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절대자 / 종교 지도자
참고: 모든 사람에게 대인배라는 것은 아니다. 당장 종교 충돌 문제나 행적문제로 인해 대인배로 보지 않는 사람이 꽤 되는 종교 지도자도 있기 때문이다. 짚고 넘어갈 부분은 대인배라는 단어는 비표준어일뿐 아니라 어원 자체가 의도한 의미와 뜻조차 맞지 않는 어그로 신조어이므로 인터넷공간 이외 실제 현실에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공자: 불문마[1]의 고사가 유명하다.
- 마하트마 간디
- 소크라테스 - 자신이 닭을 빚진 사람에게 기필코 대신 변상을 해달라고 사사될때 친구에게 당부하였다.
- 석가모니: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미륵보살을 포함한 모든 붓다들.
- 아리스토텔레스
- 예수 - 베드로의 흑역사를 거론 자체를 하지 않은 점은 대인배로 보일 수도 있다. 또한 사람에게 마귀가 들었을 때도 반쯤 구슬려서 보낸데다 동물에게 들어 갈 수 있게 해 주었고, 자신을 진실로 따르는 자들을 저버리진 않았다.
- 나자렛의 요셉
- 맹자
2. 단체 및 집단
- 독립운동가, 독립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 안위, 재산을 바치신 분들이시다. - 182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인들
브라질로부터 탄압받고 있던 우루과이를 독립시켜주기 위해 우루과이 대신 무려 2년 동안 전쟁을 치른 결과 브라질을 쓰러뜨리고 우루과이를 독립시켰다. - 6.25 전쟁에 전투병력을 파병한 16개 국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필리핀, 터키, 태국, 그리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총 1,930,330명 (연 인원), 의료 지원 5개국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총 2,168명 (연 인원) 등[출처] 한국전쟁 당시 독립한지 5년, 정부를 수립한 지 2년 밖에 되지 않은 나라를 위해 싸워준 모든 UN군 장병들과 국군 장병들.
- 1954년 월드컵의 축빠들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에서 한국이 헝가리에게 0 - 9로 무참히 패했다는 것에 처음에는 비웃었지만 당시 한국에 대한 내막을 듣고 나서는 태도가 돌변해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물건들을 한국 대표팀 숙소에 하나둘씩 기증했는데 이게 산더미처럼 쌓일 정도였다. 주로 통조림을 비롯한 각종 음식이나 양복, 청바지, 점퍼 등의 의류와 각종 생필품에 자국 현금까지 있었다. - 1962년 월드컵의 체코슬로바키아 팀
디펜딩 챔프 브라질과 조별 예선 2차전에서 승부를 겨루었다. 그 경기 전반 30분께에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던 펠레는 근육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경기를 지속할 수 없었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소푸스트[3], 포플야르, 랄라는 당시 축구계에 만연해 있던 상대 팀 에이스 부상 입히기 프로젝트에 동조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펠레를 공격하면 완전히 경기를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펠레를 위해 거친 플레이를 펼치지 않았고 펠레가 나갈 때까지 그들의 신사적인 플레이는 계속되었다. 또한 월드컵 결승에서 다시 브라질을 만나게 된 체코슬로바키아. 게다가 그 이전 경기인 4강전에서 펠레가 빠진 브라질의 공격을 책임지던 가린샤가 칠레 수비수를 걷어차서 퇴장을 당했다. 펠레에 가린샤까지 빠지면 체코슬로바키아가 더욱 쉽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들은 칠레 수비수들이 가린샤에게 악의적으로 반칙을 했다고 주장했고 그들이 오히려 앞서서 가린샤의 퇴장 철회를 FIFA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FIFA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고 가린샤는 결승에 뛸 수 있었다. 결과는 체코슬로바키아가 3대 1로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그들의 깨끗한 매너는 브라질의 우승 기록만큼이나 가치 있는 일이었다. -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조림가들
KBS 2013년 토요일에 방영되는 "다큐극장"에 의하면 당시에는 사재를 털어서 민둥산들을 숲으로 만드는 것이 지역 재산가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고 한다. 조림이 곧 애국이라는 생각으로 재산을 탈탈 털어 조림하는 게 돈 가진 사람이면 할 일로 인식되었다고. 얼마나 돈들여 얼마나 넓은 숲을 만들었는지가 자랑이었다고 한다. 녹화사업 당시 정부도 물론 대단히 기여했지만 이런 식으로 조림한 사유림도 상당하다. 괜히 아직까지 산림청에서 막대한 면적의 사유림들을 국유로 사들이는 게 아니다. - 국경 없는 의사회
-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자신들에게 들어올 보너스를 국가대표 훈련장 건립에 써 달라며 받지 않았다.
- 내부고발자 대다수
- 대한양궁협회
- 더블린 시티 램블러스: 아일랜드 포크 음악 그룹. 자기네들 홈페이지에다가 자기네 노래를 무료로 스트리밍으로 듣고 다운로드까지 받을 수 있도록 올려 놓았다!
- 몬티 파이선: 인터넷 시대가 당도하여 유튜브에 자신들의 영상을 녹화한 자료들이 올라오자 모두 삭제시켰지만, 고소를 전혀 하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유튜브에 계정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영상을 올려놓았다.
- 미들즈브러 FC
- 미라지 엔터테인먼트, 사이버프론트 코리아, AK커뮤니케이션즈
한국 오덕 업계 3대 석유왕.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수익성이 떨어지는 작품들만을 발매하고 있다. - 반크: 가입비를 토호쿠 대지진 피해 난민들에게 기부한다고 한다. 다만, 반달리즘과 과한 민족주의 등 논란이 많다.
- 볼보: 대부분의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3점식 안전벨트를 최초로 개발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을 위해 특허를 내지 않고 기술을 배포하였다.
- 변호사: 단, 어디까지나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변호사들 한정이며 권력에 충성하거나 돈에 미친 변호사들은 예외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어째 예외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 -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 사건 피해자들의 유족들: 자신들의 가족들이 흑인혐오적 범인에게 총에 맞아 사망했으나 그들은 법정에서 하나같이 범인에게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했다.
- 영화 연가시를 후원한 조아제약: 자신들이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에 스폰서를 해주고 이름을 빌려주었다. 대표님께서 정말 쿨하신 분일지도 모른다. 물론 자사의 약인 윈다졸의 판매량도 올랐으나 이 작품을 생각하면…
- 온게임넷
자사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의 VOD를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특히 켠김에 왕까지는 전편을 업로드하는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 자유 소프트웨어를 만든 사람들
- 자원봉사자
무슨 말이 더 필요한지? 봉사 점수를 노린 봉사활동과 취업 스펙을 위한 봉사활동 혹은 남이나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칭찬을 듣기위해서 등 봉사 자체에 의의를 두지 않은 활동일지라도 어쨌든 안 한 사람보다는 낫다. 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로 태안군에 모여든 국민들이라든지. - 장기기증자들
이름도 알리지 못하고[4], 보답도 구하지 못하고, 그저 생명을 생각하는 사람들(from AC재팬). 위의 자원봉사자야 잠깐 시간만 내면 되지만 장기기증자는 몸 한쪽을 떼주고도 보상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의 '기증자 및 유족에 대한 대우'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를 기증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다. - 장애소녀 제작진
제작기간 5년의 고퀄리티 동인게임을 무료로 배포했으며 돈 문제가 얽히면 나누기도 힘들고 불화만 생기니까 진짜 돈을 필요로 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하라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자레코
오락실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8방향 조이스틱은 자레코가 개발한 물건이다. 일반적인 상식이라면 특허를 신청해서 자사의 제품에만 사용하게끔 조치를 취했겠지만 아케이드 게임의 발전을 위해서 특허를 포기했다. - 체리츠
데뷔작부터 개념행위 실시. - 콜롬비아 축구팀 아틀레티코 나시오날
코파 수다메리카나 결승전 상대 팀인 샤페코엔시 선수단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자 추모의 의미로 해당 경기를 기권하고 대회 우승을 양보했다.[5] 그런데 브라질 축구협회는 눈치 없게도 경기를 포기한 두 팀에게 승점 삭감과 벌금형을 내리는 찌질함(...)을 보여줬다. - EBS
2013년 2월 구글과 업무제휴 체결, 유튜브에 EBS 채널을 개설하여 EBS에서 제작한 거의 모든 컨텐츠를 올리는 대인배적인 행보를 보였다. 특히 10여 년이 지난 방송 중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했던 방송도 몽땅 다 유튜브에 올렸다. 다만, 일부 프로의 다시보기 서비스를 유료화했다는 점은 비판받고 있다. - 한국의 신궁 휴대용 대공 미사일 개발 당시 불곰사업으로 파견된 러시아 기술자들. 그들은 밤을 새워가며 격론을 벌였는데 핵심기술을 전수하지 않기 위해 일을 꾸민다고 생각했더니 오히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우리 기술을 더 잘 가르쳐줄 수 있을까 하는 데 의견이 갈려서 논쟁을 한 것이었다.
- 대한민국의 군인들(사병 한정.)
턱없이 낮은 봉급, 최저수준의 복지, 노후화된 장비와 있으나 마나한 의료시설들, 내무부조리, 남자만 복무한다는 점 등 온갖 나쁜 조건만을 등에 짊어지고도, 대한민국 사병들은 건군 이래로 계속 자신들의 젊음을 바치며 군복무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병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고 지금도 이들이 365일 밤낮없이 영토, 영해, 영공에서 우리의 적들을 경계하며 적의 도발이 오는 족족 격퇴하기에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것이다. - 대한민국 소방공무원들
매일 예방 및 안전 민원업무에 시달리며 출동 사이렌이 울리면 신속히 출동하여 동물 구조, 잠긴 문 따다주기, 벌집제거, 술 먹고 대짜로 뻗은(...) 주취자 병원에 실어주기 등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와 주는 히어로들. 언제나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밤낮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다. 착한 위키러라면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쓸데없는 일로 부르거나 장난전화를 거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그런데 딱히 한국 한정이 아니라 소방관이나 비슷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국가에 상관없이 훌륭한 인격자들이 많다. - 대한민국 경찰공무원들
매일 민생 치안 업무 및 긴급상황 대응을 맡으며 국민 안전의 최일선에서 술 취한 사람 싸움 말리기, 취객 집 데려다 주기, 치매 노인 집 찾아주기, 살인 & 강간 & 강도 & 절도 & 폭행 등등 강력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예방 및 수사, 사회적 약자 실종 방지 등등 지금 이 순간도 국민을 위해 두 발로 뛰는 히어로들로 언제나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밤낮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살 난동을 피우는 20대를 구하다 순직하기도 했다. 그러니 착한 위키러라면 제발 112로 은행나무를 턴다는 장난전화는 하지 말자. 요즘은 이런 거 징역행이다. 그러나 이런 경찰관들 사이에도 비도덕한 경찰들이 일부 있으며 고위 수뇌부로 올라갈수록 오히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선인을 찾기 힘들다. - 하얀 장미
- CD 프로젝트 RED
- CERN
WWW를 개발하고 수많은 토의를 한 끝에, 문서 한장으로 WWW를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어놓는 대인배 짓을 벌였으며, 이로 인해 WWW는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어 갔다. - 이야기네트워크
현재 제공하고 있는 무료 웹 호스팅이 용량, 트래픽이 무제한이다. 다만 내부적 문제가 있기는 한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 Study For Us HOSTING
사실상 이야기네트워크의 후신으로 모든상품이 무료다. 단 커뮤니티 활동에 따라 생기는 포인트로 결제해야 하지만. - FC 아우크스부르크
몇년 째 5골도 못넣고 있는 방출되어도 할말이 없는 지동원을 계속 주전으로 쓰고 있고 안도1면 교체로라도 쓰고 신뢰를 보내고 폼이 떨어진 윤석영을 영입하려하거나 마찬가지로 폼이떨어진 구자철을 영입하거나 한국선수를 유스 팀에 편입시키고 한국선수들에게 관심을 갖거나 테스트 기회를 주고 한국선수를 더영입하고 싶다고 밝히는등 한국선수들에 대해 신뢰감을 나타내 축구팬들에게 아욱국 대인배 보살 등의 칭호를 받았다. 유일하게 축구팬들이 까지않는 구단이다. 심지어 팬들과 감독도 보살인게 "한국 선수들이 부진한데도 괜찮다. 언젠가 그들은 잘할 거다. 그들은 우리팀의 핵심이다."라고 쉴드를 쳐준다. 더 대단한 것은 구자철을 영입할 때 마인츠에게 팀 최대이적료를 주었다. 물론 구자철은 이적료 이상으로 활약했다.
3. 개인
3.1. 국내
- 가그: 본인이 가장 믿고 따랐던 동료들이 한쪽 말만 듣고 일방적으로 가그를 손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다 좋은 사람들이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라며 그들을 용서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 가이코: 기본적으로 자신의 방송 멤버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그의 대표적인 일화로는 멤버 카시가 가이코의 유튜브 수익을 빼돌린 사건이 있다. 이 사건 때문에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스탭인 히류에게 일당을 제공하지 못했고 더구나 본인의 생계에 큰 피해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카시를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여 카시랑 상담도 많이했고 이후 카시에게 차비까지 얹어주었다. 하지만 카시는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돈까지 먹튀했다. 결국 멤버 전원의 만장일치된 의견에 부합해서 카시를 퇴출하기로 결정했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어떻게든 멤버에게 기회를 주고자하는 그의 넓은 아량이 돋보였다.
- 강호동: 방송에서는 우기기 및 동생들을 괴롭히는 못된 형의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동생들도 잘 챙겨주고 일반인들에게도 항상 바른 모습으로 대한다. 또한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유재석보다 뛰어나다는 질문에 재석이는 누구보다 뛰어난 동생이자 국민MC다. 나보다 재석이가 더 뛰어난 인물이다라고 평가할 정도로 겸손한 마음을 가졌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에게 안 좋은 게 죄다 나왔어도 끝까지 불평없이 맡았다.
- G-DRAGON: 자신의 제주도 카페에서 한 손님이 무려 3억 원의 샹들리에를 깨트렸는데도 수리비 3~40만 원만 달라고 했다. 제 아무리 돈을 많이 버는 지디라지만 그에게도 상당한 금액이다. 정작 그걸 깨트린 사람의 후기에는 오히려 카페 음료가 비싸다고 욕한다던가, 반성의 태도가 하나도 없이 적반하장 태도의 인간 쓰레기였다. 덤으로 태양의 팬이라서
그 태양이 지디 절친인데다행이라는 투로 SNS를 광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더 놀라운 건 해당 샹들리에는 전 세계에 단 50개 밖에 없는 한정품인데다 해당 구조물 밑에는 선인장 화분이 있었으며 그 위를 가로지르면서 사진 찍다 박살 난 거다. 또 출입 금지를 표시했는데 이를 보지 못했다고 되려 뻔뻔한 태도를 보였으며 수리비만 달라고 한 걸로 끝나서 다행이지 그가 아량이 넓지 않았다면... - 경리: 한 대학 축제에서 자신의 화보집 사진으로 음란 문구를 만들어서 소속사가 고소했지만 후에 경리 본인이 고소를 취하했다.
- 구대성 : 존경받을 인물
- 김병지: 감스트의 포병지 사건을 기억한다면...
- 김보성
- 김정렬: 10살 연상인 형님이 고참에게 폭행으로 숨졌을 때 국방부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유가족들에게 싸인을 빨리 해주면 국립묘지에 안장해주겠다고 해서 싸인을 받은 뒤 사망 원인을 구타로 인한 사망사고가 아닌 제초제를 먹고 자살했다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 그는 계속 소송을 걸어서 형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냈으며, 고참을 만났을 때 복수하기는커녕 그는 누명이 벗겨진 것만으로 만족하다며 용서해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김정렬은 형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며, 도대체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계속 소송을 걸었지만 계속 패소했다가 2006년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김성환씨의 사망원인을 밝혀냈고 당시 김성환을 폭행해서 사망에 이르게 한 고참을 찾아냈다. 이에 대해 그는 "나의 형님께서 돌아가신 이유만 밝히면 된다. 나의 형님이 자살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한다."고 말하며 가해자를 용서해줬다.
- 김경현
- 김광석: 김광석에 대하여 나쁜 말을 한 선후배들은 아무도 없었을 정도.
- 김국진
- 김규리: 김민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이후 김규리로 개명한 그 배우와는 다른 인물이다.
