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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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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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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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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펼치기 · 접기 ]

[1] 2019년 아래 장소 추가로 10곳 업그레이드.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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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이름 <colbgcolor=#000> 한국어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 조선 및 탄광
영어 Sites of Japan’s Meiji Industrial Revolution:
Iron and Steel, Shipbuilding and Coal Mining
일본어 明治日本の産業革命遺産 製鉄・製鋼、造船、石炭産業
프랑스어 Sites de la révolution industrielle Meiji au Japon :
sidérurgie, construction navale et extraction houillère
국가·위치 일본 가고시마현, 나가사키현, 후쿠오카현, 구마모토현
사가현, 야마구치현, 시즈오카현, 이와테현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15년
등재기준 (ii)[1], (iv)[2]
지정번호 1484

1. 개요2. 특징3. 식민지인, 전쟁 포로 강제 징용
3.1. 일본이 주장하는 내용3.2. 생활
4. 기타5. 둘러보기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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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端島.jpg
파일:external/i.cdn.travel.cnn.com/courtesy_jordy_theiller_1280px-stairway_to_hell.jpg?itok=J0TmgAt7.jpg
<colbgcolor=#000> 섬 전체의 모습 <colbgcolor=#000> 섬의 내부 모습
KBS 역사스페셜 지옥의 섬 군함도 무한도전 중에서

[ruby(端島, ruby=はしま)] Hashima Island 홈페이지(한글). 행정구역상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구 다카시마정)에 소속되어 있는 섬이다.[3]

나가사키 반도 옆의 관광지로 유명한 다카시마 밑에 조그마한 섬이 2군데 있는데 하나는 나카노시마(中ノ島) 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하시마(端島)이다. 생긴 것 때문에 군함도([ruby(軍艦島, ruby=ぐんかんじま)], 군함섬)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4] 1960년대까지 다카시마와 함께 일본의 근대화를 떠받치며 광업도시로 번영을 누렸으나 폐광 이후 주민들이 떠나서 지금은 무인도가 되었다.

2. 특징

파일:하시마_1905.jpg
1905년 당시 모습[5]
파일:external/image-kinarino.ssl.k-img.com/db4d39a1fcbfed08367ea20f2c94d0176980f607.jpg
파일:하시마_1960.jpg
1960년대 당시 모습
1960년에 찍은 촬영본
1975년에 찍은 촬영본[6]
크기가 480m×130m에 면적은 6헥타르가 채 안 되는 코딱지만한 섬에 무려 5,000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7] 전성기 때에는 헥타르당 835명이라는 당시 도쿄 23구의 9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인구밀도를 기록하기도 했다.[8]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되어 석탄을 캐기도 했다. 하지만 석유 때문에 석탄이 도태되면서 1970년대 이후 에너지 정책의 영향을 받아 1974년 1월 15일에 폐광되었다. 폐광 당시 2,000명으로 줄어있던 주민은 3개월 뒤인 4월 20일 모두 섬을 떠나면서 완전히 폐광되었다.

그래도 지금도 당시의 자취는 여전히 남아있어 찾아가보면 을씨년스럽기 이를 데 없다. 수많은 건물들은 사람이 다 빠져나가고 섬 자체가 통째로 폐허가 되었다. 게다가 인구밀도가 워낙 높았던지라 오밀조밀 뭉친 건축물들은 구룡성채를 방불케 한다. 조그마한 섬 위에 고층건물, 그것도 폐허가 된 고층건물이 떠 있는 광경은 매우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폐광되고 난 뒤에도 섬의 소유권은 미쓰비시 마테리얼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2001년에 지자체인 다카시마정에 무상 양도되었으며 지금은 나가사키현으로 편입되어 나가사키시의 시유지가 되었다. 건물이 노후화되어 폐허가 된 곳이 많아 섬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2005년 8월 23일 기자들에 한해 특별히 상륙이 허가되어 완전히 폐허가 된 섬 곳곳이 여러 매체에 소개되어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이후 2008년에는 나가사키 시에서 조례가 제정되어 섬 남부에 정비된 견학통로에 한해 2009년 4월 22일부터 관광객의 상륙ㆍ견학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견학시설 이외의 섬 전체는 아직까지 출입금지구역이다. 출금 해제 한 달만에 4천 5백명이 넘는 인원이 섬을 방문했으며, 1년만에 약 59,000명이 섬을 방문했다. 또한 상륙하는 데 있어서 바람이나 파도 등 기상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나가사키 시에서는 상륙 가능한 일수를 연간 10일 정도로 예측하고 있다.

이 섬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2015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한동안 논란이 되었다.[9]

역사스페셜에서 다룬 적이 있는데 군함도를 알고 싶다면 참고할 만한 가장 적절한 자료이다. 조금 부담이 적은 자료를 원한다면 같은 KBS의 역사저널 그날 80화에서 다룬 내용을 보는 것도 좋다.

