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과거에 존재했던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에 대해 다룹니다.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 혹은 이 국가의 프로이센이란 이름을 가진 주에 대한 내용은 프로이센/행정구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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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Preußen / Preussen | |||
Suum cuique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 |||
지도 이미지 중 진청색 영역(1866년)[1] | |||
1525년 4월 10일 ~ 1947년 2월 25일 | |||
<colbgcolor=#000><colcolor=#fff> 위치 | <colbgcolor=white><colcolor=black>중부유럽 | ||
독일어 | Preußen / Preussen | ||
저지 독일어 | Preußen / Pruzzen / Prußen | ||
수도 | 쾨니히스베르크 (1525 ~ 1701) 베를린 (1701 ~ 1947) | ||
정치체제 | 군주제 (1525 ~ 1918) 공화제 (1918 ~ 1947) | ||
국가원수 | 공작 (1525 ~ 1701) 국왕 (1701 ~ 1918) 국왕 겸 황제 (1871 ~ 1918) | ||
면적 | 348,779㎢(1871년) 292,695㎢(1925년) | ||
인구 | 24,689,000명(1871년) 40,169,219명(1910년) 38,175,986명(1925년) | ||
언어 | 독일어, 저지 독일어, 폴란드어 | ||
종교 | 개신교, 가톨릭 | ||
화폐 | 마르크 | ||
국화 | 수레국화 |
[clearfix]
1. 개요
언어별 명칭 | |
<colbgcolor=#bbb,#555>독일어 | <colbgcolor=white,#666>Preußen 또는 Preussen[2] |
고(古) 프로이센어 | Prūsa[3] |
라틴어 | Borussia (보루시아)[4] |
폴란드어 | Prusy |
리투아니아어 | Prūsija |
러시아어 | Пруссия(Prussiya) |
영어 | Prussia(프러시아) |
프랑스어 | Prusse(프뤼스) |
한자 음역 | 普魯西(보로서) 또는 普魯斯(보로사)[5] |
프로이센은 과거 발트해와 인접한 유럽 동북부와 중앙유럽 지방 일대를 부르던 지명이자, 해당 지역에 존재했던 나라의 국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1618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동군연합이 수립된 이후부터 본체는 쾨니히스베르크가 있는 프로이센 공국이 아니라 베를린이 있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이었다. 프로이센은 어디까지나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 왕국에 속해있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였던 호엔촐레른 가문이 왕을 칭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어떻게 보면 이름과 실제가 다른 사례인데, 1806년 이전까지는 프로이센이 아니라 브란덴부르크로 더 많이 불렸고 프로이센은 슬라브 색채가 강한 이름이었다. 프로이센이 대외적인 명칭으로 굳어진 것은 1806년 신성 로마 제국 해체 이후이다. 이러한 사연이 있는 프로이센의 이름을 딴 프로이센 왕국이 독일 역사상 두 번째 통일 국가[6]인 독일 제국의 건국을 주도한 맹주국이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오늘날 독일이라는 국가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갖추어졌기 때문에 흔히 프로이센을 (북부) 독일의 전신이라고 평가한다.
과거 한국에서는 영어식 발음인 '프러시아'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으나,[7] 현재는 원어인 독일어를 기준으로 프로이센이라 고쳐 부르는 추세이다. 프러시아는 러시아와 이름이 비슷하지만 실제로 관련은 없다. 프로이센에서 로이센(Reußen)은 중세 독일어 방언에서 러시아를 뜻하는 단어였다. 현대 독일어로 러시아는 루슬란트(Russland)이다. 연관성을 찾자면, 과거 프러시아(프로이센)의 영토였던 오스트프로이센주의 북부 지역은 오늘날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주의 영역이 되었다는 점 정도. 원래 프러시아인들이 러시아와 같은 슬라브인들이며 실제로 러시아 땅이 되었다.
2. 역사
2.1. 고대 프로이센
자세한 내용은 고대 프로이센 문서 참고하십시오.2.2. 독일 기사단국
튜튼 기사단의 깃발 겸 독일 기사단국의 국기 |
튜튼 기사단은 마조프셰 공작이 마련한 약간의 땅을 전초 기지 삼아 프로이센 십자군을 시작했다. 튜튼 기사단은 프로이센 전역에 여러 도시와 성채를 건설했다. 십자군 원정 개시 이전에 기사단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시칠리아 왕국 국왕 프리드리히 2세와 맺은 '리미니의 금인칙서(1230년)' 등의 조약을 명분으로 튜튼 기사단의 영지가 되었고, 도움을 청했던 마조프셰 공작과는 조약을 체결 독일 기사단국을 건국했다.
독일 기사단국은 프로이센인들을 리투아니아쪽으로 달아나게하고 독일 본토에서 독일인 이주민을 이주시켰다. 14세기에는 독일 기사단국은 그 영토가 남쪽으로는 폴란드 북부(단치히가 위치한 포메렐리아와 프로이센), 북쪽으로는 고틀란드 섬과 에스토니아, 동쪽으로는 페이푸스 호에 이르렀고, 이렇게 광활한 영토를 보유한 기사단국은 동쪽의 숙적인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폴란드 왕국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벌였다.
그러나 폴란드 왕국-리투아니아 대공국 연합군과의 대결은 1410년에 그룬발트 전투(1차 탄넨베르크 전투)라는 대참사를 불러왔고 이후 기사단국은 서서히 쇠퇴하다 1453년 ~ 1466년의 '13년 전쟁'으로 완전히 몰락, 수도 마리엔부르크와 무역의 황금 알 단치히를 빼앗기고 기사단장은 폴란드 국왕의 봉신이 되는 굴욕을 당했다. 이후 기사단국은 폴란드의 영향력에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계속했고 폴란드는 기사단국을 복속시키기 위한 전쟁을 계속했다.
16세기 초, 튜튼 기사단의 제37대 기사단장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은 폴란드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으나 상황이 좋지 않았고, 휴전 기간 동안 전황 타개를 위해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의회에 참석했으나 황제 카를 5세는 알브레히트와 기사단에 무관심했고 이에 알브레히트는 제국과 황제가 신봉하는 가톨릭에 회의감을 품었다.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돌아오던 알브레히트는 귀환 도중 우연히 뉘른베르크에서 열리던 신교도들의 회의에 참석하게 되는데 회의 도중 만난 루터파 신학자 안드레아스 오지안더(Andreas Osiander)[10]와의 대화를 통해 신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신교의 창시자 마르틴 루터가 활동하던 신교의 중심지 비텐베르크로 가서 그 곳에서 루터와 만났다. 루터에게 감명을 받은 알브레히트는 신교로 개종, 쾨니히스베르크로 돌아오자마자 독일 기사단국의 세속화와 기사단의 해체를 선언했다. 알브레히트는 전쟁을 벌이던 폴란드에게 앞으로도 계속 폴란드의 봉신국으로 남을 터이니 신교로의 개종 및 기사단국의 세속화를 승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가톨릭에 반하는 신교계 공국의 설립임에도 기사단국의 종주국인 폴란드가 이에 찬성하면서[11] 프로이센 공국의 건국이 결정되었고 1525년 4월 8일 폴란드의 수도 크라쿠프에서 체결된 조약과 이틀 뒤 폴란드 국왕 지그문트 1세로부터 프로이센 공작의 임명을 받는 의식을 통해 알브레히트 자신은 가톨릭 수도자이자 기사단장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신생 프로이센 공국의 초대 공작으로 취임했다.[12] 이로써 프로이센 공국은 명목상 폴란드 왕국의 세력권에 속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독일 기사단국 문서 참고하십시오.
