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저를 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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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b8fb2,#6b8fb2><colcolor=#ffffff,#ffffff> 장르 | 대체역사, 타임슬립, 전쟁 |
작가 | 레니비 |
출판사 | JC미디어 |
연재처 | |
연재 기간 | 2022. 11. 01. ~ 2024. 06. 05. |
이용 등급 | 전체 이용가 |
1. 개요2. 줄거리3. 연재 현황4. 특징5. 등장인물
5.1. 주인공5.2. 독일 제국5.3. 폴란드-리투아니아5.4. 발트(라트비아-에스토니아)5.5. 핀란드5.6. 우크라이나5.7. 조지아5.8. 영국5.9. 프랑스5.10. 이탈리아5.11. 바티칸5.12. 스페인5.13.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5.14. 세르비아5.15. 루마니아5.16. 오스만 제국5.17. 이집트5.18. 러시아 제국 → 소련5.19. 미국5.20. 청나라5.21. 중화민국5.22. 일본5.23. 대한제국 → 대한민국5.24. 모로코
6. 개변된 역사7. 평가8. 기타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레니비. 약칭은 카이저살, 카이살, 카구함 등이 있다.2. 줄거리
눈 떠보니 1901년 독일.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를 구했단다.
본의 아니게 카이저랑 엮여버린 이상, 내가 살려면 독일 제국을 어떻게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시켜야한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를 구했단다.
본의 아니게 카이저랑 엮여버린 이상, 내가 살려면 독일 제국을 어떻게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시켜야한다!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2년 11월 1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다.2024년 6월 5일에 총 499화로 완결되었다.
4. 특징
주인공이 1901년의 독일 제국으로 타임슬립해 빌헬름 2세를 구하면서 본의 아니게 카이저랑 엮여버리는 바람에 독일 제국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대체역사물로, 보통 1차대전을 다루는 작품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빌헬름 2세와 독일 제국이 주역으로 등장하기에 다른 작품들과 등장인물들의 이미지가 천차만별이다.표지에서 주인공이 쓰고 있는 것은 독일 제국을 상징하는 피켈하우베로, 비스마르크가 쓰고 있는 사진으로 유명한 모자다.
5. 등장인물
5.1. 주인공
- 최한수 = 한스 폰 초이
원래는 문과 출신의 편돌이였으나 교대 시간을 앞두고 어느 외국인 노인에게서 관상이 좋다고 하면서 독일 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지막에 노인이 준 환타를 마시고 의식을 잃었다가 얼떨결에 10살의 몸으로 1901년의 독일 제국으로 타임슬립을 하고 빌헬름 2세의 암살을 막으면서 '카이저를 구한 소년'이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궁에 들어온 뒤 드레퓌스 사건 재점화와 빌헬름 2세와 그의 어머니인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황후를 화해시키고 황후의 장례식에서 남작위를 수여받아 '한스 폰 초이 남작', 일명 '꼬마 남작'이 되고, 빌헬름 2세의 총애[1]를 뒷배 삼아 프리드리히급 전함, 기관단총, 전차 등의 신무기를 원 역사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세계 최초로 도입하고, 외교전에 적극 개입하여 본래라면 무산된 영독협상을 성사시키는 등 독일의 외교적 지위를 향상시켜 독일 제국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후에도 본인이 알고 있는 각종 무기 체계 개발을 지원하면서 독일 제국의 신병기가 나오면 한스의 이름이 붙는 전통 아닌 전통이 생겼다.[2] 거기에 심심풀이로 《불멸의 리 제독》이라는 이름으로 이순신 장군 전기를 소설로 연재하여 인기를 끌었는데 이 소설까지 나비 효과를 일으킨다.
작중 주인공을 부르는 호칭이 다양한데, 처음에는 카이저를 구한 소년에서 꼬마 남작이라고 불렸다가 카이저의 사위로 변했고, 이후 외교적으로 활약하면서 프랑스에서는 노란 비스마르크[3],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의 후계자나 승리의 설계자 등으로 불린다. 작위는 남작에서 루이제와 결혼하며 한스 폰 초이-크론베르크 후작이 되고 이후 1차 대전 승리 즈음 공작이 된다.
특이사항으로 주인공이 새로운 식문화로 아메리카노,[4] 민트초코, 하와이안 피자를 유럽에 퍼트리고 다니고 있다. 그 탓에 이탈리아계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비서가 신성모독을 저지르는 듯한 표정으로 제대로 된 커피에 물을 타서 준다든가, 크리스마스 특식이랍시고 하와이안 피자를 포로들에게 제공해서 이탈리아군 포로들이 주인공이 세상에 둘도 없는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분기탱천하는 등의 장면이 연출되었다.[5] 드골이 말하길 '주인공의 이해할 수 없는 입맛은 온 유럽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그나마 먹을 만한 것을 고르자면 기름에 튀긴 닭 정도'라고 악명이 자자하다.[6] 특히 민트초코는 한스가 고생한 장병들에게 특식으로 제공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뜯어말려서 좌절되고 전투식량에 포함시켰다가 장병들의 원성에 다시 뺐을 정도. 하지만 한스 본인은 진심으로 맛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이다.[7] 카페 초이와 하와이안 피자, 그리고 민트초코는 감옥에도 특식으로 나와 이후 포로로 잡힌 추축국의 지도자 3명에게 친히 특식으로 제공하는 인성을 보였다. 물론 한스 본인은 이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자비를 베푼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뭐가 문제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중. 이에 무솔리니는 제네바 협약을 위반한 포로 학대라고 항변하였고,[8] 빌헬름 2세와 아데나워가 사실은 한스가 제일 나쁜 놈이 아닐까 수근댈 정도.
그리고 주인공의 비서가 주인공을 부르며 다급하게 달려오면 작게는 독일, 크게는 세계 어딘가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다는 신호로 알려져 있어 주변 장관과 관료들이 이 상황을 두고 내기를 하면서 동시에 무서워한다. 주인공도 이를 알고 있어 비서를 바꿔보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목적대로 독일 제국을 1차 대전에서 승리시키는데 성공했으나, 비오 10세가 제2차 세계 대전을 예언하자 자신으로 인해 바뀐 역사에서도 결국 2차 대전이 찾아올 것임을 알고 독일 제국을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승리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전간기에는 총리 자리까지 올랐으며 결국 2차 대전에서도 독일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며 독일 제국을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으로 만든다. 이후 슬그머니 튀려고 했지만 아무도 그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으며, 유엔 설립과[9] 전후 부흥 계획인 카이텔 플랜, 그리고 제국 통합 계획과 베를린 올림픽 관련 업무, 그리고 각국 정상들과의 정상회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본인이 일을 찾아서 쌓아두는 그 피곤한 성격이 본인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빌헬름 2세의 사망 후 다시 사직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아들인 빌헬름 3세에게까지 두고두고 부려먹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를 들은 한스는 육두문자를 날렸다고.
결국 빌헬름 2세의 손자인 빌헬름 4세의 재위까지 3대에 걸쳐 총리로 일하다가 죽기 1년 전에야 은퇴하고 1977년 8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심지어 죽고 난 뒤 저승에서도 일에 시달리고 있는 중.[10]
5.2. 독일 제국
5.2.1. 황가 및 주인공의 가족
- 빌헬름 2세
작품의 최고 수혜자이자, 극초반의 공동 주인공.[11] 첫 등장에서 꿈 속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에게 황인종인 주인공이 자신과 제국을 구할 것이란 말을 듣는다. 처음엔 원조 황화론자답게 황당해하다가 진짜로 주인공이 나타나 자신을 구하자, 아버지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주인공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다. 이후 원 역사와 다르게 어머니와도 화해하고, 주인공과 딸 사이에 태어난 손녀도 이뻐해주면서 나름 잘 지낸다. 나이 때문인지, 2차 대전 파트에선 빌헬름 황태자와 주인공에게 국정을 거의 맡기며 등장이 매우 적어졌다.[12] 다만 성격은 아주 죽진 않아서 프리데리케가 이집트의 파루크 1세한테 몹쓸 꼴을 당할 뻔했다는 소리를 듣고 그의 애병인 도끼를 찾았으나 파루크 1세가 오토 황태자에게 총을 맞아 남자 구실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을 삭이기도 했다.
본편 마지막화에서 원 역사와 비슷한 시기에 사망하지만, 네덜란드에서 후회 속에 쓸쓸히 죽었던 원 역사와 달리 초강대국이 된 독일에서 대제라는 평을 받고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가는 것에 만족하며 눈을 감는다. 참고로 그가 죽은 날은 주인공 한스의 언급에 의하면 1941년 3월 6일.[13] 한스와 처음 만난 1901년 3월 6일 이후 정확히 40년 만이라고 한다. 사망할 때 내가 내치는 그럭저럭 했어도 외치는 좀 못했는데 한스와 만나서 다행이라는 말을 해서 외부 부착형 외교회로로서 독일에게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갈려나갔던 한스가 '좀...?\'이라는 반응과 함께 어이없어 하였다.[14]
- 프리드리히 3세
작중에선 이미 고인이라, 유령 상태로만 등장. 아들 빌헬름 2세의 꿈에 나타나서 제국이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빌헬름에게 주인공을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하고 사라진다.[15]
-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원 역사의 독일 제국 2대 황후. 웬 동양인이 자신의 아들을 구했다는 것에 흥미가 돋아, 주인공을 초청해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식사 도중에 빌헬름 2세와 싸우는 모습을 본 주인공의 조언을 듣고는 아들과 대화로 앙금을 풀어나가며, 결국 아들과 화해에 성공한다. 이후 주인공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자기 소유의 성을 물려주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환으로 사망하면서 작중에서 퇴장. 관은 영국의 유니언 잭과 독일 제국의 흑백적기로 싸인 채 매장되었다.[16]
- 빌헬름 폰 프로이센
빌헬름 2세의 장남이자 황태자. 후계자로서 1차대전 시기에 한스의 설계대로 루덴도르프를 참모장으로 데리고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서부전선에서 활약하며, 대공황 이후에 나이가 많은 아버지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게 되고, 육촌동생인 에드워드의 반란 당시에 아버지인 조지 5세를 죽게 만든 에드워드를 향한 아버지의 분노를 받아주느라 진땀을 흘렸고, 본편 마지막화에서 빌헬름 2세가 사망한 후 빌헬름 3세로 즉위한다. 그리고 사직을 청하는 한스의 요청을 받아주는 척하면서 적당히 휴가나 보내주고 나서 두고두고 부려먹기로 한다.
- 빌헬름 황태손
빌헬름 황태자의 장남(1906년생)으로 황태손이며, 원 역사에서는 도로테아 폰 살비에티아의 사이에서 딸 둘을 가졌지만 본작에서는 벨기에 레도폴드 3세의 처였던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공주(1905년생)와 혼인하였다.[17] 에필로그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빌헬름 4세'로 즉위하였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듯 본인 또한 주인공 한스를 죽기 직전까지 부려먹었다고 한다.
-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
빌헬름 2세의 고명딸. 이 세계관에선 겉보기에는 또래인[18] 주인공 한스와 남매처럼 자랐다. 이후 자라면서 주인공과 눈이 맞아 결혼에 성공하며 크론베르크 공작부인이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분명히 잘 된 일인데 왠지 모르게 검은 머리 양아치에게 있지도 않은 연인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둘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바람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빌헬름 2세가 도끼로 한스를 쪼개려 들 뻔했던 건 덤. 결혼한 후에 자식들을 최소 5명은 낳아야 하지 않겠냐면서 한스를 쥐어짰고[19] 프리데리케, 라인하르트, 크리스티안, 빅토리아, 마리 다섯 남매를 출산하였다.
- 프리데리케 폰 초이
풀네임은 프리데리케 루이제 빌헬미나 아우구스테 마리 폰 초이. 아버지와 닮은 검은 머리라고 언급되었다.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조부모와 엄마의 이름에서 따 왔고 마지막 마리는 한국식으로 해도 어색하지 않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즉 한국 이름은 비공식적이지만 '최마리'라는 것. 1914년생으로 1차대전이 끝나기 전에 빅토리아 루이제가 낳은 유일한 자식인 데다 대단한 미모 덕분에 빌헬름 2세는 '우리 프레디'라며 손녀바보 노릇을 했으며, 1차대전의 공적으로 한스를 공작으로 승격시킬 때도 우리 프레디가 이제는 후작영애가 아니라 공녀라고 엄청 좋아해서 그냥 손녀 때문에 승작시킨 거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엄청난 미녀로 동세대 유럽 왕족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미녀 중 한 명으로 소문이 자자해 수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았는데,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오토 폰 합스부르크 황태자,[20]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폰 메클렌부르크슈베린,[21] 의친왕의 차남 이우[22] 셋이 푹 빠져서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 일어났다.어째 전부 2살 연상이다
문제는 셋 다 프레데리케에게 너무 빠져서 분위기가 살벌했던지라 프레데리케는 한동안 결혼도 못하고 내내 난감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 외 그리스의 왕자였던 파블로스도 구혼했지만[23] 한스는 프레데리케보다 13살 연상에 5촌 당숙이라는 이유로 즉시 기각하였다.[24] 2차대전이 끝난 뒤 오토 폰 합스부르크 황태자와 혼인하게 되는데, 주인공과 독일 황실은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의 대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우려했지만 카를 1세가 황태자비로 삼을 거라고 공인한 것을 보아 프레데리케는 예외적으로 귀천상혼 규정을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 라인하르트 폰 초이
풀네임은 라인하르트 디트리히 카를 폰 초이. 어머니의 금발을 물려받은 미남이라고 언급되었다. 한스의 장남으로 조용한 성격이었으나 2차 대전 초창기에 호엔촐레른의 일원으로서 공군에 입대하게 되고 이후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하얀 공작이라는 닉네임도 얻게 되었고 전투기에는 브륀힐트라는 별칭이 붙게 되었다. 한반도가 해방된 날 크리스티안과 함께 한반도를 방문하였는데 일부 복벽파들에게 조선의 왕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았으나[25] 그런 거엔귀찮아서관심 없었기에 안 한다고 딱 잘라서 거절하였다고 한다. 2차대전 즈음부터 룩셈부르크의 샤를로트 여대공의 장녀인 엘리자베트(1922)와 혼담이 오가고 있다고 한다.[26]
- 크리스티안 폰 초이
차남.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전차 조종수로 입대하였고 한스가 뒷목을 잡을 뻔한 위기상황에 노출된 적도 있지만 잘 극복하고 100여 대가 넘는 적 전차를 때려잡은 전차 에이스로 유명세를 날렸다. 영국에서 전공을 세웠을 때 당시 12살이었던 웨일스 여공 빅토리아[27]가 크리스티안의 미모에 반하게 되는데, 당시 크리스티안은 성인이라서 당장 빅토리아에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은 한스 빼고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한스는 '8촌은 근친혼 대상 아닌가?'라는 생각에 고민하고 있었다.[28] 에필로그에서도 영국 왕실과 혼담이 오간다는 것을 보아 결국 이어졌을 듯하다.
- 프리드리히 4세
빌헬름 2세의 증손자이자 현대 시점의 독일 제국 황제.
- 프리드리히 폰 초이
한스의 손자이자 라인하르트의 아들로서 현대 시점의 초이-크론베르크 공작.
- 한나 폰 초이
한스의 고손녀. 현대 시점에 가이드 일을 하다가 잠시 지상 구경을 온 고조할아버지 한스와 만나 이야기를 한다. 물론 본인은 자기가 만난 노인이 한스인 줄 몰랐다. 마지막의 한스의 평으로는 루이제 어릴 때와 많이 닮았다고. 고조할아버지와 같은 맛잘알이라서 민트초코와 하와이안 피자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5.2.2. 정계
- 베른하르트 폰 뷜로
작품 초반 및 중반까지 독일의 총리였다.
- 오스발트 폰 리히트호펜
작품 초반의 외교장관. 성씨에서 알 수 있듯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의 친척으로 암으로 사망하고 자신의 장례식에서 주인공과 만프레트가 서로 만나게 된다.
- 테오발트 폰 베트만홀베크
전간기의 독일 제국 총리. 한스와 같이 전간기에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며 바쁘게 일했지만 폐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사직하였다.
- 콘라트 아데나워
작품 중반에 쾰른 시장으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원 역사에서 총리를 했던 인재라는 한스의 독백으로 언급되었고, 독일 제국의 앞날에 장애가 될 융커들을 찍어낼 행동대장으로 한스에게 영입되었다. 융커들에 대해 적대적이어서 융커들을 도려내기 위해 협력해달라는 한스의 제안에 매우 기꺼워하였다. 이후 스파르타쿠스단의 한스 암살미수 사건이 융커들의 적극적 방조로 벌어졌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융커들을 낚기 위해 한스가 제안한 이 가방 안에 독일 제국에 반역한 자들의 명단이 들어있다라는 낚시를 펼쳐[29] 여기에 낚인 힌덴부르크가 연루된 융커들의 명단을 갖다바치게 만들었다.
이후 베트만홀베크의 후임 총리가 되었다가 뇌물 수수와 관련된 추문과 엮이고 이에 대응하다가 일어난 룀의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의 일로 마음이 꺾여 한스에게 총리직을강제인계하고짬처리시킨 것에 대한 보복성 인사로외무장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5.2.3. 군부
- 알프레트 폰 발더제
주인공이 독일 제국에 적응하는 초반 파트의 빌런. 의화단 운동 진압 당시, 무고한 일반 청나라인들까지 학살한[30] 원 역사를 반영해서 상당한 황인종 차별주의자로 나온다. 같은 황화론자였던 빌헬름 2세가 주인공을 신뢰하는 것을 의아해하며, '저 동양인 꼬맹이가 뭔 요술을 부리고 있다'고 여긴다. 때문에 주인공이 하는 일마다 방해하나, 그럴수록 인망만 잃어버리고 만다. 결국 뒷방 늙은이가 되어 골골거리다가, 헤레로족의 반란 소식을 듣고 마지막 발악으로 한스를 그곳으로 파견시키고 덤으로 루덴도르프를 보내 한스를 죽이라고 시켰지만 정작 한스는 헤레로 반란을 단번에 진압했고 루덴도르프마저도 전향해 한스에게 붙어버린다. 끝내 멀쩡히 살아 돌아온 한스를 보며 놀라며 또 독설을 듣고는 홧병으로 죽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면에서는 한스와 뜻이 같았는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다른 장군들은 시큰둥한 반면 발더제만큼은 의화단 운동에서 극동 러시아군의 실태와 일본군의 정예함을 직접 보고 러일전쟁의 양상을 정확히 예측한다. 물론 이것이 한스가 제안한 것임을 알자 바로 불쾌해했다. 이를 보고 독자들은 극과 극은 통한다를 보여주는 인물로 평가한다.
- 에리히 루덴도르프
발더제의 명을 받고 주인공 한스를 방해하려 왔으나, 아프리카에서 대활약한 한스에게 기가 눌려서 역으로 포섭된다. 발더제의 몰락 이후에는 한스 휘하에서 활약하며, 작위를 받고 에리히 폰 루덴도르프란 이름으로 활동한다.
-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어린 시절, 친척인 오스발트 폰 리히트호펜 외무장관의 장례식에 참석한 한스와 만나 악우로 인연을 맺는다. 이후 1차 대전 파트에서 원 역사처럼 육군 항공대에 합류, '붉은 남작' 신화를 써 간다. 2차 전간기에는 공군사관학교장이 된 듯하며 2차대전 시작 즈음 공군총사령관에 보임되었다. 총사령관임에도 툭하면 직접 전투기를 몰고 나가려는 성향 탓에 미국으로 파견될 때 한스가 비행기에 손만 대도 모가지를 날리겠다고 협박해서 막아야만 했다.
- 알프레트 폰 슐리펜
한스의 기관단총과 러일전쟁에서의 참호전을 보고 자신이 계획한 슐리펜 계획에 심각한 고민을 하다가 이 문제를 해결할 전차를 알게 되고 이후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전차 부대를 육성하다가 건강 악화로 사임하고 뒤로 물러난다. 또한 슐리펜 계획도 약간 수정해서 벨기에 국경 통과가 허용된 것으로 조작하고 일부러 프랑스에 유출시켜 프랑스의 벨기에 침공을 유발시킨다. 이후 영국군이 프랑스군의 함정으로 고립되자 지금까지 육성한 전차 부대가 투입되고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크게 만족하고 며칠 뒤 사망한다.
-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한스와의 첫 만남에서 지금의 카이저마리네로서는 로열 네이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에 분노하나 드레드노트급[31]을 선보이자 바로 신봉한다. 이후 SMS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가 취역하고 베네수엘라 위기에서 큰 활약을 하자 매우 기뻐하였다.
- 파울 폰 레토포어베크
첫 등장은 의화단 운동에서 등장하고 이후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재등장하고 1차 대전에서 활약한다. 젝트의 퇴역 직후 다음 육군참모총장이 되며, 전쟁 준비를 하다 2차 대전이 개전하자마자 만슈타인에게 참모총장 자리를 넘기고 은퇴한다. 자신을 알차게 부려먹는 한스에게 4호 전차의 이름을 아이젠한스Ⅱ로 짓는 것으로 소소한 보복을 한 것은 덤.
- 헤르만 괴링
원 역사처럼 루프트바페에 있다가 돈을 더 많이 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해군 항공대로 전출을 신청한다. 이후 2차 대전에서 소장으로 등장하며 독일 동방함대의 일원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한다. 야마모토가 카미카제 명령을 내리자 파일럿의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냐며 분노한다.
- 파울 폰 힌덴부르크
몰트케의 후임 자리로 처음으로 언급되고, 이후 슐리펜의 장례식에서 등장한다. 한스에게 뜬금없이 조심하라는 경고를 하고 사라지는데 이후 융커들의 음모를 아는지 떠본 거였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을 이용한 암살이 실패하고 야고다가 체포되자 가장 먼저 발을 빼려는 모습을 보이고, 끝내 아데나워의 거짓 공갈에 속아 한스에게 항복하며 목숨을 구걸한다. 결국 반역자들의 명단을 적어서 넘겨준 대가로 본인은 살아남고 이후 별 언급 없이 퇴장한다.
- 오토 스코르체니
원 역사처럼 팔시름예거 소속. 그에 대해 잘 아는 한스가 친히 루스벨트 구출 작전에 지명하고 잭 처칠과 함께 활약하여 루스벨트를 구출해내었다. 작전 도중에 총알이 떨어지자 쓰레기통 뚜껑을 휘두르며 맥아더의 반란군들을 때려눕히기도 하였는데 이 장면을 어떤 꼬마가 감명 깊게 지켜보았다. 이후 마지노 마을 강습작전이나 뉴욕 강습작전 등 연합군 승리의 결정타를 날리는 굵직한 작전에 투입되어 활약하였다.
다만 스코르체니는 오헝제국 출신인데 어떻게 독일 제국 소속이 되었는지는 불명이다.[32]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원 역사와 비슷하게 카나리스의 직속부하로서 방첩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한스의 지시로 리하르트 조르게를 감시하고 있었으며, 쓸모가 없어진 조르게를 체포하면서 역정보를 흘리는데 이용당한 사실을 알려주어 조르게가 절규하게 되었다.
- 에리히 하르트만
원 역사와는 달리 이 세계에서는 2차 대전이 3년 정도 앞당겨져서 나이가 너무 어려 참전을 하지 못했고, 세계 최초의 우주인이 된다.
5.2.4. 민간
- 후고 슈마이서
원 역사의 MP18 기관단총 개발자. 주인공이 기관단총의 개념을 제시해준 덕분에, 원 역사보다 빠르게 군용 기관단총을 개발한다.[33] 이후 소련에서 데려온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를 제자로 맞이하게 되는데 이 녀석이 그만 딸과 눈을 맞는 바람에 슈마이저는 총기 난사를 하면서 죽이려다 결국 데릴사위로 맞이하게 된다.
- 로자 룩셈부르크
독일 공산당의 지도자로, 주인공의 활약으로 갈수록 권위가 강해지는 황가를 경계하면서 등장한다. 본인은 레닌과 똑같이 공산주의자를 무작정 때려잡는 당대 정치인들보다 노동자들을 잘 대해주는 한스를 공산주의 최악의 적으로 평하고 있다. 결국 휘하 공산당원들과 함께 한스 폰 초이를 암살하고 봉기를 일으키려고 했으나, 초이의 천운과 전투광 패튼으로 인해 거사가 실패하고 초고속 재판 후 다음날에 바로 동료들과 함께 단두대로 처형된다.
- 파울 요제프 괴벨스
원 역사의 악명 높은 나치 독일 선전장관. 이 세계관에선 주인공이 설립한 독일방송에 발탁되어 아나운서가 되었다. 이를 방송으로 알게 된 한스는 커피를 뿜었다. 이후 승진을 거듭하여 2차대전 개전 시점에는 수석 아나운서가 되었으며, 개전 연설을 한스가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꺼낸다.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아나운서로서의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 하인리히 힘러
원 역사의 슈츠슈타펠 국가 지도자. 역사의 변화로 슈츠슈타펠은커녕 나치당도 생기지 않은지라, 부친으로부터 받은 양계장을 발전시켜 만든 맥주홀 겸 치킨집(...) 사장으로[34] 등장해 치킨과 맥주를 팔며 살고 있다. 히틀러가 만든 애니메이션에 푹 빠지고, 한정 컬렉션을 수집하는 등 원 역사와는 많이 다른 형태의 히틀러 추종자가 되었다. 이를 들은 한스는 여기에서도 결국 히틀러 꽁무니를 쫓아다닌다고 깐다.
5.3. 폴란드-리투아니아
- 아달베르트 폰 프로이센
빌헬름 2세의 3남. 해군과 군함에 심취한 군함 덕후로, 육군에 복무한 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묘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주인공이 쓴 《불멸의 리 제독》이라는 이름의 이순신 장군 전기를 접하고,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이순신 애호가가 된다.[35] 1차대전 때 독일이 폴란드-리투아니아를 독립시켰을 때 아내인 작센마이닝겐의 아델하이트 공녀의 친족이 폴란드 왕위를 주장한 것의 여파로 인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에 임명되었다.[36]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이 된 뒤에는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하며, 작은 해군을 굴리는 것을 취미로 삼으며 지내다가 소련이 침공하자 분기탱천하여 대소련전을 적극 주도한다.
-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1차대전 당시 독일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러시아 제국에게서 독립시킬 때 폴란드-리투아니아 독립을 주도하였다. 원래 한스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따로 독립시키려 했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인의 정체성이 강했던 피우수트스키의 고집이 작용하여 큰 맘 먹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부활시켜 주었다.[37] 빌헬름 2세의 아들을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으로 삼는 건 별 불만이 없지만[38] 기왕 독립했으니 다른 나라보다 잘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포부에 불탄다. 2차대전이 일어날 때(1936년 1월)는 피우수트스키가 죽은 뒤라서 로코솝스키와 시코르스키가 폴란드군을 맡았다.
- 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키리
1차대전 당시 제2의 조국인 프랑스를 위해 전 재산을 바치는 등의 여러 헌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적국인 독일의 편을 든 폴란드인이라는 이유로 극심한 박해를 받았고,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전후에도 심한 박해에 시달리자 두 딸(이렌, 이브)을 데리고 폴란드-리투아니아로 가서 여생을 보냈다.
-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1차대전 당시 독일에 포로로 잡힌 모습으로 등장. 아버지가 폴란드인이고[39]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지만 오로지 러시아인의 정체성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군 장병 포로들에게 '폴란드인'이라 불리며 각종 가혹행위에 시달리자 버티지 못하고 '아버지의 나라'인 폴란드 독립군으로 전향하게 된다. 1차대전 이후 폴란드가 독립하자 폴란드-리투아니아군에 들어가 승승장구했으며, 2차대전 당시에도 폴란드-리투아니아군의 사령관으로서 소련군에 맞서게 된다. 러시아인들에게 억울하게 박해받아 전향한 입장이라 원 역사와 달리 이 시점에서는 러시아인을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
2차대전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군의 사령관으로서 소련군의 침공을 막아내는 역할을 맡았다. 소련의 국력이 원 역사보다 훨씬 약한 데다 소련군 지휘관이 퇴물인 보로실로프라서 소련군이 허접해서 버틸 만했다고 묘사된다.
