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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영화 | ||
입성날짜 | 1958년 8월 15일 | ||
위치 | 6801 Hollywood Blv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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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42424><colcolor=#fff> 버트 랭카스터 Burt Lancaster | |
본명 | 버튼 스티븐 랜캐스터 Burton Stephen Lancaster |
출생 | 1913년 11월 2일 |
미국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 |
사망 | 1994년 10월 20일 (향년 80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센쳐리 시티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5.4cm |
직업 | 배우, 프로듀서 |
데뷔 | 1946년 영화 '살인자들' |
활동 | 1935년 - 1991년 |
정당 | |
배우자 | 준 언스트 (1935 결혼 - 1946 이혼) 노마 앤더슨 (1946 결혼 - 1969 이혼) 수전 마튼 (1990 결혼) |
자녀 | 아들 제임스 스티븐 "지미" 랭카스터(1946년생) 아들 빌 랭카스터(1947년생) 딸 수잔 엘리자베스 랭카스터(1949년생) 딸 조애너 마리 랭카스터(1951년생) 딸 실러 랭카스터(1954년생)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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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 배우, 제작자.2. 위상
독특한 미소와 건장한 체격을 지녀 "Mr. Muscles and Teeth"라고 불렸으며,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최초로 입성한 7명에 속한다. AFI 선정 가장 위대한 남성 배우 19위[1]에 올랐다. 1950-60년대 최고의 스타중 한 명이었고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던 배우였다. 초반에는 액션물이나 서부극의 거친 이미지가 강했지만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에 도전하며 말년까지 연기를 이어나간 명배우.3. 생애
뉴욕시 우체국 직원의 5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나 길거리를 쏘다니며 노는 거친 아이로 자랐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한 탓에 17세에 서커스단에 들어가 6년 동안 곡예사로 활동했으며, 이때의 경험으로 위험한 연기를 직접 할 수 있게 되었다. 곡예사로서 자부심이 대단했고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 곡예사로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서커스단을 나오게 되었다. 큰 실의에 빠졌던 랭카스터는 제2차 세계 대전 미군 부대에 소개되어 미군 위문 협회 소속[2]으로 공연을 하러 다녔다. 이후 각종 직업을 전전하다 배우가 되었다.1946년 마크 헬린저(Mark Hellinger)가 제작한 영화 <살인자들>에 출연하면서 역시 비슷한 처지의 신인이었던 에바 가드너와 함께 동시에 업계에서 주목 받는 신예가 되었다.
1949년 영화 <크리스 크로스> |
경력 초반에는 <살인자들>의 영향으로 느와르에 자주 출연해 고양잇과 맹수 이미지의 선이 굵은 남성적 하드보일드 파로 유명해졌으며 스턴트를 포함하여 몸을 쓰는 배역을 주로 맡았다. 애칭이 "Mr. Muscles and Teeth"일정도로 잘생긴 외모에 근육질 몸매, 큰 키에 서글서글한 성격은 끊임없이 흥행 대박이 확실시되는 상업영화 시나리오들을 랜캐스터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에서 공동 주연이었던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연기력을 보고 자극 받아 이후 스스로 출연료를 깎으면서까지 유럽 작가주의 예술영화에 스스로 뛰어들었을 정도로 뼛속까지 예술인이기도 했다. 당대 할리우드의 주류 배우들 가운데서는 이례적으로 유럽 활동 비율이 높았다. 특히 루키노 비스콘티의 예술영화에 자주 출연했는데, 비스콘티의 장례식 때 관을 든 사람 중 한 명이다.
50년대-60년대에 할리우드 A급 톱스타로 평가 받는 남배우의 유럽 예술영화, 상업영화로의 진출은 상당히 이례적이었으므로 당대에 랭카스터에 대한 평가가 살짝 박했었다.[3][4] 랭카스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뚝심으로 밀어붙인 상남자이기도 했다.
덕분에 연기파 배우로서도 인정받게 되었으며 할리우드 황금시대의 배우들 가운데서도 작품 선구안이 탁월하여 전성기 시절부터 경력 최후반까지 양적, 질적으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국내 기성세대들에게 잘 알려진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5], <OK 목장의 결투>(1957) 외에도, <성공의 달콤한 향기>(1957), <애수의 여로>(1958), <뉘른베르크의 재판>(1961), <버드맨 오브 알카트라즈>(1962), <에어포트>(1970) 등 평단의 찬사를 받은 굵직한 작품들에서 주연으로 활약하였고, 1961년 <앨머 갠트리>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성실파 배우로 노년에 들어서도 <아틀란틱 시티>(1980)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꾸준히 활동하였다. 1989년 <꿈의 구장>이 마지막 극장용 영화다.
