatory literature)[12]으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승 경전이 불설(佛說, buddhavācanā), 정경(正經, canon)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불설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우선 기준인 법성(法性, dharmatā), 즉 사상과 교리의 진리성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수미산 중심의 공간관을 부정하는 것은 달라이 라마 개인의 의견일 뿐 티베트 불교 전체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수미산의 존재를 믿는 불자들이 있으며, 개중에는 수미산을 천계(天界)나 정토(淨土)처럼 인간의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3.3. 인도 소년 성희롱 논란

전체 상황 영상
2023년 공개 석상에서 한 인도 소년에게 자신의 혀를 내밀며서 “내 혀를 빨 수 있느냐”고 말했다가, 논란이 되자 뒤늦게 사과한 바가 있다.

The Dalai Lama has apologized for a video where he's seen asking a young boy to suck his tongue

위 상황은 2023년 2월 28일 인도 북부 다람살라 교외의 한 행사장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며, 달라이 라마는 논란이 일어나자 4월 10일 자신의 트위터 및 공식 성명을 통해 뒤늦게 사과했다.

영상에 따르면 참석자들 사이에서 박수와 웃음소리가 터져나왔고, 달라이 라마 본인도 “종종 공공장소나 카메라 앞에서도 장난스럽게 사람들을 놀리는 경우가 있다”며 장난의 일환이었다는 취지로 해명하였으나, 망명정부 및 종교 최고 지도자로서 어린이 상대로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비판들이 뒤이었다. 달라이 라마 스스로도 후회한다는 취지로 사과하였다.#

티베트에서는 혀를 내미는 것이 인사한다는 의미이지만, 문제는 어린이에게 혀를 "빨아보라"고 했기 때문에 (특히 서구에서) 소아성애적 행동으로 인식되어 큰 문제로 번진 것이다. 티베트 망명 정부의 인사 중에는 티베트에서는 진심으로 혀를 빨라는 의미가 아니었고 농담으로 저러는 것이 허용된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인도의 비티베트인도 반발하는 반응이 있었다. #

이후에 당사자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를 인터뷰한 영상이 올라왔는데, 막상 당사자들은 달라이라마를 만나서 매우 기뻤으며 만남이 의미있고 기뻤다고 말하고 있어서, 논란과는 달리 크게 불편해하지 않는 모양새이다. 이 인터뷰 영상을 통해 앞선 영상에서 달라이라마의 옆에 앉아있던 여성이 소년의 어머니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전체 상황 영상의 맨 좌측에 앉은 여성) #


"Now, you should look [to] those good human beings who create peace [and] happiness. [You] should not follow those human beings who [are] always killing other people."

"이제, 너는 평화와 행복을 만들어내는 선한 사람들을 본받아야 한다. 남을 항상 해치는 사람들을 따라선 안된다."
잠시 이마를 맞대고 소년에게 혀를 내미는 행위를 한 뒤, 웃으며 소년과 떨어지고 달라이 라마가 소년에게 한 말.
Newsweek지 2023년 4월 10일자 기사 《What Full Video of Dalai Lama Kissing Boy Reveals》

이와 관련하여 달라이 라마 한국어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는 '지그메(Jigme)'라는 이름을 가진 티베트인의 영상을 번역, 게재하였다(원본 영상 Part 1, Part 2). 총 두 편의 영상은 티베트인의 혀를 내미는 행위에 내포된 역사ㆍ전통ㆍ문화적 맥락을 설명하는 한편, 미디어에서 잘 다루지 않는 추가 영상분을 통해 당시 정황을 보다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한 관련 영상들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악의적으로 편집ㆍ유포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물론 영상 속 '지그메'라는 인물이 친(親)티베트 성향의 인사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논란의 진실》 1부 2부

비슷한 사례로 송해2017년 출연자 성추행 논란이 있다. 송해는 당시 초등학교 2학년 남학생의 성기를 만졌고, 방송심의위의 권고 조치를 받았다. 대한민국에서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어르신이 남아의 성기를 만지며 크기를 확인하는 행위는 이상하지 않은 일로 여겨졌고 송해는 1927년생이기 때문에 일회성에 그친 점과 고령의 나이, 시대상을 고려하여 큰 논란 없이 넘어갔다. 14대 달라이 라마는 1935년생이다.

