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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20:04:03

평화의 소녀상

위안부 소녀상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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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평화의 소녀상
Statue of Peace
파일:external/www.korea.kr/PYH2011121411090001300.jpg
<colbgcolor=#A4856F> 최초 건립 <colbgcolor=#fff,#1f2023>2011년 12월 14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건립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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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1. 개요2. 배경3. 곳곳에 있는 소녀상
3.1. 전국 소녀상 위치
4. 사건사고
4.1. 평화의 소녀상 대학생 노숙 집회4.2. 일본 정부와의 마찰4.3. 소녀상 반대4.4. 소녀상 펀딩 사기사건4.5. 부산 일본 영사관 앞 설치와 부산 동구청측의 철거 시도
4.5.1. 일본 정부의 반응4.5.2. 대한민국 정부의 반응4.5.3. 그 외4.5.4. 부산시의회의 조례안 지정
4.6. 2019 아이치 트리엔날레 위안부 소녀상 검열 사건
4.6.1. 소녀상 되기 운동
4.7. 원작자의 태백시 소녀상 철거요구 논란4.8. 피해자 상품화 논란 4.9. 2020년 일본의 베를린 소녀상 철거 기도 사건4.10. 기타 각종 반달리즘 사례
5. 비판
5.1. 소녀상 형상의 대표성에 대한 비판
6. 기타7. 둘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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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독일평화소녀상.png
파일:거제평화소녀상.png
독일 레겐스부르크 거제문화예술회관
이 자리에서 영원히 기억하리라 비극의 역사를
평화의 소녀상(Statue of Peace)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예술 조형물(동상)이다. 평화비(平和碑)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상의 모양은 의자에 앉아있는 모양과 서 있는 모양이 대표적이다.

2. 배경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Japanese_Embassy_in_Seoul_and_watched_from_behind_a_bronze_statue_of_comfort_women.jpg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집회가 시작된 지 20여 년이 흐른 2011년 12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거리 투쟁을 이어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염원하기 위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계획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000회째인 2011년 12월 14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세워졌으며, 이후 부산광역시 동구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을 비롯해 전국, 해외 각지에 세워지게 되었다.

김서경운성[2] 부부의 공동작업 작품으로 구성은 의자에 앉아 단발머리와 한복 차림을 하고 두 손 움켜쥔 채 대사관을 응시하는 높이 130cm 소녀상, 그리고 왼편에는 소녀가 앉아 있는 의자와 같은 사이즈의 의자가 있다. 빈 의자는 소녀와 함께 위안부 문제를 되새기는 체험 공간을 위한 자리라고 한다. 빈 의자 옆에는 표지석이 있는데 여기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쓴 '평화비' 문구와 이 구조물이 왜 세워졌는지에 대한 글이 적혀 있다. 소녀상 밑쪽에는 그림자 모양의 어두운 색 돌로 할머니의 옆 모습이 조각되어 있어 현재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이 문제가 아직 미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3. 곳곳에 있는 소녀상

소녀상은 한국은 물론, 해외에도 설치되어 있다. 2024년 6월 20일 기준으로 한국 148곳, 국외 31곳에 소녀상이 있다. 하지만 개인과 학교, 단체 등에서 추가로 건립 및 건립 예정이므로 정확한 개수 파악은 쉽지 않다. #, #
파일:external/www.ihalla.com/21-524199.jpg
제주도에 건립된 위안부 평화비
제주 노형동 방일리 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2016년 7월 20일 누군가에 의해 왼쪽 이마 부분이 날카로운 것으로 긁혀 훼손된 자국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6월까지는 훼손흔적이 없었기에 7월 10일부터 20일 사이에 벌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CCTV가 주변에 없어서 범인을 잡을 방법이 없다고... #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3073103760007500_P2.jpg
미국 캘리포니아LA 인근 글렌데일에 세워진 위안부 평화비.[3]

이처럼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평화비가 많이 주목을 많이 받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서울에 세워진 것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전역, 여러 곳에 평화비가 세워졌으며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후에는 중국, 미국 등 여러 나라에도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등등의 의미로 이곳저곳에 한국과 같은 소녀상 형태의 평화비가 세워지고 있다. 당연히 일본은 이 모습을 보며 거품을 무는 중. 일본의 방해로 설치가 추진되었다가 무산된 지역도 있다고 한다.
파일:external/news.kbs.co.kr/1(1254).jpg
한·중 평화의 소녀상

2015년 10월 28일 서울 동소문동 한성대입구역 앞에 한국인 소녀상과 중국인 소녀상이 함께 나란히 앉은 작품이 제막되었다. # 2016년 10월 22일 상하이 사범대학에 건립했다.# 29일에는 부평공원에 주먹을 불끈 쥐며 당당히 고개를 들고 앞으로 나가는 당찬 평화 소녀상이 세워졌다.#

대구광역시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존재하고 있는데 2015년 8월 15일 대구 시민단체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대구여상 안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이에 대구에서는 2016년 6월부터 대구평화의소녀상건립범시민위원회를 설립하고 모금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건립 위치를 놓고 건립위원회는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 반해 중구는 "동성로에 소녀상이 건립되면 시민 통행 등에 불편을 줄 수 있고 일부 단체 등의 반발도 우려된다"며 국채보상공원이나 일본군위안부역사관 앞에 건립하자는 대안을 제시하다가[4] 허용 쪽으로 입장을 바꿨는데 이에 대해서는 부산에서 소녀상 철거 문제로 여론의 격렬한 비난을 받아 크게 데고 입장을 철회한 것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중구청의 허가 이후에도 동성로 상인 단체들의 반발로 인해 설치는 난항을 겪고 있다.# 2017년 3월 1일에 대구 2.28 공원 앞에 소녀상이 세워지게 되었다.*외교 마찰도 감수하더니 동네 상인들은 무서운가보다 일본인들은 투표권이 없으니까

창원시에서는 시와 건립추진위원회가 주도해서 2015년 8월 11일에 제막식을 거행할 예정이었는데 건립 예정지 근처의 일부 상인들의 반대로 제막식이 연기되었다. 어느 한쪽을 편들거나 욕하기도 뭐한 것이 소녀상이 건립되기로 예정된 마산합포구 오동동 문화의 거리 인근 부지의 경우 처음 창원시는 이곳 오동동 · 창동 일대가 3·15 의거 발상지이자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 중간 집결지 역할을 했다는 역사성을 고려해 건립지를 정했는데, 하필 근처에 술집이 많아서 영업 부담은 물론 평화의 소녀상 건립 취지와는 다소 맞지 않는 데다 취객들에 의해 소녀상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상인들이 문화의 거리 안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했고, 시에서는 처음 예정대로 세운다는 결정을 유지하면서 상인들을 설득하겠다고 나섰지만 그 와중에 기일이 늦춰져서 예정대로 세워지지 못하게 된 것.## 창원에 세워지기로 했던 소녀상은 화성시에서 인수해 해외 우호도시에 세우기로 하는 방안이 추진되었다.#
2015년 8월 12일 군산에 세워진 소녀상의 경우 일제 시대 사찰 건물로도 유명한 동국사 경내에 세워졌는데 이는 소녀상 가운데 처음으로 사찰 안에 세워진 사례이며, 소녀상 옆에는 일본 조동종에서 세운 참회와 사죄의 글을 새긴 참사비가 세워져 있고, 과거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인정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인 동지회에서도 이때 소녀상 건립에 100만 엔을 보탰다고 한다.#

청주시에서는 청소년광장에 세워진 것에 대해 청주 지역의 일부 청소년단체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는데, 우선 청소년광장은 순수한 청소년을 위한 공간으로 청소년들이 끼를 발산하고 즐길 수 있는 놀이와 젊음의 공간인데 소녀상을 세우게 되면 아픈 과거의 역사를 되새기는 추모의 공간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고, 소녀상이 혹시라도 훼손되었다가 청소년들이 그랬다고 오해를 살지 모르고 자칫 언론을 통해 그렇게 보도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국제적 망신과 청주시 유일의 청소년 광장이라는 위상이 하락할 우려가 있다며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해[5] 이전이 검토되었다가 결국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들의 우려와는 달리 현재까지는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는 않은 듯.#

2015년 11월에는 캐나다 토론토에 '평화의 소녀상'이 처음으로 건립되었다. 화성시, 캐나다 토론토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

2016년 8월 6일에는 북미 지역을 이어 호주에서 처음으로 시드니'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모양도 서울의 소녀상과 똑같다. 외국에 들어선 소녀상으로는 미국 2곳, 캐나다 1곳에 이어 이번이 4번째며, 국가로는 세번째, 북미 외 지역에서는 처음이다. 호주에도 ‘평화의 소녀상’ 제막 하지만 현지의 일본 교민단체들이 "인종차별이다, 감정을 상하게 하는 역사적 상징물이다", “지역 사회에 해롭고 악의와 인종차별만 조장한다"는 황당한 주장과 함께 호주 인권위원회에 철거 요청을 했다고 한다. ##[6] 이에 반해 현지 일본인 사회 등의 조직적인 반대에도 교회 공간을 내줘서 호주에 첫 소녀상이 세워지도록 도와준 빌 크루스 목사는 "시드니 소녀상 건립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며, "책임지지 않는 일본정부 문제"라고 발언했다. 빌 크루스 목사 "시드니 소녀상 건립은 살면서 가장 잘한 일" 결국 호주 인권위에서 시드니 소녀상 관련 일본 단체의 진정을 아예 기각했다. 호주 인권위, 시드니 소녀상 관련 日단체 진정 기각

2016년 10월에는 중국에서도 첫 소녀상이 세워졌다. 중국 첫 위안부 소녀상 세워...미국과 캐나다 호주에 이어 세계 4번째

2016년 12월, 수도 워싱턴 D.C.에서 임시 제막식을 가졌다. 대만에서는 세계 인권의 날인 10일에 '위안부 기념관'이 개관하였다.#

2017년 3월에는 유럽 최초로 독일에서도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유럽 최초 '평화의 소녀상' 독일 비젠트 공원에 서다

2017년 5월 조지아주 브룩헤이븐시가 만장일치로 소녀상을 설치하는 데 동의했다. 해당 소녀상은 브룩헤이븐 시내 조그만 공원에 있었지만, 7월쯤에 브룩헤이븐시의 대표적 공원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으며 결국 2017년 9월 19일 이전이 완료되었다.

