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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04:29:03

기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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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여성의 기모노인 후리소데를 갖추어 입은 모습 남성이 기모노를 착용한 모습 (이로몬츠키하카마色紋付袴)

1. 개요2. 기원 및 역사3. 종류4. 가격5. 오해와 편견
5.1. 입기 힘들다?5.2. 속옷을 입지 않는다?5.3. 오비에 대한 오해
6. 서브컬처
6.1. 기모노를 항시 착용하는 캐릭터
7. 그 외8. 둘러보기

1. 개요

일본어: 着物(きもの), 和服(わふく)
중국어: 和服
영어: kimono
이모지: 👘(U+1F458)

'기모노'는 '입는 것', 즉 모든 '일본 전통 옷'을 뜻하며, 한국인들이 기모노 하면 떠올리는 후리소데를 포함한 일본 전통의상 전체를 가리킨다. 단 애초에 별도의 민족이었던 아이누 민족의 옷과 19세기까지 류큐 왕국이라는 별개의 나라였던 오키나와의 전통의상은 포함하지 않는다.

의복의 발전상을 보면 기모노와 같은 '몸에 걸쳐 입는 옷들'[1]은 대개 껴 입는 숫자가 비슷하지만, 유독 기모노는 많이 껴 입는 편이다. 의복 문화가 발전하면 보통은 '겹쳐 입는' 의상이 도태되기 마련이지만, 일본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상류층의 상징으로 남았기 때문인 듯하다. 사실 한복도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바지에 치마를 여러 겹 입는 등 굉장히 많이 껴입었는데 간소화된 것이다. 반면 좀 더 평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입을 만한 기모노는 오늘날 입고 다니는 양복에 비해서는 거치적거리지만, 소매가 길다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복잡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은 편. 기모노를 입은 채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정도다.

기모노는 마름질을 하지 않고 바느질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더 쉽게 말하자면 각 부분을 조각조각 잘라서 잇지 않고 천을 그대로 활용하여 만든다. 이렇듯 재단을 하지 않고 옷감의 폭을 그대로 사용하여 봉제만을 하기에 단을 자르지 않고 키에 맞춰서 접은 뒤 박는 식으로 길이를 조절할 수 있으며, 각 신체 부위에 딱 맞게 만들지 않기 때문에 길이만 조절하면 남이 입던 것도 별 문제 없이 착용할 수 있다.

기모노는 치마 통이 좁으므로 보폭이 제한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도 통이 좁아서 보폭을 크게 할 수 없다기보단, 보폭을 크게 하면 앞섶이 벌어지면서 맨 다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렇다 할 속옷이 없었던 과거에는, 여성들이 하반신 노출에 특히 조심해야 했었다. 한국에서는 치마 폭이 넓은 한복 때문인지 편한 자리에서 좌식으로 앉을 때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는 자세가 큰 실례는 아니지만, 일본에선 예의에 어긋날 수 있다.

이 때문에 활동성이 필요한 여성들이 입던 것이 기모노 위에 한 겹 더 입는 겉치마인 하카마(袴). 겹쳐 입음으로써 하반신 노출을 방지해 활동성을 더하는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하카마는 특히 졸업식 때 여대생[2]들이 즐겨입는데, 이 시즌이 되면 잡지 등에서 하카마에 관련된 정보를 많이 다룬다고 한다. 일부 여대생들은 자신의 할머니나 어머니가 입던 것을 입기도 한다.[3]

여성 복식은 코소데(小袖)로 구성된다. 원래 호[袍]·우치기[袿]와 같은 오소데(大袖: 소맷부리가 넓은 옛날의 예복) 밑에 입는 통소매(筒袖)의 속옷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나중에 속옷인 고소데를 겉옷으로 입으면서 겉옷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다시 비단에 솜을 두어 만든 솜 나가기(長着: 길이가 긴 일본의 대표적인 옷)와 겹 나가기 전부를 가리키게 되었다. 그러나 고소데는 히로소데(広袖: 소맷부리의 아래쪽을 꿰매지 않은 소매)를 제외한 소맷부리가 좁은 옷만을 가리키고, 현대의 일본 옷은 모두 고소데이다.

기모노를 입을 때 주의해야 할 점 중 하나가 옷깃을 여미는 방향이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입는 사람 기준으로 왼쪽 옷깃이 위로 올라가도록 해야 한다. 즉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는 오른쪽 옷깃이 위에 올라가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일본 용어로는 미기마에(右前), 한국이나 중국의 전통적인 한자 용어로는 우임(右衽)이라고 부른다. 옷깃 방향을 반대로 여미는 것은 좌임(左衽)이라고 하는데, 좌임 기모노는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수의뿐이기 때문에 매우 불길하게 여긴다. 산 사람이 옷깃을 반대로 여미면 일찍 죽는다는 따위 속설이 있고,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혹여 실수로 좌임으로 기모노를 입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들을 것이다.

일본에서 기모노 입기 체험을 입는 방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실수로 좌임으로 여미면 일본인 안내자들이 기겁하며 옷깃 방향을 고쳐주곤 하는데 이런 속설[4] 때문이다. 오른손잡이인 사람이 대다수이니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가슴팍에 손을 집어넣기 쉽게 왼쪽 옷을 위로 올린다고 생각하면 쉽다. 창작물에서도 기모노를 입은 캐릭터의 오른쪽 옷깃이 위로 올라가 있다면, 작가가 실수한 것이 아닌 이상은 인물의 사망 혹은 '죽음의 각오'를 암시하는 의도적인 장치이다.

우임을 산 사람의 기본 복장으로 여기는 것은 고대 중국 한족 문화의 영향이다. 중국에서는 좌임은 오랑캐들의 복장이라 천시하였고, 한문 고서에서는 '좌임'이 '오랑캐들의 미개한 문화'란 관용어처럼 쓰이기도 하였다.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초중반에는 우임과 좌임을 혼용하였고 좌임 복장도 전혀 거리끼지 않았지만, 삼국시대 후반부터는 점차 우임으로 통일되어 오늘날까지 내려왔다. 한국도 본디 좌임과 우임을 섞어 입었으나 중국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에는 산 사람이 입는 옷을 우임, 수의를 좌임으로 입는다. 일본의 기모노 예절 또한 이러한 동북아 의복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에서 남자들의 기모노는 대부분 검은색, 남색, 갈색 등 짙은 색을 많이 쓴다고 한다. 흰색이나 하늘색 등 밝은 색을 쓰는 한복과는 정 반대.

2. 기원 및 역사

2.1. 조몬 시대-야요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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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초창기 '관두의' 형태의 복식.

조몬 시대부터 야요이 시대까지는 관두의(貫頭衣)[5]와 횡폭의(橫幅衣)[6] 같은 남방계 복식이었다.

2.2. 고훈 시대-아스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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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 시대 아스카 시대
4~5세기 이후부터 등장하는 고훈 시대하니와[埴輪]를 참조해보면 바지와 저고리 구조의 전형적인 북방계 복식 형태를 하고 있다. 만주, 한반도에서 전래된 북방 호복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일본서기에는 「475년 백제인이 일본으로 의복기술을 전파해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부상략기(扶桑略記)에는 「아스카지[飛鳥址] 완공을 앞두고 사리함을 안치하는 행사에서 왕과 소가노 우마코를 비롯한 100여명의 고관대작이 모두 백제 옷을 입고 행사를 거행하니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부 학자들은 고대 중국의 한푸가 기모노의 근간이라 주장하기도 하지만, 다카마쓰총 고분 벽화 등 초창기 기모노의 형태를 보면 한푸보다는 한복(그 중에서도 특히 백제, 가야의 복식)과 동일하다시피 할 만큼 고대 한국의 한복과 훨씬 더 근접한 형태를 하고 있다.

2.3. 나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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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풍唐風

나라 시대는 대륙에 있는 당나라의 영향을 짙게 받은 시대로, 당대 동아시아의 트렌드였던 당풍(唐風 : 당나라식 풍습)의 영향을 받아 당나라 스타일의 옷이 유행하였다. 이 옷은 훗날 헤이안 시대에 접어들어 구식 취급을 받게 된다.