4. 여담

1987년 8월1일 달라이 라마가 내민 손을 잡는 순간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두 쪽으로 쫙 갈라지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정신없이 준비해 간 10여개의 질문을 쏟아냈다. 스님, 저는 아직도 가장 힘든 것이 육체적 욕망입니다. 스님도 성적 욕망으로 괴로운 적이 있습니까? 53살의 그가 만약 없다고 한다면 나는 그냥 일어서서 나올 참이었다. 네,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저는 부처님 제자로서 그런 성적 갈등이 올 때마다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초등학생 같은 평범한 답변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느낌이 확 달랐다.” 티베트 불교 영적 지주의 입에서 나온 지극히 평범한 말이 청전의 가슴에 불칼처럼 꽂혔다. “평범의 뒤에 도사린 비범함에 말할 수 없는 믿음과 존경이 솟아났다. 아, 이분이라면 평생을 존경하며 가르침을 따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청전스님의 회상[15]
파일:external/news.donga.com/47288540.2.jpg
1956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1950년대마오쩌둥이 자신을 친아들처럼 대했고, 자신도 그를 아버지처럼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식 만찬이 열리면 마오는 자신을 옆자리에 앉혔으며 직접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여주기도 했으며 옆자리에서 골초인 마오가 콜록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늘 걱정했다고 한다. 물론 망명하는 1959년 전까지의 일이다. 마오쩌둥은 면전에서 "당신의 태도는 훌륭합니다. 그러나 종교독약과 같습니다. 첫째, 비구와 비구니독신이기 때문에 인구를 감소시킵니다.[16] 둘째, 그것은 물질적인 발전을 도외시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그런 핀잔에도 오히려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할 만큼 자신을 신뢰한다고 여겼다고 한다.[17] 당시 중국과 티벳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 글.* 한국의 국제부 기자 사이에서는 "아웅 산 수 치와 함께 절대 비판하면 안 되는 2명의 아시아인 중 하나"라는 불문율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런 내용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기사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의혹 부분처럼 이들도 인간이니 만큼 실수를 할 수 있고, 비판할 점이 아예 없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문율이 떠도는 이유는, 이들이 강력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 자의 위상이기 때문에, 그들을 비판하면 자유와 인권의 가치마저 부정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어설픈 비판을 하다가 되려 근거가 부족해 역공을 당한 사례도 있기 때문에, 굳이 비판을 한다면 사실에 근거해서 정확한 비판을 할 필요가 있다. 또 물론 이런 비판적인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기본적 업적인 자유와 인권을 위한 행동까지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의 14대 달라이 라마는 꽤 합리적인 면이 있어, 신화적인 내용을 거부하며 과학적인 논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도 어떤 특별한 신화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일개 불교 수행자로서 여긴다. 그의 가르침 또한 무조건 믿는 방식의 믿음보다는 공부, 수행, 논리, 자비를 강조한다.[19]*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5일 전인 2018년 4월 22일에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특별메시지 영상을 통해 "다가올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남북 양국간의 신뢰구축과 한반도비핵화를 위한 노력은 전세계 평화와 비핵화에 큰 본보기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덕담 메시지를 한국측에 전달했다.#전문(번역)*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인도 슬럼가에서 떠돌아다니던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한다.(관련 도서)* 티베트 왕국 시절에는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인 포탈라궁을 불편하게 여겼다고 한다. 당시에는 달라이 라마도 아직 어려서 무겁고 엄격한 분위기의 포탈라궁보다는 정원이 있고 온화한 분위기인 노블링카(티베트의 별궁이자 여름궁전)를 더 편안하게 생각했다.* 비슷한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혹시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현재 바티칸과 중국 정부의 주교 수임권 문제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라 어려울 것이다.* 2021년 3월 6일에 코로나 19 백신을 접종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메세지 -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 최근 수 년간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 위기에 관심을 갖고 전인류적 대응과 노력을 호소해왔다. 그는 그레타 툰베리 등 전세계 기후 운동가들과 함께 대응책을 모색하고 독일 저널리스트 프란츠 알트와 나눈 기후 위기 대담집을 출판하는 등 기후 위기 타개에 지속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2021년 기후 운동가들과의 대담 영상 제14대 달라이 라마, 프란츠 알트, 《단 하나뿐인 우리의 집》(민정희, 우석영 譯) 수잔 바우어-우, 툽텐 진파, 《그레타 툰베리와 달라이 라마의 대화》(고영아 譯)*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한다## 단, 레닌주의는 아니라고 한다.* 대한민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1959년 중국에서 탈출할때 가지고 온 티베트 대장경 한 질을 동국대에 기증하기도 했다.* 인도로 망명할 때 당 대종이 위구르의 기습공격에 사로잡혀 눈알이 뽑혔다고 기록되어 있는 "캄파이의 첸"이라는 역사서를 가지고 갔는데, 이는 델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달라이 라마의 통역은 제자이자 승려가 맡는데, 청전스님(한국어)와 마티유 리카르(프랑스어)가 있다.[20]* 식단으로는 주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지만 가끔식 육류를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21]

