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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충

가공려에서 넘어옴
위서(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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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무제기(武帝紀)」 2권 「문제기(文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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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저 · 전위 · 방덕 ·방육 ,조아, · 염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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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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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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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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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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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80><colcolor=#ece5b6> 서진의 재상
노무공(魯武公)
賈充 | 가충
시호 무(武)
작위 노공(魯公)
최종직위 태위(太尉)
가(賈)
이름 충(充)
공려(公閭)
부친 가규(賈逵)
생몰 217년 ~ 282년 5월 19일
출생 사예(司隸) 평양군(平陽郡)[1] 양릉현(襄陵縣)
국적 조위(曹魏) → 서진(西晉)
1. 개요2. 행적
2.1. 초기 생애2.2. 관구검의 난2.3. 제갈탄의 난2.4. 사마소 시군2.5. 위멸촉 전투2.6. 종회의 난2.7. 서진에서2.8. 독발수기능의 난2.9. 서진에서2.10. 진멸오 전투2.11. 죽음
3. 평가4. 가족 관계5. 미디어 믹스

[clearfix]

1. 개요

위나라서진의 인물.

2. 행적

2.1. 초기 생애

아버지 가규는 위의 예주자사로 양리정후였다. 가규는 만년에 첫 아들을 얻어 기뻐하며 말했다.
문설주가 가득 차는 경사(충려지경)이다.

이를 따서 를 지었다.

가충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규정에 준거해 복상했다.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 양리정후가 되었다.

그 후 상서랑이 되어 조문의 작성에 종사했고, 겸해 고과의 평가를 도왔다. 가충의 의견은 정곡을 찌르고 있어 상서부에서 모두 채용되었다. 황문시랑에 올랐고, 군전농중랑장이 되었다.

2.2. 관구검의 난

대장군 군사에 참여해 사마사를 따라 관구검문흠을 낙가에서 토벌했다. 사마사가 병으로 쓰러지자, 허창에 돌아와 감제군사로서 머물렀고, 공로에 의해 식읍 350호를 추가받았다.

2.3. 제갈탄의 난

이후 사마소의 대장군 사마가 되어 우장사로 옮겼다. 사마소는 조정의 권력을 독차지했는데, 지방의 군벌이 이것을 기분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때문에 가충을 제갈탄에게 사자로 보내 손오를 토벌하라고 상담시키면서 몰래 제갈탄의 기색을 관찰하게 했다. 가충은 제갈탄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물었다.
천하는 모두 위진의 선대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갈탄이 분노하며 말했다.
그대는 가예주의 아들로 대대로 위나라의 은혜를 입었거늘, 어찌 사직이 타인에게 넘어가길 바라는가! 만약 낙양에서 난이 일어난다면 마땅히 죽을 것이다.

가충은 입을 다물고 낙양으로 돌아가 사마소에게 보고했다.
제갈탄은 이미 양주에서 위대한 명성을 얻어 자신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는 반드시 반역할 것입니다. 만약 지금 제갈탄을 정벌한다면 반란의 기세가 수그러들어 더는 화가 없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선수를 빼앗겨 큰 화가 될 것입니다.

사마소는 제갈탄을 사공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반란을 결행하게 했다. 가충은 제갈탄 정벌에 종군할 때 계책을 올렸다.
제갈탄이 이끄는 초병(楚兵)은 날래고 강하므로 정공법은 불리합니다. 도랑을 깊게 파고 망루를 높게 쌓아 수춘성에 접근한다면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습니다.

사마소는 이 계책을 채용하여 수춘성을 함락시키고는, 망루에 올라 가충을 칭찬하며 전후 처리를 맡기고 낙양으로 돌아갔다. 곧 가충은 선양향후에 봉해지고 식읍 1,000호를 추가로 하사받았다.

2.4. 사마소 시군

<조모전> 주석 《한진춘추》에 따르면 젋은 황제 조모는 위황실의 권세가 날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그 분을 이기지 못하여 시중 왕침, 상서 왕경, 산기상시 왕업을 불러 말했다.
사마소의 제위 찬탈 야심은 길가는 사람들도 아는 바이니 나는 폐위당한 치욕을 앉아서 받을 수는 없소. 오늘 당장 경들과 함께 직접 출병하여 그를 토벌하려 하오.

왕경이 말했다.
지금 권력이 그들 집안에 있게 된 지가 이미 오래되었고, 조정의 사방에서는 모두 그를 위해 죽을 사람들이 있으며, 숙위들은 텅 비어 있고 병기와 갑옷도 적고 약한데, 폐하께서는 무슨 물자를 이용하시려고 하십니까?

조모는 왕경이 간했으나 듣지 않고 이내 가슴 속에서 판령을 꺼내 땅에 던지며 말했다.
일은 결정되었소! 정작 죽는다 하더라도 무엇이 한스럽겠소? 하물며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이윽고 궁궐로 들어가 태후(명원황후)께 아뢰었다. 그러나 왕침과 왕업이 급히 달려가 사마소에게 알려주자 사마소는 그에 대한 방비를 했다. 조모는 마침내 동복 수백 명을 이끌고 북을 치며 소리치면서 출병했다. 사마소의 동생인 둔기교위 사마주가 궁전으로 들어가 동쪽 지차문에서 조모와 맞닥뜨렸는데, 좌우의 사람들이 질책하자 사마주의 병사들이 급히 도망쳤다. 중호군 가충이 또한 조모를 기다리고 있다가 남쪽 궐문 부근에서 싸웠다. 태자사인 성제가 가충에게 물었다.
사태가 급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씀해 주십시오!

가충이 말했다.
공(사마소)이 그대들을 키운 것은 바로 오늘을 위해서이다. 오늘의 일은 물을 것도 없다.

