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규군들의 일상. 대민지원을 나온 게 아니라 자기들이 먹을 걸 직접 기르고 있는 거다.[1] | |
북한 여군 막사의 모습[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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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선 3가지가 필수이다. 돈, 돈, 그리고 더 많은 돈이다.
To carry on war, three things are necessary: money, money, and yet more money.
이탈리아 전쟁 당시 용병대장인 잔 자코모 트리불치오(Gian Giacomo Trivulzio)
조선인민군의 능력과 그들의 열악한 현실을 다룬 문서이다.To carry on war, three things are necessary: money, money, and yet more money.
이탈리아 전쟁 당시 용병대장인 잔 자코모 트리불치오(Gian Giacomo Trivulzio)
2. 설명
김정일 이래 선군정치로 군대에 많은 투자를 하였으나 그 결과는 경제 몰락으로 인한 민생과 군사력 양면의 파탄이었고, 결국 현재는 실전 전투가 거의 불가능한 허울뿐인 군대로 평가를 받고 있다.
수많은 인민과 군인들이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김씨왕조의 고압적인 독재로 사회가 간신히 붕괴되지 않고 있는 마당에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 결과는 어떨지 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직전까지는 북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서민이 불법으로 규정되고 '부업'이라고 불리는 정상적인 시장 경제를 운영하여 생각보다는 잘 사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어디까지나 국가 경제의 밖에 있는 것이고 공식적으로 관리되는 군대는 고난의 행군을 일으킨 시스템 그대로다. 한편 이렇게 잘 산다는 주장도 북한의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우리도 북한 정부와는 다른 존재다', '잘 살 수 있는데 왜 저놈들이 방해하냐', '미국의 제재를 유발한 북한 정권이 나쁘지만 서민들은 견뎌낸다'는 입장에 가깝다. 북한 정권과 주민들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은 윤리적인 차원 이상의 것이다. 이런 걸 이해를 하지 못하면 탈북민이 저런 주장을 해도 아직 세뇌가 덜 풀렸다고 오해하기 쉽다. 맨 처음 영상을 올린 탈북민도 김정은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면서 북한 정권을 아주 싫어하는데, 고향 사람들 중에 살 찐 사람들을 올리기도 했다. #
보통 조선인민군 하면 열병식을 하는 기사 사진이나 뉴스 동영상을 많이 떠올린다. 특히 2020년대에 나온 한국의 K11을 카피한 듯한 복합소총, CZ-805와 AEK-971을 카피한 듯한 신형 돌격소총 및 RIS와 광학장비가 덕지덕지 달린 총기들과 몰리/PALS 시스템이 적용된 장구류를 입고 헬멧에 야간투시경까지 착용하고 있는 선진적인 모습을 보이는 북한군 병사들, 미국의 M1 에이브람스를 연상 시키는 전차인 M-2020, 미 육군이 2010년 초까지 운용하다 현재는 퇴역 시킨 M1128 스트라이커 MGS를 베낀 화력지원 장갑차 등, 이란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듯한 최첨단으로 보이는 현대 무기로 무장하고, 전투기들이 날아다니는 조선인민군 열병식을 보며 조선인민군이 옛날 냉전~1990년대~2000년대 초중반기보다 상당히 강력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외선전용으로 만든 '쇼'에 불과하며 조선인민군의 현실은 시궁창이다. 최근 2021년 1월 열병식만 하더라도 한국군과의 큰 격차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들이 많으며, 현실은 전투기를 날릴 항공유도 없어서 훈련도 전혀 못 하는 신세다. 그 예시 중 하나가 2020년 10월 열병식에서 북한이 야심차게 공개한 디지털 무늬 전투복이다. 디지털 무늬는 한국군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자체 개발을 시작하여 2010년대 초반에 이미 전군 보급을 모두 끝마친 상황인데 북한은 이를 2020년이 되어서야 자랑하듯 처음 공개한 것이며, 그마저도 전군 보급 여부가 불확실하다. 대외 노출 빈도가 높아 가장 신경 써서 투입 시키는 공동경비구역 병력조차 2018년까지 갈색 구형 군복에다가 구형 위장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해당 열병식에서 공개된 3세대 전차 M-2020도 K-1 전차에 압도적 열세인 선군호와 달리 어느 정도의 위협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수준이지 K-2 흑표나 K-1E1, K-1A1이나 K-1A2 상대로는 여전히 상대가 못 된다. 더군다나 북한은 장비 하나 대체하기 어려운 국가지만, 한국은 장비 발전 및 교체 속도와 도입 속도가 북한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이며,[4] 한국 역시 전열화학포 혹은 레일건을 주포로 탑재할 계획인 K-3 전차 등 신형 장비를 계속해서 연구 및 개발하고 있다.[5] 가장 중요한 건 한국은 북한과 달리 예산 싸움이 문제지,[6] 군 장비 하나 바꾼다고 국가 예산이 휘청일 수준 따위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7]
추가로 열병식에 참석하는 군인들은 평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열병식 전용의 훈련만 빡세게 하고 나온다. 다르게 말하자면 군인이라면서 정작 군인에게 진짜 필요한 덕목인 사격술, 정비술, 위장술 같은 실용적인 전투 기술들과는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실용성을 더 중시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열병식의 규모가 더 작고 덜 화려하게 진행하는 편이다. 그나마도 굳이 안 해도 되는 열병식을 소소하게나마 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선배들로부터 내려온 유구한 전통을 존중하는 차원 혹은 자본주의 국가 대다수의 정치 체계가 민주주의인 특성상 국민들에게 자국군의 힘을 퍼레이드 형식으로 과시하려는 목적 정도가 있다.[8] 민주주의 국가들 중 가장 폐쇄성이 짙은 집단이 군대인 만큼, 이러한 퍼레이드를 통해 군인들의 규율적인 모습과 위용을 보임으로써 국방력을 홍보하고 안보불안 등을 해소시켜줄 목적인 셈이다. 그마저도 예산이나 실전성 문제 때문에 최근엔 SNS나 유튜브 등을 이용해 실제 훈련 영상 중 일부를 공개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추세이다.
거기다 좋게 말해서 군대지 탄약도 모자라 보병 사격 훈련을 모의로 하고, 보급이 모자라 가장 핵심인 식량도 배급 받지 못하는 총체적 난국을 보여준다. 북한은 체제 특성상 군대에 모든 국가 역량을 집중하는데도 이 모양이니 북한의 열악한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북한의 경제 사정이 나쁜 탓도 있지만 정치/행정 체계가 부정부패의 절정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9]
탈북자의 증언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수확한 벼를 가지고 정미소에 가면 정미공이 쌀을 빼돌리고, 나머지를 군대에 납품했더니 장교들이 병사들 먹일 쌀을 술로 바꿔 먹는다. 그 나머지 쌀로 밥을 지으면 식사 시간도 안 되어서 고참병들이 어슬렁거리면서 나타나 밥을 다 먹어치우고 가버린다."[출처] 아무런 쓸데없는 체제 선전과 김씨 왕조 우상화, 그리고 핵무기 개발을 비롯한 비대칭 전력 육성에만 거의 국가 예산의 반이나 대부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군대를 지탱하던 경제가 서서히 퇴보하다가 1990년대 공산권 붕괴와 함께 고난의 행군이라는 초대형 재난이 겹치면서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었고, 군대 역시 타 부서에 비해서는 그나마 돌아가는 편이었지만 낙후된 것은 변함이 없었다. 현재 남북 전력의 격차가 매우 커 북한의 전력 중 위협적인 전력은 거의 없다. 흔히들 북한은 잠수함 전력이 강하다고들 하지만[11] 그마저도 노후화가 심각하고 보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북한 잠수함들은 소음 또한 장난 아니라서[12] 대잠초계기나 대한민국 해군의 인천급이나 대구급이면 쉽게 탐지할 수 있다. 천안함 피격 사건도 엔진을 끄고 물에 떠다니기만 하면서 추적을 피하다가 기습한 것이다. 북한이 가진 무기 중 남북의 군사력 격차를 극복하고 전황을 바꿀 정도로 강력한 무기는 핵무기 정도인데, 해당 무기 체계들은 장사정포[13]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대칭 전력이란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장사정포도 문제가 많다. 일단 뭐가 문제냐면 명중률이 심각하게 낮다는 것. 인류가 돌을 들고 던지면서 싸우던 석기 시대부터 총과 대포 등의 무기를 사용하는 현대까지 모든 원거리 무기들의 핵심은 얼마나 멀리 날아가서 피해를 입히느냐가 아니라 노린 곳에 얼마나 정확하게 맞느냐, 즉 명중률이다. 또한 연평도 포격전에서 볼 수 있듯이 불발률도 엄청나게 높다. 즉, 탄약 관리도 시궁창이라는 것.
이런 식으로 전력을 운용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한국군을 정규전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것을 북한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은 개전 시 승리할 수는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대한민국에 최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도록 전략을 짬으로써 대한민국도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려는 억제력[14]을 키우기 위함이다. 그냥 솔직히 까고 말해 자기들이 그동안 벌려놓은 판들 때문에 남측에게 미운 털 박힌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이상 한 번 남측에게 얕보이면 그 배로 돌려받을 걸 잘 아니 그러지 못하도록 발악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테러를 일으키는 것이다.
2013년 6월 8일에 개최된 조국해방전쟁 승전 60돌 경축 열병식 연습 도중 기절해서 실려가는 북한 육군 하전사 |
심지어 위의 영상에서 보듯 그나마 대우가 좋아야 할 평양의 고르고 골라 열병식에 투입됐을 병사마저 제대로 서있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북한보다 훨씬 사정이 나아 건장한 남자들이 많은 있는 외국 의장대나 근위대에서도 열병식, 사열식 등의 행사에서 개인의 건강, 긴장도, 날씨, 복장[15] 등에 따라 장병들이 쓰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제는 다른 국가도 아니고 "우리 군대는 어떤 결점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킹왕짱 군대다!"라고 주장하는 그 북한의 군인이 저런 꼴을 보였으니 체면 제대로 구기게 되었다는 것. 참고로 북한의 열병식 예행 연습은 대놓고 지옥이라고 부를 정도로 강도는 높음에도 불구하고 영양 상태는 극도로 부실하기 때문에 저렇게 쓰러지는 사람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실제로 북한 열병식에 참가하는 인원의 상당수가 영양실조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저 쓰러진 사람이 정상인 것이고 버티고 있는 나머지 군인들이 비정상적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저렇게 기를 쓰고 참는 이유는, 열병식을 무사히 마친 인원은 출세가 보증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해당 병사는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안 좋은 몸을 이끌고 억지로라도 참여했으나 그렇게 절박함에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정도로 가혹하게 혹사 당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저렇게 쓰러진 병사에 대한 처우는 다음 열병식 때는 제외가 전부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처우만 저렇지, 열병식 제외라는 이력이 붙어있으면 진급에 큰 불이익을 당한다. 남한의 기수열외의 하위판 수준.
몇몇 정신 빠진 인간들은 "북한군은 깡다구 넘치는데 우리 젊은이들은 군기가 빠졌어!"라고 우기는 경우가 있는데[16] 정작 그 깡다구 넘친다는 북한군의 현황은 아래와 같다.
배급량이 적어요. 규정량이 하루에 800g으로 정해져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공급되는 하루 공급량은 300g에서 400g 정도 공급돼요. 어떤 날은 하루에 300g 공급되기도 했고요.
김 모 씨, 조선인민군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서.
그런데, 실제로 공급되는 하루 공급량은 300g에서 400g 정도 공급돼요. 어떤 날은 하루에 300g 공급되기도 했고요.
김 모 씨, 조선인민군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서.
딱 염장무 한 개라든가 아니면 미역국 같은 거, 멀건 미역국 한 그릇을 주거든요.
기름이고 뭐고 하나도 없습니다. (중략)[17] 딱 한 달만 부대에서 주는 것만 먹으면 영양실조가 옵니다. 바로요. 피부 껍질이 일어나고요.
장세율, 2011년 방영 당시 북한인민해방전선 대표로, 조선인민군 출신 탈북자이다. 유튜브 영상 2분 46초부터 나온다.
막말로 딱 한 달 동안 물만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굳이 군대가 아니어도 북한의 식량 사정이 워낙 막장이라서[18] 군인들은 식량을 못 받아서 굶는 상황이 다반사이다. 말이 좋아서 영양실조이고, 실제로는 아사하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다. 영양실조에 질병이 겹치거나, 열약한 식수난으로 인한 추가 피해가 더해진다면 손을 못 쓸 정도가 된다.기름이고 뭐고 하나도 없습니다. (중략)[17] 딱 한 달만 부대에서 주는 것만 먹으면 영양실조가 옵니다. 바로요. 피부 껍질이 일어나고요.
장세율, 2011년 방영 당시 북한인민해방전선 대표로, 조선인민군 출신 탈북자이다. 유튜브 영상 2분 46초부터 나온다.
거기다 심각한 부대들의 경우는 물도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하는데, 이는 북한의 자연 환경과 북한의 관리 부실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발생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은 산악 지역이 남한보다 많은데다가 강수량이 남한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오는 지역이 많기도 해서 농사가 어렵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라 수도 인프라가 필요한데, 북한의 도시 지역의 수도(水道) 공급망과 식수 공급 시설은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에 만든 것을 100년 가까이 쓰고 있고, 그나마라도 있는 시설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 운영 및 유지가 제대로 되지 않아 시설 노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단순 유지보수가 안 되는 것을 떠나 평양의 상수도 시설 도면까지 분실해 수도 책임자도 어디에 배관이 묻혀있는지 전혀 모를 정도다. 다른 곳도 아니고 북한 수뇌부가 살고 있는 수도 평양마저도 이 모양 이 꼴이라 수도 공급망의 정보 자체가 없다고 할 정도라고 하니까 정말 답이 없다. 그래서 수도 시설의 공급이 수도인 평양에서도 일부 지역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남북통일이 되면 토목공학과, 건축공학과가 대박이 난다" 같은 농담이 마냥 실없는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북한의 도시 개발 상황이 아주 개판 5분 전이라 그저 개보수나 재건 정도의 땜빵으로는 턱도 없고 중장비를 전부 다 끌고 와서 반드시 싸그리 철거해버린 이후 황무지로 만들어서 처음부터 기반을 잡아 재시공을 해야 된다. 자기들이 그나마 제일 신경을 쓰는 도시라던 평양의 상수도 시설 도면까지 분실한 상황이고, 이 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파악하고 조사하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만만치가 않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해당 공기업, 공공기관, 그리고 건설회사 직원들이 북한 건물들을 싸그리 밀고 새로 짓는다고 해도 최소 수십 년은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 상주해야 할 전망이다. 특히 북한의 열악한 도로 사정 상 선박을 통한 건설 물자나 장비들을 들여와야 할 형편이기 때문에 한동안 남포항이나 평양국제공항 등은 수송기나 수만 톤급 대형 선박들의 왕래로 먼지 나도록 분주한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특히 북한은 전체적인 건물들이 매우 낡았고, 그나마 고위층들이 사는 부촌도 최소한 40년 이상인 건물을 외관 리모델링만 겨우 하고 실질적인 개보수는 안 했다. 게다가 저쪽 동네는 건설 기술이 엄청나게 형편 없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다 쓰러져 가거나 페인트 도색도 제대로 못 해서 우중충하고 꾸리꾸리하고 종종 무너지는 사고도 터진다. 심지어 북한 최고의 명문대라는 김일성종합대학부터가 그렇다. 그래서 그 천박한 밑천을 숨기기 위해 건물을 최대한 화려하게 만든답시고 네온사인을 덕지덕지 쳐붙여놨는데, 이게 자기들 딴에는 화려해 보이겠지만 남이 보기에는 어디 동남아 빈민가보다 못한 쌈마이한 데다 촌스러운 디자인일 뿐이다.[19] 혹시 몰라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이거 아프리카 난민 이야기가 아니고 그 잘난 선진강국을 표방하는 위쪽 동네 북한의 이야기다. 그나마 이것도 '혁명의 수도'라는 평양에 국한된 것이고 지방으로 가면 더 열악하기 짝이 없다. 평양 한 곳을 개발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린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지방의 도시나 구역들은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이런 상황이기에 당연히 예방 정비 같은 것은 꿈도 못 꾸고, 아무리 상수도관이 삭아서 중간에서 물이 죄다 새어나가고 녹으로 가득 찬 상태라 해도 그냥 물이 나오는 대로 마셔야 한다. 그나마 상하수도 시설이 있는 평양이 저 정도고 다른 도시들은 수도 시설, 중수도 등의 기초 시설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러다 보니 거의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이 우물물, 강물을 길어 마실 정도이며 내륙이나 산간 지방의 경우에는 빗물이나 흙탕물을 마시거나 모래나 오물, 쓰레기, 배설물 등이 가득 찬 썩은 물도 감사하면서 마셔야 할 판국이다. 영양실조에다 배탈이라도 겹쳤다가는 사망 직전까지 갈 수도 있고, 조금 더 심해서 악명 높은 수인성 전염병인 이질이나 장티푸스, 콜레라라도 유행한다면 높은 확률로 사망할 것이다. 기본적인 자연 환경도 좋지 못한 데다 인재까지 겹치며 일반 주민들의 식수 공급도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군인들에게 배급되는 식수를 비롯한 물 사정이 어떨지는 안 봐도 비디오일 것이다.
이 때문에 쉬리 등의 반공 매체처럼 위엄 있고 악랄한 군대 모습은 이미 머나먼 옛날 얘기가 되었고, 지금은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웃옷을 벗고 농사 짓거나 피곤에 지쳐 땡볕에 널브러져 쿨쿨 잠 자는 북한군 모습[20]은 뼈가 앙상해서 군인들도 굶주린다는 말을 실감한다. 한편 경수로 공사 일로 북한에서 1년 넘게 지내다가 온 일을 만화로 그린 오영진[21]의 만화 <남쪽손님>을 보면 외국인들이 여럿 있는 경수로 공사장 근처에 주둔하여 경비를 서는 북한군 병사들도 하루 종일 농사 짓거나 총을 내팽개치고 낮잠 자는 당나라 군대스러운 모습만 보여서 작가 본인이 황당했다고 할 정도였다. 외국인들이 보든 말든 태평하게 잠을 자던 모습에 다른 외국인들도 "쟤네들 진짜로 군인 맞냐?"며 어이없어했다. 참고로 이게 2000년대 초반의 일화다.
