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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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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지 않는 미수복지역은 자치 기능이 없는 명목상 행정구역이므로 광역자치단체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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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 남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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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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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자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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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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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진군
* 2026년 7월 1일 중구·동구 폐지 예정
** 2026년 7월 1일 제물포구·영종구·검단구 설치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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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대한민국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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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仁川廣域市
Incheon Metropolitan City
}}}
<colbgcolor=#0079c1><colcolor=#fff> 시청 소재지 남동구 정각로 29 (구월동)
하위 행정구역 8 2
면적 1,067.1㎢[1][2][3]
인구 3,017,928명[4]
인구 밀도 2,828.16명/㎢[5]
GDP $826억(2022)[6]
1인당 GDP $27,912(2022)[7]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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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복 (재선)
부시장 <colbgcolor=#0079c1><colcolor=#fff> 행정
하병필 (15대)
글로벌도시
황효진 (초대)
시의회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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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석[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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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석[9]

2석[10]

1석[11] }}}}}}}}}
국회의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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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석[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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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석[13] }}}}}}}}}
구청장·군수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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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석[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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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석[15] }}}}}}}}}
교육감 [[진보주의|
진보
]]
도성훈 (재선)
상징 시화 장미
시목 목백합
시조 두루미
지역번호 032[16]
IATA 도시 코드 ICN
ISO 3166-2 KR-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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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징3. 외국어에서 쓰이는 다른 문자 표기4. 역사
4.1. 명칭 유래4.2.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4.3. 인천이 최초인 것들
5. 지리
5.1. 인구5.2. 생활권5.3. 서울과의 관계
5.3.1. 서울과 멀다5.3.2. 서울과 가깝다5.3.3. 인천은 서울의 위성도시인가?
5.4. 행정구역 개편 문제
6. 교통7. 경제8. 관광
8.1. 축제8.2. 특산물
9. 도시 행정
9.1. 인천광역시청9.2. 상수도9.3. 하수도9.4. 치안9.5. 소방9.6. 사법기관9.7. 비판
10. 생활·문화
10.1. 교육10.2. 주민 본적 구성10.3. 음식10.4. 언론10.5. 의료기관10.6. 방언10.7. 종교10.8. 음악10.9. 스포츠
11. 정치12. 군사13. 행정구역
13.1. 자치구 명칭 변경 및 추가
14. 여담15. 매체16.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
16.1. 영화16.2. 드라마16.3. 뮤직비디오16.4. 기타
17. 자매결연 지역 및 우호교류 지역18. 출신 인물19. 둘러보기2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최초를 넘어 최고가 되는 도시 인천 - [인천 도시브랜드 광고]
all ways INCHEON
모든 길은 인천으로 통한다
인천의 꿈, 대한민국의 미래
대한민국광역시. 수도 서울특별시외항이다.[17] 대한민국 북서부, 한반도 중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부산광역시에 이은 제2의 항구도시이며, 수도권 최대 해안도시이다.[18]

대한민국의 도시 중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에 이어 3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광역시 중에서는 대구광역시와 함께 1981년 7월 1일, 기존의 부산광역시에 이어 2번째로 일반 시에서 현재의 광역시인 직할시로 승격하였다.[19]

인천국제공항인천항국제여객터미널이 있어서 대한민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 대부분이 가장 먼저 발을 딛는 곳이다. 인천국제공항은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세계 주요 대륙의 국가들과 이어져 있고 인천항은 주로 중국과 이어져 있다.

시목은 목백합, 시화는 장미, 시조는 두루미다. 두루미는 인천지역 내에 유독 '학()'이라는 지명을 가진 지역이[20] 많을 정도로 인천광역시와 인연이 깊은 새로 알려져 있는데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의 마스코트인 유티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다만 인천광역시 시내의 도시 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 여파로 인천 본토에서는 두루미가 자취를 감추었고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강화군에만 10기 가량이 매년 도래한다.

2. 상징

인천광역시의 휘장
파일:인천광역시 휘장.svg
• 인천의 "○""川", 파도를 모티브로 끊임없는 움직임과 무한한 잠재력을 상징[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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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folding [ 역대 휘장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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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colbgcolor=#fff,#1c1d1f> 파일:인천시 휘장 (1977-96).svg
1977년 ~ 1996년
<colbgcolor=#fff,#1c1d1f> 1996년까지 사용하던 인천광역시 휘장. 선박의 타륜과 톱니바퀴는 항구도시·공업도시 를 상징하고 중심부는 인천의 "ㅇ" 과 "ㅊ" 을 오각형으로 도안하여 국제항구인천의 시세(市勢)가 오대양에 빛날것을뜻하며 무공화는 인천의 무궁한 발전을 국화(國花)와 함께기림.
파일:경기도 인천부 휘장(1947~1949).webp
1947년 ~ 1949년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사용
파일:인천부 마크(1921~1945).png
1921년 ~ 1945년
1921년부터 1945년까지 사용 }}}}}}}}}}}}}}}
인천광역시의 시기
파일:인천광역시 시기.svg
인천광역시의 브랜드와 슬로건
파일:인천광역시 브랜드 슬로건.svg
대한민국의 길을 열고, 세상의 길을 잇고, 너와 나의 길이 되는 인천으로 이는 '모든 길은 인천으로 통한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천광역시의 현재와 지향점을 나타내며, 도시브랜드가 전하는 메시지와 가치를 효과적으로 이해시키는 기능을 가진다. 인천만의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중에서 길을 열고, 길을 잇고, 길이 되는 상징 두 가지인 등대(I:팔미도등대)와 다리(N:인천대교)를 디자인 모티브로 삼아 워드마크 형태로 제작되었다. 두 개의 N은 인천의 특징인 '연결과 확장'의 의미를 담고 있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역대 브랜드와 슬로건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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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colbgcolor=#fff,#1c1d1f> 파일:fly_incheon.jpg
2006 ~ 2016.10.13
역동적인 물결의 형태와 인천의 시조인 두루미의 날갯짓을 모티브로 영문 ‘Fly’를 하트 형상으로 표현했다.
각각 ‘F’자(파란색)는 하늘과 바다를 상징하는 색상으로 첨단 미래와 신뢰를 의미하고, ‘L’자(초록색)는 땅을 상징하는 색상으로 안정 속 도약을, ‘Y’자(빨간색)는 사람과 젊음을 상징하는 색상으로 정열과 에너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인천광역시의 비전 슬로건
파일:인천비전슬로건.svg
인천광역시 비전 "인천의 꿈, 대한민국의 미래"는 민선 6기 시정에서 제작된 것으로, 시장직 인수위원회에서 비전과 시정목표를 수립하는 관행을 깨고 인천시청 구성원들을 상대로 내부 공모를 진행해 만들었다. 무한한 성장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을 가진 인천의 꿈을 실현함으로써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열어 나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유정복 시장이 8회 지선에서 당선, 시장직에 복귀하면서 민선 6기 비전을 재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2022년 10월 6일, 8년 만에 디자인을 새롭게 교체하였다. 꿈과 희망찬 미래의 길로 인도해주는 길잡이 '북극성'을 모티브로 꿈을 상징하는 '별'이 인천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환하게 비추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천광역시의 시정 슬로건
파일:인천광역시 시정슬로건.png
유정복 인천시장 민선 8기 시정 슬로건으로 정한 '시민이 행복한 세계 초일류도시, 인천'은 유 시장의 핵심 공약이자 인천광역시의 시정 슬로건이다. 이는 인천 미래발전 프로젝트로써 초일류도시 인천 조성을 위해 '뉴 글로벌시티 인천'과 '제물포 르네상스' 사업 추진 방향을 토대로 민선 8기 인천광역시의 시정목표로 선정했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역대 시정구호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colbgcolor=#fff,#1c1d1f> 파일:인천광역시 민선 7기 시정 슬로건.svg
2018.12.26 ~ 2022.06.30
민선 7기 박남춘 시정에서 사용됐던 슬로건이다. 시민 공모로 제작했다. }}}}}}}}}}}}}}}
인천광역시의 마스코트
파일:인천광역시 마스코트 등대리&버미&꼬미&애이니.svg
인천시의 캐릭터는 등대와 점박이물범을 소재로 디자인되었다. 등대는 '대한민국 최초의 불빛' 팔미도 등대를 모티브로 첨단산업도시 인천의 과거와 미래의 연결을 의미한다. 점박이 물범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동물인 백령도의 점박이물범을 모티브로 인천시의 자연 친화적인 의미를 담았다.

3. 외국어에서 쓰이는 다른 문자 표기

'서울'은 오래 전부터 다른 나라에 잘 알려졌기 때문에 같은 문자 체계로 표기하더라도 각 언어별로 표기가 달라진다. 달리 말하면 서울이라는 한국어 단어가 이제는 다른 언어의 영역에도 어느 정도 들어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서울의 프랑스어 표기는 'Séoul'이고, 영어 표기는 'Seoul'이며, 스페인어 표기는 'Seúl'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 대다수의 한국 지명은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기에 아직 한국어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인천도 마찬가지다. 어느 문자로 표기하든 그 발음이 '인천'이면 이는 언어적으로 아직은 한국어에 머무른다고 봐야 한다. (참고: 한글과 한국어의 혼동) 이는 인천의 로마자 표기인 'Incheon'이 순전히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문화관광부 고시 제2000-8호 및 문화체육관광부 고시 제2014-0042호)에 의한 것이며, 그 외 표기('Inchon'이나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의한 'Inchŏn', 또는 각 언어별 고유 표기 등)를 고수하는 언어가 없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문자 주 사용 언어 표기
한글 한국어 인천
로마자 영어 Incheon
프랑스어
스페인어
마인어
베트남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스웨덴어
이탈리아어
튀르키예어
포르투갈어
폴란드어
라틴어
키릴 문자 우크라이나어 Инчхон
러시아어
몽골어 Инчон
정체자
간체자
표준중국어 仁川 (rénchuān)
광동어 仁川 (jan4 cyun1)
한자
가타카나
일본어 仁川 / インチョン
아랍 문자 아랍어 إنتشون
페르시아어 اینچئون
태국 문자 태국어 อินช็อน
히브리 문자 히브리어 אינצ'ון
데바나가리 문자 힌디어 इंचियोन
그리스 문자 그리스어 Ίντσον

4. 역사

인천광역시는 대체로 원인천, 부평, 강화 세 권역으로 구분된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인천광역시/역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인천광역시 휘장.svg 인천광역시의 행정구역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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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
彌鄒忽
백제 초기 비류
<colbgcolor=#000000>
매소홀현
買召忽縣
475
<colbgcolor=#4a2d5b>
소성현
邵城縣
757
경원군
慶源郡
1095
인주
仁州
1133
경원부
慶源府
1390
주부토군
主夫土郡
475
장제군
長堤郡
757
수주
樹州
1095
길주
吉州
1308
부평부
富平府
1310
인주
仁州
1392
경기도
인천군

仁川郡
1413
경기도
인천도호부

仁川都護府
1460
경기도
인천부

仁川府
1896
인천부
仁川府
1910
부평부
富平府
1310
경기도
부평도호부

富平都護府
1413
인천부
부평군

富平郡
1895
경기도
부평군

富平郡
1896
경기도
부천군

富川郡
1914*
경기도
인천부

仁川府
1940
경기도
제물포시

濟物浦市
1945**
경기도
인천시

仁川市
1949***
인천직할시
仁川直轄市
1981
인천광역시
仁川廣域市
1995
* 이때 부평 전체와 인천부의 외곽이 부천군에 병합되었다. 부천군에 흡수된 기존 인천부 지역은 소래면, 영종면, 용유면, 덕적면을 제외하고 1936년, 1940년에 차례대로 인천부에 재편입되었다. 하지만 영종면, 용유면은 1989년에, 덕적면은 1995년에야 옹진군 편입을 통해 인천에 재편입될 수 있었고, 구 소래면 지역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시흥시 관할로 남아있다.
** 1945년 10월 10일부터 10월 27일까지 단 17일간 있었던 행정구역이다.
*** 전국의 부(府)가 시(市)로 일괄 변경되었다.
}}}}}}}}}

파일:attachment/인천광역시/incheon_sky.jpg

삼국시대에는 온조의 형인 비류가 터를 잡은 곳으로 알려져있는 미추홀(彌鄒忽), 매소홀(買召忽)로 불리다 (미추홀구, 비류대로, 매소홀로 지명의 시초다) 신라삼국 통일에 따라 통일 신라9주 5소경에 편입되어 한산주 율목군 매소홀현(買召忽縣)이 되었다. 이후 경덕왕 때 전국 지명 한화(漢化)정책에 따라 소성현(邵城縣)이 되었다.