2.3. 프로이센 공국
자세한 내용은 프로이센 공국 문서 참고하십시오.2.4. 프로이센 왕국
자세한 내용은 프로이센 왕국 문서 참고하십시오.2.5. 프로이센 자유주
자세한 내용은 프로이센 자유주 문서 참고하십시오.2.6. 프로이센 지역과 현재의 독일
자세한 내용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독일-폴란드 영토 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앞에서 말했듯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포젠과 서프로이센 대부분,[13] 엘자스-로트링겐 및 기타 일부 영토를 빼앗겼고,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동프로이센, 슐레지엔,[14] 브란덴부르크 동부의 1/3과 포메른의 2/3 등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동방 영토를 잃어버렸다.
비록 현대에 이르러서 현재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주 등을 제외한 옛 프로이센의 대부분이 폴란드나 러시아에 예속되었다곤 해도, 프로이센이 현대 독일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은 그 어떤 것들보다도 더할 나위 없이 크다. 30년 전쟁 이후 수백 개의 영방으로 나뉘어지고, 나폴레옹 전쟁으로 태반이 정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왕국만 4개(프로이센,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작센)가 존재했던 독일이 지금의 통일된 독일로 있게 만든 나라인 데다가 독일에 대한 대외 이미지 등 프로이센이 현대 독일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심지어는 현대 독일의 수도도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인 데다가, 앞서 말한 대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색상이 흑적금 삼색이 아닌 흑백으로 되어 있는 것도 프로이센의 영향이 짙다. 그리고 상술했듯 프로이센의 중심은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였는데 폴란드로 넘어간 노이마르크(루부시주) 지역은 호엔촐레른 가문이 1415년 집권한 이후에 차지한 영토라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중심 영토도 아니었으니 문화적인 상실은 크지 않다.
독일 네오나치 및 극우파들의 염원이 이 과거 프로이센의 영토 수복인데, 현재 독일의 방침 자체가 '상실한 영토의 영유권을 영구히 포기한다'라서 가능성은 없다.
폴란드는 이러한 독일의 구 프로이센 지역에 대한 영토포기가 온당한 결정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이다. 과거 나치 독일은 폴란드를 침략하여 유대인 90%를 포함한 폴란드 전체 인구의 무려 25%를 학살했다.[15] 이 막심한 손해는 독일이 보상하지 않으면 폴란드가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소련에 빼앗긴 영토를 점유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보상을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산 폴란드가 들어선 후 독일로 강제 이주된 이들 중에는 바로 이 나치 독일이 유대인과 폴란드인들을 학살하고 해당 도시에 대거 독일인들을 이민시킨 것도 있다. 전쟁 기간 동안 250만에 이르는 폴란드 시민들이 독일의 강제 이주로 쫓겨났고, 이 자리를 130만에 이르는 독일 정착민들이 차지했다.
예를 들어 폴란드 공업 도시 우치(Łódź)의 경우, 전쟁 전의 시민 중 독일계는 9%에 불과했지만 독일이 점령한 이후 25만에 이르는 유대인과 15만에 이르는 폴란드인들이 쫓겨났고, 이들 대부분은 학살당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15만에 이르는 독일인이 차지했다. 단순히 우치뿐만 아니라 독일에 병합된 폴란드 서북부 영토에서도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이렇게 폴란드인과 유대인들의 자리를 차지한 독일인들 중 일부는 독일군을 따라 독일 영토로 도망쳤거나 학살 및 추방당했고, 나머지 독일인들은 전후 폴란드 공산 정권에서 독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경우는 단순한 압제자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히 인구뿐만이 아니다. 폴란드는 독일의 침공으로 전체 재산의 상당수를 잃어버렸다. 바르샤바, 그단스크, 그디니아, 포즈난 등 유수의 폴란드 도시들이 폐허가 되거나 반파되었다.[16] 특히 바르샤바의 경우는 독일에 의해 계획적으로 매우 철저히 파괴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이 폴란드 동부 지역을 자신이 가져갔고 그 보상으로 독일 동부 지역을 떼어 폴란드에 주었다. 당시 소련 지도자가 악명 높은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오히려 당시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는 전쟁 전의 국경에 동프로이센 전역, 라우엔부르크인포메른(현 폴란드 렝보르크) 일대의 힌터포메른 일부, 오버슐레지엔 정도만 추가하기를 원했다. 정작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의 독일 구 동방 영토들을 폴란드에게 합병하게 해준 것은 스탈린이었다. 또 스탈린은 폴란드 침공에서 독일과 함께 폴란드를 동서로 갈라먹은지라 폴란드의 입장에선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얄미운 철천지 원수 같은 존재였고, 당시 스탈린으로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친소련 위성국가가 된 폴란드의 적개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서부 등 폴란드 제2공화국이 소폴전쟁을 통해 폴란드로 흡수했던 구 폴란드령 동부 지역들을 가져가는 대신 폴란드가 슐레지엔과 힌터포메른, 동프로이센 남부 등 독일이 지배하던 구 프로이센 지역들을 합병하도록 하는 조처를 취한 것이다.
이외에도 폴란드는 전후 독일에 보상을 청구한 적이 의외로 단 한 번도 없다.[17] 1945년 당시 폴란드인들이 이 국경을 원했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위에도 써놨지만 스탈린이 친히 그렇게 명령했다. 그리고 폴란드는 독일 동부를 얻은 대가로 자국의 동부 영토를 소련에 빼앗겼다.[18] 즉 폴란드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보상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남은 것은 독일이 남기고 간 폐허와 독일령 시절 여기에서 살던 독일인 사업가와 나치당원들이 경영하던 약간의 맥주 양조장 및 공장, 조선소, 탄광 정도 밖에 없었다.[19] 그나마 폴란드 인민으로서 공산주의 사상 개조를 시켜서라도 지역 경제를 굴릴 수 있는 독일계 주민들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좋겠지만, 이마저도 스탈린의 지시에 의해, 그리고 청년층 인구가 거의 박살난 독일의 피해 재건을 위해 이 일대에서 살던 독일계들은 전부 다 동독으로 쫓아냈다. 그리고 폴란드인들은 소련으로부터 신규로 합병해 먹은 이 구 독일령 지역 위에서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어렵게 재건해야 했다. 그런데 물론 가능성이야 없지만 만약 독일이 갑자기 폴란드에 영토를 내놓으라 한다면, 폴란드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가 없다. 나치 독일에 의해 유럽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가 폴란드와 소련인데, 그 역사적 과정을 그냥 무시하고 내놓으란 법이 있는가?
