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독일의 스포츠카 제조사 포르쉐의 역사를 서술한 문서.2. 회사 연혁
2.1. 창설
자동차계에 길이 남을 천재 공학박사 페르디난트 포르셰, 자본가 아돌프 로젠베르거[1]와 안톤 피에히가 1931년 설립하였다. 창립자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기계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포르쉐를 설립하기 한참 전인 1899년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Mixte를 만들기도 하였다.[2]창설 직후의 포르쉐는 차량을 직접 생산하는 회사는 아니었고, 자동차 업계에서 개발이나 컨설팅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였다. 이들의 초기 프로젝트 중 하나는 히틀러 총통이 의뢰했던 저렴한 가격에 일정 수준의 성능을 충족하는 국민차 개발으로, 포르쉐는 타트라 T97의 구조와 설계 개념 등을 베껴 폭스바겐 비틀을 제작해냈다. 이때부터 폭스바겐과 포르쉐 간의 협력관계가 시작되었고, 이는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자서전 "CARS"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2.2. 제2차 세계 대전과 포르쉐
VK 45.01(P)의 시운전 이후 촬영한 포르쉐 개발진들의 단체 사진 |
포르쉐는 VK 45.01(P)를 설계해 헨셀의 티거 1과 경합했고,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티거 2와 야크트티거 개발 당시 포탑과 현가장치 설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참가한 전차 설계 방면에서의 성과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6호 전차 티거 개발에 있어서 포르쉐의 설계안은 티거 1도, 티거 2에서도 헨셸의 설계안에 밀려 주력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그나마 티거 1의 경우 헨셸이 포탑 설계를 기한에 맞출 수 없다는 이유로 포르쉐가 설계한 포탑이 탑재되었으나, 티거 2에서는 포르쉐 설계안의 탈락과 설계 자체의 결함으로 인해 초기생산분 일부에만 포르쉐가 설계하고 크루프에서 제작한 포탑이 탑재되었다.
헨셸의 설계안이 채택된 6호 전차 티거와 포르쉐 설계안이었던 VK 45.01(P), 그리고 티거 2와 VK 45.02(P)를 비교해 보면 큰 형상은 비슷하더라도 차체에서 눈에 띄는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이는 포르쉐의 전차 설계에서 문제를 만들었던 하이브리드 구동 방식에서 기인했다.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는 자신이 제작했던 차량인 믹스떼(Mixte)처럼, 엔진은 발전만을 담당하고 구동은 모터가 담당하는 방식을 추구했다.[3] 시기를 감안했을 때, 개념 자체는 충분히 선진적이었다.
하지만 포르쉐 박사가 추구했던 방식의 성능과 신뢰성은 당시의 기술력을 감안했을 때, 군용이 아닌 기술실증 단계에서 끝나야 할 수준이었다.[4] 자동차보다 훨씬 무겁고 저속으로 운용하는 전차의 특성상, 처음부터 최고 토크를 낼 수 있는 전기 모터를 구동에 사용하는 개념 자체는 납득할 수 있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모터는 그러한 수준의 부하를 견딜 만한 수준이 아니었고, 과부하로 인해 주행 중 고장나거나 화재가 일어나는 문제가 생겼다. 병기의 가장 중요한 점이 신뢰성과 생산성이란 걸 감안했을 때, 군용 무기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전시상황이라는 특성상 구리의 수요가 매우 높았는데, 전기모터를 전차의 구동계통에 사용하는 것은 자원 활용 측면에서 부담을 불러올 것이 자명했다.
이러한 문제점과 더불어 경쟁에서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포르셰 박사의 설계안은 정치적 문제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일정 수량의 생산 허가를 받거나 이미 차체를 생산해 둔 경우가 잦았다. VK 45.02(P)는 3대분의 차대가 완성되어 있었고, 그나마 전황이 나은 시기에 개발된 VK 45.01(P)의 경우 약 90여 대의 차대가 만들어져 있을 정도였다. 이는 당시의 빈약했던 독일의 공업 생산력과 자원을 티거 등의 단일 전차로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전시 상황에서 자원을 잘 사용하려면 체계를 일원화하는 등으로 생산의 효율을 높여야 하는데, 전차 한 대가 아쉬운 상황에서 승인되지 않은 시제품을 생산하고 기업 간 알력 싸움을 벌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치 독일은 일단 만들어진 다수의 VK.45.01(P) 차체를 써먹기 위해서 페르디난트/엘레판트라는 이름의 구축전차를 제작하거나 구난전차 등으로 활용했다.[5] 이러한 공업적 비효율이 지속되면서[6] 나치 독일의 기갑차량 체계는 매우 복잡해졌다.
포르쉐 박사의 설계안이 채택된 설계안들 사이에 끼어드는 동안, 나치 독일이 상대했던 소련은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자국의 전차 체계를 정립하고 있었다. 구식의 경전차들과 KV 전차, 구형 자주포들은 전쟁을 거치며 도태시켰고, 생산 라인을 중형전차 T-34를 주력으로 정리하고 그 차체에 기반한 파생형 대전차자주포 SU-100로 정리했다. 또한 돌파용 IS-2 중전차와 IS-2 계열의 다목적 대형 거포 플랫폼인 ISU-152/ISU-122 자주포, 보병 지원용으로 경전차 차체를 개조하여 만든 작은 SU-76M 자주포로 큰 틀을 정리했다. 전차 하나하나의 스펙은 다소 부족할지언정, 체급별, 용도별로 역할을 분배하는 개선 작업에 힘썼던 것이었다.
이외에도 나치 독일이 전황을 뒤집기 위한 병기에 집착하며 전차 스스로의 효율보다 매우 무거운 중전차 개발에 점점 비중을 쏟으면서, 초중전차인 8호 전차 마우스에서는 포르쉐의 설계안이 크루프를 이기고 채택되었으나 개념 자체의 한계만 드러날 뿐이었다. 당시의 기술력과 공업력으로 만든 마우스 전차는 전투중량 200톤에 달하는 비대한 수준이었고, 결국 유류수급의 문제나 기동성 문제[7]에 시달리다가 후퇴하면서 자폭시키는 결말을 맞았다.