<대전장>(1978) 촬영 막바지 제작비가 부족하자 자신의 출연비 중 150,000 달러를 되돌려줘 영화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도운 일화도 유명하다.
1948년 에이전트인 해럴드 헥트와 제작사를 창설하면서 당시 아내의 이름을 따 노마 프러덕션즈(Norma Productions)라고 지었다. 제작사의 첫 영화는 <Kiss the Blood Off My Hands>(1948)다. 프로모션 때 직접 공중그네 등 곡예를 선보이며 공을 들인 결과 첫 작품부터 독립제작사치곤 좋은 성적을 거뒀다. 랜캐스터는 제작사의 차기작 <화염과 화살>(1950)에서도 곡예 시범 홍보를 시도했다. 제작사는 도중에 이름을 바꿔 헥트-랭카스터 프러덕션즈(Hecht-Lancaster Productions)가 되었다가 1950년대 중반 제임스 힐이 끼면서 다시 헥트-힐-랭카스터(Hecht-Hill-Lancaster)가 되었다. <마티>(1955) 등 랭카스터가 출연하지 않는 영화들도 제작했다.
4. 주요 출연 작품
<rowcolor=#ffffff> 연도 | 작품 | 배역 | 비고 |
1946 | 살인자들 (The Killers) | 올 "스위드" 앤더슨 | 에바 가드너 출연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작 |
1947 | 잔인한 힘 (Brute Force) | 조 칼런스 | 흄 크로우넌, 찰스 빅포드, 이반 디 칼로 출연 |
Desert Fury | 탐 핸슨 | 메리 애스터 출연 | |
1948 | 살인 전화 (Sorry, Wrong Number) | 헨리 스티븐슨 | 바버라 스탠윅 출연 |
Kiss the Blood Off My Hands | 윌리엄 얼 "빌" 손더스 | 제작 조운 폰테인 출연 | |
All My Sons | 크리스 켈러 | 아서 밀러 원작 에드워드 G. 로빈슨 출연 | |
I Walk Alone | 프랭키 매디슨 | 커크 더글러스 출연 | |
1949 | 크리스 크로스 (Criss Cross) | 스티브 탐슨 | 라버트 시오드맥 연출 이반 디 칼로 출연 |
1950 | 화염과 화살 (The Flame And The Arrow) | 다도 바톨리 | 제작 프리드리히 1세 시절 롬바르디아의 저항 소재 |
미스터 880 (Mister 880) | 스티브 뷰캐넌 | 에드먼드 그웬 출연 | |
1951 | 혈투의 계곡 (Vengeance Valley) | 오언 데이브라이트 | 라버트 워커 출연 |
Jim Thorpe - All-American | 짐 소프 | 찰스 빅포드 출연 | |
1952 | 진홍의 도적 (Crimson Pirate) | 벨로 선장 | 제작 |
사랑하는 시바여 돌아오라 (Come Back, Little Sheba) | 닥 덜레이니 | 셜리 부스, 테리 무어 출연 | |
1953 | 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 | 밀튼 워든 일등상사 |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
South Sea Woman | 제임스 오헌 원사 | 남태평양물 | |
1954 | 베라 크루스 (Vera Cruz) | 조 애런 | 제작 |
아파치 (Apache) | 마사이 | 제작 진 피터스 출연 | |
백인 추장 (His Majesty O'Keefe) | 데이비드 오키프 선장 | 제작 남태평양물 | |
1955 | The Kentuckian[6] | 일라이어스 "빅 일라이" 웨이크필드 | 연출/제작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 |
추억의 장미 (The Rose Tattoo) | 알바로 만쟈카발로 | 테너시 윌리엄스 원작 안나 마냐니, 마리사 파반 출연 | |
1956 | 트래피즈 (Trapeze) | 마이크 리블 | 제작 지나 롤로브리지다, 토니 커티스 출연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 수상 |
레인메이커 (The Rainmaker) | 빌 스타벅 |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 | |
1957 | OK 목장의 결투 (Gunfight At The O.K. Corral) |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 | |
성공의 달콤한 향기 (Sweet Smell of Success) | J. J. 헌세커[7] | 토니 커티스와 공동 제작 및 출연 미국 의회도서관 영구 보존 영화 어니스트 리먼 원작, 대본 | |
1958 | 전우여 다시 한 번 (Run Silent Run Deep) | 짐 블레드소우 중위 | 제작 클라크 게이블 출연 |
애수의 여로 (Separate Tables) | 잔 맬컴 | 제작 데버러 카, 리타 헤이워스, 데이비드 니븐, 웬디 힐러 출연 | |
1959 | The Devil's Disciple | 앤서니 앤더슨 목사 | 제작 커크 더글러스, 로런스 올리비에 출연 |
1960 | The Unforgiven | 벤 재커리 | 제작 존 휴스턴 연출 오드리 헵번 출연 |
엘머 갠트리 (Elmer Gantry) | 엘머 갠트리 | 제작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 |
1961 | 뉘른베르크의 재판 (Judgment at Nuremberg) | 에른스트 야닝 박사 | |
