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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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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시즌에 대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2024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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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삼성 그룹삼성스포츠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2군
주요 인물 구단주·대표이사 유정근단장 이종열감독 박진만2군 감독 정대현주장 구자욱
경기장 1군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 포항 야구장2군 경산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스프링캠프 온나손 아카마 볼파크재활 삼성 트레이닝 센터이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주요 문서 선수단등번호유니폼마스코트 블레오사건·사고왕조암흑기 (2차)기롯삼한
관련 문서 삼적화여름성이마양채최박조원수박차JOKKA곤규엽굴비즈김헌곤 유니버스삼나쌩 · 삼상바 클럽프랜차이즈 스타
라이벌전 88고속도로 씨리즈클래식 씨리즈싸대기 매치재계 라이벌 시리즈
영구 결번 10 양준혁22 이만수36 이승엽
최종 우승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19852002200520062011201220132014
현재 시즌 삼성 라이온즈/2024년
팬덤 정보 응원가(구단 · 선수)|삼갤삼튜브사자 사랑방사자후김상헌(응원단장)허니크루치어리더대구아재
지역 연고 경북고대구고상원고포철고경주고강릉고설악고도개고예일메디텍고
틀 문서
역대 시즌역대 감독역대 주장역대 1차지명응원단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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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colbgcolor=#074ca1><colcolor=#fff>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창단 1982년 2월 3일([age(1982-02-03)]주년)
법인 설립 1982년 3월 5일([age(1982-03-05)]주년)
법인명 ㈜삼성라이온즈
상장 유무 비상장 기업
기업 규모 대기업
구단 사무실 대구광역시 수성구 야구전설로 1 (연호동)[1]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114 (역삼동)[2]
모기업 제일기획[3]
연고지 대구광역시 (1982~ )
경상북도 (1982~1999)[4]
구단주 유정근
대표이사
단장 이종열
감독 70 박진만
주장 5 구자욱
영구 결번 10 양준혁[5] | 22 이만수 | 36 이승엽
홈구장 변천 제1 홈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1982~2015)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2016~ / 24,000석)[6]
제2 홈구장
포항 야구장 (2012~ / 12,000석)
2군 구장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1995~ )
키트 스폰서 언더아머
링크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스토어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TV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포스트 아이콘.svg
공식 애플리케이션
파일:App Store 아이콘.svg | 파일:Google Play 아이콘.svg
KBO 최종 우승 (8회)
1985년[7], 2002년, 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페넌트 레이스 우승 (9회)[8]
단일 리그 2001년, 2002년, 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전·후기 리그
1982년 후기, 1984년 전기, 1985년 통합[9], 1986년 후기,
1987년 통합[10]
양대 리그 1999년 매직
2011년
포스트시즌 진출 (29회)[11]
한국시리즈 1982년, 1984년, 1986년, 1987년, 1990년, 1993년, 2001년, 2002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플레이오프 1986년, 1988년, 1990년, 1991년, 1993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4년, 2008년, 2010년, 2021년
준플레이오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7년, 2000년, 2003년, 2007년, 2008년
프랜차이즈 구단 기록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c0c0c0><colcolor=#074ca1> 최고 승률 0.706
1985년 110경기 77승 1무 32패
최저 승률 0.396
2017년 144경기 55승 5무 84패
최다 승 88승
2015년 144경기 88승 56패
최다 패 84패
2017년 144경기 55승 5무 84패
최다 관중 851,417명
2016년[12]
최소 관중 177,774명
1988년[13][코로나19]
최고 계약 5년 120억 원[15]
2022년 구자욱
}}}}}}}}} ||
1. 개요
1.1. 지배 구조
2. 구단 디자인3. 홈구장4. 역사5. 팀 컬러6. 팬
6.1. 인기6.2. 팬덤 성향6.3. 유명 라이온즈 팬
7. 응원
7.1. 응원단7.2. 응원가
8. 라이벌전9. 역대 선수 및 인물
9.1. 영구 결번9.2. 삼성의 스타들9.3. 역대 구단주9.4. 역대 사장(대표이사)9.5. 역대 단장9.6. 역대 감독9.7. 역대 주장9.8. 역대 선수 명단9.9. 역대 개막전 선발투수9.10. 역대 선수단등번호
10. 역대 기록
10.1. 팀 성적
10.1.1. 암흑기10.1.2. 팀 전력10.1.3.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10.2. 개인 성적
10.2.1. 통산10.2.2. 단일시즌10.2.3. 타이틀 홀더
10.2.3.1. 타자10.2.3.2. 투수
11. 지역 연고 학교12. 논란 및 사건사고13. 이야깃거리14. 관련 문서1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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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삼성 라이온즈 2023년 캐치프레이즈.svg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제일기획[16] 운영하는 KBO 리그 소속 프로 야구단.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당시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원년 구단 중 하나이며 연고지는 대구광역시다.[17] 홈구장은 1982년부터 2015년까지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사용했으나 2016년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이전하였다.

KBO 리그 원년 구단 중 연고지 · 모기업 · 구단명이 바뀌지 않은 유이(唯二)한 구단이다.[18] 한국시리즈 최다 진출(17회), 한국시리즈 최다 연속 우승(4회 연속, 2011~2014), 정규 시즌 최다 우승(9회),[19] 정규 시즌 최다 연속 우승(5회 연속, 2011~2015), 포스트 시즌 최다 진출(29회), 포스트 시즌 최다 연속 진출(12회 연속, 1997~2008)[20], 역대 최고 승률 우승(1985년, 0.706) 등 다수의 대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현재까지 리그에서 4회 연속(2011~2014) 통합우승[21]을 달성한 유일한 구단이며,[22] 유일하게 최하위를 기록한 적이 없는 구단이다.

KBO 리그에서 공식적으로 우승을 8회 차지했다. 1985년 전·후기 리그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 없이 첫 우승을 경험했고, 이후 2002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을 총 7회 차지했다.

상징 색은 파란색이며 과거에는 빨간색(1982~1983, 2016~2023)이나 노란색(1984~1994)이 유니폼에 보조 색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상징 동물은 라이온즈라는 팀명에 걸맞게 사자이며 마스코트도 이를 모티브로 한 블레오다.

1.1. 지배 구조

삼성스포츠단 중 최초의 독립 법인으로 출범했다.[24] 제일기획에 운영권이 넘어가기 전의 삼성 라이온즈는 삼성 계열사의 위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창업주 이병철의 유언대로 특정 한 회사가 독점하지 않고 범 삼성가가 지분을 각각 나눠 가졌다.

제일기획 인수 전 삼성 라이온즈 지분은 삼성전자 27.5% + 삼성SDI 15% + CJ제일제당 15% + 신세계 14.5% + 삼성전기 12.5% + 삼성물산 7.5% + 제일기획 3.0% + 이건희 2.5% +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 2.0%로 분산되어 있었다. 삼성가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상징적 의미로 삼성 라이온즈는 나눠갖지 말고 다 같이 공동 운영하게 하려 했다고 한다. CJ그룹, 신세계그룹까지 포함한 범삼성가가 모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셈.

2021년 1월 신세계그룹이마트를 통해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SSG 랜더스를 창단하면서 신세계의 삼성 라이온즈 지분 소유 여부도 논란이 됐다. KBO 규약에 따르면 한 구단이 다른 구단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KBO는 ㈜이마트㈜신세계가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25] 신세계는 삼성 라이온즈 지분을 보유할 수 있고 이마트는 SSG 랜더스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고 유권 해석을 내렸다. 결국 신세계는 그룹 산하 야구단이 생긴 이후에도 여전히 삼성 라이온즈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관련기사[26]

2015년 삼성의 스포츠단 운영 전략 변화의 일환으로 삼성스포츠단은 국내 광고 업계 1위이자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으로 일괄 이전되었다. 다만 제일기획은 구단의 운영비를 전액 지출하는 모기업이 아니며, 단지 운영을 전담으로 하는 것이고 구단의 운영비는 삼성 내의 전자나 물산 등 다른 계열사에서 지원하는 형식이다. 제일기획이 삼성 라이온즈 지분 67.5%(12만 9,000주)[27]를 6억 7천만 원[28]에 사들여, 2016년 1월 1일부로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되었다. ##

제일기획 인수 후에는 제일기획, 신세계, CJ제일제당, 이건희가 지분을 나눠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이건희가 사망하면서 상속세 납부의 일환으로 이건희가 가지고 있던 2.5%의 지분을 대구광역시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제일기획 산하로 이관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자금 지원이 줄었다는 말들이 있는데 돈성 시절처럼 리그 내 넘사벽급으로 펑펑 써대진 못 하니 과거보다 줄은 건 맞지만 2017~2019년까지 3년간 FA 계약 총액만 200억 원 넘게 투자했으며[29], 구단 운영비도 10구단 중 다섯 번째로 많이 지출한다. ## 상술했지만 제일기획에서 운영비 전액을 대는 것이 아니라 삼성의 경영 방침이 바뀐 것이다.

2. 구단 디자인

2.1. 엠블럼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흰색).svg 삼성 라이온즈의 역대 엠블럼 변천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 파일:samsung_lions_logo_1989.pn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화이트).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1982~1988
1989~1994
1995~2007
[30][31]
2008~

2.2. 유니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유니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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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마스코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블레오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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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gasengi.com/b6f143e6b882a220e7e675028ffef544_y8vtga3zKp6OFMFWp.jpg 파일:external/web.archive.org/20040226101811080.jpg
초창기 털복숭이 마스코트(맨 오른쪽) 블레오
파일:사돌이(2009).jpg
파일:external/timetree.zumst.com/468586c4c3e04f9c86f19c65928cafe8.jpg
블레오 Any B(애니 비)
파일:블레오 패밀리.svg
블레오 패밀리(왼쪽부터 블레오(父), 레니(女), 라온(子), 핑크레오(母))

3. 홈구장


제2 홈구장을 쓰는 팀 중 유일하게 홈구장과 제2 홈구장 모두 2010년대에 지은 구장을 쓰는[34] 구단이다. 자세한 구장의 내용은 문서 참조.

4.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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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팀 컬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팀 컬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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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1. 인기

파일:라팍 관중 1.jpg
파일:라팍 관중 2.jpg
파일:라팍 관중 3.jpg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는 팬들
원년 멤버가 전원 국가대표 출신이고 리그 출범 후 가을야구 탈락은 몇 번 해봤을 지라도 꼴찌는 유일하게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전통의 강팀으로, 화끈한 타격을 시그니처 이미지로 삼았던 팀이었기에 한국프로야구 초창기부터 해태 타이거즈와 더불어 전국구 인기 구단이었다.#[35][36]

199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의 최대 절정기로 꼽히던 1995년에는 그 열악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홈으로 썼음에도 총 관중수가 60만 명을 넘어선 적이 있을 정도[37]였다. 프로야구 인기가 절정이었던 2012년에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을 정도인데, 이는 90년대 13,000석이었던 시민야구장 관중석이 고급화로 인해 10,000석으로 줄어들었기 때문.[38]#

하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의 인기가 급등하면서 프로야구의 인기[39]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데다 2004년에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국민 타자인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가면서 침체기를 겪게 된다. 이승엽이 떠나자 관중 수가 거의 반토막이 날 정도였다. 그 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프로야구의 인기가 다시 부흥했지만 선동열식 불펜 야구에 대한 재미의 반감[40]으로 인해 KIA 타이거즈롯데 자이언츠 등 타 구단들에 비해 팬 숫자 증가가 상당히 더디었다.

그러나 2011년 프랜차이즈 스타인 류중일 감독이 취임하고 불펜 야구뿐 아니라 과거의 공격력 회복을 선언했고, 또 좋은 성적을 냄에 따라 과거 라이온즈 팬들을 되돌리는 데 성공했으며 2012년에는 국민타자 이승엽이 복귀함에 따라 과거의 인기를 점차 회복하였다. 삼성 왕조가 건재하던 2015년까지는 명실상부한 KBO 최고의 인기 팀이었다. 삼성 왕조가 무너진 2016년부터 시작된 암흑기로 인해 2020년까지는 구단 인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2021년 허삼영 감독 체제의 삼성이 다시 1위 싸움을 하자 폭발적으로 인기가 상승하였다. 2021년 최다관중 1위, 네이버 스포츠 응원 천만, 2021년 올스타전 줄투표 등 가히, KBO 최고 인기팀이라고 볼 수 있다. 2022년 현재, 오랜 암흑기로 인해 팬덤의 결속력은 왕조 시절보다도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신규 팬 유입 역시 최신구장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와 김상헌 응원단장의 노력 등으로 인해 넓어지고 있다.

팬층은 대구와 제2연고지인 포항, 2군 소재지인 경산[41]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이들 지역과 인접한 경주, 구미, 김천, 칠곡, 영천, 청도 역시 삼성 팬덤이 상당한 편이다. 대구에서 거리가 먼 경북 북부 지역인 안동, 문경, 영주, 봉화, 울진, 군위, 의성, 청송 등도 삼성 라이온즈 팬덤이 압도적이라 대구·경북 전 지역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즉, 대구·경북 그 자체다.

또한, 같은 경상도인 부울경에서도 상당한 팬덤이 있다. 주로 직장, 학업 등의 이유로 부산, 울산, 창원, 거제, 김해, 양산 쪽에 정착하게 된 대경권 출신들이 많다. 경상도 내 라이벌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클래식 시리즈사직 야구장에서 열리면 3루는 삼성의 팬들이 꽉 들어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창원 NC 파크 경기때도 3루에 상당히 많은 삼성팬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경상남도에 삼성중공업이 있는 거제를 포함해서 거창, 합천, 창녕, 밀양은 경남[42]이지만 대구랑 가까워서 이쪽도 삼성의 팬덤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강원도 영동 지역도 삼성의 1차지명 연고지이기에 어느정도 팬덤이 있다.

수도권에도 팬덤이 상당하다. 수도권의 팬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대구·경북에서 취학·취업 등의 이유로 수도권으로 상경한 팬들이다. 이들이 수도권 팬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부모부터 대를 이어 응원하는 경우도 많다. 둘째는 왕조 시절의 호성적으로 인해 삼성을 응원하게 된 팬들이다. 4년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무지막지한 성적으로 인해 강팀을 선호하는 뉴비들은 삼성을 많이 응원했다. 마지막으로 삼성그룹 사원 팬들이 있다. 이들은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경기도 수원시를 중심으로 많이 퍼져있다.

파일:갤럽 총정리.jpg

삼성의 팬 숫자를 어림할 때 참고하는 자료로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팬 선호도 조사가 많이 거론된다. 조사 결과. 물론 통계를 맹신해서는 안 되지만 KBO 리그 인기 팀이라는 자료로 많이 쓰인다.8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도 조사, 9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도 조사.