2017년 12월에는 필리핀이 소녀상은 아니지만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동상을 세웠다. 마닐라에 있는 마닐라만의 산책로에서 높이 3m의 위안부 여성 동상을 제막했다. 이 동상은 필리핀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이 눈가리개를 하고 비탄에 젖은 모습을 형상화했다. 필리핀에 첫 위안부 동상 건립…"일제 강점기 희생자 기억하자"(종합)

미국 샌프란시스코시에도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시장, 일본 반발에도 '위안부 소녀상' 승인 당연히 일본은 자매결연 도시인 오사카시장까지 직접 나서서 샌프란시스코시에 항의했지만# 오히려 샌프란시스코시장이 오사카시장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고 일갈했고 결국 소녀상은 원래 계획대로 설치되었다. 이에 오사카시는 자매결연을 끊어 버렸다고 한다. # 오사카市 “샌프란시스코와 자매결연 파기”… 日 ‘위안부 기림’ 항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위안부합의TF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한ㆍ일 간 비공개 합의가 존재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제 3국 내 위안부 기림비 설립 금지를 요구했다고 밝혀졌고 특히 제3국 기림비 설립 금지와 ‘성노예’라는 용어의 사용금지를 촉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기다 일본 외무성은 "각지에서 일본인 모임, 일본계 모임, 경제계와 연대해 (소녀)상 설치 저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日외무성 "'소녀상, 4개국 15개소 설치' 파악..저지 노력할 것"

2018년 8월에는 대만에서도 첫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졌다. 대만 첫 소녀상 제막, 필리핀선 촛불집회…"日 정식 사과해야" 제막식에는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을 비롯해 주요 인사가 참석했으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대만도 첫 '소녀상' 설치…日과 외교갈등 빚나) 특히 위안부상 표지판에는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중 한국과 중국 등에서 20만 명에서 40만 명에 달하는 위안부를 전선의 ‘성 노예’로 보냈다는 내용에 더해 1937년 난징 대학살 당시에는 30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을 학살·강간했다는 설명도 포함돼 있다. 대만 첫 위안부 동상, 난징대학살도 설명…일본과 갈등 예고 그런데 일본이 대만의 소녀상에 유감을 표시하며 철거를 요구했다고 한다. 일본, 이번에는 대만 소녀상 설치에 태클

그런데 '위안부 진상 국민운동 조직'의 대표인 '후지이 미쓰히코'라는 일본의 한 우익인사가 9월 7일 대만에 최초로 생긴 위안부 동상에 발길질을 하면서 대만인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이 극우 일본인은 지난 8월에 타이난시 국민당 지부 앞에 대만 최초의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이 생기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일본 내 우익단체 16곳과 함께 대만을 방문했다 동상에 발길질까지 한 사실이 동영상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대만인들이 크게 분노하였고 결국 대만내에서 후지이 일행의 출국을 금지하고, 일본에 공식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기 시작하자 후지이는 "장시간 이동으로 몸이 뻣뻣해져 스트레칭을 한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으며 뒤늦게 발뺌하는 추태를 보였다고 한다. 日 우익, 위안부 동상에 발길질하다 덜미…대만인 분노 ‘대만 소녀상’ 발로 걷어찬 일본 극우…“용서받지 못할 행동” 항의 시위(영상)

2018년 10월 6일에 맨해튼에서는 '코리안 퍼레이드'가 열리면서 소녀상도 코리안 퍼레이드에 등장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위안부 홍보배너가 설치되고 재팬타운에도 설치되었다.# 미국의 위안부정의부대와 일본의 간사이 네트워크는 샌프란시스코의 소녀상을 지켜낼 것이라고 공동성명을 냈다.#

2020년 9월 25일, 독일 베를린 미테구(區) 모아비트에 소녀상이 설치됐다.# 이에 일본 정부가 일본에 반하는 내용이 있다며 항의하였고, 결국 10월 7일 베를린 미테구가 7일 내에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후 독일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철거 명령을 철회했다. 그러나 2024년 9월, 베를린 미테구청은 소녀상을 사유지로 이전하지 않으면 4주 이내에 철거하겠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소녀상을 설치한 단체인 코리아협의회는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2020년 일본의 베를린 소녀상 철거 기도 사건 참조.

2022년 6월에는 베를린 소녀상에 주옥순을 중심으로 한 '위안부사기청산연대' 라는 한국 극우단체가 찾아가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독일인 시민단체가 극우 시위대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겨례는 "주어가 뒤바뀐게 아니다"라며 극우단체를 비판했다. #

2024년, 이탈리아 사르데냐 스틴티노시에 설치되었다.#

3.1. 전국 소녀상 위치

전체 목록은 KBS 데이터저널리즘 팀이 제작한 전국 소녀상 지도를 참고할 것.

4. 사건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4.1. 평화의 소녀상 대학생 노숙 집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평화의 소녀상 대학생 노숙 집회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2. 일본 정부와의 마찰

일본 정부는 이 평화비가 세워지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이다. 일단 제막식 전부터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1961년 체결, 1964년 발효)에 의거해서 이를 이전해달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면서 일본의 요구를 적절하게 씹어 넘기고 있지만 일본 또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이전을 요구하는 중이다. 이를 조성하는 데 정부가 딱히 금전 등의 지원을 하지는 않고 민간 차원에서 조성된 데다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국민적 여론에 그냥 훅 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2015년 12월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에서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일본이 기어코 이 평화비 이전을 외교장관 기자회견에 끼워 놓고, 이후 지속적으로 언론플레이를 시작한 것. 일본 언론들은 "재단에 일본이 투자하는 10억 엔 투입 조건은,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비의 이전"이라고 '정부 당국자'의 말이라며 보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들은 한국 여론은 뒤집어졌다. 안 그래도 피해 당사자들에게 제대로 된 말도 없이 일이 추진되어서 말이 많았는데 일본발 언론플레이까지 터졌으니.... 한국과 일본 당국에서는 "우리는 그런 말 한적 없어요!!!"라고 말하며 진화하고 있지만 쉽게 진화하기는 힘들 것 같다.

거기다 2016년 1월 12일 아베 신조 총리가 소녀상 문제에 대해 "소녀상은 이전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이에 한국은 격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2015년에 일본 대사관 앞에 건설예정지를 구입하는 것으로 의도적으로 소녀상과 대사관 사이를 벌려놓았다. 결국 이 예정지는 16년에 유물이 발견되어 건축이 지연된 뒤에도 어떠한 건설도 진행되지 않아 19년 4월에 가서야 허가가 취소되었다.#

2020년 9월 25일에 베를린에서 소녀상이 세워지자 일본 정부는 반발했고 소녀상 철거를 요구 및 추진한다고 밝혔다.#

일본 극우 민간 단체 사이트에 베를린 시장과 의회 의장, 미테구 청장 및 구 의원 등 여러 명의 이름과 주소, 이메일, 전화번호 등을 기재해 감사의 뜻을 보내자고 하거나 모테기 외무상, 주독 일본 대사관 등을 통해 압박하는 등 일본 정부가 베를린 소녀상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다만, 일본측 교수들이 반응이랍시고 '우리는 2차대전 당시 삼국동맹에 따라 추축국으로 맺어진 동맹관계로 연합군과 싸웠다. 당시 연합군에게 받은 피해도 전쟁범죄로 볼 수 있는데, 전후 책임은 독일과 일본이 져야만 하냐' 같은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베를린측은 1년 동안 설치될 예정인 소녀상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4.3. 소녀상 반대

반면 한국인들 중에서도 소녀상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일본 과거사 청산 부분에서 일본에 받은 거액을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인 보상을 하지 않은 한국의 책임이 일정부분 존재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성찰과 병행되지 않는 일본 과거사 만행 비판이 제3자에게 이중잣대로 비춰져 그 진정성이 의심될 수 있다는 논리.하지만 과거사에 발목 잡혀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 무산 등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입장은 21세기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입장과 유사한데, 이는 일제의 피침략국 들인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및 아시아 여성기금(Asian Women's Fund) 등을 통해 같은 전범인 독일을 상회하는 규모의 지원을 받고 대승적 차원에서 상당수가 친일 외교노선으로 돌아서게 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 또한 대승적 차원에서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여야 하는데 과거사에 매몰되어 현실적으로 북한 중국에 대항하는 구도인 한미일관계를 깨트리는 구도가 되어 우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부분이 이들에게 불편한 부분이고, 이러한 문제의 상징이 되는 존재가 위안부 평화비라는 주장.

그 외에 소녀상에 테러를 가하는 등 일본 극우의 스탠스와 동조하여 한국을 비하하는 국내 일뽕들이다. 일본 극우에 의한 소녀상 말뚝테러 사건에 대하여 극우를 규탄하기는 커녕 소녀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사건이라며 대한민국이 피해자 행세를 한다며 스탠스를 보인 바 있다.

