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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6-25 16:44:51

장가 (기업)


파일:삼성 국문 워드마크.svg
파일:삼성 워드마크(다른 버전) 화이트.svg
파일:삼성 로고.svg
창립일 1938년 3월 1일 ([age(1938-03-01)]주년)
창업주 이병철
총수 이재용[1]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다국적 기업)
본사 파일:경기도 휘장.svg 경기도 파일:수원시 CI.svg 수원시 영통구 삼성로 129
규모 대기업
유형 복합기업, 다국적 기업
직원 약 50만 명
시가총액 603조 6,336억 원 (2022년 3월 20일 기준)[2]

1. 개요2. 역사3. 브랜드 아이덴티티
3.1. 사명3.2. CI3.3. 사가
3.3.1. 삼성찬가 (1974 ~ 1993)3.3.2. 우리의 노래 (1993 ~ )
3.4. 슬로건
4. 경영이념과 기업정신5. 특징
5.1. 사옥5.2. 엔진, 모터에 약하다5.3. 참모 조직
5.3.1. 미래전략실 (해체)5.3.2. GSG
6. 직장 생활
6.1. 채용6.2. 신입 연수6.3. 노동조합
6.3.1. 현재
6.4. 연구원
7. 오너 일가8. 경영진
8.1. 회장급8.2. 부회장급8.3. 사장급8.4. 역대 임원
9. 기타10. 구성
10.1. 관계사
10.1.1. 전자10.1.2. 중공업·건설10.1.3. 금융10.1.4. 서비스10.1.5. 스포츠
10.2. 공익사업10.3. 부설 기관10.4. 분가한 기업10.5. 계열 분리된 법인10.6. 해산된 회사10.7. 관련없는 회사
11. 비판 및 문제점12. 대중매체에서13. 둘러보기14. 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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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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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타워.jpg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1976년 완공) 삼성타운 (2008년 완공)
파일:삼성디지털시티.jpg
삼성디지털시티

삼성대한민국의 최대 규모 다국적 기업이다. 2021년 기준으로 자본총액 기준 재계서열 1위이며, 그 외의 시가총액 등 기업 평가 요소의 모든 영역에서 2위 그룹과 압도적 격차를 보이고 있다. 단순히 기업의 규모를 제외하고서도, 대한민국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룹이다.

창업주는 호암 이병철이며 1938년 창업한 삼성상회(三星商會)가 모태다. 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 69번지 일대며 현재는 그 일대에는 '크레텍책임'이라는 기계공구 및 산업용품 사업장이 있다. 옛 삼성상회 건물은 1997년 노후화로 인해 철거되고 대신 그 자리에는 높이 5.95m, 너비 8.7m의 삼성상회 재현 벽과 삼성상회 실물을 250분의 1로 축소한 청동 모형으로 구성된 작은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북구 침산동제일모직 자리에 들어선 대구삼성창조경제단지에 삼성상회 건물을 복원해 놓았다. 이병철이 당시에 살았던 집은 현재 북성로 오토바이 골목 내부에 보존되어 있다. 관련 기사

대한민국기업으로선, 전무후무한 세계구급 성공을 거둔 삼성전자가 그룹의 메인이며, 삼성물산이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 재벌필수요소 중 하나인 순환출자 구조를 가졌으나, 2018년 이후론 삼성의 순환출자 구도는 전부 해소되었다. 현재는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을 지배하고, 삼성물산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삼성전자와 삼성의 금융 계열사를 지배하고 삼성전자가 기타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이다.

삼성그룹 사업체는 무조건 우리은행만을 유일한 거래처 은행으로 취급한다.[3] 그룹 전체가 하나의 은행만을 취급하는 건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인데, 삼성은 이걸 진짜 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외환실력을 쌓는데 결정적인 공로를 하는 중. 우리은행의 외국 지사 역시 삼성그룹 현지법인의 주거래은행이다. 원래 삼성그룹은 한일은행1958년 불하과정을 통해 초기 민영화될 때 한일은행을 소유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한일은행에 모든 거래처를 몰빵하고 유지한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한국 제외 외국 파견지점을 보면 죄다 삼성그룹의 외국지사가 있는 도시에 같이 파견되어 있다.

2017년 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삼성그룹은 그룹의 경영을 총괄하던 미래전략실의 해체 계획을 발표했다. 미래전략실은 삼성의 계열사(관계사)들을 수직적 지배하는 조직으로서, 미래전략실의 해체는 삼성그룹의 해체를 의미한다. 한편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 해체 후엔 계열사들이 각자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룹 공채도 2017년을 끝으로 없어지고, 계열사별로 독자적으로 채용하는 체제로 바뀐다고 하였다. 기사 결국 2017년 4월 3일에는 삼성그룹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가 문을 닫았다. 이보다 앞선 2017년 3월 2일에는 그룹 사내 방송이 종료되었고, 3월 3일에는 그룹 기자실이 폐쇄됐다.기사

다만, 삼성 관계사간의 지분관계는 여전하기 때문에 그룹이 해체한 것은 아니다. 삼성은 여전히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발표하는 기업집단이며, 그룹 총수인 이재용이 실질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언론 및 정부는 물론 삼성그룹 자체에서도 삼성그룹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2. 역사

파일:삼성상회.jpg
주식회사 삼성상회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8년 3월, 협동정미소 주인이던 이병철대구부 수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 삼성상회(三星商會)를 개업한 게 본 그룹의 시초이다. 당시 29세였던 이병철은 경상남도 김해에서 농지 투기에 실패한 후 심기일전을 굳히며 자본금 3만 원[4]으로 삼성상회를 세우게 되었다.[5]

처음에는 농산물 판매와 별표국수 판매 등 가볍고 기본적인 것으로 훗날의 삼성그룹 형태와 비교하면 차이가 현격히 나는 편이었다. 요즘에는 삼성이 일류 재벌 집단이라고 한다지만 초창기까지는 서민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던 곳. 전 CJ그룹 명예회장이자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당시 삼성상회는 지금의 삼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며 국수 공장이 매출은 늘었지만 정작 이병철 본인은 그 돈을 모두 공장 설비 투자에 쏟았고 이병철 일가 역시 공장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잤을 정도로 공장 상태가 열악하였다고 말했다. 오늘날 삼성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최악의 환경이었으며 가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당시 별표국수가 많이 팔려 매출액도 올라갔지만 대구[6]에는 경북에서 1위를 차지하는 소표국수가 있었고, 2위인 풍국면도 있었다. 풍국면은 지금도 대구광역시 북구 만평네거리 북쪽 근처에 공장이 있으며 현재는 범 삼성가신세계그룹의 국수 OEM 회사다. 결국 별표국수는 이들의 아성과 도전을 이기지 못해 폐업했다.

19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해 사업 확장의 발판을 마련한 후 1948년 서울 종로2가에서 조홍제와 함께 삼성물산공사로 재출범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임시수도였던 부산으로 피난가 '삼성물산'으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전쟁 이후 국가를 지불보증인으로 세워 차관을 받아오면서 정경유착을 통해 점차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953년 제일제당을 세워 처음으로 제조업을 시작해 국산 설탕을 개발했고, 1954년 제일모직을 세워 국산 양복지 '골덴텍스'를 개발해냈다.

1957년에 한국 재계 사상 최초로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개시한 후 1958년 안국화재를 인수해 금융업에도 처음 진출하고 이듬해에 한국 재벌 중 최초로 비서실을 설치해 기업집단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1963년에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및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을 세트로 인수했다.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해 언론사업에도 진출하고 신문용지 자체 수급을 위해 새한제지도 인수했다.

그러나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으나, 1968년 경영 일선에서 복귀한 후 전자산업 진출을 선언하여 수원 공단부지를 매입했고, 이듬해 삼성전자 및 삼성-SANYO전기를 세웠다. 이후 1970년 삼성NEC를 세워 전자사업 확장을 개시하며 1973년 제일합섬, 임피어리얼, 1974년 삼성석유화학 등을 세우며 화학이나 관광분야 등에도 영역을 확장했고, 같은 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산업에 처음 손을 뻗었다. 1976년 본사를 태평로 신사옥으로 이전하고 1977년 삼성종합건설을 세워 건설업에도 손을 뻗고 1979년에 삼남 이건희가 부회장이 되면서 2세 경영체제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1980년 한국전자통신을 인수한 후 1982년 프로야구단 삼성라이온즈를 창단하며 종합연수원을 열었고, 1983년 한국 최초로 64K D램 개발에도 주도했다. 1985년 삼성데이타시스템을 세워 전산사업에도 진출했고 1987년에 삼성종합기술원도 세웠다. 그해 11월 이병철이 사망하자 이건희가 가업을 이어받아 12월부터 회장이 됐고, 1990년대부터 친족분리를 진행해 1991년 신세계백화점전주제지, 1993년 제일제당을 각각 분리시켰다. 1993년 '신경영 선언'에 따라 로고와 기업이념 등을 바꾸고 1995년 한국 대기업으로서 최초로 소그룹 제도를 도입했으며, 동년에 삼성자동차를 세워 자동차 산업에 진출했다. 1997년에는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을 거듭 단행해 2000년에 삼성자동차를 프랑스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매각했고, 2008년 서초 삼성타운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이건희가 쓰러진 후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 지휘봉을 잡아 동년도에 삼성종합화학 등 4개 석유화학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했고, 2015년 (신)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역합병해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2016년 삼성정밀화학과 삼성SDI 케미컬사업부문을 롯데그룹에 팔고 2017년 2월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계열사별 독립/자율경영체제 전환 수순을 밟게 되었으며, 삼성그룹 공식 홈페이지도 문을 닫았다.기사

