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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James Paul McCartney (제임스 폴 매카트니) | ||
출생 | 1942년 6월 18일 ([age(1942-06-18)]세) | ||
영국 잉글랜드 랭커셔 리버풀 (現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리버풀) | |||
거주지 | 영국 잉글랜드 이스트서식스 주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맨해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프로듀서, 사업가, 배우,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 동화작가 | ||
소속 | 쿼리멘 (1957 ~ 1960) 비틀즈 (1960 ~ 1970) 윙스 (1971 ~ 1981) 무소속 (1981 ~ ) | ||
문장 | |||
ECCE COR MEUM[1]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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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부 짐 매카트니 (1902 ~ 1976) 모 메리 매카트니 (1909 ~ 1956)[2] | ||
형제자매 | 남동생 마이클 매카트니 | ||
배우자 | 린다 매카트니 (1969 ~ 1998, 사별) 헤더 밀스 (2002 ~ 2008, 이혼) 낸시 쉬벨 (2011 ~ ) | ||
자녀 | 슬하 1남 4녀 장녀 헤더 루이즈 매카트니 (1962 ~ )[3] 차녀 메리 애나 매카트니 (1969 ~ ) 삼녀 스텔라 니나 매카트니 (1971 ~ ) 장남 제임스 루이 매카트니 (1977 ~ ) 사녀 베아트리스 밀리 매카트니 (2003 ~ ) | ||
기타 혈족 | 친조부 조지프 매카트니 (1866 ~ 1942) 친조모 플로렌스 매카트니 (1874 ~ 1944) 외조부 오언 모힌 (1880 ~ 1975) 외조모 메리 모힌 (1877 ~ 1919) 친증조부 제임스 매카트니 (? ~ ?) 친증조모 엘리자베스 매카트니 (1844 ~ ?) 외증조부 폴 클레그 (1817 ~ 1877) 외증조모 제인 클레그 (1837 ~ ?)[4] | ||
작위 | 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5] | ||
학력 | 스톡튼 우드 로드 예비학교 (졸업)[6] 조지프 윌리엄스 초등학교 (졸업) 리버풀 인스티튜트 고등학교 (졸업)[7] 예일 대학교 (음악 / 명예 박사) | ||
혈통 | 아일랜드계 영국인 | ||
레이블 | |||
장르 | 록, 팝, 포크, 로큰롤, 일렉트로닉, 클래식, 아방가르드 음악 외 다수 | ||
악기 | 기타, 보컬, 베이스 기타, 건반 악기, 드럼[8] | ||
활동 기간 | 1957년 ~ 현재 | ||
재산 | $11억~[9] ~ $12억 8천만[10] | ||
종교 | 무종교 (무신론적 불가지론) | ||
링크 |
[clearfix]
1. 개요
비틀즈 내 포지션은 보컬리스트, 베이시스트, 피아니스트, 작곡가였다.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폴 매카트니/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3. 음악적 성향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멜로디 메이커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감미로운 멜로디 라인 위주의 곡을 주로 써 흔히 존 레논에 비해 대중성이 강한 곡을 많이 남겼다 평가된다. 한국 내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유명한 비틀즈의 곡 역시 대부분 폴 매카트니의 곡이다.[11]존 레논은 비틀즈 해체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법을 새롭게 연마해 나간 반면,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 때부터 완성된 자신만의 작법 스타일을 해체 이후에도 유지한 편이다. 많은 이들에게 대중 음악 역사상 최고의 작곡가 중 한 명이자 최고의 넘사벽 작곡가로 평가받는 폴 매카트니인데, 그 이유는 누가 들어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면서도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음악적 실험과 혁신 또한 지속적으로 추구했던 점에 있다.
역사상 최고 걸작으로도 꼽히는 '페퍼 상사'를 구상하고 컨셉을 주도한 것 역시 폴 매카트니이며,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대중적인 곡들만이 아닌 실험적인 곡들 또한 많이 만들었다.[12] 오히려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준 것만으로 보면 폴은 그가 손을 댄 음악 장르보다 안 댄 장르의 수를 세는 게 훨씬 빠를 정도로, 작곡 파트너십 레논-매카트니로 콤비를 이루었던 존 레논보다도 훨씬 다채로운 면모를 자랑한다. 그가 작곡한 'Helter Skelter'가 헤비메탈의 시초가 된 것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유행을 타는 능력도 탁월하여 1970년대에는 디스코를 시도하고, 1980년에 뉴 웨이브 테크노 음악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13] 음악적 스펙트럼은 비틀즈 멤버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광범위하다. 심지어 클래식 음반도 5여장 냈으며 Fireman이란 가명으로 일렉트로니카 음반 또한 3장 냈다. 물론 일반 앨범들에 비해서는 잘 안알려져 있기도 하고 평가 또한 해당 장르 평론가 사이에서는 범작 내지 평작 정도 평가를 받지만. 어쨌거나 폴 매카트니가 존 레논에 비해 음악적 시도나 실험 정신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다.[14]
존 레논은 비틀즈 활동 말기 들어서 폴이 대중적으로 만든 곡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음악적 재능을 소중히 여겼다. 이러한 존의 행동은 폴의 재능을 존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고 결국엔 다른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게 되어 츤데레적 성향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다. 'Here, There and Everywhere' 을 들으며 감탄에 잠기다가도 'Ob-La-Di, Ob-La-Da' 를 들으며 "이게 노래니?"하고 비웃는 츤데레 레논을 상상해보자.[15]
그러나 음악적인 면은 물론 정치, 철학적인 면에서도 큰 영향을 끼친 동시에 비극적인 이른 죽음으로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각인된 파트너 존 레논에 비해,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 이후 무려 50여년에 달하는 기나긴 솔로 시절의 활동 전체에 걸쳐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았으며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한 때이긴 해도 퇴물 취급까지 받는 등 여러모로 실제 업적이나 재능에 비해 크게 저평가를 당했다.[16]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오히려 폴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 그의 음악적 능력과 그 진가가 다시금 알려지고 있다. 사실 비틀즈 전성기 시절 평가는 폴>=존이었다가 레논 사후 존>=폴이 된 것이지만 시간이 더 흐른 후 폴=존이 됐다고 할 수도 있다. 그냥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한 당대의 위대한 작곡가들이다. 서로 다른 음악적 색채와 스타일, 그리고 음악관을 지녔을 뿐.
그는 비틀즈 뿐만아니라 솔로 시절에도 수많은 히트곡들을 써냈다. 윙스 시절의 Give Ireland Back to the Irish, Live and Let Die[17], 'Hi, Hi, Hi', 'C Moon'[18] 'Band on the Run', 'Jet', 'Listen to What the Man Said', 'Silly Love Songs', 'With a Little Luck', 'Mull of Kintyre', 솔로 시기의 Maybe I'm Amazed, Uncle Albert/Admiral Halsey, Coming Up, Take It Away, Ebony and Ivory, Pipes of Peace, Say Say Say, No More Lonely Nights, Hope Of Deliverance 등이 대표적. 70년대에 엘튼 존 다음으로 가장 많이 빌보드 핫 100 1위를 기록한 게 솔로 시절의 폴 매카트니이다.[19] 또한 윙스 시절을 제외하더라도 'Maybe I'm Amazed', 'Uncle Albert/Admiral Halsey', 'Coming Up', 'Here Today', 'Pipes of Peace', 'No More Lonely Nights', 'Once Upon a Long Ago' 등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히트곡을 작곡한 것이 바로 폴 매카트니. 스티비 원더와 듀엣으로 부른 'Ebony and Ivory' 를 히트시켰으며 마이클 잭슨과 듀엣으로 부른 'Say Say Say', 'The Girl is Mine' 도 유명하다.
흔히 폴 매카트니 솔로 커리어의 정점은 윙스 시절에 만든 Band on the Run 앨범이라는 게 중론. 'Jet', 'Band on the Run' 등 솔로 폴 매카트니의 최고 히트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음악적으로도 폴 매카트니의 멜로디 메이킹 실력이 유감없이 드러나 있는 앨범이다. 하지만 워낙에 방대한 디스코그래피를 자랑하는 솔로 시절의 폴인 만큼 팬,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어떤 앨범이 최고인가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20] 특히 최근 들어 크게 재평가받은 Ram을 비롯하여 McCartney, Tug of War, Flaming Pie, Driving Rain, New, McCartney III 등의 앨범 역시 흥행과는 별개로 폴 매카트니의 천재적인 음악성과 수십 년의 세월을 거치먼서도 변하지 않는 그의 멜로디 메이킹 능력이 유감없이 드러난 명반들.
3.1.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
기타 | 드럼 |
피아노 | 베이스 기타 |
프린스, 존 폴 존스, 브라이언 존스와 더불어 20세기를 상징하는 천재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중 한명이다. 베이스 부문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자랑하지만, 여러 악기를 다루며 이들을 적재적소에 완벽히 배치하는 작곡으로도 유명하다. 전문적으로 다루는 악기 수만 25개이며, 그 외에 다룰 줄 아는 악기를 세면 50~60개는 가볍게 넘기는 수준으로 많은 악기들을 다룬다. 이미 비틀즈 시절때부터 그는 10개 이상의 악기를 다뤄 비틀즈의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솔로 활동 기간에는 밴드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악기들을 배워서 혼자서 악기를 녹음하고 앨범을 제작했다.
