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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07:45:17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목록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

1. 범례2. 야구3. 축구
3.1. 대한민국3.2. 외국
4. 농구
4.1. 국내농구4.2. NBA
5. 배구6. 미식축구7. 아이스하키8. 탁구9. e스포츠10. 번외 사례
10.1. 명선수는 명해설자도 될 수 없다
10.1.1. 반례: 명선수도 명해설자가 될 수 있다
10.2. 명선수는 명행정, 경영가도 될 수 없다
10.2.1. 반례: 명선수도 명행정, 경영가가 될 수 있다

1. 범례

초기에는 명지도자의 반열에 올랐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성적 부진을 겪어서 평가가 나빠진 경우
지도자 시절 논란 및 사건 사고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 링크는 연관 있는 논란 및 사건 사고 관련 문서.
평가가 갈리거나 초반에는 못하다가 갈수록 성적이 좋아지는 경우
선수 생활도 논란 및 사건 사고가 있는 경우
취소선 제명된 인물

2. 야구

2.1. 대한민국

2.2. 일본

2.3. 미국

2.4. 대만

2.5. 도미니카 공화국

3. 축구

3.1. 대한민국

3.2. 외국

4. 농구

4.1. 국내농구

4.2. NBA

5. 배구

6. 미식축구

7. 아이스하키

8. 탁구

9. e스포츠

10. 번외 사례

10.1. 명선수는 명해설자도 될 수 없다

유명 선수들의 은퇴 후 2번째로 많이 하는 업종이 해설 업종이다. 하지만 해설을 하면서도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우선 아주 당연한 이유로, 스포츠 선수들이 '말까지 잘하는' 축복받은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해설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물론 종목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야하겠지만) 그 본인의 지식을 얼마나 시청자들에게 조목조목 정리해서 전달하느냐이다.

이러한 언변능력은 사회생활 및 언어훈련 등을 통해서 길러야 하는데, 스포츠 스타들은 아무래도 훈련, 경기, 휴식 등 제한된 환경에서만 살아온 케이스가 많다보니 이러한 능력이 다소 아쉬운 케이스들이 많다.

이런 점에서 선수 출신 해설자들은 분명 아는건 많은데 스스로 말이 꼬여서 어버버하는 모습이 종종 나온다. 그 다음으로는 아무래도 선수 시절 본인이 뛰던 팀에 대한 애정이 있을 수밖에 없는 나머지 자신의 친정팀을 편파적으로 띄워서 해설한다거나, 해설을 못하는건 기본이고 안하고 만담을 많이 하거나 혹은 예전 종목에서는 인정받았는데 다른 종목의 이해도가 떨어져서 비판받는 사례도 있다. 그 외에 사투리 억양이 심해서 지적받는 사례도 있다.[80]

10.1.1. 반례: 명선수도 명해설자가 될 수 있다

물론 해설을 하면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해설자에게 필요한 발음의 정확함이나 공정성있는 해설이 기본으로 딸려오며, 여기에 추가적으로 선수 시절의 이해도를 바탕으로 한 해설 내용으로 호평을 받거나 경기를 관전하면서 이해하고 따라가기 위해 노력한 결과를 내는 것.

10.2. 명선수는 명행정, 경영가도 될 수 없다

유명 선수들의 은퇴 후 3번째로 많이 하는 업종이 구단 운영이나 협회 행정이나 경영 업종이다. 하지만 프런트 업무에서도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이 있다.

10.2.1. 반례: 명선수도 명행정, 경영가가 될 수 있다

물론 행정가를 하면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자세한 것은 상위 문서의 예외 문단의 프런트 문단을 참고.


