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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서적 | 미제와 일제의 조선침략 죄행 ·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 세기와 더불어 · 조선력사 | |
* 괄호 안의 연도는 북한의 주장에 근거한 연도이며, 실제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체 및 사건이거나 실제와는 다른 연도일 수 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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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실상4. 내용들
4.1. 김일성
5. 해외에서의 유사 사례4.1.1. 김일성의 항일투쟁/군사적 능력 과장4.1.2. 김일성에 대한 외부인의 평가 날조4.1.3. 김일성에 대한 북한 내 찬사들4.1.4. 김일성의 생활 미화4.1.5. 김일성의 외양&'태양상' 묘사4.1.6. 김일성의 천재성 묘사4.1.7. 북한이 주장하는 김일성의 업적 정리
4.2. 김정숙4.3. 김정일4.3.1. 김정일의 생일4.3.2. 김정일의 어릴 적4.3.3. 김정일이 가졌다는 '초자연적 능력'4.3.4. 김정일의 생활 미화
4.4. 김정은4.5. 종합4.3.4.1. '쪽잠에 줴기밥'
4.3.5. 2010년 8월 24일 로동신문 기사 중5.1. 근황 - 초능력 선전 포기
6. 남북통일 이후7. 참고자료8. 관련 문서[clearfix]
1. 개요
2010년대 초반 출판된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
충실성은 말로써가 아니라 당과 수령의 위대성이 전면적으로 구현되여 있는 불멸의 혁명력사를 깊이 체득하는 과정에 더욱 높이 발양되게 됩니다.
2014년에 발간된 고급중학교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혁명활동 교수참고서'에 실린 김정은 교시
2014년에 발간된 고급중학교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혁명활동 교수참고서'에 실린 김정은 교시
북한에서 배우는 <혁명력사> 교과서로, 조선력사 이후 벌어진 '근현대사'를 다룬다.
실질적으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김정숙 등 백두혈통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은 공산주의 이념과 목표에 따라 계급 의식을 가르치고,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육성하며 또한 집단주의 원칙에 따라 일하고 생활하며 사회와 인민의 이익, 당과 혁명의 이익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교양함으로써 조선로동당과 수령의 영도 밑에 하나의 사상, 하나의 조직으로의 결속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그 어떤 교과목들보다도 우선시하고 제일 중요하게 교육하는 과목들로 여겨지며, 보육원, 탁아소 때부터 평생 동안 이 모든 내용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도록 할 정도다. 실제로 많은 북한이탈주민은 아무리 다른 과목 성적이 좋아도 이 '혁명력사'를 모르면 대학 입학이 불가능할 정도라 증언한다. 관련하여 유치원 교사 출신 북한이탈주민 증언이 있다. 그리고 교과서를 무상으로 공급해준다는 북한의 선전과는 정반대로 새학기를 맞이하여 상파지[1]를 내지 못한 학생에게는 '기본 과목'으로 간주되는 '혁명활동' 교과서만 주면서 상파지를 바치면 나머지 교과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
이 우상화 교과서 제목은
- 김일성: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 김정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대원수님
- 김정숙: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
- 김정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
학교별로 교과서 이름이 다른데, 소학교(남한의 초등학교)는 '어린시절', 초급중학교(남한의 중학교)는 '혁명활동', 고급중학교(남한의 고등학교)는 '혁명력사'로 끝난다. 예로 초급중학교 김정숙 교과서 이름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 혁명활동". 김정은 우상화 교과서는 2013년 교육과정 개정으로 추가되었다.
교과서가 학교별로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우상화 교과서 속 백두혈통도 어린이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이를 먹어가며 어린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해 보다 효과적으로 어린이들을 세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친모 고용희를 다룬 과목은 2024년 현재까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용희는 남한 혈통 '째포'요 아버지는 일본에 군복을 납품하던 친일 자본가니 북한 입장에서는 완벽한 적대계급잔여분자(적대계층)이므로 '항일정신'을 내세우는 '백두혈통' '정통성'에 막대한 흠집을 입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용희는 김정일의 정실부인도 아닌 첩이었고, 김정은은 고용희의 장남도 아닌 차남이었으며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김정은의 존재조차 몰랐다. 이 때문에 김정은 우상화 교과서에서도 김정은의 출생지는 커녕 생년조차 언급하지 않았고, 김정은의 출생지는 성역화는 커녕 언급도 없다. 김정일처럼 출생지 날조조차 시도된 바 없다.
따지고 보면 김일성도 적대계층이다. 친모 강반석은 독실한 개신교도에 친부 김형직은 공산주의자에게는 치료조차 하지 않았고(무면허 의사였다) 원한을 사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당한 골수 반공주의자였다. 즉, 김정은은 친가, 외가 모두 완벽한 적대계층이기에 일반적인 북한 주민이라면 아예 최창익,
보천보 전투 이외에 군공이 전무했던 김일성의 기짜 무장 투쟁 이력도 창작해야 했는데, 그 내용이라는 것들이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모래로 쌀을 만들었으며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넜다든가, 축지법을 써서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을 격멸했다던가 하는 온갖 비현실적이고 허무맹랑한 것들이 난무하기에 북한의 교육만 받은 사람조차도 "이게 말이 되나?"라고 의문을 제기할 정도다.
김만철의 증언에 따르면 이런 내용들을 실제로 가르치던 시절에는 우상화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 학생들이 "혁명정신이 없다"며 선생님한테 호되게 혼나는 것도 아주 많이 봐주는 것이었다고 하며, 북한의 전직 외교관 고영환은 이런 근거도 없고 비논리적인 우상화에 대해 조금의 의문만 제기해도 바로 수용소로 직행한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하술하듯 프랑스에서 고용한 번역자가 번역할 우상화 자료에 의문을 표했다가 CIA 공작원이라는 누명을 받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후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6]
초자연적 능력을 동반한 우상화 선전들은 조선사회과학원 산하 력사연구소가 날조한 에피소드들을 당에 소속된 '유포담당책임일꾼'들이 구전을 통해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유포하고는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언론매체를 통해 선전하고는 출판사를 통해 '입증'한 뒤 교과서와 일반 서적에 소개하여 신빙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이렇게 만들어간 날조들을 "이것들은 모두 조선의 사회과학자들이 중국 동북지방에까지 수백번이나 돌아다니며 힘들게 자료를 찾아가면서 겨우겨우 발굴해간 검증된 사실들이며, 이 이야기들의 진원지는 남조선과 외국이다"라고 선전했으며, 더 가관인 것은 필요에 따라 우상화 교과서의 내용을 아예 완전히 바꾸기도 해 이전에 배우는 교과서와 후에 배우는 교과서의 내용이 완벽하게 모순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자신이 배워 온 내용들이 갑자기 바뀌어도 과거에 배웠던 내용들을 모른 채 하며 새롭게 배운 내용들을 진실로 인식해야 한다. 예시[7]
초자연적 능력 선전 외에도 북한이 단순히(?) 이들에 대해 찬사하는 내용들도 가관인데, 단순한 일 하나하나를 묘사한다고 해도 이름 앞에 붙이는 진부한 호칭, 터무니없이 과장된 수사법[8]과 김씨 3대의 '인품'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의 작위적이다 싶을 정도의 반응[9], 날조된 '업적'과 날조된 외국인들의 찬사 나열, 감성팔이들은 선전 인원들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김씨 3대의 '위대성'을 고양시키는커녕 하도 어처구니가 없다보니 오히려 이들에 대한 혐오감까지 들게 만들 정도다.[10] 농담이 아니라 하술할 김씨 3대 찬양 멘트들을 보면 진지하게 김씨 3대가 애정결핍을 앓고 있어 이에 대한 보상심리의 일환으로 과장된 우상화 멘트를 만들라고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 지경.[11][12] 안드레이 란코프는 이런 과장된 선전들에 대해 '북한방송 개방이 실현되면 로동신문이나 김정일 로작을 아무 때나 자유롭게 보게 될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보다 더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RFA 칼럼)
2. 역사
사실 김일성 우상화 교과서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68년인데, 김일성은 1967년 유일영도 체계를 지도 체계로 채택하며 하나의 집단과 그 미래 세대를 가장 잘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도자 자신을 우상화하는 것이고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1968년부터 소학교에서 대학까지 모든 학년을 대상으로 김일성 우상화 교과서를 만들어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게 했다. 다만 당시부터 교과서에 김일성이 초자연적 능력을 쓴다는 이야기는 없었고, 김일성의 항일정신과 '조국애'를 강조하며 한 명의 '탁월한 인간'으로서의 김일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극한 지 1년 뒤인 1975년 김정일의 어릴 적을 다룬 교과서도 출판되었다. KCI 논문 물론 이 때에도 김일성이 일본군을 피해 지구 둘레의 2배에 이르는 거리를 돌았다는 등의 허황된 날조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졌다. 김정일의 날조 에피소드들은 아주 늦게 잡아도 1982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982년 6월 경항신문 보도그러다가 1987년 북한은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떠돌던 것을 책으로 편찬했다'며 '김일성 전설집'을 출판한 뒤 1990년대에 출판된 교과서에 이들 전설집의 내용이 삽입되었는데, 사실 이것은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사실상 북한의 실권자로 등극하면서 아버지를 신격화하고 그 '신화'에 자신을 끼워넣어 김일성의 아들인 자신이 권력을 승계한 것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한다. 김정일의 우상화 전설집인 '백두광명성 전설집'은 1993년 출판되었으며, 남한에서도 유명한(?) 선전가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도 1996년 발표되며 김일성 부자가 초자연적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강조했다. 김정숙에 대한 우상화 교육은 원래는 대학교의 전공과목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2000년부터 전 학교로 확대되었다. 또 금수산기념궁전 조성 작업중에도 이와 관련된 전설들을 만들어 1999년 '금수산기념궁전전설집'으로 출판했다.[13]
김정은 시절에도 우상화 교육은 지속되어 2013년 교육과정이 개정된 것의 영향으로 2014년부터 김정은 관련 교과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고 한다. 2024년 현재까지 북한의 교육과정이 개정되었다는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북한의 우상화 교육은 현재진행형일 것으로 보인다.
김주애는 후계자 확정 여부 및 형제자매 존재 여부 자체가 불명확해 그녀에 대한 우상화 교과서는 현 시점에서는 계획이 전무하지만 2023년 8월경부터 북한 당국에서 김주애가 '천재', '만재'라는 소문을 유포하고 있다는 소식이 아시아프레스에서 보도되었단 것을 볼 때 김주애에 대한 우상화적 멘트가 나올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없다. 아시아프레스 보도 김주애가 2023년 11월 23일부터 공식적 차원으로 조선의 샛별, 2024년 3월 16일부터 공식적 차원으로 향도자들이라고 불린 것이 알려지며 김주애 우상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14] 현재까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거의 오펜하이머마냥 여러 과학 분야(핵, 미사일 포함)에 전문가적 자질을 지닌 천재처럼 언급된 모양이다.(...)
어떤 우상화 교과서가 있는지 보려면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실상
북한에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이름은 '존함'이라 하여 무조건 볼드체로 작성하게 한다. 이 때문에 북한 자체 OS인 붉은별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타자로 치면 자동으로 두꺼운 커스텀 글자로 변환된다. 그것이 어려울 경우 폰트 크기를 키운다. |
단적으로 북한에서 200명의 동북항일연군을 이끌며 수십만을 무찌른 것마냥 선전되는 김일성의 최대의 업적이자 한산도 대첩이나 귀주 대첩, 살수대첩 등을 뛰어넘는 대승으로 교육시키는 보천보 전투의 경우 실상은 170명이 5명의 순사가 있는 작은 마을을 기습해서 2살짜리 유아 1명과 요리사 1명을 죽인 사건이다. 게다가 이 요리사와 어린이는 둘 다 일본인이라 순사들과 같이 지냈기에 습격 당시 휘말려 유탄에 맞아 죽은 것이었다. 게다가 동북항일연군은 게릴라전을 벌였음에도 오히려 추격대의 공격으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전술적으로는 무의미했다. 이렇게 큰 의미 없는 보천보 전투조차 제외하면 김일성은 내세울 공적이 전무하다시피 하다.[15] 김일성의 전공이 하도 없는 나머지 후술하듯 최측근의 전공까지 뺏어서 김일성의 전공으로 만들 정도였으면 말 다한 셈이다.
그리고 이오시프 스탈린도 반대하던 전쟁을 무려 48번이나 일으키게 해 달라고 김일성이 요청했다가 겨우 허락을 받아 발발시킨 6.25 전쟁 때도 김일성은 평양을 잃고서는 강계에 고립된 채로 스탈린이 격노해 시베리아로 수용될 거라고 생각하며, 벌벌 떨면서 중국 인민지원군의 지원병력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오히려 똥별 짓을 하다가 당시 중국군 총사령관인 펑더화이에게는 "당신은 요행만 믿고 전쟁을 일으켰나!"는 말까지 들으며 펑더화이에게 뺨을 맞았다는 소문도 있다. 김일성 문서의 '무능한 전쟁광' 문단과 펑더화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펑더화이와 김일성은 동맹국의 사령관이었음에도 사이가 매우 험악해서 서로 주먹다짐 일보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심지어 김일성뿐 아니라 그 아들과 손자인 김정일과 김정은 역시 하술할 북한에서 주장하는 '비범한 천품'이 있기는 커녕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이 없으면 존립하지 못하는 처지다.
4. 내용들
- 하단에 기재된 사례들은 북한 교과서 및 우상화 선전의 주장을 단순히 나열한 것뿐으로 신뢰성과 정확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이들에는 대개 북한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서술되어 있다.
사실 후술할 내용들을 보면 반박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거짓된 내용들이 수두룩하니, 질 낮은 유머 모음집이라고 생각하자.
- 항목 내 언급된 내용들 외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우상화 문구는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 우상화/북한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우상화 멘트 중에는 아버지가 아들을,[16] 아들이 아버지를,[17], 손자가 할아버지를[18] 칭찬하는 셀프칭찬 수준의 내용도 있다. 북한에서는 이 칭찬들을 김씨 3대를 찬양하는 글들 처음마다 "위대한 ~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고 언급한 후 김씨 3대가 자신들끼리 찬사를 쏟아부은 것을 공신력 있는 평가처럼 언급하고 있다. 심지어 고난의 행군 문서에서도 나와 있듯 지도자가 지도자 자신을 칭찬한 것을 공신력 있는 객관적인 평가인 것마냥 언급하는 경우마저 있다.
4.1. 김일성
- 김일성이 황량한 자갈밭에서 모래를 손에 쥐니 모래가 쌀로 변하고, 뒷산에 올라 솔방울을 쥐니 포탄으로 변화했다.
- 김일성은 축지법을 쓰면서 하루 사이에 남조선의 대구에서 명함을 남기고, 전주에서 전화를 걸고, 광주에서 글쪽지를 남겼다고 한다.
- 이 둘은 북한의 우상화 선전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내용들이다. - 김일성이 길을 가다 강이 길을 막아 길이 끊기자 발치에 있는 가랑잎을 주워 강에 띄우고, 그 것을 즈려밟고 강을 건넜다.
너무 무거워서 강의 바닥도 뚫고 가라앉았다는 게 더 현실성 있겠다 - 김일성은 강물의 흐름을 하류에서 상류로 흘러가는 것으로 바꿀 수 있으며, 비도 자유자재로 내릴수 있기 때문에 북한은 건국 이래로 자연재해가 없었다.
- 김일성이 밖에 나갔다가 갑자기 억수같은 폭우가 쏟아졌는데, 손짓 한 번으로 햇빛이 찬란한 장관을 만들고 먹구름이 알아서 걷히는 날씨를 만들었다.
- 김일성이 백두산 길을 가다가 앞을 가로막는 숲을 보고 비키라고 명령했더니 숲이 한쪽으로 물러가면서 험한 원시림에 큰길이 생겼으며 지팡이로 땅을 3번 두드리자 숲 가운데에 3개의 큰 호수가 생겼다. 관련 기사(1992년 6월 경향신문)
- 바위 우에서 강 쪽을 바라보고 있던 김일성이 오른손을 천천히 머리 우로 드시며 먼 산을 굽어 보자 금방 전까지 맑게 개였던 하늘에 안개가 끼며 우레가 울고 천둥이 치다가 한참 후 우레가 그치고는 무겁게 내리 드리웠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더니 강 위에 넓은 다리가 펼쳐졌고, 김일성은 유격대원들과 함께 그 다리로 강을 건넜다. 관련 글
- 정신병원에서 날뛰는 환자들에게 김일성의 빨치산회상기를 열심히 읽어 주었는데,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던 이들이 수령님의 활약에 감화되어 눈물을 흘리며 모두 완쾌되었다.
- 재일귀국동포들 중 아편 중독자가 있기에 그가 병원에서 모르핀을 놓아 달라고 요구할 때 주사해줌과 동시에 김일성의 빨치산회상기를 읽어주었다. 그 귀국동포는 며칠간 다니더니 이 말씀을 듣고 수령님을 본받아야겠다며 아편 중독이 씻은 듯이 나았다.
- 김일성의 위신과 인기가 세계적으로 부각되면서 세계 지도자들은 김일성을 만나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잇달아 북한을 찾았다.
그런데 김정은은 왜 북한 내에 있으면서 한 손에 꼽을 수준으로만 해외 지도자들을 만난 거임?[19]
- 이는 북한 소학교 2학년 교과서에 나온 내용이라고 한다. - 김일성의 서체인 '태양서체'는 인류서예사에 있어본 적이 없는 걸출하고 독창적이며 완벽한 명필체, 우리 민족의 국보이며 만년유산이며, 그 어떤 사상 감정도 다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우월한 표현력과 형상력을 가진 서체로서 우리 민족의 귀중한 서예유산이고, 추사 김정희의 '추사체'를 능가함은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명한 서체가들의 장점이 모조리 결합 된 것 이다. 하기에 누구나 '태양서체'인 위대한 수령님의 필적을 받는 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여기였으며 그이의 필적을 더없이 귀중한 가보로, 국보로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관련 기사 3
- 김정일은 김일성의 필체에 대해 "수령님의 필체는 정말 독특합니다. 수령님의 필체는 보면 볼수록 명필중의 명필입니다."라고 평했다.
- 김일성의 친필들에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혁명에 대한 비상한 책임감, 강의한 신념이 비껴있으며 글씨체마다 아름다움과 활력, 억센 힘이 구사되고 조형예술적으로도 완벽하게 안겨오는 명필체이다.
- 김일성은 글씨를 써야 할 대상에 따라 〈옥류교〉[20]처럼 아름답고 류창하게 쓰시는 필법을 활용하시는가 하면 〈미림다리〉와 같이 박력있고 변화무쌍한 필압의 조화를 펼치기도 하시고 〈청천다리〉처럼 맑고 청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필법도 적용하군 하였다. 김일성의 필체 가운데서 가장 뜻깊고 역사적의의를 가지는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 50돌에 즈음하여(1992년 2월 16일) 몸소 쓰신 송시[21]로서 서체의 최경지를 이루고있다.
- 김일성의 목소리는 우렁우렁하면서도 육친의 정이 넘치는 음성이면서 강산을 진감시키는 천하무적장군의 음성이다.
- 김일성은 '이밥'이라고 불리던 것에 '흰쌀밥'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다. 이처럼 '흰쌀밥'이란 한 마디 말 속에도 세기와 세기를 이어오면서 '흰쌀'의 주인이 되지 못하였던 인민들의 눈물겨운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 인민들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문명한 인민으로 내세워주려는 김일성의 숭고한 뜻이 어리여있다.
- 북한에서 한글을 세종대왕이 아닌 김일성이 창제했다고 주장한 것은 "김일성 덕분에 한글이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와전된 거지만, '흰쌀밥'이라는 단어를 김일성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정확히는 김일성이 1964년 2월 일군들에게 '이밥'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이씨 성을 가진 귀족들만 먹었기 때문에 불린 것이니 '이밥'이 아닌 흰쌀밥이라고 불러라'라는 교시를 남긴 것에서 '흰쌀밥'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며, 과장이 아닌게 이 에피소드를 다룬 북한의 선전물에서는 대놓고 '새로 지어주신 이름 - 《흰쌀밥》'이라는 표현을 써서 더욱 빼도박도 못한다. 참고자료 - 수단에 사는 '무함마드'라는 이름의 교사가 '제3세계의 구원자이자 지도자' 김일성의 60세 생일선물을 위해 전통 방식으로 만든 지팡이를 선물하려 했는데[22] 고국에 '위대한 수령'의 지팡이를 만들기에 적합한 나무가 없어 고민에 빠져 여러 방면으로 찾아본 끝에 겨우 인도에서 자라는 향나무가 지팡이 재료로 딱 맞다는 말을 듣고는 신문을 통해 자신이 김일성의 선물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도에 전하자 인도의 목재상은 이 귀한 나무를 공짜로 넘겨주고는 비행기에 실어 수단으로 보내지고는 수단 최고의 장인의 손에서 멋진 지팡이로 가공되어 무사히 김일성의 환갑 선물로 전달되게 되었다. 북한의 말에 따르면 이 '장수 지팡이'는 김일성을 '섬기는' 제3세계 인민들의 '정성'의 상징으로 묘향산 '국제 친선 전람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 이 거추장스러운 날조 에피소드에 대해 다룬 블로거는 이 에피소드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너무 존경한 한국의 교사가 호주 국민들과 협력하여 나무를 구해 바이든을 위한 최고의 지팡이를 만들고는 이를 백악관에 선물로 보낸 격'이라고 비꼬았다. 관련 글 - 김일성이 태어난 바로 그 날에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으니, 이 날은 서방에서는 자본주의의 장송곡이 울려퍼졌으나 동방에는 '인류의 태양'이 뜬 날이다.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반박) 물론 북한 사람들은 이제 알 건 다 알기에 타이타닉 사고에 대해 "한날한시에 태어난 '수령님'이 몰고 온 재앙"이라고 평가한다고 한다.(2016년 4월 아시아프레스) - 우리 수령님께서는 세상에 우리 인민처럼 피를 많이 흘리고 찬바람을 많이 맞고 끼니를 많이 굶어본 인민이 또 어데 있겠는가, 저 사람들을 위해 좋은 집들을 더 많이 짓고 좋은 천을 더 많이 짜내고 좋은 학교들과 휴양소들과 병원들을 더 많이 건설하자, 그리고 이국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는 동포들을 더 많이 데려오자, 자신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하시였다.
다 너 때문이잖아.
여기에 김일성의 날조된 초자연적 능력들이 나와 있다. 한마디로 21세기에도 이런 내용들을 정규 과목, 그것도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가르쳤다는 것이다.
4.1.1. 김일성의 항일투쟁/군사적 능력 과장
- 보천보 전투의 완패에 분개한 일본 총독은 김일성 장군의 대승 사실을 전한 동아일보를 모두 모아 마당에서 불태웠으나, 하늘 높이 날아오른 불티들은 하얀 종이조각들로 변하여 햇볕에 반짝이며 눈송이처럼 조선은 물론이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들판에까지 날아와 이를 본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엄청난 미세먼지 폭탄을 뒤집어 쓰게돼경탄을 금치 못했다.소설을 쓴다 써 - 보천보 전투는 유격전의 요구를 최상의 수준에서 구현한 전투, 세계유격전쟁사를 빛나게 장식한 특기할 사변이였다.
-(반박) 진실은 그냥 파출소 습격해 민간인 2명(유아 1명 포함)을 실수로 죽인 게 끝이다. - 김일성은 항일투쟁을 하는 동안 눈을 끓인 것과 풀뿌리로 연명했고, 때로는 수십 일을 굶기도 했으며, 앞뒤에 적을 달고 수백 리를 강행군하기도 하는 등 온갖 시련을 겪으며 싸웠다.
-(반박) 수백km에 달하는 기나긴 거리를 일본군이랑 함께 행군했으면 도중에 일본군에게 궤멸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인데 어떻게 이를 해결했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 김일성은 하루에 20번이나 일본군이랑 전투를 했다. #
- 김일성은 불과 50여명의 유격대원으로 5천 명의 적과 40여일의 간고한 투쟁 끝에 일거히 적을 소탕했다.
- 김일성이 호령을 하자 일본군의 총구멍이 모두 막히더니 얼마 안 가 일본군의 총은 모두 막대기가 되었다. 관련 기사(1991년 9월 경향신문)
- 김일성은 1932년[23]부터 1945년[24]까지 항일 투쟁을 하던 13년간 6천여 명의 빨치산 대원들을 두고 10만여 회의 항일전투를, 그것도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이끌며 조국을 해방했다.
-(반박) 김일성은 항일 투쟁을 했다는 시기에 하루에 최소 20.6회나 전투를 했고, 당시 김일성이 잠을 4시간 자는 것 외에는 휴식을 전혀 안 했다고 가정해도 1시간마다 1회씩 전투를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982년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묘사한 북한의 서적을 읽어본 한 남한 사람은 이 책을 "한눈에 괴문서임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표현했을 정도였다. 기사 원문에 사용된 (?)을 그대로 옮겨왔음을 밝힌다. 원문 확인(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2년 2월 경향신문) - 김일성이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 피난한 거리 총합은 지구 둘레의 2배인 8만 km다.
- 이것이 거짓말 같다고 지적했다는 이유로 문자 그대로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후 하나뿐인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 심지어 이 사람은 김일성의 우상화를 위해 프랑스에서 고용한 사람이었다. 참고자료 - 김일성은 항일무장투쟁의 전기간 매복전과 습격전, 유인전, 동성서격전술, 일행천리전술, 망원전술 등 그 어느 병서나 군사교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독창적인 전략전술과 유격전법들을 끊임없이 창조하여 일제침략자들을 무자비하게 격멸소탕하고 전투마다에서 빛나는 승리를 이룩했다.
-(반박) 이들 전술들을 모두 김일성이 썼는지는 둘째치더라도 2019년 12월 10일 북한은 군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전군에 이 내용을 담은 정치학습자료를 하달하고 중대, 소대별로 자료를 암기·통달은 물론 관련 학습과 토론을 활발히 하도록 강요했다. 물론 군인들은 "최고사령관은 '현대전'을 강조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구시대적인 유격전을 거론하냐"며 불만을 품고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2019년 12월 데일리NK)
웃긴 것은 김일성이 모든 '항일무장투쟁'을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연전연승으로 이끌었다며 중요하다는 전투들을 언급하면서 이들 전투의 구체적인 전과가 어떠했는지는 대략적인 수치조차 언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가장 중대하다는 보천보 전투조차 실상은 매우 초라했는데 북한이 자랑하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들은 동료의 공적을 훔친 것을 넘어[25] 아예 김일성의 독립운동 과장을 위해 없는 전투를 날조한 것들이었으니 북한이 김일성의 전투들의 '전공'을 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김일성의 빨치산 투쟁에서) 전투목표의 설정과 시간의 선택, 불의의 공격, 대중속에서의 활발한 선전선동활동의 배합 등 모든 과정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입체적으로 맞물린 빈틈없는 작전에 의한 승리는 오직 김일성만이 안아올 수 있는 것이다.
- 조선인민혁명군의 빛나는 승리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조선인민군은 김일성의 영도 밑에 조국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지난 조국해방전쟁[26]에서 20세기의 군사적 기적을 창조하였다.
- 김일성은 '조국해방전쟁'의 매 계단마다 명확한 전략전술적방침과 독창적인 전법을 내놓으시고 유격전법을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능숙하게 적용하는 한편 산이 많고 종심이 얕은 우리 나라의 지형학적특성에 맞는 독창적인 전법들을 부단히 제시하고 모든 작전과 전투들에서 그것을 령활하게 적용하도록 이끈 탁월한 영군술로 적들의 수적, 기술적우세를 정치사상적, 전략전술적우세로 타승하였다.
-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유린하던 파쑈도이칠란드와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하자 세계의 이목은 동방에서의 작은 나라 약소민족으로서 일본제국주의를 타승한 조선으로 쏠리였다.
- 김일성처럼 혁명의 총대를 틀어쥐시고 반제 대결전의 최전방에서 특출한 군사사상[27]과 전략전술, 영군술로 무패백승을 떨친 만고의 영장은 인류 역사에 일찌기 없었다. 김일성은 한 세대에 포악한 두 제국주의 강적을 타승한[28] 강철의 영장, 탁월한 군사전략가이다.
- 김일성은 동서고금 그 어느 위인도 지녀본 적 없는 천재적인 지략과 탁월한 영군술, 무비의 담력과 배짱을 지니고 강대한 두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단호히 물리치어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구원하고 굳건히 지켜주었으며 연대와 연대를 이어 주체조선의 불패의 기상을 누리에 떨쳐준 만고절세의 영웅, 전설적 위인이다.
- 김일성은 '민족해방전쟁' 때 세계제패를 꿈꾸는 미국과 서방권의 수십 명의 참모장들, 군사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모여서 토의한 끝에 만든 전략을 누구나 약하다고 생각한 군대와 인민을 이끌고 단독으로 격파하는 등 백전백승을 거두며 '민족해방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는 걸출한 수령의 영도를 받을 때 작은 나라 인민도 가장 강대해질 수 있으며 강적과 싸워 언제나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며, 김일성의 승전은 반제투쟁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그야말로 '조선인민과 시대와 인류앞에 쌓아올리신 그이의 불멸의 역사적 공적'이다.
- 북한에서는 6.25 승전을 '보병총이 원자탄을 이겼다'는 식으로 포장하고 있다.
-(반박)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북진통일이 되었을 것이고, 김일성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김일성은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았던 전쟁 초반에 '백전백승'은 커녕 강계로 도망쳐 지하 벙커에서 벌벌 떨면서 보냈으며 상술한 것처럼 중공군 총사령관이던 펑더화이에게 모욕적인 대접을 받았다. - 김일성은 주동적이며 즉시적인 반공격으로 침략자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들었으며, 세계해전사에 수수께끼를 남긴 주문진 앞바다에서의 기적[29][30]을 안아왔고, 대전해방작전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한 데다가, 우리 식의 독특한 적후 제2전선을 펼치시여 전쟁의 유리한 국면을 주동적으로 열어놓았다.
- 민족해방전쟁 때 영용한 인민군 전사들은 김일성이 창시한 그 어느 나라 병서에도 없었던 전혀 새롭고 독창적이며 적극적인 진지방어전략, 세계전쟁사에 유례없는 갱도전, 비행기사냥군조운동,[31] 땅끄사냥군조운동[32], 저격수조활동, 이동포병중대활동을 비롯한 독창적인 전법들[33]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료정내며[34] 혁혁한 전과들을 이룩하였다.
- 사실 김일성이 창시한 독창적인(?) 전략이 있긴 하다. 탱크를 보병의 이동속도에 발을 맞추어 천천히 진격하게 하는 것. 당연히 이 멍청한 전략 덕분에 북한군은 국군과 UN군에게 밀려 함경도 끝자락까지 후퇴해야 했다. #
- 주성하TV에 의하면 실제로 김일성은 팽덕회가 시키는 대로 하는 처지였고 참견하려고 하면 저기 가있으라며 면박을 주는 게 허다했다고 하며 기껏 쳐봐야 중공군 연대장 경력보다 못한게 김일성이라고 했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조하신 이 모든것(전술들)은 우리 나라의 지형조건과 무장장비, 혁명전쟁과 현대전쟁의 요구에 맞는 가장 주체적이며 과학적인 전법들이였다.
- 김일성은 과녁에 총 세 발을 쏴 다 정중앙에 맞췄다. 그 과녁은 지금도 전해진다.
4.1.2. 김일성에 대한 외부인의 평가 날조
- 김일성을 만났다는 한 미국인 목사는 김일성을 보고 "위대한 주석님은 예수도 감히 견주지 못할 사랑의 최고 화신이시다"라고 감탄했다.
- 북한을 방문하였던 미국의 한 목사는 "조선은 예수가 와도 할 일이 없는 나라"라고 말하였다.
예수가 와도 손을 쓸 수 없는 나라라는 뜻이라고 해석하면 사실이긴 하다. -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북한을 방문하고는 이북에 한하여는 선교할 필요가 없다면서 성서에 쓰여져 있는 모든 것이 이미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였는가 하면 주님이 가르친 그 이상사회가 이북과 같은 사회라며 "에덴동산이 아니라 주체의 낙원이 지구 위에 피어난 민중복락의 동산"이라고 격찬해 마지 않았다. 이는 인류의 한결같은 목소리이다.
