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 | |
발생 일시 | 2015년 5월 13일 오전 10시 46분경 |
발생 장소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대한민국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제52보병사단 211보병연대 강남예비군 훈련장 |
사고 유형 | 총기 난사, 묻지마 살인 |
가해자 | 최 모(23)씨 |
사망 | 3명[1] |
부상 | 2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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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5년 5월 13일 오전 10시 46분 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대한민국 육군 수도방위사령부[2] 예하 제52보병사단[3] 제211보병연대 강남예비군 훈련장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 #1, #2
육군 210보병연대 2대대에서 주관하는 동원훈련 영점사격 중 예비군 한 명이 뒤로 돌아서 다른 예비군들에게 K2 소총을 난사한 후 스스로 총을 쏴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으로 범인을 포함한 3명이 숨지고[4] 2명이 중상을 입었다.
1993년에 포 사격 미숙 등으로 인한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고가 있었고 1994년에 (구)제57보병사단 금곡예비군훈련장에서[5] 서울의 모 대학 학생 예비군 훈련 도중 오발사고(공포탄 탄창에 실탄 1발이 실수로 삽입)[6]로 예비군 한 명이 숨진 적이 있지만 두 사건은 과실이기 때문에 이후 대책마련을 통해 수습이 가능했던 반면 이 사건은 예비군 사상 최초의 총기난사 사건이라서 매우 큰 파장이 일었다.
범인은 불과 10초 가량의 시간 동안 정확히 조준사격을 했으며 총알은 단 9발만 이용했다. 특별히 정해 놓은 사람 없이 무차별적으로 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조승희처럼 사람을 상대로 조준사격을 했다. 총탄 1발을 표적에 맞힌 후 7발로 2명 사망, 2명 중상을 입혔고 나머지 1발로는 자신의 머리를 쏴서 자살했다. 자신과 아무런 인간적인 연결 고리가 없는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살해한 무차별 살인, 묻지마 살인 사건이다.[7]
2. 사건 당시 상황
사건은 2박 3일 기간의 동원 예비군훈련 중 2일차 영점사격훈련 도중 발생했다. 발생 시각은 오전 10시 37분경.
사격 훈련 당시 최씨의 K-2 소총에 걸려 있어야 할 안전고리는 제대로 걸려 있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절차상 예비군이 직접 안전고리를 채우고 이를 조교가 흔들어 확인했어야 하지만 해당 조교는 최씨가 안전고리를 만지작거리는 것만 보고 채웠다고 판단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이 상태에서 최씨는 영점사격을 위해 총탄 10발이 든 탄창을 지급받아 표적을 향해 첫 발을 쏘고 다른 사로 사격이 모두 끝난 뒤 벌떡 일어나 뒤돌아서 총을 난사했는데 다른 사로 사수들은 안전고리 때문에 총구를 돌려 반격할 수도, 엎드린 상태였기 때문에 즉각 피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누군가 달려와 넘어뜨리고 총을 뺏거나 걷어차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 씨는 6개 사로(사격 구역) 가운데 1번 사로에 있었으며 뒤에 부사수로 서있던 예비군의 머리를 향해 1발을 조준사격한 후 사로에 엎드려서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던 예비군들을 향해 6발을 난사해 합계 7발을 예비군에게 사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예비군 4명이 총에 맞았다.
총소리와 상관[8]의 '도망쳐라!'는 소리에 주위 예비군은 다 도망갔지만 도망치지 못하고 남은 A씨가 있었다. 최씨는 A씨를 조준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쏘지 않았고 곧 자신의 이마에 9번째 총탄을 쏘아 자살했다.[9]
남은 한 발은 탄창에 남아있었다고 군은 확인했다.