3. 브랜드 아이덴티티

3.1. 사명

본래 홈페이지의 설명에 근거하면 '삼성이라는 이름에는 끝없는 확장을 지향하고 있다. 삼()은 크고 많은 것, 강한 것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며, 성()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이 빛난다는 의미'로 삼성이라고 지었다고 한다.[7][8] 2019년부터 삼성은 사명의 의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힘을 상징하는 숫자 3에 꺼지지 않는 의지를 상징하는 별이라고 쉽게 풀어서 설명 해 주고 있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글로 읽는 것보다 재미있게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3.2. CI

파일:JK_CO_bestinsa_3.png

워드마크는 타원형과 색상, 'SAMSUNG'이란 글자가 유기적으로 작용해서 전체적으로 삼성을 표현하는 아이덴티티가 반영되어 있다. 또 마크 안의 문자를 영어로 표현하여 세계 어디서나 같은 발음으로 읽혀지고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타원형의 디자인은 유연성과 단순함을 강조하며, 우주와 세계무대를 상징하는 타원을 비스듬히 처리하여 동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또 S와 G의 터진 부분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기운이 통하게 하여 세계와 호흡하고 인류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으며, A자의 가로 지름을 제거하여 개방성을 나타내었다. 영문 로고의 디자인은 세련되고 정교하게 처리해 기술주의의 고객지향 의지, 첨단기업의 이미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

기본 색상의 경우, 기존에 써 온 청색을 그대로 유지하여 영속성을 지니도록 했다. 그룹 공통색상인 청색(Pantone 286 C : M 80%+C100%)은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는 색으로 고객과 보다 친숙해지려는 세계 제일주의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상징하고 있다.

1993년 6월, 이건희는 그룹 사내방송 SBC의 한 고발 프로그램에서 삼성 세탁기의 라인 작업자가 칼로 불량인 부품을 대충 깎아내서 조립하는 모습으로 삼성 세탁기의 불량률이 높아지는 현상과, 후쿠다 다미오가 "삼성그룹은 2류나 다름없다"면서 삼성그룹의 문제점과 경영 방식의 모든 것을 바꿔야한다는 개선책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를 읽고 큰 충격을 받은 뒤, "마누라랑 자식 빼고 다 바꾼다"란 신경영을 시작했다.#

이후 삼성의 첫 번째 쇄신은 바로 로고 교체였다. 이전까지 파란 바탕에 사립학교 재단 로고 비스무리했던 그룹 로고가 존재했으나, 삼성전자, 제일모직, 제일기획, 제일합섬, 전주제지, 동방생명, 안국화재, 코리아엔지니어링, 한국안전시스템, 중앙일보, 제일제당 등 대부분의 관계사는 각기 다른 로고를 쓰고 사명도 통일되지 않았는데, 1989년 이후 삼성생명, 안국화재, 한국안전시스템 등 일부 계열사가 그룹 로고를 사용했다. 글씨 로고는 서예가 일중 김충현이 만든 '일중체'를 썼다.

같은 로고라도 업종에 따라 이니셜을 넣기도 하는데, 제일제당은 로고 중앙에 'C', 제일모직은 'W', 안국화재는 'U', 신세계백화점은 'D', 제일합섬은 'T', 한국안전시스템은 'V'를 썼다. 이렇게 다양한 로고들은 1993년 3월부로 새로운 로고로 바뀌게 되었는데 20억의 비용을 들여서 미국 L&M에서 직접 디자인했고, 이때 나온 디자인이 바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파란색 타원 속에 S Λ M S U N G 이라 쓰인 로고다. 1993년, 이건희가 신경영을 표방하며 변경한 로고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파란색 로고다. 그러나 새로운 로고에 그룹 내 고위 임직원들은 단체로 최면에 걸렸는지 엄청난 거부감을 표출했다고 했으며, 특히 안국화재, 한국안전시스템 등 대부분의 사명을 삼성으로 통일하여 영업에 차질을 입힐 것이라 걱정했다고 한다. 이 당시에 많은 기업들이 로고와 회사명을 바꾸면서 도색 업체들과 스티커 제작 업체들이 때 아닌 호황을 맞았었다고 전해진다.[14]
파일:별표국수 로고.svg
파일:삼성 로고(1965-1993).svg파일:삼성 로고(1993-2005).svg 파일:삼성 로고.svg
파일:삼성 워드마크.svg
<rowcolor=#ffffff> 1938년 별표 국수 1965 ~ 1993 1993 ~ 2005 2005 ~ 현재
1938년 이병철이 창업한 삼성상회에서 당시 판매하던 별표 국수에 들어간 브랜드 로고를 삼성 CI의 기원으로 본다. 별표 국수에 들어간 로고는 삼성상회의 로고가 아니라 별표 국수의 브랜드 로고다. 1949년에 원 3개에 별이 가운데 있는 로고를 사용했다.# 이후 1965년에 그룹 로고가 제정되면서 CI를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위에서도 서술되어 있지만 이당시 삼성의 몇몇 관계사들은 그룹 로고를 응용한 로고를 사용했다. 신세계백화점[15]이나 삼성 라이온즈[16]가 대표적. 1969년에 설립한 삼성전자의 당시 CI를 삼성그룹의 CI로 오해하는 경우가 매우 많으나 이당시에는 지금처럼 그룹 전체가 통일된 CI를 사용한 시기가 아니다. 현재의 CI는 이건희가 회장으로 취임한 후 1993년 신경영 선언과 함께 기업 브랜드 쇄신을 목적으로 변경, 통일한 것으로 오벌(Oval) 마크라고도 한다. 세번째와 네번째의 차이가 뭔지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오벌 마크 안에 들어간 SAMSUNG의 장평이 2005년 이후로 좁아졌다.

파일:data_logo_1308567009_222.jpg
파일:삼성 관계사 로고.png
이렇게 CI가 변경되면서 관계사들 대부분이 통일된 CI를 가지게 됐다. CI 통일 당시에는 이런식으로 사명이 오벌 마크 오른쪽 하단에 고정된 형태였다.
파일:ci1_0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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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삼성생명의 CI 가이드라인
파일:img_ci_ko.png
파일:img_ci_en.png
<rowcolor=#ffffff> 삼성SDI의 CI 가이드라인
이후 CI 가이드라인이 개정되면서 사명 배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파일:1441934386494_1.jpg
삼성전자는 2015년 이후로 기존의 CI를 사용하지 않고 워드마크를 CI로 사용한다고 결정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타원형 마크의 짙은 파란색은 경직된 느낌을 줘 혁신을 지향하는 정보기술(IT) 기업에는 맞지 않는다. 워드마크는 특정한 색이나 모양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것은 삼성전자의 마케팅에 국한되며 공식 로고를 바꾼 것은 아니다. 이미 삼성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CI는 예전부터 워드마크만 사용했었기 때문인 것도 있고 다른 세계적인 기업들의 로고도 대부분 글자만 있는 형태의 로고를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계열사들의 경우 기존 로고를 계속 사용한다고 한다.# 다만 기존 SAMSUNG 로고와 사명을 위아래로 배치하지 않고 수평으로 배치하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 수평으로 배치하면서 계열사별로 로고가 회사명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가거나 통일이 안되어 있다.[17] 삼성전자가 워드마크로 로고를 변경하면서 해외에서 삼성그룹 전체의 로고를 워드마크로 변경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의 인식이 대부분 삼성하면 삼성전자를 떠올리기 때문. 이후 삼성전자 CI는 삼성의 고유 컬러인 파란색도 빼버리고 검정색을 사용하면서 이재용 체제에서의 삼성전자는 기존 삼성의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글 서체는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이미지로 만들어진다. 영문 서체로는 Universe Condensed Bold를 쓰고 있다.

3.3. 사가

3.3.1. 삼성찬가 (1974 ~ 1993)

파일:삼성찬가-미래를 관리하는 사람들.jpg
삼성찬가 - 미래를 관리하는 사람들
(1절)보라 여기 이 땅에 젊은 역군들 / 겨레와 슬기를 한데 뭉쳤다
고난과 시련에서 일어선 우리 / 오늘도 꿈을 안고 힘차게 산다

(2절)너와 나 가슴마다 용솟는 의욕 / 사랑과 성실과 신념으로
큰 사명 다하리라 봉사하리라 / 조국과 인류의 영광을 위해

(후렴)삼성의 깃발아래 모인 동지들 / 새 역사의 바퀴를 떠밀고 나가자

작사는 이은상, 작곡은 이흥렬이 맡았다.

3.3.2. 우리의 노래 (1993 ~ )

제1회 삼성합창제 15 연합합창단 우리의 노래
우리 모두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인류행복 실현하는 큰 뜻을 품고

지혜와 용기를 한데 모아서
미래의 꿈 펼치자 우리는 한가족

아~ 삼성~ 삼성~ 언제나 높이 솟아 오르자
아~ 삼성~ 삼성~ 온누리 밝히는 빛이 되리라

1993년 제2창업 5주년을 맞이해 사원 공모를 통해 채택되었으며, 작곡은 <그리운 금강산>으로 유명한 최영섭이 맡았다.