일단 그는 베이시스트이지만, 기타, 드럼, 보컬, 피아노, 색소폰 실력도 상당히 출중하다. 그렇다고 베이시스트로서의 업적이 모자란 것도 아니어서, 폴 매카트니는 롤링 스톤 선정 50대 베이시스트에서 9위에 랭크되어있다. 비틀즈의 다른 멤버들처럼 테크닉적인 부분보다는 탄탄한 기본기가 더욱 두드러진다고 평가받는 베이시스트이며, 베이스 연주도 출중할 뿐만 아니라 베이스 라인을 매우 잘 짜기로 유명하다. 특히 그의 훌륭한 베이스 라인이 잘 드러난 것으로 유명한 곡은 비틀즈의 Rain, Come Together, Hey Bulldog, Paperback Writer, 솔로 시절의 Silly Love Songs, Goodnight Tonight 등이 있다.
베이스 뿐만 아니라 기타 실력도 대단한데 존 레논에게 기타를 가르쳐줬을 정도였다. 비틀즈 시절 리드 기타였던 조지 해리슨 다음으로 리드 기타를 많이 맡았으며 Drive My Car, And Your Bird Can Sing, Taxman,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등의 노래에서 훌륭한 기타 실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너바나의 재결성 공연[21]에서 커트 코베인을 대신하여 기타를 맡았을 정도다.[22]
기타류 악기뿐만 아니라 피아노 실력도 상당하다. Hey Jude,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 Maybe I'm Amazed, Red Rose Speedway Medley, Nineteen Hundred And Eighty Five와 같은 피아노가 중심이 되는 폴 매카트니의 곡들을 들어보자.
그 외에도 리코더[23], 색소폰, 만돌린[24], 신디사이저[25], 하모니카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악기를 다룰줄 안다. 그가 밴드를 같이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단지 손이 모자란것 때문이다. McCartney III에서는 7번 트랙 Slidin'을 제외하고 모든 악기를 그가 혼자서 다 녹음했다. Slidin'에서 드럼과 일렉 기타 세션을 부른 것은, 단지 동일 악기가 2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룰 줄 아는 악기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물론 여기 있는 게 다가 아니고, 실제로 다룰 줄 아는 악기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 보컬
- 하모니카
- 리코더
- 피아노
- 일렉트릭 오르간
- 하몬드 오르간
- 하프시코드
- 신디사이저
- 콩가
- 드럼
- 퍼커션
- 멜로트론
- 밴조
- 베이스 기타[26]
- 시타르
- 우쿨렐레
- 어쿠스틱 기타
- 일렉트릭 기타[27]
- 클래식 기타
- 스페인 기타
- 랩 스틸 기타
- 시가 박스 기타
- 하프
- 바이올린
- 콘트라베이스
- 보주키[28]
- 스피넷
- 클라비코드
- 일렉트릭 피아노
- 팀파니
- 탬버린
- 마라카스
- 카우벨
- 비브라폰
- 오카리나
- 하모니움
3.2. 보컬리스트
Yesterday | Blackbird |
I Will | Helter Skelter |
Oh! Darling | Golden Slumbers |
대중음악사 전체를 통틀어도 최정상급인 작곡가로서의 능력이 너무나도 독보적이라 언급이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평론가들에게 같은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과 함께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보컬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롤링 스톤 선정 가장 위대한 가수 11위, NME 선정 가장 위대한 가수 8위에 선정된 적이 있을 정도. 솔로 아티스트인 기간보다는 밴드에 몸 담았을 때의 커리어와 영향력이 훨씬 강했고, 가창력이 좀 더 두드러져 보이기 쉬운 소울이나 R&B 아티스트가 아님에도 저런 순위를 기록한 것만 봐도 그의 보컬리스트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얼추 감이 잡힐 것이다. 보컬 겸임하기 어려운 베이시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비틀즈 시절 98곡에서 리드보컬을 맡았으며, 존 레논과 더불어 비틀즈의 양대 보컬로 꼽힌다.[30] 존이 상당히 개성 넘치고 존재감 있는 보컬이라면 폴은 기술적으로 훌륭하고 정석적인 보컬이라 할 수 있으며, 존의 보컬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곡에 투영시켜 청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면, 폴의 보컬은 흔들리지 않는 음정을 유지하면서도 각종 추임새로 포인트를 주고, 박자를 자유자재로 뒤흔들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곡의 분위기를 매우 노련하게 환기시키는 동시에 저음이면 저음, 고음이면 고음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 내어 듣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곡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뛰어난 대중성을 지니고 있다.
스튜디오 녹음 뿐만 아니라 라이브 실력도 대단히 뛰어나서, 비틀즈 이후 윙즈 시절, 윙스 해체 이후에는 솔로로 전세계를 돌며 수없이 많은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특히 한 번의 공연에서 앙코르 포함 서른 개가 넘을 정도로 많은 곡을 쉬지 않고 부르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무대를 망친 적이 없었으니 그의 보컬리스트로서의 실력과 목 관리 능력에 대해서는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폴 매카트니의 음역대를 정리한 영상 |
그의 음색은 기본적으로 Yesterday, For No One, Let it Be, Here Today 등에서 들을 수 있는 담백한 미성이지만 곡의 스타일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Here, There and Everywhere, I Will 등에서는 굉장히 곱고 여린 음색을 보여주고, Helter Skelter나 Oh! Darling, Rock Show, Beware My Love, Getting Closer, Hell to Pay 등과 같은 하드 록 넘버에서는 그에 걸맞게 매우 허스키하고 마초스러운 강렬한 보컬을 구사한다. Blackbird, Little Willow 등의 잔잔한 포크송과 Kisses on the Bottom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감미로운 스탠다드 팝/재즈, No More Lonely Nights, Once Upon a Long Ago, Motor of Love, Winedark Open Sea, Beautiful Night 등의 감성적인 발라드는 물론, Silly Love Songs, Coming Up에서 선보인 펑크에 심지어 All Together Now와 같은 동요, Temporary Secretary로 대표되는 전자음 가득한 테크노까지 음역대뿐만 아니라 소화할 수 있는 음악의 장르도 폭이 매우 넓다.
4. 평가
나는 매카트니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그는 내가 경외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
또한, 1990년 4월 브라질 단독 콘서트에 184,000명의 관중이 참석하면서 당대 세계 기록을 경신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이 기록은 일본의 록 밴드 GLAY가 200,000명의 관중을 몰면서 최고 기록을 내주었지만, 2024년 현재까지 유일한 2위 기록이다.
또한, UK 차트에서 유일하게 솔로[34], 듀엣[35], 트리오[36], 콰르텟[37], 퀸텟[38], 그리고 자선 밴드[39]의 모임으로 1위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빌보드 연말 차트에서 총 3곡을 1위에 올려 빌보드 역사상 최다 연말 1위 곡을 올린 아티스트이기도 하다.[40] 그리고 빌보드 핫 100에서 솔로 경력과 비틀즈 경력의 빌보드 1위를 다 합치면 총 32개의 1위를 배출해냈다.[41]
또 2015년 롤링 스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송라이터에 폴 매카트니를 2위로 꼽았다.[42]
1965년에는 비틀즈의 멤버로서 대영제국 훈장 5등급(MBE)을, 1997년 3월 11일에는 단독으로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으며 1992년에 음악계의 노벨상이라는 폴라음악상을 역사상 최초로 수상했다. 1987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 199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솔로 아티스트로서 입성했다.[43]
2010년에 케네디 센터 공로상을 수상했고, 동일한 해 미국 의회 도서관이 주관하는 거슈윈 대중음악상을 받았다.# 2012년 프랑스 최고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받았고,# 2012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헌정되었다.[44] 2017년에는 영국 1.5등급 훈장에 해당하는 컴패니언 오브 아너(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훈장을 받았다.
5. 대인관계
대중음악계의 마당발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음악가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다.[45] 이 정도로 음악계에 관련 인물이 많은 인물은 데이비드 보위 정도 밖에 안된다. 그는 로버트 플랜트 같은 메탈 아티스트부터 에드 시런과 같은 현대 팝 가수는 물론이고 카니예 웨스트 같은 힙합 가수들과도 친하다. 기본적으로 성격이 매우 밝고 사교적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음악가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5.1. 존 레논
여기서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개인적인 관계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음악적인 관계에 대한 내용은 레논-매카트니 문서 참고하십시오.
왼쪽이 존 레논, 오른쪽이 폴 매카트니.[46] |
존을 잃었을 때, 정말 끝났다는 걸 알았다.
폴과 존은 서로 만나기 이전에는 그냥 이층버스에서 조금 자주보던 사이였을 뿐이었지만, 1957년 둘이 음악적인 관계로 만나게 된 이후, 폴 매카트니의 사교적인 성격으로 둘은 금방 친구가 되었다. 생일 선물로 폴이 존에게 큼지막한 햄버거를 선물해주기도 하고, 존 레논이 받은 용돈으로 둘이 프랑스 파리로 단둘이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등, 10대 시절 둘의 관계는 매우 친한 친구 관계였다. 이후 조지 해리슨이 폴의 소개로 영입되고, 1962년 링고 스타가 밴드에 들어오면서 비틀즈가 데뷔한 이후에도 둘은 같이 노래를 만들면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당시 인터뷰를 보고 있으면 인터뷰 도중에서 존이 폴에게 장난을 치고, 폴과 존이 서로를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로 꼽는 등 친밀한 관계가 지속되었다. 그런 폴과 존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페퍼 상사 세션 이후, 정확하게는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사후였다. 엡스타인의 사후 폴이 밴드를 주도하기 시작했고, 음악적인 취향을 일방적으로 존 레논에게 강요하면서 사이가 소원해지게 된다. 1968년에는 존 레논이 오노 요코와 눈이 맞았고, 요코를 상의 없이 스튜디오에 들이면서 폴도 존에게 서운한 감정이 쌓이게 되었다.
