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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2-06 19:39:36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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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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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4B477> 사건번호 청구인 (청구 소추위원) 피청구인 결과
<colbgcolor=#ddd,#010101> 2004헌나1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김기춘) 대통령 노무현 기각
2016헌나1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권성동) 대통령 박근혜 인용
2021헌나1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윤호중) 법관 임성근 각하
2023헌나1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김도읍) 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 기각
2023헌나2 검사 안동완
2023헌나3 검사 손준성
2023헌나4 검사 이정섭
2024헌나1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정청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진숙
2024헌나2 감사원장 최재해
2024헌나3 검사 이창수
2024헌나4 검사 조상원
2024헌나5 검사 최재훈
2024헌나6 법무부장관 박성재
2024헌나7 경찰청장 조지호 인용
2024헌나8 대통령 윤석열
2024헌나9 국무총리 한덕수 기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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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박근혜 탄핵심판
2016헌나1
파일:external/cdnweb01.wikitree.co.kr/img_20170228155336_cecd77aa.jpg
청구일 2016년 12월 9일
선고일 2017년 3월 10일
청구인 국회
청구 소추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권성동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
재판장 박한철이정미(권한대행)
주심재판관 강일원
재판관 의견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인용
결과
인용 (파면)
1. 개요2. 특징3. 대리인단
3.1. 청구인 측3.2. 피청구인 측
4. 피청구인 측 탄핵심판 답변서 제출5. 심리6. 결정 전 예상7. 진행8. 선고9. 결과
9.1. 탄핵 인용 및 파면 사유
10. 반응
10.1. 대한민국10.2. 외국
10.2.1. 탄핵 직후 반응10.2.2. 외국에서 일어난 영향
11. 결정 이후12. 문제된 소송법상 제문제
12.1. 탄핵심판의 지연문제12.2. 준용규정에 관한 해석문제12.3. 헌법재판소법 제32조의 문제12.4. 재판관 임기의 문제
13. 만약 탄핵이 기각되었다면?14. 둘러보기


1. 개요

2016년 12월 9일 16시 10분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됨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 절차가 개시되었으며, 결정은 2017년 3월 10일 11시에 이루어졌다. 참고로 헌정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 심판[1]이자 대통령 최초 탄핵 사건이다.

2. 특징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가 19시 3분 청와대로 송달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었다. 탄핵 심판이 끝날 때까지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의결서가 전달되기 10여 분 전 박근혜 대통령은 최재경 민정수석비서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그 자리에 조대환 신임 수석을 임명하였다.

한편 대통령 자격으로 청와대에 거주할 권리나 월급을 받을 권리 등은 직무가 정지되어도 인정되는 만큼 불소추 특권 역시 이에 준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 대다수의 의견이다. 단 법정에 세울 수는 없어도 강제 수사는 가능하냐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 양측의 대립이 팽팽한 편이다.

탄핵 심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혐의 중 제3자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 어느 쪽이 나오든 혐의가 악질인 것은 맞는데, 문제는 이것이 뇌물수수인지 금품갈취인지 아직 애매하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받은 뒷돈의 실체가 삼성이 자발적으로 바친 것이면 뇌물수수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압력[2]을 조금이라도 가한 정황이 포착되는 순간 금품갈취가 된다. 어느 쪽이든 박근혜 대통령이 주범인 것은 같은데 삼성의 입장이 달라진다. 뇌물수수일 경우 공범이고 금품갈취인 경우 피해자가 된다.

참고로 이 탄핵 심판에 쓰인 문건 총합은 3,954개의 서증, 6만 5000여 쪽의 사건 기록 등 총합 A4용지 40박스 분량에 달했다. A4용지 1포에 250장씩 들어있고 한 박스에 10포씩[3] 들어있다. 그 박스가 40박스나 되니 대략 10만여 장의 문건이 사용된 것이다. 변론 기간은 모두 92일이며, 변론 누적 시간 총합은 84시간 50분에 달했다.

3. 대리인단

의외로 네임드들이 적은데[4] 그 이유 중 일부는 ①전직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수임 제안을 고사하였고 ②대형로펌 변호사들도 중립성에 의문이 있을 수 있어서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에서는 문재인[5], 이용훈[6], 박시환[7], 김기춘[8]까지 네임드가 즐비했다.[9]

3.1. 청구인 측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6120927600001300_P2.jpg
헌법재판소에 소추의결서 정본을 제출하는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오신환, 김관영, 이춘석 의원
2016년 12월 15일 기준 청구인 측 대리인단의 주요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이후에도 추가로 선임된 대리인들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누가 선임되었는지는 언론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결정문에 기록된 명단도 위와 같다. 법무법인 소속으로 등록되었느냐, 개인 명의로 등록되었느냐의 차이밖에 없다. 결정문 전문 참고.

3.2. 피청구인 측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6120923220001300_P2.jpg
탄핵안 가결 직후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 나타난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국무총리
2017년 2월 21일 기준으로 피청구인(박근혜)의 대리인단의 주요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
결정문에 기록된 명단은 다음과 같다. 결정문 전문 참고.

4. 피청구인 측 탄핵심판 답변서 제출

2016년 12월 16일 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탄핵 청구가 기각 또는 각하되어야 한다며 답변서를 제출했다. 요지는 탄핵소추 절차에 심각한 법적 흠결이 있고, 소추 사유는 사실이 아니며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측 탄핵심판 답변서 전문 [보기/접기]
> I. 서론
국회는 대통령인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 소추를 의결하였고,같은 날 소추위원이 귀 재판소에 소추의결서의 정본을 제출하여 탄핵심판을 청구하였습니다.
o그러나 탄핵소추의결서의 '탄핵 소추 사유'는 아래와 같이 전혀 사실이 아니고, 그것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으며,그 절차에 있어서도 심각한 법적 흠결이 있으므로 본건 탄핵 심판 청구는 각하 또는 기각되어야 마땅합니다.
o피청구인의 대리인은 아래와 같이 심판 청구가 이유 없고,절차상 위법이 있다는 점을 답변하고자 합니다.

II. 탄핵소추안 요지
탄핵소추의결서에 기재된 탄핵 소추 사유는 피청구인이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집행하면서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배하였다는 것인바,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헌법 위배행위
가. 국민주권주의, 대의민주주의, 국무회의에 관한 규정, 대통령의 헌법수호 및 준수 의무 위배
(1)피청구인이 공무상비밀인 각종 정책 및 인사 문건을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에게 전달하여 누설하고,최순실과 동인의 친척 및 지인들(이하 '최순실 등'이라 합니다)이 국가 정책 및 공직 인사에 관여하도록 하면서 최순실 등의 사익을 위해 기업에서 수백억 원을 갹출하도록 강요하는 등으로 주권자의 위임 의사에 반하여 국가 권력을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시켜 국민주권주의,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고
(2)국정을 운영하면서 비선 조직에 따른 인치주의를 행해 법치주의,국무회의 규정,헌법 수호 및 준수 의무를 위반하였다.
나. 직업공무원 제도,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 평등 원칙 위배
(1) 청와대 간부,문화체육관광부의 장차관 등을 최순실이 추천하거나 최순실 등을 비호하는 사람으로 임명하여 공무원을 최순실 등의 사익에 대한 봉사자로 전락시키고,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노태강 국장,진재수 과장 등을 좌천 또는 명예퇴직시키는 등으로 공무원 신분을 자의적으로 박탈하여 직업공무원 제도의 본질을 침해하고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하였으며
(2)최순실 등이 각종 이권과 특혜를 받도록 방조하거나 조장함으로써 평등 원칙을 위배하고 정부 재정 낭비를 초래하였다.
다. 재산권 보장, 직업 선택의 자유, 기본적 인권 보장의무, 시장 경제 질서, 대통령의 헌법 수호 및 준수 의무 위배
o최순실 등을 위해 사기업에 금품 출연을 강요하여 뇌물을 수수하거나 특혜를 주도록 강요하고,사기업 임원 인사에 간섭함으로써 재산권,직업선택의 자유,시장 경제 질서 규정을 침해하였다
라. 언론의 자유 및 직업선택의 자유 위배
o'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 비선 실세의 전횡에 대한 보도 통제 및 언론사 사장해임지시흑은묵인함으로써 언론의 자유 및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였다.
마. 생명권 보장 조항 위배
o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배하였다.
2. 법률 위배행위
가. 재단법인 미르, 재단법인 케이스포츠 설립모금 관련 범죄
(1)기업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의결권 행사,특별사면, 면세점 사업자선정,검찰 수사 등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었던 기업에서 최순실 등이 설립 또는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재단법인 미르,재단법인 케이스포츠(이하 '미르재단 등'이라 합니다)에 수백억의 출연을 하게 한 것은 뇌물수수 또는 제3자뇌물수수에 해당한다.
(2)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이용하여 재단법인에 출연금 납부를 요구하고,응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기업 대표 등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다.
나. 롯데그룹 추가 출연금 관련 범죄
(1)롯데그룹의 재단법인 케이스포츠(이하 '케이스포츠'라 합니다)에 대한 추가 출연(70억 원)은 면세점 사업자 선정,경영권 분쟁 및 비자금 수사등 직무와 관 련하여 이루어진 뇌물수수 또는 제3자뇌물수수이다.
(2)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이용하여 재단법인에 출연금 납부를 요구하고,응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기업 대표 등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다.
다. 최순실 등에 대한 특혜 제공 관련 범죄
(1) KD코퍼레이션 관련
(가)(뇌물)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현대?기아자동차로 하여금 최순실 등이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과 납품 계약을 체결하도록 요구하여 현대-기아자동차가 KD코퍼레이션으로부터 10억 원의 제품을 납품받은 것은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제3자뇌물수수이다.
(나)(직권남용,강요)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납품 계약을 체결하도록 요구하고,응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현대자동차 회장 등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다.
(2)플레이그라운드 관련
o(직권남용,강요)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으로 하여금 최순실 등이 설립한 광고회사인 주식회사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이하 '플레이그라운드'라 합니다)과 70억 원 상당의 광고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3)포스코 관련
o(직권남용,강요)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포스코 그룹 회장 등으로 하여금 펜싱팀을 창단하고 최순실 등이 스포츠매니지먼트 등을 목적으로 설립한 주식회사 더블루케이(이하 '더불루케이'라 합니다)가 매니지먼트를 하기로 하는 합의를 하도록 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4)KT 관련
O(직권남용,강요)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KT 회장 등으로 하여금 플레이 그라운드를 광고대행사로 선정하고 광고제작비를 지급하게 하는 등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5)그랜드코리아레저(GKL) 관련
O(직권남용,강요)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GKL 대표로 하여금 더블루케이와 '장애인 펜싱 실업팀 선수 위촉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
라. 문서 유출 및 공무상비밀누설 관련 범죄
O (공무상비밀누설) 국토부장관 명의의 '복합 생활 체육 시설 추가 대상지(안) 검토'를 포함한 47건의 문건을 정호성으로 하여금 최순실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하여 공무상비밀을 누설하였다.
3. 중대성의 문제
가. 위와 같은 헌법 및 법률 위배행위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고 헌법의 기본 원칙을 적극적으로 위반한 것이어서 대통령의 파면이 필요할 정도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법위반에 해당한다.
나. 사기업 금품 강제 지급 등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과 지위의 남용,부정부패 행위로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정도에 이른 것이다.
4. 결론
가. 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과 비리,공권력 이용을 배경으로 한 사익 추구는 광범위하고 심각하며 대통령 본인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다.
나. 피청구인은 검찰 수사에 불응하고 국가기관인 검찰의 준사법적 판단을 '객관적인 증거는 무시한 채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으로 폄하함으로써 국법 질서와 국민에 대한 신뢰를 깨버린 것이다.
다. 2016. 11. 피청구인에 대한 지지율은 3주 연속 4~5%로 유례 없이 낮고,2016. 11. 12. 및 같은 달 26. 서울 광화문에서 100만이 넘는 국민들이 촛불집회와 시위를 하여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 직책을 수행하지 말라는 국민들의 의사가 분명해졌다.
라. 그런 사유로 탄핵 소추를 하게 된 것이다.

III. 탄핵 소추 절차의 문제점
1. 본건 탄핵 소추는 아무런 객관적 증거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부적법해서 각하되어야 합니다.
가. 본건 탄핵 심판 절차는 헌법상 5년 임기가 보장되는 국가원수 겸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자격에 관계된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의혹의 수준을 넘어서 객관적 증거로 입증된 사실에 기반해서 엄격한 법률적 평가를 거친 뒤 이유 유무를 따져야 할 것입니다. 국회법 제130조 제3항은 탄핵소추의 발의에는 탄핵의 증거 기타 조사상 참고가 될 만한 자료를 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 그러나 탄핵소추의결서에 첨부된 '증거 기타 조사상 참고자료'를 보면 ①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검사의 의견을 적은 것에 불과 ② 질풍노도의 시기에 무분별하게 남발된 언론의 폭로성 의혹 제기 기사 뿐이고 명확하게 소추 사유를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소추위원이 제출한 공소장 중 최소한 피청구인에 관련된 부분은 아래와 같이 전혀 사실이 아니고,제3자의 일방적 주장이나 추측에 근거해서 이루어진 언론 보도 역시 소추 사유에 관련된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니고,아무런 객관적 증거 없이 이루어진 본건 심판 청구는 부적법하여 심리할 것도 없이 각하되어야 할 것입니다.
2. 대통령에게도 절차상의 권리로서 방어권(항변권)이 보장되어야 함
가. 탄핵 소추 사유와 동일한 내용에 대하여 현재 여야 합의에 따라 국회에서 국정조사가 진행되고 있고,야당 추천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도 진행 중입니다.
나. 따라서 국회의 국정조사와 특검의 수사를 통해 사실 여부를 명백하게 밝힌 뒤 혹은 최소한 국회법상 탄핵소추안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법사위 조사' 절차(국회법 제130조 제1항)라도 거친 뒤 표결이 이루어졌어야 함에도 이런 절차 없이 이루어진 탄핵 소추는 헌법과 국회법이 정한 절차적 정당성을 현저히 훼손했다고 판단됩니다.
다. 또한 국회의 소추 절차에서 피청구인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아무런 기회도 제공되지 않아 헌법상 보장되는 무죄 추정 원칙(제27조 제4항)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검찰 조사 불응, 검찰 판단 비판이 국법 질서와 국민 신뢰를 깨버렸다는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가. 피청구인이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은 데는 수사 과정의 변호인이 밝힌 바와 같이 상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이를 방어권 남용이나 포기로 볼 수 없고 참고인으로서 당연히 보장되는 권리의 행사에 불과한 것이어서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나. 또한,대형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 수사의 편향성을 문제 삼고 '정치적 탄압' 운운하면서 출석에 불응하거나,심지어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도 당사 內에서 농성하며 검찰을 규탄한 사례가 있었어도,그것이 탄핵당할 만한 잘못이라는 비판은 듣지 못했습니다.
다. 판결 확정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고,내란이나 외환죄가 아닌 한 불소추 특권이 보장되어 헌법 해석상 검사의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인정되는 대통령이 임의적인 검찰 조사에 며칠간의 연기를 요청하였고,잘못된 수사 결론에 침묵 또는 동의하지 않았다고 해서 피청구인이 국법질서와 국민신뢰를 깨뜨렸다는 이유로 이루어진 본건 탄핵 소추는 도저히 정당성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4. 낮은 지지율, 100만 촛불 집회로 국민의 탄핵 의사가 분명해졌다는 사유로 이루어진 본건 탄핵 소추는 그 자체가 헌법 위반입니다.
가.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는 규정(제70조)을 두고 있고,그 외에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낮고,1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촛불 집회에 참여하면 임기를 무시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두지않고 있습니다.
나. 따라서,국민의 탄핵의사가 분명해졌다는 것을 사유로 한 탄핵소추는 헌법상 대통령의 임기 보장 규정(제70조) 취지를 완전히 무시하는 위헌적 처사입니다.
다. 헌법상 국민투표로도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지 못하는 바(제72조,헌법재판소 2004.05.14. 선고 2004헌나1 결정),일시적 여론조사 결과 등이 전체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거나,그것을 근거로 대통령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것은 우리 헌법에 규정한 권력구조의 본질을 훼손하는 반헌법적인 발상이라 할 것입니다.

