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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鍾琰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여성이자 종요의 증손녀로[1] 왕혼의 아내, 왕제, 왕영숙의 어머니. 염(琰)은 본명이 아니고 자다. 예주 영천군 장사현 사람.
진서 열녀전과 세설신어 현원편에 그녀에 대한 기록이 있다.
종염은 문재가 있어 종염이 쓴 시, 부, 송, 뇌가 세간에서 읽혀졌다.[2]
왕혼이 처인 종염과 함께 앉아있을 때 아들인 왕제가 뜰 앞에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왕혼이 종염에게 낳은 아들이 이와 같으니 마음이 든든하다고 하니, 종염이 만약 이 몸이 참군(왕륜)과 부부가 될 수 있었더라면, 낳은 아들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딸 왕영숙을 낳아 왕제가 여동생을 결혼시키기 위해 훌륭한 상대를 찾았지만 얻지 못했는데, 군인의 아들 중에서 뛰어난 재능을 지난 자가 있어 왕제가 여동생을 그에게 시집보내려고 말하자 어머니인 종염은 진실로 재능이 있다면 그 가문은 무시해도 좋지만 자신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왕제가 군인의 아들을 여러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게 해놓고 휘장 속에서 관찰하게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종염은 왕제에게 그 사람을 정확히 지목했다. 왕제가 그렇다고 하자 종염은 그 사람에 대해 재능은 충분히 탁월하지만 가문이 한미해 오래 살지 못한다면 재능을 펼칠 수 없을 것인데, 그의 모습과 얼굴의 상을 살펴보니 장수하지 못하니 결혼시켜서는 안된다고 했다. 왕제는 종염의 말을 따랐고 군인의 아들은 몇 년 뒤에 죽었다.
동서지간인 학부인과 친하고 서로 존중했는데 종염의 집안이 귀하고 학부인의 집안은 천했지만 서로 깔보거나 굽히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이를 칭찬했다.
왕혼의 아내이자 왕제의 어머니라는 점으로 볼 때 시기적으로는 종요의 손녀인 듯하지만 진서 열녀전에는 증손녀라면서 종요의 손자인 종휘의 딸이라고 기록되었으며, 세설신어 인용 왕씨보에서는 종염의 딸이라고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