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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국왕 King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 |
<colbgcolor=#1353b4> 현직 | <colbgcolor=#ffffff,#1f2023>찰스 3세 / 영국 및 영연방 왕국의 국왕 |
즉위 | 2022년 9월 8일 |
경칭 | His Majesty (폐하) |
지위 | 영국 및 영연방 왕국의 국가원수 |
창립 | 1707년 5월 1일 ([age(1707-05-01)]주년) |
관저 | 버킹엄 궁전 (공식)[1] |
클래런스 하우스 (임시)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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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Dieu et mon droit 신과 나의 권리 |
영국 국왕은 채널 제도와 맨 섬의 군주(영주)이기도 하다. 채널 제도와 맨 섬은 영국령이 아니라 영국 왕실령으로써 만약 영국이 군주제를 폐지해도 채널 제도 및 맨 섬의 영주로 존재할 수 있다.
2. 위상
섬나라라는 특성상 영국은 중세 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유럽사의 변방에 위치했으며, 영국 왕실은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한 이래 프랑스와의 교류를 통해 유럽에 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다만 윌리엄이 노르망디 대공이었던데다, 거듭된 결혼 정책을 통해 앙주, 누벨아키텐 등의 영지를 획득하였기 때문에 백년전쟁 이전 봉건 시대의 절정기에는 프랑스의 절반에 가까운 넓은 영토를 갖고 있었다.[2] 이 때가 '사자심왕'으로 불리는 리처드 1세 시기로, 제3차 십자군 원정에서 살라딘의 군대를 무너뜨리고 아크레를 점령하기도 했다.영국 왕실은 헨리 8세 시기 수장령을 통해 전통적인 가톨릭 권력 구조에서 이탈하여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되었으며, 이후 대를 거듭하며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의 갈등, 의회와 국왕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번번이 충돌하였다. 18세기 스코틀랜드와의 합병은 그레이트브리튼섬 내의 지정학적 판도를 안정시켰지만, 잉글랜드 내전 당시 공화정이 들어서는 바람에 국왕 찰스 1세는 처형되고 왕실은 일시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올리버 크롬웰의 폭정과 지나친 엄숙주의에 반발하여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뒤, 산업 혁명 이후부터는 영국의 국력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기술과 경제 발전을 선도하는 나라가 되면서 덩달아 영국 국왕의 위상도 급격히 상승하게 되었다. 동인도 회사를 통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막대한 무역수지를 창출하는 데 성공한 것도 이러한 발전에 일조하였다.
영국 국왕은 19세기가 되면서 초강대국인 대영제국의 군주로서 전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칭제만 안했지 사실상 19세기 말에는 독일 황제, 러시아 황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와 함께 유럽의 군주들 중 가장 위상이 높았다.[3]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많은 현대 국가가 탄생하면서 대영제국 역시 대부분의 식민지를 독립시키고 해체되었지만, 현재도 영국 국왕이 재위하고 있는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총면적을 합치면 러시아보다도 크다.[4] 또한 이들 국가의 총인구는 1억 3,500만명으로, 천황이 국가원수로 있는 일본보다 많다.
영국 왕실인 윈저 가문은 왕실의 대명사라고 봐도 될 정도로 전세계 국가의 모든 왕실들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다. 단적인 예로, 홈페이지와 SNS 공식 계정 이름도 국가명이나 가문명을 넣지 않은 'The Royal Family'이다.
3. 상징
영국 왕실기 | 영국 왕실 문장 |
스코틀랜드에서의 왕실기 | 스코틀랜드에서의 왕실 문장 |
4. 칭호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을 맞아 정해진 공식 칭호는 다음과 같다.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의 연합 왕국과 다른 왕국과 영토의 국왕, 영연방의 수장, 신앙의 수호자이신 폐하 His/Her Majesty,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is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King/Queen,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 영국에서의 칭호 |
-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의 연합 왕국의 국왕/여왕 (King/Queen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영국의 군주로서 보유한 칭호이다. 1953년 이전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의 국왕/여왕(King/Queen of Great Britain, Ireland)'이 공식 칭호에 들어갔으나, 아일랜드 섬 대부분이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분리되면서 칭호가 변경됐다.
- 다른 왕국과 영토의 국왕/여왕 (King/Queen of His/Her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영국 외 국왕으로 재위하고 있는 14개 영연방 왕국 국가들과 왕실령 영토, 그외 해외 영토의 군주로서 보유한 칭호이다. 즉, 이 칭호에는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하마, 벨리즈, 그레나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키츠 네비스, 앤티가 바부다,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투발루, 몬트세랫, 버뮤다,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 아크로티리 데켈리아, 앵귈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영국령 인도양 지역, 지브롤터, 케이맨 제도,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포클랜드 제도, 핏케언 제도, 채널 제도의 군주라는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 영연방의 수장 (Head of the Commonwealth): 영연방의 수장으로서 보유한 칭호로, 공식 칭호에는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당시 추가되었다. 다른 칭호와는 달리 세습직이 아니고, 군주 개인이 보유한 직책으로서 칭호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향후 웨일스 공 윌리엄이 영연방 수장직을 계승하지 못한다면 공식 칭호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 신앙의 수호자 (Defender of the Faith): 1521년 레오 10세 교황이 헨리 8세에게 수여한 칭호이다. 이후 헨리 8세가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잉글랜드 국교회를 세우자, 바오로 3세 교황은 이 칭호를 박탈했다. 그러나 의회에서 헨리 8세가 이 직함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법안을 통과시켜 현재까지 칭호가 유지되고 있다. 2023년 찰스 3세의 대관식을 앞두고 이 칭호를 잉글랜드 국교회와 같은 특정 종교가 아닌, '모든 신앙의 수호자'를 의미하는 'Defender of Faith'로 변경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칭호 변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캐나다에서는 아예 찰스 3세의 즉위 이후 법률안 개정을 통해 '신앙의 수호자'를 공식 칭호에서 삭제했다.
영국 외 국왕으로 군림하는 14개국에서는 각각 별도의 칭호가 정해져 있으며, 형태는 영국의 것과 대동소이하다.
5. 권한
5.1. 국왕 대권
영국 하원이 발행한 국왕 대권에 대한 글 (영어) 영국 하원이 발행한 왕권과 헌법에 대한 글 (영어) |
찰스 3세의 모노그램이 새겨져 있는 내각 장관 서류함 |
영국은 성문헌법이 없는 나라라 국왕이 소유하는 대권의 범위를 확정하기 어렵다. 특권의 존재와 그 적용 범위는 영국의 관습법에서 고려해야할 문제이다. 그래서 영국의 사법부가 특정 대권의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최종 중재자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몇몇의 대권은 널리 인정되고 시간이 지나서 행정부에서 수용되었지만, 다른 권한은 쓰이지 않게 되었다.
국왕은 정부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며, 국왕의 공적 권한은 모두 법률과 관습에 의해 장관이나 공무원, 기타 공적 기관에 위임되어 행사된다. 따라서 국왕이 직접 행사하는 권한도 의회나 정부가 결정한 바에 따라 행사된다. 예를 들어 의회 개원식에서 국왕이 발표하는 국정연설문인 국왕 연설(King's Speech)도 정부에서 작성한다. 공적 기관에 위임되어 행사되는 국왕의 권한은 다음과 같다.
- 국왕을 명목상 수장으로 두고 있는 잉글랜드 국교회는 자체적인 입법, 행정, 사법 기구를 갖고 있다.
- 정부는 법률이나 법령을 통해 다른 공공기관에 독립적인 권한과 합법성을 부여할 수 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국왕의 역할은 훈장 및 작위 수여권과 같이 비정치적인 권한에 국한된다. 이에 대해 1867년 헌법학자 월터 베게호트는 "군주제는 효율성이 아닌, 존엄성의 영역"이라고 해석했다.
국왕 대권은 무제한적이지 않으며, 제임스 1세의 재위기간 1610년의 선언 사례를 통해 영국 보통법원의 판사들은 왕실 특권의 한계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명예혁명 이후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는 사법부가 분리되고 뚜렷한 권한이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법이 무엇인지, 또는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는 것은 법원의 역할임이 명백해졌고, 이는 사법권 개념의 결정적인 귀결이자 기초가 되었다. 이는 왕실이나 그 장관이 소유한 집행권과는 분리되는 특성이다.#
국왕은 관습과 전례에 따라서만 대권을 행사하며, 총리와 내각, 의회의 조언에 따라 권한을 행사한다. 따라서 국정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은 국왕이 아닌 총리에게 있다. 또한 정부에 대한 궁극적인 행정 권한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국왕 대권을 통해 존재하지만, 이러한 권한은 의회에서 제정된 법률에 따라 그리고 실제로 관습과 전례의 제약 내에서만 사용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왕실 특권의 권력적 개념은 중세 왕이 왕국의 수장 역할을 하는 데서 유래하지만 결코 중세적인 관념은 아니다. 특권을 통해 국왕의 장관(내각)들은 군대를 배치하고 국제 조약을 체결하고 각종 명예를 수여할 수 있다.
현대에 정부 장관은 자신의 권리로 또는 국왕이 헌법상 따라야 하는 조언을 통해 대부분의 특권을 행사한다. 특권의 기본적인 원칙은 다음과 같은데 첫째로 법령과 특권이 충돌하면 법령이 우선하고 특권을 사용하여 법령을 변경할 수 없다. 두번째로 특권의 사용은 공정성과 이성의 관습법적 의무에 따른다. 즉 이론상 권한 자체는 막강하지만 남용할 수 없다.세번째로 특권은 법령에 의해 폐지되거나 폐지될 수 있지만, 결코 확대될 수 없다. 그러나 의회는 그 성질상 특권적 권한과 유사한 권한을 법령으로 만들 수 있다. 즉 국왕 대권은 이론적으로 영국 행정부의 권력의 원천이지만 그 제약 역시 분명하다. 대권에 따른 주요 권한은 다음과 같다.