IV. 탄핵 소추 사유에 대한 답변
1. 전반적인 문제점
가. 탄핵소주안에 기재된 대통령의 헌법.법률 위배 행위는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1) 탄핵소추안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는 검증되지 않은 의혹 또는 현재수사 재판 중인 사안으로,대통령의 헌법 및 법률 위배행위가 입증된 바는 전혀 없음에도 기정사실인 것처럼 단정하고 있는 바 이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제27조제4항)을 정면으로 위반된 것입니다.
(2) 다음과 같이 사실 인정이 달라질 경우 탄핵 소추 사유는 법적 근거를 상실하게 됩니다.
*피청구인이 최순실 등의 전횡이나 사익 추구를 인식하지 못한 경우
재단 출연, 계약 체결, 인사 등과 관련하여 기업들의 자발성이 인정되거나 피청구인이 자발적이라고 인식한 경우 또는 대가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 재단 출연, 계약 체결, 인사 등과 관련하여 참모진 등이 피청구인의 발언 취지를 오해하여 과도한 직무 집행이 이루어진 경우
* 피청구인이 일부 연설문과 관련하여 최순실에게 의견을 구한 사실만 인정되고, 문건을 포괄적 지속적으로 유출한 사실이 없는 경우
* 세월호 사건 당일 피청구인의 작위 또는 부작위와 사고 발생 또는 피해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3)탄핵소추안에 언급된 일부 헌법 위배 부분(국민주권주의, 대의민주주의, 헌법수호 및 헌법준수의무)은 탄핵 사유로 삼기 부적절합니다.
(가)탄핵 사유로 제시된 헌법 위배는 법률 위배 사실을 기초로 하는 바,모든 법률 위배가 헌법 위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더욱이,탄핵심판청구서의 헌법 위배 부분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헌법조항들이 단순 나열되어 탄핵사유로 부적합합니다.
(다)피청구인이 최순실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최순실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피청구인의 헌법상 책임으로 구성한 것은 헌법상 연좌제 금지조항(제13조제3항)의 정신과 자기 책임 원칙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탄핵소추의결서의 논리라면,측근 비리가 발생한 역대 정권 대통령은 모두 탄핵 대상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됨
나. 이건 탄핵과정은 헌법 및 법률의 일반적 절차에 위배된 것입니다.
(1) 헌법재판소는 대법원과 함께 우리 나라 최고재판기관이고,단심입니다. 한편 피청구인에 대한 본건 탄핵소추 사유 중 법률위반 부분은 최순실 등과 피청구인이 공모하여 범행을 한 것이라는 내용이고,피청구인은 위 법률위반 부분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공모관계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최순실 등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기소되어 형사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따라서 최고재판기관의 탄핵재판 내용과 형사1심 재판 내용이 거의 동일한 내용이므로 최고재판기관인 헌법재판소는 형사1심 재판 과정을 잘 살펴보면서 사실심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만약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이 형사재판 1심,2심 및 대법원 재판 결과와 상충된다면 이는 최고재판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권위에 크나큰 손상을 입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헌법재판소법 제51조는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심판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재판부는 심판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헌법재판소법 제32조는 '재판부가 결정으로 다른 국가기관 또는 공공단체의 기관에 필요한 사실을 조회하거나,기록의 송부나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나,재판.소추 또는 범죄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하여는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위 취지를 더욱 구체화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3) 위와 같은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절차 규정을 종합하면 피청구인에 대한 이건 탄핵은 헌법 제84조 대통령에 대한 형사상 특권을 간접적으로 위반한 것이고,헌법에 규정된 최고재판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및 하급법원이 각 상충된 재판 및 심판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탄핵심판 절차 과정에서 법원의 형사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는 법률조항을 위반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2. 헌법 위배 행위 부분
가. 국민주권주의 및 대의민주주의 위반 여부
(1)최순실 등이 국가 정책 및 고위 공직 인사에 광범위하게 관여했거나 좌지우지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입증된 바도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최순실이 사익을 추구했더라도,피청구인은 개인적 이득을 취한 바 없고,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 언론에 제기된 의혹 대부분은 '미르-K재단,최순실 이권 사업' 등에 국한되어 있는 바,이는 피청구인이 대통령으로서 수행한 국정 전체의 극히 일부분(대통령의 국정수행 총량 대비 최순실 등의 관여비율을 계량화한다면 1% 미만이 되고, 그 비율도 소추기관인 국회에서 입증해야할 것입니다)에 불과하고,피청구인은 최순실의 이권 개입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2)피청구인의 의사에 따라 국가 정책이 최종 결정되었고, 피청구인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집행하였을 뿐이므로 국민주권주의 위반이 아닙니다.
(3)피청구인이 국정 수행 과정에서 지인의 의견을 들어 일부 반영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이고(White House Bubble), 역대 대통령도 같은 방식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였으며,피청구인이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민을 대신해 최종 의사 결정권자로서 대통령의 역할을 수행한 이상 헌법 위반이 아닙니다.
(4)특히,국민주권주의(제1조),대의민주주의 조항(제67조 제1항) 등 국가 기본질서에 관한 추상적 규정은 탄핵 사유가 되기 어렵습니다.
나. 국무회의의 심의에 관한 규정 및 헌법 준수 의무 위반 여부
(1)국무회의 관련 조항(제89, 90조)은 국무회의 구성 및 심의 대상에 관한 근거조항으로서 탄핵 사유가 되기에 부적합합니다. 특히,국무회의의 심의사항 중 일부 내용이 최순실에게 유출되었더라도 실제 국무회의의 심의를 모두 거쳤을 뿐만 아니라 최순실이 국무회의 심의에 영향을 미친 바는 없습니다.
(2)또한 법률 위배가 인정된다고 무조건 헌법 위배가 되는 것은 아니나,법률 위배가 없으면 헌법 위배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헌법 준수의무는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대통령)이 헌법 준수 의무를 위반하였기 때문에 헌법을 위반하였다는 주장은 무의미한 순환논리에 불과함
(3)직업공무원 제도 및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 위반 여부
(가)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 탄핵소추의결서에 적시된 인물들은 모두 법률에 정해진 절차를 거쳐 임명된 공무원입니다.
(나)피청구인은 주변의 믿을만한 지인을 포함하여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서 인사에 참고할 수 있고,최종 인사권을 피청구인이 행사한 이상 설사 일부인사 과정에서 특정인의 의견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김종덕 장관의 경우 엄격한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되었고,당시 국회는 '국민을 행복게 만드는 문화융성을 실현할 장관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역량을 갖추었다'고 평가한바 있습니다.
*피청구인이 최순실을 잘못 믿었다는 결과적 책임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일 뿐,법적 탄핵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다)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의 임명과 면직,1급 공무원의 일괄 사표 등에 대하여 본다면 위 직위는 법률에 따라 직업공무원의 신분 보장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피청구인이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한 것이 아닙니다.
유진룡 전 장관은 여러 언론에 스스로 사의를 표명하였다고 밝힌 바 있음
정치적 공무원 과 1급 공무원은 직업공무원 제도의 핵심인 신분 보장이 적용되지 아니함
국가공무원법 제68조 단서 : 1급 공무원과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에 대한 신분 보장 제도가 적용되지 않음 '공직 기강 확립, 조직 쇄신' 차원에서 일반직 중 최고위직인 1급 공무원이 일괄 사의를 표명한 사례는 現 정부에서 뿐만 아니라, 역대 정부에서도 다수 존재
노무현 정부 당시 김두관 행자부장관 취임 직후인 '13·3. 행자부 1급 공무원 11명이 사표를 제출하였는바 같은 논리라면 노무현 前 대통령 역시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한 것임
*이명박 대통령 정부에서도 감사원, 총리실, 국세청, 교과부, 국세청, 농식품부 등의 1급 간부 전원이 사표를 제출한 사례 다수
o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인사에서 인사 평정,업무 수행 능력과 외부 평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하였다면,그 과정에서 부적격자임이 명백하고 뇌물 수수 등의 범죄가 수반되지 않은 한 대통령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피청구인은 2아5. 1.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해당 국·과장은 체육 개혁 책임자로서 체육계 비리 척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문책성 경질이고, 승마협회 감사와 무관함'을 밝혔으며,조응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現 민주당 의원)도 최근 언론에 그런 사실을밝힌 바 있음
(라) 평등원칙 위반 여부
1)공무원들이 최순실 등에게 사업상 특혜를 제공하였다 할지라도 이는 개인비리에 불과하고,피청구인은 그 과정에 관여한 바가 없습니다.
2)최순실의 범죄행위에 대한 피청구인의 공모가 입증되지 않는 이상 그것을 가지고 피청구인이 평등 원칙을 위배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헌법 위반으로 볼 수 없습니다.
(마)재산권 보장,직업 선택의 자유 등 위반 여부
1)피청구인은 기업들에게 직권을 남용하거나 강제적으로 재단 출연을 요구한 바가 전혀 없습니다.
2)출연 기업 관계자들은 검찰 조사나 국회 청문회에서 '재단 설립 취지에 공감하여 돈을 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고 있고,자발적 기금 모집의 경우 국가기관에 의한 재산권 침해행위가 없어 재산권 제한 문제는 발생하지 아니합니다.
3)또한 기업 임원에 대한 인사권은 해당 기업에 있고,전문가를 기업임원으로 추천한 것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별론,피청구인이 직접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바) 언론 및 직업 선택의 자유 위반 여부
1)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개인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생활 비밀을 침해하는 보도 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정정보도 청구,보도자제 요청 등)를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 소위 '정윤희 문건' 사건 당시 청와대에서 작성된 문서가 외부로 유출된 자체가 범죄행위이므로,'문건을 유출한 것이 국기 문란'이라는 피청구인의 발언은 부당하지 않습니다.
*한일 경위의 경우, 검찰은 '압수물에서 문건 유출 범행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어 혐의를 자백하였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으며,이후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선고되었으므로 민정비서관이 한일 경위를 회유하였다는 것은 신빙성이 낮음
3) 언론사 임원에 대한 인사권은 해당 기업에 있고,피청구인이 세계일보 등 언론사에 임원 해임을 요구하거나 지시한 사실은 없습니다.
*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세계일보 사주에게 조한규 사장의 해임을 요구하였다'는 부분은 일방 당사자의 미확인 주장에 불과하고, 조한규 前 사장 역시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들은 사실'이라고 언론에서 밝힌 바 있음
(사) 생명권 보장 위반 여부(소위 '세월호 7시간' 문제)
1) 대통령 등 국가기관의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으로 보기 위해서는 보호 의무의 의식적 포기행위가 있어야 되고,단순히 직무를 완벽히 수행하지 않았다거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헌법에 규정된 생명보호 의무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2) 피청구인은 세월호 사고 당시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해경,안보실 등 유관기관 등을 통해 피해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였고,대규모 인명 피해 정황이 드러나자 신속하게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나가 현장 지휘를 하였는바,피청구인이 생명권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였다는 점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중분히 있습니다.
* 대법원은 형법상 직무유기죄의 해석과 관련하여 직무에 관한 의식적인 방임 내지 포기 등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하지,단순한 직무 수행의 태만은 포함하지 아니한다고 판시(1956. 10. 19. 선고 4289형상244)
3)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구조 책임은 현장에 출동한 해양경찰에 대해서만 인정되었고,상급자인 목포해양경찰서장,해양경찰청장 등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에게 국가의 무한 책임을 인정하려는 국민적 정서에만 기대어 헌법과 법률의 책임을 문제 삼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사고 당시 국가기관의 대응 체계가 미흡하였다고 평가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헌법재판소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대통령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 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 탄핵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2004헌나1). 따라서 설령 위와 같은 중대한 재난사고에 대응한 피청구인의 조치 또는 대응에 일부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위와 같은 사유가 적법한 탄핵 소추 사유가 될수 없습니다.
*탄핵소추안의 논리대로라면,향후 모든 인명 피해 사건에 대하여 대통령이 생명권을 침 하였다는 결론을 초래
3. 법률 위배행위 부분
가. 재단 관련 뇌물수수죄 성립 여부
(1) 미르재단 등은 한류 전파 문화 융성 등 명확한 정책 목표를 갖고 민관이 함께 하는 정상적인 국정 수행의 일환으로 추진된 공익사업입니다.
(2) 피청구인은 기업인들에게 문화 체육 발전에 대한 자발적 지원을 부탁한 것이고,어떠한 대가를 조건으로 기금을 부탁하거나 기업이 대가를 바라고 출연한 것도 아니므로 뇌물수수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3) 또한 피청구인은 사익을 추구할 목적이 없었고,최순실의 범죄를 알면서 공모하였거나 예측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4) 본건 문제된 재단법인과 대통령 또는 최순실은 별개이고,재단 기금의 사유화는 아예 불가능합니다. 즉 미르재단 등은 재단법인이고,법적으로 독립된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서(민법 제34조) 재단 운영의 주체는 이사회입니다.
피청구인이 재단의 이사 후보군을 전경련에 추천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책의 시너 지 효과를 거두기 위한 공익적 목적일 뿐 피청구인이 재단을 지배한 바 없음.
재단은 '지정 기부금 단체'로도 지정되어 있어 지출액의 80% 이상을 고유 목적 사업에 지출하고, 기부금 모금액 활용 실적을 공개해야 하며, 주무부처에 실적을 보고하고 감사를 받는 등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어 재단 기금의 사유화는 불가능
*노무현 정부 당시 삼성 일가가 8,0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하자, 정부가 나서서 이를 관리하겠다고 공언하여 재단 이사진을 親盧 인사들로 채운 사례도 존재
(5)피청구인 또는 최순실이 재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할지라도,재단 출연금을 대통령 또는 최순실이 받은 뇌물로 치환하는 것은 법인에 별개의 법인격을 부여한 민법 법리를 도외시한 것입니다. 즉 재단 운영 구조 및 재단 기금 사용 현황 등을 고려할 때 재단 사유화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재단이 받은 기금을 개인적 차원에서 받은 뇌물과 동일하게 볼 수 없습니다.
* 더욱이,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해도 뇌물을 입증할 수 없어 안종범 前 수석 등에게 뇌물죄를 적용하여 기소하지 않았음에도 국회는 피청구인에 대하여 아무런 추가 근거 또는 증거도 없이 탄핵 소추 사유에 뇌물죄를 포함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할 것입니다.
나. 재단 관련 제3자뇌물수수죄 성립 여부
(1)제3자뇌물수수죄는 통상의 뇌물죄와 달리 금품의 대가로 부정한 청탁이 필요하나 기업의「부정한 청탁』이 입증된 바 없고,삼성'SK 롯데 등과 관련한 정부의 각종 행정행위는 관계기관 간 충분한 논의와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것이어서 미르재단 출연과 무관합니다.
*실제 롯데가 70억 원을 추가 출연하였음에도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피청구인(대통령)이 출연 대가로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한 것이 없다는 반증임
(2)막연히 선처하여 줄 것이라는 기대나 직무 집행과는 무관한 다른 동기에 의하여 제3자에게 금품을 공여한 경우에는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이 있다고 볼 수 없고(대법원 2010도12313호 판결),피청구인과 기업 사이에 재단이 당면 현안 해결에 대한 대가라고 인식하거나 양해한 바 없으며,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기업 총수들이 모두 대가성이 없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다. 재단 관련 직권남용 및 강요죄 성립 여부
(1)직권남용 및 강요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한 행위'임에 반하여 뇌물은 공여의 고의 하에 '자발적으로 한 행위'여서 양립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탄핵소추의 사유 중 2. 가. (2). (가)에는 피청구인이 대기업으로부터 뇌물을 출연하게 하여 뇌물수수 또는 제3자뇌물수수죄에 해당된다고 기재하면서도 한편 (나)에서는 위 대기업들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함으로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고 기재함으로써 상호 모순된 소추사실을 기재하였습니다.
(가)재단 설립은 과거 정부에도 있었던 관행에 따른 것으로 모금의 강제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피청구인은 기업인들에게 국정기조의 하나인 '문화융성'을 위해 적극 투자해달라고 부탁하고, 안종범 등에게 좋은 취지로 협조를 받으라고 지시하였을 뿐 위법. 부당한 행위를 지시한 사실이 없습니다.
* ① 재단 설립이 상당한 기간 여러 논의를 거쳐 추진된 점, ② 모금 과정에서 기업들이 심층 검토와 합당한 절차를 거쳐 지원 규모를 결정한 점, ③ 역대 정부가 추진한 공익재단 사업과 유사하고 본질적 차이가 없는 점, ④ 재단 운영 구조상 특정 개인의 사유화가 불가능한 점,⑤ 현재도 96% 이상의 자금이 재단에 그대로 남아 있으며, 지출된 돈도 목적에 맞게 쓰인 점 등을 종합할 때 직권남용 및 강요죄는 성립하기 어려움
(나)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행위'가 있어야 하는데,검찰 공소장에도 어떠한방식으로 기업을 협박했는지 기재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헌법재판소의 보정 명령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 구체적 강압이나 협박이 없었음에도 대통령의 권한이나 지위만으로 피청구인에게 범죄 성립을 인정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입니다.
검찰은 막연히 '기업들이 요구에 불응할 경우 세무조사를 당하거나 인허가의 어려움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출연금을 냈으니 협박이라고 주장하나, 검찰 논리대로라면 국회의원이 기업에 정당한 협조 요구를 하여 수용한 경우에도, 언제든지 '기업 관련 법제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강압에 의해 받아들인 것'이라는 부당한 결론에 이르게 됨
라. 최순실 등에 대한 특혜 제공 관련 범죄 성립 여부
(1) 피청구인은 KD코퍼레이션의 현대차 납품과 관련하여 어떤 경제적 이익도 받은 바 없고,최순실과 뇌물수수 범행을 공모하지 않았으며,최순실이 샤넬백 및 금원을 받은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최순실이 대통령인 피청구인을 내세워 청탁을 받고 대가를 취득하였다고 하여,이를 알지도 못한 피청구인과 공범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공범에 관한 법리를 잘못 판단하였거나,논리 비약에 불과하다 할 것입니다.
(2) 피청구인이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하여 현대차 그룹으로 하여금 최순실의 지인이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으로부터 납품을 받도록 하고,최순실이 KD코퍼레이션 대표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였다는 사실만으로 피청구인에 대한 제3자뇌물수수죄가 당연히 성립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3) 사기업의 영업 활동은 공무원의 직권 범위 밖의 행위이고,개별 기업의 납품,직원 채용,광고 등 영업 활동은 공무원인 피청구인 또는 경제수석의 직무 범위에 속하지 않아 법리 및 판례상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 과거 속칭 '신정아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변양균 前 정책실장에게 같은 이유로 무죄 선고공무원이 직무와는 상관 없이 지원을 권유하거나 협조를 의뢰한 것까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음(대법원 2009. 1. 30. 선고 2008도6950 판결)
(4)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피청구인은 그런 행위를 하거나 지시한 바 없고,안종범에 대한 공소장에도 그가 어떻게 협박을 하였다는 것인지 특정되어 있지 않아 강요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피청구인은 문화체육 융성이라는 정책적 관점에서 포스코,GKL 등에 실업 체육팀 창단 협조를 부탁한 것이고,이는 정당한 직무 수행의 일환입니다.
* 포스코와 GKL은 회사 사정상 안종범 수석의 부탁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거절하였고, 이후 수차례의 협상과 조정을 거쳐 전혀 다른 내용의 계약이 성사되었는바, 만일 '협박'이 있었다면 이러한 협상 과정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임
(5) 피청구인은 각종 공식 행사나 회의,사석에서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을 들으면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기 위하여 관계 수석에게 상황을 알아보고 도울 수 있으면 도와주라는 지시를 해왔습니다. 피청구인은 대기업 일가 친척들이 운영하는 하청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속칭 '재벌카르텔'로 인하여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이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였고,이를 혁파하는 것을 중요한 국정업무로 삼아 이를 실행하여 왔습니다. 본건도 그런 과정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피청구인은 제3자 뇌물수수 범행의 고의가 없습니다.
* 최순실과 관련된 업체라서,혹은 최순실의 부탁이기에 도와준 것이 아니라, 누가 이야기하든 어떤 중소기업이라도 애로 사항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정당한 업무수행임
* 오히려 최순실과 어떤 관련이라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들어주지 않았을 것임
(6) 또한,안종범 수석에게 지시한 것도 무조건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라는 것이 아니었고,합법적 범위 내에서 중소기업의 애로 사항을 정부가 실질적으로 해결해 주라는 의미였으며,계약 또는 채용 여부는 개별 기업이 검토해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위와 같이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시야가 제한되어 있는 직업공무원들로 이루어진 보고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경로를 통하여 국민,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의 한 방법으로 동서고금 널리 인정되어 왔습니다. 다만 위 과정에서 대통령 등 최고권력자의 친인척 지인들이 최고권력자의 권위를 이용하여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여 왔던 사례는 역사적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의 친척들도 이러한 문제를 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 그 누구도 이러한 문제로 탄핵을 당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피청구인에 대한 이건 탄핵소추는 형평에 반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마.공무상비밀누설죄성립여부
(1) 피청구인은 이 부분 탄핵 소추 사유를 전부 부인합니다. 연설문 이외의 문건들은 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고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최순실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어서 구체적 유출 경로를 알지 못합니다.
(2) 피청구인이 연설문을 최순실로 하여금 한 번 살펴보게 한 이유는 직업관료나 언론인 기준으로 작성된 문구들을 국민들이 보다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일부 표현에 관해 주변의 의견을 청취한 것에 불과하고,발표되기 직전에 최순실의 의견을 구한 것이어서 그 내용이 미리 외부에 알려지거나 국익에 반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없었기에 공무상비밀누설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통상 정치인들은 연설문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너무 딱딱하게 들리는지,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이 있는지에 대해 주변의 자문을 받는 경우가 왕왕 있고(속칭 'kitchen cabinet'라고 합니다),피청구인이 최순실의 의견을 들은 것도 같은 취지였음
판례상 공무상비밀이 되기 위해서는 누설로 인해 국가 기능에 위협이 발생하여야 하나(대법원 20이도1343호 판결),실제 유출된 연설문은 선언적 추상적 내용이고,발표 1-2일 전에 단순히 믿을만하다고 판단한 주변 지인의 의견을 들어본 것이어서'누설'로 보기 어렵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당시 대통령의 형 노건평이 '봉하대군'이라고 불리면서 대우조선 남상국 사장으로부터 연임청탁을 받았다가 이 사실이 공개되어 남상국이 자살한 사례,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만사형통'이라고 불리면서 여러 경로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민원을 전달한 이상득 전 국회의원의 사례 등을 종합하면 피청구인의 전임 대통령들도 공적경로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인사에 관한 의견, 민원 등을 청취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V . 결론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를 인정할 자료들이 없습니다. 특히 피청구인에 대한 뇌물죄 또는 제3자뇌물수수,직권남용권 권리행사방해,강요에 대한 증거들은 공범 최순실 등에 대한 1심 형사재판 절차에서 충분한 심리를 거친 후에 결정하여야 할 것이고,형사처벌에 상응하는 탄핵소추 절차에서도 형사소송법 규정을 준용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여야 할 뿐 아니라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파면의 효과가 중대한 대통령인 피청구인에 대하여서는 더욱더 엄격한 증명이 요구된다고 할 것입니다.
설혹 견해를 달리하여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소추의 사유를 인정할 증거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막중한 지위에 있고(헌법 제66조),국민의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어 직접적인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의기관이라는 점에서(헌법 제67조) 다른 탄핵대상 공무원과는 그 정치적 기능과 비중에 있어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으며,이러한 차이는 '파면의 효과'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차이로 나타난다.
대통령의 경우,국민의 선거에 의하여 부여받은 '직접적 민주적 정당성' 및 '직무수행의 계속성에 관한 공익'의 관점이 파면결정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서 고려되어야 하며,대통령에 대한 파면효과가 이와 같이 중대하다면,파면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도 이에 상응하는 중대성을 가져야 한다.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공직자의 경우에는 파면결정으로 인한 효과가 일반적으로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미한 법위반행위에 의해서도 파면이 정당화될 가능성이 큰 반면,대통령의 경우에는 파면결정의 효과가 지대하기 때문에 파면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압도할 수 있는 중대한 법위반이 존재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다시 박탈해야 할 정도로 대통령이 법위반행위를 통하여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가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대통령의 파면을 요청할 정도로'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법위반'이란,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로서 법치국가원리와 민주국가원리를 구성하는 기본원칙에 대한 적극적인 위반행위를 뜻하는 것이고,'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란'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법위반'에 해당하지 않는 그 외의 행위유형까지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서,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행위 외에도,예컨대,뇌물수수,부정부패,국가의 이익을 명백히 해하는 행위가 그의 전형적인 예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국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리라는 믿음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하여,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정당화되는 것이다."(헌법재판소 2004.05.14. 2004헌나1)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례에 비추어 본다면 피청구인의 이건 법률위반은 파면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에 해당하는 중대성을 가진다고 볼 수 없습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피청구인이 중대한 헌법위배 및 법률위배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 소추 사유는 모두 부적법하거나 사실이 아니어서 본건 탄핵 소추는 이유 없습니다. 따라서 본건 탄핵 심판 청구는 기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끝.
박근혜 대통령 측 탄핵 심판 답변서 전문 출처는 이곳(경향신문)

5. 심리

검사 역할인 소추위원을 당시 새누리당 소속인 권성동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는 논란이 있었으나 권성동은 "탄핵과 관련해 국회법을 준수하겠다"고 밝혔다.[10]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엔 총 일곱 차례의 변론이 진행되었다. 당시 소추위원은 제16대 국회 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이었던 김기춘이었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여·야 합의로 임명된 재판관 강일원을 주심[11]으로 지정했고[12][13] 박근혜 대통령에게 16일까지 답변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으며 출장 중이던 강일원·김이수를 제외한 7명의 재판관들이 회의를 열었다. 기사

강일원은 남아 있던 일정을 모두 취소해 버리고 예정보다 이틀 빠른 10일에 귀국해서 휴일 근무를 시작했으며 김이수 역시 19일까지 예정되어 있던 출장 일정[14]을 대량으로 줄여 13일에서 16일 사이 귀국하기로 결정하여 일정을 조절하기로 했다고 했는데 실제로 15일에 귀국하여 16일부터 근무에 들어갔다. 한국에 있던 나머지 재판관들은 주말인 10일·11일에도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탄핵소추안을 검토하면서 헌법 및 법률 조항과 비교하는 등의 근무를 하고 퇴근했다고 알려진다.

탄핵소추안 내용이 위헌(헌법)뿐만 아니라 위법, 즉 법률 위반 여부에 대한 주장도 적혀 있기 때문에[15] 확인해야 할 내용은 상당히 많고 청와대국회에 몰렸다가 헌법재판소로 이동한 국민 여론의 관심은 무조건 빨리 처리하라는 쪽이었으므로 재판관들도 소추안 처리 업무에 대해 최대한 속도를 높일 것으로 내부적으로 합의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게 일반적이다.[16][17]

게다가 헌법재판소장 박한철은 1월 말에 재판관 임기가 끝나고 또 한 명의 재판관인 이정미는 3월 중순에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늦어도 8명이 선고가 가능한 3월 초까지는 심리를 끝낼 것으로 예상되었고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본인의 임기 내에 인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으며 임기 문제에 대해서는 황교안 권한대행이 박 소장의 임기 연장 가능성을 시사한 바가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연장 가능성 제기에 대해서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월권으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 있어 논란을 빚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집중심리제로 결정을 빨리 내리려는 이유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국무총리가 대행하는 헌법적 위기상황을 신속히 해소해야 한다는 데 재판관들의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다.중앙일보[18]

박한철은 탄핵심판의 준비 절차를 이끌 '수명(受命)재판관'으로 주심인 강일원과 함께 이정미·이진성을 지정했다. 이정미는 2지정재판부의 재판장, 이진성은 1지정재판부의 재판장이다.[19]

6. 결정 전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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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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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선고

대통령(박근혜) 탄핵 심판
(사건번호: 2016헌나1) (개시일: 2016년 12월 9일) (선고일: 2017년 3월 10일)
총원 출석인용기각
8880
선고 내용7인 이상 출석하였고 6인 이상이 동의하여
인용
후속 절차대통령: 파면(헌법 제65조 제4항)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후임 대통령 취임 전까지 궐위로 인한 대통령 권한대행직 수행(헌법 제71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60일 이내 궐위에 의한 선거 실시 및 후임 대통령 선출(헌법 제68조 제2항)
<colbgcolor=#ffdb00>
2016헌나1 선고 영상 (주문은 20분 46초부터)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선고요지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2016헌나1 대통령 박근혜 탄핵심판
선고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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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이정미: 지금부터 2016헌나1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선고에 앞서 이 사건의 진행경과에 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 재판관들은 지난 90여 일 동안 이 사건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여 왔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들께서도 저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많은 번민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재판관들은 이 사건이 재판소에 접수된 지난해 12월 9일 이후 오늘까지 휴일을 제외한 60여 일간 매일 재판관 평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재판 과정 중 이루어진 모든 진행 및 결정에 재판관 전원의 논의를 거치지 않고 재판장인 저나 주심 재판관이 임의로 개인적으로 진행한 사항은 전혀 없습니다.

저희는 그간 3차례의 준비 기일과 17차례에 걸친 변론기일을 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청구인 측 증거인 갑제174호증에 이르는 서증과 12명의 증인, 5건의 문서송부촉탁결정 및 한 건의 사실조회결정, 피청구인 측 증거인 을제60호증에 이르는 서증과 17명의 증인, 6건의 문서송부촉탁결정 및 68건의 사실조회결정을 통한 증거 조사를 하였으며 소추위원과 양쪽 대리인들의 변론을 경청하였습니다.

증거 조사된 자료는 4만 8천여 쪽에 달하며, 당사자 이외의 분들이 제출한 탄원서 등의 자료들도 40박스의 분량에 이릅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 아시다시피,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입니다. 재판부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 역사의 법정 앞에 서게 된 당사자의 심정으로 이 선고에 임하고자 합니다. 저희 재판부는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이루어지는 오늘의 이 선고가 더 이상의 국론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헌법과 법치주의는 흔들려서는 안 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 가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 사건 탄핵소추안의 가결 절차와 관련하여 흠결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소추 의결서에 기재된 소추 사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아니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헌법상 탄핵소추사유는,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사실이고 여기서 법률은 형사법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탄핵 결정은 대상자를 공직으로부터 파면하는 것이지 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피청구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고 심판대상을 확정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관계를 기재하면 됩니다. 이 사건 소추의결서의 헌법 위배행위 부분이 분명하게 유형별로 구분되지 않은 측면이 없지 않지만, 법률 위배행위 부분과 종합하여 보면 소추사유를 특정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 사건 탄핵소추안을 의결할 당시 국회 법사위의 조사도 없이 공소장과 신문 기사 정도만 증거로 제시되었다는 점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국회의 의사 절차의 자율권은 권력 분립의 원칙상 존중되어야 합니다. 국회법에 의하더라도 탄핵소추발의 시 사유조사 여부는 국회의 재량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그 의결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다음 이 사건 소추의결이 아무런 토론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의결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토론 없이 표결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국회법상 반드시 토론을 거쳐야 한다는 규정은 없고 미리 찬성 또는 반대의 뜻을 국회의장에게 통지하고 토론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토론을 희망한 의원은 한 사람도 없었으며, 국회의장이 토론을 희망하는데 못 하게 한 사실도 없었습니다.

탄핵사유는 개별 사유별로 의결절차를 거쳐야 함에도 여러 개 탄핵사유 전체에 대하여 일괄하여 의결한 것은 위법하다는 점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소추사유가 여러 개 있을 경우 사유별로 표결할 것인지, 여러 사유를 하나의 소추안으로 표결할 것인지는 소추안을 발의하는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의사에 달린 것이고, 표결방법에 관한 어떠한 명문규정도 없습니다.

8인 재판관에 의한 선고가 9인으로 구성된 재판부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재판관의 공무상 출장이나 질병 또는 재판관 퇴임 이후 후임재판관 임명까지 사이의 공백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일부 재판관이 재판에 관여할 수 없는 경우는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과 법률에서는 이러한 경우에 대비한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탄핵의 결정을 할 때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고, 재판관 7인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9명의 재판관이 모두 참석한 상태에서 재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와 같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있는지 논란이 되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결국 심리를 하지 말라는 주장으로서, 탄핵소추로 인한 대통령의 권한정지상태라는 헌정위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결과가 됩니다. 8명의 재판관으로 이 사건을 심리하여 결정하는 데 헌법과 법률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상 헌법재판소로서는 헌정위기 상황을 계속해서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회의 탄핵소추가결 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위법이 없으며, 다른 적법요건에 어떠한 흠결도 없습니다.

이제 탄핵사유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탄핵사유별로 피청구인의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였는지 여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하여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을 침해하였다는 점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노 국장진 과장이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문책성 인사를 당하고, 노 국장은 결국 명예퇴직하였으며, 장관이던 유진룡은 면직되었고,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이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에게 지시하여 1급 공무원 6명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아 그중 3명의 사직서가 수리된 사실은 인정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나타난 증거를 종합하더라도, 피청구인이 노 국장과 진 과장이 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인사를 하였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유진룡이 면직된 이유나 김기춘이 6명의 1급 공무원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도록 한 이유 역시 분명하지 아니합니다.

다음,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청구인은 피청구인이 압력을 행사하여 세계일보 사장을 해임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계일보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사실과 피청구인이 이러한 보도에 대하여 청와대 문건의 외부유출은 국기 문란 행위이고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하며 문건 유출을 비난한 사실은 인정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나타난 모든 증거를 종합하더라도 세계일보에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하였는지 분명하지 않고 피청구인이 관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다음, 세월호 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 성실의무 위반의 점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여 304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피청구인은 관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헌법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건은 모든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 준 참사라는 점에서 어떠한 말로도 희생자들을 위로하기에는 부족할 것입니다. 피청구인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여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 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피청구인의 최서원에 대한 국정개입 허용권한남용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피청구인에게 보고되는 서류는 대부분 부속비서관 정호성이 피청구인에게 전달하였는데, 정호성은 2013년 1월 경부터 2016년 4월 경까지 각종 인사자료, 국무회의자료, 대통령 해외순방일정과 미국 국무부장관 접견자료 등 공무상 비밀을 담고 있는 문건을 최서원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최서원은 그 문건을 보고 이에 관한 의견을 주거나 내용을 수정하기도 하였고, 피청구인의 일정을 조정하는 등 직무활동에 관여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최서원은 공직 후보자를 추천하기도 하였는데, 그 중 일부는 최서원의 이권 추구를 도왔습니다.

피청구인은 최서원으로부터 케이디코퍼레이션이라는 자동차 부품회사의 대기업 납품을 부탁받고 안종범을 시켜 현대자동차그룹에 거래를 부탁하였습니다. 피청구인은 안종범에게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법인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하여, 대기업들로부터 486억 원을 출연받아 재단법인 미르, 288억 원을 출연받아 재단법인 케이스포츠를 설립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재단법인의 임직원 임면, 사업 추진, 자금 집행, 업무 지시 등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은 피청구인과 최서원이 하였고, 재단법인에 출연한 기업들은 전혀 관여하지 못했습니다.

최서원은 미르가 설립되기 직전에 광고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를 설립하여 운영했습니다. 최서원은 자신이 추천한 임원을 통해 미르를 장악하고 자신의 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와 용역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여 이익을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최서원의 요청에 따라, 피청구인은 안종범을 통해 케이티에 특정인 두 사람을 채용하게 한 뒤 광고 관련 업무를 담당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그 뒤 플레이그라운드는 케이티의 광고대행사로 선정되어 케이티로부터 68억여 원에 이르는 광고를 수주했습니다. 또 안종범은 피청구인 지시로 현대자동차그룹에 플레이그라운드 소개자료를 전달했고, 현대와 기아자동차는 신생 광고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에 9억여 원에 달하는 광고를 발주했습니다.

한편, 최서원은 케이스포츠 설립 하루 전에 더블루케이를 설립하여 운영했습니다. 최서원은 노승일박헌영을 케이스포츠의 직원으로 채용하여 더블루케이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도록 했습니다. 피청구인은 안종범을 통하여 그랜드코리아레저와 포스코가 스포츠팀을 창단하도록 하고 더블루케이가 스포츠팀의 소속 선수 에이전트나 운영을 맡기도록 하였습니다. 최서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김종을 통해 지역 스포츠클럽 전면 개편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 내부 문건을 전달받아, 케이스포츠가 이에 관여하여 더블루케이가 이익을 취할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또 피청구인은 롯데그룹 회장을 독대하여 5대 거점 체육 인재 육성 사업과 관련해 하남시에 체육시설을 건립하려고 하니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여 롯데는 케이스포츠에 70억 원을 송금했습니다.

다음으로 피청구인의 이러한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지 보겠습니다.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여 공익의 실현의무를 천명하고 있고, 이 의무는 국가공무원법공직자윤리법 등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피청구인의 행위는 최서원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으며,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한 것입니다. 또한,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설립, 최서원의 이권 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피청구인의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피청구인의 지시 또는 방치에 따라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많은 문건이 최서원에게 유출된 점은 국가공무원법의 비밀엄수 의무를 위배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가 피청구인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것인지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피청구인은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케이 및 케이디코퍼레이션 지원 등과 같은 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하였습니다.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들을 단속해 왔습니다. 그 결과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른 안종범, 김종, 정호성 등이 부패범죄 혐의로 구속기소 되는 중대한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입니다.

한편, 피청구인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였습니다. 이 사건 소추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결정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은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고, 다만 그러한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보충의견이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하여 파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재판관 안창호보충의견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선고를 모두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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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결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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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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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유
1. 사건개요
가. 사건의 발단
전국경제인연합회(다음부터 '전경련'이라 한다)가 주도하여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던 재단법인 미르와 재단법인 케이스포츠(다음부터 '미르'와 '케이스포츠'라고 한다)가 설립될 때 청와대가 개입하여 대기업으로부터 500억 원 이상을 모금하였다는 언론 보도가 2016년 7월경 있었다. 청와대가 재단 설립에 관여한 이유 등이 2016년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었는데, 청와대와 전경련은 이런 의혹을 부인하였다.

이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던 중 2016. 10. 24. 청와대의 주요 문건이 최○원(개명 전 최○실)에게 유출되었고 최○원이 비밀리에 국정 운영에 개입해 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른바 비선실세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취지의 보도에 많은 국민이 충격을 받았고, 이를 허용한 피청구인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이에 피청구인은 2016. 10. 25. '최○실 씨는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 준 인연으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의 표현 등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이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 두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는 취지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피청구인의 대국민 담화에도 불구하고 최○원의 국정 개입과 관련한 보도가 이어졌고, 2016. 11. 3. 최○원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 혐의로 구속되었다. 피청구인은 그 다음 날인 4일 '최○실 씨 관련 사건으로 큰 실망과 염려를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하니 참담하다. 어느 누구라도 수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저도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다.'는 내용의 제2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2016. 11. 6.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었던 안○범이 강요미수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이었던 정○성이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구속되었다. 국회는 11월 14일경부터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 추진 여부를 논의하기 시작하였고, 17일에는 '박근혜 정부의 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계획서 승인의 건'과 '박근혜 정부의 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2016. 11. 20.에는 최○원ㆍ안○범ㆍ정○성이 구속 기소되었는데, 이들의 공소사실 일부에는 피청구인이 공범으로 기재되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은 11월 2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공동으로 마련하기로 하였고, 11월 28일 공동 탄핵소추안을 마련하여 12월 2일 탄핵안 표결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피청구인은 2016. 11. 29.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깊이 사죄드린다. 국가를 위한 공적 사업이라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고 어떤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이다.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 여야 정치권이 국정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내용의 제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나. 탄핵심판 청구
피청구인이 국회의 결정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담화를 발표하였지만, 국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진행하였고 2016. 12. 1. 특별검사의 임명도 이루어졌다. 이어 국회는 우○호ㆍ박○원ㆍ노○찬 등 171명의 의원이 2016. 12. 3. 발의한 '대통령(박근혜)탄핵소추안'을 8일 본회의에 상정하였다. 2016. 12. 9.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제346회 국회(정기회) 제18차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00인 중 234인의 찬성으로 가결되었고, 소추위원은 헌법재판소법 제49조 제2항에 따라 소추의결서 정본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여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심판을 청구하였다.