3.4. 슬로건

4. 경영이념과 기업정신

- 경영이념
사업보국, 합리추구, 인재제일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 기업정신
창조정신, 도전정신, 제일주의, 완벽주의, 공존공영
고객과 함께한다
세계에 도전한다
미래를 창조한다

- 경영철학과 목표
1.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2.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3.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 핵심가치
인재제일, 최고지향, 변화선도, 정도경영, 상생추구

- 경영원칙
1. 법과 윤리를 준수한다.
2. 깨끗한 조직문화를 유지한다.
3. 고객, 주주, 종업원을 존중한다.
4. 환경·안전·건강을 중시한다.
5.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6. 근로시간 최대 하루 4시간을 지향합니다.

5. 특징

레드오션의 강자, 패스트팔로우 전략 등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다만 업계 선두 제품을 벤치마킹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삼성전자의 삼성 갤럭시의 초기시절 형성된 것이고 본래 삼성의 기업 DNA는 마켓크리에이터와 초격차에 가깝다. 기업 출범 초기 IT의 볼모지였던 한국에서 남들이 하지않았던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멈추면 도태된다는 위기의식이 삼성을 끊임없이 질주하고 발전하게 스스로를 훈련시킨다.[18] 이러한 삼성의 특징은 20세기 최고의 기업 역전 사례로 손꼽히는 명성의 근원이다.

5.1. 사옥

2008년에 중심지를 서울특별시 서초구 삼성타운으로 옮겼다. 일단 삼성그룹 전체를 강남으로 옮기고, 구 태평로 사옥을 리모델링한 뒤 삼성의 금융 관련 계열사는 다시 태평로로 보내겠다는듯. 그래서 금융 계열사는 태평로에, 전자 계열사는 강남이라는 구도가 예측된다.

그러나 이재용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이후 사옥은 또 다시 재배치됐다. 이재용이 계열사의 현장 중심 경영을 강조하면서 서초 사옥에 있던 삼성전자삼성물산을 내보냈다. 삼성전자 본부는 수원에 위치한 삼성디지털시티로 이전했고 R&D와 디자인 관련 부서는 우면동의 R&D캠퍼스로 이전했으며 자금과 홍보 담당 부서는 구 태평로 사옥으로 돌아갔다. 삼성물산 역시 서초 사옥을 떠나 판교(건설)와 잠실(상사)[19], 도곡동(패션)[20]과 용인 에버랜드(리조트)로 각각 흩어졌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떠난 서초 사옥에는 삼성생명삼성화재, 삼성증권 등 삼성 금융 계열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삼성 타운에는 안습한 일화가 있다. 사옥 부지가 강남역 바로 옆에 있는데, 부지 안에는 윤빌딩[21]이, 사옥이 바로 보이는 강남역 한 모퉁이에는 대각빌딩이 있어 삼성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 빌딩을 피해 사옥 재설계를 해야 했다고 한다.[22]

여담으로 일본법인 사옥은 그 땅값 비싼 도쿄 롯폰기 근처에 있었으나, 일본 법인이 2012년경 핸드폰을 판매하는 SEJ 법인(Samsung Electronincs Japan)과 반도체를 판매하는 SJC 법인(Samsung Japan Corporation)으로 나눠져서 SEJ만 롯폰기 Tcube에 있다가[23] 2015년 이이다바시로 이전했다. SJC법인은 시나가와에 있다. 보통 일본 삼성하면 갤럭시를 판매하는 SEJ 법인을 생각하지만 실제 일본에서의 판매금액이나 비중을 볼 때 갤럭시는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오히려 반도체는 B2B에서 잘나가고 있다. 반도체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듯.[24]

삼성전자의 "공식적인" 본사는 삼성디지털시티이다. 회사의 법적 주소도 수원으로 되어있다. 왜냐하면 이병철이 전자 사업을 시작할때 현재의 수원시 영통구 매탄3동에다 엄청나게 큰 땅을 사서 공장을 지어 시작했기 때문. 현재 공장은 용인이나 화성으로 이전하고, 연구소나 전국의 지사(광주, 온양, 기흥, 구미 등)들을 연결해주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본사는 R1부터 R5까지의 5채의 빌딩과 그 주위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사실상 본사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

외부인은 영통문과 동문으로 진입이 가능하고, 내부엔 직원만이 중앙문으로 진입이 가능하다.

5.2. 엔진, 모터에 약하다

삼성테크윈이야 방위산업체이니 어쩔 수 없다해도[25] 삼성자동차로 출발한 현 르노코리아자동차는 하필 시장이 과잉공급상태에서 시작해 제반기술없이 맨 땅에 헤딩을 하는 식으로 시작해서 실패했다. 르노닛산의 기술을 받았다지만, 어차피 남에게 기술을 사올때 돈이 많이 들었고 그 새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져서… 그리고 KAI는… 말을 말자.[26]

모터가 달린 것도 약하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백색가전류를 비롯해서 하드디스크, ODD 모두 잔고장이 많기로 유명했고 결국 이러한 사업은 다 정리했다. 대신 SSD에 투자하여 기존 1위 인텔을 누르고 승승장구하는 중. 삼성은 SSD 이전에도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인텔과 경쟁할 정도의 강자였다.

5.3. 참모 조직

5.3.1. 미래전략실 (해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회장 직속의 참모 조직이다.[27]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다른 그룹에서 벤치마킹을 시도하고 있다. 실장 밑에 7개의 팀과 15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실장은 부회장, 실차장은 사장, 팀장은 부사장~전무이며, 150여 명 중 전무 이상 직급만 18명이다. 팀원은 대부분 부장 이상이고 최하 직급 과장이라는 무시무시한 직급 구성이 돋보인다. 각 계열사의 에이스급 부장들을 뽑아와서 몇년간 근무하다가 임원으로 승진시키면서 돌려보내는 식의 커리어패스를 가지게 된다. 그룹 전체에서 가장 인사고과 잘 받은 사람들이 최소 십수년 이상의 경력까지 갖춰서 150명 가까이 몰려 있으니만큼, 재벌 2~3세 한두 명이 회의를 통해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전략과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승진 속도 외에 연봉도 오른다. 실적 위기가 있는 해가 아니라면 늘 최고 성과급(OPI)을 받으며, 이는 남들보다 연봉 50%를 더 받는 것이다.

미래전략실의 8개 팀들은 각기 최소 1~2개에서 3~4개에 이르는 TF를 운용해왔다. 각 팀 산하에서 운영하는 TF는 신사업 추진, 계열사 인수합병(M&A) 등 특정 사안에 따라 해당 계열사 담당 TF를 지휘하거나 협업하는 임무를 맡는다.[28] 이들 TF가 계열사 TF를 지휘하거나 협업하는 경우가 많아, 구성원들의 소속이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2015년 3월에는 계열사 소속 TF 사원의 상당수를 돌려보내기도 했다.

업무 부담이 너무 커서, 5년 정도 미래전략실에서 일하고 본래 소속 계열사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2012년에는 새벽 6시 30분~8시에 삼성전자 본관 42층 회의실에서 벌어진 회의를 소개하였다. 최지성 부회장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에 대한 발제를 하고 각 팀장들이 토론에 참여했다. 부사장~부회장에 가까운 고위 임원은 6시 반에 전원 참석해야 한다는 소리다. 이런 '아침회의'는 미래전략실 뿐만 아니라 각 계열사 CEO 주재로 거의 전 사업장에서 비슷한 시간에 열리고 있다. 일반 직원들의 출근은 8시 정도다.

과거 구조조정본부(구조본)나 전략기획실(전기실) 시절에는 실장의 지시에 반론은 없이 그 지시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가 결정됐다면, 미래전략실(미전실)로 전환된 이후에는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방향을 찾는 작업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 결과물에는 고졸 공채, 저소득층 채용 할당, 저소득층 중학생 방과 후 교실인 드림클래스 등이 있다.

2016년 12월 6일 있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청문회에서 이재용은 "국민 여러분이나 의원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면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없앤다고 완전히 없애는건 아니다. GE와 같은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2월 28일, 미래전략실을 해체한다고 밝혔다. 미래전략실의 해체는 삼성그룹의 해체를 의미한다. 기사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엔 계열사들이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고 밝혔다.기사

5.3.2. GSG

Global Strategy Group

외국인으로 구성된 삼성 내부 경영컨설팅 조직이다. GSG엔 20여개국 출신 1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매년 40~50여 명이 확충되며 비슷한 수가 삼성 계열사 해외법인으로 빠져나간다.

1997년 이건희의 지시로 설립되었다. 신사업에 진출하거나 기존 사업이 정체될 때 외부 시각으로 해결책을 찾는 게 주 업무다. 이들이 2014년까지 수행한 프로젝트로는 그룹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마케팅 지침, 삼성SDI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 전략, 삼성전자의 의료기기 사업부 유통 채널 확보 방안 등이 있다.

MBA 또는 경영학과 박사 학위자로서 3년 이상의 직장 경력을 갖춘 사람을 뽑는다. GSG가 석 달 동안 대학교를 세 차례 찾아 ‘채용설명회 → 집중 면접 → 지원자 사례연구 발표’ 등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뽑는다. 2015년까지는 16군데 대학에서만 뽑았고[29] 2016년 9월부터는 베이징대, 칭화대, CEIBS(상하이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 등 중국 3곳을 추가했다. 어느 사업부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주어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대우는 파격적이다. MBA 졸의 경우 모든 혜택을 합쳐 수입이 2억쯤이다. 주거비, 의료비, 자녀 학비 등도 대준다. 2~3년 동안 서울에서 핵심 사업에 대한 경영컨설팅을 하다가 삼성 계열사의 해외법인에 간부로 나가게 된다.

