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09:21:56

중일전쟁

중일 전쟁에서 넘어옴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투 목록 | 아시아/태평양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or: #1D1D1D; font-size: 0.92em; letter-spacing: -0.4px; word-break: keep-all"
※문서가 생성된 전투만 기재
둘러보기 : 유럽 및 아프리카 전선 전투목록
전투 이름 교전국
<rowcolor=#FFF> 공격 측 방어 측
<colbgcolor=#b31c31> 중일전쟁
루거우차오 사건
제2차 상하이 사변
장인 전투
우쑹 전투
난징 전투
충칭 대공습
1939년 동계공세작전
할힌골 전투 파일:몽골 인민 공화국 국기(1924–1940).svg 몽골 인민 공화국
창사 전투
남광시 전투
백단대전
코 창 해전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비시 프랑스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진주만 공습
홍콩 전투
남방작전
제1차 괌 전투
웨이크섬 전투
싱가포르 전투
말레이 해전
마셜-길버트 공습
다윈 공습
로스엔젤레스 전투 공격측 불명
자바 해전
엘우드 포격
실론 해전
둘리틀 특공대
산호해 해전
미드웨이 해전
알류샨 열도 전역
코코다 트랙 전투
과달카날 전역
툴라기 전투
테나루 전투
사보섬 해전
마타니카우 작전
동부 솔로몬 해전
에스페란스 곶 해전
산타크루즈 해전
과달카날 해전
타사파롱가 해전
비스마르크해 해전
일-독 잠수함 합동작전
타라와 전투
콜롬방가라 해전
창더 전투
부건빌 전역
글로스터 곶 전투
헤일스톤 작전
임팔 전투
대륙타통작전
사이판 전투
필리핀해 해전
제2차 괌 전투
펠렐리우 전투
모로타이 섬 전투
앙가우르 전투
오보에 작전
대만 항공전
필리핀 탈환전
레이테 만 해전
일본 본토 공습
풍선폭탄 공격
람리 섬 전투
이오지마 전투
도쿄 대공습
오키나와 전투
페낭 해전
시탕 굽이 전투
구레 군항 공습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만주 전략 공세 작전
남사할린 침공
슘슈 섬 전투
※시기 구분은 전투 및 교전 발생 일자 기준, 전투 기간(및 결과)는 개별 문서 확인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letter-spacing: -0.9px; word-break: keep-all"
{{{#000,#999
<colbgcolor=#536349> 연표 사건
1936년
3월
라인란트 재무장 |
7월
스페인 내전 발발 |
12월
방공 협정
19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루거우차오 사건) · 제2차 국공합작 |
8월
상하이 전투 |
12월
난징 전투(난징 대학살) · 파나이 호 사건
1938년
3월
오스트리아 병합 |
6월
1938년 황허 홍수 |
7월
하산 호 전투 |
9월
뮌헨 협정
1939년
4월
스페인 내전 종결 |
5월
할힌골 전투 |
8월
독소 불가침조약 |
9월
폴란드 침공(제2차 세계 대전 발발) · 가짜 전쟁 |
11월
겨울전쟁
1940년
4월
노르웨이 침공 |
5월
프랑스 침공 · 됭케르크 철수작전 |
7월
영국 본토 항공전 |
9월
삼국 동맹 조약 |
10월
그리스 침공
1941년
5월
비스마르크 추격전 |
6월
바르바로사 작전(독소전쟁 발발) · 계속전쟁 |
9월
레닌그라드 공방전 |
10월
모스크바 공방전 |
12월
진주만 공습(태평양 전쟁 발발) · 말레이 해전 · 남방작전
1942년
4월
둘리틀 특공대 |
6월
청색 작전 · 미드웨이 해전 |
7월
엘 알라메인 전투 |
8월
스탈린그라드 전투 · 과달카날 전역 |
11월
과달카날 해전 · 횃불 작전 · 노르웨이 중수 사건
1943년
1월
카사블랑카 회담 |
2월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 |
4월
바르샤바 게토 봉기 |
7월
쿠르스크 전투 ·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 |
9월
이탈리아 왕국의 항복(이탈리아 내전 발발) |
11월
카이로 회담 · 테헤란 회담
1944년
4월
대륙타통작전 |
6월
바그라티온 작전 · 노르망디 상륙 작전 · 필리핀해 해전 · 사이판 전투 |
7월
브레턴우즈 회의 ·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
8월
바르샤바 봉기 |
9월
마켓 가든 작전 |
10월
레이테 만 해전 |
12월
벌지 전투
1945년
2월
얄타 회담 · 드레스덴 폭격 · 이오지마 전투 |
3월
연합군의 일본 본토 공습(도쿄 대공습) · 연합군의 독일 본토 침공 |
4월
베를린 공방전 · 오키나와 전투 |
5월
나치 독일의 항복 |
7월
포츠담 회담 |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 만주 전략 공세 작전 · 일본 제국의 항복(옥음방송) |
9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 매년 전황·추세 등 상세한 내용은 연표 해당 연도 참고 }}}}}}}}}}}}

