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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디슨

Edison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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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States Congressional Gold Medal
미합중국 의회 명예 황금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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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776년 1777년 1779년 1781년
조지 워싱턴 소장 호레이쇼 게이츠 소장 앤서니 웨인 사령관 헨리 리 3세 준장 대니얼 모건
1781년 1787년 1800년 1805년 1813년
소장 너새니얼 그린 존 폴 존스 대령 토머스 트럭스턴 준장 에드워드 프레블 대령 아이작 헐
대령 스티븐 디케이터
대령 제이콥 존스
1813년 1814년
대령 윌리엄 베인브리지 대령 올리버 해저드 페리
대령 제시 엘리엇
대위 윌리엄 워드 버로스 2세
대위 에드워드 매콜
대령 제임스 로렌스 대령 토머스 맥도너
대령 로버트 헨리
대위 스티븐 카신
1814년 1814년, 1848년 1814년
대령 루이스 워링턴 대령 존스턴 블레이클리 소장 제이콥 제닝스 브라운 소장 윈필드 스콧 소장 피터 부엘 포터
준장 엘리저 리플리
대령 제임스 밀러
1814년 1815년 1816년
소장 에드먼드 P. 게인즈 소장 알렉산더 머컴 소장 앤드루 잭슨 대령 찰스 스튜어트 대령 제임스 비들
1818년 1835년 1846년, 1847년, 1848년 1847년 1854년
소장 윌리엄 해리슨
주지사 아이작 셸비
대령 조지 크로간 소장 재커리 테일러 소머스 호
장교 및 승무원 구출
중령 덩컨 잉그함
1858년 1863년 1864년 1866년 1867년
프레더릭 로즈 소장 율리시스 S. 그랜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로버트 크레이튼
에드윈 J. 로
조지 C. 스투퍼
사이러스 웨스트 필드
1867년 1871년 1873년 1874년, 1904년 1883년
조지 피바디 조지 F. 로빈슨 대령 재러드 크랜달 그 외 존 혼 주니어 존 폭스 슬레이터
1888년 1890년 1900년 1902년 1909년
조셉 프랜시스 수석 엔지니어 조지 W. 멜빌 그 외 중위 프랭크 H. 뉴컴 중위 데이비드 H. 자비스
소위 엘스워스 P. 버트홀프
새뮤얼 J. 콜 박사
라이트 형제
1912년 1914년 1915년 1928년
선장 아서 로스트론 폴 H. 크라이봄 그 외 로물로 세바스티안 나온
에두아르도 수아레스 무히카
찰스 린드버그 로알 아문센
움베르토 노빌레
1928년 1929년 1930년 1936년
토머스 에디슨 최초로 성공한 대서양 횡단 비행사 소령 월터 리드 준장 리처드 에벌린 버드 링컨 엘즈워스
1936년 1938년 1939년 1940년
조지 M. 코핸 리처드 올드 리치 부인
안나 불리니
하워드 휴즈 목사 프랜시스 퀸 윌리엄 시넛
1942년 1945년 1946년
롤런드 바우처 1939~1941년 미국 남극 탐험대 육군 원수 조지 C. 마셜
해군 원수 어니스트 킹
육군 원수 존 조지프 퍼싱 준장 빌리 미첼
1949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58년
앨번 W. 바클리 어빙 벌린 조너스 소크 박사 남북전쟁의 참전 용사 준장 하이먼 리코버
1959년 1960년 1961년 1962년
로버트 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토머스 앤서니 둘리 3세 밥 호프 샘 레이번
1962년 1968년 1969년 1973년 1977년
육군 원수 더글러스 맥아더 월트 디즈니 윈스턴 처칠 로베르토 클레멘테 매리언 앤더슨
1978년 1979년
중장 아이라 이커 로버트 F. 케네디 존 웨인 벤 아브러조
맥시 앤더슨
래리 뉴먼
휴버트 험프리
1979년 1980년 1982년
미국 적십자 케네스 테일러 1980 미국 하계 올림픽 팀 베아트릭스 여왕 대장 하이먼 리코버
1982년 1983년
프레드 워링 조 루이스 루이스 라무르 레오 라이언 대니 토머스
1984년 1985년
해리 S. 트루먼 레이디 버드 존슨 엘리 비젤 로이 윌킨스 조지 거슈윈
아이라 거슈윈
1986년 1987년 1988년
네이선 샤란스키
에비탈 샤란스키
해리 차핀 에런 코플런드 메리 래스커 제시 오언스
1988년 1990년 1991년
앤드루 와이어스 로렌스 록펠러 대장 매튜 B. 리지웨이 대장 노먼 슈워츠코프 대장 콜린 파월
1994년 1996년 1997년
랍비 메나헴 멘델 쉬니어슨 루스 그레이엄
빌리 그레이엄
프랭크 시나트라 마더 테레사 바르톨로메오스 1세
1998년 1999년
넬슨 만델라 리틀록 9인 제럴드 포드
베티 포드
로자 파크스 시어도어 헤스버그
2000년
존 오코너 찰스 M. 슐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로널드 레이건
낸시 레이건
나바호족 코드 토커
2002년 2003년
대장 휴 셸턴 토니 블레어 재키 로빈슨 도로시 하이트 박사 조셉 디레인
해리 & 일라이자 브릭스
레비 피어슨
2004년 2006년
마틴 루터 킹
코레타 스콧 킹
터스키기 에어맨 달라이 라마 14세 바이런 넬슨 노먼 볼로그 박사
2007년 2008년
마이클 데바키 박사 아웅 산 수 치 콘스탄티노 브루미디 에드워드 윌리엄 브룩 3세 아메리카 원주민 코드 토커
2009년 2010년
여성 공군 군무원 조종사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존 글렌
아놀드 파머 무함마드 유누스 제100 보병대대
제442 보병연대 전투단
군사정보국
2011년 2012년 2013년
몬트포드 포인트 해병전우회 9.11 테러 참사 사망자 라울 발렌베리 애디 메이 콜린스
데니스 맥네어
캐럴 로버트슨
신시아 웨슬리
제1 특수임무단
2014년
둘리틀 특공대 멤버 미국의 공군 에이스 제2차 세계 대전
민간 항공 초계 부대 멤버
시몬 페레스 모뉴먼츠 맨
2014년 2015년 2016년
제65 보병연대 잭 니클라우스 셀마 몽고메리 행진 제2차 세계 대전 필리핀인 참전 용사 미국 전략사무국
2017년 2018년
밥 돌 래리 도비 제2차 세계 대전
중국계 미국인 참전 용사
USS 인디애나폴리스 승무원 안와르 사다트
2019년
스티브 글리슨 캐서린 존슨 크리스틴 다든 도로시 본 메리 잭슨
2019년 2020년 2021년
무명의 수여자들 그렉 르몽드 미국 국회의사당 경찰
워싱턴 광역경찰국
제369보병연대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전사한 13명의 장병
2022년 2023년
미 육군 제23부대 본부 특수부대
제3133 신호 복무 중대
제6888 중앙우편대대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상선 선원
벤 페렌츠 에밋 틸
메이미 틸모블리
2024년
베트남 전쟁 부상자 후송 부대원 빌리 진 킹
}}}}}}}}} ||