소래포구가 당나라 소정방이 왔다는 설이 있다.

그러다 고려시대에 인천 이씨 가문에서 7명의 왕비를 배출하면서 경원군, 인주[22] (원인재역이 인천이씨 묘소에서 명칭 되었다) 그래서 SBS 드라마 '시티홀'에 나오는 인천을 모델로 한 가상의 도시 이름도 '인주시'다. 인주시의 특산물 중 하나는 밴댕이인데, 실제로 강화도의 특산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과는 전혀 상관없다. 경원부로 계속하여 승격되었다. 그래서 인천 이씨의 그 유명한 별칭이 경원 이씨. 그래서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인주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조선 태종 시절에 군현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인주가 다시 경기도 인천군(후에 인천도호부로 승격)이 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인천(仁川)이란 기록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루원시티가 있는 가정동 명칭이 조선 개국공신 조반별장이 있다고해서 이 명칭이 되었다.

강화도 조약으로 1883년 일본이 강제로 개항시킨후 구한말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개화의 도시인데, 인천항서울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로 일본인[23], 청나라인, 서양인들을 비롯한 많은 국적의 외국인의 왕래가 잦았다. 현재도 인천 개항장 인근에 적산가옥(일본식 건축물)[24], 차이나타운[25]과, 구한말 서양식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인천항을 통해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온 서양 문물 중 대표적인 것이 야구축구 같은 스포츠 종목이다.

개항장 역사문화의 거리도 이래서 있다.

수도권 1호선 경인선노면전차를 제외한 한반도 최초의 철도 노선이자 현재 존재하는 한국 철도 노선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유일하게 19세기에 만들어졌다.

인천을 대표하는 종합대학인하대학교한국계 미국인 하와이 동포들의 독립운동성금으로 설립되었기에 인하대의 교명이 각각 인천의 지명 앞글자 (仁)과 하와이의 지명 앞글자 (荷)를 따서 인하대(仁荷大)로 지어졌다.

그러나 조선을 두고 다투는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는데 청일전쟁, 러일전쟁 모두 인천(제물포)에서 전투가 있었다.

6.25 전쟁 때에는 낙동강까지 밀려나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한 한국을 구해낸 인천 상륙 작전의 주무대였다.

인천 서구콜롬비아 UN군의 한국전 참전을 기념하는 공원이 있다.

수봉공원UN 참전 기념탑이 있다.

자유공원맥아더 동상이 있다.

실미도 사건, 대청해전, 연평도 포격전이 있었다.

기존 도심은 중구·동구남구 용현동, 숭의동, 도화동 일대였으나, 1985년 중구 관동에 있던 시청이 남동구 구월동으로 옮겨가면서[26] 구월동과 간석동, 관교동, 주안동이 새로운 도심으로 떠올랐다.[27]

1989년 경기도로부터 계양면[28]영종도·용유도를 편입했고, 1995년 강화군옹진군, 검단을 새로 편입하면서 시역이 확장되었다. 이때 경기도에서 유인도 39개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관할 해역이 위도 1도 · 경도 2도에 달하게 되었고 경기만의 대부분이 인천의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때문에 해수면을 포함하여, 대한민국 전국에서 가장 넓은 광역시가 되었다.

광역시 출범 당시 초안에는 강화, 옹진군 외에 김포군 전역과 시흥시 북부(옛 소래읍 지역)[29]까지 편입할 계획이었다[30]. 하지만 강화군,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만 주민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서 이들 지역만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다.

강화군의 경우 전쟁사와 관련이 깊은데 고려 여몽전쟁 시기 잠시 수도가 된 바 있고, 조선 때는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 방어전이 있었으며,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을 겪었다. 그리고 강화도 조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성정부의 수립 발표, 인천 5.3 항쟁이 있었다.

4.1. 명칭 유래

인천을 칭하는 단어로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은 미추홀(彌鄒忽)이다.[31] 미추홀의 홀(忽)은 고구려백제의 특징적인 지명어로서, 한자어 '성(城)'으로 쓰인다. 따라서 미추홀을 미추성으로 바꾸어 표기해도 무방한데, 실제로 광개토대왕릉비의 제2면 1행에 '미추성(彌鄒城)'이라는 표기가 나온다.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討伐殘國. 軍□□首攻取 …[A] 彌鄒城 …[B]
영락 6년(396) 병신년에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百殘國)[34]을 토벌하였다. 고구려군이 …[A] 미추성 …[B] 을 공격하여 취하고 (후략)

이후 고구려는 이곳을 매소홀(買召忽)이라 하였는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는 미추홀(彌鄒忽)의 다른 표기에 불과하며, 실제 발음은 'mit-kol/mi-kol'로 추정된다고 한다.[37] 여기서 'mit'은 물(水)의 뜻을 가진 어휘로, 밑(本, 始, 底), 뭍(陸), 미르(龍), 믿-(信) 등의 다양한 어휘로 분화되는 어휘이다.[38]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통일신라9주 5소경 제도에 따라 한산주 매소홀현(買召忽縣)이 설치되었으며, 매소홀현은 경덕왕 때 한화(漢化)정책에 따라 이름을 고쳐 소성현(邵城縣)이 되었다. 삼국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소성현은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현[39]으로 경덕왕때 이름을 고쳤으니, 지금의 인주(仁州)이다.[40][41]
경원(慶原)이라고도 한다. 매소(買召)는 미추(彌鄒)로도 쓴다.[42]

이후 고려 숙종(1095~1105) 때 숙종의 어머니인 인예왕후 이씨의 내향(內鄕)이었던 관계로 경원군(慶源郡)으로 개칭·승격되었다. 그 뒤 인종(1122~1146) 때에는 인종의 어머니인 순덕왕후 이씨의 내향이라 하여 인주(仁州)로 승격되었으며, 이자겸의 난으로 인주 이씨가 몰락하다시피 하였으나 공양왕 2년(1390)에 이르러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 하여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대 동안 고려의 왕후를 배출한 지역이라 하여 경원부(慶源府)로 한 번 더 승격되었는데, 이는 공양왕신종을 매개로 하여 왕권의 정통성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 경원부는 고려왕조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하여 다시 인주군(仁州郡)으로 강등되었고, 태종 13년 주(州)자를 가진 도호부 이하의 군·현의 이름을 산(山), 천() 두 글자 중 하나로 개정토록 하여 현재의 인천으로 탄생하게 되어, 그날 (1413년 10월 15일)을 기려 '인천시민의 날' 이 제정되었다.[43][44]

인천을 한자로 仁(어질 인)과 川(내 천)으로 풀이하여,어진내로 순우리말화 할 수 있지만, 거의 쓰이지 않는다. 본디 '인종의 고을'이라는 뜻인 인주(仁州)에서 조선 태종 시기에 격하당해 주(州)에서 점을 세 개 뺀 인천(仁川)으로 바뀐 것이기 때문에 억지 순우리말이며, 대구를 달구벌이라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천광역시를 순우리말로 이를 때에는 가장 오래된 지명인 미추홀을 훨씬 더 많이 쓴다. 단, 인천광역시 전역을 미추홀로 칭할 때도 있지만, 미추홀구(舊 남구)를 뜻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4.2.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

4.3. 인천이 최초인 것들

조선 후기,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며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항구도시로 국내에서 최초인 것들이 많다.[46]

5. 지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인천광역시/지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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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인천광역시 하위 행정구역 지도.jpg

동쪽으로 서울특별시 강서구경기도 부천시, 남동쪽으로 시흥시, 북쪽으로 김포시와 접한다.

5.1. 인구

인천광역시 인구 추이
(1966년 ~ 현재)
1966년 525,827명
1970년 643,384명
1975년 797,143명
1980년 1,081,831명
1981년 7월 1일 경기도 인천시 → 인천직할시 승격
1985년 1,384,916명
1989년 1월 1일 경기도 옹진군 영종면·용유면 → 인천직할시 중구 편입
김포군 계양면 → 인천직할시 북구 편입
1990년 1,816,328명
1995년 1월 1일 인천직할시 → 인천광역시 개칭
1995년 3월 1일 경기도 강화군·옹진군 편입
1995년 2,353,073명
2000년 2,545,769명
2005년 2,600,495명
2010년 2,758,296명
2015년 2,925,815명
2020년 2,942,828명
2024년 10월 3,017,928명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50만 명
구군별 인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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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632,041명
부평구 492,755명
남동구 487,125명
미추홀구 411,995명
연수구 399,709명
계양구 280,863명
중구 165,760명
강화군 69,152명
동구 58,456명
옹진군 20,072명
2024년 10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65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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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구·군 읍면동별 인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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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동 71,690명
검암경서동 54,341명
송도3동 48,473명
청라2동 47,963명
송도5동 46,134명
용현5동 45,134명
송도4동 42,001명
가정1동 41,800명
논현고잔동 39,473명
운서동 38,827명
송도1동 37,742명
서창2동 37,653명
연희동 37,169명
구월2동 36,851명
송도2동 36,875명
청라3동 36,170명
부평1동 35,015명
학익1동 34,678명
부평4동 33,827명
부평5동 33,412명
영종1동 33,409명
청천2동 32,926명
작전서운동 32,643명
검단동 32,462명
삼산1동 32,197명
계양2동 31,401명
논현1동 31,252명
구월1동 30,931명
논현2동 31,044명
도화2·3동 31,015명
청라1동 30,616명
신현원창동 29,323명
산곡2동 29,320명
당하동 28,779명
구월3동 28,219명
부개3동 28,149명
간석4동 27,765명
삼산2동 27,396명
효성2동 26,653명
효성1동 26,321명
작전1동 25,860명
동춘1동 25,775명
영종2동 25,723명
간석3동 25,231명
원당동 24,720명
십정1동 24,550명
오류왕길동 24,247명
계양3동 23,604명
불로대곡동 23,055명
만수2동 22,467명
계산4동 22,450명
청학동 22,534명
만수6동 22,221명
강화읍 22,064명
영종동 22,042명
주안2동 21,873명
마전동 21,352명
주안6동 21,156명
간석2동 20,973명
도화1동 20,765명
십정2동 20,758명
남촌도림동 20,236명
산곡3동 20,159명
석남1동 20,065명
주안1동 20,021명
주안5동 19,999명
연수2동 19,980명
주안8동 19,587명
만수4동 19,548명
계양1동 19,456명
옥련2동 19,369명
부개2동 19,265명
장수서창동 19,057명
가좌2동 18,635명
작전2동 18,487명
계산1동 18,133명
계산3동 18,116명
옥련1동 18,028명
동춘3동 17,926명
학익2동 17,902명
갈산2동 17,757명
주안4동 17,715명
연수1동 17,602명
동춘2동 17,508명
용현1·4동 17,426명
선학동 17,331명
용현2동 17,167명
간석1동 17,038명
가정2동 16,851명
산곡4동 16,837명
만수3동 16,796명
만수1동 16,096명
부개1동 15,975명
숭의1·3동 15,814명
가좌3동 15,729명
갈산1동 15,662명
연수3동 15,257명
숭의4동 15,143명
산곡1동 14,995명
부평3동 14,922명
계산2동 14,878명
부평2동 14,809명
부평6동 14,536명
만수5동 14,436명
관교동 14,143명
신흥동 14,127명
문학동 13,928명
숭의2동 13,563명
구월4동 13,338명
가좌1동 12,492명
석남3동 12,457명
주안3동 12,318명
주안7동 12,037명
가좌4동 12,027명
석남2동 11,970명
일신동 11,659명
송현1·2동 9,832명
가정3동 8,778명
선원면 7,935명
길상면 7,238명
용현3동 7,192명
화수2동 7,144명
개항동 6,920명
청천1동 6,737명
영흥면 6,567명
송림1동 6,540명
만석동 6,367명
송림4동 6,027명
송림6동 5,732명
송림3·5동 5,526명
화수1·화평동 5,486명
연안동 5,302명
동인천동 5,337명
불은면 5,036명
백령면 4,778명
화도면 4,566명
신포동 4,532명
양도면 4,228명
하점면 4,002명
도원동 3,583명
용유동 3,548명
송해면 3,200명
내가면 2,996명
율목동 2,884명
송현3동 2,789명
교동면 2,686명
금창동 2,200명
북도면 2,117명
연평면 1,995명
덕적면 1,932명
양사면 1,909명
송림2동 1,263명
대청면 1,205명
자월면 956명
서도면 366명
2024년 10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6.5만 명, 각 읍면동별 색깔은 각각 중구, 동구, 미추홀구, 연수구, 남동구, 부평구, 계양구, 서구, 강화군, 옹진군 지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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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지역 도시답게 아직까지도 광역시 중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이다.