중일전쟁
中日戰爭[1] | Second Sino-Japanese War[2]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
파일:external/www.emersonkent.com/china_1945.jpg
대륙타통작전[3] 직후의 전황
날짜 <colbgcolor=#fff,#191919>1937년 7월 7일 ~ 1945년 9월 2일[4]
종전으로부터 [dday(1945-09-09)]일.
장소 티베트를 제외한 중국 대륙 전역, 영국령 버마
원인 일본 제국중국 침략 야욕
교전 국가 및 세력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5]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국공산당|]][6]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만주국|]][[틀:국기|]][[틀:국기|]]

[[몽강연합자치정부|]][[틀:국기|]][[틀:국기|]]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지둥방공자치정부|]](~1938)[7]
└[[틀:깃발|
기 명칭
중화민국 임시정부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임시정부
]][[중화민국 임시정부(괴뢰정부)|
중화민국 임시정부(괴뢰정부)
중화민국 임시정부
]](~1940)[A]

[[중화민국 유신정부|]][[틀:국기|]][[틀:국기|]](~1940)[A]
파일:왕징웨이 정권 국기.svg 왕징웨이 정권(1940~)
지원 국가

[[영국|]][[틀:국기|]][[틀:국기|]][10]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미국|]][11]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소련|]][12]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몽골 인민공화국|]][13]

[[나치 독일|]][[틀:국기|]][[틀:국기|]](~1938)[14]
지휘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 -11px; margin-top: -8px; margin-bottom: -16px"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장제스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린썬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허잉친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옌시산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펑위샹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리쭝런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바이충시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마부팡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성스차이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천청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두위밍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쉐웨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푸쭤이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 쑨리런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국공산당|]] 마오쩌둥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국공산당|]] 펑더화이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국공산당|]] 린뱌오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중국공산당|]] 주더

[[영국|]][[틀:국기|]][[틀:국기|]] 루이 마운트배튼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미국|]] 조지프 스틸웰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미국|]] 클레어 셔놀트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미국|]] 앨버트 웨드마이어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소련|]] 바실리 추이코프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소련|]]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몽골 인민공화국|]] 허를러깅 처이발상
[[틀:깃발|
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나치 독일|]]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
[15]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 -11px; margin-top: -8px; margin-bottom: -16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191919>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쇼와 천황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고노에 후미마로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도조 히데키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오카무라 야스지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무타구치 렌야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마쓰이 이와네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하타 슌로쿠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우메즈 요시지로

[[만주국|]][[틀:국기|]][[틀:국기|]] 아이신기오로 푸이


[[만주국|]][[틀:국기|]][[틀:국기|]] 장징후이


[[몽강연합자치정부|]][[틀:국기|]][[틀:국기|]] 데므치그돈로브


[[중화민국 북양정부|]][[틀:국기|]][[틀:국기|]] 인루겅

[[중화민국 북양정부|]][[틀:국기|]][[틀:국기|]] 왕커민

[[중화민국 유신정부|]][[틀:국기|]][[틀:국기|]] 량훙즈
파일:왕징웨이 정권 국기.svg 왕징웨이
파일:왕징웨이 정권 국기.svg 천궁보
}}}}}}
결과
중화민국의 승리와 일본 제국의 항복[16]
영향
태평양 전쟁 발발
중국의 UN 상임이사국 지위 획득[17]
중국공산당 세력 확대 및 국공내전 재발발
병력
6,270,000명 500,000명(1937년)
860,000명(1939년)
610,000명(1941년)
600,000명(1943년)
1,088,500명 + 괴뢰군 1,006,086(1945년)
피해규모
3,320,000-10,000,000명 전사
1,597,000명 부상
455,000-700,000여 명 전사
1,172,200여 명 부상
중국인 총 사망자
약 22,000,000명[18]