결국 나치 독일의 과도한 요구사항과 더불어 당시의 부족했던 기술력, 그리고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대한 집착 과 내부 알력싸움 등이 종합적으로 결합되어 포르쉐의 전차 설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종전 이후 포르쉐의 민수 자동차 분야와 방산 분야는 각각 주식회사인 포르쉐 AG와 공개회사인 포르쉐 KG로 분리되었다.
2.3. 종전 이후
창립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2차대전 종전 후 전범으로 체포되어 1945년 12월부터 복역하고 1949년에 풀려난 뒤, 병을 얻어 1951년에 사망했다. 이후 그의 아들인 페리 포르쉐가 경영 전반에 뛰어들어 탁월한 경험과 경영 능력을 바탕으로 차츰 회사의 규모를 성장시켰다. 1948년 폭스바겐 비틀 기반의 스포츠카이자 포르쉐의 첫 번째 자동차인 포르쉐 356을 만들면서 시작하였다. 356의 별명이 "점프하는 개구리"였고 356 이후 포르쉐에서 나오는 차량들은 "개구리"라는 별명이 붙는다.간판 차종인 911은 1963년 등장했다. 한동안 911 차체에 356의 4기통 엔진을 얹은 912를 팔기도 했고, 912의 뒤를 이어 911 아랫급 모델로 914를 폭스바겐과 함께 개발해 만들기도 했지만 많이 팔지는 못했다. 911의 후속 모델로 개발한 포르쉐 928도 있었지만 포르쉐에 그란투리스모 차량 하나를 추가시켰을 뿐 911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포르쉐가 만들어 성공한 차는 911 하나밖에 없었다.
이후 모터스포츠에 참여하며 브랜드 정체성과 인지도를 정립하는 한편, 브랜드 라인업을 확장하고 북미 시장도 진출했으나 점차 경영에서 한계를 맞닥뜨렸다. 대표 모델인 포르쉐 911도 가시적인 변화 없이 자잘한 변화만 지속하는 상태였으며, FR 스포츠카 라인업도 1976년에 나온 924를 발전시킨 944를 다시 개량해 968을 생산하고 있었다. 8기통 그랜드 투어러인 포르쉐 928의 경우 1977년부터 1995년까지 18년간 세대교체 없이 개량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라인업 확장을 위해서 1980년대 후반부터 911의 디자인을 기반한 4도어 세단 989를 개발했으나, 개발비 부담과 수익성 확보에 난항을 겪었고 총괄 엔지니어였던 울리히 베즈가 이적하면서 1992년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8]
이런 상황 속에서 새로이 회장으로 취임한 벤델린 비더킹은 포르쉐 구조조정과 감축에 힘썼다. 토요타식 경영모델을 도입해 생산 공정을 효율화하는 한편 직원도 감축했고, 1996년 박스터(986)을 출시해 엔트리 라인업을 추가했다. 911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었던 박스터는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해 포르쉐를 살려내게 된다.
다음으로 출시된 차기 포르쉐 911(996)에서도 상당한 논란을 감수하면서 대대적인 변혁을 불러왔다. 개발비를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박스터와 전면부, 그리고 대시보드를 공유하면서 포르쉐 라인업 특유의 원형 헤드램프를 달걀프라이 모양으로 수정했고 팬들의 격렬한 반발을 겪기도 했다.[9] 또한 성능 향상에 한계가 있던 공랭식 엔진 대신 수랭식 엔진으로 전환했으며, 과거의 4스포크 스티어링 대신 3스포크 형태로 바꾸기도 했다. 급격한 변화로 인해 기존 팬덤에게서 반발을 겪기도 했지만, 좀 더 대중적인 성향을 띄게 되면서 911과 박스터는 성공가도를 달려나갔다.
신형 모델들의 성공적인 투입으로 부도 위기를 이겨내고, 하나 둘씩 인수당하는 다른 스포츠카 브랜드들의 운명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회사 체질을 개선한 벤델린 비데킹은 단숨에 스타 경영자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후에는 전 세계적인 SUV 붐에 주목하여 폭스바겐과 공동 개발로 포르쉐 최초의 황소개구리 SUV인 카이엔을 내놓았고, 황소개구리라는 당시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성공하면서 현재까지 포르쉐 매출의 대부분을 달성하는 라인업을 구축했다.
카이엔의 생산에 발맞춰, 포르쉐는 라이프치히에 공장을 신설한다. 라이프치히 공장에서는 마칸, 파나메라가 생산되고 있으며, 카이엔도 2세대까지만 해도 차체를 투아렉, Q7 등이 생산되는 폭스바겐의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현지공장에서 제작한 후 라이프치히로 옮겨 조립을 끝냈으나, 3세대부터 브라티슬라바 완전 생산으로 전환했다. 911 등 플래그십과 스포츠카들은 슈투트가르트 주펜하우젠 공장에서 계속 생산된다.
2.4. 2000년대 폭스바겐과의 인수전
2000년대 후반, 포르쉐와 폭스바겐의 인수전 속에서 인수나 경영의 주체가 어느 쪽으로 넘어갔는지에 대한 오해나 혼란이 있고, 2012년 폭스바겐이 포르쉐 지분을 100% 인수하면서# 단순히 폭스바겐이 포르쉐와의 인수전에서 승리한 것처럼 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인수전의 쟁점은 피에히 가문의 경영권 확보라고 보는 것이 맞다.포르쉐와 폭스바겐의 관계는 단순한 협력관계를 넘어 한 회사처럼 움직여 왔다. 1세대 폭스바겐 비틀의 설계를 주도한 것은 페르디난트 포르셰였으며, 이 플랫폼을 가지고 만든 스포츠카가 포르쉐의 첫번째 차량이었던 356이었다. 이후의 911은 독자적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 사이에 나왔던 보급형인 914는 폭스바겐에서 라이선스 생산을 하기도 했고, 투아렉의 PL형 플랫폼을 가지고 와 카이엔을 만들기도 하는 등, 포르쉐와 폭스바겐은 아주 오랫동안 한 회사처럼 기술을 공유해 왔다. 페르디난트 피에히를 비롯한 포르쉐 일가 인사들의 상당수는 폭스바겐 그룹 소속으로 있기도 했다.[10]
포르쉐는 오너 가문의 일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폭스바겐 그룹 이사회 의장으로 있던 시기, 중동 자본이 폭스바겐의 지분을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폭스바겐의 경영에 변곡점이 생기게 된다. 기존에는 니더작센 주정부의 '폭스바겐 법'으로 인해 주식 보유량에 상관없이 20%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었으나, 이 법으로 인해 의결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주주가 마땅히 없던 폭스바겐 특성상 여러 집단에서의 중동 자본이 들어오게 된다면 폭스바겐이 중동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피에히 등의 폭스바겐 이사회는 외국 자본으로주터의 경영 간섭을 방어해야 한다는 명분을 들어 의결권 제한을 없애자는 가닥을 잡았고, 피에히는 증자 후 기준으로 30%에 달하는 양의 신주를 인수하며 최대주주가 되었다. 포르쉐의 대주주인 동시에 폭스바겐의 의장이었던 피에히는 폭스바겐 주식을 늘리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포르쉐에 넘겼고, 포르쉐는 25퍼센트의 폭스바겐 주식을 가진 대주주로 등극했다. 포르쉐 CEO 빈델린 비데킹의 이름으로 시작된 포르쉐의 폭스바겐 지분 인수는 2005년 시작된 지 5년 만에 과반을 넘겼으며, 포르쉐 AG와 폭스바겐 AG의 최대 주주가 된 포르쉐 가문은 두 기업 동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섰다. 동시에 포르쉐는 비데킹 취임 이후 90년대부터 확장해 온 브랜드 포트폴리오로 회사 자체의 체급도 키워 두었다.
