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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8 21:39:26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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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신 정부(독일 제4제국)
2.1. 내각
2.1.1. 전시 내각2.1.2. 첫 내각
2.2. 군부
2.2.1. 육군2.2.2. 해군
2.2.2.1. 해군 항공대
2.2.3. 공군
2.3. 황실2.4. 왕당파2.5. 기타
3. 나치 독일(독일 제3제국)4. 스페인5. 영국
5.1. 정계5.2. 육군5.3. 해군5.4. 공군5.5. 기타
6. 이탈리아
6.1. 반파시즘 국민해방위원회
7. 오스트리아8. 체코슬로바키아
8.1. 슬로바키아
9. 프랑스
9.1. 급진당9.2. 사회당9.3. 군부9.4. 기타
10. 바티칸11. 폴란드12. 핀란드13. 소련14. 자유 러시아15. 미국16. 헝가리17. 일본
17.1. 황실17.2. 정계17.3. 육군17.4. 해군
18. 인도19. 대한민국20. 유고슬라비아21. 에티오피아22. 알바니아23. 네덜란드24. 벨기에25. 루마니아26. 중국
26.1. 중화민국(국민당)26.2. 중화연방공화국(산서군벌)26.3. 중화인민공화국(공산당)26.4. 기타
27. 우크라이나28. 버마29. 필리핀30. 베트남31. 인도네시아

1. 개요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가상 인물은

2. 신 정부(독일 제4제국)

2.1. 내각

2.1.1. 전시 내각

2.1.2. 첫 내각

자민당과 사민당의 연립 내각으로 총리는 더 많은 득표를 한 자민당에서 가져갔다.[1] 다만 첫 내각이고 국민 통합의 의미를 담아 기민당에 알짜중에 알짜인 경제부 장관 자리를 넘겼는데 아들과 같은 자리에 서기 싫다는 이유로 얄마르가 거절[2]해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가 경제부 장관이 됐다.

2.2. 군부

2.2.1. 육군

2.2.2. 해군

2.2.2.1. 해군 항공대

2.2.3. 공군

2.3. 황실

2.4. 왕당파

2.5. 기타

3. 나치 독일(독일 제3제국)

3.1. 콘도르 군단

3.2. 나치당

3.3. 국방군

3.4. SS

4. 스페인

4.1. 국민파(프랑코 정권)

4.2. 공화파(스페인 제2공화국)

5. 영국

5.1. 정계

5.2. 육군

5.3. 해군

5.4. 공군

5.5. 기타

6. 이탈리아

6.1. 반파시즘 국민해방위원회

7. 오스트리아

8. 체코슬로바키아

8.1. 슬로바키아

9. 프랑스

9.1. 급진당

9.2. 사회당

9.3. 군부

9.4. 기타

10. 바티칸

11. 폴란드

12. 핀란드

13. 소련

이후 쿠르스크 전투에서 패퇴하고는 2차 적백내전이 시작됐을 때 모스크바 레이스 초기에는 움직이지 않았으나 보로실로프와 부됸늬의 기병 돌격에 자극받고, 장군이 부하를 살리는 결정을 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냐는 리스테르의 말까지 떠올리면서 모스크바 총참모부의 명령을 따르겠다고 하며 자유 러시아군에 맞선다. 이후 시간벌이를 하고자 돌격했던 보로실로프과 부됸늬가 죽기 직전까지 몰리자 둘을 구출하는데 성공하고, 적백내전에서 군공을 세워 소련의 영웅이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디트리히는 폴란드 출신이었던 로코솝스키가 소련의 영웅이 된 것이 원 역사의 소련보다 희망적인 미래의 전조가 되기를 바랐다. 2차 적백내전 승리 이후 개선식에서 로코솝스키가 주코프와 함께 나란히 최선두에서 말 타고 행진했다는 서술이 있는 것을 보아 2차 적백내전 때 큰 전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14. 자유 러시아

15. 미국

16. 헝가리

17. 일본

17.1. 황실

17.2. 정계

17.3. 육군

17.4. 해군

18. 인도

19. 대한민국

20. 유고슬라비아

21. 에티오피아

22. 알바니아

23. 네덜란드

24. 벨기에

25. 루마니아

26. 중국

26.1. 중화민국(국민당)

26.2. 중화연방공화국(산서군벌)

26.3. 중화인민공화국(공산당)

