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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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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개헌 ~ 7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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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지선 ~ 16대 대선
민주계 이회창계 민국 자민련 민정계 한미연
16대 대선 ~ 17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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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 ~ 17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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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선 ~ 18대 총선
중심 이회창계 친이 친박
18대 총선 ~ 새누리당 당명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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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3. 성향4. 역사5. 구성원
5.1. 탄핵 이후 2020년까지 명단
5.1.1. 수장5.1.2. 진박 9인회5.1.3. 삼성동계5.1.4. 그 외 간부급 인사들5.1.5. 기타 인사들
5.2. 구 친박 명단
6. 진박? 진실?
6.1. 기타 진박(?)
7. 비판8. 인식9. 문제점
9.1. 법치주의 훼손
9.1.1. 탄핵 부정
9.2. 폭력 시위/집회9.3. 가짜뉴스9.4. 맹목적인 반이명박 성향
10. 존속 여부11.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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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친박근혜계(親朴槿惠系 / Pro-Park Geunhye Faction)는 새누리당 출신 박근혜 전 대통령과 더 넓게 보면 박정희 가문의 정치적 이념 혹은 이익을 따르던 정치 세력의 준말이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생겨났으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로 세력이 커지기 시작했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이전까지는 보수정당내 가장 강력했던 계파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후 수장이던 박근혜가 구속되고 21대 총선을 거치면서 그 세가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정계 요직의 각종 보수층 인사들이 전직 대통령 예방 과정 등을 통해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고 있고 박근혜에 대해 우호적인 정치인도 여전히 존재하는지라 일각에서는 계파가 완벽하게 소멸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주장이 있으나[2] 22대 국회 시점에 와서는 유영하를 제외하면 하술되는 전원이 정계 개편으로 각자의 변화된 지형에서 다른 권력에 흡수되고 합류하거나 정계를 은퇴한 뒤 야인 신세가 되었다. 사실상 동교동계에 22대 국회에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중인 박지원이 있다고 해서 동교동계가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는 없기 때문에 현재의 친박이 여전히 정계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은 말끔히 사그라 들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대한민국의 극우 정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서 가장 높은 파이를 차지 하고 있다고 평가받으며 비판자들에겐 중도층을 등 돌리게 해 보수 몰락을 자초한 주범이라고 비판받는 세력 내지 어둠의 진보[3][4]라는 별명 역시 갖고 있다. 실제 이들은 '박근혜의 호위 무사, 내시, 십상시[5], 간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

2. 명칭

2007년에서 2013년까지 한나라당, 새누리당 시절 친박과 계파 갈등을 벌인 대표적인 계파로 친이(親李)계가 있었다. 그러다 2013년에 박근혜 정부 들어 친이계 세가 줄면서 친박과 반대되는 세력들은 친이까지 포함한 비박(非朴)계로 불렸다. 특히 비박 중에서도 박근혜를 적대시하던 사람들은 반박(反朴)이라고 불렀다.

대표적인 반박 인사로는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정두언, 김용태 전 의원 등이 있었다. 지역적으로 보면 주로 수도권이나 부울경에 반박 인사들이 많았다. 부울경 지역구의 반박 인사로는 하태경, 장제원, 김세연 의원 등이 꼽힌다.

친박계가 몇 년 동안 유지되면서 별별 '박'들이 많이 생겼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었다가 이를 벗어난 탈박(脫朴)[6], 박근혜에게 찍힌 사람들은 찍박, 친박에서 비박으로 돌아섰다 회개(?)를 하여 용서를 받고 다시 돌아온 인물을 돌박 혹은 복박(復朴)[7], 이외 친박이었다가 짤리거나 멀어진 사람을 이르는 '짤박', '멀박'[8], 친박이지만 홀대 받는 사람을 이르는 홀박(忽朴) 등이 있다. 광의의 친박계를 가리키는 범박(汎朴), 박근혜를 옹위하는 옹박(擁朴), 원조(元祖) 친박계를 가리키는 원박(元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새로 친박계에 영입된 사람들을 두고 신박(新朴)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 박 대통령이 2015년 진실한 사람이란 표현을 쓴 이후 20대 총선에선 '진실한 친박' 또는 '진짜 친박'이란 느낌의 '진박(眞朴)\'이라는 용어도 나와 각종 풍자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진박이라는 말이 등장할 때 거기에 반대되는 가짜 친박을 의미하는 가박(假朴), 박근혜를 이용만 하는 이들을 의미하는 용박(用朴) 같은 용어들이 추가되기도 하였다. # # 잘들 논다 정말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2017년 3월 10일 탄핵이 인용되면서 구심점을 상실한 쪽박이 되었다. 탄핵소추 이후 인용까지, 집회를 통해 친박을 지원하며 탄핵에 반대하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삼성동계탄기국이다.

이후 이들은 2020년까지도 각종 시위, 집회를 끈덕지게 하며 반탄핵, 반정부 운동 등을 펼쳤으나, 고작 4년만에 자기들끼리도 내부 분열이 일어나 찢어지고 가장 큰 보수정당이라 할 수 있는 자유한국당 내에선 엄연히 친박계였음에도 대중들에게 찍혀있다보니 친박색을 대놓고 드러내진 못하는 편이었다.

그나마 2019년 2.27 자유한국당 전당 대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선출되어 친박계도 친황계로 바뀌는거 아니냔 말이 나오기도 했으나, 2020년 21대 총선에서 대패하며 죄다 물갈이되었다. 심지어 극렬 친박 부대는 비례대표 득표율도 처참해서 죄다 원외정당으로 쫓겨났다.

정치인 뿐 아니라 박근혜 지지자들과 그 집단들을 가르키는 용어로도 사용중이다. 언론에서 박근혜 탄핵에 대해 반대를 표방하는 집단들과 지지자들에 대해서 친박 단체라는 표현을 하고 있고, 이들의 시위에 대해 친박 집회라고도 언급한다.

3. 성향

비박계에 비해선 아무래도 좀 우경화되었다고 평가받는다.[9] 물론 친박이라고 무조건 극우적인 인사만 있는 것은 아니고 중도적인 성향도 있긴 하겠지만 비율상 적은 편. 정치적 입지를 따지면 1990년 3당 합당 이전의 3당 중에서 상도동계를 제외한[10] 민정계[11]공화계의 후예라고 볼 수 있지만, 서청원한광옥 같은 상도동계, 동교동계 출신 인사들도 소수 있긴 했다.[12][13]

다만 이들은 계파가 이어졌다고 평가받진 않는다. 상도동계도, 민정계도, 공화계도 아닌 박정희 개인에서 갈라진 독자적인 계파에 가깝다. 2000년대 이후의 민정계와 공화계는 당적만 민주정의당과 신민주공화당이었지 군사정권에 대한 구설수가 거의 없고, 오히려 신민주계나 비박계로 갔거나 친박계 원로그룹으로 가는 등 뿔뿔히 흩어져 계파가 분해된 것에 가깝다.

친박계는 박근혜의 정계 입문 이후 2000년대에 한나라당에 입당했거나 기존의 상도동계, 민정계, 공화계 일부가 전향한 인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친이계를 포함한 비박계가 상도동계의 인물이나 이념을 계승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사실 친박은 정치적 성향상의 분류로 만든 계파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솔직히 이념보다 더 중요한 게 박근혜 일가와의 친분 및 정치적 관계였다. 때문에 친박의 정치적 포지션은 구심점인 박근혜와 그 측근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꽤나 바뀌어왔다.[14][15]

기존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박근혜에게 일정한 정치적&물질적 이득을 제공하고 충성을 다하냐 여부가 더 중요했던 것. 다만 이렇게 이념상 엇갈림이 심한 인사들은 결국 얼마 안가 박근혜와 척을 지게 되는데, 애초에 이념이 아닌 특정 인물 중심의 친X이라는 계파명을 창조한 한국 언론이 이런 사태를 야기한 주범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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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구성원

일단 친박 중에서도 정치 생명을 박근혜 대통령과 끝까지 함께 한 인물도 있고, 도중에 정권 비판을 하며 거리가 멀어진 인물도 있고 애매하게 퇴임 이후 색이 엷어진 의원도 있으므로 다 같은 친박으로만 묶기에는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은 참고하자.

친박계는 자유한국당의 모 관계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박근혜라는 왕 밑에 철저한 계급사회로 나눠져 있으며, 같은 등급들이 끼리끼리 놀며, 계급을 초월한 소통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원로그룹,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구분되며, 탈박 인사[16]친이 인사[17]는 역적, 불가촉천민 취급 당한다(...).[18] 원로그룹은 1920년대~1940년대 생 원로 고령 정치인들이고[19] 1등급은 재선~5선 그룹[20], 2등급은 초~3선 그룹,[21] 3등급은 수석비서관, 초선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22] 기사에도 대략적인 내용이 나와 있다.

2016년 기준 무소속 서청원(8선) 의원이 맏형, 비리로 구치소에 수감된 최경환(4선) 의원이 계파의 좌장으로 불린다. 다만 이들의 실제 영향력이 가장 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 친박계 중에서 당 내 서열이 가장 높고 주류이기 때문에 맏형, 좌장 취급해주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뒤늦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청와대에서 20대 총선을 앞두고 '서청원=공천 탈락'으로 밀고 가려고 했다가 김무성 대표가 옥새런을 시전하면서 겨우 막았을 정도. 참고로 서청원 의원은 20대 국회 기준으로 무려 8선 의원으로 현역 국회의원들 중 최다선이다.[23]

전직 국회의원 중 친박계의 본진인 주요 인사로는 위의 서청원 의원(8선), 최경환 의원(4선), 홍문종 의원(4선), 유기준 의원(4선), 정우택 의원(5선)[24], 원유철 의원(5선)[25], 정갑윤 의원(5선)[26], 김광림 의원(3선), 김재원 의원(3선)[27], 김선동 의원(재선)[28], 이장우 의원(재선), 김태흠 의원(3선), 김진태(재선), 정종섭 의원(초선)이 있으며, 현역 의원 중에서는 윤상현 의원(5선)[29] 등이 있다. 여성 정치인 중에서도 김정재 의원(3선)과, 신연희 前 강남구청장(재선) 등이 있으며 탄핵 표결에서도 반대표를 던지거나 상대 대선 후보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려 검찰에 입건되기도 하는 등 악명 높게 극우적인 성향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의외인 경우로 바둑기사 출신인 조훈현 의원(초선/비례대표)도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에 이름을 올리거나 표창원 리스트에 작성되거나 하는 둥 친박을 넘어 진박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30]

자유한국당 외부에서 활동하는 친박인사로는 친박계 맏형 서청원(8선), 이정현(3선) 前 대표들이 있다. 이정현은 대통령 탄핵 가결의 책임을 지고 2017년 연초에 탈당했으며, 21대 총선을 앞두고 순천시를 떠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을에 출마했으나,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후보에는 물론이고 미래통합당 박용찬 후보에도 밀려 3위로 낙선했고, 최근에 국민의힘에 복당했으며, 8회 지선에서 전라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지만 더불어민주당 김영록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또 서청원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8년 재보궐선거 패배의 여파에 따라 탈당하였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자유공화당에 들어갔고, 이후 우리공화당으로 당명 변경 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리공화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하였고[31], 현재는 우리공화당 상임고문이다.