- 김기현
- 김남준: 제주도에서 배트맨복장으로 대리운전을 하면서 항상 봉사활동을 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제주배트맨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동창생들이 항상 위기에 처한 사람을 못보고 도와준 정의롭고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고 언급했다.
- 김새론
- 김선자: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천원식당을 운영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자신이 어려운 시절을 반영하여 취약계층(특히 빈곤층)을 생각해 천원식당을 열었다고. 물론 연쇄살인범인 김선자하고는 동명이인이다.
- 김마메 아프리카 BJ : 몇몇 타비제이 팬들이 비난하는 악플을 남겨도 드립식으로 넘기거나 용서해준다.
- 김성모: 김화백 명의의 만화의 경우 인터넷 짤방으로 쓰이는 컷들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공언, 김성모 만화는 얼마든지 짤방으로 쓸 수 있다.
- 김시진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 김수환
- 김연경: 대한민국 아니 세계 여자 배구의 에이스. 국대 경기는 필히 참석하시는 분
- 김연아: 대한민국이 낳은 불세출의 피겨여왕. 그녀의 아버지가 말하길 어떤 불리하거나 척박한 상황속에서도 절대 핑계를 대거나 누구 탓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치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에 그쳤지만 금메달에 연연하지 않고 러시아 심판을 원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며, 러시아를 쌍욕하는 팬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는 대인배스런 풍모를 보였다. 그리고 막장으로 유명한 한국빙상스포츠협회의 병크에도 불구하고 연습을 꾸준히 했고 CF활동도 활발한 경우도 봐도 충분히 대인배다. 평소 그녀의 별명 중에도 2010년 밴쿠버 대회 때 생긴 "대인배 김슨상"이란 말이 있다. 멘탈갑에 이어 2관왕.
- 김영인: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심영 역할을 맡으신 것으로 유명한 분으로 자신의 얼굴이 합성요소로 쓰이는것을 용인하였다는 점에서 심영물 팬들로부터 대인배 취급을 받고 있다.
- 김완선
- 김정화: 드라마 바람의 나라에 출연할 당시 싸이월드 방명록에 자신의 연기력을 비난하는 악플을 남긴 네티즌에게 '더...열심히 하겠습니다^^' 라는 답글을 달아주어 자신에게 악플을 남긴 네티즌을 용서했다.
- 김준엽: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전해지는 일화들을 보면 하나같이 따뜻한 인품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 김준영: 대인배라는 용어를 널리 퍼뜨린 1등 공신이다. 2007년 다음 배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가장 심한 역상성 종족전
응? 저프전이 제일 심하지 않나??에서 0:2에서 3:2로 역전 우승한 전무후무한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이머. 초반 몇 안 되는 유닛으로 치고받는 선수들과 정반대로 꾹 참고 엄청난 양을 (특히 최종 유닛인 울트라리스크, 즉 소떼를) 모으고 그 후반의 운영이 극에 달해있는 점에서 대인배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그가 대인배로 불린 데에는 게임 플레이 외에서 인간적 면모와 강인한 멘탈이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 온게임넷의 엄재경 해설위원이 그를 대인배가 아닌 대인 그 자체로 표현할 정도. 김준영 문서 참조. - 김용환
- 김우수 철가방 기부천사!
- 김진욱 전 야구 감독 : 두산 베어스 감독 시절에는 운영 측면에서 문제가 있어서 과도하게 까이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2013년 시즌 종료 뒤 두산의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주축 선수들의 트레이드 및 이적으로 인해 프런트의 횡포에 견디지 못하고 경질당하는 시점에서도 "코치진은 두산을 절대로 떠나지 말라"라는 말을 남기면서 팀을 떠나면서까지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대인배가 따로 없다. 오히려 2군 시절부터 김진욱의 밑에서 마음을 다잡고 뒤늦게나마 성장한 노경은이 2014년에 갑자기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kt wiz 시절엔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사퇴를 할때 구단에서 잔여연봉 지급차 기술자문직을 제안하였으나 민폐를 끼치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 김학철: 야인시대에서 조병옥 역할을 맡아 게이, M자탈모 등으로 많이 합성당했는데 물병옥시티 제작자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하고 많은 합성물을 알고 있다고 한다
- 김한수
- 김행균: 2003년 영등포역 열차운용팀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 열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했지만 정작 본인은 두 다리를 잃었다.[6] 하지만 그렇게 소중한 아이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한테 부모는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는데[7] 사람들이 그 부모에 대해 욕하는 과정에서 자신은 해야할 일을 했다며[8] 찾지 않겠다고 했다.[9] 그 후 역곡역의 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피부병이 심한데다 쥐덫에 걸려 한 쪽 다리가 불편한 고양이 다행이를 명예역장으로 키움으로써 다시 주목받았다. 사실 사고 이전에도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오셨다고 하며, 사고 이후 더욱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다. 뿐만 아니라, 2004 아테네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성화 봉송 주자로 뛴 것 외에도 다수 활동을 해왔다.
- 김현욱(야구): 팬카페도 있고 송진우와 같은 대인배 기질을 가진다.
- 노라조: 수십 개의 악플이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고소보다 친절하게 답변을 달아주어 악플러들을 오히려 당황하게 만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노라조/악플 대처 목록 참조.
- 노수신: 정미사화에 휘말려 진도로 귀양을 갔는데, 당시 진도의 수령인 홍인록(소윤파)이 노수신의 일거수일투족에 트집을 잡아 귀양살이가 끝날 때까지 온갖 횡포를 부렸다. 윤원형 일파가 모조리 숙청되면서 노수신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복직되었고 홍인록은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생사가 위태로운 상황에 몰렸으나, 노수신은 과거의 일을 잊고 홍인록을 적극 등용할 것을 왕에게 청했다. 결국 홍인록은 노수신의 아량에 감격하여 개과천선하여 선정을 베푸는 목민관이 되었다고 한다.
- 노홍철: 2007년 정신병자의 습격으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전치 몇 주의 중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정신병자가 자신을 공격할때도 끝까지 말로만 타일렀으며 밤에 이웃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위해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그가 경찰에 체포되는 와중에도 노홍철은 끝까지 그를 걱정했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그를 처벌하지 않았다.
- 단순
대표적인 이지트랜스 사용자 사전인 단순후커사전의 제작자. 사실상 국내 에로게 플레이어들이 거의 다 쓰는 사용자 사전을 제작하고 업로드하고 있지만 비상업적 목적에 한해 아무런 재배포와 수정에 제한이 없다. 적어도 2006년부터 계속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별다른 부심 없이 업데이트를 자주 못해 미안하다는 말까지 남겼다! 자기 사전의 구버전 기반의 모에후커사전이 만들어지고 미연시 갤러리에 해당 카페 회원들이 부심부린 끝에[10] 한 갤러가 단순사전 원 배포처인 드림하트에 사정을 설명하자 "안타깝고, 이지트랜스에 얹혀 있을 뿐인 자기 사전을 자랑하는건 부끄럽다"는 댓글을 남겼다.#
애초에 제작 슬로건이 "일어를 몰라도[11] 모두가 쉽게 미연시를 할 수 있도록!"이기에 이런 태도를 드러내는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그야말로 에로게 번역 툴에서의 봉사자.일부 아랄트랜스 코드 추출자들이 부심을 드러내는 것과 대비된다.[12] - 도경완과 그의 부모님들: 이쪽 참조. 처가 상황이 막장인걸 알면서도 그걸 감당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 러너: 울산큰고래가 자신을 심하게 비방하고 욕했지만 용서해줬다. 심지어 방송이니 이해한다고 말했다!
- 러너교: 본인이 만든 오버워치 팀에 속한 팀원들 중 일부가 팀 전체 팬덤을 흔들 정도로 큰 문제를 일으켜도 다 받아주고,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기가 먼저 팬들 앞에서 머리 숙여 사과하는 등 웬만한 멘탈갑이어도 힘든 일들을 감내하고 팀을 이끌고 있다.
- 리쌍: 자기들 건물의 임차인인 서윤수에게 안 해줘도 되는 호의를 베풀어서 그를 배려해 주었다. 그런데 서윤수 이 사람은 그런 리쌍에게 거하게 뒤통수를 치고 언플하다가 평생까임권을 얻고 네티즌들에게 털렸다.
- 머독: 팬들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며 이미지 관리도 철저하기 때문에 별다른 논란거리가 없으며, 후원을 받을 때도 살갑게 대한다. 그러나 그의 과거 동료 방송인은 그와는 완벽하게 반대되는 행보를 걸어 평생까임권을 얻었다.
- 명동 한복판에서 삼겹살을 구워드신 네이트 뉴스 베플에 선정된 김X근, 조X석, 김X관 3인
- 류중일: 심판의 판정에도 거의 따지지 않으셨다.
- 문성민: 자신의 첫 시즌에 받을 수 있던 신인상 자격을 자신보다 두 살 아래 후배들에게 양보했다.[13]
- 배어진: 롤드컵 우승을 2번이나 좌절했음 에도 형제팀 삼성 갤럭시 화이트의 폰에게 자신의 점퍼를 주고 미련없는 모습을 보이며 졌음에도 커뮤니티에서 온갖 칭송을 받았다.
역시 장군님. - 박명수: 유명한 코미디언. 박명수는 방송 이미지완 달리 실제 생활에서 선행을 많이 하기로 유명하다. 유명한 사건으론 등록금 선행이 있는데, 치킨집을 하던 시절에 아르바이트 생이 등록금 문제로 복학을 미루자 "공부는 때가 있는 법인데 미루지 마라, 성공해서 갚아라"라며 등록금을 준 적도 있었다. 이 후 그 아르바이트 생이 취직해서 돈을 갚으러 오자 "괜히 허세 부리지 말고 지금은 집에 보내 드려라"라며 돈을 받지 않았다고. 결국 그 아르바이트생은 박명수의 결혼식 때 축의금으로 갚았다고 한다. 그 외 다른 선행은 이 글을 참고하자. 그리고 방송내적으로도 일단 무한도전에서 돈 기부 관련 특집이 있으면 거의 돈 내는 사람은 박명수 당첨이다. 그런데도 박명수 본인은
카메라 앞에서만 불평하고불평 하나 하지 않고 다 낸다. - 박미선: 매번 벌어온 돈 까먹는 남편(...)때문에 대인배라 불리는 케이스. 다만, 이는 과장된 면이 있는데, 이봉원이 빚까지 지며 사업하다가 까먹은 돈들은 이봉원 자신이 10년 밤무대를 뛰면서 자력으로 갚았다. 사업했다가 망했다는 건 이봉원이 어디까지나 방송에서 자학개그로 써먹는거다. 그럼에도 아내 등골 빼먹는 남편이라는 오명을 써서 이봉원은 연예인은 평생 방송에만 나와야지 방송 안 나오면 노는 줄 안다고 푸념했다. 이에 대한 증거가 박미선 본인이 아침방송에서 가족여행 사진을 보여주고서 난 다시 태어나도 지금 남편과 결혼한다고 밝혔으며,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빚 갚을 때 나한테 돈 달라고 손 내밀지 않았다고 언급한다. 그런데 남편이 날 대놓고 등쳐먹는 놈처럼 오명을 써서 속상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겉보기에만 무심해보이지 비오는 날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꽃을 자기에게 선물해주는 작은 이벤트도 해준다고 하였다.
- 박승희: 소치 동계올림픽 500m 종목에서 앨리스 크리스티에게 걸려 넘어져 동메달에 그쳤을 때에도 오히려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말하며 크리스티를 걱정해 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 박수홍
- 박영섭: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당시 27명을 구조하셨던 선장님이다.
- 박용운
- 박운규: 인스파월드 찜질방 사장님으로 연평도 포격 사태로 인해 피난 온 연평도 주민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했는데 정부 지원도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경영난으로 2008년부터 경영 부진으로 10억원의 세금을 체납해서 위기에 몰려있는 상태에서도 말이다.
- 박원형: 조선 세종 때 정승으로, 자신에게 시로써 손님을 제대로 대하지 않음을 꾸짖은 소년 윤효순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자신의 사위로 들였는데, 당시 윤효순은 일개 녹사(서기)의 아들로 신분차이가 막대했다.
- 박일
- 박종훈: LG 트윈스의 전 감독. LG 역사상 최악의 해라 할 만한 2011년을 보내면서 야석, 돌종훈 등 온갖 굴욕적인 별명으로 미친 듯이 까였지만 시즌 후 팀의 온갖 막장스런 면모들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평가가 바뀌었다. 특히 이광용의 옐로우카드가 제대로 기름을 부었는데 선수, 코치, 프론트까지 아주 총체적으로 막장짓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옐로우카드에 나온 내용의 절반만 사실이라고 해도 박종훈 감독은 시즌 도중 깽판을 부리거나 감독직 때려치지 않고 시즌 끝까지 임기를 마친 것만으로도 대인배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다. 거기에다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 나온 내용도 LG 트윈스의 막장성을 다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인지라(...). 이제 박종훈은 야성. 즉 야구의 성인으로 불리고 있다.[14]
-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로, 억울한 약자들을 위해 수많은 재판을 맡아오면서도 정작 자신은 선임료를 하나도 받지 않아 변호사 사무실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르러 결국 스토리 펀딩으로 기사회생하신 위대한 변호사 분이시다!
- 박재영: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한 대인배.
- 박재홍: 평소 야구팬들로부터 인성이 좋지 못한 선수라는 편견으로 인해 빵 사건 등의 구설수에도 오르기도 하는 등 이미지가 별로였으나, 커리어 말년에 선수협 회장으로 취임한 후 제 10구단 문제와 선수협 내 비리 척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비리를 사실상 방관한 전임 회장 손민한에 대한 고소도 취하한 데 이어 떠밀리듯 은퇴하면서도 자신의 은퇴식에 손민한을 데려와 "후배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라고 직접 사죄하게 만들면서 그간의 선입견에 싸여 있던 이미지를 대인배로 대반전시키는 데 성공. 또한 자의로 해타 타이거즈 입단 거부를 하지 않았는데 다혈질 성격으로 유명한 고향 사람들은 박재홍이 고향 원정 경기 올때마다 욕설을 퍼부었으나, 그들을 용서해줬다.[15]
- 박지성
- 박지영: 세월호 침몰 사건 때 배에 남아 생존자들을 구하다가 생을 마감했으니 제2의 유관순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
- 박진영
- 박찬수: 그가 승부조작범인것과는 별개로 자기가 전 부인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썼을때 무죄추정의 원칙은 갖다버린 악플러들을 고소허지 않았다. 참고로 이거 다 고소했으면 3대가 먹고살았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박찬호
- 박항서: 자신이 각서까지 써 주면서 영입했음에도 야멸차게 뒤통수를 날린 이천수를 고작 전화 한 통[16]에 용서한 이야기 덕분에 대인배를 넘어서 보살 소리를 듣고 있다.
- 박해진: 자신의 악플을 적은 사람들과 같이 연탄봉사도 했으며 훈훈한 선물도 해줬다고 한다.
- 배정미
- 배한성
- 백상원
- 백지영
- 백종원 - 최근 지속되는 황교익의 자신에 대한 비난에 대해 "그 분은 평론가로서 할 말 한 것 뿐이지, 폄하해서는 안 된다."라 입장을 남긴 바 있다. 자세한 내역은 황교익/논란/백종원 문서 참조.
밴쯔- 벌금을 선고받은 범죄자(...)가 되었다.- 배스킨라빈스 31 굴욕 사건의 변호사
- 부모님: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대인배.
- 브베(유튜버) - 왜 브베가 여기 들어가있는지 모를 수 있지만, 온갖 패드립과 욕설을 듣고도 화 안내고 무시만 하는 걸 보면 진짜 대인배다.
- 서울 지하철 9호선의 여의도역을 미리 만드신 분들
- 서경종: 본인의 방송에 별풍선을 매우 많이 쏘는 여성팬이 있었는데, 총 30만개(VAT포함 3300만원가량)나 선물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서경종과 친한 염보성과 김재훈에게도 수백만원어치가 넘는 별풍선을 쐈다. 20대가 수천만원어치의 별풍선을 쏘니 다들 이 사람이 부유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이 팬은 빚을 내 가며 별풍선을 쏜 것이었고,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서경종에게 별풍선 환불을 요구했다. 환불해줄 이유가 없었으므로 이를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서경종은 오히려 아프리카 TV가 가져간 수수료까지 포함, 원래 금액을 전액 환불해줬다. 자기를 좋아해준 한 팬의 인생을 위해 그랬다고 한다. 대단한 인물. 서경종은 이 행동으로 1000만원이 넘는 금전적 손해를 봤다.
