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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1:12:22

사법연수원 기수


1. 개요2.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인물 명단
2.1. 사법연수원 개원 전 유명인물(1963~1969 사법시험 합격자)2.2. 사법연수원 기수별 유명 인물2.3. 변호사시험 횟수별 유명 인물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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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에서는 법조인들끼리 관등성명 묻거나 답할 때 사법연수원 몇 기인지를 거론하는 관행이 있다.

사법연수원이 생기기 전에는 사법대학원이 있었고,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된 후로는 사법연수원을 나오지 않은 법조인들이 배출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사법연수원 출신이 대한민국 법조인의 다수이다 보니, 한국 법조계에서 '기수'라고 하면 보통 사법연수원 기수가 문제된다.

어느 정도로 문제되냐면, 군사정권 당시 육군사관학교 기수와 똑같다 보면 된다. 물론 공군사관학교 출신 민항기 조종사도 기수를 따지긴 하나[1] 사법연수원 기수에 비하면 약과이며, 해병대 기수 따위는 소꿉장난으로 보일 정도로 기수를 따지는 곳이 법조계다. 물론 물리적인 구타 등 똥군기는 없지만 그런 구타보다 더욱 강력한 똥군기가 얼마든 나올 수 있다. 법조계에서도 기수열외, 왕따 등의 방식으로 당연히 나온다. 평검사 시절 홍준표가 왕따를 당해서 검찰 수위조차 인사하지 않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사법시험 몇 회 합격인지는 굳이 묻지 않는 것이 일반인데(그런데 이는 후술하는 로스쿨 체제의 경우에도 같다),[2]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대체로 '사법시험 회수-10'이 그 사람의 사법연수원 기수에 해당한다. 졸업, 병역 등으로 합격 이듬해에 바로 사법연수생 임명이 되지 않은 경우 등이 그러한 특별한 사정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경우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듬해에 사법연수생으로 임명되지만, 학업, 병역 등의 이후로 나중에야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는 예도 가끔 있다. 사법연수원이 2년제이므로 연수생으로 임명되고서 2년 후에 연수원을 마치게 되지만, 휴학을 하거나[3] 정직을 당한(...) 경우는 예외이다.

고위직 판사나 검사, 특히 검사의 경우에는 연수원 기수가 사실상 일종의 계급정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즉, 현직에 있을 때 자신보다 연수원 기수가 낮은 사람이 자신보다 고위직에 오를 경우 법조계 후배에게 지시를 받게 되므로 공직을 사임하고 변호사로 개업한다.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이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되자 야당에서 이를 반대하면서 내세운 중요한 논거 중 하나가 '김 후보자보다 더 기수가 높은 현직 판사가 수두룩하다.'였고, 법원 내에서 "변시 1회·사법연수원 42기 누가 선배?"라는 논란이 있었는데, 이는 한국 법조계에서 '기수'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가 하는 사실의 방증이다.[4]

'합격자 300명 시대' 이후에는 인원이 많다 보니 기수가 같다고 해서 특별히 면식이 있거나 어떤 유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수를 따지는 정도도 개인차가 있어서, 아는 사람이나 유명인의 기수가 몇 기인지를 귀신같이 다 기억하는 법조인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것 알아서 뭣하느냐는 식으로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법조인도 없지 않다. 다만, 다른 법조인의 약력을 찾아보면서 그 사람의 '기수'가 몇 기인지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 한국 법조인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하여간 기수를 따지는 것이 관행이다 보니, 로스쿨 출신 법조인조차 '로스쿨 기수'나 변호사시험 회수를 따지는 것이 관행이 되어 있다(대학원이랍시고 학번을 따지지는 않는다). 2009년에 로스쿨에 입학한 사람이 로스쿨 1기이다. 변호사시험 회수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응시를 연기하거나 재수를 하는 등으로 나중에 합격한 예들도 있어서, 다소 혼선이 있다.

다만 로스쿨 기수는 어디까지나 언제 입학을 했느냐를 가리키는 정도의 의미밖에 가지지 않는다. 특히 초기 기수라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먼저 변호사가 되었다는 의미밖에 없고, 같은 학교가 아니라면 그 영향력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법학전문대학원 이후 법조인이 된 사람들 간에는 유난히 합격 컷이 낮았던 1~2기를 제외한다면 기수는 그냥 그런 게 있구나 정도로 넘어가며 아예 상대방 기수에 관심조차 없는 법조인도 많은 현황이다.