5.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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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에 관한 영화로는 장 자크 아노 감독의 <티벳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쿤둔>(Kundun)이 대표적이다. 둘 다 1997년작. <티벳에서의 7년>은 실존 인물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산악가 하인리히 하러[22]의 관점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달라이 라마 14세의 유년 시절과 중국티베트 침공, 달라이 라마 즉위까지를 다루었다. 브에나 비스타가 배급한 <쿤둔>[23]은 달라이라마의 유년시기로 시작해서 마오쩌둥과의 회동도 묘사했고,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하는 씬으로 마무리.[24]

심슨 가족에도 등장했다. 잊을 만 하면 등장하는 편. 주로 불교 신자인 리사 심슨과 자주 엮인다. 호머 심슨이 파이 그릇을 얼굴에 쓴 히어로 '파이맨'으로 활동하다가 번즈에게 걸려 약점이 잡힐 때 요구받은 게, "스프링필드에 강연하러 온 달라이 라마에게 파이를 던져 망신을 줄 것"이었다.[25] 그러나 그때 강연장에서 불교 신자인 리사 심슨을 보고 갈등한 끝에, 달라이 라마에게 파이를 던지지 않는다. 이 전개를 본 달라이 라마는 마무리를 하고선 다음 도시를 향해 날아간다. 파이를 던지려 했던 호머는 그를 보고선 "미안해요 말하는 라마!!"라고 말한다. 몽고메리 번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테레사 수녀랑 같이 스프링필드로 와서 번즈의 무덤에 침을 뱉기도 했다.

대체역사물 스탈린의 편지에서는 동아연방의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대체역사물 히틀러가 되었다에서는 독일이 티베트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수교하면서[26] 다른 국가들도 줄줄이 티베트를 정식 국가로 인정한 덕분에 티베트가 중국에 합병되는 길을 피하면서 티베트의 지도자로 남을 수 있었다. 이후 독일을 방문한 히틀러를 맞이하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한다.