- 총리 임면권: 총리를 임명하고 해임하는 것은 전적으로 국왕의 권한이다. 총리 임명에 대한 법적 규정은 없으나, 국왕은 관습법에 따라 다수당의 당수이거나 서민원의 다수 지지를 받는 사람을 총리로 임명한다. 국왕은 총리를 사적으로 접견하고, 총리에게 내각 구성 권한을 부여하는데 총리는 이때부터 별다른 임명 절차나 법적 인증 절차 없이 총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국왕은 총리를 해임할 수 있다. 그러나 1834년 윌리엄 4세가 이 권한을 행사한 이후 현재까지 사용되지 않는다. 총선에서 특정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왕이 직접 총리를 지명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다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의 당수가 총리로 임명된다. 과거에는 총리가 사임할 경우 국왕이 다음 총리를 직접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나,[6] 1963년 엘리자베스 2세가 알렉 더글러스흄을 총리로 임명한 이후 더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다.[7] 현재는 총리가 사임하면 집권 여당 내부에서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총리를 지명하고, 국왕이 새 총리를 임명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 각료 임면 및 내각 구성권: 국왕은 각료를 임명하거나 해임하고, 내각을 구성할 수 있다. 영국 정부의 공식 명칭은 '국왕 폐하의 정부(His Majesty's Government)'인데, 명목상으로 국왕의 명령으로 구성된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권한 역시 총리의 조언에 따라 행사되며, 국왕은 총리가 제청한 인물을 각료로 임명한다. 때문에 영국 정부의 내각 인사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총리는 국왕 폐하께 ○○ 의원을 XX부 장관으로 임명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폐하께서는 이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와 같은 문장이 등장하는 것을 자주 볼 수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국왕이 각료를 해임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 권한이 사용되는 것은 극히 드물고 보통은 각료가 사임하면 국왕이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개각이 이뤄진다.
- 의회의 소집 및 휴회, 해산: 국왕은 의회를 소집하거나 휴회를 선포하고,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새로운 의회 회기가 시작되면 국왕은 귀족원 회의장에서 내각의 입법안이 담긴 '국왕 연설(King's Speech)'를 낭독한다. 의회의 휴회는 일반적으로 정기 회기가 시작된지 1년이 지난 후 이뤄지며,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음 회기가 다시 시작된다. 국왕이 의회 해산을 승인하면 즉시 모든 의원의 임기가 종료되고 총선이 실시된다. 2011년 고정 임기법을 통해 국왕의 의회 해산권이 잠시 사라졌으나, 2022년 의회 해산 및 소집법을 통해 고정 임기법이 사실상 폐지되면서 다시 부활했다.[8] 이후 2024년 영국 총선은 리시 수낙이 찰스 3세에게 의회 해산을 요청하고, 찰스 3세가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 법률안 승인 및 거부권: 국왕은 의회가 입법한 법안을 재가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국왕의 거부권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것은 1708년 앤 여왕 재위시기로, 현재는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 동의권: 국왕의 권한과 관련된 법안을 제정하거나 개정 및 폐기하는 것에 대해 의회에서 심의를 하려면 국왕의 '동의'가 필요하다. 국왕에게 형식상 주어진 권한인 법안 재가(거부권)와는 다르다. 더 가디언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는 이 동의권을 이용해 약 1,000여개의 법에 영향력을 미쳤다고 한다.더 가디언 기사 엘리자베스 2세 즉위 후 2021년 4월까지 영국에서 통과된 법안이 약 4,000개이므로 상당히 많은 법에 영향력을 미친 셈이다.
- 사법권: 영국의 모든 사법 기능은 국왕의 이름으로 행사되며, 국왕은 '정의의 원천(fount of justice)'으로 간주된다. 이론상으로 국왕은 영국의 사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법원의 기소는 국왕의 이름으로 행사된다. 국왕대권은 공정성과 이성의 관습법적 의무에 반하지 않는 이상[9] 어떠한 사법적 심사도 받지 않는 특권을 갖고 있다. 또한 국왕은 '자비의 특권'을 사용해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를 사면하거나 감형, 복권시킬 수 있다.
- 훈장 및 작위 수여권: 국왕은 '명예의 원천(Fount of honour)'으로 간주되며, 영국 내 모든 훈장과 작위를 수여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귀족 작위의 수여는 대부분 총리의 제청에 따라 행사되고 있으나, 일부 훈장은 내각의 조언 없이 국왕이 독자적으로 수여할 수 있다. 가터 기사단과 엉겅퀴 기사단, 왕립 빅토리아 기사단, 컴패니언 오브 아너 훈장의 수여권은 오직 국왕만이 갖고 있다.
- 조칙 반포권: 국왕의 조칙(추밀원 칙령)은 이론적으로 영연방 전체에서 그 나라 의회법에 따라 변경할 수는 있지만 권한에 있어 의존하지 않은채 독자적으로 법률로서 입법할 수 있다. 단 권리장전에 명시된 제한사항은 제외된다. 또 의회의 입법 중에 국왕이 칙령으로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것은 1610년 에드워드 코크의 선언 사례 판례의 의해 제한된다. 즉 국법상 중대한 범죄를 방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칙령에 의해 새로운 범죄를 창설할 수 없다.[10]
- 외교권: 국왕은 외국에 대하여 영국을 대표하고, 전쟁을 선포하며, 조약을 체결 및 비준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조약을 체결 및 비준하는 것은 의회와 정부이지만, 여전히 관습법상 최고 결정권자는 국왕이며, 외교에 관련된 사안은 국왕의 형식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또한 국왕은 영국에 파견되는 해외 외교 사절을 신임하며,[11] 외교 사절의 파견 역시 국왕의 동의로 이루어진다.
- 군 통수권: 국왕은 군대를 지휘 및 해산하고, 장교를 임면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현대에 들어서 실질적으로 군을 통수하는 것은 총리이지만, 여전히 법률상 유일한 군 통수권자는 국왕이다. 총리는 국왕으로부터 군 통수권을 위임받아 권한을 대리 행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1947년 왕실 소송법에서는 "군주는 군에 대한 유일한 권한자이며, 법원에서 군의 조직과 배치, 통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영국의 모든 군인은 국왕에게 충성해야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대권은 군대 구성원을 모집하고, 장교를 임명 및 해임하고, 외국 정부와 협정을 맺어 해당 영토에 군대를 주둔시킬 권한을 부여한다.
그 외 국교회 성직자 임명권과 면세권, 군수품 판매권, 왕족의 자손에 대한 친권[12], 템스강 백조 소유권 등이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우니 기사를 참고해보자.관련 기사 또한 영국의 공직자들과 잉글랜드 국교회의 성직자들은 국왕에게 충성의 맹세를 한다. 이러한 맹세는 1868년 약속서약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국왕의 권한은 이론상 막강하며, 현대 영국 국왕은 대헌장과 권리장전으로 제한된 몇가지를 제외하면 절대군주적 권한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내각에 맡겨놓았을 뿐이다. 국왕은 내부적으로 절대적인 권위, 또는 독자적인 특권으로 간주되며 영국 정부의 많은 행정권력의 원천으로 간주된다.#
다만 영국 국왕은 명목상으로 가지고 있는 권한을 남용하지 않으며 입헌군주제[13]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 국왕의 조칙은 형식적인 것으로 보통 내각이 빠른 법안 처리를 위해 국왕의 이름을 빌려 제정된 초안을 국왕 앞에서 낭독하고 국왕은 '승인되었다'고 말하는 형식적인 재가를 하는 형태가 많다. 따라서 현대에는 이러한 국왕 대권의 권한은 스스로 또는 군주를 대신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 장관(내각)에게 위임되어 행사된다. 또한 이렇게 장관들(행정부)에 위임된 대권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회는 행정부의 행동을 감시하는 통제의 주요 원천 중 하나가 되었다.#
영연방 왕국들은 영국과는 별도의 헌법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각국의 헌법에 따라 국왕대권이 규정된다. 캐나다의 경우 영국처럼 국왕대권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아 이론적으로 영국 국왕이 영국에서 행사할 수 있는 국왕대권을 캐나다에서도 캐나다 국왕으로서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영연방 왕국에서는 국왕대권의 범위를 구체적이고 좁게 설정해 국왕대권을 크게 제한한다.