{{{#!wiki style="margin: 0 -1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0 -15px 0"
※ 2005년 AOL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가장 위대한 미국인’ 명단이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로널드 레이건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6위 7위 8위 9위 10위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엘비스 프레슬리 오프라 윈프리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빌리 그레이엄 토머스 제퍼슨 월트 디즈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토머스 에디슨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존 F. 케네디 밥 호프 빌 게이츠 엘리너 루스벨트 랜스 암스트롱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무하마드 알리 로자 파크스 라이트 형제 헨리 포드 닐 암스트롱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마야 안젤루 수전 앤서니 루실 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바버라 부시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조지 H. W. 부시 로라 부시 앤드루 카네기 자니 카슨 지미 카터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조지 워싱턴 카버 레이 찰스 세자르 차베스 힐러리 클린턴 빌 코스비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톰 크루즈 엘런 디제너러스 프레드릭 더글라스 어밀리아 에어하트 클린트 이스트우드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브렛 파브 멜 깁슨 루돌프 줄리아니 존 글렌
영문 위키 참고.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colbgcolor=#3B73B9><colcolor=#fff>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 설립자
토머스 에디슨
Thomas Edison
파일:톰 에디.jpg
본명 토머스 앨바 에디슨
Thomas Alva Edison
출생 1847년 2월 11일
미국 오하이오주 밀란
사망 1931년 10월 18일 (향년 84세)
미국 뉴저지주 웨스트 오렌지
국적
#!if 깃발 == null && 문서 == null
[[틀:깃발|{{{#!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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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f 기 == null && 문서 == null
[[틀:깃발|{{{#!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깃발.svg|width=24]]}}} {{{#!if 출력 == null
깃발 명칭}}}{{{#!if 출력 != null
}}}}}}]]
#!if 기 == null && 깃발 == null
[[미국|{{{#!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width=24]]}}} {{{#!if 출력 == null
미국}}}{{{#!if 출력 != null
}}}}}}]]
직업 발명가, 기술자, 사업가, 영화감독
활동 1877년 ~ 1930년
신체 178cm
부모 아버지 사무엘 오그던 에디슨 주니어 (1804~1896)
어머니 낸시 매튜스 엘리엇 (1810~1871)
배우자 메리 스틸웰 (1871년 ~ 1884년, 사별)[1]
미나 밀러 (1886년 결혼)[2]
자녀 4남 2녀
수상 마테우치 메달 (1887)
존 스콧 메달 (1889)
에드워드 롱스트레스 메달 (1899)
존 브리츠 메달 (1908)
프랭클린 메달 (1915)
해군 공로훈장 (1920)
의회 명예황금훈장 (1928)
종교 무종교[3]
서명 파일:토머스 에디슨 서명.svg
링크 파일:IMDb 로고.svg

1. 개요2. 생애3. 평가4. 가족 관계5. 어록
5.1. 루머
6. 여담7. 대중매체에서8. 둘러보기

1. 개요

미국발명가이자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의 전신인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의 설립자다.[4] 그리고 자수성가로 가장 성공한 근성가[5] 중 한 명이다.

별명인 발명왕으로 유명하다. 당시 이론만 있고 실현이 지지부진했던 음향 녹음 및 재생이 가능한 축음기를 최초로 개발 성공한 것도 있고, 이 발명품으로 본인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중음악, 영화(상업영화예술영화) 등 대중 예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후술하겠지만 전구를 개량하고 전구를 시판 독점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 여파로 발명 외적으로, 자신의 사업체를 끌어들여 도시에 전기 인프라를 확립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하여, 현대 전기 문명 시대의 신호탄을 쏜 사람이기도 하다. 오히려 발명보다 훨씬 더 크게 평가받아야 할 업적이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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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

산업과 상업에서 누구나 남의 것을 훔치게 마련이다. 나 자신도 많은 것을 훔치면서 살았다. 하지만 난 어떻게 훔치면 좋은지 그 방법을 알고 있지만 남들은 그 방법을 몰랐다.
- 토머스 에디슨
먼로파크의 마법사

분명한 것은 에디슨을 발명가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과학자나 기술자라고 부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에디슨은 분명한 기업인이며 사업적인 발명가와 연구 공학자는 분명 다르다.[6] 간혹 에디슨을 어렸을 때 보여준 실험 일화와 전구를 발명해낸 일화를 합쳐 아이작 뉴턴, 마리 퀴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과 묶어서 훌륭한 과학자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묘사인 셈. 에디슨은 행적만 보자면 전대의 제임스 와트[7], 후대의 스티브 잡스[8]와 유사한 사람이다.

물론 과학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발명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근대 사회에 관련된 물품으로 한정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제품을 개발해 내놓았으며 정확한 개수조차 가늠이 안될 정도로 많다. 기록에 따라 다르지만 에디슨의 발명품은 적게는 1,093개에서 2,332개까지 다양하다. 에디슨의 발명은 많고 적음을 떠나서 세계사와 발전에 실질적으로 실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기에 종합적인 업적을 기려서 보통 발명왕 에디슨이라 불린다.

그의 대표적인 발명품은 전구[9]전기와 관계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전기, 특히 직류전기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다. 니콜라 테슬라를 견제하기 위해 제작한 사형집행용 전기의자는 그의 일생일대의 오점으로 남으며 현재에 와서도 에디슨의 오점에 대해 논할 때 가장 먼저 꺼내는 화두가 되었다. 그 외에도 에디슨을 뛰어난 창의력과 불굴의 의지와 착한 심성만 가진 사람으로 묘사하는 에디슨 전기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여러 어둡고도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들이 속속 드러났다. 하지만 비록 그와 같은 일을 저질렀어도 그가 역사에서 이룩한 업적이 크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실제 에디슨이 직접 뭔가를 최초로 발명해낸 게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다지 실용성이 없고 가짓수도 많지 않다. 그러나 에디슨이 최초로 발명한 것중 가장 유명한 축음기[10]등을 보면 그의 발명 능력을 저평가 당할 이유는 없으며, 또한 에디슨은 최초의 물건은 있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했거나 불편한 점이 많았던 여러 발명품들을 모두가 쓸 수 있도록 상용화시킨 사업가로 볼 수 있다.[11] 혁신과 개량은 에디슨을 빛나게 해 준 능력인데 개량이라는 건 기존 제품을 베이스로 에디슨 본인만의 기술적 시스템알고리즘을 수정해 추가 개발하는 것이고 에디슨은 실용화에 문제가 많았던 기존의 시판품을 뜯어 고쳐 모두가 널리 쓰도록 실용화했으니 발명왕이라고 불리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에디슨 발명품의 절반 이상은 따지고 보면 남의 발명품을 상용화한 개량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발명왕이라고 칭송받는 이유는 이론상으로만 존재했거나 이미 상품화되어 출시되기는 했지만 특이한 기능이 있는 신기한 물건 정도로만 여겨지거나 원시적이고 조잡해 실용성이 없어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던 것들을 개량해서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한 점이 크다.