원래 인천은 경기도 인천시 시절부터 서울특별시의 관문 역할을 하는 도시로, 1981년 인천이 직할시(광역시)로 승격하자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서울특별시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 비교적 가까운 인천으로 이사했거나(베드타운), 송도, 청라, 영종 등 주거환경이 뛰어나고 자체 일자리도 많은 신도시 개발, 인천국제공항 개통과 인천항의 존재로 제조, 물류 등의 일자리 증가 등에 힘입어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인구로 대구광역시를 추월해서 대한민국 인구 순위 3위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심지어 부산광역시조차도 이르면 2020년대 후반, 늦게 봐도 20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천이 추월해 버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실제로 두 도시 간의 인구 격차가 지난 10여 년간 꽤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편이다. 201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여전히 350만 명대 이상의 규모를 지녔던 부산과 그때 막 270만 명대에 진입했던 인천 사이에는 대략 80만 명 정도의 인구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2010년대 당시 부산과 인천의 인구 차이는 이미 2000년대에 서로 간의 인구 규모는 역전했다지만 그게 20-30만 명 대 차이로 크지 않았던 2010년대 초·중반의 인천 - 대구의 격차보다도 그 차이가 몇 배 더 컸었는데, 그로부터 고작 10년이 지난 2020년대에 들어서는 주민등록상 내국인 인구로만 300만 명을 달성한 인천과 320만 명 대선으로 급감소한 부산의 인구 차이가 현 시점 20만 명 대로 좁혀졌다.(일제 해방 이후 거의 전통적으로 제2의 도시로 취급되던 부산과의 차이가 26만명 이하 밖에 안 된다)

근대 시기의 첫 개항지로서 지리적으로도 중국 산둥 반도와도 가까운 편이라 과거 화교들이 많이 유입된 편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이 그 예. 현재는 그 화교들이 귀화하고 대를 거쳐서 한국인화가 된 상황. 이들은 100여 년 전쯤인 구한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경에 이민을 해온 케이스들이라 지금의 조선족들을 비롯한 현대 중국발 이민자들과는 다른 부류라고 봐야한다.

송도국제도시, 영종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인천경제자유구역, 상업, 업무지구, 산업단지의 개발로 자족 기능을 향상하고 있으며, 서울 통근자들은 지하철을 활용해 서울 출퇴근이 가능한 부평구와 계양구를 선호한다. 서울의 집값의 하락을 가정해도 많은 인구가 빠져나갈 것이라는 주장은 인천의 자족 기능을 지나치게 낮게 보고 있는 것이며, 자녀를 키우기 좋은 계획도시 지역이 서울엔 부족한 것을 간과한 것이다. 검단신도시만 해도 수용 계획 인구가 177,700명이며, 송도, 영종, 청라와 서창지구 역시 입주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원도심 재개발도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다.

인천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기초자치단체는 서구이며, 옹진군을 제외하고는 동구가 인구가 가장 적다. 연수구송도국제도시의 영향으로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지역과 중구 영종국제도시 지역을 제외하면 주변 지역으로 인구가 유출되는 추세였다. 특히 부평구동구는 감소세가 더욱 심했다.[53]

위의 영상에도 나오듯이 2018년 12월 말, 서구가 남동구 인구를 추월했다. 서구의 인구 증가 요인으로는 청라, 검단, 루원 등 도시개발사업의 활달한 진행을 들 수 있다. 계양구는 3기 신도시인 계양신도시가 개발 예정이지만, 동구는 더 이상 개발할 땅이 없고, 부평구는 그나마 남은 구산동과 일신동이 군사구역인 데다가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때문에 개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수구는 송도국제도시와 동춘동 재개발 사업 등을 통한 주택공급의 증가에 따라 2020년 현재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남동구도 논현지구, 구월아시아드단지, 서창2지구 개발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서구도 청라, 가정2지구, 검단지구의 개발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중구도 영종국제도시가 인구 증가세를 주도하면서 구 전체 인구도 증가세를 보이며, 2019년 전국 인구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다만 원도심 지역은 도심 공동화의 요인으로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 2019년 6월, 동구는 66,000명선이 붕괴되었다.

통계청 KOSIS에서 제공하는 국가통계지표에 따르면 '2018년 인천광역시 주택보급률은 101.2%로 나타났다. 참고로 울산광역시 110.3%, 광주광역시 106.6%, 대구광역시 104.0%, 부산광역시 103.6%, 대전광역시 101.6%.

2019년 295만 명이었던 인구가 2020년 294만 명으로 1만 명 감소하여 감소 추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2021년 9월에 295만 선을 다시 회복하였으며, 점차 인구가 상승하여 마침내 2024년 1월 30일 인구 3,000,043명으로 300만을 돌파하며 1980년 부산 이후 44년 만에 300만 이상의 도시가 되었다. # 재한 외국인은 8만 명이고, 국내 한국인만으로도 300만 명이 넘었다. 여기에 3기 신도시계양구 북부 계양신도시가 선정되어 인구 증가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54]

5.2. 생활권

파일:인천광역시 휘장_White.svg 인천광역시의 지역 구분
원도심
남인천
북인천
서인천
해안도서


도서 지역을 제외한 인천 본토는 크게 네 개의 생활권으로 구성된다. 동구 - 중구(영종도 지역 제외)의 동인천[55], 미추홀구와 남동구 및 연수구의 남인천[56], 계양구와 부평구의 북인천, 마지막으로 서구의 서인천. 도서 지역은 인천국제공항을 위시한 영종국제도시 생활권[57], 그리고 강화도 및 기타 군소 도서 지역 생활권으로 구성된다.

김시덕 박사는 생활권을 3개로 구분했다.

5.3. 서울과의 관계

광역시 중 유일하게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이로 인해 인천과 서울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5.3.1. 서울과 멀다

직선거리로 보면 광화문 도로원표에서 송도국제도시까지의 거리는 광화문에서 수원시 영통구청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며, 부평역에서 광화문까지의 거리는 분당신도시의 중심지인 서현역에서 광화문까지의 거리와 거의 같고, 영종하늘도시 - 광화문 간 거리는 동탄신도시 - 광화문 간 거리와 비슷하다. 각 자치구청, 인천광역시청서울특별시청 간의 거리는 하단 표 참고. 강화군[58]옹진군청은 제외. 옹진군은 여러 개의 섬들이다. 제일 먼 백령도인천항에서 뱃길로 210km를 가야하므로, 서울특별시청에서 인천항까지 45km 정도를 합산한 서울에서의 거리는 약 260km군위군, 남원시 일대까지의 거리에 육박한다.[59]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옹진군 관할 섬인 신도[60]는 58km[61], 육로로 이어져 있는 선재도는 74km[62]이나 떨어져 있다.

직선거리로는 다소 멀 수 있겠으나 1968년 개통된 경인고속도로, 1974년 전철화 개통된 경인선 전철, 2010년 완전 개통된 인천국제공항철도로 인해 서울과 인천 간의 이동 거리가 많이 줄어들었다. 경인고속도로의 경우 교통 정체가 없으면 서인천IC에서 신월IC까지 12분 만에 서울에 갈 수 있다. 아무리 막혀도 30분 이내에는 서인천에서 신월까지 주파가 가능하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은 2005년 동인천역~용산역급행열차의 완전 개통으로 동인천역에서 용산역까지 47분, 부평역에서 용산역까지 33분에 주파가 가능하다. 아울러 2017년 개통된 특급열차를 이용하면 동인천~용산 42분, 부평~용산 30분 이동이 가능하다. 공항철도는 영종구, 서구, 계양구 등 인천 서북부 지역만 걸쳐간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동 속도는 가장 빠르다. 인천공항2터미널역~서울역 간 일반열차는 1시간 7분, 직통열차는 51분이 소요된다. 일반열차만 탈 수 있는 검암역~서울역 간 소요 시간은 35분이다.

인천이 서울과 직접 닿은 곳은 강서구[63] 뿐이고 도심인 영등포, 여의도, 부도심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신촌, 홍대[64], 마곡지구목동은 가깝지만 서울 사대문 안과 강남구까지의 거리는 가깝지 않다. 물론 여기에는 과포화되어 고속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경인고속도로와 수도권 서부의 고질적인 교통 체증의 탓도 크다. 계양구청에서 강서구청은 11.3km, 부평구청에서 양천구청까지는 13.3km, 남동구청에서 금천구청까지는 17.1km에 불과하지만 극과 극인 노원구청에서 연수구청은 61km, 도봉구청에서 중구청 영종청사는 65km이다.[65] 군청까지 포함할 경우 옹진군청에서 도봉구청은 64.5km, 강화군청에서 강동구청까지는 69.7km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특별시청까지 거리는 59.7km로 이천시, 평택시 송탄 일대와 비슷한 거리에 있다. 물론 인천공항철도의 직통열차 또는 택시렌트카를 이용하면 1시간 만에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 도심에 도착할 수 있다.

자동차 기준 서울특별시청까지의 거리
인천광역시청35.1km
중구청 본청41.3km
중구청 영종청사49.2km
동구청36.6km
미추홀구청38.6km
연수구청41.5km
남동구청33.3km
부평구청26.8km
계양구청26.2km
서구청31.2km

철도 기준 서울역까지의 거리
인천시청역31.2km
동인천역36.8km
주안역32.2km
인천역38.7km
부평역26.6km
인천터미널역33km
원인재역36.6km

철도 기준 서울역에서 부평역금정역, 인천시청역당정역과, 동인천역, 원인재역성균관대역과 비슷한 거리에 있다. 다만 경부선의 서울 - 경기 구간은 비교적 서쪽으로 우회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부평 - 계양권은 부평산단을 기반으로 자체 생활권을 이루기도 하며 서울의 베드타운 성격이 어느 정도 있고, 그 외 나머지 인천 지역은 공항철도가 지나는 서구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체 생활권이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인천광역시의 전체 통근/통학자 중 서울행의 비중은 12%에 불과했다. 이것도 서울행 비중이 15%를 넘는 부평과 계양이 포함된 결과로, 이들을 제외한 원인천의 서울행 비중은 10%도 되지 않아 수원시와 비슷했다.

수도권의 문화는 서울/인천/수원 크게 3대장이라 나눌수 있는만큼 문화적으로도 서울과 인천은 제법 차이가 있다. 유년기를 서울에서 보낸 사람과 인천에서 보낸 사람 간의 문화나 언어 등에 차이도 좀 있다.

추가로 인천에서 시작한 프랜차이즈 외식 기업들이 은근 있는데, 점포가 인천이나 서울 서부권에 집중된 경우가 많다. 모 프랜차이즈 소고기 전문점은 점포 수가 약 85개인데도 인천, 부천, 서울 서부권, 김포 지역에 전체 점포의 50% 가까이 몰려있다.

또한 인천을 지나가는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노선이 없다는 것도 생활권 상의 분절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서울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군포, 의왕, 파주에도 서울 시내버스가 운행하는데 그보다 가까운 인천은 서울 시내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66] 부평 바로 옆인 부천시는 광역버스도 아닌 일반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 4대문 안까지 도착할 수 있다.

5.3.2. 서울과 가깝다

김포국제공항 인근에서 서울특별시와의 직접적 경계선이 약간 존재한다.[67] 덕분에 1990년대 이후부터는 시외전화도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해졌다.[68] 당시 기준은 30km 이내였는데 인접 통화권은 예외가 적용되어 인천광역시 중구와 서울특별시 도봉구 간도 시내요금으로 유지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수도권인 만큼 서울과 이어진 교통이 발달한 편이다. 여기에 인천국제공항철도, 7호선 연장선 등이 개통되어 서울과의 교통이 더욱 편리해지고 있고[69] 여기에 GTX-B까지 개통되면 앞으로 서울과의 교통은 편리해질 전망이다.

5.3.3. 인천은 서울의 위성도시인가?