한국인이나 재외교포는 무조건 배제한다. 하지만 '미국 명문대 MBA를 다니고 한국에 혈연이 없는 순수 외국인' 입장에서는 서울이나 삼성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GSG는 크게 인기가 있는 직장은 아니다. 그리고 유럽 본토에서 유일하게 뽑는 곳은 INSEAD(프랑스)인데, 2014년 GSG에서 INSEAD의 비중이 가장 높은 이유는 프랑스의 높은 실업률의 탓이 크다.

6. 직장 생활

스마트폰 경쟁이 심화된 이후 삼성 직원이면 삼성 제품을 강제로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삼성 전체에서 공통적인 것은 아니다. 삼성 안 쓰면 겁나 눈치주는 사업부도 있지만 그게 그룹 전체의 의지는 아니다.[30] 다만 모바일 그룹웨어와 각종 사내용도의 앱이 갤럭시S와 노트 시리즈 대상으로만 지원되므로 사용이 어렵고, 보안구역에 들어갈 때에도 아이폰은 번거롭다.

6.1. 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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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신입 연수

삼성그룹 공통 신입연수는 SVP (Samsung Value Program)이라고 한다. 그룹 공채에 합격한 직원들은 약 3~4주간 관계사 구분없이 전국 각지에 위치한 삼성 연수소에서 그룹공통연수(SVP)를 받게 된다. 주진행과 각 팀별 지도 선배의 지도 및 안내에 따라 팀 활동, 신체 활동, 과제 수행 등을 한다.

'BP'라는 깜짝 이벤트도 존재하는데, 이건 깜짝 생일파티다. 연수기간 중 생일을 맞은 신입사원 대상. 지도 선배들이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어 긴장감이 최고조일때 음악이 흐르면서 케익이 등장한다. 그리고는 가족들의 영상편지가 스크린에 뜬다. 이걸 본 생일자들의 반응은 신병 훈련 중 데굴데굴 구르다 연병장에 누워 '어머님의 마음'을 부를 때를 방불케한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과연 지도 선배들이 뭘 꼬투리로 깜짝쇼를 할지가 첨예한 관심사로, 이거 유출 안 시키려는 지도 선배들과 알아내려는 신입사원들 간에 첩보전이 벌어진다. ROTC 전역 장교 신입연수 때, 전쟁나서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고 군용 트럭, 군복, 군장 등을 준비해놓고 대규모의 몰래 카메라를 시전한 적도 있다고 한다. 군복에 지프차까지 동원되어서 다들 진짜 전쟁난 줄 알고 말없이 주섬주섬 군복 입고 있었다고 한다.

6.3. 노동조합

휴렛팩커드, IBM, 월마트, 아마존닷컴 등처럼 다국적기업이면서 노동조합이 없는 특이한 사례인데, 이는 창업주 이병철의 유훈을 충실히 지키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노사 교섭단체는 '노동자협의회'나 '노사협의회', '한마음협의회'와 같은 이름으로 존재한다.

사실 노조 자체가 완전히 없지는 않있는데, 1960년 제일모직[31], 1977년 제일제당 김포공장, 1987~1988년 삼성중공업에서 결성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좌절되었고, 2011년 7월 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개정되고 시행되기 전까지 복수노조가 허용되지 않아[32] 1회사당 1노조였기 때문에 회사에서 먼저 유령노조를 만들어 버리면 실질적으로 노조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33] 게다가 그런 노조조차도 얼마 없었다고 한다. # 그 외 탄압 사례들은 여기서 확인 가능하다.

법적으로 노조설립이 의무화된 유럽쪽 법인은 이에 반발, 2년 가까운 시시비비 끝에 노조가 설립되었다. 그런데 노조가 그야말로 상층부에 충성을 바치고 있어서 있으나 없으나 그게 그거라고 한다. 삼성이 의도한 게 아니라 현지법을 따르다 보니까 노조가 알아서 현지 법인의 충실한 시종이 되었다고 한다.

노조 결성자는 김성환 현 노조위원장으로 1996년 전압기 제조업체인 이천전기 매각 문제를 두고 노동조합을 결성하다 해고된 후에 해고자 복직투쟁의장을 통해 2003년 삼성SDI 계열 노조인 삼성일반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조 결성과 동시에 삼성SDI 측은 2003년 삼성SDI 노동자들의 분신 사건과 관련,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김성환을 고소했다. 재판 결과 법원은 김성환에게 실형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김성환은 집행유예 기간 중인 2004년 삼성SDI 휴대전화 불법 위치추적 의혹 관련,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 등을 작성해 노조탄압 사실 등을 알렸다. 김성환은 다시 삼성 SDI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김성환은 법원으로부터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3년 5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2005년 2월 22일부터 복역하기 시작했다.

복역 도중인 2007년 2월 3일 한국 노동자 최초로 앰네스티 양심수로 선정된 바 있으나, 본인의 말에 따르면 선정만 하고 실천은 없는 앰네스티에 실망했다고 한다.

2007년 12월 31일 특별사면을 받아 출소해 다시 삼성일반노동조합장에 취임, 2009년 2월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삼성SDI 등 이것저것으로부터 서른여 가지 혐의로 또 다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이 중 2가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벌금 300만원형을 받았다.

당시 이러한 삼성 측의 고소는 다시 김성환을 교도소에 넣으려는 계산이 일부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소한 지 3년 내 또 다시 유죄 판결을 받으면 법정 구속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사가 크지 않은 죄로 법정 구속을 하는 건 오버라고 판단, 벌금형으로 끝냈다.

이후에도 김성환은 또 삼성으로부터 이것저것 고소, 고발을 당했다. 어용이 아닌 이상 현 삼성 노조들의 숙명인 듯. 주요 간부들은 줄줄히 명예훼손으로 고소, 고발당하거나 해고당해 복직투쟁을 진행중이다. 그러다 2012년 11월 19일, 공교롭게도 이병철의 기일인 이날 삼성이 지역대책협의회라는 조직을 통해 노조 관계자들에 대해 미행, 감시, 도·감청했다며 이건희 등 삼성그룹 임직원 9명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고소 내용은 삼성이 신세계 이마트의 불법사찰과 같은 방법과 조직으로 노조를 탄압했다는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의 성격과 내용의 민감성을 고려해 밝히지 않으나 김성환의 정보 출처에 따르면 삼성이 일종의 정보기관을 만들어 상부조직은 정보의 해석 및 지시, 하부조직은 현장정보 '불법'수집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신세계 이마트 불법사찰 체계와 KT 직원퇴출 프로그램은 이를 벤치마킹한 것 혹은 상호모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담으로 김성환은 이맹희-이건희 상속소송 소식이 알려졌을 때 이재현 CJ 회장을 미행한 삼성 직원들을 지역대책위라는 일선 하부조직의 일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3년 10월에 이런 일들을 진두지휘한 문건이 발견되었다. 이후 언론사에 노조 결성을 막기 위해 직원들을 미행 했다고 주장하고, 영상을 제공했다. # 노동청은 증거가 없으며, 그룹에서 한 일이 아닌 실무진 개인의 판단이라는 삼성의 주장을 인정했다.

6.3.1. 현재

유럽을 제외하곤[34] 방침상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삼성이지만, 찾아보면 은근히 노조가 많다. 사실상 본진인 한국 내에도 노조가 상당수 존재한다.

삼성에게 흡수합병된 회사들이 가진 노조는 기업법상 해체가 불가능해서 수용해주고 있는 상황이며, 아무나 다 들어갈 수 있는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을 통해 결성하면 된다. 삼성정밀화학의 경우 원래 삼성이 소유한 한국비료공업이었으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했었는데, 그 사이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어 다시 찾고보니 노조가 있는 케이스.

2011년 7월 1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에 따라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됐으니, 삼성 경영진 입장에서는 헬게이트가 열릴 전망이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벼르고 있던 노동계가 의외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듯하다.(연합뉴스 기사)

결국 박원우 등 삼성에버랜드 노동자 4명의 주도로 '삼성노동조합(현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 삼성지회)'이 결성됐으나,# 그날 조장희 부위원장이 '경영기밀 누출'과 '공기호부정 사용' 혐의를 뒤집어써 해고를 당했으며[35] 사측도 조합원을 징계하고 형사고소하는 등으로 대응했다.(참고.) 박근혜 정부 때까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탄압' 등과 같은 노조 탄압이 이어지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점차 균열이 보였고, 2020년 5월 6일 이재용 부회장이 "앞으로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란 말이 안 나오게 하겠다"며 노동3권과 노사관계 법령을 준수하겠다고 하여 사실상 '무노조 경영'에 종지부를 찍었다.

6.4. 연구원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연구직들은 마구 굴린다는 소문이 있다. 이유는 연구직들은 대개 노조가 최소고용기간을 커버쳐 주는데 삼성은 노조가 없어서 실적 문제나 비주류 연구로 분류되면 바로 해당팀이 해체되어 실업자로 전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는 말도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 꼭 삼성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연구직들이, 특히 자연계열 연구직들이 받는 대우는 열악하기 그지없기는 한데, 삼성은 노조도 없는데다 업무강도 등에 있어서도 여러모로 직원에게 피도 눈물도 없기때문에 보통 짤리기 전에 못 견디고 이직하는 경우도 많다. 또 한국에서 자연계열 연구직의 대우가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연구직들이 교수 다음으로 선호하는 정출연들이 연구원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2년 계약직) 주로 충원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정규직은 그간 들인 노력에 비하면 (비슷하게 공부한 의사 등에 비해) 흡족하진 않지만 대우가 나쁘지 않다. 삼성그룹의 경우 연구개발직은 당연히 모두 정규직으로 뽑으며, 임원이 아닌 직원급의 연구원이 자기팀이 해체되었다고 실업자가 되는 경우는 없다.[36] 대한민국 노동법이 그정도로 막장은 아니다. 물론 석·박사 특히 박사급 연구원들이 자기 팀이 해체되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가 자기가 하던 연구랑 맞지 않거나 마음에 안드는 팀으로 배치되는 경우 이직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원하는 때 이직할 수 있는 능력자라면 실업자 될 일은 없는터라. 무엇보다 삼성의 대부분의 연구개발조직은 인원 부족에 시달린다.

