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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네아스는 이탈리아 원정 준비로 바쁜 피로스를 찾아왔다.
"폐하, 로마는 대단히 호전적인 나라라고 합니다. 만약 그런 나라를 물리칠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물을 필요도 없는 말이 아닌가. 로마를 정복하게 된다면 그리스인이건, 다른 야만인들이건 우리에게 저항할 수 있는 나라는 더 이상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탈리아는 우리의 차지가 되는 것이지."
피로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키네아스는 잠시 후 다시 물었다. "그럼 이탈리아를 정복하신 다음에는 무엇을 하시렵니까?"
피로스는 키네아스가 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이탈리아 옆에는 아주 부유한 시칠리아가 있지 않은가? 그곳은 지금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으니 손에 넣기에 수월하지 않겠는가?"
"그렇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전체를 지배하시게 되겠지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시렵니까?"
피로스는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편안히 쉬면서 날마다 즐거운 이야기나 나누지 뭐⋯⋯."[1]
그러자 이렇게 이야기를 끌어온 키네아스는 말했다.
"폐하는 지금도 편안히 쉬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실 수 있습니다. 아무런 노력과 고통 그리고 위험 없이도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고생을 하시려고 합니까?"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 p. 158~159
고대의 유명한 일화이자 시사용어. 이겼으나 손해뿐인 승리를 의미한다. 즉, 승리하긴 했으나 패배한 것이나 다름이 없거나 승리해도 승리한 것 같지 않은 찝찝한 결과를 낳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폐하, 로마는 대단히 호전적인 나라라고 합니다. 만약 그런 나라를 물리칠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물을 필요도 없는 말이 아닌가. 로마를 정복하게 된다면 그리스인이건, 다른 야만인들이건 우리에게 저항할 수 있는 나라는 더 이상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탈리아는 우리의 차지가 되는 것이지."
피로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키네아스는 잠시 후 다시 물었다. "그럼 이탈리아를 정복하신 다음에는 무엇을 하시렵니까?"
피로스는 키네아스가 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이탈리아 옆에는 아주 부유한 시칠리아가 있지 않은가? 그곳은 지금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으니 손에 넣기에 수월하지 않겠는가?"
"그렇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전체를 지배하시게 되겠지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시렵니까?"
피로스는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편안히 쉬면서 날마다 즐거운 이야기나 나누지 뭐⋯⋯."[1]
그러자 이렇게 이야기를 끌어온 키네아스는 말했다.
"폐하는 지금도 편안히 쉬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실 수 있습니다. 아무런 노력과 고통 그리고 위험 없이도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고생을 하시려고 합니까?"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 p. 158~159
2. 기원
고대 그리스 북서부 에페이로스 왕국의 왕 피로스 1세는 알렉산드로스 3세 이래 서양 최고의 전략·전술가로 회자되었고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에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다. 그로 인해 발발한 피로스 전쟁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승리를 여러 번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거둔 승리에 비해 아군의 손실이 너무 많았다.로마군과 첫 결전을 벌인 헤라클레아 전투에서는 휘하 병력 3만 5천 중 4천을, 그 다음 해에 치른 아스쿨룸 전투에서는 병력 4만 명 중 3천 명을 잃는 큰 손실을 입고 말았다.[2]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피로스는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는 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로마인들과 싸워 한 번 더 승리를 거둔다면, 우리는 완전히 끝장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승리자에게 엄청난 손실을 안겨 결국에는 패배를 안길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라고 칭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피로스는 전투에서는 로마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었으나 그에 따르는 손해를 자체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던 데다 동맹이었던 이탈리아 내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지원 태만으로 힘이 빠지면서 끝내 전쟁에서 패하게 되고 에페이로스로 물러나게 된다. 물론 이기지도 못한 로마군의 피해는 산술적으로 볼 때 훨씬 더 컸지만, 그럼에도 이미 이탈리아 반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로마는 멀리 원정온 데다 본국의 규모도 훨씬 작았던 피로스에 비해 여력이 남아있었기에 전쟁으로 인한 손해를 감당할 수 있었다.
3. 유사 개념
언뜻 파비우스 전략과 비슷하거나, 같은 결과에 대한 다른 해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양측 모두 전쟁에서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입는다는 공통점을 보이기 때문. 하지만 피로스의 승리는 공격자의 입장에서,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당초 의도했던 전략적 목적(예: 영토 쟁탈, 적의 정치적 굴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과 달리, 파비우스 전략은 큰 피해를 입어도 전략적 목적(예: 영토 수비, 적의 후퇴)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분명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희생이 아무리 많은 전투라도 전략적 목표를 달성한 전쟁들은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독소전쟁으로, 당시 소련은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었음에도 결국 나치 독일을 무너뜨리는 전략적 대승을 거두었기에 이를 피로스의 승리라 부르는 국가는 없다.피로스 외에도 '피해가 너무 큰 승리는 오히려 패배한 것과 다를 바 없거나, 더 나쁠 수도 있다.'라고 주장한 사례는 있다.
그러므로 천하가 어지러울 때 다섯 번을 싸워 이긴 나라는 결국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요, 네 번 만에 이긴 나라는 피폐해질 것이며, 세 번 만에 이긴 나라는 패자(覇者)가 되고, 두 번 만에 이긴 나라는 왕(王)이 될 것이며, 한 번에 쳐 이긴 나라는 황제[帝]가 되리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여러 번 이겨서 천하를 손에 넣은 자는 드물고, 망한 자가 오히려 많습니다.
오자
오자
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故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
시고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불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고상병벌모, 기차벌교, 기차벌병, 기하공성.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상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 그러므로 최상은 병력으로 적의 싸우려는 의도 자체를 깨는 것이고, 다음은 적의 외교를 깨는 것이고, 그 다음은 적의 병사를 깨는 것이고, 성을 공격하는 것은 최악이다.
손자
시고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불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고상병벌모, 기차벌교, 기차벌병, 기하공성.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상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 그러므로 최상은 병력으로 적의 싸우려는 의도 자체를 깨는 것이고, 다음은 적의 외교를 깨는 것이고, 그 다음은 적의 병사를 깨는 것이고, 성을 공격하는 것은 최악이다.
손자
4. 진실
다만 상술했듯 피로스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로마와의 전투 그 자체보다는 피로스를 불러온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의 무성의한 태도가 훨씬 더 큰 문제였었다. 진지하게 논하자면, 안약 이들이 일찍이 충분한 지원을 해주었다면 피로스는 전력의 복구가 한층 더 수월했었을 것이며, 로마에게도 더 큰 위협이 됐을 것이다. 30만 명을 준다는 약속도 막상 가보니 1만 명이었고 심지어 로마와 싸우는 도중 카르타고한테도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심지어 해군도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카르타고가 훨씬 막강해서 피로스는 결국 카르타고 해군에게 대패하여 큰 피해를 입는다. 그래도 새롭게 얻은 병사들이 막장인 상황에서도 로마와 카르타고를 상대로 연승[3]을 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는지 천하의 한니발조차도 피로스를 자신보다 뛰어난 지휘관으로 평가하기도 했다.알려진 대로 병력의 피해는 로마군의 피해가 피로스군보다 훨씬 더 컸다. 헤라클레아 전투에서 로마군은 손실이 전사자 약 7천 명, 포로 7천 명이었던 반면, 피로스군은 손실 3~4천 명 정도만 있었으니 전투만 보면 피로스의 완승이다. 아스쿨룸 전투에서도 로마군의 피해는 약 8천 명이었으나 피로스군의 피해는 3천 명으로 피로스군이 더 잘 싸웠다. 결국 피로스가 로마에서 철군한 이유에는 그리스 도시들의 지원이 없어서 돈 준다는 시칠리아나 다른 곳에서 전력을 소모한 것이 컸다.
결론적으로 피로스의 승리에는 승리의 질적 문제보다는 승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문제와 보급의 문제가 더 컸다. 이 말의 원전이 그리스인(로마 시민이기도 했지만)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인 만큼 그저 로마인들의 '자화자찬'이나 정신승리라고 보기는 좀 어려울 것이다.[4]
그러나 이걸 그리스 도시국가들만 탓할 수도 없는 것이, 폴리스들에게 30만명은 커녕 그 1/3이라도 피로스에게 지원할 여유가 있었다면 피로스에게 원군을 요청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외세까지 끌어들인 시점에서 로마보다 한참 열세로 밀리는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또한, 피로스가 로마를 이긴다고 하더라도 전쟁의 달인인 피로스가 로마를 대신해 새로운 상전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타란토 등이 피로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망설일 만도 했다. 그리고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물론 에페이로스까지 합쳐도 국력에서 한참 우위를 점하는 로마를 상대로 공수표 약속만 믿고 무모하게 싸움을 건 피로스 본인도 원정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5. 예시
5.1. 현실
-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원전 431~404) - 조금 거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결과상으로는 승자인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몰락하고 만 것이 피로스의 승리와 비슷하다. 페스트로 인해 공백이 커진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을 습격하여 승리를 거둔 승자인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승리는 했지만 이로 인해서 군사와 물자 지원을 해 준 페르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져 버리는 바람에 결국 이익을 얻지 못하게 되고 끝내 내분하게 되어 불과 20년만에 테베에게 패권을 내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케도니아 왕국의 정복으로 다들 군소 도시가 되고 만다. 되레 지원을 해준 페르시아는 자기가 도와준 스파르타의 승리로 이오니아 일대의 지배권을 다시 얻는 데 성공한다. 등 뒤에 있던 페르시아만 좋은 일 시켜 준 셈. 아이러니하게도 이후에 결과적으로 마케도니아가 성장하여 페르시아와 스파르타를 정벌하러 오는 점을 고려하면, 페르시아의 이득은 어찌보면 잠시뿐이었을 수도 있다.
- 위나라의 한나라 침공-마릉 전투 (기원전 343 ~ 기원전 341) - 위나라의 방연 휘하 군대가 한나라를 침공했는데 5번이나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정작 수도 신정을 함락하는 데 실패했으며, 도중에 급습해온 제나라의 전기 휘하 군대를 대량에서 막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제군이 후퇴하는데 군기가 해이해졌다는 거짓정보에 낚여 사흘 동안 추격하다 마릉에서 손빈이 판 함정에 걸려 결국 방어전 승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대패하고 방연 본인도 사망했다.
- 피로스 전쟁 (기원전 280 ~ 기원전 275) - 피로스 1세는 이 전쟁을 치르면서 로마와의 전투에서 계속 이겼지만 로마와 결속한 동맹시들은 여전히 로마를 지지했고, 피로스의 병력은 계속 소모되었다. 거기에 시칠리아에도 개입하는 바람에 카르타고마저 적으로 돌려버렸다. 결국, 베네벤툼 전투 이후 더는 전쟁을 계속할 의지를 잃어버린 피로스는 군대를 철수시켰다. 피로스는 전투에서는 계속 이겼음에도 결과적으로는 로마가 남이탈리아를 지배하게 되었으며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병력만 잔뜩 소모한 채 물러난 것이 이 전쟁이 남긴 전부였다. 피로스는 동원한 3만 5천의 병력 중 2만 이상을 잃어버렸다. 이 전쟁은 나중에 로마와 카르타고가 시칠리아를 두고 충돌하는 원인이 되었지만 이는 피로스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다.
헤라클레아 전투 (기원전 280)- 이 표현의 직접적 유래. 다만, 이 전투의 승리로 지금까지 도움을 주지 않던 남이탈리아 지역에서 피로스에게 원군을 보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전술적 승리와 더불어 전략적인 승리도 이룬 것이기에 이 전투 자체만 따지면 피로스의 승리 사례라 부르기는 힘들다.
- 제2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18 ~ 기원전 202) - 한니발 한정, 한니발의 로마 원정군은 로마 진입 시까지 연전 연승을 거두고 있었으나, 소수 정예인 한니발 군의 특성상 전투마다 병력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고, 한니발을 제외한 카르타고군은 전체가 로마에게 탈탈 털리던 상황이라, 지원다운 지원 따윈 하나도 받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한니발은 이런 전투 속에서 악전고투해왔으나,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참패를 당한다. 위의 간략한 서술에서도 알 수 있듯, 사실 이 전쟁은 피로스의 승리와는 좀 거리가 먼 편이다. 한니발은 완벽한 전략에 입각해서 전투를 치렀고, 자마 이전까지 모든 전투에서 이김으로써 조국에게 못 먹으면 바보인 수준의 완벽한 판을 깔아주었다. 한니발의 잘못은 그가 카르타고의 무능함을 너무나 과소평가했다는 점밖에 없다.[5]
- 초한전쟁 (기원전 206 ~ 기원전 202) - 한(유방)의 '파비우스의 승리' 사례이면서, 초패왕 항우의 '피로스의 승리'로도 볼 수 있다. 항우 문서 2.6.7.단락의 '패왕의 최후' 항목에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항우는 최후의 전투인 해하 전투 이전까지 근 70번의 전투에서 한번도 지지 않았지만 이기면 이길수록 도리어 항우가 불리해지고 결국 마지막까지 패배를 모르는 상태로 자결했다. 이후 초는 망했고 한은 400여 년을 남아 중국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다만 항우가 패배한 건 유방과 싸우다가 손해를 보아서라기보단, 항우가 없는 전역에서 팽월이나 한신 등이 입히는 피해가 쌓이다보니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 되어버린 탓이라서 해석하기에 따라선 어긋나는 면도 있다. 항우만 무적이었지 초나라 전체로 따지면 엄청나게 패배했기 때문.[6]
- 한무제의 흉노 정벌 - 자존심이 강력한 한무제의 입장에서 한나라가 맨날 흉노한테 비단을 갖다 바치는 게 매우 불편했기에, 이런 구도를 뒤집기 위해 병력을 일으켜 흉노를 정벌했다. 위청과 곽거병은 연전연승을 거듭했고, 곽거병은 무려 바이칼호까지 진격하며 흉노를 떡이 되도록 두들겨 패 놓았다. 곽거병이 쓰러뜨린 흉노족 고관대작들만 하더라도 흉노왕 7명, 흉노 승상, 흉노 황태자에 심지어는 흉노 황후(선우의 정실부인)까지 있을 정도로 진짜 일방적으로 무찔렀다. 이게 왜 피로스의 승리냐 하면 당대 최고의 부국이었던 한나라는 흉노를 때려잡느라 국고를 완전히 소진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트로피를 얻으려고 집을 팔아버린 꼴이었다.[7]
- 북방 유목민족의 중국 정복(장기적 관점) - 중국을 정복한 북방 유목민족들은 한족 문화에 동화되어 사라지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며, 이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성공적으로 중국을 통치했던 청나라의 만주족도 이러한 저주를 피하지는 못했다. 유일한 예외가 원나라의 몽골족인데, 이쪽도 외몽골의 할하인 한정으로 현대에 나라 있는 민족으로 살아가는 상황이며, 내몽골의 차하르인과 시베리아의 부랴트인은 현재진행형으로 각각 중국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다. 그래도 몽골은 민족성이라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다른 이들보다는 낫다. 물론 만주족도 엄밀히 말하자면 민족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쪽은 몽골의 경우와 달리 언어·문화적으로 한족에 거의 동화된 상태에서 만주족으로서의 정체성만 겨우 남아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몽골과 동일선상에 놓기 힘들며, 차라리 후이족[9]과 비교하는 게 더 나을 지경이다.