그런 일뽕 중 대표적인 예로 만화가 윤서인은 2017년 1월에 소녀상을 까는 SNS글을 올려 논란이 되었다. #

일베저장소에서는 일본인으로 가장하여 소녀상에 침을 뱉었다. 경기 안산에서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남성들이 평화의 소녀상에 침을 뱉고 엉덩이를 흔드는 등 소녀상을 모독하는 행동을 하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에게 일본어로 대응하며 조센징이라고 모욕적인 발언을 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후 경찰이 용의자를 검거한 결과 이들은 모두 한국인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결국 위안부 문제에 불편하다는 시각을 드러낸 목적이라는 것이 밝혀혔다. 또 이들이 일간베스트의 회원인 것이 밝혀졌다.#아카이브 해당 댓글에서도 본인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는 것도 사실로 밝혀졌다. 자세한 것은 안산 소녀상 침뱉기 사건 참조.

4.4. 소녀상 펀딩 사기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착사모 회장 기부금 횡령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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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4.5. 부산 일본 영사관 앞 설치와 부산 동구청측의 철거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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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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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부산 동구청 직원들이 철거하고 있는 현장

2016년 12월 28일에 서울 대사관에 이어서 또다른 주한 일본국 외교공관인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도 설치를 추진했으나, 설치 후 박삼석 동구청장의 지시로 대치 끝에 소녀상이 철거되고 관련자가 연행된것이 시발점이 된 사건이다. ##

일단 동구청의 소녀상 철거는 소녀상 설치에 대한 어떤 정치적 판단도 아닌 소녀상 자체가 적법한 절차를 밟아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행한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 시민단체 측은 2016년 1월부터 설치 허가를 받으려 했으나 ‘도로를 점용할 수 있는 공작물과 시설 종류’에 해당하지 않아 거절되자 기습적으로 불법 설치를 강행하였다. 이에 동구청 측은 불법 조각상 설치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철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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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는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 또한 소녀상을 불법적으로 설치함에 앞서 어느정도 비판을 방어할 논리를 준비하기는 했다. 우선 동구청이 문제를 삼은 불법적 사유가 '도로 점용 허가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하여, 동구청은 동구 소녀상과 마찬가지로 인도를 점유하는 6.25 피란민을 소재로 한 조형물을 허가한 전적이 있다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해당 조형물은 일본 대사관 앞에 있지도 않고, 설사 그렇다 해도 문제는 피란민 소재 조형물 설치에 법리적 하자가 있었으므로 이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해야지, 그러니 위안부 소녀상도 설치해야겠다고 받아칠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현행 도로법 시행령에는 전신주, 가로등, 우체통, 전력구, 통신구, 간판, 자판기, 구두 수선대, 현금자동입출금기 등의 공작물은 점용허가를 받아 인도에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하므로 지자체의 입장은 원론적인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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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동구청 측은 소녀상에 방적 처리를 하여 야적장으로 이동시켰으며 시민단체는 벌금을 내고 동상을 반환해달라 요구했으나 이에 대해서는 동구청 측이 거부했다. 동상이 반환되면 원래 위치로 돌아갈 게 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동구청은 설치 장소를 확정한 뒤 이를 반환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우선 동구청은 인근에 위치한 정발장군공원에 소녀상을 건립한다면 허가를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타협안을 제시하였다. 실제로 공원에 설치한다면 도로 점용 문제 및 일본 대사관의 앞이라는 특성상 발생하는 여러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며 동구청 측 또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소녀상 설립을 불허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

허나 시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분노한 시민들은 동구청에 하루 종일 비난 전화를 걸었고, 이에 업무가 마비됐고 홈페이지도 다운되었다. 게다가 공무원 노조 또한 자신들을 일본에 부역자로 만들었다면서 강하게 분노했다.#, # 분노의 문의글들(새올전자민원을 클릭하면 나온다)[10]. 결국 구청의 안이한 대응이 행정에까지 악영향을 미친셈이다. 이렇게 난장판이 된 와중에 구청장인 박동구청장은 새누리당 전국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휴가를 내고 소통을 거부하면서 안 그래도 불타는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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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컷뉴스

결국 박삼석 동구청장이 백기를 들었다. 소녀상에 대한 조건 없는 반환을 결정하였고 '이 문제는 자치단체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밝히며 소녀상이 그 자리[11]에 다시 설치되더라도 철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녀상으로 인한 외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지지 않을테니 해당 문제는 정부에서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이후에도 동구청 측과 중앙정부 간의 떠넘기기는 정권이 바뀔때까지 계속 되었다[12].

문제는 동구청이 소녀상을 반환 및 영사관앞 설치에서 끝나지 않고 이제 동상을 마음대로 불법 설치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시민단체들은 이제 강제징용노동자상을 만들어서 소녀상 옆에 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국유지에 노동자상을 기습적으로 불법 설치하고 경찰은 노동자상을 또 강제 철거하는 소녀상 때와 똑같은 모습이 반복되었다. 동구청 측은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우자는 입장이지만 시민단체들은 건립취지와 맞지 않다며 거부하였다. 시민단체 측은 소녀상 허가가 거부되었을 때 625 피란민 조각상과 비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소녀상은 허가되었는데 노동자상은 허가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반발하고 있다.

4.5.1. 일본 정부의 반응

소녀상은 전국 여러 곳에 많이 지어졌지만 서울 소녀상과 이 부산 소녀상은 일본 외교공관 입구 바로 앞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일본 측에서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데,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소녀상 설치 이후 일본 정부는 한일 통화 스와프 협의를 전면 중단하고 주한 일본 대사와 일본 영사관장을 일시 귀국시키는 초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대사 귀국' 은 '국교 단교'의 직전단계에 해당한다.#

통상 외교적으로 유감스러운 사안이 발생할 경우 주재국 정부가 대사 등 해당국 외교사절 책임자를 불러 항의하는 초치(招致)를 하곤 한다. 그런데 초치 단계를 건너뛰고 곧 바로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한 것은 예상 밖의 강경 조치란 게 외교부 반응이다. 이는 일본 입장에서도 북핵 공조의 균열 등 상당한 출혈을 각오한 조치이며, 외교부 관계자 또한 “외교적으로 굉장히 충격적인 조치로, 우리도 이 정도 수준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는 소녀상 설치 절차의 합법성과 관계가 있다. 최초의 소녀상이 설치되던 당시, 묘비나 비석 대신 소녀의 모습을 한 예술작품으로 디자인된 이유도 비석에 대한 허가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나 예술 작품으로 분류하면 법리적 문제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소녀상 설치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비판, 그리고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목적 하에 합법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지금까지의 소녀상 설치와는 경우가 다르다. 설치 자체가 동구청의 설치 불허에도 불구하고 기습적으로 강행되었으며, 이에 동구청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를 철거하였으며 정발장공원에 설치할 수 있도록 타협안을 제시하였음에도 시민들이 민원 업무를 마비시켰고 그 결과 설치가 묵인되었기 때문이다.[13]

즉 이번 사건은 한국 시민단체가 대사관 앞에서 대놓고 일본을 도발하고 한국 정부가 이를 방조한 사건인지라 비록 일본에 원죄가 있다 해도 관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설사 일본에 원죄가 있더라도 과정에서 법리적 절차에 문제가 있더라도 일본이 잘못했으니 아몰랑 식의 대응이 이해관계 당사자 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 있어서 어떻게 비춰질지는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일본의 과거사 관련 망언으로 신경이 곤두선 미국 또한 이 사건에서는 한국을 비판하며 자제를 촉구한 상황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각료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에 소녀상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도록 강하게 요구했지만 현 시점에서 사태가 개선되지 않았다. 재작년 한·일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녀상이 설치된 것은 한·일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준다. 외교 관계에 관한 빈협약에 규정한 영사 기관의 위엄을 침해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며, "일본 정부는 소녀상을 조기에 철거하도록 계속 한국 정부 및 관계 자치단체에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스가 장관이 말한 '외교 관계에 관한 빈협약에 규정한 영사 기관의 위엄을 침해하는 것'은 아래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22조 2항' 에 따른 내용으로 해석된다. (dignity 는 일반적으로 '위엄'으로도 번역된다.)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 22조
2. 접수국은, 어떠한 침입이나 손해에 대하여도 공관지역을 보호하며, 공관의 안녕을 교란시키거나 품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특별한 의무를 가진다.
2. The receiving State is under a special duty to take all appropriate steps to protect the premises of the mission against any intrusion or damage and to prevent any disturbance of the peace of the mission or impairment of its dignity.

이는 한일간 합의한 아래 내용과 서로 상충 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 中
②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

이후 아베 신조 역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전화 통화하여 부산 소녀상과 관련해 "한·일 정부간 합의를 역행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다"고 주장했으며,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언급하며 "한·일 정부가 책임을 갖고 시행해 나가는 것이 계속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이 이날 새벽 워싱턴에서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외무성 사무차관과의 회담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지지하며 착실하게 이행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로, 나가미네 야스마사 대사와 모리모토 부산총영사는 1월 9일 일본으로 일시 귀국하였다. 그리고 아베의 동남아 순방 이후 17일 이후 귀임을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보류했다. 그리고 조기대선이 확정되고 북한의 핵실험이 현실화가 되고 있고, 이번 행동으로 인해 아베의 지지율도 나름 올라서 4월 4일에 다시 귀임했다

그러나 일본도 그렇게 외교적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니다. 모리모토 야스히로 부산총영사가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소환과 관련해 아베 신조 총리 등 관저의 판단을 비판했다고 하며, 이 같은 행동이 한국측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 있다고 판단해 문제시했다는 것이다. 결국 경질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통상적인 인사 절차라고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사석에서 한 문제 될 것 없는 발언을 언론사 기자가 "정권비판"이라며 왜곡해 고위 당국자에게 알린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사히 신문이 정권에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지 고려하면 한번은 걸러 들을 필요가 있는게, 아사히 신문 이외의 신문사는 아무도 이런 주장을 안했다.