사실 이게 생각보다 심각한 건 군대는 칼로리 소모량이 극심한 젊은이들이 특히나 칼로리 소모량이 더 극심한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칼로리를 충분히 보충해주지 못하면 그냥 산 채로 몸을 깎아내는 것이나 다름없는 자살 행위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차라리 그 젊은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어서 알아서 산업 활동이든 경제 활동이든 문화 활동이든 뭐든 하게 냅두면 젊은이 특유의 높은 생산력으로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을 충분히 낼 수 있는데, 그 생산력이 넘치는 시기에 생산 능력은 바닥이나 다름없는 군대에 붙잡아두고 있으니 멀쩡한 생산력을 바닥에 내다 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나마 북한이 그렇게 잉여짓을 해도 먹고 살 만한 국가라면 일견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해가 안 되면 대한민국을 보면 된다. 이쪽도 징병제 국가라 남성들을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1년 반~2년 정도의 기간 동안 군대에 잡아두느라 국가적 생산성에 피해가 가긴 하지만 타 징병제 국가에 비해 크게 길지 않으며, 일단 어디까지나 남성 한정이라 여성들은 바로 취업전선에 들어갈 수 있고, 남성도 1년 반~2년의 패널티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 구간만 버티고 나면 빠르면 20대 중반, 늦어도 30 내외면 어지간하면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갈 수 있는 반면에, 북한은 비정상적으로 긴 징병 기간 때문에 남한보다 훨씬 더 많은 기간 동안 더 많은 젊은이들을 맨 땅에 꼴아박는 데다 국가 기반도 개판이라는 게 문제다. 인구가 훨씬 적었던 고대~중세 시기의 국가들 중 국가 전력 대다수를 상비군으로 운영하던 국가들은 다수가 바이킹 같은 약탈민족이나 유목민족 정도였고, 대부분의 정주국들은 농업 인력을 따로 계산하던 걸 고려하면[22] 중세 시대보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셈이다(...) 즉, 청년들을 먹여주지도 못하는 주제에 뭘 만들게도 하지 못하게 하는 최악의 자살골 기록을 실시간으로 갱신 중인 것이다.
물론 북한도 바보는 아니라서 이런 문제점은 잘 알기에 저런 열병식 같은 곳에선 체격 좋은 군인들, 출신 성분이 매우 좋은 집안 출신 군인들로 이루어진 평양 인근 부대만 골라서 좋은 옷과 무기를 쥐어주고 오와 열을 맞춰 행군하는 위엄 있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러나 외부인들이 뻔히 보이는 곳에서 군기가 가득 찬 모습이 아닌 저런 모습들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군대의 기강이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는 증거다.
심지어 개중엔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그렇게 "위험하다, 경계해라" 하고 선전질을 해대던 남한에서 온 기술자들 보는데도 그 모양이다. 게다가 남한과 맞닥뜨려져 있는 공동경비구역에서 군복을 '걸치고' 런닝 차림으로 나오던 북한군 병사 둘이 우리나라 사람을 보더니 "남조선 사람이구먼?"이라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기래?" 이러면서 신경도 안 쓰고 갔다. 이에 오영진이나 주변 남측 관계자들은 "일단 주적이라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놀라든지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쟤들 왜 저러냐?"라고 역으로 놀랐고, 나중에 좀 알게 된 북측 공사 관계자에게 조심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그런데요?"라며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서 또 놀라워했다. 덕분에 북한인들은 김씨 일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광신 집단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될 정도.
엄정하게 기강을 세운 모습은 얼핏 보면 정신론으로 해결이 가능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구 일본군이나 조선인민군의 풀어진 모습이 좋은 예시. 오히려 휴식 시간이 제대로 주어지고 보급에 충분히 여유가 있는 군대가 훨씬 임무에 충실하고 사고도 덜 친다. 미군이 6,000억짜리 아이스크림 보급선단 같은 군것질거리에도 돈지랄을 푸짐하게 끼얹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모든 직업들이 다 그렇지만 인간은 일을 하면서 얻게 되는 스트레스를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하려는 욕구가 있기 마련인데, 군인은 국토 방위와 전쟁을 목적으로 만든 무기를 다루는 입장이기 때문에 훨씬 더 엄격한 상하관계와 규율로 인한 스트레스가 엄청나다.[23] 평시 때도 이런데 목숨 위험이 배로 증가하는 전시 때의 군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당연히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도 비례해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병사 개개인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극심한데 상부는 정신론이나 들먹이며 군인들에게 위안거리를 제공하기는커녕 기초적인 배급조차 제대로 안 해줄 경우,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가 전쟁범죄 같은 '더 큰 사고'로 터지기 일쑤다.
일부에선 이게 방심 시키고자 일부러 연기하는 짓이라고 하는데, 탈북자들 증언에 의하면 "그래? 방심 시키려고 쫄쫄 굶주리고 농사일 시키고 잠 자고 그러는 줄 아냐?"라고 냉소한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저런 상황이 너무나 만연하여 일일이 처벌했다면 인민군의 병력은 군대 유지도 못할 정도로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어이없어하기 일쑤다.
그리고 그 놈의 병역비리는 북한에도 만연해 있다. 오히려 남한보다 몇 곱절은 심하다. 당장에 아오지 탄광이나 노동수용소행도 뇌물로 풀려나는 북한에서 병역비리가 없을 리가 없는 것이, 북한은 의무 복무가 10년인 데다가 이 의무 복무마저도 초과하더라도 전역 명령 없으면 언제 전역할지 기약도 없이 무기한 복무하는 게 일상 다반사인 판국이다. 맨날 염장무만 먹다 보니 소금 독 오르거나 이것마저도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굶어 죽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로 근무 환경도 시궁창이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돈 있는 사람들이 자식을 군대에 보내려고 하면 이상한 취급을 할 정도다. 정 보낸다 해도 상황이 몹시 좋은 간부급으로 보내면 모를까 병으로는 절대 안 보낸다.
더더욱 가관인 것은, 간부급으로 보내도 그야말로 땡보직이 아니면 대부분 뇌물을 보내서 제외된다든가 아니면 더 좋은 곳으로 보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떡고물 떨어지는 곳이 아니라면 거들떠도 안 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군 공군 장교 출신의 북한이탈주민 박명호 씨가 일가족이 탈북을 선택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어서 생계가 너무 힘들었던 것도 있었지만[24] 어느덧 큰 아들이 장성해서 인민군에 입대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정말로 인민군에서 10년 복무 기간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현실이 너무 두려워서 아들을 살리기 위해 탈북을 했다. 게다가 본인이 제대군인 출신이었으니 당연히 인민군의 썩어빠지고 부패한 실상을 모를 수가 없었다. 물론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인민군에 입대했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싫었고 기꺼이 가족들을 따라서 다 같이 탈북을 했다.
이러한 심리를 관원들도 알기 때문에 아예 '군 면제를 받고 싶으면 얼마'라는 식으로 뇌물 몇 푼만 쥐어주면 쉽게 군 면제를 받는다. "뇌물 몇 푼 쥐어주고 마느냐, 금쪽 같은 내 아들을 사지로 내모느냐."는 돈이 있는 부모라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사실 북한에서는 아직도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있어서 아들 하나를 딸 여럿보다 더 아끼는 경향이 크다. 북한 쪽 병역회피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남한의 병역비리 문제와 동일선상에서 생각하면 안 된다. 당장 그 조선인민군의 총사령관인 김정일과 김정은은 군대에 안 갔다. 게다가 차라리 면제가 나을 지경의 병역비리도 나오는데 고관대작이 자기 자식을 뜬금없이 장성으로 만든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에게는 누군지도 모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단장으로 부임해오는 것이 일상이다. 최룡해가 이 과정을 거쳐서 조선인민군 차수가 되었다.
적어도 2010년대 초반까지는 정작 일선 병사들(하전사)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취급에 생각보다 불만이 없었다. 폐쇄된 북한 내에서는 외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조선로동당이 가르쳐주는 대로만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군 생활이 비참하고 고달파도 '남조선 놈들은 우리보다도 헐벗고 굶주리는 중'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정신승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 남한의 실상을 전혀 모른 채 자기들보다 못 먹고 못 산다는 조선로동당의 선전에 정말 그런 줄 알고 '그래도 우리는 남조선 것들보다는 상황이 더 낫다'며 자기 위안을 삼았다.
실제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주범들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김현희는 처음 체포되었을 때는 조선로동당에게 교육 받은 대로 남조선은 사람이 살기 힘든 악마들만 득시글한 생지옥이며 당연히 이 악마놈들이 자신을 무자비하게 고문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작전 시작 전에 지급 받은 청산가리 앰플로 자결을 시도하였다가 저지 당해서 미수에 그쳤고, 일단 대화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정리되자 수사관들이 남한 구경을 시켜주었는데 생지옥은커녕 오히려 밤만 되면 어두컴컴한 북한과는 달리[25] 낮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휘황찬란한 조명들이 가득한 서울 시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그동안 속고 살았음을 깨닫고 마음을 돌려서 테러 사건에 대해 모조리 실토한다. 김현희는 하층민도 아니고 상류층 집안 출신이었음에도 남한에 대해 저렇게 오해하고 있었을 정도이니, 일반적인 북한의 서민들이 남한을 어느 정도로 오해하고 있는지는 안 봐도 뻔한 수준이다.
다른 사례로 임수경 방북 사건 당시 임수경이 북한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려고 하자 북한 주민들은 그녀가 귀국하면 남조선 정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고문 당하고 처형 당할 것이라고 여겼는지 돌아가지 말라면서 펑펑 울고 귀국을 말리기까지 했다. 탈북했다가 자의든 타의든 다시 북한으로 돌아온 이들의 최후가 워낙 비참했다 보니, 그런 자기들보다 더 인외마경(이라고 교육 받은 곳)인 남조선은 임수경에게 더하면 덜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은 가혹한 처우를 내릴 거라고 믿어서 그랬던 것이다.
훗날 임수경이 고작 몇 년형만 받았다는 소식이 들리자 충격을 받았고, 나중에 북한 기자들이 임수경의 집을 방문하자 임수경의 부모들이 맞이해준 것을 보고 북한 전역에서 경악했었다. 북한식으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일가족이 멸문지화를 당하고도 남을 사건'인데 부모님이 멀쩡했을 뿐만 아니라[26] 가정 환경조차 부유한 수준이라는 것에 다시 한 번 데꿀멍했다는 소식이다. 실제로 임수경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아니, 남조선이 저렇게 자유로운 나라였다니? 그리고, 감옥에서 글도 쓸 수 있다고? 게다가 정치범을 석방까지 했다고? 이러면 우리 북한보다 훨씬 자유롭잖아?" 라면서 배신감을 느끼고 자유를 위해 탈북한 경우도 있는데, 북한이탈주민 출신의 작가 도명학 씨의 이야기다.
물론 이것도 이제는 옛 이야기이다. 바로 중국이 개방하고 소련이 무너지면서 러시아나 중국으로 벌목 노동자 같은 해외 노동자들로부터 자신들이 그 동안 조선로동당에게 속았음을 알게 되었다. 이들도 철저하게 관리한다지만[27] 빈틈이야 얼마든지 있고, 시간이 지나며 남한에게 개방한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흘러들어온 소식이나 물건들로 남한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파견 근무를 통해 탈북하는 경우가 늘어나자 관련 노동터가 폐쇄되기도 했다.
김정일 시대 때에는 널리 알려져서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고, 김정은 시대에 들어가면 결국 2010년대 중후반에는 중앙에서 경제를 통제하는 것을 거의 포기해 버렸다.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이 조치가 각종 정상회담과 더불어 김정은의 지지를 높였다고 한다. 하지만 자유를 추구하는 풍조가 더 늘어나서 체제 위협을 느낀 김정은이 2020년대부터 양곡판매소를 만들고 곡물을 내다 팔지 못하게 하는 식의 통제를 심히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이에 현금 수입이 부족해진 도시라면 평양까지도 아사자가 생긴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남한과의 경제 격차를 북한인들에게 알려주는데 앞장섰던 건 다름아닌 장마당. 2020년 이전까지는 정부에서 어느 정도 민간 차원에서의 경제 활동을 풀어주었는데, 당연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해 남조선의 문물과 소식들이 거의 대놓고 민간 곳곳으로 유입되고 있는 수준[28]이라 남조선이 자기들보다 헐벗고 굶주린다는 조선로동당의 선전은 정말 두메산골짜기 및 오지에 평생 박혀 사는 경우 아니면 다들 씹고 있으며, 오히려 부모 세대와는 달리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조선로동당으로부터 공식적인 배급을 받아본 경험이 아예 없는 신세대들은 조선로동당으로부터 '은혜[29]'를 받은 기억이 없다 보니 주는 건 없는 주제에 자신들을 억압만 하는 조선로동당에 대한 불만이 상당해진 상태다. 가뜩이나 열악한 환경 탓에 평균 수명이 낮은 북한 사회의 특성 상 세대 교체가 빨리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이 불만 많은 신세대들이 사회 곳곳에 들어차는 순간부터 김정은의 통제 능력에 심각한 악영향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 중 가장 불안한 곳이 총칼을 들고 있는 군대인 셈.
2017년에 일어난, 판문점에서 총격을 맞으며 넘어온 것으로 유명한 오청성 같은 지위 높은 집안 출신조차 한국 드라마를 찾았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이 때부터 시작한 한류 열풍으로 인해 부유한 가족의 신세대들끼리 서울 말투를 사용하는 게 유행이었다는 소식은 덤. 참고로 김정은 시기 이전에는 북한군의 소속이 조선로동당 산하 소속이었으나, 김정은 시기에 개편되어 조선로동당으로부터 독립된 김씨 일가 전용 부서로 재편되었다. 즉 군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뜻.
사실 지구상에 이 정도로 상비군 전력이 기아 상태까지 빠진 나라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 자체도 흔치 않은데[30] 이것도 지정학 덕에 가능한 상황이다. 전세계 어떤 나라와 전쟁해도 질 게 뻔한 대신 국가 전체가 청야 상태라 들어가도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중국[31]이라는 강력한 뒷배로 인해 인접국의 공격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기묘한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것.[32] 무엇보다 북한을 공격할 사유가 가장 넘쳐나는 남한과 특히 이러한 남한을 제어할 수 있는 미국이 재전을 반대하였기 때문에 아직까지 숨이 붙어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특유의 지정학적 입지와 적들이 굳이 때릴 의사가 없어서 지금까지 저런 기괴한 체제가 유지될 수 있던 셈이다.[33]
한편 2020년대에는 조선인민군의 실상이 핵을 감안하더라도 속 빈 강정 수준도 안 된다는 것이 한국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상황이라 2024년 1월 김정은의 전쟁 위협에 북한 전문가들이 '유례 없는 상황'이라며 경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김정은의 발언이 별다른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담이지만, 리영희는 '남·북한 전쟁 능력 비교 연구'라는 논문에서 군사력, 경제력, 국제 환경, 과학기술력, 심지어 정신문화적 범주까지 고려해서 분석한 결과 종합적 전쟁 수행 능력에서는 남한이 북한보다 월등히 우세하다고 평가했다.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무려 36년 전인 1988년 9월에. 참고로 이 말이 나올 당시 남한은 군사독재가 약 반 년 전에 끝난 민주화 극초기에 1인당 GDP가 세계 평균의 1.25배 정도인 중진국에 불과했고,[34] 북한은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어도 경제 붕괴가 아직 겉으로는 드러나기 전이었으며, 세계적으로는 1988 서울 올림픽 개최 직전으로써 아직 냉전의 대립이 잠잠해지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 시절에도 한국은 자신들의 종합적 전쟁 수행 능력이 북한보다 월등히 우세하다고 판단할 수 있던 것이다! #[35] 하물며 한국이 이탈리아와 엇비슷한 강대국의 최소가 된 것과 정반대로 북한이 경제 파탄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최하위권 수준의 극빈국으로 전락한 데다가 양국간 무기 수준, 군대의 질, 국제적 입지 차이도 그때와 비교해도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진 2024년 현재에는 1988년 당시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격이 벌어졌다. 북한도 이를 어떻게든 격차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청년들의 입대 기피도 점차 증가하는 실정이라 청년교양보장법 12조, 41조에도 징병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 있다. 황해북도 대열보충국에서는 2024년 초모 계획 인원의 60%를 겨우 채운 상황이다. #
3. 극심한 식량난 및 빈곤함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빈곤함 문서 참고하십시오.4. 처참한 수송 능력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수송능력 문서 참고하십시오.5. 백두혈통의 슈퍼무기 집착으로 인한 문제점
고난의 행군 이후 Su-27, J-10, JH-7, JF-17 등 차기 전투기 도입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북한 지도부는 위기감을 느끼고 핵무기와 지대지/잠대지 미사일 등 슈퍼무기를 개발한 뒤 자랑하면서 재래식 군종에 대한 투자는 소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전략 슈퍼 무기에 집착하는 것은 상대국의 침공을 억제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 않는다.예시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와 요제프 괴벨스는 슈퍼 보복 무기에 무척 집착했다. 1944년 독일 본토에 대한 공습이 격렬해지기 시작하자 괴벨스는 슈퍼 무기가 조국에 피해를 입힌 앵글로아메리칸과 영국인들에게 보복을 할 것이고 동쪽에서 몰려오는 유대 볼셰비키 몽골로이드들을 저지할 것이라고 선전했고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의 산물이 바로 마우스 전차나 V2 로켓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슈퍼 무기들은 독일을 패배로부터 구출해주지 못했다. 전쟁은 결국 군대와 군대가 맞붙는 전투들로 승패가 결정되는데, 상대국의 전쟁 수행 능력과 의지를 공격하는 전략 신무기에만 집착하며 재래식 전술 무기를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해 독일 국방군 장성들은 이러한 히틀러와 괴벨스를 보면서 상상에 빠져서 헛소리를 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후대 학자들은 '독일은 지나치게 무기체계가 난잡했으며, 만약 독일이 군수체계를 재정비하고 전쟁에 뛰어들었다면 2차 대전에서 승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점칠 정도였다. 실제로 독일의 체급은 당시 세계 3~4위권으로 매우 막강했고, 저렇게 난잡하고 슈퍼 무기에만 집착하는 와중에도 프랑스를 점령하고 영국-소련을 턱 밑까지 위협했을 정도로 막강한 국력을 보유했다. 심지어 미국과 영국 공군에게 전략폭격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되던 1944년에도 독일의 군수 체계는 가을까지 멀쩡히 작동하고 있었으며[36], 독일이 바보 같이 동부전선에서 영끌한 군대를 아르덴 대공세에서 말아먹은 덕에 연합군과 소련군은 1945년 1월 말부터 독일 본토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었다. 즉 슈퍼 전략 무기에 집착한 덕에 독일군은 전술, 전략전 모두 패배했으며 전략적으로 초토화된 상태였지만, 정작 연합국이 독일을 굴복시킬 수 있었던 계기는 연합군의 아르덴 대공세 방어와 소련군의 비스와-오데르 대공세의 성공이라는 전술적 승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역시 모두의 예상과 달리 핵 두 방만 떨궜다고 바로 항복한 건 아니다. 정확하게는 오키나와 전투를 기점으로[37] 그 이전까지 미군이 이미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여 일본의 패전은 기정사실화된 상황임에도[38] 대본영이 항복을 거부하자 미국은 본보기로 히로시마에 핵폭탄 한 발을 투하하여 일본에 경각심과 공포심을 새겨준다. 이에 놀란 소련이 8/8일 선전포고 후 만주 지역으로 밀려들어왔고, 여차하면 만주-한반도 일대를 모두 소련에게 뜯길 염려가 있다고 생각한 미국은 일본의 조기 항복을 종용하기 위해 8/9일 나가사키에 핵무기를 더 투하하여 '우리는 너희가 항복할 때까지 얼마든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보여 일본의 투쟁심을 완전히 꺾어 놓아 8/15일 최종적으로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오해해선 안되는 게, 당시 미국은 오키나와를 차지한 상태라 이미 일본 전역을 타격할 수 있었고 계속해서 공습을 보내면서도 여차하면 상륙전을 준비할 정도로 이미 두 세력간 체급 차이가 높아 일본 대본영의 '1억 총옥쇄'라는 말이[39] 무색하게 항복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한 마디로 정상 국가라면 애저녁에 항복하고 끝냈을 상황인데도 대본영이 끝끝내 항복을 거부하다가 쓸데없이 핵 2방을 더 처맞고[40] 항복을 선언한 것이지, 백중세에서 핵 맞았다고 바로 항복한 게 아니다.