물론 아우디, 람보르기니, 벤틀리, 부가티 등 다양한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고, 유럽 시장에서 손꼽히는 중공업 회사인 폭스바겐의 특성상 피에히의 행보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포르쉐의 대주주 중 하나인 노르웨이 투자청은 포르쉐 일가의 배만 불려주는 합병이라고 반대했고, 독일 정부와 유럽연합도 좋게 보지 않아서 이리저리 태클을 걸었다.
이렇게 인수가 여러 제약에 막혀서 늦어지는 사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서 이어진 대침체와 유가 상승으로 매출이 떨어지며 현금 유동성이 나빠졌고, 폭스바겐 인수 과정에서 부채가 쌓여 있던 포르쉐는 졸지에 100억 유로에 달하는 부채를 지면서 재정위기를 겪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폭스바겐 AG가 80억 유로를 들여 포르쉐를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포르셰-피에히 가문이 보유한 포르쉐 SE 산하에는 폭스바겐 AG가, 폭스바겐 AG 산하에는 포르쉐 AG로 정립되었다.
결국 승자는 폭스바겐도, 포르쉐도 아닌, 양 사 곳곳에 퍼져 있던 포르쉐-피에히 가문의 구성원들이었다. 인수가 마무리된 이후 포르쉐 AG와 폭스바겐은 둘 다 폭스바겐 그룹의 자회사가 되었는데, 이 폭스바겐 그룹 지분의 반 이상을 포르쉐 쪽 지주회사인 포르쉐 SE가 가지고 있으며, 포르쉐 SE는 포르쉐-피에히 일가가 지분 50%, 투표권 100%를 쥐고 있는 가족기업이다. 전체적으로 포르쉐와 폭스바겐 그룹 양쪽 모두 인수 이전에 비해 포르쉐 일가의 권한이 더욱 커졌고, 다른 주주들의 수와 비중이 줄어들었다.즉 포르쉐와 폭스바겐의 '인수전'은 포르쉐 일가와 고종사촌 가족인 피에히 일가가 두 회사 모두를 완전한 가족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였으며, 누가 누구를 인수하느냐는 겉모습의 차이였을 뿐이다. 심지어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두 회사의 합병작업이 자기 주도로 잘 마무리되고 나면 포르쉐의 공격을 앞에서 주도했던 벤델린 비데킹을 자신의 후임자로 삼으려 했다는 말이 있으니 말 다한 셈이다.
해당 인수전의 배경과 결말에 대해 정리된 탑라이더 기사.#
2.5. 근황
이처럼 고부가가치의 브랜드 파워와 다양한 라인업의 차량들을 대량 생산하는 사업 구조 덕분에 2017년도에 거둔 실적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수준. 매출 234억 9100만 유로에 당기순이익은 31억 3900만 유로로 대한민국 기업과 비교하면 매출은 기아자동차의 4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당기순이익은 그 3.5배에 달하여 동종업계 최고 수준의 수익성을 내고 있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알겠지만 포르쉐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이다. 그러나 그 승리는 스스로 연구를 거듭하고 때로는 자신의 개성까지 포기하며 오직 빠르지만 누구나 탈 수 있는 차를 만들겠다는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셰의 이념이 이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SUV인 카이엔, 마칸과 4인승 세단[11]인 파나메라를 라인업에 추가했다.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의 한이 단단히 씌였는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만드는 데에 재미가 들렸다.[12] 아예 내연기관이 없는 전기자동차 박스터 E도 2011년, 16년에 공개하였고 911 GT3 R에 하이브리드를 접목시키더니, 급기야 918 스파이더같은 하이브리드 슈퍼카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뉘르부르크링 노르드슐라이페에서 양산차 최초로 7분대의 벽을 깼다![13] 2015년 9월 15일에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4인승 전기차인 미션 E(Mission E)를 발표했는데, 600마력 이상, 제로백 3.5초 이하에 주행거리 500 km, 완전 충전 15분이라는 미친 스펙을 자랑한다. 이를 바탕으로 2019년 타이칸이라는 양산 모델을 발표했다.
2012년 911의 새로운 모델이 나왔다. 코드네임 997에 이은 998로 예상되었으나 뜬금없이 991로 뒤돌아갔다. 카레라는 수평대항 6기통 3.4L에 350마력 (전 모델에 비해 5마력 상승), S는 400마력 (전모델에 비해 15마력 상승)이다.
실내 디자인은 파나메라, 카이엔과 비슷해졌으며 후미등이 더 날렵해졌다. 그리고 이전모델은 엔진룸을 열면 엔진이 보였지만, 991은 엔진룸을 열면 팬 두 개와 냉각수, 엔진오일 주입구만 보인다. 그 이유로는 RR 레이아웃이라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997에 비해 엔진이 좀 더 뒷바퀴 쪽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엔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991 베이스로 GT2를 제외하고 터보, GT3, 4WD와 타르가 등 다양한 모델이 출시되었다.