왠지 동명이인 구분에 사용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한변호사협회서울지방변호사회 등지에서 동명이인을 구분할 때에는 생년월일을 활용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기수에 동명이인이 있었다.

사법시험 폐지에 따라 49기가 이론적으로 마지막 기수여야 하나, 50기로 입소해야 하는 인원이 아직 1명 남아 있어서, 사법연수원 측이 연수를 어떻게 할지 고심하다가,# 결국 마지막 연수생인 조우상[5][6] 씨를 50기 연수생으로 입소시키기로 하였다.

이렇게 사법시험 합격자 연수의 역사는 막을 내린듯했으나, 위의 각주에 나왔던 한인섭 원장 외 다른 유예자 한명이 2021년에야 입소하게 되어 51기가 진정한 마지막 기수가 되었다. 주인공은 해커스학원에서 공법을 가르치는 함수민 강사. 2014년에 합격했으나 개인사정으로 7년이나 뒤에 입소하게 되었고, 언론에도 전혀 공개되지 않아 아직도 조우상 변호사가 마지막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천경훈 서울대 로스쿨 교수(연수원 26기)에 의하면, 자기 기수(사시 합격자 300명 시절)는 물어보면 같은 기수의 절반 정도를 서로 알고 지냈고, 법전원 학생들(서울대는 한 학년에 150명)에게 물어 보면, 법전원이 도입된 초창기에는 100~120명 정도 알고 지낸다고 했으나, 2020년쯤 되어서는 겨우 30명 정도 알고 지낸다고 하더라면서, 한국 법조계의 '기수 문화'의 양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학생들의 상호교류가 희미해져 가는 현상은 무척 안타깝다. 대학에서는 강의를 통해서보다 동료들끼리 토론과 협력과 자극을 통해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제 인맥에 기대어 부정한 청탁을 하거나 인맥을 팔아 장사하는 시대는 점점 저물겠구나 하는 희망을 보기도 한다. 정겨운 상호교류가 사라진 곳에는 건조한 이기심이 남을 것이고, 비릿한 인맥 장사가 사라진 곳에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일 처리가 남을 것이다.

2.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인물 명단

2.1. 사법연수원 개원 전 유명인물(1963~1969 사법시험 합격자)


횟수 시험연도 나무위키 등재 합격자
1회 1963년 이건개, 오유방, 정광진, 정경식
2회 1963년 김기수, 김영무, 정성진
3회 1964년 김종구
4회 1964년 김태정, 심상명, 정기호, 조무제, 최영광
5회 1965년 변정일, 유지담, 이원성, 이진강, 현경대
6회 1966년 이재상
7회 1967년 심재륜
8회 1967년 권성, 김중권, 김평우, 김효종, 안강민, 이강국, 박철언
9회 1968년 강신욱, 손지열, 신승남, 신영무, 최병국
10회 1969년 이상경, 조영황, 주선회