4.5.2. 대한민국 정부의 반응

기획재정부는 “정치·외교적 원인으로 한·일 통화스와프 논의가 중단된 것에 대해 유감이다”라며 “정치·외교적 사안과 무관하게 한·일 경제·금융협력은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일은 고위급 경제협의 연기도 결정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6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여 일본 정부의 주한 대사·총영사 일시 귀국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이는 외교적으로 사실상 초치로 해석된다.

위안부 협약 및 빈 협약 관련한 상황에 대해서는, "위안부 합의와 완전히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한 국제 예양 및 관행의 문제"라면서 "그런 것이 국내적으로 잘 안 돼서(지켜지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상 한국 정부가 나서서 설치한 것이 아니고 철거 여부 또한 동구청이 결정할 문제라 정부가 어떻게 개입할 부분이 없다는 논리인데, 이는 지방정부가 해결할 사안이 아님을 들어 문제 해결을 중앙정부에 요청한 동구청의 입장과 상충된다. 즉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에게 문제를 떠넘기기하며 사태를 유야무야 넘기려는 시도다.

4.5.3. 그 외

조 바이든 부통령 역시 “2015년 한국과 일본이 성사한 위안부합의를 지지하며 착실한 이행을 지지”한다며 위안부 합의의 이행을 촉구하는 등 사실상 일본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차기 대통령인 트럼프 역시 한국과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떠한 외교적 접점을 갖지 않은 반면, 일본 아베 총리와 취임 전부터 지속적인 외교적 채널을 통해 만남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후 한일관계에서 어디를 배려해줄지 불투명하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 신문과 일부 자민당 의원들은 소녀상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반발하고 있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의 평균 연령은 25세였는데,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소녀상이라고 이름 짓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주장이다.## 일본 외무성이 명칭을 '위안부상(像)'으로 통일할 계획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부산 동구청의 소녀상을 적절한 다른 장소로 옮길것을 동구청과 소녀상 관련 시민단체에게 권고하였다. 역대 한국 정부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국내 여론을 우선하던 정책과는 다른 매우 이례적인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역대 정부에서 한일 과거사 및 소녀상 문제에서 일본에 대한 외교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한일 양국의 중재자 역할인 미국이 한국을 보다 배려하는 스탠스를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미일관계가 과거보다 격상되어 긴밀한 관계로 발전한 반면, 한미관계는 한국이 그동안의 친중정책으로 다소 경색돼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서로 상이한 관계의 긴밀도가 이번 소녀상 문제로 인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결과이며, 여러가지 정치적 문제로 인해 국정 공백상태인 한국 정부로선 미국과의 관계악화가 외교상의 공백으로까지 확대된 부끄러운 모습을 국제적으로 드러내게 된 셈이다. 참고로 이 소식이 있고나서 부산시 동구청장은 소녀상 이전문제는 이미 내손을 떠났다며 폭탄을 다시 외교부로 넘겨버렸다.''' 나부터 살자

보수성향(한국 기준)의 재일동포 기구로 알려진 민단에서 오공태 단장이 부산 소녀상'에 대해 "철거해야 한다는 게 우리 재일동포의 공통되고 절실한 생각 (한국) 국민의 냉정하고 현명한 판단과 일본 정부의 냉정한 대처를 바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한국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다. 그리고 민단의 오공태 단장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나 정부에 소녀상 이전을 공식 요구했다.#

2017년 1월 13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회 현안보고에서 "국제법 상 타국의 공관 앞에 특정 시설물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현 소녀상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나 자신은 소녀상의 건립 자체에는 찬성하는 입장이며, 단지 공관 앞에 짓는 것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니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에 한국여론은 매우 부정적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금 현 문제를 촉발시킨 사람이 위안부 합의를 주도한 윤병세 장관 본인이기 때문에 여론은 당연히 안 좋다.

2017년 2월 23일, 황교안 대행 정부와 외교부가 부산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는 공문을 부산 동구청에 보낸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당연히 여론은 매우 부정적인 상황.#

4.5.4. 부산시의회의 조례안 지정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정권교체로 인해 소녀상에 대한 정부의 태도도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7년 6월 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소녀상을 비롯한 조형물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부산소녀상 조례안'이 23일 부산시의회 관련 상임위를 통과했다. 핵심 내용인 7조2항(피해자에 관한 조형물·동상 등 기념물 설치·지원 및 관리사업)은 수정없이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2017년 6월 30일 조례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번 조례안이 통과되면서 일본영사관 앞 등 소녀상이 있는 부산의 3곳을 자치단체가 관리할 수가 있게 됐다. 소녀상을 훼손하는 낙서를 하거나 쓰레기를 일부러 버리는 등의 행위를 자치단체가 단속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2018년 현재 부산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영사관 입구가 아닌 뒷쪽 대로변에 세워져 있다. #

4.6. 2019 아이치 트리엔날레 위안부 소녀상 검열 사건


2019년 8월 1일부터 열린 일본 아이치현에서 열리던 '2019 아이치 트리엔날레'[14]의 전시회 '표현의 부자유 그 후'에 김운성, 김서경 작가가 제작하여 트리엔날레에 초청받은 위안부 평화비가 전시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나고야시 시장 카와무라 타카시는 2일 현장을 찾아 소녀상 전시 중지를 즉각 요청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15] 애초에 이 전시회 취지 자체가 그동안 권력이나 터부등을 이유로 억압됐던 표현의 자유가 시대가 바뀐 후에도 인정받을수 있을 것이냐라는 주제로 스다 다이스케 트리엔날레 예술감독이 지자체의 협력을 얻어서 전시한건데 시작하자마자 이 전시회 자체를 부정해버린 것. 그래서 스다 감독은 전시 둘째날에 소녀상이 있는 위치 입구에 커튼을 씌우고, 소녀상을 촬영하는 건 허가하나 SNS 업로드는 금지한다는 차선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애초에 혐한세력은 그 소녀상 자체가 제거대상이었기 때문에 어떤 일본인이 아이치현측에 팩스로 중지 안 하면 기름통 들고가서 불지르겠다고 아이치현 당국에 테러 예고 협박을 했고 전시회측은 전시회 책임자인 아이치현지사와 감독이 참석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8월 3일자로 해당 전시회를 중지했다고 밝혔다. # 한국쪽 기사. 이를 최종 결정한 아이치현지사 오무라 히데아키는 언론 브리핑에서 나고야시와 정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인정했고, 얼마전 일어났던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으로 30여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참사가 난 마당에 방화 테러 협박까지 받은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관객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지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서 일본 헌법 제 21조 내용 중 검열을 하지 않는다는 항목에 저촉되는 동시에 테러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일본 정부측의 공식 발표를 번복하고 테러나 다름없는 행위에 굴복한 것에 대한 일본 내부에서의 반발도 제법된다. 물론 일본 극우나 이들에 동조하는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조치는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건 헛소리라는 등의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알려지면서 전세계 예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애초에 전시회 주제가 표현의 부자유기 때문에 초대한 작품인데, 그걸 전시하자마자 부정해버리면서 전시를 하지 못하게 압박을 가하는 일본 정부, 그에 동조하는 혐한 세력의 폭거를 전세계 예술인들이 알게 되었고, 일본 내부에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전후 최악의 검열사태라고 명명하고 강력한 항의에 나섰다. 그래서 당사자 작가 부부의 뉴스공장 인터뷰 이후 8월 6일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전세계 예술가 72명이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 금지된 것에 대한 항의·규탄하는 연대 성명(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을 발표했다.# 일본 주요 언론들도 비판했다.# 그 시작으로 일본은 물론 전세계의 여성 예술인들이 전세계에 일본 정부의 비이성적인 문화 검열 행태를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한편, 아이치현 경찰이 위안부 평화상 협박한 사람들에 대해서 즉각 수사하겠다고 밝혔고 6일 현측에서 정식 수사요청을 받아 수사를 하여 현내에 거주하는 트럭 운전사 호타 슈지(堀田修司)를 방화 테러 협박 팩스를 보낸 혐의로 7일 체포했다고 밝혔는 데 이례적으로 범인을 빨리 체포할 수 있었던 건 해당 협박 팩스가 아이치현 내 편의점에서 보낸 것을 확인,경찰측이 해당 편의점 내 CCTV를 확인하여 용의자를 추정해 체포하게 되었다고 한다. 범인은 평소에도 험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8월 8일에는 오사카부지사 요시무라 히로후미가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반일선전이라고 말했으며, 아이치현지사를 향해 지사자리가 부적격하다는 발언을 하였다.# 또, 나고야시장이 아이치현지사를 향해 비난을 나서고 있다.#

8월 12일에 일본공산당 성명 발표에서 검열에 대해서 반대하고 표현의 자유가 지켜지지 않는 것에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민당도 같이 표명했다.#

이 소녀상은 8월 24일 스페인의 영화제작자 겸 독립언론인에게 매입되었다. 자신이 2020년에 바르셀로나에 설립하는 '자유 미술관'에 세계 각국서 검열에 걸린 60여점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1 #2

이에 검증위가 이 사건 계기로 일본에서의 미술전시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났다.# 또,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지사는 조건을 갖쳐지면 재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소녀상 전시하는 예술전시회는 보조금을 안주기로 했다.#

