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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목록/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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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음악
2.1. 대한민국2.2. 외국
2.2.1. 영미권2.2.2. 일본
3. 음악 방송4. 한국 가수5. 연예 기획사/레코드 레이블
5.1. 대한민국5.2. 외국
6. 외국 가수
6.1. 영미권 가수6.2. 일본 가수
6.2.1. 솔로6.2.2. 밴드

1. 개요

대중음악 관련 전성기를 정리한 문서.

가수의 인지도를 제외하고 해당 가수의 유튜브 조회수, 외국 인기 등을 모두 포함한 전성기만 기록한다.

2. 음악

2.1. 대한민국

2.2. 외국

2.2.1. 영미권

2.2.2. 일본

3. 음악 방송

4. 한국 가수

4.1. 남자 솔로

4.2. 여자 솔로

4.3. , 발라드, 댄스

4.4. 아이돌

4.4.1. 1세대

4.4.1.1. 보이그룹
4.4.1.2. 걸그룹

4.4.2. 2세대

4.4.2.1. 보이그룹
4.4.2.2. 걸그룹

4.4.3. 3세대

4.4.3.1. 보이그룹
4.4.3.2. 걸그룹

4.4.4. 4세대

4.4.4.1. 보이그룹
4.4.4.2. 걸그룹

5. 연예 기획사/레코드 레이블

5.1. 대한민국

5.2. 외국

6. 외국 가수

6.1. 영미권 가수

6.2. 일본 가수

6.2.1. 솔로

6.2.2. 밴드


[1] 대표적으로 파이널 인기투표 논란, 본선 무대에서 피쳐링진이 랩을 하던 중 프롬프터가 고장나서 가사를 절어 무대 재촬영 논란이 벌어졌고, 콰이올린 팀의 저조한 활약, 악마의 편집 등 여러 논란들이 끊이지 않아서 당시 최악의 시즌이였던 SHOW ME THE MONEY 8이 재평가 받았다.[2] 인기투표 논란은 전성기 때도 있었는데, 〈SHOW ME THE MONEY 5〉의 세미파이널에서 BewhYREDDY의 대결에서 최종투표 기준 공연비 755만원의 비와이에게 572만 5천원이라는 차이로 패배, 〈SHOW ME THE MONEY 777〉의 세미파이널 수퍼비가 레전드 무대 수퍼비와를 만들었지만 Loopy와의 대결에서 패배해서 인기투표 논란이 벌어졌다.[3]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으로 전성기가 끝나버렸다.[4] 당시 MBC에서는 그랜드쇼 - 토요일토요일밤에를, KBS는 가요대행진을 토요일 저녁 시간대에 방송했다.[5] 당시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에서 OST로 사용되며 애절한 멜로디와 가사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6] 김정수와 급행열차라는 그룹으로 활동한 앨범.[7] 드라마 '첫사랑' OST로 수록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8]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에 오른 앨범이며, 1990년에 가수왕을 차지했었다.[9] 1990년 KBS 대학가요축제에서 부른 곡을 리믹스한 곡이다.[10] 당시 시청률 1위를 달리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비공식 OST로 사용되면서 대박을 쳤다.[11] 사실상 원히트 원더에 가깝다.[12] 1998년 2월 11일 가요톱10 마지막 1위곡이자 마지막 골든컵 수상곡이다.[13]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표절과 관련해 잠정 은퇴를 발표하는 등 흑역사급 공백기를 가져왔기에 별도 구분한다.[14] 음원 최다 기록은 방탄소년단의 MAP OF THE SOUL : PERSONA이다.[15] 김추자의 원곡을 번안.[16] 데뷔곡이었던 《늪》이 발매 17년만에 여러 예능을 통해 재조명이 되면서, 데뷔 17년만에 방송활동을 하게 되었다.[17] 빌보드 핫 100 7주 연속 2위[18] 전세계 최초 유튜브 10~20억 조회수 달성, 한국 가수 최초 50억 달성 등.[19] 그 다음 곡인 <GENTLEMAN>도 빌보드 핫 100 5위 및 <강남스타일> 다음으로 유튜브에서 조회수 10억을 넘기기는 했지만, <강남스타일>에 비해 파급력과 인지도가 확연히 낮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20] 어제보다 오늘 더, 고맙다, 오래 오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리운 날들, Forever[21] 10월 3째주에 발매된 곡이 연간차트 15위 안에 드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22] 2002년 3집 타이틀곡이지만 이때는 거의 묻혔다가, 2004년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OST로 뒤늦게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23] 박정현와 함께 명예졸업을 하는 등 엄청난 실력발휘를 하며 본격 비쥬얼 가수로 등극했다.[24] 무조건을 멤버송으로 채택한 1박 2일 덕분에 전성기가 연장되었다는 의견도 있다.[25] 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3주 연속 트리플크라운, MBC 음악캠프 5주 연속 1위를 기록.[26] SBS 인기가요 3주 연속 뮤티즌송 트리플 크라운, MBC 음악캠프 2주연속 1위, 엠넷 엠카운트다운 2주 연속 1위를 기록.