다. 탄핵소추사유의 요지
청구인은 피청구인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고 중대하게 위배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소추의결서에 다음과 같은 5개 유형의 헌법 위배행위와 4개 유형의 법률 위배행위를 적시하여 이 사건 심판을 청구하였다.

(1) 헌법 위배행위
(가) 피청구인은 최○원에게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고 최○원과 그의 친척이나 그와 친분 있는 주변인 등(다음부터 '최○원 등'이라 한다)이 국가정책과 고위 공직 인사에 관여하게 하였다. 또 대통령의 권력을 남용하여 사기업들로 하여금 수백억 원을 갹출하도록 하고 최○원 등에게 특혜를 주도록 강요하는 등 국가권력을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하게 하였다. 이는 국민주권주의 및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고, 국정을 비선 조직에 따른 인치주의로 운영하여 법치국가원칙을 파괴한 것이며, 국무회의에 관한 헌법 규정을 위반하고 대통령의 헌법수호 및 헌법준수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나) 피청구인은 최○원 등이 추천하거나 그들을 비호하는 사람을 청와대 간부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장ㆍ차관으로 임명하였고, 이들이 최○원 등의 사익추구를 방조하거나 조장하도록 하였다. 또 피청구인은 최○원 등의 사익추구에 방해될 공직자들을 자의적으로 해임시키거나 전보시켰다. 이는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고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하였으며, 법집행을 할 때 불평등한 대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평등원칙을 위배하는 한편, 정부재정의 낭비를 초래한 것이다.

(다) 피청구인은 사기업에 금품 출연을 강요하여 뇌물을 수수하거나 최○원 등에게 특혜를 주도록 강요하고 사기업 임원 인사에 간섭하였다. 이는 기업의 재산권과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기본적 인권 보장의무를 저버리고 시장경제질서를 훼손하고 대통령의 헌법수호 및 헌법준수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라) 피청구인은 최○원 등 비선실세의 전횡을 보도한 언론을 탄압하고 언론 사주에게 압력을 가해 신문사 사장을 퇴임하게 만들었다. 이는 언론의 자유와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마) 피청구인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였을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

(2) 법률 위배행위
(가) 재단법인 미르, 재단법인 케이스포츠 설립ㆍ모금 관련 범죄
피청구인은 문화발전 및 스포츠 산업 발전을 구실로 피청구인 본인 또는 최○원 등이 지배하는 재단법인을 만들고 전경련 소속 기업으로부터 출연금 명목으로 돈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피청구인은 경제수석비서관 안○범에게 지시하여 전경련을 통하여 기업으로부터 출연받아 미르와 케이스포츠를 설립하도록 하였고, 최○원은 피청구인을 통하여 재단 이사장 등 임원진을 그가 지정하는 사람으로 구성하여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인사와 운영을 장악하였다.

피청구인은 안○범을 통하여 기업들로 하여금 미르에 486억 원, 케이스포츠에 288억 원을 출연하도록 하였다. 피청구인은 재단법인 설립 전에 7개 그룹의 회장과 단독면담을 하면서 안○범으로부터 주요 그룹의 당면 현안 자료를 제출받았고, 대기업들이 재단법인에 출연금을 납부한 시기를 전후하여 대기업들의 당면 현안을 비롯하여 기업에게 유리한 조치를 다수 시행하였다. 한편, 안○범으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은 기업들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기업활동 전반에 걸쳐 직ㆍ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출연금 명목으로 위 두 재단법인에 돈을 납부하였다.

피청구인의 이러한 행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죄와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나) 롯데그룹 추가 출연금 관련 범죄
최○원은 케이스포츠가 주도하여 전국 5대 거점 지역에 체육시설을 건립하는 사업에 소요되는 자금을 기업으로 하여금 케이스포츠에 지원하도록 하고, 시설 건립 등 사업을 그가 설립한 주식회사 더블루케이(다음부터 '더블루케이'라고 한다)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득하기로 하고, 이런 사업계획을 피청구인에게 전달하였다. 피청구인은 롯데그룹 회장 신○빈과 단독 면담을 가진 뒤 안○범에게 롯데그룹이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하여 75억 원을 부담하기로 하였으니 진행상황을 확인하라고 지시하였다. 롯데그룹은 신○빈의 지시에 따라 6개 계열사를 동원하여 케이스포츠에 70억 원을 송금하였다.

롯데그룹은 당시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의 특허를 신청하였고, 경영권 분쟁과 비자금 등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피청구인이 경제수석비서관을 통하여 롯데그룹으로 하여금 케이스포츠에 돈을 출연하도록 한 것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죄와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다) 최○원 등에 대한 특혜 제공 관련 범죄
① 최○원은 친분이 있는 문○경으로부터 그 남편인 이○욱이 경영하는 주식회사 케이디코퍼레이션(다음부터 '케이디코퍼레이션'이라 한다)이 대기업 등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정○성을 통해 피청구인에게 케이디코퍼레이션 관련 자료를 전달하였다. 피청구인은 안○범에게 현대자동차가 케이디코퍼레이션의 기술을 채택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구와 부회장 김○환에게 피청구인의 지시를 전달하였고, 김○환은 구매담당자에게 지시하여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케이디코퍼레이션과 납품계약을 체결하고 제품을 납품받도록 하였다. 또 최○원은 피청구인이 프랑스를 순방할 때 이○욱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욱은 납품계약 성사 대가로 최○원에게 5,162만 원 상당의 금품을 주었다. 피청구인의 이런 행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죄와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② 피청구인은 안○범을 통하여 최○원이 설립한 주식회사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다음부터 '플레이그라운드'라고 한다)가 현대자동차 광고를 수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김○환에게 요구하였다. 김○환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가 수주하기로 확정된 광고를 플레이그라운드가 수주할 수 있도록 해 주어 9억 1,807만 원 상당의 수익을 올리도록 하였다. 피청구인의 이런 행위는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③ 최○원은 주식회사 포스코(다음부터 '포스코'라고 한다)가 배드민턴팀을 창단하면 더블루케이가 그 선수단 관리를 담당하여 이익을 올린다는 기획안을 마련하였다. 피청구인은 포스코 회장 권○준과 단독 면담을 하면서 포스코에서 여자 배드민턴팀을 창단하면 좋겠고, 더블루케이가 자문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요청하였다. 포스코는 피청구인의 요청에 따라 케이스포츠 사무총장 등과 협의한 끝에 계열사인 포스코 피앤에스 산하에 창단 비용 16억 원 상당의 펜싱팀을 창단하고 그 운영 및 관리를 더블루케이에 맡기기로 하였다. 피청구인의 이런 행위는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④ 피청구인은 안○범을 통하여 주식회사 케이티(다음부터 '케이티'라 한다)에 요청하여 이○수와 신○성을 채용하도록 한 다음 그 보직을 광고 업무 총괄 내지 담당으로 변경하도록 하였다. 이어 피청구인은 안○범에게 플레이그라운드가 케이티의 광고대행사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케이티 회장 황○규와 이○수에게 요구하여 케이티가 플레이그라운드에게 광고 7건을 발주하도록 하였고, 플레이그라운드는 516,696,500원 상당의 수익을 올렸다. 피청구인의 이런 행위는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⑤ 최○원은 정○성을 통하여 피청구인에게 더블루케이가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 주식회사(다음부터 '그랜드코리아레저'라 한다)와 스포츠팀 창단과 운영 관련 업무대행 용역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피청구인은 안○범에게 같은 취지의 지시를 하였고, 안○범은 그랜드코리아레저 대표이사 이○우에게 더블루케이와 업무용역계약을 체결하도록 요청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김○도 그랜드코리아레저가 장애인 펜싱팀을 창단하고 더블루케이가 선수 대리인 자격으로 그랜드코리아레저와 선수위촉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원하였다. 더블루케이는 그랜드코리아레저가 선수들에게 전속계약금 명목으로 지급한 돈의 절반인 3천만 원을 에이전트 비용 명목으로 지급받았다. 피청구인의 이런 행위는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및 강요죄에 해당한다.

(라) 문서 유출 및 공무상 취득한 비밀 누설 관련 범죄
피청구인은 '복합 체육시설 추가대상지(안) 검토' 문건 등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 47건을 최○원에게 이메일 또는 인편 등으로 전달하였다. 피청구인의 이런 행위는 형법상 공무상비밀누설죄에 해당한다.

2. 심판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는지 여부 및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을 선고할 것인지 여부이다.

3. 이 사건 심판 진행과정
(1)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과 헌법재판소 심판 규칙, 그리고 탄핵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하여 이 사건 심판절차를 진행하였다. 이 사건이 접수되어 2017. 2. 27. 변론이 종결될 때까지 헌법재판소는 3차례의 변론준비기일과 17차례의 변론기일을 진행하면서 변론을 듣고 증거조사를 실시하였다. 청구인이 제출한 갑 제1호증부터 제174호증까지, 피청구인이 제출한 을 제1호증부터 제60호증까지 서증 중 채택된 서증에 대하여 증거조사를 실시하였다. 또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함께 신청한 증인 3명(최○원, 안○범, 정○성), 청구인이 신청한 증인 9명(윤○추, 이○선, 류○인, 조○일, 조○규, 유○룡, 정○식, 박○영, 노○일)과 피청구인이 신청한 증인 14명(김○률, 김○, 차○택, 이○철, 김○현, 유○봉, 모○민, 김○덕, 조○민, 문○표, 이○우, 정○춘, 방○선, 안○범)에 대한 증인신문을 실시하였고, 안○범은 두 차례 출석하여 증언하였다. 그 밖에 직권에 의한 1건, 청구인의 신청에 의한 1건, 피청구인의 신청에 의한 17건 등 모두 19건의 사실조회를 하여 70개 기관과 기업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이 결정은 이와 같이 적법하게 조사된 증거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사실을 기초로 한 것이다.

(2) 헌법재판소는 준비기일에 이 사건 쟁점을 최○원의 국정개입 및 대통령의 권한 남용 행위, 언론의 자유 침해 행위,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행위, 뇌물수수 등 각종 형사법 위반 행위로 유형화하여 정리하였다. 청구인은 2017. 2. 1. 제출한 준비서면을 통하여 소추사유를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유형별로 구체화하면서 뇌물수수 등 각종 형사법 위반 행위 부분은 최○원의 국정개입 및 대통령의 권한 남용 행위에 포함시켜 쟁점을 단순화하였다.

4. 적법요건 판단
가. 소추사유의 특정 여부
(1) 피청구인은, 탄핵심판절차에서도 공소사실 특정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254조 제4항이 준용되므로 소추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야 하는데, 소추의결서에 기재된 소추사실은 그 일시ㆍ장소ㆍ방법ㆍ행위태양 등이 특정되어 있지 않은 채 추상적으로 기재되어 있으므로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탄핵심판은 고위공직자가 권한을 남용하여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 그 권한을 박탈함으로써 헌법질서를 지키는 헌법재판이고(헌재 2004. 5. 14. 2004헌나1), 탄핵결정은 대상자를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치고 형사상 책임을 면제하지 아니한다(헌법 제65조 제4항)는 점에서 탄핵심판절차는 형사절차나 일반 징계절차와는 성격을 달리 한다. 헌법 제65조 제1항이 정하고 있는 탄핵소추사유는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사실이고, 여기에서 법률은 형사법에 한정되지 아니한다. 그런데 헌법은 물론 형사법이 아닌 법률의 규정이 형사법과 같은 구체성과 명확성을 가지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탄핵소추사유를 형사소송법상 공소사실과 같이 특정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고, 소추의결서에는 피청구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가 심판대상을 확정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기재하면 된다고 보아야 한다. 공무원 징계의 경우 징계사유의 특정은 그 대상이 되는 비위사실을 다른 사실과 구별될 정도로 기재하면 충분하므로(대법원 2005. 3. 24. 선고 2004두14380 판결), 탄핵소추사유도 그 대상 사실을 다른 사실과 명백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 사정이 기재되면 충분하다. 이 사건 소추의결서의 헌법 위배행위 부분은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아 소추사유가 분명하게 유형별로 구분되지 않은 측면이 없지 않지만, 소추사유로 기재된 사실관계는 법률 위배행위 부분과 함께 보면 다른 소추사유와 명백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헌법재판소는 변론준비기일에 양 당사자의 동의 아래 소추사유를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① 비선조직에 따른 인치주의로 국민주권주의와 법치국가원칙 등 위배, ② 대통령의 권한 남용, ③ 언론의 자유 침해, ④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⑤ 뇌물수수 등 각종 형사법 위반의 5가지 유형으로 정리하였다. 그 뒤 변론절차에서 이와 같이 정리된 유형에 따라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주장과 증거 제출이 이루어졌다. 청구인은 2017. 2. 1. 제10차 변론기일에 다른 유형과 사실관계가 중복되는 각종 형사법 위반 유형을 제외하고 ① 최○원 등 비선조직에 의한 국정농단에 따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② 대통령의 권한 남용, ③ 언론의 자유 침해, ④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수행의무 위반 등 4가지 유형으로 소추사유를 다시 정리하였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청구인의 소추사유의 유형별 정리 자체에 대하여는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 채 변론을 진행하다가 2017. 2. 22. 제16차 변론기일에 이르러 이 사건 심판청구가 여러 가지 적법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소추사유가 특정되지 않았고 청구인의 소추사유 정리가 위법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소추의결서에 소추사유의 구체적 사실관계가 기재되어 있어 소추사유를 확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이미 변론준비기일에 양 당사자가 소추사유의 유형별 정리에 합의하고 15차례에 걸쳐 변론을 진행해 온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소추사유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소추사유 중 공무상 비밀누설행위 부분은 소추의결서에 '복합 체육시설 추가대상지(안) 검토' 문건 등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 47건을 최○원에게 전달한 행위로 기재되어 있을 뿐 문건 47건의 구체적 내역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기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추의결서에 증거자료로 첨부된 정○성에 대한 공소장 중 '정○성과 대통령이 공모하여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범행' 부분에 문건 47건의 구체적 내역이 기재되어 있고, 청구인과 피청구인은 소추의결서에 기재된 문건 47건이 증거자료에 기재된 문건 47건과 같은 것임을 전제로 제15차 변론기일까지 변론을 진행해 왔으므로, 피청구인도 이 부분 소추사유에 대하여 충분히 방어권을 행사하였다. 또한, 청구인은 2017. 1. 13. 제출한 준비서면을 통해 이 문건 47건의 구체적 내역을 보완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소추의결서 자체에 문건 47건 목록을 첨부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 부분 소추사유가 특정되지 않아 부적법하다고 볼 수도 없다.

(2) 피청구인은 이 사건 소추의결서에 따르면 탄핵사유의 내용과 그에 적용된 헌법 위반 또는 법률 위반 조항이 모두 복합적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과연 각 소추사유가 무슨 법령 위반인지 특정할 수 없으므로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국회의 소추의결서에 기재된 소추사유에 의하여 구속을 받고, 소추의결서에 기재되지 아니한 소추사유를 판단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그러나 소추의결서에서 그 위반을 주장하는 '법규정의 판단'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구속을 받지 않으므로, 청구인이 그 위반을 주장한 법규정 외에 다른 관련 법규정에 근거하여 탄핵의 원인이 된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 또 헌법재판소는 소추사유를 판단할 때 국회의 소추의결서에서 분류된 소추사유의 체계에 구속되지 않으므로, 소추사유를 어떤 연관관계에서 법적으로 고려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달려있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따라서 이 부분 피청구인의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3) 피청구인은 청구인이 2017. 2. 1. 제출한 준비서면은 소추사유를 추가하거나 변경한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한 국회의 소추의결이 없었으므로 심판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회가 탄핵심판을 청구한 뒤 별도의 의결절차 없이 소추사유를 추가하거나 기존의 소추사유와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 정도로 소추사유를 변경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청구인이 2017. 2. 1. 제출한 준비서면 등에서 주장한 소추사유 중 소추의결서에 기재되지 아니한 소추사유를 추가하거나 변경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부분은 이 사건 판단 범위에서 제외한다.

나. 국회 의결절차의 위법 여부
(1) 피청구인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결은 객관적 조사와 증거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소추사실에 기초하여야 하는데, 국회 스스로 탄핵소추안 의결에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를 실시하기로 의결하고도 그 결과를 보지도 않고 법제사법위원회의 조사절차도 거치지 아니한 채 검찰의 공소장과 의혹 보도 수준의 신문기사만을 증거로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한다.

국회가 탄핵소추를 하기 전에 소추사유에 관하여 충분한 조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국회의 의사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을 명백히 위반한 흠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국회 의사절차의 자율권은 권력분립의 원칙상 존중되어야 하고, 국회법 제130조 제1항은 탄핵소추의 발의가 있을 때 그 사유 등에 대한 조사 여부를 국회의 재량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국회가 탄핵소추사유에 대하여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았다거나 국정조사결과나 특별검사의 수사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탄핵소추안을 의결하였다고 하여 그 의결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따라서 이 부분 피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2) 피청구인은, 이 사건 소추의결은 아무런 토론 없이 진행되었으므로 부적법하다고 주장한다.

탄핵소추의 중대성에 비추어 소추의결을 하기 전에 충분한 찬반토론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회법에 탄핵소추안에 대하여 표결 전에 반드시 토론을 거쳐야 한다는 명문 규정은 없다. 또 본회의에 상정된 안건에 대하여 토론하고자 하는 의원은 국회법 제106조에 따라 미리 찬성 또는 반대의 뜻을 의장에게 통지하고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는데, 이 사건 소추의결 당시 토론을 희망한 의원이 없었기 때문에 탄핵소추안에 대한 제안 설명만 듣고 토론 없이 표결이 이루어졌을 뿐, 의장이 토론을 희망하는 의원이 있었는데도 고의로 토론을 못하게 하거나 방해한 사실은 없다. 따라서 피청구인의 이 부분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3) 피청구인은, 탄핵사유는 개별 사유별로 독립된 탄핵사유가 되는 것이므로 각각의 탄핵사유에 대하여 별도로 의결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국회가 여러 개 탄핵사유 전체에 대하여 일괄하여 의결한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탄핵소추안을 각 소추사유별로 나누어 발의할 것인지 아니면 여러 소추사유를 포함하여 하나의 안으로 발의할 것인지는 소추안을 발의하는 의원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달린 것이다.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사실이 여러 가지일 때 그 중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파면 결정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 한 가지 사유만으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소추사유를 종합할 때 파면할 만하다고 판단되면 여러 가지 소추사유를 함께 묶어 하나의 탄핵소추안으로 발의할 수도 있다.

이 사건과 같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에 해당하는 171명의 의원이 여러 개 탄핵사유가 포함된 하나의 탄핵소추안을 마련한 다음 이를 발의하고 안건 수정 없이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된 경우에는 그 탄핵소추안에 대하여 찬반 표결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본회의에 상정된 의안에 대하여 표결절차에 들어갈 때 국회의장에게는 '표결할 안건의 제목을 선포'할 권한만 있는 것이지(국회법 제110조 제1항), 직권으로 이 사건 탄핵소추안에 포함된 개개 소추사유를 분리하여 여러 개의 탄핵소추안으로 만든 다음 이를 각각 표결에 부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부분 피청구인의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

(4) 피청구인은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하면서 피청구인에게 혐의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의견 제출의 기회도 주지 않았으므로 적법절차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탄핵소추절차는 국회와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 사이의 문제이고,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에 따라 사인으로서 대통령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이 아니며 국가기관으로서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될 뿐이다. 따라서 국가기관이 국민에 대하여 공권력을 행사할 때 준수하여야 하는 법원칙으로 형성된 적법절차의 원칙을 국가기관에 대하여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탄핵소추절차에 직접 적용할 수 없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그 밖에 이 사건 탄핵소추절차에서 피소추인이 의견 진술의 기회를 요청하였는데도 국회가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볼 사정이 없으므로, 피청구인의 이 부분 주장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다. 8인 재판관에 의한 탄핵심판 결정 가부
피청구인은, 현재 헌법재판관 1인이 결원된 상태여서 헌법재판소법 제23조에 따라 사건을 심리할 수는 있지만 8인의 재판관만으로는 탄핵심판 여부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없고, 8인의 재판관이 결정을 하는 것은 피청구인의 '9인으로 구성된 재판부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헌법 제111조 제2항과 제3항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가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 등 모두 9인의 재판관으로 헌법재판소를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입법ㆍ사법ㆍ행정 3부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헌법재판소의 구성방식에 비추어 볼 때, 헌법재판은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재판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재판관의 공무상 출장이나 질병 또는 재판관 퇴직 이후 후임 재판관 임명까지 사이의 공백 등 다양한 사유로 일부 재판관이 재판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마다 헌법재판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헌법재판소의 헌법 수호 기능에 심각한 제약이 따르게 된다. 이에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중 결원이 발생한 경우에도 헌법재판소의 헌법 수호 기능이 중단되지 않도록 7명 이상의 재판관이 출석하면 사건을 심리하고 결정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헌법 제113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의 결정, 정당해산의 결정 또는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결정을 할 때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1항은 헌법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하고, 제36조 제2항은 결정서를 작성할 때 '심판에 관여한' 재판관 전원이 서명날인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관 결원이 발생하더라도 시급하게 결정할 필요가 없는 사건이라면 재판관 공석 상황이 해소될 때까지 기다려 9인의 재판관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의결되면 헌법 제65조 제3항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된다. 헌법재판소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하여 공석이 발생한 현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가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논란이 있다. 국회에서도 이 문제에 관하여 정당 사이에 견해의 대립이 있는데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없다는 의견에 따라 헌법재판소장 임명절차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되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에 관하여 논쟁이 존재하는 현 상황은 심각한 헌정위기 상황이다. 게다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없다는 견해를 따르면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만료로 발생한 현재의 재판관 공석 상태를 종결하고 9인 재판부를 완성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와 같이 헌법재판관 1인이 결원이 되어 8인의 재판관으로 재판부가 구성되더라도 탄핵심판을 심리하고 결정하는 데 헌법과 법률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 새로운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기다리며 현재의 헌정위기 상황을 방치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을 감안하면 8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현 재판부가 이 사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탄핵의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결원 상태인 1인의 재판관은 사실상 탄핵에 찬성하지 않는 의견을 표명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 오므로, 재판관 결원 상태가 오히려 피청구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피청구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 부분 피청구인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5. 탄핵의 요건
가.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 위배
헌법은 탄핵소추 사유를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경우'라고 명시하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관장하게 함으로써 탄핵절차를 정치적 심판절차가 아닌 규범적 심판절차로 규정하고 있다. 탄핵제도는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법의 지배 원리를 구현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통령을 파면하는 경우 상당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는 국가공동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민주주의의 비용이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를 탄핵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직무'란 법제상 소관 직무에 속하는 고유 업무와 사회통념상 이와 관련된 업무를 말하고, 법령에 근거한 행위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지위에서 국정수행과 관련하여 행하는 모든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또 '헌법'에는 명문의 헌법규정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형성되어 확립된 불문헌법도 포함되고, '법률'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률과 이와 동등한 효력을 가지는 국제조약 및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 등이 포함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나. 헌법이나 법률 위배의 중대성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은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 피청구인을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하는 것으로서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해악이 중대하여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커야 한다. 즉,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란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배가 있는 때를 말한다.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는 헌법이나 법률 위배의 중대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탄핵심판절차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라는 관점과 파면결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박탈한다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탄핵심판절차가 궁극적으로 헌법의 수호에 기여하는 절차라는 관점에서 보면, 파면결정을 통하여 손상된 헌법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요청될 정도로 대통령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에 비로소 파면결정이 정당화된다. 또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의기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박탈하여야 할 정도로 대통령이 법 위배행위를 통하여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다. 판단 순서
이 사건에서는 피청구인이 그 직무를 집행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였는지에 대하여 (1) 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여부, (2) 공무원 임면권 남용 여부, (3) 언론의 자유 침해 여부, (4) 생명권 보호의무 등 위반 여부의 순서로 판단한다. 이어 법 위배행위가 인정될 경우 그 위배행위가 피청구인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지 여부에 대하여 판단한다.

6. 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여부
가. 사건의 배경
피청구인은 전 대통령 박정희와 영부인 육영수의 장녀로 태어나 1974. 8. 15. 육영수가 사망한 뒤 1979. 10. 26. 박정희가 사망할 때까지 영부인 역할을 대신하였다. 피청구인은 육영수가 사망한 무렵 최○민을 알게 되어 최○민이 총재로 있던 대한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를 맡았고,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최○민을 육영재단 고문으로 선임하는 등 오랫동안 최○민과 함께 활동하였다. 피청구인은 최○민의 딸인 최○원과도 친분을 유지하였는데, 육영재단 부설 어린이회관이 최○원이 운영하는 유치원과 자매결연을 맺기도 하였고, 피청구인의 개인적 일을 처리할 때 최○원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피청구인은 1997년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 이○창을 지원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하였고, 1998. 4. 2. 대구광역시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피청구인이 정치활동을 시작한 뒤 최○원의 남편이었던 정○회가 피청구인의 비서실장으로 불리며 피청구인의 보좌진을 이끌었다. 피청구인이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성ㆍ이○만ㆍ안○근ㆍ이○상(2012년 사망) 등이 피청구인의 보좌진으로 활동하였고, 이들은 피청구인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 보좌관이나 비서관으로 일하였다.

피청구인이 2012. 12. 19.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정○성ㆍ이○만ㆍ안○근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하였으며, 취임 후에는 대통령비서실에서 비서관으로 근무하였다. 피청구인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공식 회의 이외에는 대부분의 보고를 관계 공무원을 대면하지 않고 서면으로 받았는데, 정○성ㆍ이○만ㆍ안○근이 피청구인에 대한 각종 보고 및 의사소통 경로를 장악하였다는 뜻에서 '문고리 3인방'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특히 정○성은 피청구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는 '제1부속비서관'으로, 제1ㆍ2 부속비서관실이 통합된 2015. 1. 23. 이후부터는 '부속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피청구인을 수신자로 하는 문건 대부분을 정리하여 보고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피청구인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에도 관저에서 최○원과의 사적 만남을 꾸준히 지속하였다. 최○원은 정○성을 비롯한 피청구인의 일부 보좌진과 차명 휴대전화 등으로 상시 연락하였고, 피청구인의 일정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의상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피청구인의 일부 보좌진은 최○원을 피청구인 관저에 청와대 공무차량으로 출입시켜 신분확인절차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등 피청구인과 최○원이 사적으로 만나는 데 필요한 각종 편의를 제공하였다.

나. 국정에 관한 문건 유출 지시ㆍ묵인
피청구인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공식회의 이외에는 주로 서면을 통하여 보고를 받고 전화를 이용하여 지시하는 등 대면 보고와 지시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집행하였다. 피청구인에게 보고되는 서류는 대부분 정○성이 모아서 정리한 다음 피청구인에게 전달하였다. 정○성은 피청구인에게 보고하는 서류 중 인사에 관한 자료, 각종 현안과 정책에 관한 보고서, 연설문이나 각종 회의에서 발언하는 데 필요한 말씀자료, 피청구인의 공식 일정 등 국정에 관한 문건 중 일부를 이메일을 이용하여 보내 주거나 직접 서류를 전달하는 방법 등으로 최○원에게 전달하였다. 최○원도 정○성을 통하여 국정에 관한 문건을 전달받아 열람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피청구인은 일부 문건에 대하여는 정○성에게 최○원의 의견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이를 반드시 반영하도록 지시하기도 하였다.