3. 조사 내용
가해자 최 모씨는 1992년생으로 육군 제5보병사단에서 복무하다가 2013년 병장 만기전역했으며 현역 시절 중증도의 우울장애, 인터넷 과의존으로 관심병사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B급 관심병사였기 때문에 GOP 근무에도 투입되었으나 사고 발생 확률이 높은 부적합자로 판정되어 단 20일만 근무했다고 한다.최씨의 이웃들에 따르면 군대 갔다오기 전에는 그래도 정신이 괜찮았는데 군대를 갔다오고 나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 최씨의 이웃 주민인 김모(65)씨: "가끔 웃옷을 다 벗고 집 앞을 돌아다니고 소리도 빽빽 질렀다. 걸어다니는 것만 봐도 정신이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봤는데 휴대전화에 대고 화를 냈다. 그런 일(총기난사)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 인근에서 8년 동안 살았다는 20대 주민: "동네를 오고 가면서 혼자 욕설을 하며 걸어다니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몽롱한 눈빛으로 공원에서 같은 자리를 왔다갔다하는 모습도 봐서 평소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최씨 자택 인근에 사는 70대 할머니: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군대를 다녀온 뒤 이상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빨리 병원에 보내지 왜 안 보내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20년 전에 사망하고 어머니와 이모와 같이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형과 누나는 오래전 결혼해서 분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조사 도중에 최씨의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내일이 사격이다. 다 죽여버리겠다", "다 죽여버리고 자살하고 싶다"라고 언급하고 있어 사전 계획범죄임이 밝혀졌다. 유서에 따르면 GOP에서 군복무하는 중 가혹행위를 가한 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고 한다. 유서는 최 모씨의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왔다. #, #, #가해자 최 모씨의 유서 전문
최씨는 희생자 2명과 같은 생활관을 사용했고 부상자 2명은 다른 생활관에 있던 예비군이라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이들이 다퉜는지에 대해 조사했지만 유서 내용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해졌다.#
군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사건 당시의 현장을 공개했다.#
3.1. 목격자의 증언
- 가해자 최 모(23)씨 바로 곁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김 모(25)씨는 아버지를 통해 "총기사고를 내고 자살한 아이가 사격 전에 우리 아들과 같은 줄에 있었는데, 교관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고 순서를 바꿔 총을 쐈다네요"라고 증언했다.#
- 사건 목격자 신 모씨(29)는 당시 가해자 최 모씨(23)가 명찰이나 부대마크를 모두 뗀 상태였고 대기할 때부터 자기가 몇 사로로 들어가는지 옆 사람에게 물어본 후 제일 왼쪽 1사로로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고 "최씨가 실탄을 받은 후 조교의 도움도 없이 총에 탄창을 끼운 후 1발을 사격하고 이어 고개를 들어 2사로 부사수가 웃는 것을 봤다"며 "직후 사격자세에서 일어나 자기 뒤 부사수를 쏘고 나머지 사격 중인 2, 3, 5 사로에 들어가 있던 사수를 쐈다"고 전했다.#
4. 인명피해
사건 당일인 2015년 5월 13일 밤 10시 기준으로 의식이 없던 윤 모씨가 끝내 숨져 사망자가 3명으로 늘었다. 나머지 2명도 중상이지만 이들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알려졌다. 사망자 3명은 각각 1사로 사수(범인)와 부사수, 3사로 사수였으며 부상자 2명은 2, 5사로 사수였다. 군인권센터 브리핑에 따르면 피해자 중 한 명인 안 모씨가 군병원인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했다가 그날 밤 9시 자비로 치료해야 하는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4.1. 사망자(3명)
- 최 모씨(23, 가해자): 1사로 사수. 내곡동 훈련장에서 총기 난사 후 자신에게 총을 당겨 현장에서 사망.
- 박 모씨(24, 피해자, 삼성서울병원): 3사로 사수. 머리 후두부 오른쪽에 총알을 맞고 심정지 상태로 심폐소생술을 받아가며 사건 당일 오전 11시 26분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뇌손상이 심각해 소생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도착 직후 사건 당일 오전 11시 30분 사망 판정.