또한 영연방 국가 가운데 영국 국왕에 충성할 의무가 없는 나라에는 영국 국왕의 조칙은 당연히 강제적이지 않다. 1947년 자치령으로 독립한 인도는 영국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는 영연방 공화국이 되길 원했고, 따라서 1949년 영연방 국가에서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의 의무는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영연방 회원국에게 영국의 군주를 국가원수로 둬야 한다는 의무는 폐지되었고, 국왕은 영연방 원수(Head of the Commonwealth)라는 직함을 받았다.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에 영연방 국가들에게 영국 국왕의 대권 행위가 모두 적용되지는 않는다.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한 뒤 일부 영연방 국가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영국에 대한 적대행위는 아니며, 독립의 고리를 완성해 진정한 주권국가가 된다는 마지막 단계라고 한다. 이는 영연방 국가들이 가진 그 나라 독자적인 헌법에 따른 특수성과 영국 군주제에서 벗어난다는 탈식민지적 주권국가로의 발돋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
1848년 제정된 영국의 반역 중죄법[14]은 1879년 마지막으로 시행된 이래 엄격한 시행 요건이 있지만, 여전히 폐지되지 않고 법령에 존재한다. 이는 국왕에게 반역을 하거나, 찬탈을 시도하거나 또는 외국인과 협잡해 국왕과 영국을 침공 혹은 그러자고 선동하거나, 혹은 그런 의도로 음모를 꾸미거나 고안, 상상(imagine)하면 중범죄로 기소되어 최대 종신형에 처할 수 있다.[15] 따라서 혁명 상황이 아닌 바에야 진지하게 군주제를 폐지하려고 하거나 국왕에게 적대하려고 시도하면 이 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16]
유사한 법안으로 1842년 반역죄도 있는데 이 법은 국왕을 향한 직접적인 공격에 대한 반역죄 처벌도 명시하고 있다.# 2021년 윈저성에 잠입해 석궁을 가지고 여왕을 해치려고 한 범인이 이 법으로 2022년 8월 2일 기소가 되어 처벌 받았다. 범인은 1981년 이후 40년만에 유죄판결을 받은 첫번째 사례이다.#
5.2. 면책 특권
국왕은 정의의 원천(fount of justice)으로 여겨지며,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사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또한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지만 국왕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는 없다.18세기 영국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 경이 저술한 영국법 주해에서 블랙스톤은 "That the King can do no wrong, is a necessary and fundamental principle of the English constitution." (왕이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은 영국 헌법의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원칙이다.) 라고 말한다. 즉 국왕은 살인을 포함한 어떠한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완전 면책 특권을 가지고 있다. 국제 법률 실무자, 변호사 협회 및 법률 학회를 위한 최고의 조직인 IBA에 발표된 에식스 대학교의 공법 및 사회법학 모리스 선킨 교수는 글에서 "법치의 수호자로서 왕관의 역할을 보고 있으며, (중략)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왕관은 주권면제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에 법의 지배 위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왕관 자체는 법령이나 관습법에 구속되지 않으며, 군주는 개인적으로 기소될 수 없고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지만, 그의 장관과 공무원은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군주가 맹세한 것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군주의 신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11년 조지 5세는 중혼으로 고발당했지만, 대법원장은 국왕에게 증거를 제시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없다고 판결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2023년 1월 영국 하원이 발행한 글의 46페이지에 따르면 왕관(군주)(Crown)은 관습법에 의한 법적 조치에 대해 면제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17]
5.3. 영연방의 수장
찰스 3세와 영연방 국가원수들 |
본래 영연방 회원국은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 의무가 있었으나 1949년에 폐지된다. 1947년에 자치령이 되어 사실상 독립한 인도 자치령이 "우리는 국왕[18](조지 6세) 자르고 공화국이 되고 싶다. 하지만 영연방에는 남고 싶으니 규정을 고쳐달라"고 요구했다. 인도와 으르렁대다가 별개의 나라로 분리된 파키스탄 자치령은 인도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며 반대했으나 결국 다른 영연방 회원국들이 이를 수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연방 회원국에 영국 국왕을 해당국의 국가원수로 둬야 한다는 의무가 철폐되었고, 대신 조지 6세에게는 영연방 수장(Head of the Commonwealth)[19]이라는 어정쩡한 칭호가 부여되었다. 조지 6세가 사망한 뒤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2세도 영연방 수장직을 승계하였다.
그런데 왕위와 달리 영연방 수장직은 세습이라고 규정된 바가 없다.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할 당시만 해도 영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기에 별 말 없이 승계했지만, 당시 찰스 3세는 즉위 후에 영연방 수장직을 승계하게 될 것인지 여부는 불명확한 상태였다. 그래서 여왕과 영국 정부가 영연방 정상회의(CHOGM)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여 찰스 3세가 사실상의 후계자로 내정되었다. 일단 찰스 3세는 급한 불을 껐지만, 차기 국왕 즉위를 앞두고 또 이 문제가 불거질 수 있으며, 그때쯤 되면 그냥 영연방 수장직을 폐지하거나 선출직으로 바꾸자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다만 왕실이 영연방을 유지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있고, 영연방 국가들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영연방 수장직을 개혁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애초에 영국 정치권 내부에서조차 영연방 수장직에 대한 의견이 통합되지 않은 상태이다.
5.4. 영연방 왕국들의 국왕
영연방 소속의 53개국 중에는 영국과 동군연합 상태인 영연방 왕국 15개국(영국 포함)이 있기 때문에 영국 국왕은 영국 이외에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자메이카 등 14개 나라의 군주 자리를 겸임하게 된다.그러나 영연방 왕국에 속한 나라들은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엄연한 독립국이기 때문에 호주나 뉴질랜드와 같은 영국 이외의 영연방 왕국이 영국 국왕을 군주로 모신다는 말은 엄밀히 말해서 틀린 말이다. 예를 들어 현재 재위하고 있는 찰스 3세의 영국 내에서의 공식 칭호는 영국 국왕(King of the United Kingdom)이지만 호주 내에서의 공식 칭호는 호주 국왕(King of Australia)으로, 군주의 공식 칭호에 영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20] 뉴질랜드와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찰스 3세의 공식 칭호가 각각 뉴질랜드 국왕(King of New Zealand)과 캐나다 국왕(King of Canada)이다.[21] 다만 영연방 왕국들 중에서 그레나다는 예외적으로 '영국과 그레나다의 국왕'이라고 칭하고 있다.
영국 이외의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영연방 왕국은 평상시에 국왕이 현지에 주재하지 않으므로 국왕의 대리자인 총독을 현지에 둔다. 옛날엔 이 총독도 영국에서 파견했지만 현재 저 14개국 중에 그러는 나라는 한 개도 없다. 전부 각국의 의회나 내각에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원로 정치인, 전직 고위 외교관 등)를 국왕에게 총독으로 추천하고, 국왕이 그에 따라 임명하는 식이다. 그리고 국왕은 '영국' 국왕으로서가 아니라 그 나라의 국왕(예를 들어 호주 총독을 임명할 때는 호주 국왕)으로서 임명한다.
5.5. 영국군의 통수권자
영국 국왕은 영국군의 통수권자이기도 하고 또한 캐나다군의 통수권자와 뉴질랜드군의 명예수장(Head of the New Zealand Defence Force)도 겸임한다. 다만 명예수장과는 별개로 뉴질랜드군의 통수권은 총독이 갖는다. 호주도 영연방 왕국 소속이지만 호주군의 통수권자는 국왕이 아닌 호주 총독이다.물론 이도 현대에 와서는 형식적인 권한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국왕은 조지 6세였지만 실질적으로 영국군을 통수한 사람은 총리인 윈스턴 처칠이었다.
5.6. 잉글랜드 국교회의 최고통치자
대관식에서 찰스 3세에게 충성맹세를 하는 캔터베리 대주교 저스틴 웰비 |
잉글랜드 국교회(Church of England)는 성공회로 분류되어 세계 성공회의 협력체인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지만, 이 교회의 수장인 영국 국왕이 곧 세계 성공회 전체의 수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 성공회의 상징적 수장은 캔터베리 대주교이고, 잉글랜드 국교회, 즉 국교회 아래에 캔터베리관구와 요크관구 등 2개 관구가 세계성공회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24]
5.7. 이외 권한
- 영국 여권은 국왕의 이름으로 발행되고 국왕 본인은 여권을 소지하지 않는다. 국왕이 여권을 소지한다는 것은 엄연히 신하인 외무장관에게 여행을 가도 되겠냐고 허락을 받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 입장에서는 신분증명이 어렵지 않기에 여권을 가지고 않아도 입국을 허가시켜준다. 물론 국왕만 해당되지 왕실 인원들은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일화로 1984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미국으로 여름 휴가를 떠났을 때 여권 때문에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켄터키주 렉싱턴 공항에 착륙했을 때 세관과 이민 수속 담당 직원이 여권이 없다는 이유로 여왕의 입국을 통과시켜주지 않은 것이었다. 국무부에서 나온 의전 담당 직원이 국왕은 여권을 소지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해당 직원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 계속 버텼고 결국 워싱턴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나서야 입국이 허가되었다고 한다.
- 국왕은 매일 정부로부터 로열 레드 박스(Royal Red Box)라고 이름 붙여진 붉은색 상자를 배송받는다.[25] 이 상자 안에는 영국 총리의 국정 상황 브리핑과 함께 국왕이 승인하도록 제출되는 주요 공문서와 법률안, 군사 기밀 정보, 방첩 정보 등이 담겨 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제외하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국왕에게 배달되며, 심지어 국왕의 휴가지에도 이 상자가 배송된다고 한다.[26]
- 매주 화요일에는 총리를 직접 만나 국정 현안에 대해 토의하며,[27]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외교 문제에 대해 브리핑을 받거나 주요 정보기관장들로부터 직접 기밀 정보에 대해 보고받을 권한이 있다. 물론 국왕이 국정 업무에 대해 보고를 받은 후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절대로 공개되는 일이 없다.[28] 이 자리에서 국왕은 국정에 대해 의견을 밝힐 수는 있지만, 국왕 개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각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에 대해 영국 헌법 학자들은 "국왕은 자문을 받을 권리와 격려할 권리, 경고할 권리만을 갖는다"라고 해석한다.
-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공공기관, 학술단체 등에 칙허장(Royal Charter)을 발행하는 주체이다. 이 칙허장을 수여받은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가 있다. 다만 칙허장의 실질적인 심의 업무는 추밀원에서 대행하고 있으며, 명목상 발급자만 국왕으로 되어있다.
- 국왕은 모든 미성년자 왕족들에 대한 절대 친권을 갖고 있다. 때문에, 국왕이 왕족 아이를 입양하고자 할 때는 아이의 부모의 의견을 무시하고 무조건 친권과 양육권을 가져올 수 있다. 왕실에서 양육권 소송이 진행될 경우 무조건 국왕이 승소한다.[29] 이는 후계자 문제 때문이라고 하며 이론적으로 국왕이 아무 왕족 아이들이나 데려와서 양육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템스강에 있는 모든 백조는 국왕의 소유물이다. 1300년대에 만들어진 백조 소유법에 따라 주인으로부터 도망쳤거나 원래 주인이 없는 백조는 모두 국왕의 소유로 되어있다. 따라서 지금도 상징적으로 템스강에 사는 백조들은 국왕의 소유이며, 만약 백조를 해칠 경우 동물보호법이 아닌 절도죄로 처벌받게 된다. 국왕의 소유물을 훔쳤기 때문이다. 해마다 국왕이 소유한 백조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몸무게를 재는 전통 행사도 열리고 있다.# 왕실 내부에는 국왕의 백조를 관리하는 백조 관리인 직책도 따로 존재한다.
- 1324년 에드워드 2세가 내린 칙령에 따라 영국 영해에 사는 모든 고래와 돌고래, 철갑상어는 국왕의 소유물이다. 특히 고래의 뼈는 왕비가 착용하는 코르셋의 재료로 사용되어야 하므로 왕비의 소유물로 간주된다. 백조와 마찬가지로 고래를 함부로 죽이거나 포획한다면 절도죄로 처벌받는다.