이처럼 전장에서 승패를 결정 짓는 것은 김정은이 집착하는 전략 신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와 장비이다. 하지만 북한은 안 그래도 부족한 예산을 몽땅 슈퍼 무기에 투자하면서 비대칭 전력을 지나치게, 비대하게 늘리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상당한 재래식 전력을 갖추고 있는 한국군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한군이 전장에서 학살 당할 위험만 늘리는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조선인민군의 재래식 전력은 사실상 붕괴되어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41] 김정은은 핵무기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얼핏 설명만으로는 이게 열악한 현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와닿지 않는 독자들이 있을 것인데, 곰곰이 따져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핵과 미사일을 만드는 것도 다 돈이다. 연이은 횡령 끝에 얼마 남지 않은, 나라와 군대 경영해야 할 마지막 돈까지 훨씬 비싸고 재료 들여오기도 힘든 비대칭체계에 올인하니 가뜩이나 빈약한 재래식 전력이 더욱 약화되는 것이다. 게다가 쌀 몇십만 톤 어치에 해당하는 돈을 허공에 내다버림으로써 한 번 시작된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 이어져 가뜩이나 굶주리는 군인 포함 주민들이 더욱 굶주린다는 것이다.
6. 총체적 난국 그 자체인 징병제
6.1. 선발 기준
북한은 전후기 때부터 모병제를 채택했다. 이것을 초모제라고 부르는데, 기본적으로 군에 복무하면 조선로동당 입당 등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했던 건 당시 북한군은 장기 복무에도 불구하고 실제 병력이 30만 명대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1970년대 기준 1,300만여 명[42]의 인구로도 감당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1975년 이후 병력을 늘리면서 복무 기간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모병제를 채택하더라도 징병에 지장이 없었다. 군대를 제대한 전역자들에게 좋은 직장을 배정하고, 배급도 더 많이 준 데다가 조선로동당 입당에 가산점을 주었기 때문이었고, 몸이 멀쩡하면서도 군대에 안 간 것 자체가 겁쟁이나 적대계층 출신 같은 안 좋은 집안이라는 딱지가 붙기 때문에 출세에 지장을 받은 것은 물론, 식량 배급 및 직장 배정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났기 때문에, 출세를 위해서라도 웬만하면 군대를 가려고 했던 것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고난의 행군기 때 더욱 두드러졌는데, 보급이 열악하다고는 해도 군대가 그나마 밥을 챙겨먹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43]그러다가 2000년대에 고난의 행군의 여파를 맞은 세대들이 입대할 연령이 되자, 기준 입대 원칙에 의하면 병역 자원이 모자라게 되었고, 이 때문에 입대 기준을 크게 낮춤과 동시에 징병제로 전환되었다. 잠시 징병제였다가 다시 모병제로 전환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확한 실상은 워낙 폐쇄 국가인 탓에 파악하기 힘들지만 북한 당국이 군 입대를 독려하고 심지어 키가 작아서 군 입대에 적합하지 않은 소년들에게 "군대 가면 큰다."는 거짓말까지 해가며 꼬시기도 했다. 남한에도 군 입대한 키 작은 청년들 보고 장기 복무해서 하사관이 되면 키가 큰다는 거짓말이 있었다. 그래도 한국군은 당연히 1970년대 시절에도 군인들은 최소한의 의식주는 열악했을지언정 항상 보장은 받았다.
남녀 모두 만 17세이면 입대하며 남자는 27세, 여자는 23세까지[44] 복무한다. 즉, 남성은 복무를 10년이나 한다. 그런데 이것도 1990년대 말의 13년에서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들도 자신이 언제 전역할지 모른다. 전역 날짜는 당의 필요와 명령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선군정치'를 운운하나, 가장 민첩하고 활발하게 배우고 익혀야 할 20대를 군에서 허비한다면 북한의 국력 신장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사실 1990년대에 군 복무 기간이 13년으로 연장된 이유로는 이 당시 물가 폭등으로 기존의 안정된 직장들의 실질 급여 수준이 형편이 없을 정도로 떨어지면서 한 달 월급이라고 주는 돈의 가치가 애들 과자값이나 아이스크림 몇 개 살 정도의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이를 당국에서 보충 시킬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그나마 밥은 주는 군대에서 시간을 더 보내라고 짬처리 시킨 궁여지책격인 성격이 강하고, 기존에 복무하던 군인들도 사회에 나가려니 안정적으로 살기는 글렀으니 차라리 군대에 남아서 로동당 입당 같은 출세 기회라도 잡자고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으로는 2010년대를 기점으로 7년으로 줄어든 듯하다. 그런데 최근에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이 늘어났다고 하는 말도 있다. 탈북자들을 통해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2002년 군번 남군들이 2015년에 제대했다. 남성 기준 13년으로 굳혀진 모양. 이는 특수병과에 해당하고 대부분이 복무하는 보병부대는 10년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남자 8년 여자 5년으로 대폭 단축 되었는데 이는 건설 현장과 농촌에 인력을 재배치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웃프게도 오히려 제대군인들이 반발하고 있다나. 보통 입대 10년차에 노동당 입당 추천을 받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입당은커녕 후보당원 자격도 못 얻고 민간인 신분으로 탄광이나 돌격대로 배치 시켜지기 때문. 때문에 강제 제대하게 된 군인들의 반발은 거세고 당연히 배치된 곳에서 사고나 친다. 제대자들끼리 뭉쳐다니며 여자만 쫓아다니거나 보위원 사회안전원까지 두들겨 패서 사실상 이들에게 손을 놓았고 주민들은 비적떼가 들어온마냥 두려움에 떨고 있다.
또한 휴가도 없는 긴 의무 복무 기간 탓에 각종 문제가 발생한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군대에 입대하고 30살이나 되어야 제대하기 때문에 그 동안 전혀 만나지 못해 부모들과 자식들이 완전 남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설명에서부터 누차 강조했지만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탱해야 할 훌륭한 노동력인 20대 젊은이들이 군대에 장기 복무하면 큰 문제다. 남한의 인구는 북한의 약 2배다. 그런데 남한의 복무 기간은 1년 6개월~1년 9개월이고, 북한의 복무 기간은 8년~10년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남한에 비해 노동 생산성 및 국력 신장에 최소 4.5배가량 더 부담을 지는 셈이다. 북한의 경제 상황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거기에 1990년대 말에 모 부대에서 김정일에게 충성 서약을 한다면서 '조국이 통일될 때까지 휴가를 반납하자!'고 했다가 진짜로 전군에 휴가 반납이 강요되어 10년의 복무 기간 동안 단 며칠만 빼고 군대에서 산다. 그래도 군대는 유지하던 시절에는 이 며칠의 휴가에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까지 할 거 다하고 다시 군으로 돌아가기도 했다는 탈북 장교의 증언이 있다.
북한군에는 휴가 제도가 제대로 없으며 있는 경우에도 그 기간이나 횟수도 적다. 탈북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휴가를 줘도 교통이 엉망이라 집에 가지도 못하는 데다가 정작 부대 밖으로 나온들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해서 그냥 반납한다.[45]
거기다 식생활이 해결이 안 되니 중대장이나 소대장 인솔 아래 갯벌에 가서 조개를 캐오든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아오든[46] 어디 가서 농사를 지어오든 해야 하고, 이도 저도 안 되면 민간인을 털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민간인이 술이나 담배를 주고 1개 분대 정도의 군인들을 해결사로 동원도 한다. 최근에는 다시 휴가를 보낸다는 이야기도 들리나, 장병의 복지 차원이 아니라 입을 줄이기 위해 길게 휴가를 보낸다[47]는 이야기가 있다.
최악의 경우는 복무를 끝마치고 나서 '무리배치'라고 해서, 다른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 당해서 노동력을 착취 당해야 하는 경우다. 이 경우 대홍단군 감자 농장이나 탄광 같이 상당히 열악한 환경을 자랑하는 직장에 강제로 배치하므로[48], 고향에서 떨어져 산다. 물론 부잣집은 제대 군인 배치 관련 직원에게 뇌물을 줘서 이런 곳에서 탈출이 가능하다.
북한 내에서 하류층인 동요계층들은 장교는 꿈도 못 꾸고 잘 해봤자 운전병 정도만 가며 건설부대, 대공포병, 해안포병 등에도 많이 간다. 적대계층들은 원래는 군 입대가 불가능했지만, 2000년대부터는 건설부대에 입대할 수 있다.[49] 근데 말이 좋아 건설부대지 하는 짓은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적대계층들은 되도록이면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자원입대해봤자 노동력만 착취 당하지 남는 건 없기 때문에 차라리 그럴 시간에 재래시장에 나가서 장사라도 하거나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살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렇게 부담일 정도로 과다한 청년 인력들을 군대에 붙들고 앉아있으니 반대로 그 인력을 어떻게든 써먹으려 궁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 전역에서 나는 건설사업들을 보면 군부대가 투입 안 된 곳이 없다. 작게는 마을회관부터 시작해서 평양시내 유희 시설, 평양시내 아파트(!), 도로나 철도 공사, 심지어는 세포군에 조성 중인 국영목장조차 군부대가 도맡는 실정이다.
중학교(구 고등중학교)를 마치자마자 대학교에 입학하는 직통생들은 합법적으로 군대를 면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입 기준이 출신성분 1/3, 정치 조직 생활의 평점 1/3, 시험 성적 1/3이라는 참으로 어이없는 구조이며, 안 그래도 적은 대학 정원의 50% 이상은 제대군인과 직장인에게 배분하니 직통생은 전체의 10% 이내에 불과했다. 했다인 이유는 2011년부터 직통생 제도가 완전히 사라지고 모든 대학들이 군 복무를 이행해야만 들어갈 수 있도록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평양 룡성구역에 있는 국방대학만은 군 관련 대학이므로 직통생을 받고 있다.
위의 면제 사례는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루트의 이야기이고, 북한에서 주로 군 면제를 받는 방법은 뇌물이다. 아오지 탄광을 가더라도 뇌물 찌를 돈만 있으면 빠져나올 수 있는 동네다. 징병검사나 징집을 담당하는 관원들이 군면제 가격표를 따로 정한다는 이야기까지 돈다. 관원들도 나라의 봉급보다 뇌물을 바탕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징병제인 몽골군도 한화로 쳐서 약 70만 원의 국방세를 내면 정식으로 면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공식적으로 법에서 정한 것으로 국가 범위에서 직접 받아서 사병 급여 및 국방력 증가 등에 사용하지 북한군처럼 딴 데다 돌려먹지 않는다.
위에서 등장한 이정연의 책 때문에 '북한에서는 고위층일수록 자식을 최전방 민경부대에 보내려 한다'는 식의 인식이 한국에 제법 퍼졌다. 하지만 여타 탈북자들의 증언과 교차검증하면 이것도 가끔씩 윗선에서 '붐'을 조성할 때에나 눈치를 봐서 보내는 척만 하는 것일 뿐, 분위기가 사그라들면 고위층들도 금세 자식을 최전방에서 빼내 후방으로 돌리거나 하는 행태가 일반적이다. 실제로 휴전선 인근에 주둔 중인 부대들은 유사시 한때 세계 제일의 지뢰 매설 지대였던[50] DMZ를 돌파, 한국군 GOP 부대들을 없애거나 전투력을 최대한 상실하도록 해서 2 전선에 있는 기갑부대 및 기계화 부대, 포병부대 등으로 포함되어 있는 북한 인민군 주력 부대들의 진공 루트를 만들어주는, 그야말로 고기방패가 취급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인데, 이런 사실을 잘 아는 고위 간부들이 자기 자식들을 최전방에 보내려고 할 리가 없다. 당연히 평양이나 그 위 지방의 군 부대로 보내거나 아예 면제를 시키는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려고 한다.
이를 남한의 병역비리와 동일선상에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 이 동네는 13년 의무 복무를 기본 베이스로 깔고 들어가는 데다 근무 환경마저 도저히 이게 군대가 맞는지 의문이 들 상황이다.[51] 징병제인 이상 이건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의 아들을 구해내러 뇌물 몇 푼 쥐어주고 면제 시켜 버린다. 북한에서 병역비리는 그냥 높으신 분들이 자식들 빼내려고 안달하는 파렴치한 행각에 불과한 대한민국과는 달리 그야말로 자기 자식의 생사를 가르는 일이다.
2014년 9월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여성도 전부 징병 대상이며, 복무 기간도 남자 11년, 여자 7년으로 조정할 예정이다. 기사. 복무 기간 연장 및 신검 통과 신장을 낮추는 짓거리로도 규정된 병력을 채우지 못했는지 2015년부터 여성 의무 복무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신체검사 기준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북한 특성상 뻔하다.
2015년부터는 남성의 경우에는 특수부대나 경호부대를 제외한 일반 부대로 가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아예 키, 몸무게, 시력 등의 신체검사 기준 자체를 없애기로 하였다. 이렇게 되면 북한군은 사실상 지적장애 1, 2급이나 중증 정신질환자, 손이 없는 경우 등 한국에서는 신체등위 6급을 받을 만한 수준의 중증 질환자 빼고는 전부 군대에 가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현재의 북한군은 가뜩이나 가혹행위가 심각한 마당에 저런 도저히 군인은커녕 단체 생활에 전혀 적절치 못한 사람들까지 군대에 넣어버리니 북한군의 가혹행위가 앞으로는 훨씬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15년 12월경 현역 자원들이 너무 부실한 나머지 포병 병과에 한해서 포병 출신 예비역들을 선발해서 배치하기 위한 검사에 돌입하였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기존 학생들만 뽑던 초모생 추가 모집에 돌격대에 가서 일하거나 대학에 입학한 만 23세 이하 청년 모두를 신체검사 대상으로 넣어버리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말이 조금씩 다르다. 가장 낮은 주장은 2010년의 137cm 미만 병역 면제이다. # 2019년까지는 최악을 향해 달려갔으나 외부에서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 마무리되었다고 보는 2003~2004년생이 입대하는 시기부터는 변수가 더 생길 것으로 보인다. 2017년을 기준으로 만 17세, 키 145cm, 몸무게 43kg, 시력 0.6 이상이면 무조건 입대, 그 이하도 부모 동의하에 입대 가능이다. 2017년 9월.
2021년에 키 142cm 이상이면 지나치게 깡마르지 않는 한 체중에 관계 없이 입대 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른 주장에서는 2020년 고난의 행군 여파가 끝나가는 세대가 입대하여 다시 입대 기준을 148cm 미만 병역 면제로 상향 조정했는데, 원래 142cm이 병역 면제였다. # 참고로 2017년 기준 대한민국 초등학교 5학년(만 11세) 남자 어린이 평균신장이 144.6cm에 43kg으로 북한에선 만 11세 체격도 안 되는 허약 체질 왜소 체격을 군인으로 입대 시키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부모들은 돈을 써서 가짜 병을 만들고, 뇌물을 주면서 몸이 건강하지 못해 군대에 못 간다는 진단서를 만들어서 자식들의 입대를 피하게 하거나 이도 안 되면 비교적 식량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부대로 보내려 한다. 2017년 기준으로 북한 장교(소좌급) 월급은 약 8,500원(미화로 약 1달러) 정도로 적은데, 경제난으로 인해 배급까지 끊어져서 군대에 지급된 여러 비품, 부대에 제공된 식량, 기름 등을 몰래 팔아먹는다. 북한군은 말단부터 장교까지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어서 기강해이까지 점점 심해지고 있다. 2017년 10월.