- 윤재홍[10](24, 피해자, 삼성서울병원): 1사로 부사수. 사건 당일 오전 11시 24분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가슴 부위에 총을 맞아 매우 위중한 상태였다. 의료진은 오른쪽 쇄골 부위로 총알이 들어갔으며, 폐 부분에 조각난 상태로 여전히 박혀 있다고 발표하였다. 윤 씨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부터 심장이 멈춰 있어서 심폐소생술을 했으며 8분간의 심폐소생술을 통해 심정지상태에서 회복되었으나 혈압이 매우 낮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의료진도 생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걸로 평가하였다.# 여러 차례 수술에 들어가긴 했지만 환자 상태가 매우 심각해 생존확률은 1%로 윤 씨가 오늘 안에도 사망할 수 있는 상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결국 사건 당일 밤 9시 37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망 원인은 총상에 의한 과다출혈과 허혈성 뇌손상#이다. 2015년 12월에도 유족들은 자식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듯하다.#
가해자 최 모씨의 시신은 부검한 뒤 유족들에게 인계되어 별도의 장례식 없이 화장되었고 피해자 박 씨와 윤 씨는 시신을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긴 뒤 장례를 치렀다. 가해자의 유서에 따르면 자신은 화장이 아닌 매장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 가해자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4.2. 부상자 명단 (2명)
- 황 모씨(22, 피해자, 강남세브란스병원): 5사로 사수. 사건 당일 오전 11시 16분에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당시 왼쪽 턱 밑에 총알을 맞고 들어가서 오른쪽 광대뼈에서 총알이 7~8조각으로 분리되어 박혀 있다. 의식은 있으나 입에 피가 고여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총알을 빼내는 수술과 함께 뼈 재건 수술을 진행했다. 인터넷에서는 일단 누워있는 상태에서 총에 맞았는데도 총알이 턱에서 광대뼈로 오히려 총알이 위쪽으로 갔다는 점과 관통되지는 않은 점으로 보아 지면이나 다른 곳을 맞고 튕겨나온 총알이 턱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래도 머리에 맞았으나 다행히도 뇌손상은 피한 모양이다.# 이후 SBS 보도를 통해 그의 상황을 알 수 있었는데 턱뼈가 부서져 정강이뼈로 대치했으며 지금까지 무려 9번의 수술을 받았다고... 살아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사고의 후유증은 꽤 컸던지라 결국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까지 왔다. 하지만 국가보훈부[11]는 X-Ray로 확인된 병만 인정했고, 충분히 객관적 증명이 가능한 정신병에 대해서는 보상을 하지 않아 여러모로 꾸짖음을 받았다.
- 안 모씨(25, 피해자, 국군수도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 2사로 사수. 총알이 견갑골로 들어가서 폐에 손상을 입히고 총탄이 몸에 박혔다. 사건 당일 오전 11시 18분에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흉부 왼쪽에 총상이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알려졌으며 의식도 있어서 당일 1시에 부모 및 친구와 면회까지 했다고 한다. 심지어 총알이 몸을 관통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따끔했다'라고 농담까지 했을 정도다. 농담이 아니라 당시 범인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고[12] 총알이 몸에 박혔음에도 멘탈이 상당한 것 같다. 당시 응급처치만 받은 상태였으며 우측 폐 부분도 손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총탄 제거 수술은 차후 상황을 지켜보면서 진행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당일 9시경 가족들의 뜻에 따라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다. 부상이 꽤 커서 결국 3급 장애[13] 판정을 받았다.