그리고 박스터와 포르쉐 카이맨도 새로이 페이스리프트되었다. (코드네임 982) 265마력, 315마력 (S 모델) 당연히 이것도 실내가 991과 비슷하며 계기판 우측에 LCD가 들어갔다. 또 이번 세대부터 박스터와 카이맨에는 718이란 접두어가 붙는데, 1950~60년대 포르쉐가 생산했던 레이스카인 포르쉐 718의 이름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997 시절의 포르쉐 GTS 라인업[14]은 주로 단종전 파워킷+기타 옵션 추가 한정판 모델로서 911의 경우 GT3를 제외한 자연흡기 끝판왕 모델로 판매가 되었지만 2015년 11월 현재에는 박스터, 카이맨의 경우 S모델 보다 더 상위 출력의 라인업이고 카이엔의 경우에는 기본모델을 제외한 S와 터보 모델[15]사이의 4.8L V8 자연흡기 엔진 라인업이었으나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후 V6 3.6L급 트윈터보 엔진으로 변경되어 S와 터보 사이의 라인업으로 자리잡았다. 다만 파나메라는 S[16]와 터보 사이의 라인업인 것은 동일하나 페이스리프트 이후에도 여전히 4.8L V8 자연흡기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마칸도 카이엔과 파나메라와 마찬가지며 엔진은 3.0L V6 트윈터보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즉 한줄 요약하면 카이맨과 박스터는 S보다 15마력 높은 엔진, 파나메라, 마칸, 카이엔은 S보다 20마력 높은 엔진을 달고 있는 라인업이라고 보면 된다.
포르쉐의 광고모델로 러시아 출신의 여성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와 계약을 맺고 적극 홍보에 나서고 있다.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수평대향식 엔진은 6기통으로 나오지만, 2015년에는 수평대향식 4기통 2.0/2.5L 가솔린 터보 엔진도 개발했다고 한다. 카이맨과 박스터에 장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911의 991.2부터는 2015년 11월에는 다운사이징 추세에 맞춰 기존 991.1에 사용하던 3.4L/3.8 F6 자연흡기 엔진을 사용하지 않고 기본형과 S 모두 3.0L F6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으로 변경하였다. 기본형과 S의 엔진 출력은 370/420HP로 전보다 출력은 향상되었다. 그리고 911 카레라 S 모델은 터보 라인업과 GT2, GT3 계열을 제외한 최초의 제로백 3초대 모델이라고 한다.[17][18]
메르세데스-벤츠가 AMG를 인수했듯, 2014년에는 세계 최고의 포르쉐 튜닝회사인 만타이 레이싱(Manthey-Racing)를 인수했다. 한국에는 비교적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RUF의 하체와 테크아트의 공력성능, 겜발라의 엔진 기술을 다 합쳐도 만타이 하나한테는 모든 것이 다 상대도 안 된다는 그 전설적인 회사이다. 포르쉐를 가장 잘 아는 튜너이자 레이싱 팀이지만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소극적인 마케팅 문제와 더불어 공도용 튜닝 킷보다는 직접 뉘르부르크링 24시 등의 내구 레이스에서 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19] 트랙데이를 즐기는 제대로 된 하드코어 모터스포츠 매니아 오너들만을 위한 튜닝제품들만을 많이 내놓았기 때문에 서킷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에서는 정말 포르쉐 매니아가 아니라면 듣거나 접하기조차 어려운 이름의 회사였다. 가뭄에 콩나듯 공도용 컴플리트 튜닝카도 내놓긴 했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996 시절에 996 터보를 기반으로 엔진출력 700마력에 최고시속 360 km/h[20]에 풀카본 와이드 바디킷으로 중무장한 M700 모델이 당대 최고의 포르쉐 컴플리트 튜닝카로 빠지지 않고 손꼽힌다.[21] 가격도 당대 포르쉐 컴플리트 튜닝카중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4억원대였다. 일본 포르쉐 오너스 클럽에 구경을 가 보면, 상당히 많이 보이는 자동차다. 인수가 되었어도, 기술개발에 소홀하지 않고 실력이 여전히 건재한지 최근 911 GT2 RS MR의 개발에 다수의 인원들이 참여해 뉘르부르크링 6분 40초 33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는데 가장 결정적인 큰 역할을 했다고.
놀랍게도 2007년 말경에 경기도 하남에 한국 총판이 세워졌었지만, 안타깝게도 세계 금융 위기를 맞아 2008년 말 철수한 역사가 있다.
2.5.1. 디젤게이트 연루 의혹
자세한 내용은 디젤게이트 문서 참고하십시오.2015년 11월, 포르쉐의 2015년형 카이엔에도 소프트웨어를 통한 조작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미국 환경청의 발표가 있었다. 동종의 V6 3.0 디젤을 탑재한 2014년 폭스바겐의 투아렉, 2016년 아우디 A6 콰트로, A7 콰트로, A8, A8L, Q5 등도 비슷한 조작이 있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2015년 11월 4일에 폭스바겐의 3.0 리터급 디젤 차량에서도 조작이 있었음을 폭스바겐 측이 시인했는데, 해당 차량에 포르쉐 카이엔이 있다.
디젤게이트가 마무리된 이후 카이엔의 디젤 모델은 3세대부터 나오지 않게 되었고, 같은 엔진의 파나메라, 마칸 디젤 모델도 모두 단종되었다.