그래서 성제가 즉시 앞으로 나아가 조모를 창으로 찔렀는데 그 창날이 등으로 나왔다.

<문제기>에 따르면 사마소가 백관들을 소집하여 이 변고에 관해 상의하고자 하였는데 복야 진태가 오지 않았다. 사마소가 그의 외삼촌인 순의를 보내서 수레에 태워 데려오게 하고 밀실로 불러서 말했다.
현백(진태), 세상 사람들이 장차 날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진태가 말했다.
오직 가충을 죽여야하니 그렇지 않다면 천하를 향해 사죄할 방도가 없습니다.

사마소가 말했다.
경께서는 차선책을 고려해보시오.

진태가 말했다.
저는 최선책만 생각할 뿐 차선책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는 이렇게 말했다.
이상은 있어도 이하는 없습니다.

이에 성제를 참수하고 일족을 멸절했다. 그러나 겉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을 뿐 사람들은 사마소와 가충의 죄를 기억하고 있었다.

2.5. 위멸촉 전투

<후주전> 주석 《한진춘추》에 따르면 사마소가 유선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를 위해 옛 촉의 가무를 짓게 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슬퍼했으나 유선은 기뻐하고 웃으며 태연자약했다. 왕(사마소)이 가충에게 말했다.
사람이 정이 없으니 가히 이 지경에 이른 것이오! 비록 제갈량이 살아 있었다고 해도 능히 보필하여 오래 보전하지 못했을 것인데, 하물며 강유겠소?

가충이 말했다.
이와 같지 않았다면 전하께서 어찌 그를 아우를 수 있었겠습니까?

다른 날, 왕이 유선에게 물었다.
자못 촉이 생각나지 않으시오?

유선이 말했다.
여기가 즐거워 촉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극정이 이를 듣고 만나기를 청한 후 유선에게 말했다.
왕이 뒤에 묻거든 흐느끼며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그리고는 눈을 감으십시오.

때마침 왕이 다시 묻자 그처럼 대답했다.
선인들의 분묘가 멀리 농, 촉에 있어 마음이 서쪽을 향해있고 비감하니 하루라도 생각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왕이 말했다.
어찌 극정의 말과 같단 말이오!

유선이 놀라서 쳐다보며 말했다.
참으로 당신의 말씀과 같습니다.

좌우에서 모두 웃었다.

2.6. 종회의 난

<종회전>에 따르면 가충과 사마소가 종회의 난에 대해 이렇게 의논했다.
종회를 약간 의심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사마소)는 대답했소.
지금 그대를 파견하여 일을 하도록 하고, 어찌 또 그대를 의심할 수 있겠소?

가호군(가충) 역시 나에게 아무 말도 못했소.

《종회전》에 따르면 종회가 받은 사마소의 편지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등애가 혹시 부름을 받고 나가지 않을까 걱정이오. 지금 중호군 가충을 파견하여 보병과 기병 10,000명을 이끌고 사곡으로 들어가서 악성에 주둔하도록 하시오. 나는 10만명을 인솔하여 장안에 주둔하겠소. 가까운 시일에 만납시다.

2.7. 서진에서

정위에 천거되었다. 가충은 법학에 뛰어나, 평과 반의 균형을 도모했다. 가충은 문재(文才)가 있어 항상 취지를 잘 읽어낼 수 있었다.

애초 사마소는 형 사마사의 위업을 무양후 사마유에게 계승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가충은 사마염을 추천했다. 사마염은 관대하고 인자하여 성장해서는 군주의 덕이 있어 사직을 받들 인물이라고 했다. 사마소가 병으로 눕자, 사마염은 후사에 대해 유언을 요구했다. 사마소는 말했다.
너의 이해자는 가공려(가충)다.

사마염이 진왕이 되자, 가충은 진나라의 위장군이 되어 의동삼사, 급사중이 되었고 임영후로 개봉되었다.

사마염이 황제가 되자, 가충은 건국의 대명에 의해서 거기장군, 산기상시, 상서복야가 되었고, 거기에 노군공으로 봉해졌다. 가충의 어머니 류씨(柳氏)는 노국태 부인이 되었다.

가충이 정한 새로운 법은 이미 천하에 포고되어 만민이 이용했다. 이에 황제가 조령을 내렸다.
가충이 정리해 준 덕분에, 진국은 좋은 법전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태부로부터 거기장군 이하, 법의 책정에 관련된 사람은 녹봉과 상을 더한다.

이 조령에 의해서, 가충의 자제 중 1명이 관내후가 되어, 비단 500필을 받았다. 사양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후에 배수가 상서령을 대신했지만 가충은 상시, 거기장군에 유임되었다. 상시에서 바꿔 시중이 되어 비단 700필을 받았다.

가충은 어머니의 병을 걱정하며 관직을 떠났다. 조령하여 황문시랑이 위문을 위해 보내졌다. 동남 유사 때, 전군장군 양효를 가충에게 보내 사마염의 의지를 전하게 했다. 양효는 6개월 동안 가충의 곁에 있다가 궁중으로 돌아왔다.

사마염은 가충으로 하여금 무농절용, 정치가상의 바름을 평가하게 했다. 또 가충은 진나라의 통치 상태가 좋다고 생각해 주군의 군대를 철폐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양호 등은 출진하여 상표해 변경에서 공을 세우고 싶다고 바랬다. 사마염은 양호의 상표를 허락하지 않았다.

가충은 상대의 외모를 보며 인사를 결정했고, 칭찬하고 비방하는 말과 행동이 난무했다. 가충은 사람을 추천하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여, 누군가를 추천할 때마다, 어떻게 맡을까 반드시 지켜보았다. 많은 선비가 가충의 밑에 귀부했다.