- 빌리 그레이엄은 '노숙자 문제와 약물 중독을 해결하는 김일성의 지도력에 깊은 감동을 받아 "김일성 주석의 정치적 지도력을 지켜보면서, 그의 방식대로 북한을 통치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하나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다른 지도자로, 구원자요 과거와 미래의 통치자로 오신다면, 나는 김일성이 현세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정치적인 신념과 방법은 하나님도 할 수 없었던, 이 지상에 가장 위대한 천국을 만들었다"고 말했으며, 북한을 방문하고는 북한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지 이해했다면서 "김일성은 현세의 하나님으로, 왜 이런 나라에 성경이 필요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반박) 그레이엄은 1992년과 1994년에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지극히 당연히도 그레이엄 목사측은 워싱턴포스트지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전혀 없다고 말하며 해당 주장은 그레이엄 목사의 신학이나 어법과도 크게 동떨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더 가관인 것은 이 날조된 발언을 그레이엄 목사가 사망하기도 한참 전이던 1996년 2월 18일에 로동신문에 실었다는 것이며, 심지어 북한이 이 발언을 날조한 시기는 이미 북한 당국이 고난의 행군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지 1달도 넘었을 때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반공주의자였다. -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을 "미국의 건국과 운명을 대표했던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하다. 김일성은 세계의 건국자들과 태양신을 다 합친것보다 더 위대한 인간운명의 태양신이라고 나는 서슴없이 말하게 된다."고 칭송했다.
- 유명한 서방의 초상화가는 왜 김일성의 초상화를 '최대의 걸작'으로 그렸냐는 인터뷰에 "나는 주석님을 처음으로 뵙는 순간, 그 어떤 이름할 수 없는 영감에 휩싸였다. 그 이의 존안에서 풍겨오는 전지전능함과 박애의 빛발은 내가 감히 그릴 수 없는 하느님의 거룩한 형상이었다. 나는 사람이 아닌 하느님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말했다.
- 인류는 응당 지구의 가장 높고 중심적인 위치에 김일성태양탑을 세워야 한다고 절절히 소원했던 외국의 한 철학자는 "김일성이 안 계셨더라면 역사는 (지금과는) 달리 되었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나 세계의 7대 기적[35]과 같은 그 모든 신화와 기적들을 다 합쳐도 대비할수 없는 거대한 변혁이 주석님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반박) 이는 주체사상의 창시와 이로 인한 영향력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북한 밖을 벗어나면 북한에 관심이 있는 사람 외에는 주체사상에 감명을 받기는 커녕 '주체사상'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조차 드물다.[36] - 1970년대 초 한 외국인 기자는 김일성을 '아버지'라 부르며 김일성의 품에 매달리며 김일성과 같이 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사진에 담으려고 했으나 너무도 크나큰 흥분과 격정에 휩싸여 제대로 촬영조차 할 수 없었고, 김일성이 어린이들의 공연을 보고 아주 잘한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는 크게 감명을 받아 "김일성 원수님을 만나본 사람만이 그분의 위대성과 소박성, 그분께서 지니신 사랑의 세계를 알수 있다. 혹시 (김일성을) 만나본 사람이 대단한 필력가나 언변가여서 그분에 대한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말이나 글로 썼다고 해도 그 글과 말에는 그분의 인품과 위대성이 백분의 일, 천분의 일도 담겨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출판물에 "세상에 온 나라의 아이들이 국가수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나라는 조선밖에 없다."[37]라고 적었다.
보나마나 "세상에 이런 광신도 국가가 있나"는 심정으로 적은 거겠지. - 세계의 혁명가들과 저명한 인사들, 진보적 인류는 김일성에 대해 "지구가 가지고 있는 인력을 김일성 동지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김일성 동지는 또 하나의 인력을 가진 행성입니다."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 김일성이 죽었을 때에는 전세계는 '20세기의 대성인'이자 '인류의 태양'을 잃은 비애와 슬픔에 빠지며 50억 인구가 조의를 표하고[38] 각국의 저명한 인사들은 "김일성 동지의 서거는 태양이 꺼지고 지구가 깨진 것과도 같다", "김일성이 죽던 날 지구는 궤도를 따라 돌게 하던 구심점을 잃었다"고 애도를 표했고, UN도 청사에 조기를 걸었다.
- 일본의 한 학자가 남조선의 어느 소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아 놓고 절대로 무서워하거나 겁내지 말고 조선인들과 일본인들 중 제일 훌륭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정직하게 쓰라고 했더니 거의 모든 학생들이 '김일성'이라고 썼다.
- 1981년 2월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으로부터 귀중한 가르침을 받은 프랑스 사회당 당수 프랑수아 미테랑은 그해 5월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서방7개국수뇌자회의에 참가하여 "김일성 주석은 위대한 국가수반이시며 현시대의 걸출한 영도자이시다"라고 칭송했다.
-(반박) 미테랑이 1981년 2월 북한을 방문한 것은 사실이나, 단순히 '프랑스를 외교적으로 인정해달라'고 말한 정도였지 김일성을 대놓고 찬양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 - 적도 기니 민주당 당원들은 "김일성은 참으로 인자하고 친화력이 강한 사람이며 세기를 이어 만민의 다함없는 흠모를 받으시는 세계적 위인이다. 아프리카 나라들의 새 사회건설을 진심으로 도와준 김일성은 아프리카 인민들의 진정한 벗이다"고 칭송하였다.
- 김일성은 수백년간에 걸치는 장구한 식민지예속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자주적발전을 지향해나선 이 나라 인민들의 투쟁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신생독립국가인 적도 기니의 주권을 남먼저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했으며,[39] 1984년 8월을 비롯하여 3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한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대통령을 여러 차례 몸소 만나주고 새 사회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에 명철한 해명을 주시였을뿐 아니라 자립경제건설을 위한 적도기니 인민의 투쟁에 사심없는 물심양면의 지원을 주었다.[40] 특히 오비앙 대통령은 수령님의 '고귀한 가르치심'을 받기 위해 처음 방북했을 때 김일성으로부터 적도 기니가 나아갈 진로에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고는 '그이께서 말씀하신 모든 문제들은 자신에게 있어서 귀중한 밑천이 된다'고 격동된 심정을 토로하면서 두 나라 사이의 친선협조관계를 강화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 의지를 피력하였다.
그런데 얘는 진짜로 이런 말 했을 것 같고, 했더라면 립서비스가 아닌 진심을 담아 이런 말 했을 것 같다.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는 잊었나보다. - 피델 카스트로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 김일성에게 항일무장투쟁 때 식량이나 옷, 추위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묻자 김일성이 고난의 행군 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카스트로가 몹시 탄복하였다. #
- 외부인들은 김일성을 보고 "인류가 수천년동안이나 그리고 이상해온 인간중의 인간, 완성된 인간전형을 보았습니다." "김일성주석은 온 세계를 매혹시키는 위대한 인간태양이십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언젠가 북한에 찾아온 어느 한 나라의 정치인은 북한의 여기저기를 돌아보는 과정에 변모되는 사회주의조선의 모습에서 큰 감명을 받았지만 우리 수령님께서 공장이건 농촌이건 아무곳이나 스스럼없이 찾아가는 한 가지만은 이해가 되지 않아[41] 김일성을 만났을 때 "그렇게 아무데나 가시여도 일없겠습니까"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김일성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데 무엇때문에 인민을 무서워하겠는가, 나는 아무데나 다 가도 일없다. 나는 노동자들이 집 짓는 데도 가고 공장에도 가며 농촌에도 나가 자고 오기도 한다"고 말씀하자 그 정치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늘 인민들과 허물없이 지내시며 그들의 소박한 말도 정책에 담으시는 수령님이시야말로 위대한 평민이시라고 탄성을 올렸다.
- 유럽의 쟝까를로 엘리아 발로리(Giancarlo Elia Valori, 1940~)는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인덕의 품에 안긴 사람들중의 한명이다. 1975년에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친선을 위한 유럽위원회를 결성한 기쁨을 안고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발로리가 유럽에서 대륙을 횡단하여 우리 나라에 찾아왔다는것을 아시고 그를 몸소 만나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위해 오찬도 마련해주시면서 앞으로 꼭 어머니와 함께 다시 오라고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감격적인 그 나날을 추억하여 발로리는 글에 이렇게 썼다.
- 사실 유엔조기게양 규정을 보면 유엔에 가입한 회원국의 국가수반이 사망하였을 경우 해당 나라의 유엔대표부에서 조기 계양을 건의하면 조기를 걸도록 되어 있다.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나는 비록 당신을 오늘 처음 만났지만 오랜 친구를 만난감을 느낀다고 하시며 뜨겁게 포옹해주시던 그이의 영상[42]은 그대로 태양의 모습이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그분께 끌려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중략)[43]
나는 첫 상봉에서 벌써 주석각하께 완전히 매혹되였음을 숨기지 않는다.
오랜 문화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딸리아에서 나서자란 나는 유럽중심주의자라고 할만큼 남다른 자존심과 주견을 안고 살아온 사람이였다. 무엇인가 사회와 정의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열혈의 그 시절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등 여러 지역과 나라들의 적지 않은 고위인물들과 대상하면서도 언제 한번 주저하거나 자존심을 굽힌적이 없었다. 하지만 김일성주석각하를 만나뵙는 첫 순간에 나는 어머니가 자주 외우시던 하늘의 성인을 대하는듯한 느낌을 강렬하게 받아안았다.
나는 첫 상봉에서 벌써 주석각하께 완전히 매혹되였음을 숨기지 않는다.
오랜 문화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딸리아에서 나서자란 나는 유럽중심주의자라고 할만큼 남다른 자존심과 주견을 안고 살아온 사람이였다. 무엇인가 사회와 정의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열혈의 그 시절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등 여러 지역과 나라들의 적지 않은 고위인물들과 대상하면서도 언제 한번 주저하거나 자존심을 굽힌적이 없었다. 하지만 김일성주석각하를 만나뵙는 첫 순간에 나는 어머니가 자주 외우시던 하늘의 성인을 대하는듯한 느낌을 강렬하게 받아안았다.
이것은 그의 심장속깊이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고백이였다. 노동자들과 농민들, 지식인들과 군인들은 물론 해외동포들과 외국의 벗들마저 만나뵙자마자 대번에 끌리여 마음속진정을 스스로 터놓고 헤여지면 또 뵙고싶어지는분이 바로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한 출판물은 김일성의 인간상에 대해 "김일성주석을 한번 만나뵈온 사람들은 그 인품과 감화력, 뛰여난 외교술에 융화되여 마치 마술에 걸린듯 행동한다. 전 미국대통령 카터가 북조선을 방문한 후 가진 기자회견과 그의 발언 등을 지켜본 정계, 외교계에서는 〈김일성주석을 만나뵈옵고 요술에 빠져든것같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카터만이 아니라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주석을 만나뵙고 돌아온 인사들은 하나같이 김일성주석을 대변하군 하였다."고 전했다.* 20세기의 대표자, 인류의 걸출한 령도자, 위대한 사상가 등 김일성에 대한 존칭들이 수없이 수록되여있는 《김일성백과전서》는 태양칭송의 정화이다. 세계 출판 역사상 처음으로 나온 위인인물사전인 이 전서는 수많은 나라의 저명한 인사들과 학자들이 편찬발행한 인류의 기념비적도서이다. 김일성백과전서를 읽은 유럽정계의 명망높은 고위인사는 편찬위원회에 보낸 편지에 "김일성주석께서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자신의 숭고한 덕망으로 사람들에게 마음의 기둥을 안겨주시였으니 그분이시야말로 만민의 하늘이시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김일성주석만은 하늘의 태양이 인간계의 태양으로 환생하여 내리신 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모잠비크 독립 기념식에서 모잠비크 초대 대통령은 "위대한 영웅이신 김일성동지께서 앞길을 가르쳐주시였기때문에 우리는 조상들과 우리의 발목을 묶어놓았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노예의 운명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였다."라고 말했다.* 김일성의 7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잠비아 대통령은 김일성에게 자기가 쓴 시 《인류를 사랑하시는 분 김일성동지께》를 읊으며 김일성을 '피압박인민들의 기수'로 높이 칭송하였다.* 1949년 이오시프 스탈린은 "김일성동지는 동방에서 제국주의침략으로부터 쏘련을 피로써, 무장으로 옹호하여주신 참다운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자이시며 공산주의운동의 귀감이다"라고 격찬하였다.* 1975년 4월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을 중환속에서도 손꼽아기다려 맞이한 모택동은 "김일성동지와 같은 세계적인 위인을 가장 친근한 전우로 모시고있은것을 무한한 행복으로 생각한다"고 절절히 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반제반미투쟁을 승리의 한길로 이끄시는 탁월한 명장'으로 높이 칭송한 주은래 총리의 심정도 같았다.* 피델 카스트로는 김일성을 혁명선배로 존대하면서 김일성동지는 세계의 지도자 중에서 가장 노련하고 권위있는 분, 천재이시라고 높이 칭송하였다.* 호치민은 김일성의 이민위천의 뜻과 덕망에 감복하여 김일성은 이 세상 더없이 훌륭한 인민적 정치가라고 칭찬했다.*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아누크 대왕은 김일성을 '한번 맺은 친분관계를 변함없이 이어가신 천하제일의 가장 위대한 인간'이시라고 격찬했다. 그나마 폴 포트까지 안 끌고 온 게 어디냐.[44]* 김일성을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운명의 참다운 수호신'으로 흠모한 포르투갈 전 대통령 프란시스쿠 다 코스타 고메스(Francisco da Costa Gomes, 1914~2001)는 "장구한 인류력사에 사상과 정치, 경제와 문화, 군사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걸출한 위인은 오직 김일성주석 한분밖에 없다. 세계적위인이신 김일성주석의 서거로 하여 지구가 가벼워졌다."며 자기의 비통한 심정을 이렇게 터놓았다.- 진지하게 따지자면 (북한 주장에 따르면) 김일성이 지닌 '국제적 권위와 지위, 현대인류 역사에 새긴 업적'이 얼마나 거대한 것이었는가를 알게 해주는 발언이라고 한다. 그래도 교묘하게 비꼬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서방 7개국 수뇌자회의에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에 대한 비보를 받은 프랑스 대통령은 애석함을 금치 못하며 회의참가자들앞에서 "김일성주석은 위대한 국가원수이시였다. 그이는 제2차 세계대전후부터 오늘까지 활동한 위인들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위인이시였다."라고 말했다.* 김일성에게 나이지리아에서 처음으로 주는 태양의 족장 칭호 수여식에서 우모지공동체 왕은 김일성주석은 어둠을 밝혀주고 생을 주시는 위대한 태양이시며 저 하늘의 태양이 영원하듯이 영생하신다고 말하였다.* 태양의 품속에서 꺼져가던 생명을 되찾은 기니의 평범한 기자는 김일성은 한나라의 국가수반이시기 전에 한없이 위대하고 인자하신 만민의 어버이라고 칭송하였다.* 비슈와나스[45]는 주체사상의 보편적 의의와 그 절대적 가치에 감동을 받아 "영국의 유명한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일찌기 단 하나의 사상으로 우주의 무한한 공간을 채울수 있다고 하였다. 참으로 주체사상은 인간의 넋을 깨우쳐 그의 힘과 미를 무한대로 증폭시키고 역사의 자주적주체로 내세워 이 세상의 모든 곳에 복지사회를 일떠세울수 있게 하는 하늘이 인류에게 내린 〈성서〉였고 〈복음〉이였다. 김일성주석은 이 위대한 주체의 정치리념을 만민에게 안겨주시고 그것을 당대에 실현해나가시는 성인중의 성인, 위인중의 위인이시였다."고 썼다. 기독교를 탄압하면서 김일성 찬양에 기독교를 인용하는 클라스[46]* 1945년 한반도 해방 직후 코스타리카 인민당에 소속된 바나나 생산 노동자들은 '노숙하고 세련된 영도로 인민이 주인이 된 새 사회를 건설하는' 김일성에 대한 흠모심을 안고 김일성세포[47]를 결성했다. 이는 세계 최초로 외국에서 김일성의 이름을 따와 명명한 것이다.*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정치가나 위인들이 적지 않지만 김일성처럼 세기를 이어오며 5대륙 인민들로부터 세계혁명의 걸출한 수령으로 다함없는 흠모를 받고 있는 사람은 일찌기 없었다.
외국인이 했다는 북한과 김일성 찬양 선전을 면밀히 보면 ~의 한 저명한 ~' '공화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처럼 그 발언을 했다는 사람의 이름이 전혀 적혀 있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북한이 선전 차원으로 날조한 발언을 외국인이 한 것마냥 가장한 것이라고 봐야 타당하다. 덤으로 국제친선전람관에 전시된 김씨 부자를 위한 선물들이 외교 관례상 해외 국가수반에게 의례적으로 줘야 하는 선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해외 지도자들이 김일성 면전에서 했다는 김일성 칭찬은 있었더라도 외교 석상에서의 립서비스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사족으로 북한이 외부의 평가인 것처럼 날조한 김일성에 대한 호칭 중 가장 흥미를 끄는 몇 개만 꼽자면 인류의 최고사령관, 만고절세의 애국자, 인류의 대성인, 세계정치의 원로, 공산주의운동의 령수, 전지전능한 수령, 삶과 생의 은인, 세계인민들의 자애로운 친어버이, 영원히 세계를 밝혀주시는 태양, 인간계에 더는 없을 위대한 인간태양, 등등이 있다.
4.1.3. 김일성에 대한 북한 내 찬사들
- 영생불멸[48]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께서 탄생하심으로써 새로운 력사가 시작되고 민족은 풍요롭게 살았다.
- 김일성은 100년, 200년 앞을 내다보시는 위인 중의 위인이다.
- 김일성은 일생 동안 '이민위천(以民爲天)', 즉 '사람을 하늘처럼 여겨라'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반박) 사실 이민위천 자체는 한태조 때부터 쓰이던 유서 깊은 말이었고, 심지어 세종대왕을 위시한 조선의 왕들도 '이민위천'을 인용해가며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휼하고자 했다. 다만 김일성은 사람을 '하늘처럼' 여기기는 커녕 오히려 파리만도 못한 존재처럼 여겼던 주제에 이 말을 들먹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 김일성의 탄생은 인류가 수수천년 바라고 바라던 운명의 태양을 맞이한 대경사, 대통운이였다.
- 김일성은 세상에 부럼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한평생을 바쳤다.
- 김일성은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다.
- 김일성은 온 나라의 아이들을 넘어 온 나라의 인민들의 어버이이다.
- 20세기는 명실공히 김일성의 세기였다.
- 김정은은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을 사회주의조선의 시조로 영원히 높이 받들어모셔야 한다고 하시면서 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신 우리 수령님을 모신것을 자랑으로, 긍지로 간직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 김일성은 숭고한 인품과 덕망으로 우리 인민과 세계 진보적 인류의 다함없는 존경과 칭송을 받으신 절세의 위인, 성인 중의 성인, 인류의 대성인이었다. 이러한 김일성의 뜨거운 인정미와 숭고한 덕망은 사상과 정견을 초월하고 국경도 넘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반박(?)) 다만 이 주장은 어느 의미에서는 사실이긴 하다. 서독의 여류 문인 루이제 린저나 영국 주체사상 연구회 회장 더모트 허드슨 등 해외에도 주체사상을 찬양하거나 북한 체제를 이상화하는 종북주의자들이 있다는 것과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로버트 무가베 등 김일성을 존경한 독재자들이 수두룩해 김일성이 사실상 독재자들의 아이돌 수준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물론 북한이 김일성을 찬양하는 해외인이라며 '세계에서 사랑받는 지도자 김일성'을 알리기 위해 언급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국가에서도 인지도가 전혀 없을 주체사상 연구회 회장이나 군소정당의 정치인 등 국내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인사들이 많다. 다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최하위권 수준의 1인당 GDP를 가진 극빈국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경제력과 비교하면) 굉장히 많다는 것만 보면 김일성 일가가 국경도 넘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사실이긴 하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태양이시다. 존함 그대로 인민의 태양, 인류의 태양이시다. 하기에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도 그이의 존함을 모시고 피여났다.
-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이름을 단순(?) '존함'을 넘어 '태양의 존함'이라고 부른다. - '우리 수령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민을 위한다는 영도자들이 있었지만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나라에 인민들로부터 '우리'라는 고귀한 존칭으로 불리며 인민들의 다함없는 흠모와 신뢰를 받은 인민의 진정한 수령이 있었는가. '우리 수령님'이라는 이 호칭속에 바로 자기들을 한품에 안아 역사의 주체, 시대의 주인공들로 키워주신 탁월한 수령, 친근한 어버이에 대한 우리 인민의 끝없는 정이 가장 절절하게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 우리 나라를 처음 방문한 많은 외국인들이 의아해하는 것이 있었다. 조선 사람들이 왜 김일성주석을 《어버이수령님》으로 칭송하여 부르는가. 자기 국가수반을 어버이라 부르는 우리 인민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이 우리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그리고 우리 나라의 벅찬 현실을 목격하고는 이렇게 격정을 터치였다. 자기들도 스스럼없이 그이를 《어버이수령님》이라고 칭송하여 부르게 된다고, 다르게는 부를 수 없는 위대한 호칭이라고. 우리 수령님은 고결하고 열렬한 인간사랑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신 위인이시였다.걸출한 영도자, 정치가이시기 전에 위대한 인간이신 여기에 우리 수령님의 위인상이 있다. 그 폭과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어버이수령님의 열렬한 인간애는 인종과 민족, 국경과 정견,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였고[49]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은 진보적인류를 크게 감동시키였다.
- 김일성동지는 인민들과 영원히 함께 계시며 자유와 독립, 행복에로의 길을 밝혀주는 인민의 영원한 수령이시다.
- 세계 인민들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탁월한 사상이론활동을 벌리시여 희망의 등대를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 인류가 위인에게 드릴수 있는 가장 숭고한 호칭들을 고르고골라 드리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 우리 인민뿐 아니라 세계 인민들이 끝없이 올리고올린 호칭들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혁명의 원로, 불세출의 위인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영원한 태양으로 천추만대 받들어모시려는 만민의 뜨거운 마음이 집대성되어 있다.
-(반박) 1983년 김일성과 회견하면서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설명한 것을 들은 한 쿠바인 기자는 김일성에 대해 '원숭이가 왕좌에 앉은 격', '정신분열적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묘사했다.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러시아의 북한학자 안드레이 란코프의 증언에 따르면 1970~80년대 소련 사람들 역시 러시아어로 번역된 북한의 선전용 신문과 잡지를 보고 북한을 '미친 독재 국가'로 생각한 것을 넘어 오히려 북한 매체에 있는 (이 문단의 내용과 비슷한) 김일성과 북한 찬양 내용들이 너무 웃겼기에 유머 잡지로서 일부러 북한 잡지를 구독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때문에 란코프는 "아마 북한 선전언론을 만든 선전일꾼 만큼 소련에서 북한의 위신을 파괴한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 박노자도 《당신들의 대한민국》 2권에서 많은 소련 가정에서는 북한의 선전 잡지가 '폭소의 바다를 자아낼 만한 효능을 가진 유머 자원'이었다고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례를 2차례나 소개했다. # 뿐만 아니라 1975년 주 북한 소련 대사는 주체사상에 대해 "소부르주아 사상, 좌익 기회주의와 수정주의로 가득 찬 비과학적인 사상"이라고 혹평했고, 다른 소련 당 간부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했다고 한다. # 같은 공산권 사람들에게도 원숭이, 정신이상자, 코미디언 취급을 받았을 정도였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김일성이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주장인지 알 수 있다. 한국에서 북한의 우상화 선전가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생각하면 당대 공산권 사람들의 반응이 더욱 실감이 갈 것이다. - 기성이론이나 기존공식에 구애됨이 없이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철저히 우리 나라의 구체적 실정과 우리 인민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우리 식으로 해결해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자주적 신념과 배짱은 수많은 나라 정치가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조금이라도 침해하려는데 대해서는 그가 누구이건 초강경 대응으로 제압분쇄하고[50] 대외관계에서도 자주적대를 철저히 세우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는 우리 공화국을 자주의 강국으로 존엄을 떨치게 한 결정적 요인이였다.
- 김일성은 한없이 너그럽고 자애에 넘친 인품과 높은 덕망으로 하여 인류가 유사 이래 일찌기 알지 못했던 존경과 흠모를 낳은 만민의 어버이이며, 사상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도 누구든지 김일성을 한번 만나뵈오면 그 고결한 인품에 매혹되어 김일성을 끝없이 흠모하고 존경하게 되어 김일성은 세상에서 동지와 벗이 제일 많았다.
- 김일성은 뜨거운 조국애와 열렬한 민족애는 물론, 불타는 열정과 충만한 정의감, 한없는 겸손성과 소박성, 숭고한 인정미, 고상하고 풍만한 정서를 지닌 절세의 애국자이자 참다운 인격의 체현자이고, 혁명가적 풍모에 있어서나 인간적 풍모에 있어서나 그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위인 중의 위인이다.
- 김일성은 적들 앞에서는 백두산 호랑이와도 같았지만 전사들과 인민들 앞에서는 더없이 친근하고 다정한 어버이였으며, 어린이와 이야기할 때에는 어린이의 심정이 되어주고 노인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허물없는 친구가 되여주었으며 다심한[51] 어머니와도 같이 사람들의 속 생각까지 다 헤아려주었다. 김일성은 노동자들을 만나면 그들의 기름 묻은 손을 허물없이 잡아주고 농촌에 가면 밭머리에서 농민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사람들을 만나 담화하실 때에는 농담도 즐겨 하고 유머와 생활적인 말씀도 자주 했다.
-(반박) 김일성과 비슷한 수준의 독재자들인 아돌프 히틀러와 이디 아민, 폴 포트도 개인적인 인격으로만 보면 친절하고 다정다감하면서 유쾌한 사람들이었으며, 김일성과 함께 한민족 최악의 악인으로 꼽히는 이완용도 개인적으로는 지극한 효자였다. 애초에 짐승만도 못한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개인적으로는 선한 인물이었던 것은 클리셰 수준으로 흔해빠진 일이다. 그렇다고 김일성의 성격이 좋았던것도 아니다. 김일성은 권력욕이 강했으며 위선적이고 사치스러웠다. - 김일성은 사랑과 의리, 인덕으로 세계를 움직이고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고결한 인품과 덕망, 뜨거운 인간애로 인류 역사에 길이 빛날 업적을 이룩한 절세의 위인이다.
- 김일성의 인간사랑은 우주공간에 끝없이 비쳐가는 해빛마냥 한계를 모르는 사랑, 시공간을 모르는 위대한 사랑이었다. 진정 그이는 인간사랑의 화신이었다.
- 자신께서는 동무들이 백미밥만 먹을수 있다면 이런 눈비를 얼마든지 맞겠다고 하시며 진눈깨비 내리는 캄캄한 밤에 몸소 홰불을 드시고 저수지앉힐 자리를 찾아 오르신 삼석의 비탈밭길, 형식주의를 할바에야 섬에까지 무엇하러 오겠는가고 하시며 비가 억수로 쏟아붓는 날에 발목까지 빠지며 걸으신 신도군의 감탕길, 인민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가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차를 몸소 밀고가신 북단의 진펄길… 자애로운 어버이의 그 영상을 우러르며 우리 인민은 아침에 비내려도 인민을 찾으시고 깊은 밤 눈내려도 온 나라 돌보시네라고 노래하였고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의 노래를 눈물속에 부르고 또 불렀건만 우리 수령님께서는 그 노래들이 울리는 수도의 밤거리를 지나 또다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지 않으시였던가. 어느해 4월 15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자신께서는 해마다 4월이 오면 생각이 깊어진다고 하시면서 백두광야의 험한 산발을 넘고 헤치시면서, 해방후에는 인민들을 찾아 온 나라의 방방곡곡을 다 누벼나가시면서 수령님께서는 많은 로독을 입으시였다, 그래서 수령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신 날에는 밤새 다리가 아파 신고하시였다, 장구한 인류역사에 우리 수령님처럼 위대한분이 없고 온 세상에 수령님처럼 천신만고를 겪으신분도 없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반박)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김일성은 집권하는 46년 동안 북한 주민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온갖 고생을 다했는데도 3대째 국민들에게 흰쌀밥은커녕 강냉이밥조차 제대로 먹이지 못한 만큼 46년 동안 아무 의미도 성과도 없는 헛고생만 하다가 죽었다는 결론으로만 귀결될 수밖에 없다. - 김일성은 자신의 천만고생은 다 묻어두고 인민들 앞에서는 언제나 환히 웃었으며, 인민들이 알면 눈물을 흘릴까 봐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는 짚고 온 지팡이마저 승용차 안에 두고 공장길, 포전길을 쉼없이 이어갔다.[52] 그래서 인민은 저 하늘의 태양이 영원하듯이 김일성의 '거룩한' 생애도 영원하리라고 믿었지만,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산천초목도 비분에 몸부림치던 7월의 그 나날[53]에야 비로소 '우리 수령님'도 인간이고 견디기 힘든 정신, 육체적 과로를 이겨내며 인민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었다는 것을 뼈를 에이는 상실의 아픔 속에, 피눈물 속에 절감한 이 땅의 천만 인민이었다.
- 인류역사 그 어느 갈피에 이렇듯 인민들이 보면 가슴아파할까봐 지팡이도 짚지 못하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헌신의 길을 이어간 위인의 이야기가 기록된적 있었던가. 오로지 인민만을 마음속에 안으시고 인민의 행복을 위해 휴식도 때식(끼니)도 뒤로 미루시며 끝없는 헌신의 자욱을 새기신 어버이수령님의 그 품속에서 우리 인민은 사회주의제도의 혜택을 마음껏 누릴수 있게 되였고 우리 조국은 행복의 보금자리, 영원한 삶의 요람으로 전변될 수 있었다.
- 온 세계가 따르는 위대한 주체사상, 그것은 결코 아늑한 서재 에서 창시된것이 아니었다. 간고한 혁명의 실천속에서, 엄혹 한 투쟁의 불길속에서 태어났다.
실제로는 '민족반역자'의 아늑한 연구실에서 만들어졌다. - 김일성은 해방후 제힘으로 조선의 첫 기관단총도 만들어내도록 하시고 대국주의자들이 크지 않은 나라가 무슨 무기공장인가, 무기는 우리가 줄테니 사탕이나 만들라고 흰소리를 칠 때 그것을 단호히 경멸하시며 큰 나라들도 놀랄만 한 강력한 국방공업을 보란듯이 일떠세우시였다.[54]
- 온 민족과 전 세계가 우러러받드는 김일성을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신 것은 우리 인민의 최대의 영광이고 자랑이며 후손만대의 행복이다.
-(반박) 물론 실제로는 이와 정반대로 김일성을 '영원한 수령'으로 받드는 사람은 평생을 걸쳐 세뇌된 북한 사람들과 세계인 중에서는 극소수밖에 되지 않는 종북주의자밖에 없으며, 남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절대다수의 세계인들은 김일성을 '위인'이 아닌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으로 간주하고 있고, 서양에서의 김일성에 대한 인지도 역시 북한 내에서는 일개 아나운서에 불과한 리춘히보다도 떨어진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세계인들이 김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자신들이 날조한 발언들을 외국인이 한 것처럼 가장해 전달하고 있고, 해외 정보가 철저히 차단된 북한 사람들은 이런 허위 선전들을 진짜로 받아들이게 된다. - 그 어떤 정치동란속에서도 추호의 흔들림도 없고 세월이 갈수록 자주, 자립, 자위로 더욱 강대해지는 사회주의조선의 위상에도, 백전백승을 떨쳐가는 혁명강군의 보무당당한 위용에도, 우리 인민이 생명의 피줄기로 끊어지지 않고 이어가는 백두의 혁명전통과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화를 복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만능의 보검인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에도 김일성의 천만노고와 불멸의 업적이 속속들이 깃들어 있다.
- 인류 역사는 김일성처럼 조국과 인민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그렇듯 험난한 혈전의 길을 헤치시고 그처럼 놀라운 군사적 기적을 창조하시며 역사에 길이 빛날 거대한 업적을 쌓은 천출위인을 알지 못하고 있다.