2.5.2. 전기 스포츠카의 선두주자
최근에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아닌 순수 전기 스포츠 세단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전에 공개했던 미션 E를 양산화하는 것으로, 차량명은 포르쉐 문장의 도약하는 말에게서 따온 타이칸 (Taycan). # 그리고 2019년 9월 4일에 공개되었는데 '터보' 모델의 제로백이 3초, '터보 S' 모델은 2.6초다.[22]'전기차도 포르쉐가 만들면 다르다.', 포르쉐의 첫 번째 EV 타이칸 글로벌 데뷔 전기차임에도 2단 기어가 적용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며 덕분에 최고속도가 약 270 km/h로 상용 전기차 중 가장 빠른 최고 속도를 가지고 있다. 또 기어가 2개 있기 때문에 극초반 제로백 구간의 가속은 테슬라 모델 S 고성능 버전과 거의 비슷하다.사실 테슬라의 경우, 스포츠 쪽에서는 모터스포츠에 전통있는 기존의 기업들[23]을 절대로 뛰어 넘을 수가 없다. 드래그 레이스 같이 직진에서의 성능은 출력만 높으면 된다. 따라서 모터스포츠에 경험이 전혀 없어도 공학적 지식만 가지고 있다면 출력을 높이고 뛰어난 드래그 기록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코너들이 많고 급가속과 급감속이 많은 서킷이나 공도에서의 와인딩 길, 시속 200km 이상의 진짜 고속에서의 다운포스 생성은 단순히 엔진이나 전기모터의 출력만 높이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서스펜션과 트랜스미션, 에어로 파츠들과 냉각 장치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겪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 베이스가 있어야 타이칸 같은 제대로된 전기 스포츠 카가 탄생하는 것이다. 모델 S는 서킷에서의 성능은 2010년대에 만들어진 300마력 하이브리드카인 BMW i8 에게도 패배할만큼 테슬라가 진정한 운전재미를 소비자에게 주고 싶다면 가야할 길은 한참 멀었다. 출력이 높으면 직진에서 빠르지만 길에 높낮이와 커브 즉 3차원적 굴곡이 많으면 다루기가 더 까다로와지므로, 설계가 더 어려워진다. 서킷 포함한 실제 도로 주행성능에서 100여 년에 이르는 노하우를 가진 여러 기존 회사를 이길 수가 없다.[24][25]
2021년에는 미션 R을 공개했다. 이번에는 전기 스포츠 쿠페다. 포르쉐 911 시리즈와 대적하는 성능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다. 2022년에는 미션 R의 기술을 차용하여 포르쉐는 718 카이맨 GT4 E-퍼포먼스라는 레이스 차량을 만들었다.
2.6. 특이사항
특이한 경력을 말하자면 페리 포르쉐의 주도하에 포르쉐 디젤이라는 법인 명의로 트랙터를 제조했던 경험도 있다. 1959~1963년까지 12만대나 팔렸다고 한다. 이 트랙터들도 포르쉐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이름은 Junior와 Super.[26] 이와 관련된 광고도 있다.# 참고로 포르쉐 디젤은 1963년 메르세데스-벤츠 프리드리히스하펜 엔진제작사(Mercedes-Benz Motorenbau Friedrichshafen GmbH)에 인수되었다.[27]포르쉐의 전통 중 하나로, 일반적으로 키홀더가 핸들 오른쪽에 있는 다른 차량과는 달리, 포르쉐 차량들은 전통적으로 왼쪽에 위치한다. 초창기 자동차 레이싱은 운전자가 차량 밖에서 대기하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차량에 탑승하여 출발하는 형식이었는데,[28] 이때 왼손으로 차량의 시동[29]을 걸며 오른손으로는 기어변속을 하며 바로 출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레이싱 DNA를 현재까지 유지하는 중이다. 유구한 전통의 포르쉐만이 가능한 고집이다.
그리고 중국에 진출하려고 1994년에 C88이라는 4도어 세단도 만들었던 적이 있다. 아주 단순한 제작공정으로도 좋은 품질과 안정성을 자랑했지만, 당시에 중국은 그 어떤 외국 제조사에게도 생산허가를 안 줬기 때문에 결국은 양산이 되지 않았다.[30] 현재 포르쉐 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미국의 이륜차 제조사인 할리데이비슨과 함께 이륜차용 엔진을 만든 바가 있는데, 이건 꽤 성공적인 모양이다.
테스트용 프로토타입에도 장난을 많이 치는데,# 이렇게 전면/후면 램프 주위에 과도한 가짜 LED 혹은 램프 스티커를 달아버리거나 은박 테이프로 가짜 크롬라인을 두르는 등 디자인을 잘 알아볼 수 없게 한다.
리막 그룹과 합작 법인을 설립하여 리막 오토모빌리와 부가티를 해당 법인 산하에 두고 있다. 참고로, 포르쉐는 리막 그룹의 지분 22%를 보유중이기도 하며, 포르쉐 타이칸과 아우디 e-tron GT에 사용되는 폭스바겐 그룹 J1 플랫폼을 공동개발하기도 했다.
3. 모터스포츠 역사
{{{#!wiki style="margin: 0 -10px -5px; word-break:keep-all; min-height: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차급 | 현역 차량 | 퇴역 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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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의 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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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63 / 718 GT4 RS 클럽스포츠 / 99X 일렉트릭 / 911 GT3 CUP / 911 GT3 R |
모터 레이싱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 중 하나인 포르쉐와 르망의 시작은
356 SL 쿠페의 클래스 승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포르쉐는 라 사르트 서킷에서의 108번의 클래스 우승과 19번의 전체 우승을 포함하여,
르망에서 영원히 남을 추억을 수없이 만들어 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장 중 한 곳에서 열리는 최고의 레이싱 대회에서의 성공은,
포르쉐에게 있어서 911이라는 숫자의 조합 만큼이나 중요한 자산 중 하나입니다.
- 포르쉐 이코넨 서울 "모터스포츠 존"에 새겨진 글.
356 SL 쿠페의 클래스 승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포르쉐는 라 사르트 서킷에서의 108번의 클래스 우승과 19번의 전체 우승을 포함하여,
르망에서 영원히 남을 추억을 수없이 만들어 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장 중 한 곳에서 열리는 최고의 레이싱 대회에서의 성공은,
포르쉐에게 있어서 911이라는 숫자의 조합 만큼이나 중요한 자산 중 하나입니다.
- 포르쉐 이코넨 서울 "모터스포츠 존"에 새겨진 글.