- 선비족의 중국 정복 - 중국을 침공하여 자신들의 나라를 세운 선비족은 처음에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유지하였으나, 이후로는 점차 한족 문화에 동화되어갔으며, 결국 수나라와 당나라 때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선비족으로서의 정체성마저 거의 희미해지게 되었다.[10]
- 오대십국시대의 사타족 왕조들 - 사타족이 세운 후당, 후진, 후한, 후촉은 모두 오대십국시대 중국을 통일하는 데 실패하고 일찍 멸망했다. 그로 인해 중국의 사타족은 잠시 한족 위에서 지배민족으로 군림해보기는 했을지언정 원나라의 몽골족이나 청나라의 만주족마냥 중국 통일왕조의 지배민족이 되지는 못하고 허무하게 한족[11]에 동화되어 사라졌다.
- 금나라에 의한 요나라와 북송의 멸망 - 금나라는 요나라와 북송을 차례대로 멸망시킨 덕분에 중국 북부 지역을 손에 넣었으나, 요나라와 북송의 모든 영토를 손에 넣은 것도 아니었고 요나라와 북송의 황족들을 모두 굴복시키거나 몰살시킨 것도 아니었던 탓에 서요와 남송이라는 두 망명정부의 탄생을 막는 것은 실패했으며, 결국 서요와 남송의 존재는 금나라가 건국된 지 119년 만에 멸망하는 여러 원인들 중 하나가 되었다.
- 몽골-금 전쟁, 몽골-남송 전쟁 - 두 전쟁 모두 몽골 제국의 승리로 끝났으나, 금나라와 남송 모두 남은 힘을 전부 짜내어 필사적으로 몽골 제국에 저항한 탓에 몽골 제국 또한 두 나라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으며, 결국 몽골족의 정복왕조인 원나라가 중국 왕조로서 약 100년 동안만 이어지고 중국에서 쫓겨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래도 상술한 것처럼 몽골족이 민족성을 유지하고 외몽골의 할하인 한정으로나마 독립국가로 지내므로, 관점에 따라서는 전화위복으로 볼 수 있다.
- 명청전쟁 - 결과적으로 명나라의 멸망 및 청나라의 중국 지배로 이어졌고 청나라가 원나라와 달리 중국을 오랫동안 다스리게 되었으나, 그 때문에 만주족이 선비족처럼 점차 한족에 동화[12]되어갔으며, 여기에 봉금령 해제까지 더해져 만주족의 고향인 만주가 한족의 땅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만주족이 신해혁명 이후, 만주에 자신들만의 진정한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청나라 시절 만주족 자신들이 한족들에게 강요했던 변발·호복 등의 만주족 전통문화를 한족들에게 역으로 빼앗긴 건 덤이다.[13] 명청전쟁 당시의 만주족에게는 통쾌한 승리였으나, 청나라 말기의 만주족과 현대 만주족에게는 피로스의 승리였던 셈이다. 어찌 보면 장기적 관점에서 명청전쟁의 진정한 승전국은 청나라가 아니라 한참 후에 세워진 중화인민공화국이었다고 볼 수 있다.
- 고구려-당 전쟁 - 고구려와 당나라는 3차례에 걸친 대전쟁을 펼쳤다. 3차 전쟁에서 신라의 연합까지 더해 결국은 고구려를 멸망시켰지만 당나라도 고구려를 멸망시키느라 국력을 크게 소모하였고 무엇보다 3차 전쟁에서 고구려는 내분이 일어난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당나라는 신라까지 동원해 연합해서 전방, 후방에서 동시에 고구려를 쳤기에 어거지로 이긴 거나 다름없었다. 사실상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화합했거나 당나라가 신라와 연합하지 않았다면 고구려에게 또 졌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당나라는 고구려 하나 멸망시키려고 신라도 끌어들이고 수많은 군사들도 동원해서 결과적으로는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내상을 입는다. 게다가 한반도에 자기들의 영향력을 뿌리내리는데 실패하는 한편 고구려에 의해 통제됐던 다른 민족들이 두고두고 당나라에 골칫거리가 되면서 그 틈에 고구려의 후신을 자처한 발해에게 요동을 도로 내주고 말았다. 다만 이는 정말 예기치 못한 면도 있었는데 백제를 무너뜨리고 고구려도 무너뜨리고 내친김에 신라까지 무너뜨리려던 찰나에 갑자기 토번이 급성장했다. 졸지에 양면전선이 형성되어버린 상황에서 어쨌든 신라보다는 토번과 싸우는 게 더 급했던 이유로 신라와의 전선에 온 힘을 쏟을 수가 없었다. 토번 없었다고 신라가 마냥 무너질지는 의문이지만 토번의 흥기가 신라에게는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또, 근본적으로 당이 한반도에 너무 깊이 개입하는 바람에 토번의 발호를 방치한 구석도 있었던 만큼 설령 토번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14]
- 이라클리오스와 동로마 제국 - 이라클리오스 즉위 당시 로마 제국은 사산조 페르시아에게 밀려 시리아와 이집트를 잃고 건국 이래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이라클리오스는 수년간 힘을 비축한 뒤, 과감한 군사 원정으로 적군을 연파하며 페르시아를 굴복시키고 성십자가와 잃어버렸던 땅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모든 힘을 소진한 로마 제국은 얼마 뒤 새롭게 일어난 이슬람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시리아와 이집트, 북아프리카를 도로 상실하고 만다.[15][16] 사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낳은 최악의 결과는 사산조 페르시아를 결정적으로 약화시켜서 그보다 더 무서운 적인 이슬람 세력의 흥기를 도왔다는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일시적인 승리가 최종적인 패배로 인도한, 최악의 승리이기에 피로스에 승리라 불러도 무방하다.[17]
- 안사의 난 (755~763) - 현종 때 안록산의 봉기로 시작된 이 난을 당 왕조는 무려 3명의 황제를 거친 끝에 간신히 진압하지만, 그러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고, 이 전쟁의 여파로 인해 서서히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 서라벌 기습(정치적 관점에서) (927년) - 고려의 대야성 함락과 흥달의 고려 귀부로 4면 전선을 강요받게 되며 위기에 빠진 후백제는 견훤이 서라벌을 기습하면서 신라를 완벽히 제압하고 경애왕 부부를 죽이고 경순왕을 옹립하는 등 대승을 거두며 위기를 넘겼다. 이후 신라의 위기를 돕고자 지원 온 고려의 왕건마저 공산 전투에서도 승리하면서 전세를 역전시켜 고창 전투까지는 후백제의 명백한 우위를 점한다. 그러나 서라벌 함락 과정에서 경애왕 살해, 왕비 겁탈, 서라벌 약탈 등 도를 넘는 난폭한 행위에 견훤이 옹립한 신라 조정 내부에서도 반백제 감정을 남겨주어 공산 전투가 끝난 상황에서도 신라는 고려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는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는 경상도의 호족들도 고창 전투에서 고려가 승리하자 일부를 빼면 바로 고려로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전술적으론 큰 성공을 했으나 정치적인 면에서는 신라의 수도를 장악하고 새로운 왕을 옹립까지 시키는 등 목표를 달성하고도 과하게 선을 넘어버린 행위를 일삼은 탓에 장기적으로는 더 큰 손해를 본 것이다.
- 여요전쟁 - 결과적으로 요나라가 고려를 자신들의 조공국으로 삼는 데는 성공했지만, 군사적 측면에서는 요나라가 고려에 패배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은 탓에 결국 이후 요나라는 고려의 상국임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강동 6주 반환과 친조를 요구하지 못하게 된 데다 조공국인 고려에 역갑질을 당하는 등 상국답지 못한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여요전쟁 당시 요나라 군대의 만행은 훗날 요나라가 금나라와 북송에 의해 멸망하고 고려로 망명한 요나라 유민들(특히 거란계)[18]이 고려 현지에서 좋지 못한 대접을 받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
- 애전 전투 (1011) - 해당 전투에서 고려군이 전멸하고 거란군이 승리했으나, 그와 별개로 거란군이 고려군에 의해 구출된 고려인 포로들을 다시 잡아가는 데는 실패했고 거란군의 피해 또한 심각했다. 특히 해당 전투에서 거란군이 입은 피해는 요나라가 한동안 인재 부족에 시달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 북송과 남송 - 북송은 금나라와, 남송은 몽골과 연합하여 숙적이었던 요나라와 금나라를 멸망시켰지만 이 때문에 완충지대가 없어져 북송과 남송도 결국 각각 금나라와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망하게 된다. 특히 해당 전쟁에서 송나라가 요나라를 상대로 졸전하였기 때문에 금나라는 북송을 만만하게 보게 된다.[19]
- 멸망 직전의 요나라 - 북송의 졸전 덕분에 북송의 북침을 막아낼 수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금나라를 상대할 병력이 부족해진 탓에 결국 금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북송이 자신들의 졸전과 별개로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만약 당시 요나라가 북송을 만만하게 보고 금나라의 서침을 막는 일에만 집중했다면 북송은 자신들을 상대할 요나라 군사가 적은 틈을 타 중국 통일왕조의 주특기인 물량공세로 자신들의 부족한 전투력을 커버하면서까지 요나라를 멸망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당시 요나라를 침공한 나라가 금나라와 북송 중 한 나라 뿐이었다면 이후의 중국 역사 또한 실제 역사와는 어느 정도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1584) - 분명 전투는 오다-도쿠가와 진영이 승리했지만 그럼에도 승리한 의미가 무색해질 정도로 도요토미(당시 하시바) 히데요시의 세력이 아직도 건재해서 결국 복속을 택했다. 그 결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승리하여 도요토미 정권이 세워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런데 반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입장에서도 도쿠가와 가문을 몰락시키는 데는 실패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 시기에 도쿠가와 가문이 군사적인 지원을 하지 않음으로써 세력 보존에 성공한 결과 장기적으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쿠데타를 통해 에도 막부가 세워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 임진왜란
- 제2차 진주성 전투 (1593) - 비록 일본군의 승리로 끝났으나, 애초에 이 전투가 전공을 꼭 만들어 오라고 닦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불호령 때문에[20] 벌어진 일에 가까웠고, 진주성 군민들의 필사적인 저항 탓에 일본군 또한 만 단위의 어마어마한 전사자가 발생하는 등 가뜩이나 보급 문제로 군대를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시못할 피해를 입었다.[21]
- 평양성 전투 (1592 ~ 1593) - 결국 조명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 전에 이미 3차례나 패배하면서 연합군 측의 피해가 쌓였고, 4차 전투에서도 결국은 협상을 통해 고니시 유키나가를 보내주면서 다소 찝찝한 승리가 되었다. 다만 고니시 측도 4차 평양성 전투 당시 병력의 2/3를 잃었는데, 대부분 철군 도중 사망하는 비전투손실이어서 본의 아니게 엄청난 피해를 입긴 했다.
- 기문포 해전 (1597) - 해당 해전 자체는 조선 수군이 승리한 해전이었으나, 원균의 무능함 탓에 이순신이 지휘관이었던 해전들(노량 해전 제외)[22]과 비교해서 조선 수군의 피해가 훨씬 컸으며, 결국 후술할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기문포 해전에서의 승리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 칠천량 해전 (1597) - 칠천량 해전 자체만 보면 이견의 여지가 없는 일본군의 통쾌한 승리였으며, 그로 인해 이후의 명량 해전 때까지만 해도 일본군이 정유재란에서 거침없이 승리할 것처럼 보였다.[23] 그러나 일본군 입장에서 직산 전투에서 격퇴당한 육상부대에 한시라도 빨리 보급해야 하는 촉박한 상황이었던 데다 쓸데없는 자존심 및 호승심까지 겹쳐 진도 외해로 돌아나가지 않고 울돌목으로 들어가버리면서 칠천량의 승전으로 얻은 압도적인 전력 우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이순신의 수군에게 보기 좋게 패전하고 말았다. 일본군의 입장에서 칠천량 해전으로 인한 원균의 죽음[24]이 당장은 통쾌한 승리였으나, 그로 인해 이순신의 복직이 더욱 수월해지면서 이후의 패전으로 이어진 아이러니한 일이 된 셈이다.
- 울산성 전투 (1597~1598) - 일본군 입장에서 임진왜란 내에서 있었던 수많은 전투들 중 가장 대표적인 피로스의 승리. 가토 기요마사는 이겼음에도 수비 병력이 궤멸당하는 피해를 입었으며,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이후 본국에 돌아가 구마모토 성을 축조할 적에 벽과 다다미 곳곳에 토란 줄기를 숨겨놓고 우물을 무려 120개나 팠다. 물론 정작 본인은 이 성을 한 번도 써보지 못했지만⋯ 200여 년 후, 서남전쟁 때 구마모토 성은 메이지 신정부군의 방어 거점이 되었는데, 워낙 방비가 튼튼해서 도저히 반란군이 공략할 수 없었다.
- 왜교성 전투 (1598) -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이 무려 이순신이라는 넘사벽 수준의 명장을 상대로 승리한 전투였지만, 이는 당시 조명 연합수군이 명나라 수군의 부족한 병력과 유정의 무책임성이라는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한 승리였으며, 전술적으로는 오히려 일본군이 조명 연합수군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당시 일본군이 이순신을 죽이지 못한 것은 후술할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군이 일본군을 거의 몰살시키다시피 했음을 감안하면 일본군 자신들의 입장에서 매우 뼈아픈 일이었다. 이런 피해 탓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후 노량 해전에서 적극적으로 싸우기보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길을 택하게 되었으며, 그 후에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고니시 유키나가가 본인의 뛰어난 역량에 걸맞지 않게 제대로 활약하지도 못하고 처참하게 패배하여 참수형에 처해졌다.
- 뤼첸 전투 (1632) - 30년 전쟁 당시 스웨덴과 합스부르크 제국[26] 사이의 전투. 스웨덴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작센 지방에서 가톨릭 군대를 몰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스웨덴 측의 전사자는 구교측보다 많았고 정예 고참병들이 다수 희생되었으며, 무엇보다 뛰어난 장군이자 국왕인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전사하는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27] 이후 스웨덴은 뇌르틀링겐 전투에서 스페인에게 대패하면서 전쟁에서의 우위를 상실한다. 물론 요한 바네르, 레나르트 토르스텐손의 활약으로 다시 전쟁의 우위를 가지고 오게 되었다.
- 대홍수 - 겉보기에는 카자크 봉기군과 루스 차르국, 스웨덴 제국의 대규모 침공군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승리였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 키이우, 스몰렌스크를 포함한 막대한 영토와 인구 손실을 겪은 폴란드는 지금까지 러시아를 상대로 쥐고 있던 군사적 우위와, 봉신국이었던 프로이센 공국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한때 동유럽의 패권국이었던 위치에서 추락하고 만다. 한편 카자크 봉기군의 입장에서도 결과적으로 피로스의 승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대홍수를 기회로 삼아 독립을 시도하던 우크라이나인들이 대홍수의 후유증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멸망함으로써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대신 새로운 열강인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 말플라케 전투 (1709) -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프랑스 말플라케에서 일어난 전투로 영국, 합스부르크 제국, 덴마크, 네덜란드 등을 위시한 연합군과 프랑스와 바이에른 선제후국이 격돌했다. 이 전투에서 동맹군은 8만 6천 명의 병력에 포 100문, 프랑스 측은 7만 5천 명의 병력과 포 80문을 동원했다. 전투 자체는 연합군의 승리였지만 연합군의 손실이 더 커서(사상자 2만 1천 명. 동원 병력의 약 25%가 전투불가 상태가 되어버렸다) 피로스의 승리에 해당한다.