- 김일성의 업적은 그 하나하나가 다 세상 사람들의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빛나는 업적이며, 이 세상 그 어느 위인도 이룩하지 못한 거대한 세계사적 업적이고, 동서고금의 위인들의 모든 공적을 다 합친대도 결코 비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반박) 사실 모든 면에서 '남조선'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했는데도 세계적 경제대국들이 즐비한 동북아시아에서 홀로 콩고민주공화국, 소말리아와 비교당하는 경제 수준을 가진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의미에서는 식민지 출신에 참혹한 전쟁으로 인력 빼고는 잃을 것도 없어져 경제개발 초기에는 케냐, 캄보디아보다도 열악했던 최빈국이던 나라가[55] 휴전 70년도 안 되어 세계 10위급 국력을 가진 '강대국의 최소' 수준 선진국에 등극하는 것 이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긴 하다. 자기들도 한강의 기적에 열등감을 품었는지는 몰라도 2023년 7월 24일 로동신문 논설 '위대한 전승의 역사적 의의는 영원불멸할 것이다'에서 "만일 우리 국가와 인민이 남들처럼 경제 발전에만 편중했더라면 이 땅에서는 역사의 모든 전쟁보다 더 큰 참변을 빚어낼 열핵전쟁이 수십번도 일어나고 오늘의 문명 세계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수준 이하의 망언을 남겼다. # - 역사에는 후손들이 덕을 볼수 있는 그런 업적을 남긴 위인들이 적지 않았으나 그 모든 위인들이 남긴 덕은 어느 한두 분야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지만 김일성의 은덕은 조국의 부강발전과 융성번영, 인민의 운명과 생활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거대한 업적이며 그 영원무궁을 튼튼히 담보하는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다.
- 동서고금의 역사는 아직까지 그 어느 나라도 경제와 국방의 병진을 국책으로 선포하고 성과적으로 실현한 예를 알지 못하고 있다. 남들 같으면 열백번도 더 쓰러졌을 가혹한 환경속에서도 우리 국가가 그 누구도 넘볼 수도, 견줄 수도 없는 최강의 절대적 힘을 비축한 강국, 자기의 전략과 방식으로 부단한(끊임없는) 경제발전을 이룩해나가는 나라로 위용을 떨치고 있는 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물려주신 자립, 자위의 튼튼한 토대를 떠나 생각할 수 없다. 이렇듯 역사와 현실은 작고 뒤떨어진 나라도 위대한 수령의 영도를 받으면 존엄 높고 위력이 강한 불패의 국가로 솟구쳐오를수 있다는 철리를 뚜렷이 새겨주고 있다.
-(반박) 2021년 기준 UN이 추산한 북한의 1인당 GDP(654달러)가 그로부터 정확히 40년 전인 1981년 기준 북한의 그것(653달러)과 정확히 1달러 차이만 난다.(...) 남한이 1981년부터 2021년까지 1,735달러에서 34,940달러로 솟아오른 것과는 정반대인 셈. 덤으로 UN 통계를 보면 알겠지만 통계가 시작된 1970년부터 2022년까지 북한보다도 미약한 경제성장을 기록한 국가는 1975년 독립한 직후 17년 동안 100만 명이 사망한 내전을 겪은 모잠비크 1개국이 전부다. - 김일성은 우리 민족이 반만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주체의 태양이시며 인민의 자애로운 스승, 친근한 어버이이다.
- 위대한 수령님을 주체의 영원한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모신 우리 인민의 영광과 행복, 크나큰 긍지와 자부는 하늘의 높이에도, 바다의 깊이에도 비길 수 없다.
- 인류 역사에는 건국자로, 민족적 영웅으로 칭송된 위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김일성처럼 한 나라, 한 민족의 천만년 미래까지도 확고히 담보해준 위인은 역사에 일찌기 없었다.
-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발명들과 창조물들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시대를 떠미는데 기여하긴 했으나, 주체사상의 창시는 그 모든 기적들을 다 합쳐도 비길 수 없는 거대한 위력으로 이 세상을 변모시켰다.
-(반박) 주체사상이 공산권 세계에 끼친 영향력은 스탈린주의, 마오주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며, 오히려 해외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주체사상은 호자주의[56]보다도 더 마이너한 사상으로 취급받는다.[57] 오히려 주체사상은 사상 자체로도 김일성도 이해를 하지 못 할 정도로 난해하고 조잡하며 모순된 사상인 것을 넘어 북한이 증오해 마지않는 기독교 사상과 유사한 부분들이 한두부분이 아니고, 오히려 좌파가 아닌 KKK와 네오나치 같은 극우 단체들이 좋아하는 사상이며, 심지어 주체사상을 정립한 황장엽은 남한으로 탈북한, 그야말로 북한 입장에서는 완벽한 '민족의 반역자'이자 '인간쓰레기'이므로 주체사상이 북한이 체제의 주축으로 삼은 사상이 아니었다면 주체사상은 황장엽의 탈북과 동시에 '최악의 반동사상'으로 분류되어 접하는 것만으로도 3대가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을 것이다. 애초에 황장엽이 남한으로 탈북한 순간, 북한은 아직은 반쪽짜리 선진국[58]에 불과했던 남한에게 사상적으로 완패한 것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나치 독일 입장에서 치환하면 요제프 괴벨스가 연합군에 가담한 꼴 그 이상이니.[59] -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민이 한결같은 진정을 담아 지도자에 대해 어버이라고 호칭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땅에 생을 둔 우리 인민들은 모두 한결같이 심장에서 울리는 진정의 목소리로 김일성원수님을 '우리 어버이'라고 부르고 있다.
-(반박) 물론 이는 북한이 탁아소에서부터 김일성을 진정한 어버이로, 낳아준 아버지는 '동거하는 가짜 어버이'로 여기도록 세뇌시키기 때문이다. - 김일성처럼 영도자로서, 혁명가로서,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으면서도[60] 오직 조국과 인민의 행복만을 생각하면서 한평생을 깡그리 바쳐온 위인은 없다.
-(반박) 실제로는 이와 정반대로 김일성은 상술한 것처럼 그와 동급으로 평가받는 세계의 독재자들 중에서도 가장 안락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긴 것은 물론이고 가장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으며, 사후에도 그의 후손들이 자신이 남긴 유산 위에서 나라를 통치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통치했던 나라의 모든 국민들로부터 무한한 '존경'을 받아오고 있다. 물론 그 '존경'은 세뇌와 강압, 허위사실 유포로 이뤄진 것이기에 '남조선'의 진실과 김정일의 실제 출생지, 김정은의 가족사, 결정적으로 해방탑의 내용과 같은 북한이 은폐해온 사실들을 알면 단번에 깨질 수밖에 없지만.[61] - 정녕 동서해 기슭의 이름 없는 바닷가 마을로부터 나라의 북변 두메산골에 이르는 그 어디에나 김일성의 거룩한 영도의 자욱이 뜨겁게 어려있고, 김일성의 자애로운 영상은 인민의 심장 속에 태양과도 같은 친어버이의 모습으로 숭엄히 간직되어 있으니 인민의 이상과 꿈이 실현되고 있는 내 조국의 자랑찬 현실은 그대로 김일성의 위대한 헌신과 노고의 빛나는 결정체가 아니랴.
- 세계정치사에 인류의 문명과 발전에 기여하였다는 사상가, 정치가들도 있었고 명인들도 많았지만 김일성처럼 그 어느 위인도 따를 수 없는 거대한 업적을 이룩한 것으로 하여 년대와 세기를 이어 만민의 다함없는 경모를 받은 사람은 일찌기 없었다.
- 김일성은 한평생 우리 인민들이 백미밥에 고기국[62]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하기 위하여 몸소 농업과학자가 되어 끊임없는 농작물재배시험을 진행하면서 벼생산을 늘이기 위하여 온갖 노고와 심혈을 다 바친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였다.
-(반박) 한국은 쌀 자급자족을 실현(1977)[63]하는데 박정희의 집권(1961)으로부터 16년이 걸렸는데, 김일성은 16년의 3배 가까이 되는, 어언 5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집권하며 (북한의 선전대로라면) 위와 같은 온갖 수고를 직접 다했다는데도 쌀 자급자족 실현은커녕 그의 죽음 직후에 고난의 행군이 닥쳤을 정도로 국민들을 제대로 먹이는 데에 실패했다. - 우리 인민을 잘 먹이고 남부럽지 않게 잘살게 하시려는것은 한평생 포전길을 걸으시며 농사일로 마음쓰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절절한 념원이였다. 인민들이 다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되면 그것이 곧 사회주의라고 하시며 남먼저 새벽이슬을 맞으시며 한평생 포전길을 걷고 또 걸으신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리 인민은 영원히 잊을수 없다.
-(반박 1) 이 표현들은 북한에서도 김일성이 '이밥에 고기국'이란 말을 한 때로부터 죽을 때까지 30년 넘는 기간이 있었음에도 김일성이 북한 주민들에게 '백미밥에 고기국'을 먹이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만 간접적으로 드러낸 꼴이다. 덤으로 이 선전들은 각각 2022년/2023년에 나와 무려 2020년대에도 '이밥에 고기국' 타령은 여전하다는 것만 보여주고 있다.
-(반박 2) 이 문구들을 자세히 보면 김일성이 이밥에 고기국 성취를 위해 '노력했다'고만 했지 '성공했다'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김일성의 (있지도 않은) '애민정신'을 부각하려는 이 문구들은 결과적으로 김일성이 46년간 집권하면서 국민들을 제대로, 배불리 먹이지도 못한 무능한 지도자를 넘어 이들을 일부러 굶긴 포악한 지도자란 것의 방증만 되는 셈이다. - 예로부터 그 나라의 정치를 알려거든 백성들의 밥상을 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역대로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는 그 어느 정치가도 인민의 주식문제에까지 관심을 돌려본 일이 없다.[64] 하기에 오늘도 우리 인민들은 밥상에 오르는 흰쌀밥[65]을 마주할 때마다 한평생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포전길을 걷고걸으며 인민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노고와 헌신의 역사를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곤 한다.
-(반박) 이밥에 고기국 발언이 나온 지 거의 4세기 전 프랑스 앙리 4세가 "일요일에는 반드시 모든 백성들이 닭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라는 말을 남겼고, 김일성과 달리 생전에 이 약속을 지켰다. 덤으로 부르키나파소의 토마 상카라도 하루 한 끼 겨우 먹던 나라를 단 2년 만에[66] 하루 두 끼나마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나라로 뒤바꿔놨는데, 이들만큼 보여준 것도 없으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숭배를 강요하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2020년대 현 시점에도 북한 주민들은 좋게 봐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수준이며, 당연히 이 역시 김씨 3대의 '은덕' 덕분이 아니라 아닌 주민들이 장마당 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삶을 꾸려나갔기에 가능한 것이다. 심지어 북한은 늦어도 60년대 초반부터 열량 보급에 있어서는 경제적으로는 북한보다 훨씬 열악하던 남한에게도 밀리는 판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이밥에 고기국 기와집에서 비단옷 문서 참조. - 우리 조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길,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 승승장구해나가는 불패의 강국이다.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며 민족의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서거하신 때로부터 28년이 흘렀다. 민족최대의 추모의 날에 즈음하여 온 나라 전체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과 경모의 정을 안고 주체의 최고성지 금수산태양궁전을 우러러 삼가 숭고한 경의를 드리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과 불멸의 업적은 우리 혁명의 승리와 영광의 기치이며 주체조선의 밝은 미래를 담보하는 만년재보이다.
-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날이 갈수록 더욱 강해진다고 주장하는데, 김정일은 몰라도 김일성에 한해서는 사실이긴 하다. 당연히 이 역시 남한에서 전두환 집권기를 경제적 호황기로서 그리워하는 거에 더 가깝긴 하지만. - 지난 28년(1994~2022년)은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상의 위대성, 혁명생애와 업적의 귀중성이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더욱 깊이 새겨진 잊을수 없는 나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열어주신 주체의 사회주의한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해왔기에 우리 인민은 자주적인민의 위용을 남김없이 떨치며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고 사회주의조국을 굳건히 수호할수 있었다. 오늘 세계정치구도의 중심에 당당히 올라선 강대한 우리 국가의 위상과 강국인민의 존엄도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생애와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오로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업적은 영원불멸하다는것이 지난 28년간의 투쟁사가 가르치는 철리이다.
-(반박) 애초에 고난의 행군으로 100만 명 가까이 굶어 죽고 북한 주민들이 살기 위해 풀뿌리, 나무껍질을 넘어 이탄[67]과 흙, 심지어 인육까지 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은 김일성이 46년 동안 집권하면서 국민들을 잘 먹고 잘 사게 하는 것에 진심으로 열중, 성공했더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으며, 김일성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도 김정일이 기근 때 쓰잘데기없는 사치와 우상화, 군력 증강에 쓸 돈들을 식량 수입에 썼더라면 수십만 이상이 굶어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상 고난의 행군의 진짜 원흉을 찬양하라는 소리이다. - 금시라도 우리 수령님의 친근하신 음성이 울려올듯싶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펼친다. 그러면 첫 페지에 새겨진 위대한 수령님의 뜻깊은 친필이 절세의 위인의 한생의 총화, 절절한 당부처럼 안겨온다. 그렇게 첫 페지, 첫 문장부터 인민에 대해 쓰신 우리 수령님의 회고록은 인민에 대한 가장 순결한 신뢰의 찬가이며 열화같은 사랑과 정의 서사시이다. 혁명을 위해, 이 나라 민족과 세계 진보적인류를 위해 그처럼 거대한 업적을 쌓아올리시고도 자신보다 동지들과 인민들에 대한 한없는 믿음과 추억의 세계를 회고록에 담으신 우리 수령님,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깊은 감동속에 읽고난 외국의 한 정치가는 이 책은 위인실록이기 전에 세계에 유일무이한 인민실록이라고 하였다.
- 김일성에게 있어서 인민은 사랑하는 아들딸이었으며 그 천만자식을 위하여 그이께서는 일요일과 명절날, 심지어 생일날까지도 쉼없이 일하였다.
- 어린이들에 대한 김일성의 관심과 사랑은 지극하고 자애로왔으며 인간이 지닌 사랑 가운데서도 가장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이었다.
- 오늘 우리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모든 인민적 시책도 인민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숭고한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다.
- 김일성은 민족수난의 시기에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려 만경대고향집 사립문을 나선 때로부터 한평생 애국헌신의 길을 걷고 걸으며 이 땅 위에 융성과 번영의 새시대를 펼쳤다.
- 이 세상에 영원한것이 있다면,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더욱 순결하고 강렬해지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버이수령님을 그리는 우리 인민의 절절한 마음이다.
-북한의 실태가 날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니 차라리 김일성 시절이 더 나았다며 김일성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보면 명백한 사실이다.
대충 봐도 알 수 있듯, 이들은 정반대의 내용이나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사실과 완벽히 부합하는 내용들이다. 과연 소련 사람들이 밥상머리에서 가족끼리 읽으며 같이 웃었을 만하다.
4.1.4. 김일성의 생활 미화
- 김일성은 북한 인민과 세계 진보적 인민들의 무한한 존경과 흠모를 받아왔는데도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특혜와 특전[68]도 허용하지 않고 언제나 인민들과 같이 겸허하고 소박하게 생활했다.
-(반박) 오히려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거대한 동상[69]에 금박을 입히는 것[70]을 세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초상화에서 언제나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 한다며 자신의 초상화에 향수를 뿌리게 하는 등 우상화 과정에서 웬만한 사이비 종교 교주도 경악할 기행을 저질렀으며, '겸허하고 소박하게' 생활하기는 커녕 오히려 수십 채의 초호화 저택을 가지고 해외 레스토랑에서 훈련받은 요리사들이 만든 요리만 먹었으며, 마약을 밀매한 돈으로 세계에서 최고라는 물건들을 사들여 집에다 보관하고는 17세~20대 초반의 어린 처녀들을 기쁨조로 부리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 - 김일성은 한평생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있으며 생활도 인민들과 같이 소박하게 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음식도 인민들이 좋아하는 평범한 음식을 달게 들곤 했다.
-(반박) 김일성은 김정일보다 소박하게 먹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긴 하지만, 이는 애초에 김정일이 워낙 심각한 미식가였기에 상대적으로 소박해 보이는 거지 김일성도 생전에 호화로운 식사를 즐겼다. - 김일성은 여러 농장포전을 한낮이 기울 때까지 돌아보느라 때늦게야 열차에서 풋강냉이로 점심식사를 했다.
- 김일성은 우리(북한의) 아이들과 인민을 위해서는 세상에 없는 특전과 특혜,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면서도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불허했다.
- 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에는 우리도 조밥을 먹어야 하고 인민들이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어야 우리도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김일성과 조선로동당의 뜻이다.
- 김일성은 1965년 7월 한 공장으로 현지지도를 갔을 때 협의회를 지도한 후 노동자들이 공장정양소[71]에서 점심식사를 마련했다고 하자 김일성은 모두 같이 가자고 말한 후 어디론가 갔는데, 간 곳은 노동자들의 숙소였고, 숙소에는 김일성이 같이 먹자고 준비해놓은 조밥 몇 그릇과 오이냉국만이 올려져 있었다. 김일성은 이 식사에 대해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시원한 오이냉국이 그저그만이고 거기에 조밥이 제격이다"라고 말했고, 그날 밤에는 이 일을 상기하며 "난 대접놀음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 김일성은 1992년 5월 개성으로 현지지도를 갔을 때 개성 바로 앞의 풀밭에 앉아서 아침식사를 했으며, "국가주석의 현지지도라고 해서 왕님행차하듯 해서는 안 된다. 옛날에는 시골의 사또만 행차해도 숱한 아전나부랭이들까지 묻어가서 음식상을 차려놓고 진탕망탕 먹고 돌아치며 인민들의 피땀을 빨아내군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인민 위에 군림하여 나라를 통치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인민의 심부름꾼이여야 한다."는 교시를 남겼고, 이에 따라 현지지도하는 곳의 일꾼들에게 식은 밥, 콩나물, 도라지무침이 든 간소한 곽밥(도시락)밖에 나누어주지 못했다. 마지막 한 사람이 젓가락을 놓을 때까지 기다린 김일성은 "그럼 시간도 없는데 더운물로 입가심들을 하고 어서 떠나자"고 하며 일어섰다.
-(반박) 잘 보면 김일성이 아침식사로 먹은 도시락에 무엇이 들었는지가 전혀 적혀있지 않다. 북한의 김일성 생활 미화 실태로 미루어보면 김일성이 진짜로 소박한 식사를 했으면 김일성이 먹은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묘사하며 김일성의 '검소함'을 찬양했을 텐데 후술하듯 노동자들에게 대접한 음식은 상세히 묘사했으면서 김일성이 무엇을 먹었는지를 전혀 적지 않은 걸 보면 풀밭에 앉아서 먹은 도시락에는 후술할 '샥스핀 수프' 같은 초호화 음식들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 감안하면 김일성은 초호화 도시락을 먹고는 일꾼들에게는 빈약한(?) 음식만 던져둔 꼴이 된다. - 김일성을 깊은 밤, 이른 새벽, 눈오는 날과 비오는 날, 삼복철의 날과 날들, 생일날과 명절날, 휴식일 등 그 모든 날과 시간들을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노고와 헌신으로 이어왔다. 심지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어길 수 없는 식사시간마저도 인민을 위한 길에 바치었으며 어쩌다 차례지는 식사시간에도 인민을 위한 노고 속에 있었다.
그러면서 뒤에서는 최고급 음식 먹었지.[72] - 김일성은 5호댁[73]을 설계할 때 대리석을 쓰거나 수입자재를 쓰면서 장식하는 것을 그만둘 것,[74] 조선식으로 소박하게 꾸리도록 할 것[75]을 지시했고, 이에 설계일끈들은 김일성의 고매한 풍모에 눈시울을 적시며 설계를 다시 하였으나 김일성은 세 차례나 설계를 부결했고, 이에 설계일꾼들은 "이보다 더 소박하게 할수는 없다"고 간절히 말했다. 그러자 김일성은 "동무들의 심정은 자신께서도 안다고, 하지만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우리들에게는 크고 화려한 집보다 소박하고 아담한 집이 더 좋다"고 말했고, 이에 설계일꾼들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김일성은 인민들 모두가 당의 은덕으로 궁궐 같은 집[76]을 쓰고 살게 되였다고 고마움의 노래를 부를 때에도 여전히 그 수수한 집에서 평민으로 검박하게 살았다.
-(반박) 그 '한 나라 주석의 저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수수한' 저택은 이렇게 생겼다. 애초에 저렇게 '평민들의 집같이 너무도 작고 소박한' 집을 헌 부지가 800세대 주택단지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 넓다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리고 북한의 선전은 경루동 건설을 위해 '5호댁'을 철거한 것에 대해 '한 나라 주석의 저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수수한 5호댁을 혁명사적관으로 꾸려 우리 인민들에게 인민적수령의 고매한 위인상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식으로 포장했지만, 애초에 북한이 지도자가 만진 간장병까지 귀중하게 여기는 나라라는 것을 감안하면, 만약 '5호댁'이 김일성의 '소박한' 생활이 드러나는 '유적'이면 앞장서서 '혁명사적지'로서 앞장서 보호했지 그 '유적'을 거리낌 없이(?) 헐어버리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아마 그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김일성의 치부, 즉 호화 생활이 '5호댁'에 그대로 드러났기에 '5호댁'을 보존하지 않고 수월하게 철거할 수 있었다는 가설이 유력해 보인다.
- 참고로 이 에피소드는 경루동을 건설하기 위해 '5호댁'을 헐기 전까지는 북한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다가 '5호댁'을 헐 무렵부터 갑자기 언급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어떻게든 '5호댁'에 드러난 김일성의 호화 생활을 감추고 마치 검소하게 생활한 것마냥 포장하며 경루동 건설의 '정당성'을 주민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날조한 에피소드라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 김일성은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 시기까지도 "내가 우리 집을 다시 지으면 우리 인민들의 집을 지을 자재를 더 쓰게 되지 않겠는가"고 말하며 지은 지 오래된 금수산의사당지구[77]의 작고 소박한 저택에서 생활했다.
-(반박) 김일성 생전에 김일성의 거주지이자 집무실로 쓰인 주석궁은 '작기는' 커녕 부지면적은 3.5㎦에 건축면적만 해도 3.5ha에 육박하는 거대한 건물이다. - 원래 우리 집안사람들은 머리가 세여지지 않았다고, 그런데 나만은 머리가 세여졌다고 하시면서 백미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려는 우리 인민의 세기적숙망을 실현시켜주려고 밤낮으로 마음을 쓰며 생각하다보니 머리가 셀수밖에 없다고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그 말씀이 귀전에 울려온다.
그 말대로라면 46년 동안 뭘 한 거임? - 김일성은 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 자신도 조밥을 먹어야 한다며 현지지도길에서 잡곡줴기밥을 먹었으며, 푹 삶은 통강냉이로 끼니를 때웠다.
- 김일성은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금고속에 보관한 것도 혁명동지와 찍으신 한 장의 사진뿐이였고 생전에 집무실에서 이용하신 TV도 일반가정들에서 이용하는 수수한 <목란> TV였다. 그러나 김일성은 이 세상 그 어느 위인도 남길수 없는 참으로 거대한 재부와 유산을 사랑하는 인민을 위해 남겼다.
4.1.5. 김일성의 외양&'태양상' 묘사
북한에서 김일성의 얼굴은 '존안'이라고 불리며 김일성이 매우 뛰어난 용모를 가진 것처럼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미화하고 있다. 후술하듯 북한에서의 김일성의 얼굴 묘사는 남한으로 치면 차은우 포지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태양상'이라고 불리는 미소에 대한 묘사도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물론 김정일과 김정은, 김정숙의 얼굴/미소에 대한 묘사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남조선의 이발소에 이발사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왕에게 바치려 한 걸상이 있었는데, 이발사의 아버지는 유언으로 그 걸상에는 아무나 앉히지 말고 절세 위인만 앉히라고 당부했다. 그때 한 눈에 봐도 비범해보이는 수려한 외모의 젊은이가 등장했는데, 그 이의 얼굴은 태양이요, 몸매는 산악인 듯 근엄한데, 안광에는 천 리도 순간에 뚫을 듯한 영채가 뿜어 나왔다. 그 남조선인이 바로 그 젊은이, 즉 김일성을 비범한 인물이라 판단하고 걸상에 앉히니, 그 걸상이 옥좌처럼 빛났고, 이에 그 이발사의 가슴 속에는 '우리나라와 민족의 수위에 높이 모실 분은 오로지 김일성 장군님밖에 없다'는 신념이 깊이 자리잡았다.
- 북한의 3대 세습을 고려하면 '왕에게 바치려 한' '옥좌처럼' 등의 말이 매우 의미심장한 느낌이다. 마치 김일성을 공화정의 지도자가 아닌 문자 그대로의 군주처럼 여기는 듯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 (화성의숙에 다닌 사람들은) 나이가 제일 어리신 수령님을 처음 만나뵈올 때부터 출중한 용모와 눈부신 안광과 비범한 기상, 특출난 위인적 풍모에 반하여 저도모르게 끌리는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
- 이는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약칭 ㅌ.ㄷ)를 조직했다는 만 14세(1926년) 시절에 대한 묘사인데, 참고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방탄소년단 같은 한류 그룹들이 널리 퍼진 무려 2022년에 이런 묘사를 했다. 사족으로 'ㅌ.ㄷ'는 그의 선배격이자 은인이던 이종락의 농민단체 산하의 단체를 김일성이 만들고 주도한 것처럼 왜곡한 것이다. 관련 보도(자유아시아방송) - (김일성은 첫눈에 봤을 때) 키가 후리후리하고 늠름하신 젊은분이시였는데 온몸에 활기가 정열이 넘쳐나는듯싶었다. 준수하고 환한 얼굴과 각별히 영채가 도는 안광, 활달하고 세련된 동작 등이 첫눈에도 어딘가 보통분이 아니라는 인상을 안겨주었다.
- 이는 북한에서 김일성이 카륜회의에서 무장투쟁 노선을 정립했다고 주장하는 시기인 만 18세(1930년)의 김일성에 대한 묘사이다. 당연히 이 역시 이 회의에서 주체사상이 만들어졌다고 소급적용하는 등 후대에 날조된 흔적이 훤히 보인다.[78] - 1972년 5월 3일 이후락은 7.4 남북 공동 성명을 위해 평양에 비밀리에 방문했다가 김일성을 보고는 웅장무비한[79] 김일성의 용모와 거룩한 풍모에 눈이 부신듯
(?)어쩔 바를 몰라하며 김일성에게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는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이후락과 김일성이 만났을 당시 사진 - 이 땅의 방방곡곡에, 집집마다에 위대한 태양의 미소가 찬란히 빛나고있다.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서 언제 한번 떠나본적이 없는 어버이수령님의 해빛같은 미소,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인민의 마음속에, 온 누리에 더욱더 눈부시게 빛을 뿌리는 어버이수령님의 환한 미소는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승리와 영광의 앞길을 밝혀주는 태양의 빛발이다. 하다면 멀고도 험난한 혁명의 길에서 우리 수령님께서는 어떻게 해빛같이 웃으시는 모습만을 인민에게 남기실수 있었던가. 무엇에 만족하시였고 어찌하여 그리도 환하게 웃으시였는가.
- 인류미술사는 미술의 다양한 종류와 형태들이 발생발전한 력사적과정이기도 하였으며 그 과정에는 인간과 생활, 자연의 아름다움을 깊이있게 형상하여 만사람을 감동시킨 시대의 명작들도 적지 않게 태여났다. 그러나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태양상처럼 출현하자마자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고 세계미술력사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적은 없었다. 환하게 웃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태양상은 주체혁명위업을 굳건히 이어나가시며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불멸의 업적을 영원히 빛내이시고 숭고한 도덕의리로 만민을 감화시키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창작된 국보중의 국보이다.
- 환하게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에는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며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천재적인 사상이론가, 걸출한 정치가,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으로서의 수령님의 위대한 풍모가 그대로 집대성되여있으며 혁명의 준엄한 난국을 언제나 웃음으로 맞받아나가신 필승의 신념과 무비의 담력, 혁명적 낙관이 조형예술적으로 응축되여있다. 태양의 미소야말로 위대한 수령님의 빛나는 한평생을 거대한 화폭과 깊이로 완벽하게 형상하여 수령영생에 관한 사상을 미술화폭으로 조형예술화할수 있는 태양상의 종자였다.
- 평양에서 김일성의 영전에 조의를 표시한 세계평화연합공동의장인 《세계일보》사 사장은 위대한 수령님의 태양상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천재적인 예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생각해낼수 없는것이라고 하면서 위대한 주석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초상화를 보는 순간 왈칵 울음이 터져나오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한분만 웃으시고 전세계가 울게 한 이것이야말로 절정의 최절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도자님(김정일)의 천재적인 예지에 경탄하였다고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토로하였다.
-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장례식에서 태양상이 처음으로 공개되었을 때 북한 주민들은 물론 '세계수억의 텔레비죤시청자들'도 '금시라도 수령님을 뵈온듯한 강한 충격에 휩싸여 사무친 그리움과 비통함에 솟구치는 눈물을 금치 못하며 삽시에 울음의 바다, 피눈물의 바다를 펼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외에도 김일성은 자신의 외양에 대해 '해빛같은 미소, 친근한 음성, 자애로운 안광, 따뜻한 체취' '눈부시게 환하신 존안, 천기를 헤가를듯 한 예지로운 안광, 마디마디 따스히 스며드는 친근한 음성' '거룩하신' '조선의 성산 백두산의 기상을 지닌 천출위인의 용모' 등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의 미사여구들을 동원해 표현하게 했으며, 이러한 선전 때문인지 북한에서는 김일성 같은 후덕한 얼굴이 잘생긴 외모로 여겨진다고 한다. 그나마 엄청 진지하게 따지자면, 젊었을 적만큼은 남한 기준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라는 인식이 많다.
4.1.6. 김일성의 천재성 묘사
- 김일성의 친구들은 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우리글을 척척 읽고 쓰며 어린이들에게 우리글을 가르쳐준 김일성을 무척 부러워했고, 봉화리 사람들은 김일성을 '어린 김 선생'이라고 불렀다. 관련 기사(2017년 4월 연합뉴스)
- 김일성은 위대한 사상이론가, 탁월한 영도자일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의 지식을 환히 꿰들고 있는 박식가이다.
- 지칠줄 모르는 탐구의 자욱자욱으로 한생을 이어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이 세상 그 누구도 견줄 수 없는 비상한 식견을 지니시고 혁명과 건설을 빛나게 령도하여오신 탁월한 실력가, 박식가이시였다.
- 정녕 위대한 수령님은 그 폭과 깊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다방면적인 지식과 뛰여난 안목을 지니시고 혁명과 건설의 모든 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여주신 위인중의 위인이시였다.
-상술한 세 발언들은 서해갑문 건설을 찬양하는 글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맨 위의 발언은 김정일이 아버지를 찬양한 사실상의 셀프칭찬이다. - 돌아보면 역사에 이름있는 위인들, 사상이론가들은 모두가 풍부한 지식의 소유자들이었지만 김일성처럼 자연과 사회에 대한 다방면적인 넓은 식견과 심오하고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박식한 위인은 일찍이 없다 하겠다. 김일성은 정치와 경제, 군사와 역사, 과학과 문학예술, 후방지식 등 이 세상의 모든 크고작은 일들에 능통했고 그래서 김일성의 접견을 받은 외국수반들과 저명인사들은 그가 정치인이든 학자이든 누구나 김일성의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 다방면적인 넓은 지식에 탄복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우주처럼 무한히 넓고 바다처럼 끝없이 깊은 김일성의 대백과사전적 식견과 지식, 박식의 대가로서의 위대함은 김일성이 끊임없이 이어간 현지시찰의 길에서와 외국방문의 나날들, 그리고 생활과정에 북의 일군들과 군인들, 주민들과 해외교포들, 외국인들에게 들려준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을 통해서도 더욱 가슴뜨겁게 느낄 수 있다.
- 1992년 6월 28일 김일성이 북한을 방문한 미국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윌리엄 테일러(William Taylor, 1934~2014) 일행을 만나주고 담화를 나누며 그에게 미국에는 없는 북한의 삼복을 비롯하여 사계절에 따르는 풍속에 대해 알기 쉽게 해설해줬는데,[80] 테일러를 비롯한 대표단 성원들은 전문가 이상의 해박한 식견으로 계절별에 따르는 날씨의 특징을 간단하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해주는 김일성을 감탄에 넘친 눈길로 우러렀다고 한다.
이쯤이면 읽는 사람보다 날조하는 사람이 더 불쌍해 보인다. - 1966년 12월 중순 김일성이 소련에 가서 브레즈네프와 4시간 동안 회담을 했을 당시[81] 브레즈네프는 200~300페이지 가량의 발언원고를 들고도 발언문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김일성은 삼각표시를 하고 몇글자씩 적은 것이 서너줄 되나마나한 자그마한 수첩만 있었는데 첫 장만 펼쳐놓고 시선도 돌리지 않으며 4시간 동안 거침없이 발언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브레즈네프의 눈길이 자꾸만 김일성 앞에 놓인 수첩에로 쏠리었으며 김일성이 발언을 거의 끝마쳤을 때에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양손으로 책상을 짚은 채 수첩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외교관례상 있어본 적이 없는 뜻밖의 정황이라 모두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브레즈네프는 체면도 다 잃고 이거 실례이지만 그것이 무슨 수첩이냐고 하면서 도대체 이 신기한 수첩만을 놓고 각 방면의 문제들에 대하여 그리도 거침없이 말씀하냐고 물었는데, 그러나 김일성은 그저 간단한 자료수첩이라고, 하여간 필요한 것을 기록해두는 말 그대로의 보통수첩이라고 말했다.