2.2. 사법연수원 기수별 유명 인물

기수 입소연도 임명인원 나무위키에 등재된 수료생
1기[7] 1971년 32명 김경한, 김용담, 오탄, 이명재, 이치호, 진형구, 채이식
2기[8] 1971년 49명 강재섭, 김각영, 김승규, 김일수, 양승태, 이종찬, 정호영, 조준웅, 황산성
3기 1972년 81명 김상철, 송광수, 서석구
4기 1973년 79명 강수림, 김황식, 이경재, 이범관, 이영애[9], 이홍훈, 장윤석, 정홍원, 최연희
5기 1974년 59명 김종빈, 박일환, 윤재기, 이동흡, 황선태
6기 1975년 58명 김성호, 김재기, 박주선, 양창수, 이사철, 임내현
7기 1976년 58명 김능환, 노무현, 송훈석, 안대희, 안상수, 이종백, 이종왕, 전효숙, 정상명, 정인봉, 정진규, 조대현, 진영, 차한성
8기 1977년 58명 강지원, 고영주, 김인규, 김희옥, 신영철, 전수안, 정동기, 천정배, 홍경식, 홍석조, 장영하
9기 1978년 74명 김이수, 박상길, 윤진수, 임채진
10기 1979년 98명 고조흥, 권재진, 김용원, 김회선, 목영준, 민일영, 명동성, 박영수, 여상규, 이상수, 이주영, 이진성, 조용호, 추호경, 황우여
11기 1980년 112명 경대수, 고영한, 김영란, 김준규, 문성우, 박상옥, 부구욱, 서기석, 이승구, 이인복, 이인제, 조병현
12기[10] 1981년 150명 고승덕, 김창종, 김신(법조인), 문재인, 박병대, 박원순, 박정규, 송두환, 심장수, 이귀남, 이성호, 이한성, 임호영, 조배숙, 조영래, 조재연, 천성관, 함승희, 황찬현
13기 1982년 273명 강금실, 김문석, 김창석, 김학근, 김형태, 문석호, 박한철, 성윤환, 신평, 안홍렬, 유남석, 윤형모, 이광범, 이완수, 정기용, 조대환, 조희대, 최성준, 최완주, 최재형, 차동민, 한상대, 황교안, 황희철, 허익범
14기 1983년 311명 강민구, 강일원, 권순일, 김영한, 김제식, 김진태[11], 김창보, 김태천, 김학의, 노환균, 송철호, 신기남, 신종대, 안창호, 엄호성, 옥영보, 이기문, 이범래, 이상권, 이상열, 이석태, 이승용, 이인규, 이인기, 이충상, 정종섭, 주호영, 채동욱, 추미애, 홍일표, 홍준표
15기 1984년 301명 곽상도, 권영세, 길태기, 김광태, 김기현, 김명수, 김상도, 김용철, 김필규, 김학원, 김홍일, 남기춘, 석동현, 소병철, 안철상, 양승부, 양재호, 유기준, 윤석만, 이원영, 이종석, 이중환, 이창세, 정영환, 정종복, 주철현, 최교일, 하창우, 황병하, 황정근
16기[12] 1985년 307명 강희락, 국민수, 김선우, 김수남, 김용빈, 김중확, 김학배, 김현웅, 김호정, 노태악, 박보영, 박상용, 박청수, 송강호, 신현수, 위재민, 윤경식, 윤준, 이광만, 이균용, 이득홍, 이성재, 이정미, 이헌, 임종헌, 임정혁, 장승화, 정병두, 정장현, 조영곤, 최인석
17기 1986년 309명 강경필, 권성동, 김경수, 김삼화, 김선수, 김수천, 김흥준, 김희관, 박성재, 박승환, 박요찬, 박주현, 박충근, 배기열, 신경식, 송찬엽, 오세훈[13], 이동원, 이상인, 이석연, 이승채, 이용삼, 이충범, 임무영, 임성근, 정형식, 조만후, 조상희, 조성욱, 최거훈, 최용규, 최재경, 한문철, 한승, 홍만표
