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16:31:04

육탐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

1. 개요

陸耽
(? ~ 303)

삼국시대 오나라서진의 인물. 육항의 6남으로, 일단 사서에 알려진 육항의 자손들 중 제일 막내이다. 참고로 자는 불명. 몇몇 형들의 자(字)가 선비 사(士)자로 시작하기에 육탐도 예외없이 士로 시작할 것으로 추정된다.

2. 생애

봉황 3년(274년), 아버지 육항이 사망하고 다른 형제들이 군사를 나눠가질 때 유일하게 받지 못 했다.[1]

천기 4년(280년), 오나라가 멸망하고 항복한 형 육기육운을 따라 서진에 임관해 평동좨주(平東祭酒)에 임명되었다.

태안 2년(303년), 육탐은 청렴하다는 명성이 자자했으나 형 육기가 성도왕 사마영에게 억울하게 처형당할 때 함께 연루되어 살해당했다. 사마영의 참군 손혜가 회남내사 주탄(朱誕)에게 편지로 슬픈 감정을 드러냈다.
「뜻밖에도 삼육(三陸)이 모두 하루아침에 소멸하여 도업이 타락하고, 그 독으로 인한 고통은 무척 심해 이루 말할 수 없도다. 국가가 존망을 잃었으니, 그 슬픔이 어찌 한 사람에게만 미치겠는가!」
사람들이 육씨 자제의 죽음을 비통해 함이 이와 같았다.

후에 동해왕 사마월이 사마영을 토벌하고, 각지에 격문을 뿌려 육기, 육운, 육탐 형제가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상을 씻겨냈다.


[1] 정황상 막내인지라 너무 어려서였던 걸로 추정된다. 바로 윗형 육운이 262년생이라 아무리 빨라도 태어날 즈음엔 촉한이 망했거나 손휴가 사망하고 난 다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