시청률 또한 항상 최상위권이었던 팀이다.1990년대 시청률 TOP경기 2000년대 시청률 TOP경기

2001년까지는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어서 팬이나 구단이나 우승 강박증에 시달리고 선수들은 새가슴 성향을 보였으나, 2000년대에 우승을 여러 번 하면서 이런 점은 고쳤다. 하지만 2000년대는 김응용, 선동열로 대표되는 해태 출신 감독들의 영향으로 골수팬들이 떨어져 나가 인기가 떨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43]

1990년대에는 1995년에 홈 경기 총 관중수 62만 3970명으로 최고점을 찍는 등 내내 50만 명 선을 유지했으나 2000년부터 줄기 시작하더니 김응용 감독 취임 이후 2002년에 24만 7698명을 기록했고 2004년에는 19만 5872명으로 최저점을 찍었다. 2002년 월드컵 여파와 이를 잇는 한국 최초의 시민 프로구단인 대구 FC에 관심이 더 집중된 것도 이 상황에 한 몫 했다. 이후 내내 30만 명 선을 유지하다 선동열 감독 마지막 해인 2010년에 45만 5246명으로 40만 명 선을 회복했고 류중일 감독 취임 이후에는 45만 1483명의 2013년을 제외하고 50만명 선을 유지하는 등 인기를 회복했다. 출처

베이징 뉴비들이 유입되던 2000년대 후반에는 나이 많은 팬들이 많아, 인터넷 상에서는 다른 팬덤에 밀리는 편이였으나, 2011년부터 삼성 왕조가 시작되면서 젊은 팬들의 유입도 많아져[44],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좌석 점유율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대구 시민운동장이다. 하지만, 구장 자체가 너무 작아서 많은 누적 홈 관중 수를 기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대구 구장의 상태는 최악이다 보니 그 때문에 관람을 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설문에서 40%를 넘었을 정도다.#

또한 신규 구장이 건설될 경우 관람을 가겠다는 의견 또한 예측 수요는 거의 현재의 2배 수준. # 결정적으로 삼성의 관중동원 미진이 구장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히 2016년 라이온즈 파크가 새로 지어지면서 관중동원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모습이다.[45] 2016년 시즌 초반, 삼성은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는 두 구장 바로 다음가는 관중동원을 기록했다. 2016년 5월 19일 기준으로 추월하였다. 그리고 시즌 중후반 팀의 부진으로 관중 동원력이 크게 떨어졌으나 처음으로 80만 명을 넘기며 총 85만 1천여명의 관중을 불러모으며 구단에서 예측했던 목표치를 달성했다.

2016년 암흑기의 시작으로 기존 올드 팬층[46]이 굉장히 많이 이탈하였으나[47] 이후 젊은 층의 신규 팬층이 유입되며 팬 수가 크게 감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길어지는 암흑기로 인하여 팬층은 서서히 감소하고 있었으나 2021년 시즌 마지막에 미끄러져 3위를 하기 전까지 우승까지 노려볼 수 있었던 호성적으로 인하여 올드 팬층이 다시 야구를 찾아보게 되고 신규 팬층도 유입되며 2021시즌 동안에는 사실상 리그에서 가장 인기있는 구단이었다. 특히나 2021시즌 올스타 투표에서 2003년에 이어 삼성 선수들이 1위를 독식했고, 네이버 스포츠 중계에서는 1000만 응원 돌파라는 미친 신기록을 세우는 등 엄청난 화력을 보여주었다. 결국 2021년 시즌에는 KBO 최다 관중 동원 구단이 되었다. 이후 다시 침체기를 겪은 2022년부터도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2023시즌에는 최하위임에도 불구하고 리그 상위권의 높은 홈 직관 동원을 뽐내며 확고한 인기구단임을 입증했고,[48][49] 성적이 좋아지기만 한다면 리그 최상급의 인기구단이 될 자질을 갖춘 코어 팬덤이 있다는 것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2019년 단 한번 한화 이글스에 3위 자리를 빼앗긴 적을 제외하면 40년이 넘는 KBO 리그 역사상 단 한번도 인기도 3위 밑으로 내려가본 적 없으며 1위를 차지한 횟수도 가장 많은 확고한 최상위권 인기팀이다. 기롯삼한으로 불리는 전통의 지방 인기구단.

또한,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중복투표가 가능한 올스타가 아닌 야구장 티켓 현장 투표만으로 2003년 올스타전에서 2루수 안경현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을 전부 삼성 선수로 싹쓸이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6.2. 팬덤 성향

삼성 팬층은 2016년 라팍 이전을 기점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두 팬층간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게 특징이다.

2016년 이전부터 삼성을 응원했던 팬들은 '명문 구단 팬'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강했다. 특히 왕조를 달리던 2010년대 전반기에는 선민의식 비슷한 게 느껴졌을 정도. 아무래도 모기업이 국내 최대 기업이라 그런지, 인터넷에서 삼성 팬을 자칭하는 이들의 경우 다른 구단과의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의견을 많이 표출하곤 했다. 삼성 팬덤 내부에서도 자제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거나 삼성팬도 아닌데 어그로 끈다고 지적했을 정도. 이게 절정을 찍은 게 전성기 때 나왔던 "삼팬이지만 인정한다". 심지어 팬들이 직접 "우리는 가을야구 같은 건 직관 안 간다"라는 패기를 시전하는 등 매번 가을야구 가는 게 목표인 타 구단 팬들의 염장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50] 좋은 성적을 가져다준 구단 프런트와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심지어는 선수협 문제라든가 9, 10구단 문제 등에서도 구단을 옹호하는 팬들이 많았다.

또한 같은 영남 구단 아니랄까봐 이따금 롯데 팬 이상의 성깔과 대범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구아재 문서 참조. 물론 그 시절 전반적인 관중문화가 저런 성향이었던 것도 있지만 저런 단어가 나올 정도면 그 중에서도 만만치 않았던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2000년대엔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해서 그런지 많이 누그러진 편인데 예전, 특히 전통적으로 콩을 많이 찍은 구단의 특성상 유독 포스트시즌만 되면 경기마다 팬들이 민감해지고 평소엔 조용하고 사람 좋은 이웃이 가을이 되니까 전투민족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타 지역에 비해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다.

이런 올드 팬들은 대부분 아저씨팬들과 남성팬들이다.[51]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팬서비스가 다른 곳같았으면 논란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사인을 해주기보다는 경기를 이겨라"라는 성향이 짙기에 별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라팍 이전하고 팬서비스는 전반적으로 시민구장 시절에 비해 양호해졌지만 반대로 성적이 하락하자 올드 팬들 사이에선 팬서비스가 곧 성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최근 모든 KBO구단들이 팬서비스를 강조하며 매년 사인회와 같은 팬서비스성 행사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드팬들은 이러한 변화 자체를 크게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라팍으로 홈구장을 옮긴 2016년부터 선수층의 대격변으로 팬덤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왕조를 지탱했던 선수들이 팀을 떠나고, 구단이 전보단 젊은 팬 및 여성 팬들을 겨냥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팬층도 서서히 젊어졌다.[52] 지금 삼성을 지탱하는 선수들, 특히 투수진의 나이는 상당히 젊다. 심지어 팀 연령대가 젊다고 말하는 두산보다도 젊다.[53] 게다가 강민호, 우규민, 이원석, 오재일등 외부수혈이 늘어나면서 덕아웃 분위기도 예전 삼성과는 달라졌다. 반면 올드 팬들은 왕조시절 이후 지속된 주요 선수들의 이적과 구단의 지원 축소,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적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야구에서 멀어졌다.[54] 또한 라팍으로 이전하면서 잔디석, 외야 패밀리석 같이 가족 단위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좌석이 생기고, 구단이 가족을 겨냥한 이벤트를 많이 개최하면서 가족 단위 팬들이 많이 찾아와 어린이팬들(일명 '삼린이')의 유입이 늘었다. 이와 동시에 젊은 세대 마케팅에 상당히 공을 들이면서 10~20대의 팬층, 특히 구매력이 센 여성팬층의 유입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성적 우선주의 성향이 강한 올드 팬들이 빠져나갔다. 또한 왕조멤버들이 하나둘씩 퇴단하면서 팀 케미가 무너지고 성적이 바닥을 찍어서 라팍 시대에선 매진을 보기 드물어졌다.[55]

이렇게 새롭게 유입된 젊은 팬들이나 여성팬들은 팬 서비스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구단에서도 이런 흐름을 아는지 혹은 제일기획 이전의 영향인지 구단에서도 마케팅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덕질용 SNS라고 불리는 인스타그램이 개설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에는 '삼스타'라고 불리는 관리자의 드립력 넘치는 글들도 올라온다! 삼성 야구를 오랫동안 봤으면 알겠지만 삼성에서 팬 서비스나 응원가는 부차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팀 컬러가 변화하면서 팬덤의 성향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즉 지금 삼성은 야구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격변기를 거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준학 단장이 인터뷰마다 "새로운 삼성"을 강조하는 것도[56]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단 입장에서는 모기업에서 지원은 해주지만 자생을 촉구하는 것도 있고, 야구 팬덤에서 팬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자리잡았고 하니 나름대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

하지만 2021년에 6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7년만의 우승을 노리는 호성적을 기록하자 기존 팬층에 왕조시절 구단 수입에 막대한 기여를 했던 올드 팬들까지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코로나 시국임에도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다시로 찾는 것을 보면 관중수입 증대는 곧 성적이 답이라는걸 입증하고 말았다.

2022년에 와서는 2021년의 호성적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심각한 부진은 물론이고 경기력도 굉장히 저질스러워지면서 삼성 팬들마저 삼성야구에 크게 실망하여 등을 돌리는 팬들이 많아졌다.[57] 부진해진 성적과는 별개로 22시즌 관중 순위 3위를 기록하였고[58], 홈구장 직관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현장 분위기가 상당히 좋다. 성적에 관중수가 어느정도 비례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약간 승패와 관계없이 야구 응원 문화를 즐기러 오는 사람도 많아진 영향이 없지는 않은 듯.

2022년 이후로는 전체적으로 올드팬들과 라이트팬으로 나뉜다. 성적이 더 나빠지기 시작한 2023년부터는 이들의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다. 성적을 중시하는 올드 팬덤은 분위기가 험악한 상태이며[59], 홍준학 단장을 비롯한 구단 프런트 모두를 극도로 혐오하고 비난하는 극단적인 성향으로 치닫는 팬들도 생기고 있을 정도이다. 라이트 팬덤은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야구를 즐기면서 보는 팬덤이다. 야구장을 가는 목적도 이기는 경기를 보는 것 보다는 그 현장의 분위기를 즐길려는 이유가 더 크다. 이들은 특정 선수 개인 팬덤의 경향이 강하거나 비판의식 없이 경기를 보는 경향이 강해서 골수팬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한다.[60] 홍준학 단장의 마케팅 성공[61]으로 KBO 역사를 통틀어 장기적으로 암흑기를 겪는 구단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강성 팬덤보다는 라이트 팬덤이 우세한 구단이 되었다. 물론 서로의 스타일 차이를 인정하며 '삼성 라이온즈 팬'이라는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며 공존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당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갈라치기를 조장하던 홍준학 단장이 퇴진하고 이종열이 새로운 단장으로 부임함으로써 리빌딩이 진행된다면 어느 정도 팬덤 분열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6.3. 유명 라이온즈 팬

이름에 ★표시가 된 사람은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지인 대구광역시경상북도 출신. 다른 구단들과 달리 유난히 고위 인사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경상북도 출신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로 대한민국의 정계, 재계, 법조계, 군 장성에는 대구·경북 출신 인사들이 많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런 기조가 강하기 때문이다.

7. 응원

야구 인기가 절정이었고, 왕조로 불리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응원으로 리그를 주도하는 구단은 아니었다. 시민야구장 시절에는 응원가를 잘 따라하지 않는 아저씨팬들이 3루 내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응원가의 퀄리티도 영 좋지 않아서 성적에 비해 응원 문화는 뒤떨어진 편이었다.

그러다가 2013 시즌부터 김상헌 응원단장이 응원가를 재녹음하면서 응원 문화가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고, 2011~2014 4년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최전성기를 맞으면서 응원석에도 젊은 팬들이 유입되어 응원가를 신나게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이미지가 '응원을 잘 하는 팀'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는 2016년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이전과 2017년의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를 들 수 있다. 기존의 좁고 불편했던 시민야구장에서 쾌적하고 팬 친화적인 라팍으로 홈 구장이 옮겨지면서 많은 가족 단위 팬들이 야구장을 방문하게 되었고,[71] 응원석인 '블루존'에 최대한 많은 좌석을 배정하면서 평일에도 뜨거운 응원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또한 응원가 저작권 사태로 기존의 응원가를 대부분 쓰지 못하게 되자, 김상헌 응원단장이 직접 음악계에 종사하는 동료들과 함께 허니크루라는 이름으로 선수와 팀 응원가를 새로 만들게 되었고, 이게 삼성 팬은 물론 타 구단 팬들에게도 호평을 얻으면서 전화위복이 되었다.[72] 2023년 현재 라팍은 블루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잔디석 관중들도 응원가를 다 따라 부르는 응원 맛집이 되었다.
2024년에는 드디어 저작권자와 합의되어 팀응원가인 엘도라도가 부활했다.

7.1. 응원단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삼성 라이온즈
역대 응원단장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074ca1,#5ea2f8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0272c,#d3dade
<rowcolor=#fff> 초대 2대
3대
4대
최봉준
(1995~1998)
이시훈
(1999~2000)
김용일
(2001~2012)

김상헌
(2013~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삼성 라이온즈
2024 시즌 응원단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응원단장 장내 아나운서 탑 아나운서
김상헌 김선미
치어리더(블루팅커스)
이수진 [[팀장|
]], 김가현, 김미소, 김하연,
김유정, 이소현, 정유미
권가영, 성효련, 차효민, 송예은
}}}}}}}}}


응원단의 이름은 '블루팅커스'이며, 홈 경기에서는 6명, 원정 경기에서는 4명씩 나오며, 2020 시즌과 2021 시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홈 경기에서도 4명씩 나오기도 했다. 삼성 구단의 이벤트 대행사인 놀레벤트에 소속되어 있고, 대구경북 출신이 대다수이며,[73] 야구 외 종목의 응원 구단들도 TK 지역에 몰려있다.[74] 2023년에는 멤버 전원이 대경권 출신으로 채워졌다가 2024년 김유정 치어리더가 다시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75]
놀레벤트 전용 인스타그램에 경기의 라인업이 올라온다.
2024년에는 현재 KIA 타이거즈의 사례처럼 전경기 응원단 파견이 된다고 결정되었다고 한다.

7.2.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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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라이벌전

원년부터 존속한 팀이다 보니 웬만한 팀들과는 다 라이벌리가 어떻게든 엮여 있다. 전자업계 라이벌인 LG 트윈스와 포스트시즌 명승부 메이커로 싸대기 라이벌인 두산 베어스를 시작으로 같은 경상도면서 원년부터 함께한 경상도 내 라이벌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클래식 시리즈, 영호남 지역감정을 상징하던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와의 88고속도로 시리즈, 별도의 문서가 생겼을 정도로 치열했던 한화 이글스에 이어 과거 재계 라이벌이었던 현대 유니콘스가 있던 당시 재계 1, 2위의 간의 라이벌리 등등이 대표적이며 00년대말과 10년대초에는 SK 와이번스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16, 17시즌 암흑기동안 2년 연속 9위를 찍으면서 KBO 막내 구단인 kt wiz와 라이벌이 생겼다. 그것도 두시즌 10위한 kt에게 우위를 보였으면 모를까 두시즌 내내 8승 8패를 주고받으며 이제는 서글프게도 라이벌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18년에는 블루윙즈 더비가[76] 6위와 9위로 멀어졌으나 상대전적은 7승 2무 7패로 동률이다. 최근 4년간 두 팀 모두 가을야구를 못갔으며, 특히 kt는 창단 이후 가을야구를 못갔다. 여러모로 웃픈 더비. 2020년에는 kt가 가을야구가 유력해지고 삼성이 kt에 발목을 잡히면서 통산 전적에서 승패수가 비슷해졌다. 2021년에는 kt와 삼성이 무려 선두경쟁을 하며 다른 방향의 라이벌리가 되고 있다![77]

새롭게 형성될 라이벌리도 있다. 범 삼성가 계열 기업이자 신세계그룹으로 2021년 SK 와이번스의 후신인 SSG 랜더스를 창단하면서 이른바 '삼성가 시리즈'가 생기기 때문이다.[78] 다만 SSG 랜더스는 삼성과의 집안 간 라이벌리보다 전통의 업계 맞수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쟁을 더 우선으로 보는 듯하다.

