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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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湖南事件
Hunan Incident
파일:이장백.jpg
한때 사이가 좋았던 리쭝런, 장제스, 바이충시 삼인방

1. 개요2. 배경3. 전개
3.1. 루디핑의 해임3.2. 중앙의 대응3.3. 1차 장계전쟁의 발발
4. 결과5. 참고 문헌6. 관련 문서

1. 개요

1929년 2월 21일, 우한 정치분회 주석 겸 군사 참의원장 리쭝런이 호남성 주석 루디핑을 무단해임하여 장제스의 중앙정부와 충돌한 사건을 말한다. 이로 인하여 1차 장계전쟁이 폭발하여 본격적인 반장전쟁이 시작되었다.

양호사변이라고도 한다.

2. 배경

1928년 국민당의 2차 북벌로 중국이 통일된 직후, 장제스는 리쭝런, 펑위샹, 옌시산 등 중국의 실력자들을 모아 편견회의를 개최, 수백만에 달하는 군사를 감축시켜 지나친 군비 지출을 줄이고 절약된 예산으로 교육과 경제개발에 투자하는 한편 군인들을 노동자로 훈련시켜 중국을 공업화하자고 제안했다. 장제스의 주장은 명분상 반대하기 힘든 주장이었기 때문에 군벌들은 이에 동의했지만 자신들의 정치권력의 기반이 되는 군사력을 감축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는 불만이 많았다. 또한 장제스는 각 지방의 정치분회를 폐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중앙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했고 이 때문에 군벌들의 불만은 가중되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불만을 표출한 것은 계계군벌의 수장 리쭝런이었다. 리쭝런은 편견회의 결과로 군사 참의원장에 임명되었으나 군축과 정치분회 폐지를 통한 중앙의 권력 집중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병력이 13개 사단으로 감축되었다고 서류상 보고만 올렸으나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나 점검은 없었다. 역시나 광서파인 바이충시도 불만을 품고 제4 편견구 총지휘에서 사직해버렸다.

한편 호남성은 원래 8군 군장이며 상계군벌탕성즈국민당의 1차 북벌 이후 장악한 곳이었으나 영한합작 과정에서 안휘성 정부를 멋대로 수립하며 세력확장을 위해 안하무인으로 행패를 부리던 탕성즈는 분노한 계계군벌에게 토벌당했고 이후 호남 지역에서는 계계군벌들이 강성한 상태였다. 탕성즈의 몰락 이후 상계군벌의 중심이었던 청첸은 1928년 5월, 난징 정부에 항복했고 이후 잔여 상계군벌은 4집단군으로 편성되었는데 장제스는 계계군벌이 호남성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루디핑을 호남성 주석에 임명하여 루디핑, 담도원을 비롯한 상계군벌을 지원하였다. 이 때문에 호남성에 주둔하고 있던 섭기, 하위를 비롯한 계계군벌들은 이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었다.

3. 전개

3.1. 루디핑의 해임

그러던 중 난징에 체류하던 리쭝런이 2월 21일 갑자기 난징을 떠나 상하이로 떠나면서 우한정치분회 주석 명의로 장제스와 펑위샹 앞으로 통전을 보냈다. 그는 제4집단군 2군장 겸 호남성 정부 주석 루디핑(魯滌平)이 제50사단장 담도원과 결탁하여 집단군의 명령을 위반하여 권한을 남용해 행정체계를 문란하게 하고 세금을 착복하였다고 비난하며 주석직과 사단장직을 해임하고 문제의 부대를 해산시키는 한편 35군 군장 허젠을 새로 호남성주석으로 임명했으니 중앙의 처분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호남 사건이다. 리쭝런의 이러한 행위는 정치분회가 인사권을 행할 수 없다는 오중전회의 결의와 편견회의의 의결 없이 군대를 움직일 수 없다는 편견회의의 결의를 모두 위반한 것이었다.

리쭝런의 행보는 루디핑 무단 해임에 그치지 않고 부하인 제52사장 섭기(葉琪), 제15사장 하위(夏威)의 부대를 장사로 출동시켜 루디핑을 강서로 내쫓아 버리고 장사를 점령했다. 루디핑은 자신이 해직되었다는 사실을 2월 19일에 알고 2월 21일 성무회의를 소집하여 장사로 진격하고 있던 섭기와 하위에게 30만 원의 군비를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달래려 하였으나 섭기와 하위가 말을 듣지 않으므로 부득이하게 장사에서 철수해야 했다. 루디핑은 이러한 사실을 중앙정부에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리쭝런이 루디핑을 쫓아낸 것은 루디핑이 과거 탄옌카이 휘하의 호남 군벌 소속으로, 장제스가 계계군벌이 호남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루디핑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장제스에 대항하기 위해 재빨리 호북을 장악하여 양광과 호북을 연결하여 기반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리쭝런은 훗날 회고록에서 장제스가 루디핑에게 1929년 2월 많은 무기를 주어 호북의 4집단군과 4집단군의 본거지인 광서가 연결되는 것을 막았던 것이 호남사건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3.2. 중앙의 대응