물론 이 과학자가 아니라는 평가는 그가 세간적인 인식의 과학자가 아니란 뜻이지, 그가 발명한 방식이 비과학적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필라멘트 상용화나 전기자동차의 개발 같은 건 과학적 방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의 방식은 고전적인 시행착오를 통한 변수 조절 방법으로, 전자기학의 법칙들 역시 이렇게 여러 실험에서 통제된 환경내 변수들을 없애거나 추가하면서 관측된 현상을 토대로 모델화한 거다. 그러니 직업으로서의 과학자는 아니지만, 에디슨의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과학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에디슨이 최초의 전구를 발명하지 않은 건 사실이나, 에디슨이 최초의 '상용화 된' 전구를 개발한 것에 대해서까지 평가절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실제로도 조지프 스완을 포함해 전구 개발에 힘쓴 많은 발명가들은 에디슨의 기발함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12][13] 자신들이 개발해 왔지만 뭔가 시원치 않던 전구를 더욱 밝고 오래 켜지도록 개량하고 실용화시킨 업적 덕분이다. 괜히 그에게 '먼로 파크의 마법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 아니다.

즉, 에디슨이 전구 개발사에 업적을 남긴 건 전구의 발명이 아니라, 전구를 모두가 제대로 쓸 수 있도록 개량하고 전구의 상용화를 가능하게 하는 회사와 유통 시스템인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정립했다는 점이 최대의 업적이다.

전구만 발전시킨게 아니라 개량된 발전기와 배전반, 송전선, 변압기, 소켓, 스위치, 안전퓨즈, 적산전력계(계량기) 등 전기사용과 관련되는 주변기기까지도 같이 창조해냄으로써 전기문명 시대를 연 것이다. 발전기든지 전동기든지 하는 것들을 달랑 하나나 둘 정도만 만들고 끝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즉, 종합하자면 세계 최초의 기업연구소를 설립하고 "기업의 연구개발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일 먼저 제시하며 현대 기업의 연구개발 시스템의 기틀을 세운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모든 기계나 물건은 절대로 한 사람의 머리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타인이나 전 세대가 발달시킨 이론이나 아이디어, 기존의 발명품에 자신의 지식과 노력을 접목시키는 과정이 거듭되어 탄생하는 것이다. 일례로, 에디슨과의 갈등으로 피해를 입었던 니콜라 테슬라도 교류 전기의 최초 선구자는 아니다. 테슬라가 활용한 AC도 마이클 패러데이가 이론을 발전시켰고 이폴리트 픽시는 실제로 교류 발전기를 만들었다. 테슬라가 AC를 더욱 실용적으로 발전시킨 건 사실이지만, 상용화시킨 건 웨스팅하우스다. 혁신이란 것은 결국 사회적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과정이다. 그러니 테슬라든 에디슨이든 최초가 아니고 타인의 업적을 참고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비판할 수 없다.

독점적 특허와 관련해서도 여러가지 시각이 있다. 알쓸신잡에서 정재승은 에디슨이 특허를 가지는것에 대해 옹호했는데, 당시는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나 보상이 희박했으며, 특허권에 대한 대기업들의 침해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개인 개발자나 중소업체의 특허를 맘대로 침해하고 복제품을 내놓고는 소송이 걸리면 자본을 앞세워 시간을 장기간 끌어가며 결국 원 특허권자가 재산만 날리고 특허는 포기하게 만드는 일도 흔했다.[14] 이런 상황 속에서 에디슨은 오히려 직원들의 특허를 회사의 이름으로 낸 뒤 직원에게는 해당 특허개발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지급하고, 해당 특허를 다른 기업이 침해할 경우 회사 차원에서 법적 대응을 식으로 특허를 보호한 것으로 보는게 옳다. 또한, 이 방식은 현재의 대기업들도 애용하는 보호방식이다. 기업이 특허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떤 행동을 하여야 하는지를 에디슨이 제일 처음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4. 가족 관계

에디슨은 한평생 발명/사업에 힘썼지만, 가족에게는 정말로 소홀했다. 첫번째 배우자를 쓸 만한 발명품을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구박했고, 대학 교육에 대한 콤플렉스 탓에 자식들을 모조리 공과대학으로만 보냈다.

첫 번째 부인 메리 스틸웰이 사망했을 때, 일이 바쁘다며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한동안 적적하게 지내다 2번째 부인이 된 미나 밀러에게 모스 부호로 프러포즈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참고로 두 번째 부인은 첫 부인보다 성격이 더 드셌는데, 에디슨이 발명한답시고 연구실에만 붙어 있자 밥을 싸들고 찾아가서 다 먹기 전까지는 발명이고 뭐고 하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가족에 소홀했던 탓인지 자식들의 삶도 좋지 못했다. 첫 부인 소생 2남 1녀 중 둘째인 장남 토머스 "대시" 에디슨 주니어(1876 ~ 1935)[15]는 '전기 활력 회복기'(Magno-Electric Vitalizer)라고 이름 붙인 가짜 건강기계를 만들어 팔다 고발당하는 등 아버지 이름을 빌려 사기나 치는 사기꾼이었다. 게다가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아버지인 에디슨 본인이 직접 고발을 했는데, 더 이상 아버지 이름으로 사기를 못 치도록 명예훼손을 이유로 개명을 요구했고, 법원에서 요구가 받아들여져서 + 이름을 바꾸어 주면 월 35달러의 용돈을 주겠다는 딜을 수락하여 토머스 에디슨 주니어는 토머스 윌러드(Thomas Willard)로 개명한다.[16] 에디슨은 여기에 정신 좀 차리고 살라며 버섯 농장까지 지어 주었는데, 수익이 신통치 않아 결국엔 용돈을 월 50달러까지 올려주게 된다. 그러나 에디슨 주니어는 변함없는 막장 생활을 유지하고, 이에 분노한 에디슨은 결국 에디슨 주니어를 아예 무시하며 외면하게 된다. 이후 월러드는 아버지가 돈을 주지 않는다며 고소하는 추태를 부렸다가 패소하였고 다른 사기 피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시달리는 등 엉망으로 살다가 아버지 장례식에 와서는 유산 분배에만 관심을 기울였는데,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손절당했는지 남에게 무엇을 주겠느냐고 무시당했다.[17] 결국 에디슨이 죽고 4년 뒤인 1935년, 길거리에서 비참하게 죽는다.