이에 보조금 안 주는 것에 대한 반대 서명을 벌이고 있다.서명

결국 전시회를 재개하기로 합의했으며, 10월 7일 ~ 14일까지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전시는 사전에 신청을 한 뒤 추첨에서 뽑힌 일부 관객들을 대상으로 그것도 극히 제한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안전 유지를 위해 1회 30명씩 추첨으로 선정된 관람객들이 사전에 교육을 받고 가이드와 함께 관람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동영상 촬영을 할 수 없으며 SNS에 전시 내용을 확산할 수가 없어 또 다른 검열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트리엔날레와 기획전 측은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금속탐지기를 사용한 검사를 진행하는 등 경비를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시 시장은 이날 전시 개최지인 나고야시 '아이치예술문화센터' 앞에서 감세일본 당원들과 농성을 벌이며 항의의 뜻을 표명했다.# 또, 주최측이 숨겨다는 등 발언을 하였다.#

2021년 2월, 아이치현 지사 오무라 히데아키의 주민소환 요구 서명을 한 43명 중 83%(6명 중 5명 꼴)가 조작 및 가짜 서명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일본내에서 다시 소녀상 전시 활동이 시작되었으나 역시나 일본 극우들이 방화를 시도하는 등 협박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日경찰, "소녀상 전시장에 휘발유 들고간다" 협박범 불구속 송치 협박범은 교토 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방화 사건 같은 대형 방화로 해당 전시회를 방해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4.6.1. 소녀상 되기 운동


소녀상 조각가 부부 "소녀상 지킴이 자처한 일본 시민들이 큰 힘 됐죠"

윗 문단의 소녀상 전시 검열에 항의하여 시작된 표현의 자유 지키기운동으로 일본 예술가 '시마다 요시코'와 멕시코 예술가 '모니카 메이어'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평화의 소녀상을 재현하며 예술가들이 의자에 앉아 이를 찍은 사진을 SNS에 인증하는 운동으로 전세계의 수많은 네티즌들과 예술가들이 일본 정부의 전시 성폭력에 대한 표현의 자유 규제는 20세기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다시 드러내는 것이라며 소녀상을 지키기위해 직접 참여하고 있다.

이는 2012년 전세계적 문제가 되었던 사진가 박정근씨의 우리민족끼리 리트윗 사건때 전세계가 표현의 자유가 탄압받는 것을 막기 위해 박정근의 무고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SNS 프로필 사진을 박정근 셀프 사진에서 그의 얼굴에 무언가를 합성한 것들로 바꾼 응원법과 비슷한 맥락이다.

4.7. 원작자의 태백시 소녀상 철거요구 논란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작가 부부가 강원도 태백시에 세워진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여 저작권 시비가 일어났다. 태백지역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태백 소녀상추진위원회는 태백문화예술회관앞에 소녀상을 제작했고 5월 중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제막식 직전 김 작가측이 "저작권 위반"이라며 폐기를 요청한 것이다. 이 소녀상은 지역 조각가가 김 작가보다 낮은 가격에 제작했다고 한다. 보통 공공의 이익을 위한 상징은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는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작가 부부는 적극적으로 저작권을 주장하며 작가의 동의를 얻지 않은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한 것. 한겨레 신문

작가 부부는 2011년 이래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한 것과 동일한 1.3m짜리 '평화의 소녀상' 95점을 판매한 것으로만 최소 31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1.3m짜리 소녀상의 제작비용으로 김 작가 부부가 받는 금액은 3300만원이다. 비용은 소녀상을 설치한 지역의 주민들 성금으로 충당했다. 조선일보

이에 대해 작가 부부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모든 창작물에는 저작권이 있다. 교육목적이라고 해서 저작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교육목적이기 때문에 저작권을 더 주장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남의 것을 도용해서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소녀상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2011년에 제작해서 현재까지 온 것”이라면서 “2011년에 평화의 소녀상을 정말 소중하게 어렵게 제작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소녀상 비즈니스’라고 하는 것은 일본에서부터 나오고 있다”며 “이 문제제기를 한 곳이 조선일보”라고 주장했다. YTN

4.8. 피해자 상품화 논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저는 수요 데모를 마치려합니다. 마치고, 이것 때문에 학생들이 마음의 상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발언하며, 더 이상 시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 30년 동안 이용만 당했다는 발언과 함께 자금 사용처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에 정의연이 이를 반박하고 정의연 지지 측에서 문제성 발언들이 튀어나오고, 논란은 계속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그동안의 위안부 관련 사업들의 용도가 불투명하다는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사설

극우 성향의 일본 언론 산케이신문에선 정의연 논란을 소개하면서, 반일과 증오의 상징인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기사 동아일보 기사

그러나 7월 3일 대구의 모 찻집에서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을 비롯한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 대표들 몇몇과 같이 참석한 자리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수요집회위안부 평화비 건립 운동은 계속 되어야한다고 다시 입장을 선회했다. 다만 현재의 시위 방식을 바꿔서 한일 청년 세대 교류와 역사 교육에 방점을 맞춰야한다고 했으며, 소녀상 건립에 더욱 힘을 쏟아 도쿄 한복판에까지 세워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 얼마 후 7월 9일엔 서울 종로구 대사관 앞의 소녀상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는 반아베반일 청년학생공동행동 회원들을 찾아가 그들을 격려하기도 했을 정도로 평화비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다. #2

4.9. 2020년 일본의 베를린 소녀상 철거 기도 사건

(조선일보)베를린 소녀상, 12일만에 철거 명령...그 뒤엔 日정부 집요한 로비

(동아일보)日 압박에 베를린 소녀상 철거명령…한일관계 또다른 악재?

2020년 9월 25일 독일 베를린미테구(區) 모아비트에 설치된 소녀상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본이 민관의 집요한 로비와 물밑 외교전을 펼쳤고, 결국 베를린시 미테구청에서 10월 7일 설치된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테구 당국은 "소녀상의 비문(碑文)이 한국 측 입장에서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며 철거 명령의 근거를 들었다고 한다. 미테구의 철거 명령에 대해 베를린시 소녀상 설치를 주도해온 한국계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는 10월 12일 베를린 행정법원에 철거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산케이 신문측은 자국이 어떻게 철거를 요청했는지 보도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과 화상 전화 회담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베를린시에 소녀상이 놓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철거를 요청했다. 이에 마스 외교장관은 “일본의 강한 우려를 이해한다”고 호응했고 일본 정부는 당시 이 같은 대화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일본 언론 보도로 알려졌는데 당시 일본 정부측에서 대화 내용을 밝히지 않은 것은 한국 정부가 철거 움직임을 견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는 적중했으며 “전시(戰時)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비난하고 여성의 인권을 호소한다는 명목으로 위안부상 설치를 계속해 온 한국 측의 수법이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게 된 것을 보여준다”고 자찬했다. 이때 위안부 관련 시민활동을 하는 정의연의 회계부정 의혹까지도 거론되는등 일본 측에서도 그야말로 철저하게 준비하여 접근하였다고 한다.

또한 철거 명령이 나자 일본 극우 민간단체 '나데시코 액션' 웹사이트에선 베를린 시장과 의회 의장, 미테구청장 및 구 의원 등 여러 명의 이름과 주소, 이메일, 전화번호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올라오는 등 소녀상 철거 기도에 협조한 독일의 기관들과 일본 기관들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자고 하기도 했다.[특파원리포트] 日 ‘민관 덴토쓰’ 또 먹혔다

독일의 소녀상 철거 결정까지 이끌어 내자 일본 정부 인사들은 외교적 성과로 자축했으며 이번 베를린 소녀상 철거는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압박과 민관협동의 외교적 노력의 효과라는 자뻑에 도취되어있었으나...

이 소식이 독일 정치권에 알려지자 철거 결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생겼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부부가 소녀상 철거 결정에 항의하며 현지 당국에 이를 철회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했다.# 또한 타츠의 보도에 따르면, 독일 사회민주당(SPD) 베를린 미테구 지역당 의장이 구청에 "모아비트의 브레머가와 비르켄가가 만나는 구석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의 보존을 위한 하나의 공적인 행사를 개최하고 (소녀상에 대한) 허가의 종결을 취소할 것을 요구한다"[16]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베를린 시장이 사민당 소속이고 미테구청장도 진보계열의 녹색당 소속이라 이 같은 사민당의 요구는 철거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권 외에도 독일 예술가협회가 미테구의 결정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10월 13일, 베를린 미테구가 철거 명령을 보류시키며 소녀상 철거 절차는 일단 중지됐다.# # 미테구는 코리아협의회가 미테구의 소녀상 철거 명령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면서 소녀상과 관련해 추가 조치를 내리지 않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결정에는 독일 각계에서 반발이 확산되자 베를린시가 부담을 느꼈고,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이 일제히 소녀상 철거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소녀상은 비문을 수정해 존치하는 방향으로 타협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10월 14일, 소녀상 철거 명령이 보류된 것에 대해 일본 정부는 “독일 내 사법 절차 등 이후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미테구청장이 한-일 양국이 만족할 만한 타협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논란을 계기로 독일에서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관심이 커졌다고 한다.#

독일에 거주하는 일본인 130명이 소녀상 철거를 반대했다.#

게다가 독일이 미리 일본의 반발을 알고도 세웠는데 갑자기 말을 바꾼 사실도 드러났다.# 나고야시에선 철거 요청을 했다.#

결국 미테구의회에서 철거 반대 결의안을 압도적인 다수로 통과시켰다.## 또한 최종적으로 소녀상을 영구존치 시키기로 결의했다. 영상

소녀상 철거를 노리다 소녀상 영구화라는 역풍을 맞자 일본 자민당은 외무상에게 결의문 보냈다고 한다. 이들은 타국과의 역사전쟁 등에서 정보 수집을 더욱 철저하게 하고 새로운 방안 등 다양한 수단을 써 일본 정부가 메시지를 더 강력하게 내보낼 것을 촉구했으며,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직원을 늘리거나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내놓았다.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철거를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日기시다, 독일 총리에 '베를린 소녀상' 철거 요청 하지만 이에 대해 독일 숄츠 총리는 철거가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日기시다, 獨총리에 ‘베를린 소녀상’ 철거요청→거절 당해