1. 개요2. 서론3. 전개4. 전후 처리
4.1. 사상자 논란
5. 중일전쟁의 편견에 대한 고찰과 반박6. 기존의 인식7. 역사에서의 비중
7.1. 독소전쟁과의 비교
8. 관련 문장 혹은 발언9. 기타
9.1. 기념일9.2. 전쟁 시작의 성격9.3. 명칭
10. 관련 문서
10.1. 배경 관련10.2. 전투, 사건
10.2.1. 화북전역10.2.2. 주요 전투
10.3. 관련 인물10.4. 관련 단체
11. 대중매체
11.1. 영상물11.2. 게임
12. 참고 자료
12.1. 기세찬 교수의 중일전쟁 논저들12.2. 평전, 회고록12.3. 전쟁사 논저12.4. 배경 및 체제 설명12.5. 기타
1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1937년 7월 7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중화민국일본 제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1931년만주사변 이래로 일본이 개시한 중국 침략의 절정이었으며, 폭주하는 일본 군부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1939년 이전까지는 나치 독일의 확장, 스페인 내전 등과 함께 고조되는 세계적 긴장을 불러온 사례였고,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전쟁이 이어지며 중요한 전역 중 하나로 격상되었다. 중일관계는 물론이고 이후 일어날 국공내전과 함께 양안관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 그야말로 일본과 중국의 역사를 뒤바꾼 대사건이다.

2. 서론

중일전쟁의 1분 전개[19]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은 초기 일본 제국군의 공세로 중국군이 밀리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중국은 화북 지방을 상실하고 상하이 전투에서 대패한 뒤 수도인 난징까지 함락되며 수세에 밀렸다. 1938년 황허 홍수를 통해 일본군의 진군을 저지하려 시도했으나 이는 실패하고 수많은 중국인이 사망하거나 난민이 되었다.

전쟁이 시작된 1937년부터 1941년까지는 이렇게 중화민국 홀로 일본 제국과 격렬한 전쟁을 하는 양상이 이어졌으나, 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본 제국이 진주만 공습을 행하면서 중일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에 포함되었다. 이후 일본 제국이 서방 연합국과의 전투에서 패착을 거듭하면서 일본군의 전력은 급속도로 쇠퇴했으며, 1944년 즈음에 일본은 대륙타통작전을 개시하면서 반격을 꾀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일본 제국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만주 전략 공세 작전으로 1945년 9월 2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자 중일전쟁 또한 종결되었다. 사상자는 무려 2,000만 명에 달했으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소전쟁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많이 발생한 인명피해였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피가 흐른 곳은 중국이었다. 일본군은 1945년 8월까지 중국에 대규모 육군 병력을 투입했다. 일본군과 중국간 간에 벌어진 전투는 지속적으로 벌어졌다기보다는 간간이 발작적으로 일어났고, 사용한 전략이나 전술도 원시적이었다. 미국은 계속해서 중국 국민당 지도자였던 장제스를 연합국 회의의 일원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이는 정치적 제스처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상 중국은 군사적으로 연합국의 승리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은 직접적인 살해나 기아 유발을 통해 수백만 명의 중국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탐욕의 끝, 사상 최악의 전쟁
소련이 독일을 완전히 밀어낸 독소전쟁과는 달리 중국은 일제를 밀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종전이 되었기에, 과거에는 무능한 중국군과 폭주하는 일본군의 일방적인 전쟁으로 인식되었다. 오늘날에는 빈약한 공업력에 낙후된 농촌사회[20]를 이끌고 무기대여법의 이득조차 거의 보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 수백만명에 달하는 일본군을 대륙에 묶어두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 전사자의 30%를 담당했다는 점에서 재평가되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거대한 투쟁에서 중국이 맡았던 역할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내리지 못했다. 미국, 소련, 영국이 전쟁의 주역을 차지한 것에 비해 중국은 고작 이류 선수나 단역 배우로 여겨졌다. 그러나 중국은 1937년 추축국의 맹공격에 직면한 첫 번째 국가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2년 뒤, 미국은 5년이 지난 뒤에야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다.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의 목표 중 하나는 "중국으로 하여금 그 전쟁을 지속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수많은 일본군을 중국 본토에 묶어놓음으로써 중국은 전반적인 동맹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중국은 다른 동맹국들에 비해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거의 없었다. 이 전쟁은 그러나 중국이 제국 식민주의 피해자에서 벗어나지만, 폭넓은 지역적·세계적 책임을 지닌 잠정적인 패권 국가로 도약하게 될 중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중국은 일본에 대항하는 '최후의 항전'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중국이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되풀이하여 말했던 기자와 외교관들의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갔음을 증명했다. 진주만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4년 동안 중국은 사실상 혼자 힘으로 일본과 싸웠다. 이 기간에 가난한 후진국 중국은 세계에서 군사화가 가장 진전되고 고도의 기술력을 갖춘 일본군 80여 만 명을 묶어두었다. 그 뒤 4년에 걸쳐 유럽과 아시아의 두 전선에서 동시에 싸웠던 연합국의 승리에는 중국의 투쟁이 큰 역할을 했다.
중일전쟁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