[1] 더군다나 2013 시즌과 2014 시즌의 경우 전 팀인 히어로즈가 포시 - 코시까지 진출한 것에 비해서 롯데는 12 시즌까지 포시 단골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두 시즌 연속 탈락해서 더더욱 비교되었다. 그나마 2013 시즌엔 탈락팀 역대 최고 승률을 찍긴 했다.[2] 다만 서진용, 채병용에 대해서는 혹사 논란이 있었다.[3] 당장에 22시즌 키움은 박병호와 핵심선수 이탈로 인하여 가을야구는 커녕 하위권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타고라스승률 0.509, 득실차0으로 기대에 비해 엄청나게 잘한편이나 이마저도 5위에 겨우 턱걸이한 전력인데도 불구하고 정규시즌 3위로 하였고 준플레이오프에서 디펜딩 챔피언 KT와 풀세트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어서 플레이오프에 직행하여 체력적으로 상당히 유리함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1승 3패로 탈락을 하니 2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의 성과가 있음에도 LG 팬들에게 매우 좋지 못한 평을 받는 중이다.[4] 요즘은 백인천을 실시간으로 못 본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백인천을 LG암흑기를 연장한 이순철, 한화에서 세대교체를 등한시하며 암흑기의 시작을 연 김인식, 그 동안의 좋던 이미지 다 망치고 빙그레 - 한화 사상 유례없는 그룹 감사로 사실상 경질된 김성근, 당대 우승 라인업이던 SK를 본인의 엽기적인 지도 방식으로 인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망쳐놓은 염경엽, 스승으로부터 선수 혹사술을 완벽하게 배워와서 한 선수의 어깨를 제대로 갈아버린 김기태 등 여러 졸장들과 묶어서 리그 최악의 감독 몇대천왕 운운하는 경우가 많은데, 백인천은 애초에 기록한 성적도 2할대로 차원이 다르기는 하지만 단순히 성적이 바닥이고 팀 운용이 개판이라서 역대 최악의 감독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KBO 역사에 수많은 졸장들이 이름을 남겼으나, 그들 대다수는 방법이 틀렸거나 능력이 부족했을 뿐 어쨌든 고의로 팀을 망치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대놓고 팀을 망가뜨리는 것에 전념한 감독은 롯데 시절 백인천이 유일하기 때문이다.[5] 다만, 삼성은 후임 감독이 전권위임을 제대로 행사 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KIA는 2010년대 2번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후임들이 이렇게 생고생을 다 하는 걸 보면 참작의 여지가 전혀 없다.[6] 참고로, 임창용은 1999년 71경기에 등판해 무려 138이닝을 소화하며 철저히 혹사당했는데 불구하고 망가지기는 커녕 오히려 NPB, MLB를 거쳐서 40대까지 롱런했다.[7] 신용운의 경우 더욱 더 암울했는데, 이미 김성한 - 유남호 재임 시절부터 그렇게 굴려지다가 팔꿈치 인대 수술을 받아 이후에도 관리가 필요한 선수였는데도 불구하고 수술 후 재활을 하던 과정에서 4위 수성에 사활을 건 서정환이 급하게 당겨쓴 덕분에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리고 말았다.[8] 물론 대졸 선수들이 나이를 이유로 검증도 없이 배제되는 추세를 생각하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당시 3년간 뽑은 선수들이 결국 이후 주전으로 점점 성장했다. 더 심하게 망하거나 1명만 대박이고 전원 쪽박인 지명연차도 있다는 걸 고려하여야 한다.[9] 20년 만에 결승전에서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땄는데도!!![10] 사실 17 시즌은 이대호가 돌아왔을 뿐 갑자기 팀이 달라진 건 아니었고, 해외파 에이스들이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안 되는 팀이 있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여전히 시즌 전 가을야구 후보군으로 롯데를 뽑는 야구인은 정우영 해설위원 이외엔 거의 없었다.[11] 대표적으로 노타니 사건.[12] 이런 점 때문에 기자들에게는 별로 좋지 못한 평을 듣기도 한다.[13] LG 트윈스와 공동 6위.[14] 특히 김응용 전 감독은 유례없는 개막 13연패, 최악의 평균자책점, 2년 연속 최하위 등을 경험하며 감독 말년에 큰 오점을 남겼다. 김성근 역시 임기 초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마리한화 돌풍을 일으키며 재기를 노리나 싶었으나 128경기 체제가 아닌 144경기 체제에서의 그의 투수운용으로 인한 부작용, 프런트와의 지속적인 갈등 등, 잦은 논란 및 사건 사고에 오르다 2년 연속 PS 진출 실패 후 시즌 중 경질로 임기가 끝나버려 야신 이미지마저 완전히 망가진 채 사실상 은퇴해 버렸다. 선술했듯 '으리' 때문에 베테랑 은퇴 문제조차도 왕회장님 눈치 보던 빙그레 - 한화 구단 역사상 그룹감사(...) 후 경질당한 케이스는 전임 감독이 최초다.