26.4. 기타

27. 우크라이나

28. 버마

29. 필리핀

30. 베트남

31. 인도네시아



[1] 다만 연립 내각인 것 치고는 사민당이 얻어간게 그리 많지는 않았다. 8개 부처 중에 2개(노동부, 보건부)만 가져갔다.[2] 대신에 얄마르 본인은 라이히스탁의 의장이 되었다. 기민당이 야당이긴 해도 원내 1당이고, 얄마르 본인은 전시내각 재상(부 장관)이었던 데다 전쟁에서의 조속한 승리를 위한 거국적인 협치 차원에서 자민당-사민당이 양보한 듯.[3] 빌리 브란트의 본명은 헤르베르트 에른스트 카를 프람(Herbert Ernst Karl Frahm)으로, 원 역사에서는 1948년 국적 회복하면서 노르웨이 망명 시절 가명인 빌리 브란트로 개명하였다. 주인공은 서독에서 빌리 브란트의 정적들이 브란트를 비판할 때 '프람'이라 불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4] 농담이 아니라 이 사람이 정계에서 실각한 이유가 염문설이었고, 그 염문설이 일어나는 걸 도왔던 비서가 동독의 스파이였다.[5] 그렇지만 7천만 인구의 독일과 거의 똑같은 숫자를 사망자까지 합쳐서 전쟁에 동원해온 폴란드에게 더 많은 병력 동원을 요구하는 게 제정신으로 할 소리냐며 독일이 지금껏 힘겹게 쌓아올린 외교적 지위를 다 말아먹을 거냐는 디트리히 샤흐트의 일갈에는 아무런 반박도 못하는 등 외교적, 대전략적인 관점에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6] 독자들이 봐도 에르하르트에 대한 디트리히의 역공을 납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작중 시점의 폴란드 인구는 3천만 남짓이었는데 남녀 상관없이 사망자를 포함해서 동원한 누적 총병력이 300만에 육박했기 때문.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도 한 국가가 전체 인구의 10퍼센트, 그것도 가장 경제활동이 활발한 세대를 중심으로 전쟁에 동원하면 승전하더라도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고, 패전하면 그대로 쫄딱 망하는 거라 어떻게 되든 나라 꼴이 제정상일 수 없을 만큼 피폐해지게 된다. 1차대전 전후 프랑스가 딱 그 모양이었다.[7] 아시아로 가면서도 자신을 속인 것에 앙심을 품고 있던 클레멘스가마감 재촉하는 편집자마냥작전 멀었냐고 계속 갈궜기에 아예 계급장 때고 한판 붙기 직전까지 가지만 카리나가 기세만으로 둘을 제압해버린다.[8] 실제 역사에서 귄터 라이히헬름은 작전, 참모 능력이 뛰어나 일반참모들 중 가장 어린나이(만 30세)에 대령으로 진급한다.[9] 시간 없다면서 정찰기 타고 곧바로 전장 둘러본다면서 날아갔다.[10] 당연히 할더는 정치적으로 매장당하면서 튀어버리고 이후 의회에서는 선거 사흘 전에는 일체 선거운동이나 유세를 하지 말자는 법안이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11] 실제 역사에서도 모델은 독소전 초반에 구데리안 기갑집단에 배속되어 맹활약하며 자연스레 구데리안 라인에 편입되었다.[12]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파울루스는 원 역사에서 라이헤나우와 지휘관-참모로 좋은 콤비를 이뤄서, 라이헤나우가 남부집단군 사령관이 되면서 후임 6군 사령관에 그를 추천했다. 그러나 그는 전임자가 내린 학살 강조명령을 폐기함으로서 라이헤나우의 인종주의에 공감하지 않음을 드러냈고, 또한 "보헤미아의 상병 따위를 위해 원수가 목숨을 버리라고? 그럴 순 없다."라고 말하고 소련에 항복한 인물이니 작중 내전에서 폭주하는 라이헤나우를 사살하고 항복한 것은 상당히 개연성 있는 전개라고 할 수 있다.[13] 원 역사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도 상황이 나빠지자 총통에게 퇴각을 제안했다. 언제 발을 빼야 할지 기본적인 감각이 있는 것.[14] 프리드리히 대왕은 독일의 장군들 중 야전에서 기마포를 본격적으로 운용했다고 한다.[15] 왕당파 군사정부가 뭘 제대로 하기도 전에 신문을 뿌려 여론을 끌어들였다.[16] 이때마다 "부관은 상관에게 실망했다."라는 멘트가 나오는데 독자들은 나중에 베어가 자서전 제목으로 쓰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작가는 시간이 흐른 뒤에 위의 멘트를 "부관은 더 이상 실망할 게 남지 않았다."