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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05 09:01:08

이슬람공포증

Islamopho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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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한 시위자.
1. 개념2. 근대 이전의 이슬람 공포증3. 현대의 이슬람 공포증
3.1. 배경
3.1.1. 국제정세 변화3.1.2. 이슬람 문화적 특징
4. 이슬람공포증의 현황
4.1. 유럽, 영미권, 이스라엘4.2. 제3세계4.3. 터키4.4. 대한민국
5. 전망
5.1. 극복을 위한 노력
5.1.1. 이슬람 외부의 노력5.1.2. 이슬람 내부의 노력
5.2. 한계
5.2.1. 이슬람 측의 문제
5.2.1.1. 관련 문서
5.2.2. 비이슬람 측의 문제
6. 결론7. 여담8. 관련 문서

1. 개념

본 문단에서는 이슬람공포증에 대한 학술/이론적인 접근을 하며, 가치판단 없이 이슬람공포증을 서술한다.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는 이슬람 + 포보스(Phobos: 그리스어로 공포)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단어로, 한국어로 풀이하면 '이슬람 공포증' 혹은 '이슬람 혐오증'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슬람 문화권과 무슬림, 혹은 이슬람 그 자체에 공포를 느끼거나 그 공포심이 발전하여 혐오감까지 느끼는 것까지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

학술적으로 이슬람공포증(이슬라모포비아)이 정확히 무엇인가, 인종차별, 반이슬람, 반무슬림, 반아랍인 등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단순한 인종주의에 불과하다고 보는 학자들도 존재하며, 9.11 테러,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등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응하여 나타나는 심리, 유럽에서는 자국의 무슬림 인구 증가에 따른 경계심리라는 세 의견이 가장 강세이다. 그 밖에 프레드 할리데이는 무슬림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를 포괄적으로 "반무슬림주의(Anti-Muslimism)"로, 롤랜드 임호프와 줄리아 레커는 편견과 정당한 비판을 구분하고자 "이슬람 편견(Islamoprejudice)"으로 명명하는 게 적합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또한 반이슬람적 성향이 있는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전국으로 이슬람 포비아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실제 이슬람 공포증은 비이슬람국가의 정상인들의 의미 없는 행동을 이슬람의 무슬림들이 음탕한 말과 행동 그리고 반종교적인 행동이라고 착각하며 극심한 분노를 일으키는 것에 대하여 극히 보통 인간과는 다른 성향의 사상과 행동에 대해 정상인들이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거부감과 혐오감을 이슬람에 느끼는 것과 이슬람에 대한 불통과 여러가지 국제 사건에 어울려 이슬람 공포증으로 굳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1]

일례로 1996년 러니메이드 트러스트는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시각을 '개방적 관점'과 '폐쇄적 관점'으로 구분하여, 이 중 폐쇄적 관점을 이슬라모포비아로 정의하였다.[2] 요약하자면 미디어나 일상적 대화로부터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생성되고, 고용, 의료, 교육 등 사회 서비스 제공에 있어 무슬림을 차별하고 배제하며, 나아가 물리적 또는 언어적 폭력에 이르는 전반적 과정 모두가 이슬람공포증에 해당한다.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원리주의자들과 달리 이슬람 종교법에 바탕한 국가나 사회에 이념적으로 열성적이지 않고,[3] 법체계 상으로도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샤리아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적용하지 않는다.[4] 하지만 무슬림들이 샤리아를 정의로운 것으로 여기는 성향은 존재한다. #

학술적으로는 이슬라모포비아는 근본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공포심과 더 나아가서는 혐오심이 정의이며, '단순한 포비아' 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차별 등의 행위'는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 롤랜드 임호프와 줄리아 레커의 주장대로 코란의 교리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자들이나 샤리아를 개정할 수 있음에도 밀어붙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국가 무슬림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이슬라모포비아에 포함되지 않는다.

ECRI(유럽 인종주의 및 불관용 인권위원회)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비판을 제외한 나머지 이슬라모포비아를 그 형태 및 강도와 무관하게 반인권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며, 유럽인권위에서도 2011년 ECRI의 2010년 연례보고를 인용, 유럽에서의 이슬라모포비아 증가 추세에 대해 경고하였다. 2015년 4월 21일 UN에서 개최한 관용과 화해를 위한 고위 주제 토론 개회 선언에서도 "반유대주의, 이슬라모포비아, 인종차별 등 모든 불관용의 형태가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을 규탄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2. 근대 이전의 이슬람 공포증

이슬라모포비아라는 용어는 심리학의 발전과 민족주의의 대두 이후인 1918년에 생긴 것이지만, 개념 자체는 역사상에서 여러 가지 유례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서구의 이슬라모포비아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 "한 손엔 칼, 한 손엔 쿠란"인데, 이는 이슬람의 전파가 전쟁을 통한 정복 행위와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속설이다. 즉, 이슬람 제국이 세력을 키울 때마다 유럽에서는 이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의 첫 유럽 진출은 우마이야 왕조 시대로, 771년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현재 프랑스 남부 지역까지 쳐들어가 유럽을 위협했다. 농담이 아닌 것이, 만약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카롤루스 마르텔이 이슬람군을 막지 못했다면 지금 유럽은 이슬람 문화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1096년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어 1099년 일시적으로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이슬람으로부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듯 했으나, 살라딘이 이끄는 아이유브 왕조가 일어나 1187년 예루살렘을 다시 점령하였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은 메메트 2세 하에서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발칸반도 일대를 점령, 이후 오랜 시간 유럽과의 대치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슬람권은 정복 전쟁을 통한 세력 확장 과정에서 점령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고자 학살이나 추방 대신 기존 거주민의 종교를 인정하되 차별을 두고 세금을 더 거두는 정책(이른바 '지즈야')을 취했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 1831년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 1/3 가량이 그리스 정교회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이슬람과 인접한 유럽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동유럽, 이베리아 반도 등 이슬람권과 상대적으로 많은 접촉이 있었던 지역에서는 전쟁의 위협은 있었어도 이슬람 자체에 대한 반발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무슬림 지배하 비무슬림이 병존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슬람과 타 종교의 병존 흔적은 콥트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레반트 지역 기독교 등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이슬람 해적들에게 습격당하던 중부 유럽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크게 자리잡았다.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만 해도 100만명 이상의 유럽인들이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노예로 끌려 갔다. # 이슬람 해적들의 습격은 8세기부터 시작되었는데, 8세기부터 15세기까지는 얼마나 많이 노예로 끌려갔을지 파악하기도 힘들다. 이슬람 해적의 주요 습격지는 남부 프랑스와 남이탈리아였는데, 동유럽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으니 상대적으로 공략하기 힘든 데다가, 동로마 제국 멸망 뒤 오스만 제국을 공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이베리아 반도는 오랜 기간 무어인들이 지배했으므로 만만한 상대였던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집중되었던 것. 프랑스는 중앙집권이 확립되지 않아 왕과 귀족 간의 다툼과 분쟁이 잦았고, 이탈리아는 여러 국가로 분열되어 힘이 없었다. 또한 16세기 후에는 해상 활동을 활발히 했던 영국인들도 많이 노예로 끌려갔다. 참고로 정말로 이슬람과 마주할 기회가 없었던 스칸디나비아 같은 북해 쪽의 유럽인들은 아예 20세기 이전까지 이슬람에 대해 관심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럼 독일은? 실제로 십자군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나라는 항상 프랑스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었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바르바리 해적이라면 치를 떨 정도였다.

십자군 전쟁 무렵 장편 서사시인 무훈시(chansons de geste)들이 일반인 사이에 유행하였는데, 일부애서는 이를 이슬람을 상대로 무기를 들도록 기독교도들을 독려하는 프로파간다[5] 해석한다. 예루살렘 재함락 위기가 감돌던 1145년에는 프레스터 존의 전설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내면서까지 유럽 기독교 세력은 이슬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위안을 얻고자 하였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의 발단이 단순히 비가톨릭을 배제하려는 중세 교회의 배타성과 기독교도들의 종교적 광기가 원인인 것으로 보던 이전 세대와 달리, 현재 학계는 십자군 전쟁이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배경에서 일어났다고 평가하고 있다.[6] 예루살렘 성지의 수복은 십자군 원정에 순례의 성격을 더해주기 위해 추가된 것이었지, 십자군의 본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슬람의 공격으로 심각하게 수세에 몰린 동로마 제국의 원군 요청에 의한 응답이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동로마 제국을 일시적으로 멸망시켰다

이슬람에 대한 공포에 지배되던 일반인들과는 달리 학자들은 이슬람권과 비무슬림권 모두 적극적으로 교류하였다. 이슬람권에서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는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따라 인종을 불문하고 학자들을 우대하였고, 중세 교회법과 스콜라 철학에서도 관용(tolerantia)에 대한 관심이 커서 이슬람권의 철학과 학문을 배우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그 결과 아바스 왕조에서 꽃을 피운 당대 최고 수준의 학문을 배우기 위해 각지에서 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유입되었고, 이러한 학술적인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는 이후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되었다.

의외로 근세 시절 개신교가톨릭과의 사이에 비하면 이슬람권에 비교적 호의적인 편이었다. 교리 면에서 약간 비슷한 것도 있었고 오스만 제국신성 로마 제국의 개신교도들을 지원해주기도 하였다. 마틴 루터도 오스만 제국에 대해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우상 숭배 금지 등에 대해서는 은근히 칭찬하기도 하며 교황보다는 쟤네들이 낫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독일은 지중해와 접하고 있지 않아서

3. 현대의 이슬람 공포증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하여 이슬람권과 서방세계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는데, 오스만 제국이 참여했던 동맹군이 패전함에 따라 영토의 대부분이 연합군에 편입되면서 서방세계가 무슬림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1915년 맥마흔 선언에서 전후 아랍인들의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했으나, 1916년 사이크스 피코 협정으로 프랑스, 러시아와 중동을 분할 통치하기로 밀약하였고,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1917년 밸푸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이슬람권에서는 이를 현재 중동 문제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고,[7] "서구로부터의 독립과 이슬람 문화의 부흥"을 내세운 무슬림 형제단이 1928년 결성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나타났다.