8.1. 88고속도로 시리즈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1 {{{#ffffff 'Samsung Lions'}}} }}}
KIA 타이거즈
{{{+1 {{{#ffffff 'KIA TIG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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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클래식 시리즈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롯데 자이언츠
Lotte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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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싸대기 매치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1 {{{#ffffff 'Samsung Lions'}}} }}}
두산 베어스
{{{+1 {{{#ffffff 'Doosan Bea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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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재계 라이벌 시리즈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현대 유니콘스
Hyundai Unico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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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역대 선수 및 인물

9.1. 영구 결번

파일:이만수크보40.png
파일:KBO 40주년 특집 양준혁 일러스트.png
파일:이승엽크보40.png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선수명 하단 날짜는 영구결번식이 진행된 날)
파일:sl22.png 파일:sl10.png 파일:sl36.png
이만수
(2003. 06. 16.)
양준혁
(2010. 09. 19.)
이승엽
(2017. 10. 03.)

이만수22번, 양준혁10번, 이승엽36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통적인 타격의 팀답게 리그 올타임급 타자 3명이 영구 결번의 영예를 안았다.

영구 결번 후보로는 팀의 최전성기이자 명실공히의 왕조를 이륙한 류중일 감독의 75번과 좌타 계보의 원조이자 시대를 상징하는 타자였던 장효조10번, 80년대 투수 트로이카의 일원이자 삼성 투수의 상징인 김시진29번이 있으며, 이밖에도 원클럽맨으로 꾸준하게 기록을 남기며 묵묵히 팀에 기여한 박한이33번, 삼성 왕조의 주역이자 2010년대 KBO리그를 대표하는 최형우34번, 역시 삼성 왕조의 주역이었던 박석민18번, 올타임급 투수였던 임창용37번,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21번이 있다.
파일:삼성영구결번.png

22번은 뛰어난 성적과 손꼽히는 인기로 80~90년대 삼성 라이온즈를 상징하는 선수인 역대 최고의 우타자 중 하나이자 최고의 공격형 포수인 헐크 이만수의 번호이며, 1997년 은퇴[79] 후 2003년에 지정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최초의 영구 결번.

10번은 마찬가지로 리그 올타임급 타자인 양신 양준혁의 번호로, 자타가 공인하는 성적[80]을 남겼기에 영구 결번이 기정사실이었고, 실제로도 삼성 라이온즈의 두번째 영구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더불어 10번은 양준혁 이전 팀 레전드인 장효조의 번호였는데, 양준혁 역시 본인의 등번호와 관련하여 10번은 본인에 앞서 장효조 선배의 번호라고 생각하며 영구 결번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고, 팬들 또한 양준혁과 장효조의 공동 영구 결번을 염원한다. 구단에서도 등번호 10번 장효조 포토볼을 내놓는 등 10번과 장효조를 끊지 않았다.

36번은 리그 역사상 최고의 스타인 국민타자 이승엽의 번호로 2004년 일본 진출이 확정됨과 동시에 임시 결번으로 발표되었으며, 2012년 이승엽이 국내로 복귀하면서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2017년 10월 3일 은퇴경기를 끝으로 은퇴식과 함께 영구 결번이 되었다.

9.1.1. No.22 이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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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만수12.jpg
삼성 라이온즈 No.22
이만수
李萬洙 | Lee Man-Soo
프로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 멤버
역대 프로 소속팀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 파일:samsung_lions_logo_1989.pn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삼성 라이온즈
(1982~1997 / 16시즌 / KBO)
영구 결번 2003년 6월 16일
역대 기록
경기 타수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wRC+ WAR
1449 4310 .296 .388 .519 .907 1276 193 7 252 861 625 52 554 490 159.0
(4위)
65.29

9.1.2. No.10 양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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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YH2010090813040001300_P2.jpg
삼성 라이온즈 No.10
양준혁
梁埈赫 | Yang Joon-Hyuk
프로입단 1993년 1차 지명
역대 프로 소속팀
파일:samsung_lions_logo_1989.pn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1993~1998, 2002~2010 / 18시즌 / KBO)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해태 타이거즈
(1999)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LG 트윈스
(2000~2001)
영구 결번 2010년 9월 19일
역대 기록
경기 타수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wRC+ WAR
2135
(4위)
7332
(4위)
.316 .421
(2위)
.529 .950 2318
(2위)
458
(5위)
25 351 1389
(4위)
1299
(2위)
193 1278
(1위)
910 160.0
(3위)
87.22
(2위)

9.1.3. No.36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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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_2017100301000191300015451.jpg
삼성 라이온즈 No.36
이승엽
李承燁 | Lee Seung-yuop
프로입단 1995년 연고구단 자유계약
역대 프로 소속팀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1995~2003, 2012~2017 / 15시즌 / KBO)
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엠블럼.svg 치바 롯데 마린즈
(2004~2005)
파일:요미우리 자이언츠 엠블럼(2006~2010).svg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2010)
파일:오릭스 버팔로즈 엠블럼.svg 오릭스 버팔로즈
(2011 / 8시즌 / NPB)
영구 결번식 2017년 10월 3일
역대 기록
경기 타수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wRC+ WAR
1906 7132
(5위)
.302 .389 .572
(1위)
.960 2156 464
(2위)
28 467
(1위)
1498
(2위)
1355
(1위)
57 953 1344 150.4 72.21
(4위)

9.2. 삼성의 스타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프랜차이즈 스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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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문서이다.

9.3. 역대 구단주

<rowcolor=#fff> 대수 이름 재임 기간 비고
<colbgcolor=#074ca1><colcolor=#fff> 1 이건희 1982~2001 삼성그룹 회장[81]
대행 김정순 1995 당시 제일제당 사장
대행 안덕기 1996~1997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삼성 라이온즈 4대 사장
대행 이종기[82] 1998~1999 당시 삼성화재 부회장, 삼성 라이온즈 2대 사장
대행 이대원 2000 당시 삼성항공 부회장
대행 현명관 2001 당시 삼성물산 회장
2 2002
3 이수빈 2003~2017 삼성생명 회장, 삼성 라이온즈 초대 사장
4 임대기 2017~2020 제일기획 사장, 삼성 라이온즈 사장 겸직
5 원기찬 2020~2023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사장) 겸직
6 유정근 2023~현재 제일기획 사장,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사장) 겸직

9.4. 역대 사장(대표이사)

1985년까지는 단장이었다. 대표이사의 직급은 부사장 ~ 사장급이다. 임대기부터는 사장과 구단주 겸직.
<rowcolor=#fff> 대수 이름 재임 기간 비고
<colbgcolor=#074ca1><colcolor=#fff> 1 이수빈 1982~1983년 4월 26일 당시 제일제당 사장
2 이종기 1983년 4월 27일~1988 당시 중앙일보 사장
3 편송언 1989~1990 제일기획 대표이사 전무
4 안덕기 1991 前 삼성의료기기 사장
5 김흥민 1992~1994 삼성물산 전무
6 이광진 1995~1996 삼성중공업 총괄전무
7 전수신[83] 1997~1999 前 삼성물산 건설부문 부사장
8 한행수 2000~2000년 7월 9일 前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사장, 일신상 이유로 사임
9 신필렬 2000년 7월 10일~2004 삼성서울병원 행정부원장[84]
10 김응용 2005~2010 감독에서 승진, 최초 야구인 출신 야구단 사장
11 김인 2011~2015 삼성SDS 사장
12 김동환 2016~2017 삼성웰스토리 대표이사 부사장
13 임대기 2018~2020 제일기획 대표이사[85]
14 원기찬 2020~2023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15 유정근 2023~현재 제일기획 사장

9.5. 역대 단장

1983년까지는 이사와 부단장이 혼용됐고, 1985년까지는 부단장이었다. 단장의 직급은 상무보 ~ 상무 정도이다.
<rowcolor=#fff> 대수 이름 재임 기간 비고
<colbgcolor=#074ca1><colcolor=#fff> 1 김동영 1982 동방생명 관리이사
2 김삼용[86] 1983~1983년 4월 27일 한국실업야구 선수(투수) 출신[87]
3 노진호 1983년 4월 27일~1983년 11월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겸 체육부장[88]
4 이달종 1984~1985 前 중앙일보 사업국장
5 윤경헌 1986~1989 前 중앙일보 문화센터국장
6 조복래 1990~1992 사무국장에서 승진
7 지용하 1993~1994 중앙개발 이사
8 김대훤[89] 1995~1996 삼성물산 해외업무실 팀장
9 김종만[90] 1997~1999 스카우트팀장에서 승진
10 김재하 2000~2010 제일모직 이사[91]
11 송삼봉 2011~2014. 8. 16 부단장[92]에서 승진, 건강상 이유로 사임
12 안현호 2014. 8. 16~2016 삼성스포츠 부장, 최초 사원 출신 단장[93]
13 홍준학 2017~2023 구단지원팀장에서 승진
14 류재현 2023~2024 前 소스제너럴리스트
15 이종열 2024~ 구단 역사상 최초의 프로야구 선수 출신[94] 단장

삼성 라이온즈는 전통적으로 구단주의 권한이 단장 선임 권한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상당히 약한 편이며, 단장에게 구단 운영의 전권을 위임하는 운영을 해왔다. 대체로 삼성의 단장은 전통적으로 메이저리그의 구단주+GM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따라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팀의 운영을 논하면 보통 단장의 업무를 의미한다.

이종열 이전의 단장들은 거의 전원이 그룹 내 내부승진인사 출신이었으며, 비야구인 출신 전문 프런트였다. 거기다 대부분이 대구광역시 출신인 것은 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안현호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단장들은 논란은 있을지언정 평가가 긍정적인 편이다.

전반적으로 삼성스포츠가 운영이 좋지 않아지기 시작한 시기인 안현호 부임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 안현호 이전 단장들은 대다수 평가가 좋았다. 가장 평가가 좋았던 단장은 김재하인데, 이 시기 삼성은 꾸준히 성적이 좋았으며, 지나친 FA 투자로 돈성이라는 오명을 샀으나 이 기간동안 성적 뿐만 아니라 육성까지 신경을 쓰며 2010년대 초 삼성 왕조 시기의 기틀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안현호 부임 이후인 안현호홍준학은 매우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95] 안현호는 단장 관련 업무에서 아무런 장점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으며 홍준학 역시 약팀에 오랫동안 재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리빌딩을 경시하며 5년 이상을 무의미하게 날려먹었다. 이 기간동안 삼성그룹 차원의 지원이 감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강팀을 장기적 약팀으로 전락시킨 데에는 이 둘의 무능함이 제일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현재까지도 이 둘은 삼성 라이온즈 팬덤에게 재평가 불가의 금지어 취급을 받고 있다.[96]

홍준학의 자진사퇴 이후 새로운 단장으로는 LG 트윈스 선수 출신인 이종열이 부임하였다. 구단 역대 최초의 외부 수혈 단장이자 역대 최초의 KBO 리그 선수 출신 단장으로 부임 직후 팀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어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했던 전임 단장들인 안현호와 홍준학과는 달리 팬덤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9.6.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480><tableborder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ecd00> 1대 2대 3대 4대 5대
서영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1983)
이충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김영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1986)
박영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1988)
정동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1990)
<rowcolor=#fff> 6대
7대
8대 9대 10대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1992)
우용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3~1995)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1997)
서정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1999)
김용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
<rowcolor=#fff>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김응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2004)
선동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2011)
류중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2016)
김한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2019)
허삼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2022)
<rowcolor=#fff> 15대 16대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svg
감독대행
박진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
박진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 ||
파일:2022박진만감독.jpg
<colbgcolor=#074ca1><colcolor=#ffffff> 삼성 라이온즈 No.70
박진만
朴鎭萬 / Park Jin-Man
(2022.10.18.~)
<rowcolor=#fff> 대수 이름 재임 기간 비고
<colbgcolor=#074ca1><colcolor=#fff> 1 서영무 1982~1983 69승 1무 40패 (0.633)
2 이충남[97] 1983 31승 3무 36패 (0.462)
3 김영덕 1984~1986 202승 2무 114패 (0.643)
4 박영길 1987~1988 120승 2무 94패 (0.560)
5 정동진 1989~1990 123승 7무 110패 (0.527)
6 김성근 1991~1992 137승 3무 112패 (0.550)
7 우용득 1993~1995 193승 13무 172패 (0.528)
8 백인천 1996~1997 120승 10무 120패[98](0.500)
9 서정환 1998~1999 139승 4무 115패 (0.547)
10 김용희 2000 69승 5무 59패[99](0.524)
11 김응용 2001~2004 312승 16무 204패 (0.604)
12 선동열 2005~2010 454승 13무 380패 (0.544)
13 류중일 2011~2016 465승 12무 333패 (0.583)
14 김한수 2017~2019 183승 10무 239패 (0.434)
15 허삼영 2020~2022 178승 16무 188패 (0.486)
16 박진만 2023~ 61승 1무 82패 (0.427)

삼성 라이온즈가 99688 이전까지는 꾸준히 강호로 평가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송삼봉 시대까지 나름 괜찮았던 단장들의 평가와 달리 감독들의 평가는 예로부터 과반수가 좋지 않은 편이다. 김성근 이후의 감독들은 혹평받은 인물들이 호평받은 인물들보다 많다.[100] 물론 야구감독 자체가 좋은 소리 듣기 힘든 직업임은 사실이지만, 삼성은 독특하게도 성적을 매우 잘 내면서도 감독이 크게 혹평받고, 나아가 다른 팀 감독들에 비해서도 무능한데 그룹 지원빨, 프런트빨, 팀빨로 성적을 냈다는 소리를 들은 경우가 많다. 물론 삼성의 성적이 99688 이전까지는 좋았을 뿐더러 99688 이전까지는 그냥 강한 팀으로, 99688시기부터는 못하지만 조용히 못해서 딱히 관심은 없는 팀으로 여겨졌기에 삼성 외 타 구단 팬덤은 삼성 감독이 혹평받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삼성이 오랫동안 강호였던만큼 당연히 매우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들도 존재한다. 김영덕, 백인천, 김응용, 류중일 등이 삼성 라이온즈 팬덤에게 지지받고 큰 인상을 남긴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롯데 자이언츠에서의 태업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백인천이 삼성에서는 제대로 감독직을 수행했었다. 여기서도 백골퍼 소리는 들었고, 강기웅, 김성래, 이종두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타 팀으로 보낸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승엽을 발견한 것[101]김태균, 김한수, 신동주, 정경배, 최익성으로 타선의 세대 교체를 한 것만으로도 그가 삼성에서 한 일은 대단하다.[102] 또한 백인천 감독 체제에서 주축 선수는 아니었지만 도중에 트레이드되어 꾸준히 백업 멤버의 선두로 활약했던 김종훈도 있었다.

이 멤버를 데리고 1997년 5월 초, 대구에서 정경배의 역사적인 연타석 만루 홈런을 포함해서 3일 동안 LG 트윈스를 상대로 17홈런을 때리며 49점을 내며 발라버리자 뜬금없이 제 3자인 김성근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이 KBO에 공식적으로 조사의뢰를 넣는 바람에 이른바 부정 배트 의심 사건을 겪기도 했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삼성 타선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승엽도 이 시즌부터 홈런왕의 기질을 보인다.

다만 백인천 본인이 포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포수 육성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옥의 티.[103] 뇌출혈로 쓰러진 적도 있고 전병호의 뺨을 때린 사건도 있어 재계약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타자들을 키운 공 때문에 나중에 삼성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롯데에 가서는...