로 업그레이드하였다(...)[17] 스탈린그라드 포위망 탈출 이후 만슈타인과 독대했으나 오히려 친나치라 소문났던 밀히 원수가 자신의 보고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6군에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베어는 이때 잠시 밀히 사령부에 배속된다. 다만 베어는 자신이 모신 원수에 파울루스는 제외하는데, 자신이 근무할 당시 파울루스는 상급대장이었고, 무엇보다 파울루스를 원수로 진급시킨 일련의 과정도 6군을 저버리기 위한 히틀러의 강제적인 조치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8] 모델과 후베 모두 각자가 이끄는 기갑 야전군에서 구식 4호 전차와 기계화보병대 및 88mm 대공포 등의 각종 대전차화기로 추이코프와 리스테르의 기갑부대를 방어할 모루를 만들고 신형 4호 전차만 따로 빼내서 편성한 부대를 망치 삼아 그들의 기갑부대 측면을 공격한다.[19] 이때 이 기관총을 모델 원수가 직접 들어준다.[20] 둘 다 군인(출신)이고 정치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디트리히는 조국을 위해 싸우는 군인들이 한 명이라도 더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그 능력을 발휘하며 노력하고 있고, 맥아더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 전술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면서도 군인들이 더 많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전투로 몰아넣고 되니츠의 승전조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이용하였다.[21] 수송선들이 쾅쾅 터지는 와중에 진형 한가운데 유보트가 들어와 있는 걸 본 무장 수송선들끼리 팀킬을 하며 난장판이 되었다. 당연히 구축함대가 중앙에 시선을 집중시킨 사이 외곽의 유보트들이 쏜 어뢰에 구축함 세 척이 날아갔고, 뒤늦게 피했지만 난장판 상태의 수송선들이 몽땅 얻어맞고 20척 중 16척 격침, 1척 손상으로 연료 유출 피해를 입었다.[22] 에리히 하르트만,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한스 울리히 루델로 실제 역사에서는 셋이 합쳐서 700기를 박살낸 공전절후의 에이스들이었으나 당연히 해군 항공대에 오는 시점에서는 원래 역사마냥 실적도 한심한데다 사고만 치는 개노답 삼형제 꼬라지였기 때문.[23] 이를 위해 도발문을 따로 준비했으며, 상부에선 일본군의 주의를 필리핀에서 돌려놓기 위해 아예 어그로를 제대로 끌라는 목적으로 해군항공대에 공습 성공 시 도라 도라 도라를 외칠 것을 지시했다(...).[24] 이때까지 손실한 기체가 총 7기라고 한다.[25] 실제로 이 소설에서 Me262가 등장했을 때 Bf109 5대를 줘도 이놈하고 안 바꾼다는 원 역사의 발언을 그대로 한다.[26] 갈란트에게는 안 들렸지만 베이더가 담배 문 미키마우스를 보고 취향 한번 희한하다고 한다.[27] 영국 본토 전투에서 영국 육군과 독일 육군이 작전권을 두고 몇 시간째 말싸움을 하자 둘이서 따로 떨어져서 포커를 치기도 했다.[28] 친위대 4명을 10초만에 싹 다 제압한다.[29] 주인공은 슈코르체니의 SS 이전 행적을 몰라서 저 인간이 왜 리히트호펜과 함께 왔지?라고 어리둥절해했다.[30] 단 예쇼네크는 죽이거나 인질로 잡아가지 않고 꽁꽁 묶은 채 현장에 방치하고 도망쳤다.[31] 당시 내전을 통해 리히트호펜 위의 공군 인사들이 싸그리 갈려나갔기 때문.[32] 이때 힘러를 만나면서 네 밑에서 일할 예정이었다 불발되었다고 말한 것을 보아 여기서도 원 역사처럼 SS로 이적하려 했는데 직전 독일 내전이 터져서 정비사로 지내며 상황 보다가 신정부에 항복했던 것으로 보인다.[33] 디트리히가 직접 특 A급 타겟이라고 지명한다.[34] 보다 정확히는 폭격 후 돌격해온 이탈리아 군에게 저항하다 전사했다. 즉, 포로로 잡힐 수도 있었는데 죽여버린 것인지라 이탈리아는 빅똥을 밟은 거나 마찬가지...[35] 국민당의 부패 정경들과 군벌들이 한창 전쟁과 학살 중인 일본군에게 지원받은 독일 무기를 팔아넘기고 있었다.