또 둘의 음악적인 성향이 점차 분화되어가고 있었던것 역시 둘의 관계 악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둘은 19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전형적인 로큰롤을 추구하였지만, 라비 샹카르, 밥 딜런 등 여러 아티스트들을 만나면서 둘의 음악적인 성향이 깊어짐에 따라 점차적으로 자의식이 확립되며 음악적 취향도 달라지게 되었다. 폴 매카트니는 신나고 경쾌한 주류 음악들을 썼지만, 반대로 존 레논은 무겁고 사회 비판적인 색채가 짙은 비주류 곡들을 썼다. 결국 Revolver 세션 이후, 본격적으로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곡을 따로 써서 명의만 레논-매카트니로 발표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페퍼 상사 음반에서는 폴 매카트니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인해 존이 자신의 곡을 단 세곡밖에 수록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고, 이후 폴과 음악적인 성향에서 지속적인 갈등을 겪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이가 전과 달라진 것이다.
화이트 앨범 세션부터, 이들의 사이는 더욱 악화된다. 폴이 무단으로 존이 참여하고 싶었던 곡을 존이 없는 사이 후딱 녹음해버리는 일을 일으키면서 존의 분노를 일으킨 사건도 있었다. 존 역시 폴 매카트니가 만든 곡을 할머니나 들을 똥음악이라고 마구 비난하면서 폴도 존에게 지쳐갔다. 그래도 이 때까지는 서로 마주보며 장난도 치고 진지하게 곡 작업도 같이 하는 등 소원해졌던 관계가 다시 개선될 여지를 보였다. 비틀즈: 겟 백 다큐멘터리만 보더라도 이 둘의 관계가 언론의 호들갑만큼 나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970년부터, 이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어 보일 정도로 틀어졌다. 매니저 고용 문제로 폴과 존은 다투는 일이 늘었고, 설상가상 폴이 예고 없이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하며 이전에 비해 무척이나 악화된다. 폴은 솔로앨범 Ram에서 존을 직간접적으로 디스했고, 배신감을 느낀 존은 How Do You Sleep?이라는 곡으로 폴을 향해 직설적인 비난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같은 앨범에 수록된 Jealous Guy에서 존은 내재되어 있었던 솔직한 미안함을 고백한다. 폴은 존이 화해를 위한 손길을 뻗었다고 생각했으며, 결국 이 둘의 다툼은 칼로 물 베기였던 것인지, 금세 화해 무드가 조성된다. 폴 매카트니는 Ram의 차기작인 Wild Life에 마찬가지로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Dear Friend라는 곡을 수록하면서 1972년경부터는 관계를 회복했다고 한다.[47] 또 존 레논이나 폴 매카트니도 내심 서로의 음악을 들으면서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존 레논의 유작인 Double Fantasy는 폴 매카트니의 싱글인 Coming Up의 상업적인 성공에 존이 자극받아 만든 앨범이었다. 1974년부터는 둘은 서로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고, 자주 서로의 집에 놀러가는 등 친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말년에는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친분을 상당히 회복했지만, 존 레논이 1980년 암살되면서 폴과 존의 짧고도 긴 관계가 끝나게 되었다. 존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자 폴은 멍하게 있다가, 뉴스에서 존 레논의 암살 소식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는 비로소 존 레논의 죽음을 실감하여 하루 종일 펑펑 울었다고 한다.
폴은 1982년, 존 레논을 추모하는 추모곡 Here Today를 작곡했고, 지금까지도 라이브 공연에서 주요한 레퍼토리로 쓰고 있다.
존과 폴의 관계가 친밀하면서도 츤데레같아 보였던 것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한 논문 및 저서가 상당수 존재한다. 흥미로운 가설은 존 레논이 어릴적 부모님을 잃으면서[48] 부성애나 모성애가 없이 자라나 애정 결핍을 겪었는데, 이때 폴 매카트니를 아버지로 여기면서 상당히 의지했다는 것이다.[49] 폴 매카트니에 대한 소유욕과 의지가 겹쳐지게 되니 폴의 모습에 실망도 하고, 또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그토록 친밀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 가설의 내용이다. 비록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나,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존과 폴의 관계가 가까웠던 것 역시 사실이다.
"Good night, Paul" 비틀즈: 겟 백 中 |
5.2. 타 비틀즈 멤버
- 조지 해리슨
둘은 리버풀 인스티튜트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단 학교 친구 사이였고, 존 레논에게 조지 해리슨을 추천해준 것 역시 폴이었다. 폴과 조지는 음악적으로도 친밀한 관계였다. 조지 해리슨이 어려운 기타 리프를 틀리면 폴 매카트니가 짜증을 내면서 완벽하게 기타를 연주하곤 해 조지가 어릴적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그래도 비틀즈 초반기에는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조지와 폴은 비틀즈 초반기에는 친구 사이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비틀즈 중반기 들어서 폴의 독재 체제가 강화되면서 폴과 조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무엇보다 발랄한 록, 팝 송을 선호했던 폴과 시타르를 이용한 진중한 곡을 쓰곤 했던 조지의 음악적인 성향이 너무 틀어진 것이 큰 원인이 되었다. 비틀즈 해체 이후 조지가 대놓고 비틀즈를 '3인조 밴드'라고 할 정도로 조지와 폴의 관계는 돌이킬수 없이 나빠졌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경 존과 마찬가지로 조지와 폴의 관계가 회복되었고,[50] 음악 활동을 같이 하는 등 예전과 같이 좋은 관계를 회복했다. 조지가 죽을때 폴이 LA에 산 집에서 요양하다가 죽었을 정도로 앤솔로지 세션 이후 조지와 폴의 관계는 좋아졌다.
- 링고 스타
링고와 폴 둘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인물인만큼, 둘 사이에서 특별한 갈등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비틀즈 후반기에 폴이 링고의 드럼 실력을 지적하자 링고가 화가나 3주간 밴드를 탈퇴하는 소동을 일으키는 등 소소한 갈등이 없던건 아니다. 또 폴 매카트니가 비틀즈 해체 직전에는 날이 곤두서있어서 링고에게 폭언을 퍼붓는 등 일시적으로 사이가 나빠지기는 했고, 이에 화가난 링고가 존 레논, 에릭 클랩튼 등이 이끌던 플라스틱 오노 밴드에 가입해 폴 매카트니를 비난하는 곡들을 쓰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조지 마틴에게 비틀즈에서 가장 먼저 탈퇴하고 싶다고 말한 사람도 링고였다고 한다. 그러나 폴과 특별한 갈등을 겪고있지 않던 링고는 중간에 폴을 향한 존의 악감정이 너무 지나치다면서 폴을 비난하는 곡을 쓰는 것을 중단했고, 이후로는 폴과 쭉 친구 사이로 잘 지내고 있다. 둘은 종종 만나서 서로한테 장난도 치고 콘서트도 여는 등 사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5.3. 기타 음악가
- 지미 헨드릭스
그가 생전이었을 때는 나이가 같기도 하고, 음악적인 성향 역시 비슷해 서로 친한 사이였다. 지미 헨드릭스가 본격적으로 데뷔하기 이전 그의 떡잎을 알아보고 그가 미국 콘서트에 나가 인지도를 키울 수 있게 도와줬고, 지미에게 많은 조언을 해줘 지미 헨드릭스가 성공한 음악가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지미 헨드릭스가 인지도를 키운 콘서트인 몬터레이 페스티벌 역시 폴 매카트니의 추천으로 지미가 공연장에 나간 것이었다. 만약 폴이 아니었다면, 지미 헨드릭스는 그저 그런 기타리스트로서 생을 마감하고 일렉트릭 기타 연주법이나 하드 록의 역사 역시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지미 헨드릭스는 그 보답으로 1967년 페퍼 상사 음반의 커버 버전을 헤비한 버전으로 커버해 폴 매카트니를 깜짝 놀라게한 적이 있다. 훗날 그가 사망했을 때 상당히 애석해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 롤링 스톤스(믹 재거, 키스 리처즈)
1960년대부터 롤링 스톤스에게 곡을 써주던 친한 사이였고, 여전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믹 재거가 시원하게 롤링 스톤즈는 비틀즈에게 비교 대상이 안된다고 한 적도 있었다. 1970년대에 비틀즈는 이 세상에 없었고 롤링 스톤즈만이 독주 체제를 이어나갔기 때문에 운 좋게 음악적인 성취도에서 비교가 된다는 것일 뿐이지 비틀즈 자체는 전혀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폴 매카트니 역시 롤링 스톤즈를 좋아하는 밴드로 꼽은 적이 있다. 다만 폴이 린다와 결혼하자 믹 재거가 "그 여자는 나랑 함께 뒹굴던 그루피였는데 도대체 어디가 맞아서 결혼했냐."라는 매우 무례한 발언을 했다가 믹 재거와 폴 매카트니와 사이가 나빠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화해했다고 한다. 키스 리처즈와는 상당히 친한 사이로 지금도 서로 크리스마스 선물도 주고 받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폴 매카트니가 롤링 스톤스의 신보 작업을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 더 후(피트 타운젠드, 로저 달트리)
캄푸치아 자선 콘서트 당시 더 후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젠드가 만취 상태로 기타를 연주하면서 공연을 망친 것 때문에 폴 매카트니의 분노를 불러온 적이 있다. 피트 타운젠드는 술을 마구 퍼마신 상태로 코드조차 다 틀린 채 곡을 연주했고 "캄푸치아에서 태어나지 않은게 다행 아니냐"라는 말까지 해 화가난 폴이 피트에게 "고마워요"라고 한 뒤, 피트 타운젠드를 멍청이라고 대놓고 욕한 촌극까지 벌어졌다. 그래도 화해했는지 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 폴이 Let It Be를 부를때 피트가 백업 보컬을 맡기도 했다. 로저 달트리에게는 그의 솔로 앨범 'One Of The Boys' 수록곡 'Giddy'를 작곡해주기도 했는데, 서로 성격은 잘 안 맞았는지 선데이 미러 인터뷰에서 40년동안 알고 지냈지만 여전히 폴을 잘 모르겠다고 밝히며 폴의 전 부인 헤더 밀스를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인물 중 가장 차가운 사람이라고 평했다.