5.4. 발트(라트비아-에스토니아)
- 오스카 폰 프로이센
빌헬름 2세의 5남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 다음에 해방시킨 발트 왕국의 왕으로 내정되었다.[40] 5남이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황이라서 이나 마리 폰 바스비츠 여백작과 귀천상혼한 자신이 왕으로 내정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이후 왕으로서 제 일을 한 것으로 보이며, 2차대전 당시 발트 왕국의 상황은 잘 묘사되지 않지만 큰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5.5. 핀란드
- 프리드리히 카를
헤센카셀 방백으로 빌헬름 2세의 막내 여동생인 프로이센의 마르가레테 공주의 남편이다.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핀란드 왕국의 왕이 되는데, 본작에서는 1차대전 때 독일이 협상국의 수장이라 1차대전 도중에 러시아에게서 핀란드를 독립시키고 왕으로 삼았다. 2차대전(1935~1936) 당시에도 핀란드 왕으로서 소련군에 맞서 싸우는 모습이 나온다.
- 프로이센의 마르가레테 공주
빌헬름 2세의 막내 여동생으로, 핀란드 왕국이 성립되면서 핀란드의 왕비가 되었다. 다른 위성국들은 빌헬름 2세의 아들들을 앉혔지만, 핀란드는 프로이센의 마르가레테 공주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프리드리히 카를이 핀란드 왕이 되었다고 한다. 니콜라 테슬라의 괴짜 기질 때문에 장남인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차남 막시밀리안의 성격까지 덩달이 괴팍해져서 테슬라를 꺼린다.
- 니콜라 테슬라
원래 미국에서 살고 있었으나, 한스의 초청을 받고 독일 제국으로 이주한다. 괴짜 중에서 괴짜인지라 자신을 관리하는 마르가레테 부인을 여러 번 기겁하게 만든다. 그래도 능력은 원 역사 그대로라 한스가 제안하는 개념을 토대로 라디오 등의 발명품을 만들어낸다. J. P. 모건 曰 한스가 테슬라를 후원겸 공밀레하면서 테슬라의 천재성이 비로소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언급하였다. 프리드리히 카를의 장남인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차남 막시밀리안이 스승이라 부르며 잘 따랐으며, 이 때문에 본인도 핀란드까지 따라와서 핀란드 과학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다가오는 걸 직감한 주인공의 의뢰로 레이더와 골리아트 지뢰 등의 신무기 개발을 담당하게 된다. 레이더를 개발하다 전자레인지도 개발한 것은 덤.
-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본래 러시아 제국 장교였으나 핀란드 독립 이후 핀란드 왕국으로 이주하였다. 핀란드 왕국에서 고위직을 차지하여 1935~1936년 2차대전 때 핀란드 총사령관으로서 소련군의 침공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다.[41] 한때 로마노프 왕조의 충신이었던지라 니콜라이 2세에게 여전히 호의적이며, 이 때문에 2차대전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명목상 핀란드령으로 편입시켰지만 자치령으로 대우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을 니콜라이 2세의 부동산으로 넘겼다.
5.6. 우크라이나
- 요아힘 폰 프로이센
빌헬름 2세의 6남이자 막내아들.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을 짝사랑해서 한스 폰 초이를 갈구기도 했다.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하고 망명하게 되자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에게 청혼했으며, 올가 니콜라예브나는 자신을 짝사랑한 6촌 오빠가 귀엽기도 하고[42][43] 아직 왕이 내정되지 않은 우크라이나 왕비 자리가 탐나서 한스 폰 초이에게 우크라이나 왕비 자리를 달라고 요구하여 전후 올가와 결혼하고 우크라이나 왕이 되었다. 원 역사에서는 1920년에 사망했지만 본작에서는 2차대전(1936~1937) 당시에도 살아있었다.
-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니콜라이 2세의 장녀. 본래는 세상 물정 모르고 큰 공주님이었지만 점차 상황의 이상함을 느끼게 되며,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하고 망명하게 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망명한 뒤 영국의 에드워드 왕세자(에드워드 8세), 루마니아의 카롤 왕세자(카롤 2세), 프로이센의 요아힘 왕자 셋에게서 구혼을 받자 에드워드 왕세자와 카롤 왕세자 둘 다 여성 편력이 워낙 막장스러워서 싫고, 아직 왕이 내정되지 않은 우크라이나 왕비 자리가 탐나서 한스 폰 초이에게 우크라이나 왕비 자리를 달라고 요구하였다. 한스 폰 초이는 이를 받아들였고 전후 6촌 오빠인 요아힘과 혼인한 뒤 우크라이나 왕비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왕비가 된 뒤에는 공산주의 체제를 꺼리는 여러 러시아 제국 인사를 우크라이나로 불러들였으며[44] 우크라이나의 왕비로서 제 역할을 잘 해냈다고 한다. 로마노프 왕조 직계 공주의 혈통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는 남편인 요아힘 이상으로 권위가 높다.
- 미하일 투하쳅스키
1차대전 때 독일군의 포로로 잡혀 드골과 같은 감방을 쓰고 있었고, 같이 탈출하다가 드골의 너무 큰 키 때문에[45] 사이좋게 잡힌다.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이 '태어나서는 안 되었던 음식' 취급하며 증오하는 파인애플 피자를 맛보고 '먹을 만하다'고 평했다가[46] 드골에게 빈축을 샀다. 슬라브 신이교주의자인 데다 귀족주의자라서 프랑스군 포로들에게 이래저래 욕을 먹는데, 이때 같이 포로로 잡힌 로코솝스키를 '폴란드인'이라 부르며 각종 갑질을 가해서 로코솝스키가 원 역사와 달리 폴란드로 전향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1차대전 이후 러시아인이지만 올가 왕비가 있는 우크라이나로 이주하여 우크라이나의 장군이 되었고, 2차대전 때는 우크라이나군의 사령관으로서 부됸니에 맞서 소련군과 싸우게 된다. 투하쳅스키가 이론은 몰라도 실전에는 논란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병 원툴의 퇴물인 부됸니에게 지는 수준은 아니라서 선전했다고 한다.
-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원 역사와 달리 올가 왕비가 있는 우크라이나로 이주하였다. 2차대전 당시에는 이미 사망한 후라 등장하지 않는다.
- 니키타 흐루쇼프
러시아-우크라이나 경계인으로 태어나서 10대 때 우크라이나에 이주한 인물로, 본작에서는 1차대전 때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자 우크라이나를 선택하였다. 우크라이나 사민당을 이끌며 정계의 스타로 떠올랐다.[47] 1927년 대공황이 일어나서 대책을 세우기 위해 카이저라이히 관세동맹끼리 모여서 회의를 할 때 전권대사로 파견되었고, 우크라이나 원 역사에서 농사를 망쳐서 빈축을 산 것과 달리 우크라이나의 잉여 농산물이 너무 많아서 처리가 곤란하다는 말을 해 한스가 대체 원 역사 소련 정부는 얼마나 농사를 못했던 거냐고 속으로 깠다. 2차대전 당시에도 우크라이나 정계의 거물로서 활동하는 모습이 나온다.
5.7. 조지아
- 아이텔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빌헬름 2세의 차남. 본래 올덴부르크의 조피 샤를로테 여공작과 혼인했지만 결혼 직후부터 이런저런 일로 밖에 나돌아다녀 가정을 소홀히 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한창 전쟁 중에 이혼 소송이 터졌고, 결국 이 때문에 발트 왕국의 왕위가 동생 오스카에게 넘어가게 된다. 전후 어찌어찌 조피 샤를로테와 이혼하고 러시아에게서 독립한 조지아의 왕이 되었으며 조지아의 오랜 왕가인 바그라티온 왕조의 여성과 재혼하였다.[48] 이후 언급에 따르면 주변국과 원만하게 지내면서 왕으로서 제 역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5.8. 영국
5.8.1. 영국 왕실
- 에드워드 7세
빌헬름 2세의 외삼촌. 조카와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영독관계가 가까워지면서 원 역사에 비하면 그나마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다. 라디오 방송국 설치를 외국 중에서 최우선으로 받는 조건으로 한스를 견제하려는 마르코니의 영국 본사에 세무조사를 지시하는 도움을 준다. 원 역사와 같은 날짜에 사망한다. 여자관계가 상당히 막장이라서 에드워드 왕세자에게 쓸데없는 여자 취향을 물려주었다는 평을 듣는다.
- 조지 5세
에드워드 7세의 사망 후 국왕으로 즉위한다. 빌헬름 황태자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파인애플 피자를 맛있게 먹어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경악을 산다. 장남인 에드워드 왕세자의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1차대전 도중에는 니콜라이 2세의 장녀인 올가에게 요청했지만 올가는 에드워드 왕세자의 여성편력 문제를 알고 있었고 막 독일이 독립시켰지만 왕을 정하지 못했던 우크라이나의 왕위가 탐나기도 해서 빌헬름 2세의 아들인 요아힘 왕자와 혼인하고 우크라이나의 왕비가 되었다. 쌍둥이처럼 닮은 3살 연하의 이종사촌 동생인 니콜라이 2세와는 매우 친하지만 황제로서 무능한 모습만 보이다가 폐위된 뒤 농장주(...)가 되고 나서야 재능이 개화(?)된 듯한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아들 에드워드의 신부감으로 타티아냐를 택하고 공식 석상에서 기정사실인 듯 말하지만[49] 그 성격 좋은 타티아냐조차 에드워드의 개차반 같은 성격에 진절머리가 나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자 쩔쩔매며 설득하고, 결국 차선책으로 타티아냐에게 에드워드가 아닌 앨버트(조지 6세)를 소개시켜주고 타티아냐는 받아들인다. 이번 일로 큰아들과 서서히 관계가 갈라지게 된다.
에드워드의 망나니 짓이 갈수록 심해지는 데다 프랑스 파시스트당과 유착하거나 미국인 유부녀인 월리스 심프슨과의 불륜 문제 때문에 더 이상 네 혼인 가지고 뭐라 안 할 테니 영국 파시스트들과 손절하고 미국 여자와 헤어지라고 설득했지만 계속 에드워드가 고집을 부리자 화가 나서 홧김에 루마니아의 페르디난트 1세가 그랬듯이 네 왕위계승권을 박탈하고 앨버트에게 왕위를 넘길 수도 있다고 말해 버려[50] 에드워드가 파시스트와 손잡고 쿠데타를 벌이는 대형사고가 터지게 된다.[51]
당시 조지 5세는 중병 때문에 런던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요양하고 있어서 붙잡히지는 않았지만 큰아들의 쿠데타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앨버트에게 영국과 왕실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결국 며칠 뒤 혼수상태인 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로 이송된 직후에 완전히 사망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빌헬름 2세와 니콜라이 2세는 슬퍼했고 에드워드에게 분노했는데, 특히 니콜라이 2세는 조지 5세와 완전히 똑같을 정도로 닮아서 더더욱 슬퍼했다. 조지 5세는 영국 신민들과 유럽인들에게도 명군이라 불리며 존경받던 인물이었고, 조지 5세와 친척이었던 북유럽 각국들과 베네룩스조차 1차대전 때도 고수하던 중립국 위치를 버리고 연합국에 참가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 테크의 메리
조지 5세의 부인이자 영국의 왕비[52]이며, 에드워드와 앨버트의 어머니이다. 엇나간 큰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남편하고 같이 듣고는, 남편에게 일단 몸을 피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하며, 남편의 사망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둘째 아들이 한스의 연설을 듣고 마음을 다잡아 왕이 되기를 정식으로 선언하자 국왕에 대한 예를 가장 먼저 표한다. 이후 에드워드의 난이 진압되고, 에드워드가 감금되었는데도 만나기를 거부한다.
- 웨일스 공 에드워드
타티야나와 결혼하나 싶었는데, 본인의 개차반 같은 성격으로 국혼이 깨지기 직전까지 가다 조지 5세의 중재로 타티야나는 앨버트 왕자(조지 6세)와 결혼하게 된다.[53] 2차 대전 초 영국 파시스트당과 오스왈드 모슬리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영국 내전을 일으킨다.[54] 이로 인해 영국 내각의 정치인 대다수가 붙잡히고 프랑스로 끌려가 고문을 받게 되지만[55] 유일하게 처칠이 도망치게 되면서 일이 꼬이게 되고 내전에 돌입한다.
쿠데타를 일으킨 후 스스로 에드워드 8세라고 자칭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건 파시스트 같이 막돼먹은 작자들뿐이고 영국인들은 자국의 전함을 프랑스에게 줘버리고 국왕이자 아버지를 시해한 에드워드를 패륜아 에두아르(에드워드의 프랑스식 발음)라고 부르며 경멸한다. 결국 앨버트에 의해 쿠데타를 진압당하고 체포된다. 체포된 직후에도 상황파악을 하지도 못하고 꺼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날뛰며, 앨버트가 마지막으로 만나러 왔을 때도 자기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말하는 것보다 꺼내주고 윌리스도 만나게 해달라 해서 앨버트의 분노를 사며, 마지막으로 앨버트에게 형 대우는 이제 끝이고, 너는 국민들이 심판할 거라는 말을 듣는다. 거기에 에드워드라는 이름 또한 최소 영국 왕실에서만큼은 존 왕처럼 금기시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인간 때문에 킹 조지 5세급 2번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프린세스 빅토리아[56]로 강제 개명당하는 일을 겪게 된다.
이후 유럽 대륙에서 전쟁이 끝나자 뉘른베르크로 끌려와서 전범재판에 회부되며, 재판장에서 국가 정상급들 참관자들을 위한 VIP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는 진외당숙인 빌헬름 2세와 육촌 누나인 루이제 등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추한 모습[57]을 보이며, 라 로크, 스탈린, 무솔리니와 함께 교수형을 당하게 되는데 여기서 유일하게 죽기 싫다고 발악하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다 강제로 밧줄에 목이 감기게 된다.[58]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심프슨 부인은 에드워드 옆에서 알랑댄 죄밖에 없기에 그냥 왕적 박탈 후 영국에서 추방과 영구 입국 금지 정도로 끝나게 된다. 이후 영국 내에서 이름조차 불러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지만, 반드시 불러야 할 일이 있으면 '폐세자 에드워드'로 불리게 된다.
- 조지 6세
형인 에드워드 8세의 망나니 행위로 형의 약혼녀였던 타티아냐와 결혼하고, '빅토리아'와 '알릭스'라는 두 딸을 둔다. 이후 에드워드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인 조지 5세가 충격으로 쓰러져 죽고 국왕으로 즉위하지만 마음의 각오가 되지 않아 하염없이 울었다가 한스의 연설을 듣고 각오를 다져 국왕으로서의 소임을 다짐한다. 쿠데타를 진압한 후 에드워드 8세를 만나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형을 보며 절연을 선언하지만 이후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고 타티아냐에게 위로를 받는다. 2차대전 이후 영국 본토가 너무 약해졌다는 것을 명분으로 들어 반대파들을 물리치고 식민지 독립에 힘을 실어주었다.
-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니콜라이 2세의 차녀. 본작에서는 어쨌든 친척이었던 빌헬름 2세가 니콜라이 2세 일가가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당하기를 원하지 않아 구출하여 살아남았다. 한동안은 덴마크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었지만, 조지 5세가 제 딴에는 좋은 의도로 니콜라이 2세에게 직접 부탁하여 에드워드 왕세자의 약혼녀가 되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왕세자는 미녀이기만 할 뿐 부모의 영향으로 시골 아낙네 같은 성품과 수수한 꾸밈을 고수하던 타티야나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59] 유부녀와 바람을 피우거나 기타 막장스러운 언행으로 타티야나를 폭발하게 만들어서 결국 파혼하게 된다. 그러나 조지 5세는 이미 니콜라이 2세의 딸을 며느리로 삼겠다고 대중에게 공표한 데다 아일랜드가 막 독립할 즈음이라 왕실의 위신이 손상될 파혼을 마냥 허락해줄 수 없어 고민하다 혼담을 땜빵하기 위해 조지 6세와 혼인시켰다. (참고로 둘은 6촌지간이다.)
혼인한 이후에는 조지 6세와 금슬 좋은 부부가 되었고 조지 6세의 말더듬 치료도 도와주는 등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역할을 대신하며 괜찮은 모습을 보인다. 조지 6세와의 사이에서는 딸 둘을 두게 되는데 자신들의 공통 조상인 빅토리아 여왕에서 이름을 따온 빅토리아와, 어머니 알렉산드라의 본명인 헤센의 알릭스에서 따온 알릭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60] 평소 경멸하던 에드워드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당시 시아버지의 병간호를 하고 있었고 조지 6세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충격 받아 정신줄을 놓고 있자 에드워드를 속으로 엄청 욕한다. 그래도 조지 6세가 정신 차리고 제 노릇을 하게 되자 타티야나도 나름대로 왕비로서 괜찮은 모습을 보인다.
- 프린세스 빅토리아
본작의 오리지널 인물. 조지 6세와 타티야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로 원 역사의 엘리자베스 2세를 대신하는 인물이다. 원래는 요크의 공녀 빅토리아였지만 에드워드의 쿠데타로 인해 요크 공작이었던 아버지 앨버트가 조지 6세로 즉위하면서 빅토리아 또한 웨일스 여공이 되었다. 12살이었을 때 주인공의 아들이자 8촌 오빠인 크리스티안 폰 초이에게 반한다. 나이 차이가 좀 있기는 하지만 주위의 반응은 좋은데, 정작 주인공은 8촌은 근친혼 대상이 아니냐고 고민하는 삽질(?)을 한다. 에필로그 시점에서도 크리스티안 폰 초이가 영국 왕녀와 혼담이 오가고 있다고 언급되기 때문에 이어질 듯하다. 에드워드가 본작에서는 왕세자일 때 반역을 일으킨 탓에 에드워드 왕세자의 이름에서 따온 프린스 오브 웨일스 함은 프린세스 빅토리아로 개명당했다. 본작에서도 조지 6세에게 딸밖에 없기 때문에 훗날 빅토리아 2세로 즉위할 것이 확실시된다.[61]
- 켄트 공작 조지 왕자
원 역사처럼 개망나니라 소위 영국 왕실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될 그[62]였으나 결혼하면서 조금 수그러들었고 큰형 에드워드가 더한 병크를 저지르면서 대전쟁의 서막을 열자 자원해서 종군하겠다 하면서 그의 죄는 묻히게 되었고 이름을 불러서는 안될 존재 타이틀도 에드워드가 가져갔다. 빌헬름 2세가 본작의 최대 수혜자라면 조지 왕자는 의도치 않게 개변된 역사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 바텐베르크의 루이
여기서는 영독협상으로 마운트배튼으로 성씨가 안 바뀌어 여전히 바텐베르크의 성을 사용한다. 원 역사와 달리 니콜라이 2세 일가가 살아남으면서 짝사랑한 상대인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과 결혼했고, 이로 인해 친하게 지내던 에드워드와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에드워드의 쿠데타 당시에 조지 5세의 간병을 위해 스트링엄 하우스에 머물고 있었고, 달려온 처칠에게 쿠데타 사실을 듣고 조지 5세에게 에든버러로 대피를 진언한다. 에드워드의 난이 진압된 이후에 저번 대전쟁 때 뒤통수를 맞아 참전을 거부하는 인도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인도로 파견되고, 이후 동남아 지역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한다.
5.8.2. 정계
-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애스퀴스 내각에서 재무장관으로 일하고 있다가 애스퀴스와 처칠이 잦은 실책을 저질러 영국에 피해가 누적되자 돌아서서 애스퀴스를 밀어내고, 1차 대전에서 전시 총리가 되어 군수법을 통과시켜 재정비를 거쳐 승리하고 프랑스 식민지 대부분을 뜯어내며 지지율이 높이 올라갔으나 이후 발생한 인도와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으로 도로 떨어지게 된다. 이후 2차 대전에서 소식이 짤막하게 들리는데 패륜아 에드워드에 의해 프랑스로 보내진 영국 정치인들 중 로이드 조지도 있었고 프랑스의 고문을 받다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 스탠리 볼드윈
로이드 조지 내각이 실각한 이후에 다음 총리가 되었고, 2차 대전 직전에 파시 프랑스에 대해 나약한 반응으로 일관하는 맥도널드 내각을 밀어내고 다시 총리가 되었다. 라 로크가 상수시 조약 파기를 선언하자 한스와 같이 프랑스 공략에 대해 의논하다가 에드워드의 부름을 받고 버킹엄 궁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던 파시스트들한테 처칠과 따로 요양 중이던 체임벌린을 제외한 장관들 전부하고 같이 붙잡히게 된다. 이후 프랑스로 비밀리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으면서 같이 고문을 당하게 되며, 파시 프랑스의 무조건 항복 선언 직후 구출되어 영국으로 돌아간다.
- 윈스턴 처칠
1차 대전 최악의 트롤러답게 원 역사에서처럼 오스만이 주문한 전함을 빼앗는 사고를 친다.[63] 그 때문에 독일이 오스만을 달래느라 진을 빼야 했고, 그렇게 오스만은 중립으로 남나 싶었더니 오스만이 내건 요청을 두고 불쾌하다며 오스만 해군에 멋대로 선공을 하는 바람에 오스만이 동맹국 편으로 참전해버리게 만드는 대형 사고를 쳐서 주인공과 주독 영국대사의 뒷목을 잡게 만든다.[64] 마침내 갈리폴리 상륙작전을 정점으로 전쟁 기간 내내 영독 모두에게 외면받고 한직으로 좌천된다. 그러면서 실패한 이유가 독일 탓이라고 하고 전차도 영국이 원조라고 주장하는 등 여러모로 찌질한 모습을 보인다.
다만 전간기에서는 원 역사대로 파시스트의 위험을 강조하며 강경하게 전쟁을 외치지만 갈리폴리 상륙작전의 실패와 1차 대전 때 입은 막대한 인명피해로 인해 전쟁을 꺼리는 영국인 대다수에게 한물간 퇴물 취급을 받아 외면당하고 리프 전쟁 도중 영국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해군을 파견해 2차 모로코 위기를 일으키는 등의 모습을 보이지만, 2차 대전 초 2차 볼드윈 내각의 장관으로 입각해 일하던 중에 웨일스 공 에드워드의 쿠데타[65]에서 운 좋게 빠져나오고[66] 그 직후 애틀리와 체임벌린에게 사람을 보내 런던에서 빠져나온 후 샌드링엄 하우스에서 요양 중이던 조지 5세와 요크 공작 앨버트에게 쿠데타 소식을 전하고 왕실과 충성파 인사들을 에든버러로 대피시켰으나, 조지 5세는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말에 충격으로 쓰러지고 얼마 안 가 죽고 만다.
이후 조지 6세로 즉위하게 된 앨버트 왕자와 함께 패륜아 에두아르의 쿠데타를 진압하는 공을 세우고, 원 역사처럼 전시 총리의 역할을 하게 된다. 다만 라 로크와 파시스트들에 대한 분노와 영국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으로 인해 1차 대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종종 삽질을 하는 경우가 있었고,[67] 이후 히로시마에 투하된 두 번째 원자폭탄의 이름이 자신을 저격하는 '미스터 갈리폴리'라는 것을 듣고 분노하여 발작한다.[68] 전후 39년에 있었던 총선에서 노동당에 패배하면서 고향으로 내려가 소일거리를 하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한다.
- 네빌 체임벌린
볼드윈 내각의 장관으로 재임 중에 건강이 안 좋아져 자택에서 요양하던 중에 에드워드의 버킹엄 궁 점령에서 홀로 탈출한 처칠의 연락을 받고 애틀리와 같이 샌드링엄 하우스로 달려오고, 이후 에든버러에서 처칠 내각이 출범하자 처칠에게 총리직을 맡겨도 괜찮은 건지 걱정하면서 외무장관 자리를 맡게 된다. 본작에서는 '우리 시대의 평화'로 까이지 않고 무난하게 영국 내전에서 조지 6세를 보필하며 국난을 이끈 인물로 역사에 남았을 듯하다.
- 클레멘트 애틀리
전 총리인 램지 맥도널드의 뒤를 잇는 노동당 당수이며, 에드워드의 반란 당시 탈출하는 처칠의 연락을 받고 샌드링엄 하우스로 달려온다. 조지 6세의 즉위와 동시에 거국내각인 처칠 내각이 출범하게 되면서 걱정하는 체임벌린에게 이 상황에 맡길 만한 사람이 처칠 말고는 없다고 말하며 내무장관 자리를 맡게 된다. 이후 39년에 있었던 총선에서 이겨 처칠의 후임 총리가 된다.
- 오스왈드 모슬리
패륜아 에두아르의 충신이나 전범재판 때 죽고 싶지 않다며 찌질하게 난리를 피우는 모습을 보자 사람이 추해도 정도가 있다면서 모실 주군을 잘못 골랐다고 한탄한다. 이후의 언급은 없지만 핵심 전범인 만큼 사형을 선고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5.8.3. 군부
- 월터 커
제1 해군경. 독일의 드레드노트를 별 거 아닌 취급을 하며 보고를 올리지만 그 직후 해군 회의에서 피셔에게 강력한 반박을 듣다가 베네수엘라 사태를 보고받는다. 이후 프리드리히 쇼크가 일어나자 밸푸어 총리에게 질책을 받고 자진 사임 형식으로 제1 해군경에서 해임된다.[69]
- 존 피셔
에드워드 7세 치세 당시 아서 벨푸어 내각의 제2 해군경. 드레드노트를 탄생시킨 장본인. 영국에서 유일하게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의 진가를 알아본 인물로 해군의 패러다임이 신속히 바뀌고 있음을 눈치채지만,[70] 다른 제독들은 알아채지 못해 답답해한다. 베네수엘라에서 결국 프리드리히 쇼크가 일어나자 커 제독의 후임으로 제1 해군경에 오른다. 이후 1차 대전이 일어나고 갈리폴리 상륙작전의 실패의 책임을 해군에게 전가하자 처칠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루트비히 공자와 함께 사임한다.
- 존 프렌치
- J. R. R. 톨킨
대학 진학 중에 1차대전이 개전했고, 전쟁 초기에는 대학생은 징집 대상이 아니어서 학업을 하고 있다가, 이후 병력이 더 필요해진 정부에서 대학생까지 징집을 하기 시작하자 집안의 등쌀에 못 이겨 참전을 하게 되고, 프랑스군의 함정으로 인해 고립되어있던 와중에 참호열에 걸려서 골골거려서 죽을 뻔하다가, 하늘에서 독수리들과 그들을 이끄는 붉은 남작을 보고 희망을 가지고, 독일 기갑부대에 구출된다. 이후 본국으로 후송되어야 할 중상자로 분류되어 귀국해 요양하던 중에 종전을 맞게 되고, 전역한다. 이 때의 경험이 인상적이였기에 그가 쓴 작품에는 3배 빠른 붉은 독수리 왕이라든가 강철 마차를 몰고 다니는 드워프가 등장한다고 언급되었다.
- 해럴드 알렉산더
스페인 원정 영국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활약하고, 프랑코에게 탄압당해 분노해있던 마드리드 시민들이 자살한 프랑코의 시체를 조리돌림하려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나 섣불리 말렸다가 악화될 민심을 감안하여 이를 묵인하게 된다.
- 버나드 로 몽고메리
이프르에서 프랑스군의 함정으로 인해 참호에서 원 역사처럼 사경을 헤매지만 간신히 살아남았다.[71] 이후 2차 대전에서 장성으로 등장, 에드워드의 난이 일어나자 인도에서 영국으로 급히 귀국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에서 독일군의 롬멜을 보자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느껴졌다고 한다. 영국 내전이 끝난 이후 스페인 원정에 참가를 하게 되며, 마드리드가 함락된 이후에 조리돌림을 당하는 프랑코의 시체를 불쾌하게 보면서 패튼에게 치워달라 요청하나, 패튼이 현지 민심을 이유로 거절하자, 내가 바르셀로나로 상륙해서 패튼을 죽여버렸어야 했다고 화를 낸다.
- 아서 "폭격기" 해리스
연합국의 폭격기 케르베로스 중 하나로 리히트호펜의 파리 폭격 소식을 듣고 나머지 케르베로스인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과 커티스 르메이와 함께 이번엔 어디를 폭격할까 하며 좋아 죽는 모습을 보여준다.