한편 진박 감별사 조원진 의원(3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자유한국당은 보수정당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새누리당[32]에 입당해서 아예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했으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는 물론이고, 그 당시 다른 원내정당 후보들[33]에도 밀려 6위로 낙선했으며, 박사모 계열과 다투고 갈라섰고, 대한애국당을 창당해 당대표가 되었다. 조원진 계열이 빠진 새누리당은 박사모 세력(정광용, 정광택)만이 남은 원외정당이 되었다. 이후 홍문종 의원(4선)이 자유한국당을 탈당하여 조원진과 손을 잡았으나, 불화로 틀어지며 다시 갈라선 상황.[34]

은퇴한 인사로는 이한구 前 의원(4선),[35] 이완구 전 국무총리(재선), 홍사덕 前 의원(6선) 등이 주요 친박계 인사들로 꼽혔었다. 또한 참모진으로 있었던, 허태열(3선), 이병기 전 비서실장[36]이 있다. 또 동교동계의 중진이었으나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계와 연을 끊고 친박으로 넘어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비서실장이 된 한광옥 前 비서실장(4선)[37]이 있다.

20대 총선에 불출마하거나 낙선한 인사로는 김태호(4선)[38], 이인제 전 의원(6선)[39]이 있다. 이들은 원유철 의원처럼 예전에는 친박계 인사로 꼽히지 않았으나, 2015년 유승민 사태 이후 소위 신박으로 분류되었고, 희한하게도 얼마 안 되어 다 일선 정치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일단 이인제 전 의원은 여전히 친박계로서 개인 통산 세 번째 대선 출마 선언 등의 활동을 비밀리에나마 하고 있으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충청남도지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이후로는 나이도 있고 해서 정계를 사실상 은퇴하며 잊혀졌다. 김태호 전 의원은 조용히 저술 활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가 경상남도지사 전략공천을 받아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나섰지만,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이라는 변수에도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에게 패배하여 다시 잠시 야인이 되었었다. 그래도 이 쪽은 21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돌아오기는 했다.

친박 성향의 광역자치단체장들으로는 유정복인천광역시장, 서병수부산광역시장, 김관용경상북도지사가 있었으나, 김관용 지사는 3선 제한과 77세의 고령이라는 점이 있어 2018년을 끝으로 정계 은퇴 수순을 밟았고, 유정복은 시정을 통해 그럭저럭 채무삭감이라는 성과를 남긴 채 2018년에 재선에 도전했지만, 하필 7회 지선을 앞두고 같은 당 국회의원인 정태옥이부망천 발언이 터지면서 크게 패배했다.[40] 또한 서병수는 시정에 대한 부산시민의 비토가 컸고, 엘시티 비리 연관설이 도는데도 공천을 받았으나, 당연히 낙선했다.[41] 그나마 이철우 신임 경북지사와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이 당선되었지만, 이철우는 중립, 권영진은 舊 친이로 모두 친박계는 아니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정우택2022년 3월 재보궐선거에서 5선 의원에, 유정복, 김진태, 이장우, 김태흠 모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하여 각각 인천광역시장, 강원도지사, 대전광역시장, 충청남도지사에 당선되었다.

원외인사로는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있었으나, 유일호 前 부총리는 사실상 정계를 떠났다.[42]

정진석 전 원내대표도 과거엔 친박으로 꼽혔지만,[43][44] 당선 이후 계파 갈등을 봉합한다고 스스로 낀박을 자처하며 여러모로 비박계 손을 많이 들어주어 친박 지도부와 거리를 뒀다.[45] 그리고 2016년 12월 탄핵 사태에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를 사임했다. 1월 말엔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설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아예 19대 대선 후에는 친박계 인사들을 육모방망이로 두들겨야 된다고 맹비난하면서 비박으로 입장을 확실히 바꿨다.

한선교 의원의 경우는 2008년에 친박 무소속 연대을 내걸었으며, 보통 친박계로 분류되나 간혹 언론에서 비박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8.9 전당대회 당시 친박 후보로 사실상 이정현 후보가 낙점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친박계 조언을 무시하고 당대표 선거에 나간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한선교의 경우는 친박으로 분류되지만, 서청원 - 최경환 - 윤상현으로 이어지는 주류 친박은 아니다. 뒤늦게 조선일보와 모 친박 인사의 인터뷰를 통해서 밝혀진 한선교가 반쯤 버림받게 된 이유는 정윤회 문건 유출 사태에 박지만이 연관되었기 때문인데, 한선교가 박지만과 친분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최순실에게 찍혔기 때문이다. 다만 한선교 본인은 박근혜에게 여전히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와 비대위 이후 정진석과 한선교는 중립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한선교는 2017년에 중립 진영을 대표해서 원내대표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친홍+친무계 김성태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그리고 청년층에서 새누리당/박근혜의 지지가 낮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박근혜가 발탁하여 정치적으로 키운 젊은 청년 정치인들이 있었다. 손수조, 이준석 같은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소위 "박근혜 키즈"로 불렸는데, 정치적 업적이나 실질적 권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선전용 광고 모델이었다. 다만 이준석은 얼마 안 가서 가치관 등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차이를 보이며 유승민 의원을 두둔하는 등 본인 스스로 멀박이라 지칭하며 친박에서 멀어졌고, 나중에는 아예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바른정당에 합류했다.[46]

그리고 손수조의 경우는 여성이고 거기에 박근혜 키즈라고 불리니 친박계에서 대놓고 공천을 밀어줘서 20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텃밭인 부산광역시 사상구에 2번 연속 공천을 받았다. 이 때문에 첫 번째 출마 때에는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에게 부산 사상을 내주면서 문재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키워버렸고[47], 과거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었지만, 2번 연속 무공천 받은 결과[48]친 비박계 장제원 후보가 새누리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해 두 번째로 출마한 손수조를 누르고 당선되기도 했다.[49] 심지어 손수조 후보의 경우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의 적극적 지원 유세에도 불구하고 장제원 후보는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 배재정 후보에게도 밀려 3위로 낙선하며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분위기.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되면서 정치계에는 영영 발도 못 붙이게 되었다.[50]

이학재 의원도 원래는 친박계에 속했다. 당시 18대 대선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서실장도 맡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사상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자 박근혜에게서 완전히 등 돌리게 되었고 2016년 말, 새누리당에 탈당하여 바른정당에 입당했다. 그 후 친유로 전향했다.[51]

이 외에도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된 친박 인사로는 계파 보스인 박근혜 전 대통령[52]과 비선실세인 최순실김기춘 전 비서실장(3선),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초선)이 있다. 조윤선 전 장관도 친박으로 꼽혔지만, 2015년에 유승민 의원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 정무수석직에서 물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진 거 아니냐는 얘기도 들렸다. 다만 다시 신뢰를 회복했는지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김기춘 실장, 최순실, 박근혜와 같이 나란히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또한 진박 감별사를 자처한 최경환 前 경제부총리도 국가정보원 특활비 수수 의혹으로 같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기타 언급되지 않은 친박들[53]은 대체로 걍 존재감이 없거나 비주류인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부턴 친박이란 타이틀 자체가 거진 국민밉상급으로 전락해서 대놓고 친박이라고 하는 사람도 드물어졌다. '국민을 절망케 한 친박 부역자들' 옆의 글도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2016년 12월, 새누리당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이 구성되면서 사실상의 친박 명단이 공개 작성되었다.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들 중에서도 친박 성향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에서 살면서 그 폐해를 직접 당한 피해자라서 한국으로 귀환하고 나서는 강경한 반공 성향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일부는 친박과 행동을 같이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태영호와 같이 보수 성향을 보이지만 비박인 사례도 있고, 최근에는 비박의 비율이 높아졌다.

다만 이에 대해 공산주의와 반공이라기보다 북한 체제가 가지고 있는 개인 숭배의 영향이라는 해석도 있다. 최고권력자에 대하여 대를 이어 절대충성하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그 충성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일례로 극우 성향의 뉴라이트는 초창기 다수가 과거 주사파 출신으로 이루어진 사례가 있었다.

5.1. 탄핵 이후 2020년까지 명단

5.1.1. 수장

5.1.2. 진박 9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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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삼성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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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그 외 간부급 인사들

5.1.5. 기타 인사들

이하는 가나다순.
이후 국민의힘 최고위원을 지내고 있으나 경선 기간 동안은 윤석열 편을 들면서 이준석, 홍준표, 유승민과 갈등을 벌이고 있다. 2022년 3월 재보궐선거에서 중구·남구에 출마하려고 했지만 당내 무공천 결정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대신 8회 지선에서 대구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이번에도 홍준표에게 경선에서 패했다.
하지만 2024년 22대 국회의원으로 원내 진입에 성공하면서 유영하를 제외한 이곳에 등재된 모든 인사들에 비해 친박"출신"이 아닌 현역 친박으로 불릴만한 명맥을 가진 유일한 의원이 되었다. 사실상 박근혜의 말년을 담당하는 최후의 1인이 된 셈이다.

5.2. 구 친박 명단

6. 진박? 진실?

하지만 상술된 친박내 주요인사들보다도 더 친박내 영향력이 강하다고 꼽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들이다. 이 세 사람을 언론에선 일명 '문고리 (권력) 3인방'[129]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친박 중에서도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었다.

사실 이 세 명의 비서관들은 박 대통령이 98년 보궐선거 당선을 통해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시절부터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인물들로 친박계의 2인자들이라고 불리는 서청원, 최경환 의원처럼 군번을 따질 친박이 아니라, 사실상 왕과 내시, 신하의 관계에 가깝다.[130]

그리고 이들이 박근혜 당시 의원을 처음 보좌하기 시작했을 때, 당시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으로서 이 3인방의 상사였던 사람이 정윤회라고 한다. 2014년 세계일보를 기폭제로 국내를 한바탕 뒤흔들어 놓았던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도 쉽게 말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떠나 정계에는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이던 정윤회씨가 실제로는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 곁에 남아 이 문고리 3인방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장관 임명 등 박근혜 정부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아니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사건이었던 것. 참고로 정윤회는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의 비서실장이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의 전 남편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의 이름은 훗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에서 다시 회자된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언론을 화려하게 수놓은 최순실은 1970년대부터 박근혜 당시 영애와 피붙이나 다름없을 만큼 가까이 지내던 사이었으며, 최순실의 부친인 사이비 교주 최태민은 박근혜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가 암살당한 뒤 멘붕에 빠져있을 무렵 '육 여사가 자기 꿈에 나타나 당신을 도우라고 했다'는 사기꾼 스멜이 짙은 소리를 하며 가까운 사이가 되어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도 인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다만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의 관계를 탐탁치 않게 본 모양인데, 오죽하면 노태우 정권 당시 박근혜의 친동생인 박지만박근령노태우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저 사람이 누나/언니를 속이고 조종해서 악행을 저지르니 제발 누나/언니 좀 저들과 떨어트려 구해달라는 탄원서를 냈고, 군사작전을 방불게 하는 물리적 구조작전까지 실행했을 정도.