[15] 어느 정도였냐면 6월 초반 롯데 상대 위닝 이후 약 2달간 위닝시리즈가 한 차례도 없었다.[16] 물론 이용규처럼 선수 본인의 과실이 더 큰 경우도 있고, 한용덕을 떠난 선수들 중 이적 후 유의미한 대체 선수 기여도를 기록한 선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딱히 없는 것도 사실이다.[17] 첫해와 사임 직전 관중 수를 비교하면 경기 당 9000명이나 증가했다.[18] 사실 2015년 6위도 올스타전 전까진 1위를 했으나 그 뒤 DTD 시전했다[19] 2003, 2005, 2023[20] 개막 후 4월까지 1할8푼6리[21] 그래도 다카하시는 통산승률 5할은 넘었다. 그리고 선수단과의 관계도 매우 좋았다.[22] 주니치 1981~1983, 타이요 1985~1986, 닛폰햄 1989~1991[23] 다만 B클래스 시즌 중 1시즌은 5할을 넘겼고, 꼴찌는 해본 적이 없었다.[24] 그나마 최하위 치고는 겨우 5할 -9로 상당히 선방했는데, 리그 우승했던 야쿠르트, 리그 5위였던 히로시마 상대로 상대전적이 앞선 게 컸다. 대신 리그 2위였던 요코하마에 18승을 헌납했고, 팀 내적으로는 장타가 터지지 않은 게 끝까지 발목을 잡았다. 한 때 주니치는 팀 홈런 갯수로 야쿠르트의 무라카미 무네타카와 경쟁할 수준이었고 최종 62-56으로 주니치가 간신히(?) 이겼다.[25] 이렇게 만들어진 별명이 중일본제국(中日本帝国). 일제 미화같은 것이 아니고 병사들에게 밥도 제대로 안 먹이면서 정신론만 내세우는 것을 비꼬는 것이다. 누가 생각난다면 그게 맞다(...)[26] 그 경기 이후 10실점한 벌투 투수를 포함, 그 경기에 등판했던 모든 투수가 2군으로 내려갔다. 감독은 이 날 경기가 끝나도록 아무 조치도 행동도 안 하고 있었던 반면, 상대 팀 선발 트레버 바우어는 벌투한 투수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27] 2017시즌. 그래도 승률은 .514를 기록했다.[28] 말할 필요도 없이 팀의 주포였던 노무라 카츠야가 구단과의 불화로 난카이를 떠났고, 에나츠 유타카 등도 프런트의 이런 태도에 분노해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노무라를 잇는 또다른 주포 카도타 히로미츠는 1979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주루능력 상실과 동시에 시즌을 망쳐버렸다.[29] 1991년엔 팀 도루 1위에 3명의 30도루 타자를 배출했고 1992년에도 1개 차로 팀 도루 2위를 기록했다. 이 기간 중 2년 연속 도루왕이 나왔고 특히 1992년 도루왕 사사키 마코토는 수위타자까지 획득하며 사상 2번째(1번째가 바로 히로세) 수위타자+도루왕 타이틀 동시석권 기록을 가져갔다. 다만 옥에 티로 1992년엔 팀 실책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30] 이 당시에는 카쿠 타이엔이라는 등록명으로 활동했다.[31] 안산 그리너스 FC와의 리그 2라운드 경기와 서울 이랜드와의 리그 3라운드 경기에서는 상대가 두명이나 퇴장당했는데도 필드골을 단 한골도 넣지 못하였으며, 그래도 서울 이랜드전은 이기기라도 했지 안산전은 후반 추가시간에 극장골까지 먹히면서 3:2로 졌다.[32] 2015년 4월 5:1 승리 이후로 리그 한정 슈퍼매치에서 1승도 못 거두고 있고(넓게 보면 FA컵 결승전에서 1차전 2:1 승, 2차전 1:2 패로 연장전 돌입, 승부차기로 이겨서 우승한 적은 있다. 그러나 승부차기는 무승부로 기록하기에 2019년 2월 현재 기준 15경기째 승리가 없다.) 전북에게는 둘의 사이가 틀어진 2016년부터는 단 1승밖에 챙기지 못하고 있다.[33] 정확히는 시즌 도중이던 여름에 사임하였다가 금세 다시 되돌아와서 남은 시즌을 다 치룬 뒤 사퇴했다.[34] 다만, 대전에서의 실패는 본인의 지도력 문제라기보다는 문제 투성이로 아주 악명높은 구단이 더 문제였는지라 이것을 가지고 유상철을 욕하는 대전 팬은 없다.[35] 이 후 리그 2위 전북 현대 모터스가 매수 사건으로 자격이 박탈되면서 어부지리로 플레이오프에 들어가긴 했다.[36] 윤정환의 경우 원인 항목의 2-4 케이스다. 더구나 사간 도스나 세레소 오사카 등의 경우에는 딱히 내세울 성적이 없는 팀이였지만, 울산 같은 경우에는 김정남 감독 시절 아시아의 깡패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불렸고, 마침내 김호곤 감독 시절 아챔 무패 우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다. 자연히 선수들의 눈높이와 콧대 등이 높을 수밖에 없다.[37] 당시 아시아 예선은 아시아 전 지역 합동예선이었고 우승(1위)과 준우승(2위)이 월드컵 24개국 본선에 진출하였다.[38] 이회택 본인 역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었고, 프로팀 감독의 경우 1년마다 리빌딩이라는 명목으로 일부 선수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정든 제자들을 그렇게 팀에 내보는 일을 하는 게 적성에 안 맞았다는 것이 큰 이유라고 한다.