- 잭 처칠
루스벨트 주지사 구출의 영국 측 대표로 처음 등장했고, 독일 측의 오토 스코르체니와 죽이 맞는다. 검과 활을 쓰며 루스벨트 주지사의 구출에 성공한다.[72] 성이 성인지라 갈리폴리 영감과 무슨 관계냐고 물어 보는데 인이 박힌 듯하다.[73]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도 검과 활을 들고 활동하여 부하에게 언제까지 그거 쓸 거냐는 빈축을 듣는다.
- 바텐베르크의 루트비히 공자
여기에서는 영독협상으로 인한 관계 개선 때문에 마운트배튼으로 성씨가 안 바뀐다. 갈리폴리 상륙작전의 실패의 책임을 해군에게 전가하자 '처칠과는 더 이상 함께 일 하지 못 하겠다.'며 이에 대한 항의로 피셔와 함께 제1 해군경에서 사임한다. 영독의 해군 관계자들은 유능한 인물인 공자와 피셔의 사임에 안타까워한다. 처칠의 실각 이후 복귀가 거론되었으나, 어떻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5.9. 프랑스
- 에밀 루베
작품 초반에 한스가 드레퓌스 사건을 재점화시켰을 당시의 대통령으로 드레퓌스 사건이 드리퓌스 대위가 무죄임을 알고 개인적인 동정심을 가졌으나 정치인으로서 그러지 못하고 대신 그에게 특별 사면을 권하며 원만하게 끝났을 예정이었던 이 사건이 재점화되자 골머리를 싸매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드레퓌스의 재심을 받아들이고 아예 이를 기회로 본인의 정교분리 정책을 앞당기기로 결심하며 이를 위해 몇 년은 내부 수습에 집중해야 한다며 전쟁을 우려하지만 벨 에포크 시대인데 전쟁이 일어나겠냐며 낙관한다.[74] 이후 정교분리 정책이 거의 끝나갈즈음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한스의 개입으로 발트 함대가 아닌 흑해 함대가 출동하고 영국은 이를 막기 위해 모로코에 함대를 주둔시키고 독일 함대를 불러들이자 프랑스가 영국의 만행에 분노해 자신들도 함대를 보내라고 촉구하자 또 골머리를 싸맨다.
- 조르주 클레망소
드레퓌스 사건에서 첫 등장을 보이고 이후 1차 대전 말 프랑스 총리가 되는데 호랑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반전시위자들을 최루탄으로 진압하고 항명과 탈영을 일으킨 장병들을 총살시킨다. 페탱은 문민통제로 군통수권을 빼앗긴 게 아쉽지만 클레망소면 맡길 수 있다며 좋아하지만, 정치인들은 클레망소의 과격함에 기겁한다. 결국 그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패색이 짙어지자 의원들과 대통령마저 그를 저버리면서 내각불신임결의안이 통과되어 쫓겨나고 만다. 이후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유배형을 선고받고 수년 후 사망했다 전해진다.
- 폴 데샤넬
1차 대전 이후 프랑스의 대통령으로 2차 모로코 위기가 일어나자 자국의 형편이 여의치 못해 불참하려 하나 한스의 제안으로 참여하게 된다. 모로코 위기에서 영독의 편을 들어주고 독일의 차관과 국제연맹 가입을 하게 되는데 라 로크와 애국동맹들은 이런 행위에 분개해 쿠데타를 일으키나 손 쉽게 제압하고 사법부에 라 로크의 처분을 "공정하게" 판결을 요청하나 이것이 악수가 되어 라 로크는 징역 5년을 선고받는다.[75] 이후 악시옹 프랑세즈와 불의 십자단 같은 극우 정당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극단주의자들을 적극적으로 견제하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대통령직에서 사임하여 요양을 하던 중에 라 로크가 집권하면서 자신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 라 로크의 추종자들에게 스스로를 나폴레옹처럼 집정이라고 하는 라 로크는 나폴레옹처럼 파멸할 것이라고 말하며 살해당하고 집도 통째로 불타게 된다.
- 알프레드 드레퓌스
드레퓌스 사건의 당사자. 한스의 인터뷰 덕분에 재심을 받게 되고 이에 한스에게 감사 편지를 쓴다.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복권된 후 1차 대전이 터지자 재입대하여 싸우지만 결국 패전하였고 이 사실에 절망하는 병사들을 갈구는 라 로크를 꾸짖는다. 그리고 유대인이라고 매도하는 라 로크의 복수심과 증오심을 보고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떠나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작중 등장은 이게 끝이지만, 작가 후기에 따르면 원래는 캐나다로 이민 가서 맥아더의 신정부군과 싸우는 전개를 구상했으나 삭제했다고 한다.
- 필리프 페탱
니벨 공세의 실패로 엉망이 된 프랑스군을 수습하기 위해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분투하였지만, 결국 프랑스 정부가 항복을 결의하자 분노하면서 문민통제가 뭐냐며 공화국과 민주주의에 악감정을 가지게 되었다.[76] 이후 전범재판을 피해 스위스로 망명하였다가 스페인으로 가 군사고문을 맡으며 자신의 제자인 프랑코에게 자신처럼 되지 말라고 말한다. 리프 전쟁에서 이탈리아군보다 더 막장인 스페인군을 보며 이러면 안 된다고 하며 프랑코도 페탱의 의견에 동조하나 무시당하고 결국 리프 전쟁은 스페인의 참패로 끝난다. 이후 라 로크가 집권하면서 복귀하고, 모라스 같은 극우들과 같이 유대인들과 라 로크와 국가사회당에 반하는 이들을 탄압하는 일을 주도하였고, 드골의 자유 프랑스 건국 선언 직후 스페인으로 파견되어 제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돕고 있던 중, 프랑스가 항복하고 스페인도 연합군의 공격을 받게 되자 이를 막아내다 궁지에 몰려 자결한다.
- 샤를 욍치제
에드워드의 쿠데타 당시에 에드워드의 지원을 하기 위해 파병된 프랑스군 사령관으로 등장하며, 능력은 다른 장군들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더라도 라 로크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인정받았다. 하지만 거듭된 패전으로 인해 믿었던 수하들의 배신으로 예민해진 라 로크가 런던을 잿더미로 만들 것을 명했으나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는 욍치제의 계속된 거부로 라 로크의 눈 밖으로 나버렸고, 라 로크가 자신을 좌천이나 해임을 하지 않고 병사로 강등했다는 소식[77]과 장교의 상징인 군도를 회수하겠다는 말을 듣고 라 로크에게 버림받았다는 걸 알게 된 욍치제는[78] '집정이 날 먼저 배신했다'고 하면서 후임자인 푸오 준장을 죽이고, 에드워드와 영국 파시스트들을 체포하여 현 상황에서 최대한 좋은 조건[79]으로 연합국에 항복하였다.
- 모리스 가믈랭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별다른 활약은 펼치지 못하였으나, 종전 회담 중에 벌어진 제2차 파리 코뮌의 진압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코뮌에 대해 드럼이 주장한 공산주의자들이 오래 활동하면 프랑스에 끼칠 해악이 커지는 것을 우려함과 동시에 진압이 길어지면 이후에 있을 종전 협상에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피해를 감수하고 빠르게 토벌하였다. 이후 샬롱 폭동 때 라 로크의 연설을 듣고 위험성을 꿰뚫어보았고, 라 로크의 출옥 이후부터 군부가 점차 라 로크를 지지하게 되는 걸 지켜보면서 라 로크가 이끄는 국가사회당이 총선에서 이겨 권력을 잡게 되어 점점 파시스트화되어 막장으로 치달아가자 현 상황에서 유일하다시피한 공화국과 민주주의에 충성하는 군인으로서 더는 두고볼 수 없다며 쿠데타를 획책하였으나, 피에르 라발의 배신으로 쿠데타는 실패하고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하지만 드골 등 양심 있는 이들은 가믈랭의 궐기에 영향[80]을 받아 라 로크를 축출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이들은 가믈랭의 후예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2차 대전 이후 대통령에 오른 드골에 의해 콩코르드 광장에 파괴된 메흐메드 알리의 오벨리스크를 치우고 그 자리에 가믈랭의 동상을 세우며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이 된다. 원 역사와 비교하면 평가가 정반대로 상당한 수혜를 입었다.
- 샤를 드골
1차 대전에 참전하여 포로로 잡히고, 수차례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이 와중에 주인공이 제공하는 특식들을 까면서 종전 후에 석방되어 파리로 돌아오나 패전이라는 막막한 현실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이후 만년 소령으로 지내다 라 로크가 취임하면서 부르짖은 위대한 프랑스에 경도되어 라 로크를 찬양하였으나, 모리스 가믈랭의 쿠데타 이전의 만남과[81] 집정과 파시스트 일당들이 점점 유대인은 물론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탄압하는 모습에 가믈랭이 옳았다고 뒤늦게 후회하고[82] 실전 경험을 쌓겠다는 명분으로 알제리로 떠나며 이탈리아 지원군을 수장시키며[83] 본격적으로 라 로크를 배신하고 알제리에서 자유 프랑스 군단을 조직하였다. 자유 프랑스 건국 선언 직후 광분한 라 로크가 보낸 질서보안국 요원들에 의해 어머니가 살해[84]당하게 되고, 토벌을 위해 파견되는 페탱을 엘 크림과 손을 잡고 상대하게 된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대통령에 오르게 된다.
- 필리프 르클레르
라 로크 집권 초창기에는 지지를 했었으나, 이후 벌어지는 라 로크 정권의 비인간적인 행각에 등을 돌리게 되어 알제리로 떠나는 드골과 뜻을 함께하게 되며, 파시 프랑스의 무조건 항복 이후 자유 프랑스의 주도하에 재편성된 프랑스군을 이끌고 스페인 원정에 참여하여 바르셀로나 상륙 작전을 진행하나, 상륙 작전 자체는 저항이 없어 쉽게 성공했는데, 패튼의 전향이라는 골치아픈 문제를 자신의 선에서 결정할 수 없어 본국에 있는 드골에게 넘긴다.[85]
- 프랑수아 드 라 로크
2차 대전 파트의 메인 빌런. 원 역사의 히틀러 포지션을 맡고 있다. 1차 대전에 참전하였으나 시종일관 일방적으로 밀리다 항복해버린 현실에 분노하였고, 군에 계속 남아있었던 원 역사와는 달리 상수시 조약 체결로 인해 프랑스가 군축을 하게 되자 전역을 하게 된다. 이후 1차 대전 패전으로 절망에 빠진 프랑스에서 선동으로 인기를 얻었고, 샬롱 폭동과 나의 조국 출간, 프랑스 국가사회당 창설 등을 거쳐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아 집정으로 취임하였으며, 유대인[86]과 진보주의자를 탄압하고 자신에게 반기를 든 가믈랭과 자신을 감옥에 보내고 계속 방해한 데샤넬을 죽이는 등의 폭정을 펼친다.[87] 그 뒤 일본과 이탈리아와 삼국 동맹을 맺고, 영미권의 파시스트들을 포섭하고, 소련까지 끌어들여 2차 대전을 일으킨다.
그러나 프랑스의 상황이 원 역사의 독일 이상으로 불리한 탓에[88] 제대로 타국을 정복하지도 못하고 원 역사의 히틀러보다도 못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의심증이 저기 동토의 강철의 대원수 못지않아 이 의심증으로 일을 말아먹은 전과가 꽤 된다. 이후 연합국의 공격을 마지노 마을[89] 등으로 버텼으나 결국 파리가 함락당하고 다를랑에게 배신당해 연합국에 넘겨져 전쟁이 끝난 후 전범재판을 기다리는 죄수의 몸이 되고 만다. 독일로 압송되기 직전에 자신을 만나러 온 한스에게 개자식이 조롱하러 왔냐고 도발을 하나, 한스는 개만도 못한 자한테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일축했고, 제3공화국이 프랑스를 개판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이기는 것은 자신이었다고 독일이 언제까지 잘나갈 줄 아냐고 쏘아붙인다.
소련의 항복으로 유럽의 전쟁이 끝나자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에드워드, 무솔리니, 스탈린과 함께 법정에서 서게 되었고, 검사들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라 로크와 국가사회당의 만행들을 열거하자, "프랑스의 국민들은 수단 방법 거리지 않고 프랑스를 위해 봉사할 의무가 있다", "나는 프랑스의 지도자로서 이를 충실히 이행했다"며 뻔뻔한 태도를 보여 방청객들에게 "사탄도 널 보면 기겁할 거다" 소리를 듣는다. 결국 사형이 선고되었고, 죽는다면 총살형이나 단두대를 원했으나 교수형이라는 것에 불만을 품고 사형 당일 전범 중 가장 먼저 형을 집행받는다. 유언으로 "비브 라 프랑스(Vive la France)"를 남겼고[90] 시체는 화장되었다.[91] 결국 옆동네[92] 이상으로 비참하게 끝나는 결말을 맞이했다.
- 조르주 기느메르
1차 대전의 프랑스 에이스 파일럿으로, 원 역사에서는 지병이 악화되어 이로 인해 격추당해 전사를 하게 되지만, 여기서는 퐁크가 만프레트와의 결투에서 져서 전사를 하게 되는 일이 벌어져 패배의 치욕을 또다시 안긴 독일과 항복을 해서 퐁크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어버린 제3공화국에 복수를 하기 위한 집념으로 지병을 이겨내고 라 로크가 있는 불의 십자단에 입단을 해서 모라스가 주동하고 라 로크가 이끌게 된 샬롱 폭동에 라 로크를 보좌하는 형식으로 참가를 하게 되어 이후 가믈랭에 의해 폭동이 진압되자 체포되어 라 로크와 같이 감옥으로 가게 되고, 감옥에서 라 로크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라 로크를 죽이려는 광인에게서 라 로크를 지켜준다. 원 역사의 괴링과 헤스의 포지션을 겸하고 있다.
- 샤를 모라스
악시옹 프랑세즈 소속으로 라 로크를 비롯한 지지자들과 함께 샬롱 폭동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정작 본인은 당일날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하려다가 자동차가 고장 나서 참석을 못했다.
- 피에르 라발
가믈랭이 쿠데타를 계획하자 배신하고 라 로크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이후 라 로크의 파시 프랑스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을 맡아 사악한 동맹 결성 등 외교 업무를 하게 된다.
라 로크가 몰락할 때 따로 도망다니며, 정부의 집에서 숨어지내다 파시 프랑스 부역자들을 체포하러 다니는 레지스탕스들에게 체포된다. 체포 직후 배신에 분노한 달라디에에게 왜 공화국과 우리들을 배신했냐는 말을 듣자, 나라고 이렇게 될 줄을 몰랐고, 라 로크가 이렇게 망할 줄 알았음 배신했겠냐고 답을 하자, 더 분노한 달라디에에게 구타를 당하고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회부된다.
- 폴 레노
반독성향이 강한 우파 정치인이나, 라 로크가 집권하고 불러오게 될 결과를 경계하며 좌파하고 연합을 했으나, 총선에서 지게 되자,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다 가믈랭이 쿠데타를 일으키겠다는 걸 듣고는 말리다가 가믈랭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확인하고 자신도 동참하겠다고 했으나 가믈랭이 살아서 미래를 부탁한다고 하자 망명을 준비한다. 짐을 싸던 중에 드골이 라발의 배신을 알리고, 한스가 라 로크를 방해하기 위해 보낸 정보원도 재차 확인시켜주자 다급히 손을 잡은 달라디에, 블룸, 망델등 뜻을 같이 하는 정치인들과 같이 알프스 산맥을 넘어 독일로 망명한다.
이후 독일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드골의 자유 프랑스 건국 선언을 듣고 드골을 돕기 위해 같이 망명 간 정치인들과 알제리로 향하고, 라 로크에게 프랑스의 정신을 파괴한 반역자라고 비판 성명을 낸다. 이후 파시 프랑스가 무조건 항복을 하고 파리로 돌아오나, 라 로크가 탈출을 위해 파리를 파괴한 걸 보고 경악하고 한탄한다.
- 에두아르 달라디에
자신들을 배신한 라발에게 크게 분노해 라발을 구타했다.
5.10. 이탈리아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의 책임을 물어 퇴위하게 되고 그 자리를 아오스타 공작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에게 물려주게 된다.
- 아메데오 디 사보이아아오스타
아버지의 서거로 인해 이탈리아 국왕위를 승계받았으며, 1차 대전 시절 참전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 자체에 승산이 없다 보고 이탈리아의 참전을 반대했었으나, 국왕이 바지사장이 된 현 이탈리아의 상황상 막을 수 없었고, 이후 파시 프랑스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라 로크가 체포되자 무솔리니의 최측근인 발보와 합을 맞춰 무솔리니를 축출하기로 하면서 카를 1세에게 밀서를 보내 관대한 처분을 요청한다. 이후 연합국에서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무솔리니가 형식상 하는 정기보고 때 현재 전황에 대해 질책하면서 무솔리니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솔리니를 해임해버린다.
- 베니토 무솔리니
가솔리니
원 역사에서처럼 로마 진군을 통해 집권하였으나 딱히 존재감이 없는 신세. 추축국 정상회담도 라 로크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주인공의 개전 연설에 자기만 언급되지 않으니까 나도 언급하라며 열폭하는 등 작중 취급은 그냥 안습. 죽어서 주유소에 매달린 원 역사와 달리 국왕 아메데오와 이탈로 발보의 주도로 체포[93]되어 연합군에 넘겨졌으며, 감옥에서 주인공의 배려(?)로 하와이안 피자, 아메리카노를 대접받으며 강제로 다이어트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자신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인정하나 이탈리아군은 늘 졸전만 한 탓에 전쟁범죄를 저지르려고 해도 못했다고 항소하는데 연합국 판사들은 납득하나 이탈리아 방청객들은 "그게 참 자랑이다"면서 쪽팔려한다. 뒤이어 전쟁범죄는 오히려 한스가 자신에게 끔찍한 식고문을 가했음을 말해 제네바 협약 위반이라고 하자 곧바로 동정을 받지만 한스가 곧바로 하와이안 피자는 먹을 만하다고 반박하고 영국 측 판사가 이를 인정한다.[94]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사형장에서 라 로크에 이어 두 번째로 처형당하며, 집행 직전 유언을 남기는데 유언을 연설로 길게 해서 집행인을 열받게 만드는 행태를 보이고, 처음에는 그래도 유언이니 끝까지 들어주려던 집행인이 참다못해 중간에 교수대 레버를 당겨버리는 바람에 마지막 유언이 고작 "엑?"이 되어버린다.
- 이탈로 발보
무솔리니의 최측근이자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이탈리아 공군총사령관이다. 하지만 무솔리니의 작태를 보다못해 아메데오와 함께 무솔리니를 축출해 독일로 배송해버리고 후임 총리가 되어 항복 문서에 서명한다.
- 조반니 메세
무솔리니를 축출하려는 발보와 뜻을 같이 하였고, 발보와 같이 국왕의 집무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다 무솔리니가 반항하려 하자 국왕의 명을 받아 들어오면서 군부와 내각이 당신에게 등을 돌렸다고 통보한다. 이후 이탈리아의 배상금 차감을 위해 영국의 스페인 원정에 군대를 이끌고 참여한다.
5.11. 바티칸
- 비오 10세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생전 보수적이고 전통주의적이지만 각종 기적을 일으켜 '살아 있는 성인'으로 칭송받았던 위대한 교황이다. 원 역사에서 1차대전이 시작되고 얼마 안 돼 선종한 것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1차대전의 진행이 워낙 빨라서 1차대전이 거의 다 끝날 때까지 모든 전황을 보았고,[95] 패색이 짙어져가는 이탈리아에서 전쟁을 반대했던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전을 주장한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를 퇴위시키는 것을 지지한다. 이는 평화주의 성향이라 1차대전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든 것도 있지만 당시 교황은 비오 9세 시절부터 바티칸 유수를 현재진행형으로 찍고 있어 사보이아 왕조에게 쌓인 악감정이 많았고[96] 오랫동안 교황과 악연이 있던 프랑스와의 동맹이 기름에 불 부은 격이 되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게 분노했기 때문이다.“가톨릭교도도 아닌 제가 여기(트리엔트 대성당)에 들어와도 괜찮을지 모르겠군요.”“후후,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잘못된 교리를 믿고 있는 자들이라 할 지라도요. 주께선 그 누구라도 사랑하는 법이시니까요.”“그랬으면 좋겠군요. 특히 요즘 같은 시대(1차대전)엔 더더욱이요.”“다시는 이런 비참하고 슬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안타깝게도 주께선 인류에게 다시 시련을 주시는군요. (중략) 후작, 이 전쟁이 나기 전 나는 보았습니다. 참혹한 전장과 전쟁의 불길로 타오르는 유럽의 모습을. 그리고 나는 또다시 보았습니다. 수십 년 뒤, 꺼진 재에서 불꽃이 다시 일어 유럽 전체를 불태우는 것을. 동쪽과 서쪽에서 피어난 악의와 증오가 선한 이들을 집어삼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끝날지는 결국, 이번 전쟁처럼 그대에게 달려 있을 테지요.”
이탈리아의 항복 이후 뒤처리를 위해 로마를 방문한 한스를 트리엔트 대성당에 초대해 이런 비극이 다시는 찾아와선 안 된다 하면서도, 안타깝지만 서쪽과 동쪽에서 증오가 다시 피어오를 거라 하면서 이를 끝낼 수 있는 것은 한스뿐이라 예언하였다.[97] 얼마 안 있어 원 역사의 스페인 독감[98]에 걸려 선종한다.
- 비오 11세
2차대전 당시 교황. 2차대전 때 스페인 전역에서 프랑코를 파문하여 가톨릭 신자가 주류인 스페인에서 프랑코의 몰락에 힘을 보탰다. 이때 주인공은 프랑코를 도와 각종 반인륜적 악행에 종사한 사제들과 수도사들도 같이 파문해달라 요청했는데[99] 교회가 세속 정부에 휘둘리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던 교황의 입장으로서 한동안 이를 반대하고 있었지만 주인공인 무솔리니와 맺은 라테라노 조약까지 철회당해 바티칸 유수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압박하자 결국 받아들였다.[100]
- 에우제니오 파첼리
원 역사 비오 12세 교황. 1936년 당시 추기경의 일원으로 등장하며, 권위주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면 때문에 프랑코가 가톨릭 교회를 악용해서 악행을 저지른 것을 알면서도 세속 정부의 뜻에 휘둘려 친프랑코 사제와 수도사들을 파문시켰다가 교황청의 권위가 약화될 거라고 반대하였고, 파문에 도덕적인 명분이 쏠린 상황에서 눈앞의 체면 때문에 이를 외면했다가는 훗날 교회 신자들이 다 떨어져 나갈 거라고 주장한 안젤로 론칼리 추기경과 설전을 벌였고, 2차대전 이후 진보파였던 론칼리 추기경과 교황령에서 가톨릭의 헤게모니를 둔 엄청난 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 안젤로 론칼리
원 역사 요한 23세 교황. 1936년 당시 추기경의 일원으로 등장하는데, 원 역사에서는 한직을 전전하고 있었지만 요한 23세의 존재를 알고 있던 주인공의 개입으로 인해 1920년대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대사를 맡으며 카를 1세 황제와 친분을 다지는 등의 행보로 교황청 내에서 상당한 세력을 갖게 되었으며, 진보적인 면모 때문에 보수파의 수장격인 파첼리 추기경과 사이가 나쁘다. 프랑코의 편을 들어 각종 악행에 종사한 사제들과 수도사들의 파문 논의에 대해 이미 이들의 반인륜적 악행이 온 사방에 소문이 다 난 상황에서 세속 정부의 압박으로 교황 위신이 깎일 걸 두려워해 이럴 외면하다가는 가톨릭의 도덕적 명분에 두고두고 발목이 잡히게 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가톨릭의 고사로 이어질 거라고 주장하여 파문에 찬성하였다.
5.12. 스페인
- 프란시스코 프랑코
원 역사의 국민파 스페인을 세운 그 사람으로 이 세계관에서는 추축국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이 세계관 추축국이 원 역사의 추축국보다 훨씬 더 메롱인 상태로 주인공과 오헝이 교황청이 그를 파문하도록 유도했고, 결국 파문당해 권력 기반의 한 축이 박살 나고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과 마드리드의 함락에 절망해 가족들과 같이 자살하나, 시체를 반란군이 발견했고 발견된 시체는 마요르 광장에 매달려 조리돌림당하게 된다.[101]
5.13.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프란츠 요제프 1세
꼰대 중의 상꼰대로 묘사되며, 이 때문에 한스 폰 초이는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라고 두고두고 치를 떨었다. 베를린 회의 조약 위반을 따지러 간 한스에게 패드립을 쳐서 한스의 분노를 이끌어낸다. 이후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한스의 행보에 영향을 받아 원 역사보다 더 적극적으로 아내 조피의 입지를 위해 활동을 하자 사이가 더 나빠졌고, 조카가 가기로 했던 사라예보의 군사훈련 참관을 대뜸 자기가 대신 가겠다고 나섰으나, 그 결과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신 폭탄에 이어 총을 맞고 사망하고 만다.[102]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지에 큰 기여를 했는데, 만약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죽었으면 어디까지나 독일 제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스 폰 초이가 안슐루스를 해버렸을 거라는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103]
- 프란츠 페르디난트
한스와 프란츠 요제프 1세 사이를 중재하는 모습으로 등장. 이후 귀천상혼한 아내 조피의 입지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다 백부와 사이가 더 나빠지고,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사라예보에 대신 갔다가 죽는 바람에 졸지에 살아남아 황제로 즉위하나 승패 상관없이 막대한 희생과 큰 대가를 치를 전쟁을 하도록 강제받은 현 상황에 속으로 절규한다. 그래도 전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어떻게든 유지하면서 전후 수습과 대공황 극복 등의 각종 난제를 잘 해결하고, 후계자 문제로 오랫동안 사이가 나빴던 카를과도 화해하고[104] 나라의 뒷일을 맡긴 뒤 사망하였다.
- 카를 1세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조카[105]로 프란츠 페르디난트와는 계승 문제 때문에 사이가 나빴지만 1차대전 이후 합스부르크가 없으면 당장 해체될 정도로 불안정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지라는 사명에서는 뜻이 일치하였기 때문에 화해하고 후계자 교육을 받게 된다.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죽은 뒤 황제로 즉위하고 2차대전이 종전되자 대오스트리아 합중국 계획안을 밀어붙여 결국 성사시켰다.
- 호르티 미클로시
원 역사의 '바다 없는 나라의 해군 제독이자 왕 없는 왕국의 섭정'. 물론 본작에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멀쩡히 유지되기 때문에 해당 타이틀은 없다. 헝가리인 유력 정치인으로서 헝가리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하는 입장인데, 원 역사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공중분해의 원인 중 하나였던 헝가리인의 지나친 꼬장을 그대로 재현해서 제국 내 남슬라브인, 이탈리아인과의 사이가 매우 나쁘다.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장례식에서 헝가리 측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2차대전 때는 원 역사와 달리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을 이끌고 직접 싸우는 모습도 잠깐 나온다. 2차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편입되고 제국 내 非 헝가리인의 세력이 매우 커져서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중유럽 합중국으로 개편되고 헝가리의 이권을 상당수 상실하는 것을 피하지 못하여 좌절한다.[106]
- 요시프 브로즈
오스트리아-헝가리 사민당의 당수로 등장하다가 총리가 된다.[107] 크로아티아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남슬라브인의 이익을 대변하며 이권을 못 주겠다고 각종 꼬장을 다 부리는 헝가리 정치인들과의 사이는 매우 나쁘다. 한스 폰 초이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티토가 본작에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유력 정치인으로 살고 있는 걸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2차대전 도중 오토 황태자가 이집트에서 파루크 1세를 고자로 만들자 머리를 싸매지만 이집트 측에서 불문에 부치자고 하면서 한시름 놓는다. 카를 1세의 대오스트리아 합중국 개편안을 적극적으로 도왔으며[108] 2차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대오스트리아 합중국으로 개편되자 호르티와 헝가리인 정치인들을 비웃으면서 매우 기뻐한다.
