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tvN 금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탐구를 정리한 문서이다.응답하라 시리즈는 2010년대 시점에서 가까운 과거의 시대를 반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일종의 시대극이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들은 과거에 유행했던 각종 사회문화적 코드나 아이템을 극중에 되살려 놓았으며, 이것을 찾아내면서 동시에 재현상의 오류를 잡아내는 것도 일종의 2차 창작적인 소소한 재미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어차피 어떤 작품이든지 재현상의 오류를 완벽하게 없애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반영이 잘 된 작품 마저도 소소한 재현상의 오류가 있을 정도.
특히 BGM에 관련하여 오차가 많은데, 극중의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듣는' 노래가 아니라 극에 삽입된 '배경음악' BGM의 경우 당연히 1988년 이후에 나온 노래를 써도 재현상의 오류가 아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해당 시대의 노래를 BGM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해서 헷갈릴 수 있는데, 심하게 말하면 BGM으로 방탄소년단 노래가 나와도 재현상의 오류와는 상관없는 게 BGM은 제4의 벽 바깥에 있기 때문. 사극에 오케스트라 음악이 나오거나, 월드 앳 워같은 2차 대전 게임에 메탈 음악이 나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때문에 박보람이 부른 혜화동(혹은 쌍문동)이 나오더라도 재현상의 오류가 아니다. 그러나 작중 배우들이 당시의 유행가가 아닌, 오늘날의 유행가를 부르면 재현상의 오류가 된다. 실제로 작중 내에서 장두석의 부채도사 노래를 성균과 덕선이 불렀는데 부채도사의 등장은 1991년이다. 그렇다고 이를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는 게 한국 사극과 대체역사물(역사소설)에서도 현대적인 표현이나 유행어 같은 게 들어가기도 한다. 유사한 예로 한국의 모 삼국지 만화책에서 병사들이 진짜 사나이를 불렀다.
극중에서 친구들끼리 대화할 때 자주 쓰는 유행어로 '웬열'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웬일이니', '헐', '대박' 정도의 감탄사로 보면 된다. 그런데 이 말은 당시의 유행어임은 분명하나 서울의 일부 지역에서만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지방에서는 아예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서울의 경우 들어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는 경우로 다양하다. 심지어 당시 서울에 살던 청소년이었지만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정말 일부만 썼던 모양이다. 웬열~이라는 말은 실제로 사용했다. 서울의 1975~76년생들이 중학교 말~고등학생때 유행했던 언어이니 1971년생인 주인공들의 고등학생 때는 유행초기였을 수 있다.
어쨌든 속어, 은어나 유행어의 경우 나이가 어린 10대~20대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일부러 현대식의 은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언급되었으므로 너무 심하게 따질 필요는 없겠다. 너무나 철저하게 당시의 시대상을 따르면 경우에 따라 현 시대의 시청자들이 보기에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가 어색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할 수 있다. 까놓고 말해 사극 등에서 100% 재현하려면 당연 배역들은 단어는 물론 문법 등에서 그 당시의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이는 현대 시청자들에게 있어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즉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느 정도는 오류를 알면서도 무시할수 있다.
2. 방영 전
- 응답하라 1988 티저 영상에서 TV화면에 1997, 1994 오프닝 배경음이 나오고 그 이후 1988에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가 흘러나오는데, 당시 1988년 대학가요제의 음반에 수록된 원곡이 아니라 1991년 신해철 2집 음반에 수록된 버전을 사용했다. 다만, 맨 위에 설명되어 있듯이 이것은 재현상의 오류라고 볼 수는 없다. 등장인물들이 직접 듣는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1988년 원곡은 1991년 버전보다 워낙 귀해서 수급에 어려움이 있다. 음원 사이트의 경우는 1988년 버전이 한동안 없었다가 2014년 월드컵 시즌 기획으로 나온 응원가 컴필레이션 음반을 통해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을 방송용 소스로 쓰자니 모노 사운드라서 사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MBC 대학가요제 공연실황 자체는 베타소스지만, 이것도 BGM으로 쓰기에는 중간 음역대가 지나치게 튄다.
- 성덕선이 등장한 2번째 티저 영상은 김완선의 '기분 좋은 날'이 흘러나오는데 1988년이 아닌 1989년에 나온 노래다. 김완선이 1988년 당시 활동곡은 '나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인데 이 곡이 김완선의 다른 곡보다 히트가 덜 되었고 잘 어울리지가 않아서 그런지 배경의 1년 후에 나온 1989년 활동곡으로 선곡한 듯 하다. 물론 이것도 재현상의 오류는 아니다.
- 형광펜은 이 시절에 없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형광펜은 이미 80년대 중반부터 판매되고 있었다. 그 무렵 어느 여인의 토막 살인사건 당시에 시체를 묻은 신문지에 친 형광펜이 증거가 되어 형광펜으로 신문에 줄을 치던 동거인이 범인으로 드러날 정도였다. 형광펜이 출시 초기에는 약간 비싼 편이었지만 작품의 배경인 1988년에는 모나미 153 볼펜 2~3자루 가격이라서 부담없이 일상적으로 쓸 정도는 됐다.
3. 배경 관련
- 응답하라 1988 공식 SNS 페이지에 따르면 극중 성선우, 김정환, 류동룡이 재학중인 학교가 쌍문고등학교로 나오는데, 실제로 서울 도봉구에는 쌍문고등학교가 없다.[1] 쌍문중학교가 수유동에 실제로 있긴 있었으나, 1995년 강북구가 신설된 뒤 1997년 강북중학교로 바뀌었다. 실제로 쌍문고등학교는 덕성여자대학교 근처에 있는 2006년에 개교한 효문고등학교가 개교 전에 썼던 가칭이었다. 극중 성덕선이 다니는 쌍문여자고등학교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학교 이름을 쓰기엔 애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2]
- 실제로는 남고인 선덕고등학교[3], 여고인 정의여자고등학교가 모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2002년에 창동고등학교가 개교하기 전까지는 도봉구에는 일반계고가 이 두 학교가 전부였다. 다만, 극중 시점에는 강북구도 도봉구여서 이보다 3곳(창문여자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영훈고등학교)이 더 있었다. 그런데 2화에서 실제로 정의여고라는 교명이 등장했다. 또 10화에서는 선덕고등학교, 염광여자고등학교[4]가 등장.
- 응답하라 1988에서 학생들이 다니는 쌍문여자고등학교와 쌍문고등학교는 도봉구도 서울특별시도 아닌 인천광역시에서 찍는다고 한다.[5] 쌍문여자고등학교는 남동구 간석동에 위치한 신명여자고등학교, 쌍문고등학교는 서구 석남동에 위치한 인천보건고등학교(구 경인여자고등학교)[6]이다. 그 외에도 동인천과 십정동 같은 구시가지에서 많이 촬영하는 모양.참고
- '브라질 떡볶이'는 실제로 정의여고 근처에 있던 떡볶이집으로, 90년대 후반까지 영업했다. 현재까지도 정의여고 근처에는 '옛날식' 학교 앞 분식집이 남아 있는 편. 미친 듯한 자료 조사일 수도 있겠지만 제작진 중 적어도 한 명 정도는 당시 쌍문동 골목에 살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지금도 정의여고 근처 쌍문고 골목은 드라마랑 유사하게 생겼다. 극중 브라질 떡볶이의 실제 촬영 장소는 충남 서산시에 위치한 얄개분식이라는 곳이다.[7]
- 쌍문역에서 우이동에 이르는 도봉로 사이 어딘가가 봉황당 골목의 모델로 보인다. 실제로 쌍문동 쌍문 골목시장에 봉황당이 아직도 운영 중이다. 실제로 8화에서 덕선이네 집 주소가 공개되었는데 쌍문3동 98-38이다. 현재의 쌍문시장 내부로, 봉황당 골목은 물론 없지만, 극중에서 묘사된 것과 흡사하게 단독주택들이 골목을 이루며 모여 있는 지역이긴 하다. 도봉구의 경우 많은 부분에서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현재까지도 90년대풍의 '골목'이 남아있는 곳이 많다.
- 성보라가 다니는 서울대학교와 쌍문동 골목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 특히 성선우와 데이트하면서부터 '학교 앞으로 갈게요'라는 식으로[8] 동네 마실 나가듯 묘사되는데, 실제로는 지하철을 갈아타고도 버스로 한참 들어가야 하며, 결코 쉽게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2015년 현재에도 도봉구에서 서울대로 통학하는 학생의 통학 시간은 인천에서 오는 시간과 맞먹는다. 당시에는 교통이 더 열악했으며, 만일 실제로 1988년 당시 쌍문동에서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학생이라면 하숙을 했을 수도 있다.[9][10] 극중에 묘사되는 체감상 거리면 쌍문동에 있는 덕성여자대학교 정도다. 제작진의 우등생 → 전문직 테크트리 페티시가 극의 개연성을 가로막아버린 경우 중 하나.
- 보통 바둑의 단수는 한자 숫자(六단)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작중에서 '최택 6단'을 표기할 때 계속 아라비아 숫자로 '6단'이라고만 나온다.
- 작중 등장하는 제일구장이 큰 건물에 운동장이 딸린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 제일구장은 건물에서 길목을 건너야 들어갈 수 있는 공원에 위치해있다.
- 등장인물의 머리스타일이 살짝 현대식이다. 당시엔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폭신한 파마머리가 유행했다.
4. 회차별
4.1. 0화
- 실제 사실 오류는 아니지만 중간에 김정봉이 자신의 방에서 기어링급 구축함으로 추정되는 군함 모형을 들고 나왔을 때 잠수함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해당 장면을 다시 보면 김정봉 역을 맡은 안재홍 배우가 모형을 얼핏 보고 2차대전 당시의 갑판이 있는 구형 잠수함으로 착각한 듯하다.
- 1988년 여름에는 김완선의 '리듬속의 그 춤을'이 유행했다는 이문세의 해설이 나온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곡은 1987년에 발표되어 유행했던 곡. 1988년에는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를 들고 나와서 3집 활동을 했었다. 이 곡은 1988년 김완선 3집 타이틀이었지만, 김완선 디스코그라피 중에서는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아서 해당 곡으로 소개한 듯하다. 비슷한 이유인지, 이문세 노래 중에서도 1988년 발매곡이 아닌 1987년 발매 노래를 소개했다.
- 쌍문동 골목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간판에서 실제로 쌍문동에서 쓰이고 관할지역 창동전화국에서 쓰이는 국번(902, 908)[12]은 사진관, 봉황당 가게에 쓰여 잘 반영되었으나 동대문구에서 쓰이는 청량리전화국 국번(957)이 일부 간판에 있다. 또 사진관 옆에 있는 88올림픽미용원은 현재 노원구 월계동 일부, 성북구 월곡동·장위동·정릉동 등에 쓰이는 912 국번(월곡전화국)이 들어있다. 또 벽보에 금성통신강북총판이 아닌 강남총판이 붙어있다.
- 비디오콤보TV 자체는 80년대에도 있었지만 작중에 나오는 디자인 형태는 90년대에나 나온다. 당시 VTR은 집집마다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몇 집 걸러 1대 정도 있었고, 따라서 주인공 5인방처럼 굳이 빨간 비디오가 아니라도 친구네 집에 몰려 앉아 비디오를 보는 게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가정에서 볼 수 있는 VTR 주력모델은 금성(하이테크)이나 삼성(핼리)에서 나온 2헤드 방식의 시꺼먼 판넬에 녹색 액정이 붙어 있는 모델이 많았고, 이 시기부터 리모컨을 지원하는 국산 모델이 나오기 시작했다.[13] 그리고 좀 잘 사는 집은 약간 오래된 일제 수입품 VTR을 구비하고 있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이런 모델들은 대개 1980년대 초 유행하던 은색 외관에 비디오를 위 뚜껑 열고 카세트처럼 집어넣는 방식(탑 로딩)이 상당수 있었다. 국산의 경우 보급이 늦은 탓에 오히려 최신 방식이었던 프론트로딩[14]이 대세.
- 한일은행(현 우리은행)은 쌍문동 삼익세라믹 상가에 쌍문동 출장소가 있었으나[15], 개점이 1989년 3월 초라 1988년 당시에는 없었다. 그리고 출장소였기 때문에 쌍문동점이 아니라 쌍문동(출)이라고 표기되어야 한다. 정확히는 수유동지점 쌍문동 출장소.당시 기사 99년 한국상업은행하고 합병하는 과정에서 점포를 정리하는 바람에 현재 쌍문동에는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처럼 ATM기는 있어도 우리은행 지점이 없다.[16] 다만 과거 한국주택은행을 계승한 KB국민은행의 경우 쌍문동에 위치해 있다.[17]
- 집안 소개하는 장면에서 짤순이라고 나왔던 물건은 2조식 세탁기로, 좌측 빨래판 커버를 열면 회전판만 돌아가는 세탁&헹굼조, 우측에는 탈수조가 있다. 아직도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 같은 곳에서는 현역으로 돌아가는 물건.[18]
- 택이네 집에서 5인방이 영웅본색을 시청할 때 방에 있는 물건들을 보여주는데 그 중에 닌텐도사의 게임기인 패미컴이 나온다. 현대전자산업(현 SK하이닉스)에서 1989년에 북미판 NES를 수입해 와 컴보이라는 명칭으로 대한민국에 정식발매하였다. 다만, 재현상의 오류라고 할 수 없는게, 당시 각 가정에는 10만원을 호가하는 현대컴보이보단 3만원 내외로 살 수 있었고 게임카트리지 종류도 많았던 일본판 패미컴[19]이 훨씬 흔했다. 오히려 컴보이가 소수이고, 재현상의 오류다.
- 교복 자율화 시대인데 남학생 교복이 있다. 하지만 1986년 2학기부터 교복부활이 시행되어 교장 재량에 의해 다시 교복을 착용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쌍문고등학교가 상대적으로 빨리 교복을 도입한 편. 그러나 1988년 기준으로 전국에 교복을 입는 학교는 5%도 없었기 때문에 시대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드라마로써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다. 남자 아이들의 사복도 궁금한 시청자들이 많을 테고, 교복은 교련복 정도로 충분하기 때문에 80년대의 학교 분위기를 전부 보여주지 못했다.[20]
4.2. 1화
- 컴보이가 아닌[22], 패미컴에 삽입되어 있는 게임 카트리지는 깜짝 열혈신기록 아득한 금메달로, 해당 게임은 1992년 출시된 작품이다. 1988년에 발매된 열혈 시리즈는 열혈고교 돗지볼부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본에서 7월에 발매한 터라, 9월에 대한민국에서 구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열혈 시리즈의 판권사인 아크 시스템 웍스라면 모를까, 닌텐도랑은 저작권 문제로 얽힐 여지가 아예 없는 편이 좋다.
- 일본판 패미컴은 한국에서 플레이를 하려면 변압기가 필수인데, 최택 집에 없지만 1973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전력공사가 진행해 온 220V 승압 사업으로 당시 가정에서는 아직까지 110V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 쌍문동 골목 시멘트 포장이 지나치게 깨끗하다. 참고로 평지길 골목 대부분 (지금은 보기 힘든) 붉은 사각 보도블록으로 포장된 경우가 많았고, 시멘트는 주로 경사진 골목길에다 눈이나 비에 안 미끄러지게 요철을 내어 포장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런 골목길은 지금도 청룡동(구 봉천동), 난향동(구 신림7동, 일명 난곡) 등지에서 볼 수 있다. 다만, 하수도 뚜껑의 경우 확실히 옥에 티다. 1980년대 골목길은 지금처럼 하수도 뚜껑이 맨홀처럼 드문드문 있는 형식보다는 배수로 위에 빗물 빠지는 틈새가 있는 돌뚜껑을 연속적으로 덮어놓은 경우가 많았다.
- 김선영이 김성균에게 라미란 어깨가 '강호동 어깨'라고 놀리는 부분이 있는데, 당시에는 강호동이 현역 씨름선수로 활동하기는 했으나,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아줌마들이 농담의 소재로 말할 정도로 그렇게 유명했던 인물은 아니었다. 시기상으로 맞는 인물이라면 이만기나 이준희 같은 선수들을 예시로 들었어야 맞다.
- 성동일이 월급봉투에 현금으로 월급을 받아오는 장면이 있는데, 이 당시 포항제철 같은 대기업들은 이미 계좌로 월급을 넣어주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러니 은행에 다니는 성동일이 계좌이체가 아닌 현금을 받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만, 계좌로 돈을 넣을 경우 바로 차압되기 때문에 현금으로 일부 나누어 받았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아니면, 그냥 직원들의 일처리로 현금으로 뽑아서 가져왔다면 이야기가 된다.
- 성동일의 급여봉투에 급여수령액이 50만원대로 적혀 나오는데, 당시 은행원의 본봉(각종 수당제외한 기본급)이 대졸 신입 5급 행원 초봉이 21만원, 고졸 6급 행원 13만원 선, 고졸 6급 여행원급(현재 텔러)이 12만원이 채 못 미치는 상황이었으니 결코 적은 급여는 아니었다.당시 5대 시중은행 직급별 본봉표. 수령액에 본봉 외에 각종 수당이 합해진 금액이니 대충 과장급 임금을 받은 것.[24] 자동차 현대 스텔라가 6백만원, 서울대 등록금이 45만원, 고등학교 육성회비가 월 5천원이었던 시절이었다.[25][26]
- 성진주가 먹고 있는 코카콜라 '1L'들이 유리병은 1980년대 초의 물건으로, 1988년 당시에는 이미 찾아보기 힘들었다. 1980년대 후반 이미 플라스틱이 일반화되며 1.5L 페트병으로 넘어가 있던 시기다. 예전 페트병은 요즘처럼 투명 단일 재질이 아니라 검은 플라스틱으로 된 받침이 부착되어 있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재현하기가 어려워서 그냥 아예 옛날 유리병으로 간 듯 하다.[27] 사실 355ml들이 코카콜라 유리병은 요즘에도 고깃집에 가면 널리고 널린 게 그 병이다. 빨간색 라벨이 없는 버전으로 갖다놓기만 하면 되는 것.
- 잠실 메인 스타디움의 3층 좌석의 색깔은 88년 당시에는 노란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네이비색으로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첨언하자면, 사실 좌석 플라스틱 재질의 차이에 따라 훗날 개선된 것이다.
- 성균이네 집안이 금성전자 대리점을 열었을 1988년 당시에는 신입사원의 월급이 30만원 안팎이었고, 아파트 가격은 5천만원 안쪽이었다. 다만, 당시 기준으로 복권 1등 당첨금 1억이 매우 큰 돈이긴 했지만, 성균이네 집안이 극빈층에서 곧장 중산층을 스킵하고 동네에서 어느 정도 부자 소리를 듣게 될 수준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지금으로 친다면 10억원대 정도의 재산 수준이다. 물론, 진짜 부자는 아니고 그냥 동네에서 조금 더 잘사는 집 수준이라고 봐야한다. 아마도, 일단 집을 사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경기호황을 겪으면서 돈이 돈을 불렀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데다가 점포수도 많지 않았고, 모든 가전제품을 대리점에서 직접 구입했다. 그래서 1990년대 초반까지도 "전자제품 대리점을 운영한다" → "동네에서 돈 좀 많이 만진다."라는 뜻이었다.
- 작중에서는 금성전자라고 언급이 되는데 1995년 LG전자로 명칭이 바뀌기 전의 사명은 금성사였다. 금성전자’‘가 아니다. 금성사 발족 이후 단 한번도 금성전자라고 칭한 적이 없다. 아마 전자 회사 중 유일하게 ~사인 것이 금성전자라고 오인하게 되는 원인인 듯.
-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극 소품에 사용된 인쇄 폰트들이 하나같이 2015년 현시대의 폰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비디오테이프의 화면 등에 들어가는 폰트들은 굴림체 계열로, 그 시절의 식자를 그럭저럭 흉내낸 것으로,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비슷하게 구현했다. 다만, 국제시장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스크롤은 화면과 글자의 비율이 심각하게 어긋났던[28] 것과는 달리 본 작의 경우 크기비율은 그럭저럭 잘 맞아떨어진다.
- 1988 서울 올림픽의 나라별 입장순서 때 드는 피켓은 꽤 비슷하게 잘 재현해냈다. 얼핏 봐서는 거의 모를 정도지만, 이 피켓에 사용된 견고딕체는 HWP에 탑재된 디지털 버전으로, 1992년 한글 2.0 전문용 버전부터 탑재되었기에 1988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글자 세로획 끝부분에 약간 각진 돌기가 튀어나와 있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영문 폰트의 경우는 한글 폰트에 비해 차이가 좀 더 도드라진다.
- 금보당 유리문에 붙어 있는 글자나 연쇄점(슈퍼마켓)의 함석 간판에 쓰인 글씨는 아예 21세기에 제작된 폰트들이다. 80년대 폰트[29]와의 차이점이라면, 21세기의 폰트는 하나같이 가로세로 비율이 좀 더 슬림하게 제작된다는 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신문의 식자가 기본이었던 정방형[30]의 아날로그 폰트에 비해 컴퓨터 2바이트로 구현되는 현대 폰트는 굳이 네모꼴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윈도우즈의 클리어타입 지원과 함께 글자의 획 두께 자체도 좀 더 날렵해졌다.
- 이는 전문가가 아날로그 식자를 하던 그 시절에 비해 누구나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을 써서 DTP를 할 수 있게 될 정도로 컴퓨터 성능이 향상된 현대와의 차이점을 크게 보여 주는 부분이다. 또한, 당시의 폰트를 컴퓨터상에서 구현하기 힘든 것도 한몫한다. 잠실 주경기장에서 성덕선이 연습하는 장면 배경에는 아예 2015년에 유행하기 시작한 '그 시절을 흉내 낸(그러나 그 시절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레트로풍 폰트(정확히는 a옛날목욕탕체)로 갈아치워 버린 현수막도 몇몇 눈에 띤다. 심지어 봉황당 유리창의 글꼴은 나눔명조이다.
- 김성균은 작중에서 그 시절 유행하던 코미디를 많이 따라한다. 유머 1번지의 코너 중 하나인 '북청 물장수'에서 "아이고 김 사장 반갑구만 반가워" 같은 것이 그것으로, 대중매체가 한정되어 있던 당시에는 코미디프로의 유행어가 전 사회적인 붐이 되던 시대였다.[31] 하지만 김성균이 극중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연기한 '부채도사'는 1991년 장두석이 유행시킨 것으로 시기가 맞지 않는다.
- 또한 동네 아줌마 3인방이 평상 위에 앉아서 콩나물을 가리며 부르는 '오데로 갔나'는 곡 자체는 예전부터 내려온 구전가요가 맞지만 1993년 MBC 코미디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MBC 중창단이 불러서 유명해진 코믹송이다. 이로부터 2~3년 후, 이 코믹송의 컨셉을 가져와서 발전시킨 것이 그 유명한 허리케인 블루였다. 다만, '오데로 갔나'를 최초로 부른 것은 MBC 중창단이 아니라 김미화와 이봉원이다. (1992년 MBC 주말 예능 TV특종연예에서 김미화가 불렀다.)
- 극중 브라질 떡볶이집 앞에서 삥을 뜯기는 장면에 '돼지고기 맛이나'라는 스테인리스 프레임에 폴리에틸렌 인쇄재질의 입간판이 보인다. 이런 모양의 전등이 내장되어 있는 입간판은 2000년대 초반에야 유행한 것으로, 과거에는 함석에 페인트칠하고 A프레임에 이어 붙인 입간판이었다. 전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대부분 네온사인이나 아크릴 타입이 대다수였으며, 그나마 입간판에는 사용하지도 않았다.
- 극 중 후반 선우 아버지의 제사 준비 중이던 김선영이 성선우에게 식용유를 사달라고 부탁하며 선우 방으로 들어서는 장면에서 문 뒤에 붙여진 영웅본색 2 포스터가 보인다. 그런데, 이 포스터가 2008년 재개봉 버전이다. 하지만 같은 회차의 맨 첫 시퀀스에는 옛날 버전 포스터를 멀쩡하게 보여줬다.
- 성덕선의 마다가스카르 피켓 걸 이야기는 실화이며, 실제 롤모델이 되는 인물이 있다. 극중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던 도중에 마다가스카르가 불참한다는 소식을 듣고 울먹이면서 슬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마다가스카르는 북한과의 정치적인 이유로 불참했다. 성덕선은 우간다 피켓 걸로 대신 참가했지만, 실제 롤모델이 되는 인물은 피켓 걸이 아니라 레슬링 시상식 요원으로 참가했다고 한다. 다만, 극 속 설정과 달리 실제 인물은 TV가 아닌 신문을 통해 입장을 표명했었다.
- 성덕선이 성화대에서 불에 타 죽은 불쌍한 비둘기를 묻어주려고 직접 가져왔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성화대 화형식' 일화는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둘 당시 <타임> 지에서 소개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었다. 다만 당시 개/폐회식 총괄기획자였던 이어령 작가는 <주간조선> 2016년 7월 11일자에서 불이 붙기 일보직전에 전부 날아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제작진이 '불타 죽은 비둘기'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은, "이제 취한 것처럼 "무조건 최고다"라고 했던 과거가 아닌 만큼 비둘기처럼 희생된 철거민들이나, 혹은 행사 미숙이나 3S정책으로 사회문제를 가린다는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가 되었으며, 1988년에 일어난 사회문제의 공과 과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4.3. 2화
- 청커버 공수작전이 끝나갈 쯤 김성균이 올림픽 육상경기를 보면서 "저거 약 묵었네?"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서울 올림픽 남자 100m 경기에서 우승한 벤 존슨이 도핑으로 금메달을 박탈당한 사건을 교차편집한 것으로, 사실 그때는 도핑에 대한 개념이 국내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사회적으로 워낙 파장이 큰 사건이었고[32] 현재에도 도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 당시에는 누구나 칼 루이스의 우승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벤 존슨이 우승을 했기에 나온 말일 수 있다.