사실 이러한 주장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이, 현대 폴란드 서부와 북동부 지방 영토의 3분의 1 이상이 옛 프로이센(독일 제국 기준) 땅이다. 폴란드가 이 영토를 가지게 된 계기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스탈린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고 폴란드 침공에 가담하여 집어삼켰던 영토를 내놓지 않으려고 폴란드에 일련의 보상으로서 대규모 탄전 지대이자 공업 지대였던 슐레지엔, 발트해 요충지이자 구 독일령 동방영토 지역의 최대 곡창지대인 포메른 이동 지역과 동프로이센 등의 독일 영토를 대신 할양한 것인데, 이 때문에 본래 폴란드에서 약간 서쪽에 위치하던 수도 바르샤바가 상당히 동쪽에 쏠리게 되는 등 국토가 서쪽으로 많이 밀려나게 되었다.
현대에도 이 지역은 폴란드의 알토란인 데다 폴란드 역시 커즌 선 이동의 고토를 소련에 빼앗겼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의 상실 영토 수복 발언이나 운동은 결국 폴란드를 집어삼키거나 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사안보적으로 자국을 위협하겠다는 뜻이 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을 구서독 지역과 균형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독일 경제에 크게 무리를 줬고, 현재까지 그 부작용이 만만찮다. 그것도 모자라 구동독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낙후된 구 프로이센 영토까지 덜컥 떠맡게 된다면? 1989년 동독의 1인당 명목 GDP는 $9,679였고, 폴란드는 1989년 당시 $4,565에 불과했는데, 이 자료도 공산 국가 특유의 과장된 통계로 실제로는 동독 3000, 폴란드 1000~1500이었다. 참고로 1989년 당시 서독은 $15,300.[20] 거의 슬라브인으로 구성된 인구만 1,000만 명이 넘는 데다가 서독 근처도 못 오는 경제력[21]을 자랑했던 이 지역을 떠맡는다면 훨씬 문제가 심각해졌을 것이다.
거기다가 전쟁 중 있었던 대규모 학살이나 전후의 강제 이주로 인해 현재(21세기)는 슐레지엔이나 프로이센 지방에 독일인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체코에 있는 수데티 지방도 마찬가지로, 나치 독일 시절처럼 현지의 독일인들의 민족 심리를 자극하여 민족 자결주의를 운운하며 영토를 병합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다만 북부 오스트프로이센, 즉 현재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주에서는 2001~2004년경 러시아계 주민들의 자발적인 독일로의 병합 운동 및 쾨니히스베르크 명칭 복귀 운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소련 붕괴 이전 소련 영토였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며 칼리닌그라드 주가 EU 안의 섬이 되어버렸기 때문. 같은 러시아 영토인데도 불구하고 칼리닌그라드에서 모스크바 등 러시아 본토에 육로로 이동하려면 비자가 필요한 해괴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22] 안 그래도 주변국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차에 차별 아닌 차별까지 받게 되자 소외감이 극에 이른 주민들이 이 참에 아예 칼리닌그라드 주를 독일에 재합병하거나,[23] 적어도 자치권을 받기 원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로서도 이 지역은 발트해 연안의 요충지로 스칸디나비아 지역과 중부 유럽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곳이다. 러시아 해군의 발트함대의 모항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또한 부동항이라는 것도 중요한 요소라서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우크라이나나 일본과의 영토 분쟁에 불리해질 선례를 남길 수도 없는 처지인 데다[24] 현재 러시아의 실권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블라디미르 푸틴. 거기에다 독일에서도 종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칼리닌그라드 주는 엄연한 러시아 땅이라고 천명하며 독일 환수 운동의 입을 막았다. 러시아가 나서서 돌려주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독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다. 다만 현재도 칼리닌그라드에 독일인들이 문화, 사회, 경제면으로 칼리닌그라드 내 지분을 착실히 늘려가고 있고, 프로이센 시대 문화유산 유지 보수에 신경쓰는 것을 보면 아돌프 히틀러처럼 당장 무리수는 두지 않고 차근차근 순리적으로 병합할 걸 노리는 건 아닌가 하는 소리도 간간이는 나온다.# 물론 현실적으로 독일이 통일 조건으로 오스트리아와의 통일 금지 및 옛 영토(주데텐란트/포메른 및 동프로이센) 수복 금지를 내건 만큼 이 역시 비현실적인 관측이다. 애초 독일의 군사력도 러시아에 한참 밀려 러시아가 위협을 느끼면 주둔 병력을 늘려서 봉쇄해버리면 그만이다.[25] 그리고 이 도시를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주요 개최 도시 중 하나로 지정, 명백한 러시아 땅으로 못 박아 두는 강수까지 보였다! 정확히는 조별 리그 3개 경기를 칼리닌그라드에서 치르었고, 당연히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뺐으며,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이 격돌했다.
사실 이제 유럽 같은 안정된 사회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것도 자폭 행위이거니와, 이미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치른[26] 독일이 다시 영토 수복 움직임을 보이는 것 자체가 주변국들에는 굉장히 위협적인 일이기 때문에 독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영국, 프랑스나 폴란드 등 주변국의 독일 영토 수복에 대한 경계심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될 때에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아예 통일 자체에 반대했고, 프랑스와 폴란드는 더 이상의 영토 수복이 없고 현 국경에 만족할 것을 명시하라고 수 차례나 압박하고 맹세를 강요했다.
참고로 독일 국가인 독일인의 노래 1절에는 '마스(뫼즈강)에서 메멜[27]까지, 에치(아디제 강)에서 벨트해[28]까지'라며 현 독일국의 영토를 규정하는 구절이 있는데 지금 이 경계들은 벨트해를 빼고는 주변국 땅이다. 특히 네만강은 동프로이센 동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메멜까지'는 현재 폴란드의 전체 영토를 포함하는 영역이다. 본래 비더마이어 시대(1815-1848)에 지어진 시로서, 독일 제국 때부터 부른 노래이긴 하지만 현재는 그 1절을 부르는 게 금기시되고 있고[29] 2절도 그닥 부르기에 좋지 않기 때문에[30] 3절만 부른다(같은 이유로 네오 나치들은 1절만 부른다).
1995년에 한때 브란덴부르크 주와 원래 브란덴부르크였던 베를린을 합쳐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주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실제로 두 주의 정부가 합의 하에 합병을 추진했다. 일부에선 새로 합병된 주를 아예 프로이센 주로 명명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합병은 이듬해 주민투표에서 부결되었고 이에 따라 프로이센의 '부활'도 무산되었다. 주민투표 때 구 서베를린 시민들은 합병에 찬성했는데 구 동베를린 시민들과 브란덴부르크 주민들은 반대했다고 한다.