[36] 원 역사 중국이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에 의해 너프를 먹었는데도 그 정도인데 통일 중화민국이었다가는 독일은커녕 미국조차 감당할 수 없는 국력이 되고 장제스의 독재가 이어지는 중화민국이 민주화될 가능성도 불확실했던 것도 원인이었지만, 국민당에 대한 지원을 끊자고 결심한 건 이 때문이다.[37] 장제스는 독일이 중일전쟁 초반 미국이 만주와 화북을 일제에 넘기려 했던 걸 독일이 막아서 무마되었음에도 이 사단이 났으니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미국의 도움을 더 받아야겠다고 결심해 미국 고문단을 들였는데, 하필 조지프 스틸웰이었고(...) 스틸웰의 삽질을 참다 못해 1944~1945년 사이에 웨드마이어로 교체한다.[38] 일본과의 전쟁은 1942년에 끝났지만 군벌들과의 전쟁은 1945년 8월 2일에 산서군벌, 공산당과의 휴전으로 마무리된다.[39] 독일 유대인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대규모 유대인 구역이 만들어지자 유럽의 반유대주의를 피해 유럽 전역의 유대인들도 단치히와 포젠의 유대인 마을로 이주했다.[40] 중대장까지 안개를 틈탄 기습으로 전사하는 등 난리가 아니었다. 본작에서는 주인공이 직접 전투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을 전투.[41] 같은 파시스트 빌런인 무솔리니, 라 로크보다 훨씬 광기 어리고 사악한 모습을 보여주며 작중에서 파시스트 취급받는 일제도 광기는 못지않지만 정작 위엄이 너무 부족해서(...) 공포감은 훨씬 덜하다.[42] 이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이라 교황청이 정치에 직접 관여하던 시절이고,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는 최후의 권위주의 교황이라서 더더욱 그랬다.[43] 당시 오스트리아군은 폴란드 침공을 위해 폴란드 국경지대로 가있어서 텅 비어 있었다.[44] 실제로 지휘관들 상당수가 양다리를 걸치기는 했지만 전부 그런 것도 아니었고 안 그래도 낮았던 장병들의 사기 저하와 지휘체계 혼란으로 인해 오히려 부작용을 끼쳤다.[45] 다만 정식으로 항복한 건 폭격 명령이 떨어진 리히트호펜 직속세력뿐이고 나머지는 전쟁 끝난 이후에야 항복했는데, 루프트바페가 사실상 괴링이 만든 조직이라서 그렇다.[46] 괴벨스가 시대 최고 최악의 전채이기는 하나 하필 상대인 주인공이 2020년대 사람이라서 80년 뒤의 여론전을 알고 있었고, 괴벨스의 수법이 워낙 유명한 만큼 파훼법도 다 나와서 괴벨스의 여론전을 어떻게 카운터쳐야 할지 주인공이 잘 알고 있었지만 괴벨스는 주인공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여론전에서 패배하였다.[47] 이때 만슈타인이 눈이 뒤집어져서 자기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주인공을 지지할테니 저 할더 놈이 국방장관이 되는 일은 일어나선 안된다고 말한다.[48] 공화파를 학살한 이유를 말할 때 가톨릭 사제들을 살해하고, 톨레도에서 호세 모스카르도 대령의 아들을 인질로 해 협박한 대가라며 답한다.[49] 탄약이나 무기는 그럭저럭 갖췄지만 병사들을 입히고 먹일 피복과 식량이 부족하고 부상병들을 치료할 의약품이 없어 가벼운 생채기에도 죽을 정도였다.[50] 이때 안드로포프와 전화로 나누는 대화는 매우 인상적이다. 짧게 요약하자면 태어난 고향은 관계 없이 자신은 소비에트 연방과 인민의 장군이고 지금 연방이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기에 싸우겠다는 내용.[51] 여기서는 보르본 왕정복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52] 디트리히와 독소전 때 대담할 당시 스페인이 민주화된 뒤 떳떳한 위치에서 독일군의 스페인 내전기 전쟁범죄를 규탄할 날이 올 것이라 말했는데 그게 이루어진 것. 다만 당시 독일이 정식으로 사과했다는 언급은 없는 걸 보아 민간 활동으로 끝난 모양이다.[53] 정확히는 상식적으로 프랑스가 영국을 칠 가능성이 낮았기에 그런 것이지만 프랑스는 그의 생각보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54] 이 과정은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연상케 한다.