책으로는 안재성의 <신불산:빨치산 구연산의 생애사>가 있다. 경상남도 지역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 대원인 구연산(본명 구연철)이 어린 시절 모습으로, 군함도에 살았던 경험담이 잠시 언급된다. 구연산 자신은 광부인 아버지를 따라 군함도에 와서 학교를 다니던 학생으로 광산에는 한 번도 안 가봤지만, 강제징용이 시작되기 전의 군함도 모습부터 나오는 진귀한 자료. 구연철은 이후 군함도 영화가 나와 이 곳에 대한 관심이 생겼을 때 이곳에 대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

2016년 5월에는 작가 한수산의 2권짜리 소설 <군함도>가 나왔다. 같은 작가의 2003년에 나온 소설 <까마귀>[10]에서 군함도 관련 부분만 발췌해서 내용 보강한 소설이다. 15세에 군함도에 징용된 서정우나 조총련계 박민규 등에게 취재한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합중국 해군 잠수함이 이 섬을 진짜 군함인줄 알고 어뢰를 발사하기도 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는데 실은 1945년 6월 11일 텐치급 잠수함 USS 티란테(USS Tirante, SS-420) 함이 군함섬 앞바다에서 석탄운반선 한 척을 격침한 게 군함섬을 진짜 군함으로 오인공격했다는 얘기로 와전된 것이다. 하긴 섬 자체가 작고 섬 위의 건물이 군함 상부구조물을 연상케 하는데다 연기를 내뿜는 굴뚝까지 솟아 있으니 얼핏 실루엣만 보자면 군함이라 착각할 만하다. (일본어 위키 하시마 문서, 잠수함 티란테 문서)

메이지 유신 시대의 근대화의 산물로서 유네스코에 등록되었지만 정작 현재 하시마 섬 내의 메이지 시대 건축물은 다 무너져가는 3m 남짓의 제방 하나 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메이지 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현재 기준으로 60년 정도 된 건물뿐이다.

3. 식민지인, 전쟁 포로 강제 징용

국제기구에서 강제징용과 강제노동을 인정했던 일본정부 대표와 국제적 약속을 어기는 과정.[11]
"자원해서 갔다고...? 하시마를...?"
김형석, 하시마 강제 징용 피해자
"사람이라는 것이 낙이 자유가 아니요. 자유가 없고 꽉 막혀가지고 밥주면 밥먹고 구덩이(탄광) 속에 들어가서 탄캐고 날마다 생활하는 것이 그것인데 뭔 취미가 있겠어요. 아무 취미 없어요. 9층짜리에서 제일 지하가 조선 사람 사는 장소거든요. 그러니까 거기는 해빛도 안 들고 바람도 그렇게 많이 통하지도 않고
전영식, 군함도 강제노동자(전라북도 정읍) 출처
군함도에서 어떤 일이 자행되었는지를 명백히 밝혀야 하며 그곳에서 중국인과 한국인과 같이 강제 연행된 사람들이 어떤 노동을 강요당했으며 어떤 생활을 했는지 등의 역사를 남겨야 하는데 관광이라니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죠.
하야시 에이다이 , 강제동원전문 르포 작가출처
"도저히 살 수가 없고 밤이면 영양실조로 다리에 쥐가 나서, 사느니 죽는 것만 못하다는 형색이었어요. 그것이 1년만 지속되었으면 다 자살하던지 어떻게 해버리려고 각오를 가졌던 거예요. 일을 갔다 와서 지쳐서 옹벽담 밑이 콘크리트여, 거기 누워있으면 발에 쥐가 나서 말이야 막 여기저기 나 죽는다 소리 나오고, 막 눈물 바다였어요. 하루에 16시간 2교대 (낮)8시간하고 다시 밤 2교대로 8시간 하고 그러니까 16시간이여. 그 가왓줄(기계에 쓰이는 고무줄) 그걸 그냥 말채로 만들어서 그놈을 막 후려치면 살이 막 묻어나고 막 죽는 소리가 나고 옆으로 큰소리 들리게 때린다 말이오.
최장섭[12], 하시마 강제 징용 피해자 출처
(다른 군함도 주민들이 조선인 차별이 없었다는 증언에 대해)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군함도 안에서는 차별만 있었어요. 해빛이 전혀 들지 않는 곳, 지하 1층에 조선인들을 밀어 넣었으니까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죠. 밤에 헤엄쳐서 군함도에서 도망 가려고 한 조선인이 있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누나는 간호사였는데 '조선인은 마취하지 않고 치료해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라고 했어요.
다케우치 신페이, 군함도 전 주민 출처
위쪽 층은 회사의 높은 사람들이 살았고 조선인들은 (가장) 밑의 층에 살았어요. (다다미) 6~7개 정도 되는 방인데 일본인이라면 부부가 살았지만 조선인들은 (한방에) 12~15명 정도 살았어요. 환경은 열악했고 전쟁 후에도 (지하)방은 다들 가기 싫다고 할 정도였어요.
야마시타 나오키, 1970년대 군함도 탄광 근무자 출처
태평양 전쟁 당시 많은 식민지 주민들과 전쟁 포로들이 군함도에 강제 징용되어 끌려왔다. 그 중 조선인은 징용 및 요시다합숙소 노동자가 도합 500~600명 정도였으며, 자의로 온 조선인 노동자가 추가적으로 80명 정도 있었다.

1986년 일본의 시민단체인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사료로서 제시한 화장매장인허증에 따르면 1925년~1945년 사이 하시마 탄광에서 총 1,295명이 숨졌으며 이 중 조선인은 122명이었다.

섬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당시 조선인들은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지옥문'이라고 불렀으며 섬 자체도 지옥섬 또는 감옥섬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게다가 이들이 받은 대우는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할 정도. 파도가 들이치는 바닷가 집에 강제로 살게 했는가 하면 햇빛도 안 들어오는 아파트 지하층에서 살게 한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군함섬을 탈출하려고 시도한 조선인들이 여럿 있었으나 험한 파도에 휩쓸리거나 발각되어 총살당하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였다고 한다. 기껏 파도를 헤치고 탈출에 성공해도 다다른 곳은 전시 상태의 일본 본토였다. 즉,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다.