사족으로 폴란드에서 가톨릭이 국가적 정체성과 동일시된다는 편견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개신교 교회들을 다 갈아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며 폴란드 루터교단과 실롱스크 루터교단등으로 소속이 바뀌어 잘 남아 있는 교회들도 많다. 물론 독일인들이 상당수 추방된 것과 공산정권 시절의 종교 탄압으로 인해 신자수가 과거보다 현저하게 감소한 것도 사실이지만 폴란드에서 개신교를 절대적으로 금기시했던 것도 아닌 데다 개신교 신자들이 모두 독일계이기만 했던 건 아니고, 오히려 폴란드어나 실롱스크어 등으로 예배가 진행되기도 하는 등 생각보다 현지화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3. 역대 수반
3.1. 프로이센 공국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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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 | 요한 지기스문트 | 게오르크 빌헬름 | |
프리드리히 빌헬름 | 프리드리히 | |||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 프로이센 국왕 · 북독일 연방 독일 제국 · 프로이센 자유주 총리 | }}}}}}}}} |
순번 | 이름 | 재위기간 |
01 | 알브레히트 Albrecht[31] | 1525~1568 |
02 |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 Albrecht Friedrich | 1568~1618 |
03 | 요한 지기스문트 Johann Sigismund[32] | 1618~1619 |
04 | 게오르크 빌헬름 Georg Wilhelm | 1619~1640 |
05 | 프리드리히 빌헬름 Friedrich Wilhelm 대(大)선제후 | 1640~1688 |
3.2. 프로이센 왕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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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
프리드리히 1세 |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 프리드리히 2세 |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 |
<rowcolor=#fff> 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 빌헬름 1세 | 프리드리히 3세 | |
<rowcolor=#fff> 제9대 | ||||
빌헬름 2세 |
프로이센 왕국은 독일 통일 이후 독일 제국의 구성국이 되고, 프로이센 국왕은 독일 황제를 겸하게 된다.
순번 | 이름 | 재위기간 |
01 | 프리드리히 1세 Friedrich I | 1688~1701(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로이센 공작) 1701~1713(프로이센 국왕) |
02 |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Friedrich Wilhelm I | 1713~1740 |
03 | 프리드리히 2세 Friedrich II[33] = 프리드리히 대왕 Friedrich der Große | 1740~1786 |
04 |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Friedrich Wilhelm II | 1786~1797 |
05 |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Friedrich Wilhelm III | 1797~1840[34] |
06 |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Friedrich Wilhelm IV | 1840~1861 |
07 | 빌헬름 1세 Wilhelm I | 1861~1888[35] |
08 | 프리드리히 3세 Friedrich III | 1888 |
09 | 빌헬름 2세 Wilhelm II | 1888~1918 |
3.3. 프로이센 자유주 총리
프로이센 자유주 총리 | |||
바이마르 공화국 | |||
제1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 파울 히르슈 | 오토 브라운 | 아담 슈테게어발트 |
제5대 | 제6대 | 제7대 | |
오토 브라운 | 빌헬름 마르크스 | 오토 브라운 | |
나치 독일 | |||
제8대 | 제9대 | ||
프란츠 폰 파펜 | 헤르만 괴링 | ||
프로이센 국왕 |
Ministerpräsident는 주지사로도 번역되지만 주총리가 좀 더 정확하다. 사실 왕국 시대에도 동일한 Ministerpräsident가 있었는데 이건 국가원수급이 아닌 정부수반급이었다.[36]
순번 | 이름 | 재임기간 |
01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Friedrich Ebert | 1918 |
02 | 파울 히르슈 Paul Hirsch | 1918~1920 |
03 | 오토 브라운 Otto Braun | 1920~1921 |
04 | 아담 슈테게어발트 Adam Stegerwald | 1921 |
05 | 오토 브라운 Otto Braun | 1921~1925 |
06 | 빌헬름 마르크스 Wilhelm Marx | 1925 |
07 | 오토 브라운 Otto Braun | 1925~1932 |
- | 공석[37] | 1932~1933 |
08 | 프란츠 폰 파펜 Franz von Papen[38] | 1933 |
09 | 헤르만 괴링 Hermann Göring | 1933~1945 |
참고로 1933년 나치 독일은 Ministerpräsident와 별도로 진짜 '주지사'나 총독과 유사한 Reichsstatthalter[39]란 직책을 만들었는데[40] 1933~35년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직접 프로이센의 이 Reichsstatthalter를 맡았지만 1935년부터 1945년까지는 헤르만 괴링이 대행했다.
4. 역대 행정구역
자세한 내용은 프로이센/행정구역 문서 참고하십시오.4.1. 독일 연방 내 프로이센 왕국 시대
1815년 빈 회의 이후 회복지와 점령지를 합치며 체계적인 행정구획으로 재정비되었다.
순번 | 주(Provinz) | 주도 | 비고 |
01 | 프로이센 | 쾨니히스베르크 | 1824년 베스트-오스트프로이센 주 합병.[41] 現 칼리닌그라드(러) |
02 | 브란덴부르크 | 포츠담 | 1827~1843 주도는 베를린[42] |
03 | 포메른 | 슈테틴 | 現 슈체친(폴)[43] |
04 | 슐레지엔 | 브레슬라우 | 現 브로츠와프(폴)[44] |
05 | 포젠 | 포젠 | 1848년 설치. 포젠 대공국 형태변환. 現 포즈난(폴)[45] |
06 | 작센[46] | 마그데부르크 | 1816년 설치[47] |
07 | 하노버 | 하노버 | 1868년 설치.[48] |
08 | 헤센나사우 | 카셀 | 1868년 설치[49] |
09 | 베스트팔렌 | 뮌스터 | 1815년 설치[50] |
10 | 라인란트 | 코블렌츠 | 1822년 설치(행정구역 조정)[51] |
11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킬 | 1868년 설치[52] |
12 | 호엔촐레른 | 지크마링겐 | 1850년 설치[53] |
(러) = 러시아령, (폴) = 폴란드령
4.2. 독일 제국 내 프로이센 왕국 시대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베를린 | 동프로이센 | 서프로이센 |
브란덴부르크 | 포메른 | 슐레지엔 | |
포젠 | 작센 | 하노버 | |
헤센나사우 | 베스트팔렌 | 라인란트 |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호엔촐레른 | }}}}}}}}} |
이른바 "프로이센 12주(Provinz)"[54]이다. 베를린과 남부에 따로 떨어진 호엔촐레른은 제외되었다. 2~7번은 동부주, 8~13은 서부주이다.