- 국왕과 왕족들은 영국인의 권한인 정보 청구권에서 자유롭다. 영국인은 누구나 정부로부터 어떤 정보나 자료든 열람하거나 청구할수있는 권한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국왕은 이에 대한 방어권을 갖는다. 따라서 왕실에 대한 정보나 자료는 국왕의 동의 없이 열람할 수 없다. 학자나 작가들이 왕실에 대한 역사 자료를 수집하거나 연구를 진행할 때에도 국왕의 동의를 형식적으로 얻어야 하며, 왕실의 회계 자료도 일반인이 청구해 열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법률안 거부권이나 의회 해산권과는 달리 현재도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권한이다.[30]
- 국왕이 보는 앞에서는 체포 또는 형집행이 금지되어 있으며, 국왕이 살고 있는 왕궁과 국왕이 머무르고 있는 건물에서도 사법 집행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
- 영국에서 킹 제임스 성경을 인용 및 복제, 출판하려면 국왕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킹 제임스 성경은 제임스 1세의 저작물로서 Crown Copyright으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와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가 영국 왕실을 대신하여 저작권 계약을 대행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 성경공회(SBB)가 독자적으로 저작권을 대행한다.
6. 종교
왕족 중 오직 성공회 신자 만이 영국 국왕으로 즉위할 수 있으며, 가톨릭으로 개종할 시 왕위 계승권이 박탈된다.16세기 이래로 영국 국왕은 즉위식에서 스코틀랜드 국민교회를 유지하겠다고 서약하며 잉글랜드에서는 성공회 신자로서,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회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닌다. 때문에 새 국왕이 즉위하게 되면, 잉글랜드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성공회 의식으로 대관식을 치른 뒤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31]에서 스코틀랜드 장로회 의식으로 봉헌식을 따로 치른다.[32]
빅토리아 여왕 시기부터 영국 국왕이 스코틀랜드에서 거주할 때에는 밸모럴 성 인근 크래디 커크에서 예배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7. 재산
영국 국왕은 '랭커스터 공국'이라는 이름의 재산과, 크라운 에스테이트라 불리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랭커스터 공국은 랭커스터 공작(Duke of Lancaster)으로서 소유한 재산이며, 역사적인 이유로 영국 국왕이 랭커스터 공작을 겸하게 되면서 국왕에 속하게 된 재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자산은 완전한 국왕의 사유재산으로, 원칙적으로는 세금도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1993년에 왕실의 비용 문제가 논란을 빚자 엘리자베스 2세는 자진해서 면세권의 일부를 포기하고 소득세를 내고 있다.
크라운 에스테이트(The Crown Estate)는 국왕이 법인(Corporation Sole)으로서[33] 보유하는 재산이며, 영국 정부의 국유재산도 아니고 국왕의 완전한 사유재산도 아니다. The Crown Estate는 동명의 재단법인 The Crown Estate에서 관리하며, 이 재산으로부터 나는 수익은 영국 국고(영국 재무부)에 귀속되는 대신 왕실이 Civil list라고 불리는, 부동산 수익의 15%를 받는 식으로 운영되는데, 2016년부터 버킹엄 궁전 리모델링으로 인해 10년간 한시적으로 25%를 받는다. 출처1 출처 2 본래 이 재산도 랭커스터 공국처럼 국왕이 보유하는 사유재산이었지만 조지 3세가 정부 운영에 돈을 내는 대신 정부에 수익을 넘겨주기로 합의하여 관리하게 되었다.
국왕이 완전히 개인으로서 소유하는 사유재산이 따로 존재하는데, 밸모럴 성 영지와 샌드링엄 하우스 영지가 대표적이다. 이외에 각종 보석과 예술품, 투자 자산, 승용차[34], 경주마[35]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왕위가 계승되어도 국왕의 특권에 따라 상속세가 면제된다.[36] 사유재산의 규모는 정확히 알려진 적이 없으나, 포브스의 추정치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의 재위 기간동안 5억달러(약 6954억원)의 자산을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상속된 재산을 포함해 18억 1500만파운드(약 2조 9649억원)에 달하는 개인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개인 재산을 제외한 왕실 자산은 크라운 에스테이트 195억달러(약 26조9000억원), 버킹엄 궁전 49억달러(약 6조7000억원), 콘월 공국 자산 13억달러(약 1조8000억원), 랭커스터 공국 자산 7억4800만달러(약 1조원), 켄싱턴 궁전 6억3000만달러(약 8700억원) 등 약 280억달러(약 39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다만 이 자산들은 국왕의 의사에 따라 자의적으로 처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부동산 자산과 미술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실상 의미가 없다.
8. 왕위 계승
영국 국왕의 즉위 선서문[37] I, (),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My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King, Defender of the Faith, do faithfully promise and swear that I shall inviolably maintain and preserve the Settlement of the true Protestant Religion as established by the Laws made in Scotland in prosecution of the Claim of Right and particularly by an Act intituled An Act for securing the Protestant Religion and Presbyterian Church Government” and by the Acts passed in the Parliament of both Kingdoms for Union of the two Kingdoms, together with the Government, Worship, Discipline, Rights and Privileges of the Church of Scotland.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과 다른 왕국과 나의 영지의 국왕, 신앙의 수호자인 나, ()는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개신교 및 장로교회 정부 수호를 위한 법률"과 스코틀랜드 교회의 정부, 예배, 규율, 권리와 특권과 함께 두 왕국의 연합을 위해 두 왕국의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의해 시행된 법에 의해 확립된 진정한 개신교 정착을 불가침하게 유지하고 보존할 것을 충실히 약속하고 맹세합니다. 그러니 하느님은 저를 도우소서." |
현재 영국의 왕위 계승의 법칙은 2013년 제정된 2013 왕위 계승 법칙에 따른다. 이 법의 시초는 1701년에 정해진 1701 화해법인데, 3세기 후인 2013년에 영연방 왕국끼리 퍼스 조약(Perth Agreement)을 제정함에 따라 개정된 것이다. 본래는 영연방 왕국 국왕의 계승 법칙도 1701 화해법을 따랐으나, 영국 식민지였던 영연방 왕국이 독립하고 난 후로는 영국에서 제정한 2013 왕위 계승 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각국에서 퍼스 조약에 따라 제정한 별도의 법률이 적용된다. 다만 그 내용은 영국의 2013 왕위 계승 법칙과 거의 다르지 않다.
현행법 상 왕위 계승권은 1701년 화해법에 따라 제임스 6세의 손녀이자 조지 1세의 어머니인 하노버의 소피아(팔츠의 조피)의, 성공회 신자인 후손으로 제한된다. 또한 혼외자로 태어나면 서열에서 제외된다.
본래 1701년 화해법에 따라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배우자가 신자라면 계승권을 박탈당했으나, 혼인으로 인한 박탈은 2015년에 폐지하고 이로 인해 계승권을 박탈당했던 사람들도 다시 계승권이 회복되었다.[39] 계승권을 개인이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래 남성 우선이라 남동생이 태어나면 여성은 계승서열이 남동생에게 밀렸으나, 영연방 왕국 전역의 동의로 2015년부터 적용되는 퍼스 협약 및 그에 따른 왕위계승법 개정에 따라 뒤로 밀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성별과 무관하게 태어나는 순서대로 왕위 계승 순위가 지정되는 것. 즉, 여성이라도 자신보다 순위가 높은 사람이 자식을 낳지 않는 한 밀릴 일이 없다. 그 전에 태어난 프린세스 로열 앤 공주는 남동생들인 앤드루 앨버트 크리스티안 에드워드 왕자와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왕자 왕자,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에게 순위가 밀렸지만, 이게 적용된 최초의 공주인 웨일스의 샬럿 공녀 공주는 태어난 이후 남동생 웨일스의 루이 공자 왕자가 태어났음에도 계승순위가 뒤로 밀리지 않는다.
왕위 계승의 법칙을 바꾸려면 퍼스 조약처럼 영연방 왕국 모든 영역의 만장일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승계 규칙은 법에서 규정된 사항이라 법에 의해서만 바꿀 수 있다.
재위 중이었던 국왕이 사망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40] 상속인이 왕위를 계승한다. 즉위 후 2~3일 이내에는 추밀원 국왕 지명 회의를 열어 즉위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마무리하고, 영국 전역과 영연방 왕국에 새 국왕이 즉위했음을 알리는 즉위 선포식을 거행한다. 대관식 같은 절차는 나중에 한다. 대관식은 준비와 선대 국왕에 대한 애도기간을 위해 몇달에서 몇년 정도 시간을 둔 후 한다.[41]
현재 계승 서열 1위의 확정 상속인은 웨일스 공 윌리엄이다. 1701년부터 확정 상속인(국왕의 장남)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웨일스 공) 작위와 함께 체스터 백작 작위를 받는 관례가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져 왔다.
왕실결혼법에 따라 왕위 계승 서열 6위까지는 국왕의 승인이 있어야 결혼할 수 있다. 1772년 왕실결혼법 제정 당시에는 조지 2세의 후손이라면 무조건 국왕의 허락을 받아야 결혼할 수 있었으며, 국왕이 동의하지 않은 결혼은 무효로 간주되어 왕위 계승권이 박탈되었다. 그러나 2013년 왕위 계승법이 개정되면서 현재는 왕위 계승 서열 상위 6명을 제외하고는 국왕의 허락 없이 결혼하는 것이 가능하다.[42]
윈저 왕조의 창립자인 조지 5세의 후손들의 계승 순위는 윈저 왕조 문서를 참고.
왕위 계승이 이루어지면 공직자들도 충성 맹세(Oath of Allegiance)를 해야하는데 이에 관련한 조례는 Promissory Oath Act, 1968에 제정되었고, 충성 맹세는 다음과 같다.
I, [name], do swear by Almighty God that I will be faithful and bear true allegiance to His(her) Majesty, The King(Queen), [name], his(her) heirs and successors according to law. So Help me God.