선동열 감독 체제에서, 숙원이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2회(2005, 2006)나 해내 '공공의 적'으로 불렸다. 단 공공의 적임에도 불구하고 욕 먹은 것은 주로 야구 외적인 일이었고[104] 더티 플레이나 빈볼 시비와 같은 야구 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 특유의 무리한 계투진 운용과 타선의 리빌딩 지연, 선수들의 줄 부상으로 2008 시즌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더군다나 원년부터 이어져 온 골수 삼성 팬들은 전통적인 강타자 중심의 팀 컬러에 대한 향수와 함께 삼성 프랜차이즈 강타자이자 당시 SK 와이번스 수석 코치로 있던 이만수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105]

선동열의 임기 6년 동안 삼성 팬덤의 단결력은 올드 팬 vs 2천년대부터 유입된 신규 팬, 연고지 팬 vs 타 지역 팬, 프랜차이즈 팬 vs 감독 팬 등의 대립으로 박살나다시피 했다. MLB 파크, 디씨 삼갤, 구단 공홈은 특정 세력이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하고 다른 의견은 키배 끝에 잠수타고 있는 것이 현실. 그리고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까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선동열을 옹호하는 팬들은 기아 팬으로 의심 받는 현상 있었다. 특히 팀이 아무리 잘해도 안나타 나다가, 선동열 감독만 비난받으면 갑자기 삼성 팬임을 주장하면서 글을 적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이유없는 의심도 아니였다. 선동열 감독이 물러난 이후 실제로 기아를 응원하는 팬들도 다수 있어서 완전히 틀린 추측도 아니었다고.

2009년 5위로 마감하면서 12년간 이어오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행진이 중단되면서 못해도 가을야구는 가던 삼성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고 2010 시즌 더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양준혁을 사실상 강제 은퇴시키면서 일부 팬들의 반감을 샀다. 추가적으로 일본에서 부진하던 이승엽이 삼성 복귀를 얘기했을 때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며 이를 거부함으로써[106] 삼성의 레전드들을 부정한 선 감독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악화되었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SK를 상대로 4전 전패로 참담하게 패배하면서 선동열에 우호적이었던 많은 삼성 팬들은 급격하게 선 감독의 안티 팬으로 돌아섰다. 게다가 2011년 류중일 신임 감독이 선동열과 전혀 다른 투수 운용으로 놀라운 성적을 내는 바람에[107] 선수를 다루는 방식에서 더욱 대비되었고, 부임 후 정규시즌 5연패,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성적을 내며 삼성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류중일 감독의 도움으로 이승엽은 8년만에 고향 팀 삼성에 복귀하여 팀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기에 선동열 감독의 "와도 자리 없다" 라는 말을 무색하게 했다. 거기다 2014년에 선동열과 마찰을 일으켰던 임창용이 삼성에 다시 복귀하여 마무리를 맡아 불펜의 중심 축 역할을 하고 팀 통합 4연패의 주역이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많은 삼성 팬들에게 선동열은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한때 KIA 팬들은 선동열이 삼성을 두 번이나 우승시켜 줬는데도 싫어한다고 삼성 팬을 깠다. 그러나 KIA 팬들 역시 처음에는 해태 프랜차이즈 선수출신 선동열 감독 부임을 열렬히 환영했지만[108] 우승은 커녕 몇년간 성적이 바닥을 보이자 이제는 KIA 팬들도 대부분 선동열을 깐다.[109] 그리고 하위권을 맴돌던 KIA 타이거즈 성적으로 인해 선동열이 삼성을 우승시킨 게 아니라 삼성이 선동열에게 우승을 안겨 주었다는 것이 이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110] 그리고 이로 인하여 그동안 감독 순혈주의를 실천하지 않던 삼성은 류중일 이후 감독은 대체로 순혈주의에 걸맞게 선임하는 분위기이다.[111]

한편 홍준학 체제에서 부임한 김한수, 허삼영, 박진만은 전부 평가가 매우 좋지 않다.[112] 이 시기는 성적도 좋지 않고 리빌딩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 다만, 이 세 감독 위에서 팀을 운영하던 홍준학이 리빌딩을 극단적으로 경시하는 성향임을 참작해야한다는 여론도 있으나, 저 세 감독이 무능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9.7. 역대 주장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ecd00>
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rowcolor=#FFF>
1991~1992
1993~1994
1995~1996
1997 1998
김용국 강기웅
이종두 류중일 양준혁
<rowcolor=#FFF>
1999
2000 2001
2002~200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7ab 75%, #074ca1 25%);"
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진갑용
<rowcolor=#FFF>
2009
2010
2011~2012
2013~2014
2015
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박석민
<rowcolor=#FFF>
2016
2017 2018 2019
2020~2021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 (임시 주장)
김상수 강민호
박해민
이원석 (임시 주장)
<rowcolor=#FFF> 2022 2023 2024~
김헌곤오재일
피렐라 (임시 주장)
오재일구자욱
강민호 (임시 주장)
구자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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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역대 선수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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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역대 개막전 선발투수

<rowcolor=#fff> 연도 이름 상대
<colbgcolor=#074ca1><colcolor=#fff> 1982 황규봉 對MBC
1983 이선희 對해태
1984 김시진 對삼미
1985 김일융 對해태
1986 김시진 對청보
1987 김훈기 對해태
1988 전용권 對해태
1989 진동한 對롯데
1990 김상엽 對태평양
1991 김성길 對롯데
1992 김상엽 對롯데
1993 김상엽 對쌍방울
1994 김태한 對롯데
1995 김태한 對LG
1996 김태한 對OB
1997 전병호 對현대
1998 조계현 對롯데
1999 김상진 對한화
2000 노장진 對SK
2001 임창용 對한화
2002 임창용 對LG
2003 엘비라 對두산
2004 호지스 對롯데
2005 배영수 對롯데
2006 배영수 對롯데
2007 브라운 對두산
2008 배영수 對KIA
2009 윤성환 對LG
2010 윤성환 對LG
2011 차우찬 對KIA
2012 차우찬 對LG
2013 배영수 對두산
2014 윤성환 對KIA
2015 피가로 對SK
2016 차우찬 對두산
2017 페트릭 對KIA
2018 윤성환 對두산
2019 맥과이어 對NC
2020 백정현 對NC
2021 뷰캐넌 對키움
2022 뷰캐넌 對KT
2023 뷰캐넌 對NC
2024 코너 시볼드 對KT

9.10. 역대 선수단등번호

10. 역대 기록

10.1. 팀 성적

우승
준우승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삼성 라이온즈 역대 성적
연도 정규 시즌 순위 포스트시즌 최종 순위 경기 승률
삼성 라이온즈
1982 전기 2위 / 6팀
후기 1위 / 6팀
KS 1-4(1무) 준우승(OB) 준우승 80 54 0 26 0.675
1983 전기 5위 / 6팀
후기 2위 / 6팀
진출 실패 4위 100 46 4 50 0.479
1984 전기 1위 / 6팀
후기 5위 / 6팀
KS 3-4 준우승(롯데) 준우승 100 55 0 45 0.550
1985 전기 1위 / 6팀
후기 1위 / 6팀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113] 우승 110 77 1 32 0.706
1986 전기 1위 / 7팀
후기 4위 / 7팀
KS 1-4 준우승(해태) 준우승 108 70 1 37 0.654
1987 전기 1위 / 7팀
후기 1위 / 7팀[114]
KS 0-4 준우승(해태) 준우승 108 64 0 44 0.593
1988 전기 5위 / 7팀
후기 2위 / 7팀
PO 0-3 탈락(빙그레) 3위 108 56 2 50 0.528
1989 4위 / 7팀 준PO 1-2 탈락(태평양) 4위 120 57 5 58 0.496
1990 4위 / 7팀 KS 0-4 준우승(LG) 준우승 120 66 2 52 0.558
1991 3위 / 8팀 PO 1-3 탈락(빙그레) 3위 126 70 1 55 0.560
1992 4위 / 8팀 준PO 0-2 탈락(롯데) 4위 126 67 2 57 0.540
1993 2위 / 8팀 KS 2-4(1무) 준우승(해태) 준우승 126 73 5 48 0.599
1994 5위 / 8팀 진출 실패 5위 126 60 2 64 0.484
삼성 라이온즈
1995 5위 / 8팀 진출 실패 5위 126 60 6 60 0.500
1996 6위 / 8팀 진출 실패 6위 126 54 5 67 0.448
1997 4위 / 8팀 PO 2-3 탈락(LG) 4위 126 66 7 53 0.552
1998 2위 / 8팀 PO 2-3 탈락(LG) 3위 126 66 2 58 0.532
1999 매직 1위 / 4팀 PO 3-4 탈락(롯데) 4위 132 73 2 57 0.562
2000 드림 3위 / 4팀 PO 0-4 탈락(현대) 3위 133 69 5 59 0.539
2001 1위 / 8팀 KS 2-4 준우승(두산) 준우승 133 81 0 52 0.609
2002 1위 / 8팀 KS 4-2 우승(LG) 우승 133 82 4 47 0.636
2003 3위 / 8팀 준PO 0-2 탈락(SK) 4위 133 76 4 53 0.589
2004 2위 / 8팀 KS 2-4(3무) 준우승(현대) 준우승 133 73 8 52 0.584
2005 1위 / 8팀 KS 4-0 우승(두산) 우승 126 74 4 48 0.607
2006 1위 / 8팀 KS 4-1(1무) 우승(한화) 우승 126 73 3 50 0.593
2007 4위 / 8팀 준PO 1-2 탈락(한화) 4위 126 62 4 60 0.508
2008 4위 / 8팀 PO 2-4 탈락(두산) 4위 126 65 0 61 0.516
2009 5위 / 8팀 진출 실패 5위 133 64 0 69 0.481
2010 2위 / 8팀 KS 0-4 준우승(SK) 준우승 133 79 2 52 0.594
2011 1위 / 8팀 KS 4-1 우승(SK) 우승 133 79 4 50 0.612
2012 1위 / 8팀 KS 4-2 우승(SK) 우승 133 80 2 51 0.611
2013 1위 / 9팀 KS 4-3 우승(두산) 우승 128 75 2 51 0.595
2014 1위 / 9팀 KS 4-2 우승(넥센) 우승 128 78 3 47 0.624
2015 1위 / 10팀 KS 1-4 준우승(두산) 준우승 144 88 0 56 0.611
2016 9위 / 10팀 진출 실패 9위 144 65 1 78 0.455
2017 9위 / 10팀 진출 실패 9위 144 55 5 84 0.396
2018 6위 / 10팀 진출 실패 6위 144 68 4 72 0.486
2019 8위 / 10팀 진출 실패 8위 144 60 1 83 0.420
2020 8위 / 10팀 진출 실패 8위 144 64 5 75 0.460
2021 2위 / 10팀 PO 0-2 탈락(두산) 3위 144 76 9 59 0.563
2022 7위 / 10팀 진출 실패 7위 144 66 2 76 0.465
2023 8위 / 10팀 진출 실패 8위 144 61 1 82 0.427
2024 위 / 10팀
KBO 리그 통산 42시즌 V8 5347 2847 120 2380 0.545

KBO 리그 구단들 중 손에 꼽는 통산 성적을 기록하였다. 원년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KBO 리그 10개 구단 중에서도, 삼성 프로 스포츠팀 중에서도 유일하게 정규시즌 최하위 기록이 없다.[115][116] 삼성은 현재까지도 진행되고있는 역대 최악의 암흑기를 맞이하고 있음에도 암흑기 도입부터 현재까지 한 번도 꼴찌로 시즌을 마감한 적이 없다. 2023 시즌 6월에 최악의 성적을 거두면서 창단 첫 꼴찌의 불명예가 잠정적으로 확정된 상황인듯 했으나 7월 이후 좋은 승률을 거두고 키움이 이정후의 시즌아웃 부상 이후 사실상 리빌딩 및 탱킹 체제에 들어가면서 기어코 꼴찌를 면했다. 본격적으로 암흑기에 들어간 2016년 이후에도 최하위는 안했다. 2016과 2017년은 10위 중 9위를 기록해 버텨내었다.[117][118] 삼성이 정규시즌에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유일하게 4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룬 구단이다. KIA 타이거즈가 해태 시절 4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적은 있지만, 이 중에 통합 우승은 1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페넌트레이스 연속 우승은 5연속이었으나 통합 우승이 좌절된 것은 도박 파동이 한몫 했다고 봐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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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승리 1위[119], 통산 승률 1위, 통산 팀 홈런 1위, 특정 팀 상대 최다 승리[120], 통산 팀 타율 1위, 단일 시즌 팀 승률 1위(1985년 0.706), 단일 시즌 팀 타율 3, 4, 5위(2015년 0.302, 2014년 0.301, 1987년 0.300), 통산 가을야구 진출 횟수 1위(29회)[121] 등 '삼성의 기록은 삼성만이 경신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22]

한국시리즈에 가장 많이 가 본 팀이며[123] KIA 타이거즈와 함께 KBO의 전통적인 강호로 손꼽히는 팀이다. 다만 두 팀의 강력함은 느낌이 조금 다른데, 타이거즈는 전성기 때의 무지막지한 강함으로 프로야구를 지배하였고, 1997년 외환 위기로 잠시 주춤했다가 2009년 우승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등 강약의 차이가 극명한 기복이 심한 이미지라면, 라이온즈는 소수의 예외 시즌을 제외하면 언제나 변함없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꾸준히 강력한 실력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1990년대 두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타이거즈의 이종범과 라이온즈의 양준혁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2016시즌부터는 삼성도 2009시즌 이후의 기복있는 KIA 타이거즈보다도 근소하게 못한 성적을 내며[124] 똑같은 신세가 되었다.

라팍으로 홈을 옮기기 이전의 삼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단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우승했을 때 '음, 이번 시즌 좀 잘했구나'라는 분위기[125]였고, 4위 턱걸이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굴욕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만약 5위 이하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면 해당 시즌은 바로 삼성의 흑역사로 기록되기도 했다. 실제로 삼성이 5위 이하로 내려간 시즌은 본격적인 암흑기가 시작된 2016년 이전까지 34시즌 동안 팬들에게 그나마 암흑기로 불렸던 1994년, 1995년, 1996년과, 5위를 기록한 2009년으로 총 4번이 전부다. 전·후기 리그로 치러졌던 때에도 포스트시즌 탈락은 1983년 단 한 번뿐이니 프로야구 35년 역사상 삼성의 포스트시즌 탈락은 단 6회 뿐이라는 소리가 된다. 이러한 역대 팀 평균 성적을 감안한다면 2015시즌부터 5위 팀 또한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와일드카드전 진출 또한 삼성에 있어서는 굴욕이라고 할 만 하겠지만, 2016시즌부터 2020시즌까지 구단 사상 최장기간 암흑기가 도래하면서 팬들의 가을야구에 대한 갈증은 계속 심해지고 있었다.

1970년대 대구, 경북 야구가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 그 전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1980년대에는 한국시리즈 우승만 못했을 뿐 명실상부한 최강팀으로 군림했고, 1990년대 중반기에 잠시 침체기가 있었으나, 후반기부터 부활하여 다시 리그를 주름잡는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통산 최다 준우승팀으로 2002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 전에는 라이벌 해태 타이거즈에 비해 큰 경기에 약한 팀으로 인식된 적도 있었다. 현재까지 한국시리즈 준우승 10회로 최다 준우승 팀이다.[126]

통산 우승 횟수는 1985년 전·후기 리그 시절의 통합 우승 1회 + 한국시리즈 우승 7회로 총 8회.[127] 일부[128]에서는 1985년 우승을 계산에서 빼기도 하지만, 1985년 삼성이 전·후기 모두 가장 잘해서 한국시리즈 자체가 열리지 않게 된 것이며, 사실 KBO의 인증으로 봐도 무엇으로 봐도 엄연한 우승이다.[129]

2002년 한국시리즈는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회자되는데,[130] 상대는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LG 트윈스였다. 1, 3, 4차전을 이기고 2, 5차전을 내준 상태에서 홈구장인 대구에 돌아와서 6차전을 치렀는데, 9회말까지 9-6으로 뒤지고 있었고 그대로 7차전까지 갈 가능성이 컸었다. 그러나 시리즈 내내 헛스윙만 하던 이승엽이 동점 3점 홈런을 쳐내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고, 다음 타자 마해영이 끝내기 홈런을 쳐서 결국 삼성은 지긋지긋한 준우승의 한을 풀고 한국시리즈를 우승하였다.