한 때 이 섬에 한글로 된 낙서가 있는 것이 알려지기도 했으나[13]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처참한 학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징용이 본격화된 그 시기에는 한글과 한국어를 썼다는 까닭만으로 엄청난 처벌과 학대를 받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를 미루어 생각해 보면 글로 남기지도 못할 학대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임은 틀림없다.

국가 차원에서의 배상 의무는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청구권이 청산되면서 사라졌으며 미쓰비시그룹 또한 청구권이 소멸한 상황에서 추가 배상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법적 상황이 다르다"라는 표현으로 애둘러 말하고 있다. 이 "법적 상황"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쓰비시그룹 문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나가사키 시는 군함섬의 가혹한 대접을 받은 조선인 징용자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내 진보성향 단체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지만 소수의 목소리라서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없는 듯하다.

2015년 5월 초 유네스코 세계 유산 위원회 산하의 민간 자문기구인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가 하시마 섬을 비롯, 일본 정부가 조선인을 강제 징용하여 건설한 건축물 7곳에 세계문화유산 등재 권고를 내리며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물론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의 상징인 만큼 문화, 역사 가치를 평가하자면 분명 유산으로 오를 만하지만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 사실은 쏙 빼고 유리한 설명만 남겨 놓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군함도는 메이지 시대의 것은 메이지 40년에 지어진 제방과 바닷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해저 탄광, 아마 섬 밑에 묻혀 있을 무언가들뿐이다. 군함도의 가이드가 소개하는 정작 중요한 건물 들은 쇼와 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는 식으로 사실상 메이지 시대의 것이 아니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21회, 링크)[14]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양자 협의를 일본 정부에 요청하였으나 일본에서는 현재 응답이 없는 상태이다. 여러 한국 시민단체들과 일본 내 진보성향 단체들 또한 인권 탄압의 상징인 해당 시설물을 유산으로 등록하는 것은 인류 보편적 가치에 위배되지 않나 우려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마리아 뵈머 독일 세계유산위원회 의장과 그 외 유네스코 회원국들에 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독일 언론에서도 '공포의 섬'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에 담긴 역사적 문제점을 다루었다.

특히 유네스코 측이 하시마 섬의 산업과 근대화 역사 및 문화 가치에만 관심이 있고, 일본 제국이 저지른 전쟁 범죄, 강제 징용, 한일관계에는 전혀 무관심하기에 유네스코를 너무 압박하지 않는 선에서 한국 측의 주장을 어떻게 어필할지가 이번 논란 해결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시마 섬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일본이 하시마 섬을 소개할 때 조선인을 강제 징용하여 건설한 섬이라는 걸 인정 및 명시하게 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현재 하시마 섬의 건설 시기를 1850년~1910년, 즉 일제 강점기 이전으로 기재하여 조선인 징용 논란을 피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하시마 섬이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처럼 부정적 세계문화유산(Negative World Heritage)으로 등재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은 조선 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을 하긴 했지만 강제로 한 것은 아니었다고 우기며 산업발달이라는 허울 좋은 상징으로 내세우려 하기 때문에 사실상 각국간의 의견 충돌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에 유네스코에서 협의를 할 시간을 주겠다며 시간을 미뤘다. 이전까지는 만장일치를 통해 문화유산을 등재했는데 한국 등의 일부 국가가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라 의견 조율을 위한 시간을 준 것이다. 아무래도 유네스코는 국가와 국가가 충돌하면서까지 등재를 하는 이례적인 행동은 피하고 싶은 듯하다.

한국인들이 본인의사에 반하여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노역을 당해왔던 사실을 문화유산에 기재하도록 합의했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아우슈비츠처럼 안 좋은 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는 차선책을 선택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아우슈비츠는 대놓고 감금시설이기 때문에 네거티브로밖에 홍보할 수 없지만 하시마 섬 같은 경우는 일본에서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정확하지 않은 모호한 서술로 좋은 면만 극대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설령 합의에선 강제징용을 인정하더라도 일본자국에서는 그 항목을 축소, 은폐하여 홍보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기에 앞으로 상황을 우려하며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리고 2015년 7월 5일 끝내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 등을 인정하면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일본 정부는 초기에는 애초부터 강제노동이 없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에 대한 세계 각국의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과 일본이 맺은 타결협상안을 보면 강제노동이라는 말을 대놓고 사용하지 않았으나 강제노역이 포함된 사실을(were brought against their will and forced to work under harsh conditions[번역]) 수용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강제노역을 시킨 주체를 누구인지는 표기하진 않았으며 그 주체가 당시 일본 정부에 있다고는 볼 수 있다고는 하나 확정 표기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협상안에서는 역사는 인정하되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하여 피해자의 배상은 관련없이 타결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여러모로 강제성이 거의 없다시피한 타결이라 후에 일본이 태도에 변화를 주더라도 유네스코의 이행권고만 있을 뿐 강제성이 없기에 계속된 감시와 관심이 필요할 듯 했었다.