- 오토 폰 합스부르크
독일에 방문하다가 주인공인 한스의 장녀 프리데리케를 만나고 그 자리에서 첫눈에 반한다. 그 이후 빈보다 베를린에서 더 많이 보일 정도로 구애를 한다. 이 때문에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공자와 의친왕의 차남 이우와 프레데리케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 프레데리케를 난감하게 만들었다.[109] 카이로 회담에서 프리데리케 영애가 온다는 소식에 이집트까지 따라갔고 파루크 1세로부터 프리데리케를 지켜 점수를 따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총을 쐈는데 하필 영 좋지 않은 곳에 맞춰서 파루크 1세를 고자로 만드는 바람에 큰 외교 문제로 비화될 뻔하게 만들었다.[110] 다만 파루크 1세가 먼저 큰 결례를 저질렀기에 불문에 붙이기로 한다. 종전 이후 카를 1세가 오토와 프리데리케와의 결혼을 위해 한스에게 연락하기로 했고 결국 프리데리케를 대공비로 맞이하며 프리데리케 폰 초이 쟁탈전의 승리자가 된다.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가 끝내 황후가 되지 못한 반면 프레데리케는 귀천상혼이 적용되지 않았는데, 한스가 빅토리아 루이제와 혼인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바덴 가문의 당주인 하노버의 왕세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양자로 들어가기도 했고, 무엇보다 한스에게 빚진 것이 많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입장에서 '그' 한스의 딸이자 빌헬름 2세의 외손녀를 일개 귀족의 딸로 취급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5.14. 세르비아
- 페타르 1세
본작에서는 사라예보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1차대전으로 인해 세르비아가 멸망하면서 마지막 왕이 되었다. 카라조르제비치 가문 출신으로 오브레노비치 가문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검은 손으로 인해 왕위에 오를 수 있어서 검은 손을 몰래 후원했지만 검은 손이 독단적으로 벌인 사라예보 사건으로 인해 세르비아 왕국이 멸망하는 상황을 후회한다. 자신은 왕으로서 마지막 역할을 해야 한다며 자식들만 러시아로 대피시키고 본인은 끝까지 수도에 남아 노왕(老王)이지만 끝까지 세르비아군의 전의를 고취시키는 역할을 맡아서 협상국을 질리게 만들었다. 결국 더 버틸 수 없게 되자 자살하려고 했지만 신하들이 이대로 왕이 자살하면 우리 신민들은 적들에게 다 죽고 말 것이라며 울고 불고 빌어서 결국 포기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에게 끌려갔다. 사라예보 사건은 검은 손이 독단적으로 벌였지 페타르 1세의 지시가 아니고 왕으로서 끝까지 책임 지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여겨져 죽지는 않았다고 한다.[111]
- 알렉산다르 1세
본작에서는 1차대전 때 세르비아가 멸망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령에 편입된 세르비아령을 소화시키기 버거워하던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조치에 따라 허수아비 군주가 되었다고 한다.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과 혼인하고 싶어했지만[112] 타티야나는 세르비아의 트롤링에 로마노프 왕조가 말려들었기 때문에 세르비아를 싫어해서 거절하였다. 원 역사처럼 루마니아의 마리아와 혼인했는지는 불명이나 허수아비더라도 오스트리아-헝가리 내 제후국으로서 왕위가 이어지던 이상 대는 이었을 듯하다.[113]
5.15. 루마니아
- 카롤 1세
1차대전 도중에는 사망하기 얼마 전이라 실질적으로는 조카인 페르디난트 1세가 대리청정하고 있다고 언급된다. 호엔촐레른 가문의 방계로 태어나 젊을 때 넉넉치 못한 삶을 살다가 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가 퇴위하면서 루마니아 공작이 되었고 루마니아 왕위까지 올랐다는 유비와 다소 유사점이 있는 삶을 산 인물이다. 친독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한스 폰 초이에게 호의적이지만 살아온 인생이 인생인 만큼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았다.
- 페르디난트 1세
1차대전(1913~1914) 도중에는 카롤 1세의 조카로서 대리청정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호엔촐레른 가문 출신이고 나발이고 루마니아의 이익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하기 때문에 철저히 간을 보았고 한스 폰 초이가 카롤 1세와 만나는 것도 일부러 늦추기도 하였다. 1차대전 후반에 한스 폰 초이와의 협상에서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루마니아의 참전을 대가로 받아낼 수 있을 만한 영토를 모두 받아내는 것으로 독일 주도 협상국에 참전하고 이익을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왕세자인 카롤을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과 혼인시키고 싶어했지만 이때부터 카롤 왕세자의 여성편력이 하도 막장이라 올가가 거절하였고, 이후 카롤 왕세자가 너무 막장스럽게 살자 결국 폭발하여 카롤 왕세자를 폐위시키고 미하이 왕세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빌헬름 2세에게 미하일 왕세손의 후원과 절대로 카롤 왕세자가 루마니아에 귀국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유언까지 따로 남겨 카롤 왕세자의 귀국을 원천봉쇄해버렸다. 그로 인해 사후 조지 5세가 에드워드 왕세자(에드워드 8세)의 막장 행각에 폭발하여 홧김에 페르디난트 1세가 그랬듯이 알버트(조지 6세)에게 왕위를 넘기겠다고 말했다가 에드워드 왕세자가 프랑스와 손잡고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가 일어나는 의도치 않은 나비효과를 부르기도 했다.
- 에든버러의 마리 공녀
페르디난트 1세의 아내로 바람기가 심해서 사적으로는 사이가 최악이지만, 루마니아의 국익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한다는 점에서는 뜻이 일치하여 정치적으로는 파트너 노릇을 잘 하고 있다.[114] 아버지가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프레트 공작이고 본작에서는 영독동맹이 협상국이라서 부모와 척치는 일 없이 친독 성향을 보였으며 한스 폰 초이가 카롤 1세와 만나도록 주선하기도 하였다.
- 카롤 왕세자
페르디난트 1세의 아들로 6촌 여동생인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과 혼담이 있었지만[115] 너무 막장스러운 여성편력 때문에 올가가 거부하여 없는 일이 되었다. 이후에도 정신 못 차리고 막장스러운 사생활을 고수하다 폭발한 아버지에게 폐세자 및 추방되었으며, 원 역사와 달리 페르디난트 1세가 죽기 전에 본가인 빌헬름 2세와 한스 폰 초이에게 카롤 왕세자가 절대 귀국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원 역사와 달리 귀국하지 못하고 해외를 떠도는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5.16. 오스만 제국
- 이스마일 엔베르
원 역사보다는 조금 나은 판단력을 보여주지만 특유의 막장성과 무능함은 여기서도 여전하다. 본작에서도 1차대전 때 특유의 극단성으로 각종 깽판을 치자 보다 못한 메흐메트 6세가 몰래 무스타파 케말에게 부탁하여 케말이 쿠데타를 일으켰고[116] 당시 전방에서 싸우다가 무스타파 케말이 일으킨 쿠데타 소식과 술탄에게 역적 선포를 들었다는 것에 분노하여 술탄이고 아르메니아인이고 투르크인이고 아랍인이고 그리스인이고 다 배후중상이니 학살해 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패전을 거듭하다 열흘 만에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살해당한다.
- 무스타파 케말 카흐라만튀르크[117]
한스 폰 초이로 인해 친독 성향의 장교로, 본작에서도 영국의 트롤링으로(...)[118] 1차대전 때 강제로 동맹국 편에 싸우면서 갈리폴리 해전을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명장으로 명성을 쌓았지만 주오스만 독일 군사고문단을 억류하긴 했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
뛰어난 전공으로 오스만의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무스타파 케말 파샤가 되었지만 자신이 잘 싸운다고 해도 전쟁에서 지고 있는 건 달라지지 않았고, 오랜 친구인 이스마일 엔베르를 비롯한 주요 파샤들이 갈수록 맛이 가는 광경에 스트레스를 받다 메흐메트 5세가 몰래 무스타파 케말에게 파샤들을 축출하고 독일과 협상하여 오스만 제국의 국체를 보존해달라 부탁하자 고민 끝에 받아들이고 친위 쿠데타를 지휘하여 파샤들을 순식간에 축출하였다.[119] 이후 한스 폰 초이와의 협상으로 그리스에게 빼앗긴 콘스탄티니예(이스탄불)를 비롯한 유럽 영토를 포기하고[120] 이후 영국령 중동을 영국에게 정식으로 넘기는 대신 배상금은 석유 이권으로 대신하고 오스만 제국의 국체를 유지하는 등으로 타협하였다.[121]
전후 메흐메트 6세에게 '카흐라만튀르크'라는 성을 하사받고, 오스만 제국의 재상이 되어 오스만 제국의 개혁정책을 이끌게 되며, 오스만 제국의 명재상으로서 오스만 제국을 재건하게 된다. 튀르키예 민족주의자였던 원 역사와 달리 다민족 국가인 오스만 제국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역할의 차이 때문에 원 역사와 달리 민족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한스 폰 초이의 관세 동맹과 여러 협력으로 인해 원 역사보다 수월하게 오스만 제국이 굴러갔다고 하니 나름대로 해피 엔딩을 맞은 셈이다.
- 메흐메트 5세
1913~1914년 1차대전 당시에는 힘없는 늙은 술탄이자 파디샤라고 언급된다. 그러나 영국의 트롤링 때문에 억지로 말려든 1차대전에서 패전을 거듭하는 데다 이스마일 엔베르를 비롯한 주요 파샤들의 무능함과 피지배 민족 학살 트롤링을 지켜보고 이대로 있다가는 오스만 제국이 멸망할 것을 깨닫고 당시 엔베르의 견제로 후방에 빠져있던 무스타파 케말에게 몰래 요청하여 주요 파샤들을 몰아내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주요 전투는 무스타파 케말이 다 했지만 궁정에서 술탄과 파디샤의 권위로서 무스타파 케말의 편을 들고 파샤들의 휘하 장병들의 항복을 받아내어 내전이 빠르게 끝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스 폰 초이의 배려로 일부 영토를 상실하기는 했지만 오스만 제국의 국체를 유지하는데 성공한 뒤 무스타파 케말의 개혁 정치를 뒷받침해 주었고 '카흐라만튀르크'라는 성을 하사하였다. 이런 메흐메트 5세의 결단 덕분에 21세기에도 오스만 제국 파디샤 체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오스만 제국을 멸망 직전에서 구해낸 명군으로 불릴 듯하다.
5.17. 이집트
- 파루크 1세
이집트의 국왕. 카이로 회담을 위해 딸인 프리데리케와 함께 이집트를 방문한 주인공은 파루크 1세의 막장 행각[122]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프리데리케에게 접근하는 걸 최대한 막고 있었지만, 뒷일은 생각 안 하고 프리데리케를 덮치겠다는 일념으로 한밤중에 호텔의 전기를 끊고 창문으로 침입하다 오토 황태자가 쏜 발터 P38에 영 좋지 않은 곳을 맞아 고자가 되었다. 주인공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파루크 1세를 잡아족치고 싶었지만 고자가 된데다 정치적으로도 파루크 1세는 사실상 끝장이라서 불문에 부치는 걸로 마무리지었다.[123]
이후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은 시점에 퇴진 시위에 시달리고 있다고 언급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에 권좌에서 쫓겨나 페르시아로 망명했다고 언급되었다.
- 가말 압델 나세르
카이로 회담 당시의 신분은 사관생도. 카이로 회담에서 파루크 1세가 벌인 추태를 전해듣고 "이딴 게 국왕?"이라며 기가 막혀했고, 저 고자놈을 가만 놔두면 이집트가 멸망할 거라며 최대한 빨리 파루크 1세를 끌어내리기로 다짐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직후에 쿠데타를 일으켜 파루크 1세를 쫓아내었다고 언급되었다.
5.18. 러시아 제국 → 소련
- 니콜라이 2세
작중 초반부에는 각종 무능함과 삽질 때문에 한스와 독자들의 혈압을 올린 인물이다. 러시아 혁명을 피하지 못하고 축출되었지만 본래 역사와는 달리 주인공의 압박을 받은 레닌의 도움으로 차르 일가가 살아남아 독일로 망명한다. 도중에 우크라이나에 머물다가 농사와 목축에 손을 대서 취미가 들리게 되고, 덴마크로 망명한 뒤 농사일을 하며 로마노프 유업을 창설해 자신의 지지 세력들과 소소하게 살아간다.[124] 사업에 제법 재능이 있었는지 로마노프 유업은 유럽에 이어 미국까지 지사를 둘 정도로 성장했고 같은 시기에 우유 사업을 하던 알 카포네와 충돌해서 우유 전쟁까지 벌어지는데, 그 말을 들은 한스는 안 말려도 되냐고 물어봤지만 도적(마피아)에게서 우유를 지키는 게 뭐가 이상하냐는 러시아스러운(?) 대답을 해서 한스의 얼을 빠지게 했다.[125]
황위를 잃은 이후에도 여전히 유럽 왕가의 원로로 취급되고 있어 왕족들 사이에서의 대우는 높다고 하며, 이 때문에 쌍둥이처럼 닮은 이종사촌인 조지 5세가 왕세자 에드워드(1894년생)를 처음에는 올가(1895년생)와 혼인시키려 했지만 에드워드의 악명 때문에(...) 거부하고, 대신 우크라이나의 왕비 자리를 노리고 빌헬름 2세의 6남 요아힘(1890년생)과 혼인했고, 이후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에드워드가 제대로 된 혼인 자체를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해 조지 5세가 덴마크까지 찾아가서 타티야나(1897년생)와 에드워드를 약혼시켰지만 에드워드의 막장 행실과 푸대접 때문에 폭발한 타티야나가 파혼을 요청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동생인 앨버트(조지 6세, 1895년생)와 대신 혼인시켰다. 이후 3녀인 마리야(1899년생)는 어릴 적부터 마리야를 짝사랑하던 이종사촌인 바텐베르크의 루이 공자(루이 마운트배튼, 1900년생)와 혼인했다고 언급된다.
2차대전 때 영국 왕세자 에드워드가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과 쌍둥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닮은 사촌인 조지 5세가 죽었다는 소식에 매우 슬퍼했고, 죽은 조지 5세를 위해 북유럽 국가들을 설득시켜서 2차 대전에 참전시키고 미국에서도 러시아 우유 배달부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뒤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126]
2차 대전이 종전된 후 핀란드령이 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로마노프 가문 소유로 남은 겨울궁전에 돌아오게 된다.[127] 비록 왕정복고는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본인도 황제보다 사업가가 낫다며 만족하며 살고 있다. 로마노프 유업은 유스포프가 당분간 전담하게 되고 이후 아나스타샤에게 물려줄 생각이라고. 유일한 아들인 알렉세이 황태자가 언급되지 않는 것을 보면 그가 앓고 있던 혈우병으로 인해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거나 이미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담으로 막내딸인 아나스타샤(1901년생)는 언니들과 달리 누구와 혼인했는지 언급되지 않는다.
-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베조브라조프
러일전쟁의 협상이 질질 끌린 원흉으로 극동에서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차르 니콜라이 2세를 꼬드겨 극동으로 흑해함대를[128] 보내고 이를 막기 위해 영국은 모로코에 함대를 주둔시키며 덤으로 독일 함대도 불러일으키자 프랑스까지 자극해 1차 모로코 위기가 일어난다. 이후 협상을 시도하는데 러시아가 받아야 하는 대가가 너무 적다며 억지를 부려 협상이 질질 끌리다가 끝내 포템킨 반란이 터지게 되고 이를 제압하기 위해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의 지시도 없이 함포를 쏘다가 본의 아니게 모로코 해전을 유발시키고 러시아 제국은 전함 Двенадцать Апостолов<드볘나드차티 아포스톨로프(12 사도)>를 잃게 된다. 결국 니콜라이 2세에게 분노를 사 겨울궁전에 다시는 발 들일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며 궁전에서 내쫓긴다.
- 표트르 스톨리핀
첫 등장은 비테가 피의 화요일을 수습하던 도중 사라토프 주의 주지사로 일하며 소요 사태를 벌써 수습시켰다는 것에 감탄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이후 비테의 측근이 되고 헤이그 회담에서 한스와 만나고 이후 암살당한다.
- 블라디미르 레닌
원 역사에서처럼 동부전선을 끝내려는 독일 제국의 계략으로 러시아로 보내졌으나, 한스에게 목줄을 잡힌 채로 보내진 탓에 로마노프 일가를 죽이지 못하고 은밀히 독일 제국으로 보내는 등의 변곡점이 생겼다. 이 탓에 볼셰비키 내부에서도 의심을 받게 되었고 트로츠키, 스탈린을 위시한 수뇌부의 음모로 비밀리에 암살당한다.
- 이오시프 스탈린
원 역사보다 스톨리핀의 총리 집권이 빨라지자 트로츠키와 함께 '코바'가 빈으로 망명한 것으로 첫 등장한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와의 협상 때문에 빈에 방문한 한스가 빈의 상업화가 히틀러와 만난 직후 트로츠키와 함께 빈의 거리를 달리면서 그 체력으로 어떻게 은행 강도 했냐고 놀림당하고, 카페에서 카페 초이(아메리카노)를 주문하자 나는 그 구정물 싫다고 트로츠키에게 화냈지만 트로츠키가 깐족거리자 잠깐 얼음 송곳으로 머리를 꽂아버릴까 생각하다 그만둔다.[129] 한스를 비스마르크의 후계자라 부르면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한 돌발행동의 뒷처리 때문에 왔을 거라 바로 알아맞추고, 트로츠키가 발칸의 화약고에서 일어날 세계 대전을 비스마르크가 생전 예언한 것을 인용하며 이를 이용해 세계혁명이 일어날 거라 장광설을 펼치자 저 인간 또 시작이냐며 떨떠름해한다.
서기장에 오르는 과정은 원 역사와 유사하나[130] 중국으로 망명한 트로츠키의 제거는 실패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암살자를 보내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후 적의 적은 동맹이라는 논리로 파시 프랑스/이탈리아/일본과 손을 잡고 우크라이나/폴란드에 선전포고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의 막을 열었으나, 연합군의 막강한 전력에 밀려나던 와중 한스의 계략으로 2차 대숙청을 일으켜 군 지휘부를 날려버린 탓에 패전하였고, 스탈린 본인은 안드로포프의 함정에 빠져 생포되어 연합국에 넘겨졌다. 최후에는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라 로크, 무솔리니, 에드워드 8세와 함께 교수형에 처해졌다.
마지막 순간에는 어머니를 떠올렸으며,[131] 젊을 적 조지아 시인으로 활동했던 시절의 시 <달에게<მთვარეს>>의 "어두운 하늘에서 빛나라. 창백한 빛으로 뛰놀라. 예전처럼 한결같은 빛으로 나의 조국을 비추라. 나는 그대에게 가슴을 열고 마주 향해 손을 내밀고 또 다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밝은 그대를 보겠노라."를 조지아어로 읊으며 유언으로 남겼다.
- 레프 트로츠키
빈에서 스탈린에게 반강제로 아메리카노를 먹이면서 첫 등장. 특유의 몽상가적 기질 때문에 스탈린을 비롯한 여러 동지들에게 반감을 심어 놓는다. 러시아 혁명 이전까지는 나름 원 역사대로 움직였지만[132], 스탈린에 의해 소련에서 쫓겨나고 난데없이 중국으로 가서 쑨원과 손을 잡으나, 쑨원이 반공을 국시로 삼는 타국들과 부하들의 압박을 못 이겨 자신을 쫓아내고, 이에 중국공산당원들과 같이 신강으로 이동해서 울분에 술로 허송세월을 보내다 어느 순간 갑자기 각성해서 반대파이자 자신을 암살하려 한 마오쩌둥 일파를 최소한으로 숙청[133]하고, 중국공산당을 장악하며 자신을 배신한 스탈린에게 역으로 암살자를 보내는 식으로 맞선다.[134] 이후 청나라와 중화민국 간의 전쟁에서 세력을 키우고 일본군이 중국을 침공하자 잠시 지켜보다가 일본과의 전쟁에 끼어들고 연합국의 일원이 되고 카이로 회담에서 당당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135][136]
원래 블라디미르 레닌을 죽인 사람은 이 사람인데 본인은 당시를 회고하기를 청년기 시절 혁명 이상에 취해 레닌이 혁명의 배신자라고 믿고 처분한 것이지만[137] 소련에서 쫓겨나고 한 무리의 수장이 되고 보니 제일 후회되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스탈린을 확실히 매장도 할 겸 뉘른베르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스탈린이 레닌을 죽인 범인이라고 고발해버린다. 이후 새로운 혁명을 위해 중국을 떠나 남미로 이주한다. 후임은 덩샤오핑이나 저우언라이에게 맡겼을 것으로 추측된다.[138]
- 라브렌티 베리야
원 역사에서처럼 스탈린의 사냥개로 수많은 이들을 숙청하였고, 한스의 계략으로 조르게가 넘긴 거짓 자료에 속아 스탈린이 2차 대숙청으로 소련 군부를 날려먹는데 일조하였다. 이 후 조르게의 정보가 독일 제국이 꾸며낸 것임을 알아채 자신에게 책임이 전가될까 두려워하였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소련이 패전할 각이 보이자 스탈린에게 불만을 가진 이들을 포섭하여 스탈린을 연합국에 넘기는 음모를 세웠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안드로포프에게 이용당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안드로포프에게 권총을 맞고 사망하게 된다.
- 그리고리 쿨리크
원 역사에서처럼 T-34와 기관단총의 개발을 방해하는 등 똥별로서의 행보를 보여준 것도 모자라, 연합군의 함정에 빠져 핀란드 침공군은 물론 레닌그라드 수비군까지 날려먹는 짓을 하였다. 실의에 빠져 술만 퍼마시다 스탈린이 전화로 추궁하자 욱하는 심정에 스탈린을 욕하였으나,[139] 술이 깬 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자마자 도주하던 중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 안드레이 블라소프
그리고리 쿨리크가 거하게 똥볼을 찬 탓에 레닌그라드가 연합국에게 점령당할 처지에 놓이자 쿨리크를 처형한 스탈린이 급하게 레닌그라드 방어전 지휘관으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전황 자체가 이미 망한 상태였고, 실패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다 항복하기로 마음먹고 항복에 반대할 만한 지휘부를 모조리 체포한 뒤 연합국에 항복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스탈린은 레닌그라드를 싸우다가 잃었으면 몰라도 항복했다는 말에 화가 끝까지 치밀어올라 블라소프의 가족, 친척은 물론 친하게 지냈던 이들과 키우던 개까지 모조리 처형해버리고 항복한 장교들의 가족들은 굴라그로 보내라고 지시를 내리는데 이들 중엔 코네프, 포포프, 고보로프 등의 스탈린 충성파들은 물론 블라소프에게 제압당한 이들의 가족도 포함되어있었고, 스탈린도 알았지만 제 알 바냐며 무시했다.
- 유리 안드로포프
원 역사에서처럼 베리야의 부하로 NKVD에서 일하고 있었으나, 베리야의 행적에 의문을 품고 조사한 뒤 반란 계획을 눈치채고 이를 역이용한다. 먼저 스탈린에게 베리야의 계획을 고발한 후, 베리야가 반란을 일으키자 동참하는 척하고 그대로 베리야를 사살한 후, 스탈린까지 통수를 쳐서 감금해버리고 소련의 권력을 잡은 뒤 트로츠키를 끌어들여 연합군에 항복한다. 그 결과 소련의 존속은 보장받았지만 영토가 갈가리 찢겨나가고 군대도 산업 기반도 모조리 해체되어 겨우 숨만 붙은 꼴이 된 것에 절망한다. 그래도 이후 한스의 언급에 따르면 곧바로 제정신을 차린 뒤 소련 내부의 잔존 세력들과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여가면서 꾸역꾸역 나라를 재건시키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에 소련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 칼라시니코프가 대단하다고 평하기도 했다.[140]
- 리하르트 조르게
원 역사에서처럼 소련의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그의 정체를 알고 있던 한스의 지시로 역정보를 흘리는 루트로 활용되었다. 그러던 중 소련군의 역량을 박살 내기 위해 조작된 거짓 정보를 넘기는 바람에 소련군의 2차 대숙청의 문을 열게 되어버렸다.[141] 이후 쓸모가 없어진 조르게를 하이드리히가 체포하면서 일의 전말을 알려주었고 진실을 깨달은 조르게는 절규하며 체포되었다.
-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소련군 보병으로 전쟁에 참전하였으나 소련이 패전하면서 포로로 잡혔고, 포로 수용소에서 노역하던 중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휴고 슈마이서가 제자로 스카우트하여 총기 장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언급을 보면 슈마이서의 딸과 눈이 맞는 바람에 슈마이서에게 총맞을 뻔했으나 살아남은 뒤 결혼함으로써 슈마이서의 제자이자 데릴사위가 되어 미하엘 슈마이서로 개명하였으며, 현대 시점에서 독일군의 제식총기인 StG-K를 개발하였다고 언급되었다.
5.19. 미국
-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합중국 제26대 대통령.
- 우드로 윌슨
미합중국 제28대 대통령. 평화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지만, 동시에 인종차별주의자인 위선자로 묘사된다. 1차 대전을 이용해서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만들려고 여러 음모를 꾸미지만, 막판에 한스에게 음모가 전부 폭로당하고 열폭하며 날뛰다가 지병이 악화되어 쓰러진다. 사망하지는 않고, 식물인간이 되어 부통령인 마셜이 대통령직을 승계받지 못하고, 대통령 대행으로 잔여임기를 수행하게 된다. 몰락 직후에 윌슨의 압박으로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급히 출전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육군의 폭로도 더해져서 욕을 더 먹는다. 원 역사와 달리 초선일 때 쓰러져서 재선도 못 했다.
- 찰스 에번스 휴즈
윌슨의 몰락으로 미합중국 제2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원 역사와 달리 윌슨이 초선만 하고 쓰러져서 윌슨 2기 행정부 잔여 임기를 휴즈가 대신하게 된다.
- 허버트 후버
윌슨의 몰락으로 미합중국 제3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조금 더 빠르게 정권을 잡지만 재선 시절 1927년 1월 대공황도 더 빠르게 일어나는 바람에 욕설과 비난 속에서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에서 도망친다.[142] 당시 후버는 이미 재선이라 더 할 일도 없어서 후임자에게 짬처리를 결심하고(...) 사태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다고. 거기다 임기 종료 직전에 국가 예산으로 정부의 지시를 받은 석유 회사들에 비밀 공작 실패로 인한 보상을 해주는 식으로 후임인 앨 스미스를 엿먹이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맥아더가 시민들은 굶어죽건 말건 놔두면서 강도 귀족들은 챙겨주는 행태를 보고 더욱 반감을 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작중에서는 대공황에 2년 내내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서 각종 쌍욕을 먹었지만 그와 별개로 광란의 20년대라는 미국 사상 최고 호황(정확히는 거품경제)을 이끌었던 인물이기도 해서 미국 사상 가장 경제적으로 명암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이 될 듯하다.
- 앨 스미스
후버가 몰락한 뒤 미합중국 제3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지만 본인도 딱히 대공황을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어 후버빌 대신 스미스빌이 세워지며 욕설과 비난을 받는다. 앨 스미스는 딕시크랫으로 대표되는 각종 꼴통으로 악명 높았던 미국 민주당의 진보화 드라이브를 주도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선배격 되는 인물이지만 그 때문에 미국 민주당 내 적이 많았고, 심지어 가톨릭교도이기까지 해서 청교도가 사회 주류였던 당대 미국에서 여러모로 경원시되는 인물이라 뭘 하고 싶어도 정적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2년간 이것저것 고안한 건 많은데 제대로 통과한 건 없다시피했다고. 보너스 군대 문제도 2년 동안 최대한 상황을 미루면서 의회에게 도와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했지만 다 씹혔다고 한다.
보너스 군대 사건이 일어나자 원 역사의 후버처럼 무력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가 맥아더가 일으킨 쿠데타로 축출당한다.[143] 그 뒤 내내 감금당해 있다가 맥아더의 D.C. 초토화 작전 때 불타 죽었다. 이래저래 욕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쿠데타로 축출되었을 때 스미스가 뉴욕 주지사 이력이 있어서 뉴욕 시민들이 스미스를 옹호했고 캘리포니아 저항군이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자신은 이름값이 부족하다며 앨 스미스의 정치적 후계자로 간주되던 뉴욕 주지사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독일과 영국에게 협력을 요청하며 데려오는 등 당대 미국인들에게는 이래저래 애증의 대상이었던 듯하다.[144]
- 알 카포네
등장 당시 시카고 아웃핏의 중간 보스로 나오며, 당시 시행되고 있던 금주법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을 알고 보스인 조니 토리오에게 우유 배달 사업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는데, 토리오는 이 말을 듣고 네 아이디어는 좋은데, 이미 선점하고 있는 로마노프 유업이 있다고 말한다. 이에 시카고 내의 로마노프 우유 배달부들을 구타하고 협박하는 식으로 견제를 하려 했으나, 이를 들은 로마노프 유업 미국 지사장인 유수포프 공작이 회장인 니콜라이 2세의 문책을 두려워해 카포네를 습격하는 강경책으로 나오자 다른 회사들과 달리 전면전으로 나오는 것에 놀라 똑같이 습격을 한다.