18기 1987년 297명 강찬우, 권기훈, 김영덕, 김재형, 김주현, 김종필, 김진태, 문무일, 문병호, 문형배, 민유숙, 박세환, 박형상, 박희승, 변찬우, 성지용, 송기헌, 심규철, 오세인, 위철환, 이석수, 이상민, 이영렬, 이용복, 이재명, 이종엽, 장인종, 정성호, 조응천, 차정인, 최원식, 한창훈, 홍승면
19기[14] 1988년 305명 공상훈, 강영수, 김강욱, 김상헌, 김수창, 김소영, 김재경, 김정원, 김진국, 김진모, 김형두, 노정희, 박경호, 봉욱, 신광렬, 오석준, 우병우, 윤갑근, 이은애, 이창현, 전원열, 전해철, 조은석, 조희진, 주성영, 최재천, 황철규
20기 1989년 304명 강선희, 강성국, 김상환, 김영선, 김오수, 김준곤, 김진수, 김회재, 박정식, 박정화, 신유철, 안상돈, 안태근, 오시영, 은진수, 이금로, 이명규, 이영규, 이종걸, 이춘석, 전현준, 정점식, 정준영
21기 1990년 300명 김경진, 김기동, 김외숙, 김인원, 김정훈, 김종민, 김진욱, 노승권, 박경춘, 박균택, 배형원, 서경환, 송인택, 안병구, 양재식, 유상범, 윤웅걸, 이선애, 이용철, 이진한, 전주혜, 조용익, 진경준, 천대엽, 최종원, 한찬식, 함상훈
22기 1991년 297명 강승수, 권오성, 권익환, 김기영, 김영대, 김우현, 박영재, 박윤해, 박형수, 손봉기, 양부남, 양정숙, 우윤근, 이규철, 이동열, 이상경, 이영진, 이현주, 이흥구, 전병관, 전현정, 차경환, 최윤수, 하명호, 홍동기
23기 1992년 289명 강남일, 강용석, 강한승, 고기영, 구본선, 김귀찬, 김두식, 김문관, 김신호, 김영종, 김재헌, 마용주, 박범계, 박성수, 변창훈, 배성범, 백승호, 송삼현, 송옥렬, 여운국, 오영준, 오인서, 윤석열, 이명규, 이성윤, 이용구, 이유정, 이완규, 이정렬, 이정회, 이중희, 조상철, 조윤선, 조진래, 주광덕, 최혜리
24기 1993년 293명 강수진, 강인철, 고흥, 금태섭, 김귀옥, 김영문, 김용남, 나경원, 노관규, 문찬석, 박성진, 박순철, 박준선, 심재돈, 여환섭, 원희룡, 유영하, 이상민, 이용주, 장영수, 정한중, 조남관, 조의연, 차맹기, 한동수, 함종식, 황진구
25기 1994년 284명 곽규택, 권순범, 권영준, 김도읍, 김세윤, 김종률, 김진동, 김형준, 김후곤, 노정연, 박민식, 박순영, 박형철, 성창호, 손철우, 송기석, 신숙희, 안호영, 오경미, 윤대진, 이두봉, 이두아, 이성희, 이주형, 정수봉, 정승윤, 정재오(법조인)정재오, 정정미, 정준길, 조재연, 조종태, 최경규, 최기상
26기[15] 1995년 292명 권문상, 권순호, 김관정, 김동성, 김명주, 김재원, 노정환, 도진기, 문유석, 문홍성, 박수종, 박찬호, 송영길, 심우정, 안귀옥, 오민석, 이노공, 이미선, 이수권, 이정수, 임관혁, 조상준, 천종호, 최강욱, 현동훈
27기 1996년 315명 김대현, 김석우, 박민수, 박재영, 배용원, 신성식, 심재철, 양승조, 양진욱, 오덕식, 오동운, 이원석, 이정현, 이철희, 정계선, 정순신, 조미연, 주영환, 최유정, 하승수, 한동훈
28기 1997년 496명 고경순, 김남근, 김남우, 김승원, 김지용, 김태규, 나병훈, 박기억, 박종근, 문성인, 손범규, 손영배, 신응석, 신자용, 예세민, 이근수, 이명교, 이상갑, 이시원, 이재범, 이재화, 이종근, 이진동, 임선숙, 임현, 전현희, 정미경, 진선미, 이정희[16], 서정욱, 최성필, 한석리, 홍승욱