- 성보라가 청커버가 없다고 일화에게 짜증을 내고 이후 정봉네 TV에서 서울올림픽 100m 남자 경기 라인업이 소개되는 장면에서 오른쪽의 시계를 보면 1시를 가르키고 있다. 성노을이 학교에서 전화를 받을 때 교무실 괘종시계도 1시 6분 정도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이후 달리기 경기가 진행될때의 시계를 보면 1시 43분을 가르키고 있다. 라인업을 소개하고 무려 43분 뒤에 경기를 시작했다는 얘기. 실제로 이 때 남자 100m 결승 경기는 9월 24일 오후 1시 30분에 거행되었다. 그렇다면 성덕선이 토요일이라 C.A를 안하고 종례도 받지 않고 "억수로 일찍 왔다" 라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보라가 덕선을 패는 장면 이후 일화가 금성사 CF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시계는 1시 53분을 가리키고 있다. 덕선은 그새 쥐어뜯긴 머리를 수습하고 정환네로 올라와 김성균과 북청 물장수를 찍고 있다는게 된다.
- 김정봉이 오락실에서 하이퍼 올림픽을 하는 장면에서 조이스틱과 버튼 2개가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하이퍼 올림픽은 조이스틱이 없이 버튼 3개가 보통이었다. 좌우에 2개가 대시 버튼이고, 가운데가 숨쉬기 등 기능버튼. 극중에서처럼 혼자서 플레이할 때는 플레이어가 왼쪽 버튼을 연타와 기능 버튼을 담당하고, 옆에서 구경하는 꼬마 등에게 나머지 한쪽 버튼을 연사해줄 것을 부탁하곤 했었다.
- 김정봉이 게임을 하고 있는 오락실의 실제 배경은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대광 컴퓨터 게임장이다. 1980년~1990년대의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현재에는 보기 드문 오락실이다.#
- 1980년대 당시의 비디오 촬영 화면은 날짜와 시간표시 밖에 없었으며 그나마도 뷰어상에는 표시되지 않았다. 그리고 화면비율도 당시엔 4:3비율이었고, 무엇보다 뷰어 자체가 흑백화면이었다. 흑백이 아닌 건 일본에서 나온 후지(하이수퍼)[33]나 캐논, 소니의 일부 방송용 ENG카메라 라인업으로 이건 그 당시 돈으로도 거의 중형 승용차에 육박하는 가격이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방송국에서는 ENG 확보를 못해서 다른 기관 것을 빌려서 쓸 정도. ENG를 잔뜩 쌓아놓고 쓰던 곳은 당대엔 KBS 1TV도 광고를 하고[34] 시청료도 거하게 받아서[35] (비록 80년대 중후반에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시청료 수입이 크게 줄긴 했지만) 돈이 남아돌던 KBS 본사뿐이다. MBC조차도 넉넉하지 않았다. 하물며 금성사의 가정용 하이엔드 비디오카메라라면, 촬영 화면은 현재의 VJ용 HD카메라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시청자들에게 '촬영 중'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려고 실제성 반영 논의를 스킵한 듯하다.
- 1988 서울 올림픽 폐막 다음날 아침 폐막식 관련 뉴스가 나오고 학교로 등교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10월 2일 폐막했으므로 10월 3일은 개천절이자 공휴일이다. 뉴스 내레이팅에서 '어저께 막을 내린'이라고 언급하는 데에서 개천절 확정.[36]
- 김성균의 코미디 따라 하기 기믹은 이번 화에서도 계속된다. 상술했듯 부채도사는 1991년에 나왔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재현상의 오류. '반갑구만 반가워'는 유머 1번지의 북청물장수에서 장두석과 조금산이 하는 개그이다. '고마~워'는 MBC 청춘만만세에서 김정렬, '안다고요'는 배영만이 하던 일발개그 '맞다고요'의 활용형이다.
- 쌍문고 3인방이 동시상영관에 영화 보러 가는 장면에서 "머리 긴 군인이 어디 있으며, 군복을 어디서 구해 입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시대에는 방위병이 차고 넘치던 시절이었으니 충분히 말이 된다. 어차피 예비군도 머리는 길기도 하고. 거기다 이때는 지금처럼 군용품 거래를 철저하게 단속하던 때가 아니어서, 동대문시장 등지에서 군복을 구하기 어렵지 않았다.
- 극중 삼양극장은 미아역 근처, 현재의 삼양시장 앞 오거리에서 동쪽으로 약 200m 들어간 길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2014년까지 폐건물 형태로 남아있다가 철거되었고 '자이홈타운'이라는 이름의 4동짜리 빌라가 들어섰다. 극장은 오래전에 영업을 중지하고 용도변경되어 상가 건물로 쓰이고 있었으니 촬영을 빨리 했더라도 이곳에서 촬영은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길음역 앞에 있던 극장은 "미아리극장"이었고, 1993년 폐업하였고, 길음역에서 북쪽(삼양동 방면)으로 270m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미아역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색깔로 보아 3호선 대합실에서 촬영되었으며, 극중 삼양극장은 실제로 몇 안 되는 옛날 스타일의 극장인 동두천에 있는 문화극장에서 촬영했다. (참고로 문화극장은 2관 구성으로 단관극장은 아니다.) 그리고 지하철 라커룸을 뒤지는 장면에서 뒤편에 2015년 기준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에서 쓰이고 있는 현수막이 희미하게 보인다.
- 장례식에서 어른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있었는데, 검은색 양복/치마저고리식 상복을 입은 것은 2000년대 초반 상조회사가 활성화된 이후로, 검은 상복 자체가 일본식 상조 모델을 한국 복식에 맞게 로컬라이징한 물건이다. 그 이전 장례에는 남녀 모두 삼베 적삼에 새끼줄 두른 삼베 망건(여자의 경우 머리쓰개)을 입고 있었다. 따라서 여자들의 머리에 꽂은 흰 리본핀도 재현상의 오류다. 게다가 전라남도 곡성군이라는 촌동네에서 왁자지껄한 옛날식 상갓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 당시는 1시도 1소주 정책[37]을 취하고 있었고, 판매점의 경우는 지역 소주를 일정이상 구매하지 않으면 다른 소주를 살 수 없었던 시대였다. 해당 법률 시행 이전에는 고만고만하던 진로소주가 넘사벽이 된 것이 진로소주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독점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성동일이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진로소주(일명 두꺼비)가 나왔는데, 1988년 당시의 전남은 진로소주가 아니라 보해소주가 나오는 것이 실제에 맞다. 다만, 성동일과 최택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배경이 서울 쌍문동이므로 진로소주가 나오는 것이 실제에 맞다.
- 덕선이네 집에서는 다이얼식 전화기를 사용하고, 정환이네 집에서는 버튼식 전화기와 무선 전화기도 사용하는데, 80년대 초반 전자식 교환기를 도입하면서 2000년대 초중반 전국을 전전자식으로 교환할 때까지 다이얼식 전화기와 MFC식 전화기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90년대 이후 다이얼식은 ARS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아주 큰 단점이 있다 보니 자동적으로 다이얼식 전화기는 도태되었을 뿐이다. 공립 초등학교에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 다이얼식 구내교환기를 사용했다. 실제로,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세대들은 다이얼 전화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 응답하라 1994부터 시작해서 작가 및 출연진이 강남의 고급 아파트로 은마아파트를 계속 언급하고 있다(심지어 칠봉이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자아파트 대치동 은마아파트 출신으로 설정). 당시에 강남 개발의 물결이 대치동까지 치닫는 것은 맞으나, 은마아파트는 구조 및 단가에서 타 아파트와 차이를 보이며,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주로 서민 아파트로 인식되었고, 고급아파트로 회자되던 것은 일명 우선미, 즉 선경 • 우성 • 미도아파트였다. 은마가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IMF 이후 강남 대치동 사교육 신화가 불어 닥치며, 최고의 강남 사교육 시장을 배후로 끼고 있는 은마아파트에 대한 언급이 늘어나면서부터였다.
- 게다가 이 서술 또한 응답하라 1994 정도에만 맞는 서술이며, 19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우ㆍ선ㆍ미조차 좀 괜찮은 중산층 아파트지 고급아파트는 절대 아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테헤란로 남쪽지역은 이제 막 개발된 지역으로 절대 부촌이라고 할 수 없다. 좀 더 재현성에 신경쓴다면 당시 강남 부동의 부촌인 압구정동 현대 • 한양아파트로 하든가, 부촌의 따끈따끈한 새 아파트인 서초동 삼풍아파트로 하는 것이 맞다.[38]
- 근데 1988년예 예산 5천만원 정도라면 은마아파트 정도의 레벨이 적정선이기는 하다. 압구정동이나 서초동 등의 아파트 가격은 1988년경에는 이미 5천을 가볍게 넘겨서 1억에 육박하고 있었다.
- 최택이 1988년 동양증권배를 우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델로 추측되는 1975년생인 이창호 9단과는 4살 차이인데, 실제로 이창호은 1988년보다 4년 후인 1992년에 동양증권배를 우승하였다. 다만, 이때 상대는 녜웨이핑 9단이 아니라, 린하이펑 9단.[39]
- "캡이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쓴다. 다만 '캡'이라는 말은 1992년 전후로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전국화가 된 것이 1992년경이지 그 전부터 이미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나는 캡이었어'라는 김진우의 1994년에는 이미 유행어가 지난 상황이었다. 다만, '잘났어 정말'은 1989년작인 드라마 ‘사랑의 굴레’에서 나온 고두심의 명대사로 유행어들이 대유행했던 시절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므로 1988년부터 유행했다고 볼 수는 없다.
- 이일화가 조용필의 CF를 보고 ‘용필이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김성균이 "오빠 아닌데요? 조용필 씨가 보라 엄마보다 2살 더 어립니다."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극중 이일화는 1944년생이므로 1950년생인 조용필보다 6살 위다. 다만, 그때 당시는 연예인의 프로필이 검색만 하면 나올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아니므로 김성균이 제대로 몰랐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4.4. 3화
- 3회 제목인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1988년 당시 발생한 지강헌 탈주 사건을 통해 유명해진 말이다. 물론 이 사건 이전에도 존재했던 관용구이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1960년대 중반부터 IMF 전까지 한국 사회를 관통했던 황금만능주의를 제대로 꼬집은 상징 같은 표현이 되었다.
- 회차 제목의 배경에 500원 지폐가 보이는데, 당시는 500원 주화가 일반적이지 지폐는 거의 볼 수 없던 때였다. 500원짜리 주화는 1982년에 등장했으며, 지폐는 1983년까지 발행했었다. 통상 지폐의 수명으로 볼 때, 1988년쯤 되면 지폐는 수집가의 손에나 있지 일상생활에서 보기는 쉽지 않았다.
- 성진주가 아이스크림 모양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장면에서 약 20년 뒤에 방영된 또봇 장난감이 스쳐간다.
- 브라질 떡볶이 가게 장면에서
- 재현상의 오류인지 아닌지 애매한 것: 테이블과 의자 디자인이 1990년대 후반에 유행한 것이다.
- 실제 사실 오류: 성덕선이 성선우에게 건네주는 물병은 2000년대 이후 유행한 일본식 디자인, 그것도 반투명 플라스틱이 아닌 투명 강화유리 모델이다. 당시에는 델몬트 주스 유리병을 물통 대용으로 쓰거나 불투명한 플라스틱 물병을 썼다. 기사식당처럼 약간 허름한 곳은 싯누런 알루미이트 주전자를 쓰는 곳도 있었다. 참고로, 이때는 야금기술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아 요즘 식당에서 많이 보는 스테인리스 컵도 흔히 쓰던 물건이 아니었다. (흔해진 건 중국제가 들어오고 나서다.) 당시 분식집이나 식당에선 짙은 색(주로 갈색) 도자기 컵이 대세이며, 이 컵은 이후 7화 초반 떡볶이집에서 나온다. 그릇은 뭐니뭐니해도 짜장면 그릇으로 자주 사용된 녹색 그릇[40]인데, 이 역시 7화에서 떡볶이집 씬 및 짜장면 배달해 먹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 성덕선과 친구들의 대화 도중 라면 먹고 갈래? 드립을 말하는데, 이 대사는 2001년 영화 봄날은 간다에 등장한 것이고 섹드립으로 밈이 된 것은 2014년 이후이다. 때문에 작중에서는 진짜로 "분식집에서 라면도 추가 주문하는 + 라면도 시켜주고 관심있나?" 정도로만 쓰인다.
- 박남정의 ‘사랑의 불시착’은 1988년 발매된 박남정 2집에 <널 그리며>와 함께 수록된 곡이나 1989년 후속곡 활동으로 유명해 지게 된 곡이다. 배경인 1988년 10월 당시에는 <아 바람이여>에 이어 <널 그리며> 활동을 시작한 때이며 초반에는 'ㄱㄴ춤'이 없었다. 1988년 10월 29일에 방송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영상 그리고 1989년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골든컵을 수상했으며, ‘널 그리며’와 ‘사랑의 불시착’ 2곡으로 1989년에만 골든컵을 2회 수상한 몇 안 되는 사례였다.
- 덕선이네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있다가 뉴스로 일명 내 귀에 도청장치로 유명한 방송사고를 직접 보면서 놀라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1988년 8월 4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지하철 요금을 전면 인상한다"는 뉴스를 방송하던 도중 한 남자가 방송실에 난입하여 벌어진 방송사고였다. 그때 전하려던 뉴스 기사는 손석희가 기자시절에 보도했던 소식이었다.
- 사실, 3화의 내 귀에 도청장치 방송사고는 1988년 8월 4일에 일어났던 방송사고였다. 하지만, 1화에서 언급된 성덕선의 19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피켓걸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은 1988년 9월 17일이기 때문에 내 귀에 도청장치 방송사고 사건이 먼저 등장해야 된다. 그러므로, 3화에서 이 방송사고가 언급되는 것은 시대배경의 순서가 맞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재현상의 오류가 된다. 그런데 재현상의 오류라고 보기 어려운게 드라마에서 '1988년 8월 4일'이라는 자막을 띄우며 과거 시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에 재현상의 오류가 아니다.
- 성덕선이 기차 안에서 들고 있는 빙그레 바나나맛우유에서 빙그레 로고가 살짝 보이는데, 2004년부터 쓰고 있는 현행 디자인이다. 이 시기의 빙그레는 지금의 B자 모양이 아니라 웃는 얼굴을 형상화한 로고를 사용했다. 그리고 응팔이 인기를 끌자 빙그레에서는 정말로 1988년 버전 디자인의 바나나맛 우유를 판매했다.
- 수학여행 열차 씬은 내부로 보아 직각 시트형 비둘기호 열차를 재현한 것 같은데, 오리지널 비둘기호와 달리 창문이 상하 여닫이식이 아니다. 제작진이 통일호 열차가 남아있는 걸 보고 복원하였거나 혹은 어딘가 남아있는 객차를 끌고 와서 촬영에 쓴 것으로 추정. (통일호 개조 객차는 여닫이형 창문은 폐쇄식으로 개조되고, 차축형 희멀건 백열등 대신 형광등이 달려 있다. 선풍기는 비둘기호의 경우 통로에 2개가 달려 있었다.) 참고로, 저 당시 통일호는 "특급"이었다.
- 잃어버린 카메라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부산역. 하지만 경전, 경부, 동해남부선의 모든 비둘기호는 부산역 한 정거장 전인 부산진역에서 모두 운행 타절했다. 경부선의 옛 서울역-용산역 관계와 비슷하다. 즉 1988년 기준으로 비둘기호가 부산역 들어갈 일은 없다. 거기다 이 시기의 수학여행 열차 이용은 정규열차가 아닌 전세열차를 이용하는 일이 많았고, 이 경우 경주역이 종착역이 된다. 그냥 다시 들어가서 카메라 찾아 나오면 된다는 이야기.
- 터널 지나오는 씬은 복선터널에 전차선이 가설되어 있고 PC침목이 깔려 있다. 당시 동해남부선은 비전철화 단선이었다. 경부선도 복선터널이 부설된 것은 KTX 개통에 대응한 것이며, 그 이전엔 거의 대부분 비전철화 단선 쌍굴 형태였다. 굳이 경부선이 아니라도 단선철도 녹화해놓은 소스는 많고 지금도 안동-경주 구간 같은 데에선 소스를 뜰 수 있을 텐데 조금 아쉬운 부분. 이 실수는 영화 친구에서도 등장했었다.[41]
- 성덕선이 경주역 앞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린 뒤 외치는 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는 1988년의 유행어가 아니라, 2000년 벽두에 개봉된 영화 박하사탕의 상징과도 같은 유명한 대사다. 내용상 성덕선이 유행어를 쓴 것이 아니라 2015년의 시청자들을 위한 패러디로 보인다.
- 이 당시 철도 역명판은 8.15 광복 이후 계속 써 오던 하얀색 바탕에 검은 글씨였다. 그리고 부산역 플랫폼 뒤에는 2007년부터 쓰이고 있는 역명판 디자인[42] 역명판이 슬쩍 보인다.
- 이일화가 성노을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후 화를 다스리기 위해 성동일이 마음대로 사온 태교 음악을 트는데, 이때 나온 음악이 (찬송가) '570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이다. 하지만 570장은 2000년대 후반부터 쓰이기 시작한 새 찬송가의 번호다. 1988년이라면 통일찬송가가 쓰이던 시기로 453장이 실제에 맞다. 통일찬송가는 558장이 끝이다.
- 쌍문고등학교가 타고 온 버스는 BS105. 최초 출시는 1986년 1월이고 1988년 4월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해당 화에 등장한 버스랑 비슷해졌다. 하지만 세밀한 부분에서는 옥에 티가 보인다. 특히 지금 버스라면 당연히 기본 장착인 상부타입 에어컨(속칭 슈트락타입)은 당시에는 매우 희귀한 것이었다. 일단 에어컨이 구비된 버스 자체가 흔하지 않았고, 있어도 하부냉방[43]이 주류였다. 참고로, 여기 등장한 버스에 장착되어 있는 슈트락타입 냉방은 당시엔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5팬타입.
- 또 다른 눈에 띄는 옥에 티는 버스에 달려 있던 V자형 TV안테나. 이 물건은 1989년 BH120H 페이스 리프트형 때 출시된 물건이지만 대중화된 건 1990년대다. 당시의 버스 TV안테나는 강제 환풍기처럼 생겼고 밑에 지지대가 달려 있어서 눈에 확 띄는 스타일이었다. 또한 버스에 달려 있던 대우마크도 1988년엔 없던 리뉴얼 후의 디자인이다. 즉 해당 회차에 나온 BS105는 1988년에는 없는 물건이다.
- 해당 버스의 타이어도 옥에 티가 있는데, 전륜 휠캡의 경우 1990년대에 만들어진 휠캡이다. 그리고 해당 버스의 후륜 타이어도 당시에는 희귀 물건에 가까웠던 튜브리스 타이어와 지금 쓰이고 있는 스틸제 휠이다. 88년만 해도 대형차는 튜브타입 타이어 및 튜브타입 타이어 전용 휠인 철제 휠(일명 호이루)가 주류였다.
- 쌍문고 2학년 1반이 타고 온 버스의 종이 안내판 하단에 보면 "정성껏 모시겠습니다"라 되어 있는데, 종결어미 '-습니다'는 기존의 '한글맞춤법통일안'에서 '한글맞춤법'으로 바뀔 때 같이 바뀐 것으로, 개정된 한글맞춤법은 1988년 1월에 나왔으나 시행된 것은 1989년 3월부터이므로 잘못 반영된 표현이다. "정성껏 모시겠읍니다"처럼 읍니다가 당시엔 맞는 표현이다.
- 성덕선의 친구들이 응급실에 있는 장면에서 80년대 간호사의 너스캡 및 가디건과 2010년대 디지털 의료기기가 공존하는 묘한 모습을 보인다.
- 성덕선이 류동룡과 함께 얘기하는 장면에서 밀키스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밀키스는 1989년 4월에 출시되었다. 캔 디자인은 밀키스 초기형 디자인이었던 분홍색을 따랐다.
- 쌍문여자고등학교 장기자랑 씬에서 무대 벽면이 샌드위치 패널로 되어 있는데, 저게 저 당시에 그렇게 흔한 건축재료였던지는 미지수. 보통은 예비군 훈련장처럼 콘크리트 블록 벽에 페인트 대충 칠해놓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특히 경주처럼 수학여행 한 철 털어먹고 사는 숙박업소라면)
- 지강헌 탈주 사건은 1988년 10월 8일에 발생하여 10월 16일에 끝났다. 10월 16일은 일요일인데, 성덕선이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요일이 일요일이다. 보통 학교의 수학여행은 월요일~금요일인 주중에 모든 일정을 끝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 김정봉이 샀던 올림픽 복권이 1등에 당첨되면서 (당첨금은 1억원이었다) 정환이네가 벼락부자가 된 장면이 나오는데, 3화 초반에 최택이 작년 동안 번 상금이 1억...이라고 밝혀졌다. 이 추첨식 복권은 1969년 10월부터 한국주택은행에서 주택건설기금을 모으기 위해 발행한 복권으로, 출범 당시부터 주택복권으로 불리다가 1983년 4월부터 1988년 12월까지 올림픽 복권이라 하여 올림픽 부대사업으로 활용되었고, 이후에는 제6공화국 시절 주택 200만호 건설사업과 연계하여 다시 주택복권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복권추첨은 매주 일요일에 실시되었고 KBS에서 생중계되었다. (쇼 행운열차. 이때는 프로그램 명칭이 당첨! 올림픽 복권이었기는 했지만.) 참고로 정환이네가 당첨된 제110회 올림픽복권의 실제 추첨일은 1985년 5월 12일로, 극중 시대배경이었던 1985년 5월과 일치한다. 다만 극중에 TV를 통해 중계된 복권 당첨방송의 실제 화면은 극중 설정보다 3년 늦은 1988년 5월에 추첨한 제267회[44] 올림픽복권이다.
- 장기 자랑 무대에서 무대에 세워진 스피커가 굉장히 재현이 잘되었는데 스피커 그릴망에 흰색으로 큼지막하게 D를 써놓은걸 볼수 있다. 응팔 배경인 1980년대에 싼 가격으로 교회, 이벤트 회사등에서 사용해 많이 팔리던 한국산 스피커 다트(DART)다. 이후에는 중고를 제외하면 찾아보기도 힘들다.
4.5. 4화
- 김정환이 초기에 보고 있는 드래곤 볼 만화책은 촬영을 위해 제작한 소품으로 추측되는데[45] 판형 등으로 볼 때 당시 유행하는 미니사이즈 불법 복제본이 모델로 추정된다. 제목부터 '드래곤 볼'이 아니라 유명한 드래곤 볼 해적판 중 하나인 '청룡의 비밀'이다. 도서대여점이 생기기 이전에는 일본만화의 유통은 대부분 불법 복제본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유통 경로도 서점이 아닌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판매하였고, 조악한 종이에 미니사이즈로 제본한 것을 300~500원에 판매하였다. 가격도 저렴하고 크기가 작은 데다가 일본에서 일정 권수 이상 발매된 작품을 엄선해서 한 번에 많은 연재 분량을 통째로 유통시켜서 인기가 높았다.[46] 또한 소년 점프를 통째로 복제해 팔기도 했다. 지금도 추억거리로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도 인터넷상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국내에 드래곤 볼이 정식 출간된 것은 1989년부터지만, 해적판 미니사이즈 만화책을 보는 장면은 1988년에서 1990년대 중반의 중고등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 김정환이 현관에서 쳐다보고 씨익 웃는 신발은 에어 조던 3, 그 중에서도 "파이어 레드"컬러이다. 어쩌다보니 요즘에도 그렇게 됐지만, 당시에 에어 조던을 신던 학생은 99%의 확률로 부잣집 아들내미였다. 다만, 1988년에 우리나라에서 마이클 조던은 사실상 전혀 알려지지 않은 수준으로, "에어 조던"이라는 농구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극중에서와 같이 "하이, 에어조던!"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단지 값비싼 나이키 농구화 정도로 생각해서 "안녕, 내 나이키!" 정도로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당시에 농구화나 목이 높은 운동화(극중에서 BB화라고 언급)가 유행이었는데, 프로스펙스의 "슈퍼볼"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슈퍼볼도 서민 가정에서는 꽤 비싼 편이었는데 나이키는 그에 비해 더 비쌌으니 에어 조던은 넘사벽 수준으로 비쌌다.
- 3화 내내 김정봉이 루빅스 큐브에 열중해서 해법에 골몰한다. 루빅스 큐브는 이미 70년대 말부터 국내에 보급이 된 상태였고 대회까지 열릴 정도였지만, 그래도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에 전국적으로 아이들 사이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대단하게 유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이전에 엄청나게 히트를 했던 요요와 줄팽이 같은 것이 21세기에 들어서까지 계속 다시 유행하는 것처럼 루빅스 큐브도 이후에 여러 번 유행을 거듭했다.
- 류동룡의 아버지 류재명이 학생부장 선생님인데다 공무원은 아르바이트가 금지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모아서 몰래 수학 과외를 지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47] "나는 음악 선생님이다!" 라면서 노래가사를 지어서 수학을 지도하는 개그 씬이 나온다. 이 장면은 당시 시대상으로 교사가 박봉이라서 어쩔 수 없이 몰래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버는 모습이기도 한데, 아버지로서 5형제 자식들을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인 듯 하다. 설령 과외를 했다는 사실이 들키더라도, "내 전공도 아닌 음악을 가르쳐준건데 뭐가 과외냐?" 라고 둘러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당시의 교사들은 알게 모르게 몰래 과외를 하던 것도 흔한 일이었다고 하니 마냥 개그씬으로 볼 장면은 아닌 셈이다. 실제로, 당시 교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초봉이 15만원~20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대 사범대학 학생들은 의무기간이나 채워서 재빠르게 이직하려고 안달이었다고 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선우 엄마가 타는 보험금이 월 30만원인 것을 생각하면 터무니 없는 금액임이 와닿는다.[48]
- 최무성이 토요명화를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엑셀 광고에서 나오는 현대 엑셀은 1989년 4월에 출시되었다.[49] 이전 모델은 해치백 모델은 "포니 엑셀", 세단 모델은 "프레스토"로 출시. 참고로, 이 내용은 현대차 내부에서도 지적할 정도.현대차그룹 네이버 포스트 '추억의 현대자동차 6선 응답하라 1988부터 1997까지 살펴보기' 정상적으로 나오려면 현대 프레스토 ETR이나 현대 (포니)엑셀/프레스토 광고가 나와야 할 상황. 그리고 광고 자막도 재현상의 오류. 1980년대 토요명화 광고 자막은 토요명화 로고가 아니라 그 날 상영하는 영화 제목으로 나온다. 마지막 30초 부근 참조.