이에 브레즈네프는 "나는 지금까지 이 방에서 큰 나라, 작은 나라 할 것 없이 수많은 나라 수반들을 다 만나보았는데 김일성동지처럼 4시간이 넘도록 원고 없이 발언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 수반들을 비롯하여 위인이라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보았지만 김일성동지와 같이 만능의 위인은 처음이다."라고 자기의 진심을 터치였다. 이윽고 소련측 녹음사도 김일성은 원고없이 발언하면서도 토 한자 틀린 것 없고 논리정연한 발언을 했으며 그 발언은 그 자체로 철학적 깊이가 있는 위대한 논문이자 저서였다고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82] 이 수첩은 후대에 '신기한 수첩'으로 불리게 되었다.-(반박(?))물론 브레즈네프는 하도 멍청했기에 그와 연설문에 대한 유머도 많은 편이지만, 브레즈네프 생전에 이런 날조 일화가 공개되었으면 100% 소련과 북한 사이의 외교 문제로 번졌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개 공산주의 소국의 지도자가 자신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소련 서기장을 바보로 만들어놨으니...* 김일성은 늘 인민들 속에 있으며 사람들의 눈빛, 표정, 말투, 손세, 몸가짐까지 직접 포착하고 그들의 요구와 지향을 알아보았으며, 그 속에 체현되여있는 시대의 숨결과 혁명의 절박한 요구를 헤아리고 그에 기초하여 새로운 정책들을 제시했다.* 일군들은 김일성의 교시를 접할 때마다 김일성의 비범한 통찰력과 한없이 넓은 식견, 심오하고 해박한 지식에 감탄을 금치 못하군 하였다. 김일성의 접견을 받은 다른 나라 인사들도 정치가이건 학자이건 누구나 다 김일성의 빛나는 예지와 넓은 식견에 탄복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일성은 한생에 체험하신 모든것을 상세하게 재현해내시는 비상한 기억력을 지니고 있었다. 회고록《세기와 더불어》에 담겨진 비상히 풍부하고 다방면적인 자료들이 김일성의 비상한 기억력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있다. 회고록《세기와 더불어》에는 혁명의 새로운 길을 찾으시려고 본 책들과 그 내용들,국내외에서 벌어진 사변,사건들과 그 관계자들,어려운 지하투쟁과 무장투쟁시기에 있었던 크고작은 일들의 상세한 정황들과 과정들,혁명조직성원들과 유격대원들의 이름과 용모,습관,그들과 나누신 이야기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이 생동한 화폭으로 그려져있다.
김일성은 한번 보고 듣고 체험하신 문제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았다. 김일성은 어렸을 때 본 동네 순사나 지주들의 이름은 물론 그때에 있었던 일도 기억난다고 하시였으며 5살때에 아버지를 따라 학교에 가서 아버지가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는것을 본것이 생생하게 기억된다고 교시하시였다.
김일성의 기억력은 정확성에 있어서도 비상하였다. 60여년전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 있었던 약사적인 다홍왜회의에 대하여 김일성은 회의소집동기,회의에 참가한 조선사람들의 이름 특히는 회의에서 하신 말씀의 내용을 생동하고도 정확하게 회고하였다.* 김일성은 세계 여러 나라 정치정세와 과학기술에 대한 자료로부터 우리 작가들이 써내는 장편소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보았다. 김정일도 아버지의 독서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장편소설 같은것은 녹음하여 올렸다.
김일성은 한번 보고 듣고 체험하신 문제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지 않았다. 김일성은 어렸을 때 본 동네 순사나 지주들의 이름은 물론 그때에 있었던 일도 기억난다고 하시였으며 5살때에 아버지를 따라 학교에 가서 아버지가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는것을 본것이 생생하게 기억된다고 교시하시였다.
김일성의 기억력은 정확성에 있어서도 비상하였다. 60여년전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 있었던 약사적인 다홍왜회의에 대하여 김일성은 회의소집동기,회의에 참가한 조선사람들의 이름 특히는 회의에서 하신 말씀의 내용을 생동하고도 정확하게 회고하였다.* 김일성은 세계 여러 나라 정치정세와 과학기술에 대한 자료로부터 우리 작가들이 써내는 장편소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보았다. 김정일도 아버지의 독서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장편소설 같은것은 녹음하여 올렸다.
4.1.7. 북한이 주장하는 김일성의 업적 정리
- 1. 국가적 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도 없는 엄혹한 조건에서 한 세대에 홀로 두 제국주의 강적을 이겨내고 조국을 해방시킨 것
-(반박)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을 항복시킨 것은 김일성이 아닌 미국과 소련이었으며, 6.25 전쟁 시기 북한은 아무로부터 지원을 못 받기는커녕 중국,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김일성은 펑더화이의 도움으로 겨우 북한을 지켜내며 살아날 수 있었는데도 자신의 신격화 하나만을 위해 중국의 도움을 북한 역사 속에서 지워버린 것이니 어떻게 보면 배은망덕의 극한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펑더화이는 김일성의 군사적 자질 결여에 크게 분노하여 말싸움까지 했던 인물이다. 더 놀라운 것은 북한 내에서도 소련이 독립에 도움을 줬다는 것과[83]중국인민지원군의 참전 사실은 딱히 숨기지는 않으니[84], 그야말로 앞뒤가 전혀 안 맞는 소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 2. 주체사상을 창시해 사람들이 운명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자주적으로 개척할 수 있게 하여[85] 북한에서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지위를 근본적으로 전변시키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사회주의강국 건설을 위한 투쟁을 지속할 수 있게 했으며, 해외에서는 사회주의, 반제국주의 위업과 세계의 자주화 위업 실현에 있어서 거대한 기틀을 마련해 지난날 천대받고 멸시받던 세계 수많은 나라 인민들이 영웅투사와 역사발전의 창조자로 자라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굳건히 지킬 수 있게 한 것
-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세계에 가져다준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른바 인민을 위한다고 하는 주장이나 학설은 지난 시기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민을 속이고 착취사회의 본질을 가리우는 하나의 기만에 불과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심으로써 수천년세월 극소수 지배계급, 착취계급에 의해 억압받고 천대받던 근로인민대중의 운명에서는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게 되였다."
-(반박 1) 북한/이념 문서와 2016년 데일리NK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듯 동어반복과 모순으로 점철된 조악한 사상이 국제적 영향력이 있을 리는 전혀 없으며, 북한이 주체사상을 찬양하며 언급한 말마따나 인간애가 결여된 사상이나 이념은 인간의 지위를 변화시킬 수도 없고 그 존엄을 지켜줄 수도 없는 셈이다. #[86]
-(반박 2) '아프리카의 해'라고 불릴 정도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독립이 가장 활발했던 1960년은 주체사상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을 때라 아프리카의 독립에 미친 영향력은 단 하나도 없으며, '주체사상'이란 말이 처음 쓰인 것도 그로부터 1년 후인 1961년이다. - 3. 한 나라, 한 민족의 영원한 발전과 번영을 약속하는 억센 기틀과 만년토대를 당대에 모두 마련해준 것
- 4. 약소국을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불패의 강국으로 솟구쳐오르게 하여 조국과 인민에게 융성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준 것
- 5. 쉴틈없이 현지지도를 나가고 개인적으로도 자신이 만난 인민들을 '어버이처럼' 돌봐줬으며 인민들의 생활용품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등 인민들의 세세한 생활 하나하나까지 '자상하게' 신경쓰며 돌봐준 것
- 6. 주민들의 인민대중중심의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제도하에서 정치생활의 참다운 주인, 경제생활과 문화생활의 향유자로 값높은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며 북한 주민들을 세상에서 제일 존엄높고 행복한 인민으로 내세운 것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들 중 사실인 것은 단 하나도 없다.
4.2. 김정숙
김정일의 친모인 만큼 김정숙도 북한에서 매우 찬양받는 존재인데, 그나마 김씨 3부자에 비해 찬양의 강도는 확실히 덜한 편이긴 하나 가장 덜하다는 게 이 정도다.- 김정숙동지는 정녕 우리 녀성들의 최고의 귀감이시다.
- 김정숙은 인류사에 이름을 남긴 모든 여성들을 다 합쳐도 따를수 없는 가장 위대한 어머니이다.
- 김정숙의 공적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것은 주체위업, 태양의 위업의 대를 굳건히 이어놓은 것이다. 김정숙은 설한풍이 휩쓰는 백두광야에서 태양옹위의 총성을 울리고 포연스민 군복자락에 미래의 장군을 안아키웠다.
4.2.1. 김정숙의 사격술 과장
- 김일성이 이끈 전투가 끝날 때마다 지휘관들은 김정숙에게 적들을 얼마나 소멸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김정숙의 탄띠에서 탄알이 몇 발 없어졌는가를 보고 김정숙이 사살한 일본군들의 인원수를 확인하군 하였다.
- 김정숙은 임의의 순간에, 아무리 어려운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방아쇠만 당기면 영락없이 백발백중했다.
- 1944년 3월 8일,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87]을 면밀히 준비하던 그때 수많은 명사수들이 참가한 큰 규모의 사격경기대회가 진행되였는데, 이 대회에서 김정숙은 200m 거리 반신형 출현목표, 그리고 300m 거리 구보형 이동목표 사격경기에서 출현목표와 이동목표를 번개같이 쏴 맞혔으며, 그 다음에는 선수들이 제일 힘들어 한다는, 점처럼 보이는 5개의 병을 2분 동안에 쏴맞혀야 하는 100m 거리 병쏘기 경기에서도 번개같이 병목들만 쏴 맞혔다.
- 1947년 9월 28일에 김정숙은 삼일포에서 김일성의 요청에 따라, 쉼없이 움직이는 물 위에 있는 물오리떼들에게 별로 겨냥하는 기색도 없이 물오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그 순간 물오리는 날개를 몇 번 퍼덕이더니 물 위에 늘어졌다.
- 김정숙은 매복전, 유인전, 기습전, 야간습격전 등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전술을 펼쳤다. #
-(반박 1) 북한이 쓴 김정숙 전기에도 김정숙이 사살한 적군 수는 정확히 적혀 있지 않다고 한다. 시모 해위해 같은 진짜 명사수들이 사살한 적군 수가 정확히 알려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반박 2) 전직 CIA 요원 마이클 리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숙은 키가 작고 외모도 별로였으며, 전투에 참여하기는 커녕 빨래나 불 피우기 같은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고, 한글도 읽지 못하는 문맹이었다고 한다.(물론 이런 말을 전한 사람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 이 때문인지 김일성은 김정숙의 생전에 아내를 공식 석상에 노출시키지 않았으며, 아내를 계속 심하게 구박해왔다고 하고, 김정일이 이복동생들을 외국으로 추방한 것도 자신이 어머니를 닮았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 다만 적어도 김일성이 외부에 아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과장된 증언으로 보이는데, 북한측의 공식 사진에서도 김정숙이 김일성과 함께한 사진이 있다. # - 김정숙의 사격술은 서서 쏘건, 앉아 쏘건, 보총으로 쏘건, 권총으로 쏘건 변함없이 백발백중하는 명사격술이었다. #
4.2.2. 김정숙의 외양, 성품 묘사
김정숙의 용모에 대해서는 자주 묘사되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는 굉장한 미녀로 묘사되며, 더 정확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봄빛같은' 미소를 지은 환한 얼굴, 밝은 정기와 그윽한 정이 어려있는 눈길, 강직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을 주는 단정한 외모'로 묘사된다.[88] 다만 과거에는 김정숙을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했다간 문자 그대로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으니 살기 위해서라도 김정숙을 절세미녀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회령녀미(女美)[89]를 말할 때 사람들은 녀성이 지닐수 있는 숭고하고 고결한 미[90]를 최고의 높이에서 체현하신 김정숙동지를 그려본다.
- 진정 용모에서나 덕망에서나 지성[91]에서나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김정숙녀사를 모시여 회령의 녀미(女美)는 더욱 유명해지게 되였다.
- 참고로 바로 전 해에 리용호 당시 외무상이 '역대급'이란 말을 쓸 정도로 북한 고위층 내에서도 한류가 겉잡을 수 없이 퍼져 이들도 남한의 걸그룹, 연예인들을 어느 정도 접했던 데다가 Red Velvet이 방북하여 김정은을 만난 2018년에, 그것도 조선로동당의 대외 선전매체인 조선의 오늘에서 이런 주장을 했고, 그것도 모자라 무려 2023년에도 이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외국인들이 저걸 믿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게 더 대단하다.물론(?) 저 드립들은 김정일 시기 나온 것을 김정은 시기 재탕한 것이다. 정확히는 2004년 12월 27일 로동신문 기사 <위인들을 모시여 더욱 유명해진 '회령3미'[92]>에 나온 구절. - 한 어린이는 병원에 입원했다가 병문안을 온 김정숙을 보고는 김정숙의 무척 단아한 용모가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아 그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 북한의 한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의 나날 타향의 봄날에 김정숙어머님과 함께 찍으신 한 장의 사진이 우리 후손들에게 천만가지 뜻을 이야기해주고있다. 단정한 군복차림에 다정다감하신 락관의 미소를 지으시였던 김정숙동지의 영상은 조선의 미래를 안아올린 혁명의 위대한 어머니, 가장 자애롭고 인정깊은 녀성의 최고전형으로 민족과 인류의 마음속에 영생하고있다. 해당 사진[93]
- 2006년 7월 22일 로동신문 정론 <조선녀성의 긍지>에 나온 구절이다. - 김정숙은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지녀야 할 풍모를 숭고한 높이에서 지니신 위대한 인간이자 여성의 전형이었다. 그녀의 숭고한 인간애와 인정미, 다함없는 겸손성과 소박성, 풍부한 정서 등 이상적인 인간적 풍모와 온순하고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강의한 성격적 특질은 여사의 그윽한 눈매,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 수수하고 단정한 의복차림에 그대로 실려 사람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정화시켜주며 숭고한 세계로 이끌어준다.
- 2020년 9월 22일 김일성종합대학 홈페이지에 업로드된 <김정숙녀사께서 지니신 고결한 성품>에 나온 구절이다. 여기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김정숙의 인간적 풍모에 '매혹'된 에콰도르의 한 여성이 남긴 평가라고 하는데 당연히 신뢰도는 0이다. - 김정숙은 그 아름다움과 빛남에서 이 땅의 여성들 모두를 합쳐도 대신할 수 없다.
4.3. 김정일
- 김정일은 전세에도 없었고 후세에도 없을 위인 중의 위인이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이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김정일은 적대국들의 정치가들도 머리를 숙이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다.
- 세계의 수많은 나라 국가 및 정부지도자들, 정계, 학계, 사회계인사들은 물론 평범한 사람들도 김정일을 '세상에서 으뜸가는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정치가', '걸출한 령도자', '정치가의 귀감'이라고 한결같이 칭송하고 있다 .
- 김정일은 김일성과 꼭 같은 가리울 수 없는 인류의 빛이었고 감출 수 없는 인간태양이었다.
- 김정일의 비범하고 출중한 인품과 풍모는 가리울 수 없는 햇빛처럼 외국인들의 마음 속에 비쳐들었고, 김정일의 능숙한 조직력과 통솔력은 마치도 수많은 행성들과 위성들을 거느린 태양의 견인력과 같이 외국인들을 끌어당겼다.
- 수천년을 헤아리는 인류국가건설사는 김정일처럼 짧은 역사적 기간에 세계가 공인하는 사상강국, 자주강국, 군사강국을 일떠세우고 경제와 문화분야에서 일대 전성기를 펼쳐놓은 정치가를[94] 알지 못하고 있다.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쉬임없이 이어간 김정일의 애국헌신의 강행군장정에 깃들어있는 눈물겨운 이야기들은 수백수천권의 책에도 다 담을 수 없다.
- 김정일은 김일성이 개척한 주체의 건군위업을 빛나게 이어가며 인민군대를 무적의 혁명강군으로 더욱 강화발전시켰다.
- 김정일은 자신을 위해 남긴 것이란 하나도 없이 오로지 조국과 인민, 후대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깡그리 바친 애국애민의 최고 화신이다.
- 정녕 인민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사탕알이 없이는 살수 있어도 총알이 없이는 살수 없기에 그 누가 내마음 몰라줘도 몰라준대도 희망 안고 이 길을 가고 가리라는 노래를 마음속으로 부르시었다.
뭔 소린지 이해가 전혀 안 가면 지극히 정상이다. - 김정일의 미소는 봄날의 햇빛처럼 따스한 미소이고, 백두의 정기가 흘러넘치는 위대하고 영원한 태양의 미소이며, 세상만물에 빛과 열을 아낌없이 주는 태양의 인자한 미소이고, 만민의 심장이 기쁨과 희열, 희망과 열정으로 세차게 고동치게 하는 민중의 영도자의 사랑의 미소이다.
- 김일성과 김정은의 미소도 '봄날의 햇빛' '태양의 미소'처럼 묘사된다. - 김정일의 환한 웃음은 조국과 겨레의 무궁한 미래를 축복해주고 있다. 만민의 넋을 끌어당기고 매혹시키는 자애로운 태양의 미소, 용용한 열정과 자신감, 담력이 넘쳐 흐르는 기상, 비범성이 비낀 모습은 사람들을 숭엄한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사납고 모진 광풍이 휘몰아쳐도 언제나 태양의 미소와 같은 환한 웃음으로 만민에게 밝은 빛을 뿌려주시며 삶과 용기를 주고 투쟁과 승리로 이끄는 우리의 김정일동지!
- 태양은 누가 가르쳐주어서 아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빛을 보고 몸으로 그 후더운 열을 느끼면서 태양의 존재와 귀중함을 안다.
- 김정일의 미소는 봄날의 햇빛처럼 따스하고, 눈빛은 예지로 별빛처럼 빛나며, 목소리는 정서 깊은 음악의 선율이 되어 이 마음의 금선을 튕기고 추억의 나래도 펴주며 미래에 대한 낙관의 샘이 솟구치게 만든다.
- 김정일은 "사람의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닌 사상 정신적 풍모에 있다. 겉모습은 비록 화려하지 못해도 사상 정신적 풍모가 훌륭한 사람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인간이다."는 말을 남겼다.
-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지만 북한에서 가장 '사상 정신적 풍모'가 훌륭하다고 간주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감안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김정일이다"라고 말의 의미가 완전히 바뀐다. - 집집마다에 정중히 모신 위대한 장군님의 태양상초상화를 우러를 때면 장군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생각으로 매일, 매 시각 크나큰 힘과 용기를 얻는 우리 인민이다. 나라의 곳곳에서 빛을 뿌리는 위대한 장군님의 태양의 모습을 뵈올 때에도 해빛같은 그 미소에서 뜨거운 축복을 받아안은 인민이다.기쁠 때에도 어려울 때에도 언제나 위대한 장군님께서 안겨주시는 고무격려속에 백배, 천배의 힘을 가다듬으며 전진하고 투쟁해나가는것이 바로 우리의 날과 달들이다.
- 김정일은 평범한 인간이시면서도 특출한 위인이었다. 부드러운 미소, 활달하고 정력에 넘치는 여유작작한 몸가짐, 임기응변의 예지, 풍부한 유머, 온 좌중을 단번에 끌어당기는 친근감과 감화력, 소탈하고 쾌활한 성격, 하늘같은 도량과 바다같은 포옹력 등 김정일의 특출한 풍모는 이 세상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순간에 매혹시키고 신비의 세계에로 끌어가군 하였다.
-(반박) 상술한 것처럼 히틀러, 폴 포트, 이디 아민도 인간으로서는 좋았다고 평가받는다. 오히려 김정일은 이들에 비하면 평소 인간으로서의 모습도 개차반 그 자체였다. - 김정일은 가장 고상하고 풍만한 정서를 지닌 인간이다.
- 세상 사람들은 김정일에 대해 "김정일 각하의 위대하신 (사상정신적) 풍모에서 하늘이 낸 성인의 인정세계, 태양의 천품을 보았다."라고 격찬을 하고 있다.
- 김정일은 태양의 빛과 열과도 같은 뜨거운 인간애를 가진, 인민에 대한 사랑의 최고 화신이다.
-(반박) 오히려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인민은 줄면 줄었지 마르지 않는다. 땅이 있고 물이 있고 내가 있는 한 인민은 얼마든지 다시 불어난다."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망언을 남겼으며, #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병들고 노동력이 없는 인민들은 빨리 없어지는 게 내게는 편하다. 철통같이 뭉친 군대와 당원 3백만 명만 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공화국은 건재하다."라는 망언도 남긴 적이 있다고 한다. - '위대한 태양'이란 칭호는 당대에 나라와 민족을 부흥시키고 후손만대의 융성번영을 위한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여 물려준 위대한 성인에게 드리는 최대의 칭송이다. 그 어떤 뇌성벽력에도 끄떡하지 않고 언제나 공격전의 진두에 선 신념과 의지의 제일 강자, 만년장설도 녹일 뜨거운 동지애와 숭고한 후대관, 불같은 희생정신을 지닌 인간 중의 인간으로서의 김정일의 풍모는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
- 김정일은 백두산 천기를 타고 태어났기 때문에 국외에서 일어나는 일을 방 안에서 알 수 있다. 또한 대동강에 살고 있는 네 마리 용을 길들여 그들과 위대한 공화국을 다스린다.
-(반박)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이 집권한지 10년이나 된 2022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인터넷 이용률이 97%이므로 이 말대로라면 "미제의 식민통치로 기아와 빈곤이 극심하다는" 남한의 국민 97%가 "백두산 천기를 타고 태어난" 북한의 '백두혈통'만큼의 능력자(?)라는 이야기가 된다. 같은 해 기준으로 북한의 인터넷 사용률이 고작 0.07%밖에 되지 않는 것과는 대조되는 점. 다만 이는 북한이 일반인의 인터넷 사용 자체를 금지하기에 나온 수치이며, 이를 감안하면 북한이 인터넷을 김정일 정도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인 것마냥 선전한 것도 (북한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이상한 건 아니다. 물론 인터넷 하는 것 자체를 지도자의 자랑거리라고 선전하는 것 자체가 외지인들 입장에서는 헛웃음도 안 나오는 거지만. - 식량난에 허덕이던 탄자니아 등의 아프리카 농민들이 김정일의 가르침대로 농사를 지어 풍작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 농민들은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고 있다.
-(반박) 북한 땅에서 설계했음에도 북한에 맞지 않는 주체농법이 북한과 기후가 완전히 다른 아프리카에 적합할 리가 없다. 오히려 아프리카에서 농업 관련으로 유명한 한국인은 남한 출신의 김순권이다. - 김정일은 인간으로서 어떤 기본적 기능도 더럽혀지지 않은 완벽한 존재이므로 대소변을 보지 않는다.
- 수용소의 노래의 저자 강철환은 북한에서 지냈을 적에 이렇게 확신해 왔고, 그의 친구들도 그와 똑같이 확신했다고 한다. - 옛날에 파나마의 무역화물선 '와이트 펠라'가 남포항을 떠나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다가 강추위로 뱃길이 얼어붙어 본국에 무전을 쳤으나 본국은 응답을 하지 않았고, 응답을 계속 쳤으나 역시 응답이 없었다. 이렇게 10여일이 지나고 물과 식량도 다 떨어져서 모든 희망의 끝을 놓았을 때 마지막으로 남포항에 무전을 날렸는데 이튿날 아침에 조선인민군 비행기들이 배로 접근하여 선원들에게 배에 물과 식량을 가져다줬는데, 이는 화이트 펠라호의 소식을 들은 김정일이 선원들을 구하라고 손수 조선인민군 공군비행대에 지시를 내려 온 비행기들이었다. 이에 감동을 받은 선원들은 너무 감동을 받아 주저앉아 격정의 눈물을 흘리고는 김정일에게 "위대한 김정일동지는 고매한 덕성을 지니신 만민의 은인이시다."라는 편지를 썼다.
-(반박) 이것도 상술한 '수단에서 만든 지팡이' 에피소드처럼 심하게 거추장스럽다. 마치 '바타항을 떠난 필리핀의 무역화물선이 해안에서 조난당했는데 본국에 10여일간 계속 연락해도 미동도 안하다가 바타항에 연락하니 이 소식을 들은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적도 기니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적도 기니 공군의 비행기들이 식료품을 가져다줬고, 이에 필리핀인 선원들은 너무 감동을 받아 주저앉고 눈물을 흘리면서 "위대한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대통령 각하께서는 고매한 덕성을 지니신 만민의 은인이시다"라고 찬양했다'는 수준의 난잡하기만 하고 개연성이 전무한 이야기다. 덤으로 이 에피소드는 '다른 나라들은 자국민이 조난당해도 눈 하나도 꿈뻑 안하지만, 우리 장군님은 이와는 정반대로 외국인 선원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면 곧바로 구해주는 사랑의 화신이다'라는 식으로 '장군님'의 (있지도 않은)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 서울의 한 공원에는 애국자에게만 보이고,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환상의 꽃 '김정일화'가 피어나 남조선 인민들에게 조국통일의 꿈을 불러 일으킨다.
- 김정일은 초등학교~고등학교 시절에 수천 권의 책을 독파했으며, 대학교 생활 3년 동안 5만 권의 책을 읽으면서 1500권의 책을 집필하고[95] 역사상 어느 다른 음악보다도 뛰어난 6곡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반박) 이 말은 즉슨, 1년 동안 약 17,000권의 책을 읽으며 500권의 책을 쓰고 2곡의 오페라를 만들었다는 말인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김정일은 3년 동안 매일매일 빼먹지 않고 하루에 1권 이상의 책을 완성하고 잠을 전혀 자지 않았다고 쳐도 1시간에 2권의 책을 읽었다는 말이 된다. - 김정일은 1994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골프를 하시었을 때 18홀에서 38언더파 34타를 기록했고, 그것도 모자라 홀인원을 5회[96]나 기록했다.[97] #
-(반박) 타이거 우즈가 2022년 기준으로 한 총 홀인원 개수가 20개인데, 이를 감안하고 북한의 주장을 보면 김정일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한번의 경기에서 특급 골프선수의 총 경력의 1/4 수준의 기록을 세웠다는 말이 된다. 물론 김정일은 이 황당무계한 조작 때문에 2013년 4월에 미국의 골프 전문 매체 골프닷컴이 선정한 '골프에 먹칠한 10인'에 이름이 올랐으며, ESPN은 김정일 사망 이틀 후인 2011년 12월 19일자 보도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가 사망했다"고 비꼬았다. 참고로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비공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양 주민들은 관광객이 말해 주지 않는 이상 김정일의 골프 실력을 아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 - 김정일은 생애 처음으로 한 볼링에서 300점 만점을 기록했다. #
- 김정일은 대학생들에게 양질의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두 개의 빵 사이에 고기를 끼운 고기겹빵을 발명했다.
-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뉴시스 등의 한국 언론 보도에서는 평양의 한 대학생이 프랑스의 사진 작가 에릭 라프로그(Eric Lafforgue)에게 '햄버거는 김정일이 발명한 음식이다'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실렸는데, 이는 모두 영국의 언론 데일리 메일의 보도를 출처로 한 것이다. 다만 데일리 메일은 위키백과에서 신뢰하지 못할 출처로 등재된 것처럼 신뢰도가 낮은 언론이다. 그러나 에릭 라프로그의 사진집 I’m 20, I’m north korean.의 30페이지에는 '김정일이 햄버거를 발명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라고 묻는 말에 '사실이다. 2009년에 발명되었다.'고 답한 구절이 있는데, 이를 보면 평양 시민 사이에서 어느 정도 위와 같은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새로 건설한 어느 한 기초식품공장에 대 한 현지지도를 하실 때였다. 현대적으로 꾸러진데다가 제품의 질 또한 높은데 대하여 시종 일관 거듭 만족을 표시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문득 일군들 에게 된장을 왜 된장이라고 하는가고 물으시였다 단순한것 같으면서도 딱 찍어말하기 힘든지 누구도 선뜻 답변 을 올리지 못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너무도 간단한 이치이니 도리여 말을 못하는것 같다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되기 때문에 된장이라고 한단 말이요라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런데 지금까지 만든 된장은 너무 묽어서 마늘을 찍어먹재도 붙어야 먹지라고 하시여 또다시 모두를 웃기시였다 그런가하면 그뿐이 아니요, 된장이 얼마나 물 같으면 그것을 '뽐프'로 뽑아낸다고 전사들이 '뽐프된장'이라고 하였겠는가고 하시여 작업중에 있는 로동자들까지 웃기시였다. 이처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학적인 유모아로 일군들을 인민을 위해 더 잘 복무하도록 일깨워주기도 하시고 앞으로 일을 더 잘하도록 신심과 고무를 안겨주기도 하신다.
저 드립 듣고 혁명 일으키지 않은 게 용하다. - 그날[98]에도 눈이 내렸다.온 나라가 쓰러져 땅을 치며 곡성을 터치던 그날에 눈은 왜 그리 많이도 내렸던가.침통한 비분에 하늘의 해마저도 사라지고 어둑한 허공에 태를 치듯 흩날리는 눈발은 머리우(위)에서 녹아내려 차겁게 땅을 적시였다. 눈물바다, 울음바다를 이룬 영결의 거리에 달려나와 어버이장군님의 태양상을 모신 영구차행렬을 남녀노소가 애타게 막아서고 따라서며 그 마지막길에라도 효성[99]을 더해드리려 솜옷을 벗어 정히 깔아드리던 이 나라 인민이였다.
현실은 만국 네티즌들의 웃음거리그날로부터 어언 10년세월, 그 피눈물의 눈은 봄날에도 여름에도, 낮에도 밤에도, 꿈속에서도 인민의 마음속에서 녹지 않았으며 세월이 갈수록 어버이장군님과의 혈연의 정을 더 깊이 맺어주었다.뼈아픈 영결의 12월은 위대한 영생의 10년사로 이어졌고 우리 인민은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위대한 장군님과 언제나 함께 살고 전진하며 승리하는 영원한 장군님의 인민이 되였다.
-(반박)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이 죽었을 당시에는 진심으로 북한 전역이 울음바다였지만, 김정일이 죽었을 당시에는 이미 북한 주민들도 진실을 알 만큼 알기에 슬퍼하는 척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다만 해외에서 조롱거리가 된 평양 주민들의 통곡은 애초에 평양 주민들이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높기에 진심으로 한 통곡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김정일은 사망 이틀 전 광복지구상업중심을 현지지도했을 때 다른 나라에서 기름을 더 들여다 그 가지수를 늘이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우리 나라에서 기름작물을 많이 심어 인민들의 '먹는기름문제'를 원만히 풀 때까지는 다른 나라에서 기름을 사다가라도 인민들에게 먹여야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자랑이다. - 김정일은 "평양 시민들에게 남새(채소)와 과일도 신선한 것을 늘 떨구지 말고 공급하여야 합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이에 따라 우리는 시시철철 평양 시민들에게 첫물사과(햇사과)를 공급하고 있다. 첫물사과까지 날라다 수도의 집집마다에 공급해주는 나라가 과연 이 세상 그 어디에 또 있겠는가.
-(반박) 북한에서 평양 시민들에게 사과, 복숭아 같은 과일들을 배급해줬다고 자랑하듯 언급할 때 실린 사진들을 보면 평양 시민들에게 배급한 과일 중 빨간 사과와 분홍빛 복숭아들은 없다시피하고 거의 모두가 초록빛 과일들이다. 아오리로 보일 수도 있지만 빨갛게 익다 만 사과들도 사진에 나온 것을 보면 진짜로 덜 익은 사과를 배급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사실 사과를 따서 보관할 때 사진들에는 빨간 사과들도 많았는데 평양 시민들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은 것을 보면 빨간 사과들은 평양 간부들과 김정은이 독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참고로 지방 사람들에게는 당간부 제외하면 이 햇사과도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고 한다.