5. 문제점 및 논란거리
5.1. 허술한 사격 훈련 관리
예비군 동원훈련장에서 영점 사격을 할 때 실탄 3발을 지급해 25m 앞의 표적지를 조준해 사격하도록 하고 이어 실탄 6발을 지급해 측정사격을 하는 순으로 진행한다.[14] 하지만 부대마다 실탄 지급 방식이 달라 어떤 훈련장은 실탄 10발을 지급하는 등 예비군 사격 훈련 총기 실탄 관리가 미흡했다는 의견이 나왔다. 사건이 일어난 내곡동 강동·송파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실탄 10발을 지급했다고 한다.#[15]해당 예비군 훈련장은 20개의 사로(사격구역)이 있었는데 사건 당시에는 20개 사로 모두 사용했던 걸로 알려졌다. 20개 사로를 사용했다면 각 사로마다 1명씩 기간병이 임무를 맡는 사격통제요원 20명이 필요하다. FM대로 한다면 1개 사수마다, 1명의 사격통제요원이 배치되는 것이 맞지만, 현역부대이건, 예비군 훈련이건 인원 문제 때문에 안지켜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 사건 당시에도 현역 기간병 6명만이 20개 사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사수와 사격통제요원이 1대1 배치가 되었다면, 그리고 총기 결속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했다면, 다른 사수가 사격할 때 사격을 하지 않는 이상 징후가 있을 때 바로 기간병이 개입했다면 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사례다. 예비군들이 그냥 훈련만 받고 조용히 나간다면 다행이지만 단 한 명이라도 그렇지 않다면 말 그대로 현역 본인들은 물론 다른 예비군들까지 사선에 내몰린다는 이야기다. 좀 심하게 말해서 범인이 소총을 들고 일어설 그 시점에 바로 달려들어 그를 넘어뜨려 총기사고를 막을 사람이 있지 않은 이상 참사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예비군 사격 훈련 할 때 총기 관리 규정이 없다고 한다. 즉, 총기 관리 규정은 부대마다 복불복이란 소리다.#1, #2 애당초 국방부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면 총기 관련 안전 사고 매뉴얼을 말로만 준비한다고 했을 뿐 실제로 실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OECD 자살률 1위 국가에서, 식칼보다 긴 날붙이도 법적으로 통제하는 국가에서, 정신상태를 알 수 없는 이에게 실탄 화기를 지급하는 상황에서 그 대응책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건 문제가 맞다.
현장을 통제했던 간부들은 현실적으로 볼 때 이들이 자신의 생명을 버리지 않고 가해자를 제지할 길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밝히면서 한꺼번에 달려들면 제지할 수는 있었겠지만 이 사건에서는 무방비 상태로 제지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한 명은 생명을 버려야 했다. 육군도 이 점을 지적하면서 몸으로 막았다면 영웅이 탄생하는 대신 최소 한 명의 사망자가 추가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5.2. 사건 축소/은폐 의혹을 만든 군의 발표
- 1차 브리핑에서는 6개 사로만 있다고 했다가 언론 및 과거에 훈련받았던 예비군들이 20개 사로가 있다고 하고 나서야 2차 브리핑에서는 20개 사로가 있다고 말을 바꿨다. 사건 현장에는 대위급 장교 3명과 현역병 조교 6명이 배치되었는데 이들이 각 사로에 자리잡은 20명의 예비군을 한꺼번에 통제했다. 그러나 육군 측은 최초 브리핑에서 사로 개수를 조교 숫자에 맞춤으로써 조교 1명이 예비군 1명을 밀착 통제했다는 인상을 주려고 했다는 의혹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 실탄이 10발 든 탄창 지급 부문에 있어서도 1차 브리핑 때 규정 위반에 대한 언급을 안 했다가 2차 브리핑 때 언론 및 수 많은 예비군들이 지적하자 육군 관계자는 예비군 사격 훈련장에서는 1인당 실탄 9발 지급이 원칙이며 사건이 일어난 부대에서 10발씩 준 것은 실탄 개수를 쉽게 세기 위한 편의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 육군은 예비군 사격장에 얼마나 많은 조교가 배치돼야 하느냐를 비롯한 민감한 사안의 질문에 대해서는 "정해진 규정이 없고 부대 사정에 따라 다르다"는 식의 답변만 늘어놓았다.#1, #2
- 참고인 조사 중 가해자 최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사격장을 미쳐 빠져나가지 못해 마지막으로 최씨에게 조준당했던 부사수 A씨에게 군 측이 현장검증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언쟁이 있었다. 피해자인 부사수 A씨에게 가해자 역할을 맡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A씨는 사건현장에 누가 가고 싶겠냐며 거절했지만 군 측은 '국민의 알 권리가 먼저'라며 끝끝내 현장검증에 데려가 최씨 역할을 맡긴 채 사고재현을 시켰으며 정신적인 상처를 입더라도 (현장검증에) 나가달라며 막무가내였다.#