다만 이런 영광스러운 날이 있기까지에는 일부 팬들이 '콩성'이라고 부르듯 많은 곡절이 있었다. 준우승만 10회로 이 부문 1위인 비운의 팀. 2002년까지는 삼성도 콩라인에 있긴 있었다.[131] 그리고 준플레이오프에도 자주 진출했으나,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는 악몽도 여러 차례 겪었다(특히 역전패. 1999년 롯데 자이언츠에게 당한 대역전패는 아직도 명승부로 회자된다. 두산 베어스에 당한 2001년 한국시리즈도 역시 마찬가지지만, 이때는 양준혁이 삼성에 없고 LG 트윈스에 있었다.). 또한 원년에 한국 야구를 먹여 살린 두 개의 만루 홈런의 주인공이 된 허무한 팀.[132]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세운 팀으로,[133] 삼성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때는 1994~1996년, 2009년과 2016~18년 단 일곱번. 이는 1990년 플레이오프가 도입된 이래 최소 기록이다. 사실 2000년에 드림 리그 3위로 떨어지며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행진이 3연속에서 멈출 뻔 하다가 '드림 리그는 1부, 매직 리그는 2부' 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성적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통에 매직 리그 1위였던 LG 트윈스보다도 승률이 더 높은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자 억지로 진출했다. 이 때문에 2000년 포스트시즌에 5팀이나 진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134]

참고로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장 기록. 2위 기록 역시 삼성의 1984~1993년의 10년(1985년 통합 우승 포함). 3위까지 와서야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의 1986~1994년의 9년의 기록이 나온다. 게다가 최근에는 삼성 라이온즈 스스로 6년 연속 진출에 성공하면서(2010년~2015년) 다시 기록을 세우는 중이니 이제 기록 경신까지 7년 남았으나 2016년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6년으로 멈췄다.[135]

2015년 정규시즌 1위를 하여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면서 포스트시즌 관련 또 다른 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바로 한국시리즈 연속진출 기록이다. 이전까지의 최다 한국시리즈 연속진출 기록은 SK 와이번스의 6연속(2007년~2012년)으로, 2015년 현재 삼성 라이온즈가 역시 6연속(2010년~2015년)으로 타이를 이루고 있다. 이전까지는 5연속 진출로 2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2015년 한국시리즈 직행으로 공동 1위에 올라섰는데, 두산 베어스가 2021년에 삼성을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7연속(2015년~2021년)으로 삼성의 기록은 2위가 되었다. 4위는 해태 타이거즈의 1986년~1989년 4연속.

2011~2015년 정규시즌 우승을 거두게 되면서 사상 처음 정규시즌 5연속 우승을 달성하였다. 정규시즌 연속 우승은 1996~1997년 해태 타이거즈, 2001~2002년 삼성 라이온즈, 2003~2004년 현대 유니콘스, 2005~2006년 삼성 라이온즈, 2007~2008년 SK 와이번스 등의 2회 연속 우승 기록이 있는데 삼성이 처음으로 5연패를 달성한 것이다. 여기에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도 넥센 히어로즈를 4승 2패로 꺾고 통산 8번째 우승을 달성하면서 해태 타이거즈가 1986년~1989년에 기록한 4연패 기록과 타이 기록을 이루게 되었다. 무엇보다 해태 타이거즈는 그 기간 정규시즌 우승을 1회(1988년)만 달성하였으므로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기록은 2013년에 삼성이 기록한 3연패가 유일했으며,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해 기록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10.1.1. 암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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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강팀 이미지가 강한 삼성에게도 부진하던 시기는 있었다.

순위로 따졌을 때 삼성의 첫 암흑기라 하면 우용득 감독의 임기 중반인 1994년부터 백인천 감독이 부임한 첫 해인 1996년까지의 3년간의 순위를 가리킨다. 삼성의 성적이 워낙 좋다보니 타 팀이 보기엔 그저 엄살로 보이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3년간 1994년 5위, 1995년 5위, 1996년 6위를 기록하며 삼성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고, 이는 1996년 당시 기준으로 삼성 라이온즈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 기록이며 특히 1996년의 6위는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두 번째로 낮은 순위다. 그러나 이승엽이 홈런왕 대열에 들어서고 공격력이 강해지면서 이후 2002년 한국시리즈, 2005년 한국시리즈,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고, 이후 2011년 한국시리즈부터 2014년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하면서 삼성 왕조를 이룩했다.

1994년부터 삼성이 3년간 556의 순위를 찍게 된 주된 원인으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삼성을 이끈 주전 멤버들의 노쇠화였다. 1993년 준우승 당시에도 김성래, 류중일, 이만수, 이종두 등 베터랑들 대다수가 30대를 훌쩍 넘긴 노장 축에 속했다. 삼성 입장에서는 분명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대구와 경북지역 아마야구의 침체로 인해 삼성에는 쓸만한 신예가 드물었다. 실제로 1991년 이후 삼성의 1차 지명선수 명단을 보면 이영재(1991년), 감병훈(1994년), 안윤호(1995년), 황성관(1997년), 정성열(1999년)등 1군에서 별다른 보탬이 되지 못한 선수가 대부분이다. 1996년부터 도입된 고졸 우선지명에도 김헌수, 김성훈, 권영철(1996년) 설재호, 황영구(1997년), 이준민(1998년), 이성훈(1999년) 등 계속되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특히 마운드에는 쓸만한 선수가 아예 없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이에 삼성은 미국으로 눈을 돌려 최용희, 최창양 등을 영입했지만 그마저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일설에는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삼성 감독이었던 김성근 책임론이 거론된다. 김성근 감독이 첫 해 3위, 2년차 4위로, 생각만큼 대단한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경질된 이후 556을 찍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김 감독의 투수 혹사 경향과 엮어서 언급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성근 본인이 스스로의 자서전에서 인정한 바 있는데, 프런트에서는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본인이 엘리트 의식에 빠진 선수들을 휘어잡지 못한 실책의 결과라고 시인했다. 다시 말해 본인의 선수단 장악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 거기에 급격하게 추진한 리빌딩과 조범현을 비롯한 자신의 제자 중용 등으로 선수들과 마찰이 심했다고 한다. 웬만해선 김성근식 감독야구를 옹호하는 김은식 작가조차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김성근의 방식이 삼성에는 맞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직전 감독이었던 정동진 감독을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업계 라이벌인 LG를 상대로 패하면서 우승에 실패한 것을 구실로 경질해버린 프런트의 조급함이 이후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그 전년도에는 최동원-김시진 트레이드라는 병크도 있었고.

그리고 당시 창단 이래 최하위였던 6위를 찍은 1996년에는 전년도에 포스트시즌에 탈락했던 다섯 팀[136] 중 네 팀이 올랐는데 유일하게 못 오른게 바로 이 암흑기에 있던 삼성이다. 대구, 경북 팜에서 이승엽 이전까지 괜찮은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이 암흑기의 원인이다.

여담으로 이 비밀번호를 끊은 감독이 바로 롯데 팬 한정으로 금지어모 골프 전문 감독이다. 또한 베이징 올림픽의 퍼펙트 골드 감독인 김경문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후 삼성 라이온즈의 배터리코치로 영입되어 이 때 코치 실전 수업을 받았다. 그것도 정확하게 1차 암흑기 동안.

일부는 부임 첫해에 6위를 찍었다는 건 함정이라느니 비하하기도 하지만, 백인천의 잘못이라고만은 보긴 어렵다. 김성근 감독이 추진했던 리빌딩과 자신의 제자들의 주전화 등으로 팀 케미스트리가 망가지자 우용득 감독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장들을 방출하면서 세대교체가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었고, 부임 첫해인 1993년에는 이 세대교체 효과가 있었으나 많은 선수들이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린 후 극복을 해내지 못하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고, 하필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만수 등 경험 있는 고참은 급격한 리빌딩 과정에서 전멸하다시피하는 바람에 삼성 팀의 분위기가 상당히 망가져있던 상황. 오히려 고작 1년만에 팀을 추스리고 유망주를 발굴한 걸 높게 평가하는 것이 맞다.

사실 성적만 놓고 보면 556 시기를 암흑기라 여길 수 있긴 하지만, 타팀 팬 입장에서는 겨우 3년 정도 가을야구를 못 가고, 그것도 꼴찌도 하지 않고 리빌딩이 차근차근 진행되며 기대를 모으던 시기를 어떻게 암흑기라 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우승 아니면 의미가 없던 당시 삼성으로서는 충분히 암흑기였다고 말할 근거가 있겠지만. 그리고 꼴찌를 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관중 수 신기록을 쓰는 등 흥행은 했기 때문에 당시 야구를 봤던 삼성 팬[137]들 또한 이 시기를 암흑기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90년대부터 야구를 봐온 삼성팬들이 손꼽는 진짜 1차 암흑기는 556 시기가 아니라 김성근 강점기인 1991~1992년이다.

그 외 일각에서는 선동열 감독 시기인 2009년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고 2차 암흑기라고 부르는 시각도 있다. 사실 선감독 재임 시절엔 일단 우승도 두 번 했고, 마지막 해인 2010년에도 준우승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타팀 팬들 입장에서는 '저게 암흑기라고?'라고 기막혀하는 경우가 대부분. 물론 삼성 시절 선감독의 논란 많은 행적과 연속 포스트시즌 기록 좌절, 양준혁의 급작스러운 은퇴 등 삼성 팬 입장에선 암흑의 시기라 일컬을 일이 많긴 했기 때문에, 성적과는 별개로 선감독 재임 시기가 2차 암흑기라는 의견이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공감을 많이 얻는 편이다. 실제로 선감독 재임기의 삼성은 우승은 두 번 했지만 관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던 추세였다. [138]

이후 2011년 류중일 감독 선임 이후에는 삼성 왕조 시기를 거치며 승승장구했지만, 2015년 도박 사건을 기점으로 생각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침체기에 접어드는 위기를 맞이했다. 2015년 이후 고작 1년 후인 2016년2017년2년 연속으로 9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유례없는 가장 낮은 최종 순위였다. 특히 다른 때와는 달리 모기업 삼성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로 인해 구단 시스템 자체가 불안해진 상황이라 리빌딩과 인기 둘 다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낳고 있었다. 게다가 KBO 리그 심판 최규순 금전요구 사건에도 엮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팬들의 신뢰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위에서 말했듯이 2016년부터 갑작스레 시작된 부진을 털어내지 못하면서, 말 그대로 성적도 못 내고, 재미도 없는 제대로 된 암흑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2016년 9위, 2017년 9위를 기록하고, 2018년 시즌 막판에는 혹시나 하는 3년만의 가을야구가 이루어져 순식간에 암흑기 탈출에 성공하나 했으나, 시즌 막판부터 지난해 우승팀인 KIA 타이거즈가 치고 올라오며 5위 자리를 빼앗겼고, 결국 삼성은 기아에 밀려 6위라는 순위에 만족해야 했으며, 2019년, 2020년에도 8위에 그치면서 5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암흑기를 겪게 되었다.[139]

강팀의 엄살로 보일 수 있는 이전까지의 3년짜리 암흑기와는 다르게 2010년대 후반기의 암흑기는 객관적으로도 명백히 하위권에 가라앉은 상태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좋든 나쁘든 구단 역사상 팀 분위기가 가장 크게 바뀐 시기라 할 수 있는데, 왕조 시절의 멤버가 하나둘 떠나면서 신인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본의 아니게 팬덤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나마 이 시기의 위안거리가 있다면, 선수들에게도 팬들에게도 위험했던 낡은 구장을 벗어나 여러모로 쾌적한 새 구장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점과 제대로 하위권으로 내려앉은 대가로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 이는 2021년 암흑기에서 잠시 벗어나는 데에 알게 모르게 기반으로 작용해주었다.

10.1.2. 팀 전력

전력 순위가 중간 이상인 경우, 굵은 글씨
삼성 라이온즈 역대 팀 전력 (스탯티즈 팀 WAR 기준)
연도 정규시즌 승률 정규시즌 순위 투수 전력 순위 타자 전력 순위
1982 0.675 통합 2/6 21.11 1/6 18.61 2/6
1983 0.479 통합 4/6 15.08 4/6 23.31 1/6
1984 0.550 통합 2/6 17.60 2/6 24.07 1/6
1985 0.706 통합 1/6 25.23 1/6 29.97 1/6
1986 0.654 통합 1/7 16.33 5/7 30/54 1/7
1987 0.593 통합 1/7 14.54 6/7 37/97 1/7
1988 0.528 통합 4/7 13.52 5/7 26.25 2/7
1989 0.496 4/7 12.03 7/7 28.76 2/7
1990 0.558 4/7 14.33 6/7 27.23 2/7
1991 0.560 3/8 18.28 5/8 29.69 3/8
1992 0.540 4/8 17.53 7/8 26.53 4/8
1993 0.599 2/8 21.55 3/8 38.88 1/8
1994 0.484 5/8 21.41 5/8 27.19 2/8
1995 0.500 5/8 17.63 6/8 23.08 4/8
1996 0.448 6/8 14.20 7/8 23.56 4/8
1997 0.552 4/8 17.72 6/8 38.92 1/8
1998 0.532 2/8 16.21 6/8 28.20 2/8
1999 0.562 통합 3/8 24.11 3/8 26.99 4/8
2000 0.539 통합 3/8 23.36 5/8 27.09 3/8
2001 0.609 1/8 25.57 1/8 27.89 1/8
2002 0.636 1/8 25.54 1/8 38.22 1/8
2003 0.589 3/8 22.77 3/8 37.22 2/8
2004 0.584 2/8 27.09 1/8 26.73 3/8
2005 0.606 1/8 26.24 2/8 26.13 2/8
2006 0.593 1/8 23.47 4/8 23.65 4/8
2007 0.508 4/8 22.85 4/8 20.97 7/8
2008 0.516 4/8 19.63 5/8 21.64 5/8
2009 0.481 5/8 20.30 5/8 26.27 2/8
2010 0.594 2/8 28.95 2/8 28.84 3/8
2011 0.612 1/8 29.59 1/8 25.18 4/8
2012 0.611 1/8 28.68 1/8 33.80 1/8
2013 0.595 1/9 24.31 2/9 29.91 2/9
2014 0.624 1/9 28.70 1/9 29.92 2/9
2015 0.611 1/10 14.06 8/10 33.76 1/10
2016 0.455 9/10 12.55 8/10 22.21 4/10
2017 0.396 9/10 6.74 10/10 16.81 8/10
2018 0.486 6/10 18.08 4/10 19.89 7/10
2019 0.420 8/10 11.40 10/10 17.27 8/10
2020 0.460 8/10 19.06 4/10 15.78 8/10
2021 0.563 2/10 19.52 4/10 21.87 7/10
2022 0.465 7/10 13.54 7/10 20.57 6/10

10.1.3.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두산 베어스 1982 KS: 1승 1무 4패
1986 PO: 3승 2패
2001 KS: 2승 4패
2004 PO: 3승 1패
2005 KS: 4승
2008 PO: 2승 4패
2010 PO: 3승 2패
2013 KS: 4승 3패
2015 KS: 1승 4패
2021 PO: 2패
PO 3승 2패
KS 2승 3패

개별 경기 합계: 23승 1무 26패
롯데 자이언츠 1984 KS: 3승 4패
1991 준PO: 2승 1무 1패
1992 준PO: 2패
1999 PO: 3승 4패
2000 준PO: 2승 1패
2008 준PO: 3승
준PO 3승 1패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합계: 13승 1무 12패
KIA 타이거즈 1986 KS: 1승 4패
1987 KS: 4패
1990 PO: 3승
1993 KS: 2승 1무 4패
PO 1승
KS 3패

개별 경기 합계: 6승 1무 12패
한화 이글스 1988 PO: 3패
1990 준PO: 2승
1991 PO: 1승 3패
2006 KS: 4승 1무 1패
2007 준PO: 1승 2패
준PO 1승 1패
PO 2패
KS 1승

개별 경기 합계: 8승 1무 9패
현대 유니콘스 1989 준PO: 1승 2패
2000 PO: 4패
2004 KS: 2승 3무 4패
준PO 1패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합계: 3승 3무 10패
LG 트윈스 1990 KS: 4패
1993 PO: 3승 2패
1997 PO: 2승 3패
1998 PO: 1승 3패
2002 KS: 4승 2패
PO 1승 2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합계: 10승 14패
쌍방울 레이더스 1997 준PO: 2승 1패 준PO 1승
개별 경기 합계: 2승 1패
SSG 랜더스 2003 준PO: 2패
2010 KS: 4패
2011 KS: 4승 1패
2012 KS: 4승 2패
준PO 1패
KS 2승 1패

개별 경기 합계: 8승 9패
키움 히어로즈 2014 KS: 4승 2패 KS 1승
개별 경기 합계: 4승 2패

10.2. 개인 성적

개인 커리어 전체가 아닌 삼성 소속이었을 때의 성적.