차남 윌리엄(첫 부인 소생으로 막내)은 하는 사업마다 망해서 매주 40달러씩 생활비를 대주는 처지가 되었다. 문제는 윌리엄의 부인이 허영심이 많은 여자라서 주 40달러 가지고 어찌 사냐고 시도때도 없이 편지를 보내 시아버지 에디슨을 닦달했다는 것. 이게 뭐가 문제냐면, 1925년 당시 40달러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에 기반해 2024년 가치로 환산하면 716달러다. 당시 미국의 평균 소득 수준을 훨씬 웃도는 돈이다. 이러니 에디슨도 편지만 받으면 찢어버리고 무시했으며, 답장으로 더 이상 그러면 10달러도 안 줄테니 닥치라고 분노했다. 기묘하게도 윌리엄도 1937년, 59세를 채우지 못하고 형과 같은 나이로 사망했으며, 며느리도 에디슨 사후에 고생하다가 1948년에 사망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30px-Charles_Edison.jpg

둘째 부인 소생 2남 1녀 중 둘째인 3남 찰스 에디슨(1890 ~ 1969)은 정계로 진출해 훗날 해군부 장관, 뉴저지 주의 주지사를 역임했다. 자신의 아버지와 가장 친밀하다고 자부하던 그였지만, 그마저도 아버지 얼굴을 평생 봤던 시간이 채 1주일도 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막내 시어도어 밀러 에디슨(1898 ~ 1992)은 발명가로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 200가지가 넘는 발명품을 만들어내고 100여가지 특허를 냈으며, 사업가로서 운영도 잘 했다. 1987년 에디슨 탄생 140주년 행사 때 인터뷰도 했는데, 그도 아버지에 대해선 그리 추억이 없다고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늦게 태어난 3남 찰스와 4남이자 막내인 시어도어는 꽤 성공한 인생을 살았으나, 차남은 너무 무능하여 에디슨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인생을 살았고, 가장 먼저 태어난 장남은 최악의 인생을 살다가 비명횡사했다.

5. 어록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Genius is one percent inspiration and ninety-nine percent perspiration.
1932년 하퍼스 매거진 기사에서 전해진 이다.[18] 에디슨 사후 약 1년 후 회고록 성격으로 작성된 기사로 생전에 비슷한 말을 많이 하였다.[19] 1910년 에도 거의 비슷하게 기록되있다.[20] 1898년 Ladies' Home Journal 잡지 등에도 에디슨의 말이 전해지는데 때로는 2%의 재능과 98%의 노력이라고 말하였다.[21] 1929년에 한 기자회견에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22]
None of my inventions came by accident. I see a worthwhile need to be met and I make trial after trial until it comes. What it boils down to is one percent inspiration and ninety-nine percent perspiration.
내 발명 중 우연으로 만들어진 것은 없다. 애쓸 가치가 있는 요구를 발견하고, 이뤄질 때까지 시도하고 또 시도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다.

5.1. 루머

에디슨 : “전에 나는 신문 취재에서 그 기자에게 '1퍼센트의 영감이 없으면99퍼센트의 노력은 소용이 없다'고 말한 거였소. 그런데 신문에는 1퍼센트의 영감에 대한 중요성이 아니라 99퍼센트의 노력에 중점을 두고, 나를 노력하는 사람으로 미화하여 진실을 잘못 전한 것이오. 정말이지 못말리는 착각이지요.” 원래 에디슨은 “천재는 1%의 영감이 없으면 99%의 노력도 소용없다” 라고 말했답니다. 모두들 잘못된 해석으로 잘못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에디슨의 자서전을 보시면 정확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영감 없이는 99% 노력을 해봐야 성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노력을 강조한게 아니고 1%영감강조한 말 입니다. 여기서 영감이란 천재성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려는 열정이나 도전성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냥 무조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청춘을 다 바쳐도, 아무런 영감이 없다면, 진짜 목표가 아니라면 그 허무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겠지요.
천재는 1%의 재능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아마 많은 초등학교에서 아직도 이런 말을 배울 겁니다. 하지만 원래 명언은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1%의 영감이 없다면 99%의 노력헛수고일 뿐이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디슨이 발명에 대해 가졌던 진정한 생각입니다.[23]
에디슨 명언의 진실이라며 블로그, 커뮤니티, SNS, 교수, 과학자, 방송 등으로 겉잡을 수 없이 퍼진 루머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에디슨이 "1%의 영감이 더 중요한데 내 말이 와전되서 억울하다"라고 직접 해명하거나 그런 취지의 원문[24]을 남긴 자서전 기록 등은 전혀 없다. 일단은 에디슨이 직접 쓴 공식적인 자서전(Autobiography) 자체가 없다.[25][26] 에디슨은 '1%가 더 중요하다'고 억울해한 적이 없고 나중에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덧붙여서 창작한 것이다. 대부분 에디슨의 책이라고 불리는 것은 에디슨 사후 여러 작가들이 그의 말을 엮은 전기(문학)(Biography)로, 그들의 상상이 가미되서 판매되고 있다. 다만 그 중 자서전에 가까운 책이라고 불리는 건 있다. 그건 에디슨 생전에 발매된 'EDISON HIS LIFE AND INVENTIONS' 라는 이다.[27] 에디슨이 직접 검수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에디슨의 법률 고문(Frank Lewis Dyer)과 에디슨과 함께 일했던 전기공학자(Thomas Commerford Martin)가 공동 집필하였다. 에디슨의 실제 발언은 다음과 같다.
The idea of attributing great successes to "genius" has always been repudiated by Edison, as evidenced by his historic remark that "Genius is 1 per cent. inspiration and 99 per cent. perspiration." Again, in a conversation many years ago at the laboratory between Edison, Batchelor, and E. H. Johnson, the latter made allusion to Edison's genius as evidenced by some of his achievements, when Edison replied:
"Stuff! I tell you genius is hard work, stick-to-it-iveness, and common sense."