6. 참고 문헌



[1] 중국에서는 '丹增嘉措(Dānzēng Jiācuò)'라고 표기하지만, 당연하게도 티베트 내부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티베트는 티베트어를 쓰고 이 표기는 그저 중국어 맥락에서 쓰이는 가차 표기이기 때문.[2] 출처: #1 #2[3] 티베트 망명정부는 국가가 아니므로 중국과 인도에서 지정한 명목상의 국적은 중국이거나 인도일 것이지만 난민에게는 난민 여권이 발급되므로 이렇게 서술.[4] 달라이 라마들은 출가할 때 승단으로부터 공식적인 이름을 받는다. 티베트의 옛 전통에 따르면 이름이 길수록 지위가 높다. 현재는 고위승려들만 이처럼 긴 이름을 받는다. 너무 길어서 공문서에도 안 쓰며, 달라이 라마를 위해 행하는 기도의식 중에만 사용한다. 여담으로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거장 감독인 장 자크 아노의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 이름에 담긴 의미가 언급된다.[5]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전대 달라이 라마를 옆에서 모셨던 승려들이 던지는 어려운 질문들을 모두 통과해야 하고, 몸에 특별한 징표가 새겨져 있어야 한다.[6] 인도 다람살라에 위치한 티벳망명정부의 명칭.[7] 중국은 중국천주교애국회를 통해 가톨릭을 통제하고 있으며 주교도 독자적으로 서품하지만, 공산당에 의해 서품된 주교라도 교황청에 순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교황청으로부터 사후 승인을 받은 주교는 합법적인 주교로 간주된다.[8] 이와 비슷한 사례로 위구르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레비야 카디르의 2012년 야스쿠니 신사 방문을 들 수 있다.[문서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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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우주생성되고 존속 및 유지되다가, 무너지고 파괴되어가고, 결국에는 소멸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만물의 생성소멸 과정을 설명하는 용어다.[11] 과학자들은 의식을 뇌의 생리화학적 작용의 결과물로 보는 물질주의에 입각하여 윤회의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지만, 불교에서 의식은 물질과 긴밀히 상호작용하되 별도로 구분되는 심신이원론적 성격을 갖는다. 단, 불교에서 말하는 의식과 물질의 심신이원론적 성격은 현상적 차원에 국한된다. 인도 상키아 학파나 데카르트 등의 심신이원론과 달리 불교에서는 궁극적으로 의식과 물질 또한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가 아닌 무아, 공이라고 해석한다.[12] 여기서 '계시 문학'이라 함은 불보살같은 초월적 존재나 비(非)인간으로부터 경전을 직접 전달받았거나,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경전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의 묵시 문학처럼 '종말론적 문학'(apocalyptic literature)의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13] 불교인(특히 대승불교의 보살)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갖는 내적인 결심과 그에 따르는 힘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일반적인 용어 중 '사명', '비전(vision)'과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다.[14] 다만, 교황은 '교황'이라는 명칭이 서브 타이틀이다. 원래는 (가톨릭 교회 로마 교구의) '로마 주교'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 로마 주교에게 수위권이 있기 때문에 교황의 역할을 맡는 것.[15] “화날 때 참고, 착한 길 애쓰는…그게 행복의 길” - 한겨례[16] 마오쩌둥은 "사람이 많아야 국력이 커진다(人多力量大)"며 출산을 장려했다.[17]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P.403 참조.[18] 아웅 산 수 치의 경우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차별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고 방관자적인 입장을 보인다며 비판을 받기도 한다.[19] 달라이 라마와 현각스님과의 대화 참고. #1, #2, #3, #4, #5[20] 달라이 라마의 영어가 상당히 유창한 편이라 영어의 경우 통역 없이 말한다.[21] 사실 인간은 적절한 육류 섭취 없이 채식만 고집하면 신체 건강을 되려 해칠 수 있다. 육식을 금기시하는 승려도 결국은 인간이므로 예외가 아니다.[22] 나치 독일 부역 혐의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개봉 당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영화 내에서 주인공의 독백 대사 중에 나치로써 일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23] 영화 제작 당시 모기업인 디즈니와 중국 정부의 갈등이 있었다.[24] 개봉 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에 몇번 출연하였던 그의 모친이 유명을 달리하여, 감독은 그녀를 추모하는 텔롭을 마지막에 넣는다.[25] 중국 지배자들의 심기를 거스른다는 이유.[26] 여기에 SS가 티베트군의 현대화를 위한 원조를 하고, SS의 교관들이 티베트군의 훈련을 위해 군사고문단으로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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