3. 전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중일전쟁/전개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전후 처리

"8년간의 항전은 양국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우리 양국 형제들은 머리를 싸받고 비통하게 울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무기를 버리고 여러분을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언젠가는 우리는 양 손에 옥과 수놓은 비단을 들고 당신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할 것이다."
탕언보

8월 27일 난징에 중국군 100명과 탕언보 장군이 탄 비행기가 착륙했다. 이어 중국군 부대들이 속속 도착했다. 9월 8일 중화민국 국군 총참모장 허잉친이 난징에 도착, 난징의 중앙군관학교 강당에서 오카무라 야스지의 항복을 받아냈다. 중국, 타이완, 북베트남에 주둔한 전 일본군과 일본인은 이제 국민당에게 접수되었는데 그 수가 지나파견군 105만과 해군 7만 등 기타 관동군을 비롯한 중국에 주둔한 총병력 128만, 민간인 142만명을 더해 311만에 달했다. 미군의 협조를 얻어 이들을 일본에 송환하기 시작했지만 1946년 12월 일본 정부의 송환 완료 발표에도 불구하고, 민간인 중 돌아온 사람은 100만에 지나지 않았고, 향후 1980년대까지 송환 문제가 거론되었으며 귀환한 일본인들은 본토에서 차별을 당했다. 이들을 히키아게샤라 한다.

이후 11만 명의 미군이 중국에 상륙했으며 중국군은 서둘러 점령지를 탈환했으나 너무도 갑작스러운 승리는 웨드마이어의 경고대로 대혼란을 초래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에 정보 공유를 하지 않아 중국이 자신들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한 것도 컸지만 전근대적인 중국의 행정력과 부패 자체도 문제였다. 국민당은 점령지의 질서 유지를 위해 한동안 한간들을 일시 등용했는데 이후 장제스가 고위 한간들의 대부분을 총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국민당이 한간들과 결탁했다는 악의적 선전이 곳곳에서 나돌게 된다. 일본인의 재산, 즉 적산가옥 등은 국고가 아닌 개인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고, 전쟁 종료 이후 다시 촉발된 초인플레이션은 중국의 경제와 민심을 크게 동요시켜 향후 국민당이 제2차 국공내전에서 패배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특히 타이완에서 국민당이 현지 주민들과 충돌한 2.28 사건은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낳았으며 오늘날까지 장제스와 국민당의 흑역사로 남게 된다.

한편 세력을 100만명으로 키운 공산당은 국민당에 복종하겠다는 맹세를 걷어차고 황허 이북, 그리고 전 중국의 영토를 통제하려고 시도했다. 곳곳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이 충돌하기 시작했고, 장제스는 중국 중공업의 90%를 차지하는 공업지역인 만주를 확보할 것을 명령했지만 중국의 무리한 전과 확대와 부실한 병참 능력으로 인하여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웨드마이어는 만리장성 이남의 교통망과 통신망을 먼저 회복하고 만주는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신탁통치를 맡긴 다음에 나중에 찾으라고 제안했지만 장제스는 이를 또 다시 만주를 외세에 넘기는 행위라고 거부했다. 장제스는 충칭에 있었던 반면 공산당은 진작부터 화베이, 만주에 지하조직을 침투시켜 민심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중심지가 옌안이었던데다 소련의 후원을 얻었던터라 훨씬 만주에 접근하기 용이했다. 결국 공산당은 만주의 90%를 장악했다. 장제스는 쑨리런 산하의 신1군을 만주에 파견했으나 병참능력의 부족과 소련의 비협조로 일부 대도시만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소련은 여기서 막대한 일본군 무기를 노획하여 이것으로 린뱌오의 동북인민자치군을 무장시켰는데 실제로 린뱌오는 제2차 국공내전 발발 이후 만주의 요양-심양 회전에서 중국군을 크게 격파했다.