[39] 사실 16강(11위)이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16강에서) 탈락한 이후에 이승우디스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그때도 그렇게 평가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40]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16강 진출은 16개팀이 진출한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본선 진출로 이미 한 번 달성한 바 있으므로 엄밀히 말하면 틀린 표현이다.[41] 사실 이건 그냥 말도 안 되는 의견이다. 당장 월드컵 우승후보급이라 불리는 8강급 국가들 독일, 브라질, 네덜란드,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잉글랜드, 프랑스, 스페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밑에 한국 제외 나머지 23개 팀만 봐도 선수빨로는 한국보다 더 나은 팀이 더 많다. 그나마 못한 팀이래봤자 같은 조에 편성될 일 없는 같은 아시아 팀들이나 아프리카 일부 팀들(같은 조였던 나이지리아는 한국보다 선수 네임밸류는 더 좋은 편이었다.)과 그리고 운도 좀 좋게 올라온 슬로베니아뉴질랜드 정도 뿐이었다. 그리스도 빅리그 선수들이 좀 있고, 그리스 리그의 명문팀 파나시나이코스 FC의 선수들이 다수 편성된 마당에 선수빨로 정말로 대한민국에 비해 떨어진다고 장담 못한다. 여유있게 이긴 덕에 결과론적으로 얕보는 것 뿐.[42] 허정무의 경우는 선수 보는 눈이나 유망주 기용 능력만큼은 허카우터라는 별명답게 엄청나지만, 훈련 방식이 구시대적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선수 육성 능력보다 운영 능력이 중시되는 국가대표에서는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클럽에서는 성적이 안좋았다.[43] 그 홍명보도 2020년대 들어서는 울산을 우승으로 이끄는 등 황선홍과 정 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44] 특히 제일 압권은 2022년 6월 15일 있었던 헝가리와의 4차전 경기.[45] 마라도나 부임 당시 35세가 넘은 베테랑이라 뺐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캄비아소랑 사네티는 해당 시즌 트레블한 인테르의 주전 멤버들이었다. 게다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마르틴 팔레르모는 사네티랑 동갑이다.[46] 이건 비단 아르헨티나 뿐만 아니라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의 우승후보급 팀이라도 이런 식으로 경기를 치른다면, 안방 챔피언 볼리비아한테 패배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 그 천하의 브라질도 199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 볼리비아 원정에서 0 : 2로 완패당한 적이 있을 정도다.[47] 따지고 보면 벤투라보다 더 심한데, 벤투라의 상대는 그나마 같은 강호인 스웨덴이었지만, 만치니의 상대는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약체 중 상약체인 북마케도니아였는데, 그런 팀한테 패하고 본선에 못 갔으니 더 그럴 수밖에 없다.[48] 사실 결과적으로 보면 푈러가 감독이던 시기가 그 이전들보다 더 암흑기라고 불리던 시기였다.[49] 16개국 본선 진출 대회[50] 만약 그가 슈틸리케를 대신하여 한국으로 오고, 월드컵에서 16강 정도의 성과만이라도 거두었다 치면 거스 히딩크 감독과 유사한 행보를 걸으면서 성공한 감독이라고 재평가되었을 것이다. 히딩크 감독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5:0으로 대파한 다음 한국으로 왔기 때문.[51] 다만, 그 때도 그다지 좋은 소리는 못 들었다.[52] 취리히는 결국 26년 만에 스위스 슈퍼 리그에서 강등되었다.[53] "카타르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어서 졌다"는 말도 안 되는 인터뷰를 했다. 참고로, 이때 손흥민은 'PL 이달의 선수상'을 타고 올 정도로 물이 올라 있었다.[54] 헌데, 훗날 '독일에서 클린스만은 하나 한 것 없이 요아힘 뢰프가 모든 걸 다 했다.'라는 헛소문이 국내에서 나돌기도 했으나, 독일 생활을 한 적이 있는 차상엽 해설위원이 이 이야기를 언론에서 본 적이 없으며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호성적과는 별개로 클럽리그에서의 부진과 더불어 지도자로써의 전술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기에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지도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55] 2018월드컵 21등, 2022월드컵 17등[56] 더군다나 이 경기는 단순한 평가전 수준이 아니라 독일도 여러모로 준비를 단단히 하였으며, 경기에는 루디 푈러, 로타어 마테우스 같은 독일 축구의 전설들까지 경기장에 참석한 독일의 입장에서는 중요하고 잔치와도 같은 경기였는데, 이렇게 대참패하면서 독일의 잔칫상은 한순간에 엎어져 버렸다.[57] 프로 코치로써 3차례나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대행을 맡았었다.