더 충격적인 것은 북한의 징병제는 이미 1970년대부터 막장 그 자체였다는 말도 있다. 1977년 1월 16일 북한의 식량난[52]을 견디지 못하고 귀순한 이석모(李錫毛, 1959~) 이등병[53]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직후인 1976년 9월부터 징집 연령을 18세에서 16세로 낮춰서 키 150cm, 체중 45kg[54]의 어린 소년들까지 강제로 징집해가기도 했다. # 다만 이 당시에는 그 만큼 남북간 긴장국면이 최고조였기 때문에 1960년대에 비하면 좀 빡세게 징병을 했던 감이 있었으며 1980년대 후반 즈음에는 사회적 불이익에도 일부러 군대를 안 가려는 청년들이 늘어서 북한군이 골머리를 앓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바를 생각하면, 남한에서 공안정국을 조성하듯이 북한에서도 긴장국면이 조성되냐 평화 모드냐에 따라서 분위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4년 봄 기준 결핵과 간염 등 질병을 진단 받거나 병원에 뇌물을 주고 위조한 질병진단서를 통해 병역을 면제 받은 청년들이 부모의 지위와 관계 없이 산골의 농촌으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2021년 국가정보원의 국회 정보위 업무 보고에 따르면 북한의 군 복무 기간은 남성 13년, 여성 8년에서 남성 7~8년, 여성 5년으로 단축되었다. #
부유층 집안들의 병역기피도 증가하여 돈도 힘도 없는 집안의 고등중학교(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졸업생들만 군대에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 링크에서 신의주시의 한 고등중학교 졸업생(2024년 기준 17세)이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군 복무 기간이 2년도 안 된다는 것을 안다. 21세기인데 우리는 구석기 시대에 사는 느낌이 든다."고 언급한 것이 나온다.
북한의 여군 입대는 지원제인 상황이나, 코로나 이후 개인 경제 활동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며 민생이 어려워짐에 따라 차라리 군대가 낫다는 생각 때문에 여군에 입대하는 여성들도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아시아프레스 추산 2010~2015년 사이에는 여자 고급중학교 졸업생 중에서 군대에 가는 사람이 대략 3분의 1 정도였고, 2014년 장교 출신 탈북자를 인터뷰했더니 여성 병력이 전체 병력의 1/3 수준이었다. 2024년 3~4월 기준으로는 이보다 더 심해져 양강도와 함경북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졸업생 10명 중 6명이 입대할 정도다.
사실 이는 북한에서도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 때문에, 남성 군 복무기간을 늘려도 인력이 부족하여 여군까지 강제로 동원해야 하는 상황의 여파도 크다. 이 여군들 역시 군복무 기간 동안 사격 훈련보다 건설 공사에 더 많이 투입된다. #1, #2
6.2. 군종별 대우
북한에선 고등중학교 마지막 학년 졸업 이전부터 군대를 가기 시작하는데, 입영 장정들의 입대 순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우가 좋은 부대 순으로 뽑혀간다. 어느 군대나 소속에 따라 특정한 대우는 있지만, 북한은 선군정치로 인해 현대 국가에선 민간 부분이 담당해야 할 영역까지 흡수해 버린 고로 군종 자체가 일종의 계급적인 제도 구조가 되어 버렸다.순서 및 출신 성분, 각 부대들의 특징 및 장점은 이러하다.
- 출신 성분을 따지며 특별 대우를 받는 부류
- 호위부대: 김정은을 직접 호위하는 부대이니 처우는 가장 좋으며,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직속 호위병이 되면 말 그대로 출세한 거다. 계급도 전원 군관으로, 하전사나 사관은 없다. 키 180cm 이상인 군인들이 대부분 호위부대가 된다. 김정은을 보호하는 업무를 담당하므로 매일같이 무술과 사격을 훈련한다. 식량 보급도 멀쩡히 이루어지는 건 기본. 평양 내 건설 노역에 참여할 가능성도 희박한데 호위부대가 불만을 가지면 뒷감당이 안 될 게 뻔하고, 건설부대를 감시할 인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사정이 계속 악화되면서 지방에 있는 호위부대는 타 부대와 다를 바 없이 열악해졌다는 증언이 있다. #
- 정찰총국: 대남공작, 테러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라 대우가 매우 좋다. 특히 정찰총국 소속 정보전사들은 미혼임에도 해외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특혜와 권리가 주어진다. 참고로 북한은 탈북을 방지하기 위해 유학생, 노동자의 경우를 제외하면 가족을 인질로 잡고 기혼자인 북한 주민만 해외로 이동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 그런데 정찰총국 소속 해커들은 미혼이어도 해외 이동의 자유가 '비교적' 보장되어있다는 건 북한 내부에서는 엄청난 특혜이며 북한 정권에서도 그들을 매우 신임한다는 증거이다.
- 항공군 전투조종사 및 예하 부대 근무자: 이들은 전투기를 도입하고 운용하는 비용만큼 특수부대 이상의 고위 군관 대접을 해주어야 하며, 또한 불만이 쌓여 훈련 도중 이웅평 상위나 이철수 상위처럼 탈북하는 사태를 줄이고자 출신 성분과 가족 유무가 매우 중요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전투기 띄울 여력조차 없을 뿐더러 둔전을 해야 할 정도로 식량 보급도 열악하니 직렬과 계급은 그저 장식일 뿐. 물론 공군이 부실하거나 거의 없다시피 하는 타 국가에서 기술 지원이나 용병 일로 외화벌이를 할 수도 있기에 아직은 출신 성분을 따지는 편이다. 또한 공군의 핵심 전력인 항공관제/통제 병과와 전투기/통신 관련 정비 병과들은 조종사보다야 못하지만 전략군 못지 않게 중요도가 높으므로 그래도 출신 성분은 좋은 편이다. 반항공군은 이 부류에 포함하지 않는다.
- 전략군: 비대칭 전력의 핵심이므로 좋은 대우를 받는다. 연구원 같은 고급 인력이라면 대우가 매우 좋다.
- 국가의 지원보다는 주로 뇌물 등으로 먹고 사는 부류
- 국경수비대: 중국 및 러시아 국경을 지키며 탈북자나 상인들에게 뇌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 인기가 많아졌다. 여기서 정치장교를 하게 되면 꽤 짭잘하게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보다 못한 북한 정권은 코로나 시국에는 폭풍군단이라는 특수부대가 국경을 지키게 하였으나, 이들마저 중국의 화려한 불빛과 뇌물이라는 좋은 경제적 기회에 동화되어 국경수비대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 이만갑에 따르면 근무도 다른 부대에 비하면 한적한데 국경 감시가 전부이다 보니 졸거나 여가를 하면서 시간을 떼울 수 있다는 것도 메리트. 지역 주민과의 관계도 원만하다고 하는데 지역 주민들에게 뇌물을 받는 대가로 밀수를 눈 감아줄 뿐더러 10년 넘게 같이 지내다 보니 거의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 보위국: 과거에 비해 메리트가 떨어졌으나 뇌물을 받아먹을 건덕지가 남아있어서 여전히 상위권. 여기에 반대로 북한 내부의 규정을 어긴 동요계층 상대로도 처벌을 무기 삼아 대량의 벌금을 먹여 일부를 수입으로 쓰는 건 덤이다.
- 어느 정도 메리트가 좀 되는 부류
- 해군: 순위만 봐선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위로는 뇌물만 준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들이 아니어서 해군만 되어도 대우는 타 군들보다 넘사벽으로 좋다. 군복도 멋있고 질도 좋은 데다 비교적 넉넉하게 지급되고, 대부분 기술직이라 고생도 덜 해서 입대 시즌에는 돈과 권력 있는 이들이 자식을 해군에 배치해달라고 청탁 넣는 모습이 흔할 정도다. 다만 서해안 해군보다는 동해안 해군에 넣어달라는 청탁이 대부분이다. 서해안 해군은 남한과 대치하니 동해안 해군보다는 비선호되는 편이다.[55] 이는 공산권 국가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는데, 종주국인 소련에서 해군을 혁명의 선봉으로 프로파간다적 측면에서 꽤 우대한 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당연히 육상보단 함정 근무자가 대우가 훨씬 좋고, 특히 잠수함 근무자는 상기 언급한 부대원들 못잖게 대우가 정말 좋다. 게다가 SLBM 관련 보직은 전략군 수준의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북한의 바다를 이들이 담당하기에 식량이 적게 보급되어도 직접 혹은 중국 어선들로부터 틈틈이 받아낼 수 있기에 비참함이 덜하지만 직접 바다로 나가 그물질을 하다 스크류가 고장 나고 식량이 떨어지면 말 그대로 누군가가 발견할 때까지 바다 위에서 물고기로 연명하거나 굶어죽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배 위에서 굶어죽어 표류하면 일본까지 흘러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에서 이런 게 많이 발견되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 민경부대: 이 또한 남쪽의 주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대내외적으로 와해되는 걸 줄이기 위해 출신 성분을 해군과 비슷한 수준으로 뽑는다. 대우도 타 부대에 비해선 좋은데 민경대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미약하지만 쌀밥이 배급될 정도이다. 하지만 결국 보급이 부족한 건 다를 바가 없어서 농번기 GOP 초소에 있다 보면 이들의 둔전 장면을 볼 수 있다.
- 특수부대: 강냉이를 포함한 이런저런 죽이라도 꼬박꼬박 주던 것도 옛말이고 체제 수호 최전선 일꾼인 보위부도 보급이 끊기는 마당에 20만 특수부대를 먹여 살릴 능력이 당연히 없다. 그나마 특수부대라고 배급은 나오지만 배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훈련이니 뭐니 핑계로 주변 민가를 약탈해먹는 골칫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로 북한 평양 여성들에게 최악의 신랑감이 특수부대 군관이다. 특수부대들은 보통 빽 없어서 발령 나는 곳이라 촌구석에 처박혀 살아야되는 데다가 환경이 안 좋으니 성질이 더러워져서 가정에서도 마누라 두들겨 팬다고.
- 운전병: 북한에서 운전 면허를 따려면 단순히 운전뿐 아니라 차량 관리, 정비, 수리를 위한 부품 조달, 연료 조달에 이르기까지 해당 차량에 대한 모든 것을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 이 때문에 전역 후 운전기사가 되는데,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국영 교통망이 마비된 틈을 타 흔히 써비차(service car)라 불리는 트럭이나 승합차를 개조해 승객과 화물을 나르는 차량으로 운수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돈을 짭짤하게 벌기 때문인지 인기가 좋은 편이다. 과거엔 운전병을 비전투 특기란 이유에서인지 군에선 천대하나 전역 후 처지가 역전되는 신분이었는데, 오청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요즘은 군에서도 인기가 올라갔는지 고위층 자녀들도 많이 배치된다.
- 기행부대: 서류 조작이나 군수물자 횡령 등으로 그나마 좀 떼먹을 수 있고, 설령 똑같이 굶더라도 육상 전투부대와 달리 몸이라도 편하고 사고로 죽고 다칠 가능성이 적다는 장점도 있다.
- 탱크부대·항공부대: 연유나 배터리 등 떼먹을 수단이 조금 있다.
- 조리병: 급양체계가 제대로 되어있지는 않겠지만 주린 배는 조금 더 채워서 나온다. 과거 국군도 조리병이 인기 보직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부대원들이 아껴가며 쓰고 먹은 온수와 식료품을 맘껏 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그나마 명목상 사람 취급은 받는 분류
- 최하층이 가는 부류
7. 세계 최악의 병영부조리
흔히 알려진 오해 중 하나가 북한은 친일파 청산을 적극적으로 행해서 친일파들이 씨가 마른 반면에 남한은 한반도의 사정에 어두웠던 미군정이 친일파들을 요직에 기용해서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 되었다는 것인데, 진실은 양쪽 모두 친일파 청산에 소극적이었다. 이런 오해가 빚어진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친일파 청산이 매우 조용하게(?) 이루어진 남한과는 달리 북한은 친일파로 알려진 이들을 공개적으로 자아비판을 시키는 등 친일파를 혹독하게 청산하고 있다는 공개적인 '쇼'를 잘 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숙청'된 친일파들은 대부분 재산이나 지지 기반이 미약한 소위 '만만한' 친일파들만 골라서 공개적으로 조졌고, 좀 세가 있는 친일파들은 오히려 여러 정치인들이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몰래 애를 썼다.[56]실제로 통념과는 달리 북한 정권이 수립되자마자 김일성이 뿅 하고 최고존엄의 자리에 오른 건 아니며, 오히려 초기의 북한은 여러 세력들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공정성을 유지하는 매우 건전한 민주주의 국가[57]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김일성이 자신의 독재를 공고히 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지지 기반 확보를 위하여 돈 많고 능력 있는 친일파들에게 충성 맹세만 받으면 거리낌 없이 자기 사람으로 받아들여줬다. 당장 김정은의 친모인 고용희도 친일파 집안 출신이다.[58] 남한의 경우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친일 청산을 주도한 반민특위를 해체시키고 반공을 내세우며 친일파 엘리트와 손을 잡았지만, 그렇다고 이승만 본인이 친일적인 성향은 절대로 아니었다.[59] 오히려 북한이 이미 여러 요직들을 꿰찬 친일파 출신들의 과거를 쉬쉬해줘서 신분 세탁에 크게 일조했다.[60]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 과정에서 구 일본군 출신 친일파 인사들이 북한군에 대거 유입되었고 이들로 인하여 북한군은 일본군식 병영부조리가 제대로 뿌리 박았다. 세계사에서 병영부조리의 대명사격이었던 일본 제국 시절 일본군의 악폐습들은 1948년 창군 직후에 일본군(일본군의 산하인 만주군과 관동군 포함) 육군에 복무한 경력이 있는 자들이 대거 유입된 남한 군대와 구 일본군의 사실상의 후신인 자위대에도 어느 정도 남아있긴 하지만 조선인민군은 아예 일본 제국군의 직계 후신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더 악화된 병영부조리를 가지고 있다.
실제 유출된 영상(28초, 1분 37초, 3분 58초, 6분 37초) 6분 37초에 나온 피해자는 복장으로 보아 민간인으로 보이는데 그 나치 독일마저도 적국이나 식민지, 점령지 민간인, 정치범에겐 자비가 없을지언정 멀쩡한 자국 민간인을 상대로는 저렇게 대놓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나치 독일군 등의 군국주의 군대들은 막 나가는 인간 말종이거나 1945년 당시 활동한 독일군의 야전헌병대, 그라이프 코만도(즉결처분부대) 등 제멋대로 아군과 민간인을 처벌하는 임무를 맡는 군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군인들은 자신의 최고 지도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일반 국민들을 자기들보다 먼저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런데 북한군은 그것의 반대라서 최고 지도자에게 충성하든 말든 자기들의 착취 수단으로 여긴다. 탐사보도 세븐에서 찍힌 영상, 아시아프레스 2023년 7월 보도 참조. 북중 접경지대에서 촬영되었다. 북한군 하급병사 학대 영상.
북한군에도 병영부조리가 있는데, 이들은 일본군식으로 양성한 인재들이 합류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일본군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았다. 그리고 똑같은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 국군은 미흡해도 일본군의 영향을 없애려 노력하는 반면,[61] 이놈들은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고 오히려 국군이나 일본군 따위는 비교도 못 할 만큼 더 막장으로 바뀌어간다. #, #, #, #, #
북한의 경우, 북한 당국부터가 최고 존엄이라고 칭하는 김일성 일가 주도의 체제를 지키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에 정치, 사회, 문화(종교 포함) 중 최소 한 가지 이상이 문제가 있는 나라 및 파탄국가가 아닌 타국에서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비인권적인 요소가 강하여 퇴출되거나 시대의 변화에 도태 되어가는 제도 및 관습만 도입하여 자기들 입맛에 맞게 개악(改惡) 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자기들이 겪는 막장 테크에 입을 싹 씻고 "남조선은 인권 상황이 가장 열악한 곳이고 미제의 식민지라서 미제놈들의 도움이 없으면 남조선 괴뢰군은 우리가 공격하면 박살 날 것이다."라고는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북한은 인권 상황이 가장 열악한 곳이고 중국의 식민지라서 중국놈들의 도움이 없으면 북한 괴뢰군은 우리가 공격하면 박살 날 것이다.'에 더 가깝다.
물론 창군 초기에는 평등한 인민의 군대를 반드시 만들겠다면서 말만 그런 보여주기 식이지만 간부와 병사가 함께 밥을 먹고 정치 지도원이 불합리한 지휘 체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김일성의 만주에서 했다는 빨치산 활동에 근원을 둔 평등한 게릴라 부대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차원이었다. 한때 국군의 병영부조리를 지적한다고 북한군의 '장점'을 쓴 글이 있는데, 그 장점이라는 게 이 시절의 그 말을 그대로 믿거나 미화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당시 한반도는 일본식 군사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상황이었고, 6.25 전쟁 발발 직후 인민유격대 대원을 모집할 시기 일제강점기에 배운 그대로 제복에 각반 차림으로 합류했더니 "준비를 잘했다."고 칭찬 받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김일성 또한 빨치산 노릇을 하다 일본군에 쫓겨 소련의 극동여단으로 도망가서 이전의 교리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소련식 군사훈련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김일성이 빨치산 노릇을 했던 것은 해방 시점에서는 수십 년 전이었고, 김일성도 이미 새롭게 교육을 받은 데다, 김일성의 빨치산 그룹은 한 줌의 숫자에 불과했으니 빨치산 전통을 계승한다는 선전은 정말로 거짓에 불과한 허풍이었고, 북한군은 일본식 군사 문화의 잔재와 소련식 위계질서가 섞였지만 자기 자신들만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이게 바로 항일 빨치산 전통입네!"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사실 병영부조리는 다른 군대에 있어서도 유해하지만, 빨치산에는 더더욱 치명적이다. 자기들 근거지 주변 지역 사람들을 죽이면 더 이상 물자 구할 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빨치산이 아무리 잘 나도 주변 주민들 지지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하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어제까지 빨치산이 좋았다 해도 적으로 돌아설 것이고 국군이 토벌하러 올 때 협조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그런 학대와 구타에 환멸을 느껴 탈영하는 빨치산이 그것도 국군에 투항하는 자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자는 자기들끼리 있던 곳에 대해 지리 정보는 빠삭하게 다 아는데 만약 국군에게 길 알려주고 국군이 그 길 따라 토벌하러 오면 게임 끝이다.
실제로 초창기부터 북한군의 문화는 빨치산 게릴라 문화와는 크게 달랐다는 증언이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중국인들과 함께 동북항일연군, 모택동의 팔로군 소속으로 중일전쟁, 국공내전에서 싸웠던 조선인들이 해방이후 북에 들어와서 조선인민군 소속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사례[62]가 상당한데 이들은 대부분 상하 위계가 지나치게 완고한 북한군에서는 생활 못하겠다고 하면서 중국으로 돌아갔다. 인민해방군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당시 중국군은 계급이 없는 군대였다. 관련 내용은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으로 유명한 김학철 씨의 책에 이들에 관한 내용이 있다.