The Young Savages | 지방검사보 행크 벨 | 제작 | |
1962 | 버드맨 오브 알카트라즈 (Birdman Of Alcatraz) | 라버트 스트라우드 | BAFTA 남우주연상 베니스 국제 영화제 볼피컵 남우주연상 |
1963 | 레오파드 (Il Gattopardo) | 돈 파브리치오 살리나 왕자 | 제작 알랭 들롱 출연 |
기다리는 아이 (A Child Is Waiting) | 의사 매슈 클라크 | 주디 갈런드 출연 | |
The List of Adrian Messenger | 동물 보호 운동가 | 카메오 출연 조지 C. 스콧 출연 | |
1964 | 5월의 7일간 (Seven Days In May) | 제임스 머툰 스캇 장군 | 커크 더글러스, 프레드릭 마치, 에바 가드너 출연 |
1965 | 대열차 작전 (The Train) | 폴 라비쉬 | 잔느 모로 출연 존 프랭컨하이머 연출 |
위스키 전쟁 (The Hallelujah Trail) | 새디어스 기어하트 대령 | 리 레믹 출연 | |
1966 | 4인의 프로페셔널 (The Professionals) | 빌 돌워스 | 리 마빈 출연 |
1968 | 추적자 (The Scalphunters) | 조 배스 | 제작 시드니 폴락 연출 셸리 윈터스, 텔리 사바라스 출연 |
애증의 세월 (The Swimmer) | 네드 메럴 | ||
1969 | 고성을 사수하라 (Castle Keep) | 에이브러햄 팰커너 소령 | 피터 포크 출연 |
집시 나방 (The Gypsy Moths) | 마이크 레티그 | 데버러 카 출연 | |
1970 | 에어포트 (Airport) | 멜 베이커스펠드 | |
1972 | 울자나의 습격 (Ulzana's Raid) | 미군 기병 정찰병 맥킨타쉬 | |
1973 | 스콜피오 (Scorpio) | 크로스 | 알랭 들롱 출연 |
달라스의 음모 (Executive Action) | 제임스 패링턴 | ||
1974 | 심야의 휘파람 (The Midnight Man) | 짐 슬레이드 | 공동 연출/공동 대본/제작 |
가족의 초상 (Gruppo di famiglia in un interno) | 교수 | 다비드 디 도나텔로상 루키노 비스콘티 연출 | |
Moses the Lawgiver | 모세 | TV 미니시리즈 | |
1976 | 1900년 (Novecento) | 대(大) 알프레도 벨링기에리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연출 로버트 드 니로 출연 |
버팔로 빌과 인디언 (Buffalo Bill and the Indians, or Sitting Bull's History Lesson) | 네드 버틀라인 | 로버트 올트먼 연출 폴 뉴먼, 제럴딘 채플린, 하비 카이텔 출연 | |
카산드라 크로싱 (The Cassandra Crossing) | 스티븐 매켄지 대령 | ||
엔테베 특공작전 (Victory at Entebbe) | 시몬 페레스 | TV 영화 | |
1977 | 위기의 백악관 (Twilight's Last Gleaming) | 로런스 델 장군 | 리처드 위드마크 출연 |
닥터 모로의 DNA (The Island of Dr. Moreau) | 폴 모로 박사 | 마이클 요크 출연 | |
1978 | 대전장 (Go Tell the Spartans) | 에이서 바커 소령 | |
1979 | 줄루의 여명 (Zulu Dawn) | 앤서니 던퍼드 대령 | 피터 오툴 출연 |
1980 | Atlantic City, USA | 루 패스클 | 루이 말 연출 수전 서랜던 출연 BAFTA 남우주연상 |
1981 | Cattle Annie and Little Britches | 빌 둘런 | 다이앤 레인 출연 |
찢어진 깃발 (La Pelle) | 마크 클라크 장군[8] |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출연 | |
1983 | 시골 영웅 (Local Hero) | 필릭스 해퍼 | |
음모의 주말 (The Osterman Weekend) | CIA 국장 맥스웰 댄포스 | 륏허르 하우어르 출연 | |
1986 | 검은 독수리 (On Wings Of Eagles) | 아서 D. "불" 사이먼즈 대령[9] | TV 미니시리즈 |
Väter und Söhne | 칼 율리우스 도이츠 | 이탈리아/독일 TV 미니시리즈 줄리 크리스티 출연 | |
Barnum |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 | TV 영화 하나 쉬굴라 출연 | |
해리와 아치 (Tough Guys) | 해리 도일 | 커크 더글러스 출연 | |
1988 | Rocket Gibraltar | 리바이 락웰 | 매컬리 컬킨, 빌 풀먼, 케빈 스페이시 출연 |
1989 | 꿈의 구장 (Field of Dreams) | 아치볼드 "문라이트" 그레이엄 | |
1990 |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 제라르 까리에르 | TV 미니시리즈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 |
아킬레호의 테러 (Voyage Of Terror : The Achille Lauro Affair) | 리안 클링하퍼 | TV 미니시리즈 에바 마리 세인트 출연 | |
1991 | Separate but Equal | 잔 W. 데이비스 | TV 미니시리즈 시드니 푸아티에이 출연 |
5. 사생활
- 양성애자이다.