- 서나: 연우에게 그렇게 권리를 빼앗기고 모독을 당했지만 고소미도 먹이지 않고 오히려 사건이 커지지 않게 막고 연우를 변호해주는 등 대인배스러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 서유리: 본인에게 섹드립과 성형드립을 치는 네티즌들에게 올린 글이다.
- 서지수: 걸그룹 러블리즈의 멤버. 악성 루머로 데뷔가 연기되는 사건을 겪었으면서도 Ah-Choo 활동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해 밝은 모습과 팬서비스를 보여주고 있다.
- 석해균: 2011년에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피랍되었다가 구조된 선박의 선장이다. 자신과 선원들을 죽일 뻔한 해적들이 대한민국 해군에게 체포되어 한국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되자, 그들을 찾아가서 잘못을 용서했다.#
- 손양원: 장로회 목사. 여수시의 한센병 환자들 수용소인 애양원 (愛養園) 교회에서 나환자들에 대한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하였고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음으로써 세상을 감복시켰다. 그래서 별명도 '사랑의 원자탄'.
- 손재한: 700억 원에 달하는 개인 사재를 털어 장학재단을 만든 대인배. 이공계 인재를 지원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2013년 이후 과고/영재학교 출신들은 익숙한 이름이다.
- 송성문: 성문영어 시리즈로 벌어들인 인세 수익 중 대부분을 문화재 구입에 썼고, 구입한 문화재를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평소에 그는 문화재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기초영문법, 기본영어, 종합영어의 자습서를 무료로 배포했다. 출판사 사이트에서 PDF파일로 배포하므로 필요한 위키러는 받아서 사용하도록 하자.
- 송진우: 두 말할 필요없는 야구계의 대인배.
- 송창식 : 자신이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줘서 자신은 금전적 손해가 많았는데도 제대로 돈 갚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본인은 쓸 돈만 있으면 된다며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 신본기
- 신정민
- 쏘이 : 모로코를 여행하던 중 악플을 보게 되었는
- 안지현 : 2019년 롯데 자이언츠 치어리더로 들어온 후 롯데가 성적 부진은 물론 개그에 가까운 경기력 때문에 일부 무개념 야구팬들이 '불쌍하다.' '괜찮겠냐.' '다시 돌아가지.' 라는 식의 악플을 달았지만 안지현은 본인이 선택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맞대응했고 전혀 불쌍하지 않다고 했다.[17] 보통 이런 경우에는 고소하고도 남았을텐데 안지현은 팬들에게 그럴 시간에 응원하는 팀에 한 마디 더 하라고 일침을 가하는 것으로 끝을 냈다.
- 앙드레 김
- 액션 치킨가면 사장님
- 양경일: 루리웹에서 익명으로 만화 레슨을 하는데 운영자에게 선도 못 그리는 가짜라고 대차게 까였음에도 나중에 스스로를 밝히고 자기를 깐 운영자도 용서하는 대인배적 면모를 보였다.
- 어니스트 베델: 자기 나라도 아닌 나라를 위해 그 나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한 신문을 만들었다. 죽기 직전까지 그 나라를 위해 헌신하였다.
-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어윤수: 결승에 오를 때마다 우승자의 영광을 양보하여, 동료 프로게이머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선사하는 등 만인의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동료들은 GSL 결승전에서 어윤수를 만나는 순간, 어윤수가 양보했던 블리즈컨의 출전권을 받고, 평생을 관통하는 값진 경험을 얻었다. 2013년 백동준, 2014년 주성욱 및 김도우, 그리고 2017년 고병재가 무료로 미국 땅을 밟고 서부 애너하임에서 여행할 수 있었다. 어윤수는 절대 우승자의 영광을 독점하지 않았다. 게다가 2017년 블리즈컨에서도, 자신이 취했을 명예를 이병렬에게 양보했으니,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대인배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글이 있다: 행복한 윤수님
- 엄앵란: 신성일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지금까지 이혼을 안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분이시다. 아울러 한 개그프로그램에서 본인의 유방암을 희화화한 개그우먼을 용서했다.
- 오나미 : 자신을 비하한 유튜버 를 용서하였다. 저 유튜버가 어떻게 발언을 했는지 보면 보통 사람들이라면 극대노 했을만한 발언인데 용서한거 보면 대인배 가 맞다.
- 오종혁: 해병대 수색대로 자원 입대. 게다가 훈련을 위해 전역도 연기했다는 사실도 밝혀지면서 평생 까임방지권도 획득했다.
- 우왁굳: 울산큰고래가 자신을 심하게 비방하고 욕했지만 용서해줬다. 심지어 방송이니 괜찮다고 말해줬다! 게다가 먹방에서 관련 클립이 올라와도 욕하지 않고 무시하고 밥을 먹었다. 이후 울산큰고래의 배그 합방 요청에도 고심 끝에 응해주기까지 했지만 실시간 채팅이 울산큰고래를 나쁘게 말하는 분위기여서 울산큰고래의 10분간의 사과로 끝이 났다.
- 유관순
- 유노윤호: 2006년 본드 음료수 사건으로 엄청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자수한 후, 자신의 여동생과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선처했다. 이것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근 10년동안 사골처럼 우려먹는 흑역사가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기분나빠하기는커녕 오히려 방송에서 진리랩을 시키면 흔쾌히 응하고 본인이 자주 언급한다...
- 위안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 : 도호쿠 대지진, 2016년 구마모토 지진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일본인이 아닌 일본 정부와 싸우는 것이라며 잠시 시위를 접고 대신 성금 모금과 희생자들의 애도를 빌었다.
- 유일한: 기업인이면서 독립운동까지 했던 흔치 않은 인물이자, 말 그대로 털어서 먼지 안 나왔던 사람. 모든 기업인의 모범이며 삶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 유재석: 긴 설명이 필요없는 국민MC. 본인이 어려웠던 긴 무명시절을 거치며 고생하다가 떴지만 평소에도 예의바르고 선, 후배 연예인들에게 잘 대해주고 친절을 베풀어서 미담이 넘치는 편이다. 또 과거에 개그맨 동기인 대학선배에게 뺨 맞은 적이 있었음에도[18] 그를 용서하는 건 물론이고, 위안부 할머니, 세월호 유가족들, 각종 재난 피해자들에게 기부를 하는 등 선행을 많이 하고 있다.
- 유특한: 위의 유일한의 남동생. 이 사람도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왔던 사람으로 형과 똑같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했다.
- 윤동주: 그의 유고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발문[19]을 보면 친구들이 갑자기 자신을 찾으면 하던 일들을 모두 내던지고 웃으며 반가이 맞아주는가 하면, 자신도 가진 것이 별로 없었으면서 친구들이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는 있으면서 안빌려주는 법이 없었고 없으면 외투나 시계를 주어 전당포에 맡기게 했다고 한다. 덕분에 윤동주의 외투와 시계는 전당포 나들기를 부지런히 하였다고 한다. 또한 갑작스런 산책 요청도 거부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 윤석열: 여주지청장 시절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하여 정직 징계를 받았음에도 사표를 내지 않았다. '이렇게 큰 수사를 하다 보면 총장도, 검사장도, 팀장도 언제든 물러날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 윤여정: 엄앵란과 마찬가지로 전 남편 때문에 본인의 인생이 파탄이 나 버린 케이스. 하지만 방송 내외적으로 한번도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발언을 한 일이 없었다.
- 이경규
- 이국종
- 이다도시
- 이대호: 다만 이쪽은 팬을 대하는 태도에 논란이 있다.
- 이도형: 2010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신청했으나 FA 계약의 보상규정 및 계약제한기간 규정의 문제로 결국 어느 구단과도 계약하지 못하고 사실상 은퇴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돌아갈 혜택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도 KBO를 상대로 위의 규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걸었고 결국 재판에서 승소했다. 이도형의 판례로 후배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혜택이 돌아갈 것이며, 야구선배로써 훌륭한 귀감을 보여줬다.
- 이부진
- 이성순: 우리가 아는 그 시라소니 이성순 맞다. 자기가 부산에서 건달들에게 당하던걸 구해줬던 유명한 정치깡패 이정재의 지시로 린치를 당해 심한 부상을 입고 주먹계에서 리타이어당했는데, 혁명재판당시 그 일을 부인했다. 참고로 용서와 관계없이 거짓말을 한 게 들통나면 본인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재판에서 증인이 선서할때 뭐라고 하는지 생각해 보자.[20]
- 충무공 이순신: 명량해전. 왕에서부터 대소신료들까지 쉬쉬해서 삼도수군통제사직에서 파직되고 한번의 모진고문도 당했으며 백의종군하는 와중에 어머니의 상을 당했으며 심지어 죄인의 몸이라 3년상도 못지켰다. 이와중에 특대형 병크인 칠천량해전이후 부랴부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직에 임명되었지만 그에게 남은거라고는....거기에 나라에서 안될거라며 육군합류하라 명했는데 굳이 바다로 싸운다고했다. 알겠지만 당시 조선은 유교국가. 부모님의 상중엔 그어떠한 임명도 거절해도 뭐라할수 없다. 그런데도 받아들이고 그유명한 상유십이 장계를 올리며 승전한 해전이 명량해전......더이상 말이필요한지? 누명을 써서 역적으로 몰려, 죽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의 고문을 당하고, 겨우 13척의 배로 왜군의 대함대를 막아내라는 가서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인 임무를 받고도 온몸을 바쳐 조국을 구한 성웅. 부하들의 잘못에 엄격했던 점은 있지만, 군율을 굳게 세우기 위해서였을 뿐 결코 인격적인 결함은 아니었다.
- 이순재
- 이순진: 前 합동참모의장. 2사단장 시절 출근 길에 사단 주도로를 정비하던 병사들을 보고 차에서 내려서 "수고한다"며 간식을 지급하면서 덕장의 모습을 보였다.
- 이승환
- 이시영 : 자신의 엄청난 재산을 다 털어서 독립운동에 바쳤다.
- 이연복: 다른 셰프들과 달리 아랫사람들에게 절대 언성을 높이지 않으며 자신의 요리비법을 스스럼없이 공개하기도 하는 등 실력에 걸맞는 인격을 갖추었다.
- 이영호: 스타크래프트 최고의 테란 프로게이머이자 최종병기라는 강력한 별명을 가졌지만, 한 때 슬럼프를 겪었을 시절에 자신에게 온갖 악플에 인격모독 드립에 패드립까지 행했던 찌질이들의 비난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 스포츠를 사랑하는 팬 중 하나라고 여겨서 법적인 고소를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선처했다.
- 이자건: 조선시대 문신. 형조, 공조판서를 역임했으며 청렴결백하고 강직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일절 뇌물이나 비리가 없던 사람으로 연산군의 폭정에 충언하다가 미움을 받아 유배당했다. 그런데 유배지의 수령이 워낙에 악랄하여 죄도 없는 그에게 보급품도 줄이고 심심하면 부하들이 그를 구타하는 걸 보고 재미있어하는 인간 말종이었다. 그럼에도 이후 중종반정으로 재등용되어 이 수령의 상관까지 되었는데 이 수령은 난 죽었다고 후회막심했으나 아무런 보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수령으로 일하게 했다. 되려 그에게 지난 날의 과오는 일을 잘하여 갚으라는 말만 해주었고 수령이 감격하여 그 뒤론 아주 좋은 수령이 되었다. 참고로 조정에서도 워낙에 강직한 덕분에 그의 곁에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 이종찬 장군: 비록 '조선 귀족' 집안의 손자로 일본군 고위장교 출신으로 지냈었으나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하자 이를 수치로 여겼고 평생을 반성하고 뉘우쳤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 수립 이후 반독재를 주창해왔었고 군의 정치개입을 반대한 인물로 이 부분은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였다.
- 이주일: 1977년 전라북도 이리시에 있는 이리역이 갑자기 폭발했을 당시 사회를 보고 있었던 하춘화를 구해줬던 일화가 유명하다.
- 이지혜(프로게이머): 동명이인. 1세대 여성 프로게이머. 현역으로 활동했을 땐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2군 프로게이머들에 대해서 차별 없이 일일이 직접 따뜻하게 대우해주었다. 그리고 어떤 한 팬에게 문제가 생겼는데 직접 그 상대를 달래서 싸움 없이 해결하셨다.
- 이지혜: 사실상 샾 해체사건의 피해자였던 이지혜는 오히려 가해자인 서지영을 옹호하며 자신의 잘못도 많다고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그리고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샵 멤버 전원이 같이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멤버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다.
- 이태석 신부
- 이태준: 어장관리 논란[21]을 일으킨 가해자로 인해 자신의 커리어에 큰 흠결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올린 사과문에 인신공격성 댓글이 무분별하게 달리자 '난 이미 용서했으니 사과문을 내리는 게 어떠냐' 고 직접 제안하여 가해자의 심적 부담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건 발생 후 1년이 지난 후 가해자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글을 올려 여론을 또 들끓게 했지만 이태준은 오히려 가해자를 질책하지 않고 사건을 또 수면 위에 오르게 한 몇몇 커뮤니티 사이트 유저들에게 '굳이 사건을 언급하려 들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 이현호(농구): 놀이터에서 흡연하던 청소년들을 훈계했다가 폭행죄로 입건되었으나 훈계하려는 목적이 참작되어 즉결심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운동선수가 입건된 사건 중에는 유례없이 훈훈하게 마무리됐고 팬들로부터도 칭송을 받았다.
- 이홍렬: 자신의 음악 전 곡을 홈페이지에 올려 놓았으며 스크랩 할 수 있게 해 놨다.
- 이회영 이시영 선생 참조. 이시영 선생의 친형이다.
- 인종(조선)
- 임세원 교수: 정신과 의사로 진심을 다해 환자들을 대했고 변을 당했을때도 자신보다 환자와 간호사를 구출하는데 신경써서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 인피니트 : 자신들을 미친듯이 괴롭힌 연예계 쪽에서 매우 악명높은 기레기인 김용호를 용서해 주고, 인증샷을 찍어주기도 했다.
- 임윤택
- 임요환: 당치도 않은 이유를 갖고 자기를 공개적으로 인터넷에서 비난한 프로게이머들을 오히려 감싸주는 행동을 했다.
- 임은정(법조인): 검사. 개인의 영달과 출세 지향이 판치는 대한민국의 법조계에서 보기 드물게도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수많은 국민들의 찬사와 격려를 받았다.
- 임채무: 배우. 어린이와 가족 관람객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두리랜드를 만들었고 수십 억의 사재를 들여서 적자 운영을 감수하고 있다.
- 알프레드 드레퓌스: 드레퓌스 사건으로 모진 수모를 겪었지만 조국을 위해 싸운 영웅이다.
- 장나라: 자세한 건 이종범/사건사고 문서 참고. 덧붙이자면 이 사건을 제외하더라도 개인적인 기부도 상당히 많이 한다.
- 장기려: 바보 의사로 불리며, 북한에서도 존경하는 인물이다.
- 장문복: 슈퍼스타 K 데뷔 시절 자신이 부른 랩 때문에 네티즌과 안티들에게 힙통령이라는 별명과 함께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자신은 자기를 놀리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힙통령이라는 별명을 자신의 닉네임과 같이 여기게되며 극복했다.
- 장미란: 선수시절은 물론이고 이 후로도 각종 사회활동과 선행으로 국민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22] 이 분을 까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해도 무방하다.
- 장윤정: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장종훈
- 장태완: 1979년 12.12 사태 때 전두환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 군인, 장군으로서는 부하들을 무척이나 빡세게 굴렸지만 사적으로는 사병들 식당에 매일매일 소고기와 계란 반찬, 깻잎을 보급하고 무려 수경사령관이 헌병 병장의 풀어진 군화끈을 몸소 묶어주며 친히 격려를 해주셨다!!! [23]
군화끈이 풀렸던 그 병장은 그 이후 간부들에게 어떻게 됐을지는..[24] - 장훈(야구선수): 재일 한국인 야구해설가. 쓴소리 많이 하는 거성.
- 전제용: 과거 참치잡이 원양어선인 '광명 87호'를 이끈 선장 경력이 있는 경남 통영시의 평범한 멍게 양식 업자. 1985년 11월 14일에 인도양 어장에서 7개월 동안 수많은 참치를 잡고 대한민국으로 귀항할 때, 남중국해에서 96명의 보트피플이 탄 목선을 발견하고, 보트피플들을 외면하라는 회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 보트피플들을 구조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 전준영: 천안함 피격사건 생존 장병 중 가장 먼저 전역했는데, 이를 감추지 않고 명함에 '천안함 생존자'라고 적어놓았다.