- 사실 북한의 사과 생산량은 남한보다도 많지만,[100] 저장과 관리를 못 해서 30~40% 가량이 썩기 때문에 북한에서 사과를 먹는 것은 매우 힘들다. 2023년 11월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서 조현 굿파머스연구소 소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평양 주민들조자 한두번, 그것도 1~2개 정도만 사과를 배급받은 것과 달리 남한은 2022년 기준 1인당 사과 소비량이 무게로는 11kg, 개수로는 36~44개 정도다. #1 #2 참고로 김정은이 지시한 사과 할당량은 세대당 1kg(약 3~4개) 정도로 한 명당 한 개의 사과만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 - 지난 세기 남들같으면 열백번도 더 쓰러졌을 모진 시련과 난관이 겹쌓이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우리가 어떻게 사회주의조국을 영예롭게 수호할수 있었는가. 어떻게 우리가 세인을 경탄시키는 신화적인 기적들을 연이어 창조하며 사회주의강국건설의 튼튼한 도약대를 마련할수 있었던가. 선군! 바로 그것이였다. 우리가 갈길은 선군이라는 것을 역사앞에, 세계앞에 힘있게 선언하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박솔초소에 새기신 역사의 그 자욱을 어이 잊을수 있으랴.
- 언제 한번 인민의 마음에서 떠나본적 있었던가. 한평생 사랑하는 우리 인민을 위해 심신을 깡그리 불태우시며 불면불휴[101]의 심혈과 로고를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경사스러운 광명성절을 맞이한 온 나라 전체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의 마음과 마음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끝없이 달린다. 위대한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탁월한 영도력, 고매한 덕성을 떠나, 그이께서 쌓으신 영구불멸할 업적을 떠나 우리 조국의 높은 존엄과 보람찬 우리 생활, 밝은 내일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기에 여기 금수산태양궁전광장을 찾는 인민의 마음은 뜨겁게 불타오른다. (중략) 우리가 얼마나 위대하신 분들을 모시고 주체혁명의 한길을 걸어왔는가를, 펼치면 바다가 되고 쌓으면 하늘에 닿을 수령님들의 업적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절감하며 수많은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이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태양상에 삼가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해빛같은 미소로 이 나라 천만아들딸들을 반겨맞아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위대한 수령님들을 경건히 우러르며 충성의 맹세를 다지는 사람들,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숭엄한 화폭 앞에서 우리가 받아안은 감동은 참으로 컸다.
- 벌써 중학시절과 김일성종합대학시절에 인류가 도달한 지성의 탑을 죄다 톱아오르실 거창한 목표를 세우시고 동서고금의 명저들을 모두 독파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속에서도 장군님께서는 책을 말없는 스승으로, 사업의 량식으로 여기시고 시간과 정력을 아끼지 않으시였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를 함께 수행했던 한 일군은 달리는 승용차안에서 귀에 녹음기레시바를 끼시고 녹음된 장편소설을 들으시고 손에는 정치도서를 펼쳐드시고 단번에 두개의 책을 탐독하시는 그이의 놀랍고 무서운 독서열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의 로정에서도, 집무실에서도 짬시간도 놓치지 않고 책을 보시였는데 그것은 정치, 군사, 경제, 문화, 과학기술, 역사, 풍속 등 세상사를 다 포괄하는 방대한것이였다. - 김정일은 한 번에 네가지, 다섯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남다른 복합적인 일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많은 일 중에서 어느 하나 소홀히 하는 것 없이 완벽함을 기한다.
- 북한에서는 이를 '축시법의 전설'과도 같다고 포장한다. - 김정일은 글을 볼 때 한번에 서너줄씩 읽으며 그렇게 보면서도 그 내용을 환히 다 알고 틀린 것도 다 잡아준다.
- 1994년 5월 31일 로동신문에 실린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의 글에 나온 구절이다. - 이 세상에 전지전능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인민이라는 숭고한 인민관으로 심장을 불태우시며 이민위천의 한생을 수놓아오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반박) 실제 김정은은 '전지전능'하기는커녕 고난의 행군 당시 평시에 기근 하나를 5년간 해결 못해 수십만 명을 굶겨 죽인 인류 역사에 길이 남길 무능함을 선보였다.그런데 평생 주먹밥 한 덩이로만 끼니를 때우며 80kg을 넘긴 거면 '전능'한 것 같기는 하다. - 2000년 12월 19일 김정은은 주사기공장 건설현장을 찾고는 공장에서 생산한 시제품 주사기들의 주사바늘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직접 자신의 몸에 주사를 놓았다.
- 김정일은 사회주의락원을 빛내어주며 인민들이 보람차고 행복한 삶을 마음껏 누려갈 수 있도록 했으며,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수호하고 태양민족의 존엄을 온 세상에 펼쳐줬다.
- 김정일은 김일성을 천세만세 높이 받들어모시며 애국애민의 정과 열로 한생을 촛불처럼 태우며 조국과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최상의 높이에 올려세워줬다.
- 김정일은 김일성이 창시한 참다운 인간사랑의 사상인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종합체계화하고 더욱 발전풍부화하여 인간의 지위를 최상의 높이에 올려세워주고 그 지위와 존엄을 무엇으로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와 같은 실천적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해답을 줬다.
- 김정일은 자신을 태양으로 칭송하며 우러를 때마다 애써 만류하며 언제나 겸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이는 달리될 수 없는 태양, 오늘도 내일도 찬연히 빛날 위대한 태양이다.
-(반박) 그런 사람이 국가 예산의 40%를 자기를 우상화하는 데에 썼다. ~자기 동상이 태양처럼 밝다는 뜻이라 카더라~ - 2002년 8월 20~24일[102] 김정일이 하바롭스크 시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사원인 성(聖) 인노겐티 사원을 방문했을 때[103] 쎄로뽄뜨 신부가 하늘에 태양이 제일 높이 떠오르는 정오에 종을 울리게 되어 있는 정교 의식의 엄격한 계율을 어기고 김정일이 사원을 찾아오는 시간에 종을 울리면서 김정일에게 "우리 사원에 태양이 오셨습니다. 태양이 오셨는데 종을 울리는 것은 응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라고 아뢰었다. 이 진정은 절세위인에 대한 칭송의 메아리가 되어 만사람의 심장과 심장을 쿵쿵 울려주고 있다.
-(반박) 북한은 현대사에서 가장 종교를 극단적으로 탄압하는 나라 중 하나인데 그런 북한이 김정일 우상화용 날조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해 종교까지 끌고 오는 것이 코미디가 따로 없다. -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노래는 절세의 애국자의 은공을 천만년 길이 전하는 인민의 다함없는 송가이다.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애국으로 빛나는 성스러운 자욱을 수놓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고귀한 혁명생애를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인간이시고 정신육체적과로가 겹쌓이면 휴식을 하셔야 하였다. 하건만 그이께서는 한생을 인민을 위해 고스란히 바치시며 그러한 헌신을 어길수 없는 생활의 준칙으로, 삶의 방식으로 삼으시였다. 세계의 그 어디서나 정치가들이 사업과 동떨어진 감미로운 휴식에서 정신적안정을 찾고있을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고생과 인민의 행복을 맞바꾸시며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였고 그것을 오히려 낙으로 여기시였다.
- 우리 장군님께서 하루, 한시라도 편히 쉬시였으면 하는것이 온 나라 인민의 간절한 소원이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이제 우리 조선을 세계의 상상봉우에 우뚝 올려세우고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없이 잘살게 되면 그때 가서 인민들의 소원대로 마음놓고 휴식도 하고 밀렸던 잠도 실컷 자보려고 한다고 하시면서
그러면서 뒤에서는 맨날 측근들이랑 문란한 파티1년 365일 명절날, 휴식날 지어 온 나라 인민의 축원의 인사를 받으셔야 할 탄생일에도 헌신의 자욱만을 새기시였으니 그 나날의 눈물겨운 사연들을 〈야전이발〉, 〈야전생활〉, 〈야전솜옷〉과 같은 혁명일화들이 그대로 전하여주고있다. - 김정일은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세상 누구도 체험해보지 못한 온갖 고초를 다 겪었으며 주체혁명 위업의 계승완성과 사회주의 조선의 강성번영을 위해 자신을 촛불처럼 깡그리 불태웠다. 김정일은 언제나 인민과 함께 있으면서 진함을 모르는 필승의 힘과 투쟁 의지를 안겨주고 신념의 억센 기둥을 세워 주는 혁명의 영원한 수령, 주체의 태양이다.
2009년 북한에서 출판된 백과사전격 서적 박식가의 벗 2권 초반에서 김정일 생전의 김정일 우상화 선전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4.3.1. 김정일의 생일
- 김정일이 태어난 날에는 하늘에서 16명의 신선이 백두산 밀영에 내려와 흰 눈위에 무릎을 꿇고 '귀틀집'을 향해 절을 하고 "이 나라에 대통운이 든 것을 축하하나이다"라고 말한 후 일제히 나팔을 부니 하늘에는 전에 없던 커다란 별이 하나 솟아 밝은 빛을 뿌리고 귀틀집에도 금빛 광채가 났다.
- 비슷하게 북한의 월간 잡지 조선녀성에는 김정일이 태어나던 날 하늘에서 열 여섯의 신선이 내려와 한 귀틀집을 향해 큰 절을 드리고 “조선아, 백두광명성 솟았음을 알리노라. 이 땅에 영원한 복이 내렸도다”라고 알리었다는 내용의 '하늘에서 내려온 열여섯 신선'이라는 글이 게재되었다고 한다. 또한 위 잡지에서는 김정일이 백두산에 올랐을 때 궂었던 날씨가 일시에 맑아졌다는 내용과 김정일을 위대한 성인으로 칭송하는 글 역시 실렸다. (임순희, 「조선녀성」 분석, 통일연구원) ### - 김정일이 태어날 때 천둥 번개가 치고, 하늘이 붉게 변하더니 백두산에 전에 없던 마가목[104]이 나타나 뒤덮였다. #
- 김정일이 태어났을 때가 엄청나게 추웠을 때였는데 그날만은 유난히 따뜻하여 사납게 기승을 부리던 찬 바람이 갑자기 멎고 햇빛이 유난히 비추면서 모든 만물이 환해지며 고요한 날씨가 펼쳐졌으며, 소백수도 녹아 골짜기에 아름답게 흐르고 서리꽃들도 곱게 피어났다고 한다. 자연이 저절로 바뀌면서 장군의 탄생을 온 세상에게 알리며 축복하였다.
- 옛날에 옥황상제가 서둘러 오룡차를 타고 신선들과 함께 천궁으로 올라가 백두산을 3대 위인이 내릴 성지라고 했는데, 그 백두산3대위인이 김일성, 김정숙, 김정일이다.
- 여기서 김정은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데, 이는 이 이야기가 김정일이 한창 집권하던 2003년에 만들어진 '신화'이기 때문이다. - 김정일이 태어난 날에 효자 청년이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할 만병초(萬病草)를 찾아 나섰는데 샛별[105]이 떠올라 유난히 한 곳을 비추고 있어 그곳으로 뛰어가 보니 눈이 내려도 녹아 버리고 얼음도 얼지 않는 따뜻한 계곡에 만병초가 무수히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만병초는 무지개 빛을 받아야 효험이 있는 약초여서 다시 무지개를 찾아 나섰다. 그러자 갑자기 마른 하늘에서 천둥이 세 번 치고[106] 쌍무지개가 뜨더니 만병초를 비추어 주어 만병초를 먹은 효자 청년의 아버지는 병이 낫게 됐다.
- 하늘나라 왕이 김정일의 출생에 대해 "오늘의 인간 세상에 광명성이 있어 빛이 있고 광명성의 뜻대로 세상만물이 움직인다. 오늘의 인간 세상을 밝히는 광명성이기에 우리가 그 성지를 천상천하 제일강산에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 김정일의 출생일과 출생 장소는 옥황상제가 정하셨다.
- 김정일은 북한의 선전과는 달리 백두산 밀영이 아니라 소련 연해주의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났다. 이 때문에 김정일은 1984년 6월에 자기 이름이 소련식 '유라'로 학적부에 등재된 모교를 손수 지시를 내려 폐교했다. 의미심장하게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백두산 밀영'이 북한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북한도 자신들이 주장하는 김정일의 출생지가 날조란 것을 어느 정도는 의식한 모양인지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은 호적이 아니라 백두산의 잎갈나무들의 구호로만 기록되었고 장군님의 존함과 생년월일은 출생증이 아니라 기억 속에만 새겨지게 됐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고(물론 구호나무라고 알려진 것들도 모두가 날조된 것이다), 심지어 김정일은 '생가'를 방문해도 기념사진을 단 1장도 남기지 않았다. 물론 북한은 이것도 '우리 '장군님'께서 오로지 우리 인민들을 위해 사셨다는 증거'로 포장한다. 출처 - 2월 16일이면 백두산 일대에는 신비로운 자연 현상이 생기는데, 김정일의 50번째 생일날에는 정일봉에서 제비 216마리가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
4.3.2. 김정일의 어릴 적
- 김정일은 태어난 지 3주 만에 직립보행을 했고, 5주 만에 말을 했으며, 8주 만에 대화를 했다.
-(반박) 인류 역사상 최고의 고지능자 중 한 명으로 유명한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도 생후 6개월이 됐을 때에야 처음으로 말을 했고 대화를 한 것도 빨리 잡아야 생후 8개월이 됐을 때였다는 것과 남한의 자칭 천재 소년 김웅용도 생후 80일이 지나고서야 직립보행을 하고 100일 만에 말을 한 데다가 6개월 때에 대화를 했다고 주장한다. 즉,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신동들도 북한이 선전하는 김정일 앞에서는 지능이 낮은 사람이나 다를 바 없는 셈이다. 다만 이는 북한의 우상화 선전을 만드는 사람들이 김정일의 '천재성'을 꾸며내기 위해 필요한 외부정보마저도 전혀 접해보지 못했을 정도로 북한이 외부정보를 극히 차단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증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 김정일이 아주 어릴 적에 거리에서 한 노인이 임진왜란 때 계월향이라는 기생이 적장을 죽이고 평양성을 탈환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적장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난감해하자 곁에 있던 김정일이 적장 이름을 알려주고 조용히 사라졌다.
- 김정일은 어린 시절 백두산 주변에서 "왜놈이다! 돌격 앞으로!"라고 외치며 전쟁놀이를 즐겼는데 이때 50년 전으로 시간이동했었다. 그 지역에 살던 항일투쟁을 했던 노인이 며칠 후 하는 말이 일제강점기 때 백두산에서 갑자기 어린 장수가 나타나 왜놈들을 물리치고 사라졌었다 한다.
- 김정일은 3살이 되기 전에 백두산에서 쌍안경에 권총을 들고 항일 군인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 김정일은 해방 직후 두 분의 백두산장군들[107]과 함께 (북한) 첫 정규군을 사열했다.
- 김정일은 4살 때에 서해 바다에 살던 네 마리의 못된 용을 모두 산 채로 잡아 가장 크고 포악했던 첫째 용은 서해갑문으로, 둘째 용은 미립갑문으로, 나머지 두 마리는 대동강을 가로막는 뚝과 갑문으로 만들었고, 현재 북한의 부강함은 이로 인해 만들어졌다.
- 김정일이 4살일 때 세계지도에 낙서를 하다 지도 위의 일본에 먹물이 튀자 그 순간 일본에 먹구름이 덮이고, 억수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 비슷한 사례로, 김정일이 어머니 김정숙과 함께 어느 소학교에 둘러 세계지도에 조선과 일본이 모두 빨간색으로 표시된 것을 보고 먹으로 일본땅을 새까맣게 칠했더니 갑자기 일본 전역에서 폭우가 쏟아졌다는 내용도 있는데, 이는 무려 소학교 1학년(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다. # - 김정일이 여섯 살 때 유치원 선생이 "1 더하기 1은 무엇입니까?"를 질문하자 김정일은 "찰흙 하나와 다른 찰흙 하나를 합치면 1 더하기 1은 1이다."라고 하면서 "인민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미제승냥이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선생은 깜짝 놀라며 김정일의 천재성에 감동했다.
- 김정일이 10살 때 공군부대를 방문했을 때 김정일이 갑자기 전투기에 올라 조종사들을 지도했고 부대에 숨어있던 외국 스파이를 잡아냈다.
-(반박) 전투기는 대한민국에서도 4년간 공군사관학교에 입교한 후 소위로 임관하고 초등,중등,고등 교육과정을 이수 후에 20시간의 비행경력을 가져야 정식으로 조종사가 되는데, 교본만 1000페이지가 넘어가고, 비행을 할 때 자신의 몸무게의 2~9배를 견뎌야 하는데 10살 어린이가 그걸 할 수 있겠는가? - 김정일이 인민학교 학생 시절 모나리자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의 생명력이 미소에 있음을 지적하며 본인은 미소만 보고 모조품을 가려낼 수 있다 단언했다.
4.3.3. 김정일이 가졌다는 '초자연적 능력'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원수님이 시간을 주름잡는 축시법을 쓰면 바다가 잠깐 새에 물로 변하고, 백년 걸려 할 일을 한해에 제끼며, 축시법을 한번 더 쓰시면 땅 속에 있는 금은보화가 줄줄 실려 나오고, 높고 높은 새 집들이 수풀처럼 솟아나오며, 조국통일 축시법을 쓰면 콘크리트 장벽도 모래처럼 산산조각 부서지고, 통일의 큰 경사가 민족 앞에 다가온다.
- 우리 나라의 땅이 갑자기 흔들렸는데, 이것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원수님이 쪽무이지도[108]로 지도놀이를 하시였기 때문이었다. 함경북도 지도쪽을 쥐시면 함경북도 땅이 흔들리고, 평안남도 지도쪽을 만지면 평안남도가 움실했다. 그 뒤 한해가 지나더니 일본 왜놈들은 쫄딱 망하고 말았다.
- 마치 대홍수 신화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이를 생각해보면 아마 저 구절을 쓸 당시 북한 함경북도와 평안남도 등지에서 지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갑자기 뒤에 왜놈들이 망하는 이야기가 붙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 지진이 일어난 것도 다 일본놈들을 망하게 하려는 위대하신 김정일 동지의 뜻이니 입 다물고 있으라"는 것. - 김정일은 날씨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 김정일은 축시법을 써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다.
- 김정일이 손을 번쩍들면 태산이 머리를 숙이고, 손이 바다에 닿으면 옥토로 변하며, 그 땅에 다시 발길이 닿으면 락원으로 변한다.
- 김정일은 1979년 3월에 남조선 사회를 보고는 천리혜안의 통찰력으로 "그 무슨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날 것 같다. 바야흐로 박정희 유신 독재가 종말을 고할 것이 내다 보인다."고 말하며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의 암살을 예측했다.
- 김정일은 어느 날 군사분계선의 인민군전지를 시찰 갔다가 쌍안경을 들고 남조선군 진지를 살펴보더니 쌍안경 렌즈의 빛발이 번개섬광이 되며 그 빛을 본 남조선군들은 모두 눈이 멀게 되었다.
- 김정일이 빛을 뿜으면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물도 거꾸로 흐르고, 산이 강으로 바뀐다.
-(반박) 이 말대로라면 죽었던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김정일이 왜 김일성이 죽었을 때 김일성을 살리지 못한 건지김일성 암살설 외에는전혀 설명할 수 없다. - 1984년 가을 서울에 사는 영보라는 주민이 수해민을 돕기 위해 김정일로부터 받은 쌀 한 줌을 평택에 사는 형에게 줬는데, 쌀 한 줌으로 지은 밥이 두 가마 분량이었으며 밥을 지어먹자 괴력이 솟아났다.
-(반박) 당시 받은 물자 중 민간에 하달된 쌀은 그 품질에 대한 증언이 엇갈린다. 맛이 의외로 괜찮았다거나 심지어 아주 좋았다는 말도 있고 한편으로는 미질이 조악해서 밥으로 먹기보다는 떡을 해 먹었다는 말도 있는데 아마 전국의 쌀을 전쟁용 비축물자까지 싹 긁어모으다 보니 지역별, 수확연도별 편차가 심해진 게 아닌가 싶다. - 김정일이 가난에 허덕이는 남조선 인민들을 위해 남조선 대통령에게 자신이 개발한 볍씨를 한 알 주었다. 이 볍씨의 싹이 심은 순간부터 매일 12cm씩 자라더니 가을에는 커다란 나무가 되어 80m가 넘었다. 이 나무에서 수확한 볍씨들이 남조선 농민들에게 퍼졌다.
- 강한 태풍으로 태평양상 선박들이 모두 침몰하는 대참사가 일어나 세계 해운 역사에 죽음의 날로 기록된 1980년 10월 26일 여객선 삼지연호[109]만은 사건 전보를 받은 김정일이 즉석에서 관계부문 일군들을 찾아 <삼지연>호를 구원하기 위한 비상조치를 취하고 하늘과 땅, 바다를 다 포괄하는 대규모의 구출작전을 펴시여 그들을 끝끝내 구원해주신 사실은 세계해운사에 신화와도 같은 기적으로 아로새겨져있다.
-(반박) 타이타닉호 침몰을 김일성 찬양에 쓴 것과 비슷하게 대형 참사들을 김정일을 찬양하는 데에 쓴다는 점에서 북한의 우상화 선전은 비윤리적인 느낌까지 들게 할 정도다. 진지하게 따져보면 위키백과에 있는 1980년 난파선 목록 문서에서 1980년 10월 26일에 일어난 선박 사고는 알래스카 코디악 군도의 아포그낙 섬 근처에서 거트루드 앤(Gertrude Ann)호가 침몰한 사고 하나밖에 없으니 '해운 역사의 죽음의 날'이라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하필 사건이 발생한 날짜가 10월 26일인 이유는 10.26 사건 1년 후를 의식하여 날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 어느 한 나라의 유전에서 불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끄려 했으나 실패했는데, 이 불은 김정일이 보낸 두 알의 사과로 끌 수 있었다. #
- 김정일은 1999년 5월 하순 청년영웅도로건설 참여자들의 노고에 대접하기 위해 밥, 김치, 만두[110], 맥주를 식사로 줬는데,[111] 이를 먹은 건설노동자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처녀 노동자는 한 개를 겨우 끌고 다니던 흙마대를 2개씩 끼고 다녔고, 공사장 최악의 약골 노동자가 바로 다음날에는 전부터 맡아온 고속도로 건설에서 깊숙이 뿌리박힌 커다란 바위를 단숨에 들어냈으며, 배탈나서 누워있던 사람들도 병이 나았다고 한다.
초등학생이 인터넷에 쓴 소설도 이것보단 덜 유치하겠다.
- 이 에피소드를 기리기 위해 '줴기밥이 생각나 울었습니다'라는 프로파간다 포스터도 만들어졌다. 2024년 1월 30일 조선신보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되었다. - 한없이 근엄하고 강철의 기상이 차넘치는 우리 장군님을 만나뵈온 한 정객은 나는 그이와 대화한 후 녹초가 되군 하였는데 이는 그이가 굉장한 에네르기를 발산했기때문이다, 나는 그이의 강렬한 극광을 지속적으로 느끼였다고 말했다. 인간에게서 거대한 에네르기가 발산되는것과 같은 체험을 했다는것도 놀라운 일이며 그것을 빠른 전자가 희박한 공기속을 날 때 내는 빛-《태양의 선구자로 하늘을 달린다.》는 뜻으로 불리는 극광에 비유한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세계와 력사를 이끄신 그이의 힘은 몸으로 느끼고 감촉할만큼 강렬한 에네르기의 폭발이며 그것은 말그대로 태양의 불길을 안고 하늘을 달리는 극광의 빛발이다. 태양의 빛과 열은 끊임없는 핵융합의 폭발력이다.
드래곤볼 에네르기파냐?
- 2012년 2월 13일 로동신문에 실린 동태관 정론 <인민의 눈물이 망한다>에 나온 구절이다. 초자연적 능력은 아니지만 어쨌든김정일은 총으로 50m 떨어진 유리병 10개를 맞췄다.
- 그런데 북한은 이걸 보도할 때 총 쏘는 장면과 유리병 깨진 장면을 따로 보여줬다.
4.3.4. 김정일의 생활 미화
- 자신께서는 쪽잠에 드는 때에도 자주 인민에 대한 꿈을 꾼다고 하시며 어느 강행군길에서 우리 장군님 절절히 터치신 말씀이 가슴을 친다. "나는 우리 인민들이 아직 강냉이밥을 먹고있는것이 제일 가슴아픕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우리 인민들에게 흰쌀밥을 먹이고 밀가루로 만든 빵이랑 칼제비국을 마음껏 먹게 하는것입니다. 우리모두 수령님앞에 다진 맹세를 지켜 우리 인민을 강냉이밥을 모르는 인민으로 세상에 내세웁시다. …" 한가정의 어머니도 힘이 들고 지칠 때가 있건만 천만의 운명을 한품에 안으신 그이의 사랑과 정은 이렇게도 불덩이같이 뜨겁게 달아있으니 이런 인민의 어버이가 그 언제, 그 어디에 있었던가.
-2010년 2월 1일 로동신문의 동태관 정론 <우리의 승리를 굳게 믿는다>에 나온 구절이다. - 이 세상 위인들 가운데 김정일 동지처럼 배를 곯아본 위인은 없을 것이며, 이 세상 위인들 가운데 김정일 동지처럼 먹을 것 입을 것 때문에 고생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박) 이는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자라며 '험난한' 유년기를 거친 끝에 '위인'이 됐음을 선전하기 위한 표현인데, 물론 본인은 해외에서 직수입한 최상급 재료들로 만든 웬만한 한국인들도 이름을 못 들어 본 초호화 음식들과 손으로 한톨한톨 엄선한 것만 고른 최상급 쌀로 만든 이밥, 가장 수질이 좋은 샘에서 전용 취수구로만 받은 샘물, 문자 그대로 설탕과 개고기를 비료로 준 과일로 구성된 식사만을 죽을 때까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배불리 먹었으며, 연회하다가 남긴 음식들은 모조리 땅에 파묻어버렸다고 한다. 일반적인 북한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 때 굶주림에 시달린 나머지 풀뿌리와 나무껍질도 모자라 살기 위해 흙과 인육까지 먹어야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진지하게 사이코패스로 보일 정도로 복에 겨운 투정이리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이 2001년 7~8월에 러시아를 순방할 때 한 식투정을 보면 60세 중년이 아닌, 편식하는 어린아이에 가깝게 보일 정도다. 출처 - 김정일은 일꾼들에게 인민을 위해 더 많이 일하고 싶은데 하루가 24시간밖에 안 되는 것이 한스럽다고 말했으며, 새벽 1시를 초저녁으로 여길 정도로 밤낮없이 쉬지도 못하고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해가면서도 일하는 것을 휴식으로 삼으며 인민들을 위해 일했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시였으며 매일 새벽 3시, 4시까지 집무를 보시고 이 나라의 첫새벽을 남먼저 맞으시였으며, 생전에 하루한시도 편히 쉬지 못하시고 초강도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어오시였다.
- 김정일은 사격장에서도 쪽잠을 자면서 총소리까지 자장가로 여길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고, 이른 새벽 전화를 하다가 수화기를 든 채 쪽잠에 들기도 했다. #
- 아이러니하게도 김정일이 격무에 시달린 것 자체는 사실이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에 의하면 김정일은 새벽에 종일 술을 마시고도 숙소에 돌아와서 바로 서류를 봐야 했다고 하고, 이한영에 의하면 김정일이 하루에 보는 문서의 양은 1,000페이지가 넘었다고 한다. 이들이 김정일의 사치에 대해 누구보다 생생히 증언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다. 다만 김정일만 격무에 시달렸던 것은 절대 아니며, 애초에 격무에 시달리는 것은 업무를 다른 이들에게 분담하기 어려운 독재자라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이오시프 스탈린만 해도 대숙청+본인의 일 중독 기질로 인해 그 방대한 소련의 업무 대부분을 본인이 도맡아야 해서 하루에 14시간씩 일할 수밖에 없었고,[112] 국가 운영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조차 30개 이상의 업무를 겸임하고 본인이 직접 국가의 편지를 검열해야 했기에 어마어마한 과로에 시달려야 했다.그래서 집권 말에 나라 일을 다 내팽개치고 갑자기 고향으로 튄 거였나 - 김정일의 옷차림은 전세계에서 가장 유행하는 패션이며,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김정일의 옷차림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반박) 김정일은 생전에 워스트 드레서로 악명 높았다. 물론 김정일의 인민복도 '얇아질대로 얇아져 추위가 스며드는 단벌솜옷'이 아닌 서양제 고급 원단을 해외 주재 북한 대사관이 공수해와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든 비싼 옷이었다. - 세계가 우러르는 위인이시면서도 어찌하여 동상 하나, 기념비 하나 불허하시고 다른 나라 수반이면 의례히 있는 화려한 궁전이나 휴양지도 없이 늘 수수하고 비좁은 야전렬차에서 사셔야 했던가. 그처럼 크나큰 업적을 쌓으시였어도 어찌하여 그이는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시계를 보는것조차 저어하시며 당중앙불빛으로 꺼질줄 모르던 60년대의 그날부터 마지막나날까지 어느 한시도 변함없이 쪽잠과 줴기밥으로 잠과 때식과 밤을 모르는 불철주야의 혁명일과를 이어오셔야 했는가.
40년 넘게 끼니를 줴기밥 한 덩이만으로 때워서 키 160에 몸무게 80kg 중반이 되었다. - 김정일은 자지도, 쉬지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만 하여 김일성이 건강을 염려할 정도였다.
- 김정일은 일하는 것을 휴식으로 여겼다.
- 김정일이 좋아하는 아첨은 많은 일감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4.3.4.1. '쪽잠에 줴기밥'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30여 개의 초호화 별장에서 끼니마다 30여 종의 최고의 음식을 먹고 살았던 김정일이 평생 야전차량에서 쪽잠을 자고 주먹밥(줴기밥) 한 덩어리로만 끼니를 때우며 인민들의 끼니를 걱정했다고 거짓 선전하는 중이다.-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염장무, 찌거나 구운 감자 몇 알, 풋강냉이 한 이삭, 특히 '무우오가리(무말랭이)와 절인 오이, 까나리 무친 것' 또는 염장무가 든 소박하고 '차가운' 줴기밥(주먹밥)[113]을 먹어가고 얇아질대로 얇아져 보풀이 일고 추위가 스며드는 단벌솜옷을 입으면서 야전승용차 안에서 쪽잠을 자가며 인민들을 걱정하며, 이후에도 식량난이 해결되지 않아 하루 한 끼의 죽[114]만 먹고 있는 데다가 그 죽도 인민들이 배불리 먹으라고 나눠주었다. 북한이 날조한 쪽잠에 줴기밥 일화 모음집[115]
-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60년대부터 죽을 때까지 현지지도를 가면서 줴기밥 한 덩이 정도로만 끼니를 때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박) "줴기밥을 먹어가고 차 안에서 쪽잠을 잔" 것 자체는 사실이다. 다만 그 줴기밥은 100여명의 여자들이 일일이 손으로 깨지지 않은 것으로 골라낸 최고급 쌀에 볏짚을 태워 만든 찰기가 넘치는 밥과 동유럽산 기름, 뉴질랜드산 소고기, 비싼 해산물 등으로 만들어졌기에 개당 재료값만 45달러가 넘었으며 김정일이 타고 다닌 차는 실제로는 야전승용차가 아닌 벤츠였으니, 고난의 행군 시기에 "소고기가 든" 줴기밥을 먹어가고 '벤츠' 차 안에서 잠을 잤다고 하면 얼추 맞는 셈이다.
- 물론 김정일의 생전에도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의 실생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유추하고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인민들 굶을 때 쪽잠에 줴기밥 먹었다면서 배는 왜 그렇게 나왔나?"라고 조롱했으며, # 주민들 사이에서는 '장군님의 쪽잠은 푹신한 곳이요, 줴기밥도 영양가가 다 들어간 것일 것이다'는 말도 돌았다. # 심지어 2018년에는 김정일 사망 7주기 추도문에 나온 쪽잠에 줴기밥 소리를 듣고는 고난의 행군 시기 수백만의 주민들이 굶어 죽어도 위에서는 호의호식하면서 잘살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쪽잠과 줴기밥으로 한 생을 보냈다는 추도문 내용이 어이가 없다며 대놓고 분노한 사람까지 나왔다. # 참고로 이는 2006년부터 중국 단둥과 연길에서 인기를 얻던 후지모토 겐지의 책이 북한 내에도 퍼진 것의 영향이 크다고 하다. #[116]
그러나 북한은 이렇게 '쪽잠에 줴기밥'이 '남조선'은 물론 자국 국민들에게 조롱을 받고 있는데도 정신을 차리기는 커녕 오히려 후술하듯 김정은에게도 이를 완전히 베낀 선전을 적용하고 있으며, 무려 2023년에도 쉬지 않고 '쪽잠에 줴기밥' 선전을 하는 중이다. - 김정일은 "잠은 쪽잠이 제일 달고 밥은 줴기밥이 제일 맛있다."는 교시를 남겼다.