애초에 R&D직이라는 것이 별게 아니다. 매년 공채할 때 (학·석사급은 매년 신입 공채로, 박사급은 경력 공채나 수시로) 이공계 인력이 채용돼서 연구소나 개발부서에서 근무하면 R&D직인 것이다. 연구원들은 스스로를 사무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근무 특성상 총무, 인사나 영업, 마케팅과 같은 타 직군에 비해 복장이나 근태에서 좀 특이하게 근무하는 경우는 있다. 아무래도 회사 바깥의 사람을 대하는 직군이 아니다 보니 복장도 자유롭고 출퇴근 시간도 유동적인 사업장/사업부가 많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2시에 퇴근하는 것이 가능한 곳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나 대부분의 회사 사규 상으로나 일반 사무직과 비슷한 취급을 받으며, 근무 특성상 근무 강도가 높다는 차이밖에 없다. 가령, 해고를 쉽게 당한다거나, 비정규직 신분이라거나 하는 건 삼성에서는 그런 거 없다.

그나마 영업직이 대부분 컴퓨터를 잘 못해서 이런 곳에 썰을 못 풀어서 그렇지 근무 강도도 사실 웬만한 연구원보다는 영업직들이 더 빡세다.[37]

7. 오너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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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경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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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장덕현
SDS 황성우
SDI 최윤호
물산 이서현 · 이재언
중공업 최성안
E&A 남궁홍
금융 김대환 · 김이태 · 박종문 · 서봉균 · 이문화 · 한승환 · 홍원학
바이오 고한승 · 존림
기타 김종현 · 김재열 · 김황식 · 남궁범 · 이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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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회장급

8.2. 부회장급

8.3. 사장급


8.4. 역대 임원

1998년 이후 그룹 회장 직함은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으며 총수는 관계사 회장 직함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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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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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병철
(1938~1987)
제2대
이건희
(1987~2018)
제3대
이재용
(2018~ )
}}}}}}}}}}}}}}} ||

9. 기타

한국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혹은 의존도)에 관한 김형태 前 자본시장연구원장의 평가. 제목은 "삼성 없이도 한국 경제는 살 수 있을까?"(Could Korea's Economy Survive Without Samsung?)[39] 관련 언론보도

애초에 iPhone의 핵심 부품 중 대다수를 삼성에서 만든다. 그 부작용으로 스티브 잡스가 삼성 제품을 까도 감정상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안습. 게다가 그 때문에, 같은 삼성전자 안이라도, 반도체 총괄에 근무하는 직원과 정보통신 총괄에 근무하는 직원 간에 애플을 바라보는 태도가 매우 상반된다. 반도체 쪽에서는 애플은 메모리와 AP 칩을 가장 많이 팔아주는 우수 고객이지만, 정보통신 입장에서는 철저히 타도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 애플의 실적이 좋으면 반도체 부문의 실적도 덩달아 좋아지지만, 정보통신 부문의 실적은 나빠지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런데 여태껏 삼성 행보를 보아 부품도 덤핑으로 팔았을 가능성도 있다. 이미 아이팟 나노에 들어갈 부품을 애플에만 덤핑으로 팔아서[40] 자사 브랜드 YEPP의 경쟁업체인 아이리버를 말 그대로 학살한 전례가 있다. 결과적으로 YEPP 역시 시장에서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이후 스마트폰 경쟁 이전까지 삼성은 말 그대로 애플의 가장 친한 파트너였다. 매년 5조원씩 발주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봐야하는데 애플은 꾸준히 최소 그 정도는 삼성과 거래한다. 서로 5조원씩 발주할 정도면 엄청난 친구. 결국 애플 삼성 소송전을 계기로 애플이 아이폰에서 삼성 부품을 배제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애플이 삼성에게 덤핑을 요구했다느니 뭐니 말이 나오고 있다는 듯. 그런데 2014년 들어서 다시 삼성 부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는 듯. 삼성의 점유율이 워낙 높은 탓에 삼성을 배제해서는 원활한 부품 수급이 어려운듯하다.# 특히 2017년 새로 나온 iPhone X의 디스플레이는 삼성디스플레이가 만든 커브드 OLED다.

창업주 이병철이 제일제당에서 미풍이라는 조미료를 냈지만, 미원의 아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때문에 이병철은 살아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가 미원보다 미풍이 잘 팔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미원보다 미풍이 잘 팔리고 있었다. 미원이 장악한 일반소비자층을 뚫기 어렵다고 생각한 판매부가 반찬제조공장이나 체인형 식품점, 군납 등을 위주로 납품해서 남기는 이득만큼은 미원을 초월했다. 미풍은 인지도 면에선 듣보잡이었으나 수익면에선 미원을 가볍게 넘어섰고, 인지도 문제도 MSG 파동 이후 CJ제일제당에서 생산하는 다시다가 일반소비자층의 조미료 시장을 휘어잡아 버리며 미원을 듣보잡으로 전락시켜 사실상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룹 주요 관계사나 추후 독립한 범 삼성가 기업들을 보면 제일이라는 이름이 제법 쓰였다.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과거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다가 1993년에 독립한 CJ그룹CJ제일제당이 있으며, 2000년에 부도나 존재감이 사라진 새한그룹 또한 삼성에서 독립하기 전의 모체 기업이 바로 제일합섬이었다. 삼성그룹 관계사 중에서도 제일모직, 제일기획 등 제일이라는 명칭을 가진 계열사 및 기관들이 남아있다.

삼성그룹이 비판받는 이유는 주로 분식회계 의혹을 비롯한 돈 문제와 경영권 승계 문제, 무노조 경영, 언론 플레이 때문이지, 삼성 제품 자체의 신뢰도는 좋은 편이다. "삼성이니까 믿을 만하다.", "삼성이니 불량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삼성이니까 안 좋겠지"라는 이미지보다 많다. 그러나 하드디스크같은 예외도 있다. 컴덕들에게 삼성 하드는 그야말로 폭풍처럼 까인다. 누군가가 '이번 삼성 하드는 좋다. 벤치마크도 좋고 리뷰도 좋고 나도 써봤는데 좋더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은 1기가 시절부터 들었다'고 할 정도. 참고로 1기가 하드는 1995년 전후로 쓰였다. 결국 2011년 삼성 하드 사업은 시게이트로 매각되어 삼성 하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안습한 결말을 맞았다. 도시바와 합작으로 만든 CD-ROM, DVD-ROM같은 ODD도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 대신 하드를 대체하고 있는 SSD를 비롯한 플래시 메모리는 그동안 반도체 만들면서 쌓아온 기술력 덕에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위처럼 좋지 않은 인식이 많긴 하지만, 한국 기업 중 사회에 환원하는 재산이 제일 큰 기업도 삼성이다. 맹인견 사업, 다문화 가정 지원, 각종 교육 지원 프로그램[41], 기부활동, 아이캔[42], 사원들이 개별적으로 하는 봉사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물론 규모가 아니라 매출 대비 사회 환원 비율을 보아야 한다.

1994년부터 한국 기업으로서 최초로 삼성전자가 영국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광고판에 광고를 하고 있으며,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는 1992년부터 진행해 뉴욕 타임스퀘어를 배경으로 하는 헐리우드 영화에도 종종 노출된다.

2013년에 삼성전자, 삼성SDI, 제일모직, CJ건설, LG디스플레이 등이 산업용 전기를 일반용으로 몰래 돌려쓰다가 걸렸다고 <한겨레>에서 단독 보도되었다.#

외국인 지분에 대한 문제와 다국적 기업에 대한 것과, 한국 기업임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원문기사는 지워짐) 등으로 논란이 많은데, 일단 한국에 본사가 있고 외국인지분이 60%를 넘어가는 다국적 기업이다. 그런데 또 외국 지분이 60%가 넘어간다고 다국적 기업이라 보기엔 무리가 많다. 소니의 경우도 외국 지분이 40%가 넘어갔을 때도 자국내에서 日기업이 아니라는 소리가 많았고, 2014년인 현재에는 50%를 이미 넘어 있는 상태. SK 역시 외국지분이 50% 이상이다. 지분이 국적의 기준이 되면 법적인 기준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외국 지분이 많아도 삼성그룹(정확히는 삼성전자)은 법적으로 대한민국에 상장된 대한민국의 기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몇몇 대기업도 알고보면 다국적 기업이지만 삼성그룹은 한국의 다른 재벌들과 마찬가지로 개발독재시절에 한국 정부와 국민의 힘이 상당히 들어갔고, 한국에서 손꼽히는 기업이기에 다른 기업에 비해 유독 논란이 많다. 엄밀하게 따지면 삼성전자의 문제를 그냥 삼성의 문제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지만, 삼성그룹 관계사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핵심이 삼성전자라서 삼성=삼성전자라고 통일되었다.