위대한 성공을 “천재성” 덕분으로 돌리는 생각은 언제나 에디슨에 의해 부정되어 왔으며, 이는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여러 해 전 실험실에서 에디슨, 배철러, 그리고 E. H. 존슨이 나눈 대화 중에, 존슨이 에디슨의 몇몇 업적을 두고 그의 천재성을 언급하자 에디슨은 이렇게 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말하건대 천재란 노력, 끈기, 그리고 상식일 뿐이야.”
따라서 '흔히 잘못알고 있는 명언이다, 에디슨이 자서전에서 1%의 영감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라고 하는 건 사실이 아니다. 일 중독자였던 에디슨의 일생과 맞지도 않다. 이 재해석은 에디슨의 본의가 아니며 노력을 피하고 싶거나 천재적인 번뜩임에 더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대중의 희망사항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에디슨의 권위를 빌려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한 것 같은데 사실 무책임한 행동이다. 애초에 당시 주된 화두는 영감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엔 영감이 빠져있는 걸 알 수 있다.[28] 의 뒷 내용을 더 이어가면 주위 사람들은 '자신들도 노력하고 그런 자질을 갖추고 있는데 안 된다', '당신이 천재인 거다' 식으로 반박한다. 그러면 에디슨은 다소 두서없이 화제를 돌렸다고 한다.[29] 1898년 The Ladies' home journal 기사에서 영감에 대한 에디슨의 직접적인 의견이 전해진다.
Once, when asked to give his definition of genius, Edison replied: "Two per cent. is genius, and 98 per cent. is hard work."
At another time, when the argument that genius was inspiration was brought before him, he said:
"Bah! Genius is not inspired. Inspiration is perspiration"

한번은 천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질문에 에디슨은 이렇게 답했다. “천재는 2%의 재능과 98%의 노력이다.”
또 다른 때에는 천재영감에서 나온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흥! 천재는 영감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 영감도 노력에서 온다.”
천재(genius)는[30] 타고나는 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노력이며, 천재가 영감에서 나온다고 누군가 주장하면 그 영감도 노력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서 확실하게 천재는 영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따라서 천재를 말할 때 루머와 다르게 1%영감을 특별히 강조할 의도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냥 말 그대로 영감은 1%만 있어도 되니까 노력을 열심히 하란 말이었다.[31] 그리고 살펴보면 알겠지만 inspiration, perspiration 라임을 맞춘 것이다. 98%의 노력이라고 할 때 hard work라고 했다가 perspiration라고 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록에 서술되있든 평소에 이런 말들을 해서 여러 변형 버전이 있다. 이때는 98%의 노력(hard work)과 2%의 재능(genius)으로 말했다. 직역하면 영감도 땀이다. 애초에 에디슨은 사람들이 말하는 영감이란 것도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노력결과물로 봤다. 더 나아가 천재가 되려면 그 영감에서 멈추지 말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무엇이든 간에 언제나 한결같이 노력강조한다는 걸 알 수 있다. 1932년 Harper's Magazine 기사에서 에디슨의 원래 진의를 또 확인할 수 있다.
"But I’m tellin’ you, I don’t believe in luck— good or bad. Most fellows try a few things and then quit. J never quit until I git what I’m after. That’s the only difference between me, that’s supposed to be lucky, and the fellows that think they are unlucky. Then again a lot of people think that I have done things because of some ‘genius’ that I’ve got. That too is not true. Any other bright-minded fellow can accomplish just as much if he will stick like hell and remember that nothing that’s any good works by itself, just to please you; you got to make the damn thing work. You may have heard people repeat what I have said, ‘Genius is one per cent inspiration, ninety-nine per cent perspiration.’ Yes, sir, it’s mostly hard work." I said, "You will admit, Mr. Edison, that at least your patience is out of the ordinary?"— "Oh, yes," he replied, "I got lots of patience."
As his words imply, his great working capacity and his extraordinary patience were important parts of his genius. Edison shrank from the word genius because of its suggestion of a miraculous power of creating by mere inspiration something out of nothing.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는데 전 이라는 걸 믿지 않아요. 좋은 운이든 나쁜 운이든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가지 시도해 보고는 포기하죠. 저는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그게 운이 좋다는 소리를 듣는 나랑,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유일한 차이점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제가 천재성 덕분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람이면 끈질기게 노력하고, 좋은 것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한다면 저만큼 잘 해낼 수 있어요. 당신이 직접 노력해서 해내야 하는 거죠. 아마 내가 했던 말을 사람들이 반복하는 걸 들어봤을 겁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perspiration)으로 이루어진다.' 맞습니다. 그건 일반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hard work)입니다.[32] 나는 “에디슨 선생님, 그래도 최소한 당신의 인내심만큼은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다는 걸 인정하시겠죠?”라고 물었다. 그는 “오, 그건 그렇죠.”라고 대답했다. “내게 인내심 하나만큼은 아주 아주 많으니까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난 업무 능력과 비범한 인내심이 그의 천재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에디슨은 천재라는 단어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영감만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적적인 능력을 암시한다는 이유로 그 사용을 기피했습니다.
에디슨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perspiration)[33]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하며, 그것은 '열심히 일하는 것(hard work)'[34]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천재성으로 성공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며 인내심을 강조하였다. 당시 전구에 최적의 필라멘트를 찾기 위해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인물인 걸 생각하면 그냥 정론인 말을 한 것이다. 천재라는 단어와 단순히 영감만으로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관념을 기피했다. 안돼도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힘든 일을 하는 것을 가치 있게 봤다. 에디슨이 생전에 남긴 기록들은 철저하게 노력에 집중되있다. 따라서 1898년 기사, 1910년 책, 1929년 기자회견, 1932년 기사 등에서의 발언을 보면 에디슨 본인은 99%의 노력을 강조해서 했던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결국엔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에서 어느 부분에 가치를 크게 둘지는 각자의 몫이다.[35][36]