이후 다툼에서 밀리는 시카고 아웃핏이 타 지역 이탈리아계 갱들을 끌어들이고, 이에 로마노프 유업도 아일랜드계 갱들을 용병으로 고용해 확전을 하면서 우유 전쟁이 터지고 사태가 미 동부 전역으로 번지게 된다. 이탈리아와 러시아 둘 다 벤데타 풍습이 있던 탓에 한 번 시작된 전쟁이 도저히 그칠 기미가 없었고, 뉴욕 출신인 스탠 리는 매일마다 뉴욕에서 우유 전쟁 벌이는 건 일상 취급하며 주민들도 신경을 안 쓸 경지에 이르렀었다(...).[145] 이딴 대형사고를 쳐놓고서도 알 카포네가 조직에서 숙청(죽음)을 당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이후 맥아더의 쿠데타 때 신정부군이 시행한 마피아 토벌에서 보스와 동료 대부분을 재판 없이 처형당해 잃고 간신히 살아남아 시카고 저항군에 가담하게 되며, 밀워키 외곽에서 도망치는 맥아더를 발견해 자기소개를 하면서 벤데타를 선언하고, 쇠망치로 맥아더에게 첫타를 날린다. 본인 말에 따르면 자신들이 범죄조직이라는 자각은 있어서 정부가 자신들을 죽이려는 것 자체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아무리 암흑가라도 숙청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고 한다.
- 더글러스 맥아더
1차 대전 파트에서 첫 등장. 윌슨의 음모가 폭로되면서 유럽 원정 미군이 온갖 조롱을 받게 된 현실에[146] 분노하던 중, 전간기에 접한 라 로크의 '나의 조국'이란 책을 계기로 파시스트가 된다. 그러다 보너스 군대 사건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들을 챙겨주지는 못할 망정 사실상 무력진압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명분으로 삼아[147] "인간이란 동물은 강력한 누군가가 리드해 주길 바란다"는 독백과 함께 되려 보너스 군대를 선동하여 그대로 백악관으로 진군하여 쿠데타를 일으킨다.[148]
이후 스미스 대통령을 축출하고 신정부를 세운 뒤 반대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며, 루스벨트가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내전이 일어나게 되자 자국 영토를 폭격하고, 딕시들과 손을 잡고 적극적으로 인종차별 정책을 펼친다. 그 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 편으로 참전하지만, 필리핀이 동맹이라고 생각한 일본에게 정복당하는 등 체면을 구기고, 운동과는 담을 쌓았는지 뱃살이 두툼하게 붙은 데다 오만함만 늘었으며,[149] 아이젠하워도 패튼도 그를 저버리면서 측근이라고는 옆에서 딸랑거리는 매카시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망가져 작가는 그를 동탁이라 표현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소련, 일본 등 추축국이 차례차례 무너지는 와중에도 가장 오래 버텼지만 연합국의 병력이 본격적으로 미국에 도착하고 연전연패를 당하자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두려움, 불안감, 의심병 등이 폭발해 홧김에 후버를 죽이고 린드버그에게 카미카제 명령을 내린다. 직후 이에 반발한 미첼과 아놀드가 자신을 따르는 휘하 장교들과 파일럿들을 모아 집단 투항을 하자, 뒤늦게 알고 린드버그에게 성씨를 트집 잡아 독일 스파이가 아니냐고 억지를 부리면서 골프채로 때려죽이고, 답이 없는 전황에 항복을 진언한 서덜랜드도 총으로 쏴 죽이고, 직후 불리해지는 전황에 위스콘신으로 천도를 진언하는 매카시의 말을 듣고 D.C.를 전부 불태우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후 위스콘신 함락 직전 매카시도 버리고 혼자서 간신히 튀었으나 하필이면 그에게 원한이 많은 이들 중 하나인 알 카포네와 마피아 + 로마노프 유업의 우유 배달부들로 구성된 시카고 저항군에게 걸려 벤데타[150]를 당해 문자 그대로 복날 개 맞듯 맞아죽으며 고깃덩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때 얼마나 원한을 샀으면 벤데타를 하던 인물들이 얼굴 하나 안 찡그리고 두들겨 팼다고... 이후 이를 본 연합국 병사들이 업보라는 평을 남겼다. 그리고 그에 대한 벤데타를 끝으로 전 웨일스 공 에드워드의 쿠데타로 시작한[151] 2차대전은 종전을 고하게 된다.
여러모로 카이저라이히나 빙탈린, 폭통 등에서 나온 '흑화한 맥아더', 일명 '맥가놈'의 클리셰를 따라가다 못해 폭주한 캐릭터로, 맥아더의 긍정적인 면모는 없애고 부정적인 면모만을 극한으로 부각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부정적으로만 묘사되는 건 아니고, 1차대전 당시에는 나름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에는 장점도 많았고 멋있는 면도 있었지만 타고난 자아도취적 면모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라는 특성과 결부되어 과거의 장점을 모두 잃고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맥아더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장병들은 맥아더가 한때는 빛나던 사람이었지만 과거의 빛을 모두 잃고 망가졌다며 나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 존 조지프 퍼싱
1차 대전 당시 유럽에 파병되는 미군의 부사령관을 맡게 되며, 앤트워프에서 사령관 펀스턴의 2주만 훈련하면 전선에 투입할 수 있다는 발언을 듣고 이건 아니라고 하려 하다 펀스턴의 눈치를 받고 그만둔다. 직후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끄는 스파르타쿠스단의 습격 때 사령관 펀스턴이 어깨에 피탄당하고 나서 진압은 영독군이 하게 맡고, 미군의 희생이 없도록 하기 위해 피해있을 것을 명하나 패튼이 멋대로 날뛰는 것을 보고 이 자식을 영창에 보내야 한다고 분노한다. 습격 직후 어깨에 부상을 입은 펀스턴을 문병 명목으로 찾아가서 훈련을 2주만 하고 투입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된다고 항의하나 펀스턴이 이건 자신이 한 결정이 아닌 윌슨이 한 결정이라고 자신의 피탄을 명목으로 훈련 기간을 한 달로 늘려보겠다는 답을 하고 병원에 입원한 펀스턴을 대신해 사령관 일을 한다. 이후 맥아더의 쿠데타가 일어나자 맥아더를 막아야 한다고 하지만 맥아더를 따르기로 한 장병들은 역으로 퍼싱을 감금시킨다. 루스벨트 부부를 구할 때 언급이 되었으나 위치가 달라서 구출하지는 못했다. 결국 맥아더의 수도 초토화 작전 때 휘말려 불타 죽었다.
- 조지 S. 패튼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중위 계급으로 유럽에 도착하자마자 스파르타쿠스단의 테러에 휘말리게 되었고, 테러 현장에서 한스를 구하고 스파르타쿠스단 단원들을 때려눕히는 활약을 하였다. 이후 맥아더의 쿠데타에 동참해 신정부 밑에서 지내다 정치싸움에서 밀려 에드워드를 도우러 영국에 갔다가, 이후 스페인으로 파견나왔으나 점차 추축국이 하는 일에 회의감을 가지고 사실상 반 이탈해 바르셀로나에서 술에 절어 폐인처럼 지내다가[152] 바르셀로나 주민들을 처형하려는 광경을 보고 각성, 그대로 야구에 장군을 쏴버리고 ERC에게 자신들을 이끌어달라는 요구를 받고 그대로 반란을 일으키고, 본인과 직속 부하들은 캘리포니아 공화국 쪽으로 전향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아이젠하워와 마셜은 패튼이 패튼했다며 수긍한 것은 덤. 이 와중에 패튼의 지휘를 편을 바꿔 두 번 받게 되는 프랑스 기갑병들은 쌍욕을 하며 절규한다. 본인도 자유 프랑스군이 운용하는 4호 전차를 보고서는 독일이 만든 4호 전차[153]를 타고 싶었다며 친분이 있는 구데리안이 잘 만들었다고 4호 전차를 극찬한다. 어찌 되었든 신정부 쪽에 있긴 했기에 자신과 입장이 비슷한 다를랑과 발보와 같이 전후 처벌을 받기로 결정되어있지만, 솜방망이 수준이라 사실상 처벌을 안 받는 거나 마찬가지. 그리고 그를 마지막으로 소련의 베리야의 쿠데타 전까지 전향한 사람은 없다.
- 아돌프 히틀러
원 역사의 그 독재자 맞다. 여기서는 주인공이 빈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만났고, 히틀러에게 빈의 미대가 아닌 베를린의 미대 입학을 권유하고 이 말을 들은 히틀러는 독일로 이주해 미대 입학에 성공한다.[154] 그러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원 역사처럼 프로이센군이 아닌 바이에른군에 입대하고 간혹 전쟁 중에 협상국 병사들에게 수상한 동물 캐릭터 그림을 그려주며 인기를 얻다가 전쟁이 끝날 무렵 우연히 접한 미국 애니메이션 '공룡 거티'를 보고는 자신이 나아갈 길을 깨닫고, 미국으로 이주해서 월트 디즈니와 함께 만화 영화 제작소를 차린다.캘리포니아에 위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프랑스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라 로크처럼 맥아더란 이름의 독재자가 위협을 가해 오고 있습니다! 나는 독일인이지만 대전쟁에서 미국인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함께 프랑스의 참호를 누볐습니다. 그렇기에 알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얼마나 자유를 사랑하는지! 그렇기에 이 상황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큰 슬픔으로 다가오는지! 싸웁시다, 자유 시민이여! 인종과 종교의 장벽을 넘어 캘리포니아를,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저 사악한 맥아더로부터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웁시다!
이후 비교적 자유분방한 미국의 정서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155] 민주주의 사상가로도 활동하며, 맥아더의 파시즘 정권을 비판하며 특유의 연설 능력을 뽐내 정치인에 걸맞은 인재라는 평가를 듣지만[156], 예술가는 예술가답게 싸우겠다며 반 파시즘 애니메이션을 제작[157]하는 것으로 맥아더에게 맞서싸운다. 사실 루즈벨트를 구출하기 전, 히틀러를 수장으로 삼으려고 하는 말이 있기도 했다.[158] 2차대전 종전 후에는 미국, 독일, 한국에 히틀러랜드를 세웠다고 한다. 여기서는 하켄크로이츠를 자기 작품의 상징으로 쓰는데, 본작에서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불교의 卍 자와 같은 좋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맥아더와는 대비되는, 여러모로 군밤이나 폭통, 효명조선 등에서 나온 '민주투사 히틀러'의 클리셰를 따라간 캐릭터.[159] 그와 별개로 작중에서 파시스트 빌런으로 각종 악행을 저지른 라 로크, 맥아더, 무솔리니, 프랑코[160] 등의 악행은 원 역사의 히틀러에 한참 못 미친다고 여러 차례 명시되는데, 작중에서 보이는 파시스트 빌런들의 악행 수위는 객관적으로 매우 심하지만 원 역사 나치 독일에 한참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161] 원 역사의 히틀러가 얼마나 답도 없이 극악무도한 자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162]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별들의 기수의 일원이나 원 역사와 달리 웨스트포인트 재학 시절에 1차대전이 끝나버려 참전하지 못했다. 보너스 군대 당시 맥아더의 부관이었으나 맥아더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기겁해 맥아더를 말리려 했지만 씹히고 미국 전역이 엉망이 되어버리자 제때 맥아더를 쏴죽였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루스벨트를 구출하려는 미 해군과 구출대를 보내려는 독일, 영국에 협력을 약속하고, 쿠데타에 동의하지 않는 브래들리 같은 웨스트포인트 동기들을 설득해 캘리포니아로 보내고, 오랫동안 했었던 맥아더의 부관 경력을 이용해 맥아더 명의의 명령서와 서명을 위조해 루스벨트 부부를 빼낸 뒤 함께 캘리포니아로 도주해 자신의 상관이던 맥아더에게 맞서 싸운다. 이 때문에 별들의 기수는 원 역사와 달리 미국 내전으로 출세했다고 한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샤프 밀사 사건이 폭로되어 정치적으로 사망한 윌슨을 손절하기 위해 해군 차관직을 사임하는 기자회견에서 첫 등장을 하며, 뉴욕 주지사 재임 중 맥아더의 반란 소식을 듣고 주방위군을 소집해 스미스 대통령의 구출을 시도하려 하나, 선수를 친 맥아더에 의해 붙잡혀 부인과 같이 가택연금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젠하워와 스코르체니에게 구출되어 미국 서부로 도피,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선포하고 맥아더에 맞서 미국 내전을 일으킨다. 독일의 교토 원폭 투하 직후 독일이 결국은 핵을 썼다고 하면서 한스를 샌프란시스코로 불러내서 정상회담을 하면서 미국에 원폭 투하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면서 맥아더 신정부 내부에 핵을 투하한다는 허풍을 늘어놓아 혼란을 가중시키는 정치공작을 한다. 이후 미국 내전이 종결되고 정식으로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한스는 FDR의 그 특유의 능구렁이 같은 성격을 두고 참으로 자신이 싫어하는 두 번째 부류라고 생각한다.[163]
- 피오렐로 라과디아
1931년 당시 뉴욕시 시장이었던 인물로,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당대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자이자 이 시기 뉴욕 골칫거리였던 부패 정치인 및 뉴욕 마피아와의 전쟁으로 유명한 인물이다.[164] 맥아더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연방군을 뉴욕으로 보내 뉴욕이 점령당하자 루스벨트는 다리 장애 때문에 탈출을 포기했지만 라과디아는 뉴욕의 지하로 숨어들어가 뉴욕 저항군을 이끌게 된다. 동네 시민들은 물론이고 맥아더가 해체한 것에 원한을 품은 뉴욕 경찰국, 평범하게 우유 장사하다가 뜬금없이 조직이 공격당한 로마노프 유업 미국 지사 직원들,[165] 맥아더의 공격으로 조직이 공중분해당한 뉴욕 마피아 잔당들[166] 뉴욕 해안 경비대 등등이 합류하여 가히 고담시 저리가라 할 디스토피아를 뉴욕에서 찍게 된다. 6년 동안 뉴욕에서 군사정부를 상대로 잡히지 않고 저항군을 이끌었으며, 유럽과 태평양 전선이 다 정리된 연합군이 뉴욕을 탈환할 때도 활약하였다.
- 휴이 롱
루이지애나 주지사로 재임 중에 맥아더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딕시크랫으로 유명했던 당시 남부에서 진보주의자이자 친인척 인사에 각종 불법적인 수단을 마다 않던 파시스트, 포퓰리스트로도 악명을 떨쳤던 이중적인 인물이었지만, 이 점이 미국 내전에서 남부의 민주주의자와 소수민족들을 끌어들여 저항군을 결성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후 자신이 내세우는 슬로건인 '모든 사람이 왕이다'를 실천하기 위해 맥아더의 탄압을 피해 도망친 흑인과 소수인종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뒤, FDR과 손을 잡았고 결국 내전에서 루스벨트와 같이 승리해 미합중국의 내전을 끝내는 데 일익을 담당했고 이후 루스벨트의 독보적인 후계자가 된다. FDR과 성격은 썩 맞지 않아서 둘이 만나면 매번 디스전이긴 하지만 그래도 루스벨트가 자기 다음 대통령 후보는 롱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미국 내전 당시 맥아더의 군사정부를 공동의 적으로 두고 있어 루스벨트와 롱이 협력관계이기는 했지만 엄연히 캘리포니아 휘하가 아니라 제3세력에 속했다. 당시 남부는 딕시를 중심으로 맥아더의 군사정부에 협력하는 인사들이 많았고 서부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정부는 남부 전선을 제대로 담당할 여력이 없었는데, 루이지애나를 중심으로 한 롱의 임시정부가 남부 지역의 친맥아더 딕시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연합국에서는 캘리포니아와 주로 협력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남부 전역을 담당하던 롱을 마냥 무시하지는 않았다. 참고로 진주만에 있던 미 해군은 캘리포니아가 더 가까운 것도 있지만 롱이 가진 특유의 포퓰리즘, 파시스트적인 면 때문에 경계가 더 강하게 드는 인물이라 롱이 아니라 캘리포니아를 선택했다.
- 조지 C. 마셜
1차대전 당시 파병된 장교 중 하나로 패튼에게 면박을 주거나 맥아더를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간기를 거쳐 점점 뒤틀림이 심해지는 맥아더를 보고 위험을 느껴 쫓아내야 한다고 상관에게 자주 건의했지만 맥아더가 정재계 연줄이 강한 데다 좀 나대기만 할 뿐인 인간이라 생각해 듣지 않아서 실패한다. 맥아더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당시에는 조지아주에 있었기 때문에 화를 피해서 캘리포니아로 도망쳐 캘리포니아 정부에 합류하였고,[167] 특진을 거듭하여 육군참모총장으로서 미 육군의 행정을 관리하였다.
- 휴 알로이시우스 드럼
제2차 파리 코뮌의 진압군 감시역으로 파견되어 진압 작전 회의에서 빨갱이들을 오래 놔두면 해악만 끼친다는 논리를 앞세워 파리 시민들의 희생 따윈 신경 쓰지 말고 빠르게 진압하자고 주장하여 프랑스 장교들의 반발을 산다. 맥아더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평소 맥아더와 사이가 나빴던지라 탈출해서 캘리포니아 공화국에 합류한다.[168] 하필 캘리포니아 공화국군에서 계급이 제일 높았던 탓에 본의 아니게 최전선 사령관으로 임명되지만, 본인도 본인의 무능을 잘 알고 있어 괜히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마셜이 붙여준 아이젠하워와 브래들리의 말을 들으며 전투를 지휘한다.
- 커티스 르메이
캘리포니아 공화국 육군 항공대 소속 소위로 첫 등장을 한다. 이후 빠른 진급으로 항공대 지휘관이 되었으며 한스 曰 폭격기 케르베로스 중 한 명으로 리히트호펜의 파리 폭격 소식을 듣고 베를린으로 달려와 나머지 케르베로스인 아서 해리스,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과 파리 폭격에 한 수 거들어 연합군의 폭격 작전을 담당하였다.
- 조지프 매카시
맥아더의 쿠데타 직후에 위스콘신에서 맥아더에 감화되어 찾아왔다 하였고, 이후 라 로크가 비밀리에 주최한 추축국 결성 회의 때 맥아더의 대리인으로 참석한다. 뉴욕이 저항군의 반란과 공군의 이탈로 인해 함락 직전에 처하게 되어 워싱턴 D.C.까지 위험해지게 되자, 맥아더에게 위스콘신으로 천도를 진언하고, 이후 밀워키가 함락 직전에 처하게 되자 맥아더의 군복을 대신 입고[169] 맥아더를 도망치게 하려 했고, 붙잡혀 호지스의 구타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맥아더의 행방에 대해 입을 닫았으나, 유일하게 끝까지 살아남은 맥아더의 최측근으로서 재판에 정식으로 회부시켜 사형을 시키기 위해 체포된다.
- 빌리 미첼
처음에는 정부에 대한 불만과 미 공군에 대한 열망 때문에 맥아더 신정부 쪽에 적극적으로 합류하지만 가면 갈수록 맥가놈을 넘어 쓰레기로 변해가는 맥아더의 모습을 보면서 파일럿들에게 카미카제 명령을 내리는 행동에 반발해 헨리 아놀드와 자신을 따르는 거의 모든 공군이 캘리포니아 공화국으로 전향하게 된다.[170] 이로 인해 맥아더 신정부의 공군은 장교 몇몇을 제외하면 싹 증발해버렸으며[171] 최후에 남아있던 딸랑이인 찰스 린드버그는 분노한 맥아더가 린드버그의 성씨에 버그가 있으니 독일의 스파이라는 트집을 잡으며 골프채로 복날 개 패듯 패서 죽인다. 항복 직후 연합국에게 자신만 처벌하고 부하들은 관대하게 처리해달라 부탁하면서 자리에 같이 있던 아이젠하워에게 자네가 알던 맥아더는 이젠 없다고 말하면서 체포된다.
5.20. 청나라
- 순친왕
의화단 운동 때 독일에 대표로 사죄하러 갔다가 한스의 요구로 끝내 삼궤구고두례를 하는 굴욕을 당한다. 다만 하지도 않을 수 없는 것이 이걸 안 했다간 함벽여츤이라는 삼궤구고두례를 넘어서는 치욕을 한스가 거론했고, 또 순친왕이 삼궤구고두례를 하지 않을 시 청의 백성을 학살할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각각 북만주와 한반도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고 청을 개혁시키겠다고 마음먹는다. 아들인 선통제가 즉위하자 섭정이 되어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현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여[172] 더욱 나락으로 가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나라가 분할되자, 깨달은 게 있는지 정사에서 손을 떼고 조용히 지내게 된다.
- 선통제
원 역사와 달리 유년기부터 청나라가 북조로서 존속하고 있던 상황인 데다 돤치루이로 인해 내부 상황이 나름 안정적인 편이라서 성장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일제가 중일전쟁 때 청나라로 쳐들어오자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일본에게 항복할 수 없다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 돤치루이
위안스카이가 부마의 지위를 약속받았음에도 청을 배신하는 모습에 대의에 옳지 않다고 충언을 함에도 권력을 탐하는 모습에 위안스카이가 있는 방향으로 절을 하고 충심을 묻어버림으로써 결별을 하고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청의 충신이 되어 열강들에게 이 사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청나라의 이권을 서로의 적성국에 주겠다는 식으로 벼랑 끝 전술을 시전하여 열강들을 기겁하게 만든다. 한스가 제시한 중재안인 분할에 동의하여 열강들이 중재하는 협상장에서 위안스카이에게 배신자라는 말을 듣자 내가 배신자임은 맞으나 적어도 당신에게만큼은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일침을 놓는다. 그도 그럴 게 위안스카이는 원 역사에서도 옥좌 하나 때문에 청도 중화민국도 배신한 배신자 중의 배신자이다.
- 옌시산
청나라 내에서 황제 다음가는 실권자가 된 돤치루이의 뒤를 이을 세 명의 후계자 후보 중 가장 유력하다고 언급되었고 끝내 돤치루이의 뒤를 이었다. 원 역사 같이 45구경을 매우 좋아한다고 전해진다.
- 장쭤린
돤치루이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인물이었으나, 돤치루이가 사망할 당시에 본인의 나이가 너무 많았고, 기반을 물려받은 아들 장쉐량이 무능하다는 평을 받았기 때문에 후계에서 탈락하게 된다.
5.21. 중화민국
5.22. 일본
- 히로히토
원 역사에서처럼 이봉창 의사의 의거에 휘말리고도 살아난 것으로 처음 언급되었다. 다만 원 역사와의 차이점은 미래를 알고 있던 주인공이 첫 번째 마차, 무조건 첫 번째 마차를 노리라고 정보를 건네줘서 폭탄 자체는 히로히토가 타고 있던 첫 번째 마차를 향해 날아갔지만 심각한 부상은 당하지 않아 의거 자체는 원 역사와 같은 결말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에는 원자폭탄 두 발을 맞고도 결정을 못해 한 발 더 얻어맞았고 거기에 연합군 군정사령관에 임명된 칼스 제독에게 그냥 거수기였을 뿐이니 천황 자리만은 보전하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이미 그가 서명한 731 부대 창설안이 발견[173]됨에 따라 결국 기각되고 찍 소리도 못한 채 퇴위를 강요받게 된다. 그나마 일본인들의 엄청난 반발을 예상한 한스에 의해 전범재판에 회부되는 것만은 피했지만, 퇴위 후 타인과 접촉할 수 없는 종신 가택연금을 당하게 된다.
- 이토 히로부미
원 역사처럼 안중근의 총에 맞아 죽는다. 차이점은 근접해서 권총에 맞아죽은 원 역사와 달리 원거리에서 저격당해 죽었으며 안중근은 이토를 저격한 뒤 유유히 빠져나갔다. 당시 서양에서는 공산주의자와 아나키스트에 의해 왕도 여럿 살해당하던 시절이라 화제가 되지도 않았다.
- 무타구치 렌야
본작에서도 관동군 시절 원 역사의 루거우차오 사건을 대신해서 청나라 침공을 위한 자작극을 꾸미는 일본 육군 최악의 트롤러 노릇을 츠지 마사노부, 이시와라 간지와 함께 찍는다. 그 와중에 포로를 죽이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포로를 재판 없이 죽이는 건 국제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기각하고 감옥에 가두는 정상적인(...) 모습을 보인 건 덤.불법 전투 개시도 총살감인데원 역사보다 임팔 작전을 거하게 말아먹은 뒤[174] 만주로 배치되었으나 어수선한 틈을 타 탈영하여 조선으로 도망쳤고, 해방의 기쁨에 취한 조선인들 틈에 끼어 같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술을 얻어먹는 등 일본 출신 조선인으로서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름도 무타구치 렌야가 아닌 모전구로 바꾼 것은 덤.
5.23. 대한제국 → 대한민국
- 고종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한스를 이용해서 중국 침공을 위한 독일의 지원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175] 한스는 그걸 무시하고는, 충고의 형식으로 면전에서 강하게 비난한다. 한스는 독백에서 그를 군밤이라고 부른다.
- 의친왕
헤이그에서 주인공과 첫 만남을 가지고 호감을 가진다. 원 역사에서는 적극적으로 귀국하려 했으나 여기서는 고국의 실태에 실망해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미국 내전이 발발하자 다시 재등장했고, 자신의 둘째 아들인 이우를 독일로 피난시킨다.[176] 이러면서 일본의 주인공에 대한 환상이 벗겨져 이전까지는 사이 공작이라고 주인공을 찬양하던 일본이 이 이후부터는 주적으로 삼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고국에 귀환해 기쁜 나머지 '파락호가 어떤 것인지 본때를 보여 준다'고 선포했다가 이우에게 만류당한다. 그리고 일부 왕당파에게 황제에 오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었으나, 단칼에 거절한다.
- 안창호
맥아더의 쿠데타 당시에 캘리포니아에서 의친왕을 보좌하며 의친왕에게 피신을 하는 게 어떠냐는 말을 했고, 거절당하자 차선책으로 후계자인 이우를 피신시키자는 진언을 한다.
- 민영환
주인공이 대한제국에 방문했을 시절 첫 만남을 가지며 주인공이 말한 암담한 현실을 들으며 낙담해버리지만 주인공의 "나라가 망하면 백성이 남는다."라는 말과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격려를 듣고 이후 탁지대신을 맡은 이용익과 공모해 대한제국의 내탕금을 한일의정서 체결 및 이용익 납치 전 빼돌릴 수 있었으며[177] 이후 대한 자유정부의 설립자 중 1인이자 수장이 되게 된다. 이후 고생하다가 대한의 땅에 같이 진공하는 라인하르트 형제와 같이 입국을 하며 꿈에 그리던 대한 독립 만세를 고국 땅에서 선포하게 된다.
- 이회영
30년대에 나이가 많아 일선에서 물러난 민영환의 뒤를 이어 다음 임시정부의 수장이 된다.
- 안중근
원 역사처럼 이토 히로부미를 쏴죽였으나 여기서는 예거 출신 퇴역병의 가르침으로 저격수가 되어 멀리서 저격하고 조용히 빠져나와 체포되지 않았다. 이후 자유정부가 임시정부로 점차 자리잡아가는 것을 도우며 지내다 수장인 민영환 및 수뇌부와 같이 고국에 귀국하게 된다.
- 이우
독일로 피난 가고 그곳에서 한스의 장녀 프리데리케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하지만 이후 그는 베를린을 떠나고 그 사이 프리데리케가 오헝의 오토 폰 합스부르크와 이어지게 되자 실의에 빠지게 된다. 이후 시간이 흘러 조선총독부가 항복하고 한반도가 해방된 시점에서 실연의 상처를 그럭저럭 극복했다고 짧게 언급되었다.