- 전준호: 전 히어로즈 소속 야구선수이자 현재는 NC 다이노스의 코치. 1번 항목 참조.
- 전진
- 전형필: 간송미술관을 설립한 사상 최고의 대수장가. 바보같은 남자.
- 진영수: 자신과 자신의 아내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하는 카광을 손자 타이르듯 대했었던것을 보면 확실한 대인배
- 정경배: 전 삼성 라이온즈 출신 두산 코치
한만두 - 정민철 : 대전광역시 출신 토박이인데 전라도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오해 받고 모욕을 받았는데도 그들을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줬다.
- 정승욱
- 정우성
- 정조(조선) : 흉년에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백성들이 아버지의 묘역인 현륭원에 심은 소나무의 껍질을 벗겨먹는 바람에 소나무가 고사할 위기에 처하자 처벌을 내리는 대신 콩을 담은 주머니를 매달아 소나무 껍질 대신 먹을 것을 당부했고, 화성 축조 당시에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동안에는 공사를 중단하라는 왕명을 내렸으나, 축조 사업에 참여해서 생계를 유지하던 백성들이 왕명을 어기고 작업을 계속 하는 일이 빈발하자 더위를 이기도록 척서단을 대량으로 풀어 백성들을 지원했다. 그 외에도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기 위해 시파는 물론이고 벽파까지 포용하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 정지훈: 웹툰 너에게 하고 싶은 말 작가. 좋은 스토리와 그림체에도 야후 웹툰에서 비추 1위를 하자 팬들이 비추한 자들을 욕했는데 오히려 작가는 화내지 않고 비추한 자들의 생각이 다를 뿐 욕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 하였다.
- 정차웅 군: 세월호 사건 단원고 학생 첫 사망자로 자신의 구명조끼를 다른 학생에게 양보해 주고 생을 달리했다.
- 정용화: 경희대 대학원 부정입학 사건이 교수들의 농간에서 비롯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면서 정중하게 사과했으며 입대함으로써 논란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25]
- 제시카 : 데뷔 전 선배 남아이돌들과의 열애설 때문에 그들의 팬들로부터 테러에 가까운 괴롭힘을 당했으나 지금까지 그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 조동찬
- 조범현
- 조선 태조 정도전이 따랐으며 한때 정몽주가 함께 했다. 정몽주를 끝까지 포용하고자 한 점에서 드러나듯, 그는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은 최대한 포용했으며 실제로도 이지란, 처명 등을 포용하는데에 성공했다. 고려 말 원수제의 남발로 군벌들이 생겼지만 그중 이성계만큼 포용력을 갖춘 인물은 없었다. 과연 조선의 건국왕.
- 조선 세종대왕
백성들한테는 진정한 대인배 신하들은 아님 - 조선 태종: 신하들 중 장차 왕권에 위협이 될만한 공신들은 철저히 숙청하고, 두 차례의 골육상쟁에다가 자신의 외척, 사돈 집안까지 싹을 뽑는 등 냉혹한 철혈군주의 면모를 보였으나 아들 세종대왕처럼 백성들에게는 대인배였다. 아이들이 공에다 자기와 두 아들의 이름을 적어서 차고 놀다가 잡혀오자 벌을 주지 않고 그냥 넘어가고 괜히 뒷말 남기지 말라는 언급을 했으며, 손귀생이라는 시골 사람이 상경해 창덕궁을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와 구경하다가 붙잡혀와 곤장 80대를 맞고 죽을 상황에 놓였으나 태종은 모르고 그랬는데 곤장형은 가혹하다며 그냥 방면했다. 또한 관리들에게 마냥 가혹한 인물은 아니라 공신인 조영무의 아들인 조서가 자기 친구를 궁궐에 데려와 숙직실에서 같이 잔 적이 있는데, 다음 날 아침 조서의 친구가 나가려다 길을 잃고 실수로 태종의 침전에 들어오는 사고를 친다. 당연히 그곳에 근무하는 궁인들은 모두 기겁하고, 이 사람 역시 당황해 '나가려다 실수로 들어왔다.' 해명한다. 이에 태종은 '모르고 그런거니 괜찮으나, 다른 사람이 알면 처벌하려고 할 테니 이 일을 알리지 말고 얼른 가라.'고 말하며 보내줬다.
- 조영구: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젝스키스가 해체할 때 팬들이 본인 차를 파손했을 때도 그 팬들을 용서해 주었다.
- 조용필: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병[26] 환자들과의 콘서트 약속을 지킴은 물론이고 공연 도중 한센병 환자를 품에 안으며 같이 노래를 불렀다.[27] 당시는 한센병에 대한 인식과 한센병 환우들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안 좋고 왜곡되어있어 접촉만 하면 모두 한센병에 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슈퍼스타로 대접받는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님에 분명하다. 그리고 나병 환자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 조정현(코미디언): 뇌졸중으로 인해 몸이 불편함에도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 주세혁: 탁구 선수. 무려 15년 후배인 장우진이 초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하자 공을 부수고 라켓으로 탁구대를 내리치는 등의 행동을 했다. 다음 날 장우진이 긴장된 모습으로 찾아와 용서를 빌자 "야! 나는 예전에 너보다 더했었어."라는 말로 그를 용서했다. 그 후 2016 리우 올림픽에서도 단식 출전권을 후배에게 양보했다.
- 진영화: 승부조작으로 인해서 진씨 성을 가진 프로게이머라는 이유로 오해를 받아 자신의 싸이 방명록에 달린 악플에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미안요...' 라는 식의 댓글을 다는 식의 대인배스러움을 보여줬다.
- 진인환: 회원들이 자신의 중요부위를 네타거리로 삼아도 강등환을 사용하지 않는 대인배. 다만 어머니 욕은 얄짤없다. 붕탁 문제도 참고 참다가 경찰서까지 갔다 오는 상황이 오자 그때 가서야 폭발.
- 차승원: 이혼한 아내의 아들을 사랑으로 길렀다.
- 차인표
- 천종호: 짤방으로 유명하신 분이지만 실제로는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관예우가 없는 청소년 관련 부서로 직접 들어갔으며 학교폭력 피해자들과 비행 청소년을 구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 최강희 축구감독 : 기성용 SNS 사건 때 기성용에게 마구 까였지만 나중에 쿨하게 용서해줬다. 자세한 문서 참고.
- 최동원: 한국프로야구의 레전드급 투수로 당시 남 부러울것 없는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동료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음에도 구단에서 유가족에게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음을 보고 선수들의 처우개선을 목표로 삼아 선수협 결성을 주도했다.[28] 당시는 1980년대이고 선수협 결성자체가 구단의 반발을 불러살 큰 일이며 선수협 결성주도를 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후폭풍이 올 것을 알았지만 두려워 하지 않고 진행했다. 하지만 구단의 큰 반발로 실패를 하고 소속구단인 롯데 자이언츠에서 쫓겨나다 싶히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 되었다.[29] 그렇게 징계성 트레이드 후 2년 뒤 은퇴를 했지만 그는 여전히 감독이나 코치진으로 자신을 버린 롯데 자이언츠로 되돌아 갈때를 기다렸다.
- 최용덕: 대한민국 공군의 정신적 아버지. 공군 창설을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하였으면서 초대 참모총장의 자리를 김정렬에게 양보하고, 미군이 "이등병의 신분으로 미군식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굴욕적인 조건을 붙였을 때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을 생각해 달라"며 창설 간부들을 설득하여 본인도 그렇게 훈련을 받았다.
- 최일도: 경기도 남양주시 다일교회의 목사로 일명 밥퍼목사. 정말 별명 그대로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이나 빈곤한 사람들에게 초창기엔 라면을, 시간이 지난 후 급식을 무료제공해주는 봉사를 계속 해왔다.
- 타카야 츠쿠다: 윤형빈과의 경기에서 애국 마케팅에 의해 혐한으로 몰리고 페이스북 테러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있으며 한국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한국 사람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모 작가와는 멘탈이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 추경영 - 이 사람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주범인 이준 회장의 맏며느리이나, 동시에 이 사건의 피해자였다. 게다가 이 사람은 본인의 남편이자 이준의 장남인 이한웅이 1977년에[30] 중동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젊은 나이로 죽어 법적으로도 이준 일가와는 더 이상 관련이 없어진 남이라 얼마든지 재혼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31], 본인과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 때문에 이준 일가에 남았다. 하지만 이준은 그녀를 위로하고 재산을 주거나 그룹 내에 직함을 만들어주는 등의 보상은 커넝 삼풍백화점에서 조그마한 아이스크림 가게 하나만 겨우 내 주 었을[32] 정도로 추경영을 푸대접한 데다가 결정적으로 사고 당일 이준 일당은 건물 붕괴 위험 소식을 말해주지 않고 사고 발생 시간 전에 몰래 튀었기 때문에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사고를 당했다가 거기서 14시간만에 간신히 구조되었음에도에도 불구, 이준 일당은 그녀와 다른 피해자들과 국민들에 대한 사과는 커넝, 이 사건의 피해자인 본인이 사과하지 않는 이준 일당을 대신해서 자발적으로 다른 피해자들과 국민들에게 사과하였다.[33] 게다가 그녀가 더 대단했던 건, 생판 모르는 남보다 못했던 시아버지이자 자기를 죽일 뻔 하여 원수로 취급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준이 2003년에 사망하자 본인이 이준의 장례식에 와서 조문을 하고 갔다.
- 추성훈
- 캣쏘우 사건 때 캣쏘우로 헛지목 당한 한 네티즌: 동물사랑실천협회에서 고소까지 당하고 수많은 모독과 비아냥, 악플들을 받았어도 진범이 아니란게 밝혀진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에서 억울하게 피의자로 몰렸던 한 네이버 블로거: 수많은 모독과 비아냥, 악플들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절차나 고소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 하태경: 극우 행보로 많은 논란을 일으킨 정미홍을 비판한 적이 있었지만, 정미홍이 폐암으로 죽은 날에 언론과 많은 사람들이 이에 무관심과 조롱성 맹비난에도 "남다른 애국심을 가지신 분"이라고 추모글을 남겼기도 했다.
- 하춘화: 어린 나이에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준으로 찬밥 신세였던 이주일에게 자신의 공연 사회자를 맡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게 어찌나 의지가 강했는지 "저 사람 아니면 안된다"면서 버텼을 정도였다. 무명 연예인이라서 끼니 걱정을 해야만 했던 이주일에게 소중한 직장을 얻게 해준 장본인. 훗날 이주일이 스타덤에 오른 이후 "길에 나앉을 수 밖에 없었던 내가 하춘화 덕분에 우리 집을 샀다"라고 회고했다. 하춘화가 이주일에게 일거리를 줬을 때 하춘화의 나이는 10대 후반, 이주일의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다. 게다가 그 이후에도 자신이 가수생활을 하면서 무척이나 아끼는 무대의상 150벌을 후배 가수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 한국전쟁 직후 60년대까지 한국군을 도왔던 미국군 고문관들
- 현미: 슈퍼스타 K2에서 옥주현, 이승철과 같이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그런데 한 참가자에 대한 평가를 두고 옥주현 혼자서 탈락시키려고 현미와 이승철에게 불손한 언행으로 일관하여 물의를 빚었다. 현미는 새파랗게 어린[34] 옥주현에게 철저하게 개무시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옥주현을 두둔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옥주현을 욕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했다. 그러나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화제성에 눈이 멀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로 악명 높은 슈스케 특유 악마의 편집의 영향이 컸다. 실제 현장에서 옥주현은 이의를 제기할 때 조심스럽게 언행을 했지만 그런 부분은 다 잘려나가고 자극적으로 보이도록 편집돼 방송을 탄 것이라는 이야기. 힐링캠프 옥주현 편에서 밝혀진 바로는 방송분 이후 불거진 비난여론을 보고 PD가 직접 옥주현에게 사과했다고.
- 허민(고생물학자): 자신의 자문을 씹은 다큐의 제작진이 만든 영화와 감독이 쓴 소설에 대해 호평을 보였다.
- 현종(조선): 실수로 자신과 부딪힌 병졸에게 곤장 몇 대만 때리고 용서해주었으며[35], 할아버지 능양군의 집권을 못마땅해 하던 상궁에게 출궁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끝냈을 뿐 아니라, 아예 생계를 지원해주기까지 했다. 상궁의 이런 행실이 코렁탕을 먹기 딱 좋은 일이고, 조선왕조의 왕들이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 지를 생각하면[36], 실로 관대한 임금이라 할 수 있었다.
- 현종(고려): 한민족 최고의 명군이자 성군 고아출신으로 바지사장으로 황제에 올라 고려를 구하고 전성기를 열었다. 수많은 고난과 생명의 위협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고려의 황제로서 당시 동아시아 최강국인 요나라에 맞서 싸웠고 승리하였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백성이던때와 피난길 중에 격은 위험과 고난을 바탕으로 주창수렴법이나 면군급고법 같은 구제법을 마련하고 5도 양계 4도호부를 마련하여 지방세력 규제 중앙집권강화 감목양마법,나성 축조 등 전쟁에 대한 대비도 하여 고려의 전성기를 열었다. 양규,지채문,강감찬등에 대한 대우도 선조,인조와 비교하면 눈물이 날 지경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호머 헐버트: 자기 나라도 아닌 한국의 해방을 위하여 20대 때부터 한국에서 독립운동을 지지하였으며, 심지어 일본에 의해 본국인 미국으로 쫓겨난 뒤에도 광복 때까지 반세기가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애쓴 대인배.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라는 말까지 했고 정말로 돌아가신 뒤 한국 땅에 시신이 매장되어 고이 잠들었다.
- 홍석천(매느님)
- 홍시호 : 이미지를 위해 홈쇼핑 광고를 그만둬도 되지만 "어려울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인데 이미지 관리를 위해 냉정하게 거절할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홈쇼핑 광고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덧붙였다.[전문]
- 홍진호: 육회 사건 당시 말도 안 되는 변명과 삼연벙 당시 올렸던 글 ("아... 내가 속이 더럽게 좁은 건가?") 등으로 그가 대인배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지금은 명불허전 저그의 황제이자 황신. 까인 양으로 따지면 정치인 외에는 그만큼 까인 사람도 찾기 힘들 듯하다.
- 후세 다쓰지: 역시 자기 나라도 아닌 한국을 위해 독립운동가들의 변호를 맡아주며 한국인을 도우며 살았다.
- 흑요석
- JK김동욱
- MBRO: 밴쯔 못지않은 대식가 유튜버로 실제로 안티들이 그에게 악플을 달아도 그들을 고소하지 않았고 웃으면서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데 누군가가 "아프리카 가서 죽어봐야 정신차리지" 라는 댓글에 안가봤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
3.2. 해외
- black eyed peas 쿨가이류 종결자
- 길 메시
- 그레고리 펙: 제임스 스튜어트, 캐리 그랜트와 더불어 대표적인 할리우드 신사였다.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던 로마의 휴일 영화에 당시 거의 듣보잡 수준이었던 오드리 햅번의 잠재성을 한눈에 알아보고, 자신의 이름만 크게 부각하던 포스터를 보고, 오드리 햅번의 이름도 동일하게 넣어줄것을 제작사에 강력히 항의하기도 하였다. 결국 오드리 햅번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니, 그의 안목과 대인배적인 배려가 그녀를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 다스 시디어스를 연상케 하는 사악해보이는 외모와는 완전 딴판으로 인자한 사람이었다.[38][39]
- 교황 비오 7세: 자신을 끝까지 괴롭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죽을 지경이 되어 그의 고해성사를 집전할 신부를 파견하여 나폴레옹에게 원수를 은혜로 갚았다.
- 교황 요한 23세: 교황 재위기의 별명도 선하신 교황(Il Papa Buono) 요한이었고, 자신이 추기경이던 시절부터 자신에게 바락바락 대들던 파스칼리나 레네르트 수녀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오히려 교황 등극 후에 그녀와 화해를 하려 했다.[40]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자신을 암살하려 한 범인을 위해 고해성사를 해주고, 그를 용서했다.
- 교황 클레멘스 14세:
- 교황 프란치스코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구로다 히로키
- 넬슨 만델라
- 노숙
-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 니콜라 테슬라
- 닉 부이치치
- 노토리어스 B.I.G.