어느 탈북자가 쓴 북한군 병영부조리에 따르면 뒷배경 없는 사람이 군에 입대하면 격오지로 배치하며 신병이 전입하면 선임들에게 술이나 먹을 것, 중국산 담배 등을 상납해야 하는데 만일 그러지 못하면 선임에게 제대로 찍혀서 사올 때까지 구타를 당한다고 한다. 그러다 정 나오지 않으면 도둑질을 시키며 농가 쪽에서 음식을 훔쳐오게 하거나 하루 12시간 말뚝 근무에 가장 더럽고 위험한 작업은 모조리 떠넘긴다고. 만일 조금의 불만이라도 가지면 "위대한 장군님을 호위하는 군 생활을 하면서 반항을 한다."고 역적죄로도 몰아가기도 한다.
오죽하면 구타를 비롯한 병영부조리가 심각해서, 2015년 6월에는 구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함흥에서 탈영해 탈북한 사례도 나왔다. 다른 사례로 한 여군 출신 탈북자가 강연에서 증언한 군대 일과에서는, 취침 준비를 할 때 옷가지를 다 펼쳐놓고 수 분 내에 정리를 시키는데 전 인원이 완벽하게 정리해야 취침할 수 있다. 만약 한 명이라도 조금이라도 늦거나, 제 시간 내에 해도 완벽하게 각이 잡히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킨다. 당연하지만 성공하기 전까지 못 잔다. 자기 실수로 다른 사람들을 못 자게 한 사람이 이후 어떤 대접을 받을지는 뻔하며, 특히 위로 다 선임병인 신병이라면 말 그대로 지옥이다.
여군들의 경우에는 탈북민 조사 80%가 성상납 요구를 받은 적 있다고 털어놓았다. 대놓고 매춘부 취급하며 아예 성상납을 통해서 고위 군 간부들에게 눈독을 잘 들여놓으면 보직이 바뀌거나 아니면 비교적 식량 공급이 잘 되는 등 편하게 군 생활하고 전역 후에는 당원이 될 수 있을 것[63]이라면서 좋아하는 여군들도 많다. 어차피 개차반 인생을 살 것이라면 성노예라도 돼서 어느 정도는(북한의 막장 상황에선 이게 한계) 사람답게 사는 게 좋겠지만, 이러다가 군 복무 중 임신이 되면 얄짤없이 임신을 시킨 남자와 같이 생활제대[64] 당하기에 그런 꼴을 안 당하려고 아스피린이나 회충약을 과다 복용해 낙태하려고 하거나 낙태도 못 하고 숨기고 숨기다가 결국 출산해버려 강제 제대되어 버리는 게 비일비재하다. 관련 기사. 이는 실제로 여군 출신 탈북자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북한의 성 문화를 보면 피임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되지 못한 편이다. 북한은 콘돔 등 피임 기구의 생산이 금지되어 있으며 암암리에 가끔 외부로부터 들어오긴 하지만 다른 물건도 구하기 힘든데 콘돔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때문에 북한에서는 원하지 않는 임신이 속출하고 이로 인한 불법 낙태도 있으며 성병까지 확산되었다.
애초에 북한이 평등하라고 나온 공산주의로 시작한 주제에 하라는 평등은 안 하고 사회에서도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 등 계급을 때려박고 국가급으로 군대놀이를 하니 북한 영토 자체가 거대한 병영과 같다. 이것이야 말로 사실상 북한이 주장하는 선군정치의 진짜 목적으로 군을 앞세워 국방력을 강화해 적화통일 운운하는 것은 그냥 체제결속 목적과 김일성 정권 당시부터 유지되고 있는 헌법상 기조를 유지하기를 위한 프로파간다일 뿐이고 실제로는 북한 주민을 한 사람도 빠짐 없이 군대 또는 준군사조직으로 조직하여 상부에서 통제하기 쉽게 만든 것이다.
크게 보면 3가지 계급이 있지만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세부적으로 40~50개가량의 계급이 있고 심하게는 같은 계층끼리도 서로 군대식 서열, 기수, 위계를 구성하는 곳도 있다. 예비군과 민방위를 빼면 2년만 복무하고 나오는 한국도 그 2년새 배운 군대식의 잘못된 위계서열 의식으로 사회 곳곳을 병들게 한 부분이 많은데 북한은 복무 기간도 훨씬 길고 전역해서 사회로 나와봤자 장소만 다르고 총만 안 잡을 뿐 군대처럼 지역 이탈도 마음대로 못 하니 어딜 가도 똥군기를 주고 받아 매우 암울하다. 게다가 남한은 민주화 이후엔 오히려 이러한 똥군기 등을 악습으로 여기고 최대한 줄이도록 노력하고 실제로도 상당히 줄었으나, 북한은 역으로 국가가 이를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김정은이 2년간 군 복무를 하면서 직접 병영부조리를 겪어본 바 있었고, 이게 계기가 되어서 병영부조리가 김정일 시대보다는 좀 줄어들기는 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척결된것도 아니라서 상당수 부대에서는 구타가 난무하다고 하며, 이것이 병역기피의 원인인 것은 여전하다 보니 군 병력 부족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다. 2024년 기준 북한 측에서도 신병훈련소에 구타 행위 근절에 관한 지시문을 하달하기도 했다. #[65]
8. 조직 문제
8.1. 가용 병력
흔히 110만 대군이라고 알려져 있지만[66] 여기에 플러스 마이너스 계산을 해야 한다.- 전투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요인: 정치지도원 및 보위지도원 10만, 평양 방위병력 12만, 건설부대 40만, 국경수비대[67] 10만.
- 예비역: 교도대 170만. 노농적위군 570만, 붉은 청년 근위대 100만. 북한은 남침을 결정한 시점에 교도대를 이미 소집하도록 되어 있다. 즉, 징집 정황이 포착된다면 전면전 직전으로 보면 된다. 교도대 소집이 1~2일 만에 끝나지는 않기에 한국도 예비군 소집, 국민들에게 피난명령, 대북 선제 타격 등의 대응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식의 비상사태 경고는 한국군에게 중무장할 시간적 여유를 준다는 장점도 있다.
이렇듯 얼추 현역 40만에 예비역 70만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마저도 후방부대와 전략 예비대로 빠지는 병력, 그리고 대단히 열악한 보급 사정과 수송 능력, 훈련도를 감안한다면 북한군의 실제 가용 병력은 이보다도 적을 것이라 볼 수 있다.
8.2. 정치장교의 존재
不知三軍之事, 而同三軍之政者, 則軍士惑矣.
부지삼군지사, 이동삼군지정자, 즉군사혹의.
(풀이: 둘째는 삼군의 사정을 모르고 군대의 행정에 간섭하면, 즉시 군사들의 의혹을 살 것이다.)
不知三軍之權, 而同三軍之任, 則軍士疑矣. 三軍旣惑且疑, 則諸侯之難至矣, 是謂亂軍引勝.
부지삼군지권, 이동삼군지임, 즉군사의의. 삼군기혹차의, 즉제후지난지의, 시위난군인승.
(풀이: 셋째는 군주가 군대의 사정을 모르고 군대의 임무에 간섭하면, 즉시 군사들의 의심을 살 것이다. 이처럼 군대에 회의와 의혹이 있다면 즉시 이웃 제후들이 침략하는 난을 겪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이 아군을 혼란하게 만들고 적이 승리하는 원인이 된다.)
손자병법 중 모공(謀攻)
부지삼군지사, 이동삼군지정자, 즉군사혹의.
(풀이: 둘째는 삼군의 사정을 모르고 군대의 행정에 간섭하면, 즉시 군사들의 의혹을 살 것이다.)
不知三軍之權, 而同三軍之任, 則軍士疑矣. 三軍旣惑且疑, 則諸侯之難至矣, 是謂亂軍引勝.
부지삼군지권, 이동삼군지임, 즉군사의의. 삼군기혹차의, 즉제후지난지의, 시위난군인승.
(풀이: 셋째는 군주가 군대의 사정을 모르고 군대의 임무에 간섭하면, 즉시 군사들의 의심을 살 것이다. 이처럼 군대에 회의와 의혹이 있다면 즉시 이웃 제후들이 침략하는 난을 겪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이 아군을 혼란하게 만들고 적이 승리하는 원인이 된다.)
손자병법 중 모공(謀攻)
북한군에는 독특한 정치위원 제도가 있는데 과거 소련에서 도입된 제도입니다. 사회주의권 군대는 본질상 당의 군대이며 당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쿠데타를 일으키려면 최소 사단을 움직여야 하는데 사단을 실례(예)로 든다면 사단장도 정치위원의 당적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중략)쉽게 말하자면 사단장이 "돌격 앞으로"했는데 부하들이 정치위원에 가서 "사단장이 돌격하라고 했는데 합니까?"라고 묻는 식입니다. 회사에 사장이 두 명 있다고 생각해보십쇼. 회사가 제대로 운영이 되겠습니까?
주성하 기자의 발언 #
북한군에는 정치장교가 있으며, 이중의 감시를 위해 보위사령부가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소대, 중대, 대대 등의 각 단위에는 지휘관, 정치지도원, 보위지도원 등 3명의 군관이 있다. 모든 계획은 이 3명이 동의해야 시행할 수 있으며, 3명의 군관이 서로를 감시한다. 경비정 등 작은 단위에는 지휘관, 정치 및 보위지도원으로 2명의 군관이 있다.주성하 기자의 발언 #
원응희 전 보위사령관은 공군사령부의 정치위원(소장) 시절 6개월 넘게 끈질기게 공군사령관을 도청하고 감시해 끝내 그를 반혁명분자로 숙청 시켰다.
정치장교의 문제점은 이미 소련이 장대한 희생을 거쳐서 완벽히 증명했다. 지휘관과 정치장교의 의견이 다르면 무슨 꼴이 나는지 보고 싶다면 영화 집결호의 초반부 전투를 보자. 그나마 혁명 전쟁기에야 정치장교가 무식한 하전사들을 대신해 편지를 써주거나 읽어주는 역할이라도 했지...
이 때문에 북한 내에서도 오극렬을 중심으로 그나마 제정신이 박힌 일부 장군들이 김정일을 설득해서 김일성에게 정치장교 제도를 없애자고 건의했는데, 그때 김정일이 김일성에게 직접 들은 말이 "정치장교들이 없어지면 군대가 누구를 향해 총부리를 들이댈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였다고. 주권국가라는 집단이 자신의 군대를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이 나라가 얼마나 막장인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68]
게다가 얘네들은 정치장교 하나도 아니고 보위부원 하나가 더 있다. 정치장교도 못 믿는 모양. 한국에도 방첩사가 있다지만 방첩사는 어디까지나 기밀 보호 역할이지 지휘관이랑 대놓고 맞먹지는 않는다.[69] 그런데 북한군은 기본적으로 소대 단위에서만 지휘관급이 3명이니 지휘관별로 파벌이 나와 이로 인한 갈등이 심하다. 이정연은 생각보다 합의도 잘 하고 일사천리로 일한다고 했지만, 이것도 잘해봐야 90년대 초중반까지의 이야기고 군대마저 시장 경제와 화폐에 잠식된 90년대 후반 이후로는 그런 거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군대 조직이 외화벌이를 위한 장사, 뇌물 같은 각종 이권 사업에 깊숙이 연루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각자 자기 라인의 하전사를 입당 시키고 자기 라인의 창고장을 임명해야 뭐라도 건질 터인데 그나마도 나눠 먹을 만큼 파이가 풍족하지도 않으니 상호 디스전 정도는 그냥 일상이다. 더욱이 보위부의 존재는 소대원 안의 소위 두더지라 부르는 프락치까지 생기게 했다. 그야말로 전쟁 나면 인원 수십 명의 소대도 지휘관 3명의 지휘를 각각 따로 받아 전투를 벌여야 하니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군사작전이 가능할 리가 없다.
정치장교와 보위부 둘 다 막장이지만, 특히 보위부는 지휘 체계도 완전 다르고 기관의 성격도 군부와는 달라 갈등이 더 큰 편이다. 탈북 간부들도 둘 다 씨X 같지만 그래도 보위부가 더 X 같다고 증언한다.[70] 실제로 별 잘못도 없는데, 앙심을 품은 보위부원들의 모함에 누명을 쓰고 숙청을 겪은 사례가 매우 많다. 북한 외교관 고영환이 쓴 '평양 25시'에서 이 과정을 아주 상세히 묘사한다.
김일성이 이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것과는 달리 정치장교와 보위부원 모두 실제로는 도무지 쓸 데가 없었으니 문제다. 특히 6군단 반란사건은 거꾸로 그 정치장교와 보위부원이 쌍으로 손을 잡고 김씨 정권 전복을 계획했다. 정작 감시 대상인 군단장은 거병을 완강하게 거부하여 정치장교와 보위부원에게 독살 당했다. 자기 아버지가 죽자마자 이런 반란 사건을 맞닥뜨렸음에도 정치장교와 보위부 제도를 없애지 않은 김정일도 참... 더 큰 문제는 이런 놈들이 인민군 110만 명 중 10만 명을[71] 잡아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장교 문서에도 나온 이야기지만, 그럭저럭 60년 이상 유지해 자기 체제 안에서 성장하고 교육 받은 사람들이 사회의 거의 전부를 이루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제정시대에 교육 받고 임관한 군 지휘관을 신뢰하지 못해서 감시역으로 정치장교를 배치하던 초기 소련 시스템에 비교하면 부적절하다. 현 시점에서는 군 지휘관보다 정치장교나 보위부원이 더 정권에 충성스러울 것을 기대해서 감시역으로 배치했다기보다는 상시적 감시 체제의 일환으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봐야 더 적절하다. 만약 누군가 정권에 반기를 들 결심을 하더라도, 지휘와 감시체계가 저 따위로 꼬여 있으면 병력의 동원이 거의 불가능하기도 하고.
다만 체제 내부를 감시하고 관리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나쁘지 않다. 지휘관, 정치지도원, 보위지도원 체제는 위에서 설명된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극도로 엄중한 감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군은 근본적으로 장교직 전원이 군부 소속이고, 정치부와 보위부는 일종의 점조직처럼 운용된다. 우리로 치면 중대장은 군부, 행보관은 보위부, 군의관은 당소속, 이런 식으로 별도로 소속되어 있는 식인데, 이 소속은 공식화되지 않은 기밀이다. 즉, 누가 어느 소속인지 서로 모르는 상황이 기본이고 당연하다. 중대장이야 군부의 공식적인 직함이지만, 군부 내부의 감찰 시스템은 또 별도로 작동한다.
감시체계 또한 이중삼중으로 짜여져 있어서 매우 복잡하다. 공식적인 정치장교, 보위부 소속을 감시하는 역할을 가진 비공식적 정치장교, 보위부가 따로 있는 식이라... 심지어 군 지휘 체계에서는 하급자여도 보위부 내에선 윗급일 수 있다. 그리고 윗급 아랫급을 떠나 반역 행위 시 하급자가 즉결 처분을 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어쨌든 공식적인 직함과는 별개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전원이 반란 일으킬 생각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구조라고 봐야 한다.[72] 이쯤 되면 전쟁을 벌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감시해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게 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우리로서는 잘 된 일이지만, 북한의 처참한 현실이 지금도 계속해서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만큼 도저히 답이 없는 처참한 상황에서 성공한 쿠데타가 없는 것에는 마치 얽히고 섥힌 덩굴, 거미줄 같은 감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8.3. 호위사령부
그냥 김씨조선의 친위대라고 보면 된다. 호위사령부는 중심지 평양과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을 경비하는 것이 목적으로 휘하에 호위총국, 평양경비사령부, 제91수도방어군단, 기타 독립여단들을 두고 무려 12만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최전방의 북한군들은 꿈도 못 꿀 온갖 최신 장비들로 무장하고 있어 북한 진공 시 중공군 참전 가능성을 뺀다면 사실상 한국군이 맞이할 제일 큰 위협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평양 방어에 엄청난 병력을 할애하는 북한과 달리 한국군은 평시 서울 방어에는 그닥 많은 병력을 할애하지 않는다. 수도방위사령부가 군단급 부대이긴 한데 수방사의 전력은 사령관의 계급장과는 영 딴판인 게 상비사단은 하나도 없고 2개의 지역방위사단만 있으며 심지어 군단이면 다 하나씩 있는 포병여단도 수방사에는 없다. 당연히 상비사단을 최소 하나 이상[73] 예하에 둔 육군의 다른 군단들보다 가용 전력이 작을 수밖에 없다. 병력이 하도 없어서 수방사 내 이런저런 작업에는 군사경찰단이 불려다닐 정도. 인근에 위치한 수도군단도 상비사단은 하나뿐이며 제51보병사단은 지역방위사단이다. 전시에는 해병대 제2사단이 배속되긴 하지만 평시에는 경계작전 통제권만 있으며 역시 지역방위사단인 제55보병사단[74]도 작전통제권만 갖고 있다.한국군의 수도 방위 전력이 저 모양인데도 수도 서울은 판문점에서 겨우 60km[75] 떨어진 최전방 도시다. 북한에서 최전방 도시 취급하면서 4군단을 짱박아놓은 해주조차 판문점에서 직선으로 85km 떨어져 있다.
그런데 북한은 선제타격을 통해 남조선을 해방시키겠다고 떠들지만, 휴전선에서 140km나 떨어진 평양 한 곳만 방어하는 데 전 군의 10%에 달하는 병력을 묶어 놓는다. 게다가 이 10%는 최신 장비와 가장 잘 훈련된 병력들로 구성된 상위 10%이다. 거기에 말이 10%이지, 거의 전국민 모두 징병하다시피 하는 조선인민군의 일반 병력과는 달리 호위사령부는 철저하게 사격 실력과 싸움 실력으로 뽑으며 호위사령부는 하전사와 사관 없이 전원 군관 신분이고 최말단 전투원이 소위이다. 최정예 병력이 김씨네 호위무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처럼 최전방에 수도를 두고 있었다면 저 정도 병력을 묶어두는 게 당연할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도 아니다. 사실 서울보다도 세종시 방어에 2개 군단 짱박아두고 있다고 비유하는 게 좀 더 근접할 것이다.[76]
정말로 다 제치고서라도, 일단 수도방위사령부 및 수도군단의 장비가 좋은 건 맞지만, 대한민국에서 최강의 육군 부대는 자타공인 제7기동군단이다. 여타 군단이 선제방어 후 공격인 반면 이쪽은 개전 직후부터 평양 및 압록강-두만강 전선을 노리고 돌격하라고 만든 기동부대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7기동군단은 말이 군단이지 사실상 야전군 수준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자국 최강의 전력을 평양에'만' 묶어놓은 북한과 달리, 한국군은 가장 강한 펀치를 만들고 여타 부대들로 방패막을 세운 셈. 때문에 양군의 편제상황만 보면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 북한을 선빵쳐서 통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77] 또한 제7기동군단에는 예하사단이 죄다 기계화보병사단인 탓에 온갖 기갑 장비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부대인데 인민해방군과 1:1로 떠도 비벼볼 수 있을 만큼 기갑 장비들이 많다.
