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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09 10:22:20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파일: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1.jpg

1. 개요2. 내용3. 경주 반환 논란4. 쌍둥이 석불 발견5. 사건사고6. 외부 링크7. 보물 제1977호

1. 개요

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에 경주 남산의 어느 사찰(학계에서는 유덕사有德寺 또는 이거사移車寺로 추측)에서 조성한 한국의 석조 불상. 현재 청와대 녹지원 내 누각식 보호각 안에서 보존되는 중이고 보물 제1977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불상 높이 108cm, 방형 대좌 93.5×91.1×24.5cm.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화강암제 불상으로,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일본인이 경주 남산의 옛 절터에서 처음 발견했다. 세상이 알려짐은 1917년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5권에 사진이 실린 것이 최초이다. 이후 1927년에 조선총독부 관저를 새로 지으면서 특별한 한국의 국보를 관저에 함께 세워놓자는 의견에 따라 이 불상을 낙점하여 총독관저로 옮겼다.

이 불상이 처음 발견된 경주 남산의 폐사지는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일부 학계에서는 삼국유사에 기록이 있는 유덕사(有德寺)란 절로 추정한다. 유덕사는 고신라시대의 태부각간 최유덕이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경주 남산에 세운 절이라는 기록이 삼국유사 권 제3 유덕사조(有德寺條)에 있다. 이 설은 따르는 사람들은 이 불상 또한 '유덕사(有德寺) 석가여래좌상'이라 부르지만 공식적으론 인정받지 못하는 한 가지 설에 불과하다. 한편 이 절이 유덕사가 아니라 이거사(移車寺)라는 절이었다는 주장도 나왔다.연합뉴스 기사

현전하는 석불좌상의 전체적인 외형은 세월이 흐르며 약간 풍화된 것을 제외하면 큰 손상이 없이 거의 온전한데, 고대 석불 가운데 파손 없이 이렇게 완전한 사례는 상당히 드물다. 특히 신라 불교조각의 정수인 경주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비례와 풍부한 양감이 돋보이는 표현, 섬세한 부채꼴 옷주름 등에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높은 수준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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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불상에 예를 표하는 모습. 일본도 불교를 신봉하는 나라이므로 천 년이 넘은 불상에 예의를 갖추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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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들과 함께 불상에 예를 표하는 모습.사진 출처 : 연합뉴스 - 2020년 5월 文 대통령-여야 원내대표 '靑 미남불' 앞 합장..."협치 다짐"

지금으로부터 약 1200여 년 전 경주에서 만들어진 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으로, 일제강점기 때 총독관저로 이동된 이후 지금까지 쭉 100여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켰다.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6월 4일 문화재 지정명칭이 석불좌상(石佛坐像)으로 변경되었고, 최종적으로 2018년 4월 20일 보물 제1977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3. 경주 반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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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 경주시의회 "일제강점기 이전 청와대 불상 반환하라"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의 시민단체들과 시의회, 국립경주박물관 등은 이 불상이 그동안 청와대에서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에게 사랑받아왔던 역사적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본디 일제의 만행에 의해 무단반출된 것인만큼 이 불상을 원래의 고향인 경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상태이다. 다만 원래 경주 어디에 있었는지 이거사지가 유력하다고는 하지만 다른 설도 있는 등 정확한 위치를 확신할 수는 없어서 반환이 쉽게 성사되지 못하는 듯.

만약 반환된다면 국립경주박물관에 갈 가능성이 높다. 경주의 문화재 중 출토지 미상이거나 원래 위치에 있을 수 없는[1] 건 대부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쌍둥이 석불 발견

파일: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6.jpg 파일: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7.jpg
사진 출처 :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 - 청와대 미남석불과 쌍둥이 '불두', 왜 경주 남산에서 발견됐을까

2020년 6월 3일, 이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과 꼭 닮은 신라시대 석조 불상의 불두가 경주 남산에서 발견되었다. 청와대 불상이 처음 발견되었다고 추정하는 지역에서 10 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불상의 목과 몸통이 분리된 채였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숭유억불의 일환으로 불상의 목을 친 후 내버렸다는 의견이 설득력 있다.

5. 사건사고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대로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이전하면서 청와대가 일반에 개방되어 대규모 관람객을 맞았다. 그런데 개방 바로 다음날인 5월 11일 개신교 신자에 의한 테러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6. 외부 링크

7. 보물 제1977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9세기에 조성된 석불좌상으로, 1974년 1월 15일 서울시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관리되어 오다가 이번에 문화재적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하게 되었다.

편단우견(偏袒右肩)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중대석과 하대석은 손실되었지만 다른 부분은 큰 손상 없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 비례와 풍부한 양감이 돋보이는 표현, 섬세한 부채꼴 옷주름 등에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높은 수준을 엿보게 한다. 특히 비대하고 무겁게 보이는 형태와 일정한 간격으로 이루어진 평행선 주름 등은 9세기의 새로운 시대적 조형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현존하는 통일신라 석불(石佛) 중 머리와 몸체가 일체(一體)로 완전하게 갖추었을 뿐 아니라 연꽃문양을 새긴 사각형대좌는 동시기 불상 중에서 사례를 찾기 힘들다. 이와 같이 동 석불의 문화재적 가치를 종합해 볼 때 9세기 통일신라 불상을 대표할 수 있는 뛰어난 조각으로 인정된다.


[1] 건설로 원 위치가 수몰된 경우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