남자는 단령, 옆트임, 무, 소매통, 옷감 등에 있어 다양하게 현지화시킨 단령을 입었었다.

여자는 짧은 상의에 치마를 겨드랑이까지 높여 입고 반비를 덧입고, 표나 영건을 둘렀다. 소매없는 관두의(貫頭衣)도 여전히 남아있었으며 금직물, 가죽, 나무 등 다양한 소재의 신발이 개발되었다. 그 외에도 옥장식 가죽 허리띠, 비녀, 버선, 행전 등으로 치장했는데 이는 고대 한반도 남부(백제, 신라, 가야)의 양식 영향으로 추정된다.

2.4. 헤이안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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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인 귀족 문화가 발달한 헤이안 시대는 세련된 생활 양식과 귀족 문화의 기반을 다진 일본 문화의 황금기로 꼽히는데, 헤이안 시대가 의외로 길었기 때문에 시대별로 옷차림이 계속해서 바뀌어 갔다.

전기에는 나라 시대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어 의례, 예법, 복식이 여전히 당나라식이었다. 왕실의 복식은 곤면, 십이장, 구장, 예의 등의 예복 제도를 갖추었는데, 이것이 당의 영향이었다.

894년 견당사가 폐지된 뒤 일본은 헤이안 시대 하면 떠올리는 독자적인 문화를 펼치기 시작하는데, 이를 와후(和風) 또는 일본풍이라고 불렀다. 연회나 사냥 같은 유흥이나 사치가 유행했으며 직조와 염색 기술이 발달하면서 옷의 색상, 무늬, 디자인이 크게 발전하게 된다. 복식도 세분화되면서 격식, 형식, 색채미를 강조하였고 옷을 많이 겹쳐 입는 것으로 위엄을 드러내었다. 또 옷에다 풀을 강하게 먹여 뻣뻣하게 하는 고와쇼우조쿠(講和装束)의 작창법으로 외관에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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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가 남자는 정식 예장으로 소쿠타이[束帶]를 입었다. 중국에서 유입된 단령과 복두가 일본화된 것으로, 남자의 정식 예복 차림을 대표하는 정장이 되었다. 시츠샤칸, 호우, 한삐, 시타가사네, 아코메, 히토에, 우에노하카마, 시타바카마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관모와 의복의 색상과 무늬로 신분을 표시하였으며 가문 별로 특정한 무늬를 사용하였다. 세키타이(허리띠), 타치(큰 칼), 교타이(어대), 샤쿠(홀), 다토우(부채, 첩지)까지 모두 갖춰져야 덴노부터 신하들까지 공식적인 모습이었다. 시토우즈(버선), 리 또는 화. 무관은 호우 위에 우치카케를 덧입었다.

소쿠타이의 약식 예장으로는 호우코(布袴)와 이칸(衣冠)이 있었다.

호우코(布袴)는 전체적으로 소쿠타이와 유사하게 생겼는데, 하급 관리, 상급 비상시, 관료의 입궐 시 약식 예복으로 사용되었다. 관을 쓰고 스이에이가 달렸으며, 호를 걸치고 세키타이라는 허리띠를 둘렀다. 바지는 우에노하카마 대신 마포로 된 사시누키였으며 사시누키는 점차 특정한 복장 차림으로 변한다. 쿄(시타가사네)가 옷 뒤에 빠져나온 뒤 홀을 들고 있었다.

이칸(衣冠)은 숙직 시에 입다가 후에 관료의 평상 입궐 시 착용하는 약식 예복으로 자리잡게 된다. 소쿠타이에서도 한삐, 시타카사네 같은 받침옷을 대폭 생략했다. 바지는 사시누키에 세키타이 대신 천으로 만든 허리띠를 둘렀으며, 관모와 의복 색상 및 무늬로 신분을 표시하였으나 문, 무관의 구별 없이 봉액포였다. 시츠사칸이라는 관모에 호우라는 옷을 입었으며 안쪽 옷은 히토에였고, 옷 사이에는 다토우라는 것을 끼웠다. 시토우즈라는 신발을 신었다. 타치는 차지 않았으며 평소에는 쥘부채를 들거나 아무것도 들지 않았지만 신에게 배례 시에는 홀을 들고 있었다.

공가 남자의 평상복은 노우시(直衣)였는데, 후에는 조정에 나가 일을 할 때도 입었다. 사시누키와 함께 착용하고 세키타이 대신 천으로 된 허리띠를 둘렀다. 호우는 소쿠타이와 같지만 정해진 색과 무늬는 없다. 뒤에는 소쿠타이와 위포로 된 잡포로 바뀌었다. 관모는 에보시였다가 에보시노우시로 바뀌었으며 엄숙한 의례 시에 사용하던 시츠사칸도 간무리노우시로 바뀌었다.

에보시노우시는 관, 스이에이에 노시로 된 옷과 우치기누(內衣)를 안에 입었고 바지로는 사시누키를 입었다. 훗날 노우시는 다테에보시라는 관과 아코메라는 안감, 노우시라는 정장, 사시누키를 입었고 부채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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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모형

2.5. 가마쿠라 시대-남북조시대-무로마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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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시대

귀족의 시대에서 무사의 시대로 바뀌었던 시기로, 12세기 경, 무사 집단이 성장하였다. 호겐의 난 이후부터 무신정권기가 형성되었으며 가마쿠라 막부가 수립되면서 가마쿠라 시대에는 귀족과 무사라는 이원적 문화가 형성되었다.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귀족, 무사의 옷을 본떠서 고와쇼우조쿠(强裝束)가 생겼으며 전란을 거치며 실용성이 중시되어 소쿠타이(束帶)와 이칸(衣冠)에는 과장된 깃이 낮아지고 함피와 아코메를 생략했으며 시타가사네의 뒷자락을 별도로 제작하는 등 복식이 간소화되었다.

카리기누 계통의 옷에 뒤를 짧게 해서 실용성을 강조하는 한지리(半尻)가 생겼고 여자 복식은 중대 의식을 제외하면 우치기누, 우와기, 가라기누, 모를 생략하고 고소데 위에 히토에와 우치기 다섯 벌을 껴입는 수준으로 간소화되었다. 중요한 의식에도 모 대신에 옷자락이 짧은 치마 모양인 유마키/이마키를 걸쳤다. 하카마가 일상적이 되어 고소데와 하카마의 약식 차림이 귀족 여자의 평상복이 되었다.

무사 계급이 성장하면서 무사들의 복식도 덩달아 격이 높아졌다. 소쿠타이는 조정 의례 시 막부의 정이대장군과 상급 무사의 최고 예복이었고 일반적인 무사의 예장은 카리기누(狩衣)와 스이칸(水干)이었다. 가마쿠라 시대에 일반적인 무사의 복장은 히타타레(直垂)였고 전쟁 때 위용을 갖추기 위해 값비싼 소재의 갑옷으로 요로이히타타레(鎧直垂)를 걸쳤다.

카리기누=호이(布衣)는 본래 마포로 만들어 사냥용 복식으로 사용한 옷이었는데, 낮은 신분의 평상복에서 젊은 관리의 야외복, 사냥복이 되었다. 헤이안 시대가 되면 귀족 젊은이들의 일상복이자 높은 신분의 야외복이 되었는데 가마쿠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상급 무사의 예복이 되었다. 자연스레 무늬와 색이 화려해지고 옷감도 고급스러워졌다. 둥근 깃의 포와 사시누키를 입고 머리에는 에보시를 썼다. 히토에의 소매에는 즈유라는 천을 연결했는데, 소매가 앞길과는 연결되지 않고 뒷길과만 연결되었다. 포는 폭이 좁고 옆선이 트여 있었다.