병력의 손실도 손실이지만, 후방에 뚝 떨어진 수도를 방어하는 데 저렇게까지 많은 병력을 배치하는 이유가 무엇일지는 쉽게 답이 나온다.[78] 겉보기에는 강력한 군사력을 강력한 사상과 정신력으로 무장시켰다고 하지만, 실상은 스스로도 그 군대를 제대로 통제할 자신이 없다는 것을 내비친 것이다.
때문에 호위사령관은 필요에 따라 인민군의 그 어느 부대라도 배속 시켜 지휘할 수 있다. 그것도 인민무력부가 아닌 조선로동당 비서국을 통해서다. 보위사령부는 전투력과 무관한 집단이기라도 하지, 여긴 귀중한 전투력을 자기 멋대로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러니 호위사령관의 권한과 위세는 가히 인민무력부장과 동급이다. 물론 편제상 호위사령관은 어디까지나 인민무력부장의 하급자다.
이렇게 수도 근처에 과도하게 많은 병력을 배치한 결과 국방이 무너진 나라가 대표적으로 북송. 120만 군대 가운데 무려 절반이나 되는 60만 병력을 수도 근처에 처박은 결과는...
다만 북한이 이러는 건 이유가 있다. 남한이야
8.4. 건설부대
이름만 보면 다른 국가에도 다 있는 평범한 공병부대가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80] 북한에서는 출신 성분에 따라 선택적 징병제를 하는데, 출신 성분이 나쁜 사람들이 바로 이 건설부대에 간다. 이런 사람들만 모여있기 때문에 아무리 군생활 잘해도 승진이나 당원으로서의 출세 이딴 건 없다. 그런 주제에 국가에 필요한 민간 건설 사업에는 허구한 날 동원해서 부려먹기 때문에 사기는 바닥이다. 하지만 이들은 잃을 게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출신 성분 때문에 차별을 받았고 군대 와서도 차별을 받아 이미 인생 막장이라고 생각한다.즉, 이들은 신분만 군인이지 실질적으로는 그냥 징용 노동자일 뿐이다. 1년에 한 사람이 평균적으로 탄약 2발씩 쏴보는 북한군[81][82]에서 이들은 총 한 발 못 쏴봤음이 뻔하며, 전술 훈련은커녕 전 국토를 돌아다니면서 하는 노가다가 전부다. 심지어 북한에서 도로 포장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기도 하다. 유사시 도저히 온전한 전력으로 쳐줄 수가 없을 정도. 참고로 국군은 총 120만 명가량으로 추산되는 북한군 중 무려 30만 명이 서류상으로만 군인들인 이러한 노예들이라고 추정하는 중이다.
출판사 플래닛 미디어에서 탈북자 이정연이 지은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라는 책에 북한군 건설부대의 실태를 알 수 있는 좋은 내용이 있으니 원문을 그대로 옮긴다. 저자가 저자라서 거짓말로 취급할 수 있겠지만, 탈북자들의 증언 등에서도 이러한 것과 유사한 발언들이 나오는 걸 봐서는 일단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건설부대 하전사들은 싸움을 해도 무리지어 삽, 쇠스랑을 들고 무지막지하게 덤빈다. 매 맞은 건설병들이 부대로 돌아가서 어디 부대 군인들에게 맞았다고 이르면, 지하에서 일하던 하전사들까지 모두 연장을 들고 나온다. 여기에 소대장급 군관들까지 가세해서 산과 능선을 헐떡거리며 넘어와 겁도 없이 해당 대대로 쳐들어 간다. 어찌보면 총 없이 다른 부대로 쳐들어가서 싸움 벌여서 돌아오는게 더 신기할 지경이다. 건설부대가 온 뒤로 전연군단에서는 군단 지역의 각종 사고, 범죄, 주민신고가 200% 이상 증가했다. |
이렇게 부대들끼리의 패싸움은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님을 인증한다.[83] 국가 차원에서 전혀 통제를 못한다. 아래 글은 민간인들이 모 건설부대에게 붙인 별명이다. 그런데 이 별명이 워낙 절묘해서 해당 부대에서는 이 별명을 정식 명칭처럼 쓰고 있다.
조선인민군 건설국 제000부대 제0000여단 0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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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부대로 가장 유명한 부대는 7총국과 8총국이 있다. 이름만 들으면 뭔가 당에서 직속으로 관리하는 그럴 듯한 조직 같지만, 실상은 북한 어디든 가서 공사를 도맡아 하는 노가다 부대들이다. 김정일은 과거 인민군 2개 사단이 경의선 공사를 위해 대기 중이라고 떠든 적이 있으며, 2014년 현재도 북한은 평양시내는 물론 세포등판 건설장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서 '군인건설자들'이 건설사업에 매진 중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20대 청년들을 죄다 군대에 묶어둔 이상 그 군대를 쪼개서 사회 생산부문에 투입 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뻔한 노릇이다.
9. 사건사고
대표적으로 제6군단 쿠데타 모의 사건, 프룬제 군사대학 쿠데타 모의 사건, 정춘실 약탈 사건이 있다.9.1. 김선동 사건
- 출처 - #
1983년 10월, 황해남도 과일군 월사리에 위치한 서해함대 잠수함 11전대 병기 관리 대대에서 어뢰관리조종대 분대장으로 복무하고 있던 김선동 중사는 10년 동안 복무한 베테랑이었고 제대가 멀지 않았던 직업 군인이었다. 그런데 군의소 여자 간호원하고 비밀 연애를 하다가 들켜서 공개비판을 당하고 처벌 받게 되었다.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던 김선동 중사는 그대로 어뢰 저장고로 들어가 자폭을 해버렸고 갱도 안에 저장되어있던 수백 발의 어뢰와 기뢰들이 한꺼번에 유폭해버렸다.[85] 해당 사고의 여파로 북한이 수백만 달러의 외화를 지불하면서 사온 막대한 어뢰와 기뢰들이 그대로 사라졌고 주변에서 근무하던 40여 명의 병사들이 사망했다.
9.2. 예성강 교량 붕괴사고
자세한 내용은 예성강 교량 붕괴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북한군 1개 중대가 한 순간에 교량 붕괴사고로 전멸한 대참사이다.
9.3. 1993년 개천비행장 화재 사고
조선인민군 항공및반항공군현 조선인민군 공군 최악의 참사 중 하나이며 북한 공군 출신 탈북자들의 교차 검증으로 알려진 사례이다.
개천 비행장은 지상 활주로와 지하 갱도 활주로로 구분되는데 문제의 원인은 지하 갱도에서 발생했다. 주기되고 있는 전투기에서 연료를 훔치려던 북한군 보초병은 주유구를 드라이버로 열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어두워서 드라이버가 안 보였고 순간 당황한 북한군 보초병은 라이터를 키고 말았다. 그 순간 유증기로 가득 찬 갱도는 불바다로 변했고, 갱도 문은 자동으로 폐쇄되면서 50여 명의 군인들이 불에 타 사망했고 전투기 16대가 파괴되는 대참사로 이어졌다.[86] 통신부대 소속으로 야간 근무를 서다가 하필이면 그때 사고가 터져서 화를 당한 것이었다.
9.4. 1993년 평양아파트 붕괴 사고
평양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이 그대로 붕괴되면서 건설에 동원되었던 북한군 200명 이상이 사망했던 대참사. 1개 중대가 순식간에 증발한 대형사고이다.
9.5. 정춘실 약탈 사건
- 이 사건은 탈북자이자 사기꾼 이정연의 글에서 상당 부분 인용한 것으로, 복수의 소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약탈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은 사실이나 이정연이 저지른 일은 아니며,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사칭한 것으로 추측된다. 아래 글에서는 서술의 편의상 이정연의 말이 100% 맞는다고 가정한다. 글 하단에 적혀 있듯 사기를 치고 중국으로 달아난 사람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정춘실(1941~2015) 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대한민국의 국회의원에 해당)은 한때는 김일성을 아바이라고 부르고 김정일을 오라버니라고 부르던[87] 유일한 북한 여자로, 노력영웅 칭호를 2번이나 받고 북한의 각종 언론매체에서 열심히 띄워주던 사람이다. 사실 정춘실은 원래 달리 특별한 곳이 없는 일반 여성이었으나 김정일이 직접 찾아와 그를 접견한 로또를 맞으며 그야말로 대박을 맞게 되었다. 정춘실이 기록한 가족들의 신발 치수까지 정리된 상세한 가계부를 본 김정일의 눈이 뒤집어졌고, 정춘실을 본받아 숨은 영웅 따라 배우기 운동을 벌이게 하였는데 이를 '정춘실 운동'이라 이름 붙였다. 정춘실은 영웅 칭호가 내려졌고 대의원직도 하사 받아 평양으로 이주했다.[88]
사건이 일어난 1992년 겨울, 전천군 상업관리소장을 맡고 있던 정춘실은 직접 강원도의 항구에서 자강도 전천군 상업관리소까지 생선을 옮기던 도중에 북한군에게 3번이나 짐이 털렸다.
1차는 전연군단 정찰부대원 10여 명. 이들은 강원도 통천-고성 지역을 산악 야간행군하는 위장 침투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만 폭설에 낙오되며 시간에 늦을 위기에 빠졌다. 결국 산악 야간 행군을 해야 하는 규칙을 어기고 고속도로를 통해 이동하게 되었고, 정춘실이 탑승한 5t짜리 냉동탑차 2대가 지나가려 하자 고속도로로 이동한 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한 정찰부대원들이 길을 막고 트럭을 멈춰세웠다.
트럭 운전수는 부대원들이 착용한 남한 전투 복장[89]을 보고 공포에 질렸고 이윽고 정찰부대원들이 화물칸에 있는 청어, 가자미, 광어, 도루묵 등의 생선을 발견하자 실컷 빼앗기 시작했다. 정춘실이 직접 나서 이를 제지하려 했으나 정찰조는 '빨리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이 부려놓을 거'라고 협박하면서 공포탄을 두어 발 쏴서 내쫓았다. 빼앗은 생선은 집결지에서 소대원들끼리 나누어 먹었다.
2차는 원산-평양 고속도로상에서 금강산 발전소 건설에 동원한 군인들이었다. 이들은 아예 트럭 2대로 도로를 틀어막으며 지나가는 차량들을 약탈하고 있었는데, 마침 정춘실이 탄 차량이 걸려들자 차량 휘발유를 강탈했으며 이후 트럭 번호를 기억한 운전수에 의해 체포되었다.
3차는 평양-전천 구간의 경비대 건설부대. 정찰부대원들에게 강탈 당하고 남은 생선 모두를 빼앗고 심지어 차량의 예비 바퀴까지 털어갔다. 부대가 위치한 시간과 장소가 명확하여 이후 체포되었다.
결국 정춘실은 3차에 걸친 약탈 끝에 트럭에 실은 모든 짐을 잃었고, 즉시 로동당 중앙위원회에 이 일을 신고하였다. 이에 인민군 총정치국, 작전국, 보위사령부, 정찰국 등의 합동 검열조사단이 해당 부대에 들이닥쳐 사건의 주모자, 가담자들을 샅샅이 색출하였고 사건에 가담한 약 10여 명은 '군사 규율 및 군민관계 훼손행위'로 처벌 받아 총살형에 처해졌으며 소속부대 지휘관들은 불명예제대 처리되거나 로동연대 등으로 좌천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다만 이정연의 증언에 따르면 1차로 약탈한 정찰부대원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합동 검열조사단은 시간과 장소가 명확하게 남은 건설부대원들은 체포했으나 정찰부대원들이 강원도 통천-고성 지역의 도로를 이용한 것은 폭설로 낙오되어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몰래 이동한 것이고 공식 기록상으로는 산악 야간행군 중이라 발각되지 않았다.
약탈에 가담한 대원들이 자백할 리도 없으니 걸릴 수가 없었고 합동 검열조사단이 남한군 복장을 하고 훈련한 부대를 잡아내기 위해 용의부대원들을 추궁하고 나섰으나 다른 경보병 여단과 806훈련부대도 있었다는 발뺌에 결국 잡아내지 못했다. 물론 이정연이 위에 서술하듯이 남한에서 사기를 저지르고 중국으로 달아났고, 그가 증언한 상당수가 다른 탈북자 군인들에게도 신빙성이 의심 받은 걸 감안하자. 그냥 막장인 사건이 나오는 수준으로 이해하면 딱이다. 꾸며낸 이야기라 한들 축소판이 민가에서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최고 권력자로부터 영웅 칭호도 받고, 대의원 자리도 하사 받은 '특별한 인물'이 공무로 운송하던 트럭이 3번이나 약탈 당했다. 정춘실은 자신의 직위를 밝히며 저지하려고 했을 텐데 이렇게까지 털렸다니 일반 주민들은 얼마나 뜯어갈지 감도 안 잡힌다. 심지어 건설부대원들이 장소와 시간을 명확하게 들켰다면, 이들이 정말 멍청하게 굴었거나 평소에는 이렇게 털어도 별 일 없는데 정춘실이 중앙과 연이 닿은 인물이라 조사했거나겠고, 이렇게 약탈한 물품도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기거나 자기들끼리 나누다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9.6. 전병호 약탈 사건
- 해당 사건은 국방 정책 담당 기자였던 김길선이 증언한 사실이다.
전병호(1926~2014)는 1993년 당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군수담당 비서로 일하던 고위 당원이었다. 자강도로 216 벤츠[90]를 타고 야간에 시찰을 갔을 때 전병호는 군기강이 바닥난 인민군의 현실을 몸소 체감했다. 인민군 병사 10여 명이 돌을 쥔 채로 차를 멈춰 세우고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병호는 결국 병사들이 요구하는 대로 음식, 술, 담배를 다 병사들에게 쥐어주고 빈손으로 평양으로 귀환해야 했다.
9.7. 7군단 사건
- 해당 사건은 주성하 기자와 친분이 있는 모 중앙당 간부 출신 탈북자가 증언한 내용이다.
2005년, 금강산댐 건설이 지지부진하자 북한군에 발전소 전문 건설 부대를 따로 편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북한군 7군단 예하 1개 중대가 건설 부대에 배속되었다. 금강산댐 건설 현장에서는 자주 사망 사고가 발생했고, 그 악명은 이미 북한 전역에 퍼진 지 오래이기 때문에 그 중대 병사들은 절망했다. 그래서 중대 병사들은 어차피 죽을 바에야 오늘은 실컷 즐기자는 마음으로 술과 음식을 잔뜩 사가서 기차에 탑승해 마음껏 즐겼다. 문제는 철도보안원들이 병사들을 검열하기 시작하면서 사건이 터지기 시작했다. 철도보안원들은 신분이 좋은 집안 출신들이 들어가는 곳이었고, 편안한 근무환경이 보장되었던 데다가 평소에도 군인들을 무시했기에 사이가 서로 좋지 않았다. 결국 병사와 보안원 사이에 싸움이 터졌고, 보안원 2명은 병사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다가 끝내 사망했다. 다른 보안원들이 병사들의 폭동을 진압하지 못할 지경이 되자, 열차는 병사들이 타고 있는 마지막 객실과 다른 객실로 통하는 문을 잠궈버려서 병사들이 열차 기관실로 가지 못하게 막은 후 금강산댐이 아니라 고성군으로 곧장 향했고 병사들이 있던 마지막 객차를 분리시켰다. 그리고 남은 열차는 그 객차만 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 사이에 이 일은 노동당 수뇌부에게도 통보되었으며 김정일의 명령을 직접 하달 받은 북한군 1개 대대가 그 열차를 추격했다. 열차로부터 분리된 객차가 어느 골짜기 정차하자 1개 대대는 온갖 화기를 총동원해 객차를 향해 집중사격을 했고 열차 안에 있던 대부분의 병사들은 사살되었다. 살아남은 병사들마저도 비록 폭동에 가담하지 않았어도 모두 사살되었고 순식간에 120여 명의 병사들이 전원 사망했다.
9.8. '마흐노 부대' 사건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인 43경보병려단은 인민무력부현 국방성 직속 정예 특수산악전부대로 유명하지만 막상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마흐노(깡패를 빗대는 은어) 부대'라는 멸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43경보병려단의 군기가 매우 시궁창이었기 때문이다. 2014년 3월에는 부대원들끼리 총격전을 벌여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은폐해왔다. 2014년 6월에는 호위사령부 직속 차량에 사격을 가해 호위사령부 소속 군인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보고는 김정은에게 전달되었고 격노한 김정은은 43경보병려단의 지휘관들을 모조리 교체해버렸다.
9.9. 공수부대 훈련 사망 사고
2024년 3월 15일, 김정은과 김주애[91]가 참관하는 북한 항공육전병(공수부대) 공수 훈련 도중 추락 사고가 발생해 10여 명의 군인이 사망하고[92] 수십 명의 군인들이 부상을 입었다. 훈련 당시 강풍이 불면서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거나 서로 얽힌 것[93]이 사고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1, #2
한편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1호 방침'에 따라 당시 사망한 병사들에게 훈장과 조선로동당 정당원증을 추서하고 유가족들에게 애국 열사증을 수여하는 행사를 성대하게 열도록 하고, 해당 부대의 연혁소개실에 이들의 업적을 박아 넣고 항공육전대 측에서 이들의 사망한 날을 기념해 해마다 기념행사를 진행하기로 했으며,[94] 이들을 높이 평가하는 자체 강연 자료를 만들어 당시 훈련에 참여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정치 학습을 진행하고 선동 자료도 만들어 널리 보급하라고도 지시했다.[95] #
9.10. 기타 사건사고
- 2013년 말, 조선인민군 해군 소속 구잠함이 훈련 도중 침몰해 수십 명이 사망했다. 원인은 함정의 노후화 때문이었다. # 그외에도 대형 경비정도 같은 해에 침몰해 7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터졌다. #
- 2014년 초, 조선인민군 항공및반항공군현 조선인민군 공군 MiG-19 전투기가 노후화로 3대나 추락했다. #
- 2014년 7월 20일 김정은이 직접 참관하는 방사포 사격 훈련에서 포탄이 폭발하는 사고가 났다. 이와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조선인민군의 탄약 관리가 부실하여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일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사실 탄약 자체는 만들어진 지 오래되면 화약 자체가 조금씩 산화해 일정 기간 이상을 초과하면 제 성능을 못 내는데, 탄약 보관 상태까지 엉망이면 이러한 성능을 못 내는 기간이 도래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길 소지가 높다. 실제로 탄약은 잘만 보관만 해준다면 제조한 지 상당히 오래 지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는 없으나 오래된 탄이나 노후화탄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지, 사실 웬만한 군대는 전시를 대비하여 의례적으로 포탄 비축을 실시하는 것으로 대한민국 국군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은 당연히 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군은 주기적으로 교탄 소비라고 해서 계속 실탄 사격을 하며 탄약이 지나치게 노후화되기 전에 소비하고 있다.