3.1. 오픈휠 레이싱
====# 포뮬러 1 #====그 이후로는 F1 무대에 전혀 나서지 않고, 한때 별 관심은 없는 모양이었으나 2018년 F1 엔진 규정회의에 포르쉐가 참석하는 등 계속해서 참석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 공식적으로 F1에 참가할 생각이 없음을 선언했다. 덤으로 현재의 F1은 돈만 쳐먹고 아무런 참가이유가 없는 스포츠라고 깠다. 그도 그럴 것이, WEC나 GT 시리즈 같은 스포츠카 레이스나 WRC 같은 랠리는 상용차에 적용할 기술력 발전으로 이루어져 브랜드나 차량 홍보 효과로 인한 간접 수입으로 연결되지만 포뮬러 1은 레이스카 차체나 엔진 내구력이 떨어져 자사 양산차에 써먹을 데이터가 없어서 포르쉐에게는 흥미가 없을 수 있다. GT3, WEC에만 참가하는 이유는 차량의 개발 폭을 완전히 다르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아우디와 더불어 2026년 F1 엔진 규정이 바뀌는 해에 파워유닛 제조사로 참가할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일례로 포르쉐는 레드불, 아우디는 맥라렌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전해지는 상황이었지만.. 레드불 레이싱의 지분 50% 인수를 마친 후 레드불에 개입을 하려 했던 포르쉐를 반대하는 내부 요인으로 인해 계약 협상은 결렬되었다. 따라서 VW AG에서는 아우디만 F1 참가를 하게 되었고, 포르쉐는 레드불을 제외한 다른 팀을 통해서는 F1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포드가 레드불과 계약하면서 포르쉐의 F1 참여는 없는 일이 되었다.
F1 참가를 위해 10기통 엔진을 만든 적도 있는데, 이 물건은 수많은 개량을 거치는 것을 반복하다가 창고행, 그리고 개량을 한번 더 거쳐서 카레라 GT의 엔진으로 사용된다.
3.1.1. 포뮬러 E
자세한 내용은 태그호이어 포르쉐 포뮬러 E 팀 문서 참고하십시오.2022-23시즌부터 아발란치 안드레티 포뮬러 E에도 포르쉐의 파워트레인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2023-24시즌 파스칼 베를라인이 포뮬러 E 월드 챔피언에 등극했다.
3.2. 스포츠카 레이싱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d64ff><tablebgcolor=#0d64ff> | 르망 24시 종합 우승 기록 |
포르쉐 이전까지의 르망 24시는 초창기에 벤틀리, 알파로메오, 재규어, 페라리가 차례대로 시대를 양분했는데 1970년 917을 시작으로 10년 단위로 보면 꼭 몇 년은 항상 포르쉐가 르망 24시 포디움에 이름을 올려두는 등, 이른바 르망의 황제로 군림해 왔다.
스포츠카 레이싱에서 포르쉐하면 떠오르는 것에 팩토리팀이 이룬 성과뿐만이 아니라 커스터머 팀의 성과도 많았던 만큼 포르쉐는 과거에나, 현재에나 각종 내구레이스의 커스터머 레이싱에 대한 지원을 끊임없이 해주고 있다.
====# 1970년대 프로토타입 #====
포르쉐 917K |
사실 917로 처음 르망에 출전할 당시인 1960년대 말의 포르쉐는 작은 규모의 자동차 회사였기 때문에 르망 출전은 사실상 회사의 존속을 건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회사의 총력을 917의 개발에 쏟아부었고 르망 우승에 성공하면서 포르쉐는 단박의 회사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이후 역사는 알다시피 초대박을 터뜨리면서 내는 족족 르망에서 가장 빠른 차를 만들어냈다.
====# 그룹 C ~ LMGT1 #====
슈투트가르트의 포르쉐 박물관에 전시된 1986년 르망 우승차량 962. 사진이 뒤집힌 게 아니며, 강력한 다운포스가 이론적으로 차를 거꾸로 달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천장에 고정시켜서 전시해뒀다.
이후 WSC-95와 911 GT1으로 다시 한 번 르망 정상에 오른 뒤 공식 워크스 팀은 919 하이브리드로 복귀하기 전까지 철수한 상태였다. 때문에 모터스포츠에서 보이는 포르쉐들은 포르쉐 직속 팀보다는 커스터머 팀들이 자체적으로 포르쉐 차량을 사용하여 출전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으며 포르쉐는 그냥 차량만 만들어줄 뿐이었다.
3.2.1. GT3
WEC LMGT3 클래스의 활동 전반에 자세한 내용은 만타이 레이싱 문서 참고하십시오.레이스카에 자세한 내용은 포르쉐 911 GT3 R 문서 참고하십시오.
====# LMGTE #====
포르쉐의 LMGTE Pro 클래스 팩토리 팀 출전 역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만타이 레이싱 문서 참고하십시오.
2022년 르망 24시 LMGTE Pro 클래스를 우승한 91번 차량 |
포르쉐의 GT 팩토리 팀은 2022년을 끝으로 LMGTE Pro 클래스가 폐지됨으로서 대부분의 팀 인원들이 LMDh 팩토리 팀인 포르쉐 펜스키 모터스포트로 옮겨가면서 해산하였고, 현재 WEC에는 커스터머 팀들의 911 RSR만이 남게 되었다.
====# LMP1 #====
자세한 내용은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 문서 참고하십시오.
919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은 대단했는데, 일단 그 포르쉐가 르망에 돌아온다는 사실 자체가 가져오는 흥분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919가 거대한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아우디 및 기존 경쟁사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노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의 아우디나 토요타는 전기 출력을 보조로만 사용하고 디젤이나 가솔린 엔진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안전한 방식을 사용했지만, 919는 2.0 리터 V4 가솔린 터보 엔진에 R18이나 TS040보다 훨씬 더 큰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장착하면서 가솔린 터보엔진만큼이나 전기 모터에 의존하는 신박한 방식을 선택했다. 919의 이런 특이한 설계는 10년이 넘도록 아우디 천하였던 LMP1의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에 변화를 불러 일으킬 사실상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첫 해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는데, 성능이 아주 특별하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설계가 특이한 만큼 여러 기술적인 문제에도 시달렸다. 르망에서는 일단 완주가 목적이었지만 결국 전기 계통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두 대 모두 리타이어를 하고 말았으며, R18이나 TS040에 비해 자주 뒤쳐졌다. 그러나 시즌이 진행될 수록 조금씩 성적이 좋아지더니 2014년의 마지막 내구 레이스였던 상 파울루 6시간 경주에서 처음으로 1위를 하며 다음 시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같은 시기 발표된 닛산의 GT-R LM이 919만큼이나 전기출력을 강조한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LMP1 클래스의 일대 변혁을 예고했다.