제구의 왕순이 일찍이 가충을 비판했던 적이 있었지만 가충은 왕순을 승진시켰다.

혹은 가충을 등지고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충은 모두 평소 생각을 가지고 양으로 그 인물을 대우했다. 그래서 가충에게는 공공의 지조가 없고, 엄격하게 몸을 바로잡지 못하며, 오로지 아양을 가지고 아첨하였다.

시중 임개, 중서령 유순(庾純) 등은 강직수정인 성격으로, 가충의 방식을 짜다고 생각해 반발했다. 가충의 딸(가포)이 제왕(사마유)의 왕비가 되자, 가씨가 더욱 더 번창하는 것을 걱정했다.

2.8. 독발수기능의 난

저강이 반란하기에 이르러, 사마염은 고민했다.[2] 임개는 앞으로 나와서, 가충으로 하여금 관중을 진정시키게 해달라고 말했다. 조령이 내려졌다.

조정의 현량들은 결과를 낼 수 있는 후임자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모두 가충의 발탁을 기뻐하며 서방 이민족의 교화가 높아지길 바랐다.

가충은 밖으로 나가 자신이 실권을 잃는 일로 인해, 임개에게 깊은 한을 품었으나 이에 복종했다. 부임할 때, 백관들은 석양정에서 전송했는데, 순욱은 사적으로 전송했다. 가충이 우려하여 순욱에게 상담하자 순욱이 말했다.
당신은 국민을 위해서 법제도를 만든 분입니다. 왜 황야에 착임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관중행을 사퇴하는 것은 실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단 1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태자를 결혼시키면 그걸 핑계로 당신은 수도에 머물 수 있습니다.

가충은 물었다.
그 말대로다. 하지만 누구를 의지하면 좋은가.

순욱은 대답했다.
나에게 맡겨 주세요.

순욱은 황제의 연회에서 태자(사마충)의 혼인을 화제로 했다. 순욱은 말했다.
가충의 딸(가남풍)은, 재질이 영숙하므로, 태자비에게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무원양황후열전>에 따르면 당초에 가충의 아내 곽씨(곽괴)가 황후 양염에게 뇌물을 주고 자기 딸을 태자비로 삼아 줄 것을 요구하였다.

양황후(양염)도 순욱도, 앞다투어 가충의 딸을 추천했다. 사마염은, 이 의견을 채용했다. 마침 수도 낙양은 폭설로 인해 평지에서도 2자(약 50cm)가 쌓여 군대는 출발할 수 없었다. 이미 태자는 성혼해, 가충은 끝내 관중에 가지 않았다. 조령이 있어 가충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이전에 양호는 은밀하게 가충을 멈추도록 사마염에 제안했었다. 사마염은 낙양에 남은 가충에게 이것을 가르쳐주었다. 가충은 양호에게 감사하며 말했다.
처음부터 당신이 훌륭한 인물임을 알았다.

2.9. 서진에서

<임개열전>에 따르면 가충은 사마염을 이용하여 명성과 권세를 독점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순, 장화, 온옹, 상수, 화교는 모두 임개와 친하게 지내고, 양요, 왕순, 화이 등은 가충이 친하게 지내어, 이에 당파가 성립하여 정계가 혼란했다. 사마염은 이 일을 알고 가충, 임개를 불러내 식건전에서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가충 등에게 말했다.
조정은 일체가 되는 것이 좋으니 대신들은 융화해야 한다.

가충, 임개는 각각 삼가 감사를 말하고 퇴석하였다. 한동안 가충, 임개 등은 사마염이 당파간 대립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무라는 것은 없었지만, 원한은 점점 깊어져 외형적으로는 서로 존중하는 것 같았지만, 내면적으로는 상당히 불만이었다. 어떤 사람은 가충에게 모략을 나타냈다.
임개 문하의 중심 인물은 모두 황제와 친하게 접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법전의 선정을 상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을 서서히 분산시키려면 모두 영사에 종사하는 것 뿐입니다.

가충은 임개의 재능을 기리며 관인의 직을 얻는 것이 좋다고 했다. 사마염은 가충이 재능있는 자를 천거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당일 임개를 이부상서에 임명하고 봉거도위를 더했다.
임개는 상서를 맡아 인재의 선출, 천거를 공평하게 하고, 그 직무에 마음을 다했으나 천자를 알현할 기회는 오히려 줄었다. 가충은 순욱, 풍담과 함께 임개는 사치하고 천자가 이용하는 식기를 사용하고 있다며[3] 이간책을 서서히 넓혔다. 가충은 상서우복야, 고양왕 사마규를 파견해 임개를 탄핵시켜 마침내 관직에서 내보냈다.

<유순열전>에 따르면 가충은 스스로가 관직이 높고 명망이 융성함을 믿어 의사에 불평이 많았다. 유순이 술을 따르는데 이르러 가충은 순서에도 구애받지 않고 먼저 마셔버렸다. 유순이 말했다.
장자가 그대를 위해 축원하는데 어찌 무례하게 먼저 마실 수 있단 말인가?

가충이 대답했다.
그대는 자기집 노부친도 제대로 공양하지 못하면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가?

유순이 화내면서 말했다.
가충! 천하의 기강이 흉흉해지는 것은 오직 너 한 사람 때문이다.

가충이 대답했다.
나 가충은 2세를 보좌하고 파촉을 평정했는데 무슨 죄가 있길래 천하가 나 때문에 흉흉해진다는 것인가?