주민등록인구 기준 302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임에도 아직까지도 서울의 위성도시, 베드타운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정부에서도 인천에 문화시설, 고등법원을 짓지 않고 서울 가서 해결하라는 정책 기조이다. 국립 문화 시설의 경우 인천에 존재하지 않아서 서울에 가야만 했으나 아트센터 인천이 생기면서 상황이 조금은 나아졌다. 그러나 수도권 매립지, 석탄부두, 화력 발전소 등 서울의 혐오시설들이 자리잡아서 인천광역시 입장으로는 여러모로 머리가 아픈 모양이고, 인천은 엄연한 인천이지 서울의 위성도시라는 꼬리표를 빨리 떼야 한다는 주장이 인천시민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도시 자체는 서울특별시와 따로 발전했더라도 인천을 중심으로 하는 인천권이라고 할 만한 도시권역이 없고, 심지어 인천광역시 내의 자치단체인 계양구, 부평구 지역은 인천 내 다른 지역과 달리 서울특별시의 위성도시화된 지역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다른 광역시들과 1대 1로 비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인천은 위치를 보면 알겠지만 경기도 서쪽에 치우쳐 있으며 동쪽으로는 바로 서울과 접한다. 이로 인해 다른 경기도에서의 접근성도 상당히 떨어지며 이로 인한 심리적 거리감은 상당하다. 따라서 경기도도 전혀 대표하질 못한다. 인천 옆에 자리한 부천시도 교통이 좋아지면서 서울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고 나머지 인근 도시들은 그냥 서울의 위성도시들에 가깝다. 인천 인구가 300만에 달한다고 하지만 다른 지방 광역시들은 인구는 인천보다 적어도 대구 - 경북권, 광주 - 호남권, 대전 - 충청권은 각각 약 500만의 인구를 담당하고 있다. 인천과 비슷한 광역시로는 울산광역시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서도 서울 - 인천의 관계가 부산 - 울산으로 대응된다. 따라서 울산에도 정부 행정 시설 등이 없으며 부산으로 가야만 한다.[70]

아무튼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인천시와 여러 시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의 인천에 대한 무관심, 홀대는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도 인천 출신 인사가 공직에 거의 등용되지 않았고[71] 이는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장 인사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수도권 집중 문제의 방지대책으로 인해 하필 수도권에서 서울 다음으로 거대한 인천시가 그 직격탄을 얻어맞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20년 전부터 육성해왔던 바이오 산업 허브를 정부에서 비수도권 발전 정책의 일환으로 충북에 안겨주었고,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최고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수도권 집중 방지를 위하여 항공 산업 육성마저 비수도권인 경남 사천시에 내줘야만 했다. 인천 소재 국가 공공기관마저 이전시키려는 와중에도 인천고등법원, 국립 문화시설은 감감무소식이고 서울을 위해 수도권 매립지는 어떻게든 잔류시키고 심한 공해를 발생시키는 화력발전소만 증설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태생적으로 1960년대부터 인천이 서울의 위성도시로 작정하고 개발한 만큼, 그러한 한계로 인해 시정부와 시민이 아무리 노력한들 높으신 분들이나 다른 지역민들의 인식은 인천을 서울의 님비 시설 건설지로 생각했던 것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으며 앞으로 더 나아질 가능성도 적다. 그나마 2019년 3월 인천지방법원에 서울고등법원 원외재판부가 설치되었지만 여러사정으로 민사 합의부만 설치되었다.

서울 기준으로 이부망천이라는 희대의 망언도 있었다.

5.4. 행정구역 개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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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광역시
: 인천광역시 (옛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
: 경기도 김포시
: 인천광역시 (옛 부평도호부)
: 경기도 부천시
: 경기도 시흥시 (옛 부천군 소래면)
: 경기도 시흥시

서울시 행정구역 개편 문제에서 인천권의 서울 통합안은 다른 방안에 비해 덜 주목받고, 나오는 빈도도 낮은 편이다. 특히 원인천(중구, 동구, 미추홀구, 남동구, 연수구) 지역의 경우, 부평 지역(부평, 계양, 서구)과도 생활권과 문화의 이질성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는데 서울이나 경기도와 같은 색깔이 완전 다른 두 도시를 합친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를 낳을 것이다.

부평 생활권과 인천 생활권 역시 다른 지역으로 구분하는 경향 역시 조금 남아있다. 생활권 자체가 아예 영등포권에 속한 광명시의 서울 편입 문제[72]만 해도 찬성론과 반대론이 팽팽할 지경인데 1981년에 대구와 같이 직할시로 승격할 정도로 자족기능이 수도권의 여타 위성도시보다 훨씬 강한 인천의 경우에는 더 설명이 필요 없다. 다만 행정구역 개편 방향이 도 폐지 및 광역자치단체 분할 쪽이 아닌 광역자치단체 대규모 광역화(도+광역시 통합)로 간다면 인천광역시 해체 후 경기도에 환원 혹은 시 단위가 아닌 "서울도" 로서의 서울/인천/경기 광역 대통합 혹은 경인통합(인천권의 서울 편입)이 논의될 가능성은 있다. 이건 자유선진당 개편안에서 서울+인천권 통합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자유선진당이 제시한 광역화 방안에 대해 인천 지역사회에서는 인천이 '경기도 인천시'나 '서울특별시 인천구'가 되는 게 아니냐며 불만을 표시한 바가 있다.[73]

그 외에는 인천과 인접한 부천시, 시흥시, 김포시와의 통합이 논의되기도 하며 부평구, 계양구가 인천광역시에서 분리되는 방안도 논의되기도 한다. 다만, 인천권 통합은 경기를 일으킨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해당 시들의 반발이 극심하고 특별시와 광역시의 추가 확장을 억제하는 정부 정책 기조상 현실성이 떨어지며, 부평권 분리 또한 행정구역 개편/수도권 항목에서 알 수 있듯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외에는 강화군의 경기도 편입도 거론된다.

만약 남북통일이 될 경우 강화군, 옹진군의 구 부천군 지역은 경기도로, 서해 5도 지역은 황해도 관할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강화군의 경우 인천으로부터 홀대 받는다는 정서가 있어 김포시와의 통합으로 경기도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며, 서해 5도는 최전선 지역으로 북한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지역이라고는 하나 남북통일 이후에는 최전선 지역이라는 특색이 사라지고 황해도와 거리가 훨씬 더 가깝기 때문에 황해도와 더 가까워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므로 실현 가능성이 딱 잘라서 없다고 마냥 단정지을 수는 없다.

관련하여, 2023년 9월 10일 행정안전부 자치분권지원과는 약 30년 만에 인천광역시 행정구역 개편 추진이라는 문건의 보도자료를 통해 ▲ 동구 + 중구 가운데 본토 지역 → 통합하여 제물포구 신설(동구는 폐지) ▲ 중구 가운데 영종도 지역 → 분구하여 영종구 신설(중구는 폐지) ▲ 기존의 서구를 아라뱃길 기준으로 분구 → 북쪽은 검단구(검단구 신설), 남쪽은 서구로 분리(서구는 축소하여 유지) 등을 공식 발표하였다.[74] 해당 내용은 2023년 9월 11일부터 10월 23일까지 42일간 입법예고가 이루어지고 이후 국무회의를 거쳐 같은 해 11월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된 인천광역시 제물포구·영종구·검단구 설치에 관한 법률안(행정안전부 소관)에 관한 것이다.

이 법률안은 2024년 1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으며, 부칙 제1조에 따라 2026년 7월 1일 시행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2024년 4월)는 기존 행정구역에 따라 실시되었고,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26년 6월)는 개편된 행정구역에 따라 실시하게 된다. 자세한 것은 행정구역 개편/수도권/인천광역시 문서 참고.

6.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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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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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GRDP <colcolor=#fff> 전체 <colbgcolor=#fff,#1c1d1f>₩104조 5,710억 원 (전국 대비 4.7%)
1인당 ₩3,529만 930원
GNI 전체 ₩91조 9,000억 원 (전국 대비 4.8%)
1인당 ₩3,126만 7,000원
개인 소득 전체 ₩54조 7,000억 원
1인당 ₩2,241만 6,000원
성장률 6%
※ 2022년 기준
위의 표는 2022년 기준이다.

인천광역시는 제분, 제당 산업을 위시한 경공업부터 기계공업, 제철공업, 석유화학 산업으로 대표되는 중화학 공업, 반도체, 로봇 산업, 바이오 산업 등을 위시한 첨단 산업을 아우르는 주요 산업도시이다. 또한 한국 미래 유망 업종 중 하나인 바이오 산업이 가장 발전한 도시이며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인 바이오, IT, 로봇, 드론 산업과 관광, 항공, 반도체 산업 등 첨단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전국 평균을 웃도는 연 6%의 경제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 내 총생산(GRDP)은 명목상 대한민국 제 5의 지역이라는 점과 달리(경기도, 경상남도 포함) 특별시광역시 기준 2위로 인구수에 걸맞게 부산과 2, 3위를 다투고 있다. 다만 1인당 GRDP는 더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 # 경기도, 충청남도, 경상북도 등을 포함하면 6위다.

인천경제자유구역 등지의 해외 자본 유치, 기존 산업단지 구조 고도화, 신규 산업단지 조성 등은 긍정적 요인이나 인천 내 기업의 해외 이전 등 부정적 요소 역시 상존한다.

수도권 쏠림현상으로 인하여 인구가 늘고 있으며 특히 경기남부와 함께 서울특별시보다 젊은층의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비교적 전망이 밝다.[75]

7.1. 실업률

인천의 실업은 제조업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청년들이 일자리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게 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파견 형식의 일자리가 많다 보니 임금은 최저 수준인데다 고용 안정성마저 담보되지 않는다. 청년들은 근무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에 취직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발적 실업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된다.

7.2.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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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인천경제자유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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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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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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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축제

8.2. 특산물

서해에 끼어있기 때문에 삼치, 새우, 꽃게 등의 해산물이 풍부하다. 또한, 백령도연평도를 중심으로 꽃게잡이가 성하며 강화도에서는 쌀 생산도 성한 편이다. 이 외에도 , 포도, , 인삼, 순무, 고추, 버섯, 까나리액젓 등이 있다.

9. 도시 행정

9.1. 인천광역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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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상수도

상수도 시스템을 구축한 역사는 서울특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천시 관할 최초 정수장은 서울 노량진(당시 과천군 노량진리)에 1910년에 들어선 노량진정수장. 그 노량진정수장은 1948년에 서울시에 인수되었다가 2001년에 폐쇄되었다. 참고로 서울시 관할 최초 정수장은 1908년 뚝도정수장(현 뚝도아리수정수센터)이었으니 인천시는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상수도 시스템을 구비한 것이다. 노량진정수장은 인천 뿐만 아니라 경성부(특히 영등포) 일부에도 수돗물 공급을 책임졌다.

서울시에 노량진정수장을 이관한 후 인천시가 지은 대체 시설이 지금의 부평정수장. 이후에도 남동(장수)정수장, 공촌정수장, 수산정수장 등을 세웠다.

인천시 상수도 인프라는 인천시 면적에 비해 넓었는데, 주변지역의 수돗물 공급도 책임지기 위해 인천시 외에 정수장을 여럿 설치한 역사가 있다. 인천시 일부와 김포군, 부천시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1958년 김포군 양서면 신월리(현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동 서서울호수공원)에 김포정수장을 설치했다. 그리고 부천시, 광명시, 시흥시 일대 및 인천시 일부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1988년 광명시 노온사동에 노온사정수장을 설치했다. 김포정수장은 1979년에 서울특별시에 인수되어 신월정수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2003년까지 가동하였고, 노온정수장은 2009년에 광명시에 인수되어 현재에도 운영 중이다. 앞서 언급한 노량진정수장과 신월정수장이 서울특별시로 이관되기 전에는 인천시는 서울특별시의 수돗물 공급의 일부를 공급하였다.

하지만 위와 같은 역사에 걸맞지 않게 2019년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에서 인천광역시 상수도 운영, 관리의 후진성이 드러났다. 3주가 지나도록 별다른 원인 파악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생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서울 등의 타 지자체에서 시민들이 직접 공수해왔다. 이때 급식도 간편식으로 제공했다.

그리고 1년 후인 2020년, 수돗물 유충 사태로 다시금 수돗물 파동이 일어났다.

서울의 아리수와 마찬가지로 미추홀 참물이라는 수돗물 브랜드가 있었으나, 2018년 남구가 미추홀구로 이름을 바꾸면서 미추홀구 수돗물로 오인될 가능성이 생겼고, 적수 사태와 유충 사태를 겪으며 이미지가 실추되어[76] 2021년에 시민 공모를 통해 인천 하늘수라는 브랜드를 새로 도입했다.