다수의 무슬림들이 연합군 국민으로 유입되면서 프랑스 혁명산업 혁명 등을 거쳐 근대화된 사고방식을 갖게 된 유럽인들과의 가치관 차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였다. "이슬라모포비아"라는 어휘 자체도 이 무렵 발생하였으며, 문학, 영화 등 각종 매체에서 아랍인에 대해 테러리스트(bomber), 졸부(billionaire), 윤락녀(belly dancer) 등 3B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묘사가 시작되었다.[8]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들의 우경화 및 배타적 민족주의로 인해 이슬람권에서의 유럽 이민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전후 복원을 위해 노동력 수요가 급증하였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아프리카 식민지를 독립시키며 해당 국가 출신 혼혈들의 이민을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식민지가 없었던 독일의 경우도 초청노동자라는 개념으로 터키, 폴란드, 이탈리아, 아시아계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유치하였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탈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유럽으로의 이민은 점차 줄어들었으나 당시 유입된 문화는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지역사회에 흡수되고 융합되었다. 유럽에서의 이슬라모포비아는 이러한 이문화간 융합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계층에서 주로 발생한다.

한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건국됨에 따라 중동 문제는 크게 악화되었으며, 그 외에도 중동의 각국은 미국소련이 서로 친미/친소 정권을 심으려 하는 정치적 영토싸움 대상이 되었다.[9] 파키스탄에서는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장군의 쿠데타를 지원, 친소 성향인 줄피카르 알리 부토 총리를 1977년 실각시키고 1979년 사형시켰다. 이로 인해 우파 이슬람 정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키스탄 인민당이 추진하던 세속주의, 사회적, 경제적 개혁은 무산되었고, 그 결과 현재 파키스탄은 악명높은 이슬람 광신국가에 거의 무정부 상태탈레반 세력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란에서는 친미 성향인 팔라비 왕조의 전제군주제를 탈피하려 노력한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를 자헤디 장군의 쿠데타 지원을 통해 실각시켰고, 이란 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팔라비에게 갖은 지원을 하였으나 결국 반미, 반서방 성향의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집권하여 이슬람 신정 국가가 되었다. 특히 반미, 반서방 정책을 추구하자, 미국과 유럽은 이란에게 경제제재를 날려 이란 경제가 그 전보다 더 악화되게 만들었다. 이란의 경제제재는 2016년 이란이 핵포기를 하기로 합의하여 해제될 때까지 가해졌다. 경제제재가 해제되었다 해도 군사 분야의 제재는 여전히 해제되지 않아 이란은 군사력 강화를 못하는 형편이다. 2017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새로운 경제제재를 했다.

그 후로도 중동 국가들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자, 미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3, 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를 지원하여 이란-이라크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그 지원을 받은 사담 후세인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된 후 쿠웨이트를 침공하였고, 결국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이 걸프 전쟁에 직접 참전하여 후세인 세력을 강력하게 공격하여 쿠웨이트에서 쫓아내었다. 이는 그간 미국의 각종 개입으로 말미암아 싹튼 반미 감정이 팽배했던 중동권의 입장에서 "이슬람에 대한 전쟁 선포"로 해석될 여지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중동권에는 미국을 상대할 힘이 없다 보니[10] 분노만 삭히다 결국 폭발하는데, 이로써 발생한 사건이 바로 9.11 테러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구체적인 실체가 없는 "테러"라는 개념을 적으로 삼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의 이슬람 국가를 상대로 한 전쟁을 계속하였다. 미국과 비 이슬람권 친미 국가들에서의 이슬라모포비아는 유럽과 달리 전쟁 상대에 대한 적대감 및 잠재적 테러 집단에 대한 공포감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서방국의 "테러와의 전쟁" 일환으로 이슬람 국가의 침략에 대한 반발로 이슬람극단주의가 부각되었다. 이들은 마드리드 열차 테러 참사,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를 자행하여 많은 사상자를 발생하였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반이슬람 분위기가 고조되어 무슬림에 대한 무차별 폭행, 사회참여 거부 및 탄압, 차별이 거리낌 없이 자행되었다. 유럽 내 무슬림 비중이 적지 않고 사회 일각의 화해와 동반자의 관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에 대한 테러는 자행되었다. 2005년 프랑스 시외곽에서는 경찰의 검문에 불응하여 도주하던 무슬림 청소년들이 변압기에 감전되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무슬림과 아프리카 저소득 계층에 대한 괄시를 받던 이들은 무슬림의 탄압을 금지라는 구호하에 시위, 폭동으로 번졌다.[11] 이후 프랑스 사회 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고, 무슬림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기조를 보였다. 물론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여전하며 이슬람 무장 단체들과 광신도들의 테러 때문에 이게 더 심해지고 있어 프랑스 내의 골칫거리다.

2008년에 미국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유럽 지역의 경제도 둔화되었고,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의 경제가 붕괴 수준으로 넘어가면서 유로존 붕괴 위험이 높아지고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실업률도 높아져갔다. 이에 저소득 직업군을 무슬림과 같은 제3국에서 유입된 민족이 차지하고 있고, 이들이 자국의 부를 유출시킨다는 편향된 논리가 퍼져 나왔다. 자국 경제의 회복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의 화살을 무슬림과 같은 취약계층에게 돌린 것이다.[12] 더불어 무슬림=이슬람 극단주의자라는 논리로 혐오감을 조성하는 분위기가 높아졌다. 이는 고스란히 무슬림에 대한 탄압으로 진행되었고, 탄압에 못 이겨 스스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되는 사람도 발생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13]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사건으로 인해 중동의 정치적, 사회적 개혁이 진행되는 가운데 리비아에 대한 서방국가의 개입으로 개혁이 앞당겨 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서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면서 중동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기대도 하였다. 하지만 비이슬람권에서 무슬림에 대한 탄압과 혐오는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으로 남고 있다.

2014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칼리파 국가 수립 선포는 일개 이슬람 무장 단체의 행위를 전체 이슬람의 본질인 것인 양 매도하는 세력들에게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슬람 내부에서는 종파를 불문하고 이들을 반이슬람적이라고 규탄하고 있으나, 일부 석유재벌들에 의한 물질적 지원이 있다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14] 이슬람권 내부적으로 이러한 반인도적인 행위를 지속적으로 견제하여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한편,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극우 세력의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반발로 반대 시위가 커지고 있다. 이슬라모포비아가 이슬람에 대한 피해망상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이슬람의 문화에 대한 부정의 근거 또한 고유 문화를 해치는 이유를 근거로 들고 있다. 자유, 박애, 평등 따윈 개나 줘버려라는 논리 해당 국가에서도 표현하다시피 해당 트렌드는 그릇된 시점에 그릇된 대처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프랑스의 이슬람 이민자 반대를 주도하는 극우파의 대표격인 르 펜의 국민전선은 악시옹 프랑세즈로 대표되는 구 왕당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연히 자유, 평등, 박애를 핵심으로 삼는 대혁명 이래 프랑스 공화국의 보편주의에 대한 반대를 기본에 깔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서방쪽으로 무슬림 난민들이 유입되는 상황에 오히려 문제만 일으키는 건 기본으로 동화는커녕 오히려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15] 특히 인구수가 대폭 증가하고 있는 상황인데 대부분 선진국 인구수는 무슬림에 비해 매우 낮다는 점 때문에 자칫 무슬림이 인구수로 밀어붙여서 민주주의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진다는 것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이스라엘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가 바로 하레디다. 실제로 하레디 인구수가 너무 불어나서 이스라엘 정부조차 못 건드리는 상태다. 민주주의 방식으로 상대하자니 오히려 친하레디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폭력 및 테러를 많이 일으키는 종교가 이슬람으로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때 반대 시위가 나온건 좋지만 대놓고 폭력을 휘두르고 아예 간접 테러를 일으키는 상태. 폭력과 테러를 많이 일으킨 건 최근 일이 아니다. 이러한 난폭한 수단들 때문에 이슬람공포증이 많이 생긴 건 물론 여러 국가의 언론들조차 무슬림의 폭력 및 테러에 대해 매우 비판한다는 점이다.[16] 결론적으로 대화로 해결하기는커녕 오로지 폭력과 테러로 해결하려는 모습 때문에 좋지 않은 시선을 늘 받고 있다.

3.1. 배경

이슬라모포비아는 비무슬림[17]의 피해의식에서 근원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슬람공포증인 사람들의 '포비아'적인 논리적 배경은 실질적인 이슬람에 대한 본인의 자유 침해가 아닌[18]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에서 비롯된 피해의식에서 시작한 대처임을 기인한다. 상기 문서와 하위 구술한 문서를 보더라도 무슬림의 비무슬림의 탄압에 대한 공포라기 보다는 비무슬림인 일부 세력의 무슬림의 편견과 배타적인 대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상당수의 비무슬림들은 무슬림과의 화합과 공존을 요구하고 있으나, 특정 종교나 지역에 기반한 세력들이 이슬라모포비아를 조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월요시위"이다. 이들은 "독일의 유대 및 기독교·서방 문화의 보존을 원한다"라는 주장과 함께 동조자들을 규합해 세를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들은 애국이라고 표방하고 있으나 명백한 종교적 배타적인 이기심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 반면 기독교 사회당(CSU)의 메르켈 총리는 이러한 편협한 사회불만세력에 대하여 "독일을 찾는 모든 이들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피력하며 화합을 내세웠다. # 그러나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범죄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메르켈 총리의 화합은 날이 갈수록 빛을 잃고 있다.[19]

이슬람공포증을 외치면서 테러리즘으로 일관하는 세력은 상당수가 종교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슬람만큼 신자들의 삶에 구속에 가까울 만큼 영향을 주는 종교가 없고 그에 따름 자살테러나 강간, 명예살인등 범죄들을 보면 이슬람포비아의 동인의 상당수가 종교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서술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1980년 이후 기독계를 비롯한 종교계의 정치세력화로 인해 본인들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1/3은 무교라고 대답하고 있고 90년대의 1/5에서 1/3으로 무교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 [20]

이슬라모포비아는 전세계적인 국제정세 변화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한 해석에 있어, 이슬람 자체의 종교적인 특징 내지는 문제점을 그 원인으로 보는 데에서 비롯된다. 거기에 2000년대 후반부터 세력을 키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행동이 미디어의 발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도 결정적이다. 더불어 서방 국가들의 경제에 이민족들의 세력화와 부의 증가를 견제에서 시작하여 증오로 변모하게 됨을 보인다.