결국 전쟁이 끝난 지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제2차 국공내전이 발발했고 중일전쟁에서 크게 타격을 입은 국민당은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할 겨를도 없이 다시 전국구 규모의 내전에 돌입했다가 허망하게 패배하여 대만으로 밀려나 오늘날의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4.1. 사상자 논란

8년간의 대전쟁에서 중국은 1950년 발표한 《중국백감》을 통해 전사자 103만을 포함한 321만 명의 군인 사상자를 발표했으며 일본군의 경우, 후생성 통계를 통해 공식 전사자가 40만 5,000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 수치는 너무 축소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현재는 이 수치가 인용되지 않는다.

우선 중국의 경우, 학계의 추가연구 결과 최소 2,000만 명을 상회하는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공산당의 공식 역사서인 중화인민공화국 중앙당사연구실에서 편찬한 《중국공산당 역사》에서는 총 3,500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극단적인 경우, 군인만 최대 1,0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에서는 최대 사망자 5,000만 설까지도 제기된다.

한편 서구권에서는 1940~50년대 백만 단위의 수치는 전쟁의 여파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였으나 반대로 중국 공산당에 의해 제기된 3,500만~5,000만 설 역시 과장되었다고 추측하며 주로 1,500~2,000만 명 범위의 수치를 자주 인용한다. 일례로 라나 미터의 《Forgotten Ally》에 따르면, 서구 학계의 정설은 중국의 군민 총 사망자는 최소 1,400만 명이며, 최대 2,000만 명에 이른다. 한편 기아, 전염병, 자연재해 등 부수적 피해 규모까지 고려하면 주로 2,200만 명의 수치가 언급되는데 이는 중일전쟁 직전(1936년)과 직후(1947년) 중화민국 인구 통계의 차이이다.#

한편 군인 사상자의 경우 국민정부 관방이 처음 발표한 321만 명 설은 지나치게 축소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1959년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내놓은 《Studies on the Population of China(1396~1951)》에서는 군인 사망자가 124만 명, 부상자가 167만 명, 실종자가 13만 명에 달한다는 추정을 내놓기도 했으며 민간인 사상자의 경우에도 중화민국 행정원배상위원회는 처음에 총 사상자 913만 명을 발표했지만 1988년, 이를 훨씬 상회하는, 사망자 930만 명, 부상자 950만 명 등 2,000만 명 이상이라는 추론이 나왔다. 이후 중화민국 군사작전국은 전사자를 131만 224명, 부상자를 175만 2,591명, 행방불명자를 11만 5,158명으로 발표하여 총 피해가 317만 명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역시 공식적 전사자는 40만 5,000명 수준이지만 일본 후생성이 지나치게 많은 수의 행방불명자를 기록했으며 전후에 일본이 중일전쟁 관련 기밀문서를 많이 폐기한 것 등이 지적된다. 이시카와 요시히로는 일본군 전사자를 47만 명 정도로 봤으며, 허잉친도 《8년항전사》에서 일본군 전사자가 48만 3,000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허잉친은 부상자까지 합치면 일본군이 241만명의 피해를 입었다고 보았지만 이것도 지나치게 과장된 수치라는게 대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공산당이 섬멸한 일본군만 52만 7,000명, 왕징웨이 정권의 괴뢰군을 합치면 171만 4,000명에 달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건 명백한 거짓이다.[21] 애초에 중일전쟁 기간 동안 전사한 일본군이 50만 선인데 전선에서 직접 크게 싸운 국민당도 아닌 뒤에서 일본군을 피해 다닌 중국공산당이 50만 명의 일본군을 섬멸했을 가능성은 없다.