저 ○○은 왕위 계승법에 따라 XX 국왕 폐하 및 폐하의 상속자들 및 후계자들에게 진실한 충성을 할 것을 굳게 다짐함을 전능하신 하느님께 맹세합니다. 그러니 도와주시옵소서.
단, 맹세를 하는 사람이 무종교인일 경우, All Mighty God과 So help me God를 생략한다. 저 ○○은 왕위 계승법에 따라 XX 국왕 폐하 및 폐하의 상속자들 및 후계자들에게 진실한 충성을 할 것을 굳게 다짐함을 전능하신 하느님께 맹세합니다. 그러니 도와주시옵소서.
9. 섭정
1937년 섭정법 제정 이후 역대 섭정 목록 |
현재 지정된 섭정이 모두 직무 수행 능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다음 계승 순위인 요크의 유지니 공녀와 루이즈 마운트배튼윈저가 섭정 자격을 갖게 된다. 또한, 왕위계승자 신분인 웨일스의 조지 공자는 2034년이 지나면 별도의 섭정법 재정 절차 없이 자동적으로 섭정 자격을 갖게 되며, 이렇게 된다면 베아트리스 공주의 섭정 자격은 자동적으로 박탈된다. 또 국왕의 부모 역시 국왕이 미성년자일 경우에는 예외없이 섭정으로 임명되는데, 따라서 만약 웨일스의 조지 공자가 성인이 되기 전 왕위에 오르는 아주 특수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캐서린 왕세자비가 섭정을 맡는다.[46] 한편, 1937년 섭정법 재정 이후 실제로 섭정이 장기간 통치한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47] 지금까지 섭정 제도가 활용된 경우는 국왕의 해외 순방을 제외하면 극히 드물었고, 이마저도 6개월을 넘긴 적은 없다.[48]
섭정으로 임명되어도 행사할 수 없는 권한이 정해져 있는데, 영연방에 대한 문제와 국왕의 명확한 지시가 없는 의회 해산, 귀족 작위의 창설, 총리 임명은 섭정이 대신 수행할 수 없다.
차기 왕위계승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섭정 자격을 갖는 왕족과는 함께 차량을 탑승하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한다. 만약 국왕이 사망한다면 왕위계승자가 왕위를 이어야하는데, 왕위계승자와 섭정이 한꺼번에 사고를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왕위 계승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는 미성년자일 때 삼촌인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와 같은 차량이나 비행기를 탑승하지 못했으며,[49] 웨일스의 조지 공자 역시 12세 생일이 지나면 삼촌 서식스 공작 헨리 왕자와 같은 차량이나 비행기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10. 레갈리아
찰스 3세가 대관식에서 레갈리아를 수여받는 장면 |
10.1. 왕관
성 에드워드 왕관 | 영국 제국관 |
성 에드워드 왕관에는 홍예(무지개형, 아치형)가 달려 있는데, 중세 유럽에서는 오직 황제만이 홍예 장식이 붙은 왕관을 쓸 수 있었지만 섬나라인 영국은 그에 구애받지 않고 홍예 장식을 붙였다.
10.2. 보검
왼쪽부터 헌납의 보검, 국가 어검, 커타나 |
- 국가 어검(Sword of State) - 위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검.
- 헌납의 보검(Sword of Offering) - 국가 보검(Jewelled Sword of State)이라고도 한다. 위 사진에서 가운데 있는 검.
- 커타나 - 자비의 검(Sword of Mercy), 또는 참회왕 에드워드의 검(Edward the Confessor's sword)이라고도 한다.
- 영적 정의의 검(Sword of Spiritual Justice)
- 세속 정의의 검(Sword of Temporal Justice)
10.3. 왕홀
비둘기 왕홀(위), 십자가 왕홀(아래) |
- 십자가 왕홀(Sovereign's Sceptre with Cross) - 세계에서 가장 컸던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컬리넌 I[50]이 왕홀의 꼭대기 부분에 부착되어 있다.
- 비둘기 왕홀(Sovereign's Sceptre with Dove) -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장식된 왕홀.
10.4. 옥좌
에드워드 왕의 옥좌 |
- 에드워드 왕의 옥좌(King Edward's Chair) - 성 에드워드의 옥좌(St Edward's Chair)라고도 한다. 이 옥좌는 본래 스코틀랜드 국왕들이 즉위식 때 그 위에 앉아 왕관을 수여받는 식으로 사용되어 스코틀랜드의 왕권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성물인 운명의 돌에서 유래했다. 1296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고 그 전리품으로서 운명의 돌을 잉글랜드로 가져와서 스코틀랜드를 정복하여 그 왕위를 이어받았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이전의 스코틀랜드 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운명의 돌 위에서 대관식을 치르려고 옥좌 바닥 아래에 운명의 돌을 넣어서 앉을 수 있게 할 용도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스코틀랜드 국왕인 제임스 1세가 동군연합으로 잉글랜드 왕위까지 획득하면서 두 왕위가 합쳐져서 현재의 영국 국왕의 왕위가 탄생했고 현재의 영국 왕실도 스코틀랜드 왕가인 스튜어트 왕조의 혈통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어찌보면 다시 주인에게 돌아간 셈이 되었다. 현재는 운명의 돌 자체는 스코틀랜드에 돌려주었으며 영국 국왕의 대관식 때만 돌을 일시적으로 가져와서 옥좌 바닥 아래 수납공간에 넣어서 대관식을 치른 후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운명의 돌 참조.
11. 역대 영국 국왕 목록
11.1.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동군연합
잉글랜드 왕국의 군주들에 대한 내용은 잉글랜드 국왕 문서
, 스코틀랜드 왕국의 군주들에 대한 내용은 스코틀랜드 국왕 문서
참고하십시오.<rowcolor=#fff> 이름 | 왕조 | 재위 기간 | 권리 | 비고 |
제임스 1세 | 스튜어트 | 1603 ~ 1625 | 헨리 7세의 외증외현손자.[51] | [52] |
찰스 1세 | 스튜어트 | 1625 ~ 1649 | 제임스 1세의 차남.[53] | [54] |
공위시대(Interregnum) | 1649 ~ 1660 | - | [55] | |
찰스 2세 | 스튜어트 | 1660 ~ 1686 | 찰스 1세의 차남.[56] | [57] |
제임스 2세 | 스튜어트 | 1685 ~ 1688 | 찰스 1세의 3남. | [58] |
메리 2세 | 스튜어트 | 1689 ~ 1694 | 제임스 2세의 장녀. | [59] |
윌리엄 3세 | 오라녀나사우 | 1689 ~ 1702 | 찰스 1세의 외손자.[60] | [61] |
앤 | 스튜어트 | 1702 ~ 1714 | 제임스 2세의 차녀. | [62] |
11.1.1. 잉글랜드 연방의 호국경
잉글랜드 연방(Commonwealth of England)이 세워진 곳은 잉글랜드인데, 언약도 성립에 따라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도 흡수해 모두 호국경을 국가지도자로 옹립하고 국호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 연방(Commonwealth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이 되었다. 이들은 엄밀히 말하면 왕이 아닌 호국경으로서 통치했으나 정보 전달을 위해 본 문서에 같이 기재한다.<rowcolor=#fff> 이름 | 재위 기간 | 비고 |
올리버 크롬웰 | 1653 ~ 1658 | |
리처드 크롬웰 | 1658 ~ 1659 |
11.2.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영국 국왕
<rowcolor=#fff> 이름 | 왕조 | 재위 기간 | 권리 | 비고 |
앤 Anne (1665 ~ 1714) | 스튜어트 | 1702년 3월 8일 ~ 1714년 8월 1일 (12년 146일) | 제임스 2세의 차녀.[63] | |
조지 1세 George I 조지 루이스 (1660 ~ 1727) | 하노버 | 1714년 8월 1일 ~ 1727년 6월 11일 (12년 318일) | 제임스 1세의 외외증손자.[64] | |
조지 2세 George II 조지 어거스터스 (1683 ~ 1760) | 1727년 6월 11일 ~ 1760년 10월 25일 (33년 146일) | 조지 1세의 장남. | ||
조지 3세 George III 조지 윌리엄 프레더릭 (1738 ~ 1820) | 1760년 10월 25일 ~ 1820년 1월 29일 (59년 110일) | 조지 2세의 손자.[65] | [66][67] | |
조지 4세 George IV 조지 오거스터스 프레더릭 (1762 ~ 1830) | 1820년 1월 29일 ~ 1830년 6월 26일 (10년 152일) | 조지 3세의 장남. | ||
윌리엄 4세 William IV 윌리엄 헨리 (1765 ~ 1837) | 1830년 6월 26일 ~ 1837년 6월 20일 (6년 359일) | 조지 3세의 3남.[68] | [69] | |
빅토리아 Victoria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1819 ~ 1901) | 1837년 6월 20일 ~ 1901년 01월 22일 (63년 216일) | 조지 3세의 손녀.[70] | ||
에드워드 7세 Edward VII 앨버트 에드워드 (1841 ~ 1910) | 작센코부르크고타 | 1901년 1월 22일 ~ 1910년 5월 6일 (9년 104일) | 빅토리아의 장남. | |
조지 5세 George V 조지 프레더릭 어니스트 앨버트 (1865 ~ 1936) | 1910년 5월 6일 ~ 1936년 1월 20일 (25년 259일) | 에드워드 7세의 차남.[71] | [72][73] | |
윈저 | ||||
에드워드 8세 Edward VIII 에드워드 앨버트 크리스천 조지 앤드루 패트릭 데이비드 (1894 ~ 1972) | 1936년 1월 20일 ~ 1936년 12월 11일 (327일) | 조지 5세의 장남. | [74] | |
조지 6세 George VI 앨버트 프레데릭 아서 조지 (1895 ~ 1952) | 1936년 12월 11일 ~ 1952년 2월 6일 (15년 61일) | 조지 5세의 차남.[75] | [76] | |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1926 ~ 2022) |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70년 214일) | 조지 6세의 장녀. | [77] | |
찰스 3세 Charles III 찰스 필립 아서 조지 (1948 ~ ) | 2022년 9월 8일 ~ 현재 | 엘리자베스 2세의 장남. | [78] |
12. 기타
- 영국 국왕은 실제 생일과 관계없이 6월 두번째 토요일에 공식 생일 행사와 열병식을 한다. 조지 2세부터 시작된 전통.