이슬람에 대한 포비아의 주요 배경은 2차 대전 이후, 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아시아를 비롯한 제3국가들의 성장과 교류가 늘어나면서 상호간의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지역에서 여러 인권신장운동[21]이 발생하면서 인식의 개선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으나 상대적으로 중동 지역은 신정일치라는 특유의 문화로 개선의 속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짐에 의해서 대립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신정일치의 문화는 중동의 발전을 막는 걸림돌이 되어 중동 지역은 어떤 지역보다 낙후되어 있어 오일머니 외엔 별 볼 일 없고 테러와 폭력, 광신이 난무하는 막장동네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물론, 중동의 막장스러운 현실을 보면 이게 틀린 것만은 아니다. 중동 외에도 다른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몰디브도 이슬람 극단주의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3.1.1. 국제정세 변화

3.1.2. 이슬람 문화적 특징

이슬람권 문화라면 이슬람 근본주의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페인 남부, 터키, 이집트 등 과거 무역항들의 주요 종교가 이슬람임을 알아야 한다. 당장 현재의 이슬람에 대한 편견은 중동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로 인해 발생하고 있기에 이슬람에 대한 문화와 풍습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포비아를 주장하는 이들은 아래와 같이 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아래 배경은 이해와 타협의 배경이지 포비아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4. 이슬람공포증의 현황

본 단락은 앞선 이슬람공포증이 바깥으로 표출되어 무슬림에 대한 탄압이나 배척이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에 걸쳐 진행된 각종 갤럽 설문조사 결과 아래와 같은 내용들이 확인되었다.

4.1. 유럽, 영미권,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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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기준 주요 유럽 국가 국민들이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 동·남유럽 지역의 반(反)이슬람 감정이 두드러진다.

2000년대 이라크전, 스페인 열차테러, 런던 지하철 테러 이후 서방세계의 무슬림에 대한 경계가 강화된 틈을 타 무슬림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행과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4.2. 제3세계

이슬라모포비아는 일반인들[45]과 무슬림들의 생각과 달리 절대로 서구만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니다. 서구권의 이슬라모포비아와 달리 언론에서 부각되고 있지 않아서 그렇지 비서구권의 비이슬람 지역 나라들 역시 세계와 단절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해외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의 타 종교 집단에 대한 박해 뉴스는 들어오고, 국내에서 소수 통제 받지 않는 무슬림들의 악랄한 만행이 때때로 벌어지기도 한다(이슬람 근본주의 문서 참고). 이런 경우에 일반 주민들이나 타 종교를 믿는 주민들이 가지는 반발심리와 불안심리가 매우 격렬하게 확산되는데 이 역시 쉽게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이쪽 비무슬림의 상당수가 서구와는 비교도 안되는 극렬 반이슬람, 이슬라모포비아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슬람 혐오가 서구와는 달리 조금도 관용 의식을 가지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46]

서구에서는 국가에서 무슬림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기에 대놓고 못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인식이 낮은 제3세계에서 이슬람이 소수인 국가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주도한 테러가 일어나서 몇명 죽거나 재산 피해를 입으면 당장 비이슬람 집단도 분노하여 폭동을 일으켜서 무슬림 거주지로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집이고 가게고 가리지 않고 때려부수는 등 처참하게 짓밟아버린다. 심지어 테러나 극단주의와 무관한 무슬림을 죽이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그야말로 한 대 때리고 100대 맞는 꼴.

그리고 경찰 같은 공권력에서도 애초에 이슬람 집단을 좋게 보지 않고 사회 불만을 이쪽으로 돌릴 수 있다보니 이런 폭동이 일어나도 제대로 법적 처분을 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백배로 보복당한 이슬람 집단 역시 증오가 강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게 된다. 제3세계의 이슬람 무장 단체들이 비이슬람 국가들한테 심하게 얻어맞아도 잘 버티는 게 이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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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남성을 폭행하고 조리돌림하는 힌두교 극우단체 회원들. 조리돌림하면서 계속 채찍으로 때리고 있다. 사진과 영상을 보면 주변에서 아무도 말리지 않고 구경하고 있으며 심지어 구경하는 사람들 중 웃고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힌두교 극우들은 이슬람의 테러와 범죄가 발생하면 무슬림들에게 보복범죄와 가혹행위를 저지르는데 인도 경찰은 제대로 된 처벌도 안하여 무슬림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2017년에는 강경 힌두교 민족주의자인 힌두교 성직자 요기 아디티아나트가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 주의 주 총리로 취임하면서 소고기 단속에 나서면서 소고기로 케밥을 만들어 팔던 무슬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62] 물론 성공한 무슬림도 있다. 아웃소싱 업체 1등인 ‘위프로’의 아짐 프렘지 회장이나 인도 발리우드 영화계의 인기 배우인 샤룩한(Shah Rukh Khan)과 다르멘드라(Dharmendra) 등이 대표적이다. 인도의 유명한 기업 씨풀라(Cipua)[63], 히말라야(Himalaya)[64]도 창업주가 무슬림이다. 하지만 문제가 성공한 무슬림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것이다. 이렇게 인도 사회에서 심한 차별을 받다보니 인도의 무슬림들은 인도에 대한 반감이 굉장하며 많은 인도 무슬림들이 이슬람 단체 인도 무자헤딘(Indian Mujahideen), 인도이슬람학생운동, 데칸 무자헤딘에 들어가서 테러와 증오범죄를 벌이고 있으며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 타종교와 세속주의자들에게 종교적인 범죄를 저질러 인도 내에서 골치아픈 문제다. 경찰과 군대 역시 무슬림에 대한 인권침해로 비판을 받는다. 다만 인도에선 기독교도 장난아니게 극단적으로 보고 있으며 힌두교 극우단체들은 이슬람과 더불어 적으로 규정해 선교사를 끔살시키고 개종자까지 고문함에도 인도 정부가 외면하고 있는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 시크교 역시 힌두교 극우단체들에게 박해를 받는다.[65]
다른 나라와 중국이 다른 점은 중국이 매우 강력한 통제 사회며, 그럴 수 있는 기술적 역량도 충분하다는 점이다.게다가 티벳, 내몽골, 위구르 등은 중국 전체 면적의 몇 분의 1이 되는 방대한 면적에 비해 토착민 인구가 매우 적기 때문에, 철도 연결과 내륙 개발을 하며 중국 정부가 한족을 대거 이주시켜 인구구성비에서 절대 다수를 한족으로 만들어버렸고 이들에게 지방 정치 경제의 주도권을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 무슬림 2세의 공교육에서 이슬람을 빼버리는 것은, 서구국가만큼 인권에 얽매이지는 않는 중국 정부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며 한 세대만 언론통제하면 중국 정부 관점에서 "문제는 영구 해결"이다.

4.3. 터키

비록 다양한 종파가 공존하긴 하지만, 통계상 약 98%가 무슬림인 터키에서도 이슬람 공포증이 존재한다! 정확히는 (이슬람)근본주의공포증이라고 봐야겠지만... 터키는 아타튀르크 이후 에르도안 집권 초기까지만 해도 강경한 세속주의, 그것도 프랑스식으로 종교권력을 국가의 힘으로 억누르는 '라이씨떼' 형태로 세속주의가 이루어졌으며 에르도안 집권 이후에도 외부에서는 "터키가 이슬람화된다!"[73]라고 우려할 정도로 이슬람적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하기는 하지만[74] 여전히 터키의 정치형태는 세속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에르도안도 공식연설에서 영미식 세속주의를 언급하며,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천명한 바 있으며, 이러한 명분으로 그동안 철저히 금지되었던 공공장소에서의 히잡착용, 공무원의 예배시간 휴식부여 등을 실시했다. 말하자면 과거에 비해 이슬람화되었다고 우려되는 에르도안 정권조차도 근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터키는 헌법에 이슬람의 '이'자조차도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터키 헌법은 절대로 개정될 수 없는 조항 3개조항을 두고있는데 그중 하나가 국교없는 세속주의 국가이다. 때문에 2016년 현재에도 터키 교육과정에서는 국내 학생이든, 외국 유학생이든 아타튀르크와 케말주의, 터키 혁명사를 의무적으로 수강하게 되어있다.[75]

이러한 배경 때문에 터키에서도 비록 무슬림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 현재 시리아이라크에서 IS가 점령한 지역, 이란, 보코 하람의 근본주의적이고 인권억압적인 행태를 보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되는거 아냐?" 하고 두려워하며 가깝게는 터키에 기 300만 가까이 존재하는 시리아 난민에 대한 두려움과 전통적으로 아랍인을 천시하고 미개하다고 여겨온 관념과 결합해 이슬람공포증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당장 2015년, 2016년만 해도 에르도안을 호메이니라고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우린 이란이 아니다!리고 욕하며 아타튀르크 사진을 크게 내걸고 시위하던 시위대도 늘어났다.