6. 여담

7. 대중매체에서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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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 재단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colbgcolor=#000047><colcolor=#ffc224> 개척자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헨리 허드슨 · 아메리고 베스푸치 · 존 스미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존 뮤어 · 메리웨더 루이스 · 사카자위아 · 키트 카슨 · 존 웨슬리 파월 ·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 로버트 E. 리 · 토머스 페인 · 존 브라운 · 프레드릭 더글러스 · 수전 B. 앤서니 · W. E. B. 듀보이스 · 테쿰세 · 타탕카 이요탕카 ·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 말콤 엑스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 토머스 제퍼슨 · 율리시스 S. 그랜트 · 우드로 윌슨 · 에이브러햄 링컨 · 제임스 매디슨 · 앤드루 잭슨 · 시어도어 루스벨트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W.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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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앤디 워홀 ·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 제임스 맥닐 휘슬러 · 잭슨 폴록 · 존 제임스 오듀본 · 조지아 오키프 · 토마스 에이킨스 · 토머스 내스트 ·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 앤설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 윌리엄 펜 · 브리검 영 · 로저 윌리엄스 · 앤 허치슨 · 조너선 에드워즈 · 라파예트 로널드 허버드 · 엘런 화이트 · 코튼 매더 · 매리 베이커 에디 · 빌리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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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 헨리 포드 · 존 D. 록펠러 · J. P. 모건 · 월트 디즈니 · 토머스 에디슨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 하워드 휴즈 · 빌 게이츠 ·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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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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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어워드#s-3.3.1|그래미 어워드 공로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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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353535>1967년게오르그 솔티, 존 컬쇼
1968년듀크 엘링턴, 빌리 스트레이혼,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1970년로버트 무그
1971년크리스 알버트슨, 존 하몬드, 레리 힐러, 폴 웨스턴
1972년비틀즈
1977년토머스 에디슨,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1979년고다드 리버슨, 프랭크 시나트라
1981년카운트 베이시, 에런 코플런드
1983년레스 폴
1984년버르토크 벨러
1985년엘드릿지 R. 존슨
1986년조지 거슈윈, 아이라 거슈윈
1987년해럴드 알렌, 에밀 벌리너, 제롬 컨, 조니 머서
1989년월트 디즈니, 퀸시 존스, 콜 포터
1990년딕 클라크
1991년밀트 가블러, 베리 골디, 샘 필립스
1992년토마스 A. 도시, 크리스틴 파논,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로렌즈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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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노먼 그란츠
1995년피에르 코세트
1996년조지 마틴, 제리 웩슬러
1997년허브 앨퍼트, 제리 모스, 버트 배커랙, 핼 데이비드, 알란 제이 러너, 프레드릭 뢰베, 제리 리버와 마이크 스톨러
1998년홀렌드-호지어-홀렌드, 프란시스 W. 프레스톤, 리처드 로저스
1999년갬블 & 허프
2000년클라이브 데이비스, 필 스펙터
2001년아리프 말딘, 필 라몬
2002년톰 다우드, 앨런 프리드
2003년알란 로막스, 뉴욕 필하모닉
2004년게리 고핀 & 캐롤 킹, 오린 키프뉴스, 마리안 멕파랜드
2005년호기 카마이클, 돈 코넬리우스, 알프레드 라이언, 빌리 테일러
2006년크리스 블랙웰, 오웬 브래들리, 알 슈미트
2007년에스텔 액스턴, 코시마 마타사, 스티븐 손드하임
2008년클라렌스 애반트, 잭 홀츠만, 윌리 미첼
2009년조지 아바키안, 엘리엇 카터, 알렌 투생
2010년해롤드 브래들리, 플로렌스 그린버그, 월터 C. 밀러
2011년알 벨, 윌마 코자트 파인, 브루스 룬드벌
2012년데이브 바솔로뮤, 스티브 잡스, 루디 반 겔더
2013년알란 버그만 & 마릴린 버그만, 레오나드 체스 & 필 체스, 알란 W. 리빙스턴
2014년엔니오 모리코네, 릭 홀, 짐 마샬
2015년베리 만 & 신시아 웨일, 리차드 페리, 조지 웨인
2016년존 케이지, 프레드 포스터, 크리스 스트레비치
2017년톰 벨, 모 오스틴, 랄프 피어
2018년빌 그레이엄, 세이무어 스테인, 존 윌리엄스
2019년루 애들러, 애쉬포드 & 심슨, 조니 멘델
2020년프랭크 버클리 워커, 켄 에를리히, 필립 글래스
2021년에드 처니, 베니 골슨, 베이비페이스
2023년헨리 딜츠, 엘리스 마살리스, 짐 스튜어트
같이 보기: 평생 공로상 수상자 · 레전드상 수상자}}}}}}}}}

{{{#!wiki style="margin:-10px -10px"<tablewidth=90%><tablebordercolor=#fff,#1c1d1f>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svg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 화이트.svg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Hollywood Walk of Fame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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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4a1a1,#d4a1a1><colcolor=#fff,#000> 이름 토머스 에디슨
THOMAS A EDISON
분야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입성날짜 1960년 2월 8일
위치 6700 Hollywood Blvd. }}}}}}}}}