- 태정태세문단세처럼 역대 국왕을 외우는 문구가 있다.
Willie Willie Harry Stee
Harry Dick John Harry three;
One two three Neds, Richard two
Harrys four five six ... then who?
Edwards four five, Dick the bad,
Harrys (twain),VII VIII Ned six (the lad);Mary, Bessie, James you ken,
Then Charlie, Charlie, James again...Will and Mary, Anna Gloria,
Georges four,I II III IV Will four, Victoria;
Edward seven next, and then
Came George the fifth in nineteen ten;
Ned the eighth soon abdicated Then George six was coronated;
After which Elizabeth
And that's all folks until her death.
윌리 윌리 해리 스티
해리 딕 존 해리 3;
하나 둘 셋 네즈, 리차드 둘
해리 4 5 6 ... 그럼 누구?
에드워즈 넷다섯, 나쁜 딕,
해리(두번), VII VIII 네드 six(소년), 메리, 베시, 제임스 you ken,
그 다음에는 찰리, 찰리, 제임스...윌과 메리, 안나 글로리아,
조지스 넷,I II III IV 윌 4, 빅토리아;
Edward Seven 다음은
1910년에 5번째로 George가.
8세 네드가 곧 퇴위하고 조지 6세가 대관식.
그 후 엘리자베스
그것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모두들 마찬가지.
(해석)
윌리엄 1세 윌리엄 2세 헨리 1세 스티븐 1세
헨리 2세 리처드 1세 존 왕 헨리 3세
에드워드 1세, 에드워드 2세, 에드워드 3세 리처드 2세
헨리 4세 헨리 5세 헨리 6세
에드워드 4세 에드워드 5세 리처드 3세[79]
헨리 7세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 제임스 1세
찰스 1세 찰스 2세 제임스 2세 윌리엄 3세&메리 2세, 앤 여왕
조지 1세 조지 2세 조지 3세 조지 4세 윌리엄 4세 빅토리아 여왕
에드워드 7세 조지 5세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
Harry Dick John Harry three;
One two three Neds, Richard two
Harrys four five six ... then who?
Edwards four five, Dick the bad,
Harrys (twain),VII VIII Ned six (the lad);Mary, Bessie, James you ken,
Then Charlie, Charlie, James again...Will and Mary, Anna Gloria,
Georges four,I II III IV Will four, Victoria;
Edward seven next, and then
Came George the fifth in nineteen ten;
Ned the eighth soon abdicated Then George six was coronated;
After which Elizabeth
And that's all folks until her death.
윌리 윌리 해리 스티
해리 딕 존 해리 3;
하나 둘 셋 네즈, 리차드 둘
해리 4 5 6 ... 그럼 누구?
에드워즈 넷다섯, 나쁜 딕,
해리(두번), VII VIII 네드 six(소년), 메리, 베시, 제임스 you ken,
그 다음에는 찰리, 찰리, 제임스...윌과 메리, 안나 글로리아,
조지스 넷,I II III IV 윌 4, 빅토리아;
Edward Seven 다음은
1910년에 5번째로 George가.
8세 네드가 곧 퇴위하고 조지 6세가 대관식.
그 후 엘리자베스
그것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모두들 마찬가지.
(해석)
윌리엄 1세 윌리엄 2세 헨리 1세 스티븐 1세
헨리 2세 리처드 1세 존 왕 헨리 3세
에드워드 1세, 에드워드 2세, 에드워드 3세 리처드 2세
헨리 4세 헨리 5세 헨리 6세
에드워드 4세 에드워드 5세 리처드 3세[79]
헨리 7세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 제임스 1세
찰스 1세 찰스 2세 제임스 2세 윌리엄 3세&메리 2세, 앤 여왕
조지 1세 조지 2세 조지 3세 조지 4세 윌리엄 4세 빅토리아 여왕
에드워드 7세 조지 5세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
13. 장수한 군주들 순위
이름 | 국가 | 출생 | 사망 | 나이 |
엘리자베스 2세 | 영국 | 1926년 4월 21일 | 2022년 9월 8일 | 96세 |
빅토리아 여왕 | 영국 | 1819년 5월 24일 | 1901년 1월 22일 | 81세 7개월 29일 |
조지 3세 | 영국 | 1738년 6월 4일 | 1820년 1월 29일 | 81세 7개월 25일 |
에드워드 8세 | 영국 | 1894년 6월 23일 | 1972년 5월 28일 | 77세 |
조지 2세 | 영국 | 1683년 10월 30일 | 1760년 10월 25일 | 76세 11개월 |
찰스 3세 | 영국 | 1948년 11월 14일 | - | 현 [age(1948-11-14)]세 |
에드거 2세 | 잉글랜드 | 1051년 | 1126년 | 75세 |
로버트 2세 | 스코틀랜드 | 1316년 3월 2일 | 1390년 4월 19일 | 74세 |
윌리엄 4세 | 영국 | 1765년 8월 21일 | 1837년 6월 19일 | 71세 |
조지 5세 | 영국 | 1865년 6월 3일 | 1936년 1월 30일 | 70세 |
엘리자베스 1세 | 잉글랜드 | 1533년 9월 7일 | 1603년 3월 24일 | 69세 |
에드워드 7세 | 영국 | 1841년 11월 9일 | 1910년 5월 6일 | 68세 5개월 |
에드워드 1세 | 잉글랜드 | 1239년 6월 17일 | 1307년 7월 7일 | 68세 20일 |
로버트 3세 | 스코틀랜드 | 1337년 | 1406년 4월 4일 | 68세 |
제임스 2세 | 동군연합 | 1633년 10월 24일 | 1701년 9월 16일 | 67세 10개월 |
조지 4세 | 영국 | 1762년 8월 12일 | 1830년 6월 26일 | 67세 9개월 |
조지 1세 | 영국 | 1660년 5월 28일 | 1727년 6월 11일 | 67세 14일 |
헨리 1세 | 잉글랜드 | 1068년 | 1135년 12월 1일 | 67세 ?개월 |
마틸다(잉글랜드) | 잉글랜드 | 1102년 2월 7일 | 1167년 9월 10일 | 65세 7개월 |
헨리 3세 | 잉글랜드 | 1207년 10월 1일 | 1272년 11월 16일 | 65세 1개월 |
에그버트 | 웨식스 | 771년/775년 | 839년 | 64-68세 |
에드워드 3세 | 잉글랜드 | 1313년 11월 13일 | 1377년 6월 21일 | 64세 |
말 콜룸 3세 | 스코틀랜드 | 1031년 | 1093년 | 62세 |
참회왕 에드워드 | 잉글랜드 | 1003년에서 1005년 사이 | 1066년 1월 5일 | 61-63세 |
제임스 1세 | 동군연합 | 1566년 6월 19일 | 1625년 3월 27일 | 58세 |
스티븐 왕 | 잉글랜드 | 1092년/1096년 | 1154년 10월 25일 | 57-62세 |
윌리엄 1세 | 잉글랜드 | 1028년 | 1087년 9월 9일 | 57-58세 |
이네 | 웨식스 | 670년 | 726년 이후 | 56세 이상 |
헨리 2세 | 잉글랜드 | 1133년 3월 5일 | 1189년 7월 6일 | 56세 4개월 |
조지 6세 | 영국 | 1895년 12월 14일 | 1952년 2월 6일 | 56세 1개월 |
헨리 8세 | 잉글랜드 | 1491년 6월 28일 | 1547년 1월 28일 | 55세 |
로버트 1세 | 스코틀랜드 | 1274년 | 1329년 | 55세 |
찰스 2세 | 동군연합 | 1630년 5월 29일 | 1685년 2월 6일 | 54세 |
헨리 7세 | 잉글랜드 | 1457년 1월 28일 | 1509년 4월 21일 | 52세 |
윌리엄 3세 | 동군연합 | 1650년 11월 8일 | 1702년 3월 8일 | 51세 |
스벤 트베스케그 | 잉글랜드 | 963년 4월 17일 | 1014년 2월 3일 | 50세 9개월 |
대 에드워드 | 웨식스 | 874년 | 924년 7월 17일 | 50세 |
알프레드 대왕 | 웨식스 | 849년 | 899년 10월 26일 | 50세 |
애설레드 2세 | 잉글랜드 | 966년에서 968년 사이 | 1016년 4월 23일 | 49-50세 |
존 왕 | 잉글랜드 | 1166년 12월 24일 | 1216년 10월 19일 | 49세 9개월 |
앤 여왕 | 영국 | 1665년 2월 6일 | 1714년 8월 1일 | 49세 5개월 26일 |
헨리 6세 | 잉글랜드 | 1421년 12월 6일 | 1471년 5월 24일 | 49세 5개월 18일 |
찰스 1세 | 동군연합 | 1600년 11월 9일 | 1649년 1월 30일 | 48세 |
키나드 1세 | 스코틀랜드 | 810년 | 858년 | 48세 |
데이비드 2세 | 스코틀랜드 | 1324년 3월 5일 | 1371년 2월 22일 | 46세 11개월 |
헨리 4세 | 잉글랜드 | 1367년 4월 | 1413년 3월 20일 | 45세 11개월 |
애설스탠 | 잉글랜드 | 894년 | 939년 10월 27일 | 45세 |
해럴드 2세 | 잉글랜드 | 1022년경 | 1066년 10월 14일 | 44-45세 |
크누트 대왕 | 잉글랜드 | 990년 | 1035년 11월 12일 | 44-45세 |
메리 여왕(스코틀랜드) | 스코틀랜드 | 1542년 12월 8일 | 1587년 2월 8일 | 44세 |
윌리엄 2세 | 잉글랜드 | 1056년 | 1100년 8월 2일 | 43-44세 |
에드워드 2세 | 잉글랜드 | 1284년 4월 25일 | 1327년 9월 7일 | 43세 |
메리 1세 | 잉글랜드 | 1516년 2월 18일 | 1558년 11월 17일 | 42세 9개월 하루전 |
제임스 1세(스코틀랜드) | 스코틀랜드 | 1394년 7월 25일 | 1437년 2월 21일 | 42세 6개월 |
리처드 1세 | 잉글랜드 | 1157년 9월 8일 | 1199년 4월 6일 | 41세 |
에드워드 4세 | 잉글랜드 | 1442년 4월 28일 | 1483년 4월 9일 | 40세 11개월 |
제임스 4세 | 스코틀랜드 | 1473년 3월 17일 | 1513년 9월 9일 | 40세 5개월 |
제임스 3세 | 스코틀랜드 | 1451년 7월 10일 또는 1452년 5월 10일 | 1488년 6월 11일 | 36세 |
헨리 5세 | 잉글랜드 | 1386년 9월 16일 | 1422년 8월 31일 | 35세 |
리처드 2세 | 잉글랜드 | 1367년 1월 6일 | 1400년 2월 14일 | 33세 |
리처드 3세 | 잉글랜드 | 1452년 10월 2일 | 1458년 8월 22일 | 32세 10개월 |
메리 2세 | 동군연합 | 1662년 4월 30일 | 1694년 12월 28일 | 32세 7개월 |
이드리드 | 잉글랜드 | 923년 | 955년 11월 23일 | 32세 ?개월 |