- 2015년 5월 14일 오전 10시, 피해자 박 모씨의 유가족이 사건 현장을 방문했는데 현장검증에서 수사관, 기간병에게 어떤 답도 들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일일이 사건 당시에 있던 예비군들의 증언을 들었다면서 이번 사건이 가해자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부각하지 말고, 예비군 훈련장 총기사고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 달라고 했다.#
쉽게 말해 국방부는 그동안 부대 내에서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하던 대로 은폐와 축소를 시도한 것인데 이 사건은 대상이 예비군들이었으므로 당연히 먹힐 리가 없었다. 현역병들을 쓰다 버리는 소모품 취급하던 습관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초기에 사로 숫자를 6개로 축소 발표하는 등 사건 은폐와 축소를 시도했다가 분노한 예비군 참석자들이 자발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한 기사가 많이 남아 있다.
예비군들은 민간인들이니깐 국방부의 조직적인 사건 축소/보도가 이어지지 않겠지만 이를 실행에 옮긴 점과 군사경찰[16]이 수사해야 한다면서 경찰과 공동수사하지 않고 막은 점은 이미 많은 언론 및 예비군들이 "또 사건 축소/은폐하고 있네"라고 생각하게 된 대목이다. 사건이 난 이후 수 많은 예비군 부모 및 가족과 부대 근무중인 현역병 부모들이 사건 현장인 부대를 방문했지만 조사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6. 여파
6.1. 대한민국 국방부의 반응
국방부에서는 앞으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 예비군 사격시 관리와 감독을 철저히 할 것이고, 더 나아가 방탄복을 지급하고 통제관에게 실탄을 지급하며 사격장에 방탄 유리로 칸막이를 설치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다만 예비군 부대에 따라 이전부터 사격 사로마다 조교가 1:1로 달라붙어 감독을 하고 총기도 고정된 상태로 사용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 사건은 그런 수준만 되었더라도 방지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단순 관리감독 강화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한국의 민간 실탄사격장의 경우도 사고 우려로 인해 쇠사슬이나 칸막이 등으로 총을 고정해 총구가 전방을 향하도록 강제하고 직원이 옆에서 지켜보는 게 대부분인데 이 경우 어찌어찌 자살까지는 해도 난사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방탄복 같은 경우 소총탄을 막는 물건은 비싸고 무거운 데다 현역에게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것이 국군의 현실이다. 게다가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근거리에서 쏘게 되는 만큼 방탄복으로 막을 수 없는 부분을 쏠 수 있고, 실제로 범인도 머리를 겨냥한 데서 드러나듯 효용성에 의문이 있다.[17] 구형 방탄모는 그 두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멀리서 쏜 탄이 다른데 맞았다가 튀어서 맞는 도비탄이 아니고서야 방탄 효용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물건이다. 애초에 현역 간부들도 구형 방탄모는 그냥 파편 튀는 거 막아주는 정도라고 가르친다. 통제관에게 실탄을 지급하는 것은 예비군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고 방탄유리 역시 예산 문제가 있는데 별 생각 없이 급조한 대책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6.2. 정치권 대응
2015년 5월 14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국방부로부터 전날 이 사건과 관련해 사고 경위 등 현안을 보고받고 재발 방지 대책을 모색했다. 이 사건은 위의 문제점을 언급한 대로 예비군 훈련 현장에서 안전관리 규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점에 대해 집중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와중에 백승주 국방부 차관은 이 사건 긴급 현안보고 회의 중에 웃고 있었기 때문에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다.