- 다이몬 카미: 일본의 성우. 키시요가 소녀전선에서 일러스트를 맡은 캐릭터 중 하나인 95식의 성우를 무명인 다이몬 카미가 담당하자 감히 듣보잡 주제에 내가 애정을 담아 그려낸 95식 성우에 발탁됐냐며 당장 성우를 바꾸라고 진상을 부리며 그녀는 물론 캐스팅을 한 제작진에게까지 매우 모욕적으로 굴었다. 그럼에도 다이몬 카미는 95식에 대해 소녀전선 플레이어들에게 많은 사랑을 달라고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등 대조적인 행보를 보여 키시요는 졸렬한 소인배라고 욕을 먹었으나 그럼에도 사과 한마디 없이 아몰랑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나 2년여 후 95식이 일본 서버에 추가되면서 일본 유저들도 키시요가 저지른 진상짓을 알자 마지못해서 정황상 누가 봐도 마지 못해 올렸음이 분명한 사과문을 올렸다. 그리고 다이몬 카미는 자기가 부족해서 그랬다며 아량있는 모습을 보여 그녀의 대인배스러움과 키시요의 소인배스러움이 더더욱 대비된다.
- 데즈먼드 투투
- 드류 맥킨타이어: 프로레슬러. 티파니와의 싸우면서도 일방적으로 맞았음에도 먼저 이혼을 요구하지 않았으며(애초에 결혼한 것이 티파니의 성격 개선을 해보려는 의도) 알베르토 델 리오의 싸움을 몇 바늘 꿰매야 하는 상처까지 입어가면서 말렸다. 심지어는 해고를 당한 이유가 티파니 때문으로 인한 연대책임이니.
- 드웨인 존슨: 2006년 ‘더 락 파운데이션’ 재단을 설립해 건강과 피지컬 피트니스 분야를 아울러 전 세계 어린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드웨인 존슨은 미국 남부 텍사스, 휴스턴 일대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허리케인 하비의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했다.
- 디에고 고딘: 2015/2016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경기도중 같은 국대 동료인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팔꿈치로 가격당해 안면을 부상당했으나 이후 '눈을 친 사건은 축구의 일부분이다. 두 선수가 경합을 펼치는 중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라는 sns글로 수아레스를 감쌌다.
- 라마크리슈나
- 라파엘 나달: 코트 체인지때 상대편 선수에게 항상 먼저 길을 양보하며, 심판이나 라인즈맨의 오심에도 어필을 잘안할만큼 매너 좋기로 유명한 테니스 선수. 특히 롤랑 가로스 (프랑스 오픈) 기간중 묵고있던 호텔의 직원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6억짜리 한정판 시계를 훔쳐간적이 있었는데, 화내지 않고 오히려 쿨하게 용서 + 호텔의 서비스가 매우 만족스러우니 앞으로도 계속 이용하겠다고 넘긴 일화가 유명하다.
- 라파 알칸타라 : 알칸타라 형제 중 동생으로 형 티아고 알칸타라와 함께 FC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 출신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었다. 그런데 라자 나잉골란에게 당한 위험한 태클 이후 부상을 자주 당하게 되며 그의 경력은 꼬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임대 간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부동의 아이돌이던 마테오 코바치치까지 제쳐버리고 새로운 아이돌이 되었다. 그러나 인테르는 언제까지나 임대생이었던데다 완전영입료가 비쌌던 그 대신 저 라자 나잉골란을 선택한다. 그러나 나잉골란을 전혀 원망치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심지어 나잉골란이 있는데도 인테르에 가고 싶어했다는 얘기가 계속 나올 정도.
- 라파엘 페르소나 : 프랑스의 영화배우이자 감독. 기부도 많이 하는데다가, 성의 철자가 Personnaz여서 페르소나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z가 묵음 처리라서 실제로는 페르소나라고 읽는게 맞지만, 사람들은 죄다 페르소나가 아니라 페르소나즈라고 부른다. 그런데 네이버나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페르소나즈라고 나온다. 참고로 한국에서 '페르소나'라고 표기하고 있는곳은 사실상 나무 위키가 유일하다. 팬들이나 TV에서도 페르소나즈라고 나오며, 인터뷰할때도 기자들이 죄다 페르소나즈라고 하지만, 본인은 딱히 그런거 신경쓰지 않으니, 오히려 편한대로 불러달라고 하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줬다.
- 랜디 커투어
- 레니 B. 로빈슨: 29번 도로의 배트맨으로 불리는 인물로 자기 아들 좋아하는 배트맨을 입고 자기가 사업으로 크게 벌은 돈으로 2001년부터 투병 중인 아이들을 위해서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봉사활동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2015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 레이디 고다이버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차별이 심하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에게 차별없이 상냥하게 대하였다.
- 로사 카라치올로: 로코 시프레디의 부인. 남편이 성인물 직업으로 복귀하는걸 새삼스럽게 왜 그런걸 묻냐는 식으로 쿨하게 OK했다.
- 루이 16세: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제공자로 지목되어 처형될 때,단두대 앞에서 남긴 유언이 "저의 피가 프랑스 국민의 축복을 위해 흐르게 하소서!"였다. 그리고 그보다 이전에 남긴 유언장에는 "짐이 그대들을 모두 용서하겠노라."라고 쓰여있었다.
- 루이스 칸: 세계 최고의 건축가로 인정받았으면서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위한 건축을 추구하느라 재산은 파산 상태... 방글라데시 같은 곳에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을 지어주느라 70 노인이 몇 년 동안 짱박혀 있었으니 할 말이 없다. 그와중에 후학을 위해 돈도 안 되는 강의를 하러 73세의 나이에 무리하게 기차 여행을 서두르다가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 루이스 잠페리니
- 리누스 토발즈
- 리자청
- 리처드 리 아미티지
- 리처드 스톨먼: 이 분 덕분에 자유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졌다. 감사를 드리도록 하자.[41]
- 릭 플레어: WCW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스캇 스타이너가 WWE에 오자 트리플 H와의 대립 시나리오에 적극 참여하며 셀링을 도와줬다. 물론 자신을 존중하면서 신체능력이 뛰어난 트리플 H, 바티스타, 제리코 등이 있어서 WCW보다 훨씬 안전한걸 감안해도...[42]
- 링고 스타: 1970년 비틀즈가 해체되고 멤버들끼리 피 터지는 공방전을 벌인다. 그러다 1974년 멤버들을 모두 화해시켰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마리 앙투아네트: 상술된 남편 루이 16세 못지않은 선량한 인물로, 낭비벽이 심한 인물이라고 오해받은 것과는 달리, 무척이나 검소하고 취미 생활 또한 소박했으며[43], 귀공녀치고는 꽤나 소탈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마지막에 처형될 때도 억울하게 죽는 처지에도[44] 국민들을 향해 비난이나 독설을 퍼붓지도 않고, 자신의 사형을 담당하는 집행인에게 발을 밟아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했다.
- 마이크 혼다 : 일본계 미국인 하원의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정, 사죄 및 역사적 책임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의, 주도하고 있다. 자신의 뿌리인 일본에서는 역적으로 비난받고 있지만 위안부 피해를 입은 국가에서는 칭송을 받고 있다.
- 마크 리퍼트 : 前 주한미국대사. 세종문화회관에서 흉기 공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의 진전을 위해 최대한 가장 이른 시일 내에 돌아올 것"이라며 한국어로 "같이 갑시다!"라고 트위터에 포스트 했다.
- 마시모 모라티: 자기 팀 선수들이 무슨 사고를 치더라도 끝까지 실드를 쳐주며 물질적으로도 엄청나게 베푼다.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면 아드리아누 문서 참조.
- 마이클 일리치: 디트로이트 스포츠의 대부.
- 마이클 잭슨: 이 시대의 보기 드문 대인배. 아소카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대인배라면 마이클 잭슨은 인류 역사상 가장 보기 드문 대인배라 보면 된다.
직접 문서에 들어가 확인해보면 실감하겠지만, 그야말로 흠좀무, 탁월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굳이 예를 든다면 2006년 월드 뮤직 어워드에 참석했을 때 그가 머물던 숙소 앞에 그를 보려고 천명 가까운 팬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서 추위에 떨자 그들이 먹을 피자와 물&커피를 자기 돈으로 모두 배달시켜 나눠준 일화가 있다. - 마이클 패러데이
- 마크 헨리
- 몽클라르: 한국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인데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한국을 구하기 위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계급을 중장에서 중령으로 깎고 참전하여 한국인들을 많이 구조해 주었다.
-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 무선황후: 조조의 본래 정실부인이던 정부인은 본래 무선황후와 그 자식들을 업신여겼다. 조앙을 죽게 만든 조조에게 실망한 정부인이 이혼해 무선황후가 정실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녀는 정부인을 정중하게 대해줘 감격한 정부인이 그녀와 화해했다. 이후 정부인이 사망하자 조조에게 청해 제사를 지내고 허도 남쪽에 묻어줬다.
- 무하마드 유뉴스: 마이크로크레티트와 그라민 은행의 창시자.
- 무함마드 소하일 씨 (미국) : 자신을 지속적으로 위협했던 강도에게 빵에 돈까지 쥐어주었다. 보러가기
- 미로슬라프 클로제: 뛰어난 실력에 핸드볼로 넣은 골을 심판에게 자진신고하는 등 훌륭한 매너까지 갖춘 대인배.
- 미사와 미츠하루: 지난 2009년 6월 13일 별세한 일본의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불합리대왕' 후유키 히로미치 (후유키 고도) 가 대장암에 걸린 것이 알려지자 NOAH주최로 흥행을 곧바로 확보해 그 흥행을 후유키 히로미치 은퇴기념대회로 열어 그 흥행에서 얻은 수익 전부를 후유키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1년 당시 NOAH소속 선수였던 타카야마 요시히로가 격투기 (PRIDE) 에 진출하기 위해 탈퇴를 신청하자 '프로레슬링이 하고 싶다면 언제든 다시 돌아와도 좋다' 며 NOAH 소속을 유지한 채로 격투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많은 대인배적 에피소드가 존재.
- 미즈시마 히로: 본인이 쓴 소설이 대상을 받자 상금 (2000만엔) 을 작가 육성에 쓰이길 원한다며 거절했다.
- 미즈키 나나: 영 좋지 않는 후배 성우가 성추행을 했는데도 원망은 커녕 그가 저지른 만행을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 미첼 바첼레트 - 現 칠레 대통령: 국방부 장관 (2002 ~ 2004) 시절 피노체트 군사 독재정권 (1974 ~ 1990) 때 아버지를 고문사 시켰던 책임자들을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며 그들을 자신의 대신으로 임명하여 같이 사이좋게 근무했다.
-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쇼와 덴노의 막내 동생.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일으킨 전쟁범죄를 고발했다.
- 믹 폴리: 아이들을 위한 기부활동이나 군부대 위문 방문 등, 자선사업에도 적극적이다.
- 바츨라프 하벨
- 반 다크홈: 자신이 붕탁물에 나온 것을 모두 재밌어하고 고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팬들의 요구에도 잘 따라주는 등 대인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 반데를레이 코르데이루 디 리마: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마라톤 35km까지 1위로 달리고 있었는데 킬트를 입은 예수쟁이의 난입으로 동메달에 머물지만 뛴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그 광신도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그 뒤 고국에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개막식 최종 성화 점화 주자로 등장했다.
- 발터 모델: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군의 원수. 방어의 사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부하들을 자식처럼 여겼고 1차 르제프 공방전에서 자살한 소련군 장군의 장례를 치루어 주었으며 전쟁 말기에 보충역으로 들어온 소년병과 국민돌격대원들을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말과 함께 전역증을 발부하여 그들을 돌려보냈다.[45] 그 외에도 헝가리 1군 사령관 라카토슈(Géza Lakatos) 상급대장에게 상당한 지휘 권한을 부여하였는데 헝가리군 전차 부대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여 1944년 5월 4일, 헝가리 왕립 제2전차사단에 4호 전차 H형 12대, 3호 돌격포 10대, 티거 10대를 배치시켰다.[46]
- 밥 로스: 그림의 보급이란 꿈을 위해 초보자들도 쉽게 그림과 친해질 수 있는 입문법을 방송과 책을 통해 알리기도 했고, 그 출연료도 전액을 자신의 방송이 나온 PBS에 기부했다.[47] 성심도 부드러워, 미국 공군 부사관으로 복무하다가 '남에게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것에 견딜수 없어 군을 나오기도 했다.
- 뱅가드 프린세스의 제작자 스게노 토모아키
- 베리 셰크: 직업은 국선 변호사. 이노센스 프로젝트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약 300명의 죄수들에게 자유를 선물해준 일등공신.
- 번오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의 목을 베었다.
- 비의: 다만 그 성품 때문에 자신의 목숨과 국가의 안녕을 해한 것을 보면..
- 빌 게이츠
-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X선은 뢴트겐이 살던 당시에도 그 기술의 응용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독일의 한 재벌가가 그를 찾아와 X선의 특허를 자신에게 양도해 달라고 말했지만 그는 "X선은 자신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을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온 인류가 공유해야 한다" 며 특허 신청을 끝내 거절했다. 그리고 그는 X선 발견으로 수상한 노벨 물리학상의 상금을 대학교에 기부했다.
- 빅토르 안: 2018년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추월할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넘어질뻔 했던 후배 임효준을 붙잡아주어 예선을 통과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 사쿠라이 하야토
- 살라흐 앗 딘
- 성룡
- 세르히오 바티스타: 前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개삽질하고 있던 디에고 마라도나에 밀려 감독이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깨끗이 마라도나를 인정해줬다. 결국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에서 바티스타의 대인배성을 인정해줘 정식으로 아르헨티나 축구감독을 시켜줬다.
-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 소 다케유키: 덕혜옹주의 남편. 애꾸눈에 아내를 학대한 인간이라는 세간의 인식[48]과는 180도 다른 인물로, 준수한 미남에 조현병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오래도록 보살피는 자상한 인물이었다.[49] 결국 아내의 전혀 나아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포기하고 협의이혼한 후 재혼했지만, 그때까지 그가 보여준 행보는 대인배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 소다 가이치 : 일본판 지오르지오 페를라스카. 105인 사건, 3.1운동 당시의 조선인 지도자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과 일본 대법원장 등에게 항의를 했으며 영락보린원을 차려서 독립운동가의 자녀들까지 포함해 1000명 이상의 조선인 고아들을 돌보았다. 어떻게 보면 바로 아래 스기하라 지우네보다도 더 위대하다고 볼 수 있다.
- 스기하라 지우네: 일본판 욘 라베. 독일군으로부터 수천명의 유태인들을 구해냈다.
- 스벤 크라머 : 한번 탄 라인을 한 번 더 타는 실수로 실격당해 웬 먼 나라 혜성에게 금메달을 내주게 됐으나 자기와 코치의 실수임을 인정하고 지금까지 한국 선수들과 사이좋게 지낸다. 심지어 자기 후배 얀 블록하위선이 개고기 관련 발언으로 갑분싸 시키는 망동을 했을 때도 자신이 대신 사과했다.
- 스티븐 콜베어
- 스티븐 로버트 라웃: 결국 붕탁물 성기 가리개로 사용됨을 알았음에도 붕탁제를 응원했다.
- 샤바르시 카라페트얀
- 샤푸르 1세: 로마와 싸워 대승을 거둔 후 잡은 포로들에 대한 행동을 보면 뛰어난 명군이면서 대인배이기까지 했다.
- 아시시의 클라라
-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마음만 먹었다면 고려의 숙종이나 조선의 수양대군처럼 조카를 밀어내고 자신이 황제가 될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주공단처럼 조카를 잘 보필했다.
- 안와르 사다트
- 안토니오 살리에리: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루머로 유명하지만 사실무근이며 오히려 그의 아들을 제자로 키웠다. 또한 음악계의 힘든 사람들을 위해 재원을 아끼지 않고 자선 콘서트를 열었던 대인배.
-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 알베르트 슈바이처
- 알베르트 괴링: 헤르만 괴링의 동생. 형과는 달리 반나치주의자로 유대인 8000명과 소련군 포로 6000명을 진지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몰래 빼돌려서 중립국이었던 스위스에 풀어줬으며 체코의 레지스탕스를 비밀리에 도운 경력도 있다. 괴링이라는 성 때문에 전후 고생을 많이 하였다. 결혼도 임종 전이 와서야 하였는데 이유도 자신이 죽으면 실업자가 될 가정부를 위해 가정부와 결혼하였다.
- 압둘라예 와드: 세네갈 대통령으로 아이티 지진참사가 발생하자 세네갈의 국토를 나누어 가면서 아이티의 난민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ㅓ
- 야부키 켄타로: 영구 까임방지권의 소유자. 해당 문서 참조.