[1] 1855~1884. 뇌에 울혈이 생겨 사망.[2] 1866~1947. 에디슨 사후 1935년에 재혼한 바 있고, 두 번째 남편은 1940년에 사망했다.[3] 무신론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Jim Ketchum, "Edison's spirituality is more similar to 'scientific deism'", 「The Times Herald」, 2017.2.10. · "HIS FAMILY DENIES EDISON WAS ATHEIST; Statement Issued After His Death Says No One Could Call Him Unbeliever. FREETHINKER QUOTES HIM Lewis Declares Inventor Said That "Trouble With Most People Is They Are Incurably Religious."", 「뉴욕 타임스」, 1931.10.19.)[4] 에디슨이 그동안 세운 전기 관련 회사들을 전부 합병해 설립된 기업. 회사의 창업주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말하면 그는 직접 회사를 경영한 적은 없었다.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의 초대 사장이자 유일한 사장은 에디슨의 조력자이면서 지멘스도이체방크의 투자를 유치해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의 설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헨리 빌라드라는 이름의 금융가였으며 이후 회사가 경쟁사인 톰슨 휴스턴과 합병하여 제너럴 일렉트릭으로 재탄생했을 때도 에디슨은 두 회사의 합병을 주도했던 존 피어폰트 모건이 지지한 톰슨 휴스턴의 CEO 찰스 코핀에게 밀려 반강제적으로 회사 경영에서 손을 뗐다.[5]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흙수저 재벌로 꼽힌다.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흙수저로는 마이클 패러데이가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준으로 당대 흙수저 출신 자수성가 재벌 중에서는 가히 독보적 1등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 시작 시에 갖고 있던 빈약한 경제 기반을 고려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엄청난 성공이었다. 에디슨은 미국 내에서도 중산층 근처도 가본 적 없는 가난한 서민 자손이었기에, 에디슨 같은 케이스는 20세기 경제 성장의 신화였던 한국에서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사업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정주영 단 한 명 정도가 에디슨급 전설로 꼽힌다.[6] 그의 발명품들은 치밀하게 설계된 이론적 모델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시행착오로 이루어낸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론에 입각하여 새로운 제품을 창조한 과학의 영역이 아닌 기존사항을 개선을 위한 기업 차원의 연마에 가깝기 때문. 물론 그 과정 중에 부산물로 전혀 새로운 돈이 될만한 물건을 새롭게 시장에 등장시키는 경우도 있었다.[7] 토머스 뉴커먼이 개발했으나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에 별로 쓰이지 않았던 증기기관을 효율적으로 개량하여 산업 혁명의 촉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와트도 과거에는 증기기관의 발명자로 잘못 알려져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사실대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8] 실제로 잡스 본인도 남의 기술을 모방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고 기술을 발명해서가 아니라 있던 기술을 어떻게 잇고 활용할지를 알았기 때문에 존경받는 사람이다.[9] 기존에 개발된 전구를 개량했지, 전구라는 물건을 발명하지는 않았다.[10] 에디슨의 축음기도 기존의 발명품을 개량한 것이기는 하나, 기존의 것은 소리를 기록할 수만 있었을 뿐, 재생할 수는 없었다. 즉, 축음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재생 능력을 에디슨이 최초로 구현했기에 발명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효율은 매우 떨어졌지만 표준시간 음반이 상용화되기 전까진 그의 축음기가 꾸준히 쓰였다.[11] 실제로 발명의 개념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데 국한되지 않고 기존에 있던 발명품을 개선 및 개량하는 것도 포함한다.[12] 에디슨은 스완의 아이디어를 제멋대로 가져다 썼으나 그것만으로는 상용화하지 못해서 도용한 아이디어에 자신이 직접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아이디어를 짜서 살을 붙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빼앗긴 피해자조차 본인도 못한 상용화를 보란 듯이 성공한 에디슨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13] 현재도 단순히 아이디어를 도용한 것만 가지고 표절로 여기지는 않는다.[14] 현재도 이루어지는 일이다. 최근 미국에서도 선발명주의의 단점과 선출원주의의 확실한 장점을 인지하여 변경되었다. 다만, 미국은 최근에서야 선출원주의로 변경시켰으나, 에디슨이 살고 있는 당시에는 선 발명 우선주의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다. 늦게 출원해도 연구 노트라든지 녹취록, 녹음 등 먼저 발명하였다는 증거가 있으면 인정된다. 선 출원은 꼼짝없지만, 개발 증거는 조작되고 훼손될 수 있다. 상기한 에디슨이 연구 노트를 찢어버린 게 그런 짓이다. 비슷한 분야인 디자인 권리 쪽에서도 기업의 횡포는 여전하다.[15] 대시(Dash)는 아버지 에디슨이 붙여준 별명으로 모스 부호의 점(도트)과 선(대시)에서 따온 이름이다. 도트는 딸 매리언(Marion)의 별명.[16]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캐나다 드라마 머독 미스터리 시즌8 8화에 나온다.[17] 성을 갈아치워 버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18] "Edison in his Laboratory". Harper's Monthly 165 (987): 406.#[19] 에디슨은 1927년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 저는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1932년 2월 21일), "Edison claimed authorship of this statement in a 1927 letter: "it is quite true I once made the statement that genius is one percent inspiration and 99 percent perspiration, and I am still of the same opinion". (1932-02-21) "Professor gets Many Autographs: Edison, Other Great Men Respond". Argus Leader: 18.#[20] "Genius is 1 per cent. inspiration and 99 per cent. perspiration."#[21] "Two per cent. is genius, and 98 per cent. is hard work."#[22] Statement in a press conference (1929), as quoted in Uncommon Friends: Life with Thomas Edison, Henry Ford, Harvey Firestone, Alexis Carrel & Charles Lindbergh (1987) by James D. Newton, p. 24.#[23] 애초에 이 루머는 에디슨의 인생관과 많이 다르다. 1932년 기사의 앞부분이다. "백 번째에 가서야—결국 마지막 순간에—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바로 그것이 나타나더군요. 급하게 무언가를 찾아내면 그게 진짜가 맞는지 의심부터 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꼼꼼하게 다시 검토해 보면, 대개는 잘못 찾은 걸로 판명 나곤 하죠. 이런 걸 두고 '불운'이라 부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는데, 전 이라는 걸 믿지 않아요. 좋은 운이든 나쁜 운이든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가지 시도해 보고는 포기하죠. 저는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그게 운이 좋다는 소리를 듣는 나랑,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유일한 차이점입니다." 에디슨은 100번을 헛수고를 하더라도, 100번의 끝에 원하는 걸 찾은 줄 알았던 게 사실 틀렸어도, 운이 없었다고 자조하지않고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했다고 말했다.[51][24] 베끼거나 번역하거나 퇴고한 글에 대한 본래의 글.#[25] 따라서 "에디슨 : 전에 나는 신문 취재에서 그 기자에게 '1퍼센트의 영감이 없으면 99퍼센트의 노력은 소용이 없다'고 말한 거였소. 그런데 신문에는 1퍼센트의 영감에 대한 중요성이 아니라 99퍼센트의 노력에 중점을 두고, 나를 노력하는 사람으로 미화하여 진실을 잘못 전한 것이오. 정말이지 못말리는 착각이지요."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잘못 알려져 있다고 해서 잘못 알려진 것이 아니고, 오해라고 써 있다고 해서 오해인 것도 아니고, 진실이라고 해서 진실인 건 아닌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2011년)에선 이 말의 출처가 싸이월드인데, 그 싸이월드는 '자서전'에 자세히 써있다는 것이다. 