정○성은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받으면서, 연설문과 말씀자료는 피청구인의 포괄적 지시에 따라 대부분 최○원에게 보냈고 각종 보고서나 참고자료 등은 필요한 경우에만 보냈으며, 공직자 인선안 등도 피청구인이 최○원의 의견을 들어보라고 하여 보냈다고 하면서, 이와 같은 문건 유출은 큰 틀에서 피청구인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정○성은 2013년 1월경부터 2016년 4월경까지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 47건을 최○원에게 전달하여 공무상비밀누설죄를 저질렀다는 공소사실로 2016. 11. 20. 기소되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정○성이 피청구인의 지시를 받아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것이라고 보고 공소장에 피청구인과 정○성이 공모하여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였다고 기재하였다.

피청구인은 2016. 10. 25. 제1차 대국민 담화에서 "최○실 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 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두었습니다."라고 발표하였다. 또 피청구인은 이 사건 심판과정에서 연설문 등의 표현방법을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최○원의 의견을 들은 사실은 있지만, 연설문이나 말씀자료 이외에 인사에 관한 자료나 정책보고서 등 다른 문건을 최○원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2014년 11월 최○원의 전 남편 정○회가 청와대 일부 비서관 등과 합세하여 비밀리에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취지의 신문 보도가 있었고, 이때 청와대 내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정○성은 검찰에서 그 무렵 '상황이 이러하니 최○원에게 자료를 보내 의견을 받는 것은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피청구인에게 건의하였고, 피청구인이 이를 수용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또 최○원의 추천으로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차○택은 2015년 4월경 최○원에게 문화창조융합의 개념에 대해 삼성과 구글 및 알리바바 등 기업의 예를 들어 설명한 문구를 적어 주었는데 피청구인이 그 문구를 청와대 회의에서 그대로 사용한 사실이 있다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뒤에 보는 것처럼 2015년 2월경부터 2016년 1월경까지 추진된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과정에서 최○원이 마련한 재단 명칭과 사무실 위치 및 임원 명단 등 자료가 피청구인에게 전달되었고, 피청구인이 보고 받은 재단 설립 관련 정보가 최○원에게 전달된 사실이 인정된다. 이런 사실을 종합하면 피청구인은 취임 후 2년이 넘어서까지 최○원에게 연설문 등 문건을 전달하고 그 의견을 들은 사실이 인정된다. 그렇다면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될 때까지만 최○원의 의견을 들었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정○성은 검찰에서 각종 연설문 외에 감사원장, 국가정보원 2차장 및 기획조정실장 인사안이나 차관급 21명에 대한 인선안 등 여러 종류의 인사 관련 문건,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검토한 민정수석비서관실 보고서, 수석비서관에 대한 지시사항을 담은 문건 등을 피청구인의 지시로 최○원에게 전달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정○성은 청와대 비서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연설문이나 말씀자료 이외에도 대통령 해외순방일정 등 수많은 비밀 문건을 최○원에게 전달하였는데, 보안이 철저하게 유지되는 청와대에서 이와 같이 많은 문건이 오랜 기간 동안 외부로 유출된 것은 피청구인의 지시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편, 최○원은 비밀문서인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 등을 정○성을 통해 미리 받아보고 피청구인이 순방 시 입을 의상을 결정하고 또 해외순방 중 계획된 문화행사 계획을 변경하도록 조언하여 관철시키기도 했다. 최○원이 피청구인의 해외순방 일정을 상세히 알고 여러 가지 조언을 하였고 피청구인이 이를 수용한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관련 문건이나 정보가 최○원에게 전달된 사실을 피청구인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이런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인사에 관한 자료나 정책보고서 등 말씀자료가 아닌 문건을 최○원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피청구인의 주장도 믿기 어렵다.

최○원은 정○성을 통하여 받은 문건을 보고 이에 관한 의견을 주거나 내용을 직접 수정하여 회신하기도 하였고, 파악한 정보를 기초로 피청구인의 일정 조정에 간섭하는 등 직무활동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최○원은 행정각부나 대통령비서실의 현안과 정책에 관한 보고 문건 등을 통해 피청구인의 관심사나 정부의 정책 추진 방향 또는 고위공무원 등 인사에 관한 정보를 미리 알 수 있었다. 최○원은 이와 같이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공직자 인선에 관여하고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및 그 운영 등에 개입하면서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다가 적발되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다. 최○원의 추천에 따른 공직자 인선
피청구인은 최○원이 추천하는 인사를 다수 공직에 임명하였다. 최○원은 문화와 체육 분야의 주요 공직자 후보를 피청구인에게 추천하였다. 최○원은 뒤에 보는 것처럼 미르와 케이스포츠를 설립한 다음 이 두 재단이 정부 예산사업을 수행하도록 하고 그 사업을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가 수주하는 방식으로 이권을 확보하려고 하였는데, 최○원이 추천한 일부 공직자는 최○원의 이권 추구를 돕는 역할을 하였다.

피청구인은 2013. 10. 29. 최○원이 추천한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김○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임명하였다. 김○은 제2차관으로 임명된 뒤 체육계 현안과 정책 등에 관한 문화체육관광부 내부 문건을 최○원에게 전달하고 최○원의 요구 사항을 정책에 반영하는 등 최○원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피청구인은 2014년 8월경에는 광고제작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차○택을 최○원의 추천에 따라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하였다. 최○원은 차○택이 2015년 4월경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 단장과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으로 취임할 때도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차○택은 자신의 지인을 최○원에게 미르의 임원으로 추천하였는데, 이들은 최○원의 요구사항대로 미르를 운영하는 등 최○원의 사익 추구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피청구인은 최○원의 추천으로 2014. 8. 20. 차○택의 은사 김○덕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2014. 11. 18. 차○택의 외삼촌 김○률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였다.

라. 케이디코퍼레이션 관련
최○원은 케이디코퍼레이션의 대표이사 이○욱으로부터 자사 제품을 현대자동차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케이디코퍼레이션 관련 자료를 정○성을 통하여 피청구인에게 전달하였다. 피청구인은 2014년 11월경 안○범에게 케이디코퍼레이션이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이니 현대자동차가 그 기술을 채택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2014. 11. 27. 피청구인이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구를 면담하는 기회에 함께 온 부회장 김○환에게 피청구인의 지시를 전달하면서 현대자동차가 케이디코퍼레이션과 거래하여 줄 것을 부탁하였다.

케이디코퍼레이션은 김○환이 안○범에게 다시 회사 이름과 연락처를 물어야 할 정도로 현대자동차그룹 내에서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었다. 그러나 케이디코퍼레이션은 거래업체 선정 시 통상 거쳐야 하는 제품시험과 입찰 등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의계약으로 현대자동차와 계약을 맺고, 2015년 2월경부터 2016년 9월경까지 현대자동차에 제품을 납품하였다. 안○범은 현대자동차와 케이디코퍼레이션 사이의 계약 진행 상황을 확인하여 피청구인에게 보고하였다. 최○원은 케이디코퍼레이션이 현대자동차에 제품을 납품하게 된 대가로 이○욱으로부터 1천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았다.

검찰은 최○원과 안○범이 현대자동차로 하여금 케이디코퍼레이션과 제품 납품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행위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최○원과 안○범을 기소하였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피청구인은 최○원 및 안○범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하였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현대자동차 부회장 김○환으로 하여금 납품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마. 미르와 케이스포츠 관련
(1)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법인 설립 지시
피청구인은 2015년 2월경 안○범에게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소속 비서관에게 피청구인의 지시를 전달하였고, 이에 따라 대기업이 출연하여 비영리법인을 설립하고 이 법인에서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을 시행한다는 취지의 간략한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피청구인은 2015. 2. 24. 한국메세나협회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오찬 행사에서 대기업 회장들에게 문화와 체육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어 2015년 7월경 안○범에게 대기업 회장들과 개별 면담을 계획하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7개 대기업 회장 면담 일정을 확정하고 각 기업별 현안 등을 정리한 면담자료를 만들어 피청구인에게 보고하였다. 피청구인은 2015. 7. 24.과 25일 이틀에 걸쳐 삼성, 현대자동차, 에스케이, 엘지, 씨제이, 한화, 한진 등 7개 대기업 회장들과 개별 면담을 하였다. 피청구인은 이 자리에서 각 기업의 애로 사항이나 투자 상황 등을 청취하는 동시에, 문화 및 체육 관련 재단법인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법인 설립에 필요한 지원을 요구하였다.

피청구인은 대기업 회장들과의 개별 면담을 마친 뒤 안○범에게 10개 정도 대기업이 30억 원씩 출연하면 300억 원 규모의 문화 재단과 체육 재단을 설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재단법인 설립을 지시하였다. 안○범은 2015년 8월경 전경련 부회장 이○철에게 전경련이 대기업으로부터 출연금을 걷어 300억 원 규모의 재단 설립을 추진하도록 요청하였다. 그러나 전경련이나 피청구인의 요구를 받은 대기업은 재단 설립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뿐 추가로 구체적 요구사항을 전달받지는 않아 재단 설립을 바로 추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원은 전경련이 재단법인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전에 이미 재단 설립 사실을 알고 차○택 등의 추천을 받아 2015년 9월 말경 김○수, 이○한, 이○상, 장○각 등을 면담하고 이들을 문화 재단 임원진으로 선정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차○택은 미르가 설립되기 두 달 전쯤 최○원으로부터 문화계 사람들 중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이에 따라 김□현ㆍ김○탁ㆍ이○한ㆍ이□선ㆍ전○석을 소개하였는데, 이 때 최○원이 곧 문화 재단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또 차○택은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나 최○원이 재단 이사진을 추천해달라고 하여, 김○화ㆍ김○원ㆍ장○각ㆍ이□선 등을 추천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최○원과 안○범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 두 사람이 서로 연락한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최○원이 피청구인의 지시로 문화 관련 재단법인이 설립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을 보면, 피청구인이 그런 계획을 미리 알려 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 미르 설립
피청구인은 2015. 10. 19.경 안○범에게 10월 말 리커창 중국 총리가 방한하면 양국 문화 재단 사이에 양해각서를 체결할 수 있도록 재단법인 설립을 서두르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즉시 이○철과 경제금융비서관 최○목에게 300억 원 규모의 문화 재단을 설립하라고 지시하였다. 최○목은 2015. 10. 21.부터 24일까지 4일 동안 매일 청와대에서 전경련 관계자 및 관계 부처 공무원들과 재단 설립 관련 회의를 하면서 재단 설립 절차 등을 논의하였다.

피청구인은 2015. 10. 21.경 안○범에게 재단의 명칭을 '미르'로 하라고 지시하면서 재단의 이사장 등 임원진 명단 등을 알려 주고, 임원진 이력서와 재단 로고 등 자료를 전달하였다. 그런데 피청구인에게 이와 같은 재단 관련 자료를 전달한 대통령비서실 비서진이나 정부부처 관계자는 아무도 없고, 피청구인도 이런 자료를 누구로부터 어떻게 입수하였는지 밝히고 있지 않다. 앞서 본 것처럼 최○원이 재단의 주요 임원을 면접 등을 통하여 미리 선정해 둔 사실 등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자료는 최○원이 피청구인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최○목을 비롯한 대통령비서실 비서진과 관계 부처 공무원 및 전경련 관계자들은 10월 말 이전에는 문화 재단을 반드시 설립하라는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재단법인 설립을 서둘렀고, 전경련의 사회협력회계 분담금 기준으로 기업별 출연 금액을 정한 다음 법인 설립 절차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전경련 관계자가 2015. 10. 23.경 해당 기업들에게 개별적으로 출연 요청을 하였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재단 출연금 300억 원을 500억 원으로 올리도록 지시하였고, 안○범은 2015. 10. 24.경 이○철에게 피청구인의 지시를 전달하면서 출연 기업에 케이티ㆍ금호ㆍ신세계ㆍ아모레퍼시픽을 포함시키고 현대중공업과 포스코 등 추가할 만한 대기업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전경련 관계자들은 2015. 10. 24. 재단 출연금을 500억 원으로 한 새로운 출연금 분배안을 작성하고, 이미 출연하기로 하였던 기업들에는 증액을 요청하였으며, 케이티ㆍ금호ㆍ아모레퍼시픽ㆍ포스코ㆍ엘에스ㆍ대림 등 출연기업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6개 기업에는 청와대의 지시로 문화 재단을 설립하니 속히 출연 여부를 결정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출연 요청을 받은 기업들은 재단 출연 금액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으며, 재단의 구체적 사업계획서 등 자료를 받거나 재단의 사업계획이나 소요 예산 등에 관한 설명도 듣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전경련 관계자들은 늦어도 2015. 10. 26.까지 출연 여부 결정을 해달라고 요청하였고, 출연 요청을 받은 기업들은 사업의 타당성이나 출연 규모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토를 하지 못하고 재단 설립이 대통령의 관심사항으로서 경제수석비서관이 주도하여 청와대가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점 때문에 서둘러 출연 여부를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전경련 관계자들이 2015. 10. 24. 토요일 기업들에 출연 금액 증액을 통보하거나 새로운 기업들에 출연을 요청한 때로부터 불과 이틀 뒤인 2015. 10. 26. 월요일에는 기업들의 재단 출연 증서 작성이 전부 완료되었다. 기업 중 일부는 출연을 결정한 다음 미르 측에 사업계획서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기도 하였다.

전경련 관계자들은 2015. 10. 26. 출연하기로 한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재산출연 증서와 법인인감증명서 등 재단 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 실제로 개최되지 않은 창립총회가 전경련 컨퍼런스 센터에서 개최된 것처럼 창립총회 회의록을 허위로 만들고 피청구인이 안○범을 통해 전달한 미르 정관에 법인 인감을 날인하였다. 재단 설립을 서두르는 과정에 안○범은 처분에 엄격한 제한이 따르는 기본재산과 자유로운 처분이 가능한 보통재산의 비율을 9:1에서 2:8로 변경하라고 전경련 측에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전경련 관계자들은 급히 기본재산과 보통재산 비율을 수정하여 정관 등을 새로 작성하고, 이미 날인한 기업 관계자들에게 연락하여 새로운 정관과 창립총회 회의록에 다시 날인하도록 하였으나 결국 발기인으로 참여한 기업 중 에스케이하이닉스의 날인은 받지 못하였다.

전경련 관계자들은 청와대에서 요구한 시한인 2015. 10. 27.까지 재단 설립 허가 절차를 마치기 위하여 미르의 설립 허가 신청서를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사무소에 접수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담당공무원은 2015. 10. 26. 서울사무소로 담당 주무관을 출장 보내 에스케이하이닉스의 날인이 누락된 설립 허가 신청서를 접수하도록 하였고, 다음날 09:36경 설립 허가 절차를 마무리한 뒤 곧바로 전경련에 미르 설립허가를 통보하였다. 미르에 출연하기로 약정한 기업들은 2015년 11월경부터 12월경까지 합계 486억 원의 출연금을 납입하였다.

최○원과 안○범은 기업들로부터 미르에 출연하도록 한 행위와 관련하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죄로 구속 기소되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피청구인은 최○원 및 안○범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하였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전경련 임직원과 기업체 대표 및 담당 임원 등으로 하여금 미르에 출연하도록 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3) 케이스포츠 설립
미르가 설립된 뒤 최○원은 2015년 12월경 체육계 인사 김○승에게 체육 관련 재단법인 설립에 관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어 향후 설립될 재단법인에서 일할 임직원으로 사무총장 정○식ㆍ상임이사 김○승 등을 면접을 거쳐 선정한 다음, 정○성을 통해 피청구인에게 그 명단을 전달하였다.

피청구인은 2015. 12. 11.과 20일경 안○범에게 최○원으로부터 받은 임원진 명단을 알려주고, 서울 강남에 재단법인 사무실을 구하라고 지시한 뒤 정관과 조직도도 전달하였다. 안○범은 2015. 12. 19.경 김○승을 만나 전경련과 협조하여 재단을 설립하라고 한 뒤, 경제수석실 행정관 이○영에게 재단의 임원진 명단과 정관 등을 주면서 김○승과 연락하여 재단 설립을 진행하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이○철에게 미르와 별도로 300억 원 규모의 체육 재단도 설립해야 하니 미르 때처럼 진행하라고 요청하였다. 케이스포츠 설립도 미르와 마찬가지로 청와대 주도로 전경련을 통하여 대기업으로부터 출연받아 이루어졌고, 피청구인과 최○원이 임원진을 선정하는 등 그 설립을 사실상 주도하였다.

전경련 관계자들은 미르 설립 과정에서 연락했던 기업 명단을 토대로 기업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출연 금액을 할당하고, 각 기업 관계자에게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300억 원 규모의 체육 재단도 설립하여야 하니 출연금을 내달라고 요청하였다. 출연 요청을 받은 기업들은 케이스포츠의 구체적 사업계획 등도 알지 못한 채 재단 설립이 대통령의 관심사항으로서 경제수석비서관이 주도하여 청와대가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점 때문에 출연을 결정하였다. 전경련 관계자들은 2016. 1. 12.경 전경련회관으로 출연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재산출연 증서 등 필요한 서류를 받았고, 출연 기업들은 실제로는 개최되지 아니한 창립총회가 개최된 것처럼 허위로 작성된 창립총회 회의록과 케이스포츠 정관에 법인 인감을 날인하였다.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전경련 관계자가 직접 방문하여 서류를 제출받고 날인을 받았다.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실 선임행정관은 2016. 1. 8.경 문화체육관광부 담당국장에게 케이스포츠 설립을 최대한 빨리 허가하라고 요청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담당 공무원들은 2016. 1. 12. 전경련이 케이스포츠 설립허가 신청서를 접수하자 그 날 중으로 서류를 보완하도록 한 뒤 다음날 법인 설립을 허가하였다. 기업들은 2016년 2월경부터 8월경까지 케이스포츠에 288억 원의 출연금을 납입하였다.

최○원과 안○범은 기업들로부터 케이스포츠에 출연하도록 한 행위와 관련하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죄로 구속 기소되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피청구인은 최○원 및 안○범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하였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전경련 임직원과 기업체 대표 및 담당 임원 등으로 하여금 케이스포츠에 출연하도록 하여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4) 재단법인 운영 개입
이 사건 제5차 변론기일에서 최○원은 피청구인이 자신에게 미르와 케이스포츠 운영을 살펴봐 달라고 요청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최○원은 미르와 케이스포츠에 출연한 것도 아니고 아무런 직책이나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단 관계자로부터 보고를 받고 구체적 업무 지시를 하였으며, 재단의 임직원 임명ㆍ추진하는 사업의 내용ㆍ자금의 집행 등을 결정하였다. 미르와 케이스포츠 이사회의 결정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였고, 출연 주체인 기업들 역시 재단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였다.

미르와 케이스포츠 임직원 등은 최○원이 피청구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최○원을 회장이라 부르며 그의 지시에 따라 일하였다. 재단 임직원 등은 피청구인과 최○원의 관계나 최○원이 지시한 내용을 안○범이 다시 그대로 지시하는 등 정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최○원의 뜻이 피청구인의 뜻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이 사건 제11차 변론기일에서 케이스포츠 이사장 정○춘은 최○원의 국정 개입 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안○범과 전경련 관계자가 이사장직에서 사임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최○원이 사임하면 안 된다고 하여 사임하지 않았다고 증언하면서, 안○범보다는 최○원이 피청구인의 뜻을 대변하고 있다고 이해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은 문화 융성과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기업의 문화 및 체육 분야 투자를 적극 권유하고 비서실을 통하여 재단법인 설립절차를 지원하였을 뿐 기업의 출연 과정이나 법인 운영에 개입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범은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경련 관계자에게 청와대 개입 사실을 비밀로 하라고 요청하였다. 또 2016년 9월경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철은 재단 설립 과정에서 이루어진 모금은 자발적인 것이었다고 청와대 개입 사실을 부인하였지만, 이 사건 제8차 변론기일에서는 미르와 케이스포츠가 안○범의 지시에 따라 설립되었고 안○범의 요청을 받고 청와대의 압력에 부담을 느껴 국회에서 거짓으로 진술하였다고 증언하였다. 2016년 10월경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과정의 위법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안○범은 이○철에게 전화하여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은 전경련이 주도하였고 청와대는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진술하라고 지시하고 자신의 휴대전화를 폐기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안○범은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기소되었다.

피청구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을 청와대가 지원한 사실을 비밀로 할 이유가 없고 그 뒤 관련 증거를 없애고 위증을 지시할 이유도 전혀 없다. 최○원과 안○범 및 재단 관련자 등의 증언과 진술에 비추어 보더라도 피청구인의 이 부분 주장도 믿기 어렵다.

바. 플레이그라운드 관련
(1) 플레이그라운드 설립과 운영
최○원은 2015. 10. 7. 광고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를 설립하였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미르와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용역대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할 계획을 세웠다. 최○원은 김○탁을 플레이그라운드의 명목상 대표이사로 내세웠으나, 주식 70%를 차명으로 보유하면서 플레이그라운드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였다.

(2) 플레이그라운드와 미르의 관계
피청구인의 지시로 미르가 설립된 뒤, 최○원은 자신이 추천한 사람이 미르의 임원으로 임명되자 이들을 통하여 사업방향을 정하는 등 재단을 실질적으로 장악하였다. 최○원은 2016년 1월 미르 사무총장이었던 이○한에게 미르와 플레이그라운드 사이에 용역계약을 체결할 것을 지시하였다. 미르는 총괄파트너 선정 작업을 진행하면서 입찰과정에 플레이그라운드를 참여시키고 '비즈원'이라는 회사를 형식적으로 참여하도록 한 다음 플레이그라운드를 총괄파트너로 선정하였다. 플레이그라운드는 미르와 프로젝트 계약 7건을 체결하고 1억 3,860만 원을 지급받았다.

(3) 케이티 인사 및 광고대행사 선정 개입
최○원은 차○택에게 케이티 광고 분야에서 일할 사람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여 이○수를 추천받았다. 피청구인은 2015년 1월경 안○범에게 홍보전문가인 이○수가 케이티에 채용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케이티 회장 황○규에게 피청구인의 말을 전달하면서 이○수를 채용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케이티는 통상적 공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수에게 직접 연락하여 채용 절차를 진행하였고, 2015. 2. 16. 전무급인 브랜드지원센터장 자리를 새로 만들어 이○수를 채용하였다.

피청구인은 2015년 10월경 안○범에게 케이티 광고 쪽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이○수를 그쪽으로 보낼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황○규에게 이○수의 보직 변경을 요구하였고, 케이티는 정기인사 시기가 아님에도 2015. 10. 6. 이○수의 직책을 광고업무를 총괄하는 담당 본부장으로 변경하였다.

한편, 피청구인은 2015년 8월경 안○범에게 신○성이 케이티에서 이○수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다. 신○성은 최○원의 조카 이○헌의 지인인 김□수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안○범은 황○규에게 피청구인의 지시를 전달하였고, 케이티는 2015. 12. 7. 상무보급 브랜드지원담당 자리를 새로 만들어 신○성을 채용하였다. 이후 신○성은 2016. 1. 25. 광고 담당으로 보직이 변경되어 이○수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 뒤 안○범은 이○수 등에게 플레이그라운드가 케이티의 광고대행사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케이티는 플레이그라운드를 광고대행사로 선정하기 위하여 광고대행사 선정기준 중 광고실적을 요구하는 조건을 삭제하였고, 플레이그라운드에서 제출한 서류의 일부가 사실과 달리 기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도 플레이그라운드를 광고대행사로 선정하였다. 플레이그라운드는 2016년에 케이티 광고 7건(발주금액 총 68억 1,767만 원 상당)을 수주하였다.

(4) 현대자동차그룹 광고 계약 개입
피청구인은 2016년 2월경 안○범에게 플레이그라운드 소개자료가 든 봉투를 전달하면서, 대기업에서 플레이그라운드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2016. 2. 15. 피청구인이 현대자동차 회장 정○구, 부회장 김○환과 독대한 뒤 헤어지는 자리에서 김○환에게 플레이그라운드 소개자료가 든 봉투를 전달하였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이례적으로 신생 광고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에 먼저 연락하여 2016년에 5건의 광고를 발주하고 제작비로 총 9억 1,807만 원을 지급하였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통상적으로 이런 광고를 현대자동차 계열 광고회사인 주식회사 이노션 등에 발주해 왔는데, 이들 기업에 양해를 구하고 플레이그라운드에게 광고를 발주하였다.

사. 더블루케이 관련
(1) 더블루케이 설립과 운영
최○원은 케이스포츠가 정부의 지원으로 사업을 수행하면 그 사업 경영을 위탁받는 등의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할 계획을 세우고 2016. 1. 13. 케이스포츠가 설립되기 하루 전인 12일 스포츠 경영 등을 목적으로 하는 더블루케이를 설립하였다. 더블루케이의 명목상 대표이사는 조○민, 사내이사는 고○태였으나, 조○민은 주식포기각서를 최○원에게 제출한 뒤 매월 최○원에게 결산보고를 하였다. 최○원은 더블루케이 대표이사와 직원들의 채용 및 급여 수준을 직접 결정하고 자금지출을 결정하며 사업에 관해 지시하는 등 더블루케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였다.

(2) 더블루케이와 케이스포츠의 관계
최○원은 자신이 선발하여 채용한 케이스포츠의 노○일 부장과 박○영 과장에게 더블루케이 관련 업무를 하도록 지시하였다. 노○일과 박○영은 매주 적게는 2~3일, 많게는 매일 더블루케이 사무실로 출근하여 용역제안서 작성 등 더블루케이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최○원은 더블루케이 사무실에서 수시로 회의를 주재하였는데, 이 회의에서는 더블루케이 사업뿐만 아니라 케이스포츠 업무 및 케이스포츠와 더블루케이가 함께 추진하는 사업에 관하여서도 모두 논의가 이루어졌다. 최○원은 케이스포츠와 더블루케이의 인력과 사업을 연계하여 운용하였고, 더블루케이는 2016. 3. 10.경 케이스포츠와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케이스포츠가 수행하는 사업의 운영을 담당할 근거를 마련하였다.

(3) 그랜드코리아레저 장애인 펜싱팀 창단 개입
피청구인은 2016. 1. 23. 안○범에게 그랜드코리아레저가 스포츠팀을 창단하고, 더블루케이가 운영 자문 등을 할 수 있도록 그랜드코리아레저에 더블루케이를 소개하라고 지시하면서 더블루케이 대표이사의 이름과 연락처를 전달하였다. 안○범은 다음날 그랜드코리아레저 대표이사 이○우에게 피청구인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더블루케이 대표이사 조○민에게도 연락하였다. 또 안○범은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2016. 1. 26.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김○을 정○식과 조○민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더블루케이의 조○민과 고○태는 2016년 1월 하순경 그랜드코리아레저에 80억 원 정도의 사업비가 드는 남녀 성인 배드민턴팀과 펜싱팀을 창단하는 사업에 관련한 용역계약 제안서를 전달하였으나, 이○우는 사업 규모가 너무 커 수용하기 곤란하다는 뜻을 밝혔다. 김○은 이○우에게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요구하면서, 그랜드코리아레저와 더블루케이에게 일반인 팀 대신 장애인 팀을 창단하고 용역계약 대신 선수 관리 및 대리 계약(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그랜드코리아레저와 더블루케이는 2016. 2. 26. 그랜드코리아레저가 장애인 펜싱팀을 창단하고 더블루케이가 그 선수들의 관리 등 업무를 맡기로 합의하였다.

(4) 포스코 펜싱팀 창단 개입
피청구인은 2016. 2. 22. 포스코 회장 권○준과 독대하면서 스포츠팀 창단을 권유하였다. 안○범도 대통령 독대를 마친 권○준에게 체육과 관련하여 포스코가 역할을 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더블루케이의 조○민을 만나보라고 하였다. 권○준은 정○성으로부터 조○민의 연락처를 받아, 포스코 경영지원본부장 황○연에게 조○민을 만나보라고 지시하였다. 이후 피청구인은 안○범에게 '포스코에서 스포츠팀을 창단하는데 더블루케이가 자문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권○준 회장에게 말해 놓았으니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해보라.'고 지시하기도 하였다.