결국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하여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전 부속/수석비서관 셋은 구속되었다. 심지어 문고리 3인방 등을 비롯한 최측근들을 박근혜가 아닌 최순실이 직접 지휘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막강한 비선실세였다는 점이 드러났는데, 자세한 내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항목 참조.

6.1. 기타 진박(?)

드립 삼아 진박으로 지칭되는 경우도 있다. 정의당 소속인 노회찬 전 의원은 2016년 총선에서 자신을 대놓고 진박이라고 호칭하며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 출마하였다.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의 공약을 충실히 따른다는 뜻이 들어간 진박이다. 이 문서의 진박과는 오히려 반대 의미의 드립성 발언이다. 대통령 본인이 한 공약과 오히려 거꾸로 가는 세태 때문인지, 당시 노 의원의 진박 발언은 호응이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전 의원은 2015년 국군의 날 행사 때 우연히 박근혜 대통령의 바로 뒤에 위치해 있어서 농담삼아 친박 의원이라고 불린 적이 있다. 의전 실수는 아니고 사전에 국회의원들의 나이 및 당선 경력 등을 고려해서 자리를 배치하다보니 일어난 우연이라고 한다.

이철희 의원도 썰전에서 자신을 치는 박이란 의미로 친박이라고 한적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보이그룹 샤이니의 멤버 민호도 박근혜가 온 행사에서 옆에 있다보니 "대통령님이 한국 화장품을 쓰셔서 피부가 좋다"는 식의 아부성 멘트를 날려 한동안 친박 연예인 드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당시 청와대 비선의료사건의 핵심인물인 박채윤에게 화장품을 소개받는 자리라는 나름 주요한 장면이라 민호의 멘트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 내내 뉴스 자료영상으로 함께 출연했다.

오죽하면 JTBC 정치부 회의(2017년 2월 3일 방송)에서 해당 영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시청자들이 오해를 하지 않도록 양해해 달라고 하며 '민호 씨에게 불똥이 튈까봐 걱정스럽다'라고 따로 언급할 정도. 물론 민호 자체는 립서비스를 한 것일 확률이 높아 게이트와는 별로 관련은 없다.

7. 비판

만일 황제가 못하는 일이 없다면 옛날에 황제들이 어째서 매사를 본인들 마음대로 하지 않고 간쟁하고 보필하는 신하를 두어서 스스로를 속박했겠습니까? 예로부터 소인은 임금의 뜻을 고분고분 받들려고만 할 때 "천자가 하겠다는데 어찌하여 안 된다는 것입니까?"라고 했고, 임금이 격노했을 때는 "귀함이 천자에 이르렀는데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아첨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같이 나라를 무너뜨리는 창이자 임금을 혼미하게 만드는 짐독입니다.
- 진덕수(13세기 유학자), 『대학연의』 中
어떤 사람이 부모를 섬기는 마음으로[131] 그 군주를 섬긴다면 신하라고 할 수 있는가? 신하라고 할 수 없다. 자기 몸을 죽이면서까지 군주를 섬긴다면 신하라고 할 수 있는가? 역시 신하라고 할 수 없다. (중략) 군주가 자기를 위해 죽고 자기를 위해 망할 때, 내가 (이것에) 따라서 죽고 망한다면 이것은 사적으로 총애를 받는 자나 하는 일이다. 이것으로 신하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다. ······ 어떤 사람은, 신하는 자식과 함께 칭하여 신자(臣子)라고 하지 않는가?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 군주와 신하의 명분은 천하 국가라는 입장에서 생긴 것이다. 나에게 천하의 책임이 없다면 나는 군주와는 관계없는 사람이다. 나가서 군주를 섬길 때 천하 백성을 위한 것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군주의 노비가 된 것이고, 천하를 위한 것으로 일을 삼으면 군주의 사우(師友)인 것이다.
- 황종희(17세기 유학자), 『명이대방록』 신하론(原臣) 中
"전국위원회 무산시키고 말이야. 못하게 했잖아, 혁신을! 이제는 정말 보수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 안 되는 사람들은 육모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뽀개버려야 돼요. 동지라는 것에서 이제 적으로 간주해서 무참하게 응징해야 된다고!"
- 정진석[132]
"대한민국에서 한때 집권 여당을 하고 탄핵 과정을 거치면서 남아있던 온실속의 화초.. 웰빙 정당이라는 그런 비아냥을 들으며 남아있던 자유한국당의 잔존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아직도 현실을 모르고 있고 대중을 모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산 증거입니다."
- 전원책, 2018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한후 이부망천정태옥을 비판하며.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었고
박근혜 감옥 가고 난 뒤 슬금슬금 기어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사람들
참 가증스럽습니다.
차라리 충직스러운 이정현 의원을 본받으십시요.
다음 선거때 국민들이 반드시 그들을 심판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이런 사람 정치권에서 행세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당시 페이스북에 친박들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며 비난한 글


황종희는 당시 유교 사회에서 꽤 급진적인 성향이었지만, 본래 유교에서도 올바른 대의명분을 기준으로 해서 군주의 잘못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간언을 아끼지 않는 것이 진정한 충신의 자세라고 주장한다. 하물며 21세기인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친(親)-'을 붙여 누구와 친하다는 뜻을 드러내는 정파가 늘 그렇듯, 정파 안에서는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뭉치고, 정파 밖에 대해서는 배타성을 드러낸다는 평이 많다.

이로 인해 북한과 같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나마 차이라면 북쪽은 진짜 죽였고, 남쪽은 군부독재 시절을 지나 민주화가 이뤄졌으니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고 결국 정치 생명을 끝장내려고 갈궜다 정도가 맞는 표현이겠지만.

2000년대 중반 박근혜 의원의 신뢰를 받던 진영 의원의 경우 2000년대 후반 들어 친박이라는 울타리를 넘나드는 행보를 보이자 친박계 인사들의 지속적인 견제를 받아 2010년 탈박을 선언하기도 했으며, 2016년에는 아예 더불어민주당의 울타리조차 넘으며 당선되었다.[133] 2015년 새누리당 내 계파 갈등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은 워낙 스토리가 널리 퍼졌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 눈치 살피기만 급급한 전형적인 간신배 무리들'이라고 비판 받고 있지만 정작 본인들은 진박 감별사라는 희대의 단어까지 등장하며 대놓고 패거리 정치를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순수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다.

또한 '친박'은 박근혜가 중심인 계파인데, 박근혜는 87년 체제로 5년 단임제를 채택한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그러했듯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마자 죽은 권력이 되는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당장 이들과 대립 관계인 친이계는 중심축이던 이명박이 퇴임하면서 계파가 와해되어 사실상 비박의 일환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중이다.

즉, 아무리 막강한 대통령이라 해도 권력에 유통기한이 있으므로 새누리당은 차기에도 권력을 창출할 '미래 권력'을 준비해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후계 권력 등장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친박계가 이에 동조하며 '차기 대권 주자'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유력 정치인들을 지속적으로 견제하면서 후계 구도의 싹을 밟아버리고 있는 상태다. 이에 해당하는 인물을 들자면 김무성, 유승민 등이 있다.[134]

이 때문에 배신의 정치로 찍히며 팽당한 유승민처럼 되지 않기 위해 항상 박근혜의 의중을 헤아리고 그렇게 발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친박세력에서 뚜렷한 대권 후보가 자라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유력 대권주자로 언급되는 반기문이 친박으로 들어올 가능성도 점쳐졌으나, 단정 지을 수 없고 본인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흐지부지되었다.

따라서 친박계에 차기 주자라고 할 만한 인물은 없는데 대통령을 상왕으로 모실 생각이라도 하는 건지 오로지 탄핵된 전 대통령의중만 살피면서 당내 주자들의 싹을 밟아 쳐내는 것으로, 대안도 없이 당의 미래를 소모하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사라진다.[135]

이런 상왕전략은 이미 전두환이 일해재단국가원로자문회의 같은 방식으로 시도하려 했지만 바로 노태우에게 뒤통수를 맞고 백담사로 도망쳤으며, 상왕은커녕 노태우의 후임이자 철천치 원수인 김영삼에 의해 다시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 의원, 특히 수도권, 부울경 동부 지역 출신 의원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인데, 실제로 19대 총선에서 강남3구를 제외한 지역구 중에서 서울에서 당선된 의원은 죄다 비박계다.

친박계는 전통적인 우세 지역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을 동안에 비박계만 험지[136]에서 고생을 한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당연히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래서 비박계는 표차가 적은 수로 갈리는 수도권, 부울경 동부 지역에서 이기기 위해서 "새누리당이 좌클릭도 수용해야 한다"는 말이 많다. 서울 양천구 을 지역구의 김용태 의원, 강서구 을 김성태 의원, 경기도 여주시·양평군 정병국 의원, 경기도 포천시·가평군 김영우 의원, 부산 중구·동구 정의화 전 의장, 부산 금정구 김세연 전 의원[137] 등이 대표적이다.[138]

2016년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온 소위 "진박(眞朴) 마케팅"도 제대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오죽하면 진박 마케팅의 핵심지인 대경권 민심조차도 "저건 심했다."고 말할 정도다. 대경권 역시 비박 정치인인 권은희, 김희국, 류성걸, 유승민, 주호영 등을 숙청하면서 민심이 나빠졌고, 결국 더불어민주당대구에서 2석을 챙겨간다.

이준석 전 비대위원도 진박 마케팅"사람들에게 굉장히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면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되려는 상황에서 '진실한 사람'을 선거구호로 내거는 건 상당히 부끄러워야 할 일이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보수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는, 썰전에 출연하면서 이런 진박 마케팅을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좀비정치라고 매섭게 꾸짖었다.

결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으로 야권이 분열된 어부지리 상황 속에서도 "친박과 비박의 공천권 다툼"이라는 역대급 삽질로 인해 16년 만에 여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고 제1당 자리까지 빼앗기면서 여소야대 정국이라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만다. 이는 공천권 다툼 + 탄핵여파로 수십 석을 잃어버린 2004년 새천년민주당의 사례와도 유사하다. 더군다나 이후 총선패배 후유증을 제대로 겪는다는 점에서도 빼다 박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8월 9일에 개최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결과, 친박계가 대부분의 당직을 독식하면서 친박패권주의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입증했다. 이는 친박계가 공천학살을 통해 일찌감치 비박의 싹을 완전히 잘라 놓고 난 이후 발생한 결과였기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물론 차기 19대 대선후보급 의원들이 경선 레이스에 뛰어들기 때문에 당권 경쟁에서 개입할 이유가 없는 비박계 중진들이 전당대회를 그다지 관심 없어해서 소 닭 보듯이 생각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 때 주호영이 범비박 대표로 나갔고, 최후의 수단으로 유승민 비상대책위원회도 고려되었지만 친박이 모두 거부했다.

그리고 친박들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후 대부분은 자기 몸 사리며 나 몰라라 하곤 하였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할 땐 간쓸개라도 빼줄 것처럼 행동하던 것과는 완전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나마 개인적 인연이 있는 이정현박근혜를 지킨다고 했다.