- 핑크 플로이드
폴은 핑크 플로이드의 데뷔 초반기때부터 그들의 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핑크 플로이드의 멤버들도 초창기부터 모두 폴과 비틀즈의 팬이었다. 후일 로저 워터스가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제작 도중 그에게 인터뷰를 제안한 적이 있었지만, 다소 어두운 분위기였던 질문에 폴 매카트니가 눈치 파악을 못하고 원래 성격대로 낙천적이고 웃기게 답변을 해 로저 워터스가 짜증이 나서 폴 매카트니의 인터뷰를 통째로 잘라버린채로 앨범을 발매해 버렸다. 훗날 폴 매카트니가 이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폴 매카트니가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들어보고 자신의 인터뷰 태도가 부적절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듯 하다. 그밖에도 폴이 주최한 파티에서 폴과 로저가 부부 동반으로 찍힌 사진이 있다. 데이비드 길모어는 폴 매카트니와 여러 번 음악적으로 교류하였으며[51], 사적으로도 아내인 린다 매카트니와 셋이서 레드 제플린의 콘서트를 보러 갈 정도로 친한 사이다.
- 마이클 잭슨
비틀즈의 팬이던 마이클 잭슨과 처음엔 선배와 후배 관계로 시작된 둘의 사이는 나이 차이를 초월하는 절친한 친구이자 공동작업자 관계로까지 발전되었으나 매카트니가 되찾아오려고 벼르던 비틀즈의 음악 저작권을 잭슨이 가져가는 바람에 둘간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잭슨은 70년대 후반에 직접 매카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직접 만날 기회를 갖기를 원했고 마이클을 직접 만난 후엔 매카트니도 마이클을 마음에 들어했다. 매카트니는 작곡[52]과 음악에 대한 많은 것들을 마이클에게 알려주었고, 마이클의 첫 성인 솔로 앨범인 Off the Wall에 "Girlfriend"란 곡을 만들어서 선물까지 해준다. 또 명곡 "Say Say Say" 듀엣을 하여 빌보드 핫 100 6주 1위, Thriller 앨범의 "The Girl is mine"으로 빌보드 핫 100 2위에 올려놓으며 같이 뮤직 비디오도 제작하는 등 한창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매카트니는 마이클보다 더 노래를 잘 부르려 하지 않았고 마이클은 매카트니보다 더 춤을 잘 추려고 하지 않는 등 상대방이 더 돋보일 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했다고.
이처럼 사이가 좋았으나, 후에 잭슨이 비틀즈의 판권을 사들이면서 사이가 서먹해졌다. 저작권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폴 매카트니는 판권을 사들이는 것은 훗날 굉장한 재산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한 일이고[53], 그 음악들의 사용 허가 권한을 가지고 적절한 곳에서만 쓰이도록 관리하는 일의 보람 등에 대해 설명해 줬다.[54] 아직 대중음악 판권의 중요성이 잘 인식되지 않았던 1960년대에 비틀즈 음악의 판권이 Northern Songs에 넘겨졌고 이것이 다시 ATV로 넘겨지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 했기 때문에 비틀즈 멤버들은 언젠가는 자기들의 음악 판권은 자기들이 되찾아 오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매카트니로부터 판권에 대한 얘기를 들은 잭슨은 판권에 상당한 호기심을 갖게 됐고 우선 시험삼아 70년대 다른 가수들의 히트곡 판권을 일부 사게 되었다. 이후 비틀즈의 음악 판권이 있는 ATV가 매물로 나오자 폴 매카트니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비틀즈 판권을 사려고 했고 잭슨 또한 경쟁에 참여했다. 당시 폴 매카트니는 오노 요코에게 1000만 달러씩 각자 부담해서 2000만 달러에 사자고 제안했으나 오노 요코는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자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구매를 포기하게 된다. 그 후 잭슨이 경쟁 끝에 4750만 달러에 판권을 사들인다.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권리를 꼭 되찾고 싶었던 매카트니는 이에 매우 실망하였고, 그것도 자기가 70년대 후반에 콜라보도 같이 했던 잭슨이 자기가 얘기해준 판권에 대한 조언에 따라 자기 음악의 판권을 사버렸다는 사실에 어이없어 했다. 오노 요코는 비틀즈 판권을 얻지 못한 것에 자기도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이클 잭슨처럼 비틀즈의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비틀즈 판권을 산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실제로 잭슨은 이제 자기의 소유가 된 비틀즈의 음악 사용권을 상당히 아꼈고, 비틀즈의 음악을 원칙적으로는 다른 매체 삽입곡으로 쓸 수 없도록 하는 엄격한 판권 관리 지침을 내렸다. 그래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틀즈의 노래는 온라인 서비스도 되지 않았고 영화에서조차 삽입곡으로 쓸 수 없었다. 즉 비틀즈 음악 판권을 거액을 들여서까지 산 게 단지 그걸로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면 여기저기 마구 쓸 수 있도록 허가해줘서 막대한 사용권 수입을 얻었을 텐데 전혀 그러지 않았던 걸 보면, 단지 상업적 목적을 위한 게 아니라 진정으로 비틀즈의 음악을 사랑하고 아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문제 때문에 둘의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마이클 잭슨 사망 후 폴 매카트니는 "그는 부드러운 영혼을 가진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젊은이였다. 나는 그와 함께 했던 경험을 나의 특권으로 여기고 있다." 라며 조의를 표했다. 후에도 그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 퀸
퀸 멤버들은 모두 비틀즈의 열렬한 팬이었고[55], 폴 역시 퀸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듯 하다. 특히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를 극찬했다.[56] 동시에, 브라이언 메이 역시 좋은 기타 연주자라는 말도 했다.
- 레드 제플린
레드 제플린 멤버들은 비틀즈를 존경했으며, 폴 매카트니 또한 최초로 헤비 메탈을 시도한 만큼 최초의 헤비 메탈 밴드인 레드 제플린의 팬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보컬인 로버트 플랜트와는 서로 존경하는 사이라고 하며, 로버트 플랜트도 사교적인 성격인 만큼 사적으로 친한 것으로 추측된다.[57] 지미 페이지와는 과거 공식 석상에서 몇 차례 마주친 적이 있으며 사진으로도 남아 있다.
- 비 지스
비 지스는 활동 초창기부터 비틀즈의 노래 Please Please Me, Ticket To Ride 등을 커버하며 존경을 표하던 사이였고 인기 절정에 오른 70년대 후반에는 폴과 교우관계가 짙어졌다. 2003년 모리스 깁이 사망했을 때, 폴은 로빈 깁과 비 지스의 노래 Too Much Heaven을 듀엣을 녹음하기도 했고 배리 깁과는 SNL 출연 등을 통해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배리 깁은 동생을 모두 잃은 그를 폴이 위로해줬다고 밝혔다. 앤디 깁을 포함한 깁 4형제 역시 위의 레드 제플린처럼 공식 석상에서 함께한 사진들이 다수 남아있다.
- 엘비스 코스텔로
1980년대 후반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매니저의 권유로 코스텔로와 작곡 파트너십을 가졌다. 서섹스 주에 있는 매카트니의 개인 농장에서 세션이 이루어졌고 결과물은 각자의 솔로앨범에 수록되어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 폴은 훗날 인터뷰에서 존과 같이 작곡했던 시절이 떠올랐다고 말했을 정도로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고 했다.
- 딥 퍼플
많은 교류가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나, 조지 해리슨의 소개로 Run Devil Run 앨범에 이안 페이스가 드럼으로 참여했다.[58] 이후 캐번 클럽 라이브에서도 앨범에 참여한 데이비드 길모어와 함께 멤버로 참여하여 연주하기도 했다.
6. 음반 목록
자세한 내용은 폴 매카트니/음반 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6.1. 빌보드 200 1위
- McCartney (1970)
- Red Rose Speedway (1973)
- Band on the Run (1973)
- Venus and Mars (1975)
- Wings at the Speed of Sound (1976)
- Wings over America (1976)
- Tug of War (1982)
- Egypt Station (2018)
6.2. UK 오피셜 차트 1위
- Ram (1971)
- Band on the Run (1973)
- Venus and Mars (1975)
- McCartney II (1980)
- Tug of War (1982)
- Give My Regards to Broad Street (1984)
- Flowers in the Dirt (1989)
- McCartney III (2020)
6.3. 싱글
6.3.1. 빌보드 핫 100 1위
- Uncle Albert/Admiral Halsey (1971)
- My Love (1973)
- Band on the Run (1974)
- Listen to What the Man Said (1975)
- Silly Love Songs (1976)
- With a Little Luck (1978)
- Coming Up (1980)
- Ebony and Ivory (Duet with Stevie Wonder) (1982)
- Say Say Say (Duet with Michael Jackson) (1983)
6.3.2. 빌보드 핫 100 2위
- Live and Let Die (1973)
- The Girl Is Mine (Duet with Michael Jackson) (1982)
6.3.3. 빌보드 핫 100 3위~10위
- Another Day (1971)
- Hi, Hi, Hi (1972)
- Helen Wheels (1973)
- Jet (1974)
- Junior's Farm (1974)
- Let 'Em In (1976)
- Maybe I'm Amazed (1977)[59]
- Goodnight Tonight (1979)
- Take It Away (1982)
- No More Lonely Nights (1984)
- Spies Like Us (1985)
- FourFiveSeconds (2015)[60] [61]
6.3.4. 빌보드 핫 100 11위~20위
- Venus and Mars/Rock Show (1975)
- Getting Closer (1979)
- All Day (2015)[62]
폴 매카트니의 솔로시절 히트곡들은 윙스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 많다.