29기[17] 1998년 592명 권순정, 구자현, 김병준, 김양수, 김웅, 김유철, 김형연, 노만석, 박길배, 박세현, 박은정, 박정길, 박재억, 박지영, 백혜련, 서기호, 손준성, 송강, 송경호, 신봉수, 양석조, 양중진, 오기형, 이명신, 이언주, 이진수, 정영학, 정영훈, 정진우, 조재빈, 한정화, 홍종희, 황병주
30기[18] 1999년 694명 구상엽, 구희승, 김기표,김동현(법조인)|김동현, 김선화, 김성훈, 김종천, 김택수, 박기동, 박성재, 박승수, 박영빈, 박현준, 변필건, 성상헌, 손금주, 송기호, 송영곤, 양소영, 엄태준, 이영림, 이종혁, 이찬희, 이창수, 이헌욱, 임은정, 장동철, 장유식, 정유미, 정혁진, 정회철, 정익진, 한상혁, 황학수
31기 2000년 717명 고형곤, 구승모, 권영국, 김관영, 김성진, 김정일, 김창진, 김태은, 김한규, 박영진, 박훈, 박현철, 부상일, 서향희, 송호창, 이수진, 이영남, 이민종, 전무곤, 정철승, 정희도, 주진우, 한상호, 한정석, 허정, 황희석, 현의선
32기[19] 2001년 800명 강부영, 고영일, 권성중, 김재련, 김한주, 박주성, 배문기, 엄희준, 원지애, 이복현, 정재민, 조상원, 채수양, 하귀남, 황재선
33기[20] 2002년 976명 곽상언, 권경애, 권은희, 맹준호, 박성훈, 박지훈, 백동흠, 서지현, 손영택, 송행수, 신준호, 이수희, 이정문, 장동혁, 현근택
34기 2003년 972명 강백신, 강연재, 김미애, 김성종, 김진규, 민병덕, 박제인, 박춘희, 배대희, 서동용, 성중탁, 안병한, 이영욱, 이인철, 이탄희, 정관주, 진혜원, 최민철, 최수진, 최현석, 황기석
35기 2004년 887명 강건, 김상민, 김용민, 김정철, 김형동, 김혜란,[21] 나승철, 박근오, 박주민, 박준영, 신정훈, 안미령, 원신혜, 이성문, 이재정, 장덕천, 장승수, 정인국, 조수진
36기 2005년 998명 강신업, 김대환, 노영희, 변환봉, 이광철, 장진영, 전성, 채명성, 최단비, 홍종기
37기 2006년 977명 고영권, 김남훈, 김태현, 남욱, 손정혜, 신광은, 원영섭, 윤우혁, 이형섭, 임윤선, 정경수, 조상규, 호승진
38기 2007년 971명 김광수, 김동욱, 이영선, 이정엽, 조상호, 조원룡
39기 2008년 1,001명 문일, 백성문, 서정표, 송한섭[22], 안형진, 전효진, 정준호
40기 2009년 969명 강윤경, 구자룡 , 권오현 , 나태근, 서혜진, 양지열, 오승준, 유휘운, 정연석
41기 2010년 986명 김기윤, 김용호, 김해마루, 김해영, 도태우, 배승희, 안세훈, 이소영, 이은영, 정혁진, 최건, 최보윤
42기 2011년 974명 강동훈, 강유미, 박희경, 이윤규, 홍정민, 황성욱
43기 2012년 723명 김동아, 박영주, 서범석, 이경민, 장현주
44기 2013년 509명 손병구, 정진섭[23], 신유진, 홍형철
45기 2014년 298명
46기 2015년 221명
47기 2016년 161명 박지영
48기 2017년 114명
49기 2018년 61명[24]
50기 2019년 1명 조우상[25]
51기 2021년 1명[26] 함경희[27][28]