김무성, 유승민, 정병국, 하태경비박 정치인들이 탄핵을 찬성했고 친박 정치인들이 끝까지 반대했다고 하면서 비박계 정치인들을 배신자로 매도했지만 사실 김진태, 조원진이 먼저 탄핵을 언급했고 오히려 김무성, 유승민박근혜의 사과와 사퇴를 먼저 건의했고 최후의 수단으로 탄핵을 고려했다.

원래 이러한 사람들일수록 위기가 터지면 위기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만 살겠다고 빠져나가기 급급한 경우가 많다. 능력은 부족하여 연줄로 어찌어찌 정계에 몸을 담았는데 매달고 있던 동아줄이 끊어지려고 하는데 끊어지려고 하는 동아줄을 수리할 능력은 없으니 새 동아줄을 찾기 위해 나몰라라 내빼는 셈이다.

사실 나서도 도리어 국민들 화만 돋을 뿐이라 딱히 도움도 안되어 나설 처지가 아니다. 또 친박 중에서도 초, 재선들은 딱히 충성도라고 할 게 없기도 하다. 물론 그럼에도 끝까지 친박에 남아있는 자들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친박은 처참한 종말을 맞을 확률이 높다는 게 어찌 보면 씁쓸한 대목이다.

게다가 친박으로 남은 사람은 벌써 간신배로 낙인이 찍혔다. 온갖 어불성설로 유명한 김진태는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떠들었다가 지역구인 춘천시 시민들이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LED 촛불, 또는 그것을 넘어 횃불까지 들고 김진태 의원 사무실을 돌기도 했다. #

이후 새누리당을 개혁하기 위해 영입된 인명진 비대위원장[139]에 대해 친박계의 좌장인 서청원이 2017년 1월 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거짓말쟁이 성직자인 비대위원장이야말로 악성종양의 성직자가 아닌지 되묻고 싶습니다"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그래도 바뀌겠지'라는 생각에 희망을 잃지 않았던 보수 지지자들의 얼마 안 남은 희망조차 지워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홍준표 전 경남지사에게 양박, 즉 양아치 친박이라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다. # 하지만 도리어 박사모들은 지나가는 홍준표에게 태극기를 손에 들려주고는 자기를 극찬했다는 정신승리를 시전하였다. # 이미 이들은 인지부조화에 이른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물론 박근혜가 스스로 정치계에서 물러날 때라면 친박의 소멸도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2019년 6월 기준 국정원 특활비 수뢰건으로 징역 2년 선고가 확정된, 감옥에 있는 기결수 신분임에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어쨌든 대통령이 아니면 권력의 정점에 서있다고 보기 어려운 대한민국 특성상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박근혜가 숨만 쉬고 있어도 태극기부대로 대표되는 10%지지율을 받아 지역구 몇석과 비례대표 의석으로 국회 교섭단체 의석(20석)을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도 이젠 옛날 이야기라는 것이 21대 총선으로 드러났다. 태극기부대는 비례대표조차 못 내고 원외로 쫓겨났고, 미래통합당은 완패한 데다가 당내의 친박들은 대거 낙선[140]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박근혜의 지지 호소는 중도층의 대거 이탈만 불러 왔을 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친박이 가진 최소한의 정치적 기반조차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7.1. 경기동부연합과의 유사성

박근혜 대통령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보수계의 통합진보당 같은 존재이다.
- 하태경

경기동부연합과 비교해서 국가전복과 관련 있다는 점에서 같으며, 정도로 따지면 더 심각하다. 경기동부연합도 국가를 뒤흔드는 수준까지는 가지 못했는데, 친박은 대통령 파면 사태를 이끌어서 대한민국을 어지럽혔다. 마침 친박을 비꼬는 종박이라는 용어가 종북의 대척점에 있다.

물론 친박을 옹호하는 측은 "그들도 원래는 국가를 뒤집을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국정이 멈추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경기동부연합은 작은 조직이라서 특정한 정당에 악영향을 줬지만, 친박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전까지 한국 정치권 최대 계파였다. 친박은 대통령에게 총애를 받아 여당을 집어삼키고, 대한민국 정치계에서 머조리티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친박이 저지른 폭거는 대한민국을 끝내 도탄에 빠뜨렸다. 2017년 시점에서는 직접 집회로 나서, 내란을 선동하는 듯한 모양새까지 보였다. 본인들이 그렇게 싫어하던 경기동부연합보다도 졸렬한 조직이다. 더 심각한 건, 경기동부연합은 공권력이 탄압해서 힘을 못 쓰기라도 하지 이들은 그 공권력을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두르는 지경까지 갔었다.

팀킬을 했다는 점도 경기동부연합과 비슷하다. 최대 15% 가까운 득표율을 올리며 2000~2010년대 진보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을 종북 프레임에 걸려두게 하고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계파 갈등을 청산하려고 했던 민중민주주의 계열들과 참여계, 그리고 인천연합 등의 온건 NLPDR들을 당 밖으로 쫓아내 진보정의당을 창당하게 만든 것처럼, 새누리당의 친박들도 그나마 개념 있던 보수들을 쫓아내 바른정당을 만들고 종박우파 프레임을 씌워 집권을 힘들게 만들었다.

8. 인식

일부 보수 지지층은 친박에 대해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를 몰락시킨 내부 암 덩어리[141]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반대로 박사모를 위시한 친박들은 보수우파가 무너진 건 유승민, 김무성 등 과거 박근혜의 측근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친이계와 손을 잡은 다음 박근혜 뒤통수를 때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동조했기에 그런 거라며 틈만 나면 이들을 배신자니 간신이니 하며 물어뜯고 있다.[142] 실제 극우 지지층에선 여전히 친박계를 밀어주는 것이 상당해 보수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한민국의 우파가 크게 휘청이고 위기에 처한 지금, 보수진영 내에서도 개혁과 쇄신이 절실한 상황에서 친박은 방향성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이들의 존재로 인하여 보수정당은 탄핵 정국 당시 비박계 나경원 의원의 원내대표 낙선으로 1차적인 정치 쇄신 운동에서 패배하였고[143], 이후 어쩔 수 없이 바른정당으로 분당해서 나가야만 했다. 또한 자유한국당에서 나타나는 정치 개혁에 대해서 저항, 친박이 자유한국당에서 살아남고 주도권을 거머쥐는데도 기여하였다. 다만, 이것도 오래가진 못해 2017년 12월을 기점으로 친박은 홍준표와 김무성을 수장으로 하는 친홍과 친무에게 자유한국당의 당권을 빼앗겼다.

꼰대 보수라며 비난받던 홍준표도 19대 대선 패배 이후 미국으로 휴식을 취하러 출국하기 전에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친박은 좀 빠지라"고 인터뷰를 하였고 친박을 향해 "박근혜 팔아 의원직한 사람들이고 바퀴벌레와 같은 존재"라고 맹비난하였다.[144]

낀박으로 평가받는 정진석 전 원내대표도 이들에게, "당을 TK 자민련화 시키고 보수의 존립에 방해가 되며 육모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뽀개버려야 하는 자들"이라고, 거센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듬해 비박계인 심재철 의원은 6.13선거 패배 이후 자숙 모드에 들어간 지도부를 상대로 "국정농단세력, 적폐세력이라는 프레임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던가 "탄핵의 방아쇠가 된 태블릿 PC의 진실을 밝혀어야 했다"는 등의 해묵은 주장을 반복하며, 은연중에 친박을 옹호하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물론 21대 총선에서 얄짤없이 낙선했지만.

9. 문제점

9.1. 법치주의 훼손

9.1.1. 탄핵 부정

"같은 사건을 여러차례 반추하며 재재조사에까지 이르는 것은 사회적·법적 안정성에 반하며 국가적 소모가 된다”
- 이시윤 (전 감사원장, 전 헌법재판관) #[145]
설득력이 부족한 주장에만 의존하여 탄핵을 부정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공당(公黨)의 일원이자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할 정치인들이 현재와 미래를 일절 언급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 채 '탄핵 선고'라는 흘러간 과거에만 집착하며 헌정질서를 흔들고 있다. 보수주의를 정치적 신조로 삼고 있는 친박 세력은 법치가 굳건히 유지되는 데 다른 누구보다 더 앞장섰어야 함에도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치 않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법치와 사회적 안정을 깨뜨리고 있는 건 상식인의 관점에서 용납되기 어렵다.

그들은 탄핵에 대해 탄핵부정, 탄핵무효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 이유로 탄핵 과정에 대한 납득이 가능한 논리를 언급하며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과 탄핵의 사유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친박은 지속적으로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박근혜 석방 집회 등을 벌이고 있는데 탄핵 반대와 같은 부정도 부정이지만 석방조차도 문제가 있는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탄핵에 대해 시인하고 이를 받아들인다는 입장 발표이 단 한 번도 없었다.[146]

결국 친박들의 이러한 행각은 안좋은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법적 결정에 대한 불복"을 집단적으로 행한 것이다.[147]

9.2. 폭력 시위/집회

`탄핵반대 폭력시위` 박사모회장 징역2년
탄핵 반대 집회 사망자 4명으로 늘어…1명 추가 사망(종합)
‘탄핵반대 폭력 집회’ 정광용 박사모 회장, 징역 2년 실형

친박성향의 시민들이 대규모로 집결해 형성된 박사모의 정광용 회장이 탄핵반대 폭력 집회,시위로 인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친박의 만행이 어찌나 심했는지 친이 등 일부 보수 성향의 유저들조차도 같은 보수라고 하지만 이건 박근혜 개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 불과하다며 이들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부정, 무효와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본다며 선을 그었다.

9.3. 가짜뉴스

신문·방송보다 유튜브" ... 가짜뉴스에 빠진 노인들
탄핵찬성 여론이 31%라고?...헌재 선고 앞두고 극우 ‘가짜뉴스’ 극성

친박들은 가짜뉴스의 주요 발생지이며 이것이 확산되게 하는 곳 중 하나이다.

그 유명한 박근혜 편지 사태도 친박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이면 가짜인지 진짜인지 의심을 하고 제대로 확인조차도 안하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비난을 위한 비난을 하는 점을 역이용한 것이다.