한국 국방대학교의 기세찬 교수의 경우, 일본군 전사자가 172만명에 달하여 일본군 전체 전사자의 55%를 차지한다는 수치를 인용했고,[22] 중국사회과학원의 류다녠 교수는 일본군 전사자가 198만 4,000명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군 전사자가 100만이 넘는다는 주장 역시도 중국군 전사자가 1,000만 명을 넘긴다는 주장처럼 상당히 급진적인 주장이다.

5. 중일전쟁의 편견에 대한 고찰과 반박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중일전쟁/오해와 편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기존의 인식

중일전쟁은 엄청난 역경을 감당했던 정부와 중국 민중의 영웅적인 저항의 역사이기도 하다. 중국은 일본에 대항하는 '최후의 항전'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중국이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되풀이하여 말했던 기자와 외교관들의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갔음을 증명했다. 진주만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4년 동안 중국은 사실상 혼자 힘으로 일본과 싸웠다. 이 기간에 가난한 후진국 중국은 세계에서 군사화가 가장 진전되고 고도의 기술력을 갖춘 일본군 80여 만 명을 묶어두었다. 그 뒤 4년에 걸쳐 유럽과 아시아의 두 전선에서 동시에 싸웠던 연합국의 승리에는 중국의 투쟁이 어느정도 역할을 했다.
《중일전쟁: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 래너 미터(Rana Mitter,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 교수), 2020(기세찬, 권성욱 역), 서문 14p.
194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 세계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예술가, 정치가, 혁명가들에게 파시즘에 맞서는 영웅적인 항쟁으로 기록되면서 찬사를 받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전쟁이었지만 정작 중일전쟁이 종결된 다음에는 역사에서 완전히 잊혀지다시피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전쟁사 연구에서도 대부분 누락되어, 1980년대에 나온 타임라이프사의 《제2차 세계 대전사》의 경우는 아예 중일전쟁을 2차 대전의 배경 중 하나로 간주해 중국 - 버마 - 인도 전역만을 다루고 있고, 충칭 대공습과 대륙타통 작전을 제외하고는 버마 전선만 다루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전쟁 당사자인 중화민국이 패배하여 대륙에서 쫓겨났고 그 뒤를 이은 중화인민공화국은 중일전쟁에 대한 담론을 깨끗이 무시했으며, 냉전의 결과로 서방에서는 제2차 국공내전에서 중국 대륙을 잃었던 이유를 추궁하기에 바빴던 탓이다.

연구에도 오랫동안 난황을 겪었는데 기본적인 사료가 그렇게 빈약하지는 않으나 객관성의 문제가 있어서 검증이 어려운 탓이 크다. 일단 일본군의 1차 자료는 1945년 일본 제국 패망 이후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조직적으로 파기한데다가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상자를 누락하는 등 왜곡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중국군의 경우, 중화민국측 자료의 양은 많으나 이 또한 객관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제2차 국공내전의 승자인 중화인민공화국의 프로파간다에 묻혀버렸고[23] 장제스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어용학자들을 고용해서 조작한 자료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다.

훗날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세력이 되는 공산군의 경우, 중일전쟁 극초기와 백단대전을 빼면 거의 싸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집권의 정당성을 위해 이를 숨기고 전쟁의 주역인 국민당을 깔아뭉갰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며 공산주의 국가 특유의 과장성으로 인해 사료에 기재된 전황의 정확성에 문제가 많고[24] 애초에 중국 공산정부는 20세기 말까지 중일전쟁 자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25] 1980년대 이후로 중일전쟁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유격전과 전면전을 분리해 국민당의 역할도 조명했으나 장제스 비하 등이 사라지는덴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상당히 전향적으로 재평가하는 편이지만 공산당 독재 치하의 연구라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미국 등 기타 연합국의 자료는 애초에 버마 전선이나 대륙타통작전 정도만 빼면 관심도 없고[26] 스틸웰과 장제스 사이의 불화에 집중한 데다가 당시 미국의 중국통이 패트릭 헐리나 앨버트 웨드마이어, 조지프 앨솝 정도만 빼면 마오빠가 되어서[27] 공산당을 '농촌 민주주의자' 정도로 인식한 낙관적 옹호와 국민당을 항일을 회피하는 부패정당으로 묘사하는 악의적인 보고를 많이 올렸으며 제2차 국공내전 이후 중국 대륙을 공산주의자들에게 잃은 것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화살을 국민당에게 돌리는 통에 이후 미국 쪽의 기록들은 국민당 정권 비난 일색에다가 역시 제3자라 자료가 적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의외로 일본에서 전후에 발간된 자료들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다.[28] 게다가 전투가 크게 벌어지고 사상자도 많은데 실제 전쟁에 미친 영향이 거의 없다는 인식 또한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7. 역사에서의 비중

상대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서술에서 나치 독일이 중심이 된 유럽전선의 비중이 크고 일본 제국으로 한정해도 중일전쟁의 서술 비중은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에 밀리는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을 제외하면 중일전쟁의 역사 서술 비중은 2차대전사에서 상당히 적다.