9.3. 하수도

인천광역시 관할 각 하수처리장 준공일

하수처리장 건립이 서울에 비해 좀 늦은 편이다. 천만 인구에 달하는 서울의 생활 하수를 한강에 방류하는 것은 환경오염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반면, 인천은 바다에 접해 있어 그 문제가 두드러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1992년 가좌하수처리장이 생기기 이전에는 인천의 모든 생활하수는 정화 처리를 거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바다에 방류되었다. 때문에 90년대까지만 해도 월미도 앞바다 바닷물은 그야말로 똥물이었고, 지금은 없어진 송도해수욕장의 수질도 매우 좋지 않았다. 이후로 1995년 승기하수처리장, 1999년 공촌하수처리장, 2008년 남항하수처리장(구 학익하수처리장)[77] 등 인천 곳곳에 하수처리장이 설치되었다. 2005년 만수하수처리장 신설로 기존 승기하수처리장 처리구역 일부가 그쪽으로 편입되었다.

부평구(십정동, 부평3동 제외)와 계양구(경인운하 이남)의 하수는 부천시 굴포천하수처리장[78]에서 위탁 처리한다.

현재의 인천시 산하 각 하수처리장의 관할구역의 큰 틀은 인천시 생활하수 전량이 그대로 바다로 버려졌던 시절에 설정된 배수구역에 근간을 두고 있다.

9.4. 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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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강화경찰서 인천계양경찰서 인천남동경찰서* 인천논현경찰서 인천미추홀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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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영종경찰서** 인천검단경찰서**
[[중심경찰서|
* 경무관 서장이 보임되는 중심경찰서, ** 개청 예정인 경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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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경찰청, 경기도남부경찰청, 부산광역시경찰청에 이어 4번째로 치안정감이 시도경찰청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외 지역의 시도경찰청장은 치안감이다.

인천광역시경찰청은 남동구 구월동에 있으며[79] 중부경찰서[80], 미추홀경찰서[81], 남동경찰서, 부평경찰서, 서부경찰서, 계양경찰서, 강화경찰서, 연수경찰서, 삼산경찰서, 논현경찰서 등 10개의 경찰서가 치안을 담당한다. 2025년 영종경찰서 개서가 확정되었으며, 송도경찰서, 검단경찰서 신설이 추진 중이다.

과거 항만산업단지로서의 기능만 강조되던 시절, 거친 항만산업단지 노동자들, 인터넷에 회자되는 강력범죄나 '양아치'의 이미지가 덧붙여져 치안이 나쁜 도시, 즉 마계도시로 인식되어 있지만, 실제 범죄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범죄 발생 수로 보면 전국 17개 시도 평균보다 낮으며 경찰청 조직을 키워 치안 지표를 개선시키고 있다. 구제불능의 양아치가 양산된다는 학교들도 아예 학교의 형태를 전환 개교시키는 등의 노력으로 이미지를 극적으로 반전시켰다. 그러나 체감 안전도 등의 문제가 여전히 제기되는데 인천광역시/비판 문서를 참조할 수 있다. ## 인천시민 중에서는 인천은 큰 도시라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지만, 과거에 있던 지역 간 격차에 대한 이야기에서 안 좋은 요소가 유독 부각된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

9.5. 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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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소방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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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서
중부소방서 남동소방서 부평소방서 서부소방서 공단소방서
계양소방서 미추홀소방서 강화소방서 영종소방서 송도소방서
검단소방서
기타 기관
119종합상황실 인천소방학교 119특수대응단 인천국민안전체험관 119화학대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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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의 소방 업무는 인천소방본부에서 담당한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하로 190에 위치하며, 미추홀소방서와 함께 있다.

9.6. 사법기관

9.7.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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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행정과 기타 도시 전반에 관한 비판이 작성된 문서이다.

10. 생활·문화

10.1.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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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단성학교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고등학교는 남고 여고 투성이며, 특성화고가 아닌 일반고의 경우 남녀공학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있는 남녀공학 고교들은 남녀분반 시스템이며, 남녀합반 고등학교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중학교마저도 남중/여중이 많고, 공학이지만 남녀분반을 시키는 중학교도 있다.[82]

수도권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교육청이 지방 못지않게 보수적이다 보니 체벌이나 강제 야간자율학습이 서울과 경기도에 비해 늦게 사라졌으며, 학생인권조례도 서울, 경기도에 비해 상당히 늦게 시행되었다.[83]

10.2. 주민 본적 구성

인천광역시의 주민 구성을 설명한 영상[84]
인천은 섬 지역인 옹진군강화군을 제외하면,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인해 수도권의 여타 도시들이 그러하듯 토박이의 수가 매우 적다.[85] 인구 구성의 대다수가 20세기 후반 정착자일수록 삼남 지방, 20세기 중반 이전의 과거에 정착한 사람일수록 이북 출신도 주를 이루고 있는데, 현재는 충청도 출신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한다. 경인방송에서는 과거 인천 인구 270만 명중 100만 명이 충청도 출신이라고 말했을 정도. 그래서 인천 연고 팀인 SSG 랜더스가 따로 있지만 한화 이글스의 인기도 높은 편이다. 인천 SSG 랜더스필드는 KIA와 함께 한화 원정경기 관중이 가장 많은 편이며 2007년 이후의 홈팀 SK 와이번스(현재 SSG 랜더스)의 인기가 수직상승 되기 전까지는 게임마다 원정팀 한화팬이 홈팀 SK팬보다 더 많이 왔다고 한다.

다만 정확히 말하자면 충청남도의 서해안 지역 출신이 대다수고 충남 내륙과 충청북도 출신은 별로 없다. 이유는 서해안은 주요 교통 축선(경부선)에서 떨어진 곳이라 육상 교통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해상으로는 교류가 용이한 곳이었고 바다로 가면 인천과 매우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삽교천방조제서해대교 건설 이전까지는 인천과 서산·당진을 오가는 배가 존재했다. # 이 영향으로 현재도 재인천서산향우회, 재인당진시민회가 존재하며 당진은 미추홀구와 자매도시 관계에 있다.

해반문화사랑회에서 발간한 <열려있는 땅 인천>이란 지역정주성보고서에서 인용한 1997, 1998년도의 인하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의 1, 2차 시민 조사에 따르면, 현재 인천의 출신별 인구분포는 인천, 충청, 서울, 경기, 전라, 경상, 강원, 이북, 제주의 순으로 각기 대략 28%, 16%, 14%, 12%, 11%, 11%, 5%, 2%, 1%로 되어있다.

인천 거주자 중 출신지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지역별 출신 인구 비율 현황
지역명 비율
수도권 52.2%
전라도 15.6%
충청도 15.4%
경상도 10.0%
강원도 5.2%
중화권[86] 1.9%
제주도 0.3%
광역지자체별 출신 인구 비율 현황
지자체명 비율 비고
인천 31.2%
서울 11.7%
충남 10.8%
경기 9.3%
전남 8.9%
전북 5.9%
강원 5.2%
경북 5.0%
충북 4.0%
경남 2.5%
해외 1.9% 화교
부산 1.5%
광주 0.8%
대구
대전 0.6%
제주 0.3%
울산 0.2%

광역자치단체 별로는 인천 토박이 - 충남 - 경기 - 전남 순이며, 지역별로는 수도권 - 전라도 - 충청도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토박이(선조 대부터 인천에서 살아온 집안 출신)와 다르게 여기서는 좁은 의미의 토박이로 인천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을 모두 일컫는 말이라는 것이다. 전라도 출신 인물들이 많다고 알려졌고, 위의 수치만을 보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서울특별시의 전라도 출신자 비율인 20.3%[87], 경기도의 16.8%보다 낮은 15.6%에 그치고 있다. 전라도 출신이 많이 산다고 일부 사람들에겐 알려져 있지만[88] 사실은 반대로 수도권에서 전라도 출신자의 비율이 가장 적은 곳이 인천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단순 출신지가 아닌 본적지로 계산해본다면 충청도 출신이 전라도 출신보다 더 많을 수 있다. 반면 경상도 출신의 비율은 수도권 중에서 독보적으로 낮은 편이다. 서울(13.8%), 경기도(11.8%)와 비교해 보면 확연히 차이가 큼을 알 수 있다.

충청도 출신 대표 인물로는 제물포고 출신 셀트리온서정진동산고 출신 한화 류현진의 아버지, 전라도 출신 대표 인물로는 길병원이길여인천시장 송영길이 있다.

인천의 20~30대는 조부, 조모 위로부터 인천에 정착한 경우 그들이 이북 출신인 경우가 많으며[89] 특히 인천에서 가까운 황해도 출신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실향민 후손의 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인천 지역의 특징이라면 특징.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 당시 북한이 입장할 때는 엄청난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불과 4년 전에 인천에서 일어났던 천안함 피격 사건연평도 포격전을 생각하면 대단히 특이한 것이다. 황해도 은율군의 민속놀이인 은율탈춤도 지금은 인천에서 전수되는데, 은율 출신 피난민들이 인천에 정착해서 그런 것이다.

선인재단백인엽, 명국환이 실향민 출신 유명인이다.

그 외 국내에서 중국인, 특히 화교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 인천이다. 중구 선린동에 차이나타운이 존재하고 인천역의 부역명이 차이나타운이며, 이곳을 중심으로 재한화교들이 모여 살고 있다. 참고로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영등포구에도 중국인들이 꽤 많이 거주한다. 다만, 선린동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인은 귀화했거나 대만 국적의 화교들이 다수인 반면 서울특별시구로구, 영등포 지역에 사는 중국인은 한중 수교 이후 건너온 중국 출신 조선족, 한족이 많다는 차이가 있다.

2010년대 이후로는 연수동 함박마을과 남동인더스파크 중심으로 주로 연수구 남동구쪽에 고려인 및 러시아 중앙아시아 계열 동포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부평역 인근에 미얀마인들이 모이기도 한다.

10.3. 음식

짜장면이 생겨난 곳이 바로 인천이다. 인천 선린동 화교들을 통해 중국식 작장면이 한국화된 음식이 바로 우리가 즐겨 먹는 지금의 짜장면이다. 대한민국 짜장면의 시초라고 알려졌으나, 실제로 시초는 아닌 공화춘이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다. 원래의 공화춘은 현재는 옛 흔적만 찾아볼 수 있고 현재 공화춘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곳은 원래 공화춘과는 연관되는 점 없이 가게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곳이다.[90] 북성동을 벗어나 조금 떨어진 신포동(도보 15분, 버스 5분 거리)쪽도 많은 중화요릿집들이 있다. 구경하느라 지쳐서 정 가까운 곳에서 먹고 싶다면 중구청 근처인 바로 옆의 선린동 쪽의 중국집들을 추천. 차이나타운 중심구역보다 약간 외곽 쪽일수록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며 신포동 쪽의 중국집들이 오히려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기 때문.

가장 중요한 사실은 차이나타운보다 유명한 화상(華商)이 도시 구석구석에 널려있다. 볶음밥은 용화반점[91], 탕수육은 연중반점[92], 짬뽕은 대명반점[93]이 알려졌다.

쫄면이 탄생한 곳이 신포국제시장이다. 신포국제시장의 '신포우리만두'라는 분식점이 원조인데[94] 맛도 괜찮은 편이다. 신포시장에서는 닭강정도 유명하며, 신포동 칼국수골목도 유명하다. 특이하게도 칼국수의 고명으로 치킨을 튀기고 남은 튀김가루도 넣어주는 곳이 있다.[95] 사람마다 취향 타는 편이니까 참고하자. 경인선 제물포역 지하상가에 가면 분식점에서 쫄우동이라는 것을 판다. 이 음식은 쫄면에 각종 양념, 고명을 얹고 우동국물을 부어 만든 것인데 면의 쫄깃함과 우동국물이 잘 어울린다.

화평동으로 가보면 일명 세숫대야 냉면을 맛볼 수 있는 골목길이 있다. 집집마다 원조 타령하며 견제하는 분위기는 아닌데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모여 입점한 이유로 보인다. 양이 정말 푸짐하고 리필에 인색하지도 않아 가끔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이 단체로 와서 1인당 세숫대야 4~5개 분량을 흡입하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인성여자고등학교 출신의 여자 농구선수 유영주정은순이 여기에서 둘이 합쳐 10대야 분량을 해치웠다는 카더라가 있다.[96]

로 유명한 소래포구와 연안부두는 횟집에서 먹기보다는 어시장에서 직접 사서 집에서 먹거나 차림비를 받는 식당에서 먹는 것이 좋다. 다만 연안부두밴댕이회, 밴딩이회무침 거리는 가격과 양이 괜찮은 편이다. 때만 잘 맞으면 2~3명 먹을 산낙지를 만 원에 살 수도 있다. 연안부두 외에 월미도 인근 북성포구나 만석부두, 화수부두 등지에서도 횟감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특히 북성포구에서는 부두에 막 접안한 낚싯배 위에서 횟감 흥정을 할 수도 있다.