관심병사와 같은 문제 소지가 있는 예비군은 사고 예방을 위해 별도 관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인권과 관련된 논란이 되었다. 일단 사회에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절대다수의 관심병사는 이번 사건의 가해자류와는 무관한 단순 부적응자에 성격도 그리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며 당연히 예비군도 정상적으로 받고 나간다.
6.3. 예비군들 반응
군 내에서의 흉흉한 사건을 짐작할 줄 알고 훈련을 직접적으로 받는 예비군인 만큼 현역도 흉흉한 사건이 터지는데 이젠 예비군도 위험하다는 평에 불안감을 고조시켰다.사건 이후 사격 훈련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데 총을 쏠 수 없다며 잇따라 예비군 훈련 연기신청을 내는 등 불안감이 고조되었으며 각 지역 예비군 동대에서 예비군 훈련 연기 및 사격훈련 실시 여부에 대한 문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6.4. 다른 예비군 훈련장 부대의 반응
이 사건의 여파로 일부 예비군 훈련장 내 사격장에서 아예 사격용 총을 따로 지정해 자물쇠 채운 사슬로 단단히 고정해 놓은 부대도 생겼다.[18] 그렇지 않은 곳도 사격훈련용 총을 교관들이 설치해 주고[19] 거기에 안전고리를 이중으로 설치하는 바람에 예비군들은 입소 때 소총을 지급받지 않은 상태로 몸만 가서 사격훈련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사격훈련 때 오로지 사격만 하면 나머지는 조교들이 대신 해 주는 부대도 있었으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방지대라는 용접한 쇠받침대들을 공구리쳐 사슬을 용접하고 총의 멜빵끈을 매는 고리에 일일이 연결해서 총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었다.#[20]7. 영향
- 2015년 6월 16일, 국방부는 현역 복무 시절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전역자와 간부에 대해서 예비군 훈련을 제외하는 방향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정신병력 자체가 잘 인정되지 않고, 본인이 숨길 경우 드러나기 어렵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어쨌든 이에 따라 2016년 2월 15일부터 심리적 문제 및 이상이 의심된 예비군들은 훈련이 제한되거나 면제받게 되었고 현역 복무 중에 정신질환이나 부적응 사유로 보충역으로 전환되었거나 원래부터 보충역이었던 자라도 상기한 기록이 있으면 훈련이 면제된다.[21] 자신이 이 제도에 해당한다면 아마 해당 동대에서 알아서 통보가 오고 보류 처리를 해 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직접 문의해야 한다. 이미 정신과 4급이 나와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소집해제가 되어도 전면보류 처리되나 본인이 원하면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예비군 사격장에서 사용하는 총기를 지상에 고정하는 틀과 안전고리를 표준화해 보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올해 내라고 했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얼마가 걸릴지는 알 수 없다.
- 2017년 이후에는 예비군 사격장의 사격통제관과 사수에게 총탄으로부터 보호되는 신형 방탄헬멧과 방탄복을 지급할 계획이다.
- 공군은 이 사건 이후 예비군 사격장 내 방탄복과 고무탄, 테이저 건으로 무장한 헌병이 사로 후측에서 대기하며 부사수 대신 각 사로별 사격 통제관을 배치하고 있다. 사실 각 사로별 사격 통제관은 기존부터 있었으나 예비군 부대의 자율 때문에 지키지 않는 부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여러 부대에서 사격장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다. 경기도 모 예비군 훈련장은 이 사건 이후로 총기 시건장치를 자동식으로 교체하여 통제관이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상 총이 절대로 안 빠져나가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어떤 곳은 사선쪽 전체를 투명 아크릴벽으로 완전히 막아버리고 작은 구멍에 총구를 집어넣고 안전고리를 연결해서 분리가 불가능한 상태로 개조했다. 훈련 중엔 분리가 불가능하니 미리 연결된 전용 총기로만 모든 예비군이 사격을 하는 방식이다. 방탄 조끼를 입고 사격하기도 했다.