9.4. 맹목적인 반이명박 성향

'박사모'는 왜 '이명박'을 물고 늘어질까
박사모, 이명박 대통령 탈당 요구
류근일 VS 정광용, "박근혜·이명박…네가 가라 야당"
박사모, 이명박 비판 성명 "'이명박 전 시장님이 공개적으로 이재오 후보를 밀어주지 않았다면 이런 혼탁한 선거는 아예 없었을 것입니다'"

같은 보수로 묶여있기에 겉으로만 보면 그놈이 그놈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친박과 친이의 갈등은 민주당 내부의 친노와 비노, 혹은 호남계와 영남계의 갈등보다도 더 심하다. 그나마 민주당쪽은 동교동계나 친노나 적어도 민주화 운동에 자긍심이 있다는 공통분모는 가지고 있고 실제 대통령끼린 사이가 좋아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반목이 일정 이상 심해지지 않았지만, 친박과 친이는 역사 자체가 3당 합당 이전의 신민주공화당 + 민주정의당(친박) vs 통일민주당 합당파(친이), 즉 독재 세력 vs 반독재 세력으로부터 시작되었기에 반목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애당초 전자는 비슷한 애들끼리 보스, 지분 문제로 다툰 거라면[148], 후자는 아예 이념 노선부터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를 알 수 있는 사례는 18대 대선친이계였던 김덕룡문재인을 지지한 것과 18대 총선 때 친박 유권자들이 친박 공천 학살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친이 이방호 꼴보기 싫어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를 지원한 사례다.(...) 실제 강 후보가 당선도 되었다. 즉, 친이계가 꼴보기 싫어서 자기들이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원할 정도로 친박과 친이 사이에 반목이 심했던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 내내 여당 안의 야당으로 행동하여 항상 이명박 정부와 친이계랑 계속 반목하였다. 대표적으로 광우병 촛불시위, 세종시 수정안 반대, 사대강 정비 사업 반대 등과 같은 현안에서는 오히려 민주당과 동조하였을 정도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이 탄핵사유를 부정하는 것에 질문을 받자 ''본인이 뭐라고 얘기하든 국민이 다 알고 있으니까 국민 뜻을 따르면 된다.''고 조롱하는 식의 답변을 했는데 이것이 괜히 나온 발언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실제로 저런 말을 해도 납득이 가는 입장이었기 때문.

해당 발언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훨씬 이전부터 "박근혜 후보가 집권하면 최태민씨 일족이 집권하는 것 아니냐" 박정희 정권 시절, 최태민 목사가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고 국정농단을 일삼았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과 남편 정윤회가 국정 농단의 대를 잇게 될 것"이라고 하며 오래전부터 이미 최순실 사태를 정확하게 예측했었다. (중앙일보)10년 전 최순실 사태 예측한 이명박 전 대통령.

심지어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최순실 국정농단 발언 외 정윤회 발언도 끝끝내 적중했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참조. 발언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순실국정농단을 벌인 것은 사실이었다.

이렇게 박근혜의 핵심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일침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친박들이 좋게 생각할리 만무했고, 그 결과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해서도 철저한 집단 침묵이나 환영 반응으로 이어졌다.[149][150]

10. 존속 여부

사실, 친박의 미래가 밝지는 않은 게 현실이다. 당장 대중적으로 비호감도가 너무 높은데다가 지지 세력 또한 노쇠해서 새로 유입될 신규 자원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151]

게다가 친박과 비박이 손 잡고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엔 이미 탄핵이란 강을 건너 개개인이 어찌해보기엔 화해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해버렸다. 결국 한쪽이 청산되지 않는 한 싸움이 끝나지 않을 판. 게다가 정치적 구심점인 박근혜는 이미 법적 판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간 상황이니 무슨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울 근거도 없고, 차기 대권주자 역시 씨가 마른지 오래다.

그나마 당권만 잡자는 거면 2017년 이명박, 박근혜가 같이 구속된 것으로 인해 친이와 친박 서로 간에 문재인의 정치공세에 대한 희생양이라는 그들만의 공감대가 생겼고, 이후 태극기부대의 입당을 바탕으로 친박이 제1보수정당에서 일정부분 세를 다시 얻긴 했다. 2018년 범 친박 세력이 결집하여 나경원이 원내대표에 당선시키면서 친박이 아예 죽진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물론 나경원 자체는 비박계 인사였기에 이후 나경원은 친박, 비박 서로 책임 공방을 하지 말고, 당내 계파 갈등을 종결해야 한다고 호소하며 친박에 대한 청산도 어물쩡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2019년 2.27 전당대회로 친박으로 분류되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새로운 당대표가 되었는데, 첫 인선에 대해 친박 색채가 강화되었다는 평가가 많다. 친박을 계승해 본인과 가까운 친황이라는 새로운 계파를 형성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 # # 이에 자유한국당이 도로 친박당 되는 것 아니냐는 당내 우려가 나왔고, 김무성 같은 비박계들 또한 친박 중심 인사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래도 여전히 친박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강해서 최소한 21대 총선 컷오프는 피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

2020년 1월,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이 통합하면서 친박, 친황친유, 소장파, 친이, 친무, 친홍비박계와 갈등을 갖게 되지만 그래도 극우 유튜버들의 친박에 대한 지지로 인해 친박이 주도권을 갖게 되었다.[152]

그러나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대패하며 이 모든게 신기루였음이 다시 한번 밝혀졌다. 나아가 황교안을 비롯한 대부분의 친박 인사들이 낙선, 게다가 친박 계통 소수정당도 분열 후 전멸하면서 친박 계파의 미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김선교, 유상범, 정점식황교안과 가까운 친황 정치인들이 입성했다고는 했지만 과거와 달리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심지어 박정희, 박근혜의 고향인 대경권의 25개 의석 중 친박계인 국회의원 수가 추경호, 김용판, 곽상도, 윤두현, 이만희, 김석기, 김정재 외에는 없다고 봐야 한다.

친박들은 경선 과정에서 밀려나 선거에 출마조차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대구광역시 동구 을에서는 김재수농림축산식품부장관친유계강대식 전 대구 동구청장에게 밀리고 윤창중마저 낙선했다. 동구 갑에서도 당시 현역이자 전직 행정안전부장관정종섭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이진숙류성걸 전 의원에게 밀렸다. 심지어 그 보수적인 경북 북부에 속하는 군위군·의성군·청송군·영덕군에서 친박계인 천영식 청와대 비서관이 김재원의 지원을 받고도 김희국 전 의원에게 밀렸다. 기존 현역 의원이었던 김재원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을에서 친유계윤상일 전 의원에게 밀렸다.

미래통합당 내 친박 인사도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기준 20명이 채 안되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는데, 반대측에선 비박 중심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숙청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21대 총선 직후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비박주호영 후보가 낙승하였다. 게다가 주호영과 경쟁한 상대 후보였던 권영세 의원도 범친박 출신이긴 했지만 친이-친유조해진 의원과 손을 잡으며 친박 성향이 옅어지고 개혁보수를 강조하는 상황이었다.[153] 즉, 주호영이 되든 권영세가 되든 친박들의 약화는 이미 기정사실화가 된 것이다. 주호영이야 2016년 20대 총선 컷오프로 애초부터 박근혜와 껄끄러운 관계인데다 원래 친이계고, 권영세도 친박과는 이미 거리를 두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향후 국민의힘에 들어오는 청년 인재들조차도 극우적 성향보단 자유보수주의, 보수자유주의 성향의 중도우파 비박계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니 친박은 진짜 언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형국이다.

실제 몇 번의 선거를 거치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극우와 선을 긋는 행보가 이어지고 있어 친박계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어갔고 2021년 재보궐선거, 제1차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국민의힘의 주도권이 중도우파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사실상 단일대오 계파로서의 친박계는 사라졌다.

원조 친박계인 김태흠[154]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친박이라는 호칭에 대해 "계주는 감옥 갔고 총무도 없는데 친박 같은 게 어디 있습니까?"라고 답하기도 하였을 정도였다.

2021년 12월 31일, 특별사면되면서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 대구로 낙향한 뒤, 박근혜는 옥중에서도 자신을 끝까지 보필했던 법률대리인 유영하 변호사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와 함께 유영하의 후원회장을 맡기로 하면서 본인이 이루지 못했던 정치적 소망을 대신 이어갈 것이라는 발언을 남기면서 이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지역인 대구광역시를 중심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펼치게 될 가능성을 시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아 보인다.

일단 아이러니하게도 상당수의 친박 정치인들이 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윤석열이 보수정당에 합류해 대통령이 되면서 친윤에 붙은 것은 물론 앞서 20대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홍준표가 대구로의 하방을 선언하면서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었고 같은 친박이던 김재원 역시 이를 견제하면서 출마 의사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박을 내세운 둘이 끝내 단일화에 실패하였고 결국 10% 페널티를 적용한 홍준표의 득표율보다 두 사람의 득표율을 합한 득표율이 더 낮게 나오면서 사실상 친황 몰락의 전철을 한번 더 밟은 셈인데다 대구에서마저도 박근혜 마케팅의 실효성이 전무함을 재차 증명한 꼴이 되어 버렸고 기껏 야심차게 준비했던 재기의 발판마저 말끔히 소멸했다. 물론 그나마 아직까지 친박 "출신"이 아니라 온전하게 현역중에서 친박이라고 불릴만한 인물로 유영하 변호사가 제2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친이와 함께 이미 수명이 다해 친윤으로 통합되어 구분의 실효성이 없다고 보는 시선이 주류다.