더블루케이 관계자들은 2016. 2. 25. 포스코 측에 포스코가 여자 배드민턴팀을 창단하고 더블루케이가 운영을 담당하는 안을 전달하였으나, 황○연은 경영 적자와 다른 스포츠팀이 이미 존재한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의사를 밝혔다. 안○범은 2016. 2. 26. 정○식으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고 황○연에게 연락하여 통합 스포츠단 창단을 검토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최○원은 2016년 3월 노○일에게 지시하여 포스코가 통합 스포츠단을 창단하고 더블루케이가 운영을 담당하는 사업계획안을 만들어 포스코에 전달하도록 하였다. 포스코 담당 임원은 2016년 3월 경 더블루케이에 통합 스포츠단 창단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대신 계열회사인 주식회사 포스코 피앤에스 산하에 2017년부터 창단 비용 16억 원 상당의 펜싱팀을 창단하고 그 운영을 더블루케이에 맡기기로 하였다.

(5) 케이스포츠클럽 관련 이권 개입
최○원은 김○으로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작성의 2015. 12. 1.자 '종합형 스포츠클럽 운영현황 및 개선방안 보고' 문건 등을 건네받아 이를 박○영에게 주면서 '한국형 선진 스포츠클럽 문화 정착을 위한 케이스포츠클럽 활성화 방안 제안서'라는 문건을 작성하게 하였다. 박○영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문건을 참고하여 지역별로 운영 중인 '종합형 스포츠클럽 지원 사업'에 문제점이 있으므로 '케이스포츠클럽 컨트롤타워'를 새로 만들어 각 지역 스포츠클럽 운영과 관리를 총괄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안서를 작성하였다.

피청구인은 2016년 2월경 교육문화수석비서관 김○률에게 스포츠클럽 관련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하여 각 지역 스포츠클럽의 운영과 관리를 전담할 '컨트롤타워'를 설립하고, 컨트롤타워 운영에 케이스포츠가 관여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라고 지시하였다. 김○률은 피청구인의 지시사항을 김○에게 전달하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검토하도록 하였다. 김○은 문화체육관광부 내부 검토를 거쳐, 각 지역 스포츠클럽의 운영을 지원하는 광역 거점 스포츠클럽을 새롭게 설치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광역 거점 케이스포츠클럽' 운영주체를 공모하는 절차를 진행하여 케이스포츠가 이 절차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케이스포츠가 광역 거점 케이스포츠클럽의 운영주체로 지정되고 더블루케이가 케이스포츠에 대한 경영 자문을 하게 될 경우, 케이스포츠와 더블루케이를 실질적으로 장악한 최○원은 광역 거점 케이스포츠클럽에 배정된 국가 예산 집행 과정에서 상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6) 롯데그룹의 케이스포츠 추가 출연 개입
최○원은 김○을 통해 정부가 전국에 5대 거점 체육시설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받고, 2016년 2월경 박○영에게 케이스포츠가 체육인재 육성을 위해 전국 5대 거점 지역에 체육시설을 건립한다는 내용의 기획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였다. 박○영은 2016년 3월경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 기획안'을 작성하였는데, 위 기획안에는 하남시에 있는 대한체육회의 부지를 1차 후보지로 하고 케이스포츠가 더블루케이와 협력하여 체육시설 건립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피청구인은 2016. 3. 14. 롯데그룹 회장 신○빈을 독대하면서, 정부가 체육인재 육성사업의 하나로 하남 거점을 포함하여 전국 5대 거점 지역에 체육시설을 건립하려고 계획하고 있고 케이스포츠가 이를 추진할 것이니 지원해주기 바란다고 요청하였다. 신○빈은 부회장 이○원에게 피청구인의 자금지원 요청 건을 처리하도록 지시하였고, 이○원은 담당 임원들에게 케이스포츠 관계자들을 만나보라고 지시하였다. 또 피청구인은 면담 뒤 안○범에게도 롯데그룹이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하여 75억 원을 부담하기로 하였으니 그 진행상황을 챙겨보라고 지시하였다. 안○범은 정○식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송부받거나 롯데그룹 임직원들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75억 지원에 관한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피청구인에게 이를 보고하였다.

최○원은 2016년 3월 중순경 정○식과 박○영 및 고○태에게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 사업과 관련하여 롯데그룹에 자금지원을 요청할 것을 지시하였다. 정○식과 박○영은 2016. 3. 17. 롯데그룹 임원을 만나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 기획안'을 제시하면서 체육시설 건립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요청하였고, 박○영과 고○태는 2016. 3. 22. 체육시설 건설비 70억 원과 부대비용 5억 원 등 합계 75억 원의 지원을 요구하였다. 롯데그룹 담당 임원들은 지원을 요구받은 금액의 절반 정도인 35억 원만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으나, 요구대로 따르는 것이 좋겠다는 이○원의 뜻에 따라 2016. 5. 25.부터 5. 31.까지 6개 계열사를 동원하여 케이스포츠에 70억 원을 송금하였다.

아. 직권남용권리행사 및 강요 혐의
최○원과 안○범은 (1) 플레이그라운드의 케이티 광고대행사 선정 및 광고제작비 수령, 현대자동차 광고 수주, (2) 더블루케이의 그랜드코리아레저 장애인 펜싱팀과 포스코 펜싱팀 계약 체결, 롯데그룹의 케이스포츠에 대한 70억 원 추가 지원 등과 관련하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죄로 기소되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피청구인이 최○원, 안○범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함과 동시에 이에 두려움을 느낀 기업 임직원 등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자. 평가
(1) 공익실현의무 위반(헌법 제7조 제1항 등 위반)
① 공무원은 대의민주제에서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국가권력의 행사를 위임받은 사람이므로 업무를 수행할 때 중립적 위치에서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헌법 제7조 제1항은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고 공무원의 공익실현의무를 천명하고 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 원수로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공무원이므로 누구보다도 '국민 전체'를 위하여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이 취임에 즈음하여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복리 증진'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하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의 공익실현의무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므로 특정 정당, 자신이 속한 계급ㆍ종교ㆍ지역ㆍ사회단체, 자신과 친분 있는 세력의 특수한 이익 등으로부터 독립하여 국민 전체를 위하여 공정하고 균형 있게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대통령의 공익실현의무는 국가공무원법 제59조,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 제3항,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다음부터 '부패방지권익위법'이라 한다) 제2조 제4호 가목, 제7조 등 법률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59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하여 공정한 직무수행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 제3항은 "공직자는 공직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개인이나 기관ㆍ단체에 부정한 특혜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패방지권익위법은 제2조 제4호 가목에서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그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거나 법령을 위반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를 부패행위로 규정하고, 제7조에서 "공직자는 법령을 준수하고 친절하고 공정하게 집무하여야 하며 일체의 부패행위와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공직자의 청렴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② 피청구인은 최○원이 추천한 인사를 다수 공직에 임명하였고 이렇게 임명된 일부 공직자는 최○원의 이권 추구를 돕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피청구인은 사기업으로부터 재원을 마련하여 미르와 케이스포츠를 설립하도록 지시하였고,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들에게 출연을 요구하였다. 이어 최○원이 추천하는 사람들을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임원진이 되도록 하여 최○원이 두 재단을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 결과 최○원은 자신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케이를 통해 위 재단을 이권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한편, 피청구인은 기업에 대하여 특정인을 채용하도록 요구하고 특정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도록 요청하는 등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사기업 경영에 관여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청구인은 우수 중소기업 지원이나 우수 인재 추천 등 정부 정책에 따른 업무 수행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특정 개인의 사기업 취업을 알선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피청구인이 채용을 요구한 사람들은 모두 최○원과 관계있는 사람들로 채용된 기업에서 최○원의 이권 창출을 돕는 역할을 하였다. 또 피청구인이 우수 중소기업으로 알고 지원하였다는 플레이그라운드나 더블루케이는 모두 최○원이 미르와 케이스포츠를 이용하여 이권을 창출하려는 의도로 경영하던 회사이고, 케이디코퍼레이션도 최○원의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이다. 그 중 더블루케이는 직원이 대표이사를 포함하여 3명밖에 없고 아무런 실적도 없는 회사인데 이런 회사를 우수 중소기업으로 알고 지원하였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

그 밖에 피청구인은 스포츠클럽 개편과 같은 최○원의 이권과 관련된 정책 수립을 지시하였고, 롯데그룹으로 하여금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을 위한 시설 건립과 관련하여 케이스포츠에 거액의 자금을 출연하도록 하였다.

③ 피청구인의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최○원 등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 할 수 없다. 피청구인은 헌법 제7조 제1항, 국가공무원법 제59조,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 제3항, 부패방지권익위법 제2조 제4호 가목, 제7조를 위배하였다.

④ 피청구인은 최○원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최○원이 여러 가지 문제 있는 행위를 한 것은 그와 함께 일하던 고○태 등에게 속거나 협박당하여 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한다. 그러나 피청구인이 최○원과 함께 위에서 본 것처럼 미르와 케이스포츠를 설립하고 최○원 등이 운영하는 회사에 이익이 돌아가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 사실은 증거에 의하여 분명히 인정된다. 피청구인이 플레이그라운드ㆍ더블루케이ㆍ케이디코퍼레이션 등이 최○원과 관계있는 회사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으로서 특정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해 그 권한을 남용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므로,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등 위배에 해당함은 변함이 없다. 또 최○원이 위와 같은 행위를 한 동기가 무엇인지 여부는 피청구인의 법적 책임을 묻는 데 아무런 영향이 없으므로, 최○원이 고○태 등에게 속거나 협박을 당하였는지 여부는 이 사건 판단과 상관이 없다.

(2)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 침해(헌법 제15조, 제23조 제1항 등 위반)
① 헌법 제15조는 기업의 자유로운 운영을 내용으로 하는 기업경영의 자유를 보장하고, 헌법 제2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한다(헌재 2009. 5. 28. 2006헌바86; 헌재 2015. 9. 24. 2013헌바393 참조). 또 헌법 제37조 제2항은 기본권은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② 피청구인은 직접 또는 경제수석비서관을 통하여 대기업 임원 등에게 미르와 케이스포츠에 출연할 것을 요구하였다. 기업들은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설립 취지나 운영 방안 등 구체적 사항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재단 설립이 대통령의 관심사항으로서 경제수석비서관이 주도하여 추진된다는 점 때문에 서둘러 출연 여부를 결정하였다. 재단이 설립된 이후에도 출연 기업들은 재단의 운영에 관여하지 못하였다.

대통령의 재정ㆍ경제 분야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과 영향력, 비정상적 재단 설립 과정과 운영 상황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청구인으로부터 출연 요구를 받은 기업으로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이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기업 운영이나 현안 해결과 관련하여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 등으로 사실상 피청구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피청구인의 요구를 수용할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웠다면, 피청구인의 요구는 임의적 협력을 기대하는 단순한 의견제시나 권고가 아니라 사실상 구속력 있는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피청구인이 '문화융성'이라는 국정과제 수행을 위해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공권력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준과 요건을 법률로 정하고 공개적으로 재단을 설립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비밀리에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재단법인에 출연하도록 한 피청구인의 행위는 해당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③ 피청구인은 롯데그룹에 최○원의 이권 사업과 관련 있는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 사업 지원을 요구하였고, 안○범으로 하여금 사업 진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도록 하였다. 피청구인은 현대자동차그룹에 최○원의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와 납품계약을 체결하도록 요구하였고, 케이티에는 최○원과 관계있는 인물의 채용과 보직 변경을 요구하였다. 그 밖에도 피청구인은 기업에 스포츠팀 창단 및 더블루케이와의 계약 체결을 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고위공직자인 안○범이나 김○을 이용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피청구인의 요구를 받은 기업은 현실적으로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부담과 압박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고 사실상 피청구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피청구인은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사기업 임원의 임용에 개입하고 계약 상대방을 특정하는 방식으로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으며, 해당 기업들은 피청구인의 요구에 따르기 위해 통상의 과정에 어긋나게 인사를 시행하고 계약을 체결하였다.

피청구인의 이와 같은 일련의 행위들은 기업의 임의적 협력을 기대하는 단순한 의견제시나 권고가 아니라 구속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만약 피청구인이 체육진흥ㆍ중소기업 육성ㆍ인재 추천 등을 위해 이러한 행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지라도 법적 근거와 절차를 따랐어야 한다.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의 사적 자치 영역에 간섭한 피청구인의 행위는 헌법상 법률유보 원칙을 위반하여 해당 기업의 재산권 및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3) 비밀엄수의무 위배
국가공무원법 제60조에 따라 공무원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엄수하여야 한다. 비밀엄수의무는 공무원이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지위에 기하여 부담하는 의무이다(헌재 2013. 8. 29. 2010헌바354등 참조). 특히 대통령은 고도의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중요한 국가기밀을 다수 알게 되므로, 대통령의 비밀엄수의무가 가지는 중요성은 다른 어떤 공무원의 경우보다 크고 무겁다.

피청구인의 지시와 묵인에 따라 최○원에게 많은 문건이 유출되었고, 여기에는 대통령의 일정ㆍ외교ㆍ인사ㆍ정책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정보는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된 것으로 일반에 알려질 경우 행정 목적을 해할 우려가 있고 실질적으로 비밀로 보호할 가치가 있으므로 직무상 비밀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최○원에게 위와 같은 문건이 유출되도록 지시 또는 방치하였으므로, 이는 국가공무원법 제60조의 비밀엄수의무 위배에 해당한다.

7. 공무원 임면권 남용 여부
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공무원에 대한 문책성 인사
(1) 최○원은 딸 정○라가 2013. 4. 14. 상주국제승마장에서 개최된 한국마사회컵 전국 승마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치자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 모○민은 2013년 7월경 문화체육관광부 담당과장으로 하여금 대한승마협회 박○오를 만나 협회의 문제점을 확인하라는 정○성의 말을 듣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룡에게 그 뜻을 전달하면서 대한승마협회의 비리를 조사하라고 하였다. 유○룡은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정책국 국장 노○강과 체육정책과 과장 진○수에게 위 협회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였다. 노○강과 진○수는 대한승마협회를 조사한 뒤 박○오와 그에게 반대하는 협회 사람들 모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유○룡을 거쳐 모○민에게 보고하였고, 모○민은 이 내용을 피청구인에게 보고하였다.

유○룡은 2013. 7. 23. 국무회의에서 '체육단체 운영비리 및 개선방안'을 보고하였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체육 단체 운영실태 전반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는 등 후속 조치를 취하였다. 한편, 피청구인은 2013년 8월경 정○성에게 체육계 비리 척결에 진척이 없는 이유를 파악하라고 지시하였고, 정○성은 이를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에게 전달하였다.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홍○식은 모○민에게 공직기강비서관의 조사 결과를 알려주면서 '노○강과 진○수는 체육 개혁 의지가 부족하고 공무원으로서의 품위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였다.

그 뒤 피청구인은 모○민을 통하여 유○룡에게 '대한승마협회를 포함한 체육계 비리에 대한 구체적 대책'을 주제로 대면 보고하라고 지시하였고, 유○룡은 2013. 8. 21. 모○민이 배석한 자리에서 피청구인에게 보고하였다. 그 자리에서 피청구인은 노○강과 진○수를 문책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다. 유○룡은 정기 인사에 맞추어 노○강과 진○수에 대한 인사를 하려 하였으나, 모○민으로부터 피청구인이 노○강과 진○수에 대한 문책 여부와 그 결과를 확인하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2013. 9. 2.경 이들에 대한 문책성 인사를 시행하였다.

그로부터 약 2년 뒤인 2016년 4월경 피청구인은 노○강이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으로 근무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교육문화수석비서관 김○률에게 노○강을 산하단체로 보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였다. 김○률은 피청구인의 지시내용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덕에게 전달하였으며, 노○강은 2016. 5. 31. 명예퇴직하였다.

(2) 피청구인은 2014년 7월경 후임 장관을 지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룡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직에서 면직하였다. 이어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임으로 김○덕이 임명된 직후인 2014년 9월경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김○범에게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1급 공무원 6명으로부터 사직서를 받으라고 지시하였다. 그 뒤 2014년 10월경 위 6명의 공무원 중 3명의 사직서가 수리되었다.

나. 판단
청구인은 피청구인이 최○원 등의 사익 추구에 방해되는 노○강과 진○수의 문책성 인사를 지시하고 유○룡을 면직하는 한편 1급 공무원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여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을 침해하고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에서 본 사실만으로는 피청구인이 노○강과 진○수에 대하여 문책성 인사를 하도록 지시한 이유가 이들이 최○원의 사익 추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고 보기는 부족하고, 달리 이 사건에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 또 피청구인이 유○룡을 면직한 이유나 대통령비서실장이 1급 공무원 6인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도록 지시한 이유도 이 사건에서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이 부분 소추사유는 받아들일 수 없다.

8. 언론의 자유 침해 여부
가. 세계일보 사장 해임 등
세계일보는 2014. 11. 24.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정○회가 정부 고위직 인사에 개입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감찰 조사를 벌였다고 보도하였다. 이어 28일에는 대통령비서실에서 작성된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브이아이피(VIP) 측근(정○회) 동향'이라는 문건 등 이른바 '정○회 문건'을 공개하였다. 이 문건은 2014. 1. 6.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것으로, 최○원의 남편 정○회가 대통령비서실 소속 공무원을 포함한 이른바 '십상시'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청와대 내부상황을 확인하고 의견을 제시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세계일보의 이 보도 이후 피청구인은 2014. 12. 1.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청와대 문건의 외부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이고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하며 문건 유출을 비판하였다. 그 뒤 2015. 1. 31. 세계일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통일교의 한○자 총재는 조○규를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한다고 통고하였고, 조○규는 2015. 2. 27. 해임되었다.

나. 판단
피청구인의 청와대 문건 유출에 대한 비판 발언 등을 종합하면 피청구인이 세계일보의 정○회 문건 보도에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 표명만으로 세계일보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청구인은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한○자에게 조○규의 해임을 요구하였다고 주장하나, 청와대 고위관계자 중 누가 해임을 요구하였는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조○규와 세계일보 기자 조○일이 조○규의 해임에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취지로 증언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하였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주식회사 세계일보에 대한 사실조회결과, 조○규가 세계일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취하한 경위, 그리고 세계일보가 조○규를 상대로 명예훼손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조○규의 대표이사직 해임에 피청구인이 관여하였다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 따라서 이 부분 소추사유도 받아들일 수 없다.

9. 생명권 보호의무 등 위반 여부
가. 세월호 침몰 경과
여객선 세월호는 수학여행을 가는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을 포함한 승객 443명과 승무원 33명 등 476명을 태우고 2014. 4. 15.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제주도로 출항하였다. 세월호는 항해 중 2014. 4. 16. 08:48경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방 1.8해리 해상에서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세월호 승객이 08:54경 119로 사고 사실을 신고하였고 이 신고는 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에 전달되었으며, 세월호 항해사 강○식도 08:55경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에 구조를 요청하였다. 세월호 승무원은 08:52경부터 09:50경까지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배 안에서 기다리라는 안내방송을 여러 차례 하였다.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경비정 123정은 09:30경 사고현장 1마일 앞 해상에 도착하였는데, 세월호는 09:34경 이미 약 52도 기울어져 복원력을 상실하였다. 123정은 세월호에 접근하여 선장 이○석과 일부 승무원을 구조하였고, 09:30경부터 09:45경 사이에는 해양경찰 소속 헬기도 사고 현장에 도착하여 승객들을 구조하였다. 그런데 안내방송에 따라 배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에게 퇴선안내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123정의 승조원들도 세월호 승객에게 탈출하도록 안내하거나 퇴선을 유도하지 않았다. 10:21경까지 해경의 선박과 헬기 및 인근에 있던 어선 등이 모두 172명을 구조하였으나, 승객 및 승무원 중 304명은 배 안에서 탈출하지 못하였고 이들은 모두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당일 날씨가 맑고 파도가 잔잔하였으며 사고 무렵 해수 온도는 12.6도 정도였다. 123정 등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가 승객들에게 퇴선안내를 신속하게 하였다면 더 많은 승객을 구조하여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 피청구인의 대응
피청구인은 세월호가 침몰된 날 청와대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러 있었다. 피청구인은 10:00경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가 침수 중이라는 서면 보고를 받고 국가안보실장 김△수에게 전화하여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김△수는 당시 피청구인에게 텔레비전을 통해 사고보도를 볼 것을 조언하였다고 국회에서 증언하였다. 피청구인은 10:22경과 10:30경 김△수와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하여 인명 구조를 지시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날 11:01경부터 세월호에 승선한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모두 구조되었다고 사실과 다른 보도가 방송되기 시작했는데, 11:19 에스비에스가 정정보도를 시작하여 11:50경에는 대부분의 방송사가 오보를 정정하였다. 당시 국가안보실은 현장에서 구조를 지휘하는 해양경찰과 연락을 주고받아 구조가 순조롭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학생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방송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청구인은 10:40경부터 12:33경까지 국가안보실과 사회안전비서관으로부터 수차례 보고서를 받아 보았고, 11:23경 국가안보실장 김△수로부터 전화 보고도 받았다고 주장한다. 피청구인의 주장과 같이 비서실의 보고서를 받아 보고 비서진과 통화하였다면 당시 선실에 갇혀 탈출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던 당시의 심각한 상황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11:34경 외국 대통령 방한시기의 재조정에 관한 외교안보수석실의 보고서를 검토하고, 11:43경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문제점에 관한 교육문화수석실의 보고서를 검토하는 등 일상적 직무를 수행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청구인이 제출한 통화기록에 따르면 피청구인은 12:50경 고용복지수석비서관 최○영과 10분간 통화하였는데, 당시 기초연금법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한편, 피청구인은 13:07경 구조된 사람이 370명에 이른다고 잘못 계산된 사회안전비서관의 보고서를 받았고, 13:13경 국가안보실장도 피청구인에게 전화로 370명이 구조된 것으로 잘못 보고하였다고 한다. 피청구인은 14:11경 국가안보실장에게 정확한 구조상황을 확인하도록 지시하였고, 14:50경 구조인원이 잘못 계산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비로소 인명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무렵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지시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여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생명ㆍ신체의 안전에 관한 권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권이고, 국민의 생명ㆍ신체의 안전이 위협받거나 받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 국가는 그 위험의 원인과 정도에 따라 사회ㆍ경제적 여건과 재정사정 등을 감안하여 국민의 생명ㆍ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에 필요한 적절하고 효율적인 입법ㆍ행정상의 조치를 취하여 그 침해의 위험을 방지하고 이를 유지할 포괄적 의무를 진다(헌재 2008. 12. 26. 2008헌마419등 참조).

피청구인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한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여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월호 참사로 많은 국민이 사망하였고 그에 대한 피청구인의 대응조치에 미흡하고 부적절한 면이 있었다고 하여 곧바로 피청구인이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 밖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이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라.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 여부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의 취임 선서를 규정하면서 대통령으로서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언급하고 있다. 헌법 제69조는 단순히 대통령의 취임 선서의 의무만 규정한 것이 아니라 선서의 내용을 명시적으로 밝힘으로써 헌법 제66조 제2항 및 제3항에 따라 대통령의 직무에 부과되는 헌법적 의무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그 내용을 구체화하는 규정이다.

대통령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는 헌법적 의무에 해당하지만,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와는 달리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있는 성격의 의무가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 대통령이 임기 중 성실하게 직책을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한 현행 헌법 하에서 대통령은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국민에 대하여 직접적으로는 책임을 질 방법이 없고, 다만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여부가 간접적으로 그가 소속된 정당에 대하여 정치적 반사이익 또는 불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뿐이다.

헌법 제65조 제1항은 탄핵사유를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절차는 법적 관점에서 단지 탄핵사유의 존부만을 판단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에서 청구인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그 자체로 소추사유가 될 수 없어,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마. 결론
이 부분 소추사유도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10. 피청구인을 파면할 것인지 여부
가. 피청구인은 최○원에게 공무상 비밀이 포함된 국정에 관한 문건을 전달했고, 공직자가 아닌 최○원의 의견을 비밀리에 국정 운영에 반영하였다. 피청구인의 이러한 위법행위는 일시적ㆍ단편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피청구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때부터 3년 이상 지속되었다. 피청구인은 최○원이 주로 말씀자료나 연설문의 문구 수정에만 관여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대통령의 공적 발언이나 연설은 정부 정책 집행의 지침이 되고 외교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므로 말씀자료라고 하여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더구나 피청구인의 주장과 달리 최○원은 공직자 인사와 대통령의 공식일정 및 체육정책 등 여러 분야의 국가정보를 전달받고 국정에 개입하였다.

또한 피청구인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 용도로 남용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최○원의 사익 추구를 도와 준 것으로서 적극적ㆍ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국가의 기관과 조직을 동원하였다는 점에서 그 법 위반의 정도가 매우 엄중하다.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과 관련하여 피청구인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였다고 주장하지만 기업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던 사항은 거의 없었다. 기업들은 출연금이 어떻게 쓰일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전경련에서 정해 준 금액을 납부하기만 하고 재단 운영에는 관여하지 못하였다. 미르와 케이스포츠는 피청구인의 지시로 긴급하게 설립되었지만 막상 설립된 뒤 문화와 체육 분야에서 긴요한 공익 목적을 수행한 것도 없다. 오히려 미르와 케이스포츠는 실질적으로 최○원에 의해 운영되면서 주로 최○원의 사익 추구에 이용되었다.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고 주권 행사를 위임받은 대통령은 그 권한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합법적으로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그 성질상 보안이 요구되는 직무를 제외한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최○원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면서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피청구인이 행정부처나 대통령비서실 등 공적 조직이 아닌 이른바 비선 조직의 조언을 듣고 국정을 운영한다는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으나, 그때마다 피청구인은 이를 부인하고 의혹 제기 행위만을 비난하였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정○회 문건을 보도하였을 때에도 피청구인은 비선의 국정 개입 의혹은 거짓이고 청와대 문건 유출이 국기문란 행위라고 비판하였다. 이와 같이 피청구인이 대외적으로는 최○원의 존재 자체를 철저히 숨기면서 그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였기 때문에, 권력분립원리에 따른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 등 민간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잘못을 시정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하였기 때문에,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일한 안○범과 김○ 등 공무원들이 최○원과 공모하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저질렀다는 등 부패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중대한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피청구인이 최○원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최○원 등의 사익 추구를 도와주는 한편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것은, 대의민주제의 원리와 법치주의의 정신을 훼손한 행위로서 대통령으로서의 공익실현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다.

나. 피청구인은 최○원의 국정 개입 등이 문제로 대두되자 2016. 10. 25. 제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국민에게 사과하였으나, 그 내용 중 최○원이 국정에 개입한 기간과 내용 등은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진정성이 부족하였다. 이어진 제2차 대국민 담화에서 피청구인은 제기된 의혹과 관련하여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고 검찰 조사나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도 수용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검찰이나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여 피청구인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위와 같이 피청구인은 자신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에 대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대신 국민을 상대로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이 사건 소추사유와 관련하여 피청구인의 이러한 언행을 보면 피청구인의 헌법수호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 이상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청구인의 이 사건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게 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

11. 결론
피청구인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 이 결정은 아래 12.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의견과 13. 재판관 안창호의 보충의견이 있는 외에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것이다.

12.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의견
피청구인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부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다수의견과 같다.

우리는 피청구인이 참사 당일 시시각각 급변하는 상황에 관한 파악과 대처 과정에서 자신의 법적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이 사유만으로는 파면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므로 다음과 같이 보충의견을 밝힌다.