7. 어록
Nothing pleases me more than to go into a room and come out with a piece of music.
방에 들어가 곡 하나를 만들고 나오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방에 들어가 곡 하나를 만들고 나오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8. 여담
자세한 내용은 폴 매카트니/여담 문서 참고하십시오.9. 둘러보기
Wings Discograph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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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12. 07. 정규 앨범 1집 Wild Life | 1973. 04. 30. 정규 앨범 2집 Red Rose Speedway | 1973. 12. 07. 정규 앨범 3집 Band on the Run | 1975. 05. 27. 정규 앨범 4집 Venus and Mars | 1976. 03. 25. 정규 앨범 5집 Wings at the Speed of Sound | |
1976. 12. 10. 라이브 앨범 Wings over America | 1978. 03. 31. 정규 앨범 6집 London Town | 1978. 11. 22. 컴필레이션 Wings Greatest | 1979. 06. 08. 정규 앨범 7집 Back to the Egg | 2001. 05. 07. 컴필레이션 Wingspan: Hits and History |
폴 매카트니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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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액 부문 | 공연자 (Performers) | |||||||||||||||||||||||||||||||||||||||||||||||||||||||||||||||||||||||||||||||||||||||||||||||||||||||||||||||||||||||||||||||||||||||||||||||||||||||||||||||||||||||||||||||||||||||||||||||||||||||||||||||||||||||||||||||||||||||||||||||||||||||||||||
멤버 | (개인자격) | |||||||||||||||||||||||||||||||||||||||||||||||||||||||||||||||||||||||||||||||||||||||||||||||||||||||||||||||||||||||||||||||||||||||||||||||||||||||||||||||||||||||||||||||||||||||||||||||||||||||||||||||||||||||||||||||||||||||||||||||||||||||||||||
입성 연도 | 1999년 | |||||||||||||||||||||||||||||||||||||||||||||||||||||||||||||||||||||||||||||||||||||||||||||||||||||||||||||||||||||||||||||||||||||||||||||||||||||||||||||||||||||||||||||||||||||||||||||||||||||||||||||||||||||||||||||||||||||||||||||||||||||||||||||
후보자격 연도 | 1993년 | |||||||||||||||||||||||||||||||||||||||||||||||||||||||||||||||||||||||||||||||||||||||||||||||||||||||||||||||||||||||||||||||||||||||||||||||||||||||||||||||||||||||||||||||||||||||||||||||||||||||||||||||||||||||||||||||||||||||||||||||||||||||||||||
후보선정 연도 | 1999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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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발트 3국 | 디지 길레스피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 | 퀸시 존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 엘튼 존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 조니 미첼 피에르 불레즈 | |
1997년 | 1998년 | 1999년 | 2000년 | 2001년 | |
브루스 스프링스틴 에릭 에릭슨 | 레이 찰스 라비 샹카르 | 스티비 원더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 밥 딜런 아이작 스턴 | 버트 배커랙 로버트 무그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
미리엄 마케바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 키스 재럿 | 비비 킹 리게티 죄르지 | 지우베르투 지우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 레드 제플린 발레리 게르기예프 |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
소니 롤린스 스티브 라이히 | 핑크 플로이드 르네 플레밍 | 피터 가브리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 엘 시스테마 | 비요크 엔니오 모리코네 | 크로노스 콰르텟 패티 스미스 |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
폴 사이먼 요요마 | 유수 은두르 카이야 사리아호 | 척 베리 피터 셀라스 | 에밀루 해리스 에벌린 글레니 | 맥스 마틴 체칠리아 바르톨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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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팅 웨인 쇼터 | 메탈리카 아프가니스탄 국립 음악 연구소 |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안네 소피 무터 플레잉 포 체인지 | 안나 네트렙코 다이앤 워런 | 없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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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자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20세기 수상자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colbgcolor=#000000> 1978년 | <colbgcolor=#fff,#1f2023>매리언 앤더슨, 프레드 아스테어, 조지 발란신,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리처드 로저스 |
1979년 | 에런 코플런드, 엘라 피츠제럴드, 헨리 폰다, 마사 그레이엄, 테네시 윌리엄스 | |
1980년 | 레너드 번스타인, 제임스 캐그니, 애그니스 데밀, 린 폰탠, 리언타인 프라이스 | |
1981년 | 카운트 베이시, 케리 그랜트, 제롬 로빈스, 헬렌 헤이스, 루돌프 세르킨 | |
1982년 | 조지 애벗, 릴리안 기시, 베니 굿맨, 진 켈리, 유진 오르만디 | |
1983년 | 캐서린 던햄, 엘리아 카잔, 프랭크 시나트라, 제임스 스튜어트, 버질 톰슨 | |
1984년 | 레나 혼, 대니 케이, 잔카를로 메노티, 아서 밀러, 아이작 스턴 | |
1985년 | 머스 커닝햄, 밥 호프, 아이린 던, 앨런 제이 러너, 프레더릭 로, 베벌리 실즈 | |
1986년 | 루실 볼, 레이 찰스, 제시카 텐디, 험 크로닌, 예후디 메뉴힌, 앤서니 튜더 | |
1987년 | 페리 코모,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베티 데이비스, 네이선 밀스타인, 알윈 니콜라이 | |
1988년 | 앨빈 에일리, 조지 번즈, 마이어나 로이, 알렉산더 슈나이더, 로저 L. 스티븐스 | |
1989년 | 해리 벨라폰테, 클로데트 콜베르,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메리 마틴, 윌리엄 슈만 | |
1990년 | 디지 길레스피, 캐서린 헵번, 라이즈 스티븐스, 줄리 스턴, 빌리 와일더 | |
1991년 | 베티 콤덴, 로이 에이커프, 아돌프 그린, 헤럴드 니콜라스, 로버트 쇼, 그레고리 펙 | |
1992년 | 라이어널 햄프턴, 폴 뉴먼, 조앤 우드워드, 진저 로저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폴 타일러 | |
1993년 | 자니 카슨, 아서 미첼, 게오르그 솔티, 스티븐 손드하임, 매리언 윌리엄스 | |
1994년 | 커크 더글러스, 아레사 프랭클린, 모튼 굴드, 해럴드 프린스, 피트 시거 | |
1995년 | 자크 당부아즈, 메릴린 혼, 비비 킹, 시드니 푸아티에, 닐 사이먼 | |
1996년 | 에드워드 올비, 베니 카터, 조니 캐쉬, 잭 레먼, 마리아 톨치프 | |
1997년 | 로렌 바콜, 밥 딜런, 찰턴 헤스턴, 제시 노먼, 에드워드 빌렐라 | |
1998년 | 빌 코스비, 프레드 엡, 존 칸더, 윌리 넬슨, 앙드레 프레빈, 셜리 템플 | |
1999년 | 빅터 보르게, 숀 코너리, 주디스 재스민, 제이슨 로바즈, 스티비 원더 | |
2000년 |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척 베리, 플라시도 도밍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안젤라 랜스버리 |
}}}}}}}}} ||
Guiness World Records | ||||||||||
Most-Successful Songwriter of All Time.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작곡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기록자 | 등재 날짜 | 출처 | |||||||
폴 매카트니 | 2009년 |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100 Greatest Britons | ||||
※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명'을 선정 | |||||
TOP 10 | |||||
<rowcolor=#ffe>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윈스턴 처칠 |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 | 다이애나 스펜서 | 찰스 다윈 | 윌리엄 셰익스피어 | |
<rowcolor=#ffe>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아이작 뉴턴 | 엘리자베스 1세 | 존 레논 | 호레이쇼 넬슨 | 올리버 크롬웰 | |
11위~100위 | |||||
<rowcolor=#ffe>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어니스트 섀클턴 | 제임스 쿡 | 로버트 베이든 파월 | 알프레드 대왕 | 아서 웰즐리 | |
<rowcolor=#ffe>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마거릿 대처 | 마이클 크로포드 | 빅토리아 여왕 | 폴 매카트니 | 알렉산더 플레밍 | |
<rowcolor=#ffe>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앨런 튜링 | 마이클 패러데이 | 오와인 글린두르 | 엘리자베스 2세 | 스티븐 호킹 | |
<rowcolor=#ffe>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윌리엄 틴들 | 에멀린 팽크허스트 | 윌리엄 윌버포스 | 데이비드 보위 | 가이 포크스 | |
<rowcolor=#ffe>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레오나르드 체셔 | 에릭 모어캠브 | 데이비드 베컴 | 토머스 페인 | 부디카 | |
<rowcolor=#ffe>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스티브 레드그레이브 | 토머스 모어 | 윌리엄 블레이크 | 존 해리슨 | 헨리 8세 | |
<rowcolor=#ffe>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찰스 디킨스 | 프랭크 휘틀 | 존 필 | 존 로지 베어드 | 어나이린 베번 | |
<rowcolor=#ffe>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보이 조지 | 더글러스 베이더 | 윌리엄 월레스 | 프랜시스 드레이크 | 존 웨슬리 | |
<rowcolor=#ffe>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아서 왕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 로버트 스콧 | 이넉 파월 | |