11. 관련 문서


[1] 2023년 9월 박근혜 본인이 중앙일보 단독 인터뷰를 통해 정치적 친박은 이제 더는 없다며 못을 박으며 공식적으로 해체를 선언했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서 잔존하는 친박 세력들에게도 과거 인연은 과거 인연으로 지나갔으면 좋겠다며 출마를 본인과 연관짓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 또한 확실한 친박 색채 정당이었던 우리공화당 역시 2023년 10월 박근혜와 정치적 결별 선언을 하고# 친박신당이 2024년 4월 16일 해산되면서 원외에서도 완전히 사라졌다. 22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 2024년 5월 30일 역사속으로 사라진 계파가 되었다.[2] 정치 생명이 끝장난 박근혜를 버리고 동생들인 박지만이나 박근령 등의 정계 출마를 주장하는 소수의 친박 지지자들도 있으나, 알다시피 이들은 박근혜와 사이도 좋지 않고, 정치적 리더십이나 세들도 거의 없을 뿐더러 특히 남동생마약 전과횡령 의혹 등 개개인의 흠결이 많아 대부분의 친박 세력들은 여전히 박근혜를 지지하는 중이다. 가문을 떠나 박근혜 자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다만 본인들도 이미 정치적 재기는 힘들다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다. 헛된 희망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것이었다.[3] 이들이 발호할수록 오히려 민주당계 정당이 반사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친민주당계 스피커들도 이를 노리고 (표면적으로는 중립성 확보가 목적이지만) 간혹 친박 인사를 초청해서 대담하기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4] 후술할 강기갑 후보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말을 마냥 농담으로만 치부하긴 힘들다.[5] 다만 이 낱말이 신문지상에서 사용될 때는 유력한 국회의원 보좌관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예가 더 많다. 물론 누가 더 중요한지 논란으로 십상시 리스트도 오락가락한다.[6] 잘 알려진 경우로 원조 친박계 인사였다가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 연설을 끝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갈라선 유승민 의원과 "친박에 좌장은 없다."라는 말을 끝으로 짤린 김무성 전 대표가 있고, 노인 기초연금 공약 문제로 박 대통령과 갈라섰다가 20대 총선에서 컷오프 되어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가 되살아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있다.[7] 다만 사례가 드물어서 그런지 많이 쓰는 용어는 아니다.[8] 대표적으로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와 "박근혜 키즈"로 영입되었다가 바른정당에 합류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있다.[9] 특히 5.18 민주화운동 등의 민주주의 운동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비박계와 친박계의 인식차는 꽤나 갈린다. 심지어 친박 중에서도 폭동으로 왜곡하는 경우와 민주화운동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갈린다.[10] 상도동계의 수장 김영삼박정희와 평생의 앙숙이었다. 죽을 때까지 용서할 수 없는 자라며 비판했을 정도. 박정희가 사망에 이르기까지 사태가 치달은 것도 YH 사건김영삼 제명 사건이 발단이었다. 당연히 김영삼박정희의 후계자격인 박근혜도 싫어해서 칠푼이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11] 전두환 쪽은 친이랑 다소 가깝고 노태우 쪽이 맞다.[12] 물론 대부분은 자기 계파에서 입지가 좁아져 넘어온 케이스로, 안티들에겐 변절자 소리 듣긴 했다. 실제 상도동계에서 친박계로 넘어온 케이스도 서청원, 김무성 정도로 극히 소수였다. 그 중에서도 김무성은 또 나중엔 비박이 됐으니...[13] 이는 YS 시기 이상득, 김형오 등 민정계 인사 중 일부가 신민주계로 넘어온 것과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다만 비율은 이 쪽이 좀 더 많았다.[14] 당장 박근혜는 내부 반발로 실현되진 못했지만, 당시 김종인 등의 조언을 받아들여 2010년대 초반 새누리당 만들 시절 요즘 젊은이들은 보수란 단어 싫어하니 정당 이념에서 보수란 단어를 빼자는 소리까지 할 정도였다. 물론 대표적인 사법살인인 인혁당 사건에 대해 대법의 판단이 2개가 있다는둥 과거 군부독재 시절을 청산해내지 못한 듯한 언행을 보이면서 결국 일정 틀에 갇혀있다는 한계는 보여줬지만. 박근혜 편지 사태도 비슷한 케이스였다. 사실 이렇게 보면 대선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까지 포함해서 박근혜와 친박 구성원들 자체의 성향도 좀 이질적인 부분은 있었는데, 다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후 청와대에 틀어박혀 본인 스스로도 꽤나 극단화되면서 친박 자체가 급속히 우경화되긴 한다.[15] 사실 박정희도 반공 성향 정도를 빼면 보수의 핵심가치라고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유주의자라고 보긴 어려운 인물인데, 이에 대해 정두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독재와 관치경제로 망친 보수의 적이란 표현까지 했을 정도였다.[16] 유승민, 이혜훈[17] 오세훈, 정병국[18] 특히 이명박을 절대적으로 지지했던 이재오계나 상도동계를 제외하더라도 소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지기반 중 상당수를 차지했던 영포회로 불리는 영포라인들은 친박과 지역기반이 인접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때 불구대천의 원수까지 갔었다. 대표적으로 친이 내 이상득계로써 이상득 전 의원의 최측근으로 꼽히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기도 했던 이병석 전 의원이 있다. 장제원 의원도 이에 해당.[19] 김용환, 김용갑, 최병렬, 김기춘, 강창희, 현경대, 안병훈을 위시로 한 친박 7인회서청원 등이 들어간다. 참고로 명단을 잘 살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서청원과 같은 일부를 제외하면 원로그룹 전체가 아버지 박정희 정부 당시 공화당·민정당계를 통해 정치 인생을 시작한 정치인들로 구성돼 있다.[20]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 유기준, 정갑윤, 정우택, 김태흠, 이정현 같은 신한국당 - 한나라당 때 정치인 등으로 구성. 김태흠은 낮은 선수에 비해서 등급이 높았고, 이정현은 호남 출신이어서 그런지 친박계 중진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서열 취급을 받았지만, 이정현은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를 맡을 때부터 개별적으로 연락해서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할 정도로 매우 총애하는 인물이었기에 1등급으로 구분되었다.[21] 조원진, 이장우, 김진태 같은 18~19대 총선 공천을 뚫은 인물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외에도 공기업 사장으로 차출된 김학송, 함승희 같은 인사들도 2등급으로 구분.[22] 20대 총선 지역구 공천자들이거나 비례대표들. 추경호 의원, 백승주 의원, 유민봉 의원, 곽상도 의원, 정종섭 의원 같은 차관, 수석비서관 출신들.[23] 친박연대 대표이자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되어 6선을 했던 18대 총선에서 정당 운영비 32억 원을 비례 1, 3번인 양정례김노식에게 받은 것이 걸려서 당선 무효가 되어서 공식적으로는 7선이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 제명 결의안이나, 비례대표 의원의 탈당 등으로 국회의원직이 상실되면 선수는 인정되지만, 선거법 위반 당선무효는 말 그대로 당선된 사실 자체를 법률상 무효로 취급하는 것이라서 선수가 추가되지 않는다. 8선 취급을 해 주는 것은 당선무효가 될 정도의 범죄를 저질렀어도, 그렇거나 말거나 일단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정계의 인식이 담긴 것이다. 어쨌든 정계에서는 8선 의원으로 쳐 준다.[24] 원래 21대 총선에서 낙선해서 4선으로 마쳐질 뻔했으나(원래 자신의 지역구인 충청북도 상당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친황으로 분류되는 윤갑근에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고,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재배치되었지만, 현직 국회의원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청주시 상당구정정순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중도에 2022년 3월 재보궐선거로 그 자리를 되찾았고, 5선이 되었다. 심지어 박근혜 탄핵 이후엔 탈박 행보도 보이고 있다.[25] 예전에는 친박계 인사로 꼽히지 않았으나, 2015년 유승민 사태 이후 정책위 의장직에서 물러나고, 원내대표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친박 비위를 맞춰 소위 신박으로 분류되었다.[26] 홍준표 대선 후보가 복당을 승인.[27] 20대 총선김종태 의원과의 당내 경선에서 패했으나 김종태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인해 열린 2017년 4월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28] 前 원내수석부대표 겸 現 서울시당위원장이며 서울 지역구 의원들 중 유일한 친박이다.[29] 박근혜 정부 황태자로 불리며 기고만장했지만, 2016년 3월 벌어진 일명 "김무성 죽여버려" 발언 이후 탈당했고, 이후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20대 총선이 끝난 후 다시 복당되었다. 심지어 박근혜 탄핵 이후엔 탈박 행보도 보이고 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30] 조훈현을 영입한 장본인이 원유철이므로, 이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조훈현 의원의 고향이 전라남도 목포시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지만, 동교동계 출신 김원길, 한광옥, 김경재 등이 친박으로 전향했다는 사실을 따져본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원유철은 국회 기우회에 들어간 바둑 마니아이므로 이 때문에 조훈현과 인연이 닿아 영입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훈현 의원 본인은 원유철에게 은혜를 입어 국회의원이 된 것이라 원유철의 뜻을 거스르기 어렵다고 밝혔다. 원유철이 친박이라서 같이 친박인 셈. 게다가 조훈현 본인은 '바둑진흥법'이 국회입성의 목적이라고 밝힌 바가 있어 딱히 계파의 의미가 없다.[31]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려면 그 정당은 비례대표 득표율이 3%는 나와야 하는데 우리공화당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득표율이 0.74%에 그쳐 비례대표 의석수를 1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지역구조차 조원진을 비롯한 전원이 낙선하면서 우리공화당은 원외로 전락했다.[32] 박근혜 정부 당시의 새누리당과는 이름만 같은 완전 별개의 정당이다.[33]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34] 조원진홍문종에게 탈당 권유를 내렸지만, 홍문종이 끝내 탈당하지 않아서 조원진이 홍문종을 우리공화당에서 제명시켰다.[35] 특히 정계 은퇴와 동시에 20대 총선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으면서 비박계 공천학살을 주도했다. 그리고 결국 새누리당 윤리위원회는 20대 총선 참패의 책임을 물어 이한구 전 의원을 제명시켰다.[36] 비서실장으로 오기 전에 국가정보원장직 역임.[37] 국회의원직은 모두 동교동계 시절에 지냈다.[38]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경남도지사를 지냈다. 이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나고 이명박 정부에서 8.8 개각을 할 때 국무총리로 지명되기도 했었을 정도로 원래는 대표적인 친이 인사로 거론되었다. 이후 21대 총선과 22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4선이 되었다.[39] 이인제 전 의원은 사실 국민신당 이후에 여기저기 떠돈 탓에 사실상 자신의 계파를 모두 잃은 상황이었다. 원유철 의원도 원래는 이인제 의원을 따라서 국민신당 창립 멤버로 들어간 인사였다.[40] 이후 21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또다시 이부망천 디버프로 낙선하였다. 대신 2022년 8회 지선에서 인천시장 출마를 선언한 뒤 공천을 받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 선거를 통하여 당선되고 돌아오면서 사정은 나은 편에 속한다.[41] 그래도 이 쪽은 똑같이 21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한 유정복과 달리 당선에 성공하면서 중앙정치에 복귀하기는 했다. 2년 후 유정복도 인천시장으로 컴백에 성공했다.[42] 유일호 전 부총리가 20대 총선에 불출마하면서 그의 지역구인 서울 송파구 을은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옮겨간 김종인계 인사인 최명길 의원이 가져갔다. 그 최명길이 의원직을 최종적으로 잃는다고 해도 유일호가 돌아올지는 미지수. 하지만 결국 유일호는 학계로 돌아갔고, 그 지역구에 배현진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공천을 받았지만, 친문 중진인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前 사무총장에게 낙선했다. 이후 배현진은 21대 총선에서 재도전을 신청했고, 이번엔 최재성을 몰아내고 정계 진출에 성공한다.