- 최택이 복용하는 약봉지의 '쌍문약국'은 실제로 쌍문역 3번 출구 앞에 있으며 (88년 당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30년 이상 운영한 약국이라고.) 성동일과 이일화 부부가 칼국수를 먹으러 '도봉칼국수'라는 집을 가는데 실제로 도봉동에 있다.
-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이라는 노래는 1986년에 유행한 노래다. 1988년에 방송에 나와서 이 노래를 불렀는지는 불명. 또 조용필의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로 당시 토토즐에 출연하는 진행자의 멘트가 나오는데, 1987년 활동한 노래다. (1988년 1월 20일에 가요톱텐에서 1위를 했다.) 1988년 당시에는 '모나리자', '서울서울서울'로 활동할 때이다.[50]
- 또 토토즐에서 이덕화(역할의 정성호)가 "조용필 군"이라는 멘트를 하는데, 조용필은 1950년생, 이덕화는 1952년생이다. 2살 위 사람에게 아랫사람에게 쓰는 호칭을 사용한 것.[51] 그리고 이덕화는 여기를 보면 알겠지만 한참 어린 신해철에게도 "신해철 씨"라고 부르고 있다. 오히려 당시 같이 진행하던 여자 MC들이 '~군', '~양' 같은 호칭을 썼다.
- 저녁을 먹으면서 TV를 보던 성동일이 '어린 게 어쩜 저리 연기를 잘하냐'며 감탄하던 KBS 드라마 '순심이'는 1988년 3월 첫 방송되어 1988년 9월 서울올림픽 전에 종영한 드라마로, 시간적 배경인 1988년 11월에는 이미 종영한 뒤였다. 물론, 아래에 설명되는 공청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 또 등굣길 20-2 시내버스는 쌍문고와 쌍문여고를 갈 텐데. 미아역 근처에 있는 신일고등학교에 정차하는 모습이 나온다. 극 중 배경이 쌍문동인 데다 주인공들이 다니는 학교도 쌍문고, 쌍문여고이니 버스를 타고 등교할 만한 거리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설령 버스로 등교할 정도의 거리였다고 해도 한참 가는 거리는 아니었을 텐데, 버스 속 인파들 때문에 안경에 김이 서려 어딘지 분간을 못하고 어디냐 묻는 류동룡에게 김정환이 "아직도 멀었다"라고 언급한 것도 사실은 좀 걸리는 부분이다.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끼워 넣은 부분인 듯 싶다.[52]
- 최택이 신인기사[53]에게 져서 방에 틀어박혀 우울해하고 있을 때 친구들이 찾아와서 놀리며 기분을 풀어주는 장면에서 당시에는 쓰지 않는 말을 쓴다. "발렸다"라는 말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이후 농구가 유행하면서 블록 슛을 당했을 때 자주 쓰면서 그 의미가 확장되어 굴욕적으로 졌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보통 1980년대 당시에는 처참하게 졌을 경우 "깨지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해당 장면에서 김정환은 '깨졌다'를, 성선우는 '발렸다'를 쓰는 식으로 두 가지 표현이 섞여서 나온다. 주 시청층인 젊은 층에 타겟을 맞추기 위해 요즘 쓰는 말을 쓰는 것 같다.
- 해당 회차에 등장인물들이 TV를 보는 장면에 쓰이는 TV 광고들 중 현대 엑셀(1989년 출시) 광고가 토요명화 프로그램 전 광고로 등장하며, 채시라를 대중에게 처음 알린 롯데제과 가나초콜릿 광고(1984년작)도 같은 타이밍에 나온다. 그리고 성동일과 이일화의 칼국수 집 씬 다음에 등장하는 공익광고협의회 자녀에게 관심을 편은 1985년작이다. 다만, 시대적으로 안 맞는 현대 엑셀 광고를 제외하고, 제작시기가 차이나는 광고를 짬뽕해서 틀어주는 관행은 이 당시엔 매우 흔하고 지금도 그렇다. 특히 유선방송이 그렇다.[54]
- 정환이네 가족이 경양식집에서 외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경양식은 1990년대 이후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1970~80년대 당시에는 경양식집으로 가족들이 외식을 하러 간다면, 뭔가 특별한 날에 외식을 하러 간다는 의미가 강했다. 따지고 보면, 경제성장기와 맞물려서 점점 먹을 것이 많아졌기 때문에, 외식 문화가 주류로 떠오르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식문화가 더욱 화려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카페가 늘어나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좀 더 앞선 시대로 살펴보자면, 1960~70년대에는 짜장면도 크게 대중화되었던 외식 메뉴 중의 하나였다.
- 나온 음식 구성을 보면 1988년 당시에도 서민적인 경양식집임을 알 수 있다. 잘 보면 밥, 반찬, 메인요리가 한 접시에 담겨서 나오는데, 고급 경양식집은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는다. 고급 경양식집은 먼저 수프 나오고 그 다음에 샐러드가 나오고, 그 다음에 빵이나 밥이 다른 접시에 담겨 나온 뒤 메인 요리가 나오는 일종의 코스 요리 구성을 취하고 있었다.
- 김성균이 외식하러 나가면서 드라마 Knight Rider의 명대사 "가자, 키트!" 흉내를 낸다. 이 드라마는 85년부터 87년까지 KBS 2TV에서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의 재미 포인트 중 하나가 손목시계로 인공지능 자동차 키트를 먼 거리에서 "가자, 키트!"를 부르거나 대화하는 장면이 유명했었다. 당시 손목시계로 그 흉내를 내는 어린 아이들이 꽤 있었는데, 당시 방영되었던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그리고, 김성균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장면에서 백미러가 앞 유리에 바로 붙어 있는 형식인데, 이는 1990년대 이후 일반화된 안전 백미러다. 큰 충격을 받으면 떨어지게 되어 있다.
- 최택이 바둑을 두는 한국기원 건물이 나왔는데, 성동구에 있는 이 건물은 1994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 전의 기원은 종로구 관철동에 있었다. 관철동의 옛 한국기원 건물 vs. 현재 한국기원 건물. 건물만 다르고 작중 언급에서는 관철동에 있다고 제대로 나온다.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관철동 옛 한국기원 건물은 리모델링으로 인하여 옛 모습이 모두 사라져서 세트 없이는 촬영이 불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바둑/한국의 역사 문서 참조.
4.6. 5화
- 성선우와 성진주, 성덕선, 김정환이 먹고 있는 바나나 우유 소품이 레트로 버전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1980년대 포장은 아니란 지적도 있다. 이 장면이 나오고 불과 2주 후에 레트로 버전 바나나우유가 출시되었기 때문에 빙그레에서 비슷하게 재현하여 제공한 듯.
- 여전히 선우 방 문 뒤의 영웅본색2 포스터가 2008년 재개봉 버전이다.
- 성선우가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리복 광고에서 배우 이종원이 무용을 하다 마지막에 걸상 등받이를 밟고 스르륵 내려오는 장면을 따라했다. 그런데 이 광고의 방영연도는 1990년대 극초반으로 재현상의 오류.
- 오래 놔둬서 갈색으로 변한 바나나 가격이 1개에 2,000원으로 나오는데, 1988년의 바나나는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고가품이었다. 우루과이 라운드로 인한 수입자유화가 되기 전이라 구상무역품이나 미군부대 군납유출품만 거래되었기 때문이다. 3년 후인 1991년 수입제한이 풀리면서, 2.000원이면 1송이를 사고도 남을 정도로 가격이 폭락했다.
- 코스비 가족 만세 시작 전 광고[55]에서 단순히 '코스비 가족 만세'라고 폰트 글씨로 적혀 있다. 그런데 당시는 캘리그래피로 로고를 '그린' 후 텔레시네로 옮기는 것이 유행이었다. 팝아트처럼 방송국 소속 미술팀이 그리는 게 훨씬 예쁘고 다양한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
- 극 중 정환이네의 일요일 TV 시청 패턴이 한지붕 세가족(MBC) → 코스비 가족 만세(KBS2) → 초원의 집(MBC) → 유머 1번지(KBS2, 재방송)의 모습을 보이는데, 극 중 배경과 가장 흡사한 1988년 11월 27일 TV 편성표를 보면, 한지붕 세가족이 오전 9시 20분, 코스비 가족 만세가 오전 10시 20분[56], 초원의 집이 오후 1시 10분, 유머 일번지 재방송이 오후 2시로 나온다. 이는 제작진이 실제 편성표를 참고해 정환이네 가족의 TV 시청 패턴을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 라미란을 배웅하는 김성균이 "얼른 이 골목을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라고 하는 것은 김병조의 유행어 "지구를 떠나거라~"의 패러디. "지구를 떠나거라~" 이후 민 것이 "나가놀아라." 둘 다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서 시사콩트 후 진행자인 김병조가 한 마디씩 덧붙이던 촌평이다.
- 김정봉이 막힌 변기를 뚫을 때 사용한 맥콜 페트병을 보면 병의 아랫부분에 검은색 플라스틱이 덮인 것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페트병이 탄산음료에 주로 사용이 되었는데, 병의 아랫부분이 지금처럼 압력을 견디면서도 세울 수 있도록 굴곡이 진 형태가 아니라 단순히 둥글게 처리가 되었다. 그래서 병을 세울 수 있도록 거기에 따로 받침대를 붙인 형태로 생산이 됐다. 받침대를 붙이는 데 사용한 접착제는 글루건에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열가소성 수지였고, 접착력이 아주 높지는 않아서 세게 힘을 주어 뗀 다음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극중에 나온 받침대는 실제보다 지나치게 크고 각이 진 어색한 형태로 재현이 돼 있다.
- 성보라가 잠복 형사에게 잡힐 때 형사가 성보라에게 "서총련(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소속이 맞느냐"고 묻는데, 서총련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한총련 소속이다. 이 당시는 한총련이 전대협이던 시절로, 서울지역 학생회 연합의 이름은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었다. 다만, 운동권 조직은 전국조직이 결정된 후 지역조직이 결성되기보다는, 각 지역조직이 먼저 결성된 후 전국조직이 결성되었다. 연대순으로 살펴보면, 1987년 서대협을 중심으로 전대협이 결성되었고, 1988년 4월 서대협이 발전적 해체된 이후 5월에 서총련으로 재결성되어 전국 조직인 전대협과 연대 활동을 했으므로, 성보라가 서총련 소속인 것이 오류라고 볼 수는 없다.참고 자료 하지만, 그래도 오류는 남는데, 경찰이 성보라에게 총학생회장의 행방을 묻는 것으로 보아 성보라도 총학 소속으로 보이는데, 1988년 서울대 총학은 서총련 소속이 아니었다는 점과[57], 민정당 연수원 옥상에 올라갈 정도의 일이면 제법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2학년인 성보라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
- 여기서 성보라가 보는 다음 투쟁 장소를 적은 쪽지(택)에 "14시 가락동 민정당사"라고 적혀 있는데, 이건 재현상의 오류가 맞다. 가락동에 있던 것은 당사가 아니라 민정당 중앙연수원이었다. 시기적으로 보면 1988년 11월 26일에 있었던 민정당 중앙연수원 점거 농성일 확률이 높다.[58] 시간적으로도 오류가 있는데, 해당 사건은 오전 7시 15분에 일어난 것이다. 그래놓고 작중 뉴스 자막은 민정당 중앙연수원으로 제대로 기재하고 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민정당 중앙연수원은 3당 합당 이후에도 민자당의 연수원으로 남아 있었으나, 1993년에 매각했다. 매각 후 연수원은 철거되었고 1997년 3월에 가락쌍용1차아파트가 들어섰다. 연수원을 팔아치운 이유는 충남 천안시에 새 연수원을 건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연수원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이 터지면서 수습 차원에서 2005년 국가에 매각해버렸고, 이후 해양경찰학교가 쓰다가 전남 여수시로 이전하고 해양경찰청 연구개발센터가 들어섰다.
- 성보라가 소속된 단체를 보면 운동권 중에서도 NL 계열, 그러니까 간편하게 분류하면 민족주의 좌파 그런 식으로 볼 수 있는데[59], 이들이 본 1988년의 한국은 직선제만 가능할 뿐[60] 여전히 미국이 조종하는 식민지반봉건사회라든지,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라든지 하는 노답 사회로서,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위해 외세, 수구 세력을 몰아내고 평화로운 통일을 이뤄 진정한 자주적 민주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61] 그러니 더욱 왕성하게 데모를 하는 것. 참고로, 대학 내부에서 학생운동이 사그라진 것은 1997년 이후의 일이다.[62] 다만, 극중에서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다루면 정치적 논란으로까지 퍼질 수 있는 어른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전두환 구속 요구를 데모 주제로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에 민정당 낙선, 전두환, 이순자 구속 같은 것들이 학생 시위의 메인 구호 중 하나이기도 했다.
- 김정환이 류동룡과 얘기하면서 읽고 있는 만화책 '드라곤의 비밀'는 4화에서 나온 '청룡의 신비'처럼 1980년대 말에 국내에 불법 유통되던 드래곤 볼의 해적판 만화책이다.
- 경찰서 앞에서 성동일이 꺼내드는 담배는 "솔"로 당시 국민담배로, 1갑 가격은 500원이었다. 88시리즈 이후 600원짜리 한라산이 나오며 고급화 라인업을 구축해간다. 담배 값 하나에도 당시 경제성장을 엿볼 수 있는 부분. 아이러니하게도 솔은 1994년 정부가 담뱃값을 인상할 때 이것만 오히려 가격을 내려서 1갑에 200원으로 책정, 저소득층을 위한 초저가 담배의 포지션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근 10여년간 200원의 가격을 유지하다가 2005년에 단종되었다.
- 극 중반 광고 포스터에 "없읍니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당시에는 읍니다도 표준어로 인정되던 때였지만, 쌍시옷이 아닌 받침 뒤에는 -습니다를 붙였다.[63] 다만, 그 당시에도 없읍니다 등의 오기는 많이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읍니다 항목 참조.
- 경찰서 문 앞에 LED 전광판이 비쳐보였다.
4.7. 6화
방송된 중국 기사들과 최택. | 농심배 세계대회 당시 중국 기사들과 이창호 九단. |
- 최택의 바둑 이야기는 실제로 이창호 九단의 실화를 모티브로 그리고 있다. 2004년 이창호는 농심배 세계대회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5연승의 신화를 썼고, 이창호는 상대 기사들에게 다시 한 번 공포를 심어주었다. 극 초반 중국 기사들이 희희낙락하며 걸어가는 장면 뒤 최택이 혼자 유유히 복도를 걷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이창호가 혼자 걷는 사진을 재현한 것이다. 자세한 것은 제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 참고.
- 성보라가 빌린 차는 대우 르망으로 재현이 잘 된 듯하지만, 1989년에 출시된 스포츠형의 모델 GSI다. 게다가 휠 캡은 대우 씨에로의 휠 캡으로 완벽한 재현상의 오류. 게다가 성보라가 르망을 몰다가 똥차라고 욕하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 시점에서 르망 GSI에 똥차라고 하는 건 2015년 시점에서 최신형인 LF 쏘나타나 아반떼 AD에다 대고 똥차라고 하는 격.
- 성보라가 성덕선의 자켓을 입고 족구를 하는 장면에서 주변을 보면 나무가 상당히 푸르른데, 이 회차의 끝에서 첫눈이 온다. 최소한 잎이 물들었거나, 낙엽이 떨어졌어야 했을 때다. 촬영을 여름-가을 사이에 진행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
- 최택 六단의 기사가 실린 부분과 그 옆의 실제 옛날신문 기사를 잘 비교해 보면 폰트의 판형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옛날 조판시절 식자는 화면에서처럼 위아래가 납작하게 눌려 있는데, 세로쓰기할 경우 같은 면에 더 많은 글자를 박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로 편집한 최택의 가상기사는 그런 것 없이 글자가 날렵하다.
- 최택의 제 2국 상대인 장쉬 九단[64]은 실제 인물을 보면 외려 늙수그레한 아저씨라기보다는 최택 역을 맡은 박보검 배우와 은근히 비슷하게 생겼다. 그리고 극중 장쉬가 내뱉는 혼잣말 버릇은 조치훈 九단이나 요다 노리모토 九단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분명 일본인데 장쉬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등장하는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는 장쉬가 일본기원 소속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인 스승 고바야시 고이치[65]에게 바둑을 배웠으며, 그의 딸 고바야시 이즈미와 결혼했다. 현재는 대만에서 거주중이라고 한다.
- 최택의 국가대항전 결승 5국에서 대국 장면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연출되었다. 200수 정도 진행된 국면이 잠깐 잡혔는데, 서로 대단히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최택과 상대 모두 1~2초 안팎마다 한 수씩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큰 대회의 결승급 대국이라면 대국자 1인당 5시간에서 길게는 8시간까지 생각할 시간을 주고, 설령 대국자가 시간을 모두 소진한 후라도 한수당 30초~1분 정도의 초읽기 시간을 별개로 준다. 작중 등장한 것처럼 손 가는 대로 속기를 두는 풍경은 이런 큰 대회에서는 경기를 포기한 게 아닌 한 나올 수가 없다. 정확히는 시대상에 대한 재현상의 오류는 아니라, 바둑이라는 소재에 대한 재현상의 오류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작중의 대국 장면 자체가 1~2분 내외로 짧게 끊어서 등장하는 상황에서 30초~1분의 초읽기를 실제시간대로 삽입하는 것은 무리이고,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엇박이 나면 드라마 전체가 망가질 우려도 있으므로 드라마적인 과장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사실 이럴 때 쓰라고 몽타주라는 기법이 있다. 원래 용도는 아니지만 현재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긴 시간을 보여줄 때 유용하게 쓰는 기법이다. 편집의 기술이 아쉬운 부분.
- 결승 제 5국 시작 전 한자로 "출입문"이라고 써 있는데 '문(門)'자가 한국이나 대만, 홍콩에서 쓰는 번체자로 쓰여 있다. 대국이 열리는 곳은 중국 상하이로, 간체자를 쓰는 곳이다. 다만 중국에서도 고풍스러운 곳, 엄숙하고 전통적인 권위를 드러내는 곳에 번체자를 쓰는 일이 적지 않고[66] 극의 배경인 1988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의도했다기보단 간체자로 변환하는 것을 제작진이 깜빡한 것이겠지만, 국가 대항 바둑 대국이라면 번체자를 사용하는 것이 어색한 일은 아니다. 당시엔 중국에서도 간체와 번체를 모두 자유롭게 사용하는 인구가 적지 않았고, 심지어 한국과는 수교하기도 전이니 한-중-일의 의사소통을 위해 번체를 사용했다고 보아도 좋다.
- 성덕선의 탁상 알람시계에 '아남전자' 로고가 새겨져 있는데, 1990년대 이후에 바뀐 CI가 새겨져 있다.
-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방송 도중 어떤날의 '그런 날에는' 이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이 노래는 1989년 6월에 발표된 어떤날 2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이지만, 1987년 2월에 발표된 옴니버스 앨범 우리노래전시회 2집에도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재현상의 오류라고 볼 수 없다. 1987년 버전의 편곡과 방송에 나온 1989년 버전의 편곡이 살짝 다르기는 하다.
- 최택의 와이셔츠가 빈폴 제품이다. (류동룡이 단추 다시 잠가 준 제품) 빈폴은 1989년에 런칭하여 극중 시간인 1988년 11월에는 존재하지 않는 브랜드라는 점이지만, 빈폴이 응팔의 제작 지원을 했기 때문에 일부러 노출했을 가능성이 크다.
- 김정환이 우편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정환이네 집 주소가 공개되었는데(쌍문3동 98-38), 실제로 쳐보면 쌍문시장 골목에 연결된 작은 골목길에 붙어있는 대지 지번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쌍문시장 골목 자체에 차량 진입이 여의치 않은데다 집 앞 골목은 더더욱 좁은지라 차량을 이용한 뷰 촬영이 불가능하여 거리뷰, 로드뷰로 확인할 수 없다. 실제로 가서 보면 극중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1층짜리 작은 집이다.
- 1988년은 기상청에 의하면 서울 첫눈 기록은 12월 10일이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날 라디오에서는 12월 첫째주라고 얘기한다. 참고로 학력고사일은 12월 15일.
4.8. 7화
- 7화의 제목인 '그대에게'는 신해철이 무한궤도 소속 당시 불렀던 곡으로, 본 드라마의 메인 타이틀 오프닝 곡으로도 쓰였다. 신해철은 1988년 대학가요제 당시에 이 곡을 통해서 대학가요제로 화려하게 데뷔했고 대상을 수상받으면서 단숨에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해당 장면에서 전주가 나오자마자 성덕선과 친구들이 "이게 1위다!"라고 티격태격하는데, 이는 그들뿐만 아니라 당시 1988년 대학가요제의 심사위원이었던 가왕 조용필도 전주를 듣자마자 대상감으로 찍었다고 하며, 이 '팡 터지는 전주'는 전적으로 신해철의 계락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신해철 항목 참조.
- 레트로풍 소품들 중에서도 특히 그 시절 과자나 맥주같은 먹거리가 자주 등장한다. 모두 협력사의 PPL로, 특히 롯데제과와 크라운맥주의 재현도는 괜찮은 편이다.
- 성진주가 먹고 있는 '선물세트'는 1980년대에 유행했던 것으로, 소포장된 과자들이 여러 개 들어 있었으며, 가격은 당시 돈으로 대략 3,000원선. 짜장면이 1,000원 하던 시절의 3배 가격이니, 2015년 현재 금액으로 약 12,000원 내외. 주요 생산업체는 화면에 등장하는 롯데 외에도 해태제과의 종합선물세트가 있었으며, 체감상 시장점유율은 비슷비슷. 당시는 외벌이 샐러리맨 아빠들이 퇴근할 때 먹을 걸 선물로 사들고 가는 게 일상적이던 시대다.
- 성동일이 농구를 보기 전 광고에 나온 기아 캐피탈은 배경의 3개월 후인 1989년 3월 출시이다. 당시 기아의 최신 모델을 반영하자면 기아 프라이드 내지는 기아 콩코드 광고가 시기상 맞다. 프라이드는 실제로 한기범 선수가 탔던 차이기도 해서 뜬금없이 캐피탈이 나온게 좀 의아한 부분이기도. 아마도 2015년 방영시까지도 살아남은 브랜드인지 여부에 따라 간접광고를 피해 갈린 듯 하다.
- 화면에는 나오지 않지만 기아 캐피탈 광고 직후 배경음으로 최진희가 부른 델몬트 따봉 주스 CM송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델몬트가 '따봉'이라는 말을 #광고를 통해 전국에 유행시킨 건 다음해인 1989년 상반기이다. 그리고 최진희의 CM송은 따봉이 힛트친 후 후속작 격으로 1990년에 나왔다. (광고보기 - 이수만도 함께 나온다!) 따봉 2번항목 참조.
- 시대적 상황과는 무관하지만, 극중 상황처럼 비가 오는데 장독대 뚜껑이 열려 있으면, 이건 빨래 안 걷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형사고로, 장맛 다 버린다. 특히나 1988년 당시에 서울 공기에 가득 찬 아황산가스는 9시뉴스 날씨 시간에 주요 오염지수로 나올 정도였다. 한 마디로 산성비. 라미란이 기겁을 하고 우산도 없이 뛰처나간 이유가 있다. 참고로 화면에 나오는 것처럼 아랫배가 불룩한 장독은 주로 경상도에서 쓰는 것으로, 경기도 장독은 약간 더 날렵하다.
- 성덕선과 친구들이 마음먹고 압구정동으로 놀러가는 모습이 나왔는데, 그 당시 압구정동은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라고 보기는 어려웠다.[67] 1990년대 오렌지족이 화제가 되면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기도 했으나, 주로 부유층 자제들이 노는 곳으로 알려졌으며 예나 지금이나 먹거리, 입을거리의 가격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높은 편이다. 고등학생들이 마음먹고 놀러갈 만한 곳은 오히려 교보문고, 종로서적 등이 있었던 종로나 광화문쪽이었고 극장이나 상가 등도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도 꽤 많은 번화가였다.
- 백팩을 매는 방식이 다르다느니, 강남강북 차이가 어떻다느니 하는 말이 나온 것이 1990년대 중반부터였고, 1988년에는 강남 특유의 문화특성이 막 형성되기 시작하던 시기다. 즉, 이 당시는 강북에 사는 학생들이 딱히 강남으로 가서 놀 이유는 별로 없었다. 맥도날드를 에피소드에 넣기 위해 일부러 압구정동을 넣은 것이라 해도 당시에는 아직 햄버거 등의 패스트푸드가 본격적으로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이전이었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게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던 수준이다. 게다가 맥도날드 2호점도 그 해 10월에 종로에서 오픈했기 때문에, 차라리 2호점으로 설정하는 것이 당시 분위기상 더 자연스럽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리수라고 보기는 힘든 것이, 외국계 대형 프랜차이즈의 국내 입성은 요즘에도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일으킨다. (이케아 국내 입점 참조) 성덕선 일행이 '맥도날드'에 대해 궁금해서 벼르고 찾아간 상황이라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긴 하다. 아무래도 1호점이라는 상징성이 더 이목을 끌기도 하고.
- 대한민국 맥도날드 1호점은 1988년 3월 개점한 압구정점으로, 맥도날드의 협력을 얻었는지 비교적 재현이 잘 된 편이다. 2015년 현재는 대한민국 내에서 약 400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1호 본점의 압구정점은 로데오거리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서 2007년 7월에 폐점했고 현재는 유니클로가 입점한 상태다.[68] 그래서 맥도날드 씬의 실제 촬영지는 압구정점이 아니라, 구의역점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 작중에 햄버거를 시킬 때 휠레-오-피쉬버거(Filet-O-Fish)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영어로 된 풀네임이다. 한국에는 처음부터 로컬라이징 되어 휘시버거로 들어왔다. 참고로 이 휘시버거는 2008년에 단종되어 현재는 한국에서 먹을 수 없게 되었다가 2021년에 재출시 되었다.