스이칸(水干)은 옷에 풀을 먹이지 않고 물기 있는 천을 그대로 말린 것이다. 헤이안 시대 때 공가의 야외복이었다 무사의 예복이 되었는데, 넓은 소매가 특징이었다. 이부식 의상으로 상의를 바지 안에다 넣어 입었다. 둥근 깃을 안쪽으로 꺾어 넣어 곧은 깃처럼 보이게 입었는데, 이는 귀족 가문의 포와 무가를 대표하는 곧은 깃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 둥근 깃의 앞뒤에 고정하기 위한 긴 끈을 달았고 가리기누와 달리 기쿠토지를 달았다. 기쿠토지는 앞길과 진동선의 술장식으로 진동 봉합을 보강하는 실용적, 장식적인 용도가 있었다.

무가의 평상복인 히타타레(直垂)는 본래 헤이안 시대 때 농부의 작업복+가리기누로 10세기만 하더라도 서민들의 복식이었지만, 가마쿠라 막부 시대로 접어들어 무사의 평상복이 되었고 가마쿠라 중기 이후부터는 대표적인 복식이 되었다. 곧은 깃, 옆트임이 있는 상의와 하카마로 이루어져 있었다. 즈유와 기쿠토지를 달았으며 오리에보시(사무라이에보시) 또는 다테에보시라는 관을 쓰고 부채를 들고 있었다. 가리기누를 풀고 하카마를 했는데, 가마쿠라 막부 시대에는 짧은 기리하카마를 했지만 남북조 시대 - 무로마치 막부 시대로 접어들면 긴 나가바카마로 바뀐다.

여성의 외출복으로는 츠보쇼우조쿠(壺裝束)와 카즈키(被衣)가 유행했다.

츠보쇼우조쿠(壺裝束)는 하카마에 우치기를 걷어올려 겉옷이 끌리지 않도록 접어묶은 차림인데, 허리에 끈을 묶어 항아리처럼 생긴 것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었다. 고소데가 주로 착용됨에 따라 하카마를 생략하고 히토에나 우치기를 걷어올려 입게 된다. 모자 문화도 발달하게 되는데, 이치메가사市女笠라는 챙이 넓은 립과 다레기누(무시노타레기누)라는 천을 달아서 얼굴에다 늘어뜨렸다.

카즈키(被衣)는 넓은 소매의 옷을 머리부터 덮어쓴 것으로, 기누카즈키가 된다. 깃의 위치는 어깨선보다 앞길 쪽으로 내려왔다.

2.6. 센고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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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고쿠 시대로 접어들면서 옷차림이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과거 전통적인 관습이 사라지면서 공가 복식은 더더욱 간소화되었고, 무가의 문화는 센고쿠다이묘가 나타나면서 개화되어 무가 중심의 복식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처음에는 기능적, 실용적이었으나 후대에는 화려하고 호화롭게 발전하였다. 무가 복식의 지위 상승으로 히타타레는 예복화되었고, 가타기누바카마(肩衣袴)라는 복식이 나타나게 된다.

또 서민적인 문화가 발달하면서 서민 남녀의 일상복으로 고소데가 사용되었고, 16세기에 조선에서 목화가 전래되면서 무명옷 기술이 개발되고 명에서 전해진 금란, 단자 기술로 다양한 직물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러한 직물 생산의 중심지는 교토의 니시진으로, 막부의 비호 하에 발달하여 훗날 화려한 복식 문화의 토대가 되었다.

센고쿠 시대 무사의 최고 예장은 소쿠타이(束帶)에서 히타타레(直垂)로 바뀌었다. 나가바카마(長袴)를 착용하고 하카마[袴]라는 흰색 허리띠를 둘렀다. 깃의 좌우 양쪽에는 가는 끈을 묶어 드리우고, 상의를 바지 안으로 넣었다. 이 옷은 요로이히타타레(鎧直垂)라는 갑옷 안 받침대 옷으로도 사용했는데, 좁은소매, 소맷부리와 바짓부리을 오므릴 수 있도록 끈이 달린 실용적인 옷으로 후대에는 화려하게 변했다. 초기에는 검소했지만 과시적으로 변하게 된 센고쿠 시대 복식 양상을 보여준다.

이 히타타레에서 분화된 복식이 다이몬(大紋)과 스오우(素襖)였다. 다이몬(大紋)은 마직으로 만든 히타타레의 일종으로, 상위 무사의 복식이었다. 양 가슴,​ 소매 가장자리, 등솔기, 바지 옆솔기에 집안을 상징하는 가몬(家紋)을 크게 새긴 것이 특징이었다. 가몬은 옷감염색시 바탕흰색을 남겨서 만들며 기쿠토지를 달아 장식했다. 스오우(素襖)는 마직으로 만든 하급 무사나 무가 소년들의 평상복으로, 가몬 위치에 다양한 무늬를 사용했고 가슴 끈과 기쿠토지를 가죽으로 만들었다. 상의와 하카마, 허리띠 모두 같은 직물로 만들었으며 하카마의 폭은 좁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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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가타기누바카마(肩衣袴)

가타기누바카마(肩衣袴)는 센고쿠 시대의 복식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것으로, 고소데 위에 등걸이 형태의 가타기누와 하카마를 입는 방식이었다. 본래 나라 시대 때 서민들의 소매 없는 옷에서 기원하였는데, 고소데가 노출되면서 고소데가 기본이 되는 시대로 연결해주는 옷이 되었다. 처음에는 어깨가 자연스러웠으나 어깨가 확장되면서 각진 모습으로 정형화되었다. 평상시에는 짧은 하카마를 사용했지만 예식으로는 긴 하카마를 입었다.

이 시대에는 스님이 착용하던 도우후쿠[道服]에서 유래한 도우부쿠(胴服)라는 옷도 유행했다. 주로 서민들이 입던 길이가 짧은 상의로 방호, 방한을 위한 실용성을 가지고 있지만 도우후쿠는 넓은 소매, 긴 옷걸이, 겨드랑이 아래에 여러 개의 주름이 있는 형태라면 도우부쿠는 소매가 짧고 겨드랑이 아래에 주름이 없는 단순한 형태였다. 입고 벗기 편해서 요로이하타타레 뒤에 덧입는 옷으로 선호했다. 스님의 도우후쿠나 서민의 도우부쿠는 먹색이나 다갈색 같은 수수한 색이었는데, 무사의 도우부쿠는 중국의 비단이나 서양의 진홍색 모직물 같은 값비싼 소재에 가몬을 다는 등 화려했다. 이 옷이 훗날 하오리[羽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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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치의 코소데

한편 여자들도 고소데가 정립되었다. 오랜 전란으로 옷을 제대로 껴입지 못하게 되면서 하카마는 신사나 귀족 가문의 특수한 예복으로만 남게 되고, 무가 여자들도 하카마를 생략하고 두 세장의 고소데를 걸쳐입은 뒤 화려하게 장식한 고소데를 겉옷처럼 껴입은 방식이 유행하게 된다. 이 옷은 후대에 우치카게로 발전한다.

상류 무가 부인의 여름 옷차림은 우치기를 벗어 허리에 감은 형태인 고시마키였다. 여러 개의 고소데 위에 화려하게 장식한 고소데의 소매를 끼지 않은 채 허리에 두른 차림을 우스기누와 고소데고시마키라고 했는데, 귀족 여자들도 겨울철 예복으로 입었다.

고소데는 일반 서민에게도 남녀 공용 복식이었으며 본래 귀족 가문의 속옷이자 서민의 평상복에서 예복 역할을 하는 기본적인 복식으로 지위가 올라갔다. 평상시 고소데만 입는 차림은 무가의 확산과 함께 일반화되었다.

2.7.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아즈치 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는 오다 노부나가(아즈치)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모모야마)에 의해 일본이 통일되고 근세 봉건 제도의 기반을 다졌던 시대다. 서양에서 전래된 물건과 남만풍이라 부른 이국 취미, 화려한 축제와 행사가 유행하였다. 선교사들과 서양 상인들과 교역하면서 남만풍이 유행하였는데 다양한 직물들이 유입되었고 새로운 재직 기술과 염색법에 영향을 주었다.

복장은 개방적이면서도 화려하고 과시적으로 변해 선명한 붉은색과 화려한 무늬를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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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소쿠타이

사회가 안정을 찾고 화려함을 추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취향과 결부되어 쇠락했던 귀족 가문의 복식이 부활하였다. 소쿠타이와 노우시는 과거 공가 복식의 위엄을 되찾아서 다시금 무가 복식의 최고 예복으로 사용했다.