에드거 1세 | 잉글랜드 | 943년 혹은 944년 | 975년 7월 8일 | 31-32세 |
제임스 5세 | 스코틀랜드 | 1512년 4월 10일 | 1542년 12월 14일 | 30세 |
캐드왈라 | 웨식스 | 659년 | 689년 | 30세 |
제임스 2세(스코틀랜드) | 스코틀랜드 | 1430년 10월 16일 | 1460년 8월 3일 | 29세 9개월 |
애설버트 | 웨식스 | 836년경 | 865년 가을 | 29세 |
에드먼드 2세 | 잉글랜드 | 990년경 | 1016년 11월 30일 | 26세 |
애설볼드 | 웨식스 | 834년경 | 860년 12월 20일 | 26세 |
해럴드 1세 | 잉글랜드 | 1015년 1월 | 1040년 3월 17일 | 25세 2개월 |
에드먼드 1세 | 잉글랜드 | 921년 | 946년 5월 26일 | 25세 |
애설레드 1세 | 웨식스 | 847년경 | 871년 4월 23일 | 23-24세 |
하레크누드 | 잉글랜드 | 1018년 | 1042년 6월 8일 | 23-24세 |
이드위그 | 잉글랜드 | 941년경 | 959년 10월 1일 | 18-19세 |
제인 그레이 | 잉글랜드 | 1536년/1537년 | 1554년 2월 12일 | 16-17세 |
순교왕 에드워드 | 잉글랜드 | 962년경 | 978년 3월 18일 | 15-16세 |
에드워드 6세 | 잉글랜드 | 1537년 10월 12일 | 1553년 10월 15일 | 15세 |
에드워드 5세 | 잉글랜드 | 1470년 11월 2일 | 1483년 | 13세 추정 |
마르그레트 에이릭스도티르 | 스코틀랜드 | 1283년 | 1290년 | 7세 |
14.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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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생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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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왕의 공식 거주지는 버킹엄 궁전이지만, 현재 찰스 3세 부부는 왕세자 시절 관저인 클래런스 하우스에 거주 중이다. 버킹엄 궁전의 대규모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향후에는 아예 클래런스 하우스를 국왕의 공식 거주지로 지정하고, 버킹엄 궁전은 왕실 본부 및 박물관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도 말년에는 윈저 성과 스코틀랜드 밸모럴 성에서 거주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식적인 행사를 개최하거나 찰스 3세가 집무를 보고, 외빈들을 접견하는 공간으로는 버킹엄 궁전이 사용되고 있다.[2] 영국(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은 프랑스 영토(노르망디 공국) 안에서는 프랑스 국왕의 봉신이지만, 영국 안에서는 대등한 주권자였다.[3] 참고로 프랑스는 1870년까지 제국이었다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무너지면서 마지막 황제가 폐위되고 공화국이 되었다.[4] 영연방 왕국 18,700,000㎢, 러시아 17,125,191㎢. 단 1991년 소련 해체 직전 영연방 왕국의 면적은 소련(22,402,200㎢)보다는 작았다.[5] 당연하지만 영연방 왕국 국가들의 왕실 문장 역시 해당 국가의 국장으로 취급된다.[6] 이 당시에도 국왕의 자의적인 의사에 따라 후임 총리를 지명한 것이 아니라, 전임 총리의 추천에 따라 후임자를 임명했다. 예를 들어 1955년 엘리자베스 2세가 앤서니 이든을 총리로 임명할 때는 윈스턴 처칠 총리의 추천에 따라 임명했다.[7] 이때 여왕이 귀족 출신인 알렉 더글러스 흄을 총리로 임명한 것을 두고 정치적인 논란이 발생했다. 이후 여왕은 자발적으로 후임 총리 지명권을 포기했고, 재위 기간 내내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다.[8] 당시 폐지된 국왕대권을 의회 입법을 통해 부활시키는 것이 가능한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사법부에서는 이 역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9] 원래 전통적인 해석은 국왕의 대권 행위에 대해 사법심사를 청할 수 없었으나 1984년 공직자 노조와 공무장관의 판례에 따라 하원은 내각이 위임하여 사용하는 대권 행위에 대해 법원이 '법률에 의해 부여된 재량권 행사 방식을 검토할 수 있는 것처럼 특권이 부여한 재량권 행사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따라서 사건이 사법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해당 재량권이 정당해야 한다. 정당성 문제는 문제가 법원 재판에 적합한지 여부를 묻는 것이며 정당한 권한과 정당하지 않은 권한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지만 개념은 '광범위하게 해석'되었다.#[10] 칙령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새로이 범죄로 규정하여 처벌하는 것은 할 수 없단 뜻.[11] 영국에 파견되는 해외 대사들은 궁전을 방문해 국왕으로부터 신임장을 제정받아야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12] 따라서 왕실 내부에서 양육권 소송이 벌어질 경우 무조건 국왕이 승소하게 된다.[13] 사실 영국은 헌법이 없는 불문헌법 나라이기 때문에 입헌이란 말은 엄밀히 말하면 옳지 않다. 기사에서 말한 것과 같이 정확히는 불문헌법군주제(uncodified constitution monarchy) 혹은 영문 위키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헌법군주제와 절대군주제의 혼합(=영국식 군주제)이라고 설명하는게 좀 더 정확하다. 즉 국왕 대권으로 군주의 특권을 유지하고, 영국식 관습헌법에 의한 웨스트 민스터식 의회 내각제 시스템과 입헌적 틀을 유지하는 것이다.[14] 원래 반역죄에 해당하는 법은 1351년 이전에도 원안이 되는 법이 있었다.# 이후 1661년의 선동법과 1795년의 반역법이 있었으며 이때는 최대 사형이었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사형을 내리길 꺼렸으며 이는 점점 해외 식민지 추방형으로 감해졌다. 1868년 사형을 점점 감하던 시기 해외 식민지 추방형은 폐지되고 중범죄로 축소됐으며 종신형으로 최대형이 감해졌다.[15] 물론 이런 반역혐의에 대해선 실제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공화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공화파는 평화적인 군주제 폐지 논의도 처벌하는 이 법에 대해 1998년 인권법에 어긋난다고 2001년 소송을 했으나 법무부 장관에게 이런 소송은 불필요하다며 일언지하에 기각됐다. 이 케이스는 2003년 상원으로 넘어갔으나 상원은 만장일치로 소송이 불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영국의 상임항소법관인 스타인 경은 이 부분이 현대에 들어 맞지는 않다고 인정을 하면서도, 법원은 법령을 일소하도록 의회를 선동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 법으로 마지막 기소가 된 사례는 1972년 IRA대원들이 기소된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좀 더 작은 형으로 감형됐다. 즉 실제로 언제든지 기소가 가능한 살아있는 법이다.##[16] 다만 국왕이나 왕실의 폭정, 만행, 스캔들로 인해 군주제가 민심을 잃어 여론이 크게 변화하여 공화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고 대다수의 영국민이 공화정 전환을 원한다면, 국민투표를 통해 새로운 성문헌법을 제정하고 개헌을 통해 반역중죄법을 무력화하고 군주제를 폐지하여 공화정 전환이 가능할 수도 있다. 물론 왕실을 폐지하고 국가 체제를 바꾸는 이런 공화혁명의 상황이 진짜로 실행되려면 민심의 향방과 왕실을 지지하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반응, 상하원을 비롯한 의회가 왕실폐지를 통과시키는 상황, 이에 반드시 필요한 국민투표의 통과, 영연방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과거 혁명 상황에서도 저항이 있었던 왕당파의 반응을 비롯한 여러가지 까다로운 제약이 많을 것이다.#[17] 다만 만약 국왕이 폭정을 저지르거나 공정성과 이성의 관습법적 허가 없이 부당한 만행을 저지른다면 청교도 혁명과 명예 혁명의 선례에 따라 심판은 가능할 것이다. 존 로크가 <시민정부론>에서 말했지만, 국왕이 국민의 생명, 재산, 자유를 침해하면 국민은 이에 맞서 시민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명예혁명으로 인한 권리장전에서 이를 구체화하였다. 국왕이 국민의 기본권을 적법한 절차 없이 말살하려 든다면 계약 파기이므로, 혁명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자체를 의회와 언론, 국민이 견제하고 국왕 스스로 조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18] 인도 독립 전에는 영국 국왕이 '인도 황제' 칭호를 썼지만 독립 후에는 인도 황제 칭호를 폐지하고 3년 동안 캐나다 호주 등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국왕의 칭호를 썼다.[19] Head of the British Commonwealth나 Head of the Commonwealth of Nations 식으로 적지는 않는다. 그냥 Head of the Commonwealth가 정식 칭호이다.[20] 호주도 1973년 이전까지는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영국과 호주의 여왕'(엘리자베스 2세 재위 당시)이란 칭호를 썼으나 1973년에 독자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칭호에서 영국이란 단어를 빼버렸다.[21] 뉴질랜드는 1974년에 칭호에서 영국이란 단어를 빼버렸으며,Royal Titles Act 1974 캐나다는 찰스 3세의 즉위 이후 법률안 개정을 통해 공식 칭호를 바꿨다.[22] 헨리 8세가 교황 레오 10세에게 받은 칭호로 엄밀히 말하면 종교개혁 이후에 기존 칭호를 변용한 것.[23]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모두 대관식이 폐지되었지만, 영국만 현대까지 대관식을 계속 치르고 있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대관식은 성공회 의식으로서 국왕이 국교회의 정당한 통치자로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있다.