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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저 호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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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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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배경1.2. 단군 이래 최대 호황1.3. 3저 호황 이후
2. 3저 시대3. 3저 현상4. 3고 불황

1. 개요

석 삼 낮을 저 좋을 호 하물며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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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지 숫자가 낮아 호황을 누린 시기. 전두환 정부 임기 후반인 1986년부터 노태우 정부 임기 초인 1989년까지 나타난 경제흐름으로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를 뜻한다. 전두환박정희 전 대통령이 쌓아놓은 기반 덕분에 거저먹은 것뿐이라는 평가가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1]
파일:3저호황_역대대통령물가상승률.jpg
전두환 임기 초는 2차 석유파동으로 물가상승률이 30%에 달하는 악재가 있었던 시기로 당시 전두환은 물가안정책을 실시하여 물가상승률을 3%까지 낮췄으며 3저 호황은 전두환 임기 후반기에 나타났다. 3저 호황은 1989년에 끝났지만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 초까지 한국 경제는 비교적 순탄하게 굴러갔다.

1.1. 배경

파일:3저호황의 배경.jpg
[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황폐화된 상태에서 6.25 전쟁과 미국의 지원 등으로 피눈물을 쏟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산업화와 고도성장에 성공한 일본은 엔화 저평가에 의한 가격경쟁력으로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막대한 무역적자에 시달리면서 일본 기업들의 독주를 경계하던 미국은 독일의 마르크화와 일본의 엔화의 가치를 대폭 높이고(1달러 250엔 → 150엔) 달러화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낮추는 (저달러) 내용의 플라자 합의를 체결했다. 중국 역시 미국의 묵인 하에 위안화를 절하했다.[3] 그 결과 엔고로 일본 제품은 가격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수출이 어려워지게 되었으며,[4] 반대로 한국의 원화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받게 되어 일본 제품에 비해 높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을 크게 늘리는 반사이익을 얻게 되었다.

1970년대 말에 이란 혁명으로 촉발된 제2차 석유 파동으로 국제유가가 40달러까지 폭등하면서 한국경제는 1980년 물가상승률이 28.7%까지 치솟고 마이너스 성장인 -1.6%를 기록, 정리해고가 급속히 늘고 불황에 접어들면서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두 번의 석유 파동은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제 침체를 불러오게 되었으므로, 세계 각국은 중동산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원유 개발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1980년대 중반에 가면 북해, 알래스카, 멕시코 등지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비 OPEC 국가의 석유 생산량이 OPEC 국가 석유 생산량을 앞지르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이란-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재정난에 빠진 두 산유국이 석유를 헐값에 내다 팔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 중동 산유국들 역시 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증산을 하였고, 이것이 1986년부터 20달러 이하로 유가가 떨어지는 저유가로 이어졌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에서 이러한 저유가 기조는 원자재 수입 비용 경감 및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데 일조하였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제2차 석유 파동 당시 인플레이션을 잡고 급작스럽게 불어난 달러를 미국 은행으로 회수하기 위해 폴 볼커 총재의 주도하에 기준금리를 무려 21%까지 인상했는데 특히 당시 막 중공업을 시작하며 막대한 외채를 사용했던 한국은 빚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을 맞았고 경제가 크게 휘청거리게 된다.[5] 하지만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초 고금리 정책의 결과 인플레이션의 숨통이 끊어지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 석유 파동의 여파가 어느 정도 가시게 되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경기 부양을 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20%가 넘었던 미국 연준 기준금리가 10%대로 하락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이자 부담이 경감되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저금리가 나타났다.

1.2. 단군 이래 최대 호황

파일:3저 호황.png
저금리·저유가·저달러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 나타나면서 한국경제는 1986~1988년까지 연평균 12.1% 성장하고 통계작성이 시작된 1960년대 이후 처음으로 국제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며 실업률도 4.0%에서 2.5%으로 떨어지는 호황을 누린다. 한국뿐만 아니라 태국, 대만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도 수출이 급증하여 이 기간에 연 10% 이상의 고도성장을 하였다. 1986년 46억 달러, 1987년 98억 달러, 1988년 142억 달러, 1989년 51억 달러가량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 환율하락(896원→667원)에 힘입어 1985년 GNP 대비 52%를 차지하여 '외채망국론'마저 불러일으켰던 외채가 1989년에는 GNP의 14%~15% 수준으로 급락했다.[6]

그러나 85년 당시 외채망국론 또한 재야의 조야한 경제파국론에 입각한 낭설이었을뿐 3저 호황 이전에도 한국경제는 파탄상태는 아니었다. 1980년대 초반 외채가 있었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는 달리 구조적으로 장기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단기 상환 부담이 낮았다. 1985년에는 대부분의 외채가 장기채였고, 단기 채무 비율이 낮았기 때문에 외채 상환이 국제 금융기관과의 협상을 통해 잘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IMF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외채 위기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았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임금 상승이 이루어지면서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된다.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이제 먹고 사는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고,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자동차가 크게 보급되면서 '마이카 시대'가 열리는 등 내수시장도 폭발적으로 확대되었고, 이것이 다시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주식시장도 활황을 보여 종합주가지수가 1985년의 130포인트에서 89년 3월의 1000포인트로 7배 넘게 상승하고 주식투자인구도 20배 넘게 늘어나는 대기록을 세웠다.