2015년에는 대부분의 부품을 교체한 919를 가지고 돌아왔다. 퍼포먼스를 저해하던 차체 떨림이 사라져 신뢰도가 상승했고, 안 그래도 랩당 6MJ로 아우디보다 훨씬 높았던 전기출력 발생량을 랩당 8MJ로 더 올리면서 전년도보다도 더욱 전기 출력에 올인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2015 르망 24시에선 예선전부터 가장 빠르게 주행해 폴 포지션을 획득하고, 아우디와 함께 실수를 주고받는 와중에 R18이 3대 모두 결정적인 결함에 발목을 잡힌 와중 홀로 남은 와일드카드였던 19번 919가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쾌속질주를 하면서 순조롭게 원 투 피니시를 차지했다. 19번은 919와 2~3년을 함께 해온 다른 드라이버들과는 달리 GTE 프로 클래스 드라이버, 알바 나온 현역 F1 세컨드 드라이버, 갓 임명된 포르쉐 팩토리 드라이버를 모아서 파트타임으로 출전시킨 차량이라 우승의 충격이 더했다. 덤으로 더블포인트 제도로 팀 포인트 1위를 탈환했다.
그리고 2016년 르망 24시에도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를 계속 출전시켰으며 막판 극적인 우승을 가져가면서 2015, 2016 백투백 우승을 달성, 무려 18회 최다 우승 컨스트럭터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2017년에도 르망 24시에서 우승했다. 이로써 포르쉐는 르망에서 종합 19회 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2017년을 마지막으로 포르쉐는 WEC의 LMP1 클래스 철수를 선언했기에 하이퍼카 클래스가 도입되기 전까지 LMP1 클래스의 제조사로 토요타만 남게 되었었다.
그 후에 919 하이브리드 EVO라는 이름으로, 현역이었던 919의 헤드라이트 등을 제거해서 경량화를 하고 여러 성능을 높이는 등의 개조를 통해 규제에 연연하지 않고 이 차가 얼마나 빠르게 달릴 수 있는지 보자!는 목적의 차량을 제작하여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달렸다.
그 결과는 무려 5분 19초 546으로 뉘르부르크링의 모든 기록을 통틀어서 가장 빠르다. 심지어 예전에 주행하여 기록된 F1 차량들보다도![32] 자세한 주행 영상이나 정보는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 문서 참고.
3.2.2. LMDh
포르쉐 LMDh 레이스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포르쉐 963 문서 참고하십시오.포르쉐 팩토리 팀의 WEC 및 IMSA 출전 역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포르쉐 펜스키 모터스포트 문서 참고하십시오.
차량의 섀시 제조사로 멀티매틱을 채택했으며 엔진으로는 포르쉐 918에서 파생된 9RD 4.6 L V8 터보 엔진을 장착하였다.[33] 919와 달리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LMDh 규정상 공급사가 따로 정해져있는 만큼 다른 LMDh 차량들과 동일하게 MGU는 보쉬, 배터리는 윌리엄스 어드밴스드 엔지니어링의 것을 탑재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포르쉐는 차량의 이름을 962의 업적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포르쉐 963으로 명명하였다.
====# 다카르 랠리 #====
특이하게 그룹 B 등의 랠리에 참가한 적도 있다. 1984년에는 다카르 랠리에서 953으로 우승을, 1985년에 959로 변경하여 1986년에 우승하였다.
3.2.3. 팩토리 드라이버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bgcolor=#fff> ||<bgcolor=#fff><width=58%> 2025 포르쉐
팩토리 드라이버||
||팩토리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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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베를라인 | 안토니오 펠릭스 다 코스타 | 니코 뮐러 | 토마스 프라이닝 | |
리처드 리츠 | 로맹 뒤마 | }}}}}}}}} |
2025년 기준으로 총 14명의 포르쉐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포르쉐 팩토리 드라이버가 있다. 먼저 포르쉐의 팩토리 LMDh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반투르와 에스트레, 크리스텐센, 2025년부터 정식으로 포르쉐 펜스키로 합류하면서 승격된 앙들라우어, 탠디와 나스르, 캠벨과 자미네가 있으며, 포르쉐의 포뮬러 E 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베를라인과 다 코스타, 포르쉐의 파워트레인을 사용하고 있는 커스터머 팀인 안드레티 포뮬러 E 팀 소속의 뮐러, WEC의 LMGT3 클래스에 만타이 레이싱으로 출전하는 리츠, DTM에서 만타이 레이싱 포르쉐 소속으로 참가하는 프라이닝, 르망 24시 2회 우승자인 듀마가 2025년 포르쉐의 정식 드라이버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각 드라이버들의 하이라이트 참여만을 적어두었지만 드라이버들마다 참여 프로그램은 이에 한정되지 않고 추가될 수 있다.
[1] 유대인으로 1920년대에는 모터스포츠에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나치당 집권 이후 수감되는 고초를 겪다가 전쟁 중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자동차 업계에 종사하다 1967년 타계했다.[2] 가솔린 엔진은 발전을, 전기 모터는 구동을 담당하는 EREV 방식으로, 쉐보레 볼트나 아우디 A1 e-트론이 채택한 개념의 원조 격으로 볼 수 있다.[3] 엔진이 구동이 아닌 발전만 담당한다는 점에서, 쉐보레 볼트나 BMW i3 등 EREV 방식의 하이브리드나 디젤-전기 기관차의 구동계통하고 유사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4] 기계의 범위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무기의 역사 전반에 걸쳐서도 꽤 이른 시기에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온 사례가 적지는 않다. 그러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그를 뒷받침할 제반 기술의 발전이 필요하기에, 현재는 잘 쓰이고 있는 개념이 당시에는 잊혀진 경우도 상당하다.[5] 엘레판트는 이 과정에서 발전용 엔진을 신뢰성이 낮은 2개의 포르쉐 101/1 10기통 320마력 엔진 대신, 3호/4호 전차 등에서 검증된 마이바흐의 HL 120 TRM 12기통 296마력 수랭식 엔진 2기로 교체했다. 그러나 중량의 증가로 서스펜션에 가해지는 부하가 높았고 속도가 낮았다. 