가.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이 탄핵 사유가 되는지
(1) 헌법 제69조는 대통령 취임선서의 내용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규정한다. 헌법 제69조는 헌법 제66조 제2항 및 제3항에 의하여 대통령의 직무에 부과되는 헌법적 의무를 다시 강조하고 내용을 구체화하는 규정이므로,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헌법적 의무에 해당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규범적으로 이행이 관철될 수 있는 성격의 의무가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서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그러나 직책수행의 성실성에 관한 추상적 판단에 그치지 않고,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대통령에게 성실한 직책수행의무가 구체적으로 부여되는 경우에 그 의무 위반은 헌법 또는 법률 위반이 되어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탄핵 사유를 구성한다.

(2) 국가공무원법 제56조는 '모든 공무원은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라고 공무원의 성실 의무를 규정하고 있어 어느 공무원이든 이를 위반한 경우 징계사유가 된다(같은 법 제78조 제1항,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 별표 1). 국가공무원법 제56조는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대통령이라고 하여 이를 달리 적용하여야 할 명문 규정이나 해석상 근거는 없다. 따라서 대통령도 국가공무원법 제56조의 성실 의무에 위반한 경우에는 사법적 판단이 가능하고 대통령에게도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공무원들에게는 징계 사유가 되는 행위를 최고위 공무원인 대통령이 행한 경우에는 아무런 법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결과가 되어 형평에 반하기 때문이다.

(3)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고(헌법 제66조 제1항, 제2항), 국가의 제1 임무는 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다. 우리 헌법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을 영원히 확보할 것"(전문)과,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4조 제6항)고 선언하고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는 이러한 국가의 의무 이행에 관한 최고책임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국가주권 또는 국가를 구성하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체계 등 국가의 핵심요소나 가치, 다수 국민의 생명과 안전 등에 중대한 위해가 가해질 가능성이 있거나 가해지고 있는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한 경우,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국가위기 상황에 대한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국가와 국민을 보호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국가위기에는 군사적 위협과 같은 전통적 안보 위기뿐만 아니라, 자연재난이나 사회재난, 테러 등으로 인한 안보 위기 역시 포함되며, 현대 국가에서는 후자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처럼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부여된 경우에는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단순히 도의적, 정치적 의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법적 의무이고, 그 불이행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 헌법 제69조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 제56조의 성실 의무는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부여된 경우 탄핵사유에서 말하는 헌법 또는 법률 위반의 기준이 되는 규범이 된다.

(4)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첫째, 국가주권 또는 국가를 구성하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체계 등 국가의 핵심요소나 가치, 다수 국민의 생명과 안전 등에 중대한 위해가 가해지거나 가해질 가능성이 있는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하여야 하고(작위의무 발생), 둘째, 대통령이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 및 안전을 보호하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어야 한다(불성실한 직무수행).

나. 피청구인이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를 위반하였는지
(1) 인정하는 사실
(가) 다수의견과 중복되지 않는 범위에서 세월호 사건의 경과 및 당시의 정황을 살펴본다. 세월호는 2014. 4. 16. 08:48경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방 1.8해리 해상에 이르러 선체가 좌현 측으로 급속히 기울어졌고, 복원력이 상실되어 결국 좌현으로 약 30도 기울었다. 세월호는 09:34경 52.2도로 기울면서 그 침수한계선이 수면에 잠긴 후, 점점 급속히 기울어지다가 10:10:43경 77.9도가 되었고 10:17:06경 108.1도로 전복되었다.

10:10경 4층 좌현 선미 쪽 선실에 있었던 고등학생 11명이 갑판으로 이동하여 구조되었다. 위 선실에 있던 승객들 중 일부는 10:13경까지 선미 쪽 출입문을 통해 세월호에서 탈출하였다. 10:19경 세월호 우현 난간에서 10명이 넘는 승객이 마지막으로 탈출하였다. 10:21경 마지막 생존자가 구조되었다. 서해해양경찰청 소속 특공대원 7명은 세월호가 침몰한 후인 11:35경에야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당일 선내에 진입하지 못하였다.

당일 09:00경은 조류의 흐름이 바뀌는 시기로서 인근 해역의 조류의 세기는 0.2노트 또는 0.5노트였고, 10:00경은 0.4노트 또는 1.9노트였으며, 10:30경까지 그 곳 조류의 세기는 2노트를 넘지 않았다. 바다로 뛰어든 승객들은 큰 움직임 없이 떠 있다가 구명뗏목이 펼쳐지자 그쪽으로 헤엄쳐 다가갈 수 있었다. 구조헬기에서 바다로 내려가 구명뗏목을 이동시켰던 권□준은 법원에서 구명뗏목을 이동시키는 데에 조류의 영향은 크게 느끼지 못했고 세월호의 선체가 조류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진술하였다. 실제로 세월호가 전복될 당시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해양경찰(이하 '해경'이라 한다) 또는 어선에 의해 구조되어 다른 선박으로 옮겨졌다.

123정에는 약 50명의 인원이 승선할 수 있었는데 측면에 사다리가 있어 바다에 표류하는 인원이 쉽게 승선할 수 있었다. 세월호 주변에는 전라남도 소속 전남 201호가 10:06경 도착하였으며, 당시 10척 정도의 선박들이 근처에서 대기하였다. 전남 201호보다 먼저 도착한 어선 중에는 50명 정도의 인원이 승선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고, 어선들의 높이가 낮아 어선에서 바다에 표류하는 사람을 쉽게 올릴 수 있었다. 그밖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둘라에이스호와 드래곤에이스11호도 세월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 국가안보실은 당일 09:19경 와이티엔(YTN)이 보도한 세월호 사고 관련 속보를 보고 09:20경 및 09:22경 해경에 유선으로 문의하여 '승선인원 474명의 배가 침수되어 기울었다'는 답변을 들었다. 국가안보실은 09:24경 청와대 주요 직위자에게 업무용 휴대전화로 "474명 탑승 여객선 침수신고 접수, 확인 중"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였고, 09:33경 해경으로부터 '승선원 450명, 승무원 24명이 승선한 6,647톤급 세월호가 침수 중 침몰위험이 있다고 신고하여, 해경 경비함정 및 수색 항공기에 긴급 이동지시하고, 인근 항해선박 및 해군함정에 협조요청 하였다'는 상황보고서를 팩스로 전파받았다.

09:10경 해경에 중앙구조본부가, 09:39경 국방부에 재난대책본부가, 09:40경 해양수산부에 중앙사고수습본부가, 09:45경 안전행정부(이하 '안행부'라 한다)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이라 한다)가 설치되었다. 해양수산부는 09:40경 위기경보 '심각'단계를 발령하였다. 국가안보실은 09:54경 해경과의 유선 연락을 통하여 그 시각 세월호가 60도 정도 기울었고 구조인원이 56명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며, 10:30경 해경에 '완전히 침수되어 침몰된 겁니까?'라고 문의하였다. 국가안보실은 10:52경 해경으로부터 세월호가 전복되어 선수만 보이고, 탑승객들은 대부분 선실에서 나오지 못하였다는 답변을 들었다. 11:10경부터는 해경 513호에서 송출한 이엔지(ENG) 영상이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상황실(이하 '청와대 상황실'이라 한다)로 실시간으로 송출되었다.

피청구인은 당일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러 있다가, 17:15경 중대본을 방문하여 구조 상황 등을 보고받고 지시하였다.

(2) 작위의무의 발생
세월호 사건은 총 476명의 탑승객을 태운 배가 침몰하여 304명이 사망한 대규모 재난이자 참사이다. 앞서 보았듯이 세월호는 2014. 4. 16. 08:48경 좌현으로 약 30도 기울면서 빠른 속도로 기울다가 10:17경 전복되었는데, 그 동안 승객들의 생명에 대한 위험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선체가 물에 완전히 잠긴 후에도 세월호의 크기와 구조를 고려할 때 탑승자들이 한동안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는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하여도 다수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이 가해지거나 가해질 가능성이 있는 국가 위기 상황에 해당함이 명백하므로, 피청구인은 상황을 신속히 인식하고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국민의 생명, 신체를 보호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부담하게 되었다.

(3) 불성실한 직무수행의 존재
(가) 피청구인의 주장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당일 피청구인의 주요 행적은 다음과 같다. 2014. 4. 16.은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었고, 피청구인의 몸이 좋지 않아서 본관 집무실에 가지 않고 관저에 머물면서 각종 보고서를 검토하였고 이메일, 팩스, 인편으로 전달된 보고를 받거나 전화로 지시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였다.

10:00경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사건에 대하여 처음 서면보고를 받아 사고 발생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내용은 사고 일시, 장소, 사고 선박명 및 톤수와 승선원(474명), 경위(세월호가 08:58경 "침수 중" 조난신고), 구조상황(현재까지 56명 구조), 구조세력 현황 등이었다. 10:15경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상황을 파악한 후,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에 만전을 기)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하였고, 10:22경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샅샅이 뒤져서 철저히 구조해라'라고 강조 지시하였다. 10:30경 해경청장에게 전화하여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 후 15:30경까지 세월호의 침몰 상황과 구조 현황 등에 대하여 국가안보실로부터 5회(서면 2회, 유선 3회), 사회안전비서관으로부터 서면으로 7회, 행정자치비서관실로부터 서면으로 1회 보고받아 검토하고 필요한 지시를 하였다. 안○근 비서관이 오전에 관저로 피청구인을 찾아와서, 정○성 비서관이 점심식사 후 세월호 상황을 대면보고 하였다. 대통령이 현장 상황에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구조 작업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구조 상황에 대한 진척된 보고를 기다렸다.

당시 '학생 전원구조' 등 언론의 오보와 관계기관의 잘못된 보고로 인하여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하였다(피청구인의 의견서). 13:07경 및 13:13경 사회안전비서관실과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190명이 추가 구조되어 총 370명이 구조되었다는 내용의 보고를 받았다. 14:11경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정확한 구조 상황을 확인하도록 지시하였고, 국가안보실장이 14:50경 위 보고가 잘못되었다고 최종 확인하자 15:00경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중대본 방문 준비를 지시하였다. 15:35경 미용 담당자가 들어와서 약 20분 간 머리 손질을 하였다. 16:30경 경호실에서 중대본 방문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보고하여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17:11경 사회안전비서관실의 보고서를 받아 검토하였고, 17:15경 중대본을 방문하여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구조에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는 등,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였다. 따라서 피청구인은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를 위반하지 아니하였다.

(나) 판단
1) 위기상황의 인식
가) 앞서 보았듯이 국가안보실은 09:19경 방송으로 처음 알고 해경에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09:24경 청와대 주요직위자에게 업무용 휴대전화로 "474명 탑승 여객선 침수신고 접수, 확인 중"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였다. 따라서 만약 피청구인이 09:00에 집무실로 출근하여 정상 근무를 하였다면, 위와 같이 청와대 주요직위자에게 전파된 내용을 당연히 보고받았을 것이므로, 09:24경에는 발생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피청구인이 당일 오전 집무실로 정상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면서 불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함에 따라, 구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에 30분 이상 발생 사실을 늦게 인식하게 되었다.

나) 다음과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당일 15:00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였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① 국가안보실은 09:33경 해경으로부터 '승선원 450명, 승무원 24명이 승선한 6,647톤급 세월호가 침수 중 침몰위험이 있다고 신고하여, 해경 경비함정 및 수색 항공기에 긴급 이동지시하고, 인근 항해선박 및 해군함정에 협조요청 하였다'는 상황보고를 받았다. 09:10경 해경에 중앙구조본부가, 09:39경 국방부에 재난대책본부가, 09:40경 해양수산부에 중앙사고수습본부가, 09:45경 안행부에 중대본이 설치되었다. 해양수산부는 09:40경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하였는데, 그 당시 적용되던 「해양사고(선박)」위기관리 실무매뉴얼(2013. 6.)은 대규모 선박사고로 인해 국가적 차원의 대응 및 조치가 요구되는 경우 대통령실(위기관리센터) 및 안행부와 사전 협의하여 최상위단계인 '심각' 단계의 위기 경보를 발령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안보실은 늦어도 09:40경 이전에 상황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알았고, 피청구인이 09:00에 집무실에 출근하여 정상 근무를 하였다면 피청구인 역시 당일 09:40경에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② 피청구인이 제출한 국가안보실 명의의 '진도 인근 여객선(세월號) 침수, 승선원 474명 구조작업 中(1보)(2014. 4. 16. 10:00)' 보고서에는 '현재까지 56명 구조'라는 구조인원은 기재되어 있으나, 세월호의 기울기 등 상태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피청구인은 10:00경 보고로 사태를 파악한 즉시 응당 국가안보실장에게 세월호의 상태를 확인하였어야 하고, 그랬다면 세월호의 당시 기울기가 60도 정도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위 보고서에 의하면 474명이 승선한 배가 침수 중이고, 사건 발생 1시간 이상이 지났는데도 그중 불과 56명만 구조되었고 400명 이상이 구조되지 않았다는 것이므로, 매우 심각하고 급박한 상황이라는 점을 곧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③ 김△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당일 10:15경 피청구인과 통화하면서 '와이티엔(YTN)을 같이 보시면서 상황을 판단하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고 증언하였다. 11:10경부터는 해경 513호에서 송출한 이엔지(ENG) 영상이 청와대 상황실로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었으므로, 피청구인이 당시 청와대 상황실에 위치하였다면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따라서 10:00경 이후에도 피청구인이 조금만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 심각성을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④ 피청구인은 그 후 11:28경, 12:05경, 12:33경 사회안전비서관실로부터 세월호의 침몰 상황 보고서를 받아 검토하였고, 12:54경 행정자치비서관실로부터 세월호 침몰 관련 중대본 대처 상황 보고서를 수령하여 검토하였다고 주장한다. 세월호는 오전 11시 이전에 전복되어 침몰하였으므로, 실제로 위와 같이 보고들이 이루어졌고 그 보고 내용이 거짓으로 작성되지 않았다면, 당시 세월호의 침몰 사실이 반영되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피청구인이 실제 위 보고서들을 모두 검토하였다면 상황의 심각성을 15:00경에야 깨달았을 리가 없다.

⑤ 피청구인은 관계기관의 잘못된 보고와 언론사의 오보 때문에 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하지만 피청구인이 당일 국가안보실이나 비서실 등으로부터 오보들을 보고받았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 앞서 보았듯이 청와대는 10:30경 이미 세월호가 배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기울었고, 10:52경 세월호는 전복되어 선수만 보이고, 탑승객들은 대부분 선실 안에서 나오지 못하였다는 사실도 인지하였으므로, 10:36 케이비에스의 낙관적인 보도가 있었다 하여 국가안보실 등이 피청구인에게 위 보도를 그대로 보고하였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 청와대는 11:07경 해경에 문의하여 '학생 전원구조'라는 언론보도가 해경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보도라는 사실을 그 시점에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오보는 피청구인이 10:00경 상황에 관한 심각성을 인식하였으리라는 판단에 지장을 주지 아니한다.

⑥ 피청구인은 당일 13:07경 사회안전비서관실 및 13:13경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190명이 추가 구조되어 총 370명이 구조되었다'는 내용의 보고를 받아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하였다가, 국가안보실장이 14:50경 위 보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보고하자 15:00경 비로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중대본 방문을 바로 지시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안보실은 세월호가 침몰한 후에도 2시간 이상 구조자 수를 파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조자 수가 2배로 증가한 보고를 받았으므로 이를 재차 확인하였어야 한다. 피청구인이 이를 그대로 보고받았다 하더라도 당시 보고된 세월호 탑승객 474명에서 이를 제하면 104명의 승객이 아직 구조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으므로 370명 구조를 이유로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판단하였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고, 피청구인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시점 또는 인식 가능하였던 시점이 15:00경으로 늦어질 수 없다.

무릇 국가의 지도자는 안전한 상황보다는 위험한 상황에 대하여 훨씬 많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는 법이고 그래야 마땅하다. 피청구인의 주장대로라면 피청구인은 상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에 대하여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낙관적 보고에만 관심을 가져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한 셈이 되는데, 이는 그 자체로 위기 상황에서 피청구인의 불성실함을 드러내는 징표이다.

다) 소결
피청구인은 09:40경, 늦어도 10:00경에는 세월호 사건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인지하였거나, 조금만 노력을 기울였다면 인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15:00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였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2) 피청구인의 대처
가) 피청구인이 하였어야 하는 행위
피청구인은 늦어도 10:00경에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였거나 인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그 즉시 재난에 관한 국가의 모든 정보가 수집되고 주요 관계기관과의 직통 연락망이 구축되어 있는 청와대 상황실로 가서, 실시간으로 현황을 보고받으면서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게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신속하고 적절하게 관계기관의 재난대응을 총괄ㆍ지휘ㆍ감독하였어야 한다. 당일 10:00경 세월호 주위 해역에 승객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10대 이상의 선박들이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승객들이 퇴선하여 모두 표류하더라도 구조가 가능한 상황이었고, 헬기 및 항공기도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나)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문 행위
당일은 휴일이 아니었으므로, 피청구인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업무시간 중에는 집무실에 출근하여 업무를 수행하여야 했다. 피청구인은 당일 오전부터 17:15 중대본을 방문하기 전까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관저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휴식과 개인 생활을 위한 사적인 공간이므로, 그곳에서의 근무는 직무를 위한 모든 인적, 물적 시설이 완비된 집무실에서의 근무와 업무의 효율, 보고 및 지시의 용이성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피청구인이 업무시간 중에 집무실에 있지 않고 관저에 머무르게 되면, 긴급한 순간에 참모들은 대통령의 위치부터 파악하여야 하므로 보고에 지장이 생기게 될 것은 명백하다.

특히 대형 재난이 발생하여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국가위기 상황의 경우에는 최고행정책임자인 피청구인은 즉각적인 의사소통과 신속하고 정확한 업무수행을 위하여 청와대 상황실에 위치하여야 한다. 따라서 피청구인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10:00경에는 시급히 출근하여 청와대 상황실에서 상황을 파악, 지휘하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피청구인은 그 심각성을 인식한 시점부터 약 7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관저에 있으면서 전화로 다음에서 살피는 것처럼 원론적인 지시를 하였다.

다)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각종 지시
① 피청구인은 당일 10:00경부터 12:05경까지 국가안보실로부터 4회(서면 3회, 유선 1회), 사회안전비서관으로부터 4회(서면)에 걸쳐 세월호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는 등, 17:15 중대본을 방문하기 전까지 총 12회의 서면보고와 3회의 유선보고를 받아 검토하였고, 5회의 유선지시를 하였다고 주장하나, 다음에서 보듯이 그 중 대부분은 그러한 지시나 검토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피청구인은, 10:15경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하였고, 10:22경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샅샅이 뒤져서 철저히 구조해라'라고 강조 지시하였으며, 10:30경 해경청장에게 전화하여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하였다고 주장한다.

피청구인은 12:50경 당시 고용복지수석으로부터 기초연금법 관련 국회 협상 상황에 대하여 10분 간 전화로 보고를 받은 통화기록이 있다고 하였다. 국가안보실장 및 해경청장과 피청구인이 실제로 통화를 하였다면 그 통화기록도 당연히 존재할 것인데, 피청구인은 이를 제출하지 아니하고 그 통화기록이 있다는 주장도 하지 않았으므로, 위와 같은 통화가 실제로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청와대와 해경 사이의 10:25경 통화 녹취록을 보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하라고 하면서 이는 피청구인의 지시이니 해경청장에게 전달하라'고 기재되어 있다. 국가안보실장과 피청구인 사이의 통화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이 녹취록이 유일한데, 이에 의하면 피청구인의 지시는 그 무렵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녹취록에 해경청장에 대한 특공대 투입 등 지시를 전달하거나 그 지시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내용의 대화는 없다. 또한 김○균 당시 해경청장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당일 09:53경 이미 특공대를 투입하라고 지시하였다고 증언하였다. 피청구인이 실제로 해경청장과 통화를 하였다면 해경청장이 이미 지시한 사항을 보고하였을 것인데도 같은 내용을 다시 지시할 수 없을 것이고, 세월호는 10:17:06경 108.1도로 전복되어 급속도로 침몰하고 있어 잠수를 통하여 승객을 구조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해경청장에게 지시하였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

② 지시의 내용에 관하여 본다. 피청구인 주장의 최초 지시 내용은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이다. 위 내용은 지시받는 자에게 매우 당연하고 원론적인 내용으로서, 급박한 위험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어떠한 지도적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 이 지시에는 현장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관한 인식이 없고, 어느 해법을 강구할지에 관하여 어떠한 고민도 담겨 있지 않다.

세월호는 당일 10:17:06경 108.1도로 전복되었으므로, 위 지시가 있었다는 10:15경에는 선체가 전복되어 모든 객실의 출입구가 물에 잠긴 상황이었다. 재난은 시시각각으로 상황이 급변하므로 그때그때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시해야 하는데, 피청구인은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응하려는 관심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위와 같이 구체성이 없는 지시를 한 것이다.

라) 결국, 피청구인은 세월호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시점부터 약 7시간이 경과한 중대본 방문 이전 까지 관저에 계속 머물면서 상황에 맞지 않아 부적절한 전화 지시를 하였을 뿐이다. 그 내용과 피청구인의 행적을 볼 때, 피청구인이 위기에 처한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심도 있는 대응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마) 대규모 재난과 같은 국가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그 상황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효과까지 갖는다. 실질적으로는,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이며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위기 상황을 지휘, 감독함으로써 경찰력, 행정력, 군사력 등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적으로 발휘할 수 있고, 인력과 물적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으므로, 구조 및 위기 수습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척될 수 있다. 상징적으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재난 상황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자체로 구조 작업자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고,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구조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며, 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정부가 위기 상황의 해결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음을 알 수 있어 최소한의 위로를 받고 그 재난을 딛고 일어설 힘을 갖게 한다.

바) 진정한 국가 지도자는 국가위기의 순간에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알맞게 대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 및 그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국민에게 어둠이 걷힐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 진정한 지도자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실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이 국정 최고책임자의 지도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국가 구조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전형적이고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전쟁이나 대규모 재난 등 국가위기가 발생하여 그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급격하게 흘러가고, 이를 통제, 관리해야 할 국가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 4. 16.이 바로 이러한 날에 해당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국민 모두가 어느 때보다도 피청구인이 대통령의 위치에서 최소한의 지도력이라도 발휘해 국민 보호에 앞장서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피청구인은 그날 저녁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재난이 발생하여 최상위 단계인 '심각' 단계의 위기 경보가 발령되었는데도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알았고 상황을 파악하고 승객 구조를 지원하기 위하여 대통령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은 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400명이 넘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이 발생한 그 순간에 피청구인은 8시간 동안이나 국민 앞에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였다.

(4) 소결
이상과 같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급박한 위험이 초래되어 대규모 피해가 생기거나 예견되는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하였음에도, 상황의 중대성 및 급박성 등을 고려할 때 그에 대한 피청구인의 대응은 현저하게 불성실하였다. 피청구인은 최상위 단계의 위기 경보가 발령되었고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였음에도 재난 상황을 해결하려는 의지나 노력이 부족하였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여야할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발생하였음에도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으므로, 헌법 제69조 및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 따라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부여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

다. 결론
어떠한 법위반이 있는 경우에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할 것인지는 파면결정을 통하여 헌법을 수호하고 손상된 헌법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요청될 정도로 대통령의 법위반행위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지, 또는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박탈해야 할 정도로 법위반행위를 통하여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것인지를 판단하여 정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대통령의 성실의무 위반을 일반적 파면사유로 볼 경우 사소한 성실의무 위반도 파면사유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민주적 정당성과 헌정질서의 막중함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성실의무 위반을 파면사유로 삼기 위하여는 그 위반이 당해 상황에 적용되는 행위의무를 규정한 구체적 법률을 위반하였거나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한 경우와 같은 중대한 성실의무 위반으로 한정함이 상당하다. 이 사건에서 피청구인은 국가공무원법 상의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당해 상황에 적용되는 행위의무를 규정한 구체적 법률을 위반하였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위에서 살핀 것처럼 성실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하였지만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으나, 이 사유만 가지고는 국민이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상실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워 파면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앞으로도 국민 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그 직책을 수행할 것이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불성실 때문에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므로 우리는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다.

13. 재판관 안창호의 보충의견
나는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반행위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하여 피청구인이 파면되어야 한다는 법정의견과 뜻을 같이 한다. 나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로 비판되는 우리 헌법의 권력구조가 이러한 헌법과 법률 위반행위를 가능하게 한 필요조건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이 사건 심판의 헌법적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향후 헌법개정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보충의견을 개진한다.

가. 우리 헌정사와 제왕적 대통령제
현행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헌법의 근본적 성격을 결정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규정하는 핵심개념이다. 그런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헌법은 이상적인 형태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환경과 그 시대의 이념적 지향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된다.

우리 헌법은 제정 이후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아홉 차례의 개헌이 있었다. 4․19 혁명 직후 의원내각제 도입과 3․15 부정선거관련자 처벌을 위한 헌법개정을 제외한 나머지 헌법개정은 주로 대통령의 선출방식ㆍ임기ㆍ지위ㆍ권한 등과 관련해 이루어졌다. 그동안 우리 헌법이 채택한 대통령제는 대통령에게 정치권력을 집중시켰음에도 그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미흡한 제왕적 대통령제로 평가된다.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여야합의로 개정된 것으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정치공동체를 실현하려는 국민의 열망을 담고 있다. 대통령직선제를 규정하여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였으며, 대통령임기를 5년 단임제로 하고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등을 폐지하여 장기독재의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부활시키고 헌법재판소를 신설하는 등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기본권규정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 심판은 현행 헌법 아래에서도 정경유착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상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권위주의적 권력구조를 청산하고자 했던 현행 헌법에서 이러한 폐해가 근절되지 않고 계속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나. 현행 헌법상 권력구조의 문제점
1987년 대통령직선제 헌법개정으로 대통령 '권력형성'의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는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대통령 '권력행사'의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는 과거 권위주의적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법률안제출권과 예산편성ㆍ제출권, 광범위한 행정입법권 등 그 권한이 집중되어 있지만, 이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장치가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피청구인의 리더십 문제와 결합하여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가능하게 하였다.

(1)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헌법 제67조 제1항에 따라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해 선출되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게 된다. 이때 대통령은 권력형성과정에서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권력행사과정에서도 투명한 절차와 소통을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끊임없이 확보해야 한다.

비선조직 이른바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은 대통령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와 관련된다. 현행 헌법의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워터게이트사건이 문제된 미국 대통령보다 집중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 달리 행정부가 법률안제출권과 예산편성ㆍ제출권을 갖고 있으며, 반면 국회의 동의를 받거나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공직자의 범위는 제한적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는 연방국가인 미국과 달리 중앙정부에 종속되어 있으며 자율과 책임이 미흡한 지방자치가 시행되고 있을 뿐이다.

1987년 제9차 헌법개정 때보다 국가경제의 규모가 십여 배 확장되고 사회적 갈등구조가 다층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업무는 양적으로 증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전문화ㆍ다양화ㆍ복잡화 되었다. 이에 따라 대통령 권력은 실질적으로 확대되었고,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비선조직은 강력한 대통령 권력에 기대어 활동공간을 넓힐 수 있었다. 비선조직의 국정개입은 정책결정의 투명성ㆍ공정성 제고, 국민의 예측ㆍ통제가능성 확보, 권력행사에 따른 책임의 담보라는 측면에서 취약하다. 특히 비선조직의 '계속적인' 국정개입은 국민과 국가기관 사이의 '민주적 정당성의 연결고리'를 단절하고, '정치과정의 투명성'과 '정치과정에서 국민의 참여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대의민주제 원리를 형해화할 수 있다.