- 손기정
1940년으로 연기된 베를린 올림픽에 대한민국 선수로 참가해서 마라톤에서 우승해 한스한테 직접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5.24. 모로코
- 아브드 엘 크림
스페인령 모로코에 맞서 리프 공화국을 창시한 아랍인 지도자.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마오쩌둥, 호찌민, 체 게바라조차 참고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20세기 초반을 풍미한 게릴라전 전술가였다. 본작에서는 역사 개변의 나비 효과로 1차대전 때 프랑스령 모로코가 영국에게 들어갔는데, 영국은 전간기 엘 크림을 지원해서 스페인령 모로코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 2차대전 때 주인공이 엘 크림과 리프 공화국을 지원해주면서 전력이 강화되고, 알제리에서 자유 프랑스를 결성해 파시 프랑스와 맞서게 된 드골 일행, 연합국의 편을 든 리비아, 이집트, 오스만 제국 등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령 모로코에서 스페인을 몰아내고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하고, 영국도 2차대전 때 왕세자의 난을 비롯한 이런저런 일로 완전히 진이 빠졌고 반란 진압과 2차대전 승전으로 권위가 높아진 조지 6세가 식민지 독립에 찬성하면서 영국령 모로코도 해방되었기 때문에 해피 엔딩을 맞았을 듯하다.
6. 개변된 역사
- 드레퓌스 사건
빌헬름 황태자와 축구경기를 보던 도중 우연히 만난 프랑스 기자와 즉석 인터뷰를 하게 되고 거기서 드레퓌스는 무죄라고 말하면서 프랑스를 대혼란에 빠뜨린다. 이로 인해 드레퓌스는 재심[179]을 받게 되나 가톨릭을 위시한 보수파의 프랑스는 극심한 정치적 대립이 극심해졌다. 어찌 보면 프랑스 몰락의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 순친왕의 삼궤구고두례
순친왕이 의화단 운동의 사죄를 위해 찾아오자 빌헬름 2세는 어떻게 해야 잘 사죄를 받았다고 할지 한스에게 조언을 구하고, 한스는 삼궤구고두례를 설명하고 카이저는 그렇게 사죄받겠다고 다짐한다. 순친왕과 순친왕의 보좌고문인 양성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한스는 그러면 함벽여츤이라도 하라고 말하며 평행선을 달리다가 끝난다. 이후 양성이 한스에게 몰래 찾아와 로비를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양성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는 말에 한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이 미소를 두고 자신이 삼궤구고두례를 하지 않으면 청의 백성들을 학살하겠다는 뜻이라고 착각한 순친왕은 끝내 삼궤구고두례를 하게 되나,[180] 삼궤구고두례에는 구령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양성이 자신도 같이 하겠다고 하지만 카이저는 그것을 한스에게 맡기며 더더욱 굴욕을 받는다.[181] 한스가 구령을 넣자 순친왕은 울분에 차서 머리에 피가 날 정도로 이마를 찧고 주변 사람들을 식겁하게 만드는 등 여차저차하여 끝난다.[182] 그러나 이 소식이 청에 전해지고 이홍장은 피를 토하고 울분에 찬 목소리로 인재를 키우고도 나라를 망쳐서 한스럽다고 말하며 원 역사보다 두 달 빨리 죽고, 청의 백성들은 독일 공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한스가 남작이 된 사실을 알고 열 받은 발더제가 '폭도'들을 '무력'으로 '격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183] 반면 대한제국에서는 꼬마 남작이 삼전도의 복수를 해냈다며 환호한다.
- 니콜라 테슬라 영입
한스가 테슬라를 영입하기 위해 독일 공작원을 KKK으로 위장시켜 워든클리프타워를 날려버린다. 그러나 모건은 이번 일이 KKK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는데, KKK가 당시에는 우리가 알던 하얀 복장을 입고 다니지 않았고, 그 핑커튼조차도 아무것도 못 찾을 정도로 뒷처리가 너무 깔끔했기 때문. 비서는 KKK로 위장한 공산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로 추측했지만 모건은 그랬다면 차라리 모건 빌딩에 폭탄을 던졌을 거라며 조소한다. 마지막으로 테슬라가 독일 제국으로 떠났다고 하자 테슬라가 독일어권 출신이지만 정확히는 오헝제국 출신임을 의심하고 테슬라를 지켜보기로 한다.
- 러시아와의 밀약
빌헬름 2세는 영일동맹 발표에 격분하고 한스에게 일본을 엿먹일 방안을 일임한다. 한스는 뷜로와 리히트호펜에게 러시아를 지원하자고 제안하고 한스와 빌헬름 2세의 동생 하인리히 왕자와 함께 러시아로 간다. 한스는 러시아가 뤼순과 한반도에서 물러나는 대신 북만주와 경우에 따라서 몽골을 약속하고 군수물자도 지원을 약속한다.
-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의 취역과 베네수엘라 위기
영국은 보어전쟁을 마치고 독일의 신형 전함에 대해 보고를 받는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는 한스의 행보와 극동의 독일제 무기 발견, 신형 전함의 임시 명칭인 푸어히틀로스(Furchtlos)가 자국의 드레드노트인 점 등 이런저런 찜찜함에 독일에 해군 무관을 파견한다. 빌헬름 2세는 취역식에서 전함의 이름을 'SMS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로 임명하고 그렇게 건함 경쟁의 서막을 알린다. 영국 무관은 드레드노트를 저평가하고 그것을 총리인 아서 밸푸어에게 보고한다. 하지만 드레드노트를 탄생시킨 장본인인 존 피셔 제독만큼은 유일하게 드레드노트의 잠재력과 가치를 알아봤고 해군성에서 영국도 드레드노트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계급장을 걸겠다고 다짐하던 순간 베네수엘라 정부가 영국 선박을 나포하는 사태가 보고되고 피셔 제독의 제안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베네수엘라에서는 주베네수엘라 영국 대사가 베네수엘라 대통령 카스트로에게 항의하지만 카스트로는 미국의 뒷배를 믿고 무시한다. 이에 영국은 독일과 이탈리아를 끌여들여 해양 봉쇄를 제안하지만 카이저는 망설인다. 뷜로는 한스에게 베네수엘라에 무력 제재를 하기 위해 카이저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하고 한스는 카이저를 설득해서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해상 봉쇄를 결심한다. 한편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이 소식을 듣고 베네수엘라에 군함을 지원한다. 빌헬름 2세 일가와 한스는 에드워드 7세의 초대를 받아 영국에 방문하고 에드워드 7세는 한스와 카이저에게 미국이 순양함을 지원한 것을 알려주고[184] 한스는 이것이 독일의 신형 전함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를 의식한 행동이고 미국의 경고임을 알아챈다. 카이저는 자신과 독일 제국을 우습게 보는 미국에 분노해 그렇게도 두려워하면 보내주겠다며 SMS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를 파견하기로 결심한다.[185]
해협 봉쇄 당일 유럽 함대는 베네수엘라 함대와 대치하다가 미국 함대의 등장으로 잠시 기세가 꺾이는가 싶던 차 베네수엘라 함대의 도발에 독일 전함이 위협사격을 가하는데, 신형 전함의 승무원의 미숙함이라는 우연과 베네수엘라 함대 쪽으로 강한 바람이 부는 우연이 겹쳐 베네수엘라 기함인 구 USS 필라델피아가 한 방에 격침된다. 이로 인해 모든 함대가 경악에 빠지게 되고 유럽 함대의 최고 지휘관이자 영국 해군 제독인 몽고메리 제독은 피셔 제독이 옳았음과 자신과 영국 해군이 망했음을 깨닫게 된다. 베네수엘라 기함을 날려버린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는 혼란에 빠지다가 이렇게 된 이상 선제공격을 가해야한다면서 독자 공세에 나서고 곧 이탈리아 함대도 독일 함대와 함께 공세에 나선다. 영국 함대는 독일 전함이 벌인 무책임한 행동에 분노하나 곧 의도를 깨닫고 자신들도 공세에 나선다. 미국 함대는 유럽 함대를 막으려다가 프리드리히 데어 그로세의 견제사격으로 돕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다. 베네수엘라 함대를 궤멸시킨 유럽 함대는 이제 미국 함대와 대치하고 미국 함대의 지휘관인 조지 듀이는 바로 발을 빼고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버린다. 이후 세간에선 이를 프리드리히 쇼크라고 부른다.
- 한스의 영미와의 비밀회담
베네수엘라 대통령 카스트로는 미국 대사에게 항의하나 미국은 영독과의 전면전을 우려해 협상을 제안하나, 카스트로 대통령은 이에 분노해 자국 내의 독일인과 이탈리아인, 그리고 영국인들을 체포하라고 명하자 미국 대사도 베네수엘라의 행태에 질려 베네수엘라를 완전히 버리고 만다. 한편 프리드리히 쇼크로 인해 영국은 프리드리히급의 등장으로 자국의 해양 패권이 크게 흔들리고, 밸푸어는 제1 해군경인 커 제독과 독일에 파견된 무관을 해임[186]하고 피셔 제독을 제1 해군경으로 임명한다. 사태수습을 위해 밸푸어는 국왕 에드워드 7세에게 카이저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하고 에드워드 7세는 카이저에게 이만 베네수엘라 문제를 빨리 해결하자고 제안하지만 한스에게 언질을 받은 빌헬름 2세는 거절한다.[187] 한스는 에드워드 7세에게 따로 자리를 만들어서 대화를 하자며 제안하고 에드워드 7세는 그날 밤 한스를 부른다. 한스는 에드우드 7세와 총리 아서 밸푸어, 랜즈다운 후작, 식민장관 조셉 체임벌린, 제1 해군경 존 피셔 제독에게 영독협상을 유도하기 위해 독일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한 사실을 밝히고, 에드워드 7세는 또 네가 그랬냐는 말에 자신이 아닌 니콜라이 2세가, 정확히는 세르게이 비테의 요청이었다고 발뺌한다. 그리고 각자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게 하고 러시아에 그랬듯 영국에게도 이중계약을 하고, 양국의 중재를 위해 미국을 선택하고 베네수엘라 위기와 러일전쟁의 문제를 위해 한스는 미국으로 향한다. 백악관에 온 한스는 루스벨트에게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접하고베네수엘라의 유전을 같이 먹자고 제안하고 러일전쟁의 중재국을 맡아달라고 요청하고, 루스벨트는 수락한다. 이후 워싱턴 의정서가 체결되어 베네수엘라 위기가 마무리된다.
- 헤레로 반란
빌헬름 2세는 아프리카의 반란을 보고받고 로타르 폰 트로타를 보내려 하지만 뷜로가 기겁하여 반대하고 한스에게 어떻게 하면 좋냐고 묻는다. 이에 한스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의 콩고 착취에 대해 말하자 빌헬름 2세는 신중하게 대처하기로 결심하다가 발더제의 난입으로 한스를 파견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남서아프리카로 간 한스는 헤레로족에게 항복을 권유하지만 헤레로족 족장 마하레로는 거부하고 결국 무력진압을 하게 되고 원 역사와는 달리 단번에 성공적으로 진압한다. 이 과정에서 레토포어베크와 안면을 트고 루덴도르프도 회유하는데 성공한다.
- 러일전쟁
러시아 해군은 한스가 쓴 《불멸의 리 제독》 소설을 본 마카로프 제독이 일본 해군과의 정면 싸움을 절대적으로 피하기로 결심해서 원 역사와는 달리 출격과 회항의 반복과 기뢰를 뿌려 피해를 주는 등 선전한다. 러시아 육군은 독일 관전무관에게 배운 참호전 교리와 기관단총과 샷건, 기관총으로 일본군을 갈아버려 큰 활약을 하게 된다. 일본 육군은 러시아군의 참호전에 크게 데여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내다가 간신히 러시아군을 한 번 몰아내고 러시아가 반격을 하자 빼앗은 참호로 역으로 되갚아 주고 그렇게 전선은 교착 상태가 되고 만다. 이제 협상만 남았는데...
- 제1차 모로코 위기와 포템킨 반란
니콜라이 2세가 베조브라조프의 말에 넘어가 극동에 함대를 파견하게 된다. 그러나 원 역사와는 달리 주인공의 개입으로 발트 함대가 아니라 흑해 함대를 보내게 되고, 영국은 이를 막기 위해 모로코에 지중해 함대를 주둔시키고 여기에 독일 함대까지 불러서 프랑스와의 관계를 크게 악화시키고 만다. 그렇게 모로코 앞바다에는 영독의 함대와 러불의 함대가 대치하게 되고, 4국은 스페인에서 협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러시아의, 정확히는 눈치는 밥말아먹은 베조브라조프가 터무니 없는 요구를 계속 하는 바람에 협상이 수개월째 질질 끌리다가, 러시아 함대의 포템킨에서 함선 반란이 일어나고 러시아 함대가 이를 진압하겠다고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의 지시도 없이 독단적으로 함포를 발사한다. 이 모습을 본 프랑스 함대는 러시아 함대가 공격받고 있다고 착각하고 영독 함대에 포격을 가하고, 영독 함대도 즉시 반격하면서 교전이 일어나자 이 황당한 사태를 멈추기 위해 러시아 함대는 결국 백기를 올려 교전을 멈춘다. 그리고 진실이 밝혀지자 4개국의 함대와 외교관들은 모두 뒤집어진다.[188] 결국 대형 사고를 친 것도 모자라 함선 반란까지 터진 러시아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면서 다른 3개국도 물러나며 알헤시라스 회담은 어이없이 끝난다. 한편 포템킨 반란은 원 역사처럼 보급을 받지 못하고 내분이 터지며 진압되었다. 그리고 이 추태에 니콜라이 2세는 비테를 재무장관에서 해임하고 베조브라조프는 겨울궁전에서 내쫓으면서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고,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은 자비를 베풀어 사임을 허락한다. 이후 흑해 함대가 아닌 발트 함대를 보내려 하지만 군부, 정계, 귀족들이 이번만큼은 임시동맹을 맺어 결사반대를 했다. 이번 사건으로 해군의 분위기가 흉흉해지고 러시아의 신민들도 지쳐가는데...
- 피의 화요일 사건과 포츠머스 조약
원 역사와는 달리 일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일어났다. 결국 피의 진압이 일어나며, 차르는 내친 비테를 다시 불러들여 종전 협상을 맺는다. 러시아는 뤼순과 한반도에서 물러나고 사할린 남부를 일본에게 할양한다.
- 영독협상 체결
모로코 위기로 인해 영국은 러시아, 프랑스와 단단히 척을 지게 되면서 영러협상, 영불협상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영국이 유일하게 손을 잡을 만한 상대는 독일밖에 남지 않았고, 독일 입장에서도 영국과의 동맹이 필요했던지라 서로의 뜻이 맞아들어갔고, 독일이 이집트와 페르시아에서의 영국의 권리를 인정하고, 영국도 독일의 3B 정책을 인정하며 영독협상이 체결된다.
- 신해혁명
위안스카이의 행보를 보다 못한 돤치루이가 그를 저버리고 청에 붙으며 청은 멸망에서 벗어나지만 그 대가로 북청과 남중(중화민국)으로 나뉘게 되어서 반쪽짜리 혁명이 되었다.
-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그리고 발칸 전쟁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오스만을 침공하나 이탈리아군의 부실함으로 오스만은 가볍게 막아내나 곧이어 발칸 전쟁이 발발해 눈물을 삼키며 리비아에서 후퇴해 이탈리아의 판전승으로 끝난다. 발칸 전쟁에서는 영독협상으로 그리스가 내부상황을 꼼꼼히 알려주고 한스는 그리스에게 과욕만 부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오스만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강화를 하려던 차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엔베르를 비롯한 청년 튀르크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전쟁을 이어가나 그래도 패배한다. 이어 전후 전리품 분배를 두고 발칸 연합은 조금씩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 세르비아를 시작으로 불가리아에 선전포고하고 사태를 지켜보던 루마니아와 이번에 모든 것을 건 오스만도 불가리아를 사방에서 공격하고 불가리아는 항복한다. 그리스는 한스의 조언을 받아 욕심부리지 않는 선에서 전리품을 챙겨가나 세르비아는 그 외의 불가리아 영토를 가져가 불가리아의 분노를 사 친 슬라브에서 친독친영인 협상국 편에 서게 된다.[189]
- 사라예보 사건
한스와 루이제의 결혼을 보고 더욱더 활동적으로 움직인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못마땅하게 여긴 프란츠 요제프 1세가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신 사라예보에 군사훈련 참관을 하러 갔다가 폭탄에 이어 정수리에 총을 맞아 즉사한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프란츠 요제프의 죽음을 원망하고 전쟁에서 승전하든 패전하든 제국이 남아나지 않을 것에 한탄하면서도 공식적인 황태자는 아니지만 계승서열 1위로서 황제의 죽음을 무시할 수 없어 독일의 지지를 얻고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한다.
- 제1차 세계 대전 개전 유럽 지도
사라예보 사건을 계기로 원 역사보다 1년 일찍 터진다.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스, 불가리아, 일본, 청, 중화민국, 루마니아, 미국의 협상국 VS 프랑스, 러시아, 세르비아, 이탈리아, 오스만의 동맹국의 구도로 진행되었다.
-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러시아가 혁명으로 무너지고 마지막으로 남은 프랑스마저 북쪽은 영국의 함대가, 서쪽은 미국의 함대가, 동쪽은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독일의 육군이 몰아치는 사면초가라 완전히 포위되어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내각불신임 투표로 클레망소를 쫓아내고 다시 총리가 된 두메르그가 항복을 결정하였다. 그 뒤 1914년 11월 11일, 노트르담 드 랭스 주교좌 성당에서 프랑스 대표단이 항복 문서에 서명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었다. 이 덕분에 독일이 승전국이 되면서 제정이 공고해져 나치즘이 발호할 가능성이 차단된다.
- 베를린 강화 회의와 샤프 밀사 사건 폭로
베를린에서 전후 처리를 놓고 승전국들끼리 모여 회의를 하는데, 독일은 프랑스 식민지의 대부분을 영국에게 넘기는 대신[190] 러시아 제국이 독립시키기로 약속한 지역들을 독일의 위성국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받는다. 그로 인해 핀란드, 발트(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폴란드-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조지아가 독립하여 빌헬름 2세의 아들 넷이 각각 해당 지역의 왕이 되었다.[191] 그 외에 오스만 제국도 아르메니아 대학살 등을 비롯해서 이래저래 골칫거리였던 아르메니아를 독립시키고 오스만 제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을 이주시키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프랑스가 그리도 집착하는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에서 문제가 생긴다. 영국은 지브롤터 해협 문제 때문에 특히 모로코를 탐내고 있었는데, 윌슨이 샤프 밀사 때문에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는 프랑스에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때 윌슨의 태도가 석연찮았던 한스 폰 초이는 프랑스 대통령에게 블러핑을 걸어 샤프 밀사의 진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윌슨이 사전에 말도 안 하고 독단적으로 샤프 밀사 사건을 벌인 걸 알게 된 한스 폰 초이는 이대로 윌슨을 내버려두었다가는 큰일 날 거라 판단해 대통령에게 샤프 밀사 사건을 폭로하면 알제리는 프랑스에게 남겨주겠다고 약속하고, 강화 회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던 프랑스는 강화 회의 중에 1,000억 프랑을 배상금으로 요구하자는 주장에 윌슨이 동의했다는 말까지 듣자 경악해서 이를 받아들이고 샤프 밀사 사건을 폭로하였다. 한스도 영국도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등질 생각은 아니라서 윌슨이 미국 국민들과 군인들을 속였고 윌슨 혼자 잘못한 거라고 몰아붙인 덕분에 미국 여론이 뒤집어져 윌슨의 탄핵을 촉구하였고[192] 결국 윌슨은 스트레스를 받아 쓰러져서 강화 회의는 브라이언 외무장관이 대신하게 되지만, 윌슨 사건 때문에 별다른 발언은 하지 않았다.[193]
- 제2차 파리 코뮌
안 그래도 1차대전 패전으로 상황도 나쁜데 샤프 밀사 사건 폭로로 프랑스 내부 여론이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프랑스 공산당이 제2차 파리 코뮌을 선언하며 파리를 점령하였다. 다행히 정부는 베르사유로 제때 피난 가서 무사했지만 아직 강화 회의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자 일단 파리 코뮌부터 없애는 것에 모두 동의하고, 파리 코뮌 진압 때까지 20만의 프랑스군 재무장을 허락하여 3일 만에 2차 파리 코뮌을 진압하였다.
- 상수시 조약 체결 유럽 지도
상수시 조약은 전체적으로 한스 폰 초이가 주도하였는데, 상수시 조약은 원 역사의 베르사유 조약이 조금 순해진 수준으로 이 조약이 최종적으로 2차대전의 포문을 열게 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시대적 특성상 어쩔 수 없다며 밀어붙였다. 그 외에 윌슨이 가져온 14개조 평화 원칙은 국제연맹 창설을 제외하면 다 잘랐지만 민족자결주의를 제외한 상당 부분은 한스에 의해 구현되기는 했다.[194]1. 프랑스는 협상국에 끼친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450억 프랑을 배상한다.[195]2. 프랑스는 알자스 전역과 로렌의 절반을 독일에 할양한다.[196]3. 프랑스는 릴 일대와 아르덴 일부를 벨기에에 할양한다.4. 프랑스는 모든 식민지를 포기한다. 다만 알제리는 프랑스가 본토로 취급하는 점 등(물론 적당히 갖다 붙인 이유였다)을 들어 프랑스에 보전해 준다.[197]5. 프랑스 육군을 20만 명(코뮌 당시 재무장을 허가해 준 병력이다)으로 제한한다. 또한 프랑스는 국경지대의 모든 요새와 방어선을 철거한다.6. 프랑스 육군이 보유하고 있는 중포와 전차를 협상국에 양도하고 화학 무기, 전차, 항공기, 중기관총의 생산 및 보유를 제한 및 금지한다.7. 프랑스 해군은 보유하고 있는 군함을 배상함으로 협상국에 양도한다. 또한 새로운 군함 건조 또한 제한한다.8. 프랑스는 러시아, 이탈리아 등 구 동맹국 국가들과 그 어떤 동맹 관계도 맺을 수 없다.
빌헬름 2세의 차남 아이테는 올덴부르크의 조피 샤를로테 여공작이 불륜을 저질러서 이혼한 상황이라 조지아에 가서 바그라티온 왕조의 여성과 재혼하여 조지아의 왕이 되었고,[198] 3남인 아달베르트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으로, 5남 오스카는 발트 왕국으로, 6남인 요아힘은 니콜라이 2세의 장녀인 올가와 혼인한 뒤 우크라이나의 왕이 되었다.[199] 4남인 아우구스트 빌헬름은 동성애 논란으로 알렉산드라 빅토리아와 이혼 논의가 있지만 알렉산드라 빅토리아의 아버지가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수장인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라서 못하고 있던 데다 아르메니아밖에 갈 데가 없어서 그냥 포기했다. 핀란드의 경우 원 역사처럼 헤센카셀 방백 프리드리히 카를이 핀란드 왕이 되었다.[200] 또 아제르바이잔도 독립했다고 하는데, 이때 독립하지 못했다가 소련의 폭정으로 인해 대기근까지 겪은 중앙아시아 일대는 투르키스탄(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분리주의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도 신성로마제국에 속했던 적이 있던 베네토와 베네치아를 본토로 편입하였고 한스 폰 초이와의 논의 끝에 리비아를 식민지로 삼는다.[201] 롬바르디아도 논의가 있었지만 이탈리아로 남겨두어 2차대전 이후에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들어가는데, 그로 인해 이탈리아계의 비중이 커져 헝가리의 반발을 무릅쓰고 중유럽 합중국으로 완전히 개편시키게 된다.[202]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외치기 전에 나가리당했고 민족자결주의의 위험성을 알고 있던 한스 폰 초이의 의사 때문에 민족자결주의는 배제되었고 나름 역사와 전통을 고려해서 나라를 설정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전간기 때 민족자결주의 논란으로 동유럽이 터지는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한편 한스는 식민지가 적자가 심하다는 걸 알아도 아쉬워하는 독일인들을 달래고 독일 제국의 전신이 되는 북독일 연방 시절의 향수를 자극할 겸 독일 제국을 중심으로 한 관세 동맹을 창설하였고[203]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발트, 캅카스 3국, 핀란드, 오스만 제국은 물론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 몬테네그로,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관세 동맹에 들어가게 되었다. 영국은 열받긴 하지만 대전쟁 때 독일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은 데다 식민지 대부분을 양도받는 대가였기 때문에 참고 받아들였다. 이는 관세 동맹에 속하게 된 국가들이 독일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갔다는 뜻이기 때문에 독일인들의 큰 지지를 받았고, '카이저라이히'의 시대라 불리게 된다.[204]
- 제2차 모로코 위기
- 아라비아 위기
- 대공황
원 역사와 달리 1927년 1월로 훨씬 앞당겨져서 이루어졌다. 한스는 아라비아 위기와 런던 대폭락 등으로 인해 대공황이 훨씬 빨리 이루어질 것을 예측하고 미리 사전 대처를 했고, 뉴욕 대폭락이 이루어지자마자 관세 동맹을 이용하여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에 성공하였다. 한편 원 역사에서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겪었던 우크라이나는 본작에서는 식량의 과잉생산으로 오히려 처분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한스는 새삼 공산당의 무능한 농업 정책에 혀를 찼다.[205]
- 라 로크의 집권
- 맥아더 회군 및 미국 내전 개전
본작에서 파시스트가 된 맥아더가 1931년 보너스 군대를 이용해서 일으킨 군사반란. 이때 묘사가 영락없는 서울의 봄 영화다. 맥아더와 군사반란 세력은 대통령과 부통령을 붙잡고 국회의사당을 점거하였으며 연방군을 반란군에 끌어들여 미국 전역의 장악을 시도하였지만, 미국은 대한민국과 달리 영토가 매우 큰 데다 총기의 나라이기도 해서 미국인들이 수정헌법 2조 무장저항권을 발동, 대규모 민병대가 창설되어 내전이 터지게 된다. 뉴욕을 비롯한 동부 지역은 일찌감치 군사정부가 점거하였고,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딕시와 반유대주의자였던 재벌 등을 비롯한 세력들이 군사정권에 협조하였지만, 연방군과 달리 주방위군은 거의 포섭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사정권에 반발한 군부 인사들은 루이지애나의 휴이 롱 정권이나 캘리포니아 일대로 도망쳐서 군사정부에 맞서게 되고, 민주주의를 성향의 주지사와 시장들은 경찰, 주민들, 주방위군, 마피아 잔당(...)들을[206] 끌어모아 전국 각지에서 저항군을 결성하여 투쟁하게 된다.
다리를 못 쓰던 뉴욕 주지사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반란군에게 붙잡히지만 미 해군이 연합국에게 요청하여[207] 스코르체니를 중심으로 한 팔시름예거와 잭 처칠을 중심으로 한 코만도를 투입해서어벤저스[208]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캐나다를 통해 캘리포니아로 데려와 저항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별들의 기수 대부분은 아이젠하워를 중심으로 탈영해 캘리포니아에 합류하게 된다. 남부는 대부분 군사정부 편을 든 딕시의 영향권이었지만 휴이 롱으로 인해 루이지애나를 비롯한 일부 지역이 캘리포니아와 별개로 저항하고 있었다.[209] 한스는 미국에 파시즘 쿠데타가 터졌다는 말을 듣고 대체 지구작가가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절규한다.[210]
- 중일전쟁
뇌절을 거듭하던 일본 육군이 정부의 허락도 없이 청나라와 중화민국을 동시에 공격하는(!) 병크를 터뜨려서 중일전쟁의 포문이 열리게 된다. 이 때문에 청나라와 중화민국은 중원 통일을 위해 몇 년간 독일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씹고 계속 전쟁을 하던 걸 즉시 중단시키고 항일을 외치며 일본군과 싸우게 된다. 이때 중국공산당은 원 역사의 마오쩌둥처럼 세력확대만 할 것인지 아니면 항일에 동참할 것인지 논의했는데, 트로츠키는 스탈린이 파시스트와 손잡은 걸 알고 공산주의의 이상을 더럽히는 스탈린과 차별화하기 위하여 반 파시스트를 명분으로 삼아 항일에 동참하게 된다. 이때 일본군의 만행에 함께 맞서는 과정에서 청나라의 만주국과 한족 사이가 완화되는 효과(?)가 있기도 했다.