2.3. 변호사시험 횟수별 유명 인물

변호사시험/출신 인물 문서 참조.

3. 관련 문서


[1] 이것 때문에 사고가 자주 났다(...)[2] 굳이 묻지는 않으나 약력 기재 시 병기한다. 즉, 연수원 출신 법조인은 제n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n기라고 쓰고 로스쿨 역시 마찬가지로 XX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n기, 제n회 변호사시험 합격이라고 병기한다.[3] 왠지 "휴직"일 것 같지만, '사법연수원 운영규칙'에는 "휴학"으로 되어 있다.[4] 이 논란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법연수생은 2월에 연수원 수료를 마치고 바로 변호사로서 (수임을 포함한) 모든 업무를 할 수 있지만 변호사시험 합격자는 4월 2~3째주에 합격발표가 난 후부터 변호사 자격이 주어지고, 6개월의 실무수습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수임, 접견, 재판출석 등 변호사로서의 업무를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는 연수원 출신들과 변시 출신들의 임관을 따로 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군법무관이 그러하다. 변호사자격 취득연도만 따지면 연수원 41기와 변호사시험 1회가 같은 연도이지만, 업무를 시작하는 월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5] 게이오대 법률학-도쿄대 로스쿨 졸업 후 일본의 신 사법시험 합격[6] 단 기사에도 언급하기로는 아직 2명의 유예자가 남아있다. 한 명은 한인섭 형사정책연구원장(59)이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1981년부터 사법시험 최종시험(면접)에서 두 차례 낙방했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 원장의 최종시험을 다시 치르라고 권고했다. 한원장은 법무부가 실시한 최종 시험에 합격했다. 한 원장은 “명예 회복을 하기 위해 최종 시험에 응시했지만 합격 당시 서울대 교수였기 때문에 연수원에 입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예자는 개인 사정으로 입소가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7] 사법대학원 14기생(제11회 사법시험 합격자)을 사법연수생으로 임명하였다.[8] 제12회 사법시험 합격자를 사법연수생으로 임명하였다. 황윤석 판사(고등고시 제3회) 이래 이 기수 전까지는 여성이 합격한 예가 없었다. 즉, 18년간 여성 법조인이 배출되지 못하고 있었다.[9]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사법시험 수석 합격자.[10] 유독 이 기수에서 인권 변호사 등 재야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명망이 높은 인사들이 많은 이유가 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반대 세력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여기고 유화책을 폈는데 그중 하나가 정치범 전력이 있는 사법시험 합격자들에 대한 사법연수원 입학 규제를 해제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문재인과 조영래도 이 정책으로 사법연수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11] 제40대 검찰총장[12] 오늘날에는 실감이 안 나는 이야기이지만, 이 기수, 즉 사시 26회에 여성 합격자가 5명'씩이나' 나와서 당시 화제가 되었다. 이때까지 한국에는 여성 법조인이 18명(고인이 된 황윤석까지 포함하면 19명)밖에 없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법조인인 이태영도 '이제야말로 여성법우회를 조직할 수 있겠다'라고 반색했다고(동아일보 1984. 10. 30.자 참조).[13] 사법시험은 26회로 합격해서 원래대로라면 16기로 수료해야 했으나 수료 시험날 갑자기 탈이 나서 시험을 못 치고 유급하여 1년이 늦어졌다.[14] 당시 보기 드물게 여성 수료생이 한자리수를 넘어 무려 11명이나 나온 기수. 법조계 최고위직(대법관, 헌법재판관,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등) 여성 법조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기수이기도 하다. 노정희 대법관, 이은애 헌법재판관, 김소영 前대법관이 그 면면이고, 검찰에서는 아직 여성 총장이 나오진 못했지만 여성 최초로 검사장을 지낸 조희진 변호사도 19기 출신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남성 법조인들도 추가 되었다. 오석준, 김형두 판사가 각각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올랐다.[15]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피해를 입을 뻔했던 기수이다. 마침 이 때는 삼풍백화점 인근인 서초구 법조타운에 사법연수원이 있었다. 우연히 사고 당시 다른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사고에 휘말린 연수생은 없었다. #[16] 이정희 변호사는 한국법조인대관에는 29기로 나오나, 법무법인 홈페이지에는 28기로 나와 있다. 수료를 29기와 함께 해서 생긴 혼선으로 보이며, 기수는 28기가 맞다.참고[17] 검사장 17명 승진… 29기 ‘점령시대’[18] 한 기수에 한 명 배출될까 말까 한 여성 검사장을 세 명이나 배출한 기수이다.[19] 서울특별시 서초동에 있던 연수원에 입소하였으나 2년차 수습은 지금의 고양시 일산동구(당시는 일산구) 소재 연수원에서 하게 된 기수이다.[20] 지금의 고양시 일산동구(당시는 일산구) 소재 연수원에 입소한 기수이다.[21] 한국법조인대관에는 36기로 나오나, 수료를 늦게 함에 따른 착오로 추측된다.참고 로앤비에도 35기로 기재되어 있다.[22]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 출신.[23] 만 61세의 고령임에도 연수원에 입소했는데, 5공 시절에 사법시험 면접에 떨어졌다가, 2008년에 합격처리가 된 케이스. 17~18대 국회의원을 하다가 때 마침 19대 총선 공천에서 떨어지면서 공백기간에 사법연수원에 입소했고 변호사가 되었다.[24] 49기는 여성 연수생이 42.62%로 역대 가장 높은 비율이며, 평균 연령도 33.85세로 역대 가장 높은 연령대라고 한다. #[25] 유일한 사법연수원 50기생으로, 최초로 한·일 양국의 사법시험에 모두 합격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2015년에 합격했으나 군복무를 하느라 늦게 입소한 것이다. 2021년 1월 12일 수료했으며 현재 김앤장에서 근무중이다. 유퀴즈에도 출연했으며, 사법연수원 입소 전에는 공부법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사법연수원 입소와 업무 때문에 바쁜 탓인지 4년째 영상 업로드가 안되고 있다.[26] 2022년 사법연수원 홈페이지 기준 연수생 현황 : 51기 연수생(2년차) 1명[27] 강사 예명은 함수민. 유일한 사법연수원 51기생으로, 해커스 공무원 행정법 강사이다. 56회 사법시험(2014년)에 합격했는데 법원행시에도 동시합격하여 법원사무관으로 근무하다 학원강사로 데뷔하느라 미처 사법연수원에 입소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2020년에 입소한 기수가 51기가 되어야 하나, 2020년에 사법연수원 입소자가 없어 2021년 입소자인 함수민이 51기가 되었다.[28] 2023년 1월 12일, 마지막 사법연수생인 함경희씨가 2년 간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제51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원장 김용빈)은 오후 3시 연수원 대회의실에서 제51기 사법연수생 수료식을 개최했다. 함 씨는 2021년 3월 사법연수원 제51기로 단독 입소한 뒤 2년 간의 연수생 수습을 마치고 이날 단독 수료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개인적인 사정으로 입소를 미루던 함 씨가 2021년 3월 사법연수원에 단독 입소하면서 역사상 마지막 사법연수생으로 남게 됐다. 다만 연수원 관계자는 "관련 규정상 종전에 면직되거나 자퇴했던 연수생이 재임명돼 연수를 받을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 사법연수생' 함경희 씨, 제51기로 사법연수원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