- 7년 전쟁 - 영국과 프로이센 왕국 등이 이기긴 했지만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3세가 역사에 길이 남을 뻘짓을 해서 프로이센이 마지막 일격을 가할 수 있던 것에 가까웠고, 그나마 프로이센은 국력이 완전히 고갈되었고, 다른 유럽 국가들로부터 고립되었다. 영국은 인도와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큰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역시 막대한 재정부담이 발생해서 북아메리카 지역에 증세를 시도하다가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켜 버렸다. 그 외의 국가들도 제대로 된 승자가 없는 패자뿐인 싸움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최후의 승자는 미국과 프랑스 '시민'들로, 이 전쟁의 영향으로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 미국 독립 전쟁 (1775~1783) - 프랑스 한정. 패자 영국도 일단 전쟁 자체는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수해서라도 큰 경제적 가치를 가진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지키느냐 상실하느냐가 달린 매우 중요한 전쟁이었다. 당시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GDP는 대영제국 전체 GDP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으며, 식민지 거주인들의 1인당 GDP도 영국 본토 쪽을 상회할 지경이었다. 훗날 세계 초강대국이 되는 미국의 경제력은 이미 식민지 시절부터 수치상으로 나타난 상태였다. 미국 입장에서도 전쟁에 이기면 독립을 하는 것이고, 패하면 그대로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므로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즉, 영국은 알짜배기 땅덩어리를 사수하느냐 마느냐, 미국은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되느냐 마느냐가 걸린 사생결단 매치업이었다. 사실 프랑스의 경우 여기에 끼어들어야 할 명분이 일단 없지는 않았다. 독립 전쟁의 결과로 경쟁 상대 영국의 주요 식민지를 상실하게 만들고, 독립한 미국을 친프랑스 성향으로 돌렸는데, 그 효과는 작지 않았다. 프랑스가 미국 독립 전쟁에 개입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따라서 개입 자체는 충분히 정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규모의 전쟁 비용과 미국 지원금으로 인한 재정 소모 그 자체였다. 이미 7년 전쟁으로 인해 국력을 크게 소모해버린 프랑스는 이 미국 독립 전쟁으로 인한 재정 소모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고, 그렇지 않아도 기울어가던 프랑스의 경제는 파탄 상태에 빠졌다. 결국 재정 소모에다 대대로 사치벽[28]을 부린 프랑스 왕실의 최후는 프랑스 혁명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
- 길퍼드 코트하우스 전투 (1781) - 비록 영국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영국군도 너무나도 큰 피해를 입었으며, 결국 이후 요크타운 전투에서 영국군이 패배하여 미국이 독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 구스타브 3세의 대러시아 전쟁 (1788~1790) -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3세가 대북방전쟁과 1741~1743년 전쟁에서 잃은 실지를 회복하겠다는 명분으로 러시아 제국의 주력군이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위해 우크라이나 일대로 파견된 틈을 타 일으킨 전쟁. 그러나 대부분의 전투에서 러시아 제국군에게 발렸고 스벤스크순드 해전에서 겨우 이기면서 간신히 체면치레했다. 러시아는 영토 상실은 없었으나 뉘스타드 조약 이래로 누리던 스웨덴에 대한 내정 간섭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스웨덴은 러시아의 내정 간섭을 철폐했으나 목표로 한 실지 회복은 실패했으며 내부적으로 핀란드인의 분리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했고 전쟁에서 다수의 함대를 잃어 나폴레옹 전쟁 도중 벌어진 핀란드 전쟁(1808~1809)에서 러시아 제국 해군의 봉쇄를 막지 못해 최종적으로는 핀란드를 상실하고 구스타브 4세 아돌프까지 폐위되는 등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았다.
- 응우옌 왕조의 베트남 통일 - 응우옌 왕조는 베트남 통일 과정에서 프랑스를 포함한 외세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은 탓에 결국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장기적 차원에서는 베트남 전쟁의 씨앗을 남긴 셈이 되었다. 이 때문에 현대 베트남인들은 응우옌 왕조의 창업군주인 자롱 황제를 만장일치에 가깝게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 나폴레옹 전쟁
- 아일라우 전투 - 전투 자체는 러시아군이 철수하면서 프랑스군의 승리이기는 했지만 프랑스군은 사상자가 2만 가량이 발생하면서 전투 후반부에 뮈라의 대규모 기병대의 활약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 바그람 전투 - 프랑스군이 카를 루트비히의 오스트리아군을 몰아내면서 승리하긴 했지만 오스트리아군과 프랑스군 모두 비슷한 4만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오스트리아군 포로나 대포 역시 많이 노획하지 못해 이전 전투인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의 설욕을 완전히 갚지는 못했다.
- 보로디노 전투 - 전투는 프랑스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후퇴하는 러시아군을 쫓아가지 못해 러시아군 섬멸에 실패했고 양측 모두 5~6만에 달하는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 이후 나폴레옹은 모스크바에 입성하게 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철수하게 된다. 러시아 원정 문서로.
- 뤼첸 전투, 바우첸 전투 (나폴레옹의 몰락) - 나폴레옹은 새로 징집한 신병들로 프로이센군과 뤼첸에서 맞붙었으나 프로이센군과 비슷한 2만 명 가량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무엇보다 러시아 원정에서의 영향으로 인한 기병대의 부재로 프로이센군을 추격하는 것에서 어려움을 겪어 이후 승리를 해도 대프랑스 동맹군 섬멸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 이산들와나 전투 (줄루 전쟁) - 영국군을 전멸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줄루 왕국군은 정예 병력을 잃으면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후 벌어진 전투들에서 여러차례 패배하고 영국에 국토가 점령된다.
- 태평천국 운동 - 비록 태평천국을 무너뜨려 청나라의 멸망을 막아내 청나라 정부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팔기군과 녹영이 청나라 전성기에 비해 군사력이 엄청나게 퇴보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탓에 청나라가 군인이 아닌 일반 한족 출신이었던 의병들에게 의존하게 되었으며, 이는 청나라 말기에 고위직이 한족들에게 대거 넘어가는 폐해로 이어져 결국 그렇게 고위직을 차지한 한족들 중 위안스카이가 청나라를 멸망시키는 결과를 야기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 -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얻었는데, 전쟁 중 점령한 지역의 병합과 적당한 배상금 부과, 북독일 연방 승인 정도로만 항복을 받아내었다. 사전 협의가 충분히 진행된 사항이었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프로이센 내부에서는 "다 이긴 전쟁에서 얻은 게 없다"며 비난하는 여론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괜히 오스트리아를 통째로 먹었다간 연방 내외에서 어그로를 너무 크게 끌 위험이 있는 데다, 그 다음에 벌어질 전쟁을 대비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도 오스트리아는 다음 전쟁 때 중립을 유지하여 프로이센의 뒤통수를 치지 않았다. 표면상으로만 피로스의 승리였을 뿐, 종국에는 독일 제2제국까지 완성했으니 상당히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만약 당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강제로 병합하는 데 성공했다면, 오히려 해당 대체역사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피로스의 승리가 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 조선과 청나라의 조공관계 단절 - 청일전쟁의 결과로 조선이 청나라의 조공국 지위에서 벗어나 대한제국이 되고 이후 대한제국-청 국경 분쟁에서 대한제국군이 청군을 상대로 승리한 것 자체는 조선인들의 입장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어느 정도 만회한 통쾌한 일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일본 제국이 조선을 침략하는 데 있어 매우 유리해진 탓에 결국 경술국치를 막지 못했다. 무엇보다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배하여 동아시아에서의 헤게모니를 잃어버린 것이 일본 제국이 조선 뿐만 아니라 중국 대륙까지 침략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당대 조선인들에게 청나라의 쇠퇴는 마냥 통쾌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 제1차 세계 대전
- 갈리폴리 전투 - 튀르키예인 전체의 입장에서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활약으로 조국의 영토를 지키고 더 나아가 그에 의해 오늘날의 튀르키예 공화국이 세워질 기반이 마련된 통쾌한 승리였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 황실의 입장에서는 승전을 이끈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후 반역자로 돌변하여 자신들을 몰락시킬 기반이 마련된 피로스의 승리였다. 튀르키예 민족주의에 입각한 관점에서는 통쾌한 승리이지만 튀르키예의 오스만 제국 계승의식을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피로스의 승리인 셈이다.
- 유틀란트 해전 - 좀 애매한 케이스. 단순히 가라앉은 배수량으로만 따지면 독일 해군이 전술적으로 이득을 봤지만 세부적으로 따지면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독일은 영국 순양전함들을 궤멸시킬 의도였으나 이는 실패로 끝났고 순양전함 간 전투에서는 이득을 봤으나 주력함대간의 전투에서는 압도당했고 기상 악화 등의 행운이 겹쳐서 야간을 틈타 도망칠 수 있었다. 결국 영국의 해상봉쇄를 돌파할 수 없다는 사실은 더 명백하진 셈. 게다가 손상을 입은 군함들이 수리를 받아야했고 덕분에 전력차는 더 벌어지기까지 했다.[29]
- 브루실로프 공세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 제국과 동맹군(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독일 제국) 간의 전투. 일단 군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러시아군의 승리였다. 러시아군의 손실은 50만에서 100만 정도이며 동맹국의 손실은 100만에서 130만 명이었으므로 분명 러시아군의 승리다. 손익계산을 러시아가 아닌 연합군으로 넓히면 더더욱 완벽한 승리였는데, 이 전투의 결과 독일군의 서부전선 증원을 막았고, 루마니아가 연합군에 가담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루마니아는 독일에 점령당하지만, 종전 후 승전국으로 트리아농 조약을 맺어 영토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 유명한 트란실바니아가 루마니아의 영토가 된 것도 이 때문. 하지만 문제는 전투에서는 이겼음에도 러시아의 피해가 너무나 컸다는 점이다. 당장 공세를 지휘한 공로로 여러 훈장을 받으며 인정받은 브루실로프 본인조차 병력의 피해가 너무 큰 데 반해 제대로 된 전략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할 정도였다. 러시아군은 이 전투에 모든 것을 걸었는데 너무나 피해가 큰 결과 전비 충당을 위해 돈을 찍어낼 수밖에 없어서 러시아의 생필품 물가가 폭등했고, 이미 사상자 4백만 이상을 낸 러시아군에 추가로 70만에 달하는 손실은 러시아 국민들로서는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르게 만들었다. 그 결과 일어난 것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이었다. 물론 러시아 혁명의 원인이 이 전투만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고 제정 러시아가 안고 있던 수많은 문제가 복합적인 원인인 것은 당연하지만, 이 전투가 혁명의 촉매재 역할을 했다는 점은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제정 러시아는 망해버렸으며 황제인 니콜라이 2세는 목숨을 잃었다. 미국 웨스턴 뉴잉글랜드 대학의 유럽사 교수인 Gerhard Rempel은 러시아 혁명을 논하면서 이 전투를 피로스의 승리로 정의한 바 있다.출처
- 제2차 세계 대전
- 중일전쟁 - 말이 필요 없는 피로스의 전쟁 중 대표격이다. 전쟁은 중국이 미국 덕분에 승리당한 것이나 다름 없지만, 일본군에게 크나큰 피해를 입었을 뿐더러 자력으로 일본군을 몰아내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입은 중국국민당은 결국 4년 뒤에야 대륙에서 비로소 밀려났다. 한편 일본 제국의 입장에서도 피로스의 승리였다고 볼 수 있는데, 전술적으로는 중국군을 계속 밀어붙였지만, 중국 대륙의 엄청난 넓이와 중국군의 필사적인 저항 탓에 중국 전역 점령에는 실패하였고, 결국 그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가 이후 미국의 반격으로 패망하는 나비 효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침공(베저위붕 작전)- 오늘날에는 독일 수상함대 전력을 상당 부분 잃은 것이 북해에서 영국 해군에게 패배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피로스의 승리로 보는 관점도 있지만 당시 독일의 관점에서는 노르웨이가 연합군에 붙지 못하게 한 것은 물론, 함대가 킬 군항을 벗어나 북해로 진출할 기반을 잡았다는 이유로 전술적, 전략적 승리를 모두 쟁취했다고 봤다.- 프랑스 침공 - 독일군이 마지노선을 돌아 속전속결로 파리를 점령하여 프랑스를 항복시키는 것까진 좋았으나, 덩케르크 해안에 집결해 있던 영국군 38만 명 중 33만 명을 놓치는 바람에[30] 뒤이은 영국 본토 항공전부터 고생길이 훤히 열리게 된다.
- 겨울전쟁 -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영토를 뜯어낸 소련의 승리로 보이겠지만, 개전 당시의 압도적인 병력과 장비 차이를 생각해 보면 그 많은 머릿수를 가지고도 손바닥만한 나라에 1:5 교환비로 얻어터지면서 전사자가 핀란드군 전체 병력과 맞먹는 17만 명이나 낸 소련의 명백한 손해다.[31] 그래서 이 전쟁은 서류상으로는 핀란드가 이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죽하면 당시 핀란드가 내놓은 카렐리야 일대의 영토는 붉은 군대 전사자를 묻을 부지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심지어 스탈린은 손바닥만 한 나라에 얻어터진 놀라운 업적을 쌓은 덕에 타임지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러한 뻘짓을 보고 소련을 과소평가한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했고 소련은 3천만 명의 목숨을 갈아넣어야 했다. 무엇보다 장기적 차원에서 러시아는 소련 시절 핀란드 본토를 자국에 병합하는 데 실패한 대가로 훗날 자신들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원인이 되어 핀란드가 중립국 지위에서 벗어나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 이탈리아의 프랑스 침공 - 겉보기에는 이탈리아의 승리였지만, 프랑스 북부에서 독일에게 1선급 전력이 털리고 남은 2선급 전력으로 알프스를 방어하던 프랑스군을 상대로 쳐들어갔다가 오히려 역관광을 당해 본토가 털릴 뻔한 이탈리아군의 명백한 졸전이었다. 거기다 가장 큰 문제는 이를 계기로 이탈리아가 아직 준비도 덜 된 상태에서 전쟁에 냅다 참전, 북아프리카와 그리스에서 제대로 말아먹으면서 동맹 독일의 발목을 잡는 등 같은 동맹국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 크레타 섬 전투 - 전투 결과 영국군이 패해 독일군은 크레타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독일 공수부대는 약 4000여 명의 전사 및 실종자가 발생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후 독일 공수부대는 다시는 정규 공수작전을 하지 못했으며, 이후엔 일반 지상군 전투병력으로 활동했다.
- 산타크루즈 해전 - 전투 자체는 미 해군의 항공모함 호넷이 격침당하고 엔터프라이즈가 중파되어 후방으로 물러나는 등 일본군의 승리였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전투에서 베테랑 조종사들의 대다수를 잃어 즈이호와 쇼카쿠로는 아예 전투 투입이 불가능해지고, 즈이카쿠와 준요는 비행대를 다수 잃었고, 히요는 기관부 이상을 일으켰다. 이긴 일본군조차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항공모함이라곤 준요 단 1척밖에 남지 않았다. 그 결과 준요를 제외한 전 항공모함을 일본 본토로 퇴각시키고 필리핀 해 해전 이전까지 복구에만 매달리게 된다. 이후 일본군은 정교한 항공전 전술을 구사하지 못하고, 그 여파로 필리핀 해 해전 때는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라 불리는 수준의 대참패를 당한다.[32]
- 이오지마 전투 & 오키나와 전투 - 양쪽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 미군은 두 전투 모두 승리했지만 본인들도 예상 외로 큰 피해를 입어 본토 공략에 부담이 생겼고, 일본군은 미군의 본토 진격 의지를 꺾는다는 목표는 달성했지만 그 대신 본토에 더 큰 것을 맞고 말았다.