귀족 가문의 여자 복식에는 예복용 모의 허리 중앙에 끝을 달아 양어깨부터 가슴 앞에 늘어뜨린 가게오비라는 장식이 추가되었으며, 옷도 과거처럼 여러 벌 껴입었지만 우치기는 제외되고 고소데와 하카마 차림으로 간소화되었다.

무가의 기본 복식은 서민들이 주로 입던 고소데에 좁은 폭의 허리띠인 호소오비로, 지배와 부가 상승하면서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무가 여자 복식에서 신분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고안된 귀족 식 착용법인 가사네기라는 방식도 생겨났는데, 유사한 옷을 여러 벌 겹쳐 입고 그 위에 넓은 소매의 우치기를 걸치는 방식이었다. 우치기 대신 발전한 장식화된 고소데가 발전한 우치가케가 고안되어 여러 개의 고소데 위에 우치가케를 걸쳤다.

여자 고소데는 화려한 외형과 다양한 디자인으로 어깨와 옷자락에 무늬가 집중되는 가타스소 양식이 나타났다. 고소데의 소매는 소매 길이가 짧으나 전체모양이 길고 아랫자락이 둥근 긴 칼모양으로, 나기나타소데 또는 나기소데라고 불렀다.

가타기누바카마는 예복화되었는데, 평상시에는 어깨 선이 자연스럽지만 예복으로는 각지고 과장된 어깨선을 가지고 있었다. 하의는 나가바카마로 가타기누와 같은 옷감으로 만들고 양 어깨와 바지 허리, 양옆솔기 아래 가몬을 새겼다. 이러한 모습은 에도 시대 무사의 대표적인 예복인 카미시모[裃]와 유사하며, 위 아래 같은 감으로 만든 한 벌 옷이다.

2.8. 에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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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는 쵸닌이 성장하고 새로운 문화 예술이 발달하였다. 특히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복식 문화를 창시했다. 평소에는 하카마를 생략하고 고소데 위에 하오리를 걸쳤으며, 오늘날 일본 남자 전통 복식의 기본 차림인 고소데형 나가기와 재킷형 하오리 차림이 되었다. 복식을 통한 계급 간의 구별이 흐릿해지면서 새로운 유행의 주체가 되었는데, 초기에는 겉멋을 살린 미의식이 발달했지만 에도 막부의 잦은 금령으로 '이키'의 미의식이 발달하게 된다. 이키는 화려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하며 색상의 절제, 수수함 속에 화려함이 보이도록 하는 착장법을 성행시켰는데 18세기로 가면 이러한 세련미가 멋부림과 희화로 발전하면서 진지한 것을 야보라 멸시하는 성향이 생기게 된다.

에도 시대 왕족과 귀족 계통의 복식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소쿠타이, 이칸, 스이칸이었고 서민과 무가의 복식은 하타타레, 다이몬, 스오우는 물론 가미시모, 하오리, 하카마 등이 생겨난다. 에도 시대 무사의 대표적인 예복은 가미시모였다. 가타기누와 하카마를 같은 천으로 만든 한 벌 옷으로 어깨가 과장되게 확장, 어깨에 주름장식이나 고래수염으로 一자 모양이 되었다. 예복용 가미시모는 옷감의 종류와 색상에 제약이 있었기에, 짙은 색으로 염색한 민무늬 마직물로 만들었으며 가타기누의 등과 양쪽가 슴, 하카마의 뒤 허리에 가몬을 새겼다. 일부 다이묘나 쇼군 중에는 금란과 같은 고급 옷감을 사용하기도 했다.

평상시에는 가몬만을 넣은 단색 고소데로 정식 차림에서는 허리만 다른 색, 줄무늬나 격자무늬를 짜 넣은 고소데인 노시메를 입었다. 하카마는나가바카마(정식예복), 한바카마(무사와 서민예복, 서민의 혼례복)로 분화되었으며 가타기누와 하카마를 다른 천으로 만든 무사의 약식예복, 근무복인 츠키카미시모가 개발되었다.

하카마가 매우 발달한 시기이기도 했다. 에도 시대 초기에는 무사의 평상복이었지만 고소데 차림이 일반화되면서 예복이 되었다. 초기에는 옷감 네 폭을 연결한 단순한 형태였지만 에도 시대 이후 바지 폭이 길어지고 허리띠는 가늘어지게 된다. 또 요판이 등 뒤에 생기면서 현재의 하카마 형태가 되었다. 허리의 앞과 뒤가 옆선에서 분리, 뒤판이 앞판보다 높으며 착용 후에는 뒷부분이 위로 솟게 된다.

밑이 길고 여유가 많으며, 견직물이나 줄무늬 면직물, 상인용으로는 히라바카마(平袴)가 사용되었다. 히라바카마를 승마에 적합하도록 밑 위를 짧게 변형한 것을 우마노리바카마(馬乘袴)라 불렀으며 히라바카마 형태, 바짓부리에 검정 벨벳 선장식, 여행이나 위급한 상황에 착용한 노바카마(野袴)도 있었다. 위는 넉넉하고 아래는 좁은 형태로 눈이 많은 지방에서 방한 및 작업용 바지로 사용하던 카루상(軽衫)이라는 옷도 있었다. 남만풍의 영향으로 포르투갈 사람들이 입던 칼쏜을 차용했는데, 활동성과 편리함 때문에 무사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새로운 예복으로는 하오리가 생겼다. 하오리는 고소데 위에 오비 없이 덧입는 재킷형의 짧은 상의로 도우부쿠에서 유래한 것으로, 초기에는 무사들의 간편한 덧옷이었지만 쵸닌이 즐겨 입게 되면서 시민 계급의 남자 예복으로 변했다. 하오리 · 하카마 차림은 점차 가미시모 다음가는 통상예복으로 사용되었으며, 하오리의 길이가 짧아졌다 길어졌다를 반복하며 유행하였다. 중기 이후에는 가몬을 새기는 풍습이 생겨 정식으로 5개, 중류이하 신분은 뒤 중심 위쪽에 1개씩 달았고 초기에 색상과 형태 다양, 화려한 장식이었지만, 점차 예복이 되면서 색과 무늬가 수수하게 변해 18세기 전반부터 검정 바탕에 흰색 가몬이 정식 예복이 되었다. 기타로 무늬 없는 단색, 섬세한 잔무늬, 줄무늬는 약식예복으로도 사용되었다.

• 하오리히모 : 하오리 좌우 깃을 연결하는 장식적인 매듭 끈
• 진바오리 : 전쟁시 입은 소매없는 야외행사용 무사들의 예장
• 붓사키바오리 : 칼을 차거나 말을 탈태 적합하도록 허리부터 등솔기에 트임. 약식으로 착용
• 카자이바오리 : 붓사키바오리 일종. 뒤중심에 트임. 잘 타지 않는 가죽이나 라사를 소재

실용성을 겸비한 겉옷이 발전하였다. 먼저 가빠는 스페인어 카파(capa)에서 유래된 것으로, 근세 초기 스페인 선교사들의 망토를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망토형, 재킷형으로 스탠드 형태의 깃에 갈고리 단추의 일종인 고하제나 고리단추로 실용성과 장식성을 띄었다. 하급 무사는 종이에 기름먹인 붉은색 가빠였고 일반인은 여행용으로 견이나 무명으로 짠 가스리로 만든 가빠를 썼다. 여기서 직조 전에 원하는 무늬에 맞게 방염한후 실로 무늬를 짠 직물인 가스리가 개발되었다.

넓은 소매가 달린 품이 넉넉한 겉옷으로, 가빠와 하오리를 혼합한 형태인 히후가 나타났다. 18세기 초, 예능에 종사하는 특수한 계층에 사용되었는데, 19세기 초엽에 검정벨벳으로 깃을 만들고 금사 매듭장식을 한 면 지지미로 만든 히후가 쵸닌계급 사이에 유행한 것이 후에는 지방 세력가나 무사의 후실, 출가한 부녀자도 착용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 시대, 면지지미나 비단의 긴소매 히후는 부녀자의 예복, 조끼형태는 아동용이 되었고 오늘날, 여자들의 방한용 외투로 사용되고 있다.