한국군도 각종 포병용 탄약 보관소들에서 습기 등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하여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으며 각 포병부대에서는 정기적으로 부대에 보관 중인 각 롯트별 탄약들을 꺼내서 실사격 훈련을 할 때마다 사용하는 데 여기에서 불량 즉, 불발탄이 일정 이상 발생한 특정 롯트대 탄약을 확인하고 위에 보고하면 위에서는 해당 롯트대의 탄약들을 대상으로 한 비파괴 검사에 돌입해 해당 롯트대의 불량 탄약들을 골라낸 다음 그 불량 탄약들을 특수한 방식으로 파기하면서 최대한 불발탄들을 일선부대에 없게 하도록 조치하고 있다.[96] 그렇기에 각 포병 대대 단위에는 연간 쏴서 없애야 할 탄약의 숫자와 탄약을 보관할 때도 섞이지 않게 롯트대 별로 분류되어 있고 실사격 관련 공문에서 사용할 탄약의 롯트대를 명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보듯 이러한 조치들은 기본적으로 돈이 상당히 들어가는 작업[97]이라 미군에서는 한국에 있던 미국제 폐탄약들을 한국에 모조리 맡기고 도망치려고 하다가 이걸 핑계로 거꾸로 돈을 떼인 적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군 방산무기 수입사의 2000년대 이후 항목에 있는 'WRSA(전략예비물자)탄 매입' 부분을 참조.
- 2016년 7월 23일부터 5일 정도 북한군 탈영병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중국으로 넘어와 강도 짓을 하다가 일부가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
- 대북소식통들에 따르면 함경남도 덕산군에 위치한 북한 공군 제2항공사단은 문제가 많은 부대로 알려졌는데 많은 전투기들이 추락하거나 공중폭발로 손실되었고 남은 전투기들도 가동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심지어 관리부주의로 화재까지 나기도 했다. 결국 사단장(비행단장)이 교체될 정도였다. ###
- 북한 경보병여단에서는 동계훈련 도중 19살의 하전사가 동사로 사망했다. 문제는 막상 선임들은 따듯한 민가로 내려가 훈련도 제대로 수행 안 하면서 죽어가는 후임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동사 사고가 북한 특수부대에선 매우 비일비재하게 터져나오고 있다. #
- 북한군의 병영 시설들은 낙후되었고 당연히 보일러도 없어서 기본적으로 구시대적인 난로에서 땔감에 불을 피우는 구조이다 보니 당연히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사고 사례들이 많이 터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1년에는 북한 9군단에서 무려 9명의 병사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해서 사망했다. #
- 2017년에는 최전방에 주둔하는 2군단에서 병사들과 간부들이 김정은을 '전간'(정신질환), '유치원생' 내지는 '제곱 김'[99]으로 비방하다가 발각되어서 사단이 났었다. 잦은 장교들의 교체로 인해 군 기강도 해이해져 부정부패도 매우 심해 이미 '마적단' 수준으로 전락해버렸다. # 그 외에도 2018년에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소속 대좌가 김정은 비방 낙서를 살포하다가 발각되어 공개총살 당했다고 하며, # 2021년에는 815군단[100] 소속 소장이 김정은의 코로나 19 방역 조치에 대해 비방하다가 총살 당했다. 그만큼 이미 군 내부에서도 불만이 크다는 반증이다.
- 2022년 4월 25일 새벽에 북한군 1군단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해 정치지도원과 보초장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 2022년 10월 10일에는 공군 훈련 도중 전투기 한 대가 추락했다. #
- 2022년 11월 중순, 금괴 200kg을 수송하던 북한군 수송 차량이 복면을 쓴 무장강도 3명에게 제압 당하고 금괴를 탈취 당한 사건이 있었다. #
- 2024년 5월경, 북한군 130여 명을 태운 선박이 침몰해 이 중 90명 정도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군 내부에서 동요가 상당한 탓에 불만을 잠재우고 시선을 돌리기 위해 대남 도발을 감행한 것이 아닌지 추측되고 있다.
- 2024년 7월 10일 새벽 3시에는 양강도 혜산시 국경경비대 25여단에서 초소에서 야간 근무를 하다가 존 한 군인이 부소대장에게 졸았다는 이유로 맞아 죽기도 했다. 체구가 작아 폭행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하는데, 한편 부소대장은 탈북할 가능성이 있다고 체포된 상태다. 김일성 사망 30주기를 계기로 내려진 특별 경비 주간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국가보위성에 직보될 정도로 엄중한 정치적 사건으로 취급돼 본보기격으로 더 강한 처벌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
[1] 먹을 것이 없다 보니 현대 정규군에서는 더 이상 상상할 수도 없는 전근대적 둔전제를 21세기에도 시행하고 있다.[2] 2020년대 들어 여러 탈북민들이 중국 국경에서 망원렌즈 등으로 고향 근처에서 촬영된 영상을 올리고 있는데, 독재와 같은 참혹한 고향의 현실을 한탄하는 소재로 즐겨 쓰이고 있다. 그나마 근대적인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시내나 시장에 비해서도 처참한 편이다. 다만 이런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북한 공작원이나 중국 공안에 잡히면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는 수가 있다.[3] 러시아 연방군의 부패를 지적하는 모 교수의 발언으로, 그 러시아 연방군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북한군에게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발언이다.[4] 당장 발등의 불이 된 노후화된 전투기 교체가 한 예인데, F-4는 퇴역 중이고 F-5 또한 전력 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계속해서 운용 중이나 이들 또한 FA-50 같은 기종으로 교체 중이고, 현재 개발 중인 KF-21 역시 개발 속도를 높여 자국산 무기로 교체 속도를 신속히 하려는 중에 있다. 그리고 원래 신규 무기 교체 속도가 느린 공군과 달리 육군은 북한이 2020년대까지 반 세기가 넘게 T-62 개량만 계속하며 근근히 버텨오는 것과 달리 한국은 K-1, K-1A1(비록 K-1의 개량형이긴 하지만 세계 선두권 전차들과도 대등한 위치에서 관통력을 겨룰 수 있는 120mm 전차포 업건을 위해 만들어진 개량형 모델이라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새 전차를 들인 것이나 다름이 없다), K-2 등 실질적으로 3번의 전차 교체를 이루어냈다.[5] 미국과 같은 동맹국에게 사올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은 무기 수십~수백 개만 사고 끝나는 국가들과 달리 언제 전면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환경 때문에 휴전선 주둔 사단들에 모두 줘야 하니 수백~수천 대의 무기가 필요한 데다 자체 창정비까지 해야하므로 좋든 싫든 간에 국산화가 매우 중요한 국가이다. 물론 100% 자국 기술로 이루지 못한 경우도 많으나, 이것도 미국 및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로부터 기술 협약 등으로 얻어오며 자국화에 박차를 가했다.[6] 그 천조국이라고 하는 미국조차 국방부가 예산 때문에 매일 의회에 "제발 쫌! 이대로면 우리 러시아나 중국한테 진다고요 징징"하는 게 일상이다. 실제로도 미군은 소련이 망하기 직전에 이대로 소련이랑 싸우면 진다고 의회에 예산 더 달라고 징징을 시전했다가 얼마 안 가 소련이 붕괴하면서 소련군의 밑천이 까발려지자 수뇌부 전원이 의회에 끌려나간 적도 있고, 냉전 때 한창 하던 군비경쟁을 접은 뒤로는 신형 무기 개발 하나하나에 신중한 실정이다. 그리고 애당초 국방 예산은 민간경제 분야를 능가하기 어려운 분야다. 냉전 때 미국, 유럽 군사력을 따라잡으려고 민간경제를 넘는 국방비를 쓰다가 폭삭 망하며 가랑이 찢어진 나라도 있다. 거기다 애초에 국방비는 그 특수성 때문에 이윤은 없는데 투자는 해야 하는 산업인지라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는 최대한 국방비를 깎으려 하지 늘리는 데 상당히 인색하다. 국방비가 너무 적어 군사력이 약하면 멸망 직행이지만 앞서 말했듯 국방비는 이윤을 못 내는 분야이기 때문에 너무 과하면 민간경제의 등골을 휘게 만들 수가 있다. 물론 개발비를 들여 신무기를 개발해 해외에 열심히 수출하면 수익이 생기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국방비는 무기 개발비를 '포함'한 국방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총칭하는 것이라 투자 대비 이윤을 생각해보면 괴멸적인 적자율을 피할 수 없다.[7] 북한의 국가 예산 모두는 체제 유지를 위한 국방 예산이다. 민간 분야의 예산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민간경제는 대부분이 소위 검은 돈이다.[8] 대한민국 국군 역시 소소하게 시가행진 같은 소규모 행사를 국군의 날마다 진행해왔지만, 이마저도 돈은 돈대로 깨지고 실전에는 도움 1도 안 되고 일선 병력을 차출하면 작전 능력에까지 해가 되니 가면 갈수록 정부나 군 수뇌부들이나 열병식을 별로 좋게 보지 않게 됐다. 계속 그런 추세였다가 코로나 19 사태가 본격화되고 나서부턴 아예 방향을 틀어버렸는데, 대규모 훈련을 공개 진행해서 현실적인 작전과 비슷한 볼거리를 만드는 쪽으로 선회했으며 2021년엔 아예 합동 군사 훈련에 버금가는 상륙작전 단계의 시범까지 선보이기도 했다.[9] 우습게도 한국군의 심각한 내부 문제점이 나아지는 게 다소 느린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높으신 분들이 보기엔 이 정도를 해먹어도 북한을 상대로 질 일이 없기 때문에 비리 논란이 끊어지기 힘든 거고, 아무리 장병들이 똥별에 대한 반감이 심해져도 최소한 북한한테 점령 당하는 것보단 낫기에 전쟁이 난다면 일부 프래깅이 나올 수 있을지언정 북한에게 투항하는 그림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병 계급의 대우나 군인에 대한 인식이 영 좋지 않은 이유도 이것과 일맥상통한다. 만약 중국 및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었거나 일본이 한국의 적국이었다면 당연히 처우 개선 및 인식 변화가 더 빠르게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출처] <인민이 사는 모습 (상편)>.[11] 수량(70척)으로는 세계 상위권이다. 문제는 대부분이 2차대전 수준의 성능에 그친다는 것.[12] 어느 정도냐 하면, 대한민국 해군 내에서는 북한 잠수함을 "바다의 경운기"라고 부른다.[13]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이 발달하고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증강하며 장사정포마저도 위협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장사정포에 대응하기 위해 다수의 미사일들을 찍어내고 있다.[14]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비례억지전략으로, 자국을 멸망 시키려 한다면 상대 국가에도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위협하여 공격 시도 자체를 단념 시키는 전략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자기들이 어그로 실컷 끌어놓곤 자기들이 비례억지전략을 세운다[15] 복장도 문제가 된다. 보통 예복은 밑에 셔츠를 입고 그 밑에 또 속옷을 입어야 하기에 매우 두껍고, 머리에도 방열에 도움이 안 되는 걸 계속 쓰고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영국군 근위대는 곰 가죽으로 된 베어스킨 군모를 쓰는데, 당연히 털모자인데 비에 젖으면 무게가 엄청나며 여름에는 그야말로 무지하게 덥다.[16] 정작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현역 내지 방위병 했을 시절에 본인들이 그렇게 높이 평가해 주는 북한군처럼 깡다구 넘치게 군생활 했냐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오늘날 군 내에서 전승되어오는 소위 '유도리 있는' 행동들은 신세대가 뿅 하고 만들어낸 신문물이 아니라 이 '깡다구 넘치는' 선배님들이 만들어놓으신 퍽 아름다운 전통들이다(...) 즉, 본인들이 군 복무하면서 뺑끼치고 뺀질거리는 건 '정이 있는 사회 생활'인 것이고, 똑같은 행동을 이 선배님들에게 고스란히 배운 젊은이들이 그대로 따라하면 '개념 없는 요즘 것들'인 셈이다. 그야말로 더러운 내로남불의 끝판왕.[17] 방송을 위해 요약 편집된 영상이라 중간 대목이 편집되어 있다.[18] 이는 김정일이 권력 기반 강화를 위해 고의로 굶기는 것도 있다. 김정일 본인이 지껄이기를 '인민은 배가 고파야 딴 생각(시민 혁명, 민주주의, 자유 등)을 안 한다'고 했다. 김일성 앞에서 김정일은 "인민이 배부르면 우리에게 더 큰 요구를 할 것이다, 죽지 않을 만큼만 먹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시장도 주민들의 완강한 저항 끝에 만들어진 것이며 시장화의 여파로 굶지 않는 사람들이 생겼음에도 2020년 이후로 시장 활동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고 있다. 쌀을 시장에서 진열하지 못하게 하고, '서비차'라고 부르는 화물차 운송도 방해를 하는 식이다. 덕분에 코로나를 명분으로 한 '밀수' 단속과 더불어 다시 굶주리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는 말이 있다.[19] 평양 창전거리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지방도시인 강계시의 LED 야경을 보면 그야말로 괴상하기까지 한 수준. 물론 후자는 실질적인 불빛으로 밝힌 게 아니기에 야간 위성사진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20] 최전방 경계 초소 옆에 밭일을 하는 북한 군인들을 근무 중에도 볼 수 있을 정도다.[21] 한국전력공사 기술자이며 부업으로 만화가 일을 겸하고 있다.[22] 멀리 갈 것 없이 조선시대에도 원래는 나이가 맞는 모든 장정들이 징병 대상이었으나 농업 국가라는 특성상 나중에 가면 일반인들은 군포로 군역을 대신하고 군대는 상비군으로 운영하는 체제가 정립되었다.[23] 당장 민간인이었을 때는 할 수 있었지만 군대에 있었을 때는 금지 및 터부시한 것들을 생각해보자. 기초군사훈련이 10주인 미 육군과 13주인 미 해병대도 군기 확립에만 초기 몇 주를 소비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사고라도 쳤다간 퇴소는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군사법정에 회부까지 될 수 있으며 '불명예 전역'까지 되기 때문에 재향군인 혜택도 받지 못한다.[24] 심지어 당 비서 같은 고위직을 했는데도 먹고사니즘이 안 되어서 생계가 너무 힘들었다고 회고했다.[25] 심지어 이때는 북한 전력 사정이 지금보다 훨씬 나았던 때였다.[26] 물론 이들도 한국에서 직장 해임 및 온갖 비아냥을 듣는 등 갖은 고초를 겪긴 했다. 문제는 저런 고초가 조금만 잘못해도 가문 전체가 멸문 당하는 북한에 비하면 정말 아무 짓도 안 당한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27] 실제로 해외 파견 근무자들은 가족들을 반드시 본국에 인질로 잡아둔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탈북하는 사람도 있긴 있다. 태영호 일가가 대표적으로, 여러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기어이 본국에 있던 가족들을 근무지로 데려와 함께 살다가 큰아들이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닥쳐오자 함께 탈북했다.[28] 오죽하면 제법 부유한 계층에서는 남녀가 결혼할 때 혼수로 남조선제 가전 제품이 하나라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파혼 사유가 될 정도다.[29] 말로는 이렇게 써놓았으나 사실 국가가 주민들의 경제 활동을 방해하여 모든 자원을 독점하여 자신에게 충성해야만 식량 등의 물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사육에 가까운 행태였다. 자신들도 방북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한 것처럼 날조한 발언에서 배급제를 '의식주에 대한 국가적 책임'이라고 언급하며 배급제를 자신들의 '애민정신'을 보여주는 수단 중 하나로 이용한 것은 물론이고. 2020년 이후에도 이를 부활 시키려는 듯한 움직임이 있다. 이유야 당연히 장마당을 통해 남조선의 생활이 흘러들어오기 때문. 현재까진 남조선 문화만을 막고 있으나, 이게 언제 더 확대될지는 모를 노릇이다.[30] 보통의 실패 국가들 다수는 다른 게 다 막장이지만 상비군만큼은 정권 유지를 위해 어떻게든 돌아가도록 만들어주는 게 정상이다. 당장 자국민을 밥 먹듯이 학살하는 아프리카 군벌이나 독재자들조차 자기 휘하 상비군만큼은 살뜰히 챙긴다. 심지어 군 인권 실태가 조선인민군 못지않은 개판으로 악명이 자자한 에리트레아군조차 객관적으로는 봉급 수준이 빈약하기는 해도 군인 연봉이 에리트레아의 1인당 GDP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인 만큼 비참한 경제 실태에 비해서는 군인 봉급은 많이 주고 있다.[31] 원래부터 중국은 북한뿐만 아니라 미얀마 등 다른 불량 국가에 대한 지원 논란도 상당히 있다. 단, 중국의 개방개혁 요구를 거부한 사례가 있는 만큼 100% 우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32] 북한이 동아시아가 아닌 남아시아, 중동(서아시아+북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위치해 있고 뒷배가 되어주는 강대국이 없었다면 적성국가 및 반정부 군벌의 공격이 빈번해지거나 현실과 달리 진작에 망했을 가능성이 높다.[33] 실제로 연평도 포격전 당시엔 남한이 진짜 북한을 박살 내려고 길길이 날뛰는 걸 미국이 간신히 뜯어말려 보복성 포격으로 그쳤으며, 그 미국조차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진짜 빡돌아서 밀어버리려 했었다. 물론 중국과 소련 때문에 자제했으나, 정작 당시 중국과 소련도 북한의 막가파와 미국의 분노에 놀라서 북한을 버리는 대안책을 계획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한국이 연평도 포격전 이후 서부전선 포격 사건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으로 좌우를 막론하고 진짜 조져버리겠다고 벼르자 결국 미사일 발사와 같은 소규모 도발로 가라앉고, 이후 2024년 연평도 해역 포격 사건으로 살짝 찔러봤다가 한국군이 열 받아서 2배의 포탄량으로 해역을 포격하며 으름장을 놓자 '화약을 써서 남조선의 대응을 보려 했다'면서 정신승리나 하는 중이다.[34] 물론 임수경 방북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듯 당시에도 한국의 경제력은 북한과 비교 불가 수준이었다.[35] 군 예산을 많이 타내기 위해 단순히 병력과 무기의 양적 비교만으로 국군이 북한군보다 훨씬 약하다고 주장하는 국방부의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이다.[36] 독일의 군수 생산량은 역으로 본토가 박살라던 44년 후반에 정점을 찍었다.