한편 터키의 이슬람공포증적인 현상에 대해 이해하려면 터키인 특유의 민족주의관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군주가 이슬람교의 지도자인 칼리파 타이틀을 보유하던 오스만 제국 당시 조차도 오스만 제국에서는 샤리아를 적용한 적이 없다. 제국 내의 여러 민족들을 그들이 믿는 종교로 분류한 다음, 교단과 교구를 중심으로 이들을 묶어 밀레트(Millet)를 형성하고 - 이슬람, 정교회, 유대교, 아르메니아교회 - 각자의 고유법에 따라 민법과 상법을 담당하고, 형법(Kanun)은 모든 밀레트마다 공통으로 따르게 했다. 물론 형법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투석형이나 화형, 도둑의 손을 자르는것 따윈 시행되지도 않았다. 오스만 제국은 리즈시절부터 멸망 직전까지도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국가도 아니었고, 이슬람 제국도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에 대한 것은 오히려 기독교권인 유럽인들 증언에서도 잘 나와있다. 오스만 제국 술탄을 영접한 오스트리아 사신이 남긴 기록만 봐도 "오스만 제국 황실에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물론 재상같은 고위직은 무슬림이 차지하지만 이전에 기독교인이라도 개종한다면 재상이 될 수 있다.그리고 비무슬림이라도 일단 궁궐에서 벼슬을 누릴 수 있다! 더불어 궁궐 곳곳에 기독교인이나 유태인이나 소수 종교인들도 일하는 걸 볼 수 있다. 유럽 황궁이라면 절대 생각하지 못할 모습이라 너무나도 놀랐다."라고 할 정도이다.[76]

보통 아르메니아 대학살이 이슬람과 기독교 충돌이라고 전혀 엉터리로 아는 경우도 많은데 당시 오스만 제국 집권층과 이 학살을 조장한 청년 튀르크당은 오히려 종교에 진보적이었고 종교는 개뿔, 되려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벌인 학살이다. 때문에 기독교인이 다수인 아르메니아인과 아시리아인 말고도 당시 무슬림 아랍인들도 수십여만이 가차없이 오스만 제국에 해가 된다며 학살당할 정도로 종교와 무관한 학살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바탕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아랍인을 굉장히 열등하고 미개한 민족(기독교인보다 더 밑으로 봤다. 오스만 무슬림이 1등 신민이라면 그 다음에 기독교인은 2등 신민, 그 다음에 유태인과 다른 종교인. 다음이 아랍 무슬림....이러다보니 아랍 무슬림들도 터키를 이스라엘급으로 무척 싫어한다.)[77]으로 여겨온 편견이 맞물려서 이슬람공포증적인 현상이 심지어 종교적인 우파 지지자들에게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전통적은 케말주의자들은 물론이고 현 에르도안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 조차도 터키가 아랍화된다.며 반발하는 현상을 이런 배경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이러다보니 에르도안조차도 아랍 나라들과 교류를 나누고 같은 무슬림 형제이니 뭐니 웃는 소리 못한다......그러려고 해도 아랍에서 "꺼져! 이 튀르크 놈들아!" 라고 하며 무시하겠지만

4.4. 대한민국

유럽에서와 같은 "이문화간 융합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계층의 반발"과 미국에서와 같은 "잠재적 테러집단에 대한 공포감"이라는 두 유형이 동시에 발현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슬람권에 대한 여론과 정책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동조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상 반이슬람적인 미국과 유럽 또는 일본의 이슬람에 대한 비관적 생각이 이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이슬람에 대한 생각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것이 문민정부 이전까지의 미국에 의한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을 넘어 찬양 수준이었던 학교 교육과, 미국이 적대 관계를 취한 이란, 이라크 등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 묘사들이다. 특히 냉전시대에는 친미냐 친소냐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부 종교단체를 제외하고는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고 단순히 이국적인 이미지로만 받아들였다. 일반 국민들은 9.11 테러 이전까지는 이슬람 자체에 대한 적대감이나 불안감을 갖지는 않았고, 중동 지역 건설 프로젝트들을 통해 경제적 협력이 가능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보거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맨체스터 시티로 대표되는 부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아래와 같이 인식이 변화되고 있으며, 2018년 제주 난민 사태에서 대대적으로 표출되었다.[78]

5.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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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극복을 위한 노력

이슬라모포비아에 기반하여 반이슬람행위에 빠져들지 않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와 허용, 그리고 이슬람 내부의 자성이 필요하다. 비이슬람 문화권의 경우, 자국에 유입된 무슬림을 포함한 모든 계층에 대하여 배척하지 않고 이해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제노포비아 자체가 해당 인종에 대하여 막연한 공포감을 토대로 형성되었음을 인지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도록 하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슬람 문화권은 오랜 기간동안의 율법에 의한 통치와 남성 중심의 율법적 해석이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중동 세계도 아랍의 봄 이후 정치적 개혁 요구와 함께 서구 문명의 유입으로 기존 관습 철폐를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비이슬람 진영에서 경계하고 배척해야 할 것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지 무슬림 전체 또는 이슬람 문화 자체가 아니다. 이슬람계 출신이면서도 다른 사회에 적극적으로 동화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그저 문제아들과 같은 민족, 같은 종교라는 것만을 이유로 무조건적인 차별을 일삼으면 오히려 멀쩡하던 이들도 반발심리로 진짜 문제아들인 극단주의자들에게 가담할 수 있다. 실제로 극단주의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지하드, 즉 이슬람 대 반이슬람의 전쟁이라고 정당화하여 이슬람 사회 내에서 지지를 얻고 있으며, 이슬람에 대한 비이슬람 진영의 차별이 늘어날수록 일반 이슬람 교도들이 극단주의자들의 의견에 동조하여 자발적인 지하드 가담이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무력화시키는 궁극적인 방법은 비이슬람 진영에서 이슬람에 대한 열린 시각을 넓혀 일반 무슬림들이 비이슬람 진영과의 전쟁 상태가 아니라고 스스로 느끼고 극단주의를 이슬람 내에서 배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이슬람은 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며, 전쟁상태가 아니라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와 같은 일반 무슬림들에 대한 인도적인 대우는 이슬람 대 비이슬람 사이의 평화 증진에 도움이 된다.

5.1.1. 이슬람 외부의 노력

일단 서방의 방식은 세속주의를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존중하는 무슬림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무슬림은 적극적으로 적발하여 법으로 처벌하거나 추방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즉 이슬람의 전근대성을 약화시키면서 세속에 편입시키는 식이다.

각국 정부에서 아래와 같은 조치들을 취한 바 있다.
민간 차원에서도 아래와 같은 활동들이 전개되었다.
즉 이슬람 자체를 적대시하지는 않되, 이슬람의 전근대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시정 요구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시정을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1.2. 이슬람 내부의 노력

2010년 튀니지를 비롯한 아랍의 봄을 시작으로 이슬람 내부의 자성과 변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동 지역의 기존 정권에 대한 개혁 요구로 인해 시작된 시위는 그동안 이슬람 문화의 자성을 보여준다. 정책적으로 터키는 2004년에 명예살인은 살인죄로 적용키로 하여 자행되던 악습의 피해자를 감소시켰다.[94] 사우디아라비아는 높아져 가는 이혼률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율법에 따르면 이혼은 가능하나 되도록 피해야할 사항이나 부부간의 갈등 표출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95] 이란의 한 여성은 히잡에 반대하여 페이스북에 히잡 쓰기 반대 운동목적의 사진을 게시하였고 국제 NGO는 인권상을 수여하였다.[96]

5.2. 한계

문제는 국제정세와 관련된 복잡한 문제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 가능성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이스라엘-미국-이슬람 세계와의 이해관계와 증오의 연쇄 문제다. 단순히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라고 쉽게 단정지을 문제가 아니다.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을 하려면 이슬람-이스라엘-미국 3자가 풀어야 되겠지만, 각자의 이해관계가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라 현재로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또다른 중요한 사실, 이슬람공포증을 부추기는 가장 큰 원인은 극단주의 조직들의 테러 행위인데, 이게 바로 그러한 조직들이 원하는 바라는 것이다. 서구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배척이 심해질 수록 이슬람 2세대 젊은이들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품고 살아가게 되고, 이는 손쉬운 '전사' 공급원이 된다. 포용은 어렵지만, 증오와 혐오는 쉽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셈.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충돌 사례들이다. 동영상 제목부터가 "이슬람이 유럽과 미국을 망치고 있다"며 비무슬림 측 입장에서 샤리아 경찰, 폭력 폭언 사례 등을 묘사하고 있으나, 비무슬림들이 무슬림을 상대로 욕설과 모욕을 퍼붓는 영상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무슬림에 의한 범죄가 비록 언론에 의해 과장되는 측면이 있을지라도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한 예로 피파 바카(Pippa Bacca)라는 이탈리아 국적의 여성 행위예술가가 "Brides on Tour"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밀라노에서 예루살렘까지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하던 중 2008년 3월 31일 터키의 겝제(Gebze)시에 도착한 뒤 실종, 강간 살해된 채 4월 11일에 발견된 바 있다. 관련 기사 이를 많은 사람들은 이슬람의 문제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며, 두 명이 함께 여행하다가 이스탄불부터 헤어져 혼자 여행한 점이나, 범인이 약물 및 알콜 중독 상태라는 점과 같이 보다 범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원인들은 무시된다.

5.2.1. 이슬람 측의 문제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선민 사상에 기반을 둔 교리 해석에 있다. 지하드는 기본적으로 이교도에 대한 약탈을 인정하는 등 전근대적인 측면이 많고, 이슬람을 비교해서 신흥 사이비 종교를 만드는 경우에 적용되던 배교자에 대한 살해 명령 역시 어느 순간 이슬람에서 다룬 종교로 개종한 사람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설사 샤리아를 전면부정한다고 해도 쿠란 자체에 현대 사회 가치관과 충돌하는 부분이 많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교리 자체를 고칠 수는 없어도 전면적인 재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98] 또한 와하브파살라프파 같은 극단주의 종파에 소속된 사람이 타크피르주의[99] 성향이 있을 경우 반드시 추방해야만 한다.[100]

또한 종교계를 넘어 정계, 학계, 언론계 등 사회/문화 전 분야에 걸쳐 원리주의가 큰 영향을 끼치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양대 종파 수니파와 시아파의 수장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과 같이 원리주의 신정체제 국가의 경우 정치계학계가 원리주의를 엄수하기로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고, 무슬림이 절대 다수로 있으나 샤리아 법이 실정법으로서 작용하지 않는[101] 세속 국가에서도 무슬림 인구수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언론계 내 원리주의 확대 및 말레이시아 B1A4 팬미팅과 관련하여 발생한 성추행 논란은 샤리아 법정의 처벌에 따라 결국 이벤트 주최자가 자격정지되었다.그 외 다수 非이슬람 국가에서도 인도, 미국에 샤리아 법정이 존재하는 등, 원리주의는 다양한 지역, 형태, 계층에 자리잡고 있다.