- 아예 지급받은 소총은 그냥 휴대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사격장 내에서는 걸쇠에 튼튼하게 고정시킨 별도의 소총을 사용하게 하는 부대도 많다. 이런 고정된 전용 총기 방식은 장점도 있는데 사격에 앞서 부대에서 점검관리를 하고 대부분 컨디션이 좋은 총기를 사용하게 되므로 사수가 사격 시 탄걸림이나 불량확률을 겪을 일이 적다. 즉, 시간낭비할 일이 줄어든다.
8. 기타
- 사건 발생 직후에는 속보 형식으로 정확한 정보 없이 사건에 대한 소식만 보도되다 보니 "서초구의 예비군 훈련장" 같은 형식으로 부대명이 알려지는 바람에 강남·서초 예비군 훈련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오인받기도 했다. 2개의 예비군 훈련장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보니 잘못 아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싸이도 이 날 사건이 일어난 강동·송파 예비군훈련장의 바로 옆에 있는 강남·서초 예비군훈련장에서 2089부대 2대대가 주관하는 향방작계훈련을 받았으나 스케줄 문제로 사건 발생 20분 전 교장을 떠났다고 한다.# 예비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꼼수를 쓴 것으로 비판하기도 했지만 훈련 중 불가피한 사정이 생기면 부대에 양해를 구해 조퇴할 수 있으며 조퇴를 하면 나머지 훈련 시간을 나중에 다시 채워야 한다. 예를 들어 6시간 훈련 중 3시간만 받고 조퇴를 하면 나머지 3시간은 다시 훈련을 받아야 하는 데다 미뤄지다 보면 8년차까지 받기도 한다.[22] 게다가 예비군 훈련장에 가는 시간과[23] 군복 찾아입는 등등의 귀찮음까지 감안하면 당연히 조퇴는 본인 손해이다. 그러한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1시간에 거액이 왔다갔다 하는 연예인이 아닌 한, 더더욱 그냥 한번에 다 정상적으로 받고 끝내야 시간이 안 꼬이고 좋지 조퇴해서 두 번씩 가고 싶어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국방부에서도 싸이를 직접 거론하며 남은 시간 모조리 꽉꽉 채워야 된다고 말했다.
- 남은 예비군들은 부상자 2명을 제외하면 전원 생활관에서 군사경찰에 의한 고강도 조사를 받았다고 하며 참사 현장에 있었던 기간병과 간부. 예비군들은 PTSD 문제도 심각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해당 예비군들은 2015년 5월 12~14일 일정의 2박 3일 동원훈련 대상자였다. PTSD에 대한 상담도 했다고 하는데, 국군수도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다고 안내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 장수원도 보충훈련을 위해 해당 훈련장에 있었으나 천만다행으로 사건 당시 옆 교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어서 안전하게 집에 간 것으로 보도되었다.
- 잊을만 하면 나오는 가해자가 게임중독돼서 총기난사 했다는 선동 보도가 채널A에서 나왔다.
- 총기난사 전에 "알라후 아크바르, (#)", 강남구 선착순 다섯명"이라고 외치고 총기난사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국방부 한 관계자는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 국방부의 책임을 해당 예비역 탓으로 덮어씌우려고 한다는 기사도 나왔다.#
- 1~5사로 사수들 중 4사로 사수만 유일하게 총알에 맞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사람이 사살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한 트라우마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 사건이 일어났던 사격장을 올라가는 계단 밑에는 총격을 받고 사망한 두 명인 박 모씨와 윤재홍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두 사람 다 1계급 특진된 하사 계급으로 이름이 적혀있다. 해당 부대에서 복무를 하는 현역병들의 경우 해당 사격장에서 사격을 할 때면 그 위령비 앞에서 잠깐의 묵념을 한 후 사격훈련을 실시한다.