그러자 유순이 대뜸 말했다.
고귀향공(조모)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여기에 이르러 연회에 참석한 사람이 모두 집에 돌아갔다. 가충의 좌우 심복이 유순을 잡으려고 했으나 유순은 중호군 양수, 시중 왕제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이처럼 가충은 스스로의 행동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였다.

손오의 장군 손수가 투항했을 때, 가충은 표기대장군이 되었다. 사마염은 가충이 오래된 신하였기 때문에, 관제를 고쳐 가충이 오르고 있는 관직을 격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충은 사양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사공에 천거되었고 시중, 상서령, 영병은 그대로였다.

사마염이 병이 나자, 가충은 제왕 사마유와 순욱 등과 함께 의약을 헌상했다. 사마염이 쾌유하자 각자 뿔 500개를 하사받았다. 애초 사마염이 병이 났을 때, 조정의 여론은 후계자가 사마유라고 기울었다. 하남윤 하후화가 가충에게 말했다.
당신의 두 명 사위는, 친소가 같다. 덕이 있는 분(사마유)을 세워야 한다.

가충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마염이 복귀해 이 이야기를 들었다. 하후화는 광록훈으로 강등되었다. 가충은 병권을 빼앗겼지만 지위는 바뀌지 않았다. 가충은 태위로 전임해 태자태보, 녹상서사를 겸무했다.

277년, 일식이 삼조(三朝)에 일어나, 가충은 태위를 사임하고 싶다고 청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거기에 패국의 공이 되어 그 봉토를 유익해 총행은 드디어 심해졌고 조신들은 이것을 곁눈질로 보며 한탄했다.

하남윤 왕순이 상소했다.
홍훈태후(양휘유)를 입묘시켜, 경제(사마사)와 합장시킵시다. 묘가 별도인 것은, 사마사를 이은 제왕 사마유가 제후의 자식으로서의 예를 거행할 수 없습니다.

가충은 의견을 냈다.
사마유는 3년상을 치르지 않고, 신하의 법도로 치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유사가 가충에 반론해 상주했다.
가충이 말하듯이, 사마유에게 자식으로서 상복을 입게 하지 않고, 신하의 법도로 거행하게 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것입니다. 부디 왕순의 상표를 채용하여, 사마유에는 제후의 예로 복상을 시켜 주십시오.

사마염은 가충의 안을 채용했다.

2.10. 진멸오 전투

손오를 토벌할 때, 조명해 가충을 사지절, 가황월, 대도독으로 했다. 가충은 큰 공로를 세워 이길 수 없는 것을 걱정해 상표했다.
지금은 군을 일으켜 오를 토벌할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늙어 오와의 싸움에 견딜 수 없습니다.

조명이 있었다.
그대가 가지 않으면, 내가 간다.

가충은 할 수 없이 절월을 받아 중군을 인솔해 제군의 절도를 이루며 관군장군 양제를 부관으로 삼고 남정하여 양양에 주둔했다. 오의 강릉 등의 방어 거점은 투항해 가충은 포로를 항성으로 옮겼다.

왕준이 무창을 점령하자 가충은 의견을 나타냈다.
오를 아직 모두 평정하지 못했습니다만, 여름의 더위에 의해 장강, 회수의 습지에서 질역이 유행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제군을 소환하여 진의 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역병으로 군사를 대량으로 잃어 장화를 요참으로 해도 천하에 사과하려면 충분하지 않습니다.

장화는 평정의 계책을 계획했다. 그러니까 가충은 장화를 요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중서감 순욱은 상주해 가충의 제안을 채택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마염은 인정하지 않았다. 두예가 가충의 상주를 듣고 달려와 굳게 반대해 아침, 저녁으로 오를 평정할 수 있다고 했다.

수신기》에 따르면 가충이 오나라를 칠 때, 항성이라는 곳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 군중에 있던 가충이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가충의 부하인 도독 주근이 마침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에 보니 100여인이 가충을 체포하여 좁은 오솔길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잠에서 깬 뒤, 가충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자, 주근은 가충을 찾아 여기저기 찾아 다녔다. 그랬더니 홀연히 꿈에서 나타난 오솔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주근이 그 길로 갔더니 과연 가충이 그곳에 있었다.

주근은 어느 큰 집을 찾아, 가충을 그곳에 모셔놓고, 엄중한 경계를 폈다. 그런데 그 집의 주인은 남쪽을 향해 앉아있었고, 목소리와 태도가 심히 무서웠다. 그가 가충을 보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장차 우리 집을 망칠 자가 틀림없이 너와 순욱이로다. 이미 내 아들(사마소)을 미혹시켜 놓고, 또 다시 내 손자(사마염)까지 흔들어 놓는구나.
너의 그 혼암 우둔한 모습은 이와 같다. 만약 개전하여 삼가지 않으면, 내 너를 죽여 없애리라.

가충은 잘못을 비느라 머리를 찧어 피를 흘릴 정도였다. 그 주인은 다시 이렇게 일렀다.
네가 지금 이렇게 세월을 연장하여, 그 생명이 연장되어 명예와 지위를 아직도 누리고 있는 것은 모두가 네 집안 공훈이 보위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을 마치자, 그는 가충을 내보냈다. 가충은 허겁지겁 병영으로 되돌아왔다. 안색이 초췌하고, 정신이 혼착하더니, 하루쯤 지나 회복되었다.

사자가 환원에 이르렀을 때, 이미 손호는 항복했다. 손오는 평정되어 군비는 해제되었다. 사마염은 시중 정함에게 가충을 위로하게 해 비단 8,000필을 내리고 식읍 8,000호를 늘렸다. 가충의 종손 가창을 신성정후로부터 분봉하여 안양정후로 했다. 가충의 남동생인 양리정후 가혼과 가충의 종손 관내후 가중은 식읍을 늘려주었다.