이 사건 심판에서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이른바 비선실세 최○원은 피청구인에게 장ㆍ차관, 청와대 참모를 추천하는 등 고위 공직자의 인사에 개입하고, 국가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계속적으로' 국정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대통령 권력을 과도하게 집중시킨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최○원의 국정개입을 조장함으로써 권력행사의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투명성 확보에 심각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2) 대통령의 권한남용
제왕적 대통령의 지시나 말 한마디는 국가기관의 인적 구성이나 국가정책의 결정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의 의사결정과 지시에 복종할 뿐, 대통령의 뜻과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기 어렵다. 더욱이 현행 헌법상 대통령 권력의 과도한 집중은 아직 청산되지 않은 하향식 의사결정문화와 정의적(情意的) 연고주의와 결합하여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행사의 문제점을 더욱 심각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현행 헌법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선거에서 1표라도 더 얻으면 제왕적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그렇지 못하면 권력으로부터 소외되는 승자독식 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와 자원은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편성되고, 정치권은 그 권력 획득을 위해 극한 대립과 투쟁으로 분열되어 있다. 정치세력간의 이전투구는 이념대립과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국가기관의 인적 구성이나 국가정책의 결정이 투명한 절차를 통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사적ㆍ당파적 이익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모든 의사결정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고 실질적으로 법의 기속을 받아야 한다. 대통령의 권한남용은 법치국가의 이념을 훼손하고,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적인 내용을 훼손할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남용이 사익추구를 이유로 할 경우에는 국가공동체가 지향하는 공동선과 공통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이 사건 심판에서 피청구인은 국가기관의 기밀문서가 최○원에게 상당기간 유출되도록 지시 또는 묵인하였고, 국가권력의 공공성을 방과(放過)하여 사기업 경영 등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처럼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대통령 권력을 과도하게 집중시킴으로써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행사와 권한남용을 조장하는 등 권력행사의 공정성과 합법성 확보에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3)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
현행 헌법상 대통령 권력의 과도한 집중은 우리사회의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과거 재벌기업은 정치권력의 보호 속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이뤄낸 산업화의 주역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벌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은 정경유착과 이로 인한 불법과 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정치권력의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은 재벌기업에게는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반면, 다른 경제주체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제119조 제1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제119조 제2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보장하면서도 과거 재벌기업 중심의 경제정책과 정경유착에서 벗어나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겠다는 헌법적 선언이다.

그러나 1987년 헌법개정 이후에도 정치권력과 재벌기업의 정경유착의 모습은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 사건 심판에서도 피청구인은 비밀리에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하여 재벌기업으로 하여금 피청구인이 주도하는 재단에 기금을 출연하도록 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대통령 권력의 과도한 집중은 정경유착의 원인이 되어 시장경제질서의 골간인 개인·기업의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고 경제적 정의와 사회적 공정성 실현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4) 소결론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 아래에서 계속되고 있는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정치적 폐습이다. 이러한 정치적 폐습은 주요한 헌법가치인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투명성, 사회적 공정성과 경제적 정의의 실현을 방해하고 있다.

다. 현행 헌법상 권력구조의 개혁과제
(1)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권력을 분할하고 권력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는 권력분립원리에 기초하여, 지방의 자율ㆍ책임을 강조하는 지방분권원리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원리를 강화한 현대적 분권국가의 헌법질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에게 '국가원수'(제66조 제1항), '국가와 헌법의 수호자'(제66조 제2항) 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권력을 집중시켜 국정수행에서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그러나 정치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는 집권화 경향을 띠고, 집권화는 절대주의로 향하며,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더욱이 전문적이고 복잡다기한 현대 국가의 방대한 정책과제를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역량에 맡기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

선진국 문턱에서 심각한 발전 장애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는 경제적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념ㆍ지역ㆍ세대 갈등을 극복하여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나아가 미국ㆍ중국ㆍ일본ㆍ러시아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가안전을 도모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갈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정치의 틀 안에서 통합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권력구조가 타협과 숙의(熟議)를 중시하고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투명한 절차와 소통을 통해 민주적으로 조율하여 공정한 권력행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신뢰와 국민안전을 제고하여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이사야 32장 16절-17절 참조). 따라서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과 이전투구의 소모적 정쟁을 조장해온 제왕적 대통령제를 협치와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권력공유형 분권제로 전환하는 권력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2)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시킨 우리 헌법의 역사, 국민의 개별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도, 남북분단에 따른 안보현실, 정부형태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 등을 고려할 때,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또는 책임총리제의 실질화 등이 국민의 선택에 따라 현행 헌법의 대통령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과도하게 집중된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는 방법은 정부형태의 변경과 함께,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하여 주민근거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지방자치제도는 국민주권의 원리에서 출발하여 주권의 지역적 주체로서의 주민에 의한 자기 통치의 실현이다(헌재 1998. 4. 30. 96헌바62). 획기적인 지방분권은 주민의 자율적 참여와 민주시민의식을 고양시켜 풀뿌리 자치를 실천하고, 지방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특성을 바탕으로 지역발전을 도모하여 상향적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이 강화된 지방분권은 중앙집권적 자원배분으로 인한 지역불만을 완화하여 사회통합에 이바지하고, 나아가 평화통일의 길을 여는 데 일조할 수 있으며 통일 후에는 국민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

국회의원선거에서 비례대표제는 정당제 민주주의에 근거를 두고 국민주권원리의 출발점인 투표결과의 비례성을 강화하여 사회의 다원적인 정치적 이념을 유권자의 의사에 따라 충실히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헌재 2009. 6. 25. 2007헌마40 참조). 따라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의 조화로운 해결을 위해서는 정당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비례대표 국회의원후보자의 선정과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가운데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한다(헌재 2016. 5. 26. 2012헌마347 보충의견 참조).

국민이 국가정책의 핵심적 사항을 파악하고 국가기관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를 하기 위해서는 권력행사과정의 투명성원칙이 헌법적으로 천명되고 법령에 의해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과도하게 집중된 대통령 권력을 분권하는 과정에서 국회나 지방자치기관에 분산된 권력은 국민소환제ㆍ국민발안제ㆍ국민투표제 등 직접민주제적 요소의 강화를 통해 통제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행정각부의 장을 비롯하여 주요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국가정보원장ㆍ검찰총장ㆍ경찰청장ㆍ국세청장 등의 임명에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안, 예컨대 이들의 임명에 있어 국회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비대한 청와대 참모조직을 축소하고,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여 권력분립과 법의 형평성이라는 법치국가원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자치의 활성화, 지역주의의 극복, 평화통일과 통일국가의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지역대표형 상원을 설치하는 국회양원제도의 도입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통일이 현실화하는 단계에서 뒤늦게 국회양원제도의 도입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오히려 평화통일에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3) 권력구조의 개혁은 분권과 협치,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를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권력구조의 개혁은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충실히 반영되도록 설계된 국민참여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정치세력 사이의 권력투쟁이나 담합의 장으로 전락하지 않고 이성적 대화와 숙의가 이루어지고 다수 국민의 의사가 수렴되는 민주적 공론화과정이 되어야 한다.

라. 탄핵심판관련 주장에 대한 의견
과거 정권에서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국가권력의 사유화와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이 더 심했다고 하면서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심판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1) 현행 헌법은 국회가 아닌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하도록 규정하여(제111조 제1항 제2호) 법치국가원리를 강조하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탄핵제도의 목적은 법 위반 행위를 한 공직자를 파면하여 헌법질서를 확립하는 데 있다.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하여,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함으로써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때에 헌법재판소는 파면을 결정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 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 행위'의 여부는 확정적ㆍ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 사건에서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의 경위와 내용, 침해되는 헌법질서의 의미와 내용뿐만 아니라, 탄핵심판의 시대적 상황, 지향하는 미래의 헌법적 가치와 질서, 민주주의의 역사와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환경, 헌법수호에 대한 국민의 법 감정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결정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면서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선언하고 있다(제11조 제1항). 그러나 헌법상 평등은 불법의 평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헌재 2016. 7. 28. 2014헌바372 참조).

따라서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가 증거에 의해 인정되고 그 법 위반 행위가 위와 같은 점이 고려되어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 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 행위'로 인정된 이 사건 심판에서 과거 정권에서의 법 위반 행위와 비교하여 이를 기각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의미 있는 주장이 아니다.

(2)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해야 할 의무'가 법치국가원리에서 파생되는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헌법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대통령의 막중한 지위를 감안하여 제66조 제2항 및 제69조에서 이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정신에 의한다면,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법을 준수하여 현행법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나아가 입법자의 객관적 의사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해야 한다(헌재 2004. 5. 14. 2004헌나1 참조). "지도자가 위법한 행위를 했어도 용서한다면 어떻게 백성에게 바르게 하라고 하겠는가(犯禁蒙恩何爲正)."라는 옛 성현의 지적이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의 준법을 강조하는 말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는 일반국민의 위법행위보다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므로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2015년 3월 제정되어 2016년 9월 시행되었다. 이 법률은 적용대상으로 공직자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을 포함하고, 공직자등의 부정청탁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한편 공직자등의 금품등 수수행위를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는 경우에도 제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률은 공직사회의 부패구조를 청산하여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입법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공정하고 청렴한 사회를 구현하려는 국민적 열망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안전하고 풍요로운 가운데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한다면, 앞으로 대통령이 이 사건과 유사한 방법으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도 파면 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비선조직이 강력한 대통령 권력에 기대어 고위공직자의 인사와 국가정책의 결정에 개입하여 사익을 취하거나 또는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대기업으로 하여금 자신이 주도하는 재단에 기금을 출연하도록 하는 등의 위법행위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이를 용인해야 하고 이에 따른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은 확대ㆍ고착될 우려가 있다. 이는 현재의 헌법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이념적 가치와도 충돌한다.

(3) 그렇다면 우리 헌법의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 심판청구를 인용하여야 한다.

마. 결론
(1) 이 사건 심판절차의 전 과정에서 대통령의 직무수행 단절로 인한 국정공백은 중대하고 국론분열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엄중하다. 이러한 난국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탄핵심판을 넘어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의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고, 정치적 폐습을 조장한 권력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물론 제왕적 대통령제를 규정한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통령 권력의 과도한 집중이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를 부추긴 요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나타난 시대정신은 분권과 협치,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로 나아갈 것을 명령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이러한 시대정신이 반영된 권력공유형 분권제로 개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수직적 권위주의문화의 폐습을 청산하고 정치ㆍ경제ㆍ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비민주적인 요소를 타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나아가 이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국가공동체의 공정성 강화와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일찍이 플라톤은 50대에 저술한 「국가」에서 "통치하는 것이 쟁취의 대상이 되면, 이는 동족간의 내란으로 비화하여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시민들마저 파멸시킨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플라톤의 경고는 우리가 권력구조의 개혁을 논의하는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아모스 5장 24절)." 성경말씀이다. 불법과 불의한 것을 버리고 바르고 정의로운 것을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이 사건 탄핵심판과 관련하여 국민간의 이념적 갈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사건 탄핵심판은 단순히 대통령의 과거 행위의 위법과 파면 여부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와 질서의 규범적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법정의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청구인의 법 위반 행위는 대통령이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임에도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행위이다. 이 사건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한다면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은 확대ㆍ고착될 우려가 있다. 이는 현재의 헌법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이념적 가치와도 충돌하고 최근 부패방지관련법 제정에서 나타난 '공정하고 청렴한 사회를 구현하려는 국민적 열망'에도 배치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이 사건 탄핵심판과 관련하여 소명을 받은 헌법재판관으로서는 피청구인에 대해 파면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피청구인에 대한 파면결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기반으로 한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고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정경유착과 같은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다.

(3) 이 사건 심판절차에서의 파면결정과 이를 계기로 시대정신을 반영한 권력구조의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보다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가일층 확고해지고, 자유와 창의를 기본으로 한 시장경제질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는 가운데 더욱 발전하여 우리와 우리 자손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안전과 행복은 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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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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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특보
이 사건 소추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2016헌나1 선고요지 후반부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탄핵이 인용되어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박근혜파면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헌정 사상 정부 수립 이래 최초로 대통령이 파면되었다.[20]

9.1. 탄핵 인용 및 파면 사유

<rowcolor=#ff4800> 핵심 쟁점 헌재의 판단
민간인인 최순실의 국정개입 & 직권 남용 위헌
공무원 임명권 남용 합헌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합헌 [보충]
파일:박근혜 파면2.jpg
<bgcolor=#ffdb00> 헌법재판소 판단 결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선고를 하면서 일반적 선고요지처럼 주문을 먼저 읽는 대신 내용을 조목조목 설명한 뒤 주문을 읽었는데, 덕분에 국민들은 결과뿐만 아니라 전체 내용을 끝까지 집중하면서 들을 수 있었다. 최순실의 국정 개입 외에는 모두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으나 결정적인 핵심 정점이였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탄핵 사유로 인정되었고, 이 하나의 사유로 재판관 전원이 만장일치(8:0)로 탄핵을 인용해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파면시켰다.

이정미 권한대행은 박근혜의 변호인 측이 주장했던 여러 주장(8인으로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섞어찌개 논란 등)을 하나하나 반박하여 이 재판이 적법함을 설명[22]한 뒤 결정을 내렸다. 세월호 사고에 대해서는 '무능'이나 '성실함'을 법적인 논리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하였고[23] 세계일보 인사 개입 등에 대해서도 위법이나 탄핵소추사유로서는 인정하지 않았으나[24], 최씨 일가의 국정 개입+뇌물수수는 인정되었고 나머지 탄핵소추 사유들은 언급하지도 않은 채 바로 주문을 말한 뒤 재판을 끝내버렸다.[25] 특히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나온 가이드라인 중에서 정확하게 걸리는 게 뇌물수수였는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수많은 혐의 중에서 딱 하나만 잡혀도 탄핵이 가능했고[26] 그 하나가 바로 뇌물수수였다.

특히 "피청구인으로부터 헌법수호의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검찰, 특검 및 헌재의 수사 및 조사에 참여하지 않고 사실을 은폐하려고만 했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난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중 대통령 측이 검찰 조사나 증거 수색에 대해 거부할 시, 비록 탄핵소추 사유에 들어가있지 않더라도 헌법재판관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탄핵 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대통령이 직접 구호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명문화된 기준이 없고, 성실함의 상세한 기준이 없어 상대적이고 추상적이라고 언급하였기 때문에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에게는 납득이 힘든 결정이었다.[27] 선고요지에서도 이러한 점을 우려하고 배려한 부분이 눈에 띄긴 하지만 성문법주의 원리 및 차후 성실성을 빌미로 한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공격에 대한 우려로 인해 소극적인 판단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충의견에서는 성실의무 위반이 있었다[28]는 것을 언급했다.
파일:박근혜탄핵사유.jpg
<bgcolor=#ffdb00>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유

10. 반응

선고부터 인용까지의 반응[29]
종로경찰서 앞에서 전광판을 놓고 선고를 지켜본 시민들은 파면이 결정되자 폭죽을 터뜨리면서 기뻐했다. 실시간으로 진행된 JTBC 유튜브 스트리밍도 약 35만 명이 시청했다. 탄핵 인용에 부정적인 내용이 나올 때마다 다들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으나[30]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부분과 대통령 권한 남용 부분이 나오면서 탄핵이 인용될 듯한 분위기로 흐르자 간간이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으며,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라는 말이 나오자 더 커진 함성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이 낭독되는 순간에는 극도의 정적이 흐르고 말이 끝난 순간 다시 한 번 함성이 뿜어져 나왔다. 이 순간 일제히 함성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은 마치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골을 넣는 순간 열광하는 거리응원단을 방불케 했다. 그와 동시에 첫 번째 동영상에서와 같이 연단 앞에 앉아있던 두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손팻말로 감싼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기뻐했다. (동영상 20초쯤에 나온다.) 한 장 요약, 네이버가 공인한 성지

이러한 반응은 주식 시장에도 영향을 주어서 당일 코스피 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이정미 권한대행이 '그러나', '세월호' 등 탄핵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부분을 읽을 때 급락했다가 탄핵 사유에 해당되는 부분을 읽자 곧바로 주가가 치솟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6.29포인트 오른 2097.35 포인트로 장을 마감했다. '그러나'를 연발할 때마다 공황에 빠졌던 주식 시장, 망했어요[31]
<rowcolor=#ff4800> 탄핵 인용 순간 친박 집회 현장 탄핵 인용 순간 친박 집회 참가자의 모습
같은 시각 반대 진영에서는 결정이 나오는 순간 보라는 방송은 안 틀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다가 뒤늦게 현실을 맞이해야 했다. 그들은 세월호 사고 관련 내용이 나올 때까지 탄핵 사유가 계속 인정되지 않은 것까지만 보고 정미홍이 마이크를 들고 4개 중 3개가 무죄라는 소식을 전하자 탄핵이 기각된다는 망상에 취해 김칫국을 거하게 들이켰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2번째 동영상에서 보다시피 이경자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대표가 연사로 나와서 전교조만악의 근원 취급하는 연설을 하던 중 어느 한 중년 남성이 스마트폰을 켜서 확인해 보더니 만장일치로 탄핵이 인용되었다는 속보를 보면서 절박한 표정으로 뭐라고 말하자 갑자기 현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연설이 끊기고 곧바로 올라온 정광용의 패배 선언을 통해 인용을 확인하자 이들은 나라를 잃은 것마냥 비통에 빠졌다. 실제로는 정미홍이 4개 중 3개가 무죄라는 소식을 전하던 그 시점에 이미 탄핵이 인용될 것으로 보이는 분위기로 넘어가고 있었고, 첫 번째 영상을 기준으로 0:56초 부근에('우리의 이 거대한 태극기 물결은…'이라고 하는 그 순간) 이미 파면이 확정되어 있었다.[32] 이 영상의 29초 부근은 탄핵이 인용되는 순간의 탄핵 반대 집회 현장의 모습이 나오는데, 해당 장면의 연설 내용이 첫 번째 영상의 0:57 부근의 연설 내용과 일치한다.

서석구는 헌재가 내린 결정에 "이번 결정은 촛불집회 세력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이석기가 곧 석방될 것이다. 이번 결정에 유감을 표명한다"는 의견을 발표했다. 반면 같은 박근혜의 변호인인 이동흡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 승복하겠다"고 밝혔다.

이 외에 탄핵 심판과 관련된 뒷이야기는 한겨레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탄핵 1년] '국정농단' 아닌 '최순실 사익 추구' 방점 찍혔던 대통령 파면, '탄핵 선고'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은 박근혜 퇴임 대비용" 등도 같이 읽어보자.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이 탄핵에 큰 구실을 하였기 때문에 파면 이후 탄핵 인용을 '촛불혁명의 완성' 또는 '21세기판 명예혁명의 완성'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가 탄핵된 해인 2017년은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태어난(1917년) 지 정확하게 100년이 되는 해다.

10.1. 대한민국

〈청와대, 전원일치 파면결정에 충격·침통〉
〈헌재, 박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여야 정치권 반응은?〉

파일:1000044485.jpg

10.2. 외국

10.2.1. 탄핵 직후 반응

워낙 큰 뉴스다 보니[36] 웬만한 메이저 외신들이 다 톱 뉴스로 보도했다.

10.2.2. 외국에서 일어난 영향

11. 결정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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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 결정 부정 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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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문제된 소송법상 제문제

헌법재판소의 재판 중 탄핵심판, 즉 헌나사건의 경우 전체 결정에 비하여 그 비중이 매우 낮고 헌정사상 단 2건에 불과하였으므로 판례에 의하여 헌법재판소법상 탄핵심판과 관련한 소송법상 법리가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박근혜 탄핵심판의 경우 안팎으로 매우 상황이 특수하였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법리가 구체화될 수 있었다.

12.1. 탄핵심판의 지연문제

피청구인 박근혜 측 대리인단은 눈에 드러날 정도로 탄핵심판절차를 끊임 없이 지연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당연히 피청구인 측 대리인의 경우 파면결정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이 선고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기각결정을 받기 위해서는 본안에서 열심히 소추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사실인정의 문제를 다투거나,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파면사유로서 중대한 법률위반에 해당하지 아니한다(쉽게 말해서 탄핵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말)는 법리적 주장을 할 수 있다.

한편 소송전략상 매우 유력한 것은 각하결정을 받는 것이었다. 이는 이 탄핵심판의 시기적 특수성 때문이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탄핵소추된 때부터)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1년 넘게 심판을 계속할 경우 임기가 종료되고 이렇게 될 경우 탄핵심판에서 파면결정이 이루어지더라도 파면할 대통령이 없어 심판의 이익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부적법 각하결정이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장 73매에 달하는 탄핵소추안만 보더라도 쟁점이 매우 많고 이해관계자가 많은 복잡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1년 이상의 소송지연이 당시로서는 쟁점별로 증인신청만 십수명씩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까지는 지연시키지 못하더라도 당장 당시 박한철 소장의 임기 종료가 몇 달 남지 않았고 이정미 재판관도 이후 금방 임기가 종료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부족한 재판관의 수로는 결정이 이루어질 수 없다느니 하는 주장이 가능했을 것이고 실제로 대리인단은 그러한 주장을 했다. 이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범위 문제와도 연결되었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이를 의식하지 않을 리 없었으므로 절차의 지연을 막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12.2. 준용규정에 관한 해석문제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절차에 관하여는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민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 이 경우 탄핵심판의 경우에는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하고, 권한쟁의심판 및 헌법소원심판의 경우에는 「행정소송법」을 함께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명문으로 탄핵심판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을 준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법리적으로 상당히 곤란한 문제를 낳았고 예상된 대로 피소추인측 대리인단은 이를 고려한 주장을 하였다. 기본적으로 형사소송법상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사실은 엄격한 증명에 의하여야 하고 반드시 증거에 의하여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탄핵사유로 언급된 피소추인 박근혜의 행위들이 수사가 진행 중인 단계였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들에 형사소송법상 엄격한 증명을 요구할 경우 탄핵심판의 진행이 매우 곤란해진다. 우선 형사소송을 준용한다는 특징 때문에 대리인단이 소송절차를 지연시킬 수 있는 수단이 훨씬 많을 뿐 아니라 혹여나 파면이 이루어진 후 박근혜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되어 법원 판결에서는 사실인정을 달리하는 경우 초래될 혼란에 대한 우려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견해는 형사소송법의 근본 이념을 생각하지 않은 견해다. 형사소송은 근본적으로 국가권력이 "개인"의 행위가 범죄임을 입증하고 그에 걸맞은 형벌을 내리는 절차다. 이때 형사소송법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권력"이 "개인"의 범죄행위를 입증함에 있어 국가 공권력의 행사방법과 절차를 규정해 놓은 규범이다. 다시 말해 국가는 일개 개개인과 비교하였을 때 강력한 실체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국가는 형사소송이라는 절차에 있어 "개인"의 범죄행위를 입증할 때 지켜야 할 절차적인 제약을 받는다. 국가권력을 제약하는 규범이 형사소송법인 것이다. 형사소송법에서 범죄자의 체포, 구속요건을 엄격하게 정해 놓은 것이라거나 고문 등에 의하여 이루어진 자백의 효력을 부인하는 취지의 규정을 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고위공무원의 탄핵심판은 형사소송과 성격이 다르다. 탄핵심판 절차는 "국가"대 "개인"의 소송절차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권력기관이기도 한 국가공무원직을 맡고 있는 자가 그 "권력기관"으로 지금과 같이 계속하여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는 절차다. 때문에 "국가"대 "개인"을 상정한 형사소송법 상의 규범들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헌법재판소라는 헌법기관이 다른 헌법기관(대통령 등)의 직무수행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인 만큼 심판받는 이가 "개인"을 전제로 하는 형사소송법 상의 규범들이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형사소송이 국가 vs 개인의 소송이라면, 탄핵심판은 국가기관 vs 국가기관의 소송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국가기관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자에게 고문을 해도 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엄격한 증명'과 같은 형사소송법 상의 개념이 탄핵절차에까지 인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그 연장선에서 헌법재판소법상 형사소송법을 준용한다는 것은 헌법재판의 성질에 부합하도록 준용한다는 것이지, 형사소송의 원리가 탄핵심판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이를 돌파하였다. 재판관들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위와 같은 주장을 배척할 수 있는 법리를 나름대로 구성한 것이다.

12.3. 헌법재판소법 제32조의 문제

헌법재판소는 당연히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인정을 위한 증거자료 확보를 위하여 검경이 수집한 증거자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법 제32조가 "재판부는 결정으로 다른 국가기관 또는 공공단체의 기관에 심판에 필요한 사실을 조회하거나, 기록의 송부나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재판·소추 또는 범죄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하여는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 점이 문제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가장 중요한 탄핵사유인 최순실 게이트 관련 혐의들에 대해서 당시 수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법 제32조에 따라 그 자료를 요청할 수 없게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2004년 탄핵심판에서 법리적으로 해결하긴 하였으나 본 탄핵심판에서 재차 문제로 거론되었다.

이에 대해서 논하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법 제32조 단서를 규정한 목적을 우선 검토하여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1) 헌법재판소가 형사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 사실인정을 해 버릴 경우 형사재판과의 모순이 발생할 수 있으니 이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라고 볼 수도 있고 (2)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을 이유로 수사기관에서 수사기록을 모두 가져가 버리면 수사의 진행이 불가능해지니 이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라고 볼 수도 있다.

전자의 견해를 따를 경우 어떠한 방식으로는 헌법재판소는 위 제32조 규정에 따라 관련 수사기록의 송부를 요청할 수 없게 된다. 한편 후자의 견해에 따를 경우 어쨌든 수사기관에 수사기록을 놔둠으로써 수사에 차질이 없도록 하면 되므로 수사기록을 모두 복사해서 헌법재판소로 가져오면 해결된다. 헌법재판소는 후자의 견해에 따라 위 제32조를 해석하였고, 관련 수사기록을 복사하여 모두 송부받아 심판절차에 들어갔다.

탄핵심판은 '헌법이나 법률의 위반이 있을 경우' 이루어지는데, 파면사유가 될만한 법률위반은 대개 형사법률의 위반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위 제32조를 전자의 견해에 따라 해석할 경우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최소 3년의 기간 동안 탄핵심판을 사실상 진행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므로 헌법재판소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주류적 평가다.

12.4. 재판관 임기의 문제

전술한 바와 같이 당시 박한철 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박한철 소장이 대통령 임명이었기 때문에 탄핵심판절차의 개시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 직무를 대행하게 되는 경우, (주류적 견해인)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이 현상을 유지하는 범위에 국한되어 흠결된 재판관을 보충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실제로 파면결정 역시 8명의 재판관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탄핵심판의 인용결정은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피청구인 측 대리인으로서는 절차를 지연시킬 유인이 더 강했다. 이정미 재판관까지 임기가 종료되어 7인 체제가 될 경우 2인의 재판관만 설득할 수 있으면 기각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54][55]
이 사건에서는 다행히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1항은 헌법재판의 재판관 정족수를 7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만약 탄핵심판이 개시되었는데 대통령이 임명한 헌법재판관 3인[56]이 모두 임기가 종료되어 버리는 경우 재판관이 6인밖에 남지 않아 아예 심판절차가 진행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 부분의 문제를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범위가 현상유지적 범위에 그친다는 견해와 어떻게 조화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제로 남아있다.[57]

대리인단측이 7명 체제하에서는 탄핵심판을 계속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1항에 비추어 법리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지만 다음과 같은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탄핵심판은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권력을 박탈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권한쟁의 등 다른 절차에 비하여 민주적 정당성이 더 크게 요청된다. 만약 재판관이 7인에 불과한 상황에서 결정이 이루어졌다면 파면결정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그 민주적 정당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기할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가 종료하기 전 8인 체제하에서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파면결정이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문제는 일정부분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13. 만약 탄핵이 기각되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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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력솥이 터지지 않는 것은 증기가 분출될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구멍이 막히면 한꺼번에 폭발할 수도 있다.
2016년 12월 1일 방송된 썰전에서 유시민.
인내하고 인고하던 민심이 어느 순간 임계점, 비등점을 지나면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뒤집고 불태우고 재로 만들어 성층권으로 날려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권력이고 부귀영화고 월세 따박따박 나오는 건물, '사'자 돌림의 직업, 고액연금이 보장된 직업이고 뭐고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경향신문, 시인은 말했다 편에서 일부 발췌
만약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했다면 박근혜는 즉시 권한을 되찾고 직무에 복귀했을 것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이 기각되었을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박근혜의 지지율이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박살난 상태라[58] 남은 재임 기간 동안 정상적인 직무 수행은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며, 탄핵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좌절되어 그 반동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한국갤럽 등의 기관이 시행한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부정평가가 무려 90%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었고, 탄핵 찬성률은 탄핵소추 때부터 2017년 2월 말까지 78% 정도를 유지[59]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실제로 박근혜 옹호파 및 부역자와 친위대 등 극우 친박 세력을 제외하면 민심이 기각을 받아들이고 박근혜를 다시 대통령으로 맞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즉 사실상 민심을 전부 잃은 상태이므로, 남은 임기 동안의 국정 동력이 심각하게 상실된 상태가 되었기에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추진하더라도[60] 지지받기 어렵고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재판을 뒤집어 엎자는 내용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만 그런 상황에서 황교안이 시행했을지는 역시 미지수다.[61] 기각 결정이 난 후부터 국민투표가 시행되었을 가능성은 없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제도하의 최고결정기구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라고 한들 납득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고(실제로 직접 저항에 참가하는 인원은 극소수일지라도), 박근혜 정부인들 국민들이 이것을 수긍하고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것과 다음 선거에서 패배가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 외교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는 민주주의 정부'를 지지한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국익을 위해 독재정권과 결탁한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비공식상에서의 이야기인 데다가 결정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도 못한다.[62] 오히려 정권을 지키려는 발악으로 인한 행위로 동북아의 안정을 깨는 돌발 변수로서 미국 정부는 위험 요소로 바라볼 가능성이 크며, 박근혜 정부가 폭주하지 못하도록 외교적인 압박과 더불어 사실상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차후 세워질 신정부와의 외교를 준비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2015년 연말에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인해 박근혜 정부의 유지를 바라겠지만[63] 박근혜 정부가 사실상 생명이 끝났다는 판단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한일관계 악화와 일본 정부가 한국 정치 상황에 취할 수 있는 액션이 제한적인 현실을 고려하면 일본 정부 역시 박근혜 정부와 거리를 둔 채 차기 정부에 대하여 정보 수집에 바빴을 것이다. 중국친중 정책을 펼쳤던 박근혜 정부의 연장을 바랬겠지만, 2016년 여름 주한미국 미사일 사드 배치 등의 문제 때문에 박근혜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과는 입장이 또 다르긴 하지만 역시 사실상 전 국민의 외면을 받는 대통령을 지지해서 얻을 이익도 없다.

