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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요(帝堯) 도당씨 陶唐氏 | ||
성 | 이기(伊祁) | |
씨 | 도당(陶唐) | |
휘 | 방훈(放勳)[1] | |
아버지 | 제곡 고신씨(帝嚳 高辛氏) | |
생몰 기간 | 음력 | ? ~ ? (118세?)[2] |
재위 기간 | 기원전2145년 또는 기원전2357년 ~ 기원전2055년 또는 기원전2267년 (90년)[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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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금께서는 경건하시고 총명하시며 우아하시어 늘 평안하시었다. 지극히 공손하고 겸손하시어 그 빛이 사방에 이르고 높은 인격이 하늘과 땅에 미치시었다. 큰 덕을 높이 밝히시어 아홉 족속으로 하여금 서로 친하고 화목하게 하시니 백성이 평안하고 밝게 되어 만방이 서로 돕고 화해롭게 되었으며 어리석은 백성들도 모두 따랐다.
- 《서경》, <요전> 中
고대 중국의 삼황오제 전설에서 오제에 해당하는 신화적 인물. 堯라고 쓴다.[4] 통칭 요 임금. 순 임금과 함께 명군(名君) 또는 성군(聖君)의 대명사이다.- 《서경》, <요전> 中
2. 생애
도(陶) 지방에서 태어나 당(唐) 지방에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출신지와 성장 배경을 따서 도당씨라고 부르기도 하고 당요라고 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출신지 이름(질그릇 도陶)과 요(堯)[5]라는 이름을 종합해 볼 때, 정교한 토기 제작 기술을 보유한 집단의 지도자로 추정하기도 한다. 《사기》에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7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기록되었다.요는 성군의 자질을 고루 갖추었다. 임금인데도 매우 검소하여 겨울에는 가죽 옷을, 여름에는 삼베 옷을 입었으며 띠집에서 채소국으로 끼니를 채웠다고 한다. 워커홀릭이라 자신을 돌보지 않아 악전이라는 신선이 요를 보고
"저게 임금의 얼굴인가."
하고 동정하여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신령스러운 잣을 나누어줬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그것을 받고도 먹을 새도 없이 다시 일했다고 한다. 덕분에 천하는 평화로워져 시골 노인이 평상복 차림을 한 요 임금 앞에서 태평성대에 취해 막대기로 땅을 치며 노래부르길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于我何有哉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격양가>(擊壤歌)다.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 뒤를 이은 사람이 바로 순 임금이다. 요 임금에게는 친아들 단주가 있었지만 아버지만 한 덕과 재능이 없었다. 요는 아들 대신 현명한 이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허유를 찾아갔지만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다음 후계자로 찾은 사람이 순이었다. 요는 가난한 순의 살림을 돌봐주고 자신의 두 딸 아황과 여영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순이 덕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에서도 통과하자 요는 순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는 중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선양사례로 꼽히며, 후대 왕조를 교체할 때 훌륭한 프로파간다로 악용되었다. 유가를 싫어했던 전한 태조 고황제 유방의 경우 조금 더 시니컬하게 평가했는데, 혜제에게
'소 한 마리도 주기가 아까운데 요왕 그 양반이라고 좋아서 천하를 순한테 넘겼겠냐, 그냥 자기 자식이 못 미더워서 그랬던 거지.'
하고 일축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는 본인의 폐태자 시도에 대한 변명이었던 것 같다.3. 고결함
신화적 성격이 강한 삼황오제 중에서도 요는 그 고결함이 독보적인 수준이다. 심지어는 흔히 세트로 묶이는 순 임금과 비교해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순은 형벌을 제정하고 악인들을 귀양보내며, 후계자인 우에게 명령하여 복종하지 않는 묘족을 정벌했다. 또한 순은 임금이 되기 전에 가족 때문에 시련과 고뇌를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의 삶에서는 그런 고난도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하늘과 땅이 요에게 그런 질서를 주었을 뿐이다.아무튼 이러한 고결함 때문에 동북아시아에서는 군주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으며, 태평성대를 이룩한 시기를 요순시대라고 불렀다. 다만 자뻑이 심한 왕들이 스스로 자칭하거나, 아부에 능숙한 신하들이 자주 사용하는 상투적인 표현이었다. 그리고 고대 중국 신화(예 신화)에 따르면, 이 시기에 각종 자연 재해가 일어나[6] 요 임금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했을 정도라고 하니, 어떤 면에서는 유토피아와 같이 다소 풍자하는 의미도 있을지도 모른다.
4. 기타
산둥성 허쩌시 쥐안청현의 요릉 (요왕묘)
사실 《죽서기년》에는 순이 요를 감금했다는 기록도 있으므로 원래부터 프로파간다였을 가능성도 있다. 순 문서 참고.
《순자》에서 일컫기를, 요는 키가 매우 컸고, 후계자인 순은 반대로 키가 작았다고 한다.
옛날에는 요임금을 '욧님금'으로 발음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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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이 이름을 쓴 적이 없다. 후대 학자들이 요를 칭송하여 본받을만한(放, 방) 공훈(勳, 훈)이라고 일컬으면서 이 이름으로 정착된 것이다.[2] 20세에 왕위에 올라 70년째 재위하던 해에 순 임금을 발견하고, 20년 후에 양위하며 8년 후에 사망했다고 《사기》에 전한다.[3] 《사기》에 따른 재위기간. 《죽서기년》에서는 기원전 2145년에 즉위했다고 보고, 《동국통감》에서 단군기원의 근거로 인용한 《황극경세서》에서는 기원전 2357년 즉위라고 나온다.[4] 상고한어에서의 발음은 /*ŋeːw/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정장팡상 재구).[5] 요(堯)라는 글자에는 '토'(土) 자가 무려 세 개다. 이 글자에는 '높다'라는 뜻이 있는데, '흙이 높게 쌓인 언덕'이라는 데서 파생된 의미로 보인다.[6] 신화에서는 태양 10개가 번갈아 뜨지 않고 갑자기 동시에 떠서 지상이 불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파에톤 얘기와 묘하게 겹친다.[7] 마찬가지로 순임금은 ‘숫님금’, 우임금은 ‘웃님금’으로 발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