가충은 원래 손오를 토벌하는 기대는 없었고 굳게 충고했지만 기용되지 않았다. 손오의 평정이 성공하자 가충은 참구해 자신을 처벌해 주라고 바랬다. 사마염은 가충이 예궐을 원하는 것을 듣고 미리 동당에 행차해 가충을 기다렸다. 가충은 절월, 요좌가 해제되어 고취, 휘당을 반납했다. 가충과 군신은 고성의 예를 말해 유사에 봉선의 의식을 하도록 말했다. 사마염은 겸양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항복한 오나라 황제 손호는 낙양에 끌려와 진나라 황제 사마염을 만났는데, 사마염이 자리를 내주며 말했다.
어서 앉으시오. 짐이 오래 전부터 이 자리를 만들어 놓고서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호가 대답했다.
저도 제가 오나라에 있을 때, 이와 똑같은 자리를 만들어 놓고서 황제 폐하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사마염이 크게 웃었다. 가충이 손호 황제에게 물었다.
제가 듣기로는 손호 황제가 오나라에 계실 때는 사람의 눈깔을 파내고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내리곤 했다고 하던데, 도대체 어떤 죄를 지으면 그런 무서운 형벌을 받는 것입니까?

손호 황제는 대답했다.
신하된 놈이 임금을 죽이거나, 황제에 불충한 사람들은 그런 형벌을 받아 마땅합니다.[5]

이에 가충이 부끄러워서 대꾸를 못했다.

2.11. 죽음

가충은 병이 깊어지자 인수를 반납하고 관직을 물러났다. 사마염은 시신을 사용하게 하고 가충의 상태를 묻게 해 저택의 안에서 태의에게 탕약을 만들게 했고, 상장전백을 내려 황태자로부터 종가까지 가충의 기거를 걱정하며 지켜보았다.

가충은 노쇠하여 병이 심해지자 항상 자신의 시호와 전기에 대해 근심했는데 조카 가모가 말했다.
옳고 그름이 오래도록 스스로 드러나 있으니, 덮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是非久自見,不可掩也)

282년 4월, 가충은 죽었다. 66세였다.

사마염은 가충의 죽음을 슬퍼하여, 사지절, 태상을 더하고, 태재를 추증해, 고면의 옷, 녹려수, 어검을 더하고 동원비기, 조복 한 구, 옷 한 습을 더해 대홍려는 상사를 지켜, 가절월, 전후부우보, 고취, 제휘를 꺼내, 대로, 난로를 온량차, 장하사마대차가 달려, 추부문의무분, 경차개사가 장송했다. 곽광과 동평헌왕(사마부)의 고사에 준거해, 장례비로 영전 한 경이 지급되었다. 가충은 석포 등과 함께 왕공이었기 때문에, 배향 묘정이 주어져 '무(武)'라고 시호되었다. 가충의 아들 가여민에게는 노상공이 추증되었다.

《수신기》에 따르면 이후 가충의 양자 가밀은 종밑에 숨어 있다가 죽음을 당했고, 가충의 딸 가후(가남풍)는 금주를 사약으로 받아먹고 죽었으며, 막내딸 가오는 옥 중에서 고문을 받다가, 큰 고목 몽둥이를 맞고, 생을 마쳤다. 모두가 그 주인의 말과 같이 되었던 것이다.

3. 평가

공려(公閭)는 언변이 뛰어났지만 마음 씀씀이가 바르지 못했고, 그 심성은 아담함과 어긋났다. 때를 만나 마침내 높은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황통의 승계에 빌붙어 집안을 해치고 정치를 어지럽혔다.
『진서』, 「(가충전(賈充傳)」
가충! 천하의 기강이 흉흉해지는 것은 오직 너 한 사람 때문이다.
유순
《연의》에선 사마씨의 핵심참모로 등장했고, 《연의》의 해석을 각색한 코에이 게임 등 현대의 삼국지 관련 매체에서도 책사나 노회한 정객처럼 묘사되지만 엄밀히 말해 가충이 두각을 드러낸 부분은 전략 구상이나 모략, 행정능력이 아니었다.

가충의 행적을 잘 보면 황제 조모 시해같이 다른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신하로서 차마 못할 막장스럽고 잔혹한 일을 망설임 없이 해내는 정치깡패조폭 행동대장에 가깝다. 노회하거나 간교하다기보단 대단히 직설적이고 막나가는 성격에 가까웠으며 아첨과 권세를 좋아했다.

가충은 군사참모는로서 부각될 만한 행적이 거의 없었으며 독발수기능의 난 때는 딸을 이용해 빠지고, 오나라 정벌 때는 명목상 총사령관으로 후방에 앉아만 있었다. 그나마도 전염병을 핑계로 퇴각을 주장하고 장화를 처형할 것을 주장하는 등 끝까지 어깃장을 놓았다. 낙가성에서는 군사로 있으면서 본진이 털리고 총사령관은 부상당한 채 분투하는 상황에도 아무런 대책이나 조언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군공이자 조언이 없는 건 아니다. 제갈탄의 난 때 사마소에게 제갈탄의 병사가 날래고 강한 정예병이니 섣불리 결전을 벌이지말고 수춘성에 도랑을 파고 망루를 세워 성을 애워싸 전투 하라는 군사적 조언과 제갈탄을 제거하여 싹을 없애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즉 종합하자면 제갈탄의 반란 외에는 군공으로서나 군사로서 보여준 능력은 거의 없었다.