<rowcolor=#ffe>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클리프 리처드 |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 프레디 머큐리 | 줄리 앤드류스 | 에드워드 엘가 | |
<rowcolor=#ffe> 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 조지 해리슨 | 데이비드 애튼버러 | 제임스 코널리 | 조지 스티븐슨 | |
<rowcolor=#ffe> 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찰리 채플린 | 토니 블레어 | 윌리엄 캑스턴 | 바비 무어 | 제인 오스틴 | |
<rowcolor=#ffe> 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윌리엄 부스 | 헨리 5세 |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 로버트 1세 | 밥 겔도프 (아일랜드인) | |
<rowcolor=#ffe> 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무명용사 | 로비 윌리엄스 | 에드워드 제너 |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 찰스 배비지 | |
<rowcolor=#ffe> 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제프리 초서 | 리처드 3세 | J. K. 롤링 | 제임스 와트 | 리처드 브랜슨 | |
<rowcolor=#ffe> 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보노 (아일랜드인) | 존 라이든 | 버나드 로 몽고메리 | 도날드 캠벨 | 헨리 2세 | |
<rowcolor=#ffe> 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 J. R. R. 톨킨 | 월터 롤리 | 에드워드 1세 | 반스 월리스 | |
<rowcolor=#ffe> 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리처드 버튼 | 토니 벤 | 데이비드 리빙스턴 | 팀 버너스리 | 마리 스톱스 | |
출처 | |||||
같이 보기: BBC 선정 최악의 영국인,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롤링 스톤이 2015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송라이터를 선정한 순위다.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밥 딜런 | 폴 매카트니 | 존 레논 | 척 베리 | 스모키 로빈슨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믹 재거 & 키스 리처즈 (재거-리처즈) | 캐롤 킹 & 제리 고핀 | 폴 사이먼 | 조니 미첼 | 스티비 원더 | |||||
11위부터는 문서 참조. | |||||||||
같이 보기: 명반, 명곡, 앨범 커버, 아티스트, 송라이터,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1 / 2, 베이시스트, 드러머, 듀오 | }}}}}}}}} |
선정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 (2008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2px" | {{{#000,#ddd ※ 롤링 스톤이 2008년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아레사 프랭클린 | 레이 찰스 | 엘비스 프레슬리 | 샘 쿡 | 존 레논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마빈 게이 | 밥 딜런 | 오티스 레딩 | 스티비 원더 | 제임스 브라운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11 - 50위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폴 매카트니 | 리틀 리처드 | 로이 오비슨 | 알 그린 | 로버트 플랜트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믹 재거 | 티나 터너 | 프레디 머큐리 | 밥 말리 | 스모키 로빈슨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조니 캐시 | 에타 제임스 | 데이비드 보위 | 밴 모리슨 | 마이클 잭슨 | |||||
<rowcolor=#fff>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재키 윌슨 | 행크 윌리엄스 | 재니스 조플린 | 니나 시몬 | 프린스 | |||||
<rowcolor=#fff>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하울링 울프 | 보노 | 스티브 윈우드 | 휘트니 휴스턴 | 더스티 스프링필드 | |||||
<rowcolor=#fff>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브루스 스프링스틴 | 닐 영 | 엘튼 존 | 제프 버클리 | 커티스 메이필드 | |||||
<rowcolor=#fff>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척 베리 | 조니 미첼 | 조지 존스 | 보비 밴드 | 커트 코베인 | |||||
<rowcolor=#fff>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팻시 클라인 | 짐 모리슨 | 버디 홀리 | 도니 해서웨이 | 보니 레이트 | |||||
51위부터는 문서 참조. |
같이 보기: 명반, 명곡, 앨범 커버, 아티스트, 송라이터,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1/2, 베이시스트, 드러머, 듀오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롤링 스톤이 2020년 가장 위대한 베이시스트 50명을 선정한 순위다.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제임스 제머슨 | 찰스 밍거스 | 존 엔트위슬 | 부치 콜린스 | 캐럴 케이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잭 브루스 | 래리 그레이엄 | 자코 파스토리우스 | 폴 매카트니 | 론 카터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11위-50위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필 레시 | 윌리 딕슨 | 스탠리 클라크 | 존 폴 존스 | 도널드 ‘덕’ 던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찰리 헤이든 | 로비 셰익스피어 | 크리스 스콰이어 | 버딘 화이트 | 릭 댕코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기저 버틀러 | 플리 | 빌 와이먼 | 게디 리 | 클리프 버튼 | |||||
<rowcolor=#fff>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이스라엘 카차오 로페스 | 데이비드 후드 | 애스턴 "패밀리 맨" 배럿 | 티나 웨이머스 | 밥 무어 | |||||
<rowcolor=#fff>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버나드 에드워즈 | 스팅 | 레미 킬미스터 | 리처드 데이비스 | 루이스 존슨 | |||||
<rowcolor=#fff>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레 클레이풀 | 존 맥비 | 피노 팔라디노 | 킴 고든 | 빌 블랙 | |||||
<rowcolor=#fff>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조지 포터 주니어 | 토니 레빈 | 마이크 와트 | 조셉 마크웰라 | 에스페란자 스폴딩 | |||||
<rowcolor=#fff>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피터 훅 | 릴랜드 스클라 | 킴 딜 | 더프 맥케이건 | 썬더캣 |
같이 보기: 명반, 명곡, 앨범 커버, 아티스트, 송라이터,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1 / 2, 베이시스트, 드러머, 듀오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롤링 스톤의 독자들이 2011년에 선정한 가장 위대한 베이시스트 10명의 순위다.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존 엔트위슬 | 플리 | 폴 매카트니 | 게디 리 | 레 클레이풀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존 폴 존스 | 자코 파스토리우스 | 잭 브루스 | 클리프 버튼 | 빅터 우튼 |
롤링 스톤 선정 250대 기타리스트 173위 |
{{{#!wiki style="margin:0 -10px" {{{#000,#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5px" | ※ 2015년 빌보드 직원들이 차트 성적이나 판매량 기준이 아닌 영향력, 음악적 유산 등을 고려하여 Top 25를 선정했다.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브루스 스프링스틴 | 프레디 머큐리 | 지미 헨드릭스 | 엘비스 프레슬리 | 재니스 조플린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폴 매카트니 | 믹 재거 | 척 베리 | 데이비드 보위 | 패티 스미스 | |
<rowcolor=#fff>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커트 코베인 | 스티비 닉스 | 짐 모리슨 | 조니 미첼 | 로버트 플랜트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오지 오스본 | 액슬 로즈 | 밥 딜런 | 보노 | 데비 해리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로라 제인 그레이스 | 조 스트러머 | 캐슬린 한나 | 스티븐 타일러 | 존 본 조비 | |
같이 보기: 가장 위대한 프론트맨 · 가장 위대한 록 가수 · 가장 위대한 알앤비 가수 · 가장 위대한 래퍼 | }}}}}}}}}}}} |
{{{#!wiki style="margin:0 -10px" {{{#000,#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5px" | ※ 2023년 빌보드 직원들이 록 밴드의 리드 싱어 50위를 선정했다. 따라서 솔로 아티스트는 포함되지 않았다. 링크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믹 재거 | 스티비 닉스 | 프레디 머큐리 | 로버트 플랜트 | 커트 코베인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데이비드 번 | 데비 해리 | 조지 클린턴 | 보노 | 액슬 로즈 | |
<rowcolor=#fff>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로버트 스미스 | 로저 달트리 | 헤일리 윌리엄스 | 스티븐 타일러 | 크리시 힌드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마이클 스타이프 | 크리스 코넬 | 잭 화이트 | 캐슬린 한나 | 데이비드 리 로스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짐 모리슨 | 에디 베더 | 캐런 오 | 롭 핼포드 | 재니스 조플린 | |
<rowcolor=#fff>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톰 요크 | 루 리드 | 앤서니 키디스 | 앤 윌슨 | 스티브 페리 | |
<rowcolor=#fff>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로라 제인 그레이스 | 오지 오스본 | 구스타보 세라티 | 체스터 베닝턴 | 그레이스 슬릭 | |
<rowcolor=#fff>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조 스트러머 | 그웬 스테파니 | 이기 팝 | 폴 매카트니 | 브리트니 하워드 | |
<rowcolor=#fff>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리암 갤러거 | 세르이 탄키안 | 코트니 러브 | 제리 가르시아 | 코리 글로버 | |
<rowcolor=#fff>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폴리스티렌 | 폴 웨스터버그 | 데이브 그롤 | 루벤 알바란 | 잭 데 라 로차 | |
같이 보기: 가장 위대한 프론트맨 · 가장 위대한 록 가수 · 가장 위대한 알앤비 가수 · 가장 위대한 래퍼 | }}}}}}}}}}}} |
선정 가장 위대한 가수(보컬리스트) | |||||