- 이후 성덕선과 김정환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현재의 간선 버스 노선도가 얼핏 보인다. 참고로, 당시 쌍문동과 압구정로데오를 연결해 주는 노선은 구 11번으로, 현 141번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노선인데 이걸 타고 오면 거의 1시간 가까이 걸린다. 물론 1기 지하철은 모두 개통되어 있었기 때문에 쌍문역-충무로역-압구정역-(엄청나게 뛰어서 10분)-로데오로 한 45분 넘게 걸려서 올 수는 있었지만, 김정환이 금방 도착한 정황상 성덕선이 부른다고 빨리 오기 위해서 총알택시를 타고 날라 왔을 가능성이 높다.
-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데 창문에 비춰진 간판이 돋움체 계열의 LCD간판이다. 참고로 당시에는 네온사인 간판이 대유행이었다. LCD, LED간판은 소자가 싸진 후인 2000년대초가 되어서야 널리 보급되었다.
- 1988년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비가 많이 왔었고, 날씨가 따뜻했다고 했지만 실상은 비는 오지도 않았고 상당히 추웠다. 크리스마스 날의 서울 날씨는 최저기온 영하 7.1도, 최고기온 0도, 평균기온 영하 4도, 강수량 0mm. 다만, 직전 해인 1987년에는 크리스마스 당일 서울의 낮기온이 영상 10도를 기록할 정도로 매우 따뜻했었고 비도 오지 않았다. 1987년 겨울가뭄은 지금도 기상관측 사상에서 수위권에 들어가는 재난 중 하나다.
- 비 오는 장면에서 2단으로 접는 자동우산을 사용하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2단으로 접는 자동우산은 1990년대 중반 이후가 되어서야 보급되었다. 1988년에는 일반적인 자동우산조차 흔하지 않았고, 접는 우산은 비를 막기에는 강도가 약해서 햇빛을 막는 양산 종류만이 있었으며, 그나마 지금처럼 성능이 좋지 않아 잘 펴지는 것도 아니어서 사용이 불편하고 잘 망가졌다. 국내에서 우산가격이 저렴해진 것은 중국에서의 수입이 확대된 이후이다. 제작진도 이 점을 인식했는지 이후 극중에 등장하는 우산들은 급격하게 그 퀄리티가 낮아져서 자동우산이 아니라 조악한 비닐 수동우산 등으로 바뀐다.
- 당시 일기예보 장면에 등장하는 김동완은 현재로 치면 기상 캐스터의 위치에 있긴 한데, 엄밀히 말하면 단순 캐스터가 아니라 '예보전문 보도위원'이었다. 원래는 관상대(현 기상청) 소속 예보과장으로 재직 중 TBC 등 민간방송 뉴스에 예보관으로 등장했고, 1980년대 초반 MBC가 거액의 현금과 함께 부장 내지 이사급인 보도위원직 직함을 동시에 주며 모셔간 것.
- 김동완 예보관의 경우 단순히 날씨만 전하는 게 아니라 "날씨가 추워집니다. 여성 분들은 짧은 옷차림에 유의하셔야겠습니다." 같은 생활형 기상예보로 인기가 높았다. 또한 1980년대 '일기예보'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로, 심지어 연예인들이 출연하던 '이경규 몰래카메라' 초기에 '몰카'를 당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었다. 그리고 나이 든 사람들, 또 그 독특한 목소리에 익숙해진 40~50대는 요즘의 젊은 기상 캐스터들에게 아직까지 적응을 못했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할 정도다.
- 참고로, 현대 한국 방송가에 통용되는 기상전문 캐스터의 효시는 KBS 뉴스광장의 이익선으로, 그 전에 김동완 보도위원과 함께 인지도가 있던 인물인 KBS 이찬휘(SBS 창사 때 이적), 조석준(훗날 기상청장을 역임), MBC 지윤태 등은 기상전문 분야인 '기자'이다.
- 어른들과 따로 아이들이 짜장면을 먹는 장면 이후 성노을이 LP판을 뒤적거리는 장면에서 우표 수집책이 보이는데, 편철된 우표 중 1993년 12월 20일에 발행된 야생화 시리즈 제 4집 중 '골병꽃'과 '솔붓꽃' 우표, 그리고 1994년 8월 22일에 발행된 제21차 만국우편연합총회 '책가도' 우표가 포함되어 있다.
- 성진주가 눈사람이라고 부른 아이스크림은 기성품이 아니라 콘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두 스쿱을 올린 형태로, 배스킨라빈스의 더블주니어 비슷한 형태다. 구멍가게에서 이런 형태의 떠 주는 벌크 아이스크림을 파는 것은 그다지 보기 힘든 풍경은 아니었고, 이미 이 시기에는 배스킨라빈스의 한국 진출(1987년)과 더불어 여러 업체가 벌크 아이스크림 시장에 진출, 구멍가게에서 프랜차이즈 전문점으로의 전환이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4.9. 8화
- 극 초반에 과산화수소와 맥주로 염색을 시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탈색이다. 실제로 가능한 방법이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유행하기는 하였다.
- 극중 아모레 아줌마, 쥬단학 아줌마 등 화장품 방문판매원이 등장하는데, 1980년대까지만 해도 화장품은 방문판매가 대세였다. 미리 약속을 하면 각종 화장품을 넣은 큰 가방을 든 여성 판매원이 찾아오고, 동네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그 집에 모여서 마사지를 받거나 화장품 체험을 하고 구입하는 것이 그 당시의 풍경이었다. 이 문화가 바뀐 것은 1990년대로, 방문판매의 비중이 줄어들고 화장품 전문매장이 대세가 되기 시작했다.
- 극중 등장하는 화장품 브랜드 중 아모레와 쥬단학은 지금도 나온다. 아모레는 태평양의 브랜드로, 하도 이 브랜드가 유명하다보니 지금은 아모레퍼시픽으로 사명을 바꿨다. 쥬단학은 한국화장품의 브랜드로, 80년대까지만 해도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양대 브랜드였다.
- 성선우와 김정환, 류동룡이 보는 가요톱10에서 이지연이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를 부르고, 이상은이 ‘담다디’를 부르는 무대가 나오는데, 두 무대의 방송분이 서로 다르다.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는 88년 5월 25일 가요톱10 울산특집 방송분에서, ‘담다디’는 가요톱10 88 연말결산 방송분에서 따왔다.
- 또한 5인방이 모여 가요톱10을 보는 시각이 해가 떠 있는 낮이나, 당시 수요일 밤 8시에 방송되었다. 1988년 연말결산은 1988년 12월 28일 저녁 7시 10분에 100분간 편성. 하지만 주말에 재방송을 봤을 수도 있는데 12월 31일 편성표에 없다.
- 성선우와 성진주가 같이 보던 '태양소년 에스테반'은 '1987년' 2월경부터 그 해 가을까지 MBC 저녁 시간대에 편성되던 프로이다. 이후 1993년 아침 9시 시간대에 역시 MBC에서 재방영.
- '라밤바'의 미국 개봉이 1987년 7월이었고, 국내에는 1988년 5월말에 개봉하여 참고 그 다음해까지 상영이 되었다. 또한 비디오는 1989년 3월에 출시하였다.[69] 워낙 인기가 많았던 영화라 시기적인 오류를 배제하고 삽입한 장면으로 보인다.
- 친구들끼리 택이 방에서 모여 라면을 먹으면서 영화 라밤바를 비디오로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라밤바의 OST이자 가수 Los Lobos의 La Bamba는 1987년 8월 29일 이후 3주간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것은 빌보드 차트에서 영어가 아닌 외국어(스페인어) 곡으로 수상한 5번째 곡이기도 하다.[70] 1996년에 전세계적으로 레전드급 인기를 끈 댄스곡 마카레나가 6번째로 빌보드 차트에서 1996년 8월 3일 이후 14주 연속 1위를 기록했으며, 마지막 외국어 수상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Maroon 5의 One More Night로 2위로 밀렸지만 7번째 외국어 1위 수상곡이 될 뻔 했다.
- 덕선이네 집에서 밥을 먹던 수경의 언니가 "항상 라면만 먹었다"고 언급한다. 밥을 해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 넣은 대사로 보여진다. '이때 라면도 비싸지 않았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 인스턴트 라면은 1963년에 '삼양라면'이 최초로 국내에 출시되었고, 1969년 이미 연간 1,500만 개가 팔려나갔다.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 덕분. 1980년대 후반에는 오늘날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신라면,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팔도 비빔면 등이 모두 데뷔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을 노려 컵라면도 등장하기 시작했다.[71]
- 게다가 결정적으로 삼양라면의 가격은 1990년 우지 파동으로 판매를 중단할 때까지 100원이었다. 수경이네 집이 삼시세끼 라면밖에 못 먹을 정도로 돈 없는 집이라 보긴 어폐가 있고, 그냥 '부모님이 안 계셔서 라면 끓여 먹었다'라고 해석하는 게 적절할 듯. 임춘애 항목에서 보듯 임춘애의 '라면소녀' 이미지 때문에 삼시세끼 라면만 먹었다라는 게 이 당시에는 ‘어이구... 쯧쯧...’ 하는 소리 듣기엔 충분했다.
- 참고로 본작에서는 그 당시 라면이 깨알같이 많이 나오는데, 대충 지금까지 '해피'(농심)[72], '우리집 라면'(빙그레) 등이 등장.
- 성덕선과 최택이 함께 본 영화 마지막 황제는 미국에서는 1987년에 개봉했으나, 한국에서는 1988년 말에 개봉하였다. 상영시간이 2시간 42분이나 되어서 중간에 휴식시간이 있었다. 이틀이나 밤새고 간 사람이라면 당연히 잘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 참고로, 마지막 황제는 영화배우 김지미가 세운 영화업체인 지미필름에서 수입해서 서울 75만 관객(전국 250만 정도)이 들어 외화 부문에서 흥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지금은 외화가 현지와 거의 시차 없이 개봉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1988년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입했다가 영화 흥행이 실패하면 꼼짝없이 그 손실을 수입사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 사실, 우리나라의 할리우드 영화개봉이 유난스럽다고 할 정도로 빠른 편으로, 우리보다 영화시장이 큰 일본은 미국 개봉 후 몇 개월 뒤에나 개봉하는 경우도 흔하다. 헐리웃과의 동시개봉은 사실 직배사나 규모가 큰 배급사가 아니면 하기 힘들다. 사실 이건 불법복제라는 웃지 못할 사정이 있는데, 지금은 덜하지만 2000년대 초중반에는 초고속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보급되면서 국내에는 아직 개봉 안 한 영화 캠버전이나 극장 전달 과정에서 유출된 판본이 자막까지 붙어서 동영상 파일로 돌아다니는 일이 흔했다. 그러다보니 배급사들이 불법복제로 인한 손해를 줄이기 위해 동시개봉을 하는 방향으로 간 것이다.
- 성선우가 성보라에게 볼에 뽀뽀를 하고 도망갈 때 전주만 나오는 음악은 1990년에 발매된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다. 특히 이 노래는 당시 20살이었던 윤상을 일약 최고의 작곡가 반열에 올려놓은 곡으로도 유명하다. 이 장면에서 삽입된 것은 '보라'빛 향기이기 때문인 듯 싶고, 선우-보라 커플의 주제가로 밀어주고 있는 것 같다.
- 성덕선이 수경과 싸우고 잡혀간 신창파출소는 실제로 창동 북한산 현대홈시티 2차 아파트 근처에 있는 파출소로 성덕선이 사는 쌍문3동에서 비교적 가까운 파출소이다. 참고로, 신창파출소에 걸린 시정방침에 쓰인 내무부장관이 이동호라고 되어 있는데, 이동호 장관은 1992년 3월에서 9월까지만 재임하였다. 1988년 연말에서 1989년 연초 당시 내무부장관을 재임한 이는 이한동이다.
- 김정봉이 대학 입시에 탈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공부에 재능이 없어보이는 데다 매사에 나사가 빠져보이고 특이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머리 하나만큼은 비상하다고 봐야 한다. 5화에서 등장하는 여러가지 잡다한 지식이 많다거나 10화에서 등장하는 카세트테이프의 녹음에서 영어 노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는 것을 감안하면[73] 비교적 괜찮은 머리의 소유자로 보인다. 즉 동기부여가 안되고 다른데 정신이 팔렸거나 심장질환으로 고생했던 환자였고 시험공부에 핸디캡이 있어서 대학에 낙방하던 케이스라고 봐야할듯.
- 결국, 나중에 성균관대 법학과에 붙으면서 알고 보면 김정봉은 우등생임이 밝혀진데다, 내용 정황상 아마도 서울대에 입학하기 위해서 7수를 선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득점 장수생에 더 가깝고, 서울대가 아닌 다른 명문대학교로 입학하려고 노력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11화에서 등장한 정봉의 수험표와 성균의 전화통화 내용을 살펴보면 제1지망이 법학과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점수별 진학 예상 가능 대학 및 학과를 배열한 대학 진학 배치표가 존재했던 점을 감안할 때, 가능성도 없으면서 서울대로 지원하는 무모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시험 운이 따라주지 않던 고득점 장수생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 물론, 2020년대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왜 하필이면 서울대를 입학하려고 7수씩이나 장수생을 했느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1980년대는 지금보다 대학교의 위계 서열이 더더욱 확실해서 사회적인 대우마저 완전히 달랐던데다 서울대로 진학한다는 자부심도 대단했던 시절이었으니[74] 공부를 잘하는 입시생들 사이에서는 "나는 무조건 서울대가 아니면 안 된다!" 라면서 다른 대학교는 쳐다보지도 않고 재수를 선택하는 경우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시대였다. 그리고, 가수 성시경처럼 서울대에 입학하기 위한 노력으로 3수를 선택한 사례를 생각해본다면 (결국 성시경은 4수를 포기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한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 1980년대 후반 당시의 성균관 법대는 점수대로만 따진다면 인문계에서는 서울대 최하위학과까지 겹쳤으며, 자연계로 교차지원을 한다면 지방소재의 의치한도 가능한 수준의 성적이었다. 그리고 저땐 전기, 후기로 대학이 나뉘었기에 문과는 서울대 법대, 인문대학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성균관 법대나 외대 영문학과, 정치외교학과를 가고, 이과의 경우는 서울대 공대나 의대에서 떨어지면 한양대 공대나 의대를 가는 진풍경이 허다했다. 이른바 후기 삼대장.
- 김정봉이 자신의 유산을 정리하는데 우표 수집책에 편철된 우표 중에서 1994년 8월 20일부터 발행된 기본료 130원 시기의 보통우표인 '소형우편차', '비행기', '열차', '여객선' 우표가 포함되어 있으며, 우표 수집책 좌측 상단에 편철된 어류시리즈 우표는 1991년 6월 8일 발행된 어류시리즈 6집의 '긴돌개', 1989년 9월 30일 발행된 어류시리즈 4집의 '철갑둥어', 1990년 7월 2일에 발행된 어류시리즈 5집의 '복섬'과 '흰줄납줄개'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우측 하단에 위치한 '정이품송' 보통우표는 1993년 3월 22일부터 발행되었고, '다람쥐' 보통우표는 1994년 8월 20일부터 발행된 우표, '바다거북이' 보통우표는 1994년 12월 19일 발행하였다.
- 김정봉이 입원한 병원은 묘하게 서울대학교병원 건물을 닮았다(실제 건물외부 인서트는 국립경찰병원이다.). 등장하는 이름이 '한국대학병원'이고,[75] 한국에서 제일 실력 있는 의사가 있다는 점에서는 서울대병원이 모티브가 맞는 듯.[76] 수술장 입구의 수술실 폰트는 1화에서 언급한 디지털 견고딕체이고, 수술장 앞 대기장소의 의자도 2010년대에나 보이는 내화구조의 철제 벤치이다. 1980년대 병원 대기실 의자는 거의 대부분 제약회사에서 제공한 나무벤치이거나 그나마 고급 인테리어를 갖춘 곳이라면 인조가죽에 스펀지를 채워 넣은 모양이 대세.
- 성보라가 남자 친구와 헤어지는 장면에서 비가 내리고 곧이어 나타난 성선우가 씌워주는 우산은 골프우산이다.
4.10. 9화
- 인신매매 얘기가 나올 때 TV 속에서 지나가는 화면으로 나오는 복도 씬은 당시 널리 방영되었던 공익광고로, 어떤 아가씨의 뒤를 뒤따라오던 수상한 남자가 알고 보니까 옆집에 사는 아이 아빠[77]였다는,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자' 는 내용이다. 해당 공익광고 성덕선과 김정환이 골목길에서 겪은 상황이 해당 광고의 패러디다. 참고로, 당시 인신매매가 상당히 기승을 부렸는데, 1980년대 경찰력을 죄다 공안사범(사실상 시위 진압)에 할당하다 보니 민생치안에 거대한 구멍이 생겨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정권을 지키기 위해 민생을 나 몰라라 한 것이다. 이 때문에 '80년대 10대 범죄'니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같은 굵직한 범죄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노태우 정부가 칼을 빼든 것이 바로 10.13 특별선언이다.
- 김정환이 빌려온 프레데터 비디오테이프는 실제로는 당시 20세기 폭스사의 영화를 독점출시했던 대우전자에서 나왔고, 제작은 협력사 세신영상(훗날 우일영상)이 맡았다. 드라마에서 출시사로 표기된 영성프로덕션은 영화제작 및 홍콩영화 전문 수입사였던 동아수출공사가 1990년에 만든 자회사이기 때문에 시기상으로도 맞지 않는다. 게다가 제목의 폰트는 1990년에 만들어진 2편의 개봉 및 비디오 출시 당시의 것이다.[78]
-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 방송에서 이문세가 이경규를 신인 개그맨으로 소개하는데, 사실 이경규는 1981년에 데뷔했다. 단지, 무명기간이 길었을 뿐. 일요일 밤의 대행진 과거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마당놀이에서 조정현과 김정렬의 조연을 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현재로 치면 무한도전에서 부르면 언제든 달려와주는 홍진경이나 김영철 같은 포지션. 개그맨으로서 그 당시 나쁘지 않은 수준 정도였으나, 특히 청소년들한테 이경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것은 매주 일요일 방송되었던 '별밤 공개방송'에서 이성미 후임으로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던 때이다.(이후 몰래카메라의 대 성공으로 '무적' 행진을 이어가게 된다.) 그때 이경규의 캐릭터 성격은 '돈 밝히는 이경규'.
- 별밤지기 이문세가 이수만을 '마삼트리오'의 일원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실제 이런 그룹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당시 가요계에서 얼굴 길기로 유명했던 이문세, 유열, 이수만을 묶어서 부르던 말이다. 특히 이문세의 말 기믹은 꽤 유명해서 1988년 당시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되던 '풋나기의 빵점일기'에서는 아예 마문세라고 패러디되어 나왔을 정도. 또한 마삼트리오라는 이름으로 현대 엑센트 광고까지 찍었고 수익은 전액 기부했다고 한다.
- 별밤을 듣고 있는 성선우의 AM라디오는 700-800KHz 사이에 맞혀져 있는데,[79] 서울 기준으로 MBC 라디오의 AM주파수는 900kHz이다.[80] 참고로 이 당시에는 표준FM 개국이 이루어진 지 1년가량이 경과하였으므로 굳이 AM으로 들어야 할까 싶기도 하다. 더욱이 AM은 주변 전기 잡음에 민감하여 형광등 같이 전기제품 가까이에서 들으면 잡음으로 정상적인 수신이 어려울 수 있다.
- 정환이네 집에서 모여 갈비찜 먹는 장면에서 성덕선이 "잘났어 정말"이라는 유행어를 하는데, 이는 KBS 주말연속극 ‘사랑의 굴레’에서 고두심이 했던 대사이며, 방영기간이 1989년 4월부터 10월이므로 미래의 유행어이다.
- 김선영이 조흥은행 직원과 통화하는 장면에서, 전화가 끊긴 후 들려오는 통화 끊김음이 한국에서 쓰는 것이 아니다. 굳이 찾자면 지금은 사라진 기계식전화 가입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중인 경우 나오는 음으로 쓰인 것과 비슷하다.
- 김선영이 법원송달 우편물을 받는 장면에서 집배원이 수령인 서명을 받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에는 수령인의 도장, 없을 경우 오른쪽 엄지 손가락 지장을 받았다.
- 김선영이 성선우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개설한 통장은 입출금식인 자유저축예금인데, 겉표지는 정기적금이다. 일단 계좌번호가 한일은행 계좌번호가 아니라 서울신탁은행 1989년 이전 계좌번호 체계다.
- 성덕선과 성노을이 보고있는 가요톱10에서 박남정의 ‘널 그리며’가 나오는데, 이는 1989년 6월에 방송된 상반기 결산 방송분이다. 특히 MC 임성훈이 '89 상반기 결산'이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봐서 대놓고 재현상의 오류 인증이다.
- 박남정은 1989년 '널 그리며'를 통해 더 큰 인기를 얻었고, 1989년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골든컵을 수상했는데, '널 그리며'와 '사랑의 불시착' 두 곡으로 1989년에만 골든컵을 2회 수상한 몇 안 되는 사례였다.
- '널 그리며'에서 나오는 춤은 지금도 박남정의 트레이드마크로 유명한 ‘ㄱㄴ춤’이 당시에 전국적으로 크게 유행하였다. 성노을이 성덕선에게 "춤을 못 춘다"고 타박하면서 직접 보여주는 그 춤이다. 사실, 이 춤은 자넷 잭슨의 'Pleasure Principle' 안무를 베낀 것이다. 박남정만 베낀 것은 아니었고 일본의 쿠도 시즈카와 1990년대 초반의 일본의 여성 아이돌 그룹 CoCo도 베꼈다.
- 최택이 경기를 한 광저우는 아열대 해양성 계절풍 기후로 1월 평균 최저기온이 10도, 평균 최고기온이 18도 정도인 따뜻한 곳이다. 1월이라고는 해도 우리나라 봄 가을 정도의 날씨이기 때문에 별다른 난방을 하지 않아도 춥지는 않다. 중국의 고질적인 텃세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넣은 설정이지만, 성덕선이 표현대로 추워서 꼴까닥 할 정도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 성덕선이 최택을 따라 중국으로 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남자애들은 여권 발급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여자애들은 기원에서 힘을 쓰면 2~3일 이내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건 병역 문제 때문으로, 군 미필 남성들은 귀국보증인을 2명 세워야 되는 등 여권발급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도 복잡했다. 2005년에서야 이게 간소화되었다.
- 별도로 중국 비자 문제는 언급이 안 되는데, 지금이야 수수료만 내면 1박 2일만에 발급이 되지만, 이때는 아직 중국이 한국과 수교하지 않았을 때다. 중국이 한국과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1992년이다. 그러나 이미 1983년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때부터 긍정적인 관계가 오고갔고,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도 중국이 공산권에서는 가장 먼저 참가 의사를 밝힐 만큼 관계가 개선되었던 때이니 비자 발급에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중국도 바둑을 국가 차원에서 밀고 있었으니 자국 바둑기사와 대국할 타국 바둑기사의 수행원이 1명쯤 추가되는 것을 굳이 막을 이유도 없었다. 막았다가 구설수에 오르면 자국 기원 이미지에만 금이 가니까.
- 1989년 당시 신축 아파트가 아닌 많은 수의 단독주택(구옥)의 경우 220V 전압이 아닌 110V 전압을 사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성덕선이 전기장판/전기요 등을 중국으로 가져가서 중국의 220V 콘센트에 꼽았다면?? 물론, 정환이네 집이 220V 승압공사를 완료했다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81]
- 사실 1970년대 후반부터 국산 가전제품은 110V/220V 겸용으로 나오기 시작하여 1989년이라면 대부분의 가전제품은 110V/220V 겸용으로 제품 구석 어딘가에 절환 스위치가 있어서 그걸 조작하면 별 문제없이 220V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정부에서 1989년부터 단계적으로 110V 전용제품은 생산을 금지할 정도로 겸용제품이 이미 많이 보급된 상태였다.
- 물론, 덜렁대는 성격의 성덕선이 그런 스위치까지 알고 조치를 취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십중팔구 꽂지도 못했을 것이다. 플러그 규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자/전원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한국은 110V는 Type A, 220V는 Type C나 F를 썼다. 그러나 중국은 이것과 전혀 호환되지 않는 Type I를 쓰기 때문에 어댑터가 없으면 꽂지도 못한다. (사실 묘사된 성덕선의 성격상 프론트에 어댑터와 변압기 내놓으라고 했을 확률이 높다.)
- 최무성이 과거 회상 씬에 나오는 1977년의 경남 김해는 ‘시’가 아닌 ‘군’이었으며, ‘시’가 된 것은 1981년이다. 다만, 봉황동은 맞는데, 1980년대까지는 읍, 면 밑에 동을 두는 경우가 많이 있었고[82], 김해읍도 그 중 한 곳이었다. 김해읍이나 조치원읍 등 당시 규모가 좀 있던 읍은 1941년 하위 ‘리’를 일본식 이름인 ‘정’으로 개칭했으며, 해방 후인 1947년에 동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88년 당시까지 읍, 면으로 남아 있던 곳은 산하의 동을 ‘리’로 다 바꾸었다.
- 중국에 따라가게 된 성덕선이 처음 여권을 받는 장면에서, 여권 발급일이 ‘DEC. 01. 1989’로 찍혀 있다. 현재 여권의 날짜 표기는 일-월-년 순서지만, 당시 날짜 표기 순서는 월-일-년 순서였다. 이 순서는 실제에 부합하지만 분명 1월이어야 할 성덕선의 여권 발급일이 1989년 12월 1일이다. 드라마 상의 시기가 1989년 1월이니 아직 오지도 않은 날 발급된 여권을 받은 것이다. JAN. 01. 1989라고 해야 맞겠지만, 1월 1일은 공휴일이라 여권발급이 될 리가 없다. 재현상의 오류는 아니지만 옥에 티로 봐야 할 듯.