[58] 참고로 플레이오프에서는 애런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제임스 메이스로 대체해서 뛰었다.[59] 그나마 현전 시절은 당시 팀이 오합지졸이었던 점도 고려해야 하지만, 기아 시절과 전랜 시절은 어떻게 봐도 도저히 좋게 봐줄래야 봐줄수가 없다.[60] 1위는 KEB하나은행에 43:82 39점차 패배, 2위는 우리은행에 90:52 38점차로 대패했는데 90점은 OK저축은행이 94실점 이전 최다 실점이라 18-19시즌 최다 실점만 묻혔다.[61] 천기범은 21-22시즌에 제대했지만 음주운전으로 강제은퇴.[62] 그조차도 성적 부진 때문에 단 한 시즌도 다 못 채우고 시즌 초에 자진사퇴 형식으로 해고되었다.[63] 이후 실제로 2022년 5월 11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 고양 캐롯 점퍼스으로 바뀌면서 최고 책임자로 임명 되었다.[64] 에인지는 다혈질인 성격이 발목을 잡은 경우. 선수 시절부터 유명했던 그 성격이 감독 시절에도 이어졌기 때문에, 피닉스 시절에는 견디다 못한 로버트 오리가 그 면전에 대고 수건을 던진 적도 있다. 오리는 말썽꾼 타입이 선수가 아닌만큼 그의 갈굼이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 사실 오리는 선수 시절 초기에는 큰 키와 뛰어난 운동능력, 다재다능함으로 기대를 받던 선수였고, 무려 바클리를 보내면서 받아온 패키지의 핵심 선수 중 하나였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커서 갈궜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 이후 오리는 트래이드된다. 선수들과 거리를 두고 운영하는 단장직은 잘하는 걸 보면, 농구를 보는 눈 자체는 매우 뛰어나지만 직접 코트에서 지시하는 감독을 하면 자기 성질을 못 이기는 성격으로 볼 수 있다.[65] 다만 이때는 필 잭슨이 트라이앵글을 굳이 쓰려는 아집이 너무 심했던지라 정상참작의 여지가 좀 있다.[66] 이것도 4위로 간신히 준플레이오프로 올라간 것이었다. 현행 준플레이오프 규정을 이 때도 적용했다면 얄짤 없이 탈락이었다.[67] 김세진 감독의 말에 의하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용병을 교체했다고는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만 났으니 문제라는 것이다.[68] 그나마 21-22 시즌은 지도자로써의 복귀가 워낙 오랜만인데다 지도자 생활 이래 처음 맡은 여자 팀에 당시 팀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했기에 김호철도 어떻게 수습하지 못했다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22-23 시즌과 23-24 시즌은 어떠한 핑계도 불가능하다.[69] 최초 통합 우승 달성은 18-19 시즌에 달성한 기록이다.[70] 다만, 챔피언결정전에 올려 놓고도 팀에 의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물러나야 했는데, 물러나는 것에 대해서도 팬들은 대부분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71] 용병인 알레나 버그스마가 부상으로 시즌 반 이상 비운 게 컸다.[72]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실제로는 해고였다고 한다.[73]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 대한항공 감독으로 있던 문용관도 비슷한 사건을 일으켰다.[74] 대표적으로 노재욱 - 최홍석 트레이드.[75] 정작 박미희도 20-21 시즌 도중 발생한 배구계 학교폭력 폭로 사건으로 순식간에 여론이 나빠졌다.[76] 사실 2023-24 시즌의 추락은 FA로 데려 온 나경복이 오자마자 상근예비역으로 입대하고 뒤이어 주전 세터 황택의가 상무 입대로 이탈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77] 1980년까지 단장 겸임.[78] 앞으로는 절대로 지도자로서 커리어를 못 쓸 정도로 먹칠을 심하게 했는데, 시즌 도중 자진 사임 했다는 것은 타 팀과의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감독이라는 뜻이고, 아무리 명문팀에서 배출된 감독이라 해도 그 능력이 무능하다는것을 스스로 입증한 꼴이 되었기 때문.[79] 단 이는 사실상 권고사직과도 같은 경질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 축구,야구와 같은 스포츠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은 감독들을 해임할때 겉으로는 사임으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질을 하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80] 이는 대체적으로 영남권 출신 해설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81] 불륜 연인 대상이 자신의 딸보다 1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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