순번 | 주(Provinz) | 주도 | 비고 |
01 | 베를린 | 베를린 | 1881년 독립 |
02 | 동프로이센 | 쾨니히스베르크 | 1878년 프로이센 주에서 분리 |
03 | 서프로이센 | 단치히 | 1878년 프로이센 주에서 분리 現 그단스크(폴) |
04 | 브란덴부르크 | 포츠담 | |
05 | 포메른 | 슈테틴 | |
06 | 슐레지엔 | 브레슬라우 | |
07 | 포젠 | 포젠 | |
08 | 작센 | 마그데부르크 | |
09 | 하노버 | 하노버 | |
10 | 헤센나사우 | 카셀 | |
11 | 베스트팔렌 | 뮌스터 | |
12 | 라인란트 | 코블렌츠 | |
13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슐레스비히 | 1879년 이전 주도는 킬 |
14 | 호엔촐레른 | 지크마링겐 |
(폴) = 폴란드령
4.3. 바이마르 공화국 내 프로이센 자유주 시대
순번 | 주(Provinz) | 주도 | 비고 |
01 | 베를린 | 베를린 | |
02 | 동프로이센 | 쾨니히스베르크 | |
03 | 브란덴부르크 | 베를린[55] | |
04 | 포메른 | 슈테틴 | |
05 | 니더슐레지엔 | 브레슬라우 | 1938년 오버슐레지엔과 통합. |
06 | 오버슐레지엔 | 오펠른 | 1938년 니더슐레지엔과 통합. 現 오폴레(폴) |
07 | 포젠서프로이센[56] | 슈나이더뮐 | 1922~1938 존속. 現 피와(폴) |
08 | 작센 | 마그데부르크 | |
09 | 하노버 | 하노버 | |
10 | 헤센나사우 | 카셀 | |
11 | 베스트팔렌 | 뮌스터 | |
12 | 라인란트 | 코블렌츠 | |
13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킬 | |
14 | 호엔촐레른 | 지크마링겐 | 이후 뷔르템베르크에 흡수되어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 구성원. |
(폴) = 폴란드령
4.4. 나치 독일 시대
(미), (영), (불), (소)는 각 지역을 점령한 국가를 말한다.(미국, 영국, 프랑스, 구 소련)순번 | 주 이름 | 주도 | 비고 및 종전 후 처분 |
01 | 베를린 | 베를린 | 4개 연합국이 분할점령.[57] |
02 | 동프로이센 | 쾨니히스베르크 | (소). 이후 분할 됨.[58] |
03 | 단치히서프로이센 | 단치히 | (소). 폴란드에 할양. |
04 | 마르크 브란덴부르크 | 베를린[59] | (소). 동부는 폴란드에 할양.[60] |
05 | 포메른 | 슈테틴 | (소). 중부 및 동부는 폴란드에 할양[61] |
06 | 니더슐레지엔 | 브레슬라우 | 1941년 슐레지엔에서 재분리. (소). 폴란드에 할양.[62] |
07 | 오버슐레지엔 | 카토비츠 | 1941년 슐레지엔에서 재분리. (소). 폴란드에 할양. 現 카토비체(폴) |
08 | 바르텔란트[63] | 포젠 | (소). 폴란드에 할양. |
09 | 마그데부르크안할트 | 데사우 | (소). 작센 북부+안할트.[64] |
10 | 할레메르제부르크 | 할레 | (소). 작센 남부.[65] |
11 | 쥐트하노버브라운슈바이크 | 하노버 | 하노버 남부+브라운슈바이크. (영). 서독 니더작센주로 통합.[66] |
12 | 오스트하노버 | 뤼네부르크 | 하노버 북동부. (영). 서독 니더작센주로 통합. |
13 | 베저엠스 | 올덴부르크 | 하노버 북서부+브레멘+올덴부르크. (미) + (영).[67] |
14 | 쿠어헤센 | 카셀 | 헤센나사우 북부. (미). 서독 헤센주로 통합. |
15 | 헤센나사우 | 프랑크푸르트 | 헤센나사우 남부. (미). 서독 헤센주로 통합. |
16 | 베스트팔렌노르트 | 뮌스터 | 베스트팔렌 북부. (영).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로 통합. |
17 | 베스트팔렌쥐트 | 보훔 | 베스트팔렌 남부. (영).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로 통합. |
18 | 에센 | 에센 | 라인란트 극북부. (영).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로 통합. |
19 | 뒤셀도르프 | 뒤셀도르프 | 라인란트 북부. (영).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로 통합. |
20 | 쾰른아헨 | 쾰른 | 라인란트 북중부. (영). 서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로 통합. |
21 | 모젤란트 | 코블렌츠 | 라인란트 중남부+룩셈부르크. (불).[68] |
22 | 베스트마르크 | 자르브뤼켄 | 라인란트 극남부+바이에른령 팔츠 +프랑스령 로트링겐 / (불).[69] |
23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킬 | (영). 서독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로 잔류. |
(24) | (호엔촐레른) | (지크마링겐) | [70] |
4.5. 프로이센 행정구역과 현재의 독일 행정구역
프로이센 발원지를 포함한 영토 상당 부분을 현재 러시아, 폴란드, 리투아니아에 내어준 상태이긴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독일연방공화국에서도 구 프로이센의 통치 지역과 연관이 없는 곳은 바이에른, 브레멘의 두 개 주뿐이다. 그나마도 브레멘과 함부르크는 프로이센의 입김이 강하고 그저 주권만 독자적으로 유지한 자유시였고, 또한 러시아와 폴란드에 넘어간 땅의 실향민들이(물론 전부 프로이센계) 주로 정착한 곳이 브레멘, 함부르크, 니더작센[71],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72],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인 것을 보면 현재의 독일에서도 프로이센과 연관 없는 곳은 바이에른뿐이라고 봐도 될 정도.[73] 괜히 독일연방공화국과 바이에른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양차 대전을 거치며 상실한 지역은 오로지 프로이센의 지역만으로, 바이에른과 작센[74]을 비롯한 기타 지역은 현재의 독일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소련[75]이 무리할 만큼 동프로이센 지역의 영유권을 독일에게 떼어내가며 해당지역을 소련과 폴란드가 분할합병을 하게 된 배경에는 동프로이센의 존재 자체가 폴란드의 국가 존립에 위협적이었고, 특히 제1차 대전 종진 이후 폴란드의 독립으로 인해 월경지화된 해당 지역을 독일의 나치 정권이 당시 독일 본토와 동프로이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단치히 회랑 지역의 영유권 할양을 폴란드에게 요구하며 이를 통해 독일 본토와 연결시키려고 하면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폴란드 침공으로 독일군이 점령, 합병한 폴란드 회랑과 폴란드 본토의 육로를 통해서 소련을 침략하여 독소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독일의 정체성과 군국주의 말살은 이와는 큰 관련이 없다. 사실 애초에 프로이센의 중심지는 동프로이센이 아니라 브란덴부르크였으며 호엔촐레른 가문과 독일 제국의 융커 계층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의 계승의식만 있었지 동프로이센은 안중에도 없었다.[76] 당장 프로이센 군국주의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는 베를린 중심의 중앙집권화를 위해 프로이센 공국 융커들을 잔혹하리만치 탄압해 박멸시켜 프로이센 입장에서 보면 철천지 원수같은 인물이었다. 굳이 프로이센의 정체성을 박멸했다면 제2차 세계 대전 후 베를린 분할을 통해 베를린이 동서베를린으로 분단되면서 베를린 대성당 같은 유서깊은 지역이 동베를린 관할이 되었고, 파괴된 베를린 왕궁 잔해를 치우고 공화국 궁전을 세웠던 것이라 할 수 있다.