- 성덕선의 여권 속 증명사진이 머리가 귀를 덮고 있고, 흰옷을 입고 있으며 배경도 흰색이 아니라서 외교부의 여권규격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여권사진에서의 ‘흰옷 착용 불가, 흰 배경 규정’은 무려 16년 후인 2005년 9월 30일부터 적용된 규정으로, 그 이전에는 ‘모자나 색안경 착용불가, 사진 크기’ 정도에만 규제가 있었고 옷 색깔이나 배경색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 닭장차에 의해 경기도 파주시에 내동댕이쳐진 성보라가 20원으로 빨간 공중전화를 이용해 쌍문동으로 전화를 거는 장면이 나오는데, 명백한 재현상의 오류다. 첫째로, 빨간색 공중전화는 시내통화만 가능한 공중전화며, 애초 10원짜리밖에 들어가지 않고, 2번째로, 당시의 시외전화는 거리에 따라 요금이 매겨지는 것이라 20원으로 통화가 안 된다. 시외통화가 가능한 공중전화는 100원이나 50원 동전을 투입할 수 있는 사각형의 대형이었으며, 회색컬러라 모양이 예쁘지는 않았다. 시외통화 가능한 공중전화 모델은 1화에 등장한 적이 있다(피켓걸 연습하던 성덕선이 집에 전화하는 장면).
- 성선우가 통일촌까지 타고 온 마을버스의 차종이 일본 도요타의 코스타 모델이다.. 당시 비슷한 크기의 차종으로는 아시아 콤비가 주류였다. 도요타 코스타는 현대 미니버스와 적당히 비슷하게 생기긴 했는데, 현대 미니버스는 1970년대 중후반에 나온 모델이다. 물론 당시에는 파주시쯤 되는 시골은 아직도 GMC 트럭과 영운기가 굴러다니던 동네긴 했지만. 이 시기의 승합차는 이미 기아 봉고와 현대 그레이스로 양분되어 있던 시기이고, 노선버스는 20년쯤 묵은 프론트엔진형 차량이 로컬노선에서 굴러다니던 때이다.
- 별밤 잼 콘서트의 인기는 '거기 가고 싶으니 가자'라고 갈 수 있는 수준이 절대 아니었다. 추첨을 통해서 티켓을 배부했기 때문이다. 티켓 얻는 것은 당연히 하늘의 별따기였고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일개 '라디오 방송사'의 행사가 어떻게 방송 소재가 되었는지 생각해보자.) 또 지금의 아이돌 공연을 능가하는 엄청난 인파와 열기로 상당히 번잡하고 뜨거웠을 텐데(새벽부터 기다리기는 예사이고), 촬영시 인력동원 사실상 힘들 테니 어쩔 수 없이 '한적한' 공연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재현상의 오류라기보다 이런 디테일하게 구구절절 들어가다 보면 1회 분량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작가가 추억을 상기시키는 차원에서 '잼콘서트' 소재만을 차용해서 쓴 것으로 보인다.
- 성덕선이 별밤 콘서트에 '이수만도 나온대!'라고 호들갑을 떠는 장면이 있는데, 이수만이 가수로 인기를 끌었던 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이며, 이후로는 유학을 다녀오며 공백이 생겨 1989년 당시에는 인기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1988년에는 주로 MC나 라디오 DJ로 활약하고 있었으므로, 그 당시 여고생이라면 이수만이 원래 가수라는 걸 모를 수도 있을 정도로 가수로서의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단 DJ로서 당시 진행했던 '팝스투나잇'의 인기는 만만치 않았다.)
- 김정봉이 백담사에 간 것을 두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대한불교조계종이 체험 프로그램으로 처음 시작한 템플스테이를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으나, 이 경우에는 그냥 절에 들어가서 머무른 것이다. 절은 기본적으로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공양(식사)을 제공하며, 잠을 재워준다. 불교 신자이건 아니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83][84]
- 다만, 스님들의 수행이 우선이기 때문에, 규모가 큰 사찰에서는 별도의 공간을 두어 찾아오는 이들이 머무르게 하기도 하며, 머무는 사람들도 알아서 자기들이 머무를 동안의 비용 등을 내놓는 것이다. 또한 절의 규모가 작을 경우 손님을 맞이하기 힘들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절은 손님이 현실적으로 머물 수 없기도 하다. 특히 공양보살이 안 계시는 소규모 암자들이 이렇다.
- 큰 규모의 절에서는 돈이나 시주할 물질이 없다면 절 살림을 도우며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예전부터 사찰에서 오랜 기간 머물며 고시공부나 마음정리 등을 했던 것이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그런 연유로 절에 머무는 사람들의 숫자도 꽤 많다. 템플스테이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것으로 간략화된 불교체험코스일 뿐이다.
4.11. 10화
- 성덕선이 집에 찾아온 친구들에게 "곤로에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하자 장미옥이 "아직도 곤로를 쓰냐?"고 의아해한다. 실제로 본 항목의 1화 부분에서 언급되었듯 80년대 말에는 이미 가스보급으로 석유곤로를 쓰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이전보다 덜 썼다'는 것이지 '완전히 단종'은 아니기에 재현상의 오류는 아니다. 1990년대까지도 곤로를 쓰는 집은 간간히 있었다.
-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이 나오는 토토즐 방송분은 1989년 1월이 아닌 1988년 4월 30일 서울랜드 특집 방송분이다. 이때는 ‘나 항상 그대를’을 관현악 연주로 1절만 부르고 전영록과 함께 엔딩 무대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다. 극 중에서는 1절이 지나고 관현악 연주가 아닌 원곡 연주로 덮어씌우게 편집한 흔적이 보인다.인용한 영상
- 3화에서 재현상의 오류로 언급된 밀키스가 또 나왔다. 이번엔 포스터와 광고가 나왔는데 시간적 배경이 1989년 1월이라서 실제 사실 오류.
- 라미란이 김성균이 샀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차종 중 기아 캐피탈의 출시 시기는 1989년 3월로 당시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차였다. 물론 기아자동차 내에서는 개발이 거의 완료된 상황이었겠지만.
- 김성균이 뽑은 중고차 기아 프라이드는 1991년에 나온 프라이드 팝이다. 프라이드 팝은 300만원대의 저가형 모델로써 대우 티코에 대항하여 내놓은 모델이었지만, 판매실적은 영 신통치 않았다.
- 김정봉이 버블보블의 엔딩을 보는데, 혼자서는 절대로 엔딩을 볼 수 없다. 게다가, 버블보블의 난이도가 헬게이트급으로 어렵기 때문에 진엔딩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애시 당초 그 이전의 가짜 엔딩도 깬 사람이 극히 드물다. 단 100탄까지 간다는 것 자체가 아주아주아주 어렵고, 초고수들이 공략을 해도 30탄을 넘기기가 어렵다고 봐야 한다. 사실 중간에 누군가와 같이 하다가 혼자 남았다고 보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10만원도 넘게 돈을 써야만 가능할 것이 뻔하다.
- 성보라가 류동룡에게 충고할 때 '멘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당시에 멘탈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주시청층인 젊은 층을 겨냥하여 이 말을 사용한 것 같다. 대표적으로 응답하라 1994 때도 빠순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넣은 적이 있다.
- 극 중 김정봉이 방학동에 있는 오락실을 가는데, 2015년 현재 서울시 자치구 중에서 도봉구는 서초구와 함께 오락실이 하나도 없는 구가 되어버렸다. 원래는 2014년까지 방학역 인근에 1곳 정도 있었으나, 의정부시 망월사 인근으로 이전. 물론 그 이전 아니 2000년대 초반까지 오락실은 많았다.
- 1989년에 진행된 이선희의 콘서트는 4월 16일 이선희&장국영 조인트 콘서트와 12월 3일 학생가장돕기 이선희 콘서트 단 2개뿐이다. 따라서 1989년 라이브 콘서트는 드라마상의 설정이다. 이선희의 역대 공연 목록은 여기 에서 확인가능.
- 성보라가 6시에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6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고 쌍문동 자지마 독서실에 들러 표를 가지고, 7시까지 잠실 올림픽경기장으로 이선희 콘서트를 보러 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극중에 성보라가 자기 차를 끌고 가는 모습이 나오긴 했지만, 그것을 고려한다 해도 절대 불가능.
- 2015년 시점으로도 신림 → 도봉 → 잠실이면 세 시간 거리다. 여기에 성보라의 운전 실력은 여전히 미숙하며[85] 자동차 등록대수가 적었다고 하더라도 이 당시 서울의 도로 사정은 지금보다 훨씬 나빴다.[86]
-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동으로[87] 가출한 류동룡을 찾으러 가는데 성보라가 모는 승용차에 친구들 4명이 우르르 쫓아가 타는 바람에 올라올 때 자리가 없어서 성덕선과 최택은 낙오하게 되는데, 막상 서울에는 성덕선과 최택이 먼저 도착한다!! 그걸 가지고 김정환은 "보라 누나 차에 거북이 넣고 다니냐?"고 비아냥대지만, 사실 이 시절에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서해안고속도로가 없어서 대천에서 서울로 가려면 천안시까지 21번 국도를 이용해야 했는데, 당시 국도가 왕복 2차로였던 데다 지금과 같은 시가지 우회도로라는 건 찾아볼 수가 없어서, 천안, 온양[88]과 같은 큰 도시를 그대로 경유해서 가야 했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거기다가 이때는 경부고속도로의 교통량 포화가 극에 달했던 시기로 천안-서울구간은 평일에도 답이 없는 상습정체구간이었다. 극 중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성덕선과 최택이 서울로 올라갈 때 장항선 열차를 이용했다면 충분히 승용차로 움직인 성보라보다 먼저 도착할 수가 있는 상황.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도 해당사항 없는 것이, 이 때는 고속도로에 버스전용차로가 없었다. 다만 촬영은 안면도에서 한 것으로 추측된다.[89]
- 김정봉과 장미옥이 만나는 장면은 영화 늑대의 유혹을 패러디 한 것이다.
- 작 중 시점은 겨울이지만 최무성이 보고 있던 '사랑방중계'의 방청객이 모두 여름복장이었다.
- 김성균과 라미란, 김정봉이 예전에 녹음해 놓은 녹음테이프를 듣는 장면에서 나온 카세트 플레이어가 삼성제품이다. 극중 금성대리점을 운영하는 김성균의 집에서 삼성전자 제품을 쓰는 것이 어색하긴 하다. 다만, 김성균의 집이 벼락부자가 된 것이 불과 2년 전이고, 멀쩡한 물건은 절대 버리지 않는 김성균의 성격상 그 전에 사용하던 물건이라고 보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카세트 플레이어란 것이 한 번 사면 10년 넘게 쓰는 것이니.
- 왕자현이 선덕고등학교에 다니는 국민학교 동창생을 성덕선에게 소개팅을 시켜준다는 장면에서, 선덕고등학교는 1988년 당시 도봉구 우이동 103(現 강북구 우이동 103)에 있었으며, 1990년에 현재 위치인 도봉구 쌍문동 263 신축교사로 이전한 것이다.[90] 또한 김정봉과 장미옥의 운명적 만남에서 언급된 염광여자고등학교는 노원구[91] 월계동에 있으며 2003년에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다.
- 작중에서 당시 가요무대 영상으로 최희준의 '하숙생'을 부르는 방송영상이 나오는데, 이 영상은 1989년 1월이 아니라 1988년 7월 25일 방송분이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퍼온 건지 왼쪽 상단에 한자가 보인다.
- 장미옥이 사는 집이 방학동 저택으로 나왔는데, 실제로 방학동은 1988년 당시에는 더 그렇지만 2015년 현재도 이런 큰 저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옆 우이동에는 있었다. 신방학중학교 옆 등산 밑에 몇 군데 존재하기는 한다. 방학동은 1988년 당시에는 거의 논밭에 판자촌이었다. 실제로 방학동은 1988년 당시 1,2동은 단독, 다세대 밀집지역, 3동은 아파트를 건설하는 중이었다. 신동아 1차 정도는 완공했었을 듯.
- 자지마 독서실에 있는 책상이 곡선형 디자인에 우드시트로 마감된 21세기 타입이다. 당시에는 현재의 공립도서관 같은 곳에 일부 남아 있는 원목에 페인트를 칠한 타입의 책상을 사용하였다.
- 작중 '고등학생'이 극장이나 특히 가수 콘서트를 경제적 무리 없이 가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경제적 사정 말고도 지금처럼 멀티 플랙스가 즐비하여 100만을 쉽게 찍는 시절이 아니었던 1980년대에는 '극장' 한번 가는 것이 1년에 몇 번 있을 수 없는 '큰 나들이'였고(1980년대에는 흥행 1위 영화들이 100만 관객이 되지 않았다), 대형가수 콘서트 같은 경우는 비싸서 쉽지 않았다.
- 단, 이런 식으로 따지고 몰고 들어가면 소재거리가 없어지는데다가 콘서트 등이 언급되는 이유는 '당시 대형 가수'들의 이름을 언급함으로써 당시 유행을 언급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어서 의도적으로 삽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 만약에 정말로 시대상을 반영하였다면, 80년대는 오히려 10~20년대보다 입시열이 엄청났는데 어떤 부모가 공부 잘하는 애들 못하는 애들 심지어 여자애들까지 섞여서 아지트에서 맨날 놀게끔 놔두겠으며, 노래방도 아직 없던 시절 (당시의 학생들이 놀 만한 곳이 지금보다도 없던) 극장 등에 아이들을 손쉽게 보내고 놀게 하겠는가? 어린 친구들에게는 재미를, 또 나이들은 사람들에게는 '그랬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추억하게 만드는 일종의 '판타지' 같은 드라마이니, 시시콜콜 오류를 따지지는 말 것.[92]
4.12. 11화
- 이번 화에도 빈티지 소품들이 등장하는데, 성덕선과 류동룡, 김정환이 보고 있는 만화잡지나 하이틴 잡지들은 복각품이 아닌 그 당시의 실제 발행 잡지를 어디서 가져온 듯하다. 자세히 보면 일부 잡지는 색지의 누런색이 아니라 오래되어 누렇게 뜬 책 단면이 보인다.
- 극중 정환의 집에서 온 동네 가족이 모여 함박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에서 덕선엄마, 선우엄마가 스프를 처음 먹는 것으로 묘사된다. 덕선엄마는 스프를 뜨라는 정환엄마의 말에 스프를 국대접에 가득 담아 내고, 선우 엄마는 이게 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좀 심한 연출이다. 덕선엄마와 선우엄마가 지방 출신이라 하더라도 극중 서울생활이 10년 이상 된 마당에 함박스테이크를 모른다는 것은 극중 서민층 묘사를 위해서 극의 재미를 위한 정도로 이해가 가능하지만, 스프의 경우 당시에도 이미 오뚜기 스프는 시판된지 오래이며, TV CF나 잡지 광고도 엄청나게 하던 시절이었으며, 고급식품도 아니라 동네 구멍가게에도 오뚜기 스프는 넘치게 있던 시절이다. 아침 대용식이나 야식 등으로 오뚜기 스프는 서민들도 많이 먹던 음식이다. 아무리 보증 때문에 망했어도 은행원 집인 덕선네가 스프를 몰라서 국처럼 퍼내는 것은 좀 과한 설정.
- 함박스테이크에 김치와 깻잎을 곁들여내고 정환엄마가 레스토랑에서 먹었을 때 느끼해서 나름 퓨전으로 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퓨전요리라는 말이 쓰이게 된 것은 거의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다. 당시에 한국에서 그런 개념으로 퓨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더구나 극중 정환엄마는 경제적으로는 부유해도 교육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 당장 자신의 여권에 표시된 영문 이름조차 읽지 못해 정환이가 전화상으로 짜증을 낼 정도로!)
-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가 나오는 가요톱10 방송분은 1989년 12월 31일에 방송된 연말결산 방송분이다.
- 김성균과 라미란이 김포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택시 밖으로 지나가는 차들이 최근 차들이다. 물론, 이런 것까지 다 CG로 해결하거나 도로 차단을 할 수 없으니 그 당시에 나왔던 차들을 상상하면서 보도록 하자. 참고로, 당시의 공항로는 지금과 달리 허허벌판을 가로지르는 분리대 없는 고속도로에 가까운 모양[93]이었다. 마곡역 주변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2017년경부터였다.
- 김정봉이 7수를 하게 된 것에 관하여 성동일이 "군대를 갔어도 벌써 '원사'를 달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7년 안에 원사 진급 못하는 거야 농담이니 그냥 넘기더라도 당시에는 원사라는 계급명 자체가 없었다. 원사는 1993년에 일등상사를 개칭하며 등장한 계급이므로 당시 시점인 1989년도에는 나올 수 없는 단어이다.
- 성진주가 요술공주 밍키를 시청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1987년에 재방영(첫 방영은 1983년)되었으므로 1989년이라면 다른 만화가 나왔어야 한다. 공청이라면 문제가 없지만[94] 참고로, 이 시기의 마법소녀물이라면 단연 천사소녀 새롬이. 다만, 이것도 1987년에 MBC에서 방영했고, 1989년 하고는 시기가 맞지 않다. 마법소녀물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MBC의 '용감한 죨리'가 있긴 한데, 이것은 실버호크 같은 남아취향 SF물만 아니다 뿐이지, 여아용 애니도 딱히 아니라고 할 수 있다.
- 이 당시의 만화영화 카세트는 정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베이비붐 세대[95]가 대략 70년대 초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인지라, 소비계층도 수적으로 늘어나고 구매력도 상승해서 아동을 대상으로 시장이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 만화영화 주제가뿐만 아니라 창작동화 카세트테이프, 어린이용 신발과 가방, 실내화 주머니 같은 상품들이 시장에 쏟아졌고, 방송에서는 만화영화(애니메이션) 외에도 어린이 드라마가(물론, 정부의 70년대 강제편성정책 탓도 있었겠지만) 오후 5시 30분경부터 7시경까지 꾸준히 편성되었고 시청률도 그럭저럭 나왔다. 하지만 방영되었던 만화영화는 미국이나 일본 쪽 만화가 대부분이었지 우리나라 작품은 1987년 이전에는 단막 작품이거나 극장판 재방 빼면 없었다.
- 성선우와 성보라의 키스신이 무척 진해서 풋풋한 키스가 나올 거라 예상한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둘 다 설정상 첫 키스일 가능성이 높고, 1980년대 분위기에는 조금 앞서나간 키스 스타일인 프렌치 키스 스타일[96] 저 시절의 성선우처럼 경험적은 고등학생들은 "키스"라는 단어자체를 쓰지 않았다. "뽀뽀해도 돼요?"라고 물었겠지만 어감이 좀 깨서 작가가 바꾼 거 같다. 또한 저 시절 통용적인 키스의 개념은 입술을 맞대고 오래 있는 거였고 뽀뽀의 개념은 그야말로 쪽! 입술댔다 떼는 수준. 풋풋하게 오래 입술을 대고만 있는 설정이 더 시대에 맞고 상황(1980년대 고등학생의 첫 키스)에도 어울렸을텐데 아쉽다. 저 시절에 첫키스를 저렇게 하면 뺨맞고 헤어진다, 성보라가 연상이라 받아준 설정인지 몰라도.
- 고스톱판을 깽판치려고 김성균이 요술공주 밍키 테이프를 트는 장면에서 삼성의 카세트로 테이프를 돌렸다. 작중 김성균은 금성사(現 LG전자)의 대리점주로 연기하는 중인데... 약간 어색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10화에서도 지적되었듯, 그냥 복권에 당첨돼서 대리점을 내기 전에 원래 쓰던 것을 안 버리고 계속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 최택의 스케줄표에 보면 "한종진 도장 방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극중 최택의 모델로 연상되는 이창호 九단에게는 1996년도에 입단한 한종진 九단이 후배격이다. 만약, 동일인물이라면 아직 입단도 하지 않은 아마추어가 도장을 열었다는 건데, 이것은 그냥 대놓고 재현상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 성동일이 한일은행 검사부에서 일한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성덕선이 이에 대해 내부 감찰을 하는 곳인 것처럼 설명했다. 그런데 이건 감사부에서 하는 거고, 은행 검사부에서는 고객의 명의도용이나 부정거래 여부 등을 감시하는 일을 한다. 성덕선이 부서명을 혼동했던지, 아니면 업무명을 혼동했던지 둘 중 하나일 듯. 물론, 검사부라고 해도 철두철미한 눈썰미나 집중력을 요하는 건 마찬가지다.
- 김정봉이 치토스 '1봉지 더'를 노리고 부록 스티커 뒷면을 동전으로 긁는 모습의 묘사가 다수 있는데, 드라마에서 보여진 것처럼 얇은 박을 벗겨내는 방식이 아니고 노란 부분을 긁으면 찌꺼기 없이 그리 선명하지 못한 음영으로 당락표시가 되어 있었다. 현재는 치토스를 롯데가 라이선스를 갖고 생산하는지라 PPL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 당시는 오리온(동양제과)이 라이선스로 생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치토스는 생각보다 당첨 확률이 높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꽝의 개수를 보면 그냥 지지리도 운이 없는 듯.
- 라미란의 여권에 성이 라씨로 표기되어 있다. 당시에는 성씨에 예외없이 두음법칙을 적용하고 있으므로 나씨로 표기되는 게 맞다. '라' 혹은 '류' 씨들의 경우 이후 소송을 통해 본래 성을 찾았다.
- 라미란이 영문자를 못 읽는다는 설정에서 국졸인 과거가 밝혀졌는데, 정봉이 "엄마 은행권에서 근무하셨다면서요?"라고 의아해하자 성균이 "니네 엄마 대학 안 나왔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1988년에 은행 여직원들은 여상 졸업생이 대다수였고, 대졸 여직원을 뽑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들어 학력인플레가 심화되면서부터였다. 더구나 1988년에 40대 중반 나이면 1943~1946년 출생으로, 의무교육 이전 세대라 배운 사람이 극히 드물었고 여성 중에는 더욱 적었다. 가난+남존여비 때문이었고, 형편이 그리 어렵지 않아도 여자가 공부하는 것을 나쁘게 보아, 딸에게는 많은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딸들은 9~10세에 보통 한글 정도나 떼준다고 늦게 초등학교에 보냈고 20대 초반이면 시집을 보내, 보편적인 학력이 초졸과 중졸이었던 시기. 그 당시의 고졸 학력은 지금 전문대나 웬만한 대학 수준으로 인정되어 지식인급으로 분류되었다. 교사도 고졸(사범고)이 하던 시기인데, 대학 운운은 명백한 재현상의 오류다.
4.13. 12화
- 김선영이 장을 보러 가는 시장은 1980년대 분위기보다 최소 2000년대 중후반스러운 분위기가 나는데, 간판 폰트가 요즘 흔히 쓰이는 폰트이기 때문이다.
- 개학이라서 학교 가는 날에 아침 6시 반이라고 하지만, 겨울이라서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 어두워야 하는데 너무 밝다. 2월의 평균 일출시간은 7시 15분, 3월이라고 해도 6시 35분이므로 6시 반은 그렇게 밝지 않다. 하물며 덕선이네 집은 반지하이다. 더불어 최택의 왕위전 1차전이 벌어질 때 성선우, 김정환, 류동룡이 저녁 도시락을 먹으면서 10시간째 대국 중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침 9시에 시작해서 10시간이면 저녁 7시임에도 날씨가 너무 밝다. 창문에서 햇빛 드는 게 보일 정도다. 또한, 저녁 7시는 저녁식사 시작 시간으로는 너무 늦다. 물론, 한국 드라마 촬영 여건상 매우 촉박하게 촬영할 시점이라서 이런 것들을 모두 따져가면서 촬영하기는 매우 힘들겠지만. 이 부분을 감안했는지, 성덕선이 김정환을 따라 첫차를 타고 학교 가는 장면, 야자를 빠지고 성선우가 집에 가는 장면 등은 햇빛 없이 어둡다.
- 성선우가 자기 먹을 소화제와 엄마 선영에게 줄 감기약을 사는데, 극중에서처럼 병원의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바로 약을 '조제해서' 사 먹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의약분업이 실시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로, 의약분업은 2000년 8월 1일부터 실시되었다.
- 또오치 경양식집이 있는 곳이 쌍문역 삼익상가인데, 이 상가는 실제로 쌍문역 근처에는 없고 방학동 방향으로 많이 걸어가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쌍문동 삼익아파트에 있는 상가이다.[97] 그리고 당시 쌍문역 인근은 1980년대 후반까지 그렇게 많이 번화하지 않았다.
- 성선우가 성보라에게 "벌써 임용 준비하느냐"고 묻는데, 1990년까지 국립대 사범대학 졸업자는 자동으로 임용이 되었고, 비사범계나 사립 사범대 졸업자에 한해서 순위고사를 치렀다. 성보라는 자동 임용 막차 타는 세대. 현행 중등 임용은 1990년 10월 국립 사범대 졸업자에 대한 우선 채용이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1991년부터 실시된 것이다. 오히려 당시에는 4년간 의무적으로 교사를 하지 않으면 중등교원자격증을 반납해야 했었다. 단, 1986년 12월에 문교부에서 시위전력이 있는 학생 혹은 임용 대기자는 성행불량자로 분류하여 임용하지 않기로 한 바 있으므로, 성보라가 "나는 서울시경 블랙리스트라 임용이 안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오류가 아니다.
- 위의 임용문제에 대해 조금 다른 의견을 내보자면, 그 당시 최초로 임용고사 이슈가 나온 것은 88년 5월. 이후 국립대 사범대 교수들이 성명서를 내고 사범대생들이 집단 자퇴를 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임용고사가 생길 것이라는 것은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 그래도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졸업정원제로 인한 대학정원 증가로 임용적체가 심해서 국립사범대 출신들도 비인기 과목의 경우[98] 많이 기다려야 임용이 가능했다.[99]
- 물론, 성보라는 어차피 메이저 과목인 수학 전공이라 딱히 해당 없다. 따라서 당시 극중 상황에서 성보라에 관한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모두 알고 있는 성선우가 임용고사가 생긴다는 카더라를 알고 있었다면 저런 대사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아는 성선우가 정작 성보라가 자동 임용 세대에 속한다는 걸 모르는 것은 모순에 가깝기 때문에 그냥 작가가 헷갈렸다고 보는 게 가장 타당한 설명일 것이다.