- 국공내전 - 전투 자체는 연전연승을 펼쳐 국민당이 공산당을 거의 소탕했으나, 미국의 개입으로 군대를 물려야 했다. 그로 인해 공산당이 성장할 기회만 줘버리는 바람에 결국 참패하여 타이완 섬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으며, 이 사건은 해리 S. 트루먼 정부 최악의 실책이 되었다.
-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 전투 자체는 연전연승을 펼쳐 네덜란드군이 인도네시아 독립군을 토벌하고 재점령 직전까지 거의 갔으나, '전후 복구하라고 준 돈을 어떻게 남 침략하는 데 쓸 수가 있냐?'라는 미국의 압력과 개입으로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승인해 줘야 했다. 그로 인해 인도네시아의 친네덜란드파 또한 줄을 잘못 선 대가로 자국 인도네시아를 떠나 네덜란드 등의 해외로 이주하여 실향민 신세가 되었다.
- 잘랄라바드 전투 (1차 아프가니스탄 내전) - 1989년 전투 개전 당시 동부 도시 잘랄라바드를 통제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나지불라 정부군이 잘랄라바드를 공격한 무자헤딘 측에게 패배하여 도시의 통제권을 빼앗겼으나 이후 잘랄라바드를 빼앗기고 수도 카불로 퇴각한 나지불라 정부군 병력이 카불에 있던 정부군 병력들과 합세해 다시 도시 공략을 재개하여 잘랄라바드를 점령 중인 무자헤딘들을 밀어내고 무자헤딘으로부터 빼앗긴 잘랄라바드를 다시 탈환하여 전투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전투에서 승전한 나지불라 정부군 역시 막대한 전사자와 부상자들이 발생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후 무자헤딘들의 점거지역들에 대한 추가공세를 하지 못한 채 근근이 정부군 점거지역들만 지키며 버티다 1991년 나지불라 정권의 최대 지원국이었던 소련이 붕괴되어 소련의 지원으로 버티던 나지불라 정권의 기반마져 약화되면서 나지불라 정부군의 통제하에 있었던 잘랄라바드는 이후 무자헤딘 측의 공세에 재차 통제권을 빼앗기고, 나지불라 정권도 소련 붕괴 1년뒤인 1992년 무자헤딘 반정부군 세력들의 공세를 받고 전복되었다.
- 부코바르 전투 (유고슬라비아 전쟁) - 1991년 전투 개전 초반에는 시가전에 대한 유고슬라비아 인민군과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인 민병대의 전략 미비로 인해 부코바르 시의 크로아티아군에게 매우 유리했으나[33] 1991년 9월 부코바르 함락 작전 지휘를 담당한 지보타 파니치 사령관이 장갑차와 중전차, 포병의 지원을 받으며 인민군 육군 보병이 아닌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주요 전력으로 나와서 전투를 벌이는 전략을 채택하여 동년 10월부터 부코바르에 대한 재공격에 나서면서 부코바르를 점령하고 있던 크로아티아군들을 모두 몰아내고, 11월 3일 전투에서 승리하여 부코바르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부코바르를 손에 넣은 유고 인민군과 세르비아인 민병대 역시 수많은 전상자들이 발생하는 등 피해가 워낙 커서 당시 유고 인민군 측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의 국경 도시인 부코바르를 함락시키고 크로아티아 본토로 진격하려는 군사 작전 계획을 취소하면서 외려 전세는 부코바르 시를 잃고 패전한 크로아티아 측에 급격히 유리해져 당시 유고 연방을 주도하고 있던 세르비아는 1992년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인정한다.
- 베트남 전쟁 - 전력 자체는 미국이 북베트남을 압도했으나, 애초에 무리하게 전쟁을 일으켰고, 또한 전략 자체부터가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략에서는 패하는 일이 계속 발생한 끝에 결국 물러나 사실상 전쟁에서 패했다. 한편 북베트남을 지원한 중국의 입장에서도 피로스의 승리라고 볼 수 있는데, 중공이 북베트남 주도의 베트남 통일을 지원해준 게 결과적으로는 중국-베트남 전쟁의 여러 원인들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34] 이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현재까지도 중국에서는 한반도의 남북통일 자체를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구정 공세 - 베트남 전쟁 중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이 야심차게 계획한 공세였으나, 미군의 성공적인 방어로 큰 타격만 입은 채 패배했다. 하지만 이 공세는 미국 본토에서 강한 반전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여서 이후 미국이 베트남에서 발을 빼는 계기가 되었다. 전술적으로는 미국의 대승리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패배를 불러온 경우. 즉, 북베트남의 '정치적 승리'를 가져온 것이다.
- 햄버거 힐 전투 - 북베트남군을 거의 정리해버리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구정 공세보다도 깔끔하게 승리하는 데에는 실패했고, 결국 구정 공세로 불타오르던 반전 여론은 더더욱 폭발했다.
- 케산 전투 - 기지는 가까스로 방어에 성공했지만, 구정 공세와 겹쳐버려 7월 기지를 해체하고 스스로 물러나버렸고, 이 역시 미국 내 반전 여론만 되레 더 키우고 말았으며, 결국 미국이 구상한 맥나마라 라인도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 중국-베트남 전쟁 - 중국과 베트남이 서로 본인들이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전쟁으로, 베트남은 전쟁 목표인 국토 방어와 캄보디아 주준군을 다 철수시키지 않았으며, 민병대로 정규군을 물리쳤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중국은 작게나마 영토를 획득했으며, 베트남 본토에 큰 피해를 주었고, 최전성기를 달리던 베트남의 팽창을 저지하면서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외교적 지지를 얻어내고, 본격적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그러잖아도 없는 살림에 중국과 국경을 접한 지역에 100만에 달하는 대규모 군대를 주둔시키느라 차후 완전한 동남아의 맹주가 되는 데 실패한 데다가 1990년대까지 극심한 빈곤에 중국은 민병대 따위에게 고전하여 개망신을 당했으니 둘 다 따지고 보면 이겼지만 패한 셈.
- 스리랑카 내전 - 스리랑카 정부가 2009년 마침내 타밀족 반군들을 토벌하여 반란을 진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리랑카측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내전이 26년간이나 진행됐기에 그동안 스리랑카 경제는 다 망가졌고, 코로나 19 이후 주 수입원이 되었던 관광객의 발길도 뚝 끊기면서 일시적인 디폴트를 선언, 분노한 국민들이 대통령궁을 습격하고 대통령은 망명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 테러와의 전쟁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초반의 미국이나 후반의 탈레반 모두 해당된다. 초반에 미국이 아프간 전역을 전부 점령하는 데 성공했고, 탈레반 수백명 당 미군 한 명으로 전투에선 압도했다. 하지만 잦은 폭격과 부족 내부의 정서, 양면 전쟁으로 인래 탈레반이 부활했다. 탈레반은 강성한 미국을 상대로 20년에 걸친 소모전 끝에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아프간이란 나라 자체가 완전히 초토화됐고 경제와 사회는 이미 답이 없을 정도로 붕괴돼버렸기에 국민들이 서로 나라를 탈출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이 물러간 뒤에 탈레반이 아프간을 지배한다 해도 좋지 않은데, 아프간에서는 다에시가 새롭게 창설되어 탈레반과 맞서고 있고 탈레반을 적대하는 아프간 내 수많은 부족들도 이미 탈레반과 맞설 준비를 마친 상태라 Again 1989밖에 안 되므로 탈레반도 사실상 피로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 이라크 전쟁 - 역시 미국이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사실상 타협의 형태로 물러갔지만, 승리의 기쁨 그런 건 없었다. ISIL이라는 희대의 사이코패스급 집단이 새로운 적으로 등장했고, 국내의 분열까지 결합해 이라크는 말 그대로 막장으로 치닫기까지 했다. 다행히 전열을 정비한 이라크군이 ISIL 세력을 때려 잡고 라마디, 히트, 모술, 탈아파르, 라와, 루마나 등 IS들이 장악한 이라크 내 도시와 마을들을 재함락시키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는 중.
- 마라위 전투 - 병력 수만 해도 처음에는 3,000명 정도 파병했다가 고전하여 2차례 증강을 이뤄 3배가 넘는 9,500여명이 파병되었으며 공군까지 합치자면 마우테 반군의 10배에 이르는 압도적인 병력 수였음에도 5달씩이나 전투를 벌였다. 거기다가 이 과정에서 필리핀군 장갑차와 차량들이 다수 파손당하는 큰 피해를 당해야 했고, 나중에는 필리핀 홀로 도저히 상대 못 하겠다고 국제적 지원까지 호소할 지경이었다. 1천 명 남짓하고 바주카와 수류탄 정도 화기에 일부 IED 자체 무기와 총기가 무장의 대부분인 반군을 상대로 1,500명이 넘는 아군 사상자를 내야 했으니 결코 피해가 적은 게 아니다. 국제적 호소로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의 군사적 지원을 비롯하여 대한민국과 튀르키예, 호주의 의료지원 및 싱가포르 공군 공중지원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다국적 지원을 받았음에도 추가지원도 없이 시가전을 벌이던 반군에게 고전했다. 거기다 마라위 시는 완전히 초토화되어 복구도 못하고 있다.
- 핵전쟁 - 핵전쟁에서는 승자와 패자 모두 괴멸적인 피해를 입도록 되어 있으므로, 어느 한 쪽이 항복하거나 전멸하더라도 승자 역시 피로스의 승리를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상호확증파괴의 개념이며, 핵무기가 갖는 전쟁 억지력이다.
5.2. 창작물
악역의 경우 장렬하게 전사하는 아군을 더욱 의미있고 극적으로 만들 수 있으며, 악역의 적대감의 개연성이 생기고, 결정적으로 주인공의 승리에 현실성이 생기기 때문에 자주 이용된다.
주인공의 경우 긴장감이 높아지며, 작품 전체가 어둡거나, 후속작을 염두에 두고 이런 설정을 차용하기도 하며, 전쟁 영화의 경우 전쟁의 참상과 허무함을 보여주는 장치로써 기능하기도 한다.
- 검은 양 게임 - 검은 양들은 팀킬로 패배하고, 흰 양들은 최종 미션에 실패하여 아무도 이득을 챙기지 못하였다.
- 공각기동대 시리즈 - 제3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과 유럽공동체(EC)가 소련을 누르고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소련의 핵공격 피해가 컸던 탓에 아시아 신흥국들에게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상당부분 넘겨줬다. 이후 제4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은 3개의 연방국가로 분단되고 유럽은 패전국으로 전락한다.
- 광해의 연인 - 폐비 유씨
많이 애매하긴 하지만 아들 지의 왕위 계승에 방해가 되는 원빈 노씨가 갑자기 사라져서 탄탄대로가 될 줄 알았으나, 이후 인조반정이 일어난다. - 건담 시리즈
- 니어 레플리칸트 - 니어
- 단간론파 시리즈 - 미래기관
- 달빛조각사 - 헤르메스 길드 vs 바르칸 데모프[36]
- 더 씽 시리즈
- 더 씽(1982) - 메크리디가 기지 인원들로 의태한 괴물들을 모두 처치하는데 성공하지만, 12명의 기지 인원들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건 메크리디와 차일즈, 단 두 명 뿐이었다. 다른 기지 인원들은 서로를 향한 의심속에서 싸우다가 대다수가 자멸한 뒤였으니, 메크리디는 괴물은 퇴치했어도 모두를 구하는데는 실패한 셈이다.
- 더 씽(2011) - 1982년판은 그나마 괴물이 세상으로 나가는 걸 막기라도 했지만, 2011년판의 결말은 오히려 배드엔딩에 더 가깝다. 여기에서도 노르웨이 기지 인원 다수가 죽어버렸고, 끝내 괴물을 격리하는데도 실패했다. 거기다가 1982년작의 주인공 메크리디는 후에 생사라도 확인되지만, 이번 작의 케이트는 생사조차도 불명이다. 마지막까지 살아있던 노르웨이인 라스와 마티아스도 1982년작에 개로 의태한 괴물을 미국인 연구소까지 쫒아오다가 죽어버렸으니, 결국 노르웨이 기지의 인원들은 모두 전멸한 셈.
- 던전앤파이터
- 혼돈의 오즈마와 펠 로스 제국과의 전쟁(제1차 검은 성전) - 과거 가장 강대한 영향력을 끼쳤던 펠 로스 제국이 오즈마와 그의 위장자 군단과 전쟁을 펼쳤으나 프리스트가 도와주기 전까진 상대도 되지 못했으며 성안의 미카엘라와 프리스트들의 도움으로 오즈마를 봉인하고 승리했으나 100년간 전쟁을 펼친 영향으로 정세가 매우 악화되고 전후로도 계속된 황제 팔메리어 4세의 실책으로 인해 펠 로스 제국은 파멸했다. 이기고 멸망한 것.
- 오즈마를 비롯한 검은 교단과 데 로스 제국과의 전쟁(제2차 검은 성전) - 수 많은 피해를 보면서 끝끝내 오즈마를 토벌하고 검은 교단을 거의 궤멸시켰지만, 제국도 상당한 피해를 입은 데다[37] 황자 반 프란츠를 비롯한 수 많은 이들이 위장자가 될 조짐을 보이고 검은 교단의 몇몇 간부급 위장자들도 아직 생존해있는지라[38] 향후 전망이 매우 좋지 않다.
- 데빌맨 - 사탄
- 돼지의 왕 - 김철
강민 일당들이 정종석이 입고 있던 검은 바지를 찢거나 황경민을 괴롭히자 허리띠로 공격해 이를 제압하지만 그 반장인 강민을 혼내려다 자신만 교무실로 불려가거나 2주일 정학을 당하는 예기치 않은 이변을 겪는다. 중학교 옥상에서 김종빈에게 폭행당하자 이에 저항하려고 몰래 챙겨온 칼을 들고 강민 일당을 응징하다가 찬영이 부른 한 교사에게 발각되어 퇴학당한다. - 드래곤볼 Z - 드래곤볼/사이어인 편 에서의 싸움에서 베지터와 손오공이 정면으로 맞붙는다. 초반에는 나름 호각의 전투를 벌였고 오공이 3배 계왕권으로 잠시나마 우세를 보인 적이 있었으나 리스크를 동반하는 기술이었던지라 이후에는 베지터의 대원화로 인하여 다시 전투력이 크게 역전당해 제압당하고 만다. 이후 베지터에게 죽기 직전까지 몰리나 손오반, 크리링의 재참전과 야지로베의 원호로 인하여 다시 상황이 급변하고 베지터 또한 원기옥을 맞은 후유증으로 인한 전투력의 급하락, 오반의 대원화가 된 몸에 깔려서 오공과 마찬가지로 몸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을 입었고, 크리링이 베지터를 처리하려고 하였으나 오공이 다시 한번 베지터와 재대결을 할 기회를 요청하자 간신히 목숨을 건져 지구를 탈출한다. 이 전투에서 오공은 온 몸의 뼈가 전부 박살이 날 정도로 심각한 중상을 입었으며, 크리링과 오반 또한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으나 베지터도 우주선에 탑승한 이후 생명유지장치를 달아야 할 정도로 매우 큰 부상을 입었다.[39]
- 란마 1/2 - 히비키 료가의 사자포효탄[40]
- 마기아 레코드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외전/애니메이션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 캡틴 아메리카가 최종 승리하긴 했지만 버키는 기계팔을 잃었고, 캡틴은 방패를 버렸으며, 아이언맨은 슈트의 아크 리액터가 부서져 버렸다. 무엇보다 셋 다 크나큰 심리적 타격을 입었고, 어벤져스가 분열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버키와 캡틴 일행, 그리고 아이언맨은 엔드게임 막바지나 되어서야 간신히 재회하게 된다.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 진 주인공인 타노스가 결국 모든 인피니티 스톤을 얻어 최종 승리자가 되었지만 자신도 그 대가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말았다. 결국 모든 것을 되돌리기 위해 타노스를 찾아온 복수자들에게 목숨을 잃지만⋯.[41]
- 어벤져스: 엔드게임 - 도입부 한정으로는 어벤져스가 찾아왔을 땐 이미 모든 것을 되돌릴 인피니티 스톤을 타노스가 핑거 스냅으로 박살낸 뒤였다. 토르가 타노스의 목을 쳐서 그를 죽였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린 것. 간신히 평행 세계를 돌며 모은 인피니티 스톤으로 인피니티 건틀릿을 모방한 아이언맨 건틀릿을 통해 소멸된 이들을 부활시키고, 평행 세계에서 쳐들어온 타노스를 핑거스냅으로 소멸시켜버리나 그 과정에서 블랙위도우가 죽고 기껏 부활하여 어벤져스를 도우러 온 지원군들 중에서도 희생자가 발생, 결정적으로 캡틴 아메리카와 함께 어벤져스의 양대 기둥인 토니 스타크도 사망했다. 엔드게임의 사망자들은 핑거 스냅에 의한 소멸이 아니기에 다시는 부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결말도 어느 정도는 피로스의 승리다.[42]
-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 와칸다-탈로칸 전쟁의 승자인 와칸다: 금적금왕을 성공시켜서 탈로칸을 동맹으로 격하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와칸다는 수도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국왕이 시해당하고, 탈로칸이 저지른 비브라늄 탐사선 학살 사건의 혐의를 와칸다가 온전히 뒤집어쓰면서 외교적으로 고립될 위험에 처했다.