삼성전자삼성 라이온즈와 관련해서 삼적화라는 신조어가 있다. 해당 문서 참조.

트라이버튼설문조사에 따르면, 2016년 4월 26일, 응답자의 75.2%가 삼성전자 임원의 보수가 직원의 66배인 것이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삼성그룹이 2018년에 3년간 180조를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경향

창작물에서는 실제 이름을 약간 변형하여, 오성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많이들 등장한다.

10. 구성

파일:external/img.focus.kr/2015122802171438367_L.jpg
법적(공정거래법)으로는 계열사라는 명칭이 맞는다. 하지만 삼성 그룹 내부에서는 계열사라는 명칭 대신에 관계사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과거보다 순환출자가 완화되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상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삼성물산이 산업 부문의 최상단 지주회사, 삼성생명이 금융 부문의 최상단 지주회사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 지배구조의 최후의 목적은 산업 부문은 삼성물산, 금융 부문은 삼성생명으로 금산분리를 이루면서 하나의 지주회사 체제로 단일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난관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해소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43] 중간금융지주법이 무산되고, 순환출자 해소를 정부가 압박하는 만큼 삼성의 금산분리는 해소 못하고 있음이 아킬레스건이다. 금감원이나 공정위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라고 하는데 문제는 지분 가치만 26조에 육박한다.(...) 누가 사줄 것이며 설령 사준다고 해도 이씨 일가의 지배력을 상실하게 된다. 결국 최선책은 이씨 일가 혹은 삼성물산이 사주는 방법 외에 없으나 돈이 없어서 가능성은 절대적으로 희박하다.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삼성은 법이 바뀌는 것을 기도하며 그저 배째는 것외에 답이 없는 실정. 정부로서도 무척 난감한 점이 이런 수십조가 넘는 삼성 지분을 사줄 집단은 결국 외국인 세력외에 없다. 만약 외국인 세력이 삼성을 인수하려 한다면 어떤 헬게이트가 열릴지 생각해보자. 특히 중국 세력이 인수하려 한다면? 그러니 정부도 무작정 몰아붙일 수 없는 노릇이다.
<rowcolor=#ffffff> 2016년 2017년 2018년
(단위: 억 원) 영업 이익 매출 영업 이익 매출 영업 이익 매출
삼성전자 292,407 2,018,667 536,450 2,395,754 588,867 2,437,714
삼성전기 244 60,330 3,062 68,385 10,181 81,930
삼성SDI -9,263 52,008 1,169 63,466 7,150 91,583
삼성SDS 6,271 81,802 7,316 92,992 8,774 100,342
삼성물산 1,395 281,027 8,813 292,790 11,039 311,566
삼성중공업 -1,472 104,142 -5,242 79,012 1,830 52,651
삼성엔지니어링 701 70,094 469 55,362 2,061 54,798
삼성생명 9,865 304,286 16,906 319,590 25,833 322,409
삼성화재 10,712 216,861 12,576 220,136 14,543 222,090
삼성카드 4,309 34,701 5,056 39,000 4,786 33,542
삼성증권 2,117 44,285 3,603 44,855 4,581 48,902
제일기획 1,495 32,326 1,565 33,750 1,811 34,799
호텔신라 790 37,153 731 35,147 2,091 47,137
에스원 1,346 18,302 2,026 19,423 1,991 20,183
보면 알겠지만 매출도 그렇고 영업이익까지 다른 계열사들을 죄다 합쳐봤자 삼성전자의 반도 안 된다. 삼성전자는 단일 회사이지만 그 안에 반도체, 가전,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등 다양한 사업군을 영위하는 종합 전자회사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부서 하나하나가 여느 경쟁사 뺨치는 규모지만... 삼성물산의 경우 계열사 구조조정을 위한 인수합병의 영향으로 15년부터 주요 재무정보에 큰 변화가 생겼다.

파일:삼성그룹 계열사별 자산 현황.png

10.1. 관계사

10.1.1. 전자

당연한 말이지만, 삼성그룹의 주력 업종이다. 이 부분에 바탕을 둔 자금력으로 다른 분야를 키우고 있다.

10.1.2. 중공업·건설

삼성그룹에서 전기/전자 부문 다음으로 매출 볼륨을 캐리했다가 미운 오리새끼가 됐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국제적인 유가 폭락, 한국 업체 간 제 살 깎아먹기 경쟁으로 인한 건설-조선업 불황이 사단을 만들었다. 내우외환이 쌍으로 터져 위기를 맞이한 셈. 그나마 삼성중공업은 외국발 LNG 운반선 발주 러시 덕분에 실적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건설업은 저가 수주로 인한 적자 때문에 아직도 깜깜하다.

10.1.3. 금융

삼성그룹의 숨겨진 대들보. 막강한 자금력으로 구원 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 삼성 그룹을 위기에서 구했다.

10.1.4. 서비스

10.1.5. 스포츠

이건희 체제 때만 하더라도 삼성이 스포츠 마케팅에 쏟아붓는 돈이 막대했다. 대표적으로 올림픽 공식 파트너가 있으며 전세계 각지에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며 삼성의 이름을 알리는데 활용했다. 국내에서도 1등 주의를 앞세워 투자에 적극적이었으나 이재용 체제 이후 대부분의 스포츠 마케팅에 투자를 줄이고 운영팀들도 해체하거나 투자액을 줄였다.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단은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삼성의 계열사 형태를 띄고 있다. 야구단과 축구단은 별도의 대표이사가 있으며 야구단은 삼성 계열사의 사장급이 대표이사를 맡고[48], 축구단은 삼성 계열사의 부사장급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외 야구단과 축구단을 제외한 남녀농구단, 배구단은 제일기획 산하 단체로 운영되고 있으며 대표이사는 없고, 제일기획의 임원급인 단장이 스포츠단을 대표하고 있다.

10.2. 공익사업

10.3. 부설 기관

이하에 열거된 곳들은 회사가 아니다. 따라서 삼성그룹의 관계사(계열사)도 아니다. 삼성의 관계사가 설립한 부설 기관들이다.

10.4. 분가한 기업

삼성그룹에서 분리되었다고 해도 실제로는 친인척 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에 범 삼성가라 불린다. 친인척 관계에 관해서는 범 삼성가 문서의 가계도를 참고할 것.

10.5. 계열 분리된 법인

10.6. 해산된 회사

10.7. 관련없는 회사

이 회사들은 三星이 아니라 三省 등 다른 한자를 쓰며 물론 삼성과 관련 없다. 三星을 쓰지만 삼성과 관련 없는 회사도 있다.

이외에도 삼성 관계사나 범 삼성 계열의 경우 제일이란 이름을 사용하지만[60] 아래의 회사 및 기관들은 삼성과 전혀 관계없다. 삼성과 다르게 제일이라는 명칭은 원래 흔하게 사용하던 이름이다.