[43] 18대 국회에서도 이명박이나 친이계의 좌장 이재오 및 친이계와도 매우 친함에도 불구하고 정진석은 범친박으로 분류됐다. 다만 박근혜와 친박 뿐만 아니라, 이명박, 이재오 및 친이계랑도 친하다 보니 이명박 정부 당시 정진석이 이명박, 이재오와 박근혜의 관계를 여러 번 중재하기도 했다.[44] 그래서 그런지 한 때 친박의 좌장 중 한 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김무성도 19대 공천에서, 유승민도 20대 공천에서 탈락하고, 친이계가 19대 때 중진들만 살아남고 20대 때는 전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진석만큼은 유일하게 공천에서 탈락한 적이 한 번도 없다.[45] 이는 정진석이 박근혜 임기 이후로는 친박이 경쟁력이 없으며, 친박으로는 보수정권 재창출을 할 수 없다고 여겨 이전과 달리 비박계의 편을 들어주며 비박으로 전향한 것으로 보인다.[46] 애당초 이준석은 유승민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경향이 강했고, 이 때문에 지금은 대표적인 친유 인사가 되었다.[47] 원래 친박의 전략은 고작 손수조 이기고 올라온 초선 주제에 무슨 대권후보를 논하냐라는 일종의 논개전술이었는데, 이는 문재인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실패. 이후 문재인은 계속해서 정치적으로 성장해서 마침내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48] 장제원의 아버지인 장성만이 소유한 사학인 동서대학교가 있어서 지역 기반은 어느 정도 있었다. 18대 총선에서 무난히 당선되고 19대 총선에서는 공천에서 떨어졌고, 결국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지만, 장제원이 나왔으면 문재인이 패배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또 손수조가 공천을 받으니까 지역기반도 든든했던 장제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49] 이때 친박에 맺힌 게 많았는지, 장제원 의원은 이후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증인의 위증을 밝혀내는 등 많은 활약을 했으며, 박근혜 탄핵 국회 소추위원단 중 한 명이 되었다.[50] 이준석에 의하면 손수조는 정계를 떠나서 가정주부로 산다고 한다.[51] 다만, 유승민박근혜랑 다소 거리가 있었던 김무성이나 친이계의 좌장 이재오와 달리 친박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인지 친유계에는 친박 출신 비율이 상당히 높으며, 친무보다도 친박 출신 비율이 더 높다.[52] 국회의원으로서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4선+비례대표 1선으로 총 5선.[53] 19대 국회 당시에는 서상기(대구광역시 북구 을), 홍지만(대구광역시 달서구 갑), 김태환(경상북도 구미시 을, 허주 김윤환의 동생), 정수성(경상북도 경주시), 한기호(강원도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등의 어째 존재감 없는 친박 인사들이 있었다.[54] 15~18대까지는 지역구(대구광역시 달성군), 19대는 비례대표(새누리당 11번)[55]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제19대 대통령 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4번의 주요 선거에서 4연패 중이다. 그나마 20대 총선은 참패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이후의 대선, 지선, 21대 총선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압도적인 패배라는 점에서 더 뼈아픈 상황.[56] 화룡점정을 콕 찍은 게 21대 총선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 세력의 단합을 촉구했지만, 정작 미래통합당은 공천 신청한 박근혜의 편지를 들고 온 최측근 유영하 한 명조차 단칼에 컷오프시켰고, 마찬가지로 미래통합당 밖에서 친박 노릇을 하던 조원진, 홍문종, 김문수, 서청원 등 주요 친박 세력들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사분오열되어 각자 다른 당으로 독자 출마했지만, 죄다 낙선해버렸다.[57] 이 문서에 거론된 '친박' 인물 중 2018년 지방선거 광역단체장에 출마한 인물들은 김문수, 김태호, 박성효, 서병수, 유정복, 이인제 6명으로, 자유한국당의 '친박 청산'이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6명 다 낙선하였다. 그나마 김태호, 서병수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정복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되었다.[58] 참고로, 이 김성태김진태보다 6살 연배가 많은 사람인데도 감히 싸가지도 없이 반말을 깠다.[59] 당시 김태흠박근혜의 총애를 받았고, 2004년부터 한나라당 소속이었는데다 최경환과 가까워서 선수보다 서열이 높은 것이다.[60] 정치권에서 최측근으로 분류된다.[61] 민경욱 참고.[62] 평소 여론조사,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일 출구조사에서는 1위로 당선이 예측되었고, 당일투표함 개표의 완료까지 그가 앞섰다만, 당일투표함 개표가 완료된 이후 사전투표함의 개표가 시작되자 상대 후보였던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후보에 따라잡히다가 역전당하면서 패배했다.[63] 참고로 인천광역시 연수구 을 당협위원장직은 본인 때문에 컷오프 된 민현주가 차지했다.[64] 11, 13~16대 지역구(서울특별시 동작구 갑). 18대 비례대표(친박연대 2번), 19대와 20대 지역구(경기도 화성시 갑)[65] 2009년 5월 14일 당선무효로 의원직 상실.[66] 여담으로, 21대 총선에서는 친동생 유경준 전 통계청장이 서울특별시 강남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는데, 유경준 의원은 형과 달리 친박과는 척을 진 친유로 분류된다. 유경준도 원래는 친박이었지만, 2015년 무렵 비박으로 전향했다.[67] 전두환의 고명딸 전효선과 1985년에 청와대에서 결혼했었지만, 2005년에 이혼했다. 그리고 범 롯데가와 재혼했다.[68] 사석에서 박근혜를 누나라고 부른다는 루머가 있었을 정도이니...[69] 18대는 비례대표(한나라당 22번), 19대는 지역구(전남 순천 - 곡성), 20대도 19대처럼 지역구(전남 순천)[70] 이정현을 끝으로 인명진 비대위 체제로 전환.[71] 다만 친박 중에서 출신 지역이 전라도고, 민주정의당 간사 병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친박에서는 핵심 중 한 명이면서 상위권 서열에 위치했으나, 같은 친박 핵심들로부터는 서열상 낮게 취급받는 처지였다.[72] 당시 순천시에서 5년 9개월 동안 의원직을 지내는 동안 무능했던 것으로 악명높던 서갑원보다도 더 떨어지는 지지율을 기록했다.[73] 득표율마저 10% 미만이었다. 이 정도면 선거 비용 보전이 아예 불가능하다.[74] 솔직히 말하면 이정현이 인지도도 높고 호남을 대표하는 보수 정치인인 만큼 이 정도 득표율이라도 얻었지 다른 무명 후보였으면 이정현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더 저조하고 처참한 득표율로 낙선했을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75] 15대는 충북 진천군·괴산군, 16대는 충북 진천군·음성군·괴산군, 19대~21대는 충북 청주시 상당구. 단, 21대의 경우에는 인근 지역구로 옮겼다가 거기서 도종환에 의해 한 번 낙선했다가 청주시 상당구의 당선자였던 정정순의 선거 회계부정 의혹으로 인한 회계책임자의 당선무효형 확정으로 인해서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 재보궐선거를 치러서 중도에 국회에 복귀하였다.[76] 성균관대 - 사시/행시 - 경기고 출신의 약칭. 황교안 또한 대표적인 성시경 인사이다. 차이점은 황교안은 성시경 중 사시 인사이고, 정우택은 고시 중 행시 인사라는 것.[77] 공천이 취소된 본인의 빈자리에는 청주시 청원구에서 공천을 못 받은 자당의 서승우가 공천됐지만, 정작 그 역시 낙선하였다.[78] 김무성, 유승민, 김성태, 권성동, 정병국은 반드시 들어가고 같은 친박황교안도 배신자라고 한다.[79] 그나마 득표율이 15% 이상이어서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었다.[80] 낙선은 둘째치고 득표율도 10% 미만이어서 선거 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했다.[81] 최경환은 친이하고 거리가 먼 친박 정치인이었고 이명박 캠프에 있었는 것을 빼고는 전혀 접점이 없었으나 계파 화합 명목으로 장관직을 역임했다.[82] 2022년 9월 1일 구속되었다.[83] 홍준표는 홍문종 등 일부 친박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정태옥 등을 임명하기는 했으나 친박 정치인들의 당협위원장직 박탈에 앞장섰고, 친박을 바퀴벌레라고 비판했다.[84] 11대와 12대는 경북 영주시·영풍군·봉화군·영양군(중선거구), 14대와 15대는 강남구 을, 16대는 전국구(한나라당 2번), 18대는 대구광역시 서구.[85] 원조 친박계의 중진으로 분류됐던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서청원, 홍사덕, 김기춘, 강창희, 김용갑, 허태열 등이 있다.[86] 황교안유승민이 언급한 새로운보수당 출신 당직자 고용 계승을 거부하고 친유 정치인들인 민현주, 정병국을 컷오프하고 민경욱, 김선교를 공천하면서 유승민을 견제했다.[87] 김태호군수의 경남지사 출마(사직)으로 인해서 열린 2004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되어 재선. 이후 2008년 1월, 18대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직.[88] 신성범의 후원자는 김무성이었고, 강석진의 후원자는 최경환이었다고 한다.[89] 다만, 1981년에 중령으로 일찌감치 예편하고 정치권으로 차출되었다. 또한 근무지가 수도권이 아니었기에 12.12 군사반란5.18 민주화운동과는 관련이 없다.[90] 고희선 의원이 사망하고 1년 정도가 지나 농협에 인수되었다.[91] 아들의 화천대유 논란으로 인해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92] MBC 기자 시절에는 스포츠 국장과 계열사 사장을 지냈다.[93]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새누리당 이종훈(비박 소장파)이 박근혜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는 이유로 새누리당 지도부가 이종훈을 컷오프하고 권혁세를 공천했다.[94] 권혁세를 꺾고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후보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의 지역구에서 재선을 노렸지만, 자신이 당선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보다 득표율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미래통합당 김은혜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95] 여담으로 이종훈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미래통합당 예비 후보로 공천 신청을 했지만 김은혜에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는데, 이종훈과 그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던 이기인은 공천 결과에 승복하고 김은혜를 지원했다.[96] 2003년 당선 이후부터 갈등이 시작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입당을 여러번 제안했으나 끝까지 거부했다.[97] 15대부터 17대 총선까지 3연속 당선된 권오을은 이후 번번히 공천에서 물먹고 바른미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98] 당시 기소한 검사가 윤석열이다. 이때문에 윤석열과는 원수져서 대선과 지선 때에도 다른 TK 의원들과는 달리 홍준표를 지지했으며 3차 전당대회에서 TK 의원들이 나경원의 당대표 출마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 단체로 용산의 눈치를 볼 때에도 유일하게 이 성명에 참여하지 않아 간접적으로 용산에 반기를 들었다. 본인 말로는 대구시당위원장이라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지만...[99] 2017년 2월 9일 당선무효.[100] 경남도의원을 1998~2002년에, 거창군수를 2002~2004년에 지내기도 했다. 이 사람이 거창군수직을 사퇴하면서 열린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인물이 바로 또다른 친박계 정치인인 강석진.[101] 시장 전임자인 김관용은 1995~2006년에 3선 시장을 지내고 경북도지사로 옮겨가서 3선을 하고서 은퇴했다.[102] 정작 그 후임자도 평판이 나빴고, 결국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구미시장은 다시 보수정당 소속 시장이 차지하였다.[103] 2002~2014년 재임.[104] 다만, 백승주는 뒤늦게 합류하면서 당시 국조위 간사로 활동하던 이완영에 비해 존재감이 가려져서 그렇지 이 때 노승일에게 멋대로 최순실 PC에 있던 문서를 복사해 훔쳐갔다고 시비건 적이 있었다.[105] 그리고 이 여자가 강남구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자행했던 온갖 어그로 덕분에 민선 최초 더불어민주당 소속 강남구청장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것도 서울특별시에서 보수세가 상당히 강한 곳 중 한 곳으로 유명한 강남구에서 말이다.[106]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 당시 김포시는 아직 이었고,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해였던 1998년에 로 승격하였다.[107] 현직 인천광역시장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송영길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꺾고 당선되었다.[108] 평소 여론조사에서는 상대 후보였던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후보가 자유한국당 유정복 후보를 근소하게 앞섰지만,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하루 전,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의 이부망천 디버프가 터졌고, 그로 인해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후보에 20% 정도의 차이로 대패했다.