- 북한에서는 2022년 이 말에 대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충성의 결심을 가다듬게 하는 이 격언은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끝없는 열정과 무한한 헌신성을 이야기하며 노동당시대의 새 격언으로 길이 전해질 것이다."라고 평가했다.저 충성의 결심이 남한 체제에 대한 거면 맞는 말이다. - 김정일은 고생을 겪는 인민들 생각에 줴기밥에 손도 대지 못한 채 현지지도에 오른 적과 식탁에서 한 공기 죽을 놓고도 수저를 들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반박) 김정일의 식탁에는 한 공기 죽 대신 20~30개에 달하는, 세계 각지의 다양한 최고급 요리들이 올라와 있었다. - 김정일은 어릴 적에 어머니가 끓여주던 강냉이죽을 잊지 못해 성인이 된 후에도 강냉이죽, 그것도 순 통강냉이를 푹 삶은것밖에 다른 가공을 하지 않은 통강냉이죽을 즐겨먹었다. 이는 일반 주민들의 식생활에서도 흔치 않은 수준이다. 이는 어릴 때부터 백두산 밀영[117]에서 성장한 김정일의 혁명적 신념과 의지가 담겨 있고 억천만번 죽더라도 혁명을 하겠다는 항일유격대의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이 어려있는 음식이다. 즉, 죽은 먹을 것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음식인 것이 아니라 김일성의 사랑이 담기고 김정일의 혁명정신이 담긴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박) 물론 김정일은 죽을 먹는다고 해도 샥스핀이 들어간 죽만을 먹었다. - 자신께서는 쪽잠과 줴기밥으로 끼니를 이으시면서도 이 나라의 사랑하는 자식들에게는 하나라도 더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이시려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며 거기에서 인생의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을 찾으시는 위대한 장군님은 진정 인민의 자애로운 친어버이, 위대한 인민의 수령이시였다.
- 김정일은 불면불휴로 일하기 위해 남이 2~3시간 동안 자는 잠을 10~15분 동안에 집중적으로 자는 습관을 들였다.
-실제로 이 정도밖에 안 자면 특이체질이라 해도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성인도 최소 5시간은 자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4.3.5. 2010년 8월 24일 로동신문 기사 중[118]
- 우리의 김정일장군! 천만강적에 벼락을 치는 백두산호랑이의 서리발기상도 담대무쌍하고 백승불패의 정예대군을 거느린 그 용력과 위엄도 비길 데 없다.
- 김정일장군은 곧 강성국가 조선의 이름이며 이 존엄있고 힘이 강한 조선은 그이의 사상과 이상, 피와 땀, 만고풍상의 혁명생애의 총화이고 이 시대와 후손만대 앞에 남기는 장군의 기념비, 장군의 생명체이다.
- 장군으로 하여, 조선으로 하여 평화가 수호되였으며 동북아시아에 초대제국의 패권과 일극통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정의의 극-강력한 힘의 보루가 형성되었다. 바로 우리의 백두산장군은 강국이라는 이 철의 성새로써 인류의 재난과 참화를 수없이 막아내고 동방에 끝없이 맑고 푸른 하늘을 펼쳐준 세계평화의 수호자이시며 인류의 발전과 번영을 지켜준 거룩한 은인이다. 인류를 위한 이 거대한 공적은 온갖 궤변과 중상을 바람처럼 가차없이 날려보내고 더욱더 선명하게 사람들의 지성과 양심에 새겨지고 있으며 장군에 대한 흠모열은 국경과 언어, 정견을 넘어 세인의 마음을 틀어잡고 있다.
- 김정일은 애국이라 하기에는 그 업적이 너무도 높고 장군이라 하기에는 그 위력과 기개가 너무도 크며 위인이라 하기에는 그 품격과 인력이 너무도 숭엄하고 강렬하다.
- 김정일은 세계가 다 모르는 막강한 국방공업의 위력과 그 놀라운 첨단경지를 보신 그날에도 《우리가 허리띠를 조이며 선군을 하지 않았다면…》하고 깊은 추억에 잠기시였고
선군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들의 민생이 지금만큼 작살나지는 않았겠지.제국주의 열강들이 조선의 배짱과 담력앞에 기가 꺾이여 어쩌지 못할 때에도, 나라에 변이 터지고 우리의 목표들이 하나하나 실현되는 희한한 기적들을 보실 때에도 《우리가 선군을 하기 얼마나 잘했는가.》라고 하시며 크나큰 기쁨과 만족을 금치 못해하신다. - 천만강적도 발밑에 눌러딛고 지구도 통채로 들어올릴 담대한 배짱과 영웅남아의 기개를 지닌 거룩한 장군이시지만 우리앞에는 언제나 친근한 아버지, 한없이 인자하고 소박한 어머니, 눈물많고 정깊은 위대한 동지로 서계신다.
- 우리가 흔히 보아온 보통의 정치가라면 원칙을 지키는 어려운 길보다 지조와 량심을 팔며 일시적인 《번영》을 구걸해서라도 인민의 환심을 사고 당대의 치적만을 생각하는데 급급했을것이다.[119] 진정한 령도자라면, 참다운 애국자, 위대한 인간이라면 력사와 인민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하는가를 우리의 장군께서는 자신의 실천적 모범으로 똑똑히 보여주시였다.
- 인간에 대한 인간의 매혹과 신뢰는 피와 정으로 결합된 고결한 동지의 세계, 불패의 일심통일체를 낳았다. 장군우에 인간이 있었듯이 강국우에 단결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결하고 순결하신 우리 장군님의 위대한 인간세계는 사랑의 세계, 동지의 세계, 전우의 세계로 가득 차있다.
- 위대한 장군님과 함께 포성없는 전쟁의 사선천리도 헤치고 피눈물의 바다, 비약의 폭풍시대, 이루 상상할수 없는 천만가지 시련을 겪을대로 다 겪으면서 위대한 그이와 한마음한뜻이 되고 한모습, 한피줄기가 된 이것이야말로 50년의 가장 고귀한 총화이고 가장 위대한 승리이다. 허장성세하는 제국주의강적들도 아연실색케 하고 기절초풍케 할수 있는 신화적인 물리적타격력과 함께 아직 이 지구상의 어느 군대, 어느 인민도 가져본적이 없는 수령결사옹위의 무적의 정신력을 소유한 사상의 정예대오, 불패의 군민대단결! 이것이 위대한 김정일장군의 힘이고 진짜 강성대국이며 오늘의 승리에서 천년만년의 무궁번영을 가슴벅차게 안아보게 하는 무진막강한 국력의 분출이다.
- 복잡다단하며 혼돈과 위험으로 가득 찬 오늘의 세계에는 하늘의 태양과 같고 만리대양의 등대와도 같으신 김정일장군이 계셔야 하며 만년강설도 순간에 녹여주고 불모지우에도 꽃을 피우는 사랑과 인덕의 화신이신 우리의 장군이 계셔야 한다.
4.4. 김정은
- 김정은은 세 살 때 간체자로 쓰인 '광명성 찬가'라는 한시를 붓글씨로 번체자로 옮겨 썼다.#
-(반박) 김정은의 이모 고용숙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어릴 적에는 공부를 싫어해서 어머니 고용희가 공부를 더 하라고 꾸짖자 단식투쟁까지 했다고 한다. #1 #2 - 김정은은 김정일과 하나음악정보센터를 함께 방문했을 때 김정일을 먼저 엘리베이터에 태워 보내고는 엄청난 속도로 계단을 올라가 김정일이 탄 승강기가 와 닿기도 전에 승강기 앞에 도착하여 아버지를 기다렸다. 이는 인민을 위한 길에 함께 계시며 김정일을 충정 다해 받들어 온 김정은의 숭고한 풍모를 전해주고 있다. #
-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결코 호의호식하지 않았고, 도리어 인민들이 겪는 고생을 함께 겪기 위해 거의 매일 줴기밥(주먹밥)과 죽으로 끼니를 때우고 풋강냉이 한 이삭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1 원본
-(반박) 물론 고난의 행군 당시 김정은은 원산의 별장에서 산 후 고난의 행군 말기에 스위스에 유학을 가서 일반 북한 주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편하게 살았으며, 상술했듯 이는 김정은의 친부 김정일이 생전에 했던 허위 선전을 완벽히 베낀 것이다. -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이 시각도 어버이장군님처럼 줴기밥으로 끼니를 에우시며 현지지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신다.
- 해당 글에 대놓고 '무우오가리(무말랭이) 같은것을 밥반찬으로 속에 넣고 손에 들고 먹을수 있게 만든 줴기밥!'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 2020년 1월 18일 김일성종합대학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 <이어지는 '리상적인 도중식사' - 줴기밥>에 나오는 구절이다. 사실 당시 김정은의 몸무게가 140kg에 달했다.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10년 가까이 야전차량에서 쪽잠을 주무시고 (무우오가리가 들어간) 줴기밥 한 덩이로만 끼니를 때움으로써 몸무게 140kg을 달성하시였다.사실 북한 측에서도 양심이 찔렸는지 고난의 행군 시기면 몰라도 집권 후의 김정은이 줴기밥으로 끼니를 때운다는 선전은 해당 글이 거의 유일한 수준일 정도로 사실상 안 하고 있다. 사실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은이 줴기밥과 죽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선전도 2013년 처음 한 후 2019년 로동신문에서 잠깐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 김정은은 줴기밥에 쪽잠을 자면서 현지지도에 있어서 아파서 몸이 부었다.
- 탈북자 류희진이 폭로한, 북한이 주장하는 김정은이 살이 '쪄 보이는' 이유다. 영상의 6:17~6:26 부분본인도 말하며 어이없었는지 피식 웃었다.국내에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품는 사람이 있다.[120] - 김정은은 불과 2년간의 유학 생활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4개 국어를 숙달한 천재이며,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7개 국어를 완전 정복하겠다고 김정일을 도와 국가 전반의 사업을 지도하며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를 학습하고 있다.
-(반박) 실제 김정은은 7개 국어는 커녕 도널드 트럼프와 만났을 때 간단한 영어 대화조차 불가능했으며, 그나마 스위스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독일어는 유창하다고 한다 - 유학 시절 김정은이 '미제와 제국주의 열강'이 일으킨 전쟁을 목격하고 "핵을 가진 자들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기 때문에 북한은 핵을 갖게 되었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 것도 다 김정은 덕분이다.
- 김정은은 2008년 12월 김정일을 따라 사리원 미곡협동농장에 갔을 때 협동농장 관리위원회 건물 앞에 게시된 표준비료량 표의 오류를 즉석에서 찾아낸 뒤 새로은 형태의 미생물비료를 대안으로 제시했는데, 그 방법대로 했더니 이듬해 정보[121]당 최고 15t의 벼를 수확했다. #
-(반박) 2020년 기준 북한의 쌀 생산량은 1ha당 4.5t도 되지 않고, 남한의 쌀 생산량은 1ha당 6.5t 정도 되며, 동시기 기준 1ha당 쌀 생산량이 가장 많은 오스트레일리아도 10t 가량에 머물렀다. # 게다가 김정은이 농업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황당한 소리다. - 태양과도 같은 김정은의 영상에서 세계는 사회주의강국의 여명을 마중해가는 위대하고 강용한 조선인민의 불굴의 기상과 아름다운 내일을 보고 있다.
- 김정은의 영상을 가리키는 표현에는 '숭엄한' '자애로운' '존귀하신' '거룩하신' 등의 표현이 쓰이며, 이는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숙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 김정은은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 때문인지 외양과 목소리에서 김일성을 모방하려고 하고 있으며, 이 때문인지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외양과 목소리가 김일성과 판박이라고 인식된다. 상술한 북한에서의 젊은 김일성 얼굴 묘사를 감안하면 북한 선전 매체 속 세계관에서는 김정은 같은 얼굴도 남한으로 치면 차은우 포지션의 잘생긴 얼굴로 여겨질 수 있다는 소리다.(...) -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에 대해 "경애하는 원수님을 몸가까이 뵙는 순간 얼마나 눈이 부신지 해님이 웃으며 걸어오는것만 같았습니다." "그이의 환하신 미소앞에서는 지구상의 그 어떤 오만과 강권, 뿌리깊은 불신도 산산이 깨져나가고 반성과 전환의 새 기운이 약동한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 김정은이 아무런 특별한 것이 없는 인민복 차림으로 나서시여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는 세계의 모든 번화가도 빛을 잃는다.
- 김정은은 언제나 따뜻한 봄빛으로 오신다. 혈류가 느껴지는듯 한 부드러운 손길로, 사랑에 젖은 가슴울리는 음성으로,
실제로는 돼지 멱따는 소리온몸을 포근히 감싸주는 어머니옷자락으로, 줄줄이 눈물을 쏟게 하는 이름할수 없는 정의 바다를 안고 그이는 인민에게 오신다. - 눈부신 우리 태양, 그 무게는 우리 인민과 인류의 심장을 다 합친 무게이고 그 무한대의 광원은 따르는 인민의 충정과 인류의 매혹의 열기이다.
- 이들은 모두 2020년 6월 29일 로동신문 동태관 정론 <눈부신 우리태양>에 나온 구절들이다. 이 논설은 동태관의 정론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수준으로 김정은을 찬양한 것이라고 할 만하다. # - 김정은은 모든 분야에 정통하고 전문가들도 견줄수 없는 다방면적인 식견을 지니고 있다. 김정은은 비범한 예지와 천리혜안의 선견지명을 지녔으며, 정치, 경제, 문화, 첨단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고, 특히 영장으로서의 자질과 천품을 지니고 각 군종, 병종, 전문분야는 물론 최신군사과학기술과 각종 군사장비들에도 완전히 정통해 있다.
- 김정은의 고매한 인품과 인민적 풍모는 인류의 심장을 틀어잡으며 끝없는 매혹을 불러일으키고있다.
-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본 유럽의 한 외교관은 《분명 그이께서는 친화력을 지니고 계시였다. 그이의 모습은 참으로 위풍당당하시였다.》[122]고 말하였다.
- 김정은은 많은 나라의 저명한 인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개성이 뚜렷한 정치가》, 《위대하고 훌륭한 지도자》, 《강력하고 멋있는 령도자》로 칭송받고 있으며 캄보디아 신문 《크메르 타임스》는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수십억의 사람들이 실황중계로 뵈올수 있었던 그이는 너무도 멋진 지도자
(?)이시였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였다. - 김정은은 특출한 실력과 풍모를 최상의 경지에서 체현하신 절세의 위인이다.
- 조선의 오늘, 우리민족강당 등의 선전 사이트에서 자주 등장하는 문구이다. 원문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는 혁명의 령도자가 지녀야 할 특출한 위인적풍모를 가장 완벽하게 체현하신 절세의 위인이시다.' - 김정은은 조국의 미래와 관련한 일이라면 아무리 자그마한 문제도 천만가지 국사중의 제일국사로 내세우시며 시간과 품을 아끼지 않았다.
- 김정은은 인류가 낳은 가장 걸출한 영도자요, 현 세기를 이끌 찬란한 태양이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리 혁명의 진두에 모신것은 대를 이어 수령복, 태양복을 누려온 우리 인민이 또다시 받아안은 최상최대의 행운이고 특전이다.
- 세계가 공인하는 위인중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조선로동당의 총비서로 높이 모신것은 우리 인민의 크나큰 영광이며 긍지이다.
-(반박)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강하다는 지도자가 다스리는 국가에 김정은 집권 이후 방북한 국가원수가 겨우 4명[123]이고 김정은이 집권 이후 만난 국가원수가 겨우 4명[124]이라는 것이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 인류역사는 위인들을 적지 않게 배출하였다. 그러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와 같이 사상과 정치, 경제[125]와 문화,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으로 하여 그처럼 높은 권위를 지니시고 혁명과 건설을 이끄시는 영도자는 알지 못하고있다.
- 김정은의 위대성은 천리혜안의 예지와 비범한 통찰력으로 변천되는 역사발전의 추이를 환히 꿰드시고 우리 시대 혁명과 건설에 관한 위대한 실천강령들과 백승의 전략전술적지침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시는 사상이론의 위대성이고 비상한 조직력과 능숙한 영도예술, 강의한 의지와 무비의 담력으로 사회주의건설전반에서 눈부신 전성기를 펼치시는 영도의 위대성이며 혁명가로서,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풍모를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시고 인민들에게 끝없는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는 덕성의 위대성이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위대한 천품은 그이께서 발표하신 불멸의 노작들에 비껴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노작들은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의 진로를 밝혀주는 걸출한 사상이론의 영재, 절세의 위인만이 내놓을수 있는 기념비적저서들이다. 여기에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 건축, 보건, 체육 등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부문, 모든 분야에서 나서는 이론실천적문제들로부터 혁명가들이 지녀야 할 혁명관, 인생관과 윤리도덕[126]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이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밝혀져있다. 이것으로 하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노작은 정치가이건 철학가이건 예술가이건 군사가이건 할것없이 모든 사람들의 심장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는것이다.
조국과 민족, 시대와 혁명앞에 쌓아올리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업적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위인들의 지혜와 정력을 다 합쳐도 이루어낼수 없는 세기적인 업적이며 바로 여기에 우리 인민과 진보적인류가 위대한 영도자로 한결같이 흠모하는 총비서동지의 높으신 권위가 있는것이다. 조국과 혁명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세인의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위대한 업적을 끊임없이 이룩해나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위인상과 권위는 성스러운 혁명실록과 더불어 더욱 빛을 뿌릴것이다. - 김정은의 거룩한 존함은 가장 성스럽고 매혹적인 부름으로 이 행성의 시공간에 가득차 어디서나 태양처럼 빛을 뿌리고 있다.
-(반박) 사실 '남조선'의 여배우 중에서도 김정은이 있고, 심지어 '남조선'의 걸그룹 멤버 중에서도 본명이 김정은인 사람이 있다. 평양문화어보호법대로라면 '김정은'이라는 이름도 '남조선식 이름'으로써 금지되었어야 한다. - 《3.18혁명》[127]이 마침내 대성공의 뇌성을 터친 그 시각 우리 원수님께서는 만세의 환호를 올리는 국방과학전사들을 한품에 뜨겁게 포옹해주시며 한 과학자에게 자신의 등에 업히라고 이르시였다. 너무도 놀랍고 무엄하여 주저하는 그를 뜨겁게 그러안으시고 스스럼없이 등에 업으신 그이께서는 이 세상 제일 환한 웃음을 뿌리시였고 정말로 생의 더없는 기쁨에 어찌할수 없으시였다. 그것은 정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고(???) 가장 위대하고 깨끗한 인간의 모습이였으며 행복한 어머니의 모습이였다. 당시 모습 [128]
- 온 나라 인민이 그이의 등에 업히고 옷자락에 감싸이고 품에 안겨들며 시련의 천만고비를 웃으며 헤치고 승리를 향해 달려왔다. 이 나라 인민이 결사의 성새가 되여 받들어모셔야 할 그이이시건만 오히려 자신께서 인민을 그렇듯 정히 받드시고 인민이 헤쳐야 할 길을 자신께서 천신만고하여 다 열어나가시였다. 그렇게 인민은 늘 편히 앉아 승리의 월계관만을 받아안게 하시고 고생길이란 고생길은 누구도 모르게 자신께서 다 걸으시였으니 우리 원수님 이야기만 나오면 누구나 눈물에 젖는 이 나라 아들딸들이다. 이런 고맙고 위대한 어머니를 우리 어찌 온넋을 다해 사랑하지 않을수 있고 목숨바쳐 지켜드리지 않을수 있으랴. 그이와 함께라면 시련도 영광이고 죽음도 행복이다.
- 김정은은 인민에게는 봄날의 해빛과도 같이 따사롭고 원쑤들 앞에서는 용서를 모르는 백두산호랑이와도 같다.
- 김정은이 사상이론들에는 10년을 1년으로 앞당기는 묘수들이 집대성되어 있으며, 김정은의 현지지도 강행군은 축지법으로 일관되어 있다.
- 다만 이는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것은 5.1문단에서 후술. # - 김정은의 뛰어난 자질과 영웅적인 풍모는 세계인들을 경탄에 빠트리며 만민을 매혹시키고 있다.
- 김정은에게 있어서 인민에 대한 사랑은 그 어떤 정치적 의지나 영도자의 의무이기 전에 자신의 양심이고 타고난 천품이다.
- 김일성이 손자, 손녀들에게 사과를 따오라는 과제를 내자 김정은이 사과나무를 뿌리째 뽑아왔고 이를 본 김일성이 김정은을 보고 대장부라고 칭찬했다.#
-(반박) 상술한 것처럼 누구보다 완벽힌 적대계층인 고용희의 존재의 영향으로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김정은과 만나기는 커녕 김정은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129] 자신이 살해한 이복형 김정남을 김일성이 매우 아껴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손자(김정남)과 낚시를 하는 게 취미다. 내가 좋아하는 손자를 데리고 갈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던 것과는 정반대인 셈. # - 2009년 5월 김정은이 어느 공장을 찾아갔을 때 일꾼들이 김정은에게 “신비한 사격술을 보여주십시오.” 하며 간절한 청을 올리자 김정은은 이를 받아들이며 50m 밖에 있는 전등알을 쏘려 했는데, 하필 그때 바람이 불어서 전등알이 또 마구 흔들렸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걸 속사로 다 쏴서 맞혔는데, 이후 일꾼들이 전등알에 여러 가지 색을 칠한 걸 쏘자 그게 부셔지며 무지개가 만들어졌다.
- 김정은은 총을 솔 때 병을 조준도 안 했는데 쏘니 100% 다 맞았다. #
- 주성하는 이에 대해 언급하며 "정 김정은이 그렇게 총을 잘 쏘면 왜 자랑을 못합니까? 별 걸 다 기록영화로 보여주면서 이 멋진 장면을 찍어 방영하면 여기 남쪽 사람들이 김정은을 얼마나 대단하게 보겠습니까? 이런 것은 영상을 공개해 증명하고 널리 자랑을 해야죠. 안 그렇습니까?"라고 비꼬았다. - 김정은은 10대 때 사상이론 활동의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는 저술활동을 벌였으며, 16살에 군사전략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김일성의 영군술과 그 업적에 대한 다방면적이고도 종합적인 논문을 대작으로 완성해 만사람의 경탄과 존경을 불러일으켰다.
- 김정은은 여러 차례의 노작과 같은 논문을 집필했는데 그 중 집권 초기인 2012년 4월 20일에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쓴 1만 4천 자 분량의 논문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이시다'가 대표적이다. 이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유훈을 받들어서 체제를 유지하며 계승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보면 '만사람의 경탄과 존경'을 불러일으키기는 커녕 논문의 기본조차 되어있지 않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우상화 찬양문으로만 보이며, 왜 소련 사람들이 북한의 선전물을 개그물로 여겼는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 - 군사분야에 관한 김정은의 독창적이고 비범한 사상이론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최상의 경지이며, 김정은은 오늘의 북한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영도로 주변의 대국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다는 역사에 전무후무한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 쉽게 말해 북한이 남한은 물론, 일본과 중국, 러시아도 다스린다는 뜻이다. 물론 북한의 국력 실태를 고려하면 '역사에 전무후무한 독창적인 견해'라는 것은 맞긴 하다. - 천재적인 군사사상과 탁월한 영군술, 무비의 담력과 배짱으로 부국강병의 대업을 이룩해나가는 김정은의 영도 밑에 우리의 혁명무력은 세계가 무시할 수 없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무적의 힘을 지니게 되였다.
- 자애로운 우리 어버이! 진정 새겨볼수록 가슴젖는다.이 부름은 우리에게 이 세상 제일 강하고 자애로우신 아버지, 제일 뜨겁고 고마우신 어머니가 계신다는 인민의 환희이다.[130] 바로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이고 자부이며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민족의 행운이고 긍지이다.
-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큰 관심을 모으고 가장 놀라운 지각변화를 일으킨 전략가', '몇세기에 한번이나 출현할수 있는 위대하고 지혜롭고 강력하고 멋있는 지도자'… 역대 어느 대국지도자들에게도 쓰이지 않던 존칭수식사들이 등장하여 사람들을 놀래우고 그 무슨 엄격한 계율로 되여있는 '불문율'도 초월하여 그 수뇌들이 폭풍찬양, 무한신뢰를 아끼지 않는 이 경이적인 현실은 우리 인민에게 비길데 없는 긍지와 가슴뿌듯한 행복감만을 주는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위대한 분을 모신 강대한 나라의 인민인가 하는 것을 새로운 눈으로 절감하게 하는 이 크나큰 환희는 거대한 에네르기가 되여 조국을 비약에로 떠밀어주고 있다.
- 우리 인민에게는 어려울수록 꼭 잡고 시련의 광풍이 세찰수록 더 뜨겁게 잡는 귀중한 손길이 있다. 그 손길 잡으면 만리도 지척되여 걸음에 나래돋고 그 손길 놓치면 갈길을 잃은 풍랑의 쪽배가 되는 운명의 손길, 그것은 바로 조선인민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사랑의 손길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손길이야말로 인민의 운명을 지켜주고 구원해주실 손길임을 조선인민은 책에서 알지 않았고 노래에서 배우지 않았다. 생활의 체험이 안겨준 삶의 진리였다.
생활의 체험이 그 반대의 결과를 안겼다고 하면 맞는 말이다.경애하는 김정은동지 따라 걸어온 지난 수년간의 나날에 심장으로 새기고 온넋으로 확신한 진리였다. - 김정은의 천재성, 비범성은 인류지성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 참으로 남들이 수십년 걸려야 한것을 단 몇해동안에 해제끼고[131] 또다시 도약하여 세계에 없는것을 연속다발적으로 개발완성하는 신비한 힘, 인구수나 영토의 크기로는 잴수 없는 주체조선의 무진막강한 힘은 김정은의 특출한 영도실력에 근본원천을 두고있다.
- 이 세상에 태양계를 가를 힘은 있을지 몰라도 영도자(김정은)와 한심장을 이룬 조선의 이 혼연일체를 가를 힘은 지구상에 없다.
- 김정은은 며칠밤을 쉬지 못하고 차안에서의 쪽잠까지 미뤄가며 일한 적도 있으며, 김정은의 건강이 염려되여 또다시 한 일군이 잠시라도 쉬실것을 말씀올렸을 때에도 일에 파묻혀 밤을 새우는것을 오히려 낙으로 여긴다고,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제일 보람차고 행복한 때는 일에 파묻혀 볶이울 때라고 말했다.
그이께서도 인간이시고 정신육체적과로가 겹쌓이면 휴식을 하셔야 한다. 하건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자신의 발걸음에 조국의 전진이 달려있다는 숭고한 사명감, 자신께서 헌신하시는것만큼 인민의 재부가 늘어나고 행복이 꽃핀다는 고결한 인생관을 지니시고 삼라만상이 고요속에 잠든 깊은 밤에도, 때로는 식사시간마저 잊으신채(?)분투하시는것이며 그것을 오히려 낙으로 여기시는것이다.
- 2022년 11월 13일 로동신문 기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혁명시간>에 나오는 구절이다. # - 역사에는 수많은 이름있는 정치가들과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하루의 24시간을 분분초초로 쪼개가시며 정력적으로 사업하시는 우리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같으신 위대한 혁명가, 걸출한 위인을 알지 못하고있다.
- 김정은은 2015년 5월 석막대서양련어종어장(연어 양어장)이 "인민들의 식탁을 보다 풍성하게 해줄 고급어족들이 욱실거린다"[132]고 말하며 "언젠가는 연어 양어를 기어이 성공시키고는 금수산태양궁전에 계시는 어버이장군님께 인사를 드리자"고 하면서 머나먼 평양하늘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반박) 북한에서는 이 양어장을 '세상에 없는 물고기산원'이라고 김정은의 '뜨거운 인민사랑'의 징표라는 식으로 자화자찬했지만, 정작 북한은 1년 뒤인 2016년 연어 대량 양식이 실패하자 연어 양식을 포기하고는 송어 양식으로 목표를 슬그머니 바꿨다. # - 김정은의 은덕으로 인민군대 안의 수산부문 일군들과 어로전사들이 마련한 수천t[133]의 물고기가 열차와 자동차들에 가득실려 평양에 도착하였다. 평양시민들이 받아안은 이 사랑에는 인민들에게 사철 신선한 물고기를 먹이기 위해 한평생 온갖 노고를 바치시였으며[134]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도 수도시민들의 물고기 공급과 관련하여 가슴 뜨거운 조치를 취해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이 그대로 인민들에게 가닿도록 해주신[135] 경애하는 (김정은) 총비서동지의 위민헌신의 세계가 그대로 비껴있다. #
-(반박) 이는 2021년 12월 22일 로동신문 기사 "수도시민들에게 베풀어진 뜨거운 은정"에서 김정은이 김정일 사망 10주년 차원으로 평양 주민들에게 '명절 공급' 차원으로 물고기[136]를 공급한 것에 대한 언급인데, 덤으로 이 기사에 따르면 평양시 안의 당, 정권기관 일군들이 주차장과 기차역들에서 물고기 수송차 행렬을 뜨겁게 맞이했다고 한다. 이 기사대로라면 김씨 3대는 김일성이 이밥에 고깃국을 처음 말한 지 60년 가까이 되도록 물고기를 평양 시민들에게 먹이는 것까지 당연한 것이 아닌 '은덕'이라 여겨야 할 정도로, 전국은 커녕 평양에서도 육지동물의 고기는 커녕 물고기 먹이는 것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무능한 지도자에 북한이 식량난에 시달리는 국가라는 것만 스스로 드러낸 꼴이다.[137][138]
- 참고로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인민들에게 물고기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애민정신'으로 찬양하는 모습들은 이 링크에서 더 자세히 나오는데, 보면 남한 사람 입장에서는 개그 노다지(...) 수준이다. - 우리 조국은 적대세력들의 고립압살책동이 국도에 달하고 사상 최악의 보건 위기와 자연재해 속에서도 정치와 군사, 경제와 문화의 모든 면에서 반만년 민족사에 일찌기 있어본 적 없는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였다. 이것은 전적으로 절세의 에국자이고 희세외 천출위인인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께서만이' 이룩할 수 있는 만고불멸의 업적이다.#
- 이는 2023년 2분기에 금성청년출판사가 김정은 또래의 청년 근로자들에게 배포한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을 따라 배우는 학습회 참고자료'에서 나온 말이다. 북한은 그동안 신문과 TV, 방송을 통해 총비서를 흠모하고 따르는 인민의 마음이 아버지를 따르는 혈육의 정과 같다는 식의 선전을 해왔으나 대놓고 김정은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을 붙인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시여 우리 조국의 전야마다에는 언제나 황금이삭이 물결칠것이며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바라시던 념원은 반드시 현실로 펼쳐지고야말것이다.
- 무더위에 야외에서 하는 행사에서 인민들이 무더위에 쓰러지는 것과 사고에 휩싸이는 것을 막기 위해 의약품들을 구비해두고 의료진들과 구급차들을 배치한 것은 이민위천 사상을 구현한 위대한 김정은원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제일주의 기본정신의 발현이다. #
-(반박) 이 논리대로라면 '남조선'의 가수도 '이민위천' 정신을 김정일보다 먼저 구현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 사실 대부분의 가수들은 콘서트를 할 때 구급차와 의료팀을 배치하며, 이 행위를 가지고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미담인 것마냥 포장하지도 않는다. - 아직까지 역사에는 온 나라를, 그것도 당대에 완전히 천지개벽시킬 웅지를 안고 실천에 옮긴 위인에 대한 기록이 없다. 세상에 오직 한 분 우리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만이 그 누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이처럼 크나큰 설계도를 펼치고 하늘도 놀래울 대용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 이는 김정은이 2021년 12월 말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전원회의에서 발표한 연설문 '우리식 사회주의농촌발전의 위대한 새시대를 열어나가자'에서 '전국의 농촌마을을 삼지연시 농촌마을 수준의,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이상촌으로 만들자'는 목표를 제창한 것에 대한 언급이다.[139] 참고자료 - 그이(김정은)의 건강이 염려되여 한 일군이 잠시라도 쉬실것을 말씀올렸을 때에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자신께서는 일에 파묻혀 밤을 새우는것을 오히려 낙으로 여긴다고,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제일 보람차고 행복한 때는 일에 파묻혀 볶이울 때이라는데 대하여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도 인간이시고 정신육체적과로가 겹쌓이면 휴식을 하셔야 한다. 하건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자신의 발걸음에 조국의 전진이 달려있다는 숭고한 사명감, 자신께서 헌신하시는것만큼 인민의 재부가 늘어나고 행복이 꽃핀다는 고결한 인생관을 지니시고 삼라만상이 고요속에 잠든 깊은 밤에도, 때로는 식사시간마저 잊으신채
(?)분투하시는것이며 그것을 오히려 낙으로 여기시는것이다.