시장 개방 및 자유 무역에 따른 국내 농/축산업 수입 장벽 완화로 인해 농민들의 혈압이 오르기도 하였지만, 이 시절에는 고도성장으로 인해 국격이 크게 상승하였고, 나라 전체에 일자리가 넘쳐났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괜찮은 상업, 공업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취업에 큰 무리가 없었고 대학만 졸업하면 기업에서 모셔간다는게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7] 열심히 하면 계층이 상승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고 국민의 81.3%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했으며[8] 지니 계수 또한 0.2 후반으로 북유럽 수준의 우수한 소득분배를 보였다. 물론 금융실명제 이전 시기라서 이 조사를 그대로 믿는것은 곤란하지만 그렇다 해도 현재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차이가 아주 큰 시대는 아니었다.

파일:1980년대~2000년대 지니계수변화.jpg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근로자들의 천국이었던 시절이었냐면 그건 결코 아니었다. 우선 3저 호황 당시에는 노동시간이 평균 3,000시간에 육박했고,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조가입률이 일시적으로 늘어났지만 노조를 결성한 계층은 주로 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 등 야당지지층이었던지라[9] 정부에서 노조가 주요 야당의 거점이 되어서 민정당의 조직력에 맞설까봐 노조에 대해 적대시하는 관행은 여전했고, 언론의 자유가 신장되었고,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노조가 결성되었다한들 언론사내 데스크진들이 갈아치워진것도 아니라 노동조건 개선에 대해서 냉담한 논조는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근로자들의 임금수준이 크게 상승은 했지만 그에 걸맞추어서 근로환경이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라는것이다. 거기에다가 노태우 정부때는 고물가까지 겹쳐서 체감 임금상승률이 생각만큼 높지 않았다.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 때의 선거결과를 보면 민정당의 득표율이 경제성장률이 높았음에도 30%대에 그친 이유 중 하나가 이 당시의 유권자층이 젊은층들이 압도적인 다수였던데에다가, 이들 중 대다수가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래도 노동시간을 감축하기 시작한것도 이때부터의 일로 1989년부터 야3당 합의로 노동시간 축소법안이 통과된 이후로 그해부터 주 44시간 노동제도가 시행되었으며(다만 몇년간은 주 46시간으로 운용되었다.) 1990년대 전반기에 경제성장률이 일시적으로 6%로 떨어지자 1시간 더하기 운동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딱히 자발적인 것도 아니라서 흐지부지 되었다. 1988년에 노동시간이 2,900시간이었던 것이 1990년대에는 2,500~2,600시간으로 줄어들었다.

1.3. 3저 호황 이후

단군 이래 최대라는 호황기는 미국의 검은 월요일일본의 버블 붕괴로 상징되는 세계 경제의 퇴조, 국내적으로는 원화 절상과 통상압력, 과잉투자로 인한 국제수지 악화로 1989년에 무너진다. "국민소득은 4천불, 소비수준은 2만불"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과소비 추방 공익광고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다. 그러나 이듬해 소득수준은 5천불, 소비수준은 2만불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과소비 추방 공익광고는 당시 지난해 소득 수준이 4천불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빠른 경제 성장을 보여준다. 게다가 1990년대 경기 퇴조는 비교적 경미한 수준에 그치며 6%를 넘는 고성장을 이어갔고, 1993~1995년에는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다시금 호황이 찾아왔다.
1993년의 서울 중구 명동 거리
다만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높은 성장의 이면에는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이어져온 불합리한 경제 구조, 특히 관치금융이라 불리는 금융체계의 부실함이 존재하였고,[10] 향후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부족하였다. 결국 이러한 문제가 곪아가다가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하게 된다.