결국 등재결정이 내려지자 마자 일 외무상의 강제노동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식의 발언을(결정이 난 직후 바로 기자들에게 발언한 내용이다.) 시작으로 일본 번역문에서는 표현수준을 완화하는 등, 여러가지로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일본에 오랫동안 산 외국인들(교수 포함)도 forced to work는 강제 노동이 맞으며 forced to labor와 거의 뜻이 다르지 않다며 반박했다.(참고) 사실 영문 표현 자체가 너무나도 명확하게 강제노동 여부를 못 박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행동은 국내 여론몰이용 헛소리라고 볼 수 있다. 이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다르게 해석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기 때문에 당장 일본 우익들 사이에서 강력한 반발이 일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기사[16] 또한 일본 정부는 ‘인포메이션센터, 정보센터 등 피해자를 기리는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하였으며 이를 점검할 몇 가지 국제기구의 체계가 있다고 한다. 아마 강제성은 없는 듯하지만 약속을 한 뒤에 대놓고 쌩까면 그건 그것 대로 일본의 나라 망신이다.

그러나 유네스코가 하시마 섬의 건축 기술성을 높이 사서 세계유산 등재 기준 2번과 4번을 적용시키는 등(아우슈비츠처럼 안 좋은 뜻을 지닌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면 6번 또한 적용시켰어야 한다.) 조선인들이 강제징용되어 잔혹하게 죽은 아픈 역사의 장보다는 일본 메이지 산업 혁명의 놀라운 결과물이라는 좋은 이미지가 대체로 더 세기에 한국인들에게는 씁쓸하고 찝찝할 수밖에 없는 결과이다. 결국 국제 사회에서 힘없는 건 죄라는 사실만 또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문화유산 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일본 당국이 조선인 징용 사실을 얼마나 잘 알릴지도 의문. 물론 위에 서술했듯 피해자를 기리고 알리는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런 시설들을 얼마나 많이 설치할지와 더불어 방문객들에게 얼마나 자세하게 설명할지는 불분명하다.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당시 하하가 하시마 섬을 방문하였으나 가이드는 강제징용에 관한 언급은 아예 하지도 않고 자랑거리만 잔뜩 늘어놓는 데다가 심지어 관광코스도 근대화가 이루어진 코스로만 이루어져 있고 강제징용 장소는 아예 소개에서 제외되어있다. 다만 관광 코스가 근대화된 장소로 짜여진 까닭은 안전문제 때문이다. 섬 자체가 버려진 지 오래되고 시설이 낙후된 데다가 현재도 붕괴가 진행되고 있는 시설이 많아서 붕괴위험이 전혀 없는 안전한 장소로 코스를 짜는 것 자체는 당연한 일. 물론 안전 문제가 아니라도 강제징용에 대한 언급조차 삼가고 있는 하시마 섬 측이 강제징용 시설 쪽으로 코스를 짤지는 미지수다. 당연히도 공양탑은 전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길은 수풀로 가득차 있어 어떤 길이 맞는지도 구별하기 힘들었던 상태이다. 그 후 네티즌들이 길을 만들었지만 일본 측에서 위험 표시를 쳐 놓고 강제 폐쇄했다.

2014년 7월 세종대학교의 박유하 교수가 하시마 섬은 일제강점기 이전에 만들어진 데다가 당시 노동자 착취는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닌데 한국이 직접적인 관계를 주장해야 하는가, 아무리 일본이 미워도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라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있었다.

2016년 7월 군함도 관광에 관한 보고기사가 연합뉴스에 게재되었다. 군함도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조선/중국인 징용노동자에 대한 명시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등재 1년 전인 2015년 7월 당시 외교부는 외교부 “日 조선인 강제노역 인정, 우리 외교의 중요한 성과” 자축까지 했던 상황이었다. 르포 내용은 군함도에 대한 일본 산업혁명에 대한 소개와 당시 최신식 콘크리트 건물에 대한 부분이었고 징용에 대한 사실은 알기 힘들다고 게재하였다.

2017년에 군함도 정보센터를 도쿄에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10월 6일 아베 내각 내각관방참의 가토 야스코가 주도하여 강제 노동은 거짓이라는 취지의 유튜브를 시작했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 동영상이 완벽하게 틀린 것은 아닌데 문제는 이 동영상이 다루고 있는 증언들은 전부 이 문서에서 후술되듯 아직 대우가 좋던 오장(관리인)아들 이였던 조선인 2세, 가족과 함께 이주한 조선인 이주자, 일본인 학생, 종전 이후 탄광 노동 종사자이고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제 전쟁 당시 조선 강제 노동자의 증언 상황은 쏙 빼놓고 다른 상황의 증언을 비교하며 한국의 거짓이라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해서 그 증언이라는 것들도 "누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하겠어요, 아마 ~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추측성 어미를 쓰는 증언도 다수이다.[17] 이외에도 "조선인들이고 뭐고 원래 사망할 경우 화장을 해서 납골당에다가 두는 게 원칙이었다"라는 식의 원론적인 소리만 포착하는 동영상이 있다 보기는 힘들다.(이 영상을 게시한 내각부 산업유산정보센터는 후술하겠지만 실제 한국측 오류를 찾아내 활용하는등 더욱 적극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결국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2018년 6월 27일(현지시간) 3년 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하시마<端島>) 등 일본 산업시설에서 이뤄진 한국인 등의 강제노역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릴 것을 일본에 재차 촉구하는 결정문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유네스코 결정문 채택…"日, 군함도 전체역사 알려야"(종합2보)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록 당시 일본이 강제징용에 대한 내용을 명시할 것을 조건으로 등록되었으나, 일본이 이를 지키지 않아 2018년 6월 세계 유산 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이를 지적하였고, 유네스코에서는 일본이 강제징용 명시에 관련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며 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하시마 섬 강제징용 이행 보고서가 2019년 12월에 제출될 예정이며, 2020년에 유네스코 위원회에서 검토될 예정이라고 한다. #