{{{#!wiki style="margin: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6px" | ※ 2011년 영국의 대중음악 전문지 NME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가장 위대한 가수 Top 20' 투표를 진행. 1,000만 표 이상이 모여 순위를 정했다.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마이클 잭슨 | 프레디 머큐리 | 엘비스 프레슬리 | 액슬 로즈 | 존 레논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데이비드 보위 | 로버트 플랜트 | 폴 매카트니 | 스티비 원더 | 아레사 프랭클린 | |
<rowcolor=#fff>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매튜 벨라미 | 레이 찰스 | 짐 모리슨 | 밥 말리 | 엘튼 존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커트 코베인 | 스티븐 타일러 | 믹 재거 | 마빈 게이 | 티나 터너 | |
출처 |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1위 – 100위 ] {{{#!wiki style="margin: -6px -1px -16px" | ※ 2019년 빌보드가 발표한 빌보드 Hot 100 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순위다. 얼마나 많은 곡들을 차트에 높은 순위로 진입시키고 유지했는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리스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싱글을 많이 낸 뮤지션들이 더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 | ||||
<rowcolor=#fff>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비틀즈 | 마돈나 | 엘튼 존 | 엘비스 프레슬리 | 머라이어 캐리 | |
<rowcolor=#fff>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스티비 원더 | 자넷 잭슨 | 마이클 잭슨 | 휘트니 휴스턴 | 리아나 | |
<rowcolor=#fff>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드레이크 | 롤링 스톤스 | 폴 매카트니 | 비 지스 | 어셔 | |
<rowcolor=#fff>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시카고 | 슈프림즈 | 프린스 | 홀 앤 오츠 | 로드 스튜어트 | |
<rowcolor=#fff>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테일러 스위프트 | 올리비아 뉴튼 존 | 아레사 프랭클린 | 마룬 5 | 마빈 게이 | |
<rowcolor=#fff>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케이티 페리 | 필 콜린스 | 빌리 조엘 | 브루노 마스 | 다이애나 로스 | |
<rowcolor=#fff>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포 시즌스 | 템테이션스 | 도나 서머 | 비치 보이스 | 라이오넬 리치 | |
<rowcolor=#fff>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닐 다이아몬드 | 카펜터즈 | 저스틴 비버 | 잭슨 파이브 | 보이즈 투 멘 | |
<rowcolor=#fff>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코니 프랜시스 | 브렌다 리 | 더 위켄드 | 비욘세 | 크리스 브라운 | |
<rowcolor=#fff>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케니 로저스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브라이언 아담스 | 셰어 | 블랙 아이드 피스 | |
<rowcolor=#fff>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조지 마이클 | 핑크 | 바비 빈튼 | 존 멜렌캠프 | 레이디 가가 | |
<rowcolor=#fff>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쓰리 도그 나이트 |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 | 글로리아 에스테판/마이애미 사운드 머신 | 본 조비 | 처비 체커 | |
<rowcolor=#fff>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레이 찰스 | 포리너 | 쿨 & 더 갱 | 글래디스 나이트 앤 더 핍스 | 리키 넬슨 | |
<rowcolor=#fff>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듀란 듀란 | 저스틴 팀버레이크 | 코모도스 | 이글스 | TLC | |
<rowcolor=#fff>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폴 앵카 | 에미넴 | 배리 매닐로 | 디안 워윅 | 넬리 | |
<rowcolor=#fff>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하트 | 포스트 말론 | 아리아나 그란데 | 에벌리 브라더스 | 칸예 웨스트 | |
<rowcolor=#fff>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바비 다린 | R. 켈리 | 제임스 브라운 | 폴라 압둘 | 켈리 클락슨 | |
<rowcolor=#fff>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앨리샤 키스 | 에드 시런 | 린다 론스태드 | 리처드 막스 | 데스티니스 차일드 | |
<rowcolor=#fff>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셀린 디옹 | JAY-Z | 미라클스 | 디온 | 플리트우드 맥 | |
<rowcolor=#fff>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밥 시거/실버 불릿 밴드 | 닐 세다카 | 브루스 스프링스틴 & E 스트리트 밴드 | 포인터 시스터스 | 존 덴버 | |
출처 |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1위 – 100위 ] {{{#!wiki style="margin: -6px -1px -15px" | ※ 2015년 빌보드가 발표한 빌보드 200 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순위다. 얼마나 많은 앨범들을 차트에 높은 순위로 진입시키고 유지했는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리스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앨범을 많이 낸 뮤지션들이 더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비틀즈 | 롤링 스톤스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 가스 브룩스 | 엘튼 존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머라이어 캐리 | 허브 앨퍼트 | 테일러 스위프트 | 시카고 | 마이클 잭슨 | |
<rowcolor=#fff>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레드 제플린 | 브루스 스프링스틴 & E 스트리트 밴드 | 로드 스튜어트 | 에미넴 | 휘트니 휴스턴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빌리 조엘 | 마돈나 | 산타나 | 이글스 | 플리트우드 맥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밥 딜런 | 스티비 원더 | 셀린 디옹 | 에릭 클랩튼 | 닐 다이아몬드 | |
<rowcolor=#fff>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존 덴버 | 핑크 플로이드 | 자넷 잭슨 | 프린스 | 캐롤 킹 | |
<rowcolor=#fff>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마일리 사이러스 | 니켈백 | 팀 맥그로 | 밴 헤일런 | 비치 보이스 | |
<rowcolor=#fff>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U2 | 아델 | 엘비스 프레슬리 | 브리트니 스피어스 | 어셔 | |
<rowcolor=#fff>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템테이션스 | 린킨 파크 | JAY-Z | 앨런 잭슨 | 본 조비 | |
<rowcolor=#fff>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건즈 앤 로지스 | 샤니아 트웨인 | 캐리 언더우드 | 몽키즈 | 에어로스미스 | |
<rowcolor=#fff>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제임스 테일러 | 슈프림즈 | 앨리샤 키스 | 메탈리카 | 데프 레파드 | |
<rowcolor=#fff>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폴 매카트니 | 린다 론스태드 | 저니 | 메리 제이 블라이즈 | 제쓰로 툴 | |
<rowcolor=#fff>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래스컬 플래츠 | 포리너 | 존 멜렌캠프 | 사이먼 앤 가펑클 | 케니 체스니 | |
<rowcolor=#fff>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키드 락 | 앤디 윌리엄스 | 조지 스트레이트 | 백스트리트 보이즈 | 마이클 볼튼 | |
<rowcolor=#fff>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피터 폴 앤 메리 | 라이오넬 리치 | 아레사 프랭클린 | 요세프/캣 스티븐스 | 밥 시거 | |
<rowcolor=#fff>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AC/DC | 비욘세 | 펄 잼 | 토비 키스 | 더 후 | |
<rowcolor=#fff>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폴 사이먼 | 무디 블루스 | 저스틴 비버 | 노라 존스 |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 |
<rowcolor=#fff>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넬리 | 두비 브라더스 | 핑크 | 조쉬 그로반 | 닐 영 | |
<rowcolor=#fff>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프랭크 시나트라 | 그린 데이 | 더 칙스 | 어스 윈드 앤 파이어 | 하트 | |
<rowcolor=#fff>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레이디 가가 | R. 켈리 | 보이즈 투 멘 | 케니 지 | 비 지스 | |
출처 | }}}}}}}}} |
{{{#!wiki style="margin:0 -10px" {{{#000,#fff {{{#!folding [ 1위 – 60위 ] {{{#!wiki style="margin:-5px -1px -10px -1px" | ※ 2018년 빌보드에서 Hot 100 차트 60주년 기념으로 1958년부터 2018년까지 차트에 오른 곡들을 분석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남성 아티스트들을 발표했다. 얼마나 많은 싱글을 차트에 높은 순위로 진입시키고 오래 유지했는가를 누적치로 계산하여 산정한 리스트이기 때문에 영향력이나 음악성과 같은 평론적인 요소들이 반영된 것은 아니며 순전히 상업적인 성공도가 기준이다.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엘튼 존 | 엘비스 프레슬리 | 스티비 원더 | 마이클 잭슨 | 폴 매카트니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어셔 | 프린스 | 로드 스튜어트 | 드레이크 | 마빈 게이 | |||||
<rowcolor=#fff>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필 콜린스 | 빌리 조엘 | 라이오넬 리치 | 브루노 마스 | 닐 다이아몬드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케니 로저스 | 브라이언 아담스 | 조지 마이클 | 바비 빈튼 | 존 멜렌캠프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처비 체커 | 레이 찰스 | 크리스 브라운 | 리키 넬슨 | 저스틴 팀버레이크 | |||||
<rowcolor=#fff>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폴 앵카 | 배리 매닐로 | 넬리 | 바비 다린 | R. 켈리 | |||||
<rowcolor=#fff>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제임스 브라운 | 에미넴 | 리처드 막스 | 칸예 웨스트 | JAY-Z | |||||
<rowcolor=#fff>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밥 시거 | 닐 세다카 | 저스틴 비버 | 브루스 스프링스틴 | 존 덴버 | |||||