보통 박정희 시대부터 이어진 막대한 정부 부채가 외환위기를 불러왔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부채 문제 (정확히 말하면 정부 부채)는 박정희 정부에서 추진하였던 정부주도 경제성장 모델이 손익분기점을 넘어 성공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가 널리 퍼진 것은 실제로 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이 시행되면서 과도한 투자금액으로 인해 상당기간 무역적자를 감당해야 할 정도로 외채가 크게 늘어난 것이 그 원인이다. 그 당시 전두환 정부 또한 외채가 많다는 야당과 재야의 비판을 무시할수 없었고, 때문에 과거의 물량수출방식에서 경상수지 적자 억제책으로 대외거래 기조를 바꾸게 되었다. 3저가 일어나기 전인 1985년까지 점점 경상수지 적자폭이 줄어들다가 1986년 3월부터 3저효과가 터지면서 경상수지 흑자로 전환되었고 1989년까지 누적흑자액 340여억 달러가량 기록하면서 같은 시기 외채는 170억 달러가량 줄어들었고, 순외채 30여억 달러로 줄어들면서 사실상 채권국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들어서게 된다. 즉, 부채 문제 자체만 놓고 보자면 70년대부터 꾸준히 육성한 중화학공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였고, 3저로 대표되는 경제 환경 개선으로 인해 그 열매를 맺어 많은 부분이 해결된 상태였다.[11]

실제로 1997년 당시 한국 정부의 부채는 GDP 대비 11% 수준에 불과하였다.(2021년 현재는 48.2%) 문제가 되었던건 바로 기업들의 단기 외채였다. 당시 한국은 매년 8%의 고성장을 거두었고 투자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또는 벌 수 있다고 믿는) 시기였기 때문에 수많은 기업에서 투자를 원하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무분별한 차입 경영이 이루어졌고, 이는 박정희 시대부터 이어져온, 관치금융이라는 국내 금융 환경과 만나 부실 경영이 광범위하게 퍼진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12] 또한 국내 금융사는 싼 금리로 빌릴 수 있는 단기 외채를 끌어다 이곳 저곳에 고금리로 대출을 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한국 금리가 외국의 2배였던 점을 감안하면 단기외채를 이용한 것 자체를 죄악시하면 절대 안되지만, 단기외채 상환요구가 한꺼번에 몰리는 경우를 생각치도 못하고 대비하지도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국내 제조업 평균 부채 비율은 외환 위기가 도래한 1997년 말에는 396%에 달할 정도였는데,[13] 이 중 약 절반이 단기 외채에 해당하였다. 비단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투자 역시 비슷하게 이루어졌는데, 종합금융회사는 단기 외채를 끌어다 동남아시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은 3저호황기 4년 이외에는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고, 1996년에는 GDP의 5%에 해당하는 적자를 기록하였는데, 원화 평가가치 절하를 통한 수출 증대를 유도하게 되면 외채가 급격하게 불어날테니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14] 더군다나 1990년대 중반 미국발 금리 인상 여파로 인해 미국 국내 경기가 일시 위축되면서 수출은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이 자국 금융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외채의 회수를 시작하였고, 1997년에 태국을 시작으로 발생한 동남아 외환위기는 결정타를 먹였다. 해외에서 단기 외채의 만기 연장을 거부하였고, 국내에는 이러한 외채를 갚을 수 있는 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300억 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당장 갚아야할 외채는 그 5배인 1,500억 달러에 달하였다.[15] 쉽게 말해 한국은 정부 부채비율도 낮고 기업도 흑자였지만, 기업들이 가져온 단기 외채의 양이 엄청난데다 그 만기일이 가까웠고,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할 국가 기관은 오래 이어진 관습으로 인해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외환보유고를 확보하는 등의 노력을 게을리 하였기에, 지금 당장 갚아야 할 돈을 갚지 못하는 모라토리움 직전 사태가 된 것이다.

외환 위기 직전, 당시 김영삼 정부는 시장 개방 및 자율화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계 금융 시장의 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국가 경제의 위험 신호에 손 놓고 '나몰라라'에 가까운 태도를 취하였다. 물론 정말로 아무 행동도 안하고 구경만 하고 있던건 아니긴 했지만, 이러한 위기를 사전에 예측하고 예방했어야 할 당시 정부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의 경제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서 OECD에 가입하는 등 위기를 사전에 인지했다고 하기엔 어려운 모습을 보였고, 97년에서야 심각한 경제 위기를 예측하긴 하였으나 이미 대처할 타이밍을 놓쳐도 한참 놓친 후였다. 이후 정권을 넘겨받은 김대중 정부는 시작부터 외환 위기 극복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넘겨받아야 했다. 물론 이후 짧은 시간 안에 위기를 극복하긴 하였지만, 그 부작용으로 주요 대기업들 중 상당수가 외국 자본에 넘어갔고, 기아자동차, 대우그룹 등 일부 대기업은 아예 작살이 났으며, 수 없이 많은 회사들이 도산하였고, 남은 기업들 역시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하여 거의 모든 국민들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외환 위기는 대한민국을 영원히 바꿔버린 대사건이었고, 이 때문에 촉발된 청년실업, 정리해고,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로 인해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16]