- 앤드루 가필드: 스파이더맨 인터뷰에서 학교에서 정말 따돌림이나 이런 걸 당했었지만 자신은 그들을 미워하지도 않으며 용서한다는 발언을 했다.
- 에가시라 2:50: 트레버 필립스를 연상케하는 인상과 논란의 여지가 많은 그의 개그와는 달리 본성이 매우 착한 사람이라는 평이 많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 자비로 렌트한 트럭에 각종 의약품과 생필품을 싣고는 알아볼 수 없도록 변장한 채로 이를 재난지역까지 운반하다가 기자들에게 정체가 들통난 일이 있었는데, 이때 그는 "다른 연예인들은 성금을 기부해서 사람들을 돕고 있는 데, 나는 돈이 없어서 몸으로 일했을 뿐이다."라고 대답하여 일본인들의 칭찬이 줄을 이었다.
- 에듀아드 블로흐: 아돌프 히틀러가 유년기였을 시절 그의 집안이 가난함을 알고 그의 어머니의 치료비를 상당수 면제해 주었다. 이에 히틀러는 명예 아리아인으로 보답했는데...에듀아드 입장에서는 씁쓸할 듯.
- 에드워드 8세
- 에드워드 제너: 예방의학자. 영국 왕실의 박해를 받았지만 평생 무료로 예방접종을 해 주어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50]
- 에리히 호네커
- 에린 카토: 앵그리 버드의 물리엔진을 만든 사람. 앵그리버드는 수십억 달러를 벌었지만 이 사람에게 돌아온 대가는 달랑 티셔츠 한 장. 하지만 본인은 만족한다고 한다. 참조설명
-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의 대통령으로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이다. 무엇보다도 당시 인종차별을 받고 있는 흑인들을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셨고, 인권 탄압에 대해서 강력히 저항하며 남북 전쟁 시에도 뛰어난 능력과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셨다. 또한 정적 더글러스가 자신을 두 얼굴의 이중인격자라고 인신공격을 하자 "내가 두 얼굴을 가졌으면 왜 못생긴 얼굴을 갖고 여기 나왔겠음?"이라고 해서 더글러스를 역관광시켰다. 이후 대통령이 됐을 때 상원의원들이 자신의 한미한 배경을 가지고 공격하자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으로 승화시켰다. 한 때 남부가 자신이 다스리는 북부를 멸망시키려고 스파이 활동을 하였는데, 다행히 그 스파이들이 거의 붙잡혀서 링컨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속으로는 저 스파이들을 다 죽여버리고 남부를 멸망시켜 미국을 시급히 통일시켜야 마땅했지만, 링컨은 이 스파이들을 모두 용서하였고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남북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각하의 이름으로 미국이 통일되었다.
- 아데바요르: 토고판 장윤정. 자세한건 문서의 멘탈관련문제 참고.
- 아이스 큐브: 제리 헬러에게 로열티 횡령을 당했고 그룹을 탈퇴했다. 결과적으로 이 일이 N.W.A 멤버들의 갈등의 원인이 되고 더 나아가 Eazy-e와 닥터 드레 사이의 디스전의 시초가 되었다. 이런 안좋은 일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리 헬러의 사후에는 제리 헬러를 애도했다. 자신이 지은 곡이 한국에 악영향을 미친것을 알자 후에 내한하여 사과할 정도.
- 오드리 헵번: 아름답게 늙는다는 말의 좋은 사례. 영화계 은퇴 이후 유니세프 대사로서 인권운동과 인도주의적 활동에 참가했고 특히 죽기 1년 전이었던 1992년에는 암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에 방문하여 죽기 전까지 봉사활동을 했다.
- 오다 코헤이: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니치 드래곤즈를 거친 야구선수. 요미우리 시절 기요하라 가즈히로에게 심각할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고 시달렸으나 2016년 기요하라가 마약소지혐의로 체포되는 장면을 한 토크쇼에 출연해서 지켜보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여서 야구팬들 사이에서 대인배를 넘어 생불이라는 평을 들었다.
- 오스만 제국 술탄 압둘 메지드 1세: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1만파운드의 원조금을 보내려 했으나, 영국 정부가 빅토리아 여왕이 2천 파운드만 보낸 관계로 1천파운드의 원조금만 받는다고 했다. 식량을 실은 배 3척을 싣고 직접 아일랜드까지 갔고 영국 해군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로 파견하여 아일랜드 국민들에게 전달하였다. 이 당시 지원을 받은 지방 중 드로이다라는 지방은 깊은 은혜를 입은데 대한 감사함으로 도시의 문장과 드로이다에 연고를 둔 프로축구구단의 엠블럼에 초승달과 별을 다는 것으로 보답했다.
- 오스카 쉰들러: 전쟁 발발 이전에는 방탕하고 기회주의적인 부패한 사업가였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자기 재산과 직위를 모두 동원해 자기가 데려온 유태인들을 모두 구해준 인물. 나치 잔당이라면 무슨 수를 쓰던 잡아와 잔혹하게 복수하는 이스라엘이 존경하는 인물일 정도.
- 나자렛의 요셉: 성모 마리아의 남편으로서 자신의 친아들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친자식처럼 받아들였다.
- 요시다 나오키: 파판14 PD. 파판14를 접고 있는 해외 유저가 게임을 계속할 비결을 알려달라고 말을 걸자, 무리해서 하나의 게임만을 하지말고 다른 게임을 하다가 대규모 패치 될 때마다 복귀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 욘 라베: 독일인 사업가로 이분의 대인배적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별명이 있으니 난징의 살아있는 부처. 지금까지도 중국인들에 의해서 부처님으로 떠받들여지는 위대한 존재.
- 우에스기 겐신: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반란을 일으킨 부하들을 용서하고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자들을 위해 득이 되던 안 되던 출병하였다. 또한 자신의 직할지로 만들 수 있는 땅이 있더라도 그 지역 통치자를 존중하여 땅을 빼앗지 않았고 원수의 백성들에게 소금이 부족해지자 서스럼없이 소금을 보낸 대인배.
- 유사 코지: 위에 미즈키 나나 밑에 타무라 유카리랑 약간 비슷하다
- 워렌 버핏
- 월튼 워커 미국군 중장과 그 외아들 샘 워커 대위 :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에서 최전방을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일일이 독려해가며 전투를 진두지휘하여 현재의 한국이 존재하게 해 주는 데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 그것도 모자라서 37살에 낳은 늦둥이 외아들 샘 워커를 사관학교로 입대시켜 훈련을 받게 한 다음에 전선 최전방에 배치했다. 늦둥이 외아들이면 말 그대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성 소중한 존재인데 그런 늦둥이 외아들마저 한국전쟁 최전방에 투입하여 남한을 북한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정말 죽을 힘을 다했다. 그 아들 샘 워커 대위도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계속 남아서 한국전쟁에서 전장 맨 앞에 서서 죽을 힘을 다해 전투를 치뤘다. 이렇게까지 한국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와 아들이다. 이 부자에게 어찌 대인배라는 호칭을 아낄 수 있을까? 이후 샘 워커는 월남 전쟁에도 참전하여 비록 패배했지만 그래도 대장까지 진급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이러한 워커 부자의 헌신적인 희생을 너무나 고맙게 여긴 나머지 서울시 광진구 모처에 워커힐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이들의 헌신적 사랑을 기념하고 있다.
- 윌리엄 딘: 딘 장군은 미군 중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였던 1941년부터 극동군으로 활동하여 중국군과 연합하여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던 경력이 있고, 1945년 9월에 미국군이 38선 이남 지역으로 들어가자 맥아더 대장군의 휘하에 있었으며 3대 미국군정청 장관 겸 주한 미국군 부사령관을 지내며 4.3 사건을 진압했다. 그러다가 1948년에 한국 정부가 세워지자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한국으로 왔다. 딘 장군은 당시 소장으로 미국 육군 제24보병사단장에 임명되었고 대전 전투에서 분전에도 불구하고 패배하여 철수하다가 매복한 북한군에 의해 공격을 받아 다른 방향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딘 장군이 탄 지프는 길을 잘못 들어서서 본대와 떨어졌고 딘 장군은 함께 가던 부상병들에게 물을 떠다 주기 위하여 친히 어둠 속에서 물을 찾아 계곡을 내려가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신하여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그는 충청남도 대전[51]에서 어느새 전라북도 무주군을 거쳐 진안군에 이르렀고 일단 박종구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36일 후 한두규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그곳에 주둔하던 북한군에 신고하여 진안군 진안읍 운산리에서 생포되었다. 당시 딘 장군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계획을 알고 있었는데 고문으로 정보를 누설할까봐 자살까지 시도했는데 그 당시까지 북한군은 그가 장군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는 평양으로 압송되어 하루 종일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있었고[52] 파리를 잡는 일로 시간을 보냈으며 갖은 심문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다. 결국 1953년에 휴전 협정이 맺어지자 10월 5일, 첫번째 포로 석방으로 풀려났다. 한편 한두규는 9.28 수복 후 경찰에 체포되어 1954년 9월 23일에 불법체포죄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으나 그는 뻔뻔하게도 무죄를 주장하였다. 한두규는 3년 정도 복역했지만 딘 장군은 오히려 그의 감형을 탄원하여 1957년 좌익수전향자로 감형되어 출소하였다. 그는 그후 미국으로 돌아와서 중장으로 승진하여 미국 육군 6군사령부 사령관을 지냈고 1955년 예편과 동시에 은퇴하였다. 그는 은퇴할 때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의 참전한 공로로 육군 무공 훈장을 받았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82세에 사망하여 샌프란시스코 국립묘지에 묻혔다. 딘 장군은 마일드리드 딘과 결혼하여 아들 윌리엄 딘 2세와 딸 매로리 준 딘을 낳았는데 윌리엄 딘 2세는 주한 미국군 공군으로 한국에서 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다.
- 유덕화: 2007년 콘서트에서 팬이 공연중에 무대에서 꽃을 선물하자 악수를 해줬는데 경호원들이 그 팬을 끌고가서 엄청난 구타를 했고 유덕화 자신이 구타하지 말라고 소리쳐도 경호원들이 듣지를 않자 2M 높이의 무대에서 뛰어내려서 구타하던 경호원들을 때리고 팬을 구출해서 그 팬이 공연장을 나갈 때까지 끝까지 보호했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자신과 대립했던 정적들을 모두 용서했다. 그러나 그때문에 비명횡사해야 했다.
- 유비: 그 시대의 군웅이었기에 실리와 명분을 위해 냉혹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수십년을 방랑하면서도 자기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부하들을 최대한 아끼고 챙겨줬으며, 자기 목숨과 부하들, 가족들 목숨이 위험한 판국에도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다. 또한 약탈과 학살이 심심치 않던 후한말기에 학살과 약탈 기록이 없는 몇 없는 군웅.
- 유우
- 이노우에 카즈히코: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자 피난민들에게 자기 집을 피난처로 제공하고 여유롭게 음식 조달하러 가기도했다. 다만 이사람은 결혼 경력이 화려해서 조금 미묘한 것도 있기도.
- 인도 마우리아 제국 아소카: 인도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대인배 황제. 아니 인류역사상 가장 큰 대인배. 한때는 전쟁에 미쳐 국력을 강대하게 키워 본인도 전쟁을 지휘했으나, 이내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를 깨닫고 결국 평화를 위해서 노력한다. 불교를 믿게 되고 대신들과 모든 국민들에게도 불교를 믿을 것을 권장하였다. 철 57000근과 금 30000근으로 석가삼존 불상을 만들다가 실패하자 혼자 힘으로는 안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금과 철, 그리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 신라에 도착하였고 신라는 그것을 가지고 황룡사에 들어갈 부처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약 700년이 넘는 세월 차이와 무지막지한 철과 금의 양, 그것을 선뜻 바다로 흘려보내는 등 여러모로 믿기 어렵겠지만 여하간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 인상여: 염파가 자신을 시기하여 비난해도 염파와의 대립으로 인해 내분이 일어나 진나라에게 먹힐 것을 우려하여 자신이 자리를 피해주어 충돌을 막았고 염파는 이에 감격하여 인상여에게 사죄하고 인상여와 베프가 되었다.
- 일러스트를 자유롭게 퍼 가도록 한 일러스트레이터들: 원래 그림계는 저작권에 민감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퍼 가도록 했다는 점에서 관대함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출처 및 작가는 표시해 주어야 한다. (저작인격권의 성명표시권)
- 일부 극소수의 아인자츠그루펜 대원: 나치의 학살과 반감으로 인해 몰래 유태인이나 집시족, 소련군 포로를 석방했다. 모두가 미쳐갈때 미치지 않은 진정 위대한 사람들.[53]
- 선테일 (일러스트레이터) : 누군가의 홈페이지가 흥할 수 있다면 퍼가도 괜찮다고 했다. 원문은 '無断転載OKですよ! 誰かのHPのにぎわいになるのならうれしいです♪'. 참고로 일부 항목에 있는 SD 캐릭터들 (이런 거) 이 바로 그의 일러스트. 그의 홈페이지에 있는 아이콘은 이용 규약에 의거, 자유로이 이용 가능하다. 유일하게 금지한 것은 직링크.[54]
- 시로 (일러스트레이터): 선테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이트에 업로드된 그림들은 자유롭게 퍼가도 상관없다고 밝혔다.
- 코포: 상동.
- 잔 다르크: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영국군을 자기 무릎에 눕히고 통곡하면서 위로하고 보장시 성을 탈환했을 때는 영국군의 탈보트 장군이 버리고 도망간 영국군 병사를 보고 자기 물건을 챙기고 돌아가라고 허락해줬다.
- 장루이민
- 장완: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승상. 당시 소인배 대신으로 악명이 높았던 양희가 장완이 같이 얘기하려고 해도 무시하자 어떤 사람이 장완한테 무슨 조치를 취하자고 청하자 "사람이란 게 얼굴과 마음이란게 다른 법이야. 예전부터 앞에선 순종하다 뒤에서 까는 애들을 경계하지 않았던가? 만약에 나와 같이 찬성한다면 자신의 본심을 거스르는 것이고 만약에 나의 의견에 반대하면 이것은 나의 잘못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니 조용했던 것일 뿐이지. 이건 양회의 좋은 점이야. 라며 양회의 태도를 옹호했다. 다른 일화로 양민이란 소인배가 어떤 일이 꼬이자 "장완은 일하는 법이 애매해서 "예전 사람만 못하다! 라고 장완을 비방하고 이에 대해서 벌을 주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장완은 "우리 승상님께서 너무 뛰어나셔서 제가 병신처럼 보일 수밖에요!" 라며 벌을 주지 않고 나중에 양회가 어떤 사건에 연루되자 공정하게 벌을 줘서 중죄를 면하게 해줬다.
- 자레드 레토
- 잔루이지 부폰: 한국에서 인생 최악의 날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 경기에서 교체로 출장해 열심히 뛰어주고 이후 팬서비스를 충실하게 했다.
- 저우언라이
- 제갈량: 자기 계책 안 들어줬다고 겁쟁이라며 매도한 위연을 오히려 중용하고 그가 왕따인 것을 안타깝게 여겨 어떻게든 인간관계를 개선해주려고 했지만 위연은 오히려 제갈량 사후 내분을 일으키는 배은망덕함으로 보답해 토벌당했다.
-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고리 펙, 캐리 그랜트와 더불어 대표적인 할리우드 신사였다.
- 주윤발
- 조광윤: 쿠데타를 일으켜 후주를 멸망시켰지만 후주의 마지막 군주 시종훈과 그 일족이나 유신들을 전혀 죽이지 않고 우대해 주었다. 심지어 시씨 일족에 대해서는 역모 이외의 죄에 대해선 일체 벌하지 않고 반역을 저질러도 본인만, 그것도 감옥에서 자결하게 하는 정도로만 처분하고 일족은 연좌하지 않았다.
- 조너스 소크: 소아마비 백신을 평생을 바쳐 개발했고, 이 백신을 무료로 풀어버렸다. 그에게 백신을 왜 무료로 풀어버렸냐는 질문에 "태양에도 특허를 낼건가요? 백신은 모든 사람들의 것입니다."라고 말한 일화는 굉장히 유명하다.
- 조셉 메릭: 흔히 엘리펀트 맨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인물로 당시 희귀병으로 인해 얼굴이 흉측해서 나중엔 가족들한테 버림받고 그는 서커스장에 가서 당시 사람취급도 받지 못한채 엄청난 혹사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미워하긴커녕 오히려 가족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심지어 가족사진을 너덜너덜해질때까지 갖고 다녔다고한다. 외모는 흉측했을지언정 마음만큼은 정말 아름다웠던 인물.