2020년 3월 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나가사키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소개하는 ‘산업유산 정보센터’를 도쿄에 개관했다. 전시 내용에는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에 대한 차별 대우를 부인하는 증언 등이 포함되어있다.#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 위치한 ‘산업유산 정보센터’ 즉, 조선인 강제노동이 이뤄졌던 것으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 등이 포함된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 관련 전시시설이 6월 15일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 관람을 하루 앞두고 14일 내·외신 기자들에게 사전 공개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물들이 당초 설립 취지와는 달리 하시마 강제 징용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예상된다. 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전시장 공개…“조선인 강제 노역 피해 기린다” 약속 온데간데 없어 日 “군함도 조선인 차별 없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 약속 뒤집어 "조선인 귀여워해줬지"···日, 징용사과 대신 군함도 왜곡 파문

하지만 6월 15일 개관 첫날 관람객들의 행방이 묘연하여 의혹이 일었다. '산업유산 정보센터'를 운영하는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는 지난 11일 연합뉴스가 이메일로 신청한 건에 대해 이튿날 "예약이 쇄도해 조정에 시간이 걸린다"면서 일러야 내달 이후에나 관람이 가능하다고 회답한 바 있는데 이 같은 답변과 일반 개관 첫날의 상황을 정리하면 '관람 예약 신청은 엄청나게 들어왔는데 개관 첫날 첫 시간대 관람객은 없다'는 모순된 얘기가 성립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예약을 갑자기 단체로 취소하지 않은 이상 결국 정보센터 측에서 예약이 많다고 거짓말을 한 셈이되니 여러가지로 미스터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역사왜곡 논란' 日산업유산센터 개관 첫날 관람객 행방 묘연

6월 18일 국회 문체위 업무보고에서 전용기 의원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정보센터의 잘못된 정보전달에 대한 이의제기와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를 요구해, 당시 장관은 공식 서한을 보내겠다고 답했다.정부, 유네스코에 日 '군함도 세계 유산 지정 취소’ 요구 이후 정부는 유네스코에 등재 취소 검토를 요청하며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하겠다 발표했고, 국회 또한 전용기 의원이 발의한 군함도 강제징용 문제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의결하며 일본 정부에 공식 항의에 나섰다.

6월 23일 정부는 유네스코에 군함도(端島·하시마)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 23곳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 가능성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가 이처럼 강경한 대응에 나선 것은 일본이 유네스코에 근대산업시설을 등재하면서 강제징용 등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고 역사적 사실도 왜곡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외교부 “유네스코에 군함도 등 日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 요구” 외교부 장관, 군함도 등재 취소 검토 요청 서한 발송

또한 김동기 주(駐)유네스코한국대표부 대사는 6월 25일(현지 시각) 파리 근교 대사관저에서 한국 언론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세계유산위원회 21개국을 상대로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 시 내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을 알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유산위원회가 개최되면 우리 정부가 요구한 내용이 정식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대사 "日, 군함도 관련 약속 어기고 세계유산위 권위 무시"

하지만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오류가 있는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동시에 책 내용의 한 문장, 사진 한장까지 강제 노동자 지지자 측의 오류를 찾아내어 일본 정부의 빌미로 활용되고 있다.일본 역사 연구자다케우치씨도 이러한 부분을 크게 우려하며 한국측이 일본 정부에 빌미를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군함도의 논란 핵심인 산업유산정보센터 소장 가토 야스코의 유튜브 채널에 2021년 2월 '조선인 징용공의 (거짓)검증 컨퍼런스'를 열었고 아베 전 총리등 정치인이 참석하였다. 1:31:21초, 1:39:53초 아베 등장그 동안 일본 보수 세력이 해왔던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몇 가지 한국 방송 오류, 증언의 허술성을 발견했을시 거짓이기에 전체가 거짓말쟁이라 호도하는 역사수정주의형태로 볼때 건덕지를 잡히지 않기 위해 철저한 논리와 검증, 일본인 증언자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18] 현재 문서에서는 하시마만 조명하고 있지만 과거 부터 존재해 왔던 하시마섬 강제노동과 관련된 수많은 연구와 책들은 현재까지 타카시마라는 섬을 포함한 3개의 인접한 섬을 합쳐서 연구되어 왔다. 참고 할만한 강제노동 보고서