11. 비판 및 문제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성/비판 및 문제점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2. 대중매체에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오성그룹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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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도
지정순번
22년도
지정순번
변동
기업집단명
동일인
계열사
(23년도)
계열사
(22년도)
23년도 지정
자산총액(22Y)
22년도 지정
자산총액(21Y)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
1 1 - 파일:삼성 로고.svg
삼성그룹
이재용 63 60 486.4조 483.9조
2 2 - 파일:SK 로고.svg
SK그룹
최태원 198 186 327.2조 292.0조
3 3 - 파일:현대자동차그룹 로고.svg파일:현대자동차그룹 로고 화이트.svg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60 57 270.8조 257.8조
4 4 - 파일:LG 로고.svg
LG그룹
구광모 63 73 171.2조 167.5조
5 5 - 파일:롯데 로고.svg
롯데그룹
신동빈 98 85 129.6조 121.6조
6 6 - 파일:한화 로고.svg파일:한화 로고 화이트.svg
한화그룹
김승연 96 91 83.0조 80.4조
7 7 - 파일:GS그룹 로고.svg
GS그룹
허창수 95 93 81.8조 76.8조
8 8 - 파일:HD현대 로고.svg파일:HD현대 로고 화이트.svg
HD현대
정몽준 32 36 80.6조 75.3조
9 9 - 파일:신세계 영문 CI_좌우.svg파일:신세계 영문 CI_좌우 White(1).svg
신세계그룹
이명희 52 53 60.4조 61.1조
10 10 - 파일:CJ 로고.svg파일:CJ 로고 화이트.svg
CJ그룹
이재현 76 85 40.6조 36.9조
11 11 - 파일:한진그룹 로고.svg파일:한진그룹 로고 화이트.svg
한진그룹
조원태 34 33 37.8조 35.2조
12 12 - 파일:카카오(기업) 로고.svg
카카오
김범수 147 136 34.2조 32.2조
13 14 ▲1 파일:LS그룹 로고.svg파일:LS그룹 로고 화이트.svg
LS그룹
구자은 59 58 29.4조 26.3조
14 13 ▼1 파일:두산 로고.svg
두산그룹
박정원 21 21 26.5조 26.3조
15 15 - 파일:DL그룹 로고.svg파일:DL그룹 로고 화이트.svg
DL그룹
이해욱 41 42 26.3조 24.8조
16 17 ▲1 파일:중흥그룹 로고.svg파일:중흥그룹 로고 화이트.svg
중흥그룹
정창선 52 55 23.3조 20.3조
17 20 ▲3 파일:현대백화점그룹 로고.svg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28 23 21.6조 18.2조
18 16 ▼2 파일:부영그룹 로고.svg
부영그룹
이중근 22 22 21.1조 21.7조
19 19 - 파일:네이버 로고.svg
네이버
이해진 51 54 20.9조 19.2조
20 18 ▼2 파일:미래에셋 로고.svg파일:미래에셋금융그룹 CI_White.svg
미래에셋금융그룹
박현주 36 40 20.2조 20.2조
21 21 - 파일:금호아시아나 로고.svg파일:금호아시아나 로고 화이트.svg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25 32 17.9조 17.6조
22 22 - 파일:하림 로고.svg
하림그룹
김홍국 50 55 17.0조 15.4조
23 25 ▲2 파일:영풍그룹 로고.svg
영풍그룹
장형진 28 26 16.8조 14.6조
24 23 ▼1 파일:HDC 로고.svg
HDC
정몽규 35 34 16.7조 15.1조
25 29 ▲4 파일:SM그룹 CI.svg파일:SM그룹 CI_화이트 폰트.svg
SM그룹
우오현 61 63 16.4조 13.7조
26 24 ▼2 파일:효성그룹 로고.svg파일:효성그룹 로고 화이트.svg
효성그룹
조현준 54 53 15.8조 14.8조
27 26 ▼1 파일:셀트리온 로고.svg파일:셀트리온 로고 화이트.svg
셀트리온
서정진 9 7 15.1조 14.6조
28 28 - 파일:호반건설 CI.svg파일:호반건설 CI_white.svg
호반건설
김상열 42 43 14.6조 13.8조
29 31 ▲2 파일:KCC 로고.svg
KCC그룹
정몽진 14 14 13.3조 12.6조
30 43 ▲13 파일:장금상선 로고.svg
장금상선
정태순 27 30 12.4조 9.3조
31 36 ▲5 파일:OCI 로고.svg
OCI그룹
이우현 21 22 12.2조 10.9조
32 35 ▲3 파일:코오롱그룹 로고.svg
코오롱그룹
이웅열 47 41 12.0조 11.0조
33 34 ▲1 파일:태영 심볼.svg
태영그룹
윤세영 80 76 11.9조 11.2조
34 30 ▼4 파일:넷마블 로고.svg파일:넷마블 로고 화이트.svg
넷마블
방준혁 33 30 11.7조 13.3조
35 38 ▲3 파일:세아그룹 로고.svg
세아그룹
이순형 28 26 11.7조 10.8조
36 32 ▼4 파일:넥슨 로고.svg파일:넥슨 로고 다크.svg
넥슨
유정현 18 18 11.6조 11.3조
37 - 신규 파일:LX그룹 로고.svg
LX그룹
구본준 15 - 11.2조 -
38 40 ▲2 파일:이랜드그룹 로고.svg
이랜드그룹
박성수 33 31 10.6조 10.0조
39 39 - 파일:한국앤컴퍼니 로고.svg파일:한국앤컴퍼니 로고 화이트.svg
한국앤컴퍼니
조양래 24 23 10.4조 10.2조
40 33 ▼7 파일:DB그룹 로고.svg
DB그룹
김준기 21 20 10.3조 11.3조
공시대상 기업집단(준대기업)
41 46 ▲5 파일:삼천리그룹 로고.svg
삼천리그룹
이만득 47 44 9.8조 8.6조
42 42 - 파일:금호석유화학그룹 로고.svg파일:금호석유화학그룹 로고 화이트.svg
금호석유화학그룹
박찬구 13 13 9.3조 9.6조
43 47 ▲4 파일:다우키움그룹 로고.svg
다우키움그룹
김익래 49 48 9.1조 8.5조
44 41 ▼3 파일:태광산업 로고.svg
태광그룹
이호진 19 19 9.0조 9.8조
45 27 ▼18 파일:교보생명 로고.svg
교보생명
신창재 15 14 8.9조 13.8조
46 44 ▼2 파일:동원그룹 로고.svg
동원그룹
김재철 27 26 8.9조 9.3조
47 61 ▲14 파일:KG그룹 로고.svg파일:KG그룹 로고 컬러 화이트.svg
KG그룹
곽재선 31 23 8.8조 5.3조
48 45 ▼3 파일:HL그룹 CI.svg파일:HL그룹 CI_white.svg
HL그룹
정몽원 13 15 8.5조 9.1조
49 48 ▼1 파일:아모레퍼시픽 로고.svg파일:아모레퍼시픽 로고 화이트.svg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12 13 8.3조 8.4조
50 54 ▲4 파일:대방건설 CI.svg파일:대방건설 CI 화이트.svg
대방건설
구교운 42 45 7.6조 6.2조
51 55 ▲4 파일:중앙그룹 로고.svg파일:중앙그룹 로고 화이트.svg
중앙그룹
홍석현 90 55 7.5조 6.0조
52 37 ▼15 파일:두나무 로고.svg
두나무
송치형 13 14 7.3조 10.8조
53 - 신규 파일:에코프로 로고.svg
에코프로
이동채 26 - 6.9조 -
54 53 ▼1 파일:애경그룹 로고.svg
애경그룹
장영신 34 35 6.9조 6.2조
55 50 ▼5 파일:동국제강그룹 CI.svg파일:동국제강그룹 CI 화이트.svg
동국제강그룹
장세주 10 11 6.5조 6.7조
56 49 ▼7 파일:엠디엠 CI.svg파일:엠디엠 CI 화이트.svg
엠디엠
문주현 15 16 6.3조 6.8조
57 52 ▼5 파일:삼양사 로고.svg파일:삼양그룹 로고 화이트.svg
삼양사
김윤 13 12 6.3조 6.2조
58 51 ▼7 파일:크래프톤 로고.svg파일:크래프톤 로고 화이트.svg
크래프톤
장병규 5 10 6.3조 5.6조
59 - 신규 파일:고려해운 로고.svg파일:고려해운 로고 화이트.svg
고려해운
박정석 28 - 6.0조 -
60 60 - 파일:보성그룹 로고.svg
보성그룹
이기승 69 67 6.0조 5.4조
61 - 신규 파일:글로벌세아 CI.svg
글로벌세아그룹
김웅기 19 - 6.0조 -
62 65 ▲3 파일:신영그룹 CI.svg파일:신영그룹 CI 화이트.svg
신영그룹
정춘보 33 34 5.9조 5.1조
63 - 신규 파일:DN오토모티브 CI.svg
DN그룹
김상헌 8 - 5.8조 -
64 64 - 파일:OK금융그룹 로고.svg파일:OK금융그룹 로고(화이트).svg
OK금융그룹
최윤 18 19 5.6조 5.2조
65 62 ▼3 파일:아이에스동서 CI.svg
아이에스동서
권혁운 42 53 5.6조 5.3조
66 56 ▼10 파일:하이트진로 CI.svg
하이트진로그룹
박문덕 15 15 5.5조 5.8조
67 - 신규 파일:한솔그룹 로고.svg
한솔그룹
조동길 23 - 5.4조 -
68 59 ▼9 파일:유진그룹 로고.svg
유진그룹
유경선 52 57 5.3조 5.4조
69 66 ▼3 파일:농심그룹 로고.svg파일:농심그룹 로고 화이트.svg
농심그룹
신동원 32 24 5.2조 5.1조
70 - 신규 파일:삼표그룹 로고.svg
삼표그룹
정도원 50 - 5.2조 -
71 57 ▼14 파일:반도건설 로고.svg파일:반도건설 로고 화이트.svg
반도건설
권홍사 20 25 5.1조 5.7조
72 - 신규 파일:BGF그룹 로고.svg
BGF그룹
홍석조 17 - 5.0조 -
※ 동일인이 미지정된 기업: (주)포스코홀딩스,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주)케이티, 에이치엠엠(주), (주)케이티앤지, 한국항공우주산업(주) 6개사
※ 동일인이 외국인인 기업: 에쓰-오일(주), 오씨아이(주), 쿠팡(주), 한국지엠(주) 4개사
※ 다음 업종의 기업 중에서 중소기업법에서 정하는 중소기업의 규모보다 더 큰 기업(가. 금융업, 나. 보험 및 연금업, 다. 금융 및 보험 관련 서비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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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삼성가
파일:삼성 로고.svg 파일:CJ 로고.svg 파일:신세계 영문 CI_좌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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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관련 문헌