- 바람의 마운드 - 칸다이 요도가와 고교
주인공 노나카 유타카의 타마가와 고교 야구부와 고시엔 2회전에서 우천 중단까지 가는 혈투 끝에 승리를 거뒀으나, 결국 3회전에서 허무하게 탈락하여 피로스의 승리가 되었다. - 별이 펄럭일 때
- 제 1차 레비린이클 해전 - 시홀앙르 제국은 5척의 항모와 1척의 전함을 격침시키고 2척의 항모에게 더 피해를 입힌 반면 1척의 항모를 잃고 2척의 항모와 전함만이 피해를 입는 대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갖가지 이유로 손실된 기체를 합쳐서 502기의 항공기를 손실한 미 해군과 다르게 시홀앙르 제국은 1.5배 달하는 전력과 지상기지란 어드밴티지에도 불구하고 달리 순수하게 격추된 항공전력만 518기라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게다가 이런 대승리에도 불구하고 9월 말의 이 전투 이후 두달도 지나기 전 미국은 남은 부대를 재편해 거의 비슷한 수준의 함대를 다시 끌어모아 공세를 가하며, 12월에 이르러선 전선이 마무리된 대서양 함대를 태평양으로 투입시켜 사실상 전력을 완전히 회복한다. 반면 전투의 승자였던 시홀앙르는 이 이후 1년 이상이 지난 레미아 만 해전에 이르러서도 이때 입은 피해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다. - 복학생 정순이 - 안다롱은 나윤미와 정순이와 같이 온 신소희에게 얻어맞은 뒤에 그 다음 날 신소희, 나윤미, 정순이를 불러 교무실에서 혼나게 하고 같이 온 정순이에게 누명을 씌워 윤미와 소희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했지만 순이는 쿨하게 자신이 했다고 말하자 다롱은 당황한다.[43] 그리고 안다롱은 순이에게 발차기를 제대로 맞는다. 이어서 안다롱이 최윤정과 그 패거리들의 사회적 매장을 조건으로 자퇴를 반강제적으로 종용하는 데 순이 본인은 학창 시절에 쌓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추억을 쌓았기에 자퇴하는 데 미련이 없었다. 하지만 순이를 좋게 본 안다롱의 아버지인 안택규가 순이의 자퇴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대학갈 때 까지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순이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다롱은 순이를 자퇴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순이를 절망하게 만드는 거 자체는 실패한 셈.
- 블루 아카이브
- 코사카 와카모와 발키리 경찰학교 사이 분쟁 - 발렌타인 이벤트 때 와카모가 자신이 점찍어 둔 사람을 만나려고 계속해서 교정국을 탈주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발키리 측에서 히무로 세나, 카가미 치히로 등 외부인을 끌어오는 수법까지 써가며 끊임없이 와카모의 탈주를 막으려고 해도 연속해서 계속 교정국이 털리는 수모를 겪었으며, 결과적으로 와카모의 난동을 막는 것은 성공했으나 이 사태 때문에 발키리 학생들의 성적이 전부 망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 아리우스 스쿼드 + 게헨나-트리니티 사이의 전투 - 이 사태 때문에 아리우스 스쿼드는 궤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하고 도망치나[44], 게헨나나 트리니티 측에서도 유스티나 성도의 공격에 양측 대표들, 지휘체계[45] 등의 부재로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특히 샬레의 대표이자 현 키보토스 최고 관리자격 되는 인물은 이 사건으로 황천길을 갈 뻔했을 정도로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46]
- 삼국지 영걸전(GBA판) - 한조재흥 엔딩을 볼 때까지 총 소모턴 수가 1,000턴을 넘어가면(즉, 전투를 길게 끌어 아군의 피해가 늘어나면) 유비 사후 사마의 부자가 반란을 일으켜 다시 대혼란시대를 맞이하는 배드엔딩이 된다.[47]
- 수호전 - 양산박의 호걸들. 정확히는 방랍전 한정. 스핀오프이자 후속작인 수호후전에서는 살아남은 호걸들이 섬라국(대만)[48]으로 가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대신 양산박의 호걸들을 죽게 만든 북송은 망하고 남송이 세워졌다.)
- 슈퍼전대 시리즈
- 초신성 플래시맨 - 주인공 5명: 플래시맨 5명이 자신의 친부모를 찾고 개조실험제국 메스로부터 자신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 지구에 와서, 메스와 싸워 이겼지만, 반 플래시 현상에 의해 더 이상 지구에 살 수 없게 되었으며, 플래시맨 5인은 부모와 재회를 하지 못하고, 사라를 제외한 플래시맨 4인은 부모님을 알지도 못한 채 플래시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을 보면 플래시맨이 거둔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로 분류할 수 있다.
- 특명전대 고버스터즈 - 주인공 5명: 심지어 팀 일원 중 한명은 싸움 끝에 전사해버리고 이로 인하여 13년 전 아공간에 전송되었던 사람들은 한명도 살아돌아오지 못해서 아공간에 전송되었던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목적은 실패했으므로 피로스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 007 스카이폴 - 제임스 본드가 라울 실바를 죽이고 같이 싸우던 애들도 궤멸시켰지만, 저택을 잃고 M도 죽었다.[49]
- 스타워즈
- 클론 전쟁 - 비록 전쟁은 은하 공화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사실 이는 쉬브 팰퍼틴의 계략이었고, 결국 은하 공화국과 분리주의 연합 모두 망했다.
- 스카리프 전투 - 반군은 목적을 달성하고 제국군에게 적잖은 피해를 입혔지만, 반군 역시 다수의 함선을 잃고 제독과 지휘진도 잃었다. 이 전투 이후 반군은 한동안 함대 공격을 재게할 수 없었으며, 이 때문에 데스매치였던 야빈 전투에서는 전투기 편대만 투입했다. 다만 애초에 반란 연합이 스카리프 전투 전에는 겁먹고 그냥 항복하려고 했던 분위기였음을 감안하면 그래도 반란 연합에게 의미가 없던 전투는 아니다. 사실 그 어렵게 탈취한 죽음의별 설계도는 레아 오르가나의 끈기와 정신력 그리고 포스 센서티브가 아니었다면 다스 베이더의 포스 정신탐색에 의해 실토했을 것이다.[50]
- 크레이트 전투
살아남은 소수의 저항군
퍼스트 오더가 저항군을 괴멸시키는 과정에서 유리한 입장을 고수하긴 했고 저항군은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거의 붕괴 수준까지 갔지만 퍼스트 오더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라더스 급 순양함의 하이퍼드라이브 충각 공격 한 번에 퍼스트 오더의 기함이자 수도 역할을 하던 메가급 스타 드레드노트 '슈프리머시'가 대파되었고[51], 다수의 리서전트급 배틀크루저를 비롯해 맨데이터 IV급 전함, 그리고 무엇보다 이 함선들에 승선하고 있던 수많은 승무원들과 병사들 등 귀중한 인력들을 많이 잃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퍼스트 오더의 지도자였던 스노크 본인도 레이에만 정신 팔려 있다가, 카일로 렌에 의해 암살되어 세력의 구심점이 정신적으로 불안한 카일로 렌과 군사적으로 무능하다는 평을 들은 헉스에게 옮겨져 버렸다. 결국엔 양 진영 모두 승자 없는 싸움을 한 것이다.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 조합 전쟁(테란 연합 vs 켈모리안 조합) - 4년간 연합과 조합간의 전쟁으로 연합이 승리해 자원과 행성을 양도받았지만 자신들의 목표인 켈모리안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했고, 반면 켈모리안 조합은 독립은 인정받았다. 즉, 연합의 목표는 완전히 달성하지 못한 셈이었다. 더군다나 조합 전쟁 이후 안 그래도 전쟁 전부터 막장이던 테란 연합은 전쟁 이후 더더욱 막장국가가 되어갔고 이는 결국 멸망의 시발점이 된다.
- 프로토스(에피소드 3~4) - 모성 아이어가 저그에게 유린당하는 와중 테사다르가 초월체와 동귀어진해 저그를 와해시킬 수 있었으나, 남아있는 저그들을 감당할 수 없어 종족전쟁 시점엔 샤쿠라스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심지어 샤쿠라스까지 저그가 따라와 이를 물리치는 과정에서도 사라 케리건의 모략으로 알다리스 등 귀중한 인재들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고, 샤쿠라스를 안정화시킨 뒤에는 라자갈과 피닉스까지 잃었다.
- 테란 지구 집정 연합(에피소드 5) - 코랄까지 진격하여 멩스크를 포위하는 등 확실히 승전으로 끌고 갔지만, 정작 결정적인 생포는 못하고, 타소니스의 사이오닉 장치 획득에 이어 차에 있는 신생 초월체를 길들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지휘관인 알렉세이 스투코프를 잃으며 사이오닉 장치 손실, 신생 초월체 손실로 이어져 최종적으로 패배하는 원인이 되었다.
- 사라 케리건 - 오메가 전투에서는 큰 타격을 입었다지만 자치령, 프로토스, 지구 집정 연합의 3세력이 차 알레프의 저그를 포위하는 상황이었다. 플레이어 정신체의 활약으로 이들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지만, 피해가 너무 커서 4년 동안 재건하느라 바빠서 아무것도 못했으며, 사미르 듀란이 중간에 빠져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해 공허의 유산 시점에서 호되게 고생하면서 댈람이 아몬을 공허로 보내기 전까지 케리건 세력은 리타이어하게 된다.
- 베카 로 전투 - 저그는 전멸, 프로토스는 먼저 기사단의 손에서 탈출한 제라나를 제외하고 전멸, 자치령(테란)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살아남았다.
- 스플래툰 3 - 페스매치 1차에서 도구팀의 득표수가 식량팀과 오락거리팀의 득표수의 합계보다 많아 도구팀이 서로간의 내전만 일으키면서 승리하게 되었다.
- 스플래터 하우스 - 1편 한정. 헬 마스크의 힘을 빌려 스플래터 하우스를 불태워 없앤 것은 이루었지만, 원래 구하려던 여자친구 제니퍼가 괴물로 개조당한 탓에 자기 손으로 죽여야하는 전개. 또한 3편에서도 게임 진행 과정에 따라서 아내 제니퍼나 그의 아들 데이빗 중 한 명이 죽거나 둘 다 죽는 배드 엔딩이 존재한다.
- 슬램덩크 - 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 시구루이 - 후지키 겐노스케는 결국 마지막에 승리하지만, 사랑하는 연인 미에도 잃고, 자신의 신념도 철저히 박살나 버리고, 무엇보다 이후 비극적인 결말까지 맞이하게 된다.
- 시귀 - 시귀들에 의해 소토바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살해당하고, 심지어 시귀로 되살아나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이기도 했던 마을 사람들을 죽여 자신들처럼 시귀로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도 필사적으로 항전하여 기어이 시귀들을 소탕했지만 당연히 마을 사람 대다수가 죽어버린 것은 당연하며, 마을 역시 야마이리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완전히 초토화하여 더 이상은 마을 구실도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목숨말고는 건진 것이 없다. 그리고 생존자들은 모르지만 시귀들이 우두머리인 키리시키 스나코는 마을의 배신자인 무로이 세이신과 함께 탈출하면서 다른 곳도 같은 비극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는 암시와 함께 끝난다.
- 신비아파트 시리즈 - 그늘 전쟁
인간 세상을 침략한 사신들에 맞서 전 세계의 퇴마사들이 모여 싸우며 겨우 봉인에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퇴마사들이 희생됐다. - 신세기 에반게리온 - 서드 임팩트
제레 일당과 전략자위대원들, 일본 정부 구성원도 모두 액체화되어 사라지고 특히 제레는 반응으로 보아 자의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양산기들과 유이도 리타이어했고 겐도는 초호기에게 먹히면서 확실하게 죽긴 했는데 그들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녹아 생환 불명이 되고 신지와 아스카 두 명만 남은 채로 끝난다. - 신 구미호 - 구미호와 그녀의 오라비: 키츠네의 최종결전.
구미호는 강마루의 활약으로 최종결전에서 파괴의 여우옥의 힘에 도취 된 그녀의 오라버니를 저처치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녀의 최종목적인 '인간이 되는 것'은 해내지 못 한다. 이 과정에서 모든 여우옥들이 파괴되어 여우옥의 힘으로 현세에 머눌던 구미호와 마루의 동료 무령과 옥매향은 성불해 소멸하고 만다. 키츠네를 처치한 것도 중간애 오라비를 말로 회유하는 것을 실패해 오라비를 죽여야만 되는 상황이 온 것이며 결국 구미호는 세상에 남은 유일한 구미호족이 된다. - 싸움독학 - 이도운: 58~59화 장면 중 오락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정찬을 1080도 발차기로 제압하는데 성공했으나 성태훈에게 버림받고 학교 측의 징계로 예기치않은 이변을 겪다가 정찬에게 또다시 보복당하고 스키드 세력에 의한 기습 테러로 즉사했다.
- 안녕하세요. 반한 사람에게 사랑의 묘약을 의뢰받은 마녀입니다. - 마르샨의 제2왕자 야슈무는 오랜 친구이자 호위기사인 하리주 아즈무가 마녀인 로제와 결혼하는 걸 막으려고[52] 귀족들이 마녀가 만든 사랑의 묘약 때문에 쓰러진 사건의 원흉으로 로제를 지목하고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했지만, 로제의 위험을 알아챈 하리주가 막는다. 알고보니 막내 여동생인 루루가 사태의 원흉이었고, 루루는 큰 여동생인 비라우라가 로제에게 사랑의 묘약을 의뢰했었고 시집가기 전에 루루에게 그 묘약을 보여주었다. 그걸 본 루루는 예뻐서 따라해보고 싶었기에 로제가 만든 사랑의 묘약을 재현해서 만들기 이른다. 여기서 루루가 마녀의 혈통이라는 게 밝혀지고 야슈무가 루루를 벌 주려고 했지만 루루의 재능을 탐낸 로제가 루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는 대신, 그녀를 제자 삼겠다고 말했다. 누명 씌우는 것만 야슈무 본인 뜻대로 했지, 하리주와 로제의 관계를 떨어트리는 데는 실패했다.