10.2.1. 통산

볼드체로 표시된 건 KBO 통산 1위.
삼성 라이온즈 역대 투수
부문 이름 기록 삼성 소속 시즌
등판경기 오승환 668경기 2005~2013
2019~현재
선발 등판 윤성환 305경기 2004~2020
완투 김시진 61경기 1983~1988
완봉 김시진 14경기 1983~1988
평균자책점 김시진 2.73 1983~1988
승리 윤성환 135승 2004~2020
패전 윤성환 106패 2004~2020
세이브 오승환 400세이브 [143] 2005~2013
2019~현재
홀드 안지만 177홀드 2002~2016
이닝 윤성환 1915이닝 2004~2020
피안타 윤성환 2042개 2004~2020
피홈런 윤성환 212개 2004~2020
탈삼진 윤성환 1357개 2004~2020
볼넷 배영수 630개 2000~2014
몸에 맞는 공 임창용 108개 1999~2007
2014~2015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자
부문 이름 기록 소속 시즌
출장경기 박한이 2127경기 2001~2019
타율 구자욱 .315 2012~현재
출루율 양준혁 .419 1993~1998
2002~2010
장타율 이승엽 .572 1995~2003
2012~2017
타석 박한이 8712타석 2001~2019
타수 박한이 7392타수 2001~2019
안타 박한이 2174개 2001~2019
2루타 이승엽 464개 1995~2003
2012~2017
3루타 구자욱 55개 2012~현재
홈런 이승엽 467개 1995~2003
2012~2017
타점 이승엽 1498타점 1995~2003
2012~2017
득점 이승엽 1355득점 1995~2003
2012~2017
도루 박해민 318개 2012~2021
사사구 양준혁 1134개 1993~1998
2002~2010
볼넷 양준혁 1043개 1993~1998
2002~2010
몸에 맞는 공 김한수 148개 1994~2007
삼진 이승엽 1344개 1995~2003
2012~2017
병살타 박한이 156개 2001~2019

10.2.2. 단일시즌

볼드체로 표시된 건 KBO 단일시즌 1위 기록.
삼성 라이온즈 투수
부문 이름 기록 시즌
등판경기 임창용 71경기 1999
임현준 2019
선발 등판 김진웅 31경기 1999
팀 아델만 2018
완투 김시진 17경기 1983
완봉 김시진 5경기 1983
평균자책점 김시진 2.00 1985
승리 김시진 25승 1985
김일융
패전 이선희 13패 1983
김진웅 1999
윤성환 2019
백정현 2022
세이브 오승환 47세이브 2006
2011
홀드 안지만 37홀드 2015
이닝 김시진 269⅔이닝 1985
피안타 김성길 219개 1989
피홈런 장원삼 29개 2015
탈삼진 김시진 201개 1985
사사구 김시진 136개 1985
볼넷 김시진 121개 1985
몸에 맞는 공 임창용 24개 2002
삼성 라이온즈 타자
부문 이름 기록 시즌
타율 장효조 .387 1987
출루율 장효조 .469 1983
장타율 이승엽 .733 1999
타석 박해민 649타석 2018
타수 박해민 576타수 2018
안타 최형우 195개 2016
2루타 최형우 46개 2016
3루타 구자욱 13개 2016
홈런 이승엽 56개 2003
타점 이승엽 144타점 2003
최형우 2016
득점 이승엽 128득점 1999
도루 박해민 60개 2015
사사구 이승엽 124개 1999
볼넷 이승엽 112개 1999
몸에 맞는 공 박석민 27개 2012
삼진 구자욱 138개 2017
병살타 김한수 23개 2004
무안타 김헌곤 43타석 2022

10.2.3. 타이틀 홀더

10.2.3.1. 타자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격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장효조 외야수 .369
1984 이만수 포수 .340
1985 장효조 외야수 .373
1986 장효조 외야수 .329
1987 장효조 외야수 .387
1993 양준혁 1루수 .341
1996 양준혁 외야수 .346
1998 양준혁 지명타자 .342
2016 최형우 외야수 .376
삼성 라이온즈 역대 출루율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장효조 외야수 .469
1984 장효조 외야수 .422
1985 장효조 외야수 .460
1986 장효조 외야수 .436
1987 장효조 외야수 .461
1988 김성래 2루수 .459
1993 양준혁 1루수 .436
1998 양준혁 지명타자 .450
1999 이승엽 1루수 .458
2006 양준혁 지명타자 .446
삼성 라이온즈 역대 장타율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장효조 외야수 .618
1984 이만수 포수 .633
1987 이만수 포수 .579
1993 양준혁 1루수 .598
1996 양준혁 외야수 .624
1998 이승엽 1루수 .621
1999 이승엽 1루수 .733
2002 이승엽 1루수 .689
2011 최형우 외야수 .617
삼성 라이온즈 역대 최다안타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장효조 외야수 117
1996 양준혁 외야수 151
1997 이승엽 1루수 170
1998 양준혁 지명타자 156
2002 마해영 지명타자 172
2003 박한이 외야수 170
2016 최형우 외야수 195
삼성 라이온즈 역대 홈런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이만수 포수 27
1984 이만수 포수 23
1985 이만수 포수 22
1987 김성래 2루수 22
1993 김성래 1루수 28
1997 이승엽 1루수 32
1999 이승엽 1루수 54
2001 이승엽 1루수 39
2002 이승엽 1루수 47
2003 이승엽 1루수 56
2007 심정수 외야수 31
2011 최형우 외야수 30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점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이만수 포수 74
1984 이만수 포수 80
1985 이만수 포수 87
1987 이만수 포수 76
1993 김성래 1루수 91
1994 양준혁 지명타자 87
1997 이승엽 1루수 114
1999 이승엽 1루수 123
2002 이승엽 1루수 126
2003 이승엽 1루수 144
2007 심정수 외야수 101
2011 최형우 외야수 118
2016 최형우 외야수 144
2017 러프 1루수 124
삼성 라이온즈 역대 득점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98 이승엽 1루수 100
1999 이승엽 1루수 128
2000 이승엽 1루수 108
2002 이승엽 1루수 123
2003 이승엽 1루수 115
2006 박한이 외야수 89
2021 구자욱 외야수 107
2022 피렐라 외야수 102
삼성 라이온즈 역대 도루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2014 김상수 유격수 53
2015 박해민 외야수 60
2016 박해민 외야수 52
2017 박해민 외야수 40
2018 박해민 외야수 36
10.2.3.2. 투수
삼성 라이온즈 역대 다승왕
연도 이름 기록
1985 김시진 25
김일융
1987 김시진 23
2004 배영수 17
2009 윤성환 14
2012 장원삼 17
2013 배영수 14
2021 뷰캐넌 16
삼성 라이온즈 역대 평균자책점왕
연도 이름 기록
1999 임창용 2.14
2002 엘비라 2.50
2014 밴덴헐크 3.18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탈삼진왕
연도 이름 기록
1985 김시진 201
1993 김상엽 170
2005 배영수 147
2014 밴덴헐크 180
2015 차우찬 194
삼성 라이온즈 역대 세이브왕
연도 이름 기록
1982 황규봉 11
1985 권영호 26
1999 임창용 38
2004 임창용 36
2006 오승환 47
2007 오승환 40
2008 오승환 39
2011 오승환 47
2012 오승환 37
2015 임창용 33
2021 오승환 44
삼성 라이온즈 역대 홀드왕
연도 이름 기록
2006 권오준 32
2009 권혁 21
2015 안지만 37

11. 지역 연고 학교

대구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구단으로서, 지역 내에 3개의 고등학교 야구부가 있다.다만 실질적으로는 대구경북 전체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경상북도 소재의 고교들도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 학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과거 1차지명이 있던 시절에는 강원도 영동 지역[144]강릉고등학교, 설악고등학교까지 삼성이 우선 지명권을 가진 적이 있었다.

참고로, 과거에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연고 대상 학교였으나 폐부된 학교들은 다음과 같다.

12. 논란 및 사건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사건사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3. 이야깃거리


1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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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舊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의 전신
[2] 現 KIA 타이거즈의 전신
[3] 現 LG 트윈스의 전신
[4] 現 두산 베어스의 舊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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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연도 구단
누적 횟수
1982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OB 베어스
1회
1983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1회
1984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롯데 자이언츠
1회
1985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 삼성 라이온즈
1회
1986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5회
1987
1988
1989
1990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LG 트윈스
1회
1991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6회
1992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롯데 자이언츠
2회
1993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7회
1994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LG 트윈스
2회
1995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OB 베어스
2회
1996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해태 타이거즈

9회
1997
1998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1회
1999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 한화 이글스
1회
2000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2회
2001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두산 베어스
3회
2002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삼성 라이온즈
2회
2003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4회
2004
2005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삼성 라이온즈

4회
2006
2007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SK 와이번스
2회
2008
2009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 KIA 타이거즈

10회
2010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SK 와이번스
3회
201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8회
2012
2013
2014
2015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5회
2016
2017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17~2020).svg KIA 타이거즈

11회
2018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SK 와이번스

4회
2019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6회
2020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 NC 다이노스
1회
2021 파일:kt wiz 엠블럼.svg kt wiz
1회
2022 파일:SSG 랜더스 엠블럼(2021~2023).svg SSG 랜더스
5회
2023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 LG 트윈스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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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로고(세로형).svg KBO 리그 역대 왕조팀
★★★★
1986~1989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
2011~2014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왕조를 달성한 당시 구단명과 엠블럼으로 서술함
다른 틀 둘러보기: 한국프로축구 역대 왕조팀