결국 2021년 7월, 유네스코“일본이 세계유산위원회의 관련 결정문을 아직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유감(strongly regrets)을 표명한다”는 내용을 담은 일본 근대산업시설 결정문안을 12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유네스코 '日군함도 전시왜곡' 확인…세계유산위 "강한 유감"(종합) 보고서의 내용에는 1910년 이후의 하시마섬에 관한 전체 역사에 대한 일본의 설명이 불충분하며 다수의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 노역한 사실과 일본 정부의 징용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내용과 함께 희생자 추모 조치, 당사국과의 대화 지속 등의 권고등을 담았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그야말로 공개 망신을 당한 것이다.# 그러자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우리는 유네스코의 조치를 어기지 않았다"고 반발했고, 야마다 히로시 자민당 참의원과 마루야마 호다카 자민당 중의원 역시 이에 대해 반발했다.# 그러나 이 결정문은 일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 그리고 일본도 반론 기회가 있었지만, 국제사회의 역사인식과 일본의 역사인식이 적나라하게 괴리가 크다고 보고,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군함도'(하시마·端島) 등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의 전시 내용이 조선인의 강제노역 사실 등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보완을 요구한 유네스코 결의와 관련, 일본 정부가 전문가 회의를 주최해 의견을 구했는데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오히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등의 이해를 요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도됐다. 회의에서 내각관방 담당자는 “지금까지도 성의 있는 자세로 대응해 왔다”고 강조했다.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가 운영하는 전시 내용에 대해서는 “근거를 바탕으로 제대로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을 뿐, 수정을 요구하는 의견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회의 참석자는 교도통신에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대응이 대체로 타당했다고 보고, 유네스코 등에 이해를 요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말했다. 군함도 등 전시 보완 요구에 日 전문가들 "정부가 유네스코 설득해야"... 황당 의견

3.1. 일본이 주장하는 내용

위 영상 처럼 한국에서 군함도 강제징용 피해를 증언하는 사람의 증언이 모순되고, 거짓인 점이 있다는 것과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미군 및 대한민국 군경을 총기로 공격한 극좌파 친북 공산주의 게릴라 활동을 했다는 점을 들어 "지리멸렬한 주체사상파 극좌분자의 거짓선동" 이라거나 한국에서 팩트체크조차 안하고 잘못된 사실을 군함도 만행으로 호도한 언론의 오류를 찾아내어 적극적으로 군함도 노역자 학대와 학살은 거짓 선동이라 홍보 하고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단체는 '올바른 역사를 추구하는 하시마 도민회(真実の歴史を追求する端島島民の会, 하시마회)'이며, 일반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 산하 사이트 '군함도의 진실: 조선인 징용공의 검증'을 통해 이를 선동하고 있다.[19]

구연철이라는 인물은 태백산 빨치산 출신으로, 자기 주장에 따르면 1950년 7월 신불산에 올라가 "당" 에 입당절차를 받고 공산주의 게릴라가 된 인물이다. 지리산 태백산 신불산에서 이미 6년간의 공산주의 무장게릴라 활동을 벌이고도 울산 양산 부산 그리고 경주에 걸쳐 4년동안 불법적으로 교전권도 없이 미군과 UN군, 국군, 그리고 대한민국 경찰을 총기로 공격하는 테러리즘 및 반국가행위를 하다 휴전 후인 1954년도에 체포되어 20년 형을 언도받았다고 한다.#

이 자가 어릴때 자신의 아버지가 군함도에서 일하다 자신과 가족들을 초청해서 군함도로 이사가 군함도의 진상과 만행을 목격했다고 하는데, 아랫 문단인 "생활"에서 일본이 군함도에서 저지른 만행이라며 증거자료나 출처도 없이 써진 주장 중 상당수가 저서 <신불산: 빨치산 구연철 생애사(2016)>에서 발췌된 내용이다. 애초에 군함도에서는 구마모토가 보일 수가 없는데 보인다던지, 나가사키에서 터진 핵폭탄의 화구가 보였다던지, 혹은 일본인들이 전부 사라졌다던지 하는 내용이 전부 이 자가 쓴 책에서 나온 것.

3.2. 생활

태평양 전쟁 이전에는 광부의 강제 모집은 없었고 위험한건 매한가지였지만 조건은 그렇게 막장까지는 아니었다.

조선인도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가족단위로 이주하여, 사택을 배정 받고 아이들은 일본인과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20] 이 때의 광부들은 주로 일본인들이였고 그 다음이 오키나와인(류큐인)들이였다.

물론 매우 위험한 환경이었다는 점은 시기를 가리지 않고 동일하다. 갱도에서는 끊임없이 붕괴며 가스누출과 출수사고가 터져 계속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시신은 나카시마 섬으로 옮겨져 화장되기를 반복하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위험수당을 원하는 사람들이 자진해서 들어오는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하시마 섬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여타 업종 종사자에 비해 상당한 수입을 올렸는데, 숙련 광부는 교사나 면서기 등 전문직을 상회하는 최고 180원이라는 거금을 받았다.[21] 게다가 군함도에서는 돈을 쓸 곳이 없어 돈이 모일 수 밖에 없는 구조였으니 일만 하면서 가족에게 돈을 송금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결국 생계가 막막한 가장들이 이곳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태평양 전선이 개전되자 경기가 더욱 좋아졌고 배급제로 바뀌었지만 일본군이 남태평양 지역을 점령함에 따라 매일 보급선을 통해 파인애플이나 망고 같은 열대 과일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전선이 넓어짐에 따라 사정이 급속히 악화되었고 1943년에는 열대 과일은 커녕 일본에서 생산되는 도 보기 힘들 정도로 식량 사정이 안 좋아졌다. 대신 콩깻묵을 먹어야 했는데 이건 식민지인 만주에서 생산한 을 군수용 기름으로 짜고 남은 찌꺼기였으며,[22] 그마저도 썩고 곰팡이가 펴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전쟁 중기 젊은 일본인이 징집되어 광부가 될 사람이 부족해지자 조선인을 비롯한 식민지 사람들을 차출하였는데 이들은 일본인들이 사는 사택과 학교 사이에 위치한 합숙소에서 생활하였다.