- 사악한 동맹 결성
-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1936년 1월 20일,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등 독일의 위성국들에게 불법 점유 중인 영토를 반환하라는 명목으로 독일 제국에 선전포고한 것을 시작으로 개전했다.[211] 그러나 일찍부터 2차대전을 알고 있던 한스의 사전 대비로 인해 소련이 핀란드, 폴란드-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조지아에 파견한 각 집단군은 이들의 선에서 막히고[212] 우크라이나에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가 원군을 파병했으며 1차대전 때 끝내 중립을 지켰던 북유럽 국가들도 관세동맹을 이용해 참전시키고자 했다.
- 프랑스의 상수시 조약 파기 선언과 영국 내전
소련의 선전포고에 맞춰 라 로크는 상수시 조약을 파기를 선언하고 독일은 사전에 계획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하려 하나 에드워드 왕세자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프랑스와 영국 둘 중 무엇을 우선시하느냐는 고민 끝에 결국 프랑스는 나중에 처리하고 영국을 먼저 돕기로 결정하고 독일의 개입으로 영국 내전은 4주 만에 종결된다. 에드워드의 반란은 유럽 각국의 왕실에 큰 파장을 일으켜 중립을 지키려던 북유럽 국가들과 네덜란드가 연합국에 들어가 참전하는 원인이 될 정도였다.
- 가믈랭의 후예 자유 프랑스 설립
샤를 드골이 파시즘 프랑스를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프랑스가 망할 거라 판단해 한스 폰 초이와 몰래 접선하고, 상부를 속여서 알제리로 발령 나간 뒤 알제리로 온 20만 명의 이탈리아 해군을 궤멸시켜 버리고 프랑스 혁명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함을 주장하며 알제리를 중심으로 자유 프랑스를 선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모로코의 리프 공화국 세력과 손잡고 스페인, 파시 프랑스가 북아프리카로 오는 것을 막게 되면서 북아프리카 전역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 파리 대화재와 프랑스 항복
- 이탈리아 항복
- 소련 항복
- 대한 독립
- 뉘른베르크 재판
유럽 전선 마무리 후 열렸으며 전범으로 체포된 라 로크, 무솔리니, 스탈린, 에드워드 등은한스의 배려로 아메리카노와 민초, 하와이안 피자를 먹으며 고통스러워 하다우선적으로 재판하라는 연합국 국민들의 열화와 성토에 재판을 열게 되고 최종적으로 사형이 선고되었고 형은 교수형에 처해져 목이 매달렸다. 이후 이들의 밑에서 일했던 모슬리, 라발, 몰로토프 등의 고위급 전범들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 원자폭탄 투하 및 일본 항복
원 역사에서는 두 방을 맞고 항복하였지만 여기서는 3방을 얻어맞고 항복하였다. 폭탄의 이름은 투하된 순서대로 뚱뚱한 마이어, 미스터 갈리폴리, 영리한 한스이다.
- 미국 내전 종결 및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1937년 8월 12일, 신정부의 붕괴와 맥아더의 죽음으로 미국 내전이 종결되면서 570일 만에 종전된다. 미국은 전간기부터 6년에 걸친 내전으로 전국이 초토화되었고 수도인 D.C.는 맥아더가 동탁마냥 완전히 파괴하면서 아무것도 안 남았으며 뉴욕과 같은 동부의 주요 경제권들도 오랜 내전으로 인해 심하게 망가져서 미국은 원 역사와 달리 오히려 유럽의 원조를 받아야 할 처지로 내몰리고 만다. 작중 언급을 보면 추축국 못지않게 미국 전역이 초토화된 모양. 원 역사와 달리 해군을 제외하면 육군과 공군이 미국 내에서만 싸우다 보니 미군이 천조국 군대로 각성하지 못해[213] 2020년대까지도 초강대국의 힘은 없다고 명시된다. 그래도 미국의 타고난 저력이 워낙 강대한 만큼 몇십 년 안 가 복구시키기는 했을 것이다.
- 전후처리
독일은 원 역사의 미국 포지션을 차지한 초강대국으로 거듭난다. 유엔이 결성되어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 합중국, 영국, 미국, 오스만 제국이 상임이사국이 되었고[214], 식민지들은 줄줄이 독립하게 되었으며, 독일은 카이텔 플랜을 통해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가들의 복구를 지원하고 유럽연합을 창설했으며,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하고 유럽우주국 설립 후 인공위성 슈테른 1호의 발사를 준비한다.
- 현대
독일 제국은 150주년을 맞이한 현대 시점에도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7.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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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9.65 / 10.0 | 조회 수 144만 2025-02-28 기준 |
보통 1차대전을 다루는 작품에서 악역이나 이용당하는 역할 등으로 등장하는 빌헬름 2세와 독일 제국이 주역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독특하게 여겨져 인기를 끌었다. 다만 초반부에 고작 10살밖에 안 된 주인공의 말을 듣고 드레드노트급을 건조하고 외교 정책에 관한 조언을 듣는 게 말이 되냐는 등 일부 전개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았다. 다만, 연재가 종료된 이후의 시점에서는 오히려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
8. 기타
- 많은 작품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빌헬름 2세와 독일 제국이 한 번쯤은 주역으로 나오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맥아더 회군이나 가믈랭 반란 등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만들어졌다.
- 작가가 후기에서 밝힌 초기 구상은 지금과 달랐다고 한다. 원래 프랑스판 히틀러는 라 로크가 아닌 페탱이었으며, 오헝제국은 원 역사대로 사라예보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죽고 나서 1차대전 종전 후 한스의 선동으로 독일계 주민들이 분열을 일으켜 제국이 붕괴하고 안슐루스가 일어나는 전개였다고. 그 밖에도 맥주홀 폭동에서 히틀러가 한스와 루덴도르프를 납치하거나, 드레퓌스가 1차대전 종전 후 캐나다로 이민 가서 미국과의 전쟁에 참전하는 등의 전개도 구상했지만 삭제했다고 한다. #
- 일반적으로 매체에서 수 년 단위로 묘사되곤 하는 1차대전과 2차대전의 진행시간이 고작 1~2년밖에 안 되고 전선 상황 변동이 굉장히 빠르게 이루어진다. 1차대전은 1913년에 시작되었지만 전후 처리까지 포함해서 1915년까지 갔지 실질적으로는 1914년에 끝난 것과 다름없었고, 2차대전도 전간기에 일어난 전초전들을 빼고 에드워드 왕세자의 쿠데타에서 시작되어 미국 내전 종료까지 걸린 시간은 1936~1937년으로 1년밖에 안 된다. 모로코 전쟁, 미국 내전, 중원대전, 중일전쟁처럼 따로 놀다가 2차대전에 포함된 전역까지 포함하면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는 한다. 1차대전이 몇 년 앞당겨진 여파인지 전간기의 상황도 수년 단위로 앞당겨져서 1929년이 아니라 1927년 1월에 대공황이 시작되었고, 1931년 보너스 군대 대신에 미국 내전이 터지면서 그 나비 효과로 2차대전이 매우 크게 앞당겨진 탓에 2차대전이 1940년대에 진입하지 않고 1930년대 초반~중반에 일어났다. 일반적으로 매체에서 2차대전이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반에 일어나는 걸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음을 고려하면 특이한 부분이다.
[1] 원 역사에서 빌헬름 2세는 황화론을 진심으로 믿을 만큼 아시아에 대해 엄청난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중에서 특히 일본을 싫어했던 탓에 일본에게 잡아먹힌 대한제국의 처지를 동정해준 전적이 있다. 그렇기에 주인공을 처음 만났을 땐 경계하였지만 대한제국 출신이라는 걸 알고 중용한 것이다.[2] 2호 전차와 4호 전차는 각각 아이젠한스Ⅰ/Ⅱ, 화염방사전차는 플레멘한스, 네벨베르퍼는 한스의 오르간 또는 울부짖는 한스,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 3번함은 한스 폰 초이, 3번째 원자폭탄에는 영리한 한스라는 이름이 붙었다.[3] 본인은 부를 거면 검은 비스마르크라고 부르라며 투덜댔다.[4] 주인공은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으로 퍼트렸는데 정작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카페 초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5] 주인공이 만들어낸 음식으로 갈등을 겪는 모습이 간간히 언급되는 상황으로, 트로츠키가 스탈린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스탈린이 얼음 송곳 마려워하는 장면이라든가, 하와이안 피자를 맛있게 먹는 조지 5세의 모습에 경악하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라든가, 포로수용소에서 하와이안 피자가 맛있다는 투하쳅스키에게 드골과 함께 수용소에서 지내는 카트루 중령이 분노하는 이탈리아군 포로들 앞에서 그 말을 하면 유럽에서 최고로 용기 있는 남자로 인정해주겠다는 장면이 나왔다.[6] 다만 카페 초이까지는 드문드문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정도.[7] 본인만 좋아하면 그냥 아무 상관없이 특이한 식성을 가진 사람 정도로 생각할 건데 그걸 꼭 남에게 전파하고 다닌다. 심지어 본인은 저 음식들이 호불호가 갈린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해서 저걸 퍼트리고 다니는 게 진심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8] 나중에 잡혀온 스탈린이 순간적으로 몰라볼 정도로 살이 쪽 빠진데다, 무솔리니의 항변을 들은 이탈리아인 방청객들이 끔찍한 만행이라며 몸서리쳤다. 여기다 대고 한스가 맛있는 음식들이라며 항변하니까 영국인 판사가 동의한다고 말해 옆에 있던 오스트리아 판사가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영국인 판사를 쳐다봤다는 깨알같은 개그 장면이 나왔다.[9] 이 세계관의 유엔 상임이사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의 3대장인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합중국(종전 이후 결국 대오스트리아 합중국 계획을 실현해 유엔 설립 당시의 오헝제국 국호다.), 미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다. 원래는 중국에 주려 했으나 청, 중화민국, 중화연방(구 중국공산당)이 대놓고 상대를 반대하는 통에 오스만이 어부지리로 먹게 된 셈.[10] 이때 작품 초반부 환타를 준 노인과 이야기하는데 그 사람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이 사람이 아닌 이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책 표지도 스포일러 중 하나였던 것.[11] 작품 초반엔 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12] 실제 역사의 빌헬름 2세는 2차 대전 프랑스 침공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13] 원 역사에서 그가 죽은 날은 1941년 6월 4일로, 3개월 더 빠르게 죽었다.[14] 1차대전 당시 언급에 따르면 독일인들도 빌헬름 2세가 내정은 잘하지만 외교가 절망적인 수준임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15] 정황상 주인공 한스를 독일 제국으로 보낸 노인과 동일인으로 보였지만, 결국 마지막에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노인의 진짜 정체는 이 사람. 다만 한스와 오토의 대화로 볼 때 프리드리히 3세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이자 빌리의 할아버지인 빌헬름 1세도 이 계획에 끼어 있는 듯한 반응이다.[16] 아들과 화해하지 못한 원 역사에선 영국에서 보낸 유니언 잭으로만 싸인 채 매장되었다.[17]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공주는 스웨덴 오스카르 2세의 3남 칼 왕자와 덴마크 프레데리크 8세의 차녀 잉에보르 공주의 딸로 '백설공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의 미녀라서 많은 구혼자들이 몰려들었다. 이 때문에 혼인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한스가 매우 고생했다고.[18] 영혼은 여전히 20대 편돌이였다.[19] 프리데리케를 낳은 뒤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바쁘게 일하는 한스를 배려해 전쟁 중에는 프리데리케를 키우는 데만 전념하였다. 물론 전쟁이 끝난 뒤엔 얄짤없이 쥐어짜였지만.[20] 1912년생으로 원 역사에서는 작센마이닝겐의 게오르크(1892~1946)의 차녀 작센마이닝겐의 레기나(1925~2010)와 혼인하여 2남 5녀를 두었다.[21]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의 차남으로 1912년생이다. 원 역사에서는 빌헬름 2세의 동생인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의 손녀 바르바라와 혼인하였다.[22] 1912년생으로 원 역사처럼 여기서도 장남 이건이 친일 행각을 벌이다 미국에서 독립운동하던 의친왕이 빡쳐서 가문 족보에서 파버리고 이우를 후계자로 지명하였다. 원 역사에서는 박영효의 서손녀인 박찬주(1914~1995)와 혼인하였다.[23] 본래는 콘스탄티노스 1세의 3남이지만 형인 요르요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1세가 아들이 없어 1947년에 즉위하게 된다. 이 때문에 구혼 당시에는 왕자였다.[24] 파블로스의 어머니 프로이센의 조피 공주가 빌헬름 2세의 셋째 여동생이라 프레데리케의 어머니인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와 사촌지간이다. 8촌도 근친혼 취급하던 한스에게 13살 연상의 5촌 당숙은 터부시된 것. 원 역사 파블로스의 처인 하노버의 프레데리케 공주(1917년생)가 원 역사에서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가 브라운슈바이크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25] 이왕가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의친왕과 이우는 복벽에 부정적이었고 다른 종친들은 친일행각 때문에 자격 자체가 안 되니 독일 제국 카이저의 혈통을 이어받은 라인하르트를 조선의 왕으로 모시자는 의견을 복벽파들이 거론했던 것이다.[26] 원 역사의 엘리자베트는 호엔베르크의 공작 프란츠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두었다.[27] 조지 6세와 타티야나의 장녀로 원 역사 엘리자베스 2세 포지션의 인물.[28] 크리스티안과 웨일스 여공 빅토리아는 빅토리아 여왕을 기준으로 8촌지간이다. 크리스티안: 빅토리아 여왕-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빌헬름 2세-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크리스티안 / 빅토리아 여왕-에드워드 7세-조지 5세-조지 6세-빅토리아.[29] 실제로 가방 안에 명단 같은 건 없고 먹다 남은 프레첼만 들어있었다.[30] 빌헬름 2세는 자국의 공사가 잔혹하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의화단에 분노해서, 청나라인들에게 난폭하게 굴 것을 명령한 탓도 있다. ("옛날 훈족의 아틸라가 그랬듯이, 중국을 상대로 무자비한 약탈과 파괴를 마음껏 저질러서 중국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라.")[31] 작중에서는 프리드리히급.[32] 1차대전 종결 직후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나라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전쟁에서 오헝제국의 졸전과 독일이 사실상 혼자서 다 해 먹은 현실에 실망해서 자국을 떠난 국민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때 스코르체니도 독일로 온 것으로 추정된다.[33] 시간이 촉박한 당시 상황상 프로토타입이 스텐 기관단총에 가까운 형태로 나왔다.[34] 실제로 힘러는 21세에 부친의 도움으로 양계장을 운영한 적이 있다.[35] 이순신 장군이 원균의 모함을 받고 백의종군하는 부분을 읽고는 전기를 쓴 주인공에게 따지질 않나, 종국엔 기어코 지구 반대편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묘에 가서 감격에 겨워 예포를 쏘려 했다. 의도는 좋았지만 예로부터 한국에서 총이나 대포를 쏘는 행위는 귀신을 쫓아내는 의미가 담겨 있기에 이것만은 주인공이 뜯어말렸다.[36] 해군 덕후인 아달베르트는 내륙국인 폴란드 왕이 되기 싫다고 징징거려서 한스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으로 출범시키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37] 단 폴란드 분할 당시 독일령으로 편입된 땅은 돌려주지 않았다. 대신 벨라루스 대부분과 우크라이나 일부를 폴란드-리투아니아에게 주는 것으로 타협하였다.[38] 과거 폴란드-리투아니아가 귀족공화정 국가여서 외국 왕족이 왕위에 오른 경우가 허다했다.[39] 어머니는 러시아인이었다.[40] 차남인 아이텔 프리드리히는 아내인 올덴부르크의 조피 샤를로테가 바람을 피워서, 3남인 아달베르트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으로 내정되어서, 4남인 아우구스트 빌헬름은 동성애 불륜 때문에 한창 이혼 소송 중이라서(...) 빠졌다. 이후 아이텔 프리드리히는 전후 올덴부르크의 조피 샤를로테와 이혼하고 조지아 왕이 되었다.[41] 이는 상대가 소련판 원균(...)이라는 멸칭까지 듣는 그리고리 쿨리크인 것도 있다.[42] 올가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은 1895년생, 요아힘 폰 프로이센은 1890년생이다.[43] 요아힘: 빅토리아 여왕-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빌헬름 2세-요아힘 / 올가: 빅토리아 여왕-영국의 앨리스 공주-헤센의 알릭스 공녀-올가.[44] 브루실로프는 '러시아인'의 정체성이 워낙 강해서 올가 왕비의 스카우트를 거절하고 적백내전 때 '러시아 제국'을 위하여 소련 편을 들었다.[45] 196cm나 된다.[46] 귀족답게 포크와 나이프로 고상하게 썰어 먹었다고 한다.[47] 본작에서 사민당은 공산주의 성향이 아니라고 명시되지만 어느 정도 좌익 성향이 있는 듯하다. 젊을 때 광산 노동자로 각종 고생을 해서 그 후유증을 평생 달고 살았음을 고려하면 이상하지 않다.[48] 반면 같은 시기 이혼 소송이 터진 아우구스트 빌헬름은 하필 아내를 놔두고 동성애하다 걸려서(...) 아내(글뤽스부르크의 알렉산드라 빅토리아 공녀)가 이혼 소송을 걸었지만 남자가 동성애를 했다 이혼하는 건 당시 독일 사회에서 큰 문제라서(당시 독일은 호모포비아가 굉장히 심했다) 전후까지 이혼을 못했다.[49] 이를 위해서 덴마크까지 가서 니콜라이 2세에게 직접 부탁했는데, 오래전부터 조지 5세의 어머니인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와 아내인 테크의 메리 모두 타티야나를 선호하는 편이었고 이번에도 에드워드 왕세자가 혼인을 못 하면 그때는 제대로 된 부인을 아예 못 구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였다.[50] 원 역사와 달리 본작에서는 독일 제국이 건재해서 페르디난트 1세가 카롤 왕세자(카롤 2세)가 절대로 귀국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엔촐레른 본가인 빌헬름 2세에게 부탁했고 빌헬름 2세가 이를 받아들여 카롤 왕세자는 귀국을 못 하고 떠돌아다니는 신세였다.[51] 사실 열받아서 한 말일 뿐이지 영국법상 조지 5세 마음대로 에드워드의 왕세자 신분을 박탈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고 진심으로 그럴 생각도 없었다고 한다. 영국의 그 누구도 폐세자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고.[52] 처음 나올 때는 왕세자비다.[53] 물론 그 개차반 같은 성질에 타티야나가 질려버려서 앨버트와 결혼하게 된 것은 본인의 귀책사유지만 막상 타티야나가 자신 대신 버티를 선택했다는 말을 듣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54] 이유가 골때리는데 평소 왕세자에게 엄했던 조지 5세가 결혼 파동 등 에드워드가 계속 말썽을 일으키자 그냥 홧김에 하는 말로 루마니아의 페르디난트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앨버트에게 왕위 준다고 했고, 그걸 빌미 삼아 쿠데타를 계획한 것. 영국은 원 역사나 작품 내나 법규가 엄해서 당사자가 포기하거나 아니면 사고로 궐위되지 않는 이상 웨일스 공 자리는 말로는 절대 못 바꾼다. 헌데 에드워드는 그 말로 앙심을 품고 쿠데타를 실행해버린 것.[55] 지난 대전쟁에서 전시 총리직을 맡았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56] 이 시점 조지 6세의 맏딸이자 차기 여왕인 빅토리아 공주.[57] 재판 내내 뻔뻔한 태도로 일관한 라 로크도 이 광경에 고개를 돌리고, 충성을 맹세했던 모슬리조차도 주인을 잘못 섬겼다고 후회한다.[58] 한때 차기 국왕이자 왕족이었으면서도 교수형으로 처형당한 것과, 묘지조차 만들지 못하게 시신이 처분된 것을 보면 영국인들의 분노가 엄청나게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패륜으로 왕위를 찬탈한 것도 그렇지만 HMS 넬슨 등 로열 네이비의 함선들을 프랑스에 넘겨주고 프랑스군에 의해 런던이 불타오를 뻔했던 것까지 감안하면 전범재판에서 살아남았어도 영국인들이 직접 목매달았을 정도로 증오를 산 상태였다.[59]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모두 영국의 젠트리 같은 기질이라 사교계를 기피하고 시골 아가씨처럼 딸들을 키웠다. 조지 5세는 이런 타티야나의 시골 아낙 같은 면이 본인 취향에 맞아서 며느리로 삼으려고 한 거지만 사교계에서 화려하게 지내는 걸 선호하는 에드워드와는 안 맞았다.[60] 영국식으로는 헤센의 알릭스의 어머니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차녀인 '앨리스'다.[61] 프린세스 빅토리아가 빅토리아 2세로 즉위하게 되면 빅토리아 여왕은 '빅토리아 1세'가 될 것이다.[62] 둘째 형수인 타티야나가 에드워드에 대해 한스에게 하소연하면서 언급하였으나, 앨버트가 다급히 말하지 말라고 막았다.[63] 처칠의 행적을 알고 있는 주인공이 미리 오스만 제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처칠은 그냥 씹었다(...). 그 덕분에 주인공이 영국 대사를 초치해 영국이 그렇게 가난한 나란지 몰랐다고 깠다고.[64] 유일하게 그리스만이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할 수 있다면서 그리스 왕국 총리인 베니젤로스가 처칠에게 속으로 감사를 표할 정도로 반겼다.[65] 본인은 에드워드와 친분이 깊었고, 윌리스와의 결혼도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식의 계승권을 제한하는 절충안을 제시하는 식으로 에드워드를 지지했었다. 다만 처칠 본인은 파시즘을 용납할 수가 없었고, 파시스트들과 가까이 지내는 에드워드에게 수차례 진언을 했으나 에드워드가 들어먹지 않았고, 끝내 에드워드가 적과 결탁해서 명분이 전혀 없는 반란을 일으켜 매국과 패륜을 저지르자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66] 회의 직전 장 트러블이 일어나 화장실에 갔는데 간발의 차로 화를 피했다.[67] 독일군이 영국을 도우러 파병 왔을 때 직접 맞이하며 영국의 이름에 먹칠을 한 추축국에 복수를 다짐하는데 그 모습을 본 영국군과 독일군은 "저러다가 또 갈리폴리하는 거 아니냐", "재수 옴 붙으니 그런 말 마라."면서 뒷담을 한다.[68] 첫 번째로 교토에 투하된 폭탄의 명칭은 '뚱뚱한 마이어'(지름이 1.5m였다는 언급이 있었으니 팻 맨 같이 플루토늄 원자폭탄으로 추정된다.), 세 번째로 고쿠라에 투하된 폭탄은 '영리한 한스'였다고.[69] 밸푸어 총리가 커 제독은 그나마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자진 사임으로 마지막 배려를 해주었지만, 진수식에서 사적인 감정을 담아 잘못된 보고를 한 관전무관들은 얄짤없이 해임을 하였다.[70] 알아챈 이유가 《불멸의 리 제독》 소설 덕분이었다(...).[71] 당시 모두가 죽을 줄 알아서 무덤도 미리 팠다고 한다.[72] 이때 뉴욕 한복판에서 활을 쏘며 적을 쏘아 스코르체니를 돕는 걸 우연히 스탠리가 보고 감명을 받는다.[73] 둘은 우연히 성이 똑같을 뿐인 남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갈리폴리 영감은 스펜서 가문의 스펜서-처칠이고 이 사람은 그냥 처칠이다.[74] 해당화에서 작가가 독일 대역에서 프랑스가 고통받는 건 진리라는 코멘트를 남겼다.[75] 이유는 판사가 자신의 아들을 전쟁에서 잃게 되면서 영독에 악감정을 가졌고 그런 그들에게 굴복해 가뜩이나 마음에 안 드는 데샤넬이 사법부에 간섭하자 평소에 할 말을 당당히 하는 라 로크를 호의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76] 항복 협상 중에 자신의 기준으로는 존재해서는 안될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2차 파리 코뮌이 벌어져서 진압 과정에서 파리가 불타오른 것도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77] 히틀러도 파울루스를 팽할 때 진급을 시켜줬으나, 라 로크는 반대로 했다.[78] 속으로 차라리 끝까지 싸우다 죽으라고 명령하면 그 명령을 따랐을 것이라고 했다.[79] 전범 혐의자들은 별도로 처벌을 받으나, 혐의 없는 자신의 직속군은 일반 포로로 대우받기로 교섭한다. 욍치제가 런던을 불태우는 걸 거부한 것을 보아 욍치제와 휘하의 장병들은 정중한 대우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80] 쿠데타 소식을 듣고 찾아온 드골에게 자네가 뜻이 다른 이들이 파시스트들에게 탄압받는 걸 지켜보기만 하면 언젠가는 드골과 그 가족들이 당하게 될 때 도와줄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고 마지막 말을 남긴다.[81] 가믈랭이 드골에게 남긴 마지막 말에 영향을 받았는지 공화국 충성파 정치인들의 망명을 도와준다.[82] 본인의 집에 라 로크에게 반발하여 마지노 마을로 끌려간 부부의 자식이 재교육 명목으로 온 것도 있고, 특히 드골의 막내딸이 다운증후군 환자였기 때문에 파시 프랑스가 만든 프랑스판 T4 프로그램에 끌려갈 수 있던 점도 컸다.[83]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로돌포 그라치아니와 20만 병력을 잃게 되었다.[84] 드골이 반기를 들기로 결심할 때 형제들과 다같이 찾아와서 피해있을 것을 원했으나, 본인은 집에서 죽기를 원한다며 거절하였고, 차남에게 자신의 신념을 따라가라고 우리는 언제나 함께라고 사실상 유언을 남긴다.[85] 이 문제는 드골이 처칠에게 떠넘기고 처칠은 한스에게 떠넘기고 한스는 캘리포니아 공화국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패튼을 선처해달라고 한다.[86] 진심으로 유대인을 증오한 히틀러와는 달리 라 로크 본인은 유대인에게 별 감정이 없으나 지지자들의 결집을 위해 반유대주의를 내세웠다.[87] 이 와중에 가믈랭과 뜻을 같이 한 공화국 충성파 정치인들을 잡아들여 재판 없이 즉결처형하려고 했으나, 그들은 드골의 경고와 독일 정보국의 정보로 라발의 배신을 알게 되어 라 로크의 예상보다 더 빨리 도망을 가서 놓치게 된다.[88] 일단 인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프랑스인들이 히틀러를 지지하는 독일인들과 달리 반골 성향이 많은 것도 그렇고, 주적인 독일의 지도자인 한스가 원 역사의 히틀러를 대하는 프랑스, 영국의 지도자들과 달리 파시스트들에게 초강경하게 나오는 것도 그렇고, 드골을 비롯한 유능한 장군들이 대거 반대파에 붙었다. 게다가 동맹인 이탈리아와 일본은 제멋대로 움직여서 적만 늘려가고 있고, 그나마 희망이 보였던 파시스트 동료인 맥아더와 에드워드 8세는 자기 국가도 장악 못한 채로 몰락 확정이다. 공동의 적을 가진 소련도 영 힘을 못 쓰고 있다.[89] 원 역사의 마지노선에 만들어진 마을로, 처음엔 대성동, 기정동 같은 선전마을로 지어 놨으나 실체는 유대인이나 집정의 반대파들을 이 마을에 몰아넣어 소위 고기방패로 만들고 그 뒤를 독전대 등으로 둘러싼 일종의 라 로크식 마지노선이다. 이 마지노 마을을 만든 건 다름 아닌 원 역사의 마지노선을 만든 그 앙드레 마지노이다.[90] 원 역사의 나치 전범들은 목을 조르는 매듭을 지어 고통을 주면서 죽였는데, 여기서는 단번에 목을 꺾는 매듭을 지어서 즉사시켰다.[91]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 전범들은 처형 후 모두 다 화장되었는데, 이는 원 역사에서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매년마다 보는 꼴을 생각한 주인공이 그런 꼴이 반복되지 않도록 화장하고 그 뼛가루는 아무도 모르게 망망대해에 처리하기로 한 것.