- 알드노아. 제로 - 제 2차 성간전쟁. 지구연합에서는 초반부에 궤도기사들의 양륙성 강하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들의 피해가 발생했으며 압도적인 전력 차로 인해 군인들의 경우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종반부에 이르러서는 전세가 지구연합군에게 기울지만 지구연합 측도 전쟁을 지속해 버스제국 군을 궤멸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아세일럼 공주[53]가 화평을 제의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들인다.[54]
- 노보스탈리스크 전투 - 아세일럼 공주의 사살을 위해 자츠바움의 양륙성이 강하해 지구연합은 본부였던 노보스탈리스크 기지에 침입한다. 이에 대응해 듀칼리온의 전투원들이 양륙성에 침입하고 나서 아세일럼 공주의 전략적 가치[55]를 이용해 양륙성의 알드노아 드라이브를 정지시킨다. 이 전투로 지구연합 측은 기지의 상당한 피해[56]를 입고 적의 중요 요인인 아세일럼 공주는 빈사상태가 되어 슬레인 트로이어드가 화성으로 모시고 돌아간다. 하지만 양륙성은 함락되었고 아세일럼 공주 대신에 카이즈카 이나호라는 지구연합군 소속 병사가 기동권자를 얻게 되면서 듀칼리온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57] 그리고 2쿨부터는 반격에 나선다.
- 약한영웅 - 나백진: 256화 기준 현 시점에서 주인공인 연시은과 싸워 이겼으나 마지막 승리를 끝으로 트럭에 치여 즉사했다.
-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 안티스킬의 학원도시 암부 소탕작전
- 얼음과 불의 노래
- 도르네 원정 - 2차례나 치른 도르네 원정에 칠왕국은 많은 병력만 잃고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승리한 도르네 역시 영토가 거의 초토화되었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기에[58] 승리하고도 평화협정을 맺어야 했다.
- 용들의 춤 - 왕족들과 귀족들이 서로 싸우며 죽여댄 탓에 왕실은 아에곤 3세와 비세리스 2세만 남을 정도로 후손이 귀해졌다. 승리한 아에곤 3세도 동생 비세리스를 제외하곤 모든 가족을 잃었기에 심적으로 큰 상처를 입어 평생 우울한 성격이 되고 만다. 특히 아에곤 3세는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성년이 될 때까지 권력을 신하들에게 빼앗겨서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 했고[59] 성인이 되어 권력을 되찾기는 하나 고작 30대의 나이에 요절한다. 게다가 이 전쟁으로 왕실의 중요한 힘인 드래곤을 상실하다보니 가뜩이나 불리한 환경에 있어 왕권 강화가 어렵던 칠왕국의 왕권이 더욱 약화되고 만다. 여기에 기근까지 심해져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는 칠왕국을 제대로 파탄냈고 나중에 로버트의 반란으로 타르가르옌 왕가가 몰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 에이스 컴뱃 시리즈
- 에이스 컴뱃 6 Fires of Liberation - 11화 〈The Moloch Desert〉의
에메리아군가루다 편대
엄밀히 따지면 작전이 도중에 중지되어서 에메리아군 전체를 보면 승패가 결정난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에메리아군에 진격 중단 명령이 내려진 와중에 가루다 편대는 이걸 듣지 않고 마침 나타난 슈트리건 편대와 싸워서 해치우는 데엔 성공하나 항명으로 근신 처분을 받는다.[60] 즉, 가루다 편대 한정 피로스의 승리이고 해당 회차의 부제목 '속 빈 승리(Hollow Victory)'는 이 가루다 편대와 슈트리건 편대의 대결을 가리킨다.[61] - 에이스 컴뱃 7 Skies Unknown
- SP 미션 2화 〈Anchorhead Raid〉의 스트라이더 편대
- 15화 〈Battle for Farbanti〉의 오시아군
기껏 천신만고 끝에 적국 에루지아의 수도인 파반티를 점령했건만 종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데다 에이스 파일럿 한 명을 잃기도 했다. - 17화 〈Homeward〉의 LRSSG
새로운 보급기지를 찾으러 상륙전이 진행되어 점령했을 것으로 추정된 타일러 섬으로 이동했으나 상륙전은 실패로 돌아가 오시아군은 퇴각하고 에루지아군은 자기들끼리 싸우는 대환장 속에서, 퇴각하는 오시아군과 타일러 섬의 인질들을 구출하고 셔틀을 격추시켰지만, 핵심 목적이었던 보급선 확보에는 실패하여 오히려 상황만 더 안 좋아져 결국 실라지 성의 보스루지군을 약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결정판/캠페인 공략/에피루스의 피로스의 세 번째 임무가 피로스의 승리이다.
- 예익의 유스티아 - 리시아의 쿠데타(티아 루트): 왕국을 조종하려는 발스타인공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가우에 의해 근위대장 바리어스가 사망하고, 발스타인공이 최후의 발악으로 기폭장치를 작동시켜 붕락을 일으키면서 뇌옥의 민심이 흉흉해져 5장 시점에서 무장봉기까지 일으키고, 측근이었던 루키우스는 새로운 독재자로 변질되는 등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간다.
- 오버워치 시리즈 - 응징의 날: 안토니오 바르탈로티 사살 및 베네치아 사태
- 와일드 팽 -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모두 전멸한 스토리상 해피 엔딩 자체가 없다.[62]
- 유희왕
- OCG 스토리 낙인 편의 최종 전투: 트라이브리게이드와 스프리건즈, 히스이 연합군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상검은 완전히 전멸했고, 히스이 역시 차기 군주인 에지르를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으며, 트라이브리게이드 역시 주력 멤버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사망하는 사실상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드래그마는 데스피아안이 됐던 사람들이 모두 원래대로 돌아오고 악의 축인 교도 기사단과 막시무스 드래그마가 사망하긴 했지만 진정한 흑막인 알베르와 쿠엠은 모두 멀쩡히 생존했기 때문에 승자 없는 전쟁이 되었다.
- 원신
- 산고노미야 코코미를 비롯한 와타츠미 세력의 저항군과 쿠죠 사라가 이끄는 막부군, 그리고 우인단 간의 이나즈마 내전: 결과적으로 저항군의 승리로 의하여 이득을 본 우인단이 진정한 승리를 가져간 것 같지만, 저항군 역시 사안으로 의한 노화 현상으로 텟페이를 잃고 상당한 양의 병사들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된 데다가, 우인단 역시 집행관 하나를 잃고, 사안 공장을 비롯한 거점이 파괴되었으며, 집행관 하나 역시 자취를 감춘 탓에 이나즈마 내에서의 입지가 위태로워진 상태. 막부 측도 삼봉행 중 두 곳이 우인단과 내통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며 크나큰 타격을 받은 탓에 결국 승자 없는 싸움이 되었으며, 저항군이나 우인단 입장에서는 피로스의 승리에 가깝다.
- 제트: 자신을 살해하려던 타니트 부족들과 대모 바벨을 물리쳤지만 바벨이 척후병을 보내 사막의 모든 부족민들에게 제트가 타니트 부족을 배신했다고 알리는 바람에 사막 그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어 평생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 원피스 - 정상전쟁: 일단 해군 측에선 에이스를 미끼로 흰 수염 해적단을 본진으로 유도해 결국 이기긴 이겼는데 사상자 숫자가 엄청났다.[63] 그 때문에 스모커를 중장까지 진급시켜야만 했고 세계징병까지 실시해 민간인이었던 잇쇼와 로쿠규를 대장으로 징병해야만 했다. 대장이야 특별계층인지라 만만치 않은 재원들이 뽑혔지만 중장 이하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자질이 부족한 인원을 진급시키는 경우도 허다했다. 결과적으로 대장 이외의 해군 전력이 많이 약화되었고, 가장 많이 이익을 챙긴 것 역시 적대세력인 검은 수염 해적단이다. 한편으로 버기 해적단 역시도 의도치 않게 어마어마한 이득을 얻었는데 단장인 버기가 임펠 다운에 갇혀버려서 사실상 해체되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었는데 정상전쟁 당시 임펠 다운에서 풀려난 죄수들이 죄다 버기 밑에 들어가서 망해가던 해적단이 거대 규모로 변모하고 마침내 칠무해를 거쳐 사황[64]까지 되었다(…). 임펠 다운에 갇혀 인생 망한 버기에게 있어서 정상전쟁이란 성공한 도박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해군은 흰수염이 죽기전에 남긴 유언때문에 근본적인 목적인 흰수염과 에이스를 죽여서 대해적시대를 끝낸다는것도 이루지 못했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십자군의 시험장의 진영 대표 용사와의 전투,[65] 격전의 아제로스의 로데론 전투[66], 바로크 사울팽과 실바나스 윈드러너의 막고라[67]
- 은하영웅전설
- 버밀리온 성역 회전 후 시점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전략상으로는 이겼지만, 전술상으로는 양 웬리에게 졌다고 생각했다. 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파비우스의 승리이지만 라인하르트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피로스의 승리이다. 작살날 뻔 했던 전쟁을 이긴 것은 제국의 파비우스의 승리이나 자신의 화려한 군사적 커리어에 양 웬리를 이김으로서 방점을 찍으려 했다 되려 양 웬리에게 개관광을 타버린 라인하르트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화룡점정으로 양 웬리가 어이없게 죽어버려서 영원한 승리자가 되어버렸다.
- 회랑 전투 직후의 양 웬리 함대: 이들은 회랑 전투로 이제르론 회랑 공략을 시도한 제국군을 저지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직후에 상술했듯, 사령관인 양 웬리를 어이없게 잃고 만다.
- 연애혁명 - 공주영, 이경우: 이 둘은 청소를 방해하거나 왕자림을 성추행하는 것을 목격해 임정훈을 혼내주려고 주먹으로 해결하자 학폭위의 반발로 공주영은 강제로 반성문을 작성하고 이경우는 정학 처분을 받았다.
- 연예인 지옥
- 김태진: 666부대 98화 '정지혁 46' 편에서 자신을 괴롭힌 고도리 중사를 응징하자 이지용에게 발각되 숙청당했다.
- 조만필: 103편 '정지혁 51' 편의 과거 회상에서 군대 부조리에 분노해 어느 도지사의 아들인 박 일병을 직접 혼내겠다고 총기 메다가 1차 경고를 받고 666부대로 방출됐다.[68] 이 때문에 666부대 편입 이후에도 이지용 일당에 의한 군대 부조리에 저항하지 못해 쩔쩔 매다가 1중대 소대원들이 정지혁한테 맞은걸 자신이 때렸다고 뒤집어 썼다.
- 용자왕 가오가이가 FINAL - 제네식이 골디언 크러셔를 날려서 대량 복제된 소울 11 유성주를 끔살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전에 용자들 대부분이 자폭 공격을 감행해서 기체가 개발살난 상태가 되어버린다. 물론 제네식도 팔파레파와의 격전으로 걸레짝이 되어버린 건 덤. 본래 전투의 목적을 생각하면 의미가 없진 않지만 피해는 역시 막심하다.
- 임진록 2+ 조선의 반격
- 조선군의 교토성 전투: 기껏 공들여서 일본 동군의 본진인 교토성을 점거했지만, 이미 동군 본대는 나고야를 함락하고, 명군이 뒤통수를 쳐서 서군의 본진인 오사카성을 포위하는 상황임을 뒤늦게 깨달아 점령한 교토성을 버리고 철군하여 오사카성으로 향한다.
- 명-도쿠가와 연합군: 일단 미츠나리의 서군 진영을 궤멸시킨다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도쿠가와의 동군 진영은 명나라의 기만성 트롤링과 조선군의 공격에 타격을 크게 입어 대마도와 오키나와의 영유권을 할양해가면서 조선군을 돌려보낼 수 있었고,[69] 명군은 얻은 게 하나도 없어 괜히 국력만 더 기울어지는 꼴만 낳았다.
- 취권 2 - 황비홍: 매국노들이 자신들의 나라의 소중한 역사적인 유물들을 영국에 보내는 걸 막기 위해 마지막에 악역하고 싸우던 도중 상당히 고전을 하게 되고 결국 공력을 올린답시고 공업용 알코올을 마셔서 결국 간신히 이기고 유물도 지키게 되지만 대신 그 영향으로 장애인이 되는 바람에(…) 사실상 상처뿐인 승리로 끝나게 된다.[70]
- 킹덤 - 이목 실역사의 이목은 열세의 조국 조나라를 대국 진나라의 침공을 여러번 막아낸 명장이지만 킹덤에서는 허구한날 전쟁에서 지는데도 열국이 칭송하는 명장으로 띄워준다. 만화에서 표현된 모든 전투가 패전이며 아주아주 가끔 이겼을땐 피로스의 승리또는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르기엔 피로스에게 모독인 졸전으로 평가받는다. 업전에서는 자국 수도권 한단 근처의 업 주변 요충지(열미)를 일부로 약화시켜 진나라를 끌어들여들이는 언뜻 신박하지만 그냥 요충지를 지켰으면 나을 전쟁을 하다가 패하고 최근엔 조나라 31만대 진나라 14만이라는 구도에서 숫자빨로 이길까 싶더니 적장 환기에게 농락당하고 자기 여자 하나 구하겠다고 대장으로서 임무를 망각하고 난전에 뛰어들어 죽을 뻔해 기껏 이길 싸움을 질 뻔했다. 결국 이기긴 했지만 앞서 말한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르기엔 피로스에게 모독인 졸전'이었다.
- 토탈 워 시리즈: 얼마나 잘 싸웠느냐에 따라 전투 평가 화면에서 '영웅적인 승리(Heroic victory)', '아슬아슬한 승리(Close victory) 따위의 평가가 주어지는데, 정말 아슬아슬하게 이기면 '피로스의 승리(Phyrric victory)가 나온다.
- 포켓몬스터(애니메이션) - 한웅: 성도 리그 8강전에서 에이스인 번치코로 지우의 리자몽과 호각의 승부 끝에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너무도 치열한 승부였기에 번치코도 이기긴 해도 중상을 입어 4강전에 출전하지 못해 4강전에서 떨어져버렸다. 그리고 한웅을 이긴 트레이너가 우승. 이 때문에 패배해도 그냥은 패배 안하고 물귀신이 따로 없다는 평가를 지우가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우와 싸우지 않아서 탈락하거나 혹은 싸우다가 패배하는 게 더욱 더 큰 손해이므로 피로스의 승리라고 보기 힘든 면도 있다.
- 프리드로우
- 구하린 - 자신의 오토바이가 파손되자 255화에서 3학년 교실로 들어와 박영란을 직접 혼내겠다고 폭력을 쓰자 위의 이경우처럼 정학 처분을 받았다.
- 박덕진 - '덕진이와 중딩소녀' 편에서 최영은을 괴롭히는 일진 패거리들을 응징하는데 성공했으나 가해 학부모의 반발로 인해 폭행죄로 형사입건되는 예기치않은 이변을 겪는다. 누군가 몰래 촬영한 동영상이 SNS에 올려지자 '중학생 폭행사건 가해자들 어떤 수염난 아재가 참교육하는 영상!!'이란 동영상으로 인해 영웅(?)이 되지만 한태성과 신철민은 불안한 반응을 보인다. 이런 사건에 마음이 걸렸는지 마지막 만난 최영은에게 한 입으로 두 말하며 자리를 떠난다.