이를 나타내듯 제2차 세계 대전 게임인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서 엘레판트를 클릭하면 가끔씩 자주포 승무원이 "세상에서 가장 느려터진 포르쉐군!"라는 대사를 출력한다.[6] 포르쉐 설계안의 생산 이외에도, 독일은 중형전차인 4호 전차를 대체하려 5호 전차 판터를 개발했음에도 성능과 가격, 생산라인에 차이가 난다고 동시에 생산했다. 이외에도 각 부대와 장성들의 이권 경쟁까지 겹치며 비슷한 체급에 비슷한 역할을 하는 3호 돌격포, 4호 구축전차, 4호 돌격포, 헤처를 동시에 생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7] 200톤에 달하는 중량을 구동시킬 내연기관 구동계를 제작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하이브리드를 채택했지만, 여전히 현가장치, 모터 구동계가 과부하 상태에 노출되어 있었다.[8] 이후 4도어 세단모델은 나중에 '파나메라'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9] 결국 911 라인업은 후속 모델인 997부터 다시 원형 램프로 되돌아갔다.[10] 특히나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포르쉐에서 기술담당으로 일하던 중 집안 사람들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다가 최후의 협상을 통해 포르셰-피에히 가문의 사람들은 포르쉐의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을 체결한 뒤, 회사에서 쫓겨나 독일 자동차 업계를 전전하다가 아우디에 스카우트되고는 사장이었을 때 콰트로, TDI 등의 개발을 주도했다. 그 공로로 출세가도를 달린 끝에 폭스바겐 그룹의 지주회사이자 주력회사인 폭스바겐 AG의 CEO를 거쳐 감독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참고로 폭스바겐이 지금의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갖춘 건 전적으로 피에히의 주도로 이뤄진 일이다. 그야말로 기술과 경영 모두에서 만렙을 찍은 최고의 경영자.[11] 전통적인 차량 분류로 볼 때는 사실상 패스트백이나, 차량의 성격이 고성능 호화 세단인 마세라티 기블리같은 차종과 경쟁하는 위치에 있기에 세단으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12] 2차대전 중 포르쉐가 개발한 6호 전차는 하이브리드 엔진을 채용했는데, 경쟁사 헨셸에 밀려 채용되지 못했다. 그런데 경합 초기에는 포르셰의 VK 30.01 (P)가 헨셸의 VK 36.01 (H)를 이겼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벌크업을 요구하여 나온 것이 각각 VK 45.01 (P), (H)이다. 이 헨셸에서 개발한 전차가 이후 유명한 티거 중전차고, 포르쉐가 개발한 전차는 페르디난트/엘레판트 구축전차가 된다. 추가로 역사상 세계 최대 규모의 전차인 8호 전차 마우스도 하이브리드 엔진을 사용한다.[13] 이전에 연비가 33 km/L라 서술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건 전기 완충 후 유럽기준이다. 대한민국 공인 연비는 그보다 훨씬 낮긴 한데 하이퍼카 기준으로는 매우 높은 수치인 9.6 km/L이다. (배터리 방전 상태에서 측정) 다른 하이퍼카들의 연비가 어떤지 보자. 페라리 라페라리가 5.9 km/L이다.[14] 911과 파나메라, 카이엔만 GTS 모델이 나오고 박스터와 카이맨은 나오지 않았었다.[15] 기본 모델의 경우는 3.6L V6 자연흡기 엔진을 달고 있고, S모델은 3.6L V6 트윈터보 엔진, 터보와 터보 S는 4.8L V8 트윈터보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16] 파나메라의 S모델 엔진은 3.0L V6 트윈터보 엔진이다.[17]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 적용 시.[18] 제로백은 3.9초로 991.1의 GTS 모델이 4초이다.[19] 인수전이 한창이던 997 시절에는 아예 포르쉐가 만타이에 레이싱 팀을 전담시키다시피 했었다.[20] 기어비를 손본 사양은 아니었기 때문에 365 km/h에서 엔진이 한계 RPM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퓨얼컷이 걸린다.[21] M700과 람보르기니 가야르도가 공공도로에서 불법 언더그라운드 드래그 레이스를 하는걸 목격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람보르기니 가야르도가 후진을 넣고 풀악셀을 때린건가? 싶을 정도의 가속력을 보였다 한다.[22] 터보 S 모델의 실측은 2.5초이다.[23] 포르쉐, 메르세데스-벤츠, BMW, 페라리, 람보르기니, 혼다, 맥라렌 등등 이외에도 현재까지 모터 스포츠에서 꾸준히 데이터를 측정하고 있는 기업들을 말한다.[24] 만약 테슬라가 진심으로 스포츠 카쪽으로 승부를 보고 싶었다면 포르쉐가 데이터를 쌓기 위해 포뮬러 E에 참가했듯이 모터스포츠에 참여를 해야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테슬라는 딱히 모터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걸 보면, 테슬라가 추구하는 것은 운전 재미가 아닌 '운전은 차가 알아서 할테니 사람은 가만히 타기만 해라' 라는 방식의 운전자의 개입을 줄이는 차들을 만든다.[25] 작은 저출력 엔진을 얹는 대신 차체를 최대한 가볍게 하고 고도의 조향 설계로 뛰어난 운동성을 가지는스포츠카를 만드는 영국의 로터스는 "직선도로에서는 페라리 같은 차가 빠를지 모르나 굴곡 많은 길에서는 우리 차가 더 빠르다."면서 출력이 다가 아님을 강조했다.[26]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마셜 플랜으로 인해 서유럽의 공업력도 성장을 했지만, 농업 역시 막대한 돈이 유입되어서 기존 우마에 의존한 농업에서 트랙터를 포함한 기계화 농업이 이때 이루어졌다. 또 이 당시에는 람보르기니의 창업주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트랙터로 돈을 엄청 벌 정도로 트랙터가 많이 잘 팔렸다.[27] 이름이 길어보여서 저게 무슨 회사인가? 싶지만 사실 MTU의 전신 기업이다. 마이바흐 엔진제작사와 합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28] 영화 포드 V 페라리의 르망 24시 스타트 장면에서 잘 나온다.[29] 좌측통행 국가는 반대로 적용되며 정확히는 문옆에 시동을 거는 키구멍(버튼)이 있다.[30] 테슬라를 제외하고 상하이 VW나 상하이 GM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합작법인만 허용된다.[31] RS 스파이더에 들어간 엔진은 훗날 재조정되어 포르쉐 918 스파이더에 들어간다.[32] F1 기록은 상당히 옛날 기록으로, 니키 라우다가 1975년 페라리 312T로 세운 6분 58초 6이다.[33] 프로그램의 플러그가 뽑히기 전의 아우디 LMDh 또한 포르쉐 963과 거의 동일한 플랫폼으로 구성된 LMDh 레이스카로 개발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