[37] 미국이 오키나와를 확보한 순간부터 일본 본토 전역이 미군 폭격기의 항속거리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기 때문에 본토 공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다.[38] 이 시점에서 대만과 중국 본토에 남아있는 일본 육군이 있었지만 필리핀해 해전과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사망선고를 받은 이상 본토 방어전에 가담하려 한다 해도 바다를 건널 방법이 없었다.[39] 말이 총옥쇄지 당시 일본군의 군수공장은 독일보다 더 열약한 방공체계 덕에 초토화되어 총은 지급해주던 국민돌격대와 달리 우리가 흔히 아는 일본도, 화승총, 죽창으로 무장하고 있었다.[40] 추가로 소련군이 선전포고 후 만주국에 남아있던 관동군을 붕괴시켜 항전의 희망을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당시 관동군은 주요 장비가 본토 방어를 위해 많이 나가있음에도 머릿수는 만주군 포함 110만 명에 달하는 대병력이었는데, 단 며칠만에 사령부가 털리고 소련군이 한반도로 진입해버리는 등 처참한 패배를 당하게 된다.[41] 물론 재래식 전력을 수입이나 면허 생산 등으로 메울 수 있으며, 실제로 일부 무기 개발국을 제외하면 대다수 국가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자국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겐 어림도 없는데, 사실상 군수 몰빵으로 인해 외화벌이가 마땅찮은데 한국을 상대로 허구헌 날 도발을 해대서 안보 리스크는 무한대로 부풀려놓은 데다 외교도 망쳐서 세계적으로 제재를 받아 무기 수입조차 마땅찮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란이나 중국 등으로 우회해서 기술을 영입하거나, 해킹이나 매수 등을 통해 기술을 빼돌려 알아오는 경우는 있는 것 같은데, 이마저도 바닥을 치는 자국 공업력 때문에 전력화 시키기에도 매우 버거운 상황이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지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라(애당초 북한에게 포탄을 사들이고 있는 마당에 북한에게 줄 무기는 없을 것이다.) 당장 유의미한 재래식 전력의 보강을 도와주긴 어렵다.[42] 당시 남한은 3,100만 명이었다.[43] 이 당시 북한군의 보급이 좋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곳은 밥도 못 먹는데 반해서 군대가 그나마 밥을 챙겨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얘기다. 선군정치를 내세운 당시 북한이니만큼 적어도 군대가 민간인보다는 잘 먹여주는 곳이기는 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얘기지만.[44] 여성은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체격이 좋은 사람만 복무했었으나 2015년에 신검 기준 통과자 전원 의무 복무로 바뀌었다. 기준은 불명.[45] 하지만 일부 똘끼와 근성이 충만한 부대원은 복무중 계속 벽돌을 구해다 놓은 뒤 휴가마다 정해놓은 땅에 그 벽돌로 조금씩 집을 짓는 우공이산같은 짓을 하기도 한다. 이러면 중참 이후부터는 그 집이 완성되어 휴가를 반납하지 않게 된다.[46] 문제는 북한의 어선이 우리가 아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도가 매우 높다. 북한의 어선은 대부분 소형 선박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내부에 들어가는 식량 등 물품량도 적은데, 문제는 만성적인 기름 부족 때문에 어업을 하러 왔다가 본토에 돌아가질 못하고 표류하다 내부의 어민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북한 표류선박 중 일부는 운 좋게 한국 해경들에게 걸리면 간단한 심사 후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가거나 남한에 머물며 살아남을 수 있으나, 대부분은 장기간 표류 중 어민들이 사망하고 유령선이 되어 일본 해안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47] 부대에 식량이 부족하니 집에 가서 몸보신하고 올 때 부대원들에게 줄 식량 좀 싸오라는 의도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것은 어느 정도 돈 있는 집안 병사들만 가고 집이 보잘 것 없는 병사들은 그냥 군 복무 끝날 때까지 못 가는 형편이다. 어떤 부대의 경우에는 군관 하나를 따라 보내기도 한다.[48] 도망 못 가게 아예 그 지역 여자들과 강제 결혼 시키기도 한다.[49] 반대로 생각해보면 입대 시키지 않던 적대계층에게도 입대를 허용할 정도로 인력 사정이 좋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50] 현재는 동남아시아의 분쟁 지역.[51] 한국군에게도 이러한 비판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한국군에게 매우 실례이다. 한국군의 문제점은 급격한 선진화에 비해 장병을 소모품으로 보는 시각이 제대로 고쳐지지 못하는 와중에 국방부의 과도한 은폐공작이 겹치며 일어나는 병폐이며, 이마저도 군인권센터나 SNS 등을 이용해 주기적으로 까발려지며 고쳐지고 있다.[52] 본인도 너무 배고픈 나머지 분대장의 점심을 타먹은 뒤 가혹한 처벌과 기합이 두려워서 귀순했다.[53] 귀순 이후 이석모는 1982년 기준 경희대학교에 진학했으며, 1986년 주택은행 업무개선실에 취업한 후 1987년 결혼했다.[54] 본인도 탈북 당시 키 153cm에 몸무게가 48kg의 왜소한 체격이었다.[55] 서해안은 양쪽 해군 다 이를 갈고 있는 반면 동해안은 1960년대에 발생한 당포함 격침 사건 또는 잠수함 도발 사건 이외에는 따로 분쟁이 없기 때문에 양쪽 해군 다 서해로 갈 바에는 동해가 훨씬 낫지(...)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도 1함대(동해)에서 실전 전투 배치가 붙어봤자 전마선이 떠내려오거나 북한 어선이 동해안 남부 쪽으로 슬금슬금 떠내려와서 시동 끄고 있던 북한 군함이 데리러 오는 것 외에는 매우 조용하다. 반면 2함대(평택)의 경우 실전 전투 배치가 정말로 북한 군함이 안 좋은 의도를 가지고 내려오는 등 양쪽 다 별로 좋은 분위기는 아니다.[56] 필리핀의 대통령 중 한 사람인 로드리고 두테르테도 '모든 범죄자들을 척결하여 깨끗한 국가를 만들겠다'면서 범죄자들을 공개적으로 즉결처형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어서 자국인 필리핀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외국의 사람들로부터도 훌륭한 위인이라고 추켜세워졌지만, 실상은 힘 없는 잡범들만 이런식으로 공개처형했고 정작 범죄의 진정한 뿌리인 범죄 조직 수뇌부 등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경계 유력 인사들과 긴밀한 커넥션이 닿아있었기 때문. 한 마디로 적절한 쇼를 제공해서 그럴싸해보이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지만 실상은 기존 대통령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셈이고 실제로 그의 임기 중에 범죄율이 그렇게 유의미하게 낮아지지는 않았다.[57] 북한 관련 문서들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지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공산주의는 '모두가 공평하게 분배하자'는 경제적인 이념이고,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권을 보장해주자'는 정치적인 이념이므로 오히려 '공평한 분배'를 추구하는 공산주의의 특성상 '모든 이들에게 주권도 공평하게 분배하자'는 식으로 민주주의의 이념을 수용한 국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 대부분은 '모두에게 물건과 주권이 공평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우리 공산당이 잘 관리해주겠다'며 출범한 공산당들이 그 과정에서 손에 쥔 견제 없는 절대 권력 때문에 변질되어서 일당 독재, 심하면 일인 독재로 변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자본주의 국가들은 구성원들이 어느 누구 하나가 절대자가 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 날을 세우며 으르렁거리다 보니 이걸 공평하게 중재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정착했다.[58]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의 친모라는 대단한 배경을 지니고 있음에도 생각보다 우상화가 되지 않은 까닭은 그녀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에게 군복을 납품하던 의류업체를 운영했었다는 약점 때문이다.[59] 오히려 이승만은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혐일이었다.[60] 이쪽은 아예 자신들의 공식 선전으로 대놓고 "수령님의 은덕으로 죄를 뉘우치고 (과거를 백지화하여) 조국 건설에 합류했다" 운운하며 친일파 등용을 정당화했다.[61] 임병장, 윤일병 사건이 일어난 이후 가혹행위에 대한 비난이 많은 터라 군대 옴부즈만 제도 등으로 개선되긴 했다. 항상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움직인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최소한 아무 노력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다. 사실 한국군 병영부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제도적 개선도 개선이지만, 군 내부에서 사건이 터지면 이를 은폐하려고 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악습은 군인권센터를 비롯한 각종 단체의 설립과 병영 내 스마트폰 사용 허가 등으로 내부의 목소리가 외부로 나오기 쉽게 변화되며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도입은 결정타로, 스마트폰을 통해 SNS나 언론사에 직통으로 소식이 전해질 수 있게 되어 내부 부조리가 여과 없이 즉시 까발려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62] 1951년 이후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과는 별개의 사례이다.[63] 주로 후자의 경우에는 군 내에 있는 당비서급 인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이다.[64] 한국으로 따지면 의병, 의가사 제대+불명예 전역이 합쳐진 개념으로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매우 나쁜데 그 이유는 '신성한 당의 군대에서 제대로 복무 못하고 나온 정치적으로 나태한 인간' 정도로 생각해서 지역이나 직장에서 실시하는 각종 사상 비판 무대에 툭하면 세워서 주변에서 그 사람을 향해 온갖 비판을 가하는 등의 짓거리를 통해 상당히 괴롭힌다. 실제 이런 마을 및 직장 단위의 괴롭힘에 참다 못하고 탈북한 사람도 있다.[65] 인민군의 구타 관련 문제들이 언급되어 있다.[66] UN의 인구통계조사를 근거로 조선인민군의 총 병력을 70만 명 정도로 추정한 연구 결과도 있긴 하다. 북한군 규모 70만 명 추측된다, "북한군 120만 명 아니라 70만 명".[67] 압록강과 두만강 변에 배치된 경비부대. 휴전선에 배치되는 부대는 민경부대라고 따로 칭한다.[68] 다만 이건 버전별로 조금씩 다르다. 일단 오극렬이 총대를 맸고, 퇴물 오진우가 김일성에게 달려가 어떻게 정치장교를 없앨 수 있냐고 읍소한 것까지는 공통적인데, 김일성이 정말 대놓고 "누구한테 총부리" 운운까지 했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69] 심지어 한국쪽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방첩사의 권한을 철저히 방첩으로 제약 시키기 위해 권한을 줄이고 있다.[70] 실제로 유튜브 팟캐스트 김길선의 평양만사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이나 지도원들이 제일 꼴 보기 싫어하는 게 보위부이다.[71] 정치장교가 소대장에게는 없고 중대장에게 1명씩 두는데 그럼에도 정치장교가 저렇게 많은 이유는 대대장에게 3명, 연대장에게 5~6명, 사단장에게 10명 식으로 놓아서다.[72] 물론 오래 같이 생활하다 보면 대충 어느 소속인지 눈치 채지만, 그쯤 되면 바로 그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전근 시킨다고...[73] 그마저도 상비사단이 17사단 하나밖에 없는 수도군단 때문에 서술이 이런 거고 나머지 군단들은 상비사단 2개 이상을 기본으로 갖고 있다. 특히 군단치고 편제가 거대하기로 유명한 7기동군단은 기계화보병사단만 4개.[74] 원래는 수도군단 예하였지만 지상작전사령부 직할로 변경되었다. 해병대 2사단과 마찬가지로 지원부대 형식으로 작전통제권만 수도군단에 넘어간 상태.[75] 주행 거리 기준이고 직선거리로는 대략 40km쯤 되며, 저항이 없다는 가정 하에 기갑부대는 2시간이면 가고 보병은 걸어서 하루 걸린다. 알보병이라 해도 가능하면 차량 이동을 하려고 하는 와중이니 실제로는...[76] 실제 세종시 방어는 제32보병사단 혼자 맡는다. 게다가 32사단은 세종시뿐만 아니라 충청남도와 대전광역시까지 방어하기 때문에 실제로 세종시 방어를 전담하는 건 32사단 예하 세종시경비단 하나뿐이다. 세종시 내에는 32사단 예하부대 외에도 항공사령부 예하 부대와 제2신속대응사단 예하 제203신속대응여단이 주둔 중이지만 이 부대들은 주둔지가 세종시일 뿐 본 임무는 따로 있다.[77] 사실 제7기동군단이 이렇게 큰 규모가 된 이유는, 북한도 북한이지만 유사시 북한을 돕기 위해 남침할 중공군까지 상대하는 상황을 가정해서 그렇다. 이 때문에 기동군단 예하 부대들은 전군에서 가장 최신식 장비를 빨리 받는 부대들이기도 하다.[78] 조선시대 5군영과 비슷한 원리다.[79] 최근에는 세종특별자치시를 유사시 수도로 활용하기 위해 발전시켰고, 윤석열 정권부터는 세종시에서도 국무회의를 진행하면서 사실상 정치수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80] 흔히 공병을 노가다 병과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하지만, 이건 후방에서 활동하는 시설공병 이야기지 전선에 투입되는 전투공병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병과이다. 특수부대인 UDT/SEAL도 시작은 폭파 팀이었다.[81] 대한민국 국군은 2013년 기준으로 1인당 평균 육군이 452발, 해병대가 282발 사격을 했는데 이것도 적다고 난리다. 관련기사.[82] 다만 북한군 출신 탈북민의 증언에 의하면 전방은 사격을 자주 하고 있다고 하나, 아마 정보가 잘못되었거나 후방부대는 전혀 사격훈련을 하지 못해서 이런 통계가 나왔을 수도 있다. 거기에다 건설부대 소속들, 즉 서류상으로만 군인인 노가다 인력의 비중을 고려하면...[83] 당연하겠지만 평범한 국가에서 자국군끼리 패싸움을 하는건 당장 군법에 회부해서 경중에 따라 물리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모가지를 쳐낼 만한 사안이다.[84] 닭을 훔치는 이야기는 군대 정훈교육 시 탈북자가 자주 해주는 말이다. 여기서는 돌로 되어 있지만 모 탈북자는 쇠꼬챙이를 데워서 살살 꼬드겨서 닭을 훔친다고. 보너스로 돼지 훔치는 법도 있다. 라이터에 불을 켜지 않고 기름만 새게 한 뒤, 돼지가 휘발된 기름 냄새를 맡고 기절했을 때 잽싸게 가져가는 것이다. 물론 도둑질 사실을 알아챈 주민이 해당 부대에 찾아가서 항의하더라도 "어디의 아무개가 우리 부대에 강제로 100kg짜리 돼지를 선물했다."라는 현수막 등을 내걸어놓고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지키는 인민군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않느냐" 라는 말도 안 되는 반론으로 내쫓기 일쑤다. - <인민이 사는 모습>[85] 과일군 출신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버섯구름이 200m까지 치솟았다.[86] 라이터를 켠 그 보초병은 도망쳐나와 생존하는 데 성공했지만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했으니 결말은...[87] 김일성 역시 '내 양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88] 다만 김일성이 죽은 이후 정춘실은 오라버니 김정일을 위해 죽겠다는 둥, 아버지 김일성을 위해 3년상을 치르겠다는 둥 떠들며 정말로 3년이나 상복을 입는 둥 유난을 떨었으나 김정일의 심기를 거슬러서 "난 그런 누이 둔 적 없다!"라는 김정일의 짜증과 함께 권력에서 완전히 밀려나버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권력에서 밀려났을 뿐이고, 그래도 2015년에 그녀가 사망했을 때 김정은이 자신의 의붓고모를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주는 등 죽을 때까지 백두혈통에 준하는 대접을 받으면서 호의호식하며 지냈다.[89] 훈련을 위해 착용했다.[90] 김정일이 측근들에게 차량을 하사할 때 그 차량 번호판이 김정일 생일을 의미하는 216으로 시작하는 것에서 유래한 단어.[91] 아예 망원경으로 훈련을 확대하여 지켜봤다.[92] 일반 대원뿐만 아니라 부소대장, 분대장, 부분대장도 사망했는데, 이들은 죽는 순간까지 "김정은 동지 만세"를 외쳤다.[93] 실제로 첫째 기사에 실린 3번째 사진을 보면 맨 오른쪽에 2명의 군인의 낙하산이 서로 얽힌 게 대놓고 보인다. 이 때문인지 이 모습을 지켜본 김정은과 군부 고위층들의 굳어 있는 표정이 포착되었다. 그런데도 김정은이 사고 후에도 "가장 극악한 조건과 불의의 전투 정황 속에서의 행동에 익숙해지기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벌이라"고 했다는 주장이 있다. #[94] 기념 사유는 "평시 훈련도 전시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모범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알려졌으며, 김정은은 수령의 품 속에서 영원히 영생하는 모습을 대대손손 선전하여 후대들도 이들처럼 숭고한 삶을 살도록 교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95] 다만 이는 북한에 PTSD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남한에서 PTSD가 대중들에게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게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2000년대 중반부터인데, 하물며 북한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96] 사실 어느 나라 군대를 가도 실제 훈련을 하면 불발탄은 나온다. 관리를 제대로 해도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게 불발탄인데 관리를 제대로 안 하는 조선인민군의 탄약이 어떨지는 안 봐도 비디오.[97] 탄약 폐기 조치는 특수한 장소에서 아주 특수한 방법으로 안전하게 처리해야 하는 데 여기에 드는 연간 처리 비용이 만만치 않다. 실제로 한국군도 상당한 수준의 비용을 폐기 처리에 투자하고 있지만 그래도 선진국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저렴한 편이라고...[98] 주장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다만 붕괴 사고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99] 김일성, 김정일을 합친 것보다 더 포악하다는 의미.[100] 북한군은 위장명칭으로 '815훈련소'란 명칭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