[24] 잉글랜드 국교회에는 2개 관구 아래 42개의 교구가 있다. 자세한 정보는 분류:잉글랜드 국교회 참조.[25] 이 로열 레드 박스가 대한민국의 상황으로 비유한다면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던 왕에게 올리는 상소(上疏)라고 생각하면 된다.[26] 때문에 국왕은 휴가지에서도 국정 업무를 봐야한다.[27] 이 자리에서 국왕과 총리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는 자세히 공개된 적이 한 번도 없다.[28] 애초에 접견에는 총리 및 장관과 국왕만 배석하기 때문에 총리나 장관이 언론에 공개적으로 국왕의 발언에 대해 밝히지 않는 이상 알려질 일이 없다.[29] 이 때문인지 지금까지 왕실 내부에서 양육권 소송이 진행된 사례는 한 번도 없으며, 이혼이 진행될 때도 자녀 양육권은 공동으로 가졌다.[30] 심지어 국립 문서기록 보관서에 보관되어 있는 문건도 국왕이 요청하면 비공개로 처리하거나 삭제해야 한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2세가 고모 프린세스 로열 메리의 유언장을 없애달라고 요청해 유언장을 비공개 처리한 적이 있으며, 직원들의 관련 회의 기록까지 모두 삭제했다.[31] 이름은 대성당이지만 현재는 스코틀랜드 교회 소속이다. 옛날엔 가톨릭 소속이었다.[32] 과거 스코틀랜드 왕위가 통합되기 이전에는 스코틀랜드 대관식이 따로 치러지기도 했으나, 스코틀랜드 왕위가 통합된 이후 폐지되었다.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 봉헌식 역시 1953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계기로 부활한 것이다.[33] 영어로는 이런 법적 시각에서의 국왕을 Crown으로 칭한다.[34] 왕실 의전차량의 소유권은 크라운 에스테이트가 갖고 있지만, 국왕이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차량은 사유재산으로 간주된다. 현재 찰스 3세는 23대에 달하는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다.[35] 엘리자베스 2세가 경주마 수집이 취미였던 관계로 여왕의 재위 기간동안 왕실 경주마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났으며, 최소 70여마리의 경주마를 소유하고 있고 가치는 최소 2700만파운드(약 444억원)로 추정된다.[36] 다만 왕위계승자에게 상속된 경우에 한해서만 상속세가 면제되며, 나머지 자녀들은 일반인과 동일하게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재산이 왕위계승자에게 상속되고 있다. 현재 왕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저택들 역시 대부분은 서류상으로 국왕의 자산이며, 왕족들은 이를 장기 임대해 입주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37] 국왕 즉위 이후 열리는 추밀원 즉위 심의 회의에서 해당 선서문을 낭독한다.[38]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체제 성립 이후 생전 퇴위한 국왕은 에드워드 8세가 유일하다. 그러나 에드워드 8세는 정말 특수한 사례였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퇴위라고 할 수가 없다. 때문에 역대 영국 국왕들은 생전 퇴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도 고령으로 인해 생전 퇴위설이 여러 차례 나왔음에도 퇴위하지 않고 끝까지 왕위를 유지했다.[39] 이 법칙이 폐지되기 전에 프린세스 로열 앤의 아들 피터 필립스가 가톨릭 신자 어텀 켈리와 약혼해 혼인하면 계승권을 박탈당할 뻔했으나, 켈리가 결혼 전에 성공회로 개종해, 계승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40] 국왕이 퇴위할 경우에는 재위 중이었던 국왕이 퇴위 문서에 서명하는 순간부터 왕위 계승의 효력이 발생한다.[41]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한지 8개월이 지난 후 대관식을 거행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는 조지 6세가 사망한 후 무려 1년 4개월이 지나서야 대관식을 치렀다.[42] 현재 왕위 계승 서열을 기준으로 하면 웨일스의 조지 공자와 웨일스의 샬럿 공녀, 웨일스의 루이 공자, 서식스의 아치 공자는 결혼을 할 때 국왕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43] 그 이전에는 별다른 규칙 없이 섭정을 지정할 때마다 섭정법을 새로 재정해왔다. 조지 3세 재위 당시 조지 4세가 장기간 섭정으로 통치할 때도 섭정법을 새로 제정하는 방식으로 섭정을 지정했다. 하지만, 에드워드 8세의 퇴위를 겪으면서 섭정 지정 규칙의 필요성이 커지게 되었고, 조지 6세가 즉위한 직후 섭정 지정 규칙을 담은 1937년 섭정법이 만들어졌다.[44] 엘리자베스 2세는 재위 초기인 1953년에 섭정법을 새로 재정해 여왕이 사망하거나 국왕으로서 직무 수행이 불가능할 경우, 부군인 필립 공이 왕세자가 성인이 될때까지 섭정으로 임명되어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찰스 3세가 성인이 되면서 해당 조항은 자동적으로 효력이 사라졌다. 또한 이 섭정법을 통해 왕대비로 물러나있던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에게도 섭정 지위를 다시 부여했는데, 엘리자베스 2세 재위 초기에는 여왕 부부가 해외 순방을 나가는 경우가 많아 왕대비가 국왕 업무를 대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역시 2002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이 사망하면서 효력을 잃었고, 향후 카밀라 왕비가 왕대비가 된 후 섭정이 되려면 웨일스 공 윌리엄이 섭정법을 다시 제정해야 된다.[45] 해리 왕자와 앤드루 왕자는 사실상 섭정으로서 직무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며, 본인의 즉위로 섭정 자리에 공석이 생긴 것을 고려한 것이다.[46] 하지만 이 역시 국왕이 성인이 되기 이전까지에 한해서 적용된다. 국왕이 성인이 되면 섭정 자격이 박탈되며, 이후 섭정이 되려면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사례처럼 섭정법을 다시 재정해야 된다.[47] 현재의 섭정법 재정 이전에는 조지 3세 말년인 1811년에서 1820년까지 총 9년간 조지 4세가 섭정이 되어 장기간 통치한 경우가 있다. 아예 이 시기를 섭정시대라고 부를 정도.[48] 엘리자베스 2세 말년에 퇴위의 대안으로 찰스 3세를 섭정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언론을 통해 거론되기도 했으나, 결국 섭정을 거치지 않고 찰스 3세가 바로 즉위했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2세 사후 발간된 전기에 따르면, 당시 왕실 관계자들이 찰스 3세를 섭정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긴 했으나 당사자인 찰스 3세가 부담을 느껴 거부하는 바람에 섭정 임명이 무산되었다고 한다.[49] 특히 이 시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였기 때문에 왕실 측에서 항상 조지 6세가 적군에 의해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상황을 대비하고 있어야 했다.[50] 1992년 골든 주빌리 다이아몬드(현재 태국 국왕 소유)가 세공되기 전까지는 컬리넌 I이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였다.[51] 헨리 7세의 외손자의 외손자로, 선왕인 엘리자베스 1세의 고종사촌 오빠 제임스 5세의 외손자.[52]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6세.[53] 형은 요절.[54] 청교도 혁명으로 인해 폐위되어 영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처형됨.[55] 영국에서 찰스 1세 처형 후 찰스 2세가 복위하기 전까지 기간을 일컫는 말.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잉글랜드 연방 단락 참조.[56] 형은 요절. 사실상 장남.[57] 왕정복고.[58] 명예혁명으로 폐위됨.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7세.[59] 윌리엄 3세와 공동으로 재위.[60] 동시에 메리 2세(찰스 1세의 친손녀)의 남편. 명예혁명으로 메리 2세와 함께 추대됨.[61] 1694년까지는 메리 2세와 공동으로 재위. 스코틀랜드에서는 윌리엄 2세.[62] 1707년 연합법 발효 이후로는 그레이트브리튼의 여왕으로서 통치.[63] 메리 2세의 동생.[64] 정확히는 제임스 1세의 딸, 엘리자베스 - 엘리자베스의 딸, 조피(소피아) - 조피의 아들이다. 조지 1세보다 앤 여왕과 더 가까운 왕족들이 50여명 있었지만, 모두 가톨릭이라서 조지 1세가 이어받았다.[65] 조지 2세의 장남 프레데릭이 사망하여, 프레데릭의 아들인 조지가 물려받음.[66] 1801년부로 "그레이트 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67] 역대 영국의 남성 군주 중에서 최장수, 최장 재위 군주.[68] 조지 4세의 동생. 조지 4세의 딸과 둘째 형은 사망.[69] 영국-하노버 동군연합의 마지막 군주이자 최고령에 즉위한 국왕(즉위할 당시 65세).[70] 윌리엄 4세의 조카. 조지 3세의 4남 에드워드의 딸. 윌리엄 4세의 두 딸이 요절.[71] 형 앨버트는 독감으로 사망.[72] 작센코부르크고타에서 개칭, 1922년부로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73] 둘이 외가쪽으로 사촌형제라서 그런지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 2세와는 일란성 쌍둥이 수준으로 외모가 동일하다.[74] 결혼을 위해 양위.[75] 에드워드 8세의 동생. 형으로부터 양위 받음.[76] 튜더 왕조 이후 최초로 순수 영국인과 결혼.[77] 현재 기준 영국 국왕 중 최장 재위 및 최장수 국왕.[78] 가장 늦은 나이에 즉위한 영국 국왕(73세).[79] 어린 에드워드 5세를 죽이고 왕에 오른 탓에 나쁜 왕으로 깎아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