- 또한 성선우가 말한 '임용준비'를 임용시험이 아니라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 않냐는 지적도 있었으나, 다음 씬에서 나온 성선우의 대사 "회계사 시험 보게요? 임용 안 보고?"로 봐서는 성선우가 말한 임용은 임용시험을 의미하는 것이 확실하므로 재현상의 오류라 할 수 있다.
- 성보라가 "나는 서울특별시경찰국 블랙리스트라 임용이 안 될 거야"라고 얘기한다. 당시의 경찰조직은 경찰청 출범 이전이라 내무부 조직인 치안본부였고, 그 아래에 각 시도경찰국이 있었다(예: 서울의 경우 서울특별시경찰국으로 지금의 서울지방경찰청에 해당함). 경찰청이라는 내무부 휘하의 외청으로 승격된 것은 1991년이다.
- 김정환이 자주 언급하는 다이하드 1편의 비디오테이프는 실제로는 1990년에 출시되었다. 1988년 추석특선으로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이듬해인 1989년 설연휴까지 장기 상영하여 대박을 기록했기 때문에 극장에서 본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전 에피소드에서 "비디오 나왔던데"라고 대사를 쳤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재현상의 오류에 속한다. 그러나 복돌이 항목에서도 나오듯 그 당시에는 해적판 비디오테이프도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비디오 나왔던데"가 지역적 특색과 맞물려[100] 오히려 실제 사실에 잘 맞는 상황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1985년에 개봉되었으나 국내에 1987년에서야 개봉된 록키 4, 백 투더 퓨쳐 등이 극장 흥행에서 참패한 이유 또한 미국개봉-국내개봉 시차 동안 해적판 비디오를 통해 볼만한 사람은 다 봐서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101][102]
- 최택의 패배 뉴스기사에서도 약간의 오류가 있다. 보통 보도지침은 승자 위주로 쓰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의 기사와 붙는 것이 아닌 이상 최택의 패배가 중심인 보도가 나갈 수가 없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승자를 위주로 보도를 한 다음, 반면 최택 6단은~이라고 나가는 것이 정확한 보도다.[103][104] 물론 국가대항전 스포츠의 경우 얄짤 없이 자국중심 보도가 나가는 건 만국공통.
- 성선우가 개정된 한글 맞춤법 사용에 관한 TV 뉴스를 보며 성진주의 한글 맞춤법을 ‘-읍니다’에서 ‘-습니다’로 고쳐주는 장면이 있는데, ‘-습니다’의 개정은 이미 1988년 1월 개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다만, 개정 이후 홍보를 위한 방송이라고 생각하면 일리가 있다. 해당 뉴스 내용은 자세히 들어보면 알겠지만, 1989년 3월부터 개정된 맞춤법이 시행된다는 내용이다. 원래 법규나 공공규범이 개정될 때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홍보 등을 하는 유예 기간을 두고, 그 기간이 끝나면 정식 시행한다.
4.14. 13화
- 메인 에피소드 제목이 나오는 게임장면은 코나미에서 1981년 2월에 발매한 횡스크롤 슈팅게임 스크램블의 탁상용 게임기다.# 이 게임은 코나미 최초의 횡스크롤 슈팅게임으로, '스페이스 파이터'라 불리는 제트 비행선 형태의 플레이어 기체를 조작해 심층부를 포함해서 총 6개 구역으로 구성된 스테이지를 돌파하고 적 기지를 파괴한다는 내용이다.
- 성덕선이 중학교 첫사랑 동창생을 만나는 과정에서 방학동에 있는 방학중학교에 다녔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쌍문3동에 사는 여학생이 쌍문중학교(현 강북중학교)가 아니라 방학중학교로 배정될 수 있는지 의문점이다.[105] 실제로 성덕선이 집에서 가까운 학교는 쌍문중, 도봉여중(현 신도봉중학교), 정의여중이 있다. 물론 전혀 틀린 설정은 아니다. 80년대~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중학교 배정은 지금처럼 가까운 2~3개 학교 중에서 배정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은 구, 심지어 구를 넘더라도 어른의 기준에서 그럭저럭 다닐 만한 거리에 있다면 의외의 학교로 배정받기도 했다. 학생은 넘쳐나고, 학교는 한정되어 있다 보니 학생의 편의보다는 교육청의 각 학교별 수용 계획이 더 중요했다고 볼 수 있다.[106]
- 성덕선과 김정환이 버스를 기다리는 남산도서관 정류장 표지에 행선지로 수서역과 도곡역이 등장하는데, 이때는 아직 3호선이 양재역이 종착역이었던 시절이라 있지도 않았다. 수서역까지 연장된 것은 1993년 10월 30일이다.
- 김정봉과 성진주가 TV를 보는 도중 전기가 나가서 김성균이 퓨즈를 갈아 끼우는 장면에서 보이는 계량기의 제작연월이 2000년 11월로 되어 있다. 참고로 이 당시 즈음이 구리합금 퓨즈 대신 현재의 바이메탈식 누전차단기가 보급되어가던 시점이며, 한전에서도 홍보를 많이 했다. 물론 낡은 단독주택에서는 계속 두꺼비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 위의 퓨즈 갈아끼우는 장면에서 흐르는 BGM은 그 유명한 맥가이버 테마곡. 그런데 오리지널 오프닝 테마는 아니고 국내 웹에서 돌아다니는 미디음원이다. 원곡듣기(타이틀 수파는 MBC 방영 버전)
- 최택이 서랍을 잠가 놓을 때 쓰는 자물쇠가 2000년대에 흔히 보이는 버전이다. 얇은 철판을 여러 겹 쌓아 자물쇠 몸통을 구성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놋쇠 금형으로 만든 통짜 자물쇠가 많았다.
- 택이네 방에서 류동룡이 갖고 온 부루마불을 하는 장면에서 부루마불이 8천원짜리 디럭스 버전이다. 돈이 별로 없는 집 아이들은 2천원짜리 미니 부루마불을 했다. 디럭스 버전은 일반 부루마불과 구성은 똑같지만 돈이나 말 사이즈가 작고 게임판도 1번만 접는 디럭스판과 달리 2번 접어 보관하게 되어 있다.
- 성균이네 집에서 성동일과 김성균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TV에서 광고가 나올 때 '2분뉴스'의 상단 자막이 뜨고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새야새야 파랑새야' 멜로디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이 멜로디는 1986년 추석특집으로 MBC에서 방송된 추석특집쇼 제2부 '아시안게임 참가선수들과 함께' 오프닝 멜로디이다.영상
- 극중 등장하는 나리타 공항 활주로 이탈사고는 가상의 상황으로 보인다. 다만, 나리타가 워낙 측풍이 거센 곳이라 복항이나 크랩 랜딩은 기본이고 위험한 상황도 수시로 일어나는 막장 공항이긴 하다. 1989년의 가장 큰 항공편 사고는 동년 11월 25일에 일어난 대한항공 F-28의 활주로 이탈사고이긴 한데 이건 강릉공항에서 일어난 일.
- 최택이 묵은 일본 호텔의 TV에서 나리타 활주로 이탈사고의 뉴스속보가 나오는데 일본어 발음이 명백하게 어색하다. 그리고 TV 화면상에 최택의 이름이 'チェテク'라는 가타카나로 표기되는데, 일본 뉴스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을 표기할 때는 한자를 쓰고 그 위에 독음을 후리가나로 쓴다. 즉 뉴스 화면에 [ruby(崔沢, ruby=チェテク)]이라 쓰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카타카나 만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굳이 구분하자면 민방은 아직도 요미가나(독음용 후리가나)를 한자 위에 붙이는 방식을 선호하고, NHK는 카타카나만으로 표기하는 추세에 가깝지만 점차 한국 쪽에 한글 전용이 많아지면서 카타카나를 쓰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승엽 선수의 일본진출 당시에는 한자를 병용했지만 2017년 대선을 앞둔 일본 시사보도에서 대선 유력주자들의 이름은 NHK와 민방 막론하고 모두 카타카나로 표기되는 중. 다만 신문의 경우는 한자를 많이 쓴다.
- 최택이 준우승만 2번 했다는 후지쯔배는 사실 1988년에 처음 생겼다. 참고로 한국기원 소속으로 후지쯔배 첫 우승을 차지한 기사는 1993년 대회의 유창혁 六단이었는데, 마침 최택의 단수도 六단이다.
4.15. 14화
- 성동일의 빚보증이 없어지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어떻게 보면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보증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빚진 사람이 빚을 다 갚아서 보증채무가 없어지는 일이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107]
- 최택의 과일바구니 중 바나나가 주요 소품으로 등장한다. 이 당시 바나나와 오렌지는 상당히 비싼 과일 축에 속했다. 생오렌지와 달리 오렌지 주스 자체는 델몬트와 썬키스트(각각 롯데칠성과 해태음료가 라이선스)의 경쟁 덕에 널리 퍼져 있었지만. 심지어 이 당시는 다농이나 거버주스, 하인즈 등의 외국 브랜드가 라이선스를 팔던 시절이고, 미군부대와 연고가 있어 속칭 깡통시장이 있는 도시들에서는 수입제품을 비교적 흔하게 접할 수 있었다.
- 어린 성선우가 만들고 있던 고무동력기는 현재도 판매하고 있는 코스모 R-2로, 이 당시는 극중에서 나온 것과 같이 날개를 지탱하는 프레임이 죄다 나무로 만들어져 날개 조립이 까다로웠다. 이후 1990년부터 플라스틱 일체형 프레임[108]을 장착한 라이트 제품군들이 출시되면서 코스모와 고무동력기 계열의 양대산맥을 이루게 된다.
- 신해철이 나온 신발 타이거 광고는 1990년에 나온 광고다. 1989년 3월 당시에는 무한궤도로 활동할 때이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 김정봉과 김성균이 TV로 1987년에 방영된 아기공룡 둘리 애니메이션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방영되는 내용은 '둘리의 분노' 에피소드다.
- 타이거 광고가 끝나고 이일화와 성보라, 성덕선, 성노을이 식사 중에 TV에서 들리는 음이 13화에서 나왔던 '새야새야 파랑새야' 멜로디이다.
- 극중에 등장했던 영화 탑건의 비디오테이프 라벨이 실제 출시되었던 것과 다른 디자인이다. 초기 출시본이 아닌 이후 셀스루(판매용)로 재출시되었던 버전을 소품으로 사용한 듯. 초기 출시본의 라벨은 위와 같다.
- 김정환이 친구들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축구공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의 공인구인 아즈테카이다. 하지만, 이 당시는 한국에서 아즈테카가 수입이 안 되었기 때문에 직접 구입을 할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1989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용하던 공인구도 1988년 서울 올림픽 전용으로 나온 탱고 서울이었다.
- 성선우가 1982년 OB 베어스의 우승 때 아빠가 가져다 준 박철순 사인볼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당시 OB는 서울이 아닌 대전을 연고지로 하고 있었으나, 1982년 한국시리즈는 1차전(대전), 2차전(대구)만 두 팀의 홈구장에서 열렸고, 3~6차전은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렸었다.
- 성동일, 이일화, 성노을이 TV에 유재석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웃는 모습이 나온다. 이에 대해 유재석이 아직 데뷔하기 전이라 재현상의 오류라는 지적이 있었으나, 해당 프로그램은 당시 KBS2에서 전국 각지의 고등학교를 다니며 해당 학교의 학생들이 출연한 청소년 프로그램인 비바청춘에 출연한 모습이므로 재현상의 오류가 아니다. 실제로 유재석은 용문고 편에 출연했었고, 화면에 나온 장면도 당시 비바청춘에 출연했던 용문고 학생 유재석의 모습이다.
- 장미옥이 김정봉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며 택시를 잡아타고 서둘러 가는 장면에 나온 곡은 리차드 막스의 Right Here Waiting. 하지만, 이 곡은 발매가 1989년 6월이다. 14화의 배경은 1989년 4월로 아주 약간 이르긴 하다.
- 김정봉과 장미옥이 만나기로 했던 장소는 1988년 당시 종로 2가에 위치한 '반쥴'이다. 여기는 1층 카페와 2~4층 경양식집으로 되어 있는 구조이다. 이 당시 신촌의 독수리다방, 강남역에 뉴욕제과 만큼이나 종각역 주변에서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던 곳이 종로서적과 반쥴이었다. 해당 장소는 현재도 그 자리에 있으나 리모델링을 많이 거친 상태로 1988년 당시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고, 업종도 경양식집이 없어지고 카페와 공연장을 겸하는 곳으로 바뀌었고 3~4층만 쓰고 있다.
- 김정봉이 기다리던 곳이나 김정봉과 장미옥이 만나는 장소는 실제로는 종로가 아니라 강남구 도곡동의 모 카페를 임시로 반쥴 간판으로 바꾸고 촬영을 한 것이다. 그나마 오래되어 보이는 외형을 살린 건물을 어찌어찌 찾아낸 듯 한데, 장소섭외 담당자의 고충과 역량이 보이는 부분이다.
- 김정봉과 장미옥이 만나는 장면은 두 사람에게만 집중되어 촬영되었는데, 이 둘이 중심인 장면이기도 하지만, 주변 경관이 등장하면 1989년 종로가 아닌 것이 바로 티가 나므로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참고로, 이 촬영장소 건너에 오크타운이 있다.
- 최택 방에서 성덕선이 최택의 팬레터를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20원 짜리 우표가 붙어져 있다. 89년 당시 우편 요금은 80원. 옥의 티라고 볼 수 있다.
4.16. 15화
- 성진주가 택이네 집에서 영구와 땡칠이를 보는데, 이 작품은 1989년 7월 29일에 개봉되었으므로 시기상으로 맞지 않다. 2편은 12월에 개봉했다.
- 최택이 참가할 대회로 응씨배가 언급되는데, 응씨배는 1988년에 시작되어 4년마다 열리므로 1989년에 응씨배에 참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109] 참고로, 초기에는 언론이나 일반이나 국내에서는 '응씨배'라는 명칭보다 '응창기배'라는 명칭을 훨씬 많이 사용했다. '응씨배'라는 명칭이 더 많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이다.
- 최택과 대국을 같이 두어보길 원하는 사람들 이름 중에 신진그룹 조태오가 명단에 올라와있다. 동년 천만관객을 달성한 베테랑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배역의 소속과 이름까지 동일하다. 재미로 넣어둔 듯하다.
- 국수집 카세트에서 나오는 문주란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는 1989년 10월 24일에 발매된 음반이다.
- 야자시간 류동룡이 뺨에 손을 댔다가 바람을 일으켜서 종이를 쓰러트리는 행위는 일명 윤다훈풍으로, 1990년대 후반에 윤다훈이 유행을 시킨 것으로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기에 유행시켰다는 것이지 그 이전에는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1988~89년쯤에 부산에서는 유행까진 아니었지만 실제로 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 최무성이 성진주를 위해서 빌렸다고 한 영구와 땡칠이 2는 1989년 12월 22일 개봉되었으므로 역시 시기상으로 재현상의 오류다. 그 뿐 아니라 앞서 성진주가 영구와 땡칠이 1탄을 보는 장면에서 TV 위에 '영구와 땡칠이 소림사 가다'의 비디오 케이스가 놓여 있었는데 그 작품의 타이틀이 바로 영구와 땡칠이 2탄이다. 다만, 1탄의 케이스는 화면밖에 있고 2탄은 미리 빌려 두었던 것이며 한글을 잘 모르는 성진주가 그때는 모르다가 나중에 아저씨한테 듣고서야 좋아한 것이라고 하면 말이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생 중인 비디오의 케이스라는 설정으로 놓아둔 것이라면 분명한 소품 오류이다.
- 1989년 3월인데 최택이 제4기 동양증권배 기전에 참가하고 있다. 실제로는 이때 1기가 진행 중이었으며, 4기는 1992년에 개막하여 1993년에 결승을 치렀다.
- 15화 타이틀 화면 직후 동네 골목에 듀란 듀란의 내한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년 멤버가 둘이나 빠진 하락세에 접어든 3인조 시절이었지만, 이 공연에는 여학생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그런데 원래 오후 6시부터 예정되어 있던 공연은 주최측의 준비 부족으로 차질이 생겨서 1시간 30분이나 늦게 시작이 되었으며, 공연 진행도 엉망이고 안전상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해서 욕을 많이 먹었다. 이렇듯 수익만 바라보고 무리하게 진행하는 해외 스타의 내한공연에 많은 우려가 생겼는데, 결국 3년 뒤에 열린 뉴 키즈 온 더 블록(NKOB)의 내한공연에서 여학생 1명이 압사하고 수십 명이 다치는 사고가 생겼다.[110]
- 최무성이 김선영을 마중 나갔던 장면에서 두 사람이 만나기 전 김선영이 골목길을 혼자 걸어올 때 오토바이를 지나가는 장면에서 김선영 뒤로 가로등 사이에 도로명 주소의 푯말이 보인다.
- 1989년 4월부터 KBS 3TV(EBS의 전신이 되는 방송국)를 통해 'TV 고교가정학습'이라는 이름으로 TV 과외가 첫 선을 보였다. 더불어, 1981년부터 전면 금지되었던 과외가 다시 부분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111]
- 성덕선과 류동룡이 TV에서 나오는 나미의 '인디안 인형처럼'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1989년에 '인디안 인형처럼'이 담긴 앨범이 발매된 게 맞긴 하지만, 처음에는 트로트로 노선을 잡았기 때문에 1989년 3월이라면 나미가 '미움인지 그리움인지'로 활동을 하던 시기였다. 더군다나 신철, 이정효와 함께 '나미와 붐붐'을 결성하여 활동하던 시기는 이듬해인 1990년에 '인디안 인형처럼'의 리믹스 싱글을 낸 이후이므로, 극중 시기에 나미가 붐붐과 함께 TV에 출연하는 장면이 나오는 설정은 재현상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 성보라가 성선우에게 사법고시 준비한다고 고백한 카페의 배경은 태극당으로, 1946년에 창립된 빵집이다. 전성기에는 장충동 본점 등 3개 점포를 운영하고 남양주에 자체 농장을 세울 정도로 성업했지만 지금은 장충동 동대입구역 쪽의 본점만 남았으며, 본점도 리모델링을 거쳐 2015년 12월에 개장하여 옛 분위기를 느끼기는 힘들어졌다. 그런데 돈암동에도 태극당이 존재하며[112] 당시 도봉구 학생들의 주로 놀러가는 곳이 대학로와 돈암동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아마도 둘이 만난 곳은 돈암동 태극당일 가능성이 크다.[113] 참고로 역삼점은 쌍용플래티넘밸류라는 주상복합이 서있고, 남양주시의 농장터에는 지금동 보금자리주택이 조성중이다. 돈암동 태극당은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 계속 위치하고 있다.
- 반장이 성덕선에게 근의 공식을 가르칠 때 계수를 상수라고 잘못 언급하였다. 계수는 x나 y등의 앞에 붙는 수이고, 상수는 x나 y가 붙지 않는 일반수이다.
4.17. 16화
- 김성균이 입원한 병원에서 성동일, 김성균, 최무성이 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를 돌파한 TV 뉴스를 본 이후 주식 투자에 대한 대화를 하는데, 이때 김성균이 "삼성전자, 한미약품, 태평양화학 주식을 꼭 사놓으라"고 말한다.
- 이는 극의 방영시점인 2015년 12월 기준으로 이들 기업의 주식이 엄청나게 폭등한 것을 감안한 대사로 보인다. 2015년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시가총액 부동의 1위 기업이고, 한미약품은 잇단 신약 개발과 수출 성공으로 대박을 쳤으며, 아모레퍼시픽으로 이름을 바꾼 태평양 역시 실적 호조로 주가가 엄청나게 폭등했다. 김성균의 말대로 만약 당시에 이 주식들 사서 지금까지 묵혀 뒀다면 완전 때부자가 됐을 것이다.
- 하지만 1989년 1,000포인트 돌파 후부터 침체에 들어가기 시작하여 1992년까지 하락장을 기록했고, 이후 1992년 하반기부터 1994년까지 다시 상승세에 접어서 고점을 찍었지만, 이것도 1995년부터 점차 하락하였고 1997년 외환위기로 한때나마 2,77P를 찍은 적도 있었고, IT버블로 1,000P를 넘었다가 버블이 붕괴되면서 지수가 반토막이 났었다.
- 사실 1994년의 고점을 넘어선 건 2005년이 되어서부터이기 때문에 당시 연리 1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던 예금이나 부동산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었을 거고, 1980년대에 샀던 주식을 2015년까지 묵혀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
- 1984년 전국노래자랑 예심 장면에서 전국노래자랑 포스터에 있는 KBS CI는 1985년부터 현재까지 쓰인 것이다. 1984년 당시에는 현행 KBS CI가 제작된 때이고 본격적으로 쓰인 건 1985년 8월 15일부터이며, 그 사이에는 혼용해서 쓰였다.
- 쌍문동 시스터즈가 1985년 전국노래자랑 예심에 참가하면서 지은 '들개들'이라는 팀명은 '마음 약해서'라는 노래로 유명한 여성그룹 '들고양이들'(와일드캣츠)의 패러디이다.[114]
- 전국노래자랑에 참가한 흑인 참가자가 '아이들 영어 가르친다'라고 했는데, 1989년에는 아이들에게 원어민이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대학생이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에서는 원어민 강좌가 있었지만, 입시영어 중심인 당시의 영어교육환경상 원어민 교육은 필요성 자체가 없었던 것. 1995년 교육부에서 학교에 원어민 교사를 보조 교사로 채용하도록 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초중고에서의 영어교육은 영어를 전공한 한국인이 입시 영어를 가르쳤다. 물론 그 당시에도 학생 대상의 원어민 영어수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치맛바람 거센 지역에서는 입시와 관계없이 초등학생들에게 그냥 교양차원에서(피아노, 태권도처럼) 원어민 강사가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학원이 있긴 했다. 하지만, 평범한 서민 동네였던 서울 방학동에 그런 학원이 있었을 가능성은 적다. 그리고, 백인선호 사상이 만연한 한국에서 흑인이 영어강사가 되기는 2016년 지금도 어려운 일인데, 1980년대 후반에 흑인 영어강사가 있었다는 것은 납득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흑인 참가자를 미군으로 설정했으면 무난했을 것이지만, 사실 미군 군인들이 윗선의 허락을 받고 한국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고 어려웠을 것이다.
- 해당 출연자는 실제 전국노래자랑 외국인 특집 때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불러 일약 유명인이 된 '그렉 프리스터'인데,[115] 원래 영어 강사였으므로 출연자 개인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116]
- 김성균이 태평양 돌핀스에 김성근 감독이 부임했으니 4강에 들 것 같다고 했으나, 1984~88년을 OB에서 보낸 김성근 감독은 계속 중위권이었다. 물론 프로 이전에도 지도자로 인정받았으며, 매년 잘릴 수 있는 프로감독을 5년씩이나 한 것으로 보아 능력을 인정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약팀을 중위권으로 빠르게 끌어올린다는 이미지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경력이었다.[117] 게다가 김성근은 논란을 달고 다녀서 OB 베어스는 1988년 시즌 계약 만료까지 기다려서 김감독을 내보냈다. OB에서 나오고 곧바로 만년 꼴찌에 머물던 태평양 돌핀스를 1989년 가을야구로 이끌었고, 1996년의 쌍방울 레이더스까지 포스트 시즌에 진출 시키면서 꼴찌팀을 중위권으로 끌어올리는 재능을 가진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됐던 2002년의 LG 트윈스를 준우승으로 이끌고, 2003년 준우승 후 몇 년간 중위권에 불과하던 SK 와이번스를 맡아 2007년부터 2011년까지 SK 왕조를 구축하면서 야신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극중 김성균이 4강 진출을 발언은 감에 의존해서 예상하는 뉘앙스였으므로, 다른 오류나 억지와는 달리 충분히 가능한 발언이다.
- 1989년 프로야구에서 해태 타이거즈는 페넌트레이스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페넌트레이스 1위 빙그레 이글스를 물리치고 당시로는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118] 김성균이 "사고를 칠 것"이라고 예언했던 태평양 돌핀스는 전년도의 부진[119]을 떨치고 페넌트레이스 3위에 올라 인천 연고 구단으로는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태평양은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극적으로 격파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해태 타이거즈에 막혀 결국 최종순위를 3위로 마감하였다.
- 이전 회차에서도 김정환이 마라도나 때문에 축구선수를 꿈꿨다는 얘기가 나오고, 이번 회차에서는 그게 초등학생 때였다고 언급되는데, 시기로나 김정환이 처한 상황으로나 맞지 않는 설정이다. 김정환이 초등학생 때라면 1978년~1983년 사이로, 마라도나가 세계적으로는 센세이셔널한 선수가 되던 시점이지만, 한국의 국딩 꼬마가 마라도나에 빠져서 축구선수를 꿈꿨다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던 상태는 아니었다. 마라도나가 국내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정도가 기점이다.
- 게다가 당시의 해외축구 덕질이란 가끔 TV에서 틀어주는 녹방이나 축약본 중계, 신문 기사 등지에서 가끔 요즘 남미와 유럽에서는 누가 잘 한다 정도의 꼭지 기사 정도 외에는 선수들 활약상을 모아 편집한 컴필레이션 비디오, 축구 전문 잡지 등을 통해서 하는 것으로 제법 돈과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어쨌든 정환이네 집이 1985년 복권 잭팟으로 비로소 살림이 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형편상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중학생 때 마이클 조던 때문에 농구 선수를 꿈꿨다는 것도 무리한 설정으로 1988년에도 마이클 조던이 그리 잘 알려진 상태가 아니었는데 중학교 시절은 1984년~1986년에 조던 때문에 농구 선수를 꿈꿨을 리가. 마이클 조던은 1984-85시즌에 데뷔해서 아주 잘하긴 했지만 다음해에는 부상으로 시즌의 대부분을 못뛰게 되었다. 그나마 공청으로 AFKN NBA 방송을 봤다 해도 당시라면 초특급 신인 조던보다는 매직이나 버드를 보고 농구선수를 꿈꿨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전작 1994에서도 야구선수중 아직 슈퍼스타급으로 올르기 전의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현실성을 무시하고 드라마 방영 당시의 시청자들이 알만한 유명선수를 내세우려 한것으로 추정할 수있다.