- 이 사건으로부터 3개월 전인 2015년 2월에도 이틀 간격으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24] 다만 두 사건은 개인적 원한관계로 발생했다는 점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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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범인 포함[2] 사령관 중장 김용현(육군사관학교 38기)[3] 사단장 소장 이한기(육군사관학교 41기)[4] 범인은 즉사하였고 나머지 두 명은 중상이었으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하였다. 이 중 한 명은 심각한 중상으로 소생 치료를 받던 도중 사망했다고 한다.[5] 현재 56사단 22X연대로 재편[6] 당시 시가지전투훈련은 지금처럼 페인트볼 총(속칭 서바이벌 총)이나 MILES가 장착된 소총이 아닌 공포탄이 장전된 소총을 썼다.[7] 여의도 흉기난동 사건, 세종시 편의점 총기 난사 사건 등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며 내곡동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고 대한민국에서의 사회적 편견이 워낙 큰 탓에 이들로 인한 범죄가 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8] 현장에는 장교 한 명만이 남아있었고 이 사람이 대피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9] 남은 총알의 개수가 1개인지 2개인지 헷갈려 혹시나 자살에 실패할 것을 염려해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10] 언론에 의해 실명이 공개되었으며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음을 확인함[11] 당시 국가보훈처[12] 사수끼리는 2m 거리, 부사수와 사수 거리는 3m. 하지만 2사수는 살았고 1사로 부사수는 밤까지 버티다가 사망했으며 4m 거리의 3사로 사수는 당일 오전 심각한 뇌손상으로 사망했다.[13] 2019년 7월부터 정도가 심한 장애[14] 영점사격 때 3발이 든 탄창을 지급하는 것은 우발적인 사고를 막으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15] 6발 지급하면 정상이고 10발 지급하면 실탄관리가 미흡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급하는 탄의 개수가 문제라면 아예 부사수로부터 한발씩 받아서 발사해 가며 수동으로 장전해넣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이다. FM대로 하지 않았다는 정도로만 이해하자.[16] 당시 헌병[17] 다만 방탄모 역시 이 사건 기준 제아무리 최신형이라도 소총탄은 막을 수 없다.[18] 물론 기존에도 사격용 소총을 따로 고정해놓고 훈련용 소총은 별도 지급하는 부대가 있었는데 이쪽은 안전문제 뿐만 아니라 기능고장 방지 차원도 있었던 듯하다. 하여간 이 때문에 실사격 감각을 되새기는 데 초점이 맞춰서 훈련장에서 수십분 ~ 수시간 동안 영점 잡을 일은 없어졌다.[19] 예비군부대 관계자가 총기 수입을 실시한다.[20] 파주 신교대대 같은 군부대에서 이러한데 사슬 길이와 쇠받침대의 높낮이가 재각각이라 오히려 이거 덕분에 사격하는 데 문제가 되어 표적에 정확히 조준할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총의 사용이 미숙한 훈련병들이 높이가 낮은 받침대 가운데 부분을 실수로 쏴버려서 일부 파손되어 있는 받침대들이 있다.[21] 애초에 정신건강의학과 6개월 이상 진료로 해당 전문의의 소견에 따라 보충역 판정을 받으면 기초군사훈련조차 받지 않는다.[22] 예비군 7~8년차는 정규 훈련이 없고 1~6년차에서 이수하지 못한 나머지 훈련시간을 보충하기 위한 연차다.[23] 대부분 도심에서 떨어져 있고 교통편이 안 좋다.[24] 세종시 편의점 총기 난사 사건(2.25), 화성시 총기 난사 사건(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