인천 방언으로 물텀뱅이[97](아귀)라고 불리는 음식도 유명하다. 용현동에 물텀뱅이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맛집들이 많다. 과거 인천 어부들이 조업을 하다 이 물고기가 잡히면재수 없다고 버렸는데 물고기가 바다에 빠지면서 나는 '텀벙'소리 때문에 물텀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원래 먹지 않고 버리는 생선이었는데 중국 사람들이 해안가로 밀려온 물텀뱅이를 가져다 삶아먹는 걸 보고 대포집에서 인천항 부두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이 막걸리를 마실때 술국으로 거저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 반응이 좋자 정식 차림으로 하면서 물텀뱅이 찜이나 이를 활용한 술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외에 2000년대 들어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신포닭강정을 위시한 소위 4대 닭강정이 많이 알려졌고, 냉면도 유명하다. 화평동 냉면 골목은 90년대 학생들이 토요일 즈음에 동인천 놀러 간 김에 싼값에 배 채우는 곳이다. KBS 1TV 한국인의 밥상SBS 미운 우리 새끼[98]를 통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백령도식 냉면이 인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 그리고 인하대학교 학생들이 싼값에 안주를 해결하던 동인천 삼치거리관교동[99] 먹자골목의 밴댕이 회는 저렴한 안줏거리로 뛰어난 맛을 자랑하며 구 송도의 꽃게찜과 물텀벙이찜도 명물이다.

닭강정 외에 송림동 현대시장 앞 거리에 몰려있는 닭알탕도 별미다. 닭내장탕은 인천에 많은 영향을 준 충청도나 전라도 지역에서 제법 보이는 요리이나, 인천의 닭알탕은 일반 닭곱창 대신에 닭알집 위주이고, 다른 지역 닭내장탕에선 그냥 맛이나 보라고 1인당 1~2개 정도 넣어주는 닭 난소(일명 닭알)를 여긴 족히 1인당 예닐곱개는 돌아갈 정도로 넉넉하게 퍼부어주는 것이 특징이다. 내장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계란 노른자와는 확연히 다른 그 쫄깃쫄깃한 식감에 놀랄 것이다.

그 밖에 1970년대부터 신포동에 자리잡은 메밀국수집 '청실홍실'도 유명하다. 메밀국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서울 피맛골의 미진과 함께 수도권 메밀국수 맛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본래 러시아인이 운영하던 인천 최초의 카페인 금파가 운영되던 자리였으나, 6.25 전쟁으로 소실 후 새로 지은 건물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MBC의 주말 드라마 가화만사성을 촬영했던 인천역 인근 중화요리 전문 대형 식당인 연경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고 수도권 전철 수인선 역세권 편입까지 더하게 되며 월미도, 인천국제공항을 한꺼번에 관광할 수 있는 코스까지 마련된 것도 물론 존재하게 된다.[100]

송도국제도시가 떠오른 이후 송도를 중심으로 전문 쉐프들이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들이 생겨났다. 프랑스요리 전문점 제이라운지, 다이너 송도 등.

여담으로 인천에서는 돼지국밥이 인기가 없다. 애초에 돼지국밥은 부산과 경남 지역의 향토 음식이다. 게다가 인천은 수도권에서 경북, 부산, 경남 출신자들의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다. 요즘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많이 알려지고 인천에서도 돼지국밥을 파는 곳도 점차 생기고 있다지만 인천 토박이들 특히 에코세대, 에코붐세대의 경우는 돼지국밥이 뭔지도 모르고 먹어본 적도 없는 게 태반. 부산이나 서울[101], 대전[102]과 달리 돼지국밥을 파는 곳도 찾아 보기 힘들며, 판다 해도 돼지국밥만 따로 단독으로 파는 곳은 찾아 보기 힘들다. 대신 설렁탕이나 순댓국, 뼈해장국집은 많고 인기도 좋다. 20대쯤 나이 먹고 돼지국밥의 존재를 알게 되었거나 요즘은 유튜브같은 먹방 채널을 통해 아는 경우도 많다.

10.4. 언론

인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지방 일간지는 2곳이다. 수도권 최대 규모의 지방 일간지인 경인일보수원시에 본사를 두고 있다.[103]
인천을 주력 시청·청취권으로 두고 있는 방송사는 2곳이다.

10.5. 의료기관

지역 내 상급종합병원으로 남동구 구월동길병원(1450병상), 중구 신흥동인하대학교병원(909병상), 부평구 부평동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870병상)이 있다. 남부권에는 길병원, 원도심권에는 인하대병원, 북부권에는 인천성모병원이 있어 비교적 적절하게 분포되어 있는 상태. 그 외 대학병원급으로는 서구 심곡동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618병상)이 있으며 기타 관내 100개 이상의 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은 다음과 같다.
그 밖에 송도국제도시에 1000병상 규모의 연세대학교 송도세브란스병원, 청라국제도시에 800병상 규모의 서울아산병원청라가 각각 2026년과 2027년에 개원할 예정이다.

10.6. 방언

군이었다가 인천광역시로 편입된 곳이 아닌 지역은 노인이 된 인천 토박이조차 표준어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특별히 차이를 보이는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물포 일대나 문학동 일대의 토박이는 몇 개의 다른 어휘를 쓰는 인천 방언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주민이 간간히 사투리를 사용하던 정도다. 다만 강화군이나 옹진군의 도서 지역에는 특유의 사투리가 존재하며, 특히 북한에 가까운 교동도의 사투리나 원래 황해도였던 서해 5도의 고유 사투리는 황해도 사투리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강화권의 방언은 경기 방언, 서해 5도의 방언은 황해 방언 문서 참고. 덕적도에는 충청 방언이 섞인 말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10.7. 종교

대한민국에서 개신교가톨릭이 가장 강세인 지역이다[105].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인천의 종교 인구는 117만 명으로 개신교 64만 명, 천주교 26만 명[106], 불교 24만 명 순으로 나타났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치면 90만 명으로 불자의 3배가 넘는다. 전통적으로 불교세가 강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경상남도, 경상북도, 울산광역시경상도와는 완전히 180도 대조를 이룬다. 개신교만큼은 아니더라도 불교세가 제법 있는 서울특별시전라도에 비해 인천은 천주교와 개신교가 동시에 완전히 장악을 하고 있어서 불교세마저 전국 최하위다. 그래서 불교계에서는 인천을 불교 취약 지역으로 꼽고 있다.

가장 강한 종파는 장로회가 강세인 서울이나 경기도 등 수도권 내 다른 지역들과 달리 감리회다. 특히 강화군은 대한민국 관내 시군들 중 감리회의 교세가 가장 강한 지역이며, 성공회의 교세도 강한 지역이기도 하다.[107][108] 또 서해 최북단 백령도는 한때 섬 거주 인구의 95%가 가톨릭 신자였을 정도로[109] 천주교의 교세가 여전히 매우 강하다.[110]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 인천 지역의 선교 역사가 매우 깊다. 개신교는 1885년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가 인천에 들어와[111] 서울과 인천에서 선교 활동을 한 것이 인천 기독교 역사의 시초로 여겨진다. 가톨릭은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3년이 지난 1889년 답동성당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퍼졌다. 다만 답동성당 설립 시점보다 훨씬 이전인 1830년대 조선의 천주교 박해 시기에 인천 출신 순교자가 있다는 기록을 볼 때, 19세기 초·중반에 인천에 가톨릭이 전래됐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및 감리교회인 내리교회중구 내동에 자리해 있고 설립일이 1885년으로 [age(1885-01-0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에 한 분인 신홍식(1872 ~ 1939) 목사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후 내리의 담임목사로 부임해(1922 ~ 27) '인천내리교회역사'(1923)를 직접 기록했다. 그것이 오늘까지 중요한 사료로 전승되고 있다.

중구 답동에 소재한 답동성당천주교 인천교구주교좌 성당이자 국가 사적으로, 19세기 말에 건축된 대한민국 성당 중 가장 오래 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서울에 명동성당약현성당이 있다면, 인천에는 답동성당이 있다.

중구 내동에 소재한 성공회 서울교구 내동성당은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자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이다. 축성일은 1891년 9월 29일로 축성된지 무려 [age(1890-09-29)]년이나 된 오래된 성당이다.[112]

시민들 중에서도 기독교 인구가 많고 기독교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렇다 보니 인천에서 성소수자들이 퀴어축제를 열려다가 기독교 단체와 시민단체 등의 격렬한 반대집회로 무산되거나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113]

남동구 간석동구세군을 제외한 모든 기독교 종파[114][115]가장 교세가 약한 기독교 종파 중 하나다. 다만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를 제외하고 국내 유일의 구세군 미션스쿨인평자동차고등학교는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있다.]들이 밀집해 있다고 한다.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또한 인천의 이러한 기독교세의 강세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인데, 인천을 기반으로 둔 전/현직 대한민국 국회의원들과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종교도 절반이 개신교 아니면 천주교이며, 또한 역대 민선 인천시장들도 유일한 개신교도인 안상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원 천주교도고, 불교도 시장은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그러나 인천이 불교 취약 지역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선종 불교의 최고 권위자인 송담스님이 있는 곳이 바로 인천이기도 하다. 경허스님의 법맥을 잇는 승려로, 바로 북송담 남진제의 그 송담스님이다. 특히 그는 조계종의 타락에 크게 실망하여 조계종 탈종을 선언하여 한국 불교계의 반성을 촉구한 스님이기도 하다.

10.8. 음악

과거 인천에는 주한미군기지가 있는 부평과 번화가였던 동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음악가들이 모여들었다. 국내 양대 악기 제조사인 삼익악기, 영창악기가 모두 인천에 소재했고 콜트, 콜텍도 마찬가지로 인천에 있었다. 여기에 더해 미군기지로 인해 기지 주변인 부평 신촌은 수많은 음악인들이 전국에서 모이는 곳들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노래는 본래 작곡 목적과 달리(?!) 야구 응원가로 널리 알려진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한 개뿐이지만 유명하지 않아도 한국에서 근대적 도시로서의 역사가 가장 긴 도시들 중 한 곳 답게 나름 인천을 배경으로 한 노래들은 꽤 많은 편이다.[116] 근래 들어서는 인천 출신의 리듬파워 같은 힙합 그룹들도 탄생했다.

여전히 부평, 동인천 등에서 활동하는 로컬 뮤지션들이 많지는 않지만 남아있고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World Club Dome Korea 등의 대규모 음악 페스티벌을 2개나 개최하는 등 음악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또한 2009년부터 개최해 온 INK 콘서트(인천 케이팝 콘서트)도 계속 개최중이다.

부평구가 문체부 선정 음악도시 사업을 진행 중이고, 부평 미군기지 반환과 함께 인천 음악의 산실이자 아픈 역사의 현장인 이곳을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고 굴포천 상류를 복원할 계획이다.

10.9.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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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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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갑
배준영 허종식 윤상현 박찬대
연수 을 남동 갑 남동 을 부평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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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을 계양 갑 계양 을 서 갑
박선원 유동수 이재명 김교흥
서 을 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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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군사

대한민국광역시 중 유일하게 최전방에 위치해 있으며, 북한과 바로 맞닿아 있어 군부대들이 많이 주둔해 있다.[117] 일단 대한민국 육군 보병사단 중 최대규모인 제17보병사단이 인천에 주둔하고 있으며 인천국제공항 외곽경비도 예하 제3경비단이 담당하고 있다. 또한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국제평화지원단제9공수특전여단[118]도 주둔하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의 모항도 있었으나 평택시로 편대 배치가 이루어진 이후로는 이 부지에 인천해역방어사령부가 창설되어 지금까지 인천 연근해와 도서 지역, 인천국제공항의 방어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강화군에는 대한민국 해병대 제2해병사단 일부 부대가 있고 서구에는 사단 본부의 일부 시설이 있다.[119]

시내에 대한민국 공군 부대는 따로 없으며, 영종도에 공군미사일방어사령부 제3여단 예하 포대가 있다. 중앙방공통제센터 및 제10전투비행단에서 유사시에 대응한다.