[92] 여기선 그나마 상식적이고 인망 있는 지도력을 보여주었고, 프랑스를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했기에 주인공의 명령으로 반쯤 사면된다.[93] 해임 직후 창문을 깨고 뛰어내렸으나, 궁 밖에 분노한 군중들이 드럼통을 두드리며 자신을 위협하는 걸 보고 스스로 돌아갔다. 분노한 군중들이 당장이라도 무솔리니를 때려죽일 법도 한데 전범재판을 받을 기회를 준 것을 보면 아마 무솔리니의 생사 여부에 따라 배상금 액수가 결정되는 등의 조건이라도 있었던 듯.[94] 오스트리아 측 판사는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영국 판사를 쳐다 봤다.[95] 원 역사에서는 1914~1918년이지만 본작에서는 1913~1914년에 일어났다.[96] 원 역사에서 바티칸 유수 문제는 1929년 무솔리니가 라테라노 조약으로 바티칸 시국을 독립시키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즉 이때는 아직 바티칸 유수가 현재진행형이었다.[97] 이 말을 들은 한스는 개변된 역사에서는 2차대전이 안 일어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었지만 그런 거 없다는 것을 깨닫고 1차대전이 끝날 때부터 2차대전을 대비하여 각종 조치를 취하게 된다.[98] 각국마다 적국을 앞에 붙인 독감으로 칭했다.[99] 원 역사에서는 프랑코 사후인 1990년대까지도 해당 악행을 저질러서 21세기에 접어들어 스페인 내에서 가톨릭 교회가 크게 비판받는 원인이 되었다.[100] 프로테스탄트인 주인공에게 있어서 로마 교황의 파문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101] 결과적으로 원 역사의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최후를 한꺼번에 겪게 되었다.[102]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암살을 계획했던 검은 손이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대신 왔다는 사실을 몰랐던 데다, 본인은 자동차가 아닌 마차를 타고 와서 처음에 던져진 폭탄을 피하지 못했다.[103] 작가 초기에 실제로 초안에서는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죽고 안슐루스당하는 엔딩이었다고 한다.[104] 호엔베르크의 여공작 조피는 끝내 황후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105]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 사이에 자식이 있으나, 귀천상혼으로 인해 계승권이 없다.[106] 호르티도 2차대전 즈음으로 가면 대오스트리아 합중국 개편을 막을 수 없을 것을 알고는 있었다. 단지 헝가리인 정치인으로서 그 권익을 대변해야 했기 때문에 발버둥친 것뿐이다.[107] 본작에서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명시되지만 그래도 사민당을 차린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의 좌익 성향은 있는 듯하다.[108] 원 역사에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어떻게 굴렸는지 고려하면 특이한 것은 아니다.[109] 사족으로 셋은 1912년생, 프레데리케는 1914년생이다. 원 역사에서 오토 폰 합스부르크와 혼인한 작센마이닝겐의 레지나가 1925년생임을 고려하면 이쪽이 더 정상적으로 보인다.[110] 이때 사용한 권총은 발터 P36인데 발터 P38이 주인공의 영향으로 2년 일찍 등장하면서 발터 P36이 된 것이다.[111] 반면 사라예보 사건을 벌여 세르비아를 멸망에 몰아넣고도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려던 검은 손 멤버들은 국경지대에서 지나가던 세르비아인이 우연히 알아보고 때려죽이려다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발견해 체포당한 뒤 즉시 교수형에 처해졌다.[112] 알렉산다르 1세(1888)가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1897)보다 9살 연상이다.[113] 원 역사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2차대전 때 나치 독일에게 멸망당하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공산화된 뒤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공중분해당한 걸 생각한다면 카라조르제비치 가문 입장에서는 명목상 왕위라도 계속 이어나가는 게 더 행운일지도 모른다.[114] 원 역사에서는 시가인 루마니아의 이익을 위해 친정인 작센코부르크고타를 제끼고 독일에 적대하는 선택을 지지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알렉산드르 2세의 딸임에도 시가인 독일 편을 들었던 어머니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과 모녀싸움을 하기도 했지만, 정작 원 역사 독일인들은 러시아와 독일이 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평판이 나빴다고 한다.[115] 페르디난트(1894)가 올가(1895)보다 1살 연상이다. 카롤: 빅토리아 여왕-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프레트 공작-에든버러의 마리 공녀-카롤 / 올가: 빅토리아 여왕-영국의 앨리스 공주-헤센의 알릭스 공녀-올가.[116] 파디샤의 명령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 친위 쿠데타에 가깝다.[117] 카흐라만(Kahraman)은 튀르키예어로 '영웅'이라는 뜻으로, 카흐라만튀르크는 '튀르크의 영웅'이 된다. 오스만 파디샤에게서 오스만 제국을 재건한 튀르크(오스만)의 영웅이라는 뜻에서 하사받은 성이라는 점에서 원 역사와 완전히 반대의 삶을 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118] 원래 한스는 오스만 제국에게 파병을 안 해도 되니 자신들을 도와주면 지난 전쟁 때 러시아에게 빼앗기는 영토를 돌려주겠다 약속했고, 이에 엔베르를 비롯한 파샤들은 하는 김에 러시아령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도 달라고 하였다. 한스는 원 역사에서 파샤들이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벌인 대규모 제노사이드를 알고 있어 고민하고 있었지만 속국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협상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처칠이 급발진해서 이대로 오스만 제국이 동맹국 편에 들어갈 것 같다 판단하고 독일에게 말도 없이 오스만 제국 해군을 공격해 강제로 동맹국 편으로 참전하게 된다. 이 때문에 분노한 한스는 처칠의 멱을 따려다가 영국 대사가 말려서 겨우 진정했을 정도.[119] 메흐메트 5세가 술탄과 파디샤의 권위로서 무스타파 케말의 편을 들어 파샤들을 한순간에 반역자로 만들었고, 이 때문에 파샤 휘하 장병들은 사기가 꺾여 항복을 선택하면서 빠르게 끝났다.[120] 그리스군과 불가리아군의 공격으로 콘스탄티니예가 위험해질 때 앙카라로 천도했다.[121] 이는 오스만 제국이 영국(정확히는 처칠)의 잘못 때문에 강제로 동맹국으로 참전한 것이라는 정상참작이 적용된 것이기도 하다.[122] 세계에서 가장 큰 포르노 자료실을 갖추고 건드린 여자만 5천여 명으로 추산될 정도로 호색한인데다, 처칠의 시계를 훔치고 팔라비 1세의 장례식에 참석한 날 관을 털어서 보검과 보석을 훔쳐갔을 정도로 도벽도 심각했다. 도둑질을 더 잘하기 위해 이집트 최고의 도둑을 사면해주는 대가로 도둑질 기술을 직접 전수받았을 정도.[123] 프리데리케는 카이저의 손녀이기에 독일 제국이 당장 이집트를 폭격해도 할 말 없는 상황으로 까딱하면 이집트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짓을 저지른 것이기에 이집트 정부에서도 불문에 부치는데 합의하였다. 빌헬름 2세도 이 소식을 듣고 격분했지만 파루크 1세가 고자가 된데다 사실상 축출될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기에 분을 삭이고 불문에 부쳤다.[124] 적백내전 이후 미국에 이민 간 러시아계 미국인들이 궁핍하게 살자 미안함을 느껴서 이들을 고용하고 사내 복지도 나름 잘 챙겨줬는데, 이 때문에 직원들은 황제 시절의 일은 여전히 용서 못하지만 고용주로서는 고맙게 생각한다고 한다.[125] 사실 당대 미국은 마피아 시대에다 서부개척시대 잔존 풍습까지 남아있어서 미국에서 우유 유통을 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126] 니콜라이 2세의 조카사위(여동생 크세니야의 딸 이리나의 남편)인 유스포프 공작이 로마노프 유업의 미국 지사를 관할하고 있었는데, 우유 전쟁 때문에 로마노프 유업을 싫어하던 맥아더와 군부가 유스포프 유업의 직원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해서 가두자 항의하다가 자신도 갇히게 된다. 니콜라이 2세의 언급을 보면 유스포프 공작은 제정 러시아 당시 군인들과 오흐라나(비밀경찰) 출신 직원들이 구출하였다. 로마노프 유업 직원들은 러시아식 벤데타에 따라 저항군에 들어갔고 훗날 우유 전쟁을 벌이던 이탈리아계 마피아들과 함께 맥아더를 죽이게 된다.[127] 이는 한때 로마노프 왕조의 충신이었던 만네르하임의 배려였다.[128] 발트함대였으나 한스의 계략으로 흑해함대로 바뀌었다.[129] 본작의 프랑스인, 이탈리아인들이 그랬듯 코바도 조지아 출신답게 나름 예리한 입맛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 아메리카노가 도저히 입맛에 안 맞았던 모양이다.[130] 트로츠키를 부추겨 레닌을 죽이게 사주하는 등 어느 정도 차이는 있다.[131] 1차대전으로 인해 조지아는 독일의 위성국으로 분리되었지만 스탈린의 어머니는 죽어도 고향에서 죽겠다고 고집하여 조지아에 속하게 되었기 때문에 러시아 혁명 이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132]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관여한다든가, 로마노프 황가를 직접 살려보내는 등 다르게 움직이기도 했다.[133] 이때 처형하는 총알이 아깝다고 공산당 당수인 천두슈에게 대도를 이용한 참수로 처리하라 지시한다. 이후 자신에게 합류한 김일성이 마오쩌둥하고 동류라는 걸 한스한테 듣고 똑같은 방법으로 숙청한다.[134] 그러나 스탈린이 죽지 않고 스탈린의 아내 나데즈다 알릴루예바가 죽었다. 공교롭게도 원 역사와는 달리 아직 사이가 벌어지지 않았던 때라 부부 사이가 원만하였고, 스탈린은 이에 격노해 겐리흐 야고다를 숙청하고 니콜라이 예조프를 임명한다. 이후 예조프는 원 역사대로 수많은 이들을 숙청하고, 블류헤르와 예고로프도 이에 휘말려 숙청된다.[135] 브레스트-리프토스크 조약 이후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주인공은 과거에는 신경질적인 아저씨였는데, 다시 만나니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닭 잘 튀겨주는 할아버지 같다고 평한다. 20여 년 사이에 많이 성장을 해서 그때보다 상대하기가 많이 어려워졌다는 평도 더했고.[136] 이때 만난 주인공에게 김일성에 대해 이야기하다 주인공이 마오쩌둥 같은 놈이라 하자 살벌한 표정으로 그렇냐고 말한다. 이후 회담이 끝나자마자 김일성을 숙청한 것으로 보이며, 이 여파로 스탈린이 박헌영을 비롯한 조선공산당 일원을 숙청해버리는 계기가 된다.[137] 물론 스탈린의 입벌구도 한몫 하긴 했다.[138] 본인이 중국과는 연이 없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중국공산당도 당수인 천두슈에게 조언하는 형식으로 이끌었고, 소련으로 돌아간다 해도 스탈린에게 레닌을 죽인 책임을 떠넘겼어도, 이를 묵인한 책임은 남아있기 때문에 다시 권력을 잡기 매우 어렵게 되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러 간 것으로 보인다.[139] 술김에 "쑤카 왜 나한테만 그러냐 스딸린 너 이 X같은 X퀴야! 이건 다 네 녀석이 대숙청으로 유능한 장교들을 다 죽여 버려서 이 X랄 난 거잖아. 왜 자꾸 나한테만 뭐라고 그러냐, 어?! 니 애비애미가 그렇게 가르쳤냐?!"라고 말했다. 이는 원 역사에서 겨울전쟁에서 보로실로프가 스탈린에게 한 말이다.[140] 본작의 흐루쇼프가 1차대전으로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자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당을 창당하고 총리 자리까지 올랐음을 고려하면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인 브레즈네프도 우크라이나 소속일 가능성이 높다. 본작에서는 소련 정계의 많은 거물들이 타국으로 소속을 옮겼기 때문에 작가가 보기에 안드로포프가 당시 너무 젊기는 해도 현실적으로 소련에 완전히 소속된 상태에서 소련을 수복시킬 만한 인물이 마땅히 보이지 않았던 듯하다.[141] 육군의 주코프, 바실렙스키, 추이코프, 메레츠코프, 톨부힌, 소콜롭스키, 자하로프 공군의 후댜코프 해군의 쿠즈네초프, 고르시코프 등 소련군의 쟁쟁한 명장들이 여기에 걸려 죄다 처형당했다.[142] 다만 대공황이 더 빨리 터진 건 주인공이 벌인 각종 사건의 나비 효과라서 더 빨리 터진 건 후버 잘못이 아니긴 하다.[143] 앨 스미스는 이 광경을 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이런 군사반란이 용납될 것 같냐며 네 최후가 비참할 것이라 경고한다.[144] 기반 부족과 정치력 부족으로 뭘 제대로 한 건 없었지만 전임자 후버가 그냥 후임자에게 짬처리만 하고 방치한 것과 달리 나름 해결하고자 노력은 했고, 뭐가 어쨌든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라는 특성상 군사반란으로 축출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이 우선되었다고 볼 수 있다. 5.18 민주화운동 운동가의 주류가 강성 우익이었지만 그렇기에 군사반란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145] 그래도 스탠 리의 평에 따르면 로마노프 유업은 어디까지나 외국 기업이 미국에 와서 우유 파는 거라서 가급적 먼저 싸움을 걸지 않고 우유 배달의 본업도 같이 행하려고 노력한 편이기는 했다고 한다.[146] 그것 말고도 사회가 방종과 혼돈이 판을 치는 마당에 자기들 밥그릇만 챙기는 부패한 정치인들과 무능한 경제인들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147] 보너스 군대 진압 명령 이전부터 이미 맥아더는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여러 인사들을 포섭하고 있었지만, 앨 스미스를 비롯한 정계에서는 단순히 '퇴역 이후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저러나 보다'라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148] 에피소드 제목은 맥아더 회군으로, 내용은 전체적으로 영화 '서울의 봄'의 패러디다. 위 대사 말고도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이왕이면 혁명이란 멋있는 단어를 써라" 같은 대사도 나온다.[149] 작중 묘사로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민달팽이 외계인 같은 몸매가 되었다고 한다.[150] 알 카포네와 휘하 마피아들의 출신지였던 이탈리아와 로마노프 유업의 우유 배달부들의 고향인 러시아의 공통된 문화라서 서로에게 벤데타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우유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았던 것이었다.[151] 엄밀히 말하면 그 이전 스탈린이 독일의 위성국들에게 사실상 선전포고한 것이 더 먼저지만 2차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에드워드의 쿠데타부터다.[152] 고향인 캘리포니아에서 반역자로 규정되어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맥아더도 간신배들에게 넘어가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망가졌다고 한다.[153] 미국 내전 초창기부터 2차대전 개전 직전까지는 독일이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피하려고 3호 전차 위주로 지원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프랑스가 만든 전차는 느려터졌다고 깐다.[154] 이는 미대에 입학한 히틀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냐는 독백 후에 한스가 손을 쓴 것으로, 미국에서 잘나가는 애니메이터로서 미국을 방문한 한스와 만났을 때 기껏 미대 들어가게 해줬더니 이게 뭐냐며 어이없어하는 반응으로 확인되었다.[155] 1차대전 때까지의 히틀러는 평화로운(?) 독일 제국의 특성상 극단적인 모습은 덜 보여줬지만 게르만 우월주의적인 면은 좀 있었다. 1차대전 때 파병 온 미국 군인들은 대부분 게르만인 영국계나 독일계가 대부분이라서 잘 어울렸지만.[156] 다만 그의 주변 사람들은 막상 정치에 입문하면 오히려 미쳐버릴 거라고 원 역사의 그를 바라보는 듯한 평을 하긴 한다.[157] 애니메이션 주제곡 가사가 원 역사의 디즈니가 만들었던 작품보다 외설적이라 이 노래를 부르는 쌍둥이 막내딸들을 보고 루이제가 기겁한다.[158] 다만, 미국의 법상 이민 1세대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159] 이 때문에 주인공은 대체 왜 미대를 보낸 게 이런 나비 효과로 돌아온 건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히틀러가 미국 애니메이션 사장이 된 건 미대 가서가 아니라 본작에서 독일 편을 든 미군 병사들이 히틀러의 일러스트를 칭찬해서 애니메이션에 눈을 뜬 것이 원인이라 모르는 게 당연하긴 하다.[160] 스탈린은 악행과 별개로 공산주의자라서 제외.[161] 이들의 악행 수위는 원 역사 2차대전 이후 악명 날린 주요 독재자들에게도 한참 못 미친다. 특히 1970년대 독재자들.[162] 히틀러 포지션을 대체한 라 로크, 맥아더는 원 역사 히틀러 특유의 강렬한 광기와 사악함이 없는 평면적인 악당이라고 여러 차례 명시된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게, 히틀러가 가진 특유의 악의 카리스마는 스탈린, 마오쩌둥도 능가한다는 평을 듣고 스탈린은 특유의 성격상 카리스마가 넘치는 타입은 아닌 데다 마오쩌둥도 본작에서는 뭘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트로츠키에게 물리적으로 목이 날아갔다.[163] 첫 번째는 발더제나 프란츠 요제프 1세 같은 개꼰대다.[164] 당대 뉴욕 마피아는 주로 이탈리아계 또는 아일랜드계였는데, 라과디아도 이름 보면 알겠지만 이탈리아계였다. 단 라과디아는 성공회 출신이라 가톨릭이 주류였던 다른 이탈리아계와는 다소 상이한 편이었다.[165] 이 직원들은 단순한 러시아계 미국인이 아니라 러일전쟁, 1차대전, 적백내전을 모두 거친 역전의 용사들이 많았고 제정 러시아 비밀경찰(오흐라나) 출신도 있었다. 이 때문에 자체 무력이 상당한 편이었다.[166] 원 역사에서 라과디아가 뉴욕 시장 시절 뉴욕 마피아와 전쟁하며 살았던 걸 생각하면 좀 웃픈 부분이나, 라과디아와 달리 맥아더는 뉴욕 마피아를 물리적으로 학살해서 일부만 살아남았음을 고려하면 그리 이상한 건 아니다.[167] 쿠데타 당시 맥아더는 연방군은 대부분 포섭했지만 주방위군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포섭을 못했다.[168] 사건 당시 오하이오주에 있어서 제때 탈출할 수 있었다. 조지아주에 있어서 탈출에 성공한 마셜과 비슷하다.[169] 매카시도 맥아더처럼 비대해졌다.[170] 이를 작중에선 위대한 탈영이라고 칭하게 된다.[171] 미 공군이 6년간 신정부에 있던 이유가 미첼 때문이었을 정도로 공군 내에서 미첼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172] 얼마나 일방적이었냐면 가뜩이나 나라의 재정이나 기반이 개판이었는데 그쪽은 건드리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만 돈만 퍼먹는 군사 쪽을 건드려서 가뜩이나 서태후의 폭정에 구멍이 난 나라 상황을 개판으로 밀어 넣었다.[173] 부대를 급습한 팔시름예거 대원들이 현장의 참상을 보고 참지 못해 책임자인 이시이와 부대원들은 별도로 심한 구타를 당한다.[174] 원 역사에서는 작전에 실패한 뒤 엄청난 인명손실을 내고 후퇴하였으나, 여기서는 무타구치는 물론 대본영에서도 수습해줄 기미가 안 보이자 빡친 사토 고토쿠의 휘하 부대를 시작으로 15군 대부분이 연합군에 항복해버리는 사태가 터져버렸다.[175] 독일이 도와줄 이유가 없는데다, 미래인인 한스는 곧 러일전쟁이 일어나서 대한제국이 일본의 수중에 떨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176] 원 역사와 똑같이 큰아들 이건은 모모야마 켄이치라고 창씨개명하고 사실상 친일파로 살게 되면서 의친왕은 큰아들과 아예 의절한다.[177] 이 내탕금은 한스의 손에 들어가서 임시정부의 자금으로 쓰이게 된다.[178] 베네수엘라 위기 이전의 영국은 드레드노트라고 부르고, 이후 미국에서 프레드릭, 프랑스에서는 프레데리크, 일본에서는 대왕급이라고 부른다.[179] 이때 프랑스 대통령은 진범인 에스테라지가 무조건 유죄여야 군이 받을 후폭풍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장군들에게 일갈한다.[180] 빌헬름 2세는 이걸 영원히 박제하려고 사진 기사와 영화 촬영 기사를 부르려 했으나 리히트호펜과 한스가 말렸다.[181] 양성은 순친왕 홀로 굴욕을 감내하지 않게 하려고 자신도 함께 하려고 했다. 빌헬름 2세는 순수한 호의로 너도 즐겨봐라 하는 식으로 한스에게 권했다.[182] 이후 순친왕은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알자 한스에게 따지나, 카이저도 만족하고 청의 백성도 무사하고 순친왕 일행도 무사하다며 최대 다수의 행복이라고 말하며 떠나고 순친왕은 울분에 차 비명을 지른다.[183] 이 명령을 수행하는 인물이 빌헬름 리터 폰 레프와 파울 폰 레토포어베크로 각각 소위와 중위로 등장하고 실제로 이들은 의화단 운동에 참전했었다.[184] 카이저는 사진만 보고 1889년에 취역한 방호순양함 'USS 필라델피아'임을 알아 맞추고 곧 퇴역한다고 설명한다.[185] 전함의 부함장은 막시밀리안 폰 슈페로 초기에는 함장으로 나왔다가 부함장으로 수정한다.[186] 다만 커 제독에게는 자진 사임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187] 여기서 한스가 아메리카노를 만드는데, 카이저는 딱 양키들이 마실 구정물이라며 혹평한다.[188] 이 우발적 교전으로 영국은 지중해 함대의 구축함 4척을 잃고 다수의 함선이 손상을 입었고, 프랑스 지중해 함대는 영국보다 더 심한 피해를 봤다. 러시아는 가장 큰 피해를 봤는데, 무려 전함 드볘나드차티 아포스톨로프를 잃었다. 그리고 독일은 가장 적은 피해를 봤다.[189] 러시아는 같은 슬라브 민족끼리 싸운 이 전쟁에 뒷목을 잡았다.[190] 아예 안 받은 건 아니고 아주 조금은 받았지만 자원이 있을 뿐 작은 지역이라 식민지가 비효율로 변한 시대에도 유지할 만한 수준이었다. 영국은 프랑스의 횡단 정책을 어쩌다 보니 자기들이 대신 성공시켰다며 좋아했지만 얼마 안 가 식민지 문제가 줄줄이 터져나왔다.[191] 벨라루스는 트로츠키와 협상할 당시 벨라루스 대부분의 영토를 폴란드-리투아니아로 넘겼다고 지나가듯이 언급된다. 역사적으로 벨라루스 영토의 대부분은 리투아니아 대공국~폴란드-리투아니아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건 아니다.[192] 미국은 위증죄를 굉장히 무겁게 처벌한다. 워터게이트로 탄핵소추당해 하야한 리처드 닉슨과 불륜 문제가 커져서 탄핵소추당했던 빌 클린턴 모두 해당 사건 자체보다는 위증죄 문제로 인해 소추당했다. 윌슨의 샤프 밀사 사건은 국무장관을 비롯한 주요 내각 인사들에게도 말하지 않고 극소수의 측근하고만 독단적으로 벌인 행동이라 대부분의 내각 인사들은 사임으로 끝났다.[193] 이때는 윌슨이 원 역사에서 비선실세를 했던 이디스 볼링 갈트와 아직 결혼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다른 방법을 썼다.[194] 다만 한스는 여기서도 국제연맹이 유명무실할 것을 예측했고 윌슨의 빠른 몰락 때문에 국제연맹은 원 역사보다 더 무력한 모습만 보인 끝에 해체되었다.[195] 원래 벨기에가 1,000억 프랑을 주장했고 미국이 동의했지만 한스는 지나치게 많은 배상금은 낼 의욕을 없게 만들고 파시스트 정권의 폭주가 지나치게 앞당겨질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서 조정했다.[196] 흔히들 알자스-로렌/엘자스-로트링겐이라 부르지만 엘자스는 독일계의, 로렌은 프랑스계의 영향이 더 강해서 엄밀히는 엘자스-로렌이다. 이 때문에 로렌의 절반이 프랑스에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197] 이때 알제리를 프랑스에 남긴 것은 2차대전 때 신의 한 수로 돌아오게 된다.[198] 바그라티온 왕조는 조지아 왕국을 780년경~1801년까지 조지아에서 군림한 장수 왕조다.[199] 우크라이나에서는 니콜라이 2세의 장녀인 올가의 권위가 높아서 2차대전 당시에도 올가 왕비 만세를 외치는 경우가 많다.[200] 프리드리히 카를의 처인 프로이센의 마르가레테 공주가 빌헬름 2세의 막내 여동생이다.[201] 어디까지나 정치적 논의 때문에 편입시킨 거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식민지를 관리할 여력은 없어서 형식적인 식민지였을 뿐 사실상 따로 돌아가는 거나 다름없었고, 2차대전 이후 그냥 독립시켰다고 한다.[202] 황실이 제2의 세르비아 꼴이 안 나도록 처음부터 베네토와 베네치아에 자치권을 많이 줘서 이들이 별 불만이 없었고 2차대전 때 주저 없이 이탈리아 왕국을 적대했다는 언급이 있는데, 베네치아는 697~1797년까지 베네치아 공화국이라는 독립국이라서 사르데냐 왕국의 후신이었던 이탈리아 왕국과 거리감이 있어 독립 의지가 강했고 1815~1866년까지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했던 적도 있었다.[203] 북독일 연방은 북독일 일대 소국들의 관세 동맹을 기점으로 이루어졌다.[204] 한스가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원 역사에서 제4제국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만든 유럽연합의 전신 겸 대공황 때 피해를 줄이기 위한 사전 조치이기도 하였다.[205] 본작에서도 스탈린의 경제정책 실패로 소련령 중앙아시아에서 대기근이 터졌다.[206] 군사정부가 마피아들을 싫어해서 마구잡이로 학살했는데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마피아들이 복수를 위해 협력하였다. 특히 동부 지역 마피아들의 피해가 컸다고 한다.[207] 미 해군은 대부분 일제를 견제하기 위해 진주만과 캘리포니아 등에 주로 가있어서 육군이 군사반란을 일으키자 캘리포니아에 합류하였다. D.C.의 주요 인사들은 군사정부에게서 빼돌릴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나마 탈출 가능하면서 대통령직을 대행할 만한 위상을 가진 인물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라서 그를 탈출시킨 것이다.[208] 당시 뉴욕에 숨어있던 스탠 리가(유대인이라서 반유대주의 탄압을 피해 숨어있었다) 스코르체니와 잭 처칠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캡틴 아메리카와 호크아이를 고안하게 된다.[209] 그 외에 미국 공산당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이 이참에 미국을 적화시키겠다며 들고 일어나 북부 일대의 공업지대를 점령하였다는 언급이 있는데, 나중에 가면 언급도 안 되는 걸 보아 이들은 빨리 망한 듯하다.[210] 이후 묘사를 보아 밸런스 패치임이 확실한데, 미국이 내전으로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빠 도움을 주기는커녕 받는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합국이 원 역사보다 훨씬 수월하게 추축국을 작살내 버린 걸 고려하면 미국까지 끼어들었을 경우 1~2년 만에 추축국을 압살해버렸을 것이다.[211] 한스는 레닌을 러시아 제국으로 보낼 때 독립시킬 영토의 영유권 포기를 하라고 약속했고 레닌은 이를 지켰다. 그게 아니더라도 소련이 여기서도 대숙청, 대기근 등의 삽질을 저질러서 여러모로 어불성설이었다.[212] 이는 스탈린이 보낸 집단군 사령관이 쿨리크(핀란드), 보로실로프(폴란드-리투아니아), 부됸니(우크라이나)라는 세 얼간이(...)였던 게 크다. (굳이 따지면 보로실로프와 부됸니는 적백내전 때 잘 싸웠기 때문에 퇴물이었다는 게 정확하지만 쿨리크는 그냥 병신 맞다.) 조지아로 간 티모셴코는 캅카스의 특성상 아무것도 못 하고 견제만 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싸우려면 '왕이 미치면 간다'는 캅카스 산맥을 넘어야 하는 데다 연합국에 들어간 오스만군이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에 원군을 보냈기 때문에 그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213] 유럽 전선이 끝난 뒤 파견된 독일군 평에 따르면 무기들의 하드웨어는 상당히 뛰어나지만 미국 내전의 특성상 대규모 군대 지휘 경험이 매우 떨어졌다고 한다.[214] 원래는 원 역사대로 중국에 주려 했으나 청, 중화민국, 중화연방(구 중국공산당)이 대놓고 상대를 반대하는 통에 2순위였던 오스만이 어부지리로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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