[1] 대구 사무실,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2] 서울 사무실, 삼성화재 역삼빌딩 20층[3] 2014년부터 삼성 내의 프로 스포츠단을 인수하기 시작해 2016년 1월 1일부로 삼성 라이온즈도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되었다.[4] 리그 연고지 제도 개편으로 인한 경북 연고 소멸일 뿐, 1차 지명 권한이 날아간 건 아니다. 현재 1차 지명 권한은 대구/경북/강원영동[5] 장효조와 공동결번으로 분류하기도 한다[6] 최대 29,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7] 전·후기 리그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 없이 우승[8] 단일 리그 기준. 페넌트 레이스 KBO 최다 우승 구단이다.[9] 전기, 후기 리그[10] 전기, 후기 리그[11] KBO 포스트시즌 최다 진출 구단이다.[12]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11,825명.[13]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3,292명.[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무관중 경기들은 예외[15] 연봉 총액 90억원, 옵션 30억원[16] 2015년까진 삼성전자 산하에 있었으나 2016년 제일기획으로 이관되었다. 다만 제일기획은 국내 최대 광고 업체로서 프로 스포츠 사업의 수익성 향상을 위해 구단 운영만을 전담하고 있고, 구단 운영비는 여전히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들이 나눠 부담하고 있다.[17] 1982년 창단 이후 1999년까지 대구·경북 전역이 공식적인 연고지였으나 2000년부터 리그 연고지 제도가 바뀌게 되면서 대구광역시만이 공식적인 연고지로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대구·경북 전체를 대표하는 구단임에는 틀림이 없다.[18] 다른 하나는 롯데 자이언츠.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클래식 씨리즈 참조.[19] 양대 리그, 전·후기 리그 기록까지 포함하면 17회.[20] 사실 2009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했다면 이후 2010~2015와 연결되어 19회 연속 진출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다.[21]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 원래는 1985년 삼성 라이온즈가 전·후기 리그를 모두 제패하며 우승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이후 한국시리즈 규정이 바뀌면서 정규 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모두 달성한 경우를 통합우승으로 지칭하게 되었다.[22] 삼성 라이온즈보다 앞서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해태 타이거즈(1986~1989)도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우승한 적은 1988년 한 번뿐이다.[23] 정용진이마트가 아니라, 정유경신세계백화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같은 신세계그룹이지만 별도의 법인이다.[24] 야구단이 독립법인화 된 후 축구단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도 법인회사로 전환했으며 그 외 다른 스포츠단들은 전부 모기업의 부서로 포함된다.[25] 같은 그룹 내에 있지만 두 회사의 최대주주도 다르다. 이마트는 이명희의 장남인 정용진, 신세계는 장녀인 정유경이 최대주주다.[26]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선례가 있는데 2001년 기아자동차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여 KIA 타이거즈를 출범시켰을 때 같은 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자동차현대 유니콘스 지분을 보유했다.[27] 삼성전자(27.5%) 삼성SDI(15.0%) 삼성전기(12.5%) 삼성물산(9.5%) 등.[28] 아무리 야구단이 적자를 본다고 해도 지분 67.5%를 6억 7천만 원에 시장에 내놨다면 아파트를 팔고 빚을 내서라도 살 국민들이 넘쳐날 것이다. 계열사 간의 거래였기에 가능했던 일.[29] 17, 18, 19시즌 문서 FA 계약란 참조.[30] 이 외에도 부채꼴 로고, 마스코트 엠블럼, 단색 사자 측면 로고도 있었지만 메인 로고는 이 워드마크가 맞다. #[31] 꽹과리 아줌마가 라팍에서 아직도 이 로고가 박힌 깃발을 흔든다.[32] 이승엽 야구장으로 명칭이 바뀔 뻔 했으나 무산되었다. 현재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전시관과 사회인야구장으로 활용된다. 바로 옆에 대구 FC의 홈구장 DGB대구은행파크가 있다.[33]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포항구장을 쓰지 못하다가 2022년 7월 26일부터 3일간 한화 이글스와의 3연전을 치르며 포항 경기의 역사를 이어갔다.[34] 롯데 자이언츠의 제2구장인 문수 야구장은 2014년에 지어졌지만 제1구장인 사직 야구장이 1986년 개장했다. 아울러 한화 이글스는 제1구장인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와 제2구장인 청주 야구장이 모두 20세기에 지어졌다.[35] 당시 야구 국가대표의 70% 이상이 대구·경북 출신이었다.[36] 대구·경북 지역 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을 실패해서 타 지역 고교에 간 일이 비일비재했을 정도.[37] 정확한 총 관중 수가 62만3970명이고 평균 관중이 무려 9904명에 달했다. 이는 2011년 관중 수보다 무려 10만 명(20%)이나 많은 수치이고 1995년의 평균 좌석 점유율이 무려 76.2%에 달했다. 외야 관중석 일부를 빼고는 빈자리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38] 그리고 그 10,000석조차 2010년대에는 9,200석으로 줄어들었다.[39] 그러나 대구광역시는 월드컵 특수에도 축구가 생각보다 힘을 못 쓴 도시 중 하나였다. 같은 시대에 대구 오리온스에 김승현이라는 거물 가드가 들어오면서 농구 인기가 엄청날 정도로 올라가버려 대구 축구의 리즈 시절은 10여 년 뒤로 미뤄졌다.[40] 과거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이마양으로 대표되는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했는데, 선동열식 야구는 말 그대로 정반대인 만큼 기존 팬들의 반감을 샀고, 재미있는 야구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신규 팬 유입도 적었다. 거기다 이승엽이 일본으로 가면서 더더욱 심해졌었다.[41] 라팍과 경산 시내 간의 거리가 대구 구 도심 또는 성서지역 간의 거리보다 더 가까우며, 경산 시내 지역은 심지어 대구 도시철도 2호선으로 라팍과 연결되어 있다.[42] 특히 밀양시는 대구와 부산, 창원 모두 가까워서 롯데 자이언츠NC 다이노스의 팬들도 많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야구 팬덤이 많이 갈린다.[43] 이들은 1980-90년대에 삼성 골수팬들을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장본인들이고, 그들이 삼성을 지배하고 있어서 당연히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었다. 거기다 이승엽이 요미우리로 이적하면서 정점을 찍었는데 요미우리 경기 시청률이 훨씬 높았다.[44] 그래도 여전히 아저씨풍이 10개 구단들 중 가장 강력하다.[45] 군인 팬들도 있는데, 공군에서도 제11전투비행단, 공군방공포병학교에서 많이 보러 간다. 부대에서도 야구 이야기 하면 삼성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편.[46] 일명 대구아재로 불리는 중년 남성 팬들이다. 이들은 팬서비스보다 성적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47] 2016~2020년의 일명 99688 기간은 구단 40년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였어서 특히 과거 명문 이미지에 익숙하던 팬들은 현타가 오기 쉬웠다. 그나마 그 와중에도 지방구단이 관중 수가 중간은 갔다는게 위안거리.[48] 전상일 기자가 이를 두고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49] 다만, 이로 인하여 KBO 리그를 통틀어 무능함의 끝을 보여준 단장인 홍준학이 유임될 것이라는 단점이 있었으나 이마저도 시즌 중반 홍준학이 사퇴하며 없는 점이 되었다.[50] 이런 분위기는 2010년대 후반 암흑기를 보내면서 어느 정도 자정이 이루어졌다.[51] 삼성 라이온즈는 전체적으로 봐도 남성팬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그래서 삼성 관중측을 비추면 비교적 시꺼먼 남정네가 득시글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관중수입의 절대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왕조시절에는 아재팬들로만으로도 충분히 경기장을 쉽게 채웠다.[52] 사실 구단이 일부러 이러한 팬들 확보를 위해 뛰어든 것이 아니라 직관을 가지 않는이상 TV중계로만 야구를 접하던 시대에서 점차 핸드폰이나 SNS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53] 구자욱이 야수 중에 고참급이지만 93년생으로 젊은편이다.[54] 심지어 마케팅 팀장의 팬 무시 등으로 프런트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그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사실 이 사건도 팀 성적이 개판이라서 일어난 거다. 왕조시절 성적이었으면 흐지부지 되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재팬들은 성적이 장땡이기 때문이다.[55] 다만 이는 시민야구장과 라이온즈파크의 수용 인원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56] 당장 2018~2021 시즌 팀 슬로건도 "NEW LIONS!"이다.[57] 오죽하면 7월에 와서는 심각한 부진이 연이어 계속되자 트럭 시위까지 열렸을 정도였다. 사실 이는 부진한 성적을 규탄하는 성격도 있었지만 특정 선수를 고집스럽게 기용하는 감독에 대한 항의성이 더 짙었다.[58] 1,2위는 각각 SSG,LG로 순위와 일치한다.[59] 이들 중에는 도박 사건, 우승 실패라는 대형 악재가 겹친 2015년부터 야구를 멀리하고 있다가 팀이 2021년에 반등하자 다시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렇게 돌아온 바로 다음 시즌에 팀이 다시 침체에 빠졌으니 좋게 볼리가 없다.[60] 정작 홍준학 단장은 팬들을 보는 시선이나 운영에서 문제가 있을 뿐이지 티켓값을 유지시키고 포퓰리즘적인 운영을 하는 등 라이트 팬덤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61] 물론 스케치북 검열이라는 병크가 있었으나 굿즈 판매나 굴비즈 마케팅은 잘했다.[62] 선수 개인 인스타그램에 가보면 삼성 유니폼을 입고 대구시민구장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다.[63] 본인의 페이스북에 푸른색 원정 김상수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올리면서 "김상수 유니폼 개시가 새 컬링 유니폼 개시 순간보다 더 설렌다"고(...) 삼밍아웃을 해버렸다.[64] 이후 이승엽의 은퇴식에서도 사회를 맡았었다.[65] 그런데 2017년 9월 5일 한화 이글스의 홈 경기에 초청되어 신진식 감독이 시구를 맡았고 박철우 선수가 시타를 맡았는데, 신진식 감독은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던 반면 박철우 선수는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다(...) 소속팀 삼성화재가 대전 연고팀인 만큼 대전 연고팀끼리의 유대관계 강화를 위해 이뤄진 시구라서 그랬다. 영상[66] 유담도 삼성팬이다.[67] 평소에는 빨간 하트를 남발하지만 원태인의 인스타그램에서만큼은 파란색 하트를 쓴다.[68] 삼성은 그날 연장전 패라는 혈압오르는 경기력을 보였다. 덤으로 그담날과 다다음날 시구는 올림픽 출전한 TK출신인 원래 시구자들이 각각 스케줄경북대학교병원 입원 때문에 나가리행.[69] 영상[70] 사실 원래 지역구는 옆 지역구인 수성구 을인데 21대 총선 때 옆 지역구인 수성구 갑으로 옮겨 당선되었다. 참고로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수성구 을 지역구 의원 출신이자 현직 대구시장홍준표NC 다이노스의 팬이라고 한다.[71] 상술된 내용처럼 이 무렵부터 성적과 상관 없이 야구 경기를 즐기는 팬들이 늘어난 것도 한 몫을 했다.[72]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 시절 이학주의 응원가와 일명 '짭도라도'로 불린 팀 응원가 '승리를 위해'.[73] 2000년대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의 대들보였던 노숙희 놀레벤트 팀장, 2010년대 쌍두마차 중 한 명이었던 이연주 전 치어리더도 대구 출신이다. 현재 팀장인 이수진 치어리더는 구미시 출신.[74] 대구, 경북지역 행사에도 놀레벤트 소속 치어리더들이 많이 참여한다.[75] TK 출신 치어리더들이 타팀으로 이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2016~17년에 블루팅커스로 활동하던 서유림 치어리더가 한화로, 2018~19년에 활동하던 박현영 치어리더가 SSG로 이적한 사례가 있다.[76] 양 팀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수원"과 "삼성"에 대응한다. 실제로 수원에도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영향으로 인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뿐만 아니라 과거 전 연고였던 서울 삼성 썬더스 농구의 팬들이 존재한다.[77] kt가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지만 상대전적은 삼성이 압도우위이다. 작년에는 삼성이 kt에게 압도적으로 썰린 것과는 정반대.[78] K리그1에 존재하는 현대가 더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전북 현대 모터스의 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울산 현대의 모그룹 HD현대(舊 현대중공업그룹), 삼성 라이온즈의 모그룹 삼성그룹과 SSG 랜더스의 모그룹 신세계그룹은 엄연히 다른 기업이지만 나란히 창업자가 똑같고 현재도 기업 총수 간의 친인척 관계(정의선-정몽준, 이재용-정용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79] 구단과 좋은 모양새로 헤어지지 못하고 방출된지라 은퇴식은 치르진 않았다.[80] 은퇴 시점 통산 9개 부문 1위.[81] 구단주 취임 당시는 삼성그룹 부회장이었고 1987년 아버지 이병철의 사망 이후 회장이 된다.[82] 이병철의 넷째 사위이며 이건희와는 매형-처남 관계였다. 자세한 인물 이야기는 범 삼성가 항목 참조.[83] 2000년 초 새천년민주당의 인재 영입 때 입당해 16대 총선에서 수원 팔달 선거구에 출마, 남경필과 겨뤘으나 낙선한 뒤 곧바로 정계에서 은퇴했다.[84] 구단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했다.[85] 성균관대학교 이사 겸임.[86] 중학생이던 1957년에 동인천중을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바 있다. 한국야구사에 기록된 최초의 퍼펙트 게임.[87] 선수 시절에는 국가대표에도 뽑힌 적이 있으나 은퇴 후 한동안 야구계에서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부단장으로 선임됐다. 게다가 부산 출신이라 대구·경북 연고인 삼성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 김삼용이 부단장이 된 건 이건희 회장과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추천했기 때문(김삼용과 천신일은 중, 고교 동문이다.). 시즌 초반부터 저조한 팀 성적을 빌미로 서영무 감독의 작전권을 빼앗아 이충남 조감독에게 이양하는 등 잡음만 일으키다 결국 잘렸다.[88] 1984년 중앙일보로 돌아갔다가 1985년 빙그레 이글스의 초대 단장을 맡았다.[89]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서 18년간 감독을 했으며 해설가로도 유명했던 김계현의 아들.[90] 삼성 라이온즈의 초창기 프런트 중 한 명으로, 선수단 매니저로 프런트 활동을 시작했다.[91] 1999 시즌이 끝나고 취임. 상무보에서 시작해서, 2002년 1월 상무, 2005년 1월에 전무로 승진했고, 2009년 12월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2010년 12월에 용퇴했다.[92] 2006년 신설됐는데, 송삼봉이 부단장에서 단장으로 승진한 후 후임 부단장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93] 삼성 입사 후 처음 발령받은 곳이 삼성 라이온즈였다.[94] 야구인 출신으로는 2대 단장을 맡았던 실업야구 출신 김삼용 단장이 있었다.[95] 사실 이것도 매우 점잖게 말해서 이 정도인거지 올드 삼성 팬덤에게 있어서 저 두 이름은 쌍욕을 반사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라이온즈의 역적 중의 역적으로 취급받는다. 후술하겠지만 삼성 감독들 중 상당수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는데도 정작 이 둘보다 심하게 욕을 먹는 감독은 없다. 이들만큼이나 팀에 악영향을 끼친 김한수박진만은 선수 시절 내내 KBO 올스타급이었고 삼성 소속으로 맹활약했다.[96] 공교롭게도 이 둘은 운영 방침은 완전히 다르지만 1965년생 동갑내기이며, 다른 계열사나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를 해온 전임 단장들과 달리 삼성 라이온즈에 신입사원으로 부임하여 단장의 자리에 오른 인물들이다. 야구단 운영이 엉망진창이었다는 것만 제외하면 인간승리의 표본인 셈이다.[97] 공식적으로는 감독 대행이었지만 삼성 구단 홈페이지의 역대 감독란에서는 정식 감독으로 인정하고 있다.[98] 조창수 감독대행 성적 포함[99] 장효조 감독대행 성적 포함[100] 서정환, 선동열, 김한수, 허삼영, 박진만은 삼성 팬덤에게 상당한 졸장으로 취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다 김성근, 서정환, 선동열은 암흑기 이전 감독이며 승률도 5할 5푼을 찍었는데도 심하게 욕을 먹는다. 이 때문인지 재임 기간 당시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김응용, 류중일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기도 하다. 물론, 저들도 대부분 안현호, 홍준학 전 단장보다는 평가가 좋은데 그 이유는 감독 중 최악으로 평가받는 김한수와 박진만도 선수 시절에는 삼성 소속으로 맹활약했기 때문이다.[101] 사실 이승엽을 발견한 건 우용득 감독이었고, 그런 이승엽을 최정상급 타자로 발전시킨 것도 박흥식 코치와의 합작품.[102] 이때 이승엽-정경배-김태균-김한수의 내야 라인은 당시 최강급으로 평가 받았다.[103]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백인천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백인천의 주 포지션은 외야수(중견수)다. 포수로 뛴 시기는 고등학교 때와 실업 야구 농협 시절, 그리고 도에이 플라이어즈 입단 초창기 때였다.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한 이후에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외야수로 활약했다.[104] 외국인 선수 한 명만 잘 뽑아도 팀 순위가 두세 계단씩 오르내릴 만큼 규모가 작은 한국 야구계에서 막강한 자금력으로 자기 팀의 주축 선수를 빼가는 삼성이 다른 팀 팬들의 입장에서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105] 사실 이만수의 팬들은 대부분 4~50대의 아저씨들이 많고 신세대 삼성 팬들은 이만수에 대해 특별한 감정은 없다. 오히려 2012년 이후 SK에서의 삽질 때문에 이만수를 꺼리는 삼성 팬들이 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만수의 전성기를 본 사람들이 50이 넘어가는 나이가 된지라 더더욱.[106] 2011 시즌 삼성의 1루수는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 정도인데 셋의 평균 타율은 2할 2푼 정도, 그들의 홈런 개수를 모두 더한 것이 2011 시즌 일본 퍼시픽 리그의 이승엽의 홈런 개수와 같을 정도로 막장이었다.[107] 소위 '믿음의 야구'라 하는데, 5회 정도면 선발을 내려 버리는 선 감독과 달리 선발을 최대한 믿고 길게 쓰는 투수 운용으로 인해 불펜의 과부하를 최대한 방지하고 선발들의 책임감을 강화시켜 2011 시즌 삼성의 선발, 불펜의 성적을 모두 크게 향상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108] 일부 팬들은 종신감독 시켜야 한다고까지 했다.