서해 5도제6해병여단연평부대 그리고 2함대인방사 소속 조기경보전대 및 예하 레이더 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공군도 레이더 부대를 둔다. 육군은 없고 해병대가 육군 역할을 한다.

13. 행정구역

파일:인천광역시 기초자치단체.svg

13.1. 자치구 명칭 변경 및 추가

다른 광역시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인천 자치구 이름은 지역 특색을 살리지 않고 방위를 갖다붙여 지은 것이다. 그나마 과거에는 명명 당시의 인천시청(현 중구청)을 기준으로 지어져 구명과 방위가 일치했지만, 행정구역이 확장되고 시청이 이전하면서 점점 불일치 문제가 두드러졌다.[120] 특색도 없고 방위마저 불일치한 자치구 이름은 지역 주민의 소속감·정체성 형성, 자긍심 고취, 지역 홍보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다른 광역시의 자치구들과도 구별하기 어려운 탓에 외지인의 혼동까지 야기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구명 변경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편, 개명 추진에는 중구-동구 통합, 서구 분리 문제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특히 통합이 점쳐지는 중구, 동구는 기껏 명칭을 변경했는데 자치구 통합으로 명칭이 폐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동구의 명칭 변경 움직임은 교착 상태에 있다.# # # # #

결국 행정구역 개편/수도권/인천광역시에 나오듯 2022년 발표로 중구-동구를 통합하여 제물포구로 하는 걸로 정리가 됐다. 한편 영종구, 검단구도 분리 신설하면서도 서구는 개명되지 않고 유일한 방위명 구로 남게 되었다. 2026년 예정이다.

14. 여담

15. 매체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에서 봉기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언급된다. 언급으로 봐선 바르샤바 봉기 급의 규모였던 모양이다.

네이버 웹툰 하이브 1부에서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군대의 통제하에 시민 대피소가 있었고 언급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벌레들을 잘 막아내고 있는 듯했으나, 지휘관의 실책으로 인해서[123] 송도대피소도 무너지게 되고 주인공인 이은성과 그의 아내인 민영과 가까스로 만나게 되나 흑벌이 민영을 납치해가며 민영이 다시 헤어지게 되고 과장이 아내를 구하러가는 하이브의 메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16.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

16.1. 영화

16.2. 드라마

16.3. 뮤직비디오

16.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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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자매결연 지역 및 우호교류 지역

17.1. 자매결연 지역

17.2. 우호결연 지역

18.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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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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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관련 문서