- 지오르지오 페를라스카: 헝가리판 오스카 쉰들러. 그리고 전쟁동안 했었던 이 일을 1987년 그가 구한 유태인들이 그를 발견할때까지 비밀로 했었다.
- 조양자(춘추전국시대): 예양 일화에서 보통 예양의 충성심만 강조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조양자도 범인의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대인배다.
조예: 자신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새 어머니를 어머니로 모시고 섬겼다. 그러나, 한진춘추의 기록을 보면, 이후 황제가 되어서, 그 새 어머니를 자신의 친모 죽음과 연관시켜 핍박하여 죽음을 내몰았다는 기록이 존재하며,훗날, 대한민국 땅 조선시대에 이 왕이 떠오르는...결정적으로 말년에 자신의 첫번째 아내를 자결을 시켰다는 것으로 대인배 자격은 박탈되어야 할듯...지 아버지가 했던 가정폭력 겸 살인을 그대로 똑같이 따라한 자식.- 조운: 촉의 개국공신 중 한명이자 유비의 신임을 받는 유능한 장수였기에 우쭐거릴만도 하였지만 조운은 늘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했으며, 자기 이익보다 백성을 돌보는 걸 더 중요함을 내세웠다.
조조: 개인은 검소하고, 적이라도 유능하고 충성심있는 인물들은 자기 부하로 영입하는 면모를 보여줬지만 서주 대학살이라던가 원소군 포로 전체 생매장 등 대규모 인명 학살을 자행했고, 유능하고 충성심있는 인물들도 어디까지나 자기에게 쓸모있을 때 한정으로 관대했지 그게 아니면 가차없이 토사구팽했다. 순욱이라던가 채염 등이 바로 이런 토사구팽의 예.- 조지프 버나딘 추기경: 자기한테 성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씌운 사람을 용서했다.
- 존 시나: WWE 프로레슬러로 기량 논란과 푸쉬 논란 등으로 수많은 안티에게 늘 조롱을 받았지만 항상 성실하고 노력하며, 안티의 비난과 비판도 달게 받아들이는 등 인격자의 모습을 보여 레슬러로는 몰라도 인간으로는 까지 말자고 안티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올 정도.
- 존 카멕
- 줄리어스 니에레레: 탄자니아의 국부이며 이름부터가 선생님이라는 뜻. 처음으로 식민지배에서 독립을 요구하며 탕가니카를 흡수하고 수많은 민족들을 통합시키며 스와힐리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기도 하는 등 탄자니아의 케말 아타튀르크쯤 되시는 분이라고 보면된다.
- 지크프리트 트리스탄 하인츠 하이드리히: 이 사람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남동생으로 최종 계급 무장친위대 중위. 그러나 학살의 선봉장이었던 형과 달리 그는 유태인과 집시족을 몰래 석방했다.
- 초나라 장왕: 춘추전국시대에 몇 안 되는 명군. 연회를 하다가 잠시 불이 꺼진 틈을 타 자신의 후궁에게 몰래 키스를 한 부하를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주었다. 결국 그 부하는 나중에 장왕이 전쟁에서 위험에 빠지자 목숨을 걸고 장왕을 구한 다음 숨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살아남아 장왕이 높은 벼슬을 내렸지만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서 어딘가로 떠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 츠바키 타카유키: 그의 부정확한 발음을 네티즌들이 온두루어라고 부르며 그를 조롱했다. 신인 배우로서 충분히 상처 받을만한 일이었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본인은 이에 대해 자괴감이나 악감정을 품기는 커녕 오히려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과 즐거운 추억거리로 생각하고 있으며, 비판의 소재가 된 것 보다는 가면라이더 블레이드에 화제를 불러 일으킨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특촬물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배우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조롱거리가 만들어진 가면라이더 시리즈에 꾸준히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가면라이더 블레이드 종영 4년 후 자신이 시청하고 있던 드라마 가면라이더 디케이드에서는 자신이 원하던대로, 그리고 팬들이 원하던 대로 원래 배역으로 특별출연하여 팬들을 감동시켰다.[55]
- 카메하메하 1세: "Kānāwai Māmalahoe(Law of the Splintered Paddle, "부러진 노의 법'")"의 제정 일화. 한 어부가 카누가 암초에 걸려 끙끙대던 카메하메하 왕을 노가 부러질 정도로 세게 내려쳐 기절시켰는데, 나중에 통일을 한 뒤에 부하들이 카메하메하 왕을 패죽이려 했다고 이 어부를 잡아오자 "이 사람은 가족을 지키려고 한 일이다"라고 풀어주고 오히려 농사 지으라고 땅을 줬다.
- 카토 이즈미: 자신의 작품인 "무제 2004"를 SCP 재단과 그 팬층에서 사실상 재단의 상징이 되어버린 SCP-173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항목 참조.
- 카를라 피게로아: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의 아버지가 감옥에 있는 것을 볼 수 없어서 그를 용서하고 결혼했다. 그런데 남편이 인간 모양 핵 폐기물이다.
- 카를레스 푸욜: FC 바르셀로나의 전 주장이자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의 심장, 영혼. 자세한 건 항목 참조.
- 캐리 그랜트: 그레고리 펙, 제임스 스튜어트와 더불어 대표적인 할리우드 신사였다.
- 케이티 페리: 테일러 스위프트가 혼자 과대 망상을 해서 디스까지 하여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들에게 욕을 먹었으나 이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아 주었다. 자세한 내막은 테일러 스위프트문서의 bad blood 논란 문서 참조.
- 케인: 일명 케인배. 정식 레슬링 경기에서는 매너있게 경기에 임하고 자신이 이겼든 졌든 언제나 상대방에게 악수를 청하며 훈훈하게 끝내며 좋은 각본은 후배들을 위해 알아서 양보하며 자신이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타인을 절대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케인과 경기를 하다가 부상을 입은 사례는 적은 편이다. 그리고 불임인 아내를 위해 자신이 불임이라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 에피소드로 인간 케인은 절대 까이지 않는다.
- 코만도 위베르 소속 알랭 베르통셀로 상사와 세드리크 드 피에르퐁 상사: 인질들이 괜히 여행금지구역으로 가서 납치당한 것을 구출하기 위해 인질의 안전을 위해 육탄돌파를 하다가 근접 사격을 맞고 운명했다.
- 키루스 2세: 타종교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펼치고 노예제 또한 폐지했다.[56] 특히 유대인에게는 영웅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 쿠르트 크니스펠: 전차 격파대수 196대로 지금까지 1위인 전차에이스. 자신의 힘들게 얻은 전공을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한 것으로 유명하며 동부전선에서 소련군 포로를 학대하던 아인자츠그루펜[57] 장교를 폭행하는 등 나치즘을 좋지않게 생각하였다.
- 크리스찬 베일
- 크리스토퍼 리: 자기가 그토록 맡고싶어했던 간달프역을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 이안 맥켈런한테 일부러 양보한적이 있다.
- 크세르크세스 1세: 나는 관대하다. 그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 클린트 이스트우드
- 타로: 남녀 2번 항목 참조.
- 타무라 유카리: 위에 미즈키 나나 하고 비슷하다.
- 타타라 잉굴다이: 우리나라에서 용골대로 알려진 그 사람이다. 고전 소설 박씨전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잔혹하고 악랄한 침락자로 알려져있으나 실상은 그 반대였다. 위의 아이신기오로 도르곤과 함께 청나라 역사의 손꼽히는 대인배중 한 사람이자, 먼치킨.
- 테레사 수녀
- 테일러 스위프트 : 데뷔 초기에는 여기 들어갈 만하다. 음악적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을 외면하던 친구들이 데뷔 후에는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자기 음반을 내밀며 사인을 요청하자 쿨하게 사인을 해 줬다고 함다. 자신의 짝사랑 드류에 대한 노래 <Teardrops on my Guitar>에 그의 연인이었던 여자가 자신을 욕하고 다니다 인터넷에서 악플 세례를 받자 팬들에게 그만하라고 말했다.
- 토니 페르난데스: 퀸스 파크 레인저스 FC의 구단주 - 신문 기사 이쯤되면 대인배중 대인배다.
- 토마츠 하루카: 야부키 켄타로의 네토라레 피해로 인해 슬럼프가 왔을 때, 토마츠 하루카 때문에 마가 꼈다고 억울하게 욕을 먹었는데, 야부키 켄타로의 속 사정을 이야기 하지 않고 자기 혼자 묵묵히 견뎠다. 야부키 켄타로의 사건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
- 토머스 칼라일: '프랑스 혁명' 저자.
- 톰 히들스턴: 아프리카에 가서 가난한 어린이들을 도우러 자원봉사를 하러간적이 있다.
- 툴루이: 지지가 높아 몽골제국의 정식 대칸이 될 수 있었으나, 아버지 칭기즈칸의 유지를 받들어 형인 오고타이에게 대칸 자리를 양도했다.
- 팀 버너스리: 이 분 덕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반 이상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인터넷, 더 정확히 말하면 www, url 등의 개념을 저작권도 등록하지 않고 무료로 풀었기 때문.
- 파울리뉴: 자신이 고용한 족부의사가 중국 생활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자 가족들을 중국으로 초청했으며 원정 경기가 있을때마다 사비로 가족들을 5성급 호텔에서 체류할 수 있게끔 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가 수술을 받을때 의료비까지 지급했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스페인으로 이적을 하면서 자신의 운전기사한테 벤츠를 선물로 남기고 갔다는 미담이 전해진다.
- 판티 킴푹: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2년, AP기자 닉 우트가 찍었던 소녀의 절규라는 사진에서 미국군의 네이팜탄 폭격으로 불붙은 옷을 벗고 나체로 피신하던 베트남 소녀. 당시 9살이던 그녀는 17번의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고 캐나다로 망명했다. (지금도 그 상처가 남아 있다.) 이후 1996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렸던 재향군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24년 전에 자신에게 네이팜탄 폭격을 가해 PTSD로 괴로워하던 퇴역 군인 존 플러머를 용서해 주었다.
- 퍼렐 : 로빈 시크가 표절 논란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배신했는데도 용서해줬다.
- 포숙아
- 폴 길버트
- 프란츠 리스트: 한 여성 피아니스트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자신은 리스트 제자가 아닌데도 리스트에게 배운 수제자라고 거짓 광고를 했는데, 그 마을에 리스트가 온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날 것을 염려한 그녀는 리스트에게 잘못을 빌었다. 그러자 리스트는 그녀에게 피아노 레슨을 해주었고, "이제 나에게 배웠으니 연주회를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포터급 구축함'의 트롤행위로 인해 목숨을 잃을뻔 했다. 그런데도 다들 긴장해서 그런거라며 그렇게 큰 처분은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 프레드 로저스: PBS의 프로그램인 로저스 아저씨네 동네 (Mr. Rogers' Neighborhood) 의 사회자. 텔레비전이 오락 뿐 아니라 교육적인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1960년대 당시에는 생소한 아동 교육용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1969년에 정부가 PBS에 대한 지원을 끊으려 하자 청문회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아이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주는 것이 PBS와 자신의 목표 라고 역설하여, PBS와 CBS같이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방송국을 존속시켰다. 이후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아동 교육용 프로그램이 자리잡을 수 있는 발판을 혼자 개척한 것이나 다름 없다.
방송에서 인자한 이웃 아저씨로 인기가 높았지만, 그가 정말로 존경받는 이유는 털어도 먼지가 안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평소에 비웃던 방송국 직원들이 가정사 문제가 생기면 그에게 찾아가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도움을 청할 때 성심성의껏 조언을 해주고[58], 자녀에게 지나치게 엄하게 대하는 선생이 있다고 부모가 도움을 요청하자 친필로 그 선생에게 편지를 써서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한다던가, 심지어는 부부 사이에 언쟁이 벌어질 때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그가 미국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를 알려주는 사례로, 그의 자가용이 도둑맞았을 때 지역 방송과 언론이 단합해서 그 사실을 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둑이 차를 원래 자리에 갖다 놓으면서 "로저스 아저씨의 차인 줄 알았으면 건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는 쪽지를 남겼다고 한다. 비난과 패러디, 유머로 먹고 사는 cracked.com에서 그의 도덕적인 삶의 행보를 찬양하는 칼럼을 내고, 막장 중 막장이라는 4chan에서도 차마 그를 욕하지 못 할 정도. - 피 위 리즈: 미국 메이저 리그의 야구선수이며, 팀의 경기 중 타 팀 팬들의 야유를 받던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에게 먼저 다가가서 포옹을 해 준 일화는 길이 전해지는 전설적인 장면이며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데에는 어떠한 이유든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피부색이어서는 안 된다. 라는 명언을 남긴 진정한 대인배. 이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미국내 인종평등에 대한 인식이 몇 발짝은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장례식장에서도 흑인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라고 추도사에 남겼을 정도.
- 하나이 젠키치: 일본군 군의관 소장이자 소록도 한센 병원 원장으로 별명은 소록도의 손양원. 소록도에 1921년부터 8년 동안 재직하면서 본식 생활을 강요하지 않고 우리나라 전통 솜옷을 입을 수 있게 했으며 3년제 학교를 세워 한센병 환자들에게 교육도 시켜주었다.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고 가족들이 면회를 오면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심지어 치료 중에도 용무가 있으면 집에 다녀 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 게다가 신사 참배마저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했을뿐만 아니라 신사를 교회로 개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병과 과로로 1929년 영면하신다.[59]
- 하비에르 사네티
- 하일레 셀라시에
- 하인츠 드로셀: 2차대전 당시 독일군 장교였는데, 동부전선에서 사로잡힌 소련군 정치장교의 사형을 반대해 풀어주었고, 고향인 베를린에서 우연히 만난 유대인 여성을 자기 집에 숨겨줬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 여성과 부부가 된다.
- 하후돈: 여포 토벌전 당시 눈을 잃고 애꾸가 되었는데 부하들이 이를 가지고 맹하후(애꾸눈 하후돈)라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부하들을 처벌하지 않고 혼자서 화를 삭히는 것으로 끝냈다. 지금이였으면 군법으로 처벌 가능하고 모욕죄로 고소당할 만한 상황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넘어간 것을 보면 상당한 대인배다. 하지만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저지른 걸 지탄한 사람을 감옥에 가뒀다가 다음 날 바로 풀어준 면모도 존재.
- 호러블 보이
- 호치민
- 후세 다쓰지: 현재까지 유이한 일본인 독립운동가[60]로 애국장을 받은 인물이다. 이전부터 일본에서 약자들을 위해 변호해왔고 특히 항일 독립운동가의 변호를 가장 많이 담당해왔다. 박열을 변호한 것이 가장 유명한 사례며, 해방된 이후에는 "조선건국 헌법초안"이라는 것을 작성해 주기도 하였다. 항일 독립운동가에 대한 법률지원과 대한민국 헌법 제정에도 참여한 위대한 인물.
- 헤난 바라오: 도미닉 크루즈가 2년간의 장기부상결장 속에서도 타이틀 유지에 연연해서 잠정을 세번이나 치르고 뒤늦게 챔피언에 올랐음에도 크루즈를 전혀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부상재발에 대해 위로의 말을 건넸다.
- 히다카 노리코
- 히데: 키시 마유코 와의 이야기도 있지만 선후배와의 관계라던가 X JAPAN의 실질적 리더 역할을 하며 멤버들 간의 불화를 조정하는데 노력했던 일 (특히 TAIJI와 Yoshiki간의 불화)[61] 콘서트에서 굿즈 판매에 관해서 바가지를 씌우지 말자고 하면서 자신의 솔로 콘서트 당시 굿즈의 판매비용에 상한선을 뒀던 일화가 유명하다.
그리고 기타를 뺏으려는 팬에게 화내지 않는다 그저 안뺏기려 노력할뿐. - 히스 슬레이터: WWE에서의 자신의 처우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푸쉬에 연연하지도 않고 회사에 불평 하나 하지 않고 회사에 충성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애사심이 강한 사람으로만 보이지만...이 선수의 2015년 전적은 1승 131패였다. 그래서 그런지 슬래미 어워드에서 투표한 WWE 올해의 슈퍼스타상에서 히스가 무려 8위라는 기록을 달성했었으며 그 인내의 대가였는지 제대로 푸시를 받고 있다.
- 히야마 신지로: 이름만 보면 일본 야구선수같지만 자신이 재일 한국인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 힐러리 클린턴: 정치적인 행보를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남편인 빌 클린턴이 대통령 취임 후 갖가지 섹스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도 이혼하지않고 그를 용서했다.