[55] 당연히 해협함대 전원에게 다 죽으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었지만 반대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56]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전쟁성 회의 중에 같이 카드 게임 할 정도로 친해진다.[57] 오스트리아 국경수비대는 경찰이다. 군대가 경찰에게 진 것이다.(...) 당시 오스트리아군은 폴란드 침공 때 동원하기 위해서 폴란드 국경선에 간 상태라 텅 비어 있었고, 이 때문에 나치와 신정부 모두 오스트리아를 방치하다시피 했다.[58] 그 히틀러도 이탈리아군이 신정부군에 맞서 싸우는 건 어느 정도 해줄 줄 알았지 신정부군과 싸우지도 않고 오스트리아와 괜한 분쟁을 빚어서 오스트리아를 나치에서 이탈시키게 만들 거라는 예상을 하지는 못했다.[59] 국경수비대가 티롤 문제로 이탈리아군과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에글제어 장군을 비롯한 오스트리아 서부는 신정부군에 항복하고 신정부군의 지원을 받아 전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티롤 폭격과 빌헬름 황자 전사 이후 나치당이 강하게 통제하던 동부에서 대폭동이 일어나 나치 간부들이 주민들에게 살해당한 뒤 오스트리아 전역이 신정부군에 항복했다.[60] 히틀러는 이탈리아군이 신정부군을 상대로 싸워주기는 할 거라 생각하고 잠깐 티롤을 넘긴 뒤 내전을 승리로 이끈 뒤에 무솔리니를 손봐주려 했지만, 그 히틀러조차 이탈리아군이 신정부군과 하라는 싸움은 안 하고 오스트리아에 오자마자 티롤을 이탈리아령으로 선포하는 사고를 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61] 수송선 16척 격침에 1척 손상으로 연료 누출, 구축함 3척까지 격침당하고 단 한 척의 유보트도 잡지 못했다.[62] 이를 위해 헝가리, 독일, 영국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았다.[63] 사격은 그녀의 할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 언급된다.[64] 작중 묘사로는 클레멘스와 검열삭제도 한듯하다. 클레멘스의 쇄골에 상처와 키스마크가 가득했다고[65] 사실 암시는 있었는데 디트리히를 맞이할 당시 흉부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질환이 왔었던 듯 하며 긴장이 풀리자 그대로 영면한 것으로 보인다.[66] 핀란드는 미국처럼 여러 번 해도 한 번으로 취급한다.[67] 사실 시모 해위해는 스코프를 안 사용해서 근접 사격을 하거나 21세기 기준으로 지정사수 정도의 저격을 한 경우가 많았다.[68]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갈라먹지 않았고 학살 책임자였던 베리야가 일찍 숙청당해서 소련이 폴란드 지식인들을 굴라크로 끌고가기만 하고 카틴 학살은 하지 않았다는 대체역사[69] 중근대 동유럽 최강 기병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울란카자크 기병이 수천~수만 단위로 충돌한 거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병전이었다는 몽골-금 전쟁조차 능가하던 규모였던 걸로 보인다. 전근대적인 검과 창을 다루는 기병도 있었고 총 든 근대 기병, 기관총 등 기갑 과도기의 기병도 있었다고.[70] 정확히는 야전군 대부분을 틀어쥔 게오르기 주코프[71] 실제 역사에서도 로코솝스키는 NKVD에게서 망치로 발가락을 맞는 고문을 당해 전용 구두를 신어야 겨우겨우 절뚝거리며 걸어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72] 이때 야코프는 이대로 아버지가 가족을 희생해가며 만들었던 소련이 사라진다면 우리 가족의 희생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생각한다.[73] 정황상 알렉세이 카플레르로 추정된다.[74] 그 외에 사이 좋은 오빠인 야코프만 최전방에 나서고 망나니인 바실리는 후방에서 감싸고 도는 것에도 불만이 있었다.