허나 독발수기능 핑계로 손오 정벌을 마지막까지 반대했으면서 정작 독발수기능 정벌 때는 자기 딸을 사마충의 배필로 삼으면서까지 빠지고, 바른말 잘하는 임개를 참소하며, 유능한 총신 양호와 장화도 싫어했고, 손오 정벌이 시작된 후에도 끝까지 어그리뜨리려 했던 걸 보면 국가를 운영하는 안목이 있긴 한 건지도 의문이 생긴다.[6] 유선이나 손호와의 일화에 이르면 예의없이 막돼먹은데다 망국의 군주에게 논파될 정도로 식견이 한심한 인물이었다.

위의 죽음 문단에서 언급된 가모의 "옳고 그름이 오래도록 스스로 드러나 있으니, 덮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라는 말 역시 가씨 가문에서조차도 그동안 가충의 행적을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7] 실제로 가충의 시호인 '武'는 굉장한 선시이기는 하지만 가충에 대한 평가를 보면 확실히 저 시호 하나로 가충의 악행을 가리지 못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 되었다. 또한 생전 그토록 미워하고 죽이려 했던 장화는 오히려 훗날 딸인 가남풍이 끝까지 중용했다.

다만 서진이 세워질당시 두예와 함께 법을 제정하여 진율령(晉律令)을 세웠고, 정위 때는 법학에 뛰어나, 평과 반의 균형을 도모했고 문재(文才)가 있어 항상 취지를 잘 읽어낼 수 있었다는걸 보면 확실히 인품과 성격과는 별개로 문재와 법학에는 뛰어났던것 으로 보인다.

4. 가족 관계


가충은 처음에 이풍의 딸 이완을 아내로 맞았으나, 이풍이 장집, 하후현 등과 짜고 사마사를 죽이려다가 처형당하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이완을 내치고 곽회의 조카딸인 곽괴를 후처로 맞아들였다. 가충의 어머니 류씨는 절의를 중요하게 여겨 황제 조모를 살해한 성제를 비판했다. 그러나 성제에게 조모 살해를 지시한 것이 자기 자식인 가충인 것을 몰라 주위의 냉소를 샀다. 류씨는 죽으면서 유언으로 가충에게 전처 이완을 다시 불러오라고 했다.

곽괴는 투기가 심해 아들이 적고 딸만 많으며 그나마 낳은 딸들도 못생겼다. 곽괴는 장남 가려민이 유모에게 안겨 가충이 달랜 것을 보고 유모와 가충이 사심을 나눈다고 의심, 유모를 채찍질해서 죽였다. 유모를 많이 따르던 가려민은 충격으로 병이 들어 죽었다. 곽괴는 차남을 낳았으나 마찬가지로 차남의 유모를 질투하여 죽였고 차남도 충격으로 병이 들어 죽었다.

하지만 진나라가 세워지고 사마염의 대사령으로 이풍이 사면되자 가충도 전처 이완을 다시 불러올 수 있게 되었다. 가포는 가충에게 계모 곽괴를 내쫓고 자신의 생모 이완을 데려오라고 청했다. 곽괴가 가충의 멱살까지 잡아가며 막는 바람에 결국 다시 부르지 못했다. 또 곽괴는 이완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가충에게 들키고 가충은 곽괴를 별거시키려고 했다. 곽괴의 딸 가남풍이 황태자비가 되자 곽괴는 딸과 함께 별거하게 되었다. 가충은 이완에게 저택을 마련해주어 오가게는 하였으나 결국 재결합하지는 못했다.

가충이 아들이 없이 죽자 곽괴는 억지로 가충의 외손자 한밀을 가려민의 양자로 삼아 성을 갈도록 해달라고 상소하였다. 겨레가 다르면 양자로 들이는 것이 금지되었으나 사마염은 가충의 공적을 생각해서 허락해주었다.[8] 이것 때문에 진수는 가충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 아님에도 사사로운 정에 치우쳐서 예법을 어긴 일이므로 시호법도를 어지럽혔음을 뜻하는 '황'(荒)을 줘야 한다고 상소했으나 사마염은 무시하였다.# 곽괴의 딸 가남풍도 이완과 그 소생인 배다른 언니들을 푸대접해 이완이 죽어 가충과 합장하기를 청했을 때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이완은 가남풍이 처형당한 다음에야 가충과 합장될 수 있었다. 가밀은 이모이자 양고모 가남풍이 처형당할 때 말려들어 함께 처형되었다.
[9]

5. 미디어 믹스

5.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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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129.jpg
삼국지 12, 13, 14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전형적인 참모형 장수. 위에 서술되었듯 실은 책사라고 부르기에는 거리가 매우 먼 사람이었지만 사마씨 핵심참모였던 부하와 우송 중 부하는 지력만 높은 내정형 문관으로, 우송은 아예 한 번도 못 나왔는데 가충은 코에이의 버프로 후기 시나리오에선 독보적인 책사로 등장한다.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사마소와 사마염 밑에서 온갖 못할 짓을 진두지휘한 연의 내용을 반영했는지 전통적으로 매력만큼은 F4와 동급. 다만 최후반 장수로서는 최상급을 자랑하는 지력 및 정치력 덕분에 그런 단점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여포와도 같은 최하의 의리와 최고의 야망을 지닌 덕분에 충성도 관리가 귀찮다는 게 문제. 탐색이나 인재 등용은 절대 시키지 말고 내정이나 계략용으로 끊임없이 굴려주는 게 좋다.