일본인 감독은 이들을 짐승처럼 취급하였는데 몸이 아파 일을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릎꿇려 앉혀 놓고 가죽혁대로 후려치는등 처참한 대우였다. 전쟁 말기에는 조선인들마저 징집으로 차출되자 이번에는 전쟁포로를 만주에서 끌고왔다. 효과적으로 분할통치하기 위해 내지인을 1등국민, 외지인을 2등국민, 중국인 등 전쟁포로를 3등국민으로 대우하였다. 오키나와나 세계대전 극후반 조선의 경우 외지인보다는 낫지만 내지인과의 차별이 존재하던 1.5등국민으로 볼 수 있겠다.

이들은 가장 위험한 곳에 투입되었다. 끊임없이 파고 내려간 갱도지하 1,000m에 달했으며 그 마저도 좁은 터라 기어들어가야할 정도였다. 이곳 지하에 매장된 석탄은 품질이 매우 좋았다고 하는데, 일반 연료로 쓰는 탄이 아니라, 철을 제련하는 데 쓰는 코크스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는 고열량의 탄이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지하로 파고 들어 경사가 60도 쯤으로 상당히 가팔랐다. 초기에는 근로자들의 안전을 생각한답시고 8시간 3교대 근무제였지만 전쟁이 본격화되고 미국과의 전쟁이 장기화 되자 군수공장을 돌릴 석탄이 부족해져 규정상으로는 결국 12시간 이상을 노역하게 되는데 심할 때는 16시간 이상씩 투입되기도 했다. 안전 대책을 강구할 리 없으므로 죽어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무너지는 것 외에도 가스가 차고, 해저 탄광이라 습도도 엄청 높았으며 해수로 인한 염분이 있는 지하수가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지급된 것은 헬멧과 고무줄, 속옷, 주먹밥 뿐이었다. 고무줄은 가파른 경사에 떨어지지 않게 서로를 묶는 용도로 쓰였다. 주먹밥은 콩깻묵을 섞었는데 이는 콩기름을 짜고 난 찌꺼기로 보통 비료로 사용할 만큼 저급한 음식이었다. 위험한 갱내 작업은 수용자들을 우선 투입하여 막바지에는 90%에 이르렀으며 그 수는 800여명에 달했다. 더군다나 나이 어린 12세~15세 어린이들은 개미굴이란 갱내 깊은 곳에 들어가 그곳에서 16시간 이상씩 작업하게 했다.

군함도에서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 따위는 없었다. 못쓰는 가마니짝 따위로 대충 덮어 거룻배에 싣고 가 나카시마 섬에서 기름을 부어 대충 태웠다. 사람 태우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전쟁 전만 해도 나카시마 화장장에서 연기가 안나는 날이 있었지만, 전쟁 말기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온종일 검은 연기가 피어 올라왔다.

일부 식민지 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조건에 탈출을 시도하였다. 10km 정도 헤엄치면 구마모토현이 있어서 이쪽으로 탈출을 시도하였는데 중노동으로 몸이 워낙 쇠약해져 태평양의 거센 파도를 해쳐나갈 재간이 없었다. 대부분이 도중에 건너가 익사하였고, 간신히 육지로 도착하면 거긴 자유의 땅이 아닌 일본의 본토였다. 즉시 잡혀서 돌아오게 되었다. 나가사키 주민들이 그들을 위한 위령비를 세울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그러던 와중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경 채광이 안되어 항상 컴컴했던 사택 집안이 갑자기 훤해졌다. 폭음도 없고 미군기가 날아가는 소리나 사이렌도 없었다.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일이냐고 어리둥절 하였다.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이 터진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일본인 감독과 관리직들이 모조리 사라졌다.(8월 18일). 사무실은 서류를 태우거나 가져가 텅텅 비었고, 탄광 입구는 폐쇄되었다. 심지어 일본인 광부들까지 없어졌다. 그제야 조선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전쟁이 끝났다. 집에 갈 수 있다."

모두가 곧바로 해방의 기쁨을 누린 것은 아니고, 일부는 나가사키 복구 작업에 투입되었다. 잔해와 시체를 치우는 일을 반복하였다. 강제 노역의 대가는 여러 명목으로 보수를 제하여 그들에게 쥐어진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여하튼 조선인들은 일본인이 사라져버린 이 섬에서 너도나도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선착장 동굴 입구에 붙어 있던 영광의 문이라는 현판은 사라지고 대신 지옥의 문이라고 힘차게 휘갈겨 쓴 현판이 붙어 있었다.

조금 이상한 것은 일본인이 없어진 그 다음날 천여명의 중국인 노동자들도 사라졌다는 조선인들의 증언이다. 설명했듯 노동자들이 자력으로 탈출하기 불가능한 환경이고 그렇다고 일본인들이 중국인들을 본토로 데려가면서 조선인은 두고 갔을 리가 없는 상황. 중국인 대량 학살이 발생했을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갱도에 몰아넣고 입구를 폭파했다는 주장을 펼치지만 근거는 없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라 군함도에 남은 것은 조선인오키나와인들뿐이었다. 원폭 맞은 나가사키시 일대에는 이삼십명을 태울만한 배 한척 남아 있지 않았다. 조선인들은 몇 명씩 작은 배로 육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23] 이에 조선인들은 개별적으로 섬에서 나가 그리운 조국으로 돌아 갈수 있었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일본인들을 위해 일본 전역에서 일하고 있는 식민지 탄광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금하고 계속 탄을 캐내라는 지시를 점령군 최고사령관령으로 내렸다. 그나마 군함도에서는 일본인들이 죄다 도망가는 바람에 이러한 명령이 수행되지 않았다. 해방되었는데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해말까지 계속 막장에서 죽어나던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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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9년 아래 장소 추가로 10곳 업그레이드.