[75] 스베틀라나는 1926년생으로 본작 쿠르스크 전투가 일어난 1942년 당시 18세였다.[76] 본편에서는 4살 차이라 나오지만 나데즈다 1901년생, 야코프 1907년생으로 6살 차이다.[77] 스베틀라나의 어머니 나데즈다는 1932년 스탈린과의 불행한 결혼생활로 우울증이 와서 우발적 자살을 했다. 스베틀라나가 고작 6살일 때의 일이다.[78] 스탈린이 자살하고 즈다노프가 암살당하면서 극심한 행정 공백이 생겨 만회하느라 고생한 것도 있다.[79] 당시 소련은 자유 러시아와 내전이 끝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만주로 진격한다면 독일을 위시한 연합국과 다시 싸워야 된다. 즉, 만주 진공 자체가 멍청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으며 제88국제여단이 얼마나 현실을 볼 줄 모르는지 알 수 있는 대목.[80] 참고로 이 사건은 종군기자들에 의해 취재되어 후에 자유 러시아가 소련 서기장이 탄 비행기를 격추시킨 사건으로 소련과의 평화협정이 뒤집어지려는 찰나 독일인들에게 반전의 분위기를 일깨우는 기사로 쓰이게 된다. 나치의 수용소를 떠올리게 해서 더욱 더 거부감이 들게 만들었다고.[81] 아마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우는 것이지만 적어도 책임은 질 수 있어서 기뻐서 그런 것일 수도.[82] 만약 3선을 해냈다면 죽어서 내려오게 될 것 같았다고. 원 역사의 FDR이 4선 직후 병사한 걸 생각해보면 제대로 맞아떨어진다.[83] 더 올라갈 수 있고, 권력을 더 오랫동안 쥘 수 있음에도 나아가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둔 채 물러났기 때문.[84] 이때 당선될 당시에도 주목받지 못했는데, 보통 미국 대통령 대선이 있는 해는 타임지에서 올해의 인물로 거의 해당 선거의 당선자가 선정되는데, 이 당시에는 당연히 연합군의 실질적 수장 역할인 디트리히가 차지했기 때문...[85] 트로츠키 특유의 달변으로 정당성을 말하려 했으나 바로 잘라버린 뒤 빨갱이라면서 일갈했다.[86] 아예 탱크로 트로츠키를 밀어버렸다![87] 물론 공세의 한축을 담당하던 서북군벌이 하라는 대일 공세는 안하고 공산당 잡는다는 핑계로 자신들의 병력을 대일 공세에서 빼버렸다는 변명거리는 존재했다. 이는 장제스도 알고 있어 후에 서북군벌이 공산당에게 밀리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아 그들이 공산당에게 멸망하게 하는 방식으로 보복했다.[88] 정확히는 그랜드슬램에 독일군의 Friz X 유도폭탄 키트를 달아놓은 영-독 합작버전 병기다, 유사한 현대의 무기체계로는 JDAM 키트 장착 벙커버스터 정도일 듯.[89] 단,방공호 폭격 작전을 실시하자는 말과 함께 해당화가 끝나고, 그 후 다음 화에서는 폭격으로 폐허가 된 방공호만을 보여 주며 간접적으로 사망했다는 묘사만 나올 뿐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아깝다[90] 작가의 후기에 따르면 저 주옥같은 말을 처음부터 창작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고증대로 집어넣었다고 한다.[91] 기무라 쪽이 선배이다.[92] 아내가 먼저 고백을 했는데 황국의 영웅으로서 동경하고 짝사랑했다는 이유에서였던지라 아내가 얼룩과 같은 존재였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이와모토의 아내는 남편이 실의에 빠져 자신을 냉대함에도 자신의 감정을 죽이며 깨진 술병을 치우고 묵묵히 아침을 차리면서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93] 그나마 이것도 일본 항모가 명중탄을 9발 맞은 것을 3발로 줄여서 소파로 처리해서 부활시킨 결과다.[94] 이때 무타구치가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저지한 것은 고평가했지만 그 외에는 행실이 형편없고 헛소리만 늘어놓는 것 때문에 불안해했는데 현실로 나타났다.[95] 이때 전생에 21세기 한국인이었던 디트리히는 '미안하게 됐군, 런승만 박사. 이번에는 다리 폭파하고 도망칠 일은 없을 테니 런승만 소리는 안 듣겠네.'라고 속으로 깠다.