그 뒤로는 카셀 주립대학의 본관 앞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영구히 설치하는 등 독일내의 소녀상 설치가 역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참고로 카셀 주립대학의 소녀상은 이 학교 학생 의회의 의결로 세워졌다고 한다. 독일 카셀 주립대 학생들, 캠퍼스에 소녀상 영구설치 그런데, 8개월 만에 기습 철거했다.# 당연히, 학생회에서 격분되고 있고 시위도 같이 벌이고 있다.#, ##

베를린 미테구청장이 철거를 요구해 온 소녀상이 사유지로 이전되지 않으면 4주 이내에 철거를 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행정당국의 철거명령에 소녀상을 설치한 재독 시민단체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코리아협의회는 이달 31일(현지시간)까지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베를린 미테구청 명령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을 지난 15일 베를린행정법원에 청구했다고 17일 밝혔다. #

독일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추축국이었던 나라인지라 인터넷 댓글들은 "일본은 독일을 본받아라"는 내용이 많다. 독일의 경우 보여주기식이라는 논란도 있지만, 적어도 68운동과 반나치 교육을 받은 세대부터는 확실한 반나치 의식이 널리, 또 깊이 퍼져 있다.[17] 국가 차원에서도 연방헌법수호청이라는 국내 정보기관에서 우리나라의 국정원과 같이 계속 고위공직자들을 살피며 조금이라도 파시즘적, 나치즘적 발언이 나오면 공직인생을 아예 끝장낸다. 만일 극우인 듯 아닌 듯 줄넘기를 하는 당이 있다면 얄짤없이 공식 감시 대상으로 지정해서 낙인을 찍어 버리는 등 과거사 반성이 매우 확실한 편이다.

4.10. 기타 각종 반달리즘 사례

위 서술된 사례 외에도 평화비/상의 성격이 성격이다보니, 극우/혐한 성향의 일본인들 혹은 일본 극우사관에 찬동하는 이들에게 반달리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일본 극우사관론자중 한명인 스즈키 노부유키가 말뚝 테러를 한 적이 있고, 소녀상 모형에 말뚝을 박은 모형(?)을 나눔의 집에 배송하기도 했다. 미국에 있는 소녀상에도 동일한 말뚝테러가 자행되었는데 역시 그로 추정된다.

미국인으로서 일본 극우사관론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토니 마라노가 우스꽝스러운 낙서를 한 봉투를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 있는 소녀상 얼굴에 뒤집어 씌운 사건도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에서의 마라노의 인터뷰를 보면 '못생긴 여자와 성관계를 맺을 때 종이봉투로 얼굴을 가린 뒤 하라'는 질낮은 농담을 언급하는데, 단순히 조롱의 의미에 그치지 않고 더욱 심한 성적 모독을 의도로 이런 짓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인에 의한 사건도 있었다. 망치로 소녀상을 친 30대 여성이 있었는데, 조사하고 보니 혐한/자국 비하와는 전혀 관련없는 조현병 환자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또한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태권더 박과 태권더 박이 연재되는 극우지인 재패니즘을 소녀상에 갖다놓고 "태권더 박은 혐한이 아니야. 한국 내셔널리즘의 풍속인것이다."라는 글귀를 적은 인증샷도 있었으나 이건 반달리즘보다는 단순모욕에 가까워서인지 언론에 보도되진 않았다.

저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극우 일본인이 한국인 행세하는건지, 아니면 단순한 자국비하 성향의 한국인인지 확증된 바는 없다. 다만 태권더 박 문서에 언급된 한국인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조선족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 한국인에 의한 반달리즘으로 삼일절을 하루 앞둔 2016년 2월 28일에서는 역사 갤러리에서 소녀상에 입맞춤을 하며 조롱하는 게시물이 올려져 논란이 되었다. 그 다음날 같은 곳에서 소녀상에 욱일기를 꽂아 인증하며 조롱하는 것은 덤. 뭐 일뽕화된 역갤 성향을 생각하면 놀랍지도 않지만... 게시물 링크는 알바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삭제되었다.

최소한 한국에 있는 소녀상이 이런 반달리즘에 노출되는 것은 공공조형물로 지정되지 않은 탓에 CCTV 도입이 곤란한 상황에 기인한다는 주장도 있다. # 다만 밑에서 보듯 원주 소녀상이 전국 소녀상중 최초로 공공조형물로 지정되었기에 CCTV설치도 기대할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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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6일 새벽에 부산 일본영사관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던 이모 씨(42)가 소녀상 주변의 현수막 12개 중 4개를 훼손하여 경찰에 특수손괴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연합뉴스

일단 위 사진의 현수막에 대한 내용에 대해 위안부 문제와 한미일 동맹 사이에 중대한 접점이 없음에도 저런 문구가 들어간 것에 대해 해당 단체를 비판하는 여론도 있었으나, 평범하게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도 여러 개 존재한다. 참고로 2017년 기준으로 한미동맹, 미일동맹은 실존하지만 한미일동맹이라는 건 실존하지 않는다. 한미일관계 참고.

이모 씨는 소녀상 설치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지난 12월에 택시 타고 일본영사관 앞을 지나다 창문을 내렸는데 일부 집회 참가자가 나한테 욕하는 소리를 듣고 화가 난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 다만 욕설을 들었다면 무슨 욕을 들었는지 욕 들을 당시에 어떤 상황이었는지, 실제로 본인을 노리고 욕했는지의 여부는 현재 시점에서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 "집회와 시위 때문에 집 주위가 너무 시끄럽고 차도 막히고 해서 짜증이 나서 홧김에 그랬다"고 한다. 본인 진술로는 소녀상 기습 철거 당일에는 차가 네 시간이 막혔었다고. #

그러나 여론은 그다지 믿지 않는 분위기로 대부분 "나잇값도 못하고 저게 무슨 한심한 짓이냐"라는 반응이 많다. #

그런데 범인의 진술은 신빙성이 너무 떨어진다. 즉, 진짜 범행의도를 감추려는 변명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소녀상 기습 철거 당일 차가 4시간 동안 막혀서 화가 났다고 하는데, 그 날은 막히기는 커녕 차선 통제 조차 이뤄진 적이 없다. 시위자와 철거 공무원 측 대부분이 인도 위에서 충돌했으며 사건 당시 도로 밖으로 나온 것은 소녀상을 실어가려는 화물차 1대뿐이었고, 게다가 영사관 앞 도로는 8차선 왕복도로다.

또한 양측의 충돌과 철거가 이뤄진 시각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다. 회사원이라는 범인이 주장하는 교통정체를 겪으려면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 회사 조퇴를 해서 영사관 앞을 차량으로 지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28일 오후 2시 20분 이후로는 중앙대로에서 교통정체가 발생한 사실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홧김에 저질렀다는 범행동기도 신빙성도 매우 낮다. 인적 없는 새벽 3시40분에 점퍼에 달린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현수막 앞을 스쳐지나가는 척 하면서 슬쩍 칼로 긋고 지나갔다는 건 붙잡히지 않으려고 여러가지로 생각한 용의주도한 행동이지 홧김에 저지르는 범행이 아니다.

2017년 3월 3일 밤 10시 30분에는 몰래 소녀상 옆에 쓰레기를 버리고 달아나는 30대 청년들이 탄 차를 시민단체에서 나온 60대 노인이 휴대폰으로 차번호를 찍자 다시 돌아와서 "차번호 왜 찍냐 빨리 지워라"라며 시비를 걸어왔고, 위협을 느껴 도망치는 노인을 뒤쫓기까지 했다. 이 노인은 지나가던 택시를 얼른 잡아탔지만 이들은 끝까지 따라왔고 노인은 도중에 택시에서 내려 바로 앞의 자기 차를 타고 다시 도로를 달려 20분만에 따돌릴 수 있었고, 이때 찍은 차 번호판을 가지고 경찰에 신고했다. 청년 중 한 명은 이미 1월부터 소녀상 옆에 '종북좌파가 소녀상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유인물을 붙이던 인물이라고.*

2017년 4월 19일, 오후 2시 경 한 70대 남성이 부산 소녀상을 훼손하려다 경찰에 의해 제지되었다. 그는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며 "이를 막고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게 애국의 길"이라며 "우리나라와 일본은 예로부터 한 핏줄이라는 말을 듣고 배워왔다","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우리 국민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편 그는 지난 16일에도 서울 종로구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하려다 신고를 받은 경찰에 의해 제지된 적이 있었다.#
2017년 4월 21일, 오후 3시 경 진실국민단체 회원들이 소녀상 옆에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흉상을 세울려다가 소녀상을 지키는 시민단체 및 경찰들에 의해 제지되었다. 여담으로 이때 피켓을 들고 왔는데 일본어로 '주 예수는 일본을 사랑하고 있다'라고 쓰여져 있다. 참고로 해당 단체의 대표는 이전에 소녀상 옆에 소녀상 반대 문구가 적힌 불법 유인물을 살포하고 소녀상 주변에 폐가구 및 쓰레기들을 투기해오던 최모씨이다. #

2019년 7월 2일, 안산시청 홈페이지의 시민의 소리 게시판에 '출근길에 모욕적인 일과 함께 큰 화가 났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게시물에는 안산 상록수역 광장의 소녀상 옆의 의자에 6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앉아 담배를 피면서 침을 뱉은 사진이 올라왔다. 얼굴은 모자이크 되어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금연구역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고 한다. 게시자는 경찰과 시청 관계자, 보건소 측에 이런 사실을 알렸으나 관할 구역이 아니거나, 업무 시간이 아니라 연락이 어렵다는 등의 답변만 받았다고 한다.#

2019년 7월 6일, 밤 12시 경 20~30대 남성 4명이 안산 상록수역 광장에 설치된 소녀상에 침을 뱉다 다른 시민들과 시비를 붙은 일이 발생하였다. 목격자 2명의 진술에 따르면 4명 중 1명은 일본어를 구사한 것으로 알려져 일본인으로 추정되었다. 특히 이 남성은 대놓고 '조센징'이라는 막말을 퍼붓기도 하였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할 당시에는 4명의 남성들과 목격자들은 이미 자리를 뜬 상황이었다. 또 다른 증언으로는 한국어로 자신은 대만인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사건 발생 15시간 만인 오후 2시 20분경에 검거되었는데 4명 모두 한국인이었다. 경찰은 A씨 일행을 모욕죄 적용을 방침할 계획이다. # 자세한 내용은 안산 소녀상 침뱉기 사건 참조.