홑으로 만든 실용적 외투. 무가의 고용인이나 가마꾼, 상점의 종업원이나 직인들이 착용하는 핫피도 있었다.

방한용 외투로는 도테라와 탄젠이 생겼다. 도테라(褞袍)는 평상시에 방한용으로 덧입는 외투의 일종으로 고소데와 비슷하다. 크고 여유가 있으며 넓은 소매폭이 특징이다. 안쪽에 솜을 넣고. 간감과 수구, 깃 부분에 검은 색의 배색인데, 간혹 가빠 대신 착용했다. 매 사냥꾼이나 장인의 우두머리들은 유카다 위에 도테라만 입고 외출하기도 했다.

탄젠(丹前)은 도테라와 비슷한 것으로, 솜을 넣고, 군데군데 징거서 만든 외투의 일종이다. 탄젠저택 앞 온천 여관에서 유래되었는데, 화려한 줄무늬 천을 성글게 누빈 풍성한 외투를 넓은 허리띠로 느슨하게 묶은 차림을 탄젠풍이라고 했다.

평상복인 고소데는 남자와 여자가 달랐다. 남자 고소데는 좁은소매의 긴 포 형태로 나가기라 불렀으며, 일반 서민의 평상복이었다. 무가 남자는 사적인 경우에만 고소데 착용했고, 외출이나 예복차림엔 하카마를 덧입었다. 쵸닌 문화가 발달하면서 무사들의 평상복으로 고소데 위에 하오리 차림이 되었다. 겨드랑이 트임이 없고 소매 안쪽도 막힌 형태였으며, 소박한 색과 잔잔한 무늬를 선호했다. 반면에 여자 고소데는 소매와 오비 형태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화려함을 선호했다.

헤어스타일도 다양하게 나온다. 먼저 간무리시타(冠下)는 이마를 밀지 않고 그대로 묶은 머리형으로, 관이나 에보시를 착용하던 공가 복식에서 유래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특수 계층만 즐기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촌마게(下髷)를 많이 했는데, 무사, 서민들은 정수리와 이마를 반달모양으로 밀고, 남은 머리를 위로 묶는 일본 고유의 상투머리로 반달모양으로 밀어준 부분 때문에 사카야키(月代)라고도 했다. 관을 쓸 때 머리카락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앞머리를 밀어준 풍습에서 시작되었는데, 전국시대 무사들 사이에 유행하였으며 이 시대 남성의 일반적인 머리형에서 에도 시대에는 상투를 감거나 올리는 다양한 방식이 개발된다.

에도 시대 여자 복식의 기본은 고소데였다. 무가의 신분 상승으로 서민과 차별화된 차림새를 추구했는데, 귀족 공가의 전통적인 가사네기 방법인 고소데를 여러 벌 겹쳐있는 차림새가 등장하였다. 이 옷들은 우치카케, 아이기, 시타기 등으로 발전했다. 신분에 따른 규제로 쵸닌과 서민의 예복으로 세벌의 고소데를 겹쳐입는 삼마이가사네가 나타났다. 에도 시대 여성복은 중기 이후 더욱 장식적으로 발전하면서 화려한 복식을 선호하게 된다.

본래 고소데는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남녀 모두 비슷했지만, 에도 시대부터 남녀 복식에 차이가 생긴다. 여자 고소데가 변화한 탓인데, 소매길이와 옷길이가 길어져 옷자락은 발등을 덮고 외출시엔 넓은 허리때로 고정하는 가카에오비가 생겼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몸통이 넓고 소매는 짧아 활동이 불편했던 것에서 개정 후 몸에 잘 맞는 형태로 변했다. 소매통은 넓어지고 진동은 줄어 소매에 후리가 있는 현대 고소데와 비슷해졌다. 에도 시대 초기 소매는 짧은 소매길이와 넓은 소매너비에 둥근배래의 ‘나기소데’였고, 겐로쿠 말경에 오늘날의 사각형의 넓고 긴 모양이 일반화되었다. 미혼 여자들은 긴 후리소데를 입었고 기혼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짧은 토메소데를 입었는데, 이게 현대 내려오는 여성용 기모노다.

여자 기모노의 겨드랑이 아래쪽과 소매 안쪽에 트임이 생긴 게 여자 고소데의 특징으로, 미혼 여성과 신부는 넓은소매의 후리소데, 기혼은 소매의 늘어진 부분이 짧은 고소데르 입었다. 결혼 후엔 미혼의 상징인 후리소데의 긴 소매를 자르는 수류(袖留), 즉 소데토메 의식을 했으며 오늘날 기혼 여성의 짧은 소매 기모노를 ‘도메소데’ 라 부르는것은 과거 혼인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비(帶)는 여밈을 단정하게 고정할 때 사용하던 것으로, 초기엔 끈 형태였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는 조선의 끈목기술로 실을 엮어 짠 나고야오비를 사용했다. 특히 여성의 오비는 좁은 끈 형태에서 장식성이 강화되면서 넓은 오비가 유행했다. 옷감의 종류도 비단에서 벨벳까지 다양, 자수나 홀치기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초기에는 앞에서 묶었으나, 점차 옆이나 뒤로 묶는 방법 선호하게 되었다. 형태는 분코무스비(리본 모양), 오타이코무스비(현재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나누어진다. 오비도메라고 해서 넓어진 오비를 고정하기 위해 다른 끈을 착용하기도 했다.

오오쿠는 무가와 귀족풍이 어우러져 독자적인 양식을 띄었다. 오오쿠는 신분, 장소, 계절에 따라 엄격한 규정이 있었는다. 기본적으로 우치카케와 고소데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고소데는 장식이 많고 겉옷으로 사용되는 아이기와 같으나 밑받침 옷 역할의 시타기로 나누어졌다. 같은 형태의 옷을 여러 벌 겹쳐입는 무가 여성의 예복은 공가의 가사네기 전통에서 유래되었다.

이 중 가장 위에 덧입던 장식적인 고소데가 발전한 게 우치카케였다. 우치카케는 에도 시대 중기 고소데보다 길게 하고 밑단에 솜을 넣어 퍼지도록 만들어 장중함과 무게감을 표현했다. 옷의 특성상 여밈이 없어 걸 을때 옷의 아랫단을 잡아야 하므로 가이도리라고도 했다. 우치카케는 도메소데와 후리소데(미혼여성의 예장)로 나누어졌다. 본래는 무가 상류층 여성 예복이었지만 공가 귀부인의 평상복, 외출복이 되었고 후대에는 쵸닌 가문의 혼례복, 유녀의 외출복이 되면서 신분을 상징하는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아이기는 우치카케의 받침옷 또는 우치카케 대신의 겉옷으로 다양한 색과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겨울엔 시타기 위에 우아기를 입고 우치카케를 걸쳤으며 여름엔 아이기와 시타기를 입고 얇은 우치카게를 끌리도록 허리에 감아입어 고시마키라고 했다. 이 예장의 구성인 우치카케, 아이기, 시타기는 모두 고소데에서 분화, 발전된 것이었다.

에도 시대 후기 쵸닌 가문 ​여성의 혼례복은 우치카케의 색상에 따라 시로무쿠와 이로우치카케로 나누어졌다. 시로무쿠는 겉옷, 속옷, 기타 부속품 모두 흰색 착용했지만 우치카케의 안감은 길사를 상징하는 붉은색이었다. 혼인 후 사흘째에는 다시 화려하게 장식된 고소데와 함께 붉은색의 이로우치카케로 갈아입는 ‘오이로나오시’라는 행사를 치렀는데, 성스러운 식을 마치고 세속의 생활로 돌아가 보통의 생활을 시작한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붉은색은 행복과 행운을 상징했다.