○ : 순수 구 프로이센 지역 (5개주)
□ : 구 프로이센 지역에서 다른 독일계 지역 흡수 (4개주)
△ : 다른 독일계 지역에서 구 프로이센 지역 흡수 (5개주)
× : 프로이센 통치 지역 불포함 (2개주)
순번 | 주 이름 | 주도 | 상관 관계 | 과거 지역 |
01 | 바덴뷔르템베르크 | 슈투트가르트 | △ | 뷔르템베르크+바덴+호엔촐레른주.[77] |
02 | 바이에른 | 뮌헨 | × | |
03 | 베를린 | 베를린 | ○ | |
04 | 브란덴부르크 | 포츠담 | ○ | |
05 | 브레멘 | 브레멘 | × | |
06 | 함부르크 | 함부르크 | △ | 구 함부르크+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남부 일부[78] |
07 | 헤센 | 비스바덴 | □ | 헤센나사우 주+헤센 주. |
08 | 니더작센 | 하노버 | □ | 하노버+올덴부르크+브라운슈바이크.[79] |
09 |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 슈베린 | △ | 메클렌부르크+포메른주 서부. |
10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 뒤셀도르프 | ○ | 라인란트주 북부+베스트팔렌주. |
11 | 라인란트팔츠 | 마인츠 | □ | 라인란트주 남부+바이에른령 팔츠. |
12 | 자를란트 | 자르브뤼켄 | ○ | 라인란트주 남서부. |
13 | 작센 | 드레스덴 | △ | 작센+슐레지엔주 극서부. |
14 | 작센안할트 | 마그데부르크 | □ | 작센주+안할트. |
15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킬 | ○ | |
16 | 튀링엔 | 에어푸르트 | △ | 튀링엔 군소 공국 지역군+작센주 역외 지역.[80] |
4.6. 주요 도시
1939년 기준.- 1. 베를린 (4,338,756명)
- 2. 쾰른 (772,221명)
- 3. 에센 (666,743명)
- 4. 브레슬라우 (629,565명)
- 5.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553,464명)
- 6. 도르트문트 (542,261명)
- 7. 뒤셀도르프 (541,410명)
- 8. 하노버 (470,950명)
- 9. 뒤스부르크 (434,646명)
- 10. 부퍼탈 (401,672명)
5. 독일사의 국가들과의 관계
자세한 내용은 프로이센/독일사 국가들과의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6. 여담
- 프로이시슈 올덴도르프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읍. 지금도 당당히 Preußisch라는 지명을 쓰고 있는데 1905년부터의 일이다. 구 프로이센 영토에서야 Preußisch Eylau(현 칼리닌그라드 주)나 Preußisch Holland, Preußisch Stargard(현 폴란드) 같은 사례가 많았지만 아시다시피 망했어요.
[1] 이 색이 바로 물감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로, 당시 프로이센의 수도였던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다.[2] 실제 발음은 '프로이슨'과 '프호이슨'의 중간 정도 된다. 독일어(특히 프로이센 중심의 북부)에서 r 발음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르'와 '흐'가 동시에 발음되는, 이른바 '가래 끓는 소리'처럼 발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어 끝의 -en은 '은'에 가깝게 발음된다. 에스체트(ß)는 2005년부터 ss로 대체 표기하고 있다.[3] 이 지역 일대에 원래 살던 프로이센인들이 쓰던 언어로, 서발트어군 계통의 언어이다. 현재는 사멸한 상태.[4] 독일의 축구단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차이가 있디면 묀헨글라트바흐의 보루시아는 이 문서에서 말하는 프로이센(보루시아)를 의미하는 것이 맞지만, 도르트문트의 보루시아는 초기 구단 설립 당시 도르트문트에 존재하던 한 양조장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양조장 이름 역시 이 문서에서 말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겠지만.[5] 전자는 한국과 일본, 후자는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에서 쓰는 표현으로 '보불 전쟁' 등의 용어에 나오는 '보(普)'가 '보로서'의 약자다.[6] 일명 제2제국이라 부른다. 참고로 제1제국은 선대의 신성 로마 제국이고, 제3제국은 후대의 나치 독일이다.[7] 그래서 역사를 잘 모르거나 '프로이센'이라는 이름만 알고있는 사람은 프러시아와 프로이센이 아예 다른 나라인 줄 알던 경우도 있었다.[8] 프로이센인이라는 이름이 훗날 이 지역에 사는 독일인들을 뜻하는 이름으로 굳어지면서 구 프로이센인(Pruzzen)으로 구별해서 부르게 된다.[9]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59366&cid=40942&categoryId=31642[10] 코페르니쿠스의 저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의 출간에 관여하기도 했다.[11] 당시 폴란드 국왕인 지그문트 1세는 알브레히트의 외숙부였다.[12] 기사단장이 이단으로 개종하는 걸로 모자라 기사단의 영지를 자기 걸로 만들자 당연히 기사단 내부는 난리가 났고 격분한 카를 5세는 알브레히트를 당장 제국 재판소에 회부하지만 이미 세속화를 시전한 알브레히트는 좆까. 하지만 알브레히트는 제국의 동맹인 폴란드가 뒤를 봐주고 있었고 거기다 제국 내 농민들의 대규모 봉기에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크리까지 터지면서 제국은 알브레히트를 손볼 기회를 상실하고 만다. 한편 알브레히트의 세속화 결정을 반대한 일부 기사들은 새로 기사단장을 추대한 뒤 프로이센을 떠나 일부 영지가 남아 있는 독일 본토로 향했고 이들은 튜튼 기사단이란 이름 그대로 1809년까지 독일 내의 영지를 다스리다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해체당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 프란츠 1세가 구호 단체로 기사단을 부활시켜 현재 기사단은 구호 단체로 존속하고 있다.[13] 포젠과 서프로이센의 일부 영토가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이전까지 독일 영토로 존속했다.[14] 아주아주 조금 남아서 작센 주에 흡수되긴 했다.[15] 다만 인구의 25%가 줄어든건 소련 점령 영역에서의 피해도 합친 결과이다.[16] 바르샤바는 폴란드의 수도, 그단스크와 그디니아는 폴란드의 무역의 77%를 담당하던 지역이었다.[17] 독일의 전후 보상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양 독일을 재무장시켜야 했기 때문에 서로 합의를 봐서 전후 청산을 철저하게 하고 영토 분할에 대해 입을 닫는 대신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전쟁 배상금을 요구하지 않거나, 소련처럼 형식적으로만 받았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전후보상을 청구하기라도 했던 반면 폴란드는 아예 청구 자체를 하지 않았다.[18] 사실상 소련이 폴란드 영토를 뺏어간거에 대한 보상 겸 입막음으로 구 독일령 지역들을 넘겨준거에 가깝다.[19] 물론 현재 폴란드의 입장에서 저때 당시 구 소련으로부터 대신 받은 구 독일 영토의 잠재적인 경제적 가치가 더 높긴 했지만 합병 초기 당시로써는 맨땅에서 재시작해야 하는 입장이었다.[20] 더 기가 막히는 사실은 동독은 공산 국가 중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는 것이다. 