2020년 5월 20일 오전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 위치한 소녀상을 한 20대 남성이 돌을 휘둘러 얼굴 부분을 훼손시켰다. 이 남성은 이를 말리려던 행인 남성에게도 폭력을 휘두르다가 경찰에 검거되었다. #

2020년 7월 14일 보수 유튜버 '우파삼촌tv'가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지키고 있는 대학생들을 향해 차량을 돌진시켰다.[18] 또한 우파 시민단체인 자유연대의 김상진 대표는 대학생들이 있는 천막을 들추며 "자위하지 마라. 침대가 있나."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 이에 15일 반아베반일청년공동행동은 차량 돌진을 한 유튜버와 김 대표를 고소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에 김 대표는 여학생들이 아니라 남학생들을 향해 한 말이었으며, 특정한 사람에게 한 말도 아닌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관련기사

2024년 4월 6일 30대 남성이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과 강제징용노동자상에 검은 봉지를 씌운 뒤 '철거'라고 붙인 마스크를 씌운 이른바 '봉지 테러'를 일으켰다. 이 일을 일으킨 30대 남성은 극우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19]소속이자 일베 회원으로 밝혀졌다. [20]이 사실에 부산겨레하나와 소녀상 제작자는 이 30대 남성을 고발, 고소하였다. #

하지만 같은달 27일, 위의 동일인물이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상 옆에서 초밥을 먹고 일본산 맥주를 소녀상 머리위에 올려놓고 조롱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 이후로 부산 동구경찰서에서 소녀상과 강제징용노동자상에 방호벽을 설치하고 병력을 일부 추가하였다. 경찰은 해당 인물에게 법적 처벌과 혐의 적용을 검토 중인것으로 밝혀졌다.

10월 경 미국인 유튜버 조니 소말리가 서울특별시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의 소녀상 옆에 앉아 볼에 입을 맞추거나, 소녀상에 둔부를 들이밀며 트월킹을 추는 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해당 인물은 본 사건 이전에도 여러 국가에서 민폐 행동으로 물의를 여럿 일으킨 후 영상을 게재했으며 결국 유튜브 계정이 해지되었다.

5. 비판

5.1. 소녀상 형상의 대표성에 대한 비판

이는 역사를 이해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분법적인 세계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위 공산주의와 일본에 대한 태도입니다.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이고 극복되어야 한다면, 우리가 재현하고 있는 예술 작품들도 이를 넘어서는 태도와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소녀상이 그러기는커녕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가치관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봅니다. 소녀상은 사회예술을 넘어서서 성격상 국가주의 예술이라고 봅니다. 이분법적인 세계는 필연적으로 폭력적인 세계입니다. 소녀상이 맑고 슬픈 모습이지만 사실 재현의 정치학은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인문주의 예술이라는 것은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 모순된 것들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해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오히려 소녀상에서 한때 진보적인 역할을 했던 한국 민족미술의 지독한 역설을 봅니다.
- 디자인 평론가 최범#
'소녀상'의 디자인과 동상에 포함되는 안내판을 보면 전자의 의도처럼 가해자와 피해자를 둘로 나누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소녀가 입고 있는 한복으로 한국인을 묘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이 강조된다. 전쟁 중 성폭력을 예술 작품으로 공론화하여 보편적으로 비판하려 했다는 의도는 코리아협의회의 설명과 달리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중대한 역사적인 죄를 주제로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온 담론에서는 진정한 위대함도 머리 숙이고 무릎 꿇게 하는 희생자의 큰 고통이 기념비로 작용한다. 얼마 전, 빌리 브란트 전 총리가 바르샤바 게토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역사적 순간이 50주년을 맞았다. 실질적인 화해의 시작은 항상 가해자 측에서 주도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 사례처럼 화해 프로세스 구현을 위해 조성된 환경에서도 화해의 씨앗이 자라날 수 있다.

도덕적 측면에서 볼 때 정당한 것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이러한 배경에서는 과거청산 및 화해의 형태 담론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사고방식이나 이분법이 건설적인 방식은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죄를 청산할 수 있는 행동 방안의 범위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된, 정당한 도덕적 분노를 통해 전달되는 사고의 일차원성이 잘 드러나는 <DW News>의 포스팅을 이 시점에서 재차 인용하고자 한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베를린의 기념비가 논란과 외교적 긴장을 촉발시켰다. 일본은 그것의 철거를 원하지만, 운동가들은 반발하고 있다."

해당 글에서 정치적 대응 방안은 특정의 주체 그룹과 특정의 행동으로 제한된다. 적어도 간접적으로 무기가 손에 쥐어진 일본은 '악'으로 묘사되며 '저항'하는 운동가들은 그와 반대되는 위치에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반파시즘에 대한 역사적 재수용을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도덕적 방어막까지 획득하게 되면서 그 구상에 대해서는 공격이 불가능해졌다. 다만, 여기서 발생하는 의문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기억문화 형태에 대한 담론이 반드시 이러한 방식으로 구상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는가'이다.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에서 더 이상 담론의 일부로 인식되지 않는 측면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 주한독일고등교육진흥원 원장 라스 베르크마이어, <베를린 모아빗의 평화상(소녀상)에 관한 몇 가지 생각> [21]

일각에서는 소녀상의 형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이 주도하여 세계 각지에 세우고 있는 소녀상의 형상은 거의 보편적으로 짧은 머리와 10대 중후반대로 묘사되는 앳된 얼굴, 까치발을 한 채 수수한 한복을 입은 소녀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한국인의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일제의 만행을 상대적으로 강조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위안부 문제가 민족의 갈등을 넘어선 보다 상위의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임을 소녀상이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베를린에 소녀상을 세운 코리아협의회는 소녀상이 한복 차림인 것에 대하여 한복이 "피해자들이 일본군의 체계적 전쟁범죄의 희생자가 되었던 당시 흔하게 입고 있었던 한국의 전통 의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군의 위안부는 조선인만 있던 것이 아니었고, 1940년대의 일본 제국은 단순한 식민제국이 아니었다. 그들은 극단적인 전체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채 동아시아와 태평양 일대 전역을 폭력적으로 장악하고자 했던 추축국이었다. 점령지의 중국인들과 필리핀인, 베트남인, 말레이인 등의 현지인들이나 아시아에 와 있던 유럽인들, 그리고 심지어는 일본 본토의 일본인류큐인들까지 조선인들 못지않게 위안부로 다수 동원되었다. 자료의 미비로 인해 정확한 비율을 계산하는 것은 힘들지만, 위안부 중 조선인들의 비중은 학자와 자료에 따라 90%에서 30% 사이였다. 나머지는 전부 다른 국적자들이다.

재일 한국인 출신으로 일본 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처음 공론화한 이들 중 하나인 김일면 교수는 90%가 조선인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의 대표적인 위안부 문제 권위자인 상하이 대학교의 쑤즈량(蘇智良) 교수는 41만명의 위안부 중 20만명이 중국인이었으리라 보고 있다. 일본군 내부 기록에서는 1938년에서 1939년 사이 중국 전선으로 보내진 위안부 중 내지인은 49.8% 정도였고 조선인이 29.7%, 대만 본성인은 20.4%였다고 나와 있다.# 이는 본격적인 총력전이었던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집계된 수치이며, 1941년 이후로는 피해자의 국적이 더 다변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한일관계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범아시아적 차원의 역사 문제이며 범세계적 차원의 여성 인권 문제이다.