- 현아영 - 웹툰 공모전에서 한태성을 탈락시키려는 악의적인 방법으로 SNS에 가짜뉴스를 유포하거나 청부업자를 불러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게 만든다. 공모전 준결승에서 한태성에게 이겼으나 채색 과정에서 정봉구에게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글/그림 이름에서 정범구를 제외한 개인 이름으로 제출하는 저작권 침해를 저지르는 바람에 결승을 앞두고 공모전에서 부정행위로 실격됐다.
- 호빗 - 아자눌비자르 전투: 전투에서는 이겨 안개산맥과 회색산맥의 오르크들이 전멸하고 적 지휘관 아조그도 죽였지만 난쟁이도 대왕인 스라인의 한쪽눈이 멀고 소린의 동생인 프레린도 전사하는 등 원래 군대의 절반정도 되는 5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71] 거기다가 난쟁이들은 모리아안에 발로그가 살아있어 모리아에 정착을 하는데에도 실패한다.
- Project Wingman: 카스카디아 독립 전쟁 자체는 승리하였으나 사망한 걸로 추정되던 크림슨 1이 수도 상공에 나타나 코디움 순항 유도탄을 무차별로 투하하였다. 그 후 모나크의 무장통제사 프레즈가 버티지 못하고 기절할 정도로 급기동을 하면서 마지막 전투를 벌였고 결국 크림슨 1이 격추되는 것을 끝으로 전쟁이 완전히 끝났지만 동료들도 크림슨 1에 의해 모두 잃어 혼자 남았고, 지켜내려했던 나라인 카스카디아는 폐허가 되었으며, 용암에 파묻혀 시민들이 몰살되고 불타는 수도 프레시디아 위에서 혼자 날고 있을 뿐이다.
- Warhammer(구판)
- 수염 전쟁: 엘프와 드워프 양측이 큰 피해를 입고 서로가 피폐해졌으며 승리한 드워프도 이득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특히 이 전쟁으로 그 전에 좋았던 엘프와 드워프의 관계가 제대로 파탄났으며 번영해온 두 종족의 번영기가 끝나서 몰락하는 계기가 된다.
- 스케이븐 전쟁: 스케이븐의 침공으로부터 제국은 승리하고 나라를 지켜냈으나 스케이븐이 만들어낸 역병으로 제국 인구의 90%가 죽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져와서 제국이 세계관에서 가장 강한 세력임에도 제국의 적들을 물량으로 압도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게다가 스케이븐으로부러 나라를 지켜낸 황제 만프레드조차 나중에가면 스케이븐한테 암살당하여 제국이 황제 자리를 둘러싼 내전이 일어나 혼란에 빠진다.
- Warhammer 40,000[72]
- 브락스 공성전: 카오스에 빠진 추기경 자판 때문에 헬게이트가 열린 브락스를 진압하기 위해 데스 코어 오브 크리크가 투입되었는데 그 결과 데스 코어 오브 크리크는 무려 1400만 명, 브락스 민병대는 800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그리고 전쟁의 목적 중 하나였던 브릭스의 무기고는 전쟁기간 도중 모두 소진되거나 파괴되어 버렸다. 사실 이 전쟁에서 확실하게 이득을 본 건 코른에게 바칠 해골과 피를 잔뜩 얻은 쥬폴과 알파 리전 소속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들을 포로로 붙잡고 먹튀한 다크 엔젤, 그리고 카오스 데몬과 싸워 이겨 정치적 입지가 더욱 탄탄해진 헥터 렉스뿐이다. 그러나 브락스를 가만히 놔두었다면 나중에 제국에 큰 위험이 될거라는 예언이 있었는지라, 피해는 크긴 했지만 어쨌든 이긴 가치는 있었다. 그리고 워해머 세계관에서 1400만은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다. 오히려 1400만 밖에 사망자를 내지 않고 다른 임페리얼 가드 군단의 도움 없이 전선을 유지한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가 대단한거다.
- 호루스 헤러시 - 호루스를 죽이고 반란을 진압하는데 성공했지만, 스페이스 마린 리전중 절반이 배신하여 제국의 전력이 크게 약화된 데다가 제국민 2조 3000억 명의 희생과 함께 많은 행성이 초토화되고, 결정적으로 황제가 빈사상태에 빠져 황금옥좌에 안치되어 제국은 끝없는 쇠퇴기를 겪게 된다.
- 오르페우스의 몰락: 임페리얼 아머 12의 배경이 된 전투. 네크론의 침공에 맞서 아마라 행성을 지켜내긴 했지만 행성은 초토화되었고 방어군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결국 행성 주민들을 내팽개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미래에 큰 위협이 될 요소를 미리 쳐냈다는 가치라도 있는 브락스 공성전 보다 꿈도 희망도 없는 게, 네크론은 아직 세력이 강성한지라 행성계가 점차 네크론 손아귀에 떨어지고 있는지라, 성전을 새로 하거나, 아예 다 Exterminatus 해버리는 게 좋을 거 같다는 결말을 맺는다.
- 몬트카 캠페인: 인류제국의 대규모 침공군을 타우 제국은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물리치는 데 성공했으나 통치자인 아운바가 암살당했으며 인류제국이 철수하면서 날린 익스터미나투스로 힘들게 개척한 영토들이 황폐화되고 수많은 타우 민간인과 병력이 사망했다.
- 레트리뷰션의 결말: 아자라이아 카이라스도 족치고, 새로 챕터 마스터에 취임한 가브리엘 안젤로스에 의해 챕터가 정화되었으나, 사실상 챕터 자체가 풍비박산 난 상태. 아직도 블러드 레이븐의 갈 길은 멀다.
- 인도미투스 성전
- 폴아웃 시리즈 - 오퍼레이션: 선버스트 전투 :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을 상대로 한 기념비적인 승리였으나 브라더후드의 마지막 방해로 인해 사상자가 너무 컸고 뉴 베가스 시점까지도 발전소를 복구하지 못했다.
-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 결과적으로 외계인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커 다음 침공은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인류의 전투에 감명을 받은 다른 외계종족인 스피어가 지구인들에게 우주 항행기술을 제공하고 후편에서 본격적으로 외계인 레이드가 시작되리라는 암시와 함께 영화는 끝을 맺는다.
- 염력 - 결과는 일단 홍상무의 태산건설이 지역 주민을 몰아내고 개발 자체도 성공했지만 전부 다 하지는 못했고 제대로 사업도 진행되지 않은 데다 내부 비리도 있다. 거기다 태산건설 측이 몰아세워서 온갖 혐의를 씌웠음에도 주인공 석헌은 징역 4년 정도로 끝났다.
- 제9중대 - 영화 결말에서 결국 무자헤딘으로부터 고지를 지키는데 성공하지만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중대원이 사망하고, 주인공 혼자 고지를 지키는데 성공하고 증원군이 왔지만, 사실 이미 몇 달 전에 전쟁은 끝나 있었고, 그 자리에서 주인공은 주저앉아 오열하고, 이후 허무한 주인공의 얼굴을 비추며 그가 만난 모든 이들이 얼마 못 가 실종되거나 죽고, 조국이 멸망하면서 받은 훈장도 쓸모없어졌다는 내용과 함께 끝난다.
- 좋좋소 - 정필돈이 자기 회사를 디스한 백진상에게 복수하기 위해 백진상이 뚫으려 했던 거래처 상대인 표토르 최와 접촉하여 말도 안되는 마진율을 써서 거래처를 가로채는데 성공했다. 물론 계약서를 보자마자 현타가 온 정필돈은 덤.
- 존 윅 3: 파라벨룸 - 영화 후반부에 최고회의 대원들과 킬러들을 투입해 존 윅을 죽이려 했으나, 존 윅의 뛰어난 싸움실력(…)과 호텔의 지원으로 목표도 못 이루고 대원과 킬러들을 잃었다. 결과만 보면 존의 승리지만 그 역시 건물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고 이제는 의지할 곳이 마땅히 없어졌다.[73]
- 존 윅 4 - 최고회의의 대리인인 빈센트 드 그라몽과의 결투에서 승리하여 존 윅은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결국 그 간의 부상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 헌터×헌터 - 아이작 네테로 vs 메르엠
- 휴먼버그대학교 - 하오전쟁 -아모우구미
- 헨리 스틱민 콜렉션 - Completing the Mission
- R, Revenged 루트 - 헨리가 전작 FtC의 Betrayed 루트에서 레지널드에게 배신당한 이후의 스토리로, 기계 신체와 함께 부활한 헨리는 복수하기 위해 탑팻 클랜을 전멸시키지만, 레지널드에게 척추를 공격당해 추락하는 비행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중상을 입는다. 어찌어찌 빠져나오지만 결국 복수의 허무함 속에서 눈을 뜬 채로 죽음을 맞이한다. 제작자의 코멘트에 따르면 비행선이 충돌한 도고보고 정글 기지는 귀신들린 곳으로 여겨져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헨리는 기억하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게 되었다.
- VH, valiant hero 루트 - 그나마 위의 루트의 헨리는 이미 전전작인 ItA에서 탑팻 클랜의 편으로 가버린 세계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부군과 세계 입장에서는 딱히 손해가 없다. 그러나 이 루트는 정부군, 탑팻 클랜, 헨리 중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싸움이 되었다. 정부군 입장에서는 탑팻 클랜의 우주 정거장을 파괴했지만 고위 간부를 비롯해 많은 조직원들이 탈출에 성공했으니 아직 세계는 탑팻 클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헨리의 절친이자 정부군의 든든한 파일럿인 찰스 캘빈이 엔딩에서 순직한다. 탑팻 클랜 입장에서도 비록 조직원들이 여럿 살아남긴 했지만 자신들이 공들여서 만든 정거장이 박살나버렸고, 그 상황에서 다시 처음부터 조직을 재건해야 하는 상황이다.
- BLACK★★ROCK SHOOTER DAWN FALL - 아르테미스와 인류 간의 결전 끝에 엠프레스가 궤도 엘리베이터를 파괴하여 인류 절멸 계획을 중단시켰으나 이미 떨어진 문 플레이크로 인류의 70%가 사망했고, 아르테미스의 본체도 여전히 달에서 기동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피로스의 승리가 되었다.
- LISA: The Painful RPG - 브래드 암스트롱과 란도 군단+배신한 동료들과의 사투 끝에 브래드가 이기고 그의 양녀 버디 암스트롱은 자유가 되나, 브래드는 죽음에 이를 정도의 부상과 마약 조이의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 및 돌연변이화하고 만다. 거기다 버디는 사람들을 학살해대는 브래드에게 실망하여 폭언까지 하였다. 이 때문에 브래드는 자신이 정말로 옳은 선택을 한 게 맞았냐고 유언을 남겼다.
- Slow and Steady - 토끼와 거북이라는 유명한 이솝 우화의 이야기를 매우 현실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펭귄 슬랩스틱은 그나마 거북이의 승리로 마무리가 되지만 오리지널은 완벽한 배드 엔딩이자 피로스의 승리이다. 왜냐하면 거북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토끼를 포함한 모두가 죽은 뒤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혼자만 살아남았으니 거북이의 입장에서 상당히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비록 완주에는 성공했으나 이젠 자신을 알았던 모두가 없어졌다는 상당히 처참한 현실을 평생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6. 관련 문서
- 승자 없는 싸움
- 승자의 저주
- 파비우스 전략
- 꾸역승
- 치킨 게임
병림픽- 카드모스 - 피로스 이전의 상처뿐인 승리에 해당하는 인물로, 토탈 워 사가: 트로이와 토탈 워: 파라오에선 피로스 이전 시대임을 감안하여 카드모스의 승리라고 한다.