- 2022년 11월 13일 로동신문 기사 <총비서 동지의 혁명시간>에 나온 언급이다. #
- 이 기사에서는 김정은이 차안에서의 쪽잠마저도 미루고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며' '불후의 고전적로작'들을 써냈다고도 선전하고 있다. - 세상을 둘러보고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한 해에 거대한 의의를 가지는 성과들과 불리한 판세를 완전히 뒤바꾸고 비약적인 발전국면을 열어놓는 사변들을 연속해 이룩하며 세계정치지형에서까지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영도자는 찾아볼 수 없다.
- 김정은은 미국에 가장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여 적들의 허장성세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나라의 장래운명을 굳건히 담보했다.
- 김정은의 혁명영도는 인류정치사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비범한 특징이 있다. 이하 2024년 1월 23일 로동신문 기사 <전설적인 영도가 안아온 기적입니다> 인용
- 사실 과학기술전당이 설계도 우리 식으로 하고 시공도 우리 식으로 한 우리 식의 건축물로, 당의 주체적건축미학사상이 훌륭히 구현된 기념비적창조물로 일떠설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그이의 세심한 지도와 현명한 영도가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도 자신의 노고는 다 묻어두시고 우리 인민과 군대가 창조하고있는 놀라운 건설속도에 탄복하게 된다고 하시며 그 모든 성과를 건설자들에게 돌려주시니 대해같은 그 은정을 어디에 비길수 있으랴.
-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 정녕 이 나라 인민이 잠결에도 그리워 불러보는 부름이 아니던가.
- 김정은의 현명한 영도를 받는 조선은 국제무대에서 강국의 지위를 당당히 차지하고 국방력강화와 경제건설에서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을 창조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의 1인당 GDP가 소말리아보다 낮은 것이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 수준이긴 하다.하기에 러시아뿐 아니라 전세계가 김정은동지를 가장 걸출한 국가정치활동가로 열렬히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 통 넓은 바지[140]는 원수님 같이 몸이 좋은[141] 사람이 입으면 어울리지만 체소한(몸집 작은) 사람이 입으면 꼴불견이다. 매일경제 기사
김정은의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이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자 이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청년동맹 조직이 한 말이다.
4.4.1. 김정은의 '어린이 사랑'[142]
- 김정은은 온 나라 아이들의 친아버지이다.[143]
- 김정은처럼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며, 북한의 어린이들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자애롭고 위대한 아버지가 계신다.
-(반박 1) 이는 2014년 6월 1일에 있던 남한의 어린이날 포지션의 '국제아동절'을 맞이하여 로동신문 2면에 실린 기사에 나온 말인데 #, 오히려 김정은은 이 말이 나오기 1년 전이던 2013년까지도 대규모 아동 학대로 악명 높은 아리랑 공연을 자행했고, 공연을 잠정 중단한 이유도 아동 인권 문제가 아니라 자금난 때문이었으며 2018년에 이를 이름만 바꿔서 부활시켰으나 2020년을 끝으로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중단되었다. 그리고 이 발언이 나오고 9년 후인 2023년 기준으로도 네덜란드 아동 인권단체 키즈라이츠재단(KidsRight Foundation)이 5개 항목을 평가하여 선정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아동인권은 조사 대상 193개국 중 126위를 기록하여 아시아 47개국 중 37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같은 해 기준으로 남한은 태국(8위)에 이어 아시아 2위인 14위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
-(반박 2) 사실 지도자를 '온 나라 어린이들의 아버지'로 강조하는 것은 김일성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우상화 방식인데, 김일성은 '어린이들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선전하며 어린이들을 세뇌했고, 김정은은 자신이 김일성처럼 '어린이들을 사랑한다'고 선전하여 김일성과 본인을 연결시키려고 하고 있다. # 애초에 2살 정도밖에 안 된 아이들에게 부모 이름보다 국가원수 일가의 이름을 먼저 알아야 할 정도의 극악한 세뇌를 자행하면서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 열번, 백번을 곱씹어 말해주어도 기억 속에 간직된 정다운 혈육만을 아버지라 부르는 아이들의 본능은 절대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한 본능을 초월하여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안기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게 되는가. 세상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의 역사를 본다.
-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울이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뜨거운 정이야말로 이 세상 그 어느 아버지, 어머니도 줄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이며 이 땅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사랑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뜨겁고 열렬한 사랑이다.
- 인류가 기억하고 있는 위인들은 후대들에 대한 사랑을 미덕 중의 미덕으로 간주하여 온 아이들의 벗이였고 스승이였다. 허나 그토록 간고하고 어려운 시기에조차 미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가시는 참다운 인간, 위대한 혁명가의 모습은 오직 이 땅에서만 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과 같이 어렵고 곤란한 시기에 굳건히 지켜낸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먼 훗날에 가서 사회주의승리의 함성으로 높이 울려퍼질 것이다.
- 열화같은 사상감정으로 심장을 끓이시는 우리 원수님이시기에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을 하루빨리 안겨주기 위해 그리도 마음 쓰시는 것이며 그 어디에 가시여서도 우리 후대들을 위해 사랑과 정을 깡그리 기울이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아버지라 찾고 부른다. 동심에 새겨안기에는 그 진정이 너무도 뜨겁고 꿈만 같은 것이여서, 어린 마음에도 혈육의 정을 초월하는 숭고한 사랑으로 느껴지기에 우리 아이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뵈올 때면 "아버지!"하고 부르며 저마다 그이의 옷자락에 매달려 눈물부터 쏟는다. 이 세상 아버지들의 사랑을 다 합친다 해도 후대들을 위하시는 우리 원수님의 불같은 정에 어찌 비길수 있으랴.
- 예로부터 설움 중에서 제일 큰 설움은 고아의 설움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김정은을 어버이로 높이 모신 사회주의 우리 조국에서는 친부모도 주지 못하는 혈육의 정은 부모 없는 아이들의 가슴에 따뜻이 흘러넘치고 있다.
- 아직은 '원수님'이라는 호칭에 담긴 그 깊은 뜻을 알수 없는 아이들이 우리 원수님의 품을 파고들며 "아버지!"라고 스스럼없이 부르는 모습이야말로 그 무엇으로써도 지어낼래야 지어낼수 없는, 오직 이 땅에서만 펼쳐질수 있는 혈연의 화폭이다."아버지!", 이 세상 가장 훌륭한 말마디들을 고르고골라도 이보다 더 좋은 친근한 부름을 찾을수 없기에 우리 아이들은 "꿈결에도 보고싶은 우리 아버지 아 보고싶은 김정은원수님"이라고 오늘도 목청껏 노래 부른다.
- 2014년 5월 18일 김정은은 전국의 육아원, 애육원들의 실태를 료해하던 중 병약한 몇몇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들을 대성산종합병원에 입원시키라고 지시했고, 이들이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성산종합병원에 입원한 어린이들을 찾아갔다. 김정은이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10여명의 아이들은 일제히 고무공처럼 자리에서 튕겨나 김정은을 "아버지!", "아버지 원수님!" 하고 부르며 우르르 달려나왔고, 김정은은 만면에 애정을 함뿍 담아 자신을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연이어 매달리는 아이들의 응석과 어리광을 다 받아주고는 원아를 품에 꼭 껴안며 "그래 내가 아버지다. 그렇구말구. 내가 너희들의 아버지가 안되면 누가 되겠니." 하고 속삭이듯 말하자 이제 겨우 2살 난 철부지도 그 말의 뜻만은 알아들은 듯 "아빠, 아버지!"하며 큰소리로 불렀다.[144]
- 김정은은 평양육아원과 애육원의 원아들이 '아버지'를 그리워한다고 새해 첫날에도 찾으시고 국제아동절에도 찾으시며 하늘도 울릴 뜨거운 사랑을 안겨주었다.
- 김정은은 국가의 수많은 문건들이 쌓여있을 때에도 아이들이 삼가 올린 편지를 미루어 놓은 적 없이 일일이 정과 축복을 담아 친필서한을 써서 보냈다.
-(반박) 남한의 대통령들도 어린이들의 편지에 답장을 해주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전두환도 어린이가 쓴 편지에 답장해준 적이 있고(#) 박정희도 편지를 쓴 그 어린이의 학교장에게 크게 될 아이라고 비서실을 통해 칭찬을 전해준 적이 있었다.[145] 물론 미국도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당선 축하 편지를 쓴 어린이들이 바이든에게서 답장을 받은 바가 있으며(#) 에이브러햄 링컨은 수염을 길러보는 게 어떻겠냐는 소녀의 권유를 수용해 수염을 기르고 후에 대통령 취임 후 그 소녀를 직접 만나 감사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 편지는 현재 기념관이 된 그의 옛 집에 아직도 전시되어 있다. 또한 냉전기에 서맨사 스미스의 편지를 받고 정성스레 답장한 유리 안드로포프의 일화도 유명하다. 당연하지만, 남한과 미국은 이런 걸 가지고 "얼마나 지도자들이 어린이들을 사랑하면 어린이들이 지도자에게 편지도 써 주고 어린이들이 쓴 편지에 일일이 답장해줄까?"는 식의 프로파간다용으로 뻥튀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생각했지 결코 특별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 김정은은 "후대들을 위한 사업은 우리 당의 제일중대사입니다." "혁명하는 목적은 후대들을 위한 것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것을 마련해야 합니다."라는 투철한 후대관, 혁명관 하에 엄혹한 시련이 겹쌓이는 속에서 아이들을 위한 소년단야영소, 소년궁전들에 더욱 눈부시게 빛을 뿌리고 육아원, 애육원, 초등학원, 중등학원의 건설이라는 '사랑의 대건설전투'를 벌였다.'어린이 빈궁', '어린이 학대', '소년 노동'이라는 말들이 어지럽게 나돌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우리 조국에서만은 '후대사랑, 미래사랑'과 같은 시대어들이 태어나 만사람을 격동시킬 수 있었으랴.
- 김정은은 모든 고아원 원아들이 부모 없는 설움을 모르고 부러움 없이 혁명의 계승자, 혁명의 골간으로 무력무력 자라게 하자는 것이 당의 확고한 결심이고 의지라고 하며 전국의 육아원, 애육원, 초등 및 중등학원, 양로원에게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300g의 물고기를 배급하도록 했으나 점차 어획량이 늘자 하루도 빠짐없이 400g의 물고기를 배급하도록 했다. #
-(반박) 2019년 기준으로 1인당 물고기 소비량 세계 1위인 아이슬란드의 물고기 소비량이 연평균 91.19kg, 일평균으로는 250g도 되지 않는데 아이슬란드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업 사정이 열악한 북한이 매일매일 수백만이 넘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로 물고기를 먹일 능력이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2014년에 국방경비대 군인들과 어린이들에게 이를 시도했다가 반 년도 안 되어 산원에 공급되는 미역 정도를 제외하면 '물고기를 가공해 다양한 식료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라며 슬그머니 중단되었고 물고기를 배급하던 동안 배급한 물고기도 '수출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품질이 나쁜 물고기였다고 한다. 이후 해가 지나면 물고기 배급을 시도하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 그러나 북한은 빠짐없이 물고기 배급이 끊임없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 2017년 2월 1일 김정은은 아이들에게 싱싱한 감과 통조림을 가져다줬는데, 아이들에게 준 감은 옛날에는 왕들만 먹을 수 있던 수준으로 크고 달달했다. 이는 아이들을 품어안아주고 친어버이사랑을 보살펴주는 '아버지원수님'의 따스한 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 진지하게 따지자면 이 말은 다른 의미에서는 명백한 사실이다. 옛날에 왕에게 진상되던 수박인 무등산수박이 지금은 시중에 팔리는 일반 수박보다 밍밍하다는 평이 대세인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 현재 과일은 품종 개량을 통해 과거의 과일 대비 질과 당도가 대폭 좋아진 것이기 때문. 실제로 영국의 유명 작가 빌 브라이슨은 아예 "셰익스피어가 먹었던 과일들은 대부분 단맛이 아마 오늘날의 당근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촌평했다.[146]
보이다시피 김정은이 어린이들에게 행하는 가스라이팅을 진심 어린 사랑이라고 포장하고 있다. 김정은 시기에 들어와서는 이전보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주입시키는 것이 더욱 심해진 것으로 보이며, 이런 모습들을 보면 과장 안 보태고 소름이 끼칠 정도다.[147]
4.4.2. 김정은의 '비범한 천품'[148]
- 김정은은 3세 때 총을 쏘았고, 9세 때는 3초 내에 10발의 총탄을 쏘아 목표를 다 명중시키며 100% 통구멍을 내 사격선수들도 따르지 못할 명중률과 속도를 보여줬다.
-(반박) 이제는 우상화 수준이 북한의 형법 규정까지 위반되는 것을 예시로 들고 있을 지경이다. 북한 형법 제78조에서 총기, 탄약을 비법(불법)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는 2년 이하 노동교화형에, 정상이 무거우면 2년 이상 7년 이하 노동교화형에 처한다. 거기에, 7세 이하는 북한형법 상 미성인이니, 총을 7세의 김정은에게 사격하라고 준 김정일은 북한형법 제 260조에서 17세에 이르지 않은 자에게 범죄를 교사한(추긴)것이 되니, 미성인범죄추긴죄가 된다.
- 여기서부터는 모두 2014년에 출판된 고급중학교 교과서에서 '비범한 천품'으로 나오는 정보다. 한마디로 유치원생은 물론이고 이를 조작한 사람들마저 비웃을 것 같은 내용들을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친다는 말이다. 이런 내용들은 남한은 물론이고 북한에서도 어이없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는데, 신의주의 한 소식통은 자유북한방송에 '이제 교사들은 3살 난 어린이가 어떻게 총을 쏘고 운전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를 설명해줘야 하는 기막힌 처지'라며 '김정은을 우상화하려다 함정에 빠진 꼴'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정은이니까 가능하다고 하면 되겠지만..
- 2024년 5월 13일에는 북한이 김정은이 직접 저격용 소총을 사용하는 사진과 한가운데를 관통한 표적지를 함께 공개하여 김정은이 저격용 소총으로 5발 모두 맞췄다고 밝히나 사격 영상이나 표적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아마도 2m 거리에서 사격한 것으로 보인다.게다가 김정은이 저격용 소총을 다루는 방법도 잘못되었다. # - 김정은은 어린 시절부터 절대음감을 지니고 여러 가지 악기들을 능숙하게 활용했으며, 화성 같은 것도 특색있게 잘 살려 쓰며 음악편집, 작곡에도 능하는 등 음악에도 전문가 이상의 뛰여난 소질과 재능을 보여주었다.
-(반박) 항목에도 있지만, 절대음감이 있다는 것과 음악에 능하다는 건 엄연히 별개다. 음감이 있으면 유리한 점이 있고 편리한 건 사실이나, 반드시 절대음감이 있어야만 음악을 잘 할 수 있다거나 음감이 없으면 음악에 소질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고 볼 수는 없다. - 김정은은 6살 때부터 사나운 말을 길들여 기수보다도 더 말을 잘 몰았고, 수영, 농구, 배드민턴, 탁구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 김정은은 유학 시절 농구를 매우 좋아했기에 다른 허무맹랑한 소리들에 비하면 눈꼽만큼이라도 현실에 가깝다. - 김정은은 3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해 8살도 되기 전에는[149] 굽이와 경사지가 많은 비포장도로를 대형 트럭으로 시속 120km로 몰고 질주하며 300여리(약 118km)를 달리며 전문운전사들도 무색케 만드는 운전 실력을 보여주었다.
- 이 내용에서의 토론문제가 '경애하는 원수님의 비범한 천품에 대한 사실자료들을 들러보시오'라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생들이 '3살 때 운전을 하고 만 5살 때 비포장도로를 질주했다는 내용들을 가지고 어떤 토론을 할지는 알아서 판단하자. - 김정은은 9살 때 마운틴사의 초고속 보트를 시속 200㎞로 몰아 외국 보트회사 시험운전사를 두 번이나 이겼다.[150]
-(반박) 여기서 일컫고 있는 초고속 보트 제조사가 스노우 마운틴은 북한의 제1주적국인 미국의 회사이며, 마운틴사 관계자는 이 내용을 듣고는 "우리는 북한에 보트를 판 적도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포장으로 미치광이를 돋보이게 만들려는 북한이 우습다"고 단언했다. # - 김정은은 어릴 때부터 대단한 독서가였고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10대 때 보통 인간으로서는 도달할수 없는 높은 경지에 올라 정치와 경제는 물론, 철학, 역사와 같은 사회과학과 수학, 물리학과 같은 자연과학, 그리고 군사와 외교 등 모든 부문에 정통하여 폭넓고 해박한 지식을 보여줬다.
-(반박) 김정은은 스위스의 사립학교에 유학하던 시절에 항상 낙제생이라 결국 중등교육 검정시험에 해당하는 그 어떠한 자격증도 따지 못했다.
탈북자 출신 기자 주성하가 이 교과서의 교사 참고서를 서문부터 2장 1절 중간까지 자신의 블로그에 일일이 타이핑해서 공개한 바가 있다. 물론 이 내용들은 북한 정권을 찬양할 목적으로 올린 것이 전혀 아니라 북한의 우상화 교과서가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고자 하는, 사실상 분석 목적으로 올린 것이기에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 북한의 우상화 교육 실태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인 셈이다. 보러 가기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저 내용들을 보다 '현실적으로' 바꾸면서 풍자하기도 했다. #
4.5. 종합
- 누구든 두 손을 높이 들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하고 3번 외치면 소원이 성취된다.
- 김일성의 탄생일과 김정일의 탄생일은 민족 최대의 명절이며, 김일성의 사망일과 김정일의 사망일은 민족 최대의 애도의 날이다.
- 한 나라 인민이 대를 이어, 세기를 이어 자기의 영도자를 어버이라 부르며 열렬히 흠모하고 신뢰하며 따르는 것은 얼마나 크나큰 민족의 영광이고 행운인가.
- 어느 시대, 어느 인민도 자기의 사상과 정신, 모든 잠재력을 최상의 높이에서 완전무결하게 발휘한 예는 없을 것이다. 영토와 자원을 늘이고 《고도성장》[151]과 억대의 자본을 축적할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인민모두의 심장을 울리고 인민전체의 힘을 하나와 같이 폭발시킨 국가나 지도자는 없었다. 참다운 의미에서의 위인은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힘을 지니고있다. 우리 수령님들과 우리 원수님의 위인세계, 혁명세계에는 천만이 하나로 뭉쳐 일어나 그 어떤 기적도 다 창조하게 하는 무한대하고 신비로운 힘이 있다.
-(반박) 이는 김씨 3대가 북한을 고도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어떻게든 무마하며 어떻게든 김씨 3대의 장점을 만들어내며 이들을 어떻게든 찬양하려고 애쓰는 것으로만 여겨진다. - 위인의 높이는 사상과 철학의 높이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돈이나 원자탄이 아니라 사상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천하제일강국은 바로 사상과 이념의 강국이다. 여기에서 조선을 따를 나라는 역사에도 없었고 현 세계에도 없다.[152] 이 높은 존엄과 절대적 자부심에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세계사적인 업적과 함께 그것을 전면적으로 심화발전시키신 위대한 장군님의 사상이론적공헌이 숭엄하게 깃들어있다.
-(반박) 북한의 사상이 그렇게 강력하다면 겨우 '남조선'의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일생 동안 세뇌되어 온 주체사상에서 벗어나고 사람들이 '지상락원'이자 '수령님의 품'에서 도망치는 일이 수두룩한 나머지 탈북자들을 틈만 나면 '인간쓰레기'라고 모독할 정도에 이른 것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해 무더운 날씨에 군인들을 맨손으로 동원해 두만강 바닥을 사람 키보다 깊게 파내게 하는 기행까지 일어났다는 것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153] 애초에 이런 '이 행성의 최강국'이 고작 '오빠'라는 말과 갈색 머리, 옆으로 메는 가방에 벌벌 떠는 것부터가 북한이 사상적으로 남한에 완패 그 이상의 결과를 맞이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며, 사실 황장엽이 남한으로 탈북한 순간 주체사상은 남한의 정치 체제에 완패했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 김일성이 해방 직후부터 죽을 때까지 현지지도를 이어간 총 거리는 지구를 14바퀴 반이나 돈 거리에 맞먹는 57만 8,000여 ㎞에 달하고, 현지지도한 장소 수는 2만 600여 개에 이른다. 김정일이 평생 현지지도를 이어간 총 거리도 지구 17바퀴를 돈 거리에 가까운 65만 7천여 km[154]에 달한다. 김일성 김정일
-(반박) 나라를 발전시켜준다며 분주하게 나라를 이렇게나 돌아다녔는데도 처참한 결과물이 나온 것을 보면 그냥 현지 시찰을 핑계로 북한 전역을 한가하게 놀러다닌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아니라다를까 주성하의 폭로에 따르면 실제로는 별장에 머무르며 틈틈이 밖에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들이 현지지도한 곳들을 유심히 보면 주변에 이들이 쓰는 별장이 있으니... #
-덤으로 남한 대통령들을 살펴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5년 동안 지구 22바퀴, 박근혜 전 대통령은 3년 동안 지구 10바퀴, 문재인 전 대통령은 2년 동안 지구 9바퀴를 돌았다. 물론 이는 해외 순방이란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 북한 지도자들의 이동 거리가 남한 지도자들의 이동 거리에 비해 기간 대비 너무나 초라한 수준이란 것은 명백하다. 덤으로 문재인도 취임 2년 반 동안 한국 내에서만 지구 한 바퀴 반을 돌았으니, 기간 대비로 따지면 김일성보다 2배는 더 분주하게 돌아다닌 셈이다. # - 돌이켜보면 우리 조국의 유구한 반만년 역사에 비해볼 때 60년이라는 기간은 번개의 불빛과도 같이 너무도 짧은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아래 천리마[155]의 기수들로 억세게 자라난 우리 인민은 역사의 온갖 도전 속에서도 번개같이 내달려 남들이 600년, 6000년을 두고도 이루지 못할 기적과 위훈을 연대와 연대마다에 수놓아왔다.
-(반박) 그 '연대와 연대마다 수놓아온' '남들이 600년, 6000년을 두고도 이루지 못할 기적과 위훈'의 실상은 평양 신시가지와 일부 관광지 개발에 불과하다. - 평양문화어는 어휘와 표현이 인민들의 사상감정에 맞게 발전풍부화되고 세련되여있다. 온 나라가 혁명의 수령을 한가정의 어버이로 높이 모시고 진심으로 따르며 사는 우리 나라에서는 《위대한 수령님, 위대한 장군님, 위대한 령도자, 경애하는 원수님, 친근한 우리 어버이, 아버지원수님, 태양상, 매혹, 영생, 그리움, 모시다, 받들다, 하늘땅이 다하도록》과 같이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에 대한 최대의 흠모와 불타는 충성의 마음을 담은 어휘와 표현들이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쓰이고있다.[156]
- "우리 장군님을 그리워하고 우리 원수님을 그리워하면 불가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심장에 가득찬 사람에게서는 여느때에는 생각지 못하는 무서운 힘이 나옵니다."
-2015년 10월 7일 동태관 정론에 나온 구절이다. - 김일성은 항일무장투쟁 시기 소금에 절인 무우쪼박을 박아넣은 한덩이의 줴기밥과 한공기의 죽, 몇알의 구운 감자와 도토리묵 등을 야전식사로 먹었으며, 김정일도 이런 수수한 식사를 수없이 반복했다.
- 김일성과 김정일의 미소는 온 세상을 밝히는 환한 미소다.
5. 해외에서의 유사 사례
자신이 초자연적 힘이 있다고 주장한 독재자가 북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신문에 자신이 에트나 산을 방문하는 동안 용암의 흐름을 막고 가뭄으로 고통받는 리비아에(당시 리비아는 이탈리아령 리비아 식민지였다) 비를 불러일으키는 등 기적을 행했다는 기사를 싣게 하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벙어리 소년이 군중 속에서 무솔리니의 연설을 들은 후 말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싣게 했다.
- 모부투 세세 세코: 일곱 살 때 맨손으로 사자를 죽였다거나 '자이르의 적들'과 싸울 때 가슴에 총알과 창이 튕겨져 나왔다거나 그가 공식석상에 들고 다니는 흑단 지팡이가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고 너무 무거워서 일반적인 사람이 들 수 없다는 등의 '초자연적 재주'에 대한 소문을 유포했다.
-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157]: 적도 기니 국민들에게 자신을 초자연적 힘을 가지고 마법을 쓸 줄 아는 존재로 인식하게 하여 '전기는 응게마의 마법의 힘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응게마가 수도 말라보를 떠날 때면 말라보의 모든 전기를 차단해버렸으며, 말라보로 돌아와서야 전기가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조차 지도자가 초자연적 힘을 가졌다는 날조 일화들을 그 자체만으로 정규 과목으로, 그것도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나마 북한 외의 독재자 중 자신의 일대기를 교과 과목으로 만든 독재자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투르크메니스탄의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도 있지만, 이들조차 자신이 초자연적 능력이 있다는 내용을 교과서에 넣지는 않았다.
5.1. 근황 - 초능력 선전 포기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와서는 일반인들의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는 등 아무리 외부정보 유입을 막으려고 해도 북한의 신세대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허무맹랑한 우상화 선전이 먹히지 않고 있으며, 악명이 높았던 허무맹랑한 초능력 선전들은 이제 완전히 포기한 상태다.북한 내부에서도 옛날에나 이런 거에 속아넘어가지 요즘 어린애들이나 젊은이들은 안 믿는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뒤에서는 거짓말이라고 욕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2014년에 출판된 김정은 우상화 교과서는 상술한 것처럼 내용이 너무 유치한 나머지 남한에서는 물론이고 북한 내에서도 내용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왔을 정도였기에 제대로 망신을 당한 북한 당국은 이 책들을 회수하고는 내용을 정정해서 다시 출간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5월 20일자 로동신문에서 "축지법은 실제론 불가능하다. 사실 사람이 있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땅을 주름잡아 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일제와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인민대중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며 김일성과 김정일의 축지법 사용을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닌 "항일빨찌산 유격대가 여기저기서 기습하는 것이 왜놈들에겐 축지법 같았다"라는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순화하기도 했다. 애초에 '축지법은 실제로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부터가 자신들이 김정일 시기까지 김일성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축지법을 썼다고 주장한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김정은 본인도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고 말한 것을 보면, 과도한 우상화가 오히려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듯.# 현 시점에서 북한에서 이전에 진지하게 선전하던 김일성의 축지법은 '항일빨치산 유격대의 신출귀몰함을 본 민중들 사이에서 돈 전설'이고 김정일의 축지법은 '불철주야 현지지도를 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반영한 말'이라면서 어떻게든 비유적인 의미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북한은 2015년부터 '축지법은 실제로 쓸 수 없다'는 주장을 로동신문을 통해 관철해왔는데, 이는 북한 사람들이 외부 문물을 접하면서 의식 수준도 예전보다 높아진 만큼 허무맹랑한 내용을 동원한 우상화는 북한의 대외적인 인상도 안 좋아지고 북한 주민들도 믿지 않기에 안 좋은 소리만 듣기에 현실적 사고를 가지고 우상화를 해야 한다는 김정은의 취지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애초에 김일성이 살아있던 1990년에도[158] 북한의 고등학생들은 김일성 부자의 명령에는 무조건 절대복종, 관철해야 한다고 인식하면서도 김일성의 초자연적 재주에 대해서는 단지 '신화'로만 여겼다고 한다.
이미 북한은 1974년부터 축지법이 실제로는 불가능하며 김일성의 축지법은 민중들 사이에서 돌던 소문이었다고 로동신문 등지에서 밝혀왔는데, 여기서까지 나온 내용들을 다소 의역해 말하자면 김씨 부자에게 초자연적 능력이 있다는 '전설'을 민중들 사이에서 돌던 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김씨 부자의 우상화가 국민들에 의한 '자발적'인 측면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남한 측에서 오해한다는 것이다. #[159]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항일투쟁을 한 적도 없는 김정일도 왜 축지법 '전설'이 나왔는지는 전혀 설명할 수 없다. 물론 김정은은 외부 기반이 전무했던지라 초자연적 능력 관련 '전설'이 주민들 사이에서 돌았다는 전설을 만들 수 없어서 이런 전설을 만들 수 없게 되었다.
6. 남북통일 이후
남북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우상화 교육에 대한 연구를 위해 보존하거나, 분단 시대를 다룬 박물관에 일부가 전시될 것이다. 일제가 식민 통치를 위해 펴낸 식민사학, 식민지 근대화론어 입각한 교과서를 역사적 고찰과 "일본 제국이 당시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이러한 서적을 내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일제강점기 당시의 조선사 교과서 일부를 독립기념관에 보존한 것처럼.교육 과정에서나 교양 매체에서 후대 사람들에게 북한 독재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서도 인용되거나 그 내용이 통일 이전에 비해 훨씬 자세히 알려져서 개그 소재로써 활용되기도 할 것이다. 상술한 것처럼 소련에서 북한 선전 잡지들이 유머 잡지로 애용될 정도였는데 통일 후 북한의 우상화 선전물들은 상술한 바와 같이 내용이 문자 그대로 개그 노다지(...) 수준이기 때문에 배꼽 잡을 만한 개그 매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름의 수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외에는 전혀 쓸모가 없으므로 폐지로써 폐기처분되어 사라질 것이다. 아마 나치 독일의 자국 수뇌부 우상화 교과서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7. 참고자료
8. 관련 문서
- 우상화/북한
- 역사왜곡
- 세뇌
- 북한/이념
- 남북통일/교육 문제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다만 문서에 언급된 찬양 내용들 중 쪽잠에 줴기밥처럼 뒤틀린 방향으로나마 사실이었던 것도 극소수 있긴 하다.