또 탄핵의 기각은 곧 후대 문재인 정부의 1년간의 행적이 사라짐을 의미하기도 하는 바, 남북간 냉각기도 길어져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의 남북 단일팀 문제도 심각했을 것이며 북한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 제의, 방남도 없고 한반도 주변의 국제 정세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박근혜가 탄핵이 기각되면 독재를 시도하려 했다는 정황은 분명히 존재한다. 2017년 1월 26일 정규재와의 인터뷰에서 "탄핵이 기각되면 국민의 힘으로 검찰과 언론을 정리할 것"이라고까지 밝힌 것이 증거다. # 다만 훗날 헝가리오르반 빅토르코로나19를 빌미로 독재자가 되려고 했다가 실패한 것을 고려하면[64] 성공 확률이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13.1. 위수령 논란

2018년 3월에는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면 위수령을 선포하여 촛불시위를 진압하자는 논의가 있었다는 폭로가 나와서 논란이 되었다. 성명 원문軍, 촛불시위 진압 모의 의혹

2018년 3월 20일, JTBC에서 입수한 국방부의 문건을 통해 위수령 논의가 사실로 밝혀졌으며 위수령 문서에서 언급되었듯이 위수령은 외관상 계엄령과 유사할 뿐, 발동의 근거가 법률이 아니라 대통령령에 불과한 만큼, 실제로 일반적인 시위 진압을 넘어선 폭동적 시위진압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군과 행정부는 국회와 법원의 제지를 피할 방법이 전무하다.

게다가 과거에 비해 병사들이나 하급 부사관들도[65] 뻔히 현재 정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상태에서 시민들에 대한 발포 명령이 내려졌다고 따를 가능성도 낮았을 것이다. 오히려 발포 명령을 내린 사람에 대해 불복종 운동 혹은 시위대 편을 들어서 프래깅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루마니아차우세스쿠 공산 정권 붕괴 원인 중 하나가 군과 시위대가 손을 잡은 것이었으며, 훗날 2024년 볼리비아에서 일어난 쿠데타에서도 쿠데타에 참여한 장병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쿠데타에 가담한 것을 깨닫고는 쿠데타군 수뇌부를 체포해버린 바가 있다.

결국 다행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진실이 밝혀졌다.

13.2.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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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기무사가 탄핵 기각이 되었을 경우, 대규모 군을 투입해서 시위를 무력진압하려고 했던 계획이 담긴 문건이 드러나면서 큰 충격을 안겼다. 탄핵 이전 계엄 대비를 가장한 쿠데타 작전을 짜면서 광화문서울 시내 일대에 군부대[66]를 투입해 친위 쿠데타(군사반란)를 하려 한 계획이 들통난 것이다. # 정확히는 시위대들이 탄핵 기각에 불복하여 청와대, 헌재 등을 점거하고 경찰서를 약탈, 방화할 경우에 폭동 진압에 대비해 군대를 움직이겠다는 건데, 세부 내용을 보면 어떻게 봐도 박근혜에게 닥친 위기를 기회로 삼아 박근혜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다만 처음부터 계엄령을 발효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국민들의 계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고려해' 초기에는 위수령을 발령하여 대응하고 상황이 더 악화되면 계엄령을 발동하는 방안이었는데 기무사도 자신들이 처음부터 계엄령을 발령하면 국민들의 저항이 거셀 것임을 인지했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

이후 이철희 의원실에 공개된 이와 관련된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들을 읽어보면 충격적인 부분이 많다. 단순히 대규모 과격 집회가 일어나면 군대를 움직여야 한다가 전부가 아니라 보도검열단을 만들어 언론을 통제하고 방송통신위원회 '유언비어 대응반'을 움직여서 선동[67]을 저지르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차단하려고 했다.
파일:서울지역작전군투입도.png

군인권센터에서 공개한 문건은 훨씬 더 경악스러운데 서울 시내에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 무장병력 4800명, 특전사 1400명 등을 투입하는 등 구체적 병력 규모까지 언급되어 파장이 엄청났다.#
파일:계엄령작전군투입도.png
서울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부대를 배치할 계획까지 드러나면서 전국적으로 군을 총동원하여 시위를 봉쇄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러한 체계적인 병력 운용 계획은 기무사의 권한을 넘은 부분이기에, 군인권센터에서는 국가안보실 같은 윗선의 개입이 분명하다는 주장을 했다.

다만 기무사에서 이 계획을 짰다고 해서 실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는지는 일선 부대 지휘관들의 결정에 달린 부분인 데다가 계획안에 찬동하는 일부 부대에서 작전을 결행한다고 해도 쿠데타에 반대할 부대들이 더 많기 때문에 성공했을 가능성은 진리국 건국과 동급 수준으로 전혀 없었을 거라는 것이 중론이다. 아무리 군부대라고 해도 이런 식의 명령을 무조건 따를 리도 없고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군의 개입이 좋지 못한 결과를 남겼다는 것은 국군의 장성들도 공감하는 부분이기에 단지 기무사가 계엄 및 쿠데타 계획을 구상했거나 혹은 청와대에서 직접 그런 명령을 내렸더라도 국군 차원에서 응했을 리 없다.[68] 사실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 반응 문서에서 나오듯 오히려 이런 허접한 계획이 성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어둠의 박사모나 다를 바 없다.[69] 기무사의 인식이 30년 전 군사독재시절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는 증거이다. 설령 일어났어도 100% 1982년 케냐 쿠데타2024년 볼리비아 쿠데타 시도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만 남기며 반나절 만에 진압당하며 대참패로 끝났을 것이다. 이는 2024년 일어난 12.3 내란에서 일선 장병들이 비협조적으로 행동하며 확증되었다.

이 뉴스가 보도되면서 기무사에 대한 고강도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증폭되었고 일부에서 아예 기무사 해체를 요구하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이후 기무사는 해체되었고 기무사를 대신하여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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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안번호
제안일자 발의자 피소추자 결과
<colbgcolor=#580009><colcolor=#ddd> 120102 1985년 10월 18일 박용만 외 101인 대법원장 유태흥 부결
140992 1994년 12월 16일 신기하 외 100인 검찰총장 김도언 부결
151078 1998년 2월 4일 이부영 외 136인 검찰총장 김태정 폐기
151804 1999년 5월 26일 하순봉 외 149인 검찰총장 김태정 부결
152068 1999년 8월 26일 이부영 외 131인 검찰총장 박순용 폐기
160205 2000년 10월 13일 정창화 외 132인 검찰총장 박순용 폐기
160206 대검찰청 차장검사 신승남 폐기
161276 2001년 12월 5일 이재오 등 136인 검찰총장 신승남 폐기
163171 2004년 3월 9일 유용태·홍사덕 외 157인 대통령 노무현 가결
177996 2007년 12월 10일 김효석 외 140인 검사 최재경 폐기
177997 검사 김기동 폐기
177998 검사 김홍일 폐기
1806489 2009년 11월 6일 이강래·강기갑·이용경·조승수 외 102인 대법관 신영철 폐기
1916839 2015년 9월 14일 이종걸 외 128인 행정자치부장관 정종섭 폐기
2004092 2016년 12월 3일 우상호·박지원·노회찬 등 171인 대통령 박근혜 가결
2024262 2019년 12월 12일 심재철 등 108인 기획재정부장관 홍남기 폐기
2024368 2019년 12월 27일 기획재정부장관 홍남기 폐기
2024509 2020년 1월 10일 법무부장관 추미애 폐기
2024516 2020년 1월 13일 기획재정부장관 홍남기 폐기
2102186 2020년 7월 20일 주호영 등 110인 법무부장관 추미애 부결
2107825 2021년 2월 1일 이탄희 등 161인 법관 임성근 가결
2119840 2023년 2월 6일 박홍근·이은주·용혜인 외 173인 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 가결
2124564 2023년 9월 19일 김용민 등 106인 검사 안동완 가결
2125308 2023년 11월 9일 고민정 등 168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동관 철회
2125309 김용민 등 168인 검사 손준성 철회
2125310 검사 이정섭 철회
2125311 검사 이희동 철회
2125312 검사 임홍석 철회
2125634 2023년 11월 28일 고민정 등 168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동관 철회
2125635 김용민 등 168인 검사 손준성 가결
2125636 검사 이정섭 가결
2125650 2023년 11월 29일 고민정 등 168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동관 폐기
2201080 2024년 6월 27일 김현·이해민·윤종오 등 187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김홍일 폐기
2201277 2024년 7월 2일 장경태 등 170인 검사 강백신 법사위
회부조사
2201278 검사 김영철 폐기
2201279 검사 박상용 법사위
회부조사
2201280 검사 엄희준 법사위
회부조사
2202240 2024년 7월 25일 김현 등 170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 이상인 폐기
2202480 2024년 8월 1일 김현·이해민·윤종오 등 188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진숙 가결
2206107 2024년 12월 2일 이성윤 등 170인 감사원장 최재해 가결
2206108 한준호 등 170인 검사 이창수 가결
2206109 검사 조상원 가결
2206110 검사 최재훈 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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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06 박성준 등 170인 국방부장관 김용현 폐기
2206289 2024년 12월 7일 김민석 등 170인 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 폐기
2206348 2024년 12월 8일 김용민 등 170인 법무부장관 박성재 가결
2206349 경찰청장 조지호 가결
2206448 2024년 12월 12일 박찬대·황운하·천하람·윤종오·용혜인·한창민 등 190인 대통령 윤석열 가결
2206961 2024년 12월 26일 박성준 등 170인 국무총리 한덕수 가결
2209248 2025년 3월 21일 김용민·정춘생·윤종오·용혜인·한창민 등 188인 기획재정부장관 최상목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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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번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2] 무언의 압력이든 직접적인 압력이든 모든 종류의 압력을 포함한다.[3] 혹은 1포 500장, 박스당 총 5포. 총 매수는 똑같이 2500장.[4] 헌법재판관까지 했던 이동흡, 대법관 출신 정기승, 변호사지만 미국식 로펌개념을 한국 법무법인계에 적용하여 북미식 법조문화 전도사로 한가락하면서 변호사협회장에 국민훈장까지 받았던 김평우까지는 법조계에서 권위있는 네임드에 속한다.[5] 피청구인 측 변호인단 간사. 이후 대통령을 지내 네임드인 것도 맞지만 문재인은 이전에 사법연수원 차석 출신으로서 법 실력이 '네임드급'에 밀릴 만한 인물이 아니다. 당시 수석은 박시환.[6] 당시 전직 대법관. 이후 직무에 복귀한 피청구인에 의해 대법원장으로 영전한다.[7] 문재인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그 기수 연수원 수석. 후일 이용훈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 직무에 복귀한 피청구인이 대법관으로 임명한다.[8] 말이 필요없는 네임드. 유신헌법의 설계자이기도 하며, 이 당시 시점에서도 전직 검찰총장+법무부장관이었다.[9] 일반인들도 알 만한 네임드가 이 4명이라는 거지 나머지 변호인단 중에도 법조계에서 명성을 떨치는 네임드들이 많았다.[10] 그리고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른정당 창당에 함께함으로써 야당 의원이 되었다.[11]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중에서 심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실제로 결정문을 쓸 사람이다.[12] 본래는 재판관들 간 합의로 주심을 지정하려다가 정치적 논란이 생길 수 있어 추첨으로 지정했다. 다만 강일원 재판관은 여야합의로 지명되었다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어서 합의로 주심을 정할 때 그 후보로 고려되기도 했다.[13] 헌법재판소대법원 둘 다 장(長)이 주심을 담당하는 구조가 아니다. 원래 그 장은 재판장을 맡는데 재판장과 주심을 같은 판사가 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14] 아르헨티나 법원과의 교류 협력 계약 체결을 위한 출장이었다고 한다.[15] 조항이 적고 원칙에 대한 학문적 해석 위주인 헌법 문제와 달리 법률적 문제라는 것은 조항도 비교도 안 되게 많고 유·무죄 검증 자체가 단순치 않아 적용법과 증거의 연계성 및 증거에 대한 세부적 검증 부분 등 여러 복잡한 사실 관계 확인이 필수적이라 아무리 증거와 정황이 뚜렷한 사건조차도 검증에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부분이라 간단하지 않다. 사실상 대한민국 법원 판사들이 일반적으로 유·무죄의 판결을 내리듯이, 법률 해석뿐만 아니라 사실 관계 검토도 심층적으로 해야 한다. 먼저 법률적 판단을 하고 나서, 또 그에 대한 헌법적 해석과 그 자체의 중대성 판단까지 해야 하니 매우 복잡한 건 사실이다.[16] 12월 12일 오전 브리핑에서 "개별적으로 헌법 위반 사항이 확실한 부분만을 집어서 심리하는 것은 어려우며, 그래서 전체 부분을 다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일단 1~2월경에 속전속결로 처리될 것이라는 전망은 조금 멀어졌다. 그러나 2004헌나1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없어도 궐석 재판 형태로 심리 진행을 어떻게든 한 사례가 있었다.[17] 한 달 반이나 거세게 지속되었던 촛불 민심을 헌법재판소도 알았던 이상 이미 탄핵안이 상정되었을 때 가결되면 어느 정도 기간 안에 처리하도록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을 내부적으로 했을 가능성은 높다.[18] 게다가 12월 15일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청와대-국정원의 대법원장 사찰 문건이 조한규 세계일보 전 사장으로 인해 공개되면서 헌재가 만약 이 사안을 삼권 분립을 깨뜨린 행동으로 파악한다면 그 결론은 좀 더 빨리 나오지 않을까하는 시민들의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일단 대법원은 사실이라면 반헌법적 사태라고 이미 밝힌 만큼 헌법재판소도 실력행사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졌다.[19] 배보윤(56·20기) 헌재 공보관은 이날 오후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수명 재판관을 지정하는 데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주심 재판관이 소속된 지정재판부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박 헌재소장도 같은 지정재판부지만 재판장으로서 전체 심판절차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빠지고, 대신 가장 선임 재판관인 이정미 재판관이 수명 재판관으로 정해졌다"고 설명했다. #[20] 역사상 최초의 파면이 아니라 헌정 사상 최초의 파면인 이유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1925년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 의해 탄핵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명문화하고 있기에 박근혜의 탄핵은 헌법 정치(헌정)가 시행된 이래 최초의 파면에 해당한다. 동시에 선진국 정치사 최초로 국가원수가 파면되었다.(한국은 1997년부터 IMF로부터 선진국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선진국 역사상 두번째 대통령 파면 역시 같은 국가 대한민국의 같은 정당 소속 윤석열이다.[보충]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다는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의견이 있었다.[22] 즉 각하 사유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건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였는데, 그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조차 국회에서 그렇게 날치기로 처리했는데도 불구하고 기각 결정이 나왔지 각하 결정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23] 비슷한 사례가 그 전에도 있었다. 2009년 마다가스카르 정치 위기 이후 마다가스카르에서 헤리 라자오나리맘피아니나 대통령도 '무능'을 이유로 마다가스카르 헌법재판소에 탄핵 심판이 제청되었으나 탄핵 논거에 대한 근거 부족을 이유로 탄핵이 기각되었다.[24] 박근혜에 대한 검찰이나 특검 수사가 어려워 사실관계가 상세하게 확인되지 않아 사실상 해당 부분에 있어 판단을 보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는 향후 상세한 기준이 없는 성실성을 이유로 하는 탄핵의 남용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면서 탄핵 인용이 완전히 명확한 법리적 근거에 의거한 결정이라는 정당성을 더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25] 최서원(최순실)과 관련된 혐의들이 워낙 확실하고 혐의들 자체가 도저히 민주주의 정서적으로나 헌법상으로나 용납이 안 된다는 점에서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인용이 확실시되던 상황이었다. 권성동 법제사법위원장의 인용 후 인터뷰에서도 선고가 이렇게 이뤄질 것임이 암시되었다. 한 마디로 다른 거 다 필요없고 최서원(최순실)에게 국정을 내준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탄핵 확정이라는 소리다.[26] 쉽게 말해 여러 개 혐의 중 단 하나 빼고 다 무죄여도 그 하나만 유죄로 인정되면 탄핵이 가능하다는 소리다.[27] 이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특정 행위가 헌법, 법률 기타 규범을 위반하였다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규범이 행동할 의무나 행동하지 아니할 의무를 구체적으로 부여하고 있어야만 그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아 당해 규범을 "위반하였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 헌법 조문만으로는 그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헌법 자체가 매우 추상적인 차원에서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는 많지만 많은 경우 그 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은 법률 기타 하위규범에 의하여 구체화되는 경우가 많고 그때서야 비로소 규범을 위반하였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이 보호된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우리는 헌법상 재산권 조문에 근거해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권자의 일정한 권리주장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률"인 민법 제213조, 제214조 등에 근거하여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28] 박근혜의 잘못이 있었음을 헌재가 확인한 것이다. 다만 그게 탄핵 사유라고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29] 저 전광판 중계는 유튜브 스트리밍을 재생한 것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실시간 스트리밍보다 몇 초 더 지연된 채(실제 TV 방송보다 약 1분 이상 지연)로 재생되었다. 사람들이 전광판에서의 선고 전에 환호하고 정작 전광판 중계에서 인용을 알릴 때 함성이 크지 않았던 이유는 각자의 기기(스마트폰 등)로 버퍼링 없이 실시간(실제 TV 방송보다 약 30초 지연)으로 파면 인용을 접했기 때문이다.[30] 보통 재판 선고는 증거와 증언들을 나열하는데, 효력이 없는 것을 먼저 설명한 후 효력이 있는 것을 설명하고 선고를 내리기 때문에 꽤나 시간을 잡아먹는다.[31] 마지막 링크는 박지만의 회사 주가다.[32] 여기서 친박 세력이 단단히 착각했던 것이, 공무원의 징계에 대해서는 4개 중 3개가 무죄인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무죄인 죄목이 몇 개이든 단 하나의 죄목이라도 유죄로 판단되면 바로 징계가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무죄인 죄목을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피청구인이 재판 과정에서 증거가 제대로 인용되지 않아 올바른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몽니를 부리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죄의 덩치가 중요한 것이지 죄의 개수는 필요가 없고, 큼지막한 죄 하나만 있으면 파면이 가능하다는 얘기다.[33] 이 곡의 가사는 '부패한 자들을 몰아내고 승리를 쟁취하자'는 내용이라 참으로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34] '그러나' 이는 엄밀히 보았을 때는 합리적인 반응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반응의 팩트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글을 작성할 때의 기본 원리를 생각해 보면 되는데, A라는 결론이 정해져 있고 그 결론에 부합하는 논거 a, b가 있고 그에 부합하지 않는 논거 c, d가 있다고 해보면 "a, b이기 때문에 A가 뒷받침된다. 하지만 c, d는 A라는 결론과는 반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 b가 있으므로 A라는 결론이 타당하다"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구조의 글이 된다. "c, d는 A라는 결론과 부합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a, b이므로 A라는 결론이 타당하다."의 구조로 글을 기술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 이런 사람들의 주장이다.[35] 대표적으로 이 경우.[36] 국가원수가 탄핵당한 사례는 매우 드물뿐더러 선진국 국가원수 중 최초로 탄핵당한 정치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37] 스페인에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부패해 있다며 한국을 본받아 자기 국왕도 폐위되어야 된다는 글이 도배되었으며 심지어 한국 헌법재판소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는 글도 있었다. +82-2-708-3456[38] 다만 현재 내각불신임안이 통과된 건 1937년에 총리직을 맡았던 하야시 센주로의 경우 뿐이다. 요시다 시게루불신임안이 통과될 뻔 했으나 직전 사퇴했다.[39] 일본/정치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일본인에게 정치란 '취미생활의 연장선'에 그칠 정도로 심각하다.[40] 그들 입장에선 반일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41] 곡해라기보다는 그냥 일본의 혐한이 워낙 강해서 박근혜 탄핵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42] In America, there is no way a president can be impeached for being embarrassing and stupid. In fact, it might be one of the only jobs in the United States where you can't be fired for that sort of thing. And that's probably a good thing; ruling by the people's emotions might work in Korea, but it is not compatible with American democracy.[43] 빌 클린턴이 탄핵 직전까지 몰렸던 이유도 불륜 때문이 아니라 위증이라는 위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국에서 위증같은 사법방해는 매우 무겁게 다룬다.[44] "The views expressed in this commentary are her own."[45] 한편으론 모 꾸준러가 끈질기게 고영태 음모론과 헌재 결정 9인 필수설을 주장했다.[46] 후술하겠지만 기무사가 탄핵이 기각되면 시민들이 유혈폭동을 일으킬 거라고 망상하며 이를 진압할 경우를 상정하며 작성한 게 기무사 계엄령이다.[47] 전자는 판사들이 판사로써의 윤리를 거역했다는 비난을 하는 것이고 후자도 할 수 있는 추측이기는 하지만 본인의 추측일 뿐 아무런 근거가 없다.[48] 박근혜를 진짜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산천초목이 다 웃고 넘어갈거 같은 헛소리다. 박근혜가 이산화가스 드립을 치고 그 유명한 박근혜 화법을 한 것만 봐도. 참고로 이디 아민도 5개 언어 구사자였다.[49] 스페인인 종북주의자알레한드로 카오 데 베노스가 있긴 하다.[50] 덕분에 말레이시아에서 차단되었다.[51] 그러나 아베 정권의 반도체 물자의 한국 수출 규제를 일본 여론 60%가 지지할 정도로 아베의 지지도는 한동안 굳건했는데 아베 정권이 일본의 혐한 정서를 절묘하게 이용하면서 이를 지지도 연장에 이용하기 때문이다.[52] 하지만 아베 당선 이후 일본 사회를 혐한 기류가 지배했다 보니 박근혜 탄핵을 긍정적으로 보는 일본 여론은 거의 없다. 오죽하면 일본 지상파 방송에 박근혜 탄핵 시위를 가리켜 최순실이 누리는 특권을 질투해서 저러는 거라고 비웃는 장면이 나오기까지 했다.[53] 1989년 천안문 6.4 항쟁을 언급하는 듯하다.[54] 결과적으로 재판관 전원이 일치된 의견으로 파면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55] 좀 더 극단적인 경우로 7인이 참여해야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7인 체제에서는 한 명만 배를 째고 결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탄핵되지 않고 시간이 흐르게 된다.[56] 헌법재판관은 국회가 3인, 대법원장이 3인, 대통령이 3인씩 임명제청을 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57] 박한철 소장이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가 마무리되기 전에 탄핵심판이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한 것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지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을 대법원장이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가 임명할 수 없다고 보는 주류적 견해를 따랐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실제로는 현상 유지를 넘어서 인사권을 휘두른 황교안 권한대행이 박한철 소장의 후임 재판관만 임명하지 않았을 뿐,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자를 대통령 권한대행의 이름으로 임명했다.[58] 최저 지지율 4%도 4%지만, 최고 부정평가 93%까지 종합하면 미셰우 테메르(최저 지지율 1%, 최고 부정평가 87%), 디나 볼루아르테(최저 지지율 1.6%, 최고 부정평가 97%)를 제외하면 전 세계 정치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수준이다. 양대 초강대국이던 소련을 박살내 대한민국 GDP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파탄국가로 만든 보리스 옐친의 최저 지지율이 긍정평가 2%, 부정평가 89%였으며, 우리는 모두 여기 있습니다 연설 직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최고 지지율이 91%로 박근혜 최고 부정평가보다도 낮았다.[59] 약 78.1~78.3% 가량 된다. 2016년 12월에서 3개월이 흘렀어도 75% 이상의 비율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60] 예를 들어 제10차 개헌을 통해 헌법재판소가 격하 또는 국가안전기획부처럼 이름만 바뀌거나, 탄핵 심판 기능을 다른 기관으로 옮기거나, 국민소환제로 바꾸거나, 헌법재판관을 뽑는 방식을 뜯어고치거나, 헌법재판소가 아예 완전히 폐지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대법원에서는 이전부터 헌법재판소와 힘싸움을 하면서 헌법재판소를 대법원 산하의 헌법재판부로 격하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61] 탄핵 심판이 기각됐다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면 헌법 제72조가 규정한 국민투표 부의권의 주체는 탄핵 기각과 동시에 대통령 권한을 되찾은 박근혜 대통령이지 황교안 국무총리가 아니다. 탄핵 심판이 기각되는 순간 황교안 전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무총리가 된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국민투표로 뒤집어 엎을 수는 없다.[62]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미국이 중국을 점점 노골적으로 적국으로 보고 있음을 어필하는 상황에서 친중 외교를 하고 있었다.[63] 실제로 문재인 정부 수립 시 일본 측에서 위안부 합의 존속 여부에 대하여 촉각을 곤두세웠다.[64] 미국과 유럽연합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단 3개월 만에 독재를 포기해야만 했다.[65] 사실 일선 소대장이나 중대장 정도 되는 초급장교들도 명령을 달가워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은 의무복무기간만 채우겠다는 생각으로 군에 지원하는 장교들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위관급 레벨에서는 사회인들과 시각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장교가 많다.[66] 특전사 및 기계화부대 사단[67] 이 경우 선동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기무사로 추정된다.[68] 훗날 2021년 브라질에서도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계엄령을 선포하려고 했다가 고위층 군인들의 명령 이행 거부로 계엄령이 무산된 바가 있다.[69] 당장 박근혜 탄핵으로부터 무려 36년 전인 1981년 스페인에서 일어난 쿠데타 시도2024년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 유혈진압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만 봐도 답이 나온다. 전자는 쿠데타를 일으킨 부대를 제외한 모든 부대가 쿠데타 가담에 거부하며 7시간 만에 진압당했고, 후자는 반정부 시위에 총격을 동원한 유혈진압으로 공식 수치로만 1000명 이상을 학살했다가 국민들의 항의와 국제적인 비난이 거세지고 장성들도 진압 명령 이행을 거부하며 결국 독재자가 시위 본격화 한 달도 안 되어 사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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