이와 별개로 삼국지 팬들 사이에선 가충의 능력치 중 지력이 쓸데없이 높은거 아니냐면서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백하팔인 중 한 명인 손호가 사마염에게 항복한 이후 가충을 말로 역관광시킨 일화나, 유순에게 조모 관련한 일로 털린 사건 등을 예시로 들며, 가충의 지력을 30대로 낮추든가 손호의 지력을 80 이상으로 상향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8/무력 37/지력 87/정치력 81. 혼란, 덫, 매도를 가지고 있다. 지력이 높지만 의리 0 야망 12인지라, 이간질의 주요 타겟이 된다. 등용했다면 꼭 충성도 관리를 해야 한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3/무력 32/지력 88/정치력 88/매력 8에 군사, 명사 특기를 둘 다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큰 단점은 정적인 장화조차도 계략 특기 1개(혼란) 정도 가지고 있는데 가충은 계략 특기가 없는 게 흠. 전체 특기는 상업, 위압, 반박, 도발, 군사, 명사, 간첩. 총 7개다.

삼국지 11에서 능력치는 통솔력 54/무력 31/지력 89/정치력 85/매력 10으로 통솔력이 삼국지 10 때보다 21이나 올랐으며 매력도 두 자리를 찍었다. 더구나 사기 특기인 백출을 갖고 있어 크게 강화된 장수 중 하나.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마의 진영의 에이스로 등극한다. 병과적성은 극병만 B이고 나머지는 전부 C다.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는 삼국지 11 때에서 매력만 삭제되고 큰 변동점은 없다. 병종은 궁병이며 전법은 오리지널에서는 지력저하, PK에서는 전법봉인이다. 특기는 상재 하나 뿐. 일러스트는 갑옷을 입고 죽간를 든 채 뒤돌아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같으며 특기는 언변 5 단 하나. 중신특성은 적중작적으로 전수특기는 당연히 언변이고 전법은 위병이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54, 무력 31, 지력 89, 정치 85, 매력 9로 개성은 봉살, 능리, 인맥, 지낭, PK에서는 감수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명리, 정책은 묵수연구 Lv 4, 진형은 방원, 투석, 전법은 저지, 도발, 매성, 친애무장은 배수, 사마소, 사마염, 순욱, 혐오무장은 없다.

5.2. 진삼국무쌍 시리즈

가충(진삼국무쌍) 문서로.

5.3. 삼국전투기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마리오 아디토레로 패러디되었다.[10] 한편 459편인 수춘2 전투(1)의 17컷에서 사마소오른팔이 되었다는 해설에 덧붙여서 애니메이션 기생수에서의 오른쪽이로 패러디된다.[11]

진창 전투 편에서 아버지 가규의 장례를 치르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 뒷모습만 등장했지만, 바로 다음 컷인 진창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며 얼굴 생김새가 밝혀진다. 소개컷에서는 가규 사망 당시 11세로 삼국통일을 본다고 짤막하게 서술되어 있다.

본격적인 첫 등장은 낙가 전투 편. 낙가 전투 편 막바지에 사마소가 정권을 잡으며 새롭게 떠오르게 된 2세대 중 하나라고 언급된다. 당시 참군사였던 가충은 사마사를 대신해 전 병력을 무리없이 관리했기에 사마소의 눈에 들었다고 묘사된다.

수춘2 전투 편에서는 대장군이 되며 최고위에게 오른 사마소에게 사방장군에게 사람을 보내 위로할 필요가 있다고 진언한 뒤, 사마소가 이를 받아들이자 가충 본인은 정동대장군 제갈탄에게 찾아가서 그를 떠 보기도 했다. 제갈탄과의 문답을 마치고 돌아온 가충은 제갈탄이 근시일에 반기를 들 것임을 거의 확신해 사마소에게 말했고, 사마소가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제갈탄을 다짜고짜 때릴 수도 없어 난감해하자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거짓 사공 임명 작전이 성공해 제갈탄이 악침을 죽이고 먼저 움직인 뒤에는 사마소 등과 함께 수춘으로 출진했다. 참호를 파고 보루를 쌓는 포위작전을 처음 발의한 자도 가충이었다고 묘사되었다.

전투외편 6편에서는 제갈탄의 난에서 공을 세워 정위로 승진했다. 가충은 기본적으로 사마 가문에 대한 충성심은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시기심이 가득해 라이벌이 될 만한 인물을 견제하는데 힘을 쏟은 것으로 묘사된다. 특히 종회를 싫어해 사마소에게는 종회는 역심이 있으니 너무 가까이 두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12]

전투외편 7편에서는 조모가 사마소를 처단하기 위해 직접 수하들을 끌고 쳐들어오자 성제를 시켜 황제를 제거했다.[13] 이에 사마소가 자기를 역적으로 만들 생각이냐며 따지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며 자기가 어떻게든 일을 무마시켜 보겠다고 했다. 다만 결국 뚜렷한 해결책은 없었기에 대충 뭉개는 식으로 일단락됐다.

덤으로 전투외편 7편에서는 사마소에게 직언을 하는 진태를 고깝게 보는 장면을 넣어 흑막임을 암시했다.[14]

성도 전투 편에서 오랜만에 등장해서 종회의 보고서를 받은 사마소가 등애가 진짜 반란을 일으킬 거 같냐고 묻자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그럴 거라며 종회를 의심하는 발언을 한다. 사마소는 이에 가충에게 넌 종회를 믿지 못하냐고 물었고 가충은 역으로 대장군께서는 종회를 믿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사마소는 가충에게 너든 종회든 나는 일을 맡겨 놓은 수하를 아무런 근거없이 의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15] 이후 야곡으로 출병한 것까지 언급된다.

전투외편 8편에서는 진왕이 된 사마소가 국가 전반의 시스템을 정비하고자 할 때 정충의 지휘 하에 중호군으로써 법률에 관련된 일을 맡았다고 묘사됐다. 라이벌 종회에 비해 관직 자체는 한참 낮았지만 가충은 사마 가문과 확실한 커넥션이 있었기에 관직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 케이스라고 묘사됐으며[16], 실제로 왕조가 진으로 교체된 이후에는 거기장군으로 고속승진했다.