[1] 2023년 12월 기준 국토교통부 국토 면적 현황[2] 2015년까지는 울산광역시의 면적이 더 컸으나, 지속된 간척 사업의 영향으로 2016년 이후로는 인천광역시의 면적이 울산광역시보다 더 넓어졌다. 2023년 7월 1일부로 경상북도 군위군대구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전국 최대 면적 광역시 타이틀을 대구광역시에 내주게 되었다.[3] 자치구 지역은 482.6㎢이며, 부속 도서(옹진군, 강화군, 영종도 등)를 제외한 본토 면적은 300㎢를 약간 넘긴다. 간척 사업으로 매년 면적이 확대되고 있다.[4] 2024년 10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5] 2024년 10월 기준[6] # 적용 환율[7] # 적용 환율[8] 지역구 23석, 비례대표 2석[9] 지역구 10석, 비례대표 2석[10] 지역구 2석[11] 지역구 1석[12] 허종식(동·미추홀 갑), 박찬대(연수 갑), 정일영(연수 을), 맹성규(남동 갑), 이훈기(남동 을), 노종면(부평 갑), 박선원(부평 을), 유동수(계양 갑), 이재명(계양 을), 김교흥(서 갑), 이용우(서 을), 모경종(서 병)[13] 배준영(중·강화·옹진), 윤상현(동·미추홀 을)[14] 김정헌(), 김찬진(), 이영훈(미추홀), 이재호(연수), 박종효(남동), 강범석(), 박용철(강화), 문경복(옹진)[15] 차준택(부평), 윤환(계양)[16] 경기도 부천시경기도 안산시 일부 지역(대부동), 서울특별시 강서구 오곡동 일부 지역도 사용한다.[17] 항구가 없는 서울특별시는 항만 기능을 인천에 의지하고 있다.[18] 인천광역시는 서해에 접해있어 애초부터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단점으로 인해 대형 선박이 접안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와 가깝다는 이유로 제2의 항구로 크게 성장했다. 구한말 개항기 때 일본이 조선 조정에 인천항 개항을 강력히 요구한 것도 이것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이 생기기 전에도 선박을 통해 서울특별시로 오는 외국인들 대부분은 인천항으로 입국했다.[19] 대구광역시와 같은 날 직할시로 승격하였지만, 승격 당시의 인구가 대구광역시는 161만, 인천광역시는 104만이었기 때문에, 국가 행정 코드 및 ISO 국제 표준 코드는 대구광역시가 인천보다 앞선다. 이 때문에 2000년 경에 인천광역시가 대구광역시의 인구를 역전하였지만, 현재까지 국가 공식 지표나 통계 발표에서 인천광역시는 대구광역시 다음 순서로 언급이 된다.[20] 문학동, 선학동, 송학동, 임학동, 청학동, 학익동 등[21] 엣지 브라우저의 로고와 비슷하다는 얘기가 있다.[22] 현재의 지명 인천의 시초가 되었다.[23] 개항 직후에는 개항장 인근에 일본 영사관이 설립됐다.[24] 일본조계지[25] 의 조계지[26] 현 중구청이 구 인천직할시 청사이다.[27] 구한말 개항 전까지 인천의 중심은 인천도호부 청사와 인천향교가 있던 관교동 일대였다. 개항 이후 개항장이 있던 제물포 일대로 도심이 넘어갔다가 시청과 인천터미널 이전을 기점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28] 현 계양1~3동으로, 오늘날의 계양구 행정구역과는 차이가 있다. 계양구의 중심지인 계산동, 작전동, 서운동은 당시에는 계양이 아닌 부평(부천군 부내면→인천(직할)시 북구)의 일부분이었다.[29] 현 시흥시 북부는 1914년까지 인천도호부의 관할지였다. 부군면 통폐합으로 부천군이 되었다가 1973년 부천군 해체로 시흥군에 이관된 이래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것이다.[30] 그렇게 되었다면 이미 2010년대 후반에 부산광역시의 인구를 추월했을 것이다.[31] 한동안 역사 속에서만 남아있다가 2018년 7월부터 인천 남구의 새 이름이 미추홀구로 정해짐으로써 다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A] 영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간저리성, □□성, 각미성, 모로성, 미사성, □사조성, 아단성, 고리성, □리성, 잡진성, 오리성, 구모성, 고모야라성, 혈□□□□성, □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성, 두노성, 비□□리성[B] 야리성, 태산한성, 소가성, 돈발성, □□□성, 루매성, 산나성, 나단성, 세성, 모루성, 우루성, 소회성, 연루성, 석지리성, 암문□성, 임성, □□□□□□□리성, 취추성, □발성, 고모루성, 윤노성, 관노성, 삼양성, 증□성, □□노성, 구천성[34] 백제를 말한다.[A] [B] [37] 김종택(1999). 고대국어 음절 말 자음의 음성 실현. 한글(245), 5-20[38] ≪국어 어휘 분화의 기제; mit계 어휘 분화의 구조도≫(난정 남 광우 박사 화갑 기념 논총, 일조각, 1980)[39] 현(縣)은 신라의 행정 구역으로 고구려 멸망 이후 설치되었다. (삼국사기 권제삼십칠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40] 邵城縣 本高句麗買召忽縣 景德王改名 今仁州[41] 삼국사기 권제삼십오 잡지 제4 지리2 신라[42] 一云慶原 買召一作彌鄒[43] 사실 이날은 음력이다. 이날을 당시 양력인 율리우스력으로 고칠 경우 율리우스력 서기 1413년 11월 8일이고 오늘날 그레고리력으로 고칠 경우 여기에 9일을 더한 1413년 11월 17일이 된다.[44] 10월 15일로 시민의 날을 옮기기 전에는 7월 1일이 시민의 날이었다. 1981년 7월 1일 경기도에서 분리돼 직할시로 승격된 것을 기념했기 때문이다.[45] 강화군교동면.[46] 1883년 개항한 인천항은 1876년 개항한 부산항보다 다소 늦게 문을 열었지만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상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서양 외국인들이 더 많았고 그 덕에 인천이 서구 문물을 먼저 받아들이게 됐다.[47] 현존하는 한국의 철도 노선들 중에서 유일하게 19세기에 부설되었다.[48] 다만 이는 기준에 따라 서울의 교동초등학교 및 미동초등학교, 또는 부산의 광일초등학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있다.[49] 묘도라는 지명은 인천 동구의 유명한 달동네인 괭이부리말의 어원이 된 섬으로, 구한말에 일본 지주들의 간척 사업으로 인하여 사라진 섬 중 하나이다.[50] 왜 서양식인가 하면, 그 이전에는 전통 방식의 성냥인 인광노가 있었기 때문이다.[51] 기사1, 기사2[52] 바닷물을 끌어와 따뜻하게 데운 목욕탕.[53] 그 다음으로 인구 유출이 심했던 곳은 미추홀구계양구이다. 특히 부평구는 인구 유출로 인구 50만 명선, 계양구도 30만 명선이 무너졌다. 이는 김포시, 시흥시, 부천시, 고양시, 파주시 등의 개발로 인근 경기도 도시로 인구가 유출되었기 때문이다.[54] 다만 인구 증가세가 서구와 연수구 송도신도시, 중구 영종도 일대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는 감소세에 들어서고 있다. 특히 부평권은 인근의 부천, 김포, 시흥, 광명 등으로 유출되어 인구 감소율이 증가하고 있다.[55] 방위상으로 봤을땐 인천의 동쪽이 아니지만 '동인천역' 상권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형성되어 있어 '동인천'이라고 한다.[56] 동인천과 남인천을 묶어 '원인천'이라 하여 같은 생활권으로 보는 관점도 있으나 그 중에서도 원도심 지역을 따로 구분할 때에는 동구 - 중구 2개 구만 거론된다. 남인천 지역의 3개 구는 각 구의 거점(미추홀구의 주안 - 관교, 남동구의 구월동, 연수구의 선학동)을 중심으로 서로 연담화가 되어있고, 동인천 지역이 워낙에 쇠퇴해 버렸기 때문에 미추홀구의 숭의동과 용현동 지역을 제외하면 동구 - 중구와의 교류는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수구의 송도국제도시는 독립된 생활권으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57] 2030 인천도시기본계획상 인천광역시의 부도심이다.[58] 강화군청은 광화문에서 약 55km 거리에 있다. 대략 포천시청, 양평군청과 비슷한 거리.[59] 광화문 - 백령도 간 거리는 직선상으로도 210km에 육박하여 부안군, 칠곡군 왜관읍과 비슷한 거리에 있고, 북한 기준으로도 원산시평양시보다 멀다.[60] 인천국제공항 바로 북쪽에 있는 삼목선착장에서 배로 2km만 들어가면 된다.[61] 대략 용인시 양지면과 비슷한 거리이다.[62] 대략 평택역과 비슷한 거리이다.[63] 김포국제공항 바로 옆의 농지이다. 장기적으로는 개발 계획이 있으나, 가까운 미래의 일은 아니다. 이곳은 현재의 공항동 지역인데 김포국제공항과 가깝고, 그린벨트 지정 지역이라 개발이 어렵다.[64] 인천을 비롯한 부천시,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등 경기 서부권의 수요 버프를 받아 홍대는 일개 대학가에서 전국구 상권으로 성장했다.[65] 참고로 도봉구청에서 중구청 본청까지는 60km이다.[66] 물론 과거에는 있었다. 672번, 6712번, 6641번 버스가 인천 일부 지역을 경유하였지만 노선이 단축되었거나 폐선되었다. 그나마 현재 가장 가까이 인천광역시에 접근하는 노선은 606번, 661번, 673번이 있는데 인천과 매우 인접한 부천시 상동이 종점이다.[67] 다만, 인천에서 서울로 직접 갈 수는 없으며 반드시 경기도 땅을 거쳐서 가야 한다. 서울 지하철 9호선이 김포공항역과 개화역 사이에서 살짝 인천광역시 영역을 스치듯이 지나간다.[68] 원래는 서울 - 인천 간 전화도 시외요금이 부과되었다. 정부가 서울 인접 위성도시 주민들의 서울전화(02) 편입 요구를 억제하고, 도시권 광역화의 현실을 반영하여 근교 주민들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1구간(인접지역) 시외통화 요금을 시내통화 수준으로 책정한 것.[69] 특히 공항철도의 개통으로 인해 검암, 청라, 영종 등에서도 서울 시계 내로 30분대에 진입이 가능해졌는데, 이는 수원시, 일산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70] 다만 인천과 울산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힘든데, 울산은 부산과는 도시권의 거리가 꽤 있어 1974년에 일찍이 경인선 광역전철을 통해 서울과 연담화되어온 인천과 달리 오랜 시간동안 따로따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상호간 인프라도 도로망을 제외하면 열악한 상태이다. 게다가 서울과 부천시를 통해 시가지가 연담화되어 있는 인천과 달리 부산과 울산 사이에는 개발 안된 시골들로 시가지가 단절되어 있다. 물론 인천에도 위성도시가 있으나, 그중 시흥시 역시도 중부와 남부 정도를 제외하면 인천보다는 서울의 영향력이 더 강한 편이다.[71] 다만 이것은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서울특별시장경기도지사만을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있다.[72] 재미있게도 일각에서 인천 대확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광명을 인천에 편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광명 서부가 인천과 긴밀하게 연계되고 행정적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73] 물론 광역시를 일개 자치구 하나로 격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현재 인천에 존재하는 자치구들이 그대로 서울의 자치구로 전환되는 편이 더 현실성 있다. 서울특별시 부평구, 서울특별시 연수구 하는 식으로... 이 경우 이름이 겹치는 중구의 경우 본토 지역은 서울특별시 제물포구, 영종도 지역은 서울특별시 영종구 등으로 개편되고, 강화군과 옹진군은 경기도로 돌아갈 것이다.[74] 정리하면 기존의 3구(동구, 중구, 서구)를 4구(제물포구, 영종구, 검단구, 서구)로 개편하는 것이다. 개편 결과를 시각화한 것으로 연합뉴스 기사 참조.[75] 낡고 산이 많아서 도로 교통이 불편한 서울에 비해 신도시 인프라를 갖추었고 송도, 청라, 영종 일대를 중심으로 서울에서 기업과 일자리가 이동하고 있다.[76] 사실 이미지가 떨어지기 전에도 그다지 마케팅을 잘했다고 보기엔 문제가 있는것이 인천시 학생들이 미추홀 참물을 부르던 멸칭이 미추홀 좀물이였다.[77] 돌려말하자면 2008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중구 본토 일대와 남구 일부(용현동, 학익동, 숭의동)의 생활하수가 정화처리되지 않고 그대로 바다에 버려졌던 것이다.[78] 1995년 준공. 1999년에 부천시 산하가 됨.[79] 2002년 11월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이전까지는 중구 항동3가에 있었다. 옛 시경 자리에는 하버파크호텔이 들어서 있다.[80] 원래 동구미추홀구 일부 지역 치안을 담당하는 동부경찰서도 있었지만 2006년 남부경찰서가 새롭게 개서하면서 중부경찰서와 통폐합됐다.[81] 2006년 중부경찰서, 동부경찰서, 연수경찰서가 분할해 관리하던 지역 치안 업무를 맡기 위해 새로이 개서됐다. 2018년 남구 명칭 변경과 함께 개칭되었다.[82] 서울과 경기도의 중학교들은 거의 대부분 3년 내내 남녀합반이다.[83] 경기도는 2011년, 서울은 2012년에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한 반면 인천은 2021년에 들어서야 시행했다.[84] 이 영상에서는 아침이 되면 서울로 출근한다.. 라고 하지만 계양구부평구, 서구 일부 지역 한정이다. 인천 타 지역은 수도권임에도 정체성이 강하다. 인천시민 70% 이상은 인천 내부에서 출퇴근한다. 이 문서에 나와 있듯 인천은 일자리가 많은 편에 속한다.[85] 옹진과 강화는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가 50% 이상 많은 편이다.[86] 중화민국 국적, 혹은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화교가 대다수로,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가진 중국인, 조선족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87] 지역구마다 편중되어있는 편이라 관악구금천구, 노원구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전라도 출신이다.[88] 이는 부평의 경우 일부 맞을 수 있는데, 중구나 동구의 경우는 택도 없는 얘기.[89] 10대에게도 실향민 조부, 조모가 있는 사람들은 잘 볼 수 있으나, 20대 - 30대 정도의 경우에는 흔하지 않다.[90] 원조 공화춘 주인의 손녀가 운영하는 가게가 따로 있다. 인천역 건너편 하인천파출소 뒤에 신승반점이 공화춘 주인의 손녀가 운영하는 식당이다.[91] 동인천역도원역 사이 배다리철교 건너편에 있다.[92] 석바위시장역 근처에 있다.[93] 예술회관역 근처에 있다.[94] 출발을 신포동에서 했기에 신포우리만두라는 상호가 붙었다. 현재도 신포국제시장 내에 본점이 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본사와 공장은 김제시에 있으며 인천광역시보다 전주시의 점포 밀집도가 더 높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신포우리만두 창업주가 전북 출신이라고 한다.[95] 동인천역 인근 우리은행 인천지점 뒤편과 신포 문화의 거리 광장(연말 크리스마스 트리 설치장소) 인근의 칼국수 골목에 이런 식당들이 있다. 여담으로 송림동 박문로터리에 있는 메밀우동 식당 '오목골'도 유명한데 여기는 메밀우동에 치킨튀김가루를 고명으로 얹어먹는다.[96] 외박 나와 이곳에서 냉면을 먹던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수병들의 목격담이다.[97] 물텀벙이라고도 한다.[98] 2018년 7월 8일, 15일 방송[99] 구월동 번화가와 예술회관 반대편에 있다. 구월동 상권과 거의 인접해 있어 남동구 구월동으로 오인할 수 있지만, 미추홀구 관교동으로 서로 다른 행정권 뿐 아니라 두 상권은 사실상 분리되어 있다.[100] 참고로 연경은 SBS런닝맨의 짜장로드, KBS 2TV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에도 소개된 것으로 나왔다.[101] 서울이야 워낙 인구도 많고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살기 때문에 돼지국밥집이 어느 정도 있다.[102] 의외겠지만 대전도 충청권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다. 그리고 충청권에서 영남 출신의 비중이 가장 높고, 그중에서도 부산/경남 출신들이 상당히 많기에 돼지국밥의 인지도도 높으며 돼지국밥집이 의외로 적지 않게 있는 편이다. 참고로 대전 다음으로 청주가 충청권에서 영남 출신의 비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여기는 대구/경북 출신이 압도적이다.[103] 물론 인천일보와 기호일보도 수원과 의정부 등에 본사를 두고 있으나 사실상 지사 성격에 가깝다.[104] 계양구 용종동에 지어진 방송통신시설(계양터미널 부지 일부)로 OBS 본사를 옮기겠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매우 오랜 기간동안 인천시와 OBS가 갈등을 벌였다. 결국 2020년 11월 방송통신 시설 사용 권한이 OBS에 낙찰되면서 2022년쯤에 인천으로 본사를 옮기는 계획을 추진한다.[105] 개신교 신자 비율 1위는 전북이고, 가톨릭 신자 비율 1위는 서울이나, 개신교+가톨릭 신자 비율은 인천이 가장 높다.[106] 천주교 인천교구의 소속 신자 수는 2015년 기준으로 49만 6,364명이다. 인천교구의 관할 지역이 인천에만 국한되지 않고 부천시김포시 전 지역, 시흥시 일부 지역과 안산시 일부 지역까지 걸쳐진 것을 감안한다면, 교구 신자의 절반은 인천시민이라고 볼 수 있다.[107] 강화군 인구의 35%는 감리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108] 대신 강화군에는 성결교회, 침례회 등은 매우 드물며, 구세군 교회는 아예 단 한 곳도 없다. 애초에 강화군 뿐 아니라 인천광역시 자체가 구세군의 교세가 매우 취약한 곳. 그래서 강화군민들은 구세군 자선냄비 자체를 아예 모르거나 생소히 여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109] 현재는 개신교 신자 수가 가톨릭 신자 수를 추월해 30% 정도가 천주교 신자 인구라고 한다. 물론 이 지역 역시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 인구를 모두 합치면 90%에 육박한다고 한다. 섬 지역에 있을 법한 민간 무속신앙이 이 섬에서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상태고, 또한 이렇다 보니 기성 종교인 불교조차도 전혀 힘을 못 쓸 정도다.[110] 백령도의 지역 행사 때 초청되는 지역 유지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옹진군수, 백령면장, 해병대 제6여단장 외에 백령성당 주임신부와 해병대 제6여단 군종 신부가 포함될 정도.[111] 이를 기념한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탑이 중구 항동 중부경찰서 옆에 있다.[112] 다만 현 성당은 50년대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성당 중 가장 오래된 성당은 강화군에 위치한 강화성당.[113] 이는 비슷하게 기독교 인구와 기독교 정신의 소유자가 많은 대전광역시도 마찬가지다. 다만 인천은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 강세를 보이는 반면 대전은 개신교가 압도적이라는 것이 차이점. 참고로 대전은 국내 최초의 지역 개신교 연합단체가 6.25 전쟁 당시 창설한 곳이기도 하다.[114] 감리회, 장로회, 침례회, 성공회, 가톨릭, 정교회, 성결교회, 오순절교회, 그리스도의 교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루터교회.[115] 애초에 구세군은 인천에서[116] 연안부두 이외에 가장 유명한 인천 배경의 가요는 박경원이 부른 <이별의 인천항> 정도가 있다. 아울러 정식 가요가 아닌 구전 가요지만 <성냥공장 아가씨>라는 노래도 인천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는데 가사가 상당히 외설적인(...) 노래다.[117] 우리나라 광역시 중 유일하게 북한과 맞닿아 있다.[118] 부천시와 면적을 걸치고 있음[119] 인천광역시와 김포시의 경계에 사단 본부가 걸쳐있다. 이로 인해 사단 본부 시설의 일부는 인천시, 일부는 김포시 관할이다. 서울특별시와 가깝고 부대 시설은 인천광역시와 김포시에 걸쳐 있으며 인천 시내 지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120] 인천 전체를 놓고 보면 동구가 서구보다 더 서쪽에 있는데, 서구는 과거 이 지역 지명인 "서곶"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북구는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일부 지역이 계양구로 분리되고, 남은 지역을 부평구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불일치 문제가 해소되었다.[121] 리포터 김석류도 인천 출신이다.[122] 그러나 자매 결연 도시는 아니다.[123] 흑벌이 바다쪽으로 돌아서 온다는 소리를 듣고 대피소를 지킬 최소한의 비호도 남겨두지 않고 가용가능한 비호와 전차를 모두 해안선에 집중시켜 놓는 미친 짓을 벌인다. 간단히 말해서 적에게 등을 대놓고 보인 셈이다.[124] #[125] 자유공원과 공원 아래 제물포 구락부, 신포동송현동 등 원도심 지역에서 주로 촬영했다. 그러나 실제 작중 배경은 부산광역시였다. 부산 올 로케이션 촬영이 힘든 여건상 부산과 분위기가 비슷하고 서울과 가까운 인천에서 찍었다고 한다.[126] 옹진군 북도면 시도에서 촬영했다.[127] 옹진군 북도면 시도에서 촬영했다.[128] 야구 드라마답게 문학야구장과 인천시내 곳곳에서 다수 장면을 촬영했다.[129] 동구 배다리 헌책방, 청라국제도시 청라호수공원 등에서 촬영했다.[130] 중구 차이나타운이 주 배경이다.[131] 동구 배다리 헌책방 근처 문구점 건물에서 촬영했는데, 최근 건물 리모델링으로 드라마 촬영 흔적은 사라졌다.[132] 인천시와 SK 와이번스 측에서 아예 제작 지원에 나섰고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을 비롯해 인천 곳곳에서 촬영이 이뤄졌다.[133] 인천광역시청인천광역시의회가 등장한다.[134] 중앙시장 일대와 동인천역 일부가 1화 촬영 때 쓰였다.[135] 인천도시공사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아서 만든 영상이다.[136] 출연진인 김구라, 염경환, 지상렬, 예린, 그리가 모두 인천 출신이라 인천패밀리라는 제목이 붙었다.[137] 1975년 인천 인구와 비슷하다.[138] 기계 도시(1977년) 편 184~185페이지 참조. 면적은 은강시가 인천보다 더 넓어서 196㎢다.[139] 정식 관계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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