원리주의와 극단주의가 동의어는 아니지만 극단주의의 폭력적 행위는 원리주의에 그 근거를 두는 것이 현실이고, 테러리즘의 형태까지 나아가지 않아도 서구 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의 가치에서 탄생한 UN 인권헌장의 관념에 신본주의적 가치가 충돌하며 물러서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102] 즉, 인도 이슬람 학자 집안 출생의 유명 미국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의 "역시 하지만 오늘날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이 가진 피비린내 나는 믿음은 무슬림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온건한 무슬림조차 신성모독과 배교는 이슬람에 대적하는 범죄로 엄중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라는 오피니언으로 정리할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장애는 다른 집단에 대한 경계 및 배척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동물적인 본능이라는 점이다. 이는 서로 융화하기를 꺼리는 무슬림만의 책임도 비무슬림만의 책임도 아니다. 양쪽 모두 문화적으로 100% 융화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서로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종교관습을 명목으로 자행한 위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고 이러한 행위를 경계하는 측도 선을 지켜가며 맹목적인 혐오가 아닌 비판의 영역에서 머물러야만 한다. 그러나 각각의 입장에서 물러서지 못할 한계점이 어디까지인지가 문제인데, 대표적으로 샤리아 법[103]이 무효하다는 점에서 물러 설 수 없는 비무슬림과 경전에 어긋나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에 대해 물러설 수 없는 무슬림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에 대한 반응에서 나타나듯, 샤리아 법에 따른 신성모독 금지와 표현의 자유란 현대 시민사회의 가치가 충돌할시 샤리아 법에 따른 가치를 비무슬림이 받아들일수는 없는 법이고 반대로 평범한 무슬림조차도 받아들이기에 경전에 어긋나는 행위인 경우극단주의화 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다시 말해 비무슬림 측에선 발생한 갈등현상에 대해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는 마키아벨리즘식 대응으로 정치적인 귀결[104]이 나기도 하며, 그러한 관점에서 해결 비용(사회적/경제적)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심리와 경계 심리가 만나 이슬람권 전반에 대한 효율적인 경계를 넘어 비이성적인 공포증,혐오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반대로 무슬림 측에서는 다소 관용적인 세속주의부터 IS[105]와 같은 극단주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 경전에 어긋나는 행위를 정의하는 방식의 범위가 다양하긴 하나 앞의 사례들로 소개되었듯 원리주의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한편으로는 그것이 구조화, 확대화, 심지어 극단화까지 되기도 하여 갈등의 원인이 재생산되는 상황이라 이슬라모포비아란 갈등 현상의 해소를 기대하기에 부정적 전망이 내세워지기도 한다.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경계는 근본적으로 이슬람교에서 권장하는 행위/가치관이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점에서 나온다. 아무리 정치적 올바름을 처덕처덕 발라서 이야기해도 '반인륜적인 행위를 옹호하는 종교/가르침이 강세인 이슬람 문화권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 사이에서는 현대 서구권 사람과 같은 인권의식을 가진 사람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을 수 없다. 또한 같은 이유에서 IS나 테러리즘 같은 인권의식을 엿 바꿔먹은 사람/단체와 그 구성원이 나타날 확률도 높다.'는 것을 반박하기 힘들다. 이슬람권에 대한 경계는 현 시점에선 필요하다. 편견을 벗어던진답시고 'XX가 다 나쁜 건 아니에요!'라면서 아예 경계를 풀어버리는 일은 자살행위다. 비유하자면 '마실 수 있는 알코올도 있어요!'라면서 메탄올을 들이키거나 버섯도 먹을 거라면서 식용버섯 독버섯 다 집어먹는 짓이다. 물론 알코올이나 버섯의 씨를 말릴 필요도 없고 물론 사람을 알아서 죽이는 발 달린 버섯은 없애야 하겠지만 독버섯 때문에 버섯을 먹을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나, 독버섯과 멀쩡한 버섯이 아무렇게나 섞인 꾸러미를 버리는 사람을 버섯 차별한다고 욕할 수는 없다. 이걸 강요하는 건 그냥 남의 목숨 가지고 도박하려는 짓이다. 정치적 올바름이고 뭐고, 사람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선 우선될 수 없다.

이슬람의 문화와 제도, 규범이 존중받아야 한다면 그 반대로 비이슬람의 문화와 제도, 규범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슬람의 율법과 제도, 문화는 비타협적이고 다른 문화와 국가, 종교의 규율과 규범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이슬람 측이 관용적인 태도로 수용하고 소위 말하는 세속적인 태도를 취해야 해결이 가능하지만 이슬람의 정교일치 사회, 종교적 규범이 일상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사회의 속성상 절대로 타협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로서 이슬람 문화에 속하는 사람과 비이슬람 문화에 속하는 사람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못할 정도의 거리를 가지고 사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106] 이슬람-비이슬람 사이의 충돌의 원인은 과거와는 달리 그들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고, 서구 유럽사회 또는 자본가들이 저임금 노동력의 활용을 위해 의도적으로 저개발국가의 외국인노동력을 수입해 자국내의 임금억제-자국민 노동자 견제를 해왔고, 하필이면 그렇게 수입된 외국인노동자들의 다수가 무슬림이었다는 점에 있다(유럽의 경우).

이 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오직 무슬림들이 가지고 있다.기독교불교에 대한 비판, 성경 또는 예수에 대한 비판과 불경 또는 석가모니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지만 이슬람이라는 종교, 그 종교의 창시자 등에 대한 비판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 문제는 이슬람 측의 종교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태도가 나오지 않는 이상 비이슬람 측의 일방적인 양보만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 결과는 오직 모든 인류가 이슬람을 믿거나 단 한 명도 이슬람을 믿지 않는 두 가지 극단 외에는 결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게시글에서는 이슬람교 신자가 서양에서 샤리아법을 이해 못한다고 주장하는 여자와 댓글들을 볼 수 있다. 그들 스스로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5.2.1.1. 관련 문서

5.2.2. 비이슬람 측의 문제

한편 이슬람 내부의 전근대성을 지나치게 과장하고[107] 극단주의자들이 전체 이슬람 교도의 일부에 불과함을 무시하고 전체 무슬림과 전체 비무슬림 사이의 갈등을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극단적 반이슬람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은 이슬람을 비난하는 행위를 통해 인지도와 지지도를 확보하는 언론인과 정치인들로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각종 혐오 발언을 일삼고 있다. 특히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에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반이슬람 운동을 활용하여 정치적, 당파적 이득을 챙긴 것으로 분석되며, 결국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는 결실을 맺었다.

반이슬람주의 네트워크는 미국의 티파티 운동에서 유럽 극우 세력, 이스라엘의 극우 시오니스트, 기독교 근본주의, 영국의 인종주의자들인 축구 훌리건들에 이르기까지 대륙 간에 걸쳐 세력을 확장했고, 국내에서도 이슬람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미국의 기독교 언론 기사들을 그대로 번역한 기독교 언론들의 기사들이 난립하고 있다. 이들 기사는 사실 전달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적 가치관에 따른 가치판단을 결론으로 제시하며, 반이슬람 정서를 부추기기 위해서라면 사실 왜곡까지도 자행한다.

비종교 언론에서도 가끔 무슬림 내부에서의 테러 비판에는 침묵하는 등 편견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

6. 결론

다른 집단에 대한 경계 및 배척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동물적인 본능이고, 특히 대부분의 종교가 갖는 이교도에 대한 배타성은 이를 더욱 극복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에 의해서만 살아가서는 안되는 존재이며, 문화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100% 융화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서로 인정하고 다른 문화와 공존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각 국가는 개인이 신봉하는 종교적, 문화적 가치에 기반한 각종 위법행위를 엄단하는 한편, 국제사회에서 제안하는 보편적 가치를 법률에 점진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슬라모포비아를 가진 사람들은 이슬람측의 문제를 이유로 자신의 언행을 정당화하나,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 오히려 무슬림이 사회에 융합하는 것을 방해하고 소외와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극단주의를 선택하게 만든다는 의견이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이후 유럽 내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와 이슬라모포비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관계에 놓여 있으며, 양쪽 모두 반세계화를 바탕으로 한 우경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부 무장 단체들에 의해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한 극단주의적 범죄들이 지하드나 순교라는 명목으로 발생하고 있고 이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가 크게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요에서도 언급하였듯 이슬람공포증에 의한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나 비하는 반인권적인 불관용 행위로 국제사회에서 규정된 바, 어느 쪽이 더 나쁘다를 따질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와의 공존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만 할 문제이다.