이에 국민정부는 리쭝런의 행위가 정치분회의 명의로 특정구역의 관직을 임명할 수 없다는 정치분회조례의 규정에 어긋나며 편견회의 허가 없이 부대를 동원할 수 없다는 편견대강의 규정의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부는 2월 28일 차이위안페이(蔡元培), 허잉친, 리쭝런에게 광서군의 호남 침입사건을 조사케 하였다. 차이위안페이는 사태를 조용히 해결하기 위해 리쭝런이 섭기, 하위의 움직임을 사전에 움직이지 못했던 것으로 처리하였고 국민정부는 허젠의 호남성 정부 주석을 인정하는 대신에 각 부대에게 원래 주둔지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리쭝런은 상하이에서 차이위안페이, 우징헝과 회동하여 중앙에서 우한 정치분회의 결의를 양해해달라는 의사를 밝혔으나 차이위안페이와 제4집단군 참모장 장화보(張華輔)와 협상한 후 우한 정치분회의 취소를 포함하여 중앙의 모든 조치에 복종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했고 바이충시도 자신은 호남 사건을 사전에 몰랐으며 우한 정치분회는 중앙에 절대 복종할 것이고 섭기, 하위의 부대도 즉시 원 주둔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제스도 직접 상하이에서 리쭝런을 만나 중앙의 위신을 고려해 잘못을 인정하고 루디핑에 대한 군사행동을 중단하며 행정원장 탄옌카이에게 사과하는 수준으로 일을 끝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잘 풀리는 듯한 협상은 리쭝런이 집단군 내부의 군부대 이동이 편견회의 결의에 위반되지 않으며 성정부 주석직 처분도 정치분회의 정당한 권한이라 주장하며 장제스가 제시한 조건을 거부하는 바람에 결렬되고 말았다. 19군 군장 겸 우한 정치분회 대리조석 호종탁(胡宗鐸) 역시 3월 10일 리쭝런, 리지선에게 같은 내용의 전문을 보내 리쭝런의 주장을 옹호했다.

3.3. 1차 장계전쟁의 발발

섭기, 하위의 부대가 군사행동을 계속하며 강서성 경계지역에 이르렀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장제스는 입장을 강경하게 선회하여 리쭝런에게 속히 난징으로 돌아와 사태를 해결할 것을 종용하며 중앙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군사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한편 리쭝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정리하기 위해 장제스의 요청을 받은 리지선이 3월 12일 난징에 도착했다. 리지선이 중재를 시도하자 장제스는 지방이 중앙에 복종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정치적 해결방안이 있으면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고 이에 따라 3월 13일 정치회의는 우한 정치분회에서 루디핑 파면 결의를 주도한 호종택, 호북성 주석 장지본(張知本), 장화보 3인에 대해 정치분회 위원직 면직과 중앙감찰위원회의 조사처분이라는 가벼운 처분을 내리고 리쭝런에 대한 조사는 면제해주었다. 사실 3월 15일에 정치분회가 해산되기로 결정되어 있었으므로 호종택, 장지본, 장화보에 대한 처벌은 안한 것이나 다름 없는 가벼운 처분이었고 이 때문에 명분상의 처벌만 하여 중앙의 처분이 경솔하였다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였다.

하지만 우한 정치분회는 장제스의 유화책을 무시하였다. 이 때문에 호남에서의 전투는 계속되어 3월 14일 담도원 부대를 추적하던 섭기의 부대가 상덕에 진추하여 담도원은 원강(沅江), 대용(大庸) 지역으로 퇴각했다. 이리하여 장제스는 3월 18일 탕성즈를 호북의 바이충시 부대에 파견하여 바이충시의 군권을 제한하게 했다. 3월 20일 탕산에 도착한 탕성즈는 3월 21일 기자회견을 개최, 계계군벌의 최근 행태를 좌시할 수 없어 중앙의 허가를 얻어 군대를 접수하러 왔다는 입장을 밝히고 호북의 부대에 자신의 옛 부하들이 많아 접수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호기롭게 장담했다.

3월 21일 장제스는 리지선이 우한과 비밀리에 무전으로 연락하고 있다는 혐의로 탕산에 연금하고 제10차 편견회 상무회의를 개최하여 섭기와 하위의 군직을 면직하였다. 또한 3월 26일 리쭝런, 리지선, 바이충시를 면직하고 조사처분하는 한편 계계전체에 대한 토벌령을 내리면서 1차 장계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장제스는 또한 천밍수를 신임 광동성 정부주석으로 임명하고 천지탕을 광동성의 군사령관으로 임명하면서 리지선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던 월계군벌의 중심세력을 천밍수와 천지탕에게로 옮겨버렸다. 이후 천밍수와 천지탕은 모두 장제스를 옹호하였고 천지탕이 팔로토계군 총지휘에 취임, 반장전쟁 내내 난징 측에 서게 된다.

4. 결과

1차 장계전쟁에서 계계군벌은 서산회의파와 합작하여 치열하게 맞섰지만 장제스에게 진압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장제스의 강경책에 분노한 펑위샹1차 장풍전쟁을 일으키고 왕징웨이 등 개조파까지 꼽사리끼면서 장제스에 대항한 반장전쟁의 도화선에 불이 붙고 만다.

한편 광동파의 거물인 리지선이 감금되면서 그 뒤를 대신하여 천밍수, 천지탕이 광동의 새로운 실력자로 떠오르게 되면서 정권과 군권을 양분하게 된다.

5. 참고 문헌

6.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