[109] 이완영은 2019년 6월에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고, 최교일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110] 정확히는 우병우의 처가 쪽과 관련이 있고, 이 고령군 향우회를 만드는데 주도한 이가 우병우의 장인 이상달이다. 현재는 우병우의 장모 김장자가 고령군 향우회의 리더를 맡고 있다.[111] 그나마 실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된 최경환이우현과는 달리 집행유예라서 다행히 수감은 되지 않았다.[112] 다만 출마 여부는 본인의 의사에 달렸다.[113] 남양주시 前 시의장 공명식으로부터 7억원의 공천헌금 수수.[114] 출구조사에서는 1위를 기록했지만, 개표 결과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후보에 역전당하면서 패배했다.[115] 의외로 최경환은 꼬장꼬장한 이한구를 불신했다고 한다. 사실상 청와대 낙하산 인사.[116] 참고로 정종섭유승민류성걸이랑 고등학교 동창이라 원래부터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여서 화제가 되었다. 또한 유승민은 한 때 친박에 속했고, 류성걸친이 정치인이었다.[117] 총선 공천 결과에 불복해 미래통합당을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후 미래통합당의 후신인 국민의힘에 복당했다.[118] 그나마 득표율이 15% 이상이어서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었다.[119] 같은 당의 정진석 의원도 차명진 의원이 페이스북을 쓴 다음 날에 "세월호 그만 좀 우려 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라는 글을 써서 논란이 되었으나, 정진석의 경우에는 그래도 페이스북 글에 '오늘 아침에 받은 메시지이다'라는 인용문구를 추가하였으며, "유가족에게 한 말이 아닌 정치권을 향한 일반적인 말이니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며 "세월호 기일인데 유가족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고 해명했다. 그러나 차명진은 세월호 유가족들과 세월호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까지 자식들 팔아 돈 챙겨먹은 식으로 모욕을 한 것이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120] 차명진/일생 참고.[121] 이 사건 자체는 안태근의 성추행은 인정되었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인한 처벌 없음, 인사보복은 무혐의로 떴다.[122] 친이 비례대표[123] 김무성이 새누리당 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를 일으켜 공천 탈락에서 구제한 건 친이계의 좌장 이재오와 친유계의 수장 유승민이었지(다만, 친이계인 주호영까지 살리려고 했으나, 주호영을 구제하는 데는 실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누리당 후보[155]가 낙선하고 주호영만큼은 살아 돌아오긴 했지만.), 친무계는 김무성이 옥새런을 하기 전에도 거의 대부분 무사히 후보 공천을 받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만 이것도 속사정을 알고 보면 이재오와 유승민 쳐내는데 당 대표인 김무성이 협조해라 아니면 친무계까지 날려버릴 수 있다는 친박계의 협박에 당했고 당내 줄다리기 속 일종의 눈치 싸움 결과물이였다고 한다.[124] 애초에 박근혜의 부친인 박정희와 김을동의 부친인 김두한의 관계도 미묘하게 나빴다.[125] 자신이 참모총장을 지내던 시절의 수석부관이었으나 정권교체 때문에 밀려나 모 사단의 행정부사단장을 지내며 전역을 기다리던 말년 대령 고명헌을 임기제 준장으로 진급시켜 말이 많았다는 후문. 심지어 고명헌이 진급하던 시기에 동기들은 군단장 보직을 수행하고 있었다.[126]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서초구 갑에 비하면 보수세가 훨씬 약하다. 그 외에도 기존 지역구에서 컷오프되었고 새로운 지역구에 공천을 받았으니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 차명진 세월호 유가족 망언 파동(이로 인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 의석수가 최소 30석이 날라갔다고 봐야 한다.)이 터졌고,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후보와 무소속 민병두 후보의 단일화로 인해 훨씬 더 불리해졌다. 한편, 대부분의 정치평론가들은 차명진 세월호 유가족 망언 파동과 장경태-민병두 단일화 중 하나만 없었어도 이혜훈이 당선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127] 원래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들 중 가장 먼저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16명에 속했지만,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128] 원래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출마하려고 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고, 결국 새누리당을 탈당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자신의 지역구에 공천을 받았고, 당선되었다.[129] 문고리를 잡아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이 세 사람을 통해서만 대통령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해서 나온 표현이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내 주요 인사들조차도 대통령과 연락을 쉽게 할 수 없었던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어. 심지어 자신의 손으로 뽑은, 정부 내부의 국무총리마저 못 믿었는지 법적으로 대면할 수 밖에 없는 국무회의 시간을 제외하면 쉽게 만날 수 없었다.[130] 사실 서청원 의원은 본래가 YS가 데려온 상도동계 출신으로 공화당 - 민정당계 인사는 아니었다. 그리고 한때는 박 대통령보다 앞서서 한나라당 대표도 지냈으며, 16대 국회 전반기 때는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장으로 옹립하려고 시도했던 인물로 박 대통령보다도 정치적 영향력이 컸었다. 그리고 최경환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정계에 입문시킨 인사가 아니라 이회창 총재가 데려온 사람이었다.[131] '부모를 섬기는 마음'의 원문은 '형태가 없는데도 보고, 소리가 없는데도 듣고서'이다.[132] 정진석도 같은 자유한국당 의원인데다, 2016년 이전까진 범 친박계로 분류되던 인사였음에도 이런 비판을 할 정도니, 당시 친박이 얼마나 날뛰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정작 2022년-2023년 현재는 친윤 쿠데타에 부역해 비대위원장에 오르면서 당을 통째로 말아잡쉈다.[133]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무렵 당시 진영 의원은 새누리당 후보로 자신의 지역구에서 4선을 시도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했고, 결국 새누리당을 탈당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자신의 지역구에 후보 공천을 받았고, 당선되었다.[134] 다만 이는 박근혜의 정치적 입지에 대한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내용이다. 그나마 친박계에서 차기 주자로 내세울 인물이라도 있다면 이런 견제가 유의미하겠지만, 19대 대선 정국에서 친박계 차기 주자로 꼽히는 인물은 사실상 없었다. 그나마 친박 좌장인 최경환인데, 최경환이 진짜 차기 주자로 오를 만한 중량감이 있다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135] 그네들이 주장하는 대로 박근혜 탄핵이 부당하다고 판결이 내려지고 취소된다고 해도, 이미 대한민국 대통령은 다른 사람으로 뽑힌 지 오래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은 5년 단임제이기 때문에 박근혜는 법적으로도 두번 다시 대통령이 될 수 없다.[136] 우촌좌도 현상 때문에 도시화율이 높은 수도권, 부울경 동부 지역은 진보 지지 성향이 강하고 특히 수도권, 부울경 동부 지역은 외지 출신이 많아 지역감정 이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137]김세연은 민정계와도 가깝다.[138] 물론 대경권, 경남 서부 지역도 개혁적인 인물들도 많지만 대경권 등에 있는 친박 내 강경 보수, 극우적인 정치인들의 진박 감별사 등으로 인해 20대 총선에서 수도권은 겨우 37석만 건졌고, 부울경 동부 지역에서도 의석을 많이 상실했다. 특히 2030 비율이 높은 서울, 경인 지역의 위성도시권, 부울경 내 신도심, 공업단지 지역에서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상실되었다. 그리고 강남3구이혜훈, 이종구 등 비박 정치인들이 차지했다.[139]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시절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문제있는 행동과 발언들에 대해 융통성없이 지나치게 꼬장꼬장하다고 혹평을 들을 정도로 가차 없는 징계들을 자주해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로 통하던 인물이었다.[140] 특히 수도권 및 부울경 동부 지역의 당선자들의 경우는 김웅, 김은혜, 유의동, 태영호, 유경준, 배현진, 하태경, 김기현 등을 비롯해 대부분 비박 정치인이다.[141]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친박이 주류가 되어 친이 배척으로 사실상 분열되는 사태가 벌어진 와중에 친박 인사들이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망언을 내뱉다가 결국 보수 이미지를 떨어트리기도 했다. 이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통합도 서로 주도권 싸움하느라 통합도 늦었고 그럼에도 지도부는 친박인사들로 구성되다보니 공천에도 잡음이 일어났다. 더욱이 대표적 친박인사 김진태와 차명진은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모자라 작년 광복절 집회에도 참여하여 같은 보수정당에 피해를 끼친 전적이 있다.[142] 허나 친박계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긴 게 이명박 정부 시기 야당보다 더 정권에 태클 건 이들이 친박계였다. 대표적인 게 민주당+자유선진당+친박계가 콜라보한 세종시 수정안 부결 사태였고, 더 나아가 광우병 시위에도 동참한 적이 있었다, 또 사천시에서는 친이계 의원 당선되는 꼴 못 본다며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에게 몰표를 호소해 기어코 경남 서부 지역에서 민노당 국회의원 후보를 당선시키는 등 사실상 적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뒤통수 운운하는건 그야말로 적반하장인 것.[143] 다만 이건 계파 싸움을 떠나 나경원 자체 경쟁력이 약했다는 평도 있었다. 사실 나경원은 비박계에서도 많이 우호적으로 여기지는 않는 애매한 포지션에 있다.[144] 그런데 과거 홍준표는 친박 핵심 3인방인 윤상현, 최경환, 서청원의 당원권 정지를 풀었고 정태옥 등 친박 인사들을 주요 지도부 요직에 배치한 인물이며 전통 보수 표심을 끌어들이기 위해 막말도 서슴치 않았던 행적들이 발목을 잡혀 모순된 언행을 한다는 비난도 받았다.[145] 민사소송법의 대가인 이시윤 전 원장은 탄핵 반대파로서 박근혜 탄핵 심판 선고일에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선고를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헌재를 나서면서 마뜩잖아 했지만 '법치국가시민이라면 승복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이 글귀는 비록 이 사안에 대한 언급은 아니나 국가의 중대사를 논할 모든 정치세력들은 '법적 안정성'이라는 대원칙을 항상 숙고해야 한다는 점에서 깊이 되새겨야 할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146] 이것 때문에 국가가 정치극단주의로 흐르고, 국민들이 분열되어 정치 성향으로 대립이 가속화되고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이 속했던 보수가 분열되었다.[147] 사실 이러한 우려는 통진당 정당해산부터 있었지만 친박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부정/무효와 달리 통진당 정당해산에 대한 반대 움직임은 사회에서 호응하는 움직임이 미비하여 기우로만 끝났다.[148] 싸운 주된 이유 중 하나가 호남 홀대론이었는데, 친노계가 호남을 우대하면서 이런 경향도 많이 사라진다.[149] 이명박을 매우 증오하면 이명박 구속에 대해 환영하는 반응, 증오가 덜하면 속으로는 환영하지만 상대편에게 악용되니 자신은 침묵하겠다는 반응으로 이어졌다. #[150] 이명박의 죄명은 박근혜의 국정농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자세한건 이명박근혜 문서 참조.[151] 당장 젊은 보수층만 하더라도 개혁보수를 지향하는 보수 소장파친유, 남원정과 같은 비박계 지지가 더 많다. 심지어 강경보수에 가까운 성향을 지닌 사람들도 원체 인물이 없다보니 딱히 친박계 인사를 대권 후보로 지지하고 있진 않다.[152] 다만 21대 총선 이후엔 목소리만 크지 실제 득표에선 아무 도움도 안되는 자들이란 비판도 당한다. #[153] 사실 권영세 의원은 정계 입문 당시만 해도 친박과는 거리가 멀던 인사로, 2천년대엔 남원정과 같은 당시 소장파들과 가깝게 지내던 인사였다. 그러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들어서 요직에 임명되며 범친박계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154] 김진태, 이장우와 함께 친박돌격대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