2. 3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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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높은 성장이 멈춘 2010년대부터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의 3저시대로 접어들었다. 신산업 육성 지연으로 한국 경제의 활력이 식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으며 잠재성장률은 2010년 3%대, 2020년 2%대까지 떨어졌다. 여기에 저출산까지 겹치면서 성장동력이 하락하였고 고령화를 포함하여 3저1고(3低1高)시대가 도래하였다. 고도성장기에는 10%가 넘었던 적금이자가 3%밑으로 내려가면서 수익성이 높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고 2019년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3. 3저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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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인해 대공황, 대침체 이후 최악의 경제침체가 오면서 3저현상이 나타났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무제한 양적완화을 실시하면서 금리를 크게 낮췄고, 이에 따라 다른 나라들도 금리를 인하하였다. 또한 경제위기에 안전자산인 달러와 금으로 몰리면서 원화가치가 하락하였고, 유가폭락으로 인해 보관료를 줄이기 위해 원유를 사면 돈을 주는 마이너스 유가도 나타나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3저호황은 3저가 원인이 되어 호황을 이끌었다면, 2020년 코로나발 3저현상은 경제 충격의 결과로 3저가 나타난 상황을 뜻한다.

4. 3고 불황

3저 호황과 반대말인 고금리, 고유가, 고달러를 말하는 말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영향으로 고유가의 현상으로 인해 미국의 물가가 크게 상승하여 물가를 잡기를 위해 미국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미국 달러의 가치가 크게 상승하고 대한민국도 환율 방어를 위해 금리 인상을 하면서 이로 인한 불황을 겪는 현상을 말한다.

통상 매체에선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로 정리되어 표현되나, 3고라는 단어로도 쓰이는 추세이다.
[1] 그러나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본에 가서 40억 달러를 거의 구걸하다시피해서 얻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박정희 정부 시절의 경제 상황을 너무 과대평가해서도 안 된다.[2] 1986년부터 엔달러 환율이 크게 하락(엔화 강세)하고 국제유가 또한 급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3] 중국 위안화는 시기에 따라 자유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달러에 연계되었으며, 1980~1995년 사이에는 가격 경쟁력을 위하여 단계적으로 5배 이상 절하되었다.(1980년 1 USD = 1.5 CNY, 1994년 1 USD = 8.62 CNY)[4] 여담으로 이로 인해 일본 정부는 금리 인하 및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대책을 내었는데, 이것이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5] 물론 이는 우리만의 일은 아니어서, 미국에서도 중소기업의 40%가 도산하고 실업률도 10%를 상회하는 등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었다. 오죽했으면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의 숨통을 끊음과 동시에 카터 행정부의 숨통을 같이 끊어버렸다고 할 정도였다.[6] “외채 위기론은 지나친 걱정”[7] 물론 이는 대학진학률이 현재보다 낮았던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후술할 기업의 과잉투자 때문이었다.[8] 2018년 설문에서 자신을 중산층이라 응답한 비율은 48%에 머물렀다.[9] 물론 재야진보단체가 영향력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민중의 당이나 민중당 등 진보정당들이 총선에서 줄줄히 물을 먹었던 결과를 보면 노조를 결성에 참여한 사람들의 지지성향은 대체로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쪽에 쏠려있다고 보는것이 맞다.[10] 과소비 항목에 서술된 바와 같이 역대 정권은 국민의 저축 촉진을 위해 개인 소비를 죄악시하는 캠페인을 벌여왔지만 실제 대부호도 아닌 일반 국민의 소비가 국가 경제를 파탄시킬 정도로 과도하기는 어렵다. 1970년대, 1990년대에 한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외채 문제도 본질은 기업의 과잉투자로 인한 경상수지 악화이며(경상수지는 사실상 총저축과 총투자의 차액으로 나타난다) 투자가 충분한 부가가치로 이어지지 못할 때 그 결과가 중진국 함정, 심하게는 대외채무 불이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11] 3저호황과 내수팽창 그리고 민간대자본의 성장[12] 덤으로 이는 뿌리깊은 정경유착을 불러왔고, 이로 인한 부패 문제 역시 심각하였다.[13] 1990년대 정부가 대기업의 과잉투자 억제를 위해 내세운 가이드라인이 자기자본비율 20%, 즉 부채비율이 400%이다. 그나마도 상호출자에 의한 자본 부풀리기를 걷어내지 않은 액수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채비율은 훨씬 높았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부채비율 200%를 절대기준으로 내세운 금융 긴축으로 평균 부채비율은 2018년 말 75.3%로 떨어졌다.[14] [경제위기 이대로 둘 수 없다] 무역적자 사상최대[15] 외환 위기 이후 20년이 지난 2018년에는 4,000억달러로 세계 8위의 외환보유 국가가 되었다.[16] 물론 이것과 더불어 컴퓨터를 비롯한 여러 자동화 기술의 발달이 지난 20여년 넘게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실업률을 높이는데 크게 일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