유카타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시대이기도 했다. 유카타는 본래 ‘유가타비라’, 목욕시 홑겹의 포를 입었던 공가와 궁중의 풍습에서 유래된 옷이다. 전국시대에서 에도 시대 초기, 밤새도록 가무를 즐기는 본오도리 축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화려하게 염색한 유가타를 입기 시작하면서부터 민간에 유행하게 되었다. 겐로쿠(1688~1704)무렵 온천지역을 중심으로 면, 마, 지지미 등으로 만든 간편한 유가타를 선호하게 되었는데, 홑겹의 유가타는 세탁이 쉽고 입기 편한 장점으로 비 올 때는 ‘가빠’ 대신 사용했다. 에도 시대 말기로 가면 고소데 대신 서민들의 여름철 평상복이 되었다. 원래 흰색 면, 마를 사용했으나 점차 여름철 평상복이나 외출복이 되면서 염색이나 무늬를 짠 옷감이 선호되었다.

헤어스타일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에도 시대 이전의 여자 머리는 끈으로 묶어나 머리다발로 고리를 만든 후 나머지를 늘어뜨린 것이었다. 에도 시대로 가면 다양하게 틀어올린 머리가 유행했다.

– 가라와 : 둥근 고리를 2~4개 만들고 여분의 머리를 뿌리부분에 감아 고정
– 효고마게 : 가라와를 변형
– 시마다마게 :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여자의 머리모양
≫ 남성의 분킨마게에서 유래 또는 시마다지방의 유녀들이 고안
≫ 분킨시마다 : 신부의 머리형으로 시마다마게의 일종
• 상류 무가계급이나 왕실에서는 최고 의례복을 착용시 머리를 풀어 길게 늘어뜨림.
• 금령에도 불구하고 에도말 메이지초기에는 300여종류의 머리형태
– 토로빈처럼 크게 올린 머리가 유행하면서 머리장신구도 거대
– 쿠시(장식용 빗)와 고가이(비녀의 일종)는 중요 장식품
여성용 모자도 유행했다. 여성의 모자를 쓰는 풍습은 무로마치 막부 시대부터 등장했는데, 나이 든 여자들의 방한용에서 점차 젊은 여자 사이에도 다양한 모자가 유행하게 되었다. 외출 시 정장 차림에 또는 실내에서도 면모자, 양모자, 연모자 등을 착용했다.

• 쯔노카쿠시 : 신부용 쓰개, 양모자의 일종으로 장방형 천을 머리에 두른 간단한 형태
• 와타보우시 : 신부용 모자로 명주솜을 넣어 만듬.
• 와리보우시 : 정련된 흰색의 부드러운 비단으로 만든 것으로, 안감은 주술적 의미의 붉은색

에도 시대 화장법은 매우 다양하고 계급, 직업, 연령, 지방, 계절, 장소에 따라 복잡했다. 소박한 에도 고유의 화장법과 궁궐이 있는 교토에서 비롯된 농염한 화장법으로 나누어졌다.

• 기와(際) 풍습
– 얼굴 가장자리의 머리카락이나 눈썹을 뽑거나 다듬는 풍습
– 얼굴이 작은 경우 이마를 면도하고, 얼굴이 큰 경우 묵을 사용
– 눈썹과 머리카락을 제거하고 백분으로 짙은 화장을 한 후 윤곽선과 눈썹을 그림
– 눈썹을 그리는 풍습은 중국 당의 화장을 모방
– 대형미 · 안입미(10~14세의 굵은 눈썹), 청미(결혼직후나 임신후), 당미(중년의 작은눈썹), 사미(노년의 가는눈썹)
– 미작어면 : 공경중 나이들면 눈썹손질을 하지 않음.

이외에도 오하구로(お歯黒)라고 하여 철장(철조각으로 만든 액체)으로 이빨을 검게 물들이는 심미적, 실용적 풍습이 생겨났다. 이 풍습은 쇼켄 황후가 서양풍을 받아들이고 그만둔 것을 기점으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2.9. 근현대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는 사회의 변화로 새로운 양식의 옷들이 등장했으며, 과거보다 더욱 간소화가 이루어졌다. 쇼와 시대까지 기모노는 일상에 잔존했고, 오비도 무늬도 시대가 갈수록 점차 간소화가 이루어졌다. 현대에는 공적인 행사나 특별한 날에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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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 가문 나리타야의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8대 이치카와 신노스케 父子
현대에는 공적인 행사나 특별한 날에 입으며 특히 가부키 배우, 만담가들이 많이 입는다. 이들의 기모노에는 가문의 문장이 각인돼 있어 어느 가문에 소속되어 있는지 식별하는 용으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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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 가문 코오라이야의 8대 이치카와 소메고로
또한 이들은 에도 시대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허리춤에 부채를 넣는 것까지가 기모노의 한 세트이다. 부채 또한 자신이 어느 가문의 인물인지를 알리는 용도이며 공적인 행사에서는 부채를 빼내어 자신의 앞에 가로로 가지런히 놓고 관객에게 예를 갖추며 행사가 끝나며 본인이 다시 수거하여 허리춤에 꽂는다.

3.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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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격

창작물에서는 모에 요소로 여겨지고 있어 상당히 많은 캐릭터들이 기모노를 입고 다니지만, 일본 서민들은 유카타를 포함한 평복 외엔 후리소데는 커녕 호우몬기츠케사게 조차도 살면서 경조사 외엔 입어보기 어려운 옷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가격.

명주로 만든 예복 기모노는 기본 가격이 수십만 엔, 최고급은 수백만 엔 정도로 비싸다. 그러다보니 렌탈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7]인데, 이 역시 가격대가 높은편이라 성년의 날에 딸이 입을 후리소데를 위해서 부모들이 적금을 드는 경우도 심심치않게 볼수있다. 때문에 어머니나 할머니가 입던 것을 대대로 물려받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비싼 이유는 원단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인데, 실제로 기모노 가격은 원단과 문양의 비중이 높다.

아예 라쿠텐과 같은 저가 매장에서 공장제 직물로 만든 저가 기모노를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2010년대 이후에는 고급 기모노도 중국산이나 베트남산 재료로 만드는 경우가 잦아 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고.

특히 일본에서는 기모노 중고시장이 활발해서 이를 통해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하기도 한다. 물려받거나 중고시장에서 구매가 가능한 이유는 상기한 대로 기모노는 단을 자르지 않고 키에 맞춰서 접은 뒤 박는 식으로 길이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며, 재단도 하지 않으니 더더욱 문제될 것이 없다. 역시 상술한 대로 각 신체 부위에 딱 맞게 만들지 않기 때문에 길이만 조절하면 남이 입던 것도 별 문제 없이 착용할 수 있다. 시세는 다음과 같다.
한쥬반 500~800엔 / 나가쥬반 1,000~1,300엔, 코시히모 50~300엔, 오비 400~1,200엔, 나가기&하오리 5,000~12,000엔, 하오리끈 100~500엔, 하카마 1,000~2,000엔, 타비 500~1,200엔, 게타 1,000~1,700엔.
※ 2021년 9월 기준 남성용 기모노 중고품 (폴리에스터제) 부분별 평균 시세
가격이나 세탁 문제 등으로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한 제품이 인기가 잇는데, 중고 폴리에스터제로 남성용 몬츠키하카마를 1인분 풀세트(한쥬반 또는 나가쥬반-코시히모(폭 3cm 길이 4m)-오비(폭 10cm 길이 4m)-나가기-하오리-하오리끈-하카마-타비 2개 1세트-게타 2개 1세트) 로 사는 경우는 15,000~30,000엔 정도에 입수할 수 있다.

5. 오해와 편견

5.1. 입기 힘들다?

움직이기 어렵고 입는 방법을 따로 배우지 않은 이상 혼자서 입기가 불가능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그런 건 한 벌에 한화로 몇백/몇천만원씩 하는 예복 기모노인 경우가 많다. 이런 물건은 족두리까지 풀옵션으로 갖춘 활옷이나 원삼 같은 개념으로, 애초에 헤이안 시대전국시대, 에도 시대 등의 상류층들도 일상생활에선 비교적 편안한 기모노[8]로 활동했다. 여러벌의 옷을 많이 껴입기로 유명한 쥬니히토에를 상시 착용하는 사람도 대부분 궁녀들이었다고.