- 야스카와 아쿠토: 스타덤 시멘트 사건 피해자. 경기하는 도중에 가해자인 요시코의 경기로 인해 안면이 안보이는 치명상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걱정하는 팬들을 위해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
- 프리드리히 엥겔스: 마르크스 주의 창시자로서, 자신이 평생 사랑하는 여자 동거녀가 죽었을 때 카를 마르크스는 어차피 죽어야 한다 등의 편지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카를 마르크스를 용서해 제정적으로 지원해준데다가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1권만 내고 사망하자, 엥겔스는 카를 마르크스의 원고를 모아, 부실한 내용을 덧붙여 출판한다.
- 신시아 파웰: 존 레논의 전부인으로 위대한 뮤지션이었던 삶과 달리 존은 신시아에게 갖은 폭력과 오노 요코와의 불륜, 아들에대한 무관심적인 온갖병크를 일으키는 개차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이 음악에만 전념할수 있게 내조에 힘썼고 아들인 줄리안을 사랑으로 양육했다.이혼 역시 가정을 지키기위해 하지 않으려고했지만 존 레논이 워낙 개차반이다보니 이혼을 했다. 그후 2015년 암으로 타계하였다. 현재 비틀즈팬들의 영원한 뮤즈이자 성모이다.
- 패티 보이드: 조지 해리슨의 1번째 부인으로 당시 잘나가던 모델이었지만 당시 남편이었던 조지를 위해 모델을 그만두고 내조를 할정도로 조지를 사랑했지만 조지 역시 폭력만 안할뿐 레논과 똑같았다. 에릭 클랩튼과의 불륜역시 조지의 관심을 다시 찾기 위한 방법이었다.하지만 조지는 냉담했고 그후 에릭과 재혼하지만 애초에 패티를 이용만할 작정이었던 에릭에게 버려졌다.하지만 대인배 스럽게도 둘을 모두 용서했다.
- 폴 매카트니: 폴은 당시 해체위기에 있던 비틀즈의 해체를 막기위해 동분서주하거나 사이가 좋지않던 존 레논의 아들임 줄리안 레논을 위해 곡을 작곡하거나 악기를 가르쳐주고 휴가를 같이보내는등 그를 친자식 이상으로 아꼈고 가정사역시 첫번째 아내와는 아내의 성격이 워낙 드세다보니 합의이혼을 한거라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두번째 아내였던 린다와는 린다가 죽을 때까지 해로했다. 다른 멤버들과는 다른 편.
- 메이팡: 메이팡은 당시 오노 요코와 재혼했던 존 레논은 그놈의 바람기를 멈추지못했고 메이팡은 그녀가 존에게 붙여준 내연녀였다. 하지만 존과 아들인 줄리안의 만남을 방해하던 요코와 달리 그녀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던 줄리안을 가엽게 여겼고 정기적으러 존과 줄리안이 만날수있게 해주었다. 그 덕분에 줄리안은 아버지인 존 레논과 짧지만 그래도 시간을 보낼수있게 되었다.
- 강희제: 재위초기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구왈기야 오보이를 사형이 아닌 연금 으로 끝냈으며 그일가를 몰살하는 대신 타지로 이주를 시켰다. 삼번의 때는 그 우두머리만 처벌를 했으며 그들의 부하로서 반란에 적극 참여한 인물들에게는 황무지를 개간하는 대신 평생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으며 약간의 시간을 준 뒤에는 그 자식들도 아무 문제 없이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4. 기타
- 혹등고래: 위험에 처한 다른 고래종을 구해주거나 범고래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있는 바다표범을 구해주기도 하는데 이는 혹등고래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는 말그대로 선행이라고 한다.
5. 가상의 인물
자세한 내용은 대인배/캐릭터 문서 참고하십시오.[1]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라는 뜻으로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사람보다는 못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 공자네 집 마구간에 불이 났는데 이에 공자는 사람이 다쳤냐고만 물어보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고 한다. 현대로 치면 차고에 불이 났는데도 사람은 무사하냐고 물어본 것과 마찬가지. 모든 사람이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사상이 묵가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근대 이후에나 전파되었다는걸 감안하면 파격적인 사상이다[출처] #[3] 1962년 발롱도르 위너.[4] 보통 기증자의 신원은 장기이식법 제31조에 의거 비밀에 부쳐진다.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는 동조 제2항4호에 의해 본인이 공개를 동의한 경우.[5] 협회에서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결승전 개최를 강행하려고 했으나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에서 그런식으로 나온다면 우리는 결승전에서 유소년 선수를 내보내거나 시작부터 자책골을 넣어 어떻게든 샤페코엔시가 우승하게 하려 할 것이라고 밝혀 결국 협회도 기권을 받아들였다.[6] 왼쪽 발목과 오른쪽 발등이 잘렸는데 왼쪽은 어떻게 안 돼서 무릎 아래를 절단하고 의족을 하고 계신다. 오른쪽은 특수화를 신어서 겨우 보조하는데 상처가 자주 터진다고…[7] 자신의 아이를 구해준 거야 고맙다고 생각하겠지만 피해자한테 해 줘야 할 보상과 사람들한테 받을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안 찾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이 분이 없었다면 아이가 어떤 꼴을 당했을지 생각하면 최소한 예의상이라도 찾아가야 했다.[8] 사고 당시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 철도 직원들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라고 하신다.[9] 지금도 인터뷰를 하거나 하면 아이와 부모에 대해서는 묻지 말 것을 요구하신다고 한다.[10] 단순히 모에후커가 더 번역이 좋다는 걸 넘어서, 매니저가 단순과 같이 쓰면 충돌한다는 개드립까지 남겼다. 애초에 모에후커가 단순 기반이라는 걸 생각하면 말 그대로 적반하장이다.[11] 심지어 자신조차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어 읽기를 제대로 못한 수준이었다![12] 물론 코드 추출의 노고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봉사자적인 마인드를 가진 단순에 비해서는 포스가 떨어진다는 것.[13] 사실 그는 그 전에 배구 연맹으로부터 드래프트 거부라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각종 수상 자격을 박탈당했다가 다시 구제되었다.[14] 그렇지만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뛰어난던 건 아니니 별개로 구분하자.[15] 하지만 애꿎은 박재홍 부모님은 경기장 갈때마다 함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한다.[16] 그것도 이천수를 인터뷰한 기자의 주선하에 억지로 이뤄졌다.[17] 참고로 본인이 이전에 맡았던 키움 히어로즈는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18] 이유가 어이 없는 게 유재석이 짜장면보다 조금 더 비싼 다른 음식을 시켜서…[19]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친구인 강처중이 썼다.[20] 게다가 이 사람은 당시 깡패들과는 달리 전과가 하나도 없었다. 본인도 죽을 때 까지 이 점을 자랑스러워하였다.[21] 어장관리를 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나 어장관리 피해자들이 없는 사실을 지어내 마녀사냥하려했다는 것이 밝혀져 '팀 내 경징계로 끝나면 되는 부분이었는데 왜 굳이 은퇴까지 시키게 만드냐'며 여론이 바뀌었다.[22] 유명인이라면 무조건 까고보는 그 악명높은 디시위키조차 온갖 표현을 쓰며 칭찬했다(...).[23] 그때가 지금보다도 훨씬 똥군기가 만연했던 1970년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24] 하지만 당시 군대는 지금과 달리 병장은 병 중에서 대우를 달리했을 뿐 아니라, 짬 낮은 소위 정도는 역으로 갈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월북한 장교도 있는 등, 물론 좋은 문화는 아니었다. 다만 당시 병장이라면 그냥 짬 좀 되는 간부가 넌지시 얘기하는 식으로 끝났을 거다.[25] 정말로 억울한 상황이 맞지만 사실 그는 억울하다고 말한 적이 거의 없다.[26] 나병이나 문둥병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실제 투병중인 환우분들께 실례가 될 수 있는 표현이니 한센병이라 칭하는게 맞다.[27] 일반인의 면역 수준으로는 접촉으로 균을 접해도 대부분 발병하지 않으며 감염된다 해도 자연사멸되는 경우가 대부분, 원인균에 대한 면역력이 매우 떨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발병하지 않으며 감염된다해도 약물치료가 가능하다. 2011년 KBS 모 기자는 취재하면서 직접 한센병 환우들과 식사까지 함께 했다.[28] 자세한 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3-1 항목 참조.[29] 지금이야 프로야구 트레이드는 아무렇지 않지만 1980년대 당시 트레이드는 방출과 다름없었다. 특히 최동원은 롯데 자이언츠의 프렌차이즈 스타였기 때문에 더욱 더 충격적인 사건.[30] 매일일보에서는 1975년에 죽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1995년 7월 2일자 동아일보 신문에서는 이한웅이 1970년에 죽었다고 언급했다.[31] 남편이 죽을 당시에 그녀는 불과 27세였다. 다시 말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재혼할 수 있는 나이인데다가, 30세가 넘어도 결혼 못하는 사람이 많은 지금과는 달리 당시 여성들은 20대 중후반에 거의 다 결혼하는 분위기여서 주변 압력 때문이건 아니면 본인 자의건 간에 얼른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결정적으로 당시 기준으로 볼 때에는 혼인 적령기는 약간 지난 나이였지만, 새 시가에 한 몫을 두둑히 해줄 전 재벌가 맏며느리 출신의 여자를 거절할 집안이 70년대 당시의 한국에서 얼마나 있었을까?[32]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아이스크림 가게가 잘 되었다고는 하지만, 젊은 나이에 재혼은 커넝 무려 18년(매일일보 기록을 따르면 20년) 동안 자기 손자를 기르고, 남편을 잊지 않고 정절을 지킨 것에 대한 것에 비해 터무니 없는 보상을 해 준 것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많다. 실제로도 사고 당시에 기자들이 그녀와 만나 인터뷰하기 전 까지만 해도 그 기자들은 추경영을 삼풍 임직원 정도로 생각했다가 구조된 그녀와 한 인터뷰로 인해서 추경영이 힘들게 살아왔음이 알려지자 안 그래도 최악이었던 이준 일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33] 물론 그녀의 사과 장면을 TV로 당시 국민들은 그녀를 비난하기는 커넝, 그녀에게 씁쓸한 안타까움을 표하며 동정하였고, 이 사건을 일으킨데다 자기 맏며느리를 사지로 내몰았던 이준 일당을 비난했다.[34] 현미와 옥주현의 나이 차가 40살이 넘는다.[35] 다른 사람도 왕과 부딪힌 것이니 신하들이 충공깽에 빠진 상황이었지만, 잠깐의 실수를 가지고 중히 벌할 수 없다며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36] 왕이 사실상의 허수아비로 전락한 세도정치 기간인 헌종 때에도 왕명에 의해 유배를 간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전문] 사실 같이 일하는 PD들 중에 홈쇼핑 광고 좀 그만 하라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어려울 때 같이 해왔던 사람들인데 이미지 관리를 핑계로 냉정하게 거절할 수가 없어요. 저는 홈쇼핑 광고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품은 다 똑같은 것이고, 저는 성우로서 맡은 일에 얼마나 충실하게 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38] 교황으로 재위하던 중에 한 아이가 장난삼아서 소방관용 헬멧을 씌워주자, 이를 제지하려는 경호원들을 물리고 진짜로 헬멧을 쓰고 아이와 함께 웃어 보인 일이 있었다.[39] 사실 시스 로드(...)같은 이미지도 교황 선출 이후 과중한 업무으로 인한 피로로 눈에 다크서클이 생기면서 나온 것이다. 결국 이를 인지한 바티칸 당국이 2008년부터 베네딕트 16세의 외모 관리와 건강 관리에 신경쓰고 교황을 찍은 사진도 보정시켜서 공개하는 조치를 취하였다.[40] 파스칼리나 레네르트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교황 비오 12세가 종교적인 업무에만 신경쓰겠다며, 모든 정치적 실권을 그녀에게 부여한 것을 계기로, 추기경들을 길들이기 위해 일부러 갖가지 핑계를 대며 추기경들의 교황 알현을 방해했다. 개중에는 추기경 시절의 요한 23세도 있어서 당시의 교황과 자신이 열렬한 팬을 자처하던 미국 배우 클라크 게이블이 교황을 알현한다는 이유로 요한 23세를 추운 밖에서 바람을 맞힌 일이 있었다. 심지어 그가 나중에 교황으로 선출되자, 기자가 '그때 그가 교황이 될 줄 알았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41] 다만 개인 레벨에선 나쁘게 평하자면 민폐, 좋게 봐도 마이페이스 속성 보유자라는 얘기가 자주 들리며 GNU 내에서도 급진 과격파라 충돌을 빚는 경우가 많다.[42] 다만 스캇의 엉성한 경기 진행으로 반응은 좋지 않았다.[43] 취미가 궁전 정원에 있는 텃밭을 일구어서 나오는 농산물을 귀부인들과 나눠먹는 것이었다고 한다.[44] 해당 문서와 루이 16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로 억울하게 처형당했다.[45] 히틀러는 항복하거나 패배한 인물들을 패배주의자라고 매도하고 고위직 장성이라도 즉결 처형이 가능하도록 하였다.[46] 티거는 워낙 생산된 물량이 적었던 탓에 독일군에서도 정비에 우선순위를 부여받았고 금이야 옥이야 떠받들 정도로 당시 독일군도 보급받기가 상당히 힘든 편이었다.[47] PBS가 비영리를 추구하기도 했었고.[48] 일제 강점기 시기에 그것도 일본인으로서 덕혜옹주와 혼인했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여론에 의해 근거없는 비방을 당했기 때문이다.[49] 다만 불행하게도 그의 이런 헌신은 아내인 덕혜옹주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소 타케유키가 조현병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를 찾기 보다는 마사지사를 불러서 안마만 받게 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로서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어도 뾰족한 대안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의 조현병의 치료법이라는 게 최면치료나 전기충격요법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정신질환의 치료법이 최면치료에 그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독자연구를 시작했고, 이렇게 해서 세워진 이론이 바로 정신분석학이다.[50] 그래도 제너는 운영하던 개인병원이 매우 잘 되었고, 천연두 백신의 대성공으로 세계 각국에서 기부금과 연구비를 지원해줘서 부자가 되었다. 나중엔 첫 예방접종자 핍스와 그 가족에게 자기가 살던 집을 줄 정도였다.[51] 당시에는 대전이 충청남도 관할이었고 1981년에 직할시로 분리되었다.[52] 이 후유증으로 그는 다리 근육이 상해 보행이 불편하게 되었지만 그나마 평소 걷기를 많이 한 덕분에 절단은 면했다고 한다.[53] 참고로 아인자츠그루펜은 아래 쿠르트 크니스펠 항목에 보면 알겠지만 무장친위대마저도 수치로 여겨질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 사이에서 민간인을 구출했다는 거는 보통 용기로 하는게 아니다.[54] 직링크는 직링크를 당한 홈페이지에 심각한 부하를 주는 행위이다.[55] 쿠레나이 와타루 역을 맡은 세토 코우지, 미나미 코타로 역의 쿠라다 테츠오와 함께 역대 시리즈 주인공 담당배우가 원래 배역으로 출연한 경우. 쿠레나이 와타루가 전작 주인공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역대 주인공 배우들 중 유이하게 재출연한 사례[56] 영화 300에서 이 대사로 유명한 크세르크세스 1세는 키루스 2세의 외손자인데 아버지 다리우스 1세는 키루스 2세의 사위, 어머니 아토사는 키루스 2세의 딸이었다.[57] 나치 독일의 인종청소부대. 점령지에서 공산당 간부, 소수민족, 유대인을 학살한 것으로 악명을 떨쳤고 국방군 뿐만 아니라 무장친위대조차 독일군의 수치라며 혐오하던 집단이었다.[58] 그 것도 로저스 자신이 아니라 들고 있는 인형을 상대로 말을 하는 식이었는데, 평소에 자신이 비웃음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이 창피해하지 말라고 배려하는 차원에서 인형을 세우고 인형의 목소리로 말을 한 것이다.[59] 안타깝게도 하나이 젠키치 선생이 별세하신 후, 소록도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군사독재정권기까지 벌어진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온갖 잔학한 인권침해 행위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 하나이 선생의 노력과 헌신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60] 다른 한 명은 독립운동가 박열의 부인인 사회운동가 카네코 후미코이다.[61] 서로 유감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 둘은 성격이 성격인지라 트러블이 진짜 심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