[96] 실제로 김구는 당대 동양인 치고 키가 매우 컸고 요즘 말로 국정원장 포지션의 인물이었던 만큼 정확한 평이다.[97] 이때도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는데 행군을 같이 하느라 더러워져 있었고 그것이 김구의 인생을 설명하는 것으로 묘사된다.[98] 의회를 해산하고 독재정을 선포했다고 한다.[99] 원 역사 티토 1980년, 안드로포프 1984년 사망했다. 본작에서도 안드로포프가 1984년까지 살았기 때문에 본작도 마찬가지였을 듯하다.[100] 원래 역사에선 프랑스 침공 이전까지 프랑스에 있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영국은 조구 1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이탈리아가 알바니아를 침공했을 때도 알바니아에 아무 도움도 안 주고 수수방관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반영 오류.[101] 빌헬름 2세의 실패는 호엔촐레름 왕조 전체의 PTSD나 다름없어서 빌헬름 3세도 아버지의 실패와 나치에게 당한 배신 때문에 성격이 뒤틀렸다고 언급되며, 역사에서 독일의 빌헬름 황제의 이름이 호엔촐레른의 실패로 남는다는 것에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102] 1차대전 당시 빌헬름 2세의 실책이 크기는 했지만 동시에 당시 독일 군부의 폭주로 인한 책임을 혼자 뒤집어쓴 것도 알고 있었다.[103] 마지막에 비스마르크를 읊조린 건 아마 그를 쫓아낸 것에 대한 미안함과 만약 그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후회가 겹친 의미였을 듯하다. 비스마르크는 이 시기에는 이미 고인이라 미안함이 더 컸을 것이다.[104] 디트리히 입장에서는 프랑스를 핀란드 수비 및 수복 작전에 내세우면서 다시금 연합국과 프랑스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면서 화해 무드를 만들고 있었는데 벨기에의 이런 짓은 빼도 박도 못한 트롤 짓이기 때문이다.[105] 다른 무기는 이전에 나치가 일본에 보낸 무기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판처파우스트는 그러한 변명이 불가능한 물건이다. 애초에 개발 자체가 나치가 없어진 이후에 시작된데다, 실전배치도 최근에 이루어진 무기인 탓에 유출 경로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106] 그나마 다행인 점은 중국 공산당은 소련에게도 버림받고 독일은 중국 내의 반란군이라고 인식해서 쓸어버릴 계획이라는 것 정도다.[107] 간단히 말하면 섬서성사천성을 털렸다고 보면 된다. 중공이 티베트의 안보를 보장할 정도니 사천성은 거의 다 접수했다 보면 된다. 운남성까지 남하했는지는 불명이다.[108] 정확히는 마오쩌둥을 밀어주는 걸 반대한 거라, 마오쩌둥을 죽인 뒤 살아남은 저우언라이와는 타협했다.[109]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은 공식 국가수반이지만 실권은 거의 없다. 즉, 명예직으로 물러났다고 봐도 되는 것.[110] 국공합작으로 국민당과는 공식적으로 협력관계여서 동맹세력으로 볼 여지도 있지만 연합국의 일원으로 승인받은 것도 아니니 인정해줄 필요도 없고 오히려 반군이라고 간주했다.[111] 사실 신강군벌이 독일에게 공산당 토벌을 대가로 먼저 협조 요청한 거라 토사구팽이라기보다는 배신자 응징이라 봐야 한다.[112] 중공이 충칭시를 장악했다는 서술과 티베트의 안보를 보장한 것을 보아 사천성까지 남하한 것으로 보인다. 운남성까지 남하했는지는 불명.[113] 이 말을 들은 디트리히는 원 역사 중화인민공화국의 티베트, 위구르 탄압을 떠올리고 폭소하지만 사실 원 역사에서도 극초기에는 티베트, 위구르에 나름 우호적이었다. 나중에 한족주의에 빠지면서 이 꼴이 된 거지.[114] 또 다른 친독일 국가를 만들기에는 내륙에 있어 독일이 통제할 수 없고 다시 소련의 밑으로 들어갈 위험이 있다[115] 그저 사라진 후라고 서술되어 있어 죽었는지 은퇴한 것인지는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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