- 최택 6단이 1989년 응씨배에서 창하오 九단을 꺾고 우승을 했다고 언급되었지만, 실제 모티브인 이창호 9단이 창하오 9단을 꺾고 우승한 때는 2000년 응씨배 우승이었다.
- 오락실에서 1위인 최택의 890,080점을 김정봉의 899,880점으로 누르고 새로운 1위로 올라서는데, 이어서 최택의 929,890점으로 다시 1위로 올라선다. 하지만 2위였던 최택의 점수가 3위에 있어야 하는데도 그냥 점수판에서 사라져 버리는 오류가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3~5위는 무의미한 2만점의 공동순위들이다.
- 정환이가 형 정봉에게 탑건을 보면서 전투기 조종사를 꿈꿨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탑건은 공군을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해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그래서 주인공 톰 크루즈가 탑승하는 F-14는 함상전투기다. 물론 대한민국 해군 항공전단에는 2021년 현재도 함상전투기는 보유하고 있지 않기에 전투기가 공군의 장비라고만 생각했을수도 있고, 미국 현지에서도 '탑건'을 보고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는 장교들도 제법 나오던 시기였다.
- 중간에 마감뉴스 나오기 전에 광고가 나왔는데 마감뉴스 폰트가 나눔고딕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이 광고는 삼성전자 톱스타 VTR 광고로, 최진실이 마지막 장면에서 말하는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대사로 유명했다.
- 야간에 한국대학교병원 건물을 멀리서 보여주는 장면에서 스타벅스 간판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스타벅스가 아니라 스타카페라는 독자적인 상호의 카페이다. 참고로, 드라마에 한국대학교병원이라는 가상의 병원이 자주 나오는데, 외부 전경은 송파구에 있는 국립경찰병원이며, 병원 내부 모습은 셋트장이다. 화면에 잡힌 스타카페는 실제로 경찰병원 1층에 있는 카페이다. 어차피 한국대학교병원도 가상의 병원이고, 카페 이름도 스타벅스라면 모를까 그냥 개별 상호이니, 딱히 재현상의 오류로 보긴 힘들다. 굳이 따지자면 대형병원에 카페 같은 편의시설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 이후이므로, 병원 내에 카페가 있다는 것을 재현상의 오류라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카페의 간판 스타일도 2010년대 스타일이니.
- 중간에 버스에서 성덕선이 여학생에게 건네받는 가방은 Supreme 제품이다. Supreme은 1994년에 등장한 브랜드이다. 그리고 해당 장면에서 창밖으로 당시와는 다른 노란색 신호위반 단속 카메라 설치 표지판이 보인다.
- 계란 장사하시는 아저씨의 트럭은 기아 파워봉고인데, 적재함을 교체했는지 뒤에 기아 마크가 없다.
- 성보라가 대우 르망 GSI를 몰고 골목을 빠져 나가는 장면에서 구석에 세워져 있는 시티 100이 그 당시의 것이 아닌 90년대 후반의 후기형이다. 초기형 시티 100의 모습
- 성덕선의 담임이 "오늘부터 불어, 가사, 음악, 체육은 자습으로 대체한다."라고 하자 학생들이 실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학력고사에 들어가지 않는 과목은 수업을 안 하고 그 시간에 자습을 하라는 의미이다. 음악, 체육은 예체능계의 선택과목이었기 때문에 맞는 설정일 수 있지만, 불어와 가사를 수업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설정일 수도 있다.
- 당시 학력고사에 응시하는 모든 학생들은 문이과예체능 구분 없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에스파냐어, 농업, 공업, 상업, 수산업, 가사 중 1과목은 반드시 보아야 했다.(대학입학 학력고사 항목 참조.)
- 쌍문여고 학생 기준으로 불어나 가사 중 한 과목은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 분량이 많지 않았던 가사시간은 몇 번의 수업으로 끝내고 각자 비중이 높은 과목의 자습으로 유도하던 파행이 일부 학교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불어는 물론 상대적으로 학습량이 많아 선택하는 학생이 거의 없어 많은 학교들이 자습으로 대치하곤 했다. 고3 교실에서 제2외국어와 실업 과목의 수업을 자습으로 대체하는 파행이 일반화된 것은 시험범위에서 빠진 수능세대부터이다.
- 류동룡이 마이콜에게 데코 나이트 댄스대회에 출전한다는 것을 자랑하면서 "너는 요즘 댄스의 트렌드를 못 읽는다. 요즘 대세는 힙합이지!"라고 타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대중음악 주류 장르의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기가 1990년대 초반이었다. 트로트, 포크 같은 음악이 주류였던 시대에서 댄스, 랩, 힙합, 뉴잭스윙이 유행하는 주류의 시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 그리고,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와 듀스가 등장한 이후부터 댄스 음악과 랩, 힙합이 대중화가 되기 시작하면서 한국 대중가요계의 트렌드는 기존의 30~40대가 갖고 있던 대중음악의 주도권을 내어주고 10~20대가 새롭게 주도를 하게 되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고 대중가요계의 트렌드를 완전히 뒤바꿔놓는 혁명의 시대로 바뀌기 시작한다. 자세한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한국 아이돌/역사 문서 참고.
- 류동룡이 "여의도여고의 김송이라는 애가 있는데, 걔가 춤을 진짜 잘 춰."라고 언급한다. 실제로, 김송은 백댄서로 연예계에 입문했고 20대가 되면서 댄스 가수로 유명해졌으며 혼성그룹 콜라의 멤버로 1996년에 데뷔했다. 혼성그룹 콜라는 베이비복스가 리메이크를 한 노래 '우울한 우연'이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은 클론의 멤버 강원래의 부인이다.
- 류동룡이 엑셀 1대가 우승상품으로 걸려있는 데코 나이트클럽 댄스대회에 출전했다가 현진영과 박진영이 춤추는 것을 보고 기가 죽어서 출전을 포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직접 출연한 것은 아니고, 간접적으로 이름만 언급된다.) 현진영의 본명은 허현석이다.[120] 이 때는 시기상으로 현진영이 아직 데뷔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명인 허현석으로 출전했을 가능성이 높아서 사실상 재현상의 오류가 된다.
4.18. 17화
- 성동일과 성노을이 본 TV 광고에서 이미연이 광고한 에바스 화장품 광고는 1990년 8월 7일부터 방영된 광고다. 일단 등장한 자동차가 현대 스쿠프라는 것도 명백한 재현상의 오류. 스쿠프는 1990년에 출시되었다.
- 노량진행 전철이 나오는 장면에서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당시 사용된 안내방송이 아니고 현재의 안내방송인 강희선 성우와 제니퍼 클라이드의 영어 안내방송이 송출된다. (강희선 성우는 1997년부터 담당.) 사실 EBS 고교가정학습 원어민 보조강사였던 'Susan McDonald'였기 때문에 입시에 조금 신경 쓴 학력고사 세대라면 충분히 목소리를 알아듣고도 남는다. 특히 제니퍼 클라이드와 달리 수잔 맥도널드는 여성치고는 좀 중저음의 톤이 특징이기 때문에 성덕이 아니라고 해도 확연히 구분된다.[121]
- 1989년 달력에서 1990년 달력으로 바뀌는데 1990년부터 신정연휴는 1월 2일까지로 바뀌었다. 3일까지로 된 것은 재현상의 오류. 아니면 인쇄오류일 수도 있다.[122]
- 마지막 부분에서 성덕선이 스튜어디스가 되어 귀가한다. 아마 당시의 대한항공 유니폼을 참고한 모양인데, 이 유니폼은 1991년부터 2005년까지 사용되었다.(현재 바로 직전의 유니폼) 그런데 리본의 무늬가 태극무늬가 아닌 그냥 줄무늬로 나와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회사마다 개인락커가 있어서, 스튜어디스들이 유니폼을 입고 출퇴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다만 이 장면은 '스튜어디스'가 되었다고 보여주는 의도적 오류라고 볼 수 있다.
- 17화에서 나오는 뉴스에 의하면 주인공들이 구경한 별똥별은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이다. 그런데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는 8월이 극대기인데 극중에서의 복장이나 방학 여부를 고려하면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다.
- 류동룡이 치질을 자가치료한답시고 마늘을 항문에 꽂았다가 덧나서 병원에 실려가는데, 비교적 정확한 재현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치질은 부위가 부위인지라 다들 숨기려고 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이다. 치질 전문 병원이 생기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등 치료받기 쉬운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전반 정도다.
- 라미란과 김성균이 김정환의 어린 시절 일기장을 보는 장면에서, 공책이 당시 기준으로 너무 새 거다. 공책 자체는 1980년대 중후반에 나온 것이 맞는데, 문제는 김정환이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라는 설정이다. 김정환이 1971년생이니 초등학교는 아무리 늦게 잡아봤자 1983년이 마지막인데, 이때는 저런 고급스런 표지가 아닌 투박한 마분지 표지가 나왔다.
- 최택六단이 1989년에 3개의 신기록을 세웠다고 자막까지 나오면서 언급되는데, (최다 대국, 최고 승률, 최다 연승) 최다 대국과 최고 승률 기록을 깼다면, 당연히 깨야 할 최다승 기록이 언급되지 않았다. (대국숫자 * 승률 = 승수인데, 대국 숫자와 승률이 최고이므로, 당연히 승수도 최고여야 한다.)
- 그리고 111전으로는 86.7%라는 승률이 나올 수 없으므로 오류이다. (96승 시, 86.49% 97승 시, 87.39%이다)
- 최택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이창호의 기록을 보면, 1989년에 111국으로 최다 대국 신기록을 세웠고, 다음해 1990년에 41연승 신기록과 78승 12패의 86.7% 승률 신기록을 세웠다. 응팔에서 말하는 3개의 신기록과 일치하는 수치다.
- 김정봉이 PC통신을 사용할 때 메시지가 올라올 때 Windows 7 알림음이 울린다. 이 재현상의 오류는 18화까지 이어진다.
- 성선우가 마지막 장면에 pk실에서 귀가할 때 책장에 꽂혀있는 내과학 교과서의 대명사 해리슨 내과학 원서가 19판이다. 한글판은 17판으로 보인다. 94년 당시에는 12판이었으며 19판은 2015년에야 나왔다. 아마도 진짜 pk실을 빌린 것으로 추정되며, 고로 학생 물품을 치우지 못한 것 같다.
- 김성균의 집 화장실 양변기 물탱크에 벽돌이 들어가있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변기 물탱크의 물 조절 장치가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물 절약형 플라스틱 물 조절 장치이다. 1980년대~1990년대 초반의 국내 생산 양변기 물탱크의 물 조절 장치는 부레(공기주머니) 형식의 장치가 장착되어 있었다. 물량 조절장치가 있으므로 벽돌을 포함한 다양한 물건들을 넣을 이유가 없다.
4.19. 18화
- 방송 초기에 봉숭아학당을 보며 성진주와 김성균이 맹구를 따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봉숭아학당은 1993년 11월 18일 종영되었다.
- 최택이 도요타배에서 우승하며 부상으로 받은 자동차는 도요타의 고급형 세단 도요타 셀시오(렉서스 LS)다. 그런데 문제는 차량 전면에 렉서스 마크가 보인다는 점. 최택이 타고 있는 1세대 모델이 1989년 출시되었기는 하지만, 렉서스는 출시 초기에 도요타와의 관계를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렉서스 항목에서 보듯 일본에는 2005년이나 되어서야 렉서스 브랜드로 출시되었으므로, 도요타배에서 도요타와의 관계를 숨긴 렉서스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본 내수용 도요타 차량을 받은 것이라면 우핸들 문제는 덤. 물론, 한국이 좌핸들인 점을 감안할 수는 있다지만, 미국에 출시되는 모델은 도요타가 아닌 렉서스 브랜드였으니 전술한 대로 설정오류가 된다.
- 1994년 최택에게 생일 선물로 주는 삐삐는 삼성전자의 위드미S로, 1993년 출시된 기존의 위드미에 비해 작고 가벼워진 모델이며 1995년 3월 출시된 기종이다. 또한 성보라의 삐삐는 1996년 8월 출시된 모토로라의 리베로이며, 성덕선의 삐삐는 중소업체인 델타콤이 1996년 12월 출시한 이글캡이라는 모델로 재현상의 오류에 해당한다. 전작에서도 1994년에 쓰레기가 위드미S를, 성나정이 리베로를 갖고 있는 재현상의 오류가 나왔었다.
-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극장에서 보는데 자막이 없다. (20화에서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상영씬에서 우측 세로자막이 나온다.)
- 김정환이 코란도의 시동을 거는 장면에서 대시보드와 핸들모양을 보아 1980년대 중반의 거화 코란도~쌍용 코란도 전환기의 모델이다. 90년형 이후 모델은 대시보드와 핸들디자인, 라디에이터 그릴 형상이 변경된다.
- 그리고 왼쪽에 보이는 2세대 그랜저와 뒤에 보이는 에스페로는 김정환이 주차장에서 서둘러 출발할 때부터 주차된 뒷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질주 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보이는데다가, 차량 번호판도 당시의 형식으로 만들어 붙인 티가 나는 것으로 보아, 그냥 지나가는 차가 아니라 제작진이 재현성을 위해 섭외한 차일 것이다.
- 에스페로는 문제가 없지만, 그랜저는 1996년 4월 출시된 후기형 모델이다. 몇 화 전에 보였던 포터2처럼 촬영과 무관하게 그냥 근처를 지나가는 차들은 교통통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야겠지만, 이 경우는 촬영을 위해 별도로 섭외된 차의 연식에 오류가 있는 것이다.
- 김정환이 마침 신호등이 적색으로 변해 대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나오는 차량용 신호등이 2000년대 후반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LED식 신호등이다. 참고로 전작에서도 비슷한 오류가 나왔다.
- 감포면옥에 있는 '돈이라면 남기시겠습니까?' 공익광고는 1997년의 광고이다.
- 김정봉이 PC통신을 통해서 하던 것은 퀴즈게임이다. 당시에는 채팅방을 개설하여 영퀴(영화퀴즈), 음퀴(음악퀴즈), 만퀴(만화퀴즈), 상퀴(상식퀴즈) 등 각 분야의 퀴즈를 스무고개 형식의 힌트를 주면서 푸는 것이 유행이었다.
- PC통신 접속 프로그램과 폰트 등은 재현상의 오류. 1994년 당시는 640*480 해상도에서 이야기 같은 DOS용 PC통신 프로그램으로 VT모드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해상도가 640*480인 이유는 당시 VT모드에서 이용하던 글자 크기가 영문 기준 가로 8픽셀, 세로 16픽셀이었고(한글은 가로세로 16픽셀이었다) 글자가 영문 기준으로 가로 80자, 세로 25줄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640*480 중에서 640*400을 통신 화면으로 할당하고, 나머지 세로 80픽셀에 메뉴와 상태 표시줄 등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 많이 사용되는 폰트는 둥근모꼴을 비롯한 비트맵 폰트였고, 작중에 나온 굴림체 비슷한 폰트는 쓰이지 않았다. 1994년은 윈도우 95가 나오기 이전이라 윈도우용 PC통신 프로그램도 없었고 굴림체도 쓰이지 않았다.
- 퀴즈 형식도 오류인데, 작중에서는 퀴즈를 정봉이 전담하여 다 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답을 맞춘 사람에게 다음 퀴즈를 낼 권리가 가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 정봉이 방 책상에서 슬램덩크 단행본 오리지널 22권까지 보이는데 22권은 1995년 3월에 나왔다. 1994년 10월 장면에서 존재하므로 오류.
- 정봉이 방의 박찬호 LA 다저스 홈경기 브로마이드는 존재할 수도 있는 물건이다. 박찬호는 1994년 메이저리그에서 2경기를 하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당시 아직 어리고 실력이 부족한 선수였지만 마케팅 차원에서 데뷔를 시켰다는 게 정설이다.
- 성동일이 정년 4~5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명예퇴직을 언급하는데, 1944년생이라 1994년에는 아직 만 50세다. 당시 은행 정년인 58세를 생각하면 정년연도 언급이 이상하다. 출생신고가 부정확하던 과거시절 실제 나이보다 3살 정도 많게 등록된 경우라고 가정해야 오류를 피할 수 있다.[123]
- 이승환 콘서트 장소가 서울올림픽 역도경기장이라 나왔지만 촬영지는 의정부 예술의전당이다.
- 피앙세 반지를 주는데 남자 장교임관 반지 소품을 준비했다. 그 당시에는 육해공군 사관학교는 남자만 입학하긴 했지만, 피앙세 반지는 여성용이 따로 있다.
- 류동룡과 김정환이 영화관 대기실에서 성덕선이 차였던 남자가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남녀와 함께 있는 장면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뒤에 있는 글자를 자세히 보면 '네이버와 다음에서 동광극장[124] 검색'이라고 쓰여 있다.
- 이승환은 1994년 10월 14일에 콘서트를 한 적이 없다. 서울에서는 연강홀에서 9월 16일부터 9월 21일까지 더클래식과 공연한 것이 전부다.
- 라미란이 보던 탁상 달력 10월분에 한글날이 10월 9일이 아닌 10월 17일로 되어있다.
- 성선우와 성보라가 소개팅에서 만난 곳은 명동에 소재한 가무로, 1970년대에는 카뮈다방으로 시작했으나 1980년대에는 가무다방, 1990년대는 가무로 이름을 바꾼 정원이 넓은 카페로 유명세를 탄 만남의 장소였다. 94년에는 방송에 나온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 류동룡이 2호점으로 운영하고 있는 감포면옥은 실제로 쌍문동 소피아 호텔 사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72년에 개업했으니 나름 역사가 있는 식당이다. 하지만 2호점은 드라마와 다르게 실제로 없다. 촬영은 별내에 있는 고깃집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 성선우의 연세대 의대 학생실습실에서,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의 일부가 잘못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만 해도 파워내과핸드북 최신판이 꽂혀 있고, 성선우가 쓰레기의 전화를 받는 장면에도 흉부영상진단 최신판이 꽂혀 있다.
4.20. 19화
- 이일화가 유동근을 향해서 팬이라고 했지만, 당시의 유동근은 조연급으로 이름만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고 그렇게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탤런트였다. 데뷔 초기에는 주로 악역을 맡았고 코믹한 연기에서도 일가견이 있었다. 유동근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이미 주조연급의 비중 있는 역할로 TV에 많이 얼굴을 비치던 연기자였다. 특히나 1993년 SBS 월화드라마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에서 코믹한 연기로 그 해 SBS 연기대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지금은 사극에서의 카리스마가 부각되지만, 당시에는 코믹연기에서 상당한 내공을 가진 캐릭터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989년에 전인화와 결혼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전인화가 아깝다는 여론이 엄청나게 많았다.[125] 유동근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1996년의 유동근과 황신혜 주연의 <애인>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으면서였다. 여기서 재현상의 오류는 라미란이 말한 유동근의 나이에 있다. 극중 1944년생인 이일화에게 "유동근이 10살이나 어리다"고 했지만, 실제 유동근은 1956년생으로 12살 어린 띠동갑되겠다.
- 김정환에게 경례를 하는 병사들의 팔에 전투복용 계급장이 아닌 공군병사들의 정복인 '약복'의 계급장이 붙어있다. 1996년 이후 전투복에는 녹색바탕에 푸른색 작대기의 계급장을 사용하지만[127], 이전에는 이와 같았으며 매우 정확한 재현이다.[128] 야상을 보면 얼룩무늬인데, 얼룩무늬 야상은 1994년부터 보급되었고, 1990~1994년에는 전투복은 민무늬에서 얼룩무늬로 바뀌고 있었고, 야상은 민무늬 였다.
- 김정봉이 장미옥에게 삐삐를 치는 장면에서 장미옥의 삐삐번호가 015-74x-xxxx로 재현상의 오류에 해당한다. 당시 015는 지역별로 사업자가 달랐고 국번도 사업자별로 철저히 구분되어 있었으며 번호이동성제도 같은 건 있지도 않던 시절이다. 015-7xx국은 대구경북지역의 사업자인 세림이동통신의 국번으로, 수도권 015라면 2xx(서울이동통신), 3xx(나래이동통신) 국번이나 나중에 추가로 배정된 46x, 85xx, 86xx 등의 국번을 받는다. 이후 수도권 사업자가 하나 더(해피텔레콤) 나오면서 7로 시작되는 국번이 수도권용으로 사용되긴 했지만, 4자리 국번인 015-77xx이며 그것도 1997년부터다. 또한 삐삐는 오늘날의 휴대폰과는 달리 개통한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지역을 벗어나면 아예 안테나가 뜨지 않았다. 이후 광역서비스로 타 지역에서도 사용이 가능은 했지만 이동시마다 설정을 해야 하는 식으로 타 지역 방문시 임시로 사용하는 성격이 강했고, 어차피 1995년 이후이므로 해당이 없다.
- 성선우가 성보라와 다시 사귄다는 것을 최택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류동룡이 마시던 술을 흘린 리액션은 이른바 '주스 아저씨'로 유명한 MBC 아침드라마 사랑했나봐의 그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미 이 장면은 류동룡이 수학여행 때 김수로왕매점 앞에서 보여준 바 있고, 전국노래자랑 예선 장면에서도 패러디됐다.
- 호텔 프런트는 24시간 무조건 상주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중국호텔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5성급 호텔에 프런트가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 짜장면에 달걀이 없긴 한데, 달걀 여부는 지역마다 천차만별이고 그 스타일도 천차만별이었다. 삶은 달걀, 계란후라이, 메추리알 등등. 이미 80년대부터 서울시내에는 안 주는 곳이 허다했다.
- 성동일의 퇴직금 액수는 적절했다고 한다. 1995년 2월 13일자 매일경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내용이 있다. "개정된 명예퇴직금 산정기준에 따라 26년 근속의 A급 점포장인 1급 4호봉의 경우 지난해는 기준 퇴직금의 2배인 2억8천8백만원을 받았으나 올해는 8천5백만원이 늘어난 3억7천3백만원을 받게 된다." 성동일의 경우 26년 근속 과장에 호봉은 정확하지 않지만 퇴직금의 2배를 받았다는 설정은 맞는 상황이 되겠다.
4.21. 20화
- 덕선이네와 정환이네가 재개발 때문에 이사를 가기 위해 판교에 전원주택을 지어 그리로 들어갈 계획을 세우는데, 실제로 이 시기는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 김정봉과 장만옥이 시장을 같이 걸어가는 장면에서 도로명 주소 푯말이 보인다.
- 성선우와 김정환이 포장마차에서 마시던 그린 소주의 병이 신형이다. 그린 소주가 1994년에 출시된 건 맞지만, 당시의 병 모양은 병목이 좀 더 넓었고 병목의 길이가 더 짧았다.
- 성덕선이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 반주기가 2010년대에 출시된 금영 KMS-A300 모델이다. 2016년 현재 노래방에서 자주 보이는 모델. 인기곡 포스터는 아싸노래방인데 번호가 당시 아싸노래방과 다르다. 예로 들어 마법의 성 포스터 번호는 4755이지만 당시 실제 번호는 2187이다.
- 성덕선이 한국기원 이 부장과 지하주차장에서 대화할 때 선명하진 않지만 흰색 쌍용 뉴 코란도가 있다. 뉴코란도는 1996년에 출시하였다
- 성선우와 성보라가 결혼식을 올리는 대검찰 결혼식장에 있는 대한민국 검찰청 CI가 2007년에 제정된 것이다. 그리고 옛날 같지 않게 많이 세련됐다. 옛날엔 나무결시트 지문이 별로 없었고 대부분 페인트칠한 문이었다. 결혼식장도 옛날치고 많이 작다. 그때는 지금보다 손님이 많았기 때문에 결혼식장이 매우 컸다.
- 2016년 시점에서 성보라의 휴대폰 기종이 LG인데, LG 알림음이 아니라 삼성 갤럭시 알림음이 나온다. 드라마 등에서 흔히 나오는 실수 중 하나.
- 2016년 시점에서 성덕선이 쌍문동에 주상복합이 들어섰다고 나오는데, 현재 쌍문동에 존재하는 주상복합아파트로는 신원1차, 신원프라자, LG트윈빌이 있고, 쌍문역 근처에 삼성쉐르빌이라는 오피스텔형 주상복합이 들어서 있지만 소재지는 창동이다. 이 아파트들은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입주가 완료되었다.
- 결혼식 후 웨딩카에서 성보라가 편지를 읽을 때 파란색 NH농협주유소 간판이 보인다. 예전부터 농협주유소는 있었지만 파란색 간판은 2012년 농협중앙회가 신경분리 이후 NH브랜드가 생기면서 나왔다. 아마 촬영 루트를 짜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난 오류로 추측된다.
- 성동일이 판교로 이사갈 때 트럭 기사가 "농사 지으러 가세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 그대로 판교는 2000년대 초까지 경기도의 농촌에 불과했다.[129] 지금은 판교신도시와 판교 테크노밸리가 조성되면서 그야말로 상전벽해 수준으로 발전하는 중. 만약 성동일이 판교신도시 개발 때까지 판교에 계속 있었다면 부동산값 폭등으로 크게 이익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 마지막 회상 장면에서 어린 김정환이 지금의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간다. 하지만 이때의 어린 김정환은 복권에 당첨되기 전으로, 동룡이네 집에서 세들어 살았을 때이다. 물론 이것과 상관없이 등장인물들의 동심을 표현하기 위해 아역을 쓴 것이라 표현하면 문제가 없다.
- 마지막 엔딩 시퀀스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과 상당히 흡사하게 전개되었다.