에디슨은 자서전을 쓴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남들에게 없는 1%가 저에겐 있었습니다." 추가 버전 등도 다 사실이 아니다. 뒤에 부분을 요약하면 에디슨은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고, 천재성만 부각되어 일을 쉽게 한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이 말을 한 거였다. 그러니 정반대로 에디슨이 기피하던 모습으로 가짜 문장을 만든 것이다.[26] 그리고 상식으로 시작하는 한 뼘 인문학(2015년)라는 책에서 에디슨이 실제로 그랬다고 하는데, 출처부터 짬뽕되있다. '1932년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는데 정작 인용한 부분 1929년의 기자회견의 문장이다. 이건 어록의 비고에 작성되있듯 1987년의 책에서 1929년도의 기자회견을 인용한 문장이다. 그리고 82살 생일 때 메모를 남기면서 '최초 영감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신통치 않다', '에너지 낭비란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그 어떠한 곳에서도 비슷한 원문을 찾을 수가 없다. 싸이월드 글의 자서전에서 그랬다고 하는 것과 논조는 비슷하다. '생전에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고 큰따옴표로 그렇게 인용해서 말할 뿐 근거가 전혀 없다. 에디슨의 권위를 빌려 작가가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상상해서 쓴 것 같은데 사실 굉장히 무책임한 행동이다. 밑에 출처와 함께 1932년의 진짜 기사와 생전에 했던 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도 어느정도 요약하면 생전에 주된 화두는 영감이 아니었고 '천재VS노력'이었다. 요즘의 '재능VS노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감에 대한 기록이 적다. 노력가였던 에디슨은 천재성에 대한 것을 반박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99%의 노력을 언급했던 것 뿐이다. 천재를 노력, 끈기, 상식으로 규정한 적도 있는데 보면 영감은 빠져있다. 에디슨은 애초에 영감도 노력에서 온다고 말했다.[27] 1910년 발매#, 2006년 전자책 발매#[28] 따라서 영감에 대한 기록이 적다. 하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천재를 명시한 글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이 있다. '일반적인 관념과 달리 현대의 위대한 발명품들은 갑작스러운 영감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발명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서 최종적인 발전은 종종 눈에 띄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다.' 물론, 보다시피 이건 작가가 에디슨의 업적을 칭송하는 글이라서 에디슨이 남긴 직접적인 발언은 없다.[52][29] 누군가 구태여 거듭 반박하면 더 이상 노력을 강조하지 않고 논박을 회피했지만, 천재에 대해 묻는다면 계속 나와 있듯 항상 비슷한 답변만 하였다.[53][30] '천재(genius)는 천재(genius)로 이루어진다'로 번역되면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재능(talent)으로 번역되었다. 사전에 따라 천재(genius)가 재능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땀(perspiration)은 노력으로 의역되있다. 그런데 이것도 비슷하게 '노력(perspiration)은 노력(hard work)으로 이루어진다'라고 하면 부자연스러워서 상황에 따라 노력(hard work)이 의역되고 있다. 그래서 몇 단어는 최소한의 확인을 위해 영어가 병기되어 있는데, 이런 부분이 크게 신경 쓰인다면 작성된 원문으로 전체를 파악하면 된다.[31] 요즘 식으로 따지면 '아이디어는 쉽다, 실행이 전부다(Ideas are easy, Execution is everything)'같은 흔한 자기계발서 격언을 말을 한 것이다. 생각만 하지말고 행동으로 옮기라는 정석적인 말에 의미부여를 반대로 해서 영감을 더 중요시했다는 루머가 퍼졌다.[32] "네, 맞습니다. 대부분은 노력입니다."[33] perspiration = '땀'#[34] hard work = '노력', '힘든 일'#[35] 왜냐하면 이 루머를 조사하기 위해 많은 자료확인하면, 당시 사람들도 '나도 똑같이 노력하는데 안된다', '나도 그만한 자격이 있는데 당신이 천재인거다', '선생님이 겸손하신거다'같은 취지의 말을 하는 걸 한두 군데서 확인할 수 있다. 작성된 출처에 전체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대중의 환상에 맞게 자연스럽게 계속 와전되는 것일 수 있다. 에디슨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자기 몫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는 드라마틱한 서사가 더 듣기도 좋다. 다만 확실하게 해두면 에디슨 본인은 그런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위의 실제 기록처럼 누가 그런 말을 해도 철저하게 노력을 강조하였다. 현대로 따지면 일론 머스크처럼 일 중독자였고 엄청나게 많은 업무량이 있었다. 4시간, 5시간 자고 쪽잠 잤다는 이야기는 시몬스 침대 광고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1932년 기사에 실제로 그런 기록이 있다. 그래서 '심리학(Psychology)'과 '생리학(Physiology)'엔 거리가 멀어보인다는 코멘트가 있다. 더 나아가 은 조금만 자도 되는 습관이라고 설득하는 부분까지 있다.[36] 따라서 누구보다 노력왕이었던 에디슨은 자신에 노력의 성과를 알아주지 않고 '그냥 천재라서 짠하고 많은 일을 한 거다'같은 이미지가 생긴 게 싫어서 했던 말이다.[54] 현재의 '재능vs노력'처럼 '천재vs노력'이 논쟁거리였다. 누군가 자신에게 노력보다 천재성을 더 강조하면 '위대한 성공을 ‘천재성(genius)’ 덕분으로 돌리는 생각은 언제나 에디슨에 의해 부정되어 왔으며, 이는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말 그대로 99%의 노력을 강조해서 반박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책이나 기사의 맥락을 보면 1%의 영감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곧이 곧대로 99%의 노력으로 '천재성이 중요한 게 아니고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구나'로 받아들이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출처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 말을 들어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거나 겸손한 것이라며 특별하게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단어는 달라졌으나 맥락은 비슷하게 영감을 중심으로 다시 왜곡되기 시작했다. 대중은 끊임없이 어떤 특별함에 무게를 두고 에디슨에게 덧씌우고 싶어한다. 그래도 '천재성이 더 중요하다', '1%의 영감이 더 중요하다' 과거와 비슷한 반응인 걸 보면 딱히 부자연스러운 생각은 아니긴 할 것이다. 에디슨의 말에 어느 부분에 가치를 크게 두던 그건 자기 자유다. 단, 에디슨은 철저하게 노력가로서 이 명언을 남겼다.[37] 진보당은 공화당에서 나온 당이다. 루스벨트는 진성 공화당원으로 거기서 대통령까지 지냈다. 진보당도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맘에 안들어 자기 사람들을 이끌고 나와서 생긴 당이다. 에디슨은 루스벨트의 연설을 레코드로 만들어 직접 판매하기도 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문서에 1912년 진보당 후보 출마 당시의 연설 음성이 남아있다.[38] 에디슨의 철자는 Edison이나, 출생 신고 당시 i를 빼먹어서 Edson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39] 현재는 KG모빌리티가 에디슨모터스를 인수하여 KGM커머셜로 사명이 변경되었으며 KG그룹 계열사로 편입되었다.[40] 90년대 인기리에 방영된 테마게임(MBC) 같은 TV프로그램.[41] 下下편 마지막에는 레프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엮였다.[S] [43] Diary entry, as quoted in Defending and Parenting Children Who Learn Differently : Lessons from Edison's Mother (2007) by Scott Teel, p. 12[44] 말년에 오컬트에 심취한 사실에 영향을 받은 캐릭터로 보인다.[45] 그러면서 나오는 말이 "검색해봐, 에디슨은 재수없었다!"다.[46] 촛불을 켜던 이웃이 환하게 빛나는 에디슨의 집을 보며 "이봐 에디슨! 그놈의 전구 좀 나눠 쓰지?"라고 화를 내자, 에디슨은 "꼬우면 직접 발명하든가!"라고 받아치곤 언쟁을 한다.[47] 그러나 이부분은 에디슨이 마음을 바꿔서 니콜라 테슬라를 한국에 초빙하는데 실패한다. 아직 테슬라랑 본격적으로 다투기는 커녕 테슬라가 막 미국으로 건너온 시점이고 주인공도 조선의 기반환경으로는 테슬라를 받아들여도 쓸모 없을 것라고 생각해 미련 없이 포기한다. 나중에 한국이 강대국이 되어도 너무 괴짜라서 미국에 계속 남아 있었다.[48] 한국판에서는 '에디슨이 반세기 뒤에 만약 다시 태어나게 되면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야'.[49] #[50] 작중에서 1899년 시점의 에디슨을 데려왔는데 이 시점에서 에디슨은 이미 미나 밀러와 결혼을 한 상태이니 바람을 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