<rowcolor=#fff>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50 센트 | 플로 라이다 | 앤디 깁 | 로이 오비슨 | 디온 | |||||
<rowcolor=#fff>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빌리 오션 | 토미 제임스 | 존 레논 | 브룩 벤턴 | 마이클 볼튼 | |||||
<rowcolor=#fff>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릴 웨인 | 바비 브라운 | 에드 시런 | 루다크리스 | 에릭 클랩튼 | |||||
<rowcolor=#fff>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쟈니 리버스 | 글렌 캠벨 | 릭 스프링필드 | T.I. | 더 위켄드 | |||||
출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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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틴어로 '나의 마음을 보라(Behold my heart)'는 뜻. 폴이 2006년 발매한 본인의 네 번째 클래식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하다.[2] Let It Be(노래)에 나오는 Mother Mary이다.[3] 친딸은 아니다. 린다 매카트니가 폴과 결혼 전 낳은 딸을 입양한 것.[4] 고조부터는 기록이 없다. 고조대에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영국으로 이민을 왔기 때문에 기록이 끊겼다.[5] 1965년에 5등급 대영제국 훈장(MBE)을 받고, 1997년에 2등급 훈장에 준하는 기사 작위 Knight Bachelor를 받았으며, 2017년 6월 16일 1.5등급에 해당하는 컴패니언 오브 아너(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훈장 대상자로 선정되었다.[6] 한국으로 치면 유치원에 해당.[7]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합친 학교다.[8] 전문적으로 다룰줄 아는 악기가 이정도고 실제로 연주할 줄 아는 악기의 개수는 50개에서 60개가 족히 넘는다. 이 정도로 많은 악기를 다룰줄 아는 음악가는 프린스, 존 폴 존스, 브라이언 존스 정도.[9] #[10] #[11] 다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폴이라고 대중성이 떨어지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음악을 안 쓴 것이 아니며, 존이라고 늘 대중과 동떨어진 곡만 고집한 것도 아니다. 유독 한국에서는 존 레논의 곡이 별달리 조명을 못 받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이 대비가 두드러질 뿐.[12] 마찬가지로 존 또한 대중적인 곡들을 많이 만들었다. 사람들이 존과 폴을 대비시키기 위해 존은 실험적이고, 폴은 대중적이라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이는 매우 큰 오해이다.[13] 'McCartney II' 앨범 수록곡 Temporary Secretary.[14] 대표적으로 A Day in the Life의 중간 부분을 40인조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연결시킨 것과 Abbey Road의 B면을 메들리로 구성한 것은 폴의 아이디어였다. 사이키델릭 록의 정수라 불리는 Strawberry Fields Forever를 현재의 모습으로 만드는 데도 폴의 기여가 있었다. 존이 원래 구상하던 버전은 잔잔한 어쿠스틱 스타일의 곡.[15] 다만 폴 매카트니의 인터뷰에 따르면, 존도 Ob-La-Di, Ob-La-Da를 꽤나 좋아했다고 한다.# 직접 피아노 반주 인트로를 만들어 주고, 편곡을 도운 것 역시 존 레논.[16] 특히 한국의 경우 비틀즈 시절의 곡들은 폴 매카트니가 쓴 곡이 대체로 더 유명하지만 해체 이후 솔로 활동에 있어서는 오히려 존 레논 쪽이 더욱 널리 알려져있는 탓에 폴 매카트니의 솔로 커리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섭렵하지 못한 음악 팬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 '비틀즈 해체 이후의 폴 매카트니는 별 볼일 없는 2류 뮤지션에 불과했다', '폴 매카트니는 존 레논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등의 턱도 없는 폄하가 마치 사실인 것마냥 나돌기도 했다.[17] 007 죽느냐 사느냐의 주제곡. 건즈 앤 로지스가 커버 앨범으로 발표한 적이 있는 곡이다. 이 곡은 007 매니아들에게 최고의 주제가 중 하나로 뽑히고 있다.[18] 죠죠의 기묘한 모험 제6부 스톤 오션에 등장하는 스탠드 'C-Moon'은 이 곡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19] 1970년대는 1980년대 중반 글램 메탈의 부흥기와 더불어서, 그야말로 록 음악의 최전성기나 다름 없던 시절이었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퀸, 데이비드 보위, 딥 퍼플, 블랙 사바스, 플리트우드 맥 그리고 1960년대의 더 후와 롤링 스톤스까지 그야말로 죽음의 조나 다름이 없었는데 이중에서 2위를 한 것이다. 만약 폴 매카트니의 빌보드 차트 1위 곡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폴 매카트니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연속으로 가장 인기 있는 가수라는 초유의 기록을 썼을 것이다.[20] 발매 당시에는 썩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던 London Town, Back to the Egg, Press to Play, Off the Ground 등의 앨범들도 시간이 흐르며 재평가를 받는 중이다.[21] 크리스 노보셀릭, 데이브 그롤이 무대에 올랐다. 2012년 샌디 자선 공연 당시의 일.[22] 정확히는 4현짜리 사각형 레조네이터 기타 비슷한 악기를 연주했다. 일렉트릭 기타는 너바나와 푸 파이터스의 팻 스미어가 담당.[23] The Fool On The Hill의 리코더가 폴 매카트니의 작품이다.[24] Dance Tonight의 신나는 만돌린 리듬이 바로 폴의 연주.[25] 비틀즈 후반기부터 신디사이저를 적극 사용한 폴이었으며, McCartney II 앨범에서는 신디사이저를 비롯한 전자음 선율이 앨범 전체의 메인 멜로디가 된다.[26] 폴 매카트니의 주특기이자 그가 단연 가장 잘 다루는 악기.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베이시스트를 꼽을 때 폴 매카트니의 이름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27] 리드 기타 조지가 어려운 기타 리프를 틀리면 짜증을 내면서 완벽하게 기타 리프를 연주하며 훈계할 정도였다.[28] 아일랜드의 전통 악기.[29] 코난 오브라이언과의 인터뷰에서 "원래 관악기 쪽에는 좀 취약합니다."라고 말한 바가 있긴 하다.[30]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베이스는 드럼처럼 곡의 전체적인 리듬을 맡기 때문에 노래의 멜로디 라인과 동떨어진 다른 음을 연주해야 한다. 따라서 손가락은 곡의 전체적인 리듬과 박자에 맞게 베이스를 연주하고, 보컬은 그와 다른 멜로디 라인과 박자에 맞게 불러야 한다. 따라서 베이시스트가 노래하기는 드러머처럼 쉽지 않은 편. 당장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의 첫 곡인 I Saw Her Standing There부터 복잡한 베이스 라인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는 모습을 보였다. 윙스 시절 발매한 Silly Love Songs도 마찬가지.[31] 2007년 롤링 스톤지 인터뷰 폴 매카트니 역시 밥 딜런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32] McWhirter, Norris (1980). Guinness Book of World Records. London: Sterling Publishing. pp. 235, 250, 251.[33] Glenday, Craig (2009). Guinness World Records 2009. London: Bantam Books. p. 290.[34] Pipes of Peace.[35] "Ebony and Ivory" with Stevie Wonder.[36] Mull of Kintyre, Wings.[37] "She Loves You”, The Beatles.[38] "Get Back", The Beatles and Billy Preston.[39] Do They Know It's Christmas? Band Aid 2[40] 비틀즈 시절 2곡, 솔로 시절 1곡.[41] McCartney has written, or co-written 32 number-one singles on the Billboard Hot 100: twenty with the Beatles; seven solo or with Wings; one as a co-writer of "A World Without Love", a number-one single for Peter and Gordon; one as a co-writer on Elton John's cover of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one as a co-writer on Stars on 45's "Medley"; one as a co-writer with Michael Jackson on "Say Say Say"; and one as writer on "Ebony and Ivory" performed with Stevie Wonder.[42] 1위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밥 딜런, 3위는 비틀즈의 또다른 멤버인 존 레논.[43] 존 레논은 기준이 충족되자마자 바로 헌액되었으나 매카트니는 후보 자격이 주어지고 7년 후에 헌액되었다.[44] 비틀즈 멤버 중 가장 늦게 헌정되었다.[45]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음악가도 폴 매카트니를 통해 한두다리만 건너면 다 연관되어있다. 가령, 정말 연관이 없어보일 것 같은 핑크 플로이드와 테일러 스위프트는 폴 매카트니의 지인으로 엮인 사이다.[46] 1968년, 화이트 앨범 세션 당시의 사진이다.[47] 다만 감정의 골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었다. 일례로 Dear Friend와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Best Friend라는 곡은 자신을 모질게 대하는 존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표출한 곡이다.[48]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만취 운전을 하던 경찰관의 차에 치여 운명을 달리했다.[49] 신시아 레논은 존이 그 누구도 폴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오노 요코는 폴이 여자였다면 상당히 위험한 경쟁자였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50] 다만 이후 조지의 자서전 문제로 조지와 존의 관계가 악화된다.[51] No More Lonely Nights의 기타 연주를 맡았다.[52] 이때 마이클에게 자신이 부를 노래는 직접 쓰는 작곡 능력을 갖춘 아티스트로 발돋움하기를 적극 권유했고, 작곡 방법 등에 대한 조언도 해주었다.[53] 그래서 폴 매카트니는 자기가 가장 좋아했던 선배 뮤지션인 버디 홀리의 음악 판권을 통째로 사서 소유했다.[54] 매카트니의 인터뷰를 보면 매카트니가 이걸 설명해 줬을 때 마이클이 "그럼 내가 당신의 음악을 가질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라고 했고 매카트니는 "녀석 농담은" 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 되고 만다.[55] 베이시스트 존 디콘은 언급이 잘 없지만, 11살 경 비틀즈 열풍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56] "프레디는 항상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었어요. 그게 곧 그 그룹의 닻과 같은 역할을 했죠."[57] 여담으로 플랜트는 또 다른 비틀즈 멤버인 조지 해리슨과 1972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고 한다.[58] 해리슨과 페이스가 이웃 사이였다고 한다.[59] 라이브 버전. 원곡은 1970년 발매되었다.[60] 리한나, 칸예 웨스트와 함께 작업[61] 32년만에 10위 진입으로, 가장 긴 공백 기간을 가지고 10위에 진입한 기록이다![62] 칸예 웨스트의 싱글을 피처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