[1] 2018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삼성그룹의 동일인을 깊은 병세로 사실상 지배력을 잃은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이재용으로 교체하였다. 현재는 삼성전자의 부회장을 겸직하고 있으며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현 상황에서, 조만간 삼성의 회장직을 승계할 것으로 파악된다.[2] 세계 11위[3] 그룹 전체의 정책은 그러할 지 몰라도, 그룹 내 개별 회사들은 복수의 은행과 거래를 하기도 한다.[4] 2010년 기준으로 약 3억원 상당.[5] 일제강점기 당시는 물론이고 그 전 세기부터 굴지의 대기업이었던 일본의 미쓰비시사와 비슷하게 들리려고 이름을 지었다는 짝퉁으로 시작했다는 카더라가 있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삼성을 일본어식로 훈독해 읽으면 "미쓰보시"로 읽을 수도 있다.)[6] 1981년 6월 30일까지 대구는 경상북도였다.[7] 삼성상회 및 삼성 창업자 이병철의 자서전 호암자전 34쪽에 홈페이지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아마도 호암자전의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린 듯 싶다.[8] 당시 한국을 강점한 일본에 三으로 시작하는 기업이 있고 이병철이 일본 유학을 해서 그것을 모방한 것 이니냐는 주장이 간혹 보이는데 전혀 근거가 없다. 본인이 자서전에 유래를 밝혔으며, 3이란 숫자는 매우 자주 쓰였다. 창립지 옆 도시에 삼성현(세명의 성인이 나왔다는 의미)이라는 잘 알려진 지명이 있고 삼성혈, 삼성각(절에 있는 토속신을 모신 사당) 등 한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숫자다. 대한민국의 어원이 되는 대한은 과거, 삼한이라고 불리던 역사가 있으며, 이는 원삼국시대에 기원하기도 했다. 삼태극 역시 한민족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각종 문화재와 문화유산에서 확인된다. 굳이 이러한 근거를 대지 않더라도, 호암자전과 삼성전자 홈페이지에 있는 어원이 삼성전자의 공식 입장이므로,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다.[9] 'Sammy'는 남자이름 새뮤얼, 여자이름 사만다의 애칭과 같다.[10] 원래 г 발음은 ㄱ과 유사하지만(정확히는 /g/임) 러시아어 발음 원칙에 의거하면 유성음이 단어 맨 뒤에 들어가면 무성음으로 발음하기 때문이다.[11] 한편, 가타카나 철자가 하필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주인공인 사무스 아란(Samus Aran, サムス・アラン)의 이름(サムス)과 마지막 한 글자를 빼고 똑같은지라 일본 웹사이트를 번역기로 한국어 번역하면 종종 뜬끔없이 '삼성'이 튀어나오는 일이 있다.[12] 중국에 진출하는 한자 문화권 국가 한자어 사명의 경우 대부분 이렇다. '토요타(トヨタ)'도 그 유래가 된 한자 '豊田[とよだ\]'를 중국음으로 읽어 '펑톈(Fēngtián[丰田\])'으로 부른다.[13] 다만 '마쓰다(マツダ)' 같은 경우 그 유래가 된 한자 '松田[まつだ\]'를 중국음으로 읽은 '쑹톈(Sōngtián[松田\])'이 아니라 원음과 비슷하게 음차한 '마쯔다(Mǎzìdá[马自达\])'로 부른다. '쑹톈(Sōngtián[松田\])'은 고인을 하늘로 보낸다는 의미의 '쑹톈(Sòngtiān[送天\])'과 성조를 제외한 발음이 비슷하다.[14] 이 때 CI와 더불어 관계사의 사명을 통일했으나 제일 사명이 들어가는 관계사는 그대로 제일 사명을 사용했으며 제일기획, 중앙일보 등 소수 관계사의 경우는 CI도 독자적인 CI를 유지했다.[15] 링크[16]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9).svg[17] 다만 이는 회사에서 허용하는 표기 방식이다. 오벌 마크를 중심으로 사명이 좌우와 하단에 위치하는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관계사 CI다.[18] 이는 이건희의 신경영 선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불량은 암이라는 인식하에 애니콜 휴대폰 수억대를 망치로 때려부수고 인화제를 끼얹어 태우는 화형식을 거행하면서 품질 경영과 디자인 경영을 선언하고 실천한 것, 이 두 가지가 삼성이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19] 옛 향군타워 빌딩. 삼성SDS와 사옥을 같이 쓴다.[20] 군인공제회 소유의 빌딩.[21] 큐원 간판의 그 빌딩.[22] 당연히 삼성 측에서 돈다발을 들고 이들 건물을 매입하려고 나섰지만 윤빌딩과 대각빌딩 건물주가 완강히 반대했다고 한다.[23] 롯폰기 1번가 삼거리.[24] 이러니 일본에서만 경제 불황을 당하고 있기에 'SAMSUNG' 로고를 게양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25] 그마저도 한화그룹에 매각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사명이 변경되었다.[26] 여담으로 엔진 달린 것에 미련이 많은 이유는 이건희가 자동차 덕후라서라고 한다. 이건희가 소유한 1억 이상의 수입차만 124대, 차량의 가격을 모두 합치면 약 477억 원.# 에버랜드 근처에는 자동차 박물관과 레이싱 서킷이 있다.[27] 과거에는 회장 비서실 (1959~1998), 구조조정본부 (1998~2006), 전략기획실 (2006~2008)로 불리다가 2008년 김용철 변호사 폭로 관련 특검을 계기로 전략기획실이 사라졌다. 그러다 2010년 미래전략실로 부활했다.[28]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 관계자는 “주요 사업 현안은 미래전략실에 보고하고 끊임없는 소통과 협업으로 사업을 추진한다”고 말했다.[29] 2014년에는 INSEAD, 컬럼비아, 듀크, 시카고 부스, 펜실베니아대 와튼, 런던 비즈니스 스쿨 , 다트머스대 터크, 버지니아대 다든, IMD, NYU 스턴, 켈로그, 미시간, 버클리, 하버드, MIT 슬론.[30] 반면, 스마트폰을 제조했던 LG전자는 자사 스마트폰 사용이 사실상 의무에 가까웠다.[31] 당시 주도자는 노동운동가 나경일(1930~2010)이었다.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7년 간 복역함.[32] 1997년 제정 때부터 형식적으로 허용되었으나, 세 차례 유예되었다.[33] 대표적인 예가 1987~1988년 삼성중공업 노조결성 방해사건이다.[34] 다만 위에서도 서술했듯이 어용노조나 다름 없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삼성의 압력이 원인이 아니라 현지법을 따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35] 그러나 조장희 전 부위원장은 2016년 대법원으로부터 해고무효 판결을 받았고, 2017년 3월 복직 후 2020년에 근로복지공단은 과거 노조 탄압 과정에서 발생한 적응장애를 산재로 판정했다.[36]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팀이 해체되면 다른곳으로 발령이 나고 일이 없어도 두세 달 놀릴지언정 절대 짜르지는 않는다. 여성들의 육아휴직도 자유로운 편이며 남성도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차장(책임연구원)급 이하로 한정하면 고용 안정성 면에서는 거의 준 공무원급이다.[37] 원래 태스크포스 위주로 연구직을 돌리는 회사의 연구원들은 한가할 때는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여유로운 경우도 있다. 가끔은 '이렇게 일하고 돈 받아도 되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38] MBC 기자 출신, 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39] 해당 문서는 미국 소재 한미경제연구소(KEI)의 발표 자료다. 즉 영어로 작성되었음.[40] 반도체는 구매량에 따라 가격이 천지차이인데, 애플의 구매량이 어마어마해서 애플에 판매하는 가격이 저렴해진 것. 아이리버는 물론이거나와 삼성 자체도 그만한 물량을 소화할 수 없어 애플이 사가는 가격에 살 수 없었다.[41] 대학생 대상 멘토링, 드림 클래스 뿐만 아니라 사회 약자 대상으로 학교를 방문하여 교육 기자재와 재능 봉사를 하는 것도 있다.[42] 전신 마비 장애인을 위해 오픈 소스로 공개하는 개발품; 눈으로로 움직이는 마우스다.[43] 이 문제만 아니라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이 산업 계열사에 가진 지분들이 꽤 많다.[44] 10년 내에 삼성그룹의 주력 사업은 후발주자에 의해 잠식당할 거라고 말했는데, 그게 삼성전자가 한창 잘 나가던 2010년~2011년에 나온 말이었다.[45] 생판 처음해보는 분야인 데다, 삼성답게 대규모의 경제를 만들려고 말 그대로 거대한 생산시설을 만들었다.[46] 청결과 정밀함이 중시되는 반도체 공장 건설 및 운영으로 축적된 노하우를 접목하겠다고 영삼성 매거진을 통해 홍보했다.[47] 삼성전자(27.5%) 삼성SDI(15.0%) 삼성전기(12.5%) 삼성물산(9.5%)의 지분을 인수 2016년 1월 1일자로 제일기획으로 편입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 참조[48] 제일기획으로의 이관 이후 처음에는 김동환 삼성 웰스토리 대표이사가 맡았는데, 웰스토리 대표이사는 부사장급이다. 이전 前 제일기획 사장인 임대기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으며 직급이 다시 사장급으로 올라갔고 현재는 원기찬 前 삼성카드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49] 안내견학교 입구에 경비원이 서있으며, 들어가려 할 경우 어떤 용무로 왔냐고 묻는다.[50] 1981년 9월 7일 폐지[51] 구 유니텔 법인은 삼성네트웍스로 변경됨.[52] 실적을 따로 집계한다.[53] 구포 참사의 영향 때문에 전국적으로 이미지가 나빠져서 불가피했다는 것이 정설. 삼성물산의 건설부문이 이 회사의 후신이다.[54] 1938년에 설립된 법인. 지금의 삼성물산은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꿨다가 다시 합병을 통해서 이름을 바꾼 회사다.[55] 그 신원개발은 삼성건설이 되었으나 1995년에 아예 없어지고 만다.[56] 이후 1963년에 설립된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꿔서 달았으나 삼성물산을 역합병하면서 현재는 삼성물산으로 바뀌었다.[57] 출판사. 참고로 지명으로서의 삼성당이 따로 있는데,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자연취락과 그 지명을 따서 만든 다리이름.[58] 한자가 삼성(三星)그룹과 다른 삼성(三省)이다.[59] 삼성역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삼성과 관련이 없다. 실제로 삼성그룹과 관련이 있는 마트는 홈플러스이마트이다. 한때 삼성그룹에 속했다가 홈플러스는 영국기업 테스코가 인수하였다가 다시 MBK파트너스에 매각. 이마트는 현재는 신세계그룹으로 분리.[60] 제일모직, 제일기획, 제일합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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