[1] 훼손되지 않은 서적, 로동신문 같은 비교적 고급 폐지[2] 가까운 친척들과 측근들의 일가족이 전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긴 하나 먼 친척들은 오지로 추방되는 수준으로 그친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1 참고자료 2[3] 주성하의 증언에 따르면 장성택의 남편이던 고모 김경희의 제지로 먼 친척들은 단기적인 처벌만 받거나 정치범수용소에서 수감되었더라도 풀려나왔다고 한다. # 장성택의 3족과 조카 부부가 처형되었을 가능성은 높긴 하나 먼 친척까지 잡혀간 것은 아니기에 일가 멸족이라 볼 수는 없으므로 취소선 처리.[4] 그나마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는 적대계층이라는 소문이 없다. '정통성'이 부족한 이상 혈통이 '좋은' 사람을 골라야 김정은 입장에서는 체면이 섰을 것이다.[5] 김일성 생일 4월 15일은 '태양절', 김정일 생일 2월 16일을 '광명성절'로 칭하며 기념하는 것과 대조적. 그러나 김정은 생일 1월 8일을 사실상 국가명절로 쉬게 하거나 이 날 북한 주민들에게 '선물' 명목의 배급을 주고 있기에 1월 8일이 김정은의 생일임을 북한 주민도 눈치채고 있다. 2024년 1월 자유아시아방송 보도[6] 그나마 2010년대 이후에는 북한에서 하술할 초능력 선전들이 허구라고 욕해도 수용소에 끌려갈 가능성은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 내용 참조.[7] 예시에서는 소련군이 북한 지역을 해방시켰다는 진실을 가르쳐오다가 1950년대 중후반부터 김일성이 일본을 패방시키고 한반도를 해방시켰다는 왜곡된 내용을 가르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상술한 '김일성 전설집'에서는 그의 부하들도 김일성처럼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했다고 기술된 것과 달리 '백두광명성 전설집'에서는 김일성, 김정숙, 김정일만이 초자연적 능력을 구사하는 것처럼 나온다고 하며, 김정은 시기에 북한이 '축지법은 비유법이었다'라고 여러 번이나 강조해 말하는 것, (김씨 일가 찬양 내용은 아니긴 하나)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와 '최대의 행복은 수령에게 자기 운명과 미래를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이다'를 동시에 주장하는 주체사상을 '인류사상사의 최고봉'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북한이 미국보다 몇 배나 더 강한 나라이면서도 미국의 '대조선고립압살책동'은 다른 나라라면 열흘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같이 주장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8] 북한에서는 김씨 3대와 김정숙을 언급할 때에는 극도의 존댓말과 특수한 높임 표현들을 써야 하는데, 심지어 어릴 적의 지도자들과 지도자의 꼬꼬마 딸을 언급할 때에도 존댓말을 쓴다.[9] 우상화 선전 속에서는 김씨 3대가 뭐만 하고 말하면 북한인이든 외국인이든 항상 너무나 큰 감명을 받고는 곧바로 눈물을 흘리고 이들을 찬양한다. 문자 그대로 sake L 밈 실사판(?) 수준.[10] 하술한 우상화 선전들을 보면 '군인' 김일성은 실제 역사 속에서의 서초패왕 항우의 전술적 능력&카리스마, 한신의 대국적 전략 능력&천부적 재능, 이순신의 기적적 성과&고결함 등 사령관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에 흠 잡을 데 없는 명장으로 묘사되며, '지도자' 김일성은 명량 해전 + 한강의 기적을 합한 것 이상의 성과를 이룩한 인물이자 실제 역사 속에서의 고려 현종, 강희제와도 같은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성군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이것조차 실제 선전의 내용을 아주 축소해서 표현한 것이다. 물론 과거에 김일성과 김정일은 밈 속의 척 노리스와 사이키 쿠스오의 능력을 실제로 가진 수준의 초능력자로 묘사되었다.[11] 김정일과 김정은은 진지하게 애정결핍이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정일은 6살 때 남동생 김만일이 수영장에서 익사하는 모습을 힘없이 지켜봐야만 했던 데다가 8살 때 어머니 김정숙을 잃었고 6살 때 새어머니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김정은도 어머니 고용희의 출신 때문에 할아버지조차 존재를 모를 정도로 대외적으로 없는 자식 취급이었다.[12] 주성하TV에서도 히틀러를 희대의 광인으로 만든 성격의 밑바닥에는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억압받은 유년시절과 화가로서 성공하지 못한 열등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보는 정신분석학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김정은 역시 할아버지에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자랐고 아버지 김정일은 첩의 자식인 김정은의 존재를 숨기려고 어렸을 때 유럽으로 보낸 사춘기와 후지산 혈통이라는 컴플렉스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13] 내용도 가관이다. "김일성이 살던 금수산궁전이 이상한 빛이 비추어 밤에도 꽃술이 보이도록 밝아졌다" "김일성이 죽자 하늘에서 천마리 백학이 내려와 앉아 돌로 굳어 금수산기넘궁전의 울타리가 되었다"(...) 등.[14] 반면 김일성은 태양절 호칭을 사실상 금지시키는 등 격하(?) 작업에 들어갔다.[15] 다만 보천보 전투는 국내 항일 무장 투쟁이 거의 힘을 잃었던 시기인 1937년에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소멸한 줄 알았던 항일 저항 세력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알렸다는 측면에서 최소한의 의미는 가진다고 볼 수 있다.[16] 김일성이 김정일을, 김정일이 김정은을[17] 김정일이 김일성을, 김정은이 김정일을[18] 김정은이 김일성을[19] 사실 당시 김일성은 냉전 시기 제 2세계, 3세계 국가들의 지도자들에게는 인지도가 꽤 높은 편이였다.[20] 북한의 선전대로라면 서예에 능통하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해당 글씨를 보고 “저는 이런 옥필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이 글은 위인이 쓴 글이올시다. 제가 어찌 이런 글에 감히 붓을 댈 수 있겠습니까.”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21] 이름은 '광명성찬가'로, 그 글씨는 다음과 같다. 북한의 말마따나 인류사 최고의 명필 수준인지는 알아서 판단하자. 참고자료 [22] 북한의 선전에 따르면 그 교사는 '김일성이 건강해야만 자신의 조국인 수단의 번영과 발전이 약속된다'고 믿었으며, 평소 즐겨읽었다는 김일성의 일대기에서 먼 거리를 걸어다니는 김일성의 발 건강을 염려했다고 한다.[23]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결성했다는 해. 참고로 조선인민혁명군은 실존하지 않은 날조된 군대이다.[24] 8.15 광복이 있던 해.[25] '무산지구전투'는 북한에서 김일성의 전투 중 보천보 전투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진 중요한 전투로 인식되나, 실제로는 최현이 이끈 소규모 습격 사건을 김일성이 주도한 대규모 전투로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 대홍단군 문서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26] 북한에서는 자신들이 기습 남침해서 일어난 6.25 전쟁에 대해 남한과 미국이 북한을 침략한 전쟁이라고 우기고 있으며 이를 넘어 당시 전 세계에서 '정의를 사랑하고 선의의 감정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정의의 운명을 걱정하며' 북한을 응원했다는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물론 전쟁 결과는 북한이 미국의 항복을 받아내고 승리한 것이라고 날조했다.[27]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무기만능, 무기중심론에 집착되어 있는 선행한 전쟁사와 군사이론들을 새롭게 전면적으로 분석총화한데 기초하여 사람중심의 우리 식의 독특한 군사사상을 창시했다고 주장한다.[28] 정확히는 1945년에 일본을, 1953년에 미국을 항복시켰다는 주장을 말한다. 물론 이 주장은 모두 허위 날조로, 실제 역사 속에서 일본을 패망시킨 것은 미국이었던 데다가 6.25 전쟁에서 북한은 적화통일의 야욕을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을 식민지배한 나라(프랑스)와 미국을 모두 이긴 명장은 김일성이 아니라 베트남의 보응우옌잡이며, '무패백승을 떨친 만고의 영장'은 바로 자신들이 김일성보다 못하다고 폄하하는 이순신이다. 물론 북한 선전에서 주장하는 김일성의 군사적 공조차 실제 역사 속의 수부타이와 이순신, 보응우옌잡 같은 진짜 명장들의 발톱의 때에도 미치지 못한다.[29] 실제 역사에서 주문진항 해전은 UN군의 완승으로 끝났으며, 이 때문에 이 전투의 진실을 깨달은 탈북자들은 이 전투의 진실을 고향 사람들을 놀려먹는 데에 써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해전사에 수수께끼를 남긴' '기적'과도 같은 해전은 자신들이 김일성보다 훨씬 못하다고 터무니없이 폄하하는 이순신이 이끈 명량 해전이다.[30] 이와 함께 인천 상륙 작전도 북한군이 완승했다고 날조하고 있고, 351고지 전투는 단 15분 만에 북한군이 승전했다고 터무니없이 뻥튀기했다.[31] 쉽게 말해 군인들이 총을 가지고 미군 전투기들을 격추시키라는 이야기다. 자기들 말로는 단 두 해 동안 보병총을 비롯한 저격무기로 근 3000대에 달하는 적기를 격추했다고 하지만, 당연히 순 거짓말이다. 사실 이런 전술은 화망이라는 말이 있는 만큼 의외로 정식 전술이기는 한데, 물론 전투기에 화망을 쏘는 것은 저고도 저속 순항기체를 상대할 때를 제외하면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한 효용을 기록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의 고사포 화망구성에 따른 연합군 폭격기 격추숫자는 3,324발 당 한 대였을 정도인데 고사포도 아닌 그냥 총으로 전투기를 격추시키라 했으니 이 전술이 대실패였을 것이란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리고 애초에 이 전술이 성공적이었다면 한국전쟁기 미군의 폭격이 전쟁범죄라는 비판까지 들을 정도로 북한에 괴멸적인 피해를 입히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32] 지뢰와 수류탄으로 탱크를 파괴하자는 내용이다. 대전차 지뢰는 이미 제1차 세계 대전 때부터 사용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대전차 지뢰까지 김일성의 발명품인 것마냥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3] 북한 말로는 그 외에 김일성이 창안했다는 전술들로 독립중기조활동, 적후파괴조활동, 기동고사포병중대활동, 직사포조활동 등을 들고 있다.[34] 요정(了定)내며. 끝장을 낸다는 말이다.[35] 아마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일컫는 말로 보인다.[36]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도 북한 유학생들이 해외(동독)에서 주체사상이나 김일성을 잘 모르는 것에 괴리감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37] 김씨 3대 외에 어린이들에게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강요한 독재자는 모부투 세세 세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도 있으나 차우셰스쿠를 제외한 이들은 사실상 모두 김일성의 후배들이다.[38] 김일성이 사망한 해인 1994년 세계 인구가 56.2억 명 정도였다.[39] 실제로 적도 기니는 1968년 10월 12일 독립하고 고작 3개월밖에 안 지난 1969년 1월 30일 북한과 수교했다.[40] 실제로 적도 기니의 의사당도 북한이 건설을 지원해준 거라고 한다.[41]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그 정치인은 자국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지만 거리에도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하고 평양으로 떠날 때에조차 비행장에서 반대파의 공격을 받을 뻔했다고 한다.[42] '영상을 흐리게 한다'는 식으로 쓰이는 '이미지' 정도의 의미가 있는 단어다. 용례[43] 원문 그대로의 표현이다.[44] 사실 시아누크는 김일성과 의형제 관계까지 맺을 정도로 매우 친했던 인물이었기에 시아누크를 탄압한 폴 포트는 북한 입장에서는 존재 자체를 완전히 지워야 했을 것이다.[45] 1925년경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인도인으로 70년대부터 자체사상 관련 활동을 해왔으며, 국제김일성상이사회, 국제김정일상이사회 서기장과 주체사상국제연구소 이사장이었다고 한다.[46] 사실 북한 체제에는 알게 모르게 기독교적 요소가 많다.[47] 세포는 당의 최말단조직을 의미한다.[48] 과장이 아니고 한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이 죽기 전까지는 김일성이 문자 그대로 영원히 사는 존재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죽은 지 30년 정도나 지났다. 그리고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미라로 보관된 것을 '영생의 모습으로 계신다'며 포장하고 있다.[49] 김일성을 숭배한 독재자들을 생각하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50] 보이다시피 북한의 대외 도발을 아주 자랑스럽다는듯이 당당히 '업적'인 것마냥 적어놨다.[51] 多心하다, 지나치게 걱정하고 생각하는 것이 많다.[52] 포전(圃田)길에서 '포(圃)'는 '채소밭'을 뜻하는 한자어이며, '포전' 자체는 구획을 나눠 놓은 경작지라는 뜻이다.[53]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한 날이다.[54] 북한에서는 인민들이 '피눈물의 바다와 고난의 행군길을 헤치면서도 사탕보다 총알을 더 소중히 여기고 쓰러지면서도 우리 당의 선군로선을 굳건히 지지하고 진심으로 받들어왔으며' '세대를 이어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우리 당의 병진로선을 충직하게 받들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김정일도 "사탕알이 없이는 살아도 총알이 없이는 살지 못한다."라고도 말했다.[55] 최빈국을 벗어난 것도 1969년~1970년이었을 정도였다.[56]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지만, 사실 호자주의는 중남미권에서는 입지가 상당한 사상이다.[57] 일례로 주체사상을 이념으로 삼은 정당도 네팔 노동자농민당 하나밖에 없고, 그 당조차 여당은 커녕 하원 의석 1석만 차지한 군소정당에 불과하다. 사실 주체사상은 초창기에는 흑표당/적군파를 위시한 서양/일본의 신좌파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긴 했으나 주체사상이 오늘날과도 같은 모습이 된 후에는 완전히 버림받은 사상이 되었다.[58] 한국은 1994년 경제력으로만 따지면 선진국급에 이르렀으나 IMF 외환 위기를 위시한 내실의 취약성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시기는 2002년으로 간주된다.[59] 조갑제 등의 남한의 보수 인사들이 황장엽에 우호적인 것 역시 그의 탈북이 북한 체제의 실패와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가장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의 영향이 크다.[60] 또는 '김일성처럼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진 고생을 다 겪으며'/'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깡그리 다 바치시고 인민을 위한 고생을 더없는 즐거움으로 여기시며'. 물론 김일성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거짓된 감성팔이 표현으로만 보인다.[61] 또한 김일성이 진짜로 국가의 번영과 발전만을 생각하는 지도자였다면 겨우 자신이 평양에서 영화를 보는데 전기가 끊겨서 영화를 제대로 못 봤다는 이유만으로 "전국의 공장이 다 멎어도 좋으니 평양에 전력을 충분히 보내야 한다"라고 지시하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련 글 마치 국민들이 배를 타고 외국으로 도피해 자신에 대한 음모를 꾸밀 것이 두려워 나라에 있는 카누를 모조리 불태운 적도 기니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를 연상시키는 저열한 행각이다.[62] 여기서 고기국은 '고기를 넣고 끓인 국'이 아니라 '고기로 우려낸 국물', 단순히 말해 육수를 의미한다. 즉, 이론상으로는 고기 분말을 넣은 라면 스프를 넣고 끓인 라면과 쌀밥을 같이 먹어도 북한이 말하는 '백미밥에 고기국'이 될 수 있는 셈이다.(...)[63] 이 무렵 한국이 중진국에 진입했다.[64] 2023~2024년에도 북한의 시골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을 안 후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실소만 나온다. 풀뿌리 관련 기사(데일리NK) 나무껍질 관련 기사(아시아프레스) 그나마 추수철을 맞이한 후 곡물가가 하락하면 '강냉이로만 지은 밥을 먹던 세대들이 조금씩 흰쌀을 섞어 먹고 있고, 강냉이죽을 쑤어 먹기도 어려웠던 집들은 강냉이밥을 먹게 되었다'며 어느 정도 먹는 상황이 나아지게 되지만, 애초에 시골에서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한 집조차 제대로 된 이밥을 먹지 못한다는 것부터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관련 기사(데일리NK) 남한도 60년대 중반까지는 춘궁기에 초근목피로 연명하긴 했지만 60년대 후반 이후 경제사정이 어느 정도 나아지니까 초근목피는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되었다.[65] 뉘앙스를 보면 마치 모든 북한 주민이 흰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마냥 묘사하고 있다.[66] 이밥에 고깃국 드립도 '2년 안에 이걸 지키겠다'였는데, 현실은 약속 기간으로부터 60년이 지나도록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밥에 고깃국 실현을 위한 노력은 포기한 듯하다.[67] 이는 2001년 개봉된 선전 영화 '자강도 사람들'에도 나온 내용인데, 영화 내용은 고난의 행군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을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하자는 내용이다. 물론 현실은 벤츠 차에서 쪽잠을 자며 비싼 해산물이 든 줴기밥, 샥스핀 수프를 먹어가며 잘 살아갔지만. 관련 기사(조선일보) 관련 글(통일부 공식 블로그)[68] 또는 특권[69] 우리가 아는 그 김일성 동상이다.[70] 1977년 잠깐 37kg(현재 가치로 약 29억 2천만 원에 달한다)의 금박을 입힌 바가 있으나 1978년 방북한 덩샤오핑이 이를 보고 "돈 없다면서 왜 이런 데에 쓸 금은 있나?"고 지적하자 당황해서 금박을 떼어냈다. 당시 사진[71] 靜養所, 몸과 마음의 안정과 휴양을 위한 시설을 갖추어 놓은 곳.[72] 여담으로 김일성은 최고급 음식과 전통적 한식을 같이 먹는 절충형이었다.[73] 여기서 '5호댁'은 보통강변에 위치한 김일성의 사저 '제5호 관저'로, 1950년대 후반부터 주석궁이 완공된 1977년까지 김일성이 살던 곳으로서 김정일이 젊은 시절을 보내던 곳이다. 2009년 평양 10만호 건설사업 와중에 김정일이 철거를 지시했으나 10만호 사업의 실패로 흐지부지해지는 듯 싶었다가 2021년 김정은이 헐고 북한 내 최충성층들에게 하사한 호화 주택가 경루동을 지었다. 관련 기사 북한의 선전대로라면 이 저택은 '종합농사시험장', '식물연구소', '가금연구소'와도 같았다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이를 '우리 인민을 남부럽지 않게 잘 입히고 잘 먹이기 위해' 설치한 거라고 선전했지만 이렇게 만든 음식들이 누구의 뱃속으로 들어갔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74] 문맥상으로도 은근히 부자연스럽고 뜬금없는 것은 물론이고 김일성 별장의 실체를 고려하면 어떻게든 김일성이 실제로는 사치스럽게 살았다는 것을 부인하려고 애쓰는 흔적이 보인다. 김일성의 별장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75] 이것 역시 김일성의 제5호 관저가 실제로는 서양식으로 꾸며졌을 것임을 유추할 수 있는 증거다.[76] 김일성 시기 노동자와 농민들은 주로 작은 방 한두칸이 달리고 개인 화장실도 없이 공동 화장실밖에 없는 7평짜리 조그만 집에서 살았다. #1 #2 얼마나 북한에서 악랄하게 착취하고 빈약한 보상으로 '은혜'를 주는 것마냥 세뇌를 시키는지 잘 보여주는 증거인 셈.[77] 금수산태양궁전(당시에는 주석궁) 인근 지역을 일컫는 지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78] 여담으로 카륜회의는 처음 언급되었던 1971년 역사사전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하여 조선혁명의 진로를 밝혔다고 언급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로는 슬그머니 주체사상에 기반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날조에 날조를 더했다고 한다. #[79] 여기서 무비하다(無比하다)는 '아주 뛰어나서 비길 데가 없다'는 뜻이다.[80] 북한에서는 이를 '감동 깊은 일화'라고 소개했다.[81]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문제와 당면한 국제정세들을 폭넓고 국제적으로 개괄하였다고 한다.[82] 브레즈네프가 발언문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도 이 녹음사가 평한 말이라고 한다.[83] 이 사실은 김정은이 해방탑에 참배를 갔다는 기사에서만 언급된다. 아무리 북한이라도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다루는 기사에까지 날조된 역사를 이야기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자충수는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해방탑과 무관한 모든 자료들에는 깔끔히(?) 독립에 있어서 소련의 역할을 0으로 지워버렸다. 북한 주민들도 해방탑 기사를 보면 뭐가 역사의 진실인지 혼란이 오겠다.[84] 물론 (김일성과 사이가 매우 나빴던)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인 펑더화이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85] 사실 이조차 마오주의를 모방한 거다. 참고자료[86] 사족으로 링크에 언급된 2023년 12월 18일 로동신문 기사에서 "사상사업이 오늘의 현실에 부응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겉치레 식으로 진행되고 구태의연한 도식과 경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혁명진지와 계급진지를 지켜낼 수 없다"고 말한 것도 북한의 시대퇴행적 행보와 비교하면 완벽한 자기소개이자 배꼽을 잡는 일이다. 애초에 AI, 기술적 특이점이 화두인 시기에 빨치산정신 운운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87]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이끌었다는 (날조된 군대인)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 진공에 김일성이 이끌었다는 한반도의 민중들이 합세하여 무장 봉기로 일본을 무찌르고 8.15 광복을 일으킨 것처럼 선전된다. 자세한 사항은 이 링크를 참고하자.(자유아시아방송) 물론 100% 날조이다.[88] 김일성을 숭배하던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부인 엘레나 차우셰스쿠도 본인을 우상화하면서 이와 판박이의 선전을 했다. 다만 이쪽은 김정숙과는 달리 본인이 나서서 우상화를 한 케이스이라 김정숙과는 약간 다른 케이스이다.[89] 여기서 회령은 김정숙의 고향으로, 회령 여성들은 예로부터 얼굴이 아름답고 성품이 좋았던 것으로 유명했다.[90] 이는 인품 관련한 묘사로 보인다.[91] 至性. 知性이 아니다.[92] '여미', '행미'(살구), '토미'(도자기 등에 사용되는 흙)[93]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김정숙이 만 23세이던 1941년 3월 1일 찍었다는데, 이때는 김정숙이 김정일을 낳은 지 2주도 채 안 됐을 때다. 때문에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94] 또는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 걸쳐 비상히 다방면적이며 풍부한 내용을 담은 업적을 이룩한 지도자를'[95]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이 책들 중 대부분이 군사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다고 한다.[96] 보통 11회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북한의 주장으로는 5회다.[97] 국내에서는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지만, 해외에서는 축지법보다도 인지도가 높은 것을 넘어 후술할 햄버거 건과 함께 가장 유명한 북한의 김정일 선전이다. 오히려 서양에서는 김정일의 초자연적 능력 관련한 '보다 자극적인' 선전들이 이상할 정도로 유명하지 않고 '탄생 관련 설화를 만들었다'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이는 아마 서양 사람 입맛에 맞는 개그 코드(?)라 인지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98] 2011년 12월 28일, 김정일이 장례식이 열린 날.[99] 대놓고 효성(孝誠)이란 말을 써서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을 여기는 것을 마치 자신들의 친부모님 여기듯이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00] 2022년 기준 남한의 사과 생산량이 56만 6041톤이던 것과 달리 북한은 남한의 1.5배 가량인 80만 1533톤이다.[101] 그 불면불휴가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쪽잠 외에는 잠을 전혀 자지 않고 단 한 번도 쉬지 않았다는 뜻이다.[102] 그 동안 김정일은 러시아 극동 지역을 순방했다.[103] 이 때의 영향으로 김정일은 동년 9월 정교회 단체 '조선정교위원회'를 창설하고 2006년 평양에 정백사원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104] 장미과의 갈잎큰키나무, 구원의 상징으로 여겨졌다.[105] '광명성', 즉 김정일을 의미한다.[106]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김정일의 탄생 3년 후인 1945년에 해방이 될 것임을 암시한 것이라고 한다.[107] 김일성, 김정숙[108] 조각을 모아 큰 한 조각을 만든 지도를 일컫는 말[109]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에 왕래하는 재일동포들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110] 500만 개의 만두를 대접했다고 한다.[111] 이를 본 노동자들은 김정일의 '은덕'에 어린애처럼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당시 식사 만두를 보고 흐느끼는 북한의 노동자들[112] 다만 스탈린은 김정일과는 달리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품위만 유지하는 수준의 검소한 생활을 했다.[113] 하필이면 줴기밥이 언급되는 이유는 2008년 7월 7일 로동신문에 언급된 바에 따르면 "줴기밥은 만드는 데는 특별한 음식감도 필요 없고 품도 적게 들기 때문에 준비하기가 쉽고 짧은 시간에 먹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 좋은 혁명가들에게 이상적인 도중식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 주장으로는 이는 김정일의 발언이라고 하나, 김정일이 먹은 줴기밥과 일반 국민이 먹은 줴기밥은 이름만 똑같지 전혀 다른 물건이었을 것이 너무나도 자명하다. #[114] 북한의 묘사대로라면 이 죽은 통강냉이죽이라고 한다. 물론 실제로는 샥스핀이 들어간 죽이었지만.[115] 기사 작성자인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은 악명 높은 종북주의자로, 해당 기사도 김정은이 고난의 행군 때 쪽잠에 줴기밥으로 버텼다는 게 사실이라는 입장 하에 써진 것이다.[116] 여기에 따르면 후지모토 겐지의 책에 대해 북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우리 장군님을 중상 모략하기 위해 만들어낸 책이다"고 흥분했지만, 책 내용에 실린 사진들(김정일/여담 문서의 2.2.1 / 2.2.2 문단에 실린 김정일의 별장 사진들 등)을 보고는 얼굴색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117] 이는 북한이 날조한 생가이다. 김정일은 실제로는 소련 우수리스크 출신이다.[118] 기사 제목은 '김정일장군 선군승리의 50년에서 무궁번영할 천만년을 내다보며'이다. 김정일 생전에 쓰인 기사이다보니 김정일 찬양 표현이 상술한 (김정일 사후 발표된) 김정일 찬양들, 하술할 김정은 찬양들과 비교해도 극히 노골적이다. 생전의 김정일 찬양이 이 정도였으니 김일성 생전에 김일성을 어떻게 찬양했을지는 가늠이 가지 않는다.[119] 참고로 기사 작성 당시 북한의 1인당 GDP는 아프가니스탄보다도 낮았다.[120] 여기에 따르면 몇몇 대진연 회원들은 김정은이 살이 '쪄 보이는' 이유가 인민들 걱정에 잠을 못 자 스트레스를 받아 부은 거라고 진지하게 믿는다고 한다.[121] 3천 평(9,917.4㎡)[122] 원문 그대로의 인용[123] 문재인(대한민국), 도널드 트럼프(미국), 시진핑(중국),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124] 문재인, 도널드 트럼프, 시진핑, 블라디미르 푸틴. 쭘말리 싸이냐쏜 라오스 국가주석도 만난 적이 있긴 하나 김정일 사망 2개월 전에 만난 것이기에 논외.[125] 2022년 기준 북한의 1인당 GDP는 590달러로 소말리아(592달러)보다도 낮다.(...) 그리고 6.25 휴전 직후인 1954년 남한의 실질 1인당 GDP를 2022년 환율로 환산한 것이 566달러로 2022년 북한과도 거의 차이가 없었다. 다른 의미에서는 '불멸의 업적'이 맞긴 하다.[126] 김정은은 2022년 12월 26~27일 열린 조선소년단 제9차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 <소년단 깃발 높이 강국의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자>에서 조선소년단 단원들에게 "만약 원쑤들이 덤벼든다면 전화의 소년근위대원들처럼 용맹하게 싸워 300만 조선소년단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합니다."며 전쟁이 일어난다면 사실상 소년병으로 싸울 것을 강요한 바가 있다. # 참고로 조선소년단원의 나이는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2학년~중학교 2학년 수준.[127] 2017년 3월 18일. 북한이 ICBM용 엔진 시험에 성공한 날이다.[128] 이는 로동신문 논설위원 동태관이 묘사한 모습인데, 사실 동태관은 북한 기준으로도 매우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언론인으로 평가받는다.[129] 참고자료 익명의 탈북자의 과장된 증언이 아니라,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도 인정한 사실이다. 참고로 김정은은 속으로는 김일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인정하지 않은 점을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때문에 김정은이 김일성을 속으로는 증오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 실제로 2024년 김정은이 태양절, 광명성절 명칭을 점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결정하기도 했다.[130] 이는 사회주의 대가정론을 묘사한 것인데, 물론 외부인들에게는 완전히 반어법으로만 보인다. 그 '어머니, 아버지'라는 게 최악의 막장 부모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사실이긴 하다.[131] 원문에서 언급된 것은 아니지만 평양 재개발, 서해갑문 건설 등이 그 예시로 언급된다.[132] 대놓고 연어를 '고급 생선'인 것마냥 말하고 있다.[133] 얼핏 보면 많아 보이겠지만, 남한은 2020년 기준 연간 어류 총소비량이 171만 톤이다. 전국에서의 하루 어류 소비량만 4,600톤이 넘는다. 북한은 동년 기준 연간 어류 총소비량 26만 톤, 하루 어류 소비량은 712톤이다. #[134] 이 말대로라면 '위대한 수령'이라는 김일성은 인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아 식량난 해결을 건성건성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는 척만 했다는 결론이 나오며,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진심으로 인민을 사랑했다고 가정하면 더욱 가관인 게 김일성은 어언 반 세기 동안 집권하면서 식량난 해결을 위해 평생 노력을 가했다는데도 북한 주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은커녕 신선한 물고기도 제대로 먹이지 못해 아들이 신선한 물고기를 인민들에게 먹이기 위해 '한평생 온갖 노고를 바칠'(물론 이는 북한의 거짓말이다) 지경에 이르게 만들 정도로 지도자적 자질이 아주 형편없었다는 것만 암시하는 꼴이 된다. 물론 17년 동안 집권하면서 주민들 식탁에 물고기도 제대로 올리지도 못한 김정일도 마찬가지이고.[135]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김정일은 죽기 하루 전 양력설을 맞이한 평양 시민들에게 물고기(정확히는 명태, 청어)를 공급하기 위한 문서를 검토했고, 이는 김정일 사망 거의 직후 김정은이 지켰다고 한다. #[136] 정황상 명태와 청어 위주였던 것으로 보인다.[137] 사족으로 한국에 이를 보도한 KBS 기사에서는 김정은의 물고기 배급을 '선물'(무료 배급을 의미한다)이라고 표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돈을 주고도 못 살 정도로 물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다른 지역보다 평양 시민들에게 먼저 판매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138] 그나마 이는 평양 중심부(중구역 등) 바깥에 사는 주민들에게 한 대우였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수도 외곽 시민들마저 물고기를 따로 배급받아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북한 민생이 파탄났다는 결정적인 증거이긴 하지만.[139] 덤으로 북한에서는 이를 '반만년 역사에 이처럼 웅대한 목표가 제시된 적이 없었다' '농민들의 세기적 숙망이 실현되고 공산주의에로 뻗은 지름길이 열었다' '사회주의농촌들을 완전히 천지개벽시키기 위한 거창한 창조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장엄한 뇌성'이라고 자찬했다.[140] 북한에서는 일명 '원수님 바지'로 불린다.[141] 빈곤국에서 살이 찐 사람을 부유함의 표식으로 바라보는 사례가 많긴 하다.[142] 이는 북한의 선전 내용에 불과하다.[143] 이제는 대놓고 어린이들에게 최고지도자를 '아버지 같은 존재'가 아닌 '친아버지'로 부르도록 강요하고 있다.[144] 지도자가 대놓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세뇌시키고 있다.[145] 그 초등학생은 전남 곡성 시골의 오지에서 자라며 전기조차 없다고 시골에도 전기를 깔아달라고 박정희에게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박정희가 이 편지를 보고 비서실을 통해 교장에게 "뭐가 달라도 다른 아이다. 크게 될 아이니 잘 키우시라"라고 칭찬을 전했다. 그 어린이가 바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다.[146]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옛날 유럽 사람들이 감자를 '악마의 작물'이라 천대하고 '하얀 흑인' 취급 받던 아일랜드인 정도만이 주식으로 삼았던 이유가 개량 전의 감자는 진짜로 맛도 더럽게 없는 마당에 식감까지 나빴기 때문이었다.[147] 더구나 김정은이 어린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지도자라면 어떻게 외국 지도자의 방문을 환영한답시고 기온이 33도를 훌쩍 웃도는 한여름의 정오에 유치원생~초등학생까지 야외에 동원할 생각을 했을까? 덤으로 증언에 따르면 새벽 5시에 평양 주민들을 깨워서 6시에 예비 집합 장소에 모이게 하면서 푸틴을 마중하도록 했으며, 이를 넘어 푸틴이 오는 시간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땡볕 아래에서 화장실도 못 가고 물도 제대로 못 마신 채 기다리게 했다. # 그러면서 김정은은 푸틴에게 너무 날씨가 뜨겁다고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실내로 차담 자리를 옮기며 회담 일정까지 바꿨으니 그야말로 마귀,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다. 저런 짓 저지른 자가 계속 어린이 사랑 운운하는 거면 문자 그대로 폴 포트까지 능가한다는 소리 들어도 싸다. #[148] 북한 교과서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것. 천품(天稟)은 비범한 기품을 의미한다. 天이 아니라 賤이라면 맞을지도[149] 정확히는 1989년 4월. 이때 김정은은 만 5세였다.[150] 후술할 이 교과서의 교사 참고서에는 "학생들에게 200km/h는 몇m/s인가를 계산해보도록 하고 55.56m/s의 속도로 달리는 초고속배가 얼마나 빠르겠는가를 상상해보도록 한다."고 적혀 있다.[151] 평양과 몇몇 관광지들(원산시, 삼지연시, 양덕온천)의 외관적인 개발만 중요시하지 국가 발전에 필요한 실질적인 경제 개발은 천시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152] 또는 '우리는 불패의 사상강국이고, 사상강국이야말로 이 행성의 최강국이며 동서고금에 있어보지 못한 그런 위대한 강국의 지위에 바로 우리(북한)가 올라섰다.'[153] 이는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가 1978년 자신의 학정과 경제 파탄을 피해 국민들이 살기 위해 해외로 도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의 개인 소유 선박을 모조리 불태웠던 일을 연상시킨다. 참고로 응게마는 국민들이 외국으로 도피해 반역을 꾸밀 것이 두려워서 저랬다.[154] 북한에서는 보통 '167만 4 610여리'로 표현된다.[155] 천리마동상 준공 60주년을 기념한 것이라 '60년'이라는 표헌이 쓰였다.[156] 그러나 언어학적으로 문화어는 서울말, 즉 한국 표준어와 상당히 비슷하다. 북한이 주장하는 ‘평양문화어‘는 그저 평안도 사투리를 기반으로 지도층의 입맛에 맞춘 잡탕 언어이다.[157] 대놓고 "마시아스 응게마 외의 신은 없다"는 프로파간다 슬로건을 만드는 등 광적인 우상화를 해 '북한도 능가하는 수준'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158] 고난의 행군 이전이라 김씨 일가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최고조였을 때였으며, 북한 내부 상황도 막장화되기 이전이다.[159] 기자 작성자인 마틴 와이저(Martin Weiser, 1987~)는 독일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북한인권 정책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얻은 독립연구자다.[160] 徐玉植, 1944~, 대한민국의 언론인, 북한문제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