[27] MBC 음악캠프 2주 연속 1위를 기록.[28] 특히 X맨을 찾아라에서는 2005년 하반기 최고의 대세조합이었던 하하, 박명수, 김종국의 '하명국' 조합에 대항한 지상렬, 이성진과 함께 '지진테' 조합을 형성하며 프로그램 내에서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던 시기다.[29] SBS 인기가요 통산 1위 1회, MBC 쇼음악중심 통산 1위 1회, 엠넷 엠카운트다운 통산 1위 1회를 기록.[30]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에는 박정희에게 직접 하춘화의 생사여부가 보고된 적이 있다.[31] 정식 앨범도 없이 가요제 대상 수상곡만으로 가요톱텐 골든컵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아울러 그 해 신인상, 최고인기 가요상, 10대 가수상을 동시 석권했다.[32] 스테디한 인기로 단일 앨범으로 1990년과 1991년 2년 연속 골든디스크 본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33] 전영록의 작사로 유명한 곡이다.[34] 전영록 작사.[35] 가요톱10 역사상 마지막 여가수 1위곡.[36] 타이틀곡 외에도 임재범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상처'도 큰 화제가 되었다.[37] 김범수와 함께 명예졸업을 하는 등 엄청난 실력발휘를 하며 가요계의 요정으로 등극했다.[38] 음원 성적으로는 윤하 커리어 사상 역대 최고 성적이라고 봐도 손색없으며 데뷔 첫 써클차트 및 멜론차트 월간 1위, 2개월 연속 1위, SBS 인기가요 트리플크라운, 뮤직뱅크 K-차트 1위까지 수상하였다.[39] tvN 드라마 도깨비 OST가 나온 후 2018년 5월 말까지 약 17개월 차트 안에 있었다.[40] 커리어 최초 유튜브에서 조회수 1억 달성[41] 김민종손지창이 듀엣으로 결성한 그룹이다.[42] 애인이 생겼어요 (True Love), White Love (스키장에서), X (The Greatest Love)[43] 사실상 원히트원더에 가깝다.[44] 명곡들이 수두룩한 그야말로 클래지콰이의 전성기 시절을 대변하는 명반이었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된 몇 안 되는 2000년대 음반이다.[45] 이 해에 5개나 되는 음원을 멜론 연간차트에 집어넣었다.[46] 물론 이 때는 2009년 8282와 2011년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정도의 히트를 치지는 못했지만, 이 해에 유난히 음원을 많이 냈는데도 내는 대로 연간차트에 진입한 것을 보면 2013년은 음원강자로써는 확실히 막강한 파워를 보여준 해라고 할 수 있다.[47] 특히 '편지'의 경우 11월 중순에 나와서 단 1달 반만 차트에 반영되었는데도 연간 87위를 기록했으며, '거북이'와 '녹는 중' 역시 각각 13위와 23위, '오늘따라 보고싶어서 그래'도 27위를 기록했다. 중상위권에만 3곡이 올라간 셈이다.[48] 2004년에 발매한 정규 7집 《Ride West》는 기존과는 달리 힙합 요소가 강해져 인기가 하락하였으나 기존 한국 팬덤과 중화권 인기를 바탕으로 체면치레를 했다.[49] 당시에 선정적 안무 문제와 설현의 부상으로 활동을 중단했다.[50] 사실 미니 앨범 선공개곡이며 음악 방송 활동도 팬 서비스 차원이었다.[51] 음원 성적은 상대적으로 부진했으나, 걸그룹 최초 초동 판매량 밀리언셀러를 기록하였다.[52] 2022년에 나온 《O.O》, 《DICE》도 둘 다 멜론 월간 차트인했고, 지상파 음악 방송 1위 후보에 들었으며 《Love Me Like This》 역시 지상파 음악 방송 1위 후보에 들었다.[53] 데뷔곡으로 한정하면 원더걸스Irony로 1위를 하지 못했지만 같은 해 Tell Me로 일대 신드롬을 일으켰다.[54] 타하라 토시히코, 노무라 요시오, 콘도 마사히코 트리오(타노킨 트리오, たのきんトリオ)가 인기를 끌었다.[55] 체커스 열풍에 잠시 주춤했다가 소년대, 히카루GENJI 등의 활약으로 다시 인기가 시작된 시기이다.[56] 1990년대 초에 잠깐 있었던 침체기를 SMAP이 활동하면서 벗어났다. 이후에 TOKIO, V6, KinKi Kids, 아라시 등의 가수가 활동하였다.[57] 모리타카 치사토가 성공한 시기.[58] 보통 2013년 11월 11일에 발매한 ARTPOP 3집 정규 앨범 이전까지를 전성기로 본다.[59] 1984년 11월 12일 발매한 2집 정규 앨범 Like A Virgin부터 1990년 3월 27일 발매한 Vogue 싱글 곡까지를 최전성기로 본다.[60] 잠시 위기를 맞았다가 음악적으로 대호평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하였다. 이후에도 콘서트 투어로 여전히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61] 일본 대중의 인기를 포함하면 1998년까지라고도 볼 수 있다. 이후에 이혼을 시작으로 여러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몰락하였다가 2005년에 재기했었다.[62] 핫 보이즈 시절 포함.[63] 그 중에서도 2008년 Carter III 앨범이 정점이다.[64] 힙합 음악 웹사이트 등에서 Eminem 1998~2004 run은 힙합 음악의 대표적인 전성기로 공인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다.[65] 음악의 전성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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