[109] 사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이종범까지 위에 언급한 양준혁처럼 은퇴시켜 버렸던것도 안티가 많아지게 된 원인중 하나다.[110] 전년도 한국시리즈 혈투를 벌인 팀이 작년도 한국시리즈 우승팀 4번타자주전 국대 유격수를 사왔다. 그래서 2005-2006년은 사실상 독보적 우승 전력이었다.[111] 박진만 이전까지 세 명은 모두 평생을 아주 오랫동안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종사했으며, 류중일과 허삼영은 대구 사람이기까지 하다. 박진만 역시 인천 야구 레전드 이미지가 강하지만 영광의 현대 시절을 뒤로하고 선동열 시기 삼성에서 몇 년을 뛰며 2005년, 2006년 우승에 공헌하는 등 삼성 선수로써도 슈퍼스타로 불릴 만한 활약을 보여주었다.[112] 그나마 허삼영 정도가 평가가 최악은 아닌 정도이지만, 팀 역사를 통틀어서 낮은 평가를 받는 선동열이나 김성근보다 확실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보기도 힘들다. 나머지 둘은 리그 전체적으로 전문가들이나 팬덤이나 호평하는 여론이 거의 사멸한 상태이며, 단순히 삼성을 넘어서 타 팀 팬덤도 근 몇 년간 KBO 리그에서 상당히 무능했던 감독을 언급할 때 끼워주는 편일 정도로 평가가 좋지 않다.[113] 당시 규정상 전후기 모두 1위 차지하면 한국시리즈 없이 통합 우승이었다. 그 해 준우승은 삼성 제외 팀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롯데 자이언츠.[114] 그러나 1985년과는 달리 통합 우승은 하지 못했고 2위팀간 플레이오프를 해서 이긴 팀과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해야 했다.[115] 이 기록은 팬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기록 중 하나다. 원년팀인 삼미부터 청보 태평양 현대가 한 역사로 묶이는 만큼 12년간 현대 유니콘스가 존재할때 최하위를 한적이 없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삼청태는 모두 최하위를 해봤다. MBC 청룡의 경우에는 전후기리그 시절에 존재한 팀이라, 전기리그 꼴찌(전후기 통합 승률은 꼴찌에서 2등)를 해봤고, 해태 타이거즈는 전후기리그 시절에 꼴찌를 안 했지만, 양대리그 시절 드림리그 꼴찌를 했다.[116] 삼성 스포츠 쪽을 보면 서울 썬더스는 원년부터 꼴찌로 추락했고, 용인 블루밍스는 2019-20 시즌 코로나바이러스에 발이 묶여 최하위, 대전 블루팡스는 2020-21시즌 꼴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2023시즌 최하위로 1부 리그에서 쫓겨났다.[117] 2015년부터 1군 리그에 참가한 KT가 3년연속 10위로 최하위를 가져가준게 그나마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다.[118] 전력이 약한 신생 구단인 NC 다이노스가 1군 리그 참가 첫 시즌인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최하위를 기록하지 않았으나 결국 2018년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면서 삼성이 유일한 정규시즌 최하위 미기록 구단으로 남게 되었다.[119] 2011년 9월 11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000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30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500승을 달성했다. 2021년 9월 4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통산 2700승을 달성하여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120] 그래서 롯까들은 꼴리건에게 맞아 죽기 딱 좋은 시나리오로 마산 구장에서 롯데가 졌거나 홈런 맞았을 때, 상대가 삼성인 경우를 꼽았는데 꽤 많은 공감을 얻었다. 단, 특정 팀 상대 최고 승률은 1982년의 OB 베어스삼미 슈퍼스타즈 상대로 전승을 해서 10할의 승률을 찍었으나, 당시엔 팀간 16경기씩 했다.[121] 참고로 이 기록이 대단한 것이 2016-2023시즌 8개 중 오직 2021시즌만 진출하고 나머지 시즌 모두 하위권이었는데도 아직까지 역대 포스트시즌 진출횟수 1위이다. 참고로 2010년대 중후반부터 전성기를 맞은 두산 베어스가 맹추격하고 있으나 아직 25회로 삼성과 동률이라도 되려면 최소한 4년이 더 걸린다. 그리고 두산 역시 김태형이 나가고 난 뒤에는 고정 가을야구가 애매하다.[122] 2017년까지는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2003년 홈런 213개.)까지 갖고 있었지만 2017년에 SK 와이번스가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서 무려 234개의 홈런을 터뜨리고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 기록을 경신하면서 2위로 밀려나게 됐다.[123] 17회로 리그 최다. KBO는 창단 42년이 되었으므로 2년반에 1번 꼴로 한국시리즈에 오른 셈이다. 게다가 이것도 2010년대 후반부터 말아먹어서 그렇지 2015년까지는 2년 중 한 번 진출 꼴이었다.[124] 같은 기간동안 KIA가 중위권-중하위권이라면 삼성은 하위권으로 분류된다.[125] 실제로 대구와 경북 지방의 '야구팬은 아니지만 굳이 응원하라면 고향 팀인 삼성을 응원하는 사람' 중에서는 매년 10월 말에 지상파에서 삼성 경기를 중계하니까 원래 야구는 10월 말까지 하는 스포츠라고 아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정도였다.[126] 2위는 두산 베어스의 8회.[127] 코시 기준으로만 따져도 7회로 역시 2위다.[128] 당시 삼성 구단에서도 1985년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을 제대로된 우승으로 여기지 않아 선수단에 대한 포상이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계속된 채찍질이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전까지 지나친 부담감으로 구단을 짓누르게 되었다. 물론 이후 2005년 우승 당시 사용한 V3란 구호에서 알 수 있듯 삼성 구단에서도 1985년 통합 우승을 정식 우승의 역사로 여기고 있다.[129]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한국시리즈 3연패를 달성하면서 몇몇 분탕꾼들이 V7 대신 V6(+1)이라는 문구로 1985년 통합 우승을 평가절하 하지만 KBO에서는 정식 우승으로 인정하므로 V7이 맞다. 몇몇 언론들이 이런 기사들로 오보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130] 보통 최고의 한국시리즈로는 최동원의 1984년, 역전 백투백 2002년, 수중 혈투 2004년을 꼽는다. 참고로 3시리즈 모두 삼성이 출전.그리고 두 번 졌다[131]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이 있긴 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132] 개막전과 한국시리즈 만루 홈런을 모두, 그것도 이선희라는 투수가 허용하였다.[133] 이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깬 감독이 2009년 당시 선동열 감독. 별 의미없는 가정이지만 2009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지 않았으면 2015시즌까지 총 19시즌 연속이 된다.[134] 물론 와일드 카드 제도가 생기기 전 KBO에서 유일한 사례. 반대로 1995년에는 해태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4위에 올랐지만 3위인 롯데 자이언츠와 4.5게임차로, 4위와 3위의 승차가 3.5게임 이상 벌어지면 준플레이오프를 하지 않는다는 당시 KBO 규정에 따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1995년 포스트시즌은 3팀으로 치러졌으며 단일 리그(1989~1998, 2001~) 기준으로는 이 또한 KBO에서 유일한 사례.[135] 포스트시즌 최장 진출 기록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2000년대 후반에 강호로 도약한 SK 와이번스가 2007~2012년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과 동시에 한국시리즈 최장 연속 진출까지 기록하고 있었으나 2013년에 귀신같이 몰락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사례와, 암흑기를 벗어나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포스트시즌 단골이 된 롯데 자이언츠도 5년 연속이 전부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롯데 자체적으로는 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지만, 대신 1999년 이후로 한국시리즈에 가장 오래 진출을 못하고 있다.[136] 1993~1998년 시즌의 경우 3위와 4위 승차가 3.5경기 이상이면 4위는 탈락하고 3위가 2위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 중 1995년은 3위인 롯데와 4위인 해태가 4.5게임의 승차였기 때문에 해태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1995년 포스트시즌은 OB, LG, 롯데 이렇게 3개 팀만이 참가하게 되었다.[137] 그러니까 지금 와서 당시 성적 보고 그때가 암흑기였구나 하는 팬들 말고 진짜 그 당시에 삼성 야구를 본 삼성 팬들.[138] 여기에는 선동열의 야구 스타일이 삼성 특유의 장타 위주의 화끈한 빅볼야구 대신 1점 내고 한 점도 안 내주며 최대한 투수진을 쥐어짜내 승리하는 스몰볼야구 스타일인 것도 한 몫 했다. 실제로 선동열이 2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우승했을 당시에도 삼성의 골수팬들에게 호불호가 많이 갈렸고, 이후 2009 가을야구 실패 및 2010 시즌 양준혁 강제 은퇴 및 베테랑 홀대, 한국시리즈 셧아웃 패배로 경질되면서 우승감독임에도 금지어로 불릴 정도로 선동열의 이미지는 삼성팬들에게 매우 좋지 못하다. 오죽하면 삼성의 시스템이 선동열을 우승시켜준거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139] 정작 비슷하게 2000년대 후반 왕조 시기를 경험한 SK는 왕조시기를 구축한 김성근을 경질하고 난 이후 이만수 감독체제(정확히는 감독대행 시절도 포함)에서 한국시리즈 2회 준우승을 기록하였고 김용희 감독체제에서 3년만의 가을야구 진출 성공 및 정경배를 기용하여, 스몰볼 야구 스타일이 아직 남아있던 SK를 빅볼야구 스타일로 자리매김 하는데 기여하여 힐만감독 체제에서 8년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에 등극하는 등, 왕조 시기에 내려와서도 여전한 저력을 보여주었다.[140] NC 다이노스kt wiz와의 맞대결이 아직 없다.[141] 삼성 라이온즈 외에 현대 유니콘스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포스트시즌 대결 전적이 있었지만 현대는 2007년 팀이 해체되었다.[142] 이외에 KIA 타이거즈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도 현대 유니콘스와 대결한 역사가 있으나, 쌍방울 레이더스와 맞붙은 적이 없다.[143] 한미일통합으로는 522세이브다[144] 영동 지역(강릉시강릉고등학교, 속초시설악고등학교)은 지역 고교 팀을 대상으로 연고 구단 및 1차 지명을 할 권한을 갖고 있다. 영서지역은 한화 이글스가 담당한다.[145] 전승준의 경우 2003년 SK 와이번스도 기록한 바 있다. 반면 전패준은 1987년 삼성이 기록한 게 유일하다.[146] 이후 도쿄 야쿠르트의 발렌틴이 경신했다.[147]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삼성은 두산 베어스에게 3회말에 발비노 갈베스, 김진웅, 박동희가 줄줄이 두들겨 맞으면서 무려 12점을 내줬다.[148] 단, 이건 삼성이 기록한 게 아니고 상대팀인 넥센 히어로즈(현재 키움 히어로즈)의 기록. 즉 삼성 타자가 사사구로 출루한 게 11번이라는 뜻. 이때의 B성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서도 B성을 떠올렸다 카더라.[149] 현재 올드 유니폼 데이를 가장 많이 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비롯하여 두산으로 간판을 바꾼 두산 베어스도 올드 유니폼 행사를 자주 하고 있고, 그리고 여태껏 해태의 무게에 짓눌리던 KIA 타이거즈도 최근에 한 차례 열었던 바 있다. 어른의 사정에 의해 올드 유니폼 데이 따위는 꿈도 못 꾸는 한화 이글스조차 2012년 들어 올드 유니폼 데이를 열었다.[150] 이 역사의 종결자는 2005~2006 시즌 현대 유니콘스 소속이었던 미키 캘러웨이가 있다. 2005년 대 삼성전 4승 0패 방어율 1.73/06년 대 삼성전 3승 0패 방어율 1.19. 삼성을 상대로 단 한번도 진적이 없으며 이 시절을 기억하는 삼성 팬들은 캘러웨이를 금지어 취급할 정도다. 전 두산 베어스, kt wiz 소속 더스틴 니퍼트도 삼성 상대로 극강의 모습을 보여 팬들이 두려움을 넘어서 경외의 감정을 가질 때도 있었다. 그나마 니퍼트는 한국시리즈에서 이겨 보기라도 했지만 삼성 공식 페이스북에서 박해민 삼행시로 '해로운 미국인 니퍼트'가 선발되는 등 드립소재로도 많이 써먹는 편.[151] 이게 삼성의 전력 분석 시스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분석 외에도 자신의 팀 선수에 맞춰 상대방 선수의 공략점을 분석을 하는 것의 비중이 큰데 그 때문에 맞춤 데이터가 적은 선수의 경우 쉽게 공략하지 못한다는 것. 그동안의 결과를 보면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모양[152] 물론 에이스들도 날 잡으면 털긴했다. 에이스도 사람이다.[153]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4년 동안 활동하면서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년까지 총 6번의 우승을 함께했다. 현재는 현역에서 은퇴하여 치어리더 팀장으로 있다.[154] 실제로 각 구단에서 응원단은 외부 이벤트기업과 계약하여 SSAT는 드립으로 봐도 된다.[155] 현재는 V-리그 여자배구단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 중이다.[156] 한화도 2018년에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바꿨으나 주황색도 엄연한 홈 유니폼이다.[157] 최근에는 타 대학으로 진학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그 예가 조무근.[158] 박해민은 서울 토박이로 영중초, 양천중, 신일고, 한양대학교를 거쳐서 전부 서울에서 학업을 마쳤다. 대학리그에서 우수타자 상을 받았다.[159] 의외로 이 계보는 90년대 해외파 선수로 삼성 역사상 당당히 흑역사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최창양으로부터 시작한다. 최창양은 필라델피아 산하 마이너에서 선수생활을 했었다.[160] 왕조 당시만 해도 김상수 한 명 사인 받았으면 다 받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반면 투수조의 경우에는 예나 지금이나 팬서비스는 확실하다.[161] 김상수가 지속된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부상으로 드러누웠다.[162] 그러나 2017년 이원석을 저렴한 가격에 잡고 저비용 고효율 FA라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163] 삼성 오자마자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투수를 접고 타자를 시작했다.[164] 그 제물이 바로 삼성이었다.[165] 이 역시 삼성.[166] 이를 이룬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167] 사실 구단 자체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가 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계기로 구단 역사에 포함시킨것.[168] 2020년이 돼서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시작한 kt는 그렇다 치더라도, NC는 역사에 비해 포스트시즌 진출이 상당히 많은 편이였음에도 삼성과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에서 맞대결을 펼친 적이 없다. 이는 NC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삼성의 암흑기와 묘하게 겹치기 때문인데, 삼성과 NC가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14시즌과 15시즌에도 직접 맞붙지는 못했으며 나머지 시즌에는 삼성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거나(13,21) NC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거나 (16~17,19~20,23) 둘 다 떨어졌다(18,22).[169] 이건 KIA도 마찬가지라 대구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하지 않는 이상 1루에서 뛰어나올 일은 더 이상 없다.[170] 특별히 잘했던 호남 출신 선수들은 없었다. 유망주라 데려왔더니 망한 경우가 더 많았을 정도.[예시] 2002년 KS 패배 이후 LG 김성근 감독 경질, 2011년 8월 19일 문학 삼성전 9:0 패배 이후 SK 김성근 감독 경질, 2013년 KS 패배 이후 두산 김진욱 감독 경질, 2014년 4월 22일 대구 삼성전 1:8 패배 이후 LG 김기태 감독 사퇴[180], 2016년 10월 8일 문학 삼성과의 최종전 이후 SK 김용희 감독 재계약 불발[181], 2017년 5월 21일 대전 삼성전 8:7 패배 이후 한화 김성근 감독 경질, 2018년 6월 3일 마산 삼성전 8:7 패배 이후 NC 김경문 감독 사퇴, 2021년 5월 9일 대구 삼성전 6:8 패배 이후 롯데 허문회 감독 경질, 2023년 5월 11일 대전 삼성전 4:0 승리 이후 한화 수베로 감독 경질.[172] 아이러니하게도 양준혁 역시 선수 시절 중간에 해태-LG로 트레이드됐다가 돌아오는 등 온갖 산전수전을 겪었고, 은퇴하는 모습도 당시 감독 때문에 사실상 반강제 은퇴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라 그렇게 좋은 결말을 맺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다만 아예 은퇴식조차 안 열어주고 방출시켜버린 이만수와는 달리 은퇴경기라도 성대히 열어줬다.[173] 삼성 구단 창단 후 첫 은퇴식의 주인공이고, 은퇴 후 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오르는 등 그야말로 성골 그 자체의 모습이다.[174] 2003년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불펜 코치로 일하던 이만수에게 삼성에서 코치 제의를 했고, 이에 이만수는 즉시 화이트삭스에 사표를 낸 뒤 미국에 있던 집과 자동차까지 모두 처분하고 비행기 티켓까지 발권해뒀다고 한다. 그런데 돌연 삼성 쪽에서 코치 제의를 없던 일로 하자고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붕 떠버릴 뻔했고, 그나마 이러한 사정을 들은 화이트삭스 구단에서 재계약을 해줘서 다행히 잘 풀렸지 하마터면 삼성 때문에 지도자 경력마저 망칠 뻔했다.[175] 물론 이승엽은 나중에 이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이미지가 어느정도 희석된 덕분에 이 문단에 적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사정이 좋은 편이다.[176] 단 1999년 이전에는 특출나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1994~6년에는 삼성의 556 암흑기와 맞물려 3연패를 당했다. 그 중에서도 1996년 현대와의 경기는 신인 외야수 장정석에게 만루홈런을 맞은데다가 정명원이승엽의 벤치클리어링까지 벌어진 끝에 패배하며 역대 6월 2일 경기 중 가장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177] 2012년 두산과의 막장 경기 끝에 5할 승률을 기록, 2013년 롯데와의 경기에서 8회의 기적 끝에 승리, 2015년 롯데와의 포항 야구장 경기에서 안지만의 150홀드 기록, 2017년 KIA전 최충연의 첫승, 2020년 LG전 원태인의 무실점 투구, 2021년 SSG전 난타전 끝에 김지찬의 공수 맹활약으로 승리 등[178] 고졸 3년, 대졸 2년[179] 물론 평균 신장이 큰 편에 들어가는 수도권 지역과 1~2cm 정도 차이라서 크게 의미는 없다.


[180] 다만 자진사퇴가 공식적으로 수리된 것은 5월 10일이다. 하지만 그 기간동안 조계현 수석코치가 사실상 감독대행 역할을 했으니 삼성이 보낸게 맞다.[181] 후술한 수베로 감독과 함께 유이하게 삼성을 이기고 감독이 교체된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