다만 기모노를 전문적으로 입혀주는 자격증을 가진 도우미도 있다고 한다. 착용 난이도를 대폭 올리는 주된 원인은 오비를 매는 것이 힘들기 때문. 종류에 따라서 길이가 4m 이상인 것도 있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길고 매는 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혼자서 입기가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입을 수 있다. 요즘 들어선 일본의 젊은이들은 기모노 도우미를 부르는 값이 만만치 않아서 스스로 입는 법을 틈틈히 공부하여 입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5.2. 속옷을 입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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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간편한 성관계를 위한 복장이다? 문단의 내용을 6.2 속옷을 입지 않는다? 문단에 통합 서술한다.
  • 기모노는 매듭 하나로 착용자를 알몸으로 만드는 옷이 명백히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중복되는 내용은 최대한 축약하여 서술한다.

근대 이전에 기모노를 입을 때 한국에서 지금 생각하는 소위 여성용 속옷을 착용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 복식에는 고온다습한 여름 기후로 인해 팬티바지 형식의 속옷이 널리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9]

치마 아래에 가랑이를 가리는 형태의 속옷을 입지 않은 것은 기모노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의 전통의상에서 많이 나타나는 일이고, 속옷을 입는다 하더라도 밑이 터져 있어 용변을 보기 용이하게 되어 있다.

1932년 일본의 백화점에서 화재가 났는데 뛰어내리면 살 수 있는 높이임에도 기모노를 입은 여성의 대부분이 '뛰어내리면 다리 안쪽이 보이니까 부끄러워서 뛰어내리기를 거부'하다가 결국 불에 타 죽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는 기모노가 아닌 서양식 치마를 입은 여자들조차 속옷은 입지 않던 문화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속옷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흔히 이 백화점 화재사건이 일본 여자들이 속옷을 입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10]

신체의 곡선을 살리기 위해 팬티를 입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보통 기모노는 옷을 세네 겹 입기 때문에 속옷 라인이 드러나지 않는다. 여름에 입는 유카타는 얇은 천 때문에 속옷 형태가 보이면 미관상 좋지 않으니 속옷을 입지 않는다고 하지만 T스트링 등 다양한 디자인의 속옷이 나오기 때문에 아예 안 입는 경우는 적으며 사람에 따라서는 브래지어도 착용한 채로 기모노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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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노는 어디서든 잠자리를 할 수 있게 대비한 옷"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기모노를 펼치면 바로 이불이 되고 이 잠자리를 위해 일본 여자들은 뒤에 베개를 메고 다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실상은 일본발 시모네타 기사가 어쩌다 한국으로 흘러들어온 것으로, 잘못된 낭설이다. 복식사에 대한 몰이해는 차치하더라도, 기모노라는 옷 자체가 이불을 덮을 만큼 큰 옷도 아니고 저기서 말하는 '베개'는 오비의 '매듭'일 뿐이다. #

오비를 베개라고 여기는 오해는 오비의 모양을 예쁘게 잡기 위해 오비 안에 넣는 보형물인 오비마쿠라(帯枕)를 잘못 번역해서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어에서는 실제 베개가 아니어도 완충성이 있는 보강재를 무슨무슨 마쿠라로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서 완충재를 베개라고 부르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비마쿠라는 누우려다간 딱 등이 배겨 못 누울 위치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게 오비 안에 들어있으면 이 편견처럼 곧장 뒤로누워 검열삭제를 저지르는건 불가능하다. 또한 한국인들의 눈에 베개처럼 보일 정도로 네모반듯한 사각형으로 오비매듭을 지었다면, 일본인의 눈에는 음란하기는커녕 오히려 정숙한 여염집 아낙으로 비춰질 것이다. 시집 안 간 처녀들이나 남자를 유혹하려는 유녀들은 나비날개나 리본 등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모양의 매듭을 지었기 때문이다.

매듭 하나만 풀면 쉽게 벗겨지는 옷이라 간단히 성관계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기모노는 기본적으로 입고 벗기가 불편한 옷이며, 매듭 하나만 풀어서 벗겨지는 옷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기모노를 입을 때 매듭 하나만 맬 리도 없다. 기모노는 혼자서도 쉽게 못 입을 정도로 난이도가 있다는 속설을 거꾸로 적용시켜 본다면 찢거나 뜯어내는 게 아니라면 당연히 기모노를 벗기는 것도 쉽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감각의 제국처럼 근대 시기를 제대로 고증한 일본의 성인영화에서도 한방에 풀어내진 않는다. 흔히 여러 매체에서 손쉽게 남자가 여자의 기모노를 풀어서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 많지만 그냥 잘못된 고증이다.

확 잡아당기면 옷이 한 번에 풀린다더라는 루머와는 달리 실제로는 등뒤에 묶인 화려한 오비의 매듭을 확 잡아당겨 풀어봤자 기모노 고정용의 수수한 허리띠가 안에 따로 찰지게 묶여있으며 깃 고정용 벨트가 덤으로 묶여있는 일도 있다. 그걸 풀면 이번엔 나가쥬반이라는 기모노 전용 속옷이 나오는데 여기에도 끈이 있고 그걸 풀면 체형 보정용 타올의 산과 하다쥬반이 기다리는데 당연히 이것도 끈으로 고정되어 있다.

기모노의 기본 옷감은 비단이다. 땀이나 각질로 더러워질 수도 있는데 이걸 띠만 풀면 알몸이 되도록 맨살에 입을 리가 없다. 확 잡아당기면 한번에 풀리는 일본 복식을 서브컬처에서 보고 이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기모노가 아니라 면이나 마로 만든 유카타(여름용 홑옷)로 지금이야 여름에 잘 입고 돌아다니지만 본래는 속옷이며, 잠옷으로도 썼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기모노가 전국시대의 혼란한 사회상에 기원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일본의 전국시대는 그 정도로 인외마경의 난세였던 것은 아니며, 문화적/제도적으로 난교를 허용해야 할 만큼 인의가 땅에 떨어진 전란의 시대가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오비와 같은 복식상의 주요 개량은 에도 시대와 같은 평화의 시대에 나타났다.[11] 실제로 그림에 남아있는 전국시대 일본 여성들의 복식을 보면 화려한 오비를 두른 여성은 거의 없으며, 간소하고 폭이 좁은 오비를 두르고 매듭도 등이 아니라 허리에서 묶었다. 이는 경제적 여건상 화려하고 긴 오비를 사람 손 빌려가며 등뒤에서 묶고 다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낭설만으로 기사를 쓴 기자는 큰 비난을 받고 사과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그대로 기사화한 한국 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기모노는 잠자리를 위한 옷"이란 루머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일부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이 수업 중에 학생들의 흥미를 끌 목적으로 야사나 잡다한 정보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낭설을 가르친 경우가 종종 있어서 더욱 정설처럼 퍼져버린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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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오비에 대한 오해

특히 마이코나 게이샤들이 입는 기모노 허리에 걸치는 오비가 크고 넓어 여성들이 남성과 쉽게 성행위를 하기 위해 오비를 펼쳐 바닥에 깔아 이불처럼 사용하기 위함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정보다.

1700년대 게이샤는 상위 귀족들만의 문화[12]였는데 이를 동경한 평민 사이에서 자칭 게이샤들이 늘면서 평민들도 귀족문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게이샤들과 평민들 사이에서 성매매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중앙정부에서 이를 막기 위해 지금 형태의 큰 오비가 생긴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성매매를 막기 위함이다.

기모노는 그 입는과정부터가 매우 힘들다. 크고 무거우며 그렇기에 쉽게 풀리면 안되기 때문에 5번 이상 묶는다. 이 때문에 현대 게이샤들의 기모노를 입혀주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가문들도 생겨났다.

6. 서브컬처

흔히 기모노 하면 토메소데후리소데를 떠올리는데, 사실 애니메이션 등지에서는 코몬이 자주 등장한다.