추모비는 어떠한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세워진다. 그러나 현재의 위안부 소녀상의 형상은 한국인들만을 한정적으로 상징함으로써 일본 제국에 의해 국가 폭력 피해를 입었던 다른 여러 국적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이는 현재 한국에서 타국 출신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분명 타 민족들 역시 일본군의 큰 희생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내의 위안부 담론에서 이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타민족 위안부들의 존재는 그저 일본의 전쟁 범죄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심각하였는지 강조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가해 국가의 국민인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현대 한국과 정치적으로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중국의 피해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그들의 상황이 어떠한지, 어떠한 아픔과 운명을 겪었는지, 또는 그들과 어떻게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위안부 담론를 보편 문제로 승격시킬 것인지는 별로 논의되지 않는다. 오직 한국인만이 조명되며 시민단체들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배상 책임만을 부르짖는다. 이는 마치 홀로코스트 피해자로 유대인만이 부각되는 것과 같은 반쪽짜리 기억에 불과하다. 홀로코스트의 경우에도 장애인, 동성애자와 공산주의자를 비롯한 독일인 정치범, 폴란드인과 러시아인 등 유대인을 제외한 집단에 대한 학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만이 부각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22]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사회 내의 위안부 관련 학술 연구 자체가 매우 미비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의 이보라, 최민지 기자의 조사에 따르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내 박사논문은 1945년 해방 이래로 기사 작성 시점인 2020년까지 고작 12편만이 나왔을 정도로 심각하게 적었다. 심지어 대부분은 영화와 같은 매체에서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미디어학 관련 논문들이었고, 가장 중요한 역사학적인 연구는 그보다 훨씬 더 적었다. 두 기자는 이에 대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다양한 증언을 기반으로 담론을 더욱 풍성하게 하려는 시도가 사회 분위기상 용납되지 않고 있으며, 국민들 역시 이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지적한다. 이 문제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강한 정치성을 띄고 있어 통념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친일' 또는 '매국노' 프레임이 씌워지며 논의가 틀어막힌다는 것이다. 많은 수의 학자들이 위안부 문제를 다각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물론 지난 30년 간 정의연이 독점적으로 주도하는 대중운동은 크게 성장했다. 허나 그들은 학계와 유리되어 있으며, 역사학적 연구결과를 자신들의 운동에 반영하거나 새로운 자료를 적극 발굴하려는 노력은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가령 현재 정의연 측이 위안부 관련해서 제공하는 사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측이 세운 시민단체인 아시아여성기금이 제공하는 것들보다 질적, 양적 측면에서 훨씬 뒤처진다.[23] 이 까닭에 목소리가 단순하고, 강하고, 명료해야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인 정치운동의 특성 상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더욱 좁아지고 말았다.

소녀상은 이러한 문제를 내포한 한국의 위안부 담론 속에서 나타나고 형상화된 것이다. 그렇기에 소녀상의 앳되고 순수한 외모 역시 근본적으로 표현해야 할 모든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강조하기보다는 그저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민족적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나아가 위안부 문제의 초국가적 보편성을 약화시켜 마치 한국과 일본 양국의 단순한 정치적 문제인 것으로 축소하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피해자들에 대한 기억과 위로라는 본질적인 의미가 잊힌 채 양국의 이분법적이고 폭력적인 민족주의 정치 논리에 소녀상, 나아가 위안부 문제가 휘둘릴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서강대학교 임지현 교수가 창시한 개념을 빌려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소녀상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표상이 되어가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극우들은 바로 이 점을 악용한다. 한국과 대만, 중국, 필리핀 일대에 세워진 동상의 경우 현지인들이 본인들의 국가에 본인들을 대표하는 형상으로 세운 것이기에 일본 측도 쉽게 문제삼지 못한다. 그러나 독일미국 등 위안부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국가들에 세워진 동상에 대해서는 온갖 방식으로 철거를 시도한다. 조선인 10대의 형상으로만 세워지는 위안부 소녀상들이 가진 대표성의 한계점을 파고들어, 해당 국가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한일 양국의 정치적 문제라고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2020년 베를린 시가 일본의 설득으로 미테구의 소녀상을 철거하려다 한국인들의 반발로 철거를 번복한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반대로 말하자면 한국인들이 직접 가서 말로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베를린이 일본의 설득을 타당하게 여겼고, 미테구의 소녀상이 베를린 시에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6. 기타

7. 둘러 보기


[1] #[2] 김서경+(김)운성. 부부가 공동 활동을 할 때 이렇게 칭한다.[3] 일본계 주민들을 이용한 일본측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설명을 들은 현지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의 동병상련과 연대의식 덕분에 추진될 수 있었다.[4] ##[5] 이게 가만 생각하면 말이 웃긴 게 "순수한 청소년을 위한 공간으로 청소년들이 끼를 발산하고 즐길 수 있는 놀이와 젊음의 공간"이 추모의 공간으로 변질될 수 있으니까 안된다고 하는 말은 다소 극단적으로 풀이하면 "우리 한창 잘 노는데 거기다 심각하게 진지빠는 것 갖다놔서 분위기 잡치지 마라"라는 소리다(...). 소녀상이 훼손되면 청소년들을 딱 잡아서 범인으로 지적할 것이라는 건 청주 청소년들이 죄다 잠재적 친일파라고 상정하지 않는 한 나오기 불가능한 소리다(...). 게다가 '청주 소녀상이 훼손된 것이 알려지면 청주 전체가 욕먹고 위신 깎인다'는 말도 소녀상 훼손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청주시 전체의 이미지를 깎아먹을 것이니 여기 두면 안된다고 하는 말은 어폐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훼손당할 거면 청소년광장이 아니라 청주 어디를 갖다 두어도 훼손될 테니까. 그리고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들의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것이 소녀상 문제로 한창 마찰을 빚고 있는 것도 모자라 실제로 소녀상을 훼손하는 인간까지 있는 당사자인 일본에 대해서조차 극단적인 반일의 경우를 빼면 "이건 일부 극우들의 짓이지, 일본인 전체의 생각과는 다르다"고 하지 일본인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경우는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의 주장은 다소 논리적 비약에 본말전도라고 할 수 있다.[6] 심지어 에미코라는 일본계 여성이 한말이 아주 가관인데 "그들은 성노예가 아니라 매춘부이고 벌이도 좋아서 한몫 단단히 챙겼다"라고 하며 어그로를 끌었다. 게다가 망발을 한 사람의 성별도 여성이다. 이 발언은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밖에 안 보는 일부 일본 여성의 한계를 잘 드러나는 발언이다.[7] 일반적으로 보라매공원으로 칭하는 F-5와 F-4 전투기가 있는 공원이 아닌, 대전광역시청과 대전정부청사 사이의 공원 중 대전광역시청 방면에 위치해 있다.[8] 공공조형물로 등록되면 관리비 및 유지비를 시에서 지원하므로 큰 의미가 있다. 이에 타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하러 방문하기도 했다.[9] 가톨릭 수도회작은형제회에서 운영하는 시설(회관)이다.[10] 이는 당시 구청장이였던 박삼석 구청장이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철거한 것이라고 하면서 책임을 회피한 것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폭발한 구민들을 달래러 나오기는커녕 휴가계 내고 구청 청사를 떠나버렸으니 밑에 공무원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11]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12] 실제로 외교부에서 동구청에 관련문제로 압박을 했지만 이미 제 코가 석자인 부산 동구청은 이를 씹어버렸다. 그리고 외교부도 동구청에 압박 그이상은 하지 못했다. 만약 이를 외교부에서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동구청에서 외교부로 불이 옮겨붙을 것은 불보듯 뻔했으니까.[13] 말 그대로 묵인이다. 절차 자체가 합법이 된 것이 아니다.[14] 1933년 밀라노에서 처음 열린 뒤 3년 간격으로 전세계 대상으로 열리는 설치 디자인을 중심으로 한 미술 작품전.[15] 추가로 가와무라 시장은 왜 돈들여서 소녀상을 전시하냐,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혐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를 확인한 스가 관방장관은 가와무라에 동조하며 트리엔날레 행사 지원 예산을 자르겠다는 협박을 추가로 했다.[16] 원문: Der SPD-Kreisverband Mitte erklärte am Montag, man fordere „das Bezirksamt auf, eine öffentliche Veranstaltung über den Erhalt der Friedensstatue in der Ecke Bremer Straße/Birkenstraße in Moabit zu veranstalten und die Aufhebung der Genehmigung zurückzunehmen.“ Das erklärten die Kreisvorsitzenden Julia Plehnert und Yannick Haan.[17] 당장 후술할 대안당의 일부 정치인들이 네오나치와의 비밀회담을 가졌다는 사실만이 알려지자 그 주의 첫 주말에 하루(매우 깐깐한 독일 경찰의 추산으로)25만명이 모여 반나치 집회를 벌였고, 3일간 140만명이 모였다. 감이 안 잡힌다면 한국 박근혜 퇴진 운동(촛불집회)당시 경찰이 추산한 연인원이 180만이다.[18] 해당 유튜버는 이 이전부터 최근까지도 홍준표 지지자 등 자신의 반대성향 시민들을 향해 차량을 돌진하는 위협을 지속적으로 행해왔다.[19] 해당 단체는 해당 사건을 일으킨 남성처럼 이전에도 다른 지역 소녀상에게도 철거 마스크를 씌운 것으로 밝혀졌다.[20] 일베에 이 사건 자체를 인증하였다.[21] 출처: 알렉산더 렌너 및 최광준, <한국과 독일의 과거청산과 기억문화>[22] 가령 독일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 추모 조형물은 자그마치 1000개 가량의 콘크리트 블럭을 동원한 거대한 규모이지만, 동성애자 희생자들을 위한 구조물은 길 건너 구석에 놓인 단 한 개의 블럭뿐이다. 소련인 희생자들의 경우 근처에 세워진 웅장한 소련군 전승기념탑이 대표하지만, 이 역시 피해자 집단을 대표하기보다는 소련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승리를 기념하고자 하는 성격이 짙다는 한계가 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누차 지적했듯 소련 피해자들의 아픔은 승리의 영광에 가려진 것이다.[23] 이는 지난 30년간 정의연을 이끌었던 윤미향 전 이사장이 모든 정보를 틀어쥐고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했던 1인 독주 체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한겨레의 조사에 따르면 윤 이사장은 자원봉사자들에게조차 보안각서를 쓸 것을 강요했을 정도로 폐쇄적이고 독단적으로 정의연을 운영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위안부 사료 발굴은 '과잉대표'된 정의연이 아닌, 서울기록원의 지원을 받은 서울대 인권센터가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