7. 여담

나무위키 역사상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위키위키를 통틀어 역사상 가장 긴 토론이 지속된 문서이기도 하다.[108] 그 토론을 중재하느라 갈려나간(...) 전 임시관리자들은 이 문서만 보면 노이로제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그 역사는 닫힌 토론 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109]

8. 관련 문서


[1]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기사[2] 프레드 할리데이는 이에 대해 국가 및 문화에 따라 이슬람에 대한 편견의 형태가 다르다며 부정하였으나, 말콤 브라운, 로버트 마일즈 등은 차별의 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고 반박하였다.[3] The Britannica Guide to Political and Social Movements That Changed the Modern World, 2009, 317쪽.[4] 종합경제사회연구원 중동 지역연구, 3-3).[5] 다만 저자는 사학 전공자가 아니라 건축가 겸 디자이너이므로 주의.[6] Jonathan Phillips, The Crusades 1095-1204, pp. 17-23.[7] 9.11 테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의 성명에서 언급된 "80년 간의 굴욕과 불명예" 발언이 이를 겨냥하고 있다.[8] 이는 이후 유태계 자본이 언론 및 영화계를 지배하면서 더욱 강화된다. 단, 9.11 테러 이후로는 반대로 무슬림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9] 사회적 유물론에 입각한 친소 진영은 집권 성향에 따라 종교를 탄압하거나 적어도 권장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은 원리주의자들을 오히려 무신론에 맞서 싸우는 숭고한 종교인으로 포장하고 지원했다. 람보 3에서 공산 정권에 맞서 싸우는 아프간 무자히딘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에 지나지 않는다.[10] 군사력과 기술력, 경제력에서 이슬람의 전 국가들이 연합해도 미국을 못 이긴다. 당장에 미국이 이슬람 국가들한테 경제 제재만 내려도 입는 타격이 장난 아니기에 미국의 의견은 절대 무시 못 한다. 이란과 시리아가 중동에서 반미 국가이지만 미국을 이길 힘이 없어 대놓고 적대하지 않는다.[11] 이는 싱가포르인도/인도네시아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일으킨 폭동과 유사하다.[12] 이는 실업률이 높아지거나 사회의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국가에서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다.[13]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아랍인 탄압으로 인해 발생하는 테러가 좋은 예다.[14]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2013년 테러 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을 법적으로 금지하였고, 미국과의 합동 공습에 동참하는 등 태도를 바꾸었다.근데 지금도 뒤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카타르와 쿠웨이트는 이에 따르지 않고 있다.[15] 당장 샤리아를 적용시키려 하거나...[16] 예루살렘의 경우 불만을 가진 무슬림들이 대놓고 테러를 하려고 했었다. 시카고와 뉴욕에서 자폭 테러를 시도했었다.[17] 다만 이슬람 문화권의 경우 그 내부에서 박해받고 있는 소수파인 비무슬림의 경우는 피해자인 경우가 많고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다수파인 무슬림들이 오히려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소수파가 가해자인 경우보다 피해자인 경우가 흔하고 오히려 다수파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허나 현대에 종교를 이유로 박해하는 지역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이슬람권이 두드러진다. 그 이유는 이슬람권의 경우 인종, 경제적 가치보다 종교적 가치가 더 높고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 인종차별이 차지하는 위치를 종교적 차별과 탄압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 미국과 같은 경우 이슬람을 제외하고는 종교적으로 차별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유럽도 마찬가지. 그러나 인종차별은 아직도 남아 인종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강도의 경우 이슬람이 더 심각한 것은 맞다. 이유는 서구 선진국의 국민들이 경제적, 의식적 측면에서 더 나은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18] 그러나 실제 이슬람권에서 무슬림에 의해 종교적인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포함한 박해를 당하고 서구권에서 이슬람포비아 활동을 하고 있는 인사(소말리아 출신의 아얀 히르시 알리나 레바논 출신의 브리지트 가브리엘)도 있기 때문에 이것도 전적으로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19] 이전 서술에는 이슬람포비아의 확산이며 큰 문제점이라는 서술이 있었으나 이는 독일 내부의 무슬림들의 대규모 행동에 따른 범죄와 사회적 혼란에 대한 거부 반응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20] 미국에서 무교의 증가가 특정 종교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여러가지 요인에 의한 결과이고 그 중 하나를 예로 든다면 현대사회가 산업화, 정보화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종교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21]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 영국/프랑스의 전쟁 반대, 여성/아동의 인권 신장.[22] 모든 정보가 날조된 거짓정보라는 의미가 아니며, 무슬림 진영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통제하지 못해 국제사회에 무수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며, 과거 냉전 시기 공산주의의 부정적 측면 역시 많은 부분 실재했다. 중요한 것은 편중된 정보에 의해 "이슬람이 무조건 나쁘네"라는 결론으로 유도되지 않도록 개개인이 각 사안마다 비판적으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다.[23] 버스 안이랑 공공장소에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하면 테러 공포감에 '테러범 잡아라' 하며 집단 린치를 당할 수 있다. 경찰에게도 테러범으로 간주되어 체포당하여 조사받게 된다. 기독교가 '하느님이 위대합니다'라고 하면 '저 사람 민망하게 왜 저래'라며 무시받는 것과 차원이 다른 조치다.[24] 각국 총 인구 기준 무슬림의 비중은 영국 4.4%, 프랑스 5~10%, 독일 1.9%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프랑스의 경우 제대로 된 인구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단, 독일의 경우는 이전 조사 결과인 5.9%에서 급감했는데, 이는 독일 내 이슬라모포비아 현상의 증가로 무슬림들이 불이익 당할 것을 우려해서 자신의 종교를 솔직하게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5] 이 요구는 작게는 히잡착용이나 할랄푸드 영업허용 등과 같이 논란의 여지는 있어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부터 샤리아법 도입 및 종교경찰활동이나 이슬람 거주구 에미레이트 분리독립 등과 같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까지 다양하다. 어느 선까지를 요구하고 받아들일지에 대해 이슬람과 비이슬람 사이에 합의가 필요하다.[26] 유교나 타 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경전에 명시된 사회규범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법적 처벌이 있었으나, 현대에는 그러한 법적 처벌이나 삶의 제약의 정도가 세속화 추세나 정교분리에 따라 이슬람권과 달리 현저히 감소했다. 더욱이 유교를 종교로 구분하는 데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27] 하지만 이슬람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남성에 대하여서는 상당히 유연한 자세로 적용됨을 알 수 있다.[28] 그러나 2016년 현재 미국과 영국의 실업률은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임금 기반 직업군을 이민자들이 차지해서 청년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의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29]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의 유태인의 증오 심리로 인해 홀로코스트가 나타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자.[30] 이슬람이 타 종교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쿠란의 "불신자들의 목을 쳐라"라는 구절을 인용하는데, 이는 전쟁 중에 국한된 것이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불신자인 피정복민(딤미)에게는 "이슬람이 보호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소위 인두세라 불리는 "지즈야"라는 세금을 징수하였을 뿐 개종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오스만 투르크 초기에는 세금도 동로마 제국에 비해 적은 액수였기 때문에 당시 기독교와 유대교도들은 세금만 내면 종교의 자유를 누렸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용은 이슬람과 같은 신을 믿는 유일신 종교에만 국한되는 것으로 다신교도들과 무신론자들은 철저하게 탄압하였다. 조로아스터교 대학살을 자행하기도 했고, 무신론자-신을 믿지 않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쿠란에 명시되어 있다.[31] 다만 이것은 시스템 개선이 낳은 유리천장 깨기가 아니다. 매우 독특한 이란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일회성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선시대에도 꼽을 만 한 여성 위인이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32] 애당초 이 둘은 이슬람교와 뿌리가 같다.[33] 인도랑 동남아 국가들이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가 더러운 게 이것 때문이다. 특히 무슬림들은 인도와 동남아인들의 종교만 박해한게 아니라 그들을 야만인으로 멸시하게까지 했다. 그러니 이쪽의 이슬람 혐오는 서방 세계의 이슬람 혐오만큼 심하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터지면 이슬람 혐오가 더욱 심해진다.[34] 그렇기에 남들보다 가족에게, 타인종보다는 자신의 인종에게 더 높은 공감수치를 보인다.#[35] 이 것이 각종 난민 구호 협회 혹은 봉사 단체에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문구를 즐겨 쓰는 이유이다. 공통점을 찾아 공감도를 높이려는 것.[36] 이는 역으로 무슬림 역시 외부인과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데에도 똑같이 작용한다.[37] 하지만 이에 대해 UNUN 인권위 모두 "명백한 차별"이라는 의견을 밝혔다.