가장 잘 사는데도 서독에 밀린 것. 서독이 당시 자유 국가 중에서 3위로 잘 사는 국가였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문제다.[21] 현재도 독일의 30% 수준. 2013년 당시 독일 GDP는 $46,251, 폴란드는 $13,654.## PPP로 따지면 현재는 독일의 50~60% 수준이다.[22] 칼리닌그라드주의 특수 상황을 감안해달라는 러시아와 난색을 보이는 EU의 협상 끝에 현재 칼리닌그라드에서 러시아 본토로 육로 이동할 때는 간이 통행증을 발급받는 것으로 합의되었다.[23] 물론 이는 독일 측에서 자국이 이미 1990년대 초에 제1,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옛 영토들을 포기한 이상 모국으로의 재합병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24]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와 돈바스를, 일본과는 쿠릴 열도 4개 도서(하보마이, 쿠나시르, 이투루프, 시코탄)를 놓고 영토 분쟁 중이다. 또한 현재 정부 차원의 직접적인 영토 분쟁은 없지만 핀란드, 폴란드, 중국 등과도 분쟁의 씨앗이 존재한다.[25]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군의 무능함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아예 군축으로 비리비리해진 독일 연방군보다는 위협적이다.[26] 특히나 전간기에 독일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라인란트 재무장, 오스트리아 병합, 뮌헨 협정 등)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면도 있는 만큼 독일이 야심을 드러낸다면 전쟁으로 가기 전에 초장부터 압박할 수도 있다. 그것도 서유럽과 동유럽 모두 다[27] 현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 남부 및 타우라게 주 남서부[28] 발트(Balt)해가 아닌 벨트(Belt), 즉 덴마크에 있는 소 벨트 해협(Little Belt)이다.[29] 단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처럼 완전 금지는 아니다. 어쨌건 이 지역들이 한때 독일 땅이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고, 프로이센 시절 영토라고 우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30] 독일의 여자, 신의, 와인, 노래를 지키자는 내용이다. 여자를 남성의 소유물로 봤던 인식이 녹아 있다는 비판으로 인해 부르지 않는다.[31] 독일 기사단국의 군주인 튜튼 기사단의 기사단장으로서는 1510년부터 재위했다. 호엔촐레른 가문의 3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인 알브레히트 3세 아힐레스의 손자.[32] 호엔촐레른 가문의 직계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아힘 프리드리히의 맏아들이며,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 공작의 맏사위였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로는 1608년에 이미 즉위.[33] 7년 전쟁과 제1차 폴란드 분할 이후 프로이센 국왕(König von Preußen)으로 완전히 인정받았다.[34] 1806년 신성 로마 제국 해체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작위 상실.[35] 독일 황제로서는 1871~1888.[36] 오토 폰비스마르크도 프로이센 왕국의 Ministerpräsident였다.[37] 국가 총리 프란츠 폰 파펜이 중앙정부 직속으로 프로이센 자유주 총리를 겸임했다. 후임 총리 쿠르트 폰 슐라이허도 프로이센 자유주 총리겸 프로이센 자유주 경찰청장까지 겸임함.[38] 히틀러 내각 때 부총리 겸 프로이센 자유주 총리를 지내다가 곧 해임된다.[39] 영어로 "Reich Lieutenant" 또는 "Reich Governor" 등으로 번역된다.[40] 본래 이 직위명 자체는 독일 제국 시절에 있었다가 바이마르 공화국 때 없어졌다. 그러다 나치 시기에 부활시킨 것.[41] 1224년 건국된 튜튼 기사단국이 전신이다. 프로이센의 발원지이며 베스트프로이센 지역의 마리엔부르크를 수도로 삼고 한때 에스토니아까지 세력을 뻗쳤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와의 전쟁에 패하면서 베스트프로이센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고 오스트프로이센 만으로 영토가 축소된다(1466년 2차 토른 평화조약). 이 와중에 수도를 쾨니히스베르크로 옮기고 숨죽여 지내다 1525년 기사단장 알브레히트의 개신교 전향 및 공국 선언과 함께 오스트프로이센 지역은 프로이센 공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1466년 2차 토른 평화조약으로 상실했던 베스트프로이센은 1772년 1차 폴란드 분할로 수복했다.[42] 1618년 프로이센 공국의 안스바흐 분가의 대가 끊기자 본가이자 1569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아힘 2세 헥토어와 폴란드 국왕 겸 리투아니아 대공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가 체결한 협약에 따라 프로이센 공국을 흡수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1157년 건국)이 전신이다. 주도권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이 쥐고 있었고 사실 통합 명칭도 브란덴부르크가 되는 것이 순리였으나 신성 로마 제국에 소속되어 있었던 브란덴부르크와 영외 지역이었던 프로이센의 특성상,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 대한 봉신의 의무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 내부 국가인 브란덴부르크가 아닌 역외 국가인 프로이센 국왕을 자처할 수 밖에 없었다.[43] 30년 전쟁 후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및 1653년 슈테틴 조약에 의해 대가 끊긴 포메른 공국을 서부는 스웨덴, 동부는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이 각각 분리 점령했다. 이후 스웨덴과의 전쟁을 거치며 1722년 슈테틴을 포함한 스웨덴령 포메른을 일부 점령하고, 1815년 빈 회의에서 남아 있던 부분까지 양도받았다. 하지만 정작 현재 독일에 남아 있는 포메른은 이 1815년에 얻은 서부뿐이라는 것이 아이러니.[44] 1742년 프리드리히 2세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통해 점령, 이후 1756–1763년 7년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사수하며 프로이센 영토로 확정.[45] 1793년 2차 폴란드 분할에서 프로이센이 획득했던 쥐트프로이센을 나폴레옹 전쟁에서 상실했다 종전 후 1815년 빈 회의에서 회복. 다만 포젠 대공국이라는 괴뢰국 형태로 운영하다 1848년 혁명 후 폐지하고 주로 변경했다.[46] 작센 왕국과는 별개인 프로이센의 작센 주[47]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승리 및 빈 회의 협상으로 마그데부르크 공국, 알트마르크 지역 회복 및 옛 마인츠 선제후국령 에어푸르트와 비텐베르크 등 작센 왕국 일부 흡수합병.[48]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승리로 오스트리아를 지지했던 하노버 왕국 점령 및 흡수.