독발수기능의 난 편에서는 사마준과 견홍까지 실패한 후 임개에 의해 독발수기능의 난을 제압할만한 인물로 추천을 받아 서량으로 파견을 나가게 될 위기에 처한다. 가충은 호열, 견홍같은 고릴라들도 못 당한 걸 자기가 무슨 수로 잡냐며 당황했고,[17] 독발수기능보다 더 큰 문제는 황제 곁에서 멀어져 총애를 잃게 되는 거라며 좌절에 빠졌다. 그러나 타이밍 좋게 나타난 순욱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의 딸을 황태자비로 만들어 진주행을 피하기로 하고 계획을 실행, 실제로 황제와 사돈이 되는데 성공하며 진주, 즉 서량행을 피했다.[18]

서릉 전투 편에서는 딸을 황태자비로 만들며 최고의 관직들을 거의 섭렵했으며, 정적 임개를 기어코 파직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묘사되었다.

삼국 통일 편에서는 자기 일파와 더불어 독발수기능을 핑계로 오 정벌을 반대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양호를 싫어하여 반대한 것 같았지만 양호가 죽은 뒤에도 쭉 오 정벌을 반대했다. 장화의 설득에 넘어간 사마염이 다시 오 정벌을 결정했을 때도 자기 일파와 함께 또 반대를 하지만 이번에는 사마염이 강하게 나가며 전부 깨갱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오 정벌의 명목상 대도독을 맡는다.

오 정벌의 대도독이 되고도 사사건건 딴지만 걸며 방해하던 가충은 진짜 오가 멸망하자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고 묘사됐다. 작가는 이에 팀의 승리에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한다면 이젠 그 팀의 팬이 아닌 거라고 한 소리 하기도 했다.

5.4.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파일:조조전_가충.png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 2019년 6월 업데이트에서 추가되었다. 병종은 도사, 성우는 이규창.


[1] 즉, 옛 하동군이다.[2] 당시 호열, 견홍이 전사하고 사마량사마준이 경질된 상황이었다.[3] 사실 임개의 아내 제장공주가 위나라 때 받은 식기였다.[4] 순욱의 경우는 그의 외손자가 가남풍 일족이 망한 15년쯤 뒤에 큰 화를 당하긴 했다.근데 순욱은 사마업 외할아버지지만 사마의는 사마업 고조할아버지인데...[5] 손호의 이 발언은 자신을 도발한 가충에게 응수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너 같은 놈이 내 밑에서 그 짓거리를 했으면 니가 물어봤던 그대로 얼굴가죽을 벗겨버리는 꼴을 내줄테니 쪽팔린 줄 알고 닥치고 있어라."라는 뜻이 내포된 발언이었다. 가충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였던 것. 중원 사람들 뿐 아니라 전국 각지 사람들 모두가 가충이 불충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던 발언이었다.[6] 오멸망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촉한을 점령하여 장강 상류를 점유한 진나라가 너무나도 유리한 형세인데다 오나라는 손호가 방어체계를 제대로 세우지 않은데다 곽마의 반란으로 병력까지 분산된 상황이라 진나라에게 위기인 순간조차 없었다. 오멸망전에서 유래된 고사가 바로 파죽지세다.[7] 다만 가모가 가남풍조차도 아니다 싶으면 폐위하자고 논할 정도로 객관적인 사리분별이 가능한 사람이었던 까닭에 저런 말을 대놓고 할 수 있기도 했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 가충은 죽음을 눈 앞에 둔 병자이기도 했다.[8] 이런 사례는 기시 노부오가 외숙부 기시 노부카즈(岸信和)의 양자가 된 일과 같다. 일본이야 종실 빼고 이렇게 양자를 들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일본은 원래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변방에 속했고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이런 양자는 매우 몰상식한 짓으로 여겨진다.[9] 참고로 가밀은 춘추전국시대 한나라의 종손이다[10] 성제를 시켜 황제 조모를 시해한 것 때문에 패러디로 캐스팅된 듯. 물론 작중 다수의 캐릭터가 그렇듯, 게임상 마리오 아디토레의 행적은 가충과 많은 차이가 있다.[11] 참고로 그 컷에서의 가충의 모습은 일반적인 오른쪽이의 모습은 아니고 영화 버전에서 이즈미 신이치가 기생 생물인 시마다 히데오를 끝장낼 때의 활로 변형된 모습을 패러디한 것이다.[12] 그리고 양호는 가충과 종회 둘 모두가 싫어해 견제했다는 내용도 깨알같이 지나갔다.[13] 실행자인 성제 또한 황제가 죽자마자 바로 대역죄를 뒤집어씌워 처리했다.[14] 단,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15] 물론 그건 가충이나 종회나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했기에 대충 답했던 것. 덤으로 가충은 사마소가 종회와 자신 둘 다 의심하는 것도 모르고 "믿음이다! 믿음!" 이러면서 헬렐레거리고 앉았다.[16] 사마소가 황제 살해 등 이런저런 약점이 많은 가충을 커버해 준 것으로 묘사됐다.[17] 당연한 말이지만 임개도 가충이 독발수기능을 잡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건 아니고 그냥 나가서 뒈지라고 추천한 것에 가깝다. 임개와 가충의 악연에 대한 건 임개 문서로 이동할 것.[18] 참고로 가충의 딸이 황태자비가 되며 발생한 오만가지 해악에 대해서는 가충 본인도 자기도 그렇게까지 될지는 몰랐다고 말하는 장면이 1컷 지나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