6. 관련 문서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3] '외래어 표기법 제3절: 바다, 섬, 강, 산 등의 표기 원칙'에 의해 '시마'라는 낱말이 한국에서 섬이라는 뜻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해당 명칭이 섬의 이름임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섬'이라는 명칭을 보충해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하시마라고 해봐야 한국인들은 한 번에 듣고 그게 뭔지 모르기 때문에 굳이 섬이라고 한번 더 불러준다는 말이다. (겹말의 3번 항목 참조)[4] 군함도라는 별명은 일본 쪽에서 붙인 것이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폐기된 카가급 전함 2번함 토사의 미완성된 모습과 실루엣이 비슷하다고 하여 이런 별명이 붙여진 것.[5] 당시에는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이기에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6] 지금에 비해 상당히 온전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물론 그럴수록 더 무섭지만.[7] 하시마섬의 면적은 64750m²로, 건국대 일감호보다 약간 크고 독도 동도보다 조금 작다.[8] 세계 최대 인구 밀도를 가진 곳은 그 유명한 구룡채성이지만 경우가 다르다.[9] 반대파는 타지의 외국인과 한국인이 강제노동과 비참한 삶을 산 사람들이 죽은 참담한 곳을 등재해야 하냐는 입장이고, 찬성파는 당시 일본의 경제를 이끌었으며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당시의 참담함을 그대로 갖고있어서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입장이다.[10] 일본인들이 조선인에게 까마귀에게 하듯 돌팔매질을 했다고 해서 징용공을 까마귀로 치환해 붙인 제목.[11] 주의사항: 군함도 한곳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유네스코 유산으로 같이 등재된 강제노동이 있었던 다른 산업시설을 포함한다. 군함도만 유독 조명 받지만 실제 강제노동자의 증언에는 군함도는 나카시마섬(하시마 바로 옆 큰 섬) 탄광을 포함한 부분이다. 두 곳 모두에 탄광 강제노동자가 동일한 탄광을 채굴하고 있었다. 현재는 탄광 폐쇄로 막혀있지만, 최장섭씨의 증언등을 확인해 보면 당시 두섬의 탄광 지하에서 서로 연결되어 노동자끼리 접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시마 강제노동 관련 학술연구자료를 보면 하시마 섬 하나를 보기보다는 두개의 서로다른 섬의 탄광 노동자들이 하나의 탄광지대 채굴을 목적으로 같이 일했다고 보는 시각으로 보고있다.[12] 이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군함도 편에서도 출연하였다.[13] 북한 영화 을사년의 매국노[14] 사실 일본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시절 다른 나라를 침탈했던 대다수 나라들의 몇몇 근대유산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전쟁과 연관된 세계유산 대부분이 그렇듯 지배국과 피지배국의 처지가 갈리는 것. 대표 예시가 바로 레오폴드 2세 시절에 지어진 벨기에의 여러 근대 유산들이다.[번역] 의지에 반하여 끌려왔으며 가혹한 조건 하에 일하는 것이 강제되었다.[16] 링크가 없어져서 wayback에 백업된 페이지로 대체하였다.[17] 당연하지만 이는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만 의존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거나 거짓말이거나 둘 중에 하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일본 정부와 사회의 상황을 볼 때 일본 증언자를 포함해 강제노동자의 증언은 거짓말이라 믿고 있다.[18] 가토 야스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가토 야스코 문서 참조.[19] 또한 한국의 우익세력 일부에서도 이들의 주장을 따라 (군함도를 포함하여) 강제징용 자체를 종북세력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선동하고 있다.[20] 무한도전에서 유재석과 하하가 이 섬에 상륙할 때 안내원이 이와 같은 내용을 설명해준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급격한 비탈에 집을 연이어 붙인것과 같은 매우 조악한 구조라고 한다. 특히 채광이 안되어 문을 닫으면 빛이 전혀 안들어 왔다. 학교의 경우 <신불산>에서는 주인공 구연철이 40명 학급에 조선인 학생은 3명 있었다고 언급한다.[21] 그 당시 1920~1930년대에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소학교 교사의 월급이 20원이었다.[22]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인용한 인터뷰에 따르면, 쌀과 콩깻묵을 섞은 주먹밥은 군함도에 사는 쥐들마저도 쌀만 골라먹고 콩깻묵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고 한다.[23] 이상의 내용은 안재성의 <신불산: 빨치산 구연산의 생애사>에서 발췌하였다. 구연산은 전쟁전에 군함도로 간 광부의 아들이었다.[24] 유아용 비스킷을 뜻한다.[25] 1943 지옥의 문 - 콩깻묵과 검은 다이아몬드[26] 앞선 인터뷰 기사문에서 확인 할 수 있었듯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지쿠호 지역 탄광에서 도망쳐 동료의 탈출 제안에 하시마로 도망간다. 이곳보다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 여겼지만 곳이였다.[27] 하시마에서 도망친 강제노동 조선인을 숨겨주다 일본 경찰에 의해 고문으로 죽은 아버지를 보고 평생 조선인 강제 노동자를 연구해온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