- 둘째 아들 빌 랭카스터는 시나리오 작가였다.
대표작으로 명작 스포츠 영화로 꼽히는 <꼴찌 야구단(The Bad News Bears)>(1976)이 있다. 해당 영화에는 월터 매사우, 테이텀 오닐 등이 출연했으며 1977년과 1978년에 두 편의 속편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속편 <더 배드 뉴스 베어스 고 투 재팬(The Bad News Bears Go to Japan)>(1978)은 토니 커티스가 주연이었다. 1979-80년엔 잭 워든이 주연을 맡은 CBS TV 드라마판이 2시즌 진행되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2005년에 빌리 밥 손튼, 그렉 키니어를 기용해 동명의 개작을 만든 적도 있다.
또 다른 유명 작품으로 SF 명작 <더 씽>(1982)이 있다.
잠시 간헐적으로 배우 활동을 한 적도 있다.
6. 여담
-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자다.
- 냉전시대에 미국 영화계에 불어닥친 매카시즘 열풍에 적극적으로 반항하던 배우 중 하나였고, 폴 뉴먼과 함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정적 명단[11]에 올랐던 배우 중 한 명이다.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대부>의 비토 콜레오네 역을 놓고 말런 브랜도와 경합한 적이 있다. 근데 두 배역 모두 본인이 원했던 것이 아니라 제작사 측에서 1순위로 고려한 것.
- 힘이 무척 셌다고 한다. <4인의 프로페셔널>(1966) 촬영 중 190cm 넘는 거구 잭 팰런스를 뒤지게 패버린 일화가 나름 유명하다. 팰런스도 힘이 무척 세서 촬영장 무거운 장비 옮기는 일이나 힘쓰는 상황에서 스태프들이 도저히 감당 못할 때 항상 단골로 불려가던 배우였다. 물론 랭카스터도 스태프들 궂은일 자주 도와주던 인격자였다.
[1] #[2] 영어 위키백과에선 참전자로 분류한다.#[3] 요즘이야 할리우드 영화인들의 유럽 예술영화 출연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봉준호 같은 감독들과의 협업 등등이 전혀 낯선 일도 아니지만 당장 구로사와 아키라만 봐도 50년대부터 할리우드의 열렬한 찬사 속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켜왔고, 70-80년대 카케무샤 촬영 당시 부족한 제작비를 조지 루카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게 지원받아 영화를 완성했을 정도의 교류가 있었음에도 구로사와 영화에 출연한 할리우드 배우는 구로사와 사망 7년 전 리처드 기어 주연의 <8월의 광시곡> 정도를 제하면 전무하다.[4]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작중 시간적 배경이 1969년으로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붐이 한창일 때로 고전 할리우드에서 물갈이 되던 시기임에도 주인공은 유럽 상업영화인 스파게티 웨스턴 출연을 제의하는 에이전트의 제안에 심한 굴욕감을 느낀다.[5] 데버러 카와의 해변 정사씬으로 유명하다.[6] 1820년대 배경. 오언즈버로(Owensboro)에서 텍사스로 향한다.[7] 월터 윈철 바탕. AFI에서 뽑은 최고의 악한 50 중 35위.[8] 1943년 9월 나폴리에서 4일 동안 벌어진 나치에 대한 시가 대항(Four Days of Naples; Quattro giornate di Napoli)을 통해 붙잡은 독일군을 이동 시키려 하는 미국 육군 소속.[9] 이란 혁명 때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과 관련해 억류됐던 회사 경영진을 구출하기 위해 로스 퍼로우가 고용.[10] 둘은 영화를 찍을때 가끔 의견충돌이 있었는데 주변에선 그런 그들을 마치 오래산 부부관계 같다고 했다.[11] 폴 뉴먼은 배우 중 명단에서 순위가 가장 높았다.[12] 비슷한 예로 제갈량과 헌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