[49]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승리로 오스트리아를 지지했던 헤센 선제후국, 나사우 공국, 프랑크푸르트 자유시를 점령 및 흡수합병.[50]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프로이센이 소유하던 서부 지역 영토. 나폴레옹에게 빼앗겼다 빈 회의 이후 회복.[51]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프로이센이 소유하던 서부 지역 영토. 나폴레옹에게 빼앗겼다 빈 회의 이후 회복. 이때 비텔스바흐 가문의 율리히 주가 율리히, 베르크로 분리되었다. 그 당시 (1815) 3개주로 통합 설치했던 율리히클레베베르크(Jülich-Kleve-Berg) 주, 괴뢰국 니더라인 대공국을 합병하며 라인란트 주가 된다.[52] 1864년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으로 슐레스비히 공국, 홀슈타인 공국에서의 덴마크의 지배권을 빼앗은 후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오스트리아까지 도태시키며 프로이센 영토로 확정.[53]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백국, 호엔촐레른헤힝겐 백국 흡수합병. 프로이센 왕실인 호엔촐레른 가문의 본향으로 이미 프로이센과는 밀접한 관계였다.[54] 여기서는 편의상 Provinz를 '주'라고 번역하긴 했으나,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프로이센 왕국을 대체한 프로이센 자유'주'(Freistaat Preußen, 영어 Free State of Prussia)를 번역할 때 문제가 된다. 프로이센 자유주(Freistaat) 안에 계속 Provinz가 존속했기 때문. 참고로 중국어에서는 프로이센 자유주 같은 staat는 방(邦)으로, 산하의 Provinz들은 성(省)으로 번역해서 혼동을 회피하고 있다.[55] 베를린 내 샤를로텐부르크[56] 1938년 브란덴부르크, 포메른, 슐레지엔으로 분리흡수.[57] 이후 미영불 3개국 점령지를 합친 서독령 서베를린과 구소련 점령지인 동독 수도 동베를린으로 분할되었다 독일 재통일과 함께 통합.[58] 북동부는 리투아니아에, 북부는 러시아에, 남부는 폴란드에 각각 할양.[59] 베를린 내 샤를로텐부르크을 말한다.[60] 서부 및 중부는 동독 체제에서 해체되었다 독일 재통일과 함께 브란덴부르크주로 부활.[61] 서부는 동독 체제에서 해체되었다 독일 재통일과 함께 메클렌부르크 지역과 합쳐지며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로 부활.[62] 극서부만 동독 체제에서 해체되었다 독일 재통일과 함께 작센주에 흡수.[63] 초기에 포젠이었다 개명.[64] 동독 체제에서 해체되었다 독일 재통일과 함께 작센-안할트주로 부활.[65] 동독 체제에서 해체되었다 독일 재통일과 함께 작센안할트주로 부활.[66] 단, 블랑켄부르크 지역은 동독으로 넘어가 통일 이후 작센안할트주로 편입.[67] 미국 점령 지역인 브레멘은 재분리시키고 나머지 영국 점령 지역은 서독 니더작센주로 통합.[68] 룩셈부르크 재분리독립 후 서독 라인란트팔츠주로 통합.[69] 로트링겐은 알자스-로렌으로 프랑스에 재복속, 팔츠는 라인란트-팔츠주로 통합, 라인란트 극남부는 프랑스 보호지구 형태로 분리되었다 1956년 서독으로 복귀하며 자를란트주 구성.[70] (불). 뷔르템베르크에 흡수되어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 구성원으로 존재하다 종전 후 이름만 같은 프랑스의 점령지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에 소속. 이후 1952년 미국의 점령지 뷔르템베르크-바덴과 합쳐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소속되며 명의 상실.[71] 뤼네부르크에 오스트프로이센 민속박물관이 있다. 민속박물관은 자연히 해당 지역 유민이 많이 이주해 있거나, 연관이 있는 곳에 세워졌다.[72] 뮌스터에 베스트프로이센, 뒤셀도르프 인접 라팅엔에 오버슐레지엔 민속박물관이 있다. 여담으로 포메른과 니더슐레지엔의 민속박물관은 독일이 재통일되며 쪼가리라도 남아 있는 지역-각각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 그라이프스발트(구 포메른), 작센 주의 괴를리츠(구 니더슐레지엔)-에 있다.[73] 더 정확히는 바이에른의 오버바이에른과 니더바이에른과 같은 순수 바이에른 지역. 현대 바이에른 주 북부의 프랑켄 지역은 프로이센 왕국을 통치한 호엔촐레른 가문의 2차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호엔촐레른 가문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되기 전부터 통치한 지역으로 프로이센 공국을 세운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은 뉘른베르크 근처 안스바흐를 통치한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분가 출신이었다.[74] 다만, 동쪽 극히 일부분은 폴란드로 넘어갔다.[75] 실제로 영국과 미국은 독일을 너무 죽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독일을 죽이는 만큼 폴란드에 보상을 내주어야 했는데 영국과 미국은 커즌 선 국경을 복원하거나, 그것이 안된다면 최소 르부프는 폴란드령으로 남기기를 희망했다고 한다.[76] 프리드리히 대왕은 유언으로 프로이센의 국체는 브란덴부르크, 슐레지엔, 마그데부르크, 할버슈타트면 충분하며 동프로이센은 전쟁 나면 내다버리라고 했고, 빌헬름 1세는 포츠담을 아껴 포츠담으로 천도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한편 독일 제국 국기를 흑백적 삼색기로 정했는데 이는 검은색과 하양색이 프로이센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하양색과 빨간색은 브란덴부르크의 상징색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한술 더 떠 쾨니히스베르크가 있는 동프로이센이 아닌 자신의 고향인 쇤하우젠이 있는 알트마르크(Altmark)를 가리켜 '프로이센의 요람(Wiege Preußens)'이라고 말했는데 알트마르크는 브란덴부르크를 세운 아스카니아 가문 출신의 안할트 백작 알브레히트(Albrecht der Bär 1100~1170)가 처음 개척한 지역이었다. 빌헬름 2세는 베를린 티어가르텐(Tiergarten)에 역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와 프로이센 국왕들의 동상을 세운 '승전로'(Siegesallee)를 만드는 뻘짓을 했는데 호엔촐레른 가문이 집권하기 전 아스카니아 가문과 비텔스바흐 가문의 변경백-선제후 동상까지 세우고 초대 프로이센 공작 알브레히트의 친형으로 독일 종교 개혁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변경백 게오르크(George von Brandenburg-Ansbach 1484~1543)는 선조 요아힘 1세 네스토어의 주변 인물로나마 동상을 세웠지만 정작 프로이센 공국의 알브레히트 공작과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의 동상은 만들지 않았다.[77] 2차 대전 직후에도 호엔촐레른뷔르템베르크 식으로 명의는 남아 있었으나 이후 바덴과도 합쳐지며 사라짐.[78] 함부르크 시가 대확장을 거치며 인근 프로이센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을 대거 흡수했다.[79] 그냥 하노버주가 이름만 바꾸며 중간중간에 있던 지역까지 흡수했다고 봐도 될 정도.[80] 현재 주도인 에어푸르트는 구 작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