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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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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도부
1.1. 태평양 전쟁 주도자1.2. 관료와 정치인, 외교관
2. 황족3. 식민지 총독4. 장성급 장교
4.1. 일본 제국 육군4.2. 일본 제국 해군
5. 영관급 장교
5.1. 육군 장교5.2. 해군 장교5.3. 항공대 장교
5.3.1. 파일럿
5.4. 참모5.5. 기타
6. 위관급 장교 및 부사관, 일반병사
6.1. 징집으로 군복무한 인물
7. 조선인 출신 일본군8. 반전주의자9. 인도주의자
9.1. 전시에 인명을 구출한 사람
10. 관련 문서

1. 지도부

1.1. 태평양 전쟁 주도자

1.2. 관료와 정치인, 외교관

2. 황족

3. 식민지 총독

4. 장성급 장교

4.1. 일본 제국 육군

4.1.1. 삼대오물

4.1.2. 삼간사우

4.1.2.1. 삼간
4.1.2.2. 사우

4.2. 일본 제국 해군

5. 영관급 장교

5.1. 육군 장교

5.2. 해군 장교

5.3. 항공대 장교

5.3.1. 파일럿

5.4. 참모

5.5. 기타

6. 위관급 장교 및 부사관, 일반병사

6.1. 징집으로 군복무한 인물

7. 조선인 출신 일본군

8. 반전주의자

9. 인도주의자

파일:20221024163351585_R0WS2NPF.jpg
일본의 군의관 대령이자 소록도 병원의 2대 원장, 그가 소록도에 오자마자 한센병 환자들에게 한국식 솜옷을 입게하고 가족 면회도 허락해 주었고, 3년제 학교를 세워주었다. 하나이 원장은 부임 그 다음 해 1922년 10월 8일에 전라남도 광주에서 선교를 하고 있었던 일본 성결교회 목사인 다나카 신사부로(田中道三郞) 목사를 초청해서 복음을 전하도록 했고, 그 열매로 소록도교회를 창립하도록 했다. 병실에서 예배를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하나이 원장은 신사를 예배 처소로 사용하도록 허락해주었다. 이어 1928년에 북쪽 병사(구북리)에 지금의 북성교회를 세웠고, 남쪽 병사(남생리)에는 지금의 남성교회를 세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병원의 수용 능력이 엄청나게 불어나고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자 결국 과로로 인해 소록도 병원에서 죽었다.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과 주민들이 그의 송덕비를 세웠다. 그에 관한 이야기하나이(花井善吉)원장 창덕비 건립(1930. 9.)

그러나 그의 사후, 4대 원장인 스오 마사스에 시기부터 소록도 병원의 운영은 악화되어 해방 이후의 군사독재정권기까지 소록도한센병 환자에 대한 갖가지 잔혹한 인권탄압의 온상이 되었다.

9.1. 전시에 인명을 구출한 사람

10. 관련 문서


[1] 인도양 학살사건에 연루되어 처벌됨.[2] 이 사람은 전범으로 처벌받은 게 아니라, 그냥 포로수용소에 감금되어있었을 뿐이다. 딱히 전범 행위를 한 일은 없이, 부하들을 한 명이라도 더 무사히 후퇴시키려고 고군분투했을 뿐이라서, 수용되어있던 2년 동안 단순한 전쟁 포로로 대우받았다.[3] 말 그대로 세계 최종 전쟁론.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무기가 개발되면 이 무기를 통한 최종 전쟁을 거쳐 인류는 통일된다는 주장으로 일본 내에서는 핵무기와 상호확증파괴 전략을 예언했다고 엄청 떠받들고 있다.[4] 호리우치 대좌는 그 죄로 인해서 억울하게 처형당했다. 다만 의례 소총 4발로 사형당했다.[5] 전시 국제법 위반사항이다[6] 特攻せず 夜襲部隊, 2015/7/11 静岡新聞[7] 일본 육군의 해체 절차를 위해 육군 장병들을 일부 남겨 편성한 기구. 해군 역시 같은 역할의 제2복원성이 있었다.[8] 독재자로 유명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오노다를 사면시켰다.[9] 헬기만 지나가면 정글에서 쫓기던 생각이 나서 덜덜 떨었다.[10] 일설에 따르면 어망에서 자꾸 가재, 생선 등이 사라지자 도둑을 잡으려고 잠복중이던 현지인에게 잡혔다고도 한다.[11] 부끄럽지만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등 여러 버전이 있으나 실제로 한 말은 부끄럽지만 돌아왔습니다(恥ずかしながら帰って参りました) 이것뿐이었다. 호사가나 언론에 의해 살을 덧붙인 것이 퍼져 나갔던 것.[12] 그러나 80년대의 인터뷰에서 "저는 제국시절 세대라서 현재의 일본에 적응하기는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며 전후 사회에 적응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13] 파일:레오나르도를 참수하는 케네스.png
그 사진에서 이 자에게 참수당한 연합군 부사관이 레오나르도 시플릿 호주군 하사이다.
[14] 재밌는 것은 김일성도 비슷한 소문이 돌았는데, 이 경우는 아예 '누가 내각을 맡으면 좋겠는가?'란 당대의 설문조사에서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15] 홍사익이 직접 전범행위를 지시하거나 실행한 적은 없었으나 학살을 저지른 부대의 최종책임자였고 사실상 묵인하였기였때문에 그 책임을 지고 처형되었다.[16] 그러나 이 주장의 시초는 가토 도모사부로였다. 호리 본인도 가토 밑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17] 다만 쓰치야가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