[38] 반이슬람 외에도 메르켈 정부의 난민 수용 정책과 사건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 의견들도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39] 이게 본진이라 할 체첸 지부(러시아어로는 "빌라얏 노흐치최(Vilayat Nokhchicho)"의 문제만이 아니고 잉구시 공화국 지부인 "빌라얏 갈가이체(Vilayat Galgaycho), 다게스탄 공화국 지부인 "빌라얏 다게스탄(Vilayat Dagestan)" 같은 타 지부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체첸 쪽은 푸틴과 카디로프가 밟아 놔서 그나마 괜찮은데 오히려 다게스탄이 더 극성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40] 물론 이 극단주의적 행동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에서 발생하는 범죄와 나무위키 규칙상 링크 금지인 납치 및 참수 같은 막장짓들도 해당된다.[41] 체첸전 시절에 수피즘 계열 세력도 잔학행위는 했다.[42] 이놈들이 체첸 내부에서도 난장판을 친 것도 있고, 다게스탄 침공(그 악명 높은 1999년 다게스탄에서 벌어진 "체첸 클리어"도 다게스탄 침공 부대 지휘관 "살라투딘 테미르블라토프(salautdin temirbulatov)"가 벌인 짓거리였다. 인과응보인지 투옥된 이후 의문사를 당해서 문자 그대로 존재 자체가 증발했다) ,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으로 벼르고 있던 러시아에게 명분만 신나게 줬다.[43] 우리는 우습게 볼수 있겠지만 실제 테러리스트들이 이런 방식으로 폭탄 터뜨리기 때문에 이 사람들 입장에선 절대로 우습게 볼일이 아니다. 물론 이 사람들도 케바케라 무덤덤하게 반응하거나, 가방놓고 갔다고 주워다 주거나, 심지어는 그걸 그대로 주워가는(...) 영상도 있다. 테러리스트의 복장과 종교는 특정할 수도, 특정해서도 안된다는 점에서 무슬림 혐오적인 행위이다. 물론 여러분이 우려하듯이, 둘러보다 보면 어지간히 짓궂은 길거리 몰카 장난도 웃어넘기는 미국인들조차 빡쳐서 "야이 개새꺄, 웃기냐? 웃겨?"하며 작정하고 쫓아가서 공모자에게 그라운드 기술을 거는 영상도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장난이 마냥 웃고 넘기기에는 사회적으로 선을 넘은 부분이 있다는 것. 당연히 무슬림들은 이 장난을 매우 싫어한다.[44] #[45] 여기서 말하는 일반인은 비서구권의 비이슬람 지역의 주민을 의미한다.[46] 단, 서구에서도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외로운 늑대에 의한 다수 소프트 타깃 테러, 브렉시트 결정에 이민자 문제가 미친 영향 등으로 인해 이성적인 관용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47] 특히 수단의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이 샤리아 통치를 하여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더 심해졌다.[48] 인도네시아 지배 하에서도 무슬림 수는 4% 정도가 최고였으며 동티모르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여 줄었다.[49] 다만 인도 일부 주에서는 중앙 정부의 방침과는 별개로 미얀마에서 인도로 탈출해온 로힝야족 난민들을 수용하기도 했다.# 사실 인도는 정치적으로도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어 국방,외교를 제외한 행정주의 자치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있긴 하다.[50] 미얀마 버간 왕조가 태국 일대를 지배하던 아유타야 왕국을 침략, 멸망시켰을 정도로 두 나라의 관계는 아주 사이가 나쁘다. 아예 두 나라의 국경 지역도 폐쇄되어 있어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러 온 외국인 관광객들도 태국에서 미얀마로 넘어갈때 비행기를 타고 넘어갈 정도.[51] 실제로 미얀마를 비롯해 동남아시아의 불교국가인 캄보디아와 라오스등은 숙적인 태국을 견제하기 위해 태국과 대립관계에 있는 말레이시아와 긴밀한 무역, 국방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말레이시아는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 분쟁 지역인 쁘레아 비히어 사원도 캄보디아 영토로 인정하며 캄보디아를 편 들어주기도 했었다.[52] 동티모르 본토 지역과 월경지인 외쿠시 암베누 지역까지 합하면 영토 면적이 14,609km² 정도 밖에 안되는 소국이다. 미얀마의 옆나라인 방글라데시보다 영토 면적이 더 좁은 셈.[53] 게다가 캄보디아와 베트남 역시 자국내의 무슬림계 소수민족인 참족들을 탄압, 학살한 적이 있었다. 반대로 싱가포르는 사실상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족 무슬림들에게서 쫓겨난 수준의 강제독립으로 생겨난 나라인지라 역시 이슬람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은 없다.[54] 미얀마 인기 여배우의 페이스북 계정을 해킹한 집단은 미얀마의 극우단체인 마바타(민족과 종교 수호 위원회)로 추정된다.[55] 자칭 미얀마의 빈 라덴이라고 주장하며 공공연하게 무슬림 말살을 외치고 다니는 불교 승려로, 90년대에 반이슬람 선동 및 폭동 주도 혐의로 징역 8년을 산 적이 있다.[56] 힌두교기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며, 각각에 대해서는 스리랑카 내전 문서와 크리스티아노포비아 문서 참고.[57] 물론 인도 인구의 80%가 힌두교이기에 높아봐야 10%라서 인도 내에서는 소수 집단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이 정도 인구가 벌이는 반발 규모는 장난이 아니다. 미국 유태인 언론인인 조지 프리드먼이 아랍권은 왜 아랍에서 이스라엘이 벌이는 무슬림 차별과 학살에 으르렁거리며 인도에서는 그 규모가 다름에도 이건 무시하냐고 사설에서 불편해야 한 적도 있다.[58] 사실 둘 중 하나 선택해야 하는 과정에서 지도자 하리 싱이 힌두교도였기에 힌두 국가인 인도를 선택해 버렸기 때문. 인도 입장에서는 우리한테 붙겠다고 했는데 왜 그러냐? 하는 것이다. 특히 카슈미르가 큰 땅덩어리(넓이가 한반도 비슷하다.)이기도 하니.[59] 파키스탄 문서에 있는 파키스탄의 현실을 보면 인도보다 나을게 하나도 없는 막장국가다. 그래서 카슈미르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카슈미르 공화국을 건설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카슈미르인들은 파키스탄이 종교에 대해서 관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파키스탄 편입을 반대한다.[60] 하지만 인도는 이웃나라 파키스탄을 제외한 기타 이슬람권 국가들과는 사이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편이라서, 파키스탄을 제외한 다른 나머지 이슬람권 국가들(아랍에미리트, 요르단, 카타르, 이집트, 이라크, 이란, 오만, 쿠웨이트, 튀니지, 인도네시아, 기타등등)과는 적대감정이 거의 없거나 덜한 편이다.[61] 이외에도 장사를 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62] 특히 힌두교 극우단체들이 소고기 파는 무슬림들에게 폭력을 쓰고 고문하는 사례까지 있다.[63] 인도에서 제약회사로 유명하다[64] 천연 제약과 샴푸로 유명하다.[65] 단 극우단체들이 폭동을 일으켜 무슬림이나 기독교인, 시크교도를 학살하거나 잔혹행위를 하는것까지 인도 정부가 눈감아주는것은 절대 아니라서 이때는 가차없이 경찰을 투입해서 폭동을 진압하고 구속하며 처벌한다. 오릿사 주만 해도 극우단체들의 폭동 때 기독교인에 대한 학살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경찰을 대규모로 투입해 진압하고 폭동을 일으킨 극우단체 회원들을 전부 구속했다. 주 총리 역시 정부에서 책임을 물어 파면하고 교체시켰다.[66] 이 규제에 따라 향후 중국 내 모스크는 중국식 기와 지붕으로 지어져야 한다.[67] 이 정도면 중국 공산당이 체제유지의 일환으로 무슬림들을 배려해주고 편의를 봐주는 것이나 다름없다.[68] 단적인 예로 중국어 실력이 된다면 바이두에서 切糕를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안다.[69] 태국은 군복무제도가 있지만 승려로 군복무기한 동안 있게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러다보니 승려복무제도를 없앤다는 반발까지 나왔다.[70] 지배에 순순히 응했다는 서술이 있었으나 당연히 그랬을리 없다. 애초에 19세기부터 스페인이 급속으로 쇠락하면서 반격을 꾸준히 해왔다. 스페인이 처음 식민지배 했을때는 무기가 워낙 우수하기도 했고 그당시 워낙 강대국이라서 강하게 눌려있을수 밖에 없었고 이후 스페인이 쇠약해진 후에도 스페인은 쿠바처럼 꿀맛 같은 요충지인 필리핀을 놓아주질 않았고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같은 기독교도라고 스페인이나 미국이 같이 우대한 것도 아니었다. 필리핀이 독립한 것도 스페인계 혼혈로서 부유층인 현재도 필리핀 기득권인 이들이 스페인에게 하등 계층이라고 무시(이들은 대다수 필리핀인들을 하등하게 보고 자신들이 잘난 스페인인이라고 자부했는데 정작 스페인 측은 같은 것들이 뭐냐?라고 무시했다.)당하자 울컥하여 독립을 추구한 것도 유명한 사실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라 당시 미국 대통령윌리엄 매킨리가 기독교도가 많은 필리핀으로 쳐들어가버리곤 "꿈에 하나님이 나와 올바른 신앙을 심으라고 하셨다."라는 개소리를 하던 핑계부터 알만하다. 대다수는 무슬림 피해자가 컸으나 필리핀 가톨릭교도들도 미군 침공으로 수만여명이 죽었던 걸 봐도 절대로 이들이 미국의 우대를 받은 게 아니다.[71] 근데 필리핀 입장에선 독립시켜주었다가는 다른 섬들도 독립하겠다고 난리칠것이 분명해서 독립시켜줄수가 없다. 뭐, 이 논리라면 인도네시아나 인도, 중국 등등 많은 나라에서 똑같이 대하는 것이지만.[72] 왜 그런가하면 MILF 자체가 필리핀 무슬림 단체로서 가장 세력이 컸기 때문이다. 수십여년동안 막대한 군비를 들여 많은 전사자를 내면서도 굴복하지 않은 이들이 알아서 협상에 나서자고 하자 오죽하면 당시 필리핀 여당이 좋아라 수십여년동안 굴복하지 않던 MILF가 협상에 나선 것도 이긴 것이라고 자랑할 정도. 과반수 이상 지지를 받아 압도적인 MILF와 달리 아부 사야프나 다른 극단 조직은 민다나오 무슬림들에게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73] 무슬림이 이미 사회의 다수인 국가가 '이슬람화된다'는 것은, 무슬림이 사회의 다수층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수단, 브루나이처럼 이슬람 근본•극단주의가 사회의 주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74] 다시 말하자면 에르도안 정권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손쉽게 활동할 수 있게 된 시기이다.[75] 사실 에르도안 정권 이전의 터키의 세속주의의 경우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종교인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과 비교해 볼때, 지나치게 과한 감이 없지않다. 아타튀르크 집권 당시에서부터 세속주의는 터키 공화국의 근간이지만, 공화국 정체를 거부하는 교단들만 조지고 그 자리에 튀르크 민족주의 개념을 도입한 아타튀르크때와는 달리 그의 후임인 이스멧 이뇌뉘와 이후의 정권들은 위로부터의 개혁을 가속화하기 위해, 그리고 지방에 대한 확실한 장악을 목적으로 아랍어로 된 예배와 쿠란을 금지하고 히잡을 금지하고, 위반자에 대해서는 국가반역자 수준으로 철저하게 탄압했었다. 사회학 이론을 들자면 중앙과 변두리의 갈등 사례라 할 수 있는데, 2010년대에 들어와서도 터키 내에는 두개의 나라가 존재한다 싶을 정도로 한쪽은 극단적으로 세속적이고, 한쪽은 극단적으로 종교적인 양 측 사이에 왔다갔다하는 중간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동안은 억압적인 세속주의에 질린 중간층이 정의개발당에 투표하는게 현재 에르도안이 장기집권하는 비결이다.[76] 부연하자면, 오스만 제국 초창기에는 아예 개종하지 않은 베이, 파샤들도 많았고, 오스만 제국 중후기에도 지방, 특히 기독교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발칸, 그리스, 레반트 지방의 경우 개종하지 않은 토착 호족이나 세력자들도 많았다. 