기모노를 입으면 몸의 대부분이 드러나지 않지만 걸을 때 잠시나마 엿보이는 발목과 뒤에 서서 내려다보면 목깃을 통해 보이기도 하는 어깨와 등이 일본인들에게 하나의 페티시로 자리잡았다. 일본이 근대화 된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독특한 페티시즘이다. 현대에는 기모노를 일상복으로 입는 사람이 크게 줄었기 때문에 이러한 페티시적인 요소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기모노만의 독특한 곡선과 색기, 여성의 종종걸음을 유발하는 좁은 폭 등이 기모노의 매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치파오처럼 옆트임이 드러나도록 개량해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오비에서 내려오는 천이 가운데만 가리고 그대로 허벅지, 다리가 노출된다.

일본 국적인 여성 캐릭터, 특히 야마토 나데시코들이 한 번씩은 입는 옷이지만 개중엔 분명히 기모노를 입고도 캐주얼 뺨치는 활동성으로 훨훨 뛰어다니는 경우도 등장한다.

여담으로 기모노의 소매로 혼인 여부를 알 수 있다. 미혼 여성인 경우 소매 아랫자락의 길이가 길고(후리소데), 기혼 여성인 경우엔 짧다(토메소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소매 자락을 잘라서 아기의 포대기로 사용한 것이 유래다. 그리고 여성은 결혼식 때 흰 기모노(시로무쿠)를 입고 머리엔 츠노카쿠시라는 걸 쓴다. 흰색은 시가의 가풍에 물들겠다는 뜻이고 츠노카쿠시는 투기 등을 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뿔(츠노)을 숨겨(카쿠시) 순종적인 여인이 되겠단 뜻이라고 한다. 츠노카쿠시 대신 두건처럼 생긴 형태의 와타보시(綿帽子)를 쓰기도 한다.

6.1. 기모노를 항시 착용하는 캐릭터

※ 시대물은 제외.

7. 그 외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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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표적으로 고대 로마토가멕시코의 전통 의상.[2] 한국도 과거에는 여대생들이 졸업식 때 한복을 입고 참석하기도 하였다. 이런 사람들은 2022년 현재 50대를 넘겨서 아줌마할머니가 되었다.[3] 간혹 외할머니, 고모, 이모 등이 입던 것을 입기도 하지만 매우 드물며, 할머니가 입던 것을 어머니를 거쳐 딸이 물려입는 등 3, 4대에 걸쳐서 물려입기도 한다.[4] 어느 한국인 여행자가 일본에서 유카타를 입을 기회가 있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오른쪽 옷깃을 위로 가게 여몄더니 옆에 있던 일본인들이 옷깃 방향을 고쳐 주면서 그렇게 여미면 안 된다고 설명해 주더라는 경험담도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군대에서 입는 전투복의 첫 단추이다. 전투복의 첫 단추는 전사했을 때만 채워 앞섶을 여미는 데 사용하기에, 평소에 아무리 춥다 해도 그 단추를 채우는 것은 금기시된다. 전투복 단추를 다 채우면 욕 먹기 일쑤. 단, 수류탄 투척 훈련 때는 목숨이 걸린 만큼 채운다. 현재는 전투복을 여미는 방식이 지퍼로 바뀌었기 때문에 옛날 이야기.[5] 넓은 천에 머리가 들어갈 구멍을 뚫어서 어깨에 걸쳐 입는 전형적인 남방계의 원시적인 의복으로, 남미판초(poncho)를 생각하면 된다.[6] 허리에 두르는 천. 치마를 생각해보면 된다.[7] 애초에 그 거금을 들여 맞춰봤자 상류층 같은 부유층이 아닌 이상 입고 나갈일이 거의 없다.[8] 에도시대때는 츠케사게이로무지가 이에 해당됐다.[9] 고시마키(腰卷)라는 여성들이 입는 속옷이 있긴 했지만 현대 복식의 관점에서 보면 팬티와는 거리가 먼 속치마에 가깝다. 일본의 남성용 전통 속옷인 훈도시조차 기원은 전국시대의 전투복이었다. 이 역시 현대 속옷의 의미보다는 덜렁거리는 음경을 고정시키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10] 시로키야 화재사건으로 일각에서는 앞서 언급한 내용이 사실이 아닌 과장된 도시전설이라는 견해를 제기하기도 한다. 참고 링크(일본어): #[11] 이는 중동도 마찬가지로, 페르시아의 왕자에 나올 법한 노출도 높은 옷은 압바스 왕조오스만 제국 시기 같은 평화로운 시대에나 등장했던 것이고, 그 이전 시기인 중세 시대에는 전쟁 중에 적군에게 겁탈당할 것을 두려워한 여성들에 의해 메카로 순례를 떠날 때 입는 것처럼 눈만 남기고 싹 가린 복장이 처음 만들어졌다. 난세일수록 오히려 험한 꼴 안 당하려고 노출을 꺼리는 경향이 생기는 건 다 똑같다. 피해난세일 때는 어쨌거나 몸을 사리는 경향이 있다보니까 그런 거다.[12] 이 때 게이샤들은 전부 남자였다.[13] 고구마 캐기 하나사카 할아버지 편에 나오는 할아버지.[14] 화풍 메이드. 학교 갈 땐 교복을 입는다.[15] 기모노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16] 학교 갈 땐 하카마. 물론 하카마도 기모노의 일종이긴 하고 이 시대에 기모노 착용하는 자들도 많지만, 양복 입는 캐릭터도 많은 시대기 때문에 특별히 이리 분류한다.[17] 환상향은 격리된 채 시대가 유지된 세계여서 일종의 사극으로 분류해야될 수 있지만 하도 안 입어서 적는다.[18] 대신 속옷은 드로워즈. 등장시마다 문양이 달라져있다.[19] 동방심기루, 동방강욕이문 한정. 다른 작품에서는 반팔티에 반투명 치마를 입고 있다.[20] 국내 방영판에서는 한복으로 다시 그려졌다.[21] 이 쪽은 전부 변신 후 한정.[22] 한다 세이는 캐쥬얼한 옷을 입을 때도 있지만, 일할 때는 거의 항상 사무에 혹은 진베에를 걸친다.[23] 흰 하오리 위에 망토처럼 걸친다.[24] 애초에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신들의 의상인 사패장사무라이용 기모노의 모습이다.[25] 축제편.[26] 공룡카레집에서 살았을때 부터.[27] 이토시키 노조무에게 반한 후부터.[28] 마요이는 역전재판 3 3화에서 딱 한 번 웨이트리스 복장을 입었었다.[29] 얘네들은 알다시피 전부 중국인이다.[30] 남자이다.[31] 입는 방향이 반대 방향으로 죽은 사람이 입는 방향인데,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그렸다고 언급했다.[32] 외에 몇몇 캐릭터 제외하고 대부분 착용하는데 배경이 일본 에도시대이기 때문이다.[33] 이쪽은 시대물이긴 하나 배경이 19세기 프랑스 파리라서 유네 이외의 주변인들이 전부 외국인.[34] 하카마를 입고있다[35] 드래곤들은 일본인들의 후손이기도 하다. 이름은 서양식이라는 게 함정 단, 비비안아르제날에 오래 살아서 아르제날 군복이 더 익숙하다.[36] 3세대인 FRLG에서는 하카마를 입는다.[37] 후리소데나 메르헨 기모노에 가깝다.[38] 7세대 한정이며, 첫 등장인 5세대에서는 정장 차림이다. 7세대 때 입었던 기모노는 전통 기모노 중에서도 유카타에 가깝다.[39] 유치원 내에선 원복 착용.[40] 기모노 오타쿠.[41] 변형이 많이 된 기모노이다.[42] 세일러복과 퓨전된 형태다.[43] 붉은색의 하카마가 트레이드마크 화[44] 어나더 복장 한정,[45] 당연하지만 그 민족과 국가를 대표하는 옷들은 그 민족과 국가 및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즉, 기모노는 일본인의 사상과 문화, 일본이라는 나라의 자연환경과 크게 맞물려서 만들어진 옷이므로 기모노는 틀림없는 일본인들의 옷이다. 사실 이는 한국의 한복, 베트남의 아오자이 등도 마찬가지로 그 나라의 문화와 환경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