[1] 다만 역사적으로 보면 보통 저런 대대적인 정복전쟁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점령한 토지의 민심을 안정화시키며 융화 작업을 펼쳐야하는 동시에 점령 지역을 탐내는 자국의 유력자나 귀족들을 상대로 지배력을 행사해 억눌러 왕권을 강화시켜야 하며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일이 많다. 그렇기에 정복자는 절대 쉴 수 없다. 키네아스가 위에서 언급한 나라들을 죄다 먹었다면 보통 피로스 시대에서도 무리고 길면 피로스의 다다음 왕까지 가도 안정화가 끝낼까 말까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피로스의 발언은 땅을 먹을 생각만 하고 이후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이러면 나라가 망하기 딱 좋은데, 다른 것도 아닌 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가 정복전쟁을 끝내기도 전에 요절해버리자 바로 나라가 쫄딱 망했다. 마케도니아인과 페르시아인의 융화 작업을 이미 하고 있었는데도! 그나마 피로스가 이것까지 고려했다면 '전쟁이 끝났을 경우 정복지 내에서 내 지지도는 땅바닥을 칠 테니 나는 그 적의를 전부 짊어지고 은퇴하며 그 대신 비교적 무난한 내 후계자를 세워 안정화를 시작한다.'라고 생각하고 말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일화나 후술할 모습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낮다.[2] 아스쿨룸 전투 때 잃은 병력들 중에는 장교들이 많아서 타격이 더 컸다.[3] 물론 피로스는 신병들을 고평가하지는 않았는지 이겨도 자신의 본래 부하들이 죽을 때마다 우려가 많았다.[4] 플루타르코스는 로마에 꽤 우호적 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5] 다만 카르타고가 한니발을 방치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몇번이나 병력을 편성하여 한니발을 지원하려 했으나, 그럴 때마다 다른 곳에서 로마군에게 대패하여 긴급하게 병력 충원이 필요하게 되어 그쪽으로 보낸 것이다. 어쩌다 이탈리아 본토로 증원된 병력도 대부분은 지중해를 건너다 로마 해군에게 걸려서 몰살당하거나, 운좋게 상륙해도 전염병이나 로마 육군의 요격으로 족족 괴멸되었다. 괜히 전쟁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격언의 대표적인 예시로 한니발이 거론되는 게 아니다.[6] 다만 형양-성고 라인의 고제와 팽월, 한신은 따로 싸웠다기보다는 대전략 하에서 유기적으로 싸운 것이므로 어느 하나만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애시당초 고제-한신-팽월은 따로따로 싸운 것이 아니라 대전략 하에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싸우고 있었기 때문. 즉, 고제-한신-팽월 그 전부를 합쳐서 항우의 피로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7] 사실, 이릉이나 이광, 사마천 문서를 보면 한무제의 인재를 보는 안목은 매우 처참한 수준임이 드러나는데, 한무제가 위청과 곽거병을 발탁된 이유는 그들이 한무제가 총애하던 무사황후 위씨의 동생과 조카였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총애하던 위씨의 외척들을 밀어주다보니 운 좋게도 명장인 위청과 곽거병이 발탁되었던 것.[8] 애시당초 사마의의 아들 사마소는 자기네 사마씨 가문이 당시 신하이면서도 위나라 황제 조방을 살해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위나라를 승계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들은 황제를 죽여놓고 자기들한테 충성을 바치라고 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 그래서 이들은 촉을 쳐 멸망시키는 방법으로 진나라 건국을 정당화하려 한 것이다. 한마디로 촉한은 후한의 뒤를 잇는 국가이므로 우리가 촉한을 쳐서 물리쳤으니 우리가 이제부터 황제국이라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논리.[9] 원나라 시절 몽골족과 더불어 지배민족 지위에 있었던 색목인(정확히는 그 중에서 무슬림)이 명나라 건국 이후 명 황실의 정책에 의해 강제로 한족에 동화되어 이슬람교 신앙만 겨우 지켜낸 것이 오늘날 후이족의 직계 기원이다.[10] 북주의 신하 출신이던 양견에서부터 시작된 수나라 황실 혈통과 수나라의 신하 출신이던 이연에서부터 시작된 당나라 황실 혈통부터가 선비족의 혈통이 있다.[11] 사타족 중 일부는 장기적 차원에서 몽골계 민족(요나라나 원나라 때)이나 퉁구스계 민족(금나라나 청나라 때)에 동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2] 특히나, 명청전쟁 당시 청나라 군사력의 핵심이었던 팔기군은 청 말기에는 전성기 당시의 전투력은 완전히 쇠퇴한 채 기득권의 상징이 되어버려 쇠퇴하는 청의 원인 그 자체나 다름이 없었고, 청 말기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것은 증국번을 필두로 한 한족 출신의 의병들이었다.[13] 한일관계에 대입하면,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이 한민족에게 강요했던 야마토 민족 전통문화를 한민족이 역으로 빼앗은 격이라고 볼 수 있다.[14] 당나라가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를 멸망시키려던 것이었던 만큼, 고구려와 전쟁을 치르기 전 가장 위협적인 북방민족이었던 돌궐을 미리 제압하는 등 준비 과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당나라의 예상보다 고구려의 저력이 훨씬 강력했던 점이 피로스의 승리가 된 근본적인 원인이었다.[15] 다만 그래도 이라클리오스가 페르시아에게 승리하였기 때문에 로마 제국이 살아남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라클리오스에게 패배한 사산조 페르시아는 아예 이슬람에게 멸망해버렸다. 또한 이라클리오스는 군사력을 보존시켜 아나톨리아는 유지했고 2세기 후 로마 제국은 다시 한번 중흥기를 맞게 된다.[16] 만약에 패배했더라면 오히려 동로마의 멸망이 앞당겨졌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은 이슬람 세력이 집단력이 강하게 뭉친 군사들이 많았는데 동로마가 페르시아에게 패배했다면 페르시아가 멸망하는 날에 자신들에게도 칼날이 날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승리해서 병력을 보존시켜 퇴각한 덕분에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했다.[17] 다만 정상참작 해야 하는 게 전대 황제인 포카스의 실정이 너무 컸으며, 페르시아 방면에 총력을 기울인 탓에 발칸과 이탈리아 전선은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페르시아 전쟁 종전 2년도 안 되어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한 이슬람의 팽창이 시작되는 등 시대가 그와 동로마 제국을 따라주지 않았다.[18] 발해계 요나라 유민들과 한족계 요나라 유민들은 요나라 내에서 피지배민족이었기 때문인지 거란계 요나라 유민들에 비하면 고려 내에서 그나마 대접이 나았던 편이다.[19] 다만 이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이 당시 어떤 매국노 놈이 송나라가 건국되기도 전에 요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는 대가로 연운 16주라는 요충지를 그냥 넘겨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땅들은 만리장성 남쪽에 위치한 곳이라서 이를 되찾지 않으면 설령 요나라나 금나라를 멸망시켜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즉, 요와 금을 멸망시켜서 완충지대가 사라졌다기보다는 이미 예전에 완충지대가 홀라당 넘어가서 그 완충지대를 되찾으려고 무리하게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20] 얼마나 심했으면 임진왜란 내내 땡땡이만 쳤던 다테 마사무네도 이 전투에 참전했을 정도이며, 고니시 유키나가는 아예 심유경에게 대놓고 "어쩔 수 없이 쳐들어가야 하니 차라리 성을 비우는 게 더 나을 거요!"라고 언질을 줬을 정도였다.[21] 이후로는 딱히 별 대규모 전투 없이 일본과 명나라의 강화회담으로 흘러가며, 조선은 이미 명나라가 회담 주도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의견을 내기 힘들었다.[22] 사실 노량 해전도 임진왜란의 다른 해전들과 달리 침략해오는 일본 수군을 격파하는 게 아니라 도망치는 일본 수군을 포위하여 섬멸하는 거라서 임진왜란의 다른 해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원거리 공격이 줄어들고 근접전이 많아진 탓에 필연적으로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순신은 본인마저 전사할 만큼 조선 수군의 피해가 컸던 노량 해전마저 조선 수군이 승리한 해전으로 만든 명장이다.[23] 지금이야 명량 해전이 조선이 제해권을 탈환하게 만든 통쾌한 승리로 여겨지지만, 명량 해전에서 조선군이 승리한 직후의 시점에서만 보면 겨우 그 승리만으로 조선이 정유재란에서 승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애초에 명량해전조차도 승리 가능성이 거의 제로인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고, 이순신 본인조차도 난중일기에 천행이었다고 기재했을 정도였다.[24] 죽지 않고 잠수탄 것이라는 설도 있다.[25] 이들이 도쿠가와 진영에 합류한 이유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정권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닌 도요토미 정권을 위협하는 서군의 이시다 미츠나리를 비롯한 간신들 처단을 명분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26] 신성 로마 제국 중 가톨릭 세력. 당시 제국 내 개신교 세력은 스웨덴을 지원하였다.[27] 국왕이 최전방으로 시찰을 나가다 갑자기 몰아닥친 안개에 길을 잃고 헤메다가 재수없게도 지나가던 적 기병대에 발각돼서 사망.[28] 사실 부르봉 왕가의 사치는 루이 14세 시기부터 시작되어 루이 15세 때 절정을 맞았기에 루이 14세와 루이 15세의 책임이 크다. 루이 16세는 오히려 상당히 검소했으며, 사치스런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도 의외로 검소하게 살았다. 특히 사치스럽게 살려 해도 당시 프랑스의 재정이 파탄났기에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선대 왕들의 사치가 너무 쩔어줘서 두 내외가 아무리 아끼고 아껴봐야 기울어가는 나라를 살리는데는 택도 없었고(…), 이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나중에 프랑스 왕실을 몰락시킨 혁명정부도 루이 14세와 루이 15세가 망친 재정 문제는 끝끝내 해결하지 못했다.[29] 이 때문에 이 전투는 "The imprisoned got out of their cell, punched the jailer & then returned." /"죄수가 감방에서 나와 간수를 후려치고 다시 감방으로 돌아갔다."고 흔히 평가된다. 다만 유틀랜드에서 독일 해군의 목적은 봉쇄를 뚫는 게 아니라 영국 해군에 피해를 입혀 이후에 봉쇄를 뚫기 더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었으므로 유틀랜드 해전 자체에 대하여는 잘못된 비유이며,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전쟁 전체의 상황에 훨씬 더 어울린다.[30] 일선에서 진격해야 한다고 간언했지만 히틀러와 룬트슈테트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격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거부했다.[31] 정확히는 전사 및 실종 12만 7천명, 부상 18만명, 포로 5천여 명, 전차는 1200여대에서 3500여대까지 격파당하고 항공기는 261기에서 515기까지 격추당해 인적, 물적 손실이 엄청났다.[32] 미국에서 칠면조는 총으로 사냥하면 닭보다도 잡기 쉬운 만만한 사냥감 취급을 받는다. 그만큼 미국 쪽이 일방적으로 학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뜻이다.[33] 여러 건물들로 얽혀 있는 부코바르의 도심 지형을 이용해 유고 인민군과 세르비아인 민병대들에게 기습전과 비정규전으로 공격하여 타격을 입혔다.[34] 이는 역사적으로 중국과 베트남이 서로 천하의 적대관계였던 탓도 있다. 사실상 동남아시아판 한일관계인 셈이다.[35] 다만 싸운 끝에 얻은 것이 피로스의 승리인 게 아니라 애초에 최종 목적이 달성되면 숙청당할 처지였다. '무력에 의한 분쟁 근절'을 표면적인 목적으로 내걸었지만 본래의 목적은 솔레스탈 비잉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가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36] 바르칸과의 전투로 인해 헤르메스 길드는 최상위권 유저들의 감춰둔 스킬들이 전부 방송으로 보여지게 되었고, 또한 엄청 고생해서 잡았지만 이미 위드에게 전리품이 털려서 전혀 쓸모없는 잡템만 주게 되었다.[37] 덤으로 오즈마의 남은 기운을 흡수하려다 반야의 방해, 여기에 미카엘라가 개입해 오즈마의 기운을 모두 흡수하는 바람에 사상 최초로 사도의 기운 수집 작전이 실패했다.[38] 순혈자 두명의 피를 가진 반야랑 잠식에서 벗어나 전장을 이탈한 K, 그리고 오닉스 블랙과 콜링 제이드가 죽지 않았다. 다만 반야는 현재 실종 상태.[39] 이 과정에서 같은 Z전사들인 야무차, 천진반, 피콜로(드래곤볼), 차오즈와 베지터의 동료였던 내퍼는 전투 도중 목숨을 잃고 만다.[40] 애시당초 불행과 절망에 빠지지 않으면 기술 자체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이 기술을 사용했다면 설령 이기더라도 피로스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41] 다만 피로스의 승리는 단순히 승리는 했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술적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전략적인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을 때 사용하는 말인데, 타노스는 최종 승리를 차지했고 목적도 달성했으며 타노스 본인도 이에 만족했기 때문에 정말로 피로스의 승리에 해당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지구에 핑거스냅이 있고 나서는 자연이 회복되었다는 말도 있었고.[42]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는 과거로 돌아가 여생을 보낸 후 노인이 되어 현대로 되돌아와 은퇴하고 만다.[43] 안다롱은 순이, 소희, 윤미가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걸 예상하고 있었었다.[44] 결국, 공주까지 제물로 바쳐질 위기에 처해 스쿼드의 리더는 완전히 멘붕에 빠졌으며, 현재 복수귀로 각성한 누군가에게 전원 처단당할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미카의 복수는 사오리의 사연을 듣고 멈췄고 함께 아츠코를 구한 뒤 에덴 조약 편의 만악의 근원을 처단함으로써 무사히 문제를 해결했다.[45] 트리니티 측에서는 티파티의 키리후지 나기사, 미소노 미카, 유리조노 세이아, 시스터후드의 리더인 우타즈미 사쿠라코가 없어 공중분해 전까지 갈 뻔했으며, 게헨나 측에서는 소라사키 히나라는 강력한 지휘관이 부상당해 혼란을 트리니티 못지않게 겪는다.[46] 그래도 선생 암살 건은 실행자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일어난 것이라 선생 본인도 이 일에 대하여 걸고넘어지지 않았다.[47] 총 소모턴 수가 1,000 턴을 안 넘어가더라도 배드엔딩이 되는 소모 턴 수만 넘기고 다른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같은 배드엔딩이 나오지만, 보통은 총 소모턴 수가 1,000턴을 넘어가는 상황이 압도적으로 많다.[48] 섬라국은 보통 태국을 가리키지만 수호후전에 나온 배경은 작품을 쓴 시대의 상황을 감안하면 대만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49] 좀 이상한 게, 한 나라의 정보국장이 와 있는데 호위 병력은커녕 동네 경찰도 없다.[50] 외적으로 보자면 이후 이야기가 스타워즈 클래식 삼부작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피로스의 승리에 적합하지 않다.[51] 사실 이 장면은 굉장히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52] 마르샨이라는 나라가 소수를 제외하면 마녀의 인식이 열악하며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야슈무는 막내 여동생인 루루가 마녀 오타쿠인 탓에 마녀타령을 질리도록 들었는지라 여동생의 이런 모습 탓에 마녀를 싫어하는 것도 한몫했다.[53] 후에 여제로 즉위.[54] 알드노아를 지구에 제공하고 화성 양륙성의 철수하는 것이 평화협정의 조건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55] 버스제국의 황족은 알드노아의 기동권한을 부여하고 빼앗을 수 있다. 그래서 알드노아 드라이브로 움직이는 지구연합군의 전함인 듀칼리온은 아세일럼 공주가 필요했다.[56] 기지의 아레이온의 절반이 파괴되었고 지상 시설은 아예 포기했으며 화성제국군이 침투했으므로 지하 시설에도 심각한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57] 전투 후 카이즈카 유키의 독백에서 양측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언급된다.[58] 여기에 기근까지 와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59] 이렇게 신하들한테 권력을 빼앗겨 꼭두각시 노릇을 한 왕이 작중에서 아에곤 3세가 유일하다.[60] 슈트리건 편대와 싸우지 않으면 죽을 상황이라 살기 위해 싸운 것이란 해석도 있으나 이때 가루다 2 섐록과 공중조기경보통제관 고스트 아이 사이의 대화 맥락을 보면 섐록이 그레이스메리아에 있을 가족을 떠올리고 눈이 돌아서 독단적으로 행동한 것에 가깝다.[61] 한편 이와 별개로 만약에 작전 중단이 이뤄지지 않고 에메리아군이 그대로 진격했다면 에스토바키아군이 대량살상무기로 에메리아의 수도 그레이스메리아를 작살낼 예정이었으므로 에메리아군 전체도 폐허가 된 그레이스메리아가 기다리는 피로스의 승리가 되었을 것이다.[62] 연출만 보면 전형적인 해피 엔딩 같은 오해를 불러오기 딱 좋다.[63]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긴 것과 이긴 덕에 사람들에게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것, 더욱이 불러온 칠무해들은 별 도움도 안 되었으니 정상전쟁의 공은 거의 다 해군 것이다.[64] 다만 버기가 사황이 된 건 크로커다일과 쥬라큘 미호크가 버기즈 딜리버리를 끌어들여 크로스 길드를 창설한 이후였는데, 이들이 버기에게 접근한 계기는 세계정부의 칠무해 폐지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세계정부와 해군 측의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었다.[65] 이들을 쓰러뜨리고 나서 티리온 폴드링이 상처뿐인 승리라고 언급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험장은 리치 왕에 대항할 최정예 용사를 선발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자존심 싸움 때문에 그런 용사들을 상잔시킨 것이 이 전투기 때문이다.[66] 개발진 피셜로는 호드의 승리지만, 호드는 얼라이언스의 병력을 소모시켰을 뿐 그 외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또한 얼라이언스도 목표였던 실바나스 윈드러너나 언더시티 중 어느 것도 확보하지 못했다.[67] 일단 승리자는 실바나스지만, 사울팽의 도발에 넘어가 그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한 '호드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대사를 치는 바람에 대족장 직위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68] 실은 박 일병이 후임병을 상대로 갑질하고 선임병을 상대로 하극상을 일으키는 등 황제 복무 논란으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으나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부모 인맥을 악용해 "제 아버지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라고 아전인수 식으로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이전 부대의 소대원들은 박 일병의 황제 복무 논란에도 방관하고 조만필을 배척한다.[69] 이 두 곳은 나중에 병자호란 이후에 청의 압력으로 돌려받는다.[70] 다만 이 부분은 영화 특유의 코믹성이 과장된 연출을 비극으로 해석한 평에 가깝다. 영화를 보면 성룡이 공업용 알코올을 들이킨 뒤 침을 바닥에 뱉자 불이 생기거나 입에서 커다란 방울을 뿜는 모습 등은 비극성보다는 코믹 액션에 중점을 두고 있다.[71] 원작에서는 전쟁의 원인인 스로르가 영화에서는 아자눌비자르 전투중 아조그에게 죽음을 맞는 것으로 바뀐다.[72] 이 작품은 사실 주인공 세력인 인류제국이 이긴 전쟁은 거의 다 피로스의 승리다.[73] 다만 바우어리 킹이 도와준다는 암시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