심지어 이들은 재력이나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앙정계에 간접적인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었다. 당장 오스만 제국의 멸망 직전인 1908년에만 해도 제국 의회 내 비무슬림 의석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현대적 이슬람 극단주의의 시초는 오스만의 타락한 이슬람을 몰아내자는 것이다. 그래놓고 본인들이 타락했지만[77] 여기에 대해 흥미있는 농담이 있다. 터키인들 사이에서 도는 농담으로, 구약 신약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언자들은 유대인인데 유독 무함마드아랍인인 이유가, "예언자는 진정으로 노답인 사회에서 나타나는데 유대인들 만큼이나 아랍인들도 노답이니까" 라고 한다.(...)[78] 2000년대에도 한국에서도 이슬람공포증이 있었지만 2010년대에 비해 덜 했으며 2006년에 호주 이슬람 성직자가 성범죄가 여성의 노출 탓이라고 말한 것에 동의한 안티페미니스트가 몇몇 있었다.해당기사[79] 2004년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라는 방글라데시인 500여명 규모의 종교 모임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반한 테러단체로 오인하여 공개한 바 있다. 경찰 수사 결과 어떤 테러 연관 증거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해당 단체 방글라데시인과 방글라데시 대사가 항의하였다.[80] 1986년 김포공항 폭탄 테러 사건도 아랍계 테러리스트가 저지른 것이다. 그 목적과 동기는 종교적인 것이 아니었지만.[81] 한국에 있는 외국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슬람권 국가는 2015년 6월 기준으로 인도네시아(39,303)-우즈베키스탄(35,537)-방글라데시(11,749)-파키스탄(9,124)-키르기스스탄(2,721)-카자흐스탄(2,409)-말레이시아(2,146) 순이고, 압도적으로 다수인 인도네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은 세속적이다. 다만 인도네시아에서도 민주화 이후 날뛰는 강경 무슬림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고, 우즈베키스탄도 IMU 같은 원리주의 단체들을 세속적 독재정권으로 억누르고 있는 형편이다.[82] 이것은 최초에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은 다른 종교를 믿는 교인일 수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 종교 문제라기보다는 형평성 문제에서 나온 이의제기로 일반화할 수 있다. 이를테면 기숙사에 몇 개 있는 휴게실 중 하나를 이슬람교나 기독교 학생을 위한 기도실, 예배실로 제공했다고 하자. 이것이 학생 공동체의 압도적인 찬성 의결로 이루어진 배려라면 어쨌든 넘어갈 일이지만, 학교측의 임의적인 공간 배정이라면 그 교와 무관한 학생쪽에서는 부당한 처사로 여겨질 수 있다. 마치 비공식 루트로 동아리 공간을 얻은 것이나 같으니까. 종교라는 것은 그 교의 신앙인에게만 의미를 가질 뿐이지 바깥 사람에게는 취미활동에 지나지 않는다.[83] 당연히 밥먹는다고 개종하는 게 아니라 개종하는 척하고 물질적으로 받아 챙기고 비웃는 사례가 대다수이다. <개독교를 위한 변명>이란 책자에서 목사이자 선교사인 지은이가 방글라데시에서 실제로 아멘~이러고 기도하며 먹을 것이나 생필품을 한국 선교사들에게 받아 집으로 오곤 피식 웃으며 알라후 아크바르~라고 비웃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참고로 지은이는 이런 선교에 대하여 욕먹을 짓이라고 비난한다.[84] 김선일 참수 사건 겨우 몇 달전에 순복음교회 계열 신문인 국민일보에 컬럼으로 아랍이나 이슬람권에 닥치고 선교하는 한국 기독교를 비난하며 이대로 가면 모든 한국인이 아랍에서 목이 날아갈 참극이 벌어진다. 국민일보에 얼마 전 이라크 선교 기회라고 어느 목사 글이 올라왔는데 "위험하다. 지금 이라크는 그야말로 지옥이라고 할 정도이다. 같은 무슬림도 종파 분쟁으로 마구 죽어나가고 가톨릭과 정교회 등 현지 기독교와 온갖 소수 종교도 마구 죽어나간다. 그런데 선교라고? 자살하러 가자고 하는 소리다!"라고 했는데 정말로 몇 달도 안 가 들어맞았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때도 탈레반이 악랄하고 비난받아야 하지만, 왜 그런 곳에 가지 말라고 해도 가서 선교라고 하고 죽으면 순교라고 포장하는 짓이 정말 한국 기독교를 위한 길이라고 보는가?" 라고 맹렬하게 비난했다.[85] 사람에 따라서는 서유럽 이상이라고 보는 경우도 많다. 서유럽의 경우 그래도 종교정당이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은 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그조차도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86] 심할 경우 종교 그 자체를 비이성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배척하는 이들도 있다.[87] 무종교 입장에서 개신교는 그냥 광신도지만 이슬람은 테러하는 광신도이며, 개신교 입장에서도 무종교가 그냥 불신자라면 이슬람은 테러하는 불신자다. 당연히 싸울때 싸우더라도 일단 이슬람은 막고 보자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2018년 제주 난민 사태 관련 기사들에서 개신교 성향 댓글에 대한 공격을 무종교 성향 댓글이 옹호해주는 광경을 매우 쉽게 볼 수 있다.[88] 재산을 지키기 위해 여성을 같은 가문 내의 사촌과 강제로 결혼시킨다. 사촌간 결혼이 허용되는 국가는 이슬람권 이외에도 많지만 대부분 '금지하지 않을 뿐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다는 점이 이슬람권과 다르다.[89] 유교, 불교, 기독교 등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친 철학/종교는 그 창시자들이 색욕에 빠지는 것을 매우 경계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종교 관계자라고 하면 금욕적인 사람을 우선 연상하는 경향이 있다.[90] 이슬람 문화 안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취처하고 형식상 같은 잠자리에 들었으나 성관계는 없었다는 주장과 무함마드의 발언에 근거하여 성관계가 있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91] 한국을 비롯한 비이슬람 또는 비중동 지방의 국가들이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현상과 비슷하다.[92] 문제는 이 행위 자체가 이슬람에 대한 편견 내지는 불쾌감을 부추기는 것에 한 몫했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종교의 자유는 보장하는 데 왜 우리는 아니냐는 게 논지.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민자가 맞추는 것도 아니고, 이민자에 원주민이 맞추는 형편이라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많다.[93] 다만 마린 르 펜은 이슬람 적대이기보다는 반이민 적대에 가깝다.[94] 터키의 길 2부..문명 간의 결혼, 터키와 EU[95] '이슬람 종주국도 예외없다' 사우디 작년 이혼 급증[96] 히잡 벗기 캠페인 이란 여성에 국제 NGO 인권상 - 연합뉴스[97]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아랍인을 핍박하고 있는 이스라엘도 책임이 상당하다.[98] 프랑스 이슬람의 경우 이맘 자격제 실시 등의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99] 자기와 종교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불신자로 규정해서 공격하는 행태[100]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테러집단 및 극단주의자들의 절대다수가 와하비즘이나 살라피즘와 연계되거나 그 지원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원래라면 그럭저럭 현실적이던 무슬림 집단들이 갑자기 미쳐 돌아가는 일이 부쩍 늘었는데 알고 보니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의 오일머니,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배후에 있는 일이 굉장히 많았다. 또한 이슬람이란 종교 자체가 철저한 교조주의와 교리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배타적 성향의 종교다. 당장 가톨릭이나 개신교만 해도 크고 작은 성직자들의 비리가 언론에 공개되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는 등 종교에 대한 자정 노력과 개혁 의지, 언론을 통한 개방적인 비판의 장 마련 등 다양한 노력이 있어 왔지만, 이슬람의 경우 단지 이슬람 여성이 히잡(머리 두건)이나 니캅(눈만 제외하고 신체 전부를 덮는 검은 천)을 벗었다는 이유로 명예 살인이 일어나며 그 여성을 죽인 사람은 영웅으로 취급받는(...) 비 문명적 상황이 현재까지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배타적이고 교조적인 이슬람 교리에 대한 자정이나 개혁 노력이 별로 이루어질 생각도 없고 오히려 교조주의가 더 인기를 끈다는 데 있다.[101] 실정법과 샤리아 법이 병행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분야별로 어느 법이 우선되는지가 실정법에 의해 정해져 있다.[102] 말레이시아 사례에서 연방 이슬람 종교부의 “K팝 아티스트들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며 K팝 문화가 무슬림들에게 기독교 정신과 자유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위험한 문화”라는 반응에서 기독교 문화와 더불어 자유주의 문화 역시 경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103]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신성모독과 같은 사안 외에 자국인 비무슬림에게 샤리아 법 예외를 적용하기도 한다.[104] 물론 마키아벨리즘에 따른 결정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도덕적 비판을 받고 있다.[105] IS는 수니파 극단주의로 원리주의 국가의 대표격인 사우디마저 비판한다.[106] 현재 많은 이슬람계 난민을 받아들인 유럽의 경우, 이슬람 난민들은 타 종교및 문화를 가진 기존의 유럽국가 주민들과 서로 융화하며 존중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들끼리 모여 살며 주변 유럽인들과 교류하지 않는 배타적인 삶을 살고 있어 이슬람인들의 거주지역은 게토(Getto)화 되버린다. 물론 차이나 타운이나 코리아 타운같이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사는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들은 문화적 교류마저 차단하고 서로를 감시하며 배타적 성향을 고수하여 국가 내 공존과 융화를 저해한다는데 있다.[107]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슬람이 전근대적이지 않다는 게 아니라 개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108] 사실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는 한 쪽 사용자가 차단당해 토론이 종결되었으나 나무위키에서 토론이 되살아난 것이다.[109] 요약하자면 1. 이슬람공포증 문단에 이슬람에 대하여 부정적인 서술을 하는 것이 차별인가 아닌가 2.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야하는 목적의 위키에서 편집자들이 주관성이 담길 수 있는 결론이란 것을 기술하는 것이 위키의 취지에 타당한가였다. 1의 경우 리그베다 시절과 달리 이슬람공포증 내에 반이슬람 적인 내용을 적는 것은 문제시 되지 않으며 이슬람에 대한 비판적인 서술의 근거가 보강되고 몇몇 단어가 중재되는 선에서 관리자에 의해 종결되었고, 2는 소수였긴 해도 당시 토론에 참여하던 인원 중 다수가 결론 문단 생성에 찬성하여 새로이 기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