5. 관련 문서
[1] 참고로 도봉구에는 쌍문초등학교만 있다.[2] 응답하라 1997의 배경이 되었던 부산 광안고등학교도 실제로 없었다. 전작들에서도 대학교 이름은 실명 그대로 쓰긴 했지만.[3] 그런데 선덕고는 1990년에 쌍문동의 현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쌍문동이 아닌 우이동에 있었다.[4] 지금은 남녀공학이다. 학교는 월계동에 있다.[5] 반대로 응답하라 1997의 광안고등학교는 부산광역시가 아닌 서울특별시(영등포공업고등학교)에서 찍었다.[6] 2016년부터 지금의 교명으로 변경[7] 1982년부터 영업중이다. 소방도로 확보 문제로 2019년 7월, 드라마 촬영 당시의 건물은 허물어지고 2020년부터 바로 뒷건물에서 리모델링한 다른 건물에서 영업중이다.[8] 특히 10회에서 서울대 → 쌍문동 → 올림픽경기장을 1시간 안에 주파하는 장면은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오류.[9] 당시는 서울에서 서울로 하숙은 부유층 아니면 보편적이지 못했다. 쌍문동에서 더 먼 인하대학교도 1~2학년생의 경우는 통학이 일반적이었다.[10] 참고로, 1988년 기준 특별히 더 열악한것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쌍문동에서 서울대학교로 가는 루트는 똑같다. 버스→수유역→서울대입구역→버스. 물론 혜화동에서 25번 버스(당시의 노선 도봉구 미아7동(삼양동)-미아리극장-길음시장(서라벌중학교&서라벌고등학교)-삼선교-대학로-종로-서울역-한강로-장승배기-신림동-서울대)를 타고 세월아 네월아 가는 용자도 있긴 했다. 물론 보라네 집이 쫄딱 망해서 반지하에 살고 있으니 기를 쓰고 통학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단, 그 시절에는 고시촌이 없었을 때이고 나름대로 70년대풍 신시가지인 쌍문동보다는 달동네가 많았던 신림동(난곡)이 더 방값이 쌌을 때이니 자취가 더 비용절감일 수는 있다.[11] 단 이건 오류라고 보기 어려운데, 정식명칭은 사법시험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법고시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행정고시도 정식 명칭은 5급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이다.[12] 현재 도봉구 쌍문동, 창동, 강북구 수유동, 번동 노원구 월계동 일부에서 쓰인다.[13] 그 이전 모델은 비디오 조작버튼 외에 별도의 VHF 채널을 선택하는 버튼이 전면부터 줄줄이 부착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리모콘도 초창기에는 유선 리모콘이었다.[14] CD-ROM처럼 앞에서 밀어 넣는, 비디오 하면 흔히 떠올리는 자동식.[15] 지금은 우리은행 ATM기가 들어서 있다.[16] 쌍문역 근처에는 있지만 소재지가 창동 소속이었다. 지점명은 쌍문역 지점으로, 현 투썸플레이스 창동중앙점 자리에 있었다. 2017년 폐지되어 창동 지점(도봉보건소사거리에 위치한 옛 상업은행 지점)과 합쳤다. 신한은행의 경우 쌍문역 2번 출구 방향에 위치해서 같은 포지션이라고 보면 될 듯.[17]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통합 후 이곳이 쌍문동 지점이 되는 바람에 기존 국민은행 쌍문동 지점(쌍문동이 아닌 수유3동에 위치)은 강북 지점이 되었다. 이 외에도 주택은행 방학동 지점이 국민은행 방학동 지점이 되면서 기존 방학동 지점(방학동이 아닌 쌍문2동에 위치)은 쌍문북 지점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2017년 1월 9일 기존 쌍문동 지점이 폐지되고 쌍문북 지점이 쌍문동 지점이 되었다.[18] 당시에는 2조식 세탁기가 많았다. 그리고 짤순이는 한일전기의 탈수전용기 고유 명칭이다.[19] 당시엔 패밀리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20] 이와는 별도로 쌍문동 학생들의 1988년 교복착용율은 생각보다 높다. 도심공동화로 인해 종로구 사대문안의 학교들은 학생이 부족했고 신개발지인 도봉구는 학교가 부족해서 쌍문·방학동 학생들은 종로구 계동의 중앙고등학교, 혜화동의 보성고등학교(1989년 송파구로 이전), 경신고등학교 등으로 통학하는 일이 많았다. 이들 학교들은 역사가 100년에 가까운, 나름대로 전통을 강조하는 학교라서 1986년 교복 부활 이후 가장 먼저 교복착용으로 돌아갔다.[21] 이 스타일의 교복은 2000년대 후반 이후의 디자인이기는 하다. 하지만 감색 블레이저에 짙은 회색 바지 조합의 교복이 처음 국내에 등장한건 1980년 3월 경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교복부활이 빨랐던 부산 4학군(동래학군) 지역에서는 1988년 당시 기준으로도 흔한 형태였으며, 이미 1986년 교복부활 직후에 부산예술고등학교의 사례처럼 지금 봐도 세련된 디자인의 교복을 도입한 학교 역시도 아예 없지는 않았고, 심지어 1980년대 초반에도 그러한 학교가 일부 존재 했었다.[22] 컴보이도 1989년에 정발했다.[23] 당시 수입된 홍콩영화들이 대부분 대만 수출용 북경어 더빙판이었기 때문이다.[24] 극중 성동일은 상고졸업후 6급 입사한 은행원인데, 6급 입사자들은 정년때 과장까지 가는 게 대부분이었다.[25] 1988년 당시 대학 등록금 88만원은 사립대학에서 가장 비싼 이공계열 1학년 기준이며, 그나마도 88만원이면 비싼 편이다. 실제로 1988년까지는 대학 등록금이 규제되어 있었으며, 1989년부터 등록금 자율화가 시작되어서 몇몇 사립대학들이 등록금을 많이 올렸으나 대부분 원상복귀했다. 1988년 기준 문과 계열 사립대학은 80만원선, 이과는 90만원선이다. 서울대 등록금 45만원 또한 공대 기준이다.[26] 사범대라면 이야기가 또 다른 게 서울대학교를 위시한 국립 사범대는 1989학번까지 입학금 수업료 면제였으므로 기성회비만 30만원 남짓 납부했다.[27] 그런데 5화에 검은 종이를 감아놓은 듯한 어설픈 맥콜 패트병 재현품이 나왔다.[28] 국제시장의 경우, 거의 현재의 HD제작 방송급으로 글자 크기가 작은데, 이렇게 되면 당시의 표준이던 14인치 브라운관으로 띄울 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아진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미국 방송도 이 정도의 해상도는 구현하지 못했다. 640X480 해상도의 VGA가 갓 나왔던 시절. 참고로 VHS의 주사선은 불과 250라인 정도였다.[29] 대표적으로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철체'를 생각하면 된다. 특히 부산지하철은 진짜 80년대 그대로의 디자인. 다만, 코레일은 2003년부터 코레일체로 CI를 죄다 변경해서 논외.[30] 옛날 금속활자 인쇄본에서 보듯 한자는 네모 틀이 기본이다. 그리고 같은 지면에 좀 더 많은 글자를 우겨넣을 수 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공출이 더 심해지면서 당국이 활자의 가로 폭을 극단적으로 줄여버리라고 했을 정도.[31] 다만, 작중에선 "반갑구만 반가워요"라고 하지만 실제 이 코너에서 장두석 • 조금산이 하던 대사는 "반갑구만 반갑십니더"의 빈도도 높다.[32] 다른 경기도 아니고 올림픽 3대 빅이벤트(남자 축구 결승, 육상 100m 달리기 결승, 마라톤) 중 하나인 남자 100m 결승전에서 터진 대사건이었기 때문에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다. 벤 존슨이 당시로서는 듣보잡 국가였던 대한민국의 도핑테스트 능력을 우습게 보다가 큰 코 다친 꼴이다.[33] 당대에는 소니가 패권을 먹고 있었지만 후지의 경우 후지논 계열 렌즈의 성능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뉴턴 같은 과학 잡지에서 별도로 다룰 정도였다.[34] 다만 당시에 KBS 1TV도 광고를 하긴 했지만 광고수익은 MBC가 더 많았다고.[35] 당대에도 TV수신료가 월 2,500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다.[36] 당시 서울 지역 일부 학생들은 학생동원 및 1988 서울 올림픽 기간 중 임시휴업을 했기 때문에, 폐막 이후부터 겨울방학에 걸쳐서 대단히 빡센 보충수업을 받아야 했다. 법정 수업일수 이수 때문.[37] 이는 나중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 나온다. 그야말로 온갖 권리를 다 위반한 정책.[38] 1988년이면 삼호 • 우성아파트 등 서초동의 오래된 아파트들도 대치동 아파트보다는 한수 위로 대접받던 시대다.[39] 녜웨이핑 九단은 스승인 조훈현 九단의 88년 1회 응씨배 결승 상대로 유명.[40] 단색이 아니라 흰색과 모자이크처럼 오묘하게 조합된 연녹색이다.[41] 그 유명한 달리기 장면에서 경부선 육교 위로 달리는 부분인데,당시 부울경 지역에선 거의 보기 힘들었던 가공전차선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42]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혹은 흰색 '코레일체' 폰트가 사용되는 신 CI[43] 차량상부에 냉방공조기가 없고 하부에 냉방장치가 있는 냉방방식[44] 드라마 화면에는 110회라고 표기돼 있지만 KBS가 2020년 공개한 실제 영상을 보면 267회라고 나온다. 드라마에 표기된 회차 숫자는 CG로 덮은 것이다.[45] 실제 당시에 발매된 해적판을 가져온 것으로 보기에는 종이 질, 인쇄 및 제본 상태가 상당히 양호하다.[46] 심지어 시티헌터의 경우는 없는 연재본을 만들어서 완결판을 내기도 했는데, 개중에는 단행본 1권에 드래곤볼 반, 시티헌터 반이 섞여서 편집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묶어서 다른 제목으로 바꿔서 대량유통 시키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닥터슬럼프를 드래곤 볼 2라고 하는 식이다.[47] 화학과 수학. 동룡이 말하기를 전공이 수학이었다고 한다.[48] 참고로 배우인 유재명은 실제로 생명공학과 출신이고 생물 교사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49] 김민정이 아역 시절에 나온 그 광고 맞다.[50] 그런데 이 당시에는 PD의 요청에 의해 까라면 까는 경우가 흔했다. 최연제나 박정운도 후속곡과 히트곡을 같이 부르던 케이스다. 이 관행을 90년대 들어와 박살낸 게 바로 신해철-서태지 라인이다.[51] 이덕화가 1990년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조용필이 병문안을 갔는데 병원에서 "야 괜찮냐?"라고 물어보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고 한다.[52] 사실 지금도 쌍문역은 쌍문동이 아니라 창동에 있다. (정확히는 쌍문동과 창동의 경계선으로, 역무실이 창동에 위치.)[53] 명인전 결승 1국에서 박준형 初단에게 패배. 그러나 初단이 타이틀전(명인전) 결승까지 올라왔다는 건 상당한 괴물신인이란 뜻이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상금 1위를 차지하던 탑 프로기사가 신인한테 졌으니 본인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게다가 당시 중계내용을 보면 '신인한테 유독 약하다'는 최택의 징크스가 언급된다. 최택은 이 점을 자신의 한계로 느낀 듯.[54] 1987년 MBC 뉴스데스크 삽입광고에는 1983년 제작된 삼양라면 골드 광고가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 아침시간대에 가끔 나오는 장수돌침대 광고는 2015년 기준 근 10년이 넘은 물건이다.[55] 타이틀 시퀀스 후 본방 전에 광고 나올 때에 화면 우상단에 프로그램 정보가 박혀있는 것.[56] 김정봉이 김성균에게 "아버지, 지금 7번에 코스비 가족 할 시간입니다."라고 말한 시각이 오전 10시 15분에서 20분 사이다.[57] 다만, 성보라가 총학 활동과 서총련 활동을 같이 하는 식으로 개인플레이를 하고 있다면 별 상관 없기는 하다.[58] 5회 초반에 날아온 신문 쪼가리의 기사가 전두환 은거 소식인데, 이게 11월 말의 이야기다.[59] 운동권 계파에 관해서는 NLPDR 항목이나 CNP 논쟁 문서 참조.[60] 4공~5공 헌법은 간선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국민이 표를 행사하여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막혀 있었다. 특히 4공 헌법(일명 유신헌법)은 통일주최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뽑는 구조였고, 5공 헌법은 선거인단이 뽑는 간선제를 채택.[61] 박세길 저서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등지에서 같은 논조가 나온다.[62] 학생운동이 쇠퇴한 건 여러 원인이 지적되고 있는데, 대외적으로는 1996년 김영삼 정부의 한총련 불법화+관계자 수배크리로 인한 핍박과 1997년 외환위기 외에도 내부적으로도 조직의 수직계열화나 내부 모순 등이 곪아터지며 안팎으로 무너졌다. 또한 전작에서 생략된 연세대 사태는 이러한 운동권 퇴조 경향에 불을 붙이는 데에 매우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63] 없습니다, 많습니다 등[64] 실존인물이지만 1988년엔 만 8세였다.[65] 조치훈의 라이벌이자 휠체어 대국으로 유명했던 그 바둑기사.[66] 한국에서 굳이 한글로 써도 되는 곳에 한자를 사용하는 딱 그 정도의 맥락이다.[67] 다만, 1980년대 말은 카페가 성행을 이루었고, 일일찻집 또는 일일카페가 유행처럼 번졌었다. (성노을의 일일찻집 에피소드 참고) 압구정동에도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던 시절이다.[68] 하지만 유니클로도 로데오거리 상권의 침체의 영향으로 2017년에 폐점하였다.[69] 출시사: 대우전자. 상영시간: 108분[70] 스페인어로서는 최초다.[71] 최초의 컵라면은 1화에서 교실에서 점심을 먹을 때 류동룡이 옆 친구에게서 뺏어먹는 장면이 있다. 1972년 출시하였고 가격은 50원이었다.[72] 현재의 안성탕면쯤 되는 위치에 있는 보급형 라면. 안성탕면처럼 건더기/분말스프 일체형이었다.[73] 이게 뭐 대단한건가 싶을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80~90년도였다는걸 감안하자. 저 당시엔 영어를 잘하면 고급 스펙 내지 지식인 취급을 받았던 시대였으며, 인터넷의 발달과 PC의 보급률이 절망 수준이었기에 정보습득의 벽이 매우 높았던데다 그 자료라는것들도 후루꾸와 야매가 판을 치던 시대였다. 아마 지금으로 따지자면 한글자막이 없이 미드를 봐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것과 비슷한 셈이다. 물론, 공부 빼고 모든 것에 취미를 붙이던 김정봉인지라 단순히 저 노래를 질리도록 들어서 외웠을 확률이 더 높지만...[74] 정운찬 전 총리처럼 다른 사람들이 본인에게 어느 대학을 다니냐고 묻자, "당연히 서울대지, 다른 대학을 다닐 데가 있습니까?" 라고 자뻑하면서 대답한 일화를 생각하면 된다.[75]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병원의 마크를 잘 보면, 서울대학교 실제 마크를 조금 손본 정도임을 알 수 있다. 월계수 틀 내에 책이 펼쳐져 있는 파란 로고를 확인할 수 있다.[76] 이렇게 처리한 이유는 간접광고 문제 때문이다. TV광고가 허용되어 있는 대학과는 달리, 의료기관은 의료법에 따라 TV광고가 아예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병원이 주 무대로 등장하는 응사도 이 문제 때문에 병원 이름을 바꿔서 언급하고 병원 전경샷도 이름 일부를 가로등이 가리는 구도로 촬영했다.[77] 옆집 문이 열리고 "아빠!" 하면서 아이와 아내가 마중 나온다.[78] 당시기 전후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의 국내 비디오 출시사 체계는 다음과 같았다. 워너 브라더스 - SKC, 파라마운트 / 유니버설 픽처스 - UIP코리아(CIC), 20세기 폭스 / 콜럼비아 - 대우전자(세신영상), 디즈니(터치스톤, 할리우드 등) - 삼성물산(드림박스)[79] 이 사이에는 KBS 제1라디오와 KBS 라디오서울(현 SBS 러브FM) 주파수이다.[80] 당시 MBC의 중파송신소는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었다.[81] 실제로 13화에서 정환이네 집에 220V용 다리미가 등장했다.[82] 서천군 장항읍에는 규모가 좀 있는 도시에서나 볼 법한 창선동1가라는 행정구역이 있었다. 지금은 창선1리로 개칭.[83] 서울시내에서 접근하기 쉬운 도선사나 조계사, 길상사 등을 공양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누구나 식사를 할 수 있다. 물론, 공짜라고 생각하지 말고 쌀이나 소액의 돈을 보시하는 것이 마음도 가볍고 좋다.[84] 일부 사찰 등에서 실비로 돈을 받기도 하는데, 불교계 내에서도 말이 많다. 특히나 조계종은 탁발 금지이기 때문에 신도나 절이 알아서 서로 잘 해야 하는데, 돈 얘기로 얽히기 시작하면 골치 아파진다.[85] 류동룡을 잡으러 갔다올 때 김정환의 푸념 "보라 누나는 차에 거북이 넣고 다닌대냐?"가 바로 그 증거.[86] 실질적으로 강남에서 강북, 특히 성북•강북•중랑•노원•도봉 등 서울 동북지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한강다리를 건넌 뒤 강변북로를 타다 동부간선도로로 갈아타서 올라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 형태의 동부간선도로가 개통된 것은 1993년이다.[87] 당시만 해도 대천시와 보령군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해수욕장이 있던 곳은 구 대천시였다. 시군 통합은 1995년 1월 1일.[88] 현 아산시[89] 비하인드 영상 속 꽃지해변이 보이는 표지판이 있었다[90] 현재는 그 자리에 서라벌중학교와 우이동 푸르지오 아파트가 있다. 참고로 서라벌중은 1998년에 돈암동에서 이곳으로 이전하였다.[91] 위에서 찾아볼 수 있듯, 노원구는 1988년 1월에 이미 다른 구로 분리됨[92] 2010년대부터는 전국노래자랑에 고등학생도 많이 나왔지만 1980~1990년대에는 20~30대가 대부분 나왔지만 고등학생은 나오지 못했다. 19세 출연자는 자퇴생 및 빠른 생일이거나 만 나이로 표기된 것으로 추정되며 18세 출연자까지는 거의 드물었다.[93] 특히 지금의 서울 지하철 5호선 마곡역 주변이 더욱 두드러졌다. 1996년 3월 이 역이 준공되었지만 이로 인해 12년간이나 방치되어 오다가 이 역 남쪽 수명산파크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으로 2008년 6월부터 여객 취급을 시작했다.[94] 물론 비디오로 봤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타이틀에 들어가는 수파(로고)가 너무나도 방송국스러운 캘리그래피. 당시 타이틀 화면을 그대로 쓴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당시 만화영화 VHS출시본은 조악한 그래픽 폰트가 99%.[95]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5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사람들. 1970년대 후반부터 이 세대가 서서히 성인으로 등장하던 시기였음.[96] 프렌치 키스라는 말이 유행한 것도 1995년도 맥라이언 주연 영화가 개봉된 이후였다.[97] 당시 아파트는 1988년 12월 입주 시작.[98] 특히 독일어, 프랑스어 등 유럽계 제2외국어. 오죽하면 임용대상자들을 6개월간 동양계 제2외국어 교육을 시켜서 해당과목으로 발령을 내려 했을까? 물론, 이는 비사범계나 사립대 사범대 일문과, 중문과 학생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99] 이렇게 임용적체가 되어 발령이 나지 못한 1980년대 학번 인원들은 자동임용이 위헌판결을 받게 되자, 자동으로 임용을 할 수 없어진 관계로 임용시험을 봐야 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3저호황에 의해 취업이 매우 잘 되던 시기라서, 귀찮은 임용시험보다는 대기업 입사를 택했다.[100] 극장에 갈 시간과 돈 대신 해적판 비디오를 빌려서 보는 게 경제적인[101] 심지어 해외에서 복제판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는 국내 극장에서 캠코더로 찍은 소위 '캠판'이 나돌기도 했다.[102] 백 투더 퓨처는 흥행에 실패하지 않았다. 개봉관 기준 34만명을 끌어들여 87년 국내 영화 흥행순위 4위를 기록했다. 물론 개봉 당시 미국의 인기를 감안하면 높다고 볼 수 없지만.[103] 다만 질것 같지 않던 상황에서 이변이 일어난 경기라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패배가 나왔을 때는 패배 위주로 쓰는 경우도 있다. 가령 브라질 충격의 1:7 패배.[104] 실제로 여기서는 대종상 최다수상작을 헤드라인으로 뽑지 않고 "친구, 대종상 전 부문 탈락"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팔리는 헤드라인의 정석'으로 회자되는 듯.[105] 방학동과 가까운 쌍문2, 4동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정의여자중학교가 있기 때문에 여학생이 굳이 방학중학교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반면 쌍문2, 4동에 사는 남학생은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방학중학교나 창동중학교로 배정되는 일이 많았다. 거리상으로는 창북중학교(당시는 남중)가 가깝지만 이 때 창북중학교는 쌍문동에 사는 학생들은 받지 않았다. 1990년 선덕중학교가 이전하고 1992년 백운중학교가 개교하면서 남학생들의 장거리 통학이 많이 줄었다.[106] 도심공동화로 인해 도심학교가 특히 이랬다. 종로구 계동의 중앙중학교나 혜화동의 동성중학교 등은 종로구 학생들보다 도봉구(현 강북구) 미아동, 수유동 학생들이 더 많은 경우도 다반사였다.[107] 가상매체에서 비슷한 사례가 매직키드 마수리에서 친구의 보증을 서준 이슬이 아빠가 은행으로부터 통장이 압류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혼자서 고뇌하던 중 친구가 대출금의 일부를 상환하여 통장 압류가 풀렸다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당연히 주채무자가 대출금의 일부를 상환하여 보증인의 통장 압류가 풀리는 일 또한 현실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108] 프레임 끝이 고리모양이라 날개 울에 그냥 끼우기만 하면 되었다.[109] 다만, 제1회 응씨배 결승은 1989년에 치러졌으므로, 이쪽을 의미한다면 가능하다. 기사 참조[110] 오히려 요즘보다 1980년대에 한물 간, 또는 덜 유명한 해외 가수들의 공연이 더 많았다. 1981년의 둘리스, 82년의 놀란스(둘 다 국제적으로는 덜 유명했지만 한국에서는 유명했다), YMCA로 유명한 빌리지 피플도 1983년 한국을 찾았다. 1987년도에도 유로댄스(터치 바이 터치의 조이, 스페인의 데이비드 라임) 등 여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가수들이 자주 내한했다.[111] 대학 재학생에 한해 허용되었다. 본격 서울대생이 과외로 수십만 원을 벌게 된 시점이다.[112] 장충동 본점의 태극당과 이름만 같은지, 계열인지는 불분명.[113] 애당초 성신여대입구역 상권의 시작이 여대생들이 아닌 수도권 전철 4호선 개통 직후 혜화•삼선•돈암 지역 중•고교를 다니게 되는 성북•도봉•노원구 학생들의 10대 위주 공간이다. (노원역, 수유역 상권 생기기 이전이다.)[114] 이 그룹의 멤버 중 한 명인 김성애의 아들이 타이거JK이다.[115] 종종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슈스케에 나온 적도 있고, 히든싱어 게스트로도 나왔고, 게임중독법 반대 플래시몹에 초청되어 Baba Yetu를 부르는 위엄을 보이기도 했다.[116] 스타킹에 출연한 적도 있는데, 이때 게스트로 출연했던 혜리가 나중에 결혼식 축가를 불러달라고 부탁한 인연도 있다.[117] 김성근 감독이 맡던 시절의 OB의 전력은 우승은 1번 정도 더 할 수 있던 전력이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84년의 저주기 게임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다시 한국시리즈에 진출 할 수도 있었다.[118]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 라이온즈가 4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며 타이기록을 작성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삼성은 4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이었고 해태는 한국시리즈 한정 4년 연속 우승이었다.[119] 뉴스에도 나오지만 7개 구단 중에서 최하위인 7위를 했다. 사실 1988년까지 삼미-청보-태평양은 장명부의 괴물 같은 활약을 등에 업은 1983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위권에 머물렀던 만년 약체였다. 이때의 순위 추이를 보면 6위-3위-6위-6위-6위-7위-7위. 7년의 시즌에서 꼴찌만 5번 했다.[120] 사실, 이 시절에 박진영과 현진영은 전국구급의 춤 실력으로 이름 좀 날렸었다. 그리고, 박진영은 유세윤의 프로젝트 그룹 UV의 '이태원 프리덤' 뮤직비디오에서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의 춤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121] 참고로 2기 지하철(5~8호선)에서는 아직도 이 사람의 녹음을 쓰고 있다가 현재는 개정.[122] 인쇄오류로 볼 수 있는 이유는 달력을 그 전해에 만들어서 휴일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에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1999년부터 신정연휴가 하루로 축소될 때도 당시 달력에는 2일까지 휴일로 되어 있었다. 당장 최근인 2013년에도 한글날이 공휴일로 복귀하였는데도 휴일로 나와 있지 않은 달력이 많았다.[123] 과거에는 주민등록상 출생연도가 실제 출생년도와 다른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당시 경제적인 여건뿐만 아니라 의료기술과 시설 역시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생아의 생존율이 높지 않아, 1~3년 정도 키워보고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그제서야 출생신고를 하는 일이 많았다.[124] 동두천에 있는 단관 영화관. 극 중 피카디리극장으로 나온다.[125] 물론, 전인화와 9살의 나이차 때문에 그랬던 것일 뿐 인기가 많이 없어서가 아니었다.[126] T-50이 운용중인 것은 3훈비가 아닌 52시험비행대대이고 T-50을 훈련기로 운용중인 비행단은 광주의 1비이다. 게다가 T-50의 경우 애초에 해당 시기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127] 이른바 저시안성 계급장으로, 육해공군 모두 이전부터 변경을 추진해 왔으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게 된다.[128] 1992년 12월 군번인 공군 의장대 병 468기의 사진을 보면 ‘야상' 위에 흰색 계급장을 달았다. 군복/한국군/공군 참고.[129] 신도시 개발이 착수되기 전까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풍경은 판교IC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