하지만 일본이 중국을 치지 않았으면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중국을 정복할 꿈에 가득 차 있었으나, 어마어마한 규모의 인구와 크기를 자랑하는 중국은 끝까지 버티면서 일본에 맞섰고, 일본이 결국 이 수렁에 빠져 피해가 커지자 더욱 군국주의를 밀어붙이고, 손해를 메꾸기 위해 동남아시아를 치기로 결정, 본격적으로 연합국, 그리고 미국과 마찰이 일어났다. 중일전쟁이 없었다면 이후 동아시아 역사는 매우 크게 달라졌을 것이 뻔하다.

중일전쟁은 태평양 전쟁 발발에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고, 발발 이후에도 태평양 전쟁의 일부이자, 일본 제국 육군의 절대 다수를 붙잡아둔 중요 전선으로 기능했다. 일본군,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중일전쟁은 일본 육군이 주도하여 일으킨 전쟁이었고, 태평양 전쟁은 일본 해군이 주도한 전쟁이었다. 당연히 일본 육군의 주 관심은 중원, 만주 일대였지, 듣도 보도 못한 머나먼 태평양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들이 아니었다. 따라서 태평양 전쟁 초•중반에 지상군 병력을 필요로 하는 전장에 대해 일본 육군은 그다지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고, 태평양 방면의 병력 파견 규모도 작전 구역의 면적을 생각해 보면 중원과 만주에 투입한 것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당장 과달카날 전투의 진행 경과만 봐도 이러한 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때문에 태평양 전쟁 개전 직후를 제외하고 연합군 지상군과 맞붙은 전장에서 일본군의 지상병력이 연합군 지상병력을 능가한 적은 없었으며[29], 이로 인해 태평양 전쟁에서의 지상전 양상은 대부분 '밀어붙이는 연합군(사실상 미군) vs 밀리는 일본군'이라는 구도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지상전의 패배는 그 일대의 제해권, 제공권 영구 상실[30]로 이어지면서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이어지는 데 한몫했다. 그리고, 전개 항목에 언급된 바와 같이 태평양 전쟁의 주요 전투들 중 일부는 중국 전역의 경과에 적게나마 영향을 받아 일어난 것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의 시발점을 폴란드 침공이 아닌 중일전쟁 발발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2000년대 들어서 제기된다.[31][32] 하지만 중일전쟁이 처음부터 국제적으로 번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개전과 중일전쟁의 개전은 별개의 사건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 전쟁의 결과로 중화민국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 중 하나가 되어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 직후 발발한 제2차 국공내전에서 패배해 타이완으로 이동하고 대륙을 중국공산당이 접수하면서 극동 질서를 담당할 상임이사국, 즉 정통 중국이 누구냐에 대한 대립이 생기게 되었다. 결국 1971년 중화민국이 형식적으로 자진 탈퇴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상임이사국 권리를 확보했다. 그러나 중국이 일본에게 어찌어찌 승리하긴 했으나 일본이 점령지에서 저지른 생체실험, 신멸작전(특히 난징 대학살) 등의 전쟁범죄로 인해 지금도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7.1. 독소전쟁과의 비교

중일전쟁은 사상자 규모 및 전면전이라는 측면에서 독소전쟁과 자주 비교된다. 실제 소련중국은 2,000만대라는 압도적인 인명 피해를 치르면서 각각 나치 독일일본 제국을 상대로 물량공세를 펼쳤고 이는 추축국 패망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소전쟁의 중요성이 중일전쟁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 세계사학계의 중론이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피해규모 뿐 아니라 독소전쟁의 결과 소련은 세계 양강으로 떠올랐고 동독을 포함한 동유럽 전체가 공산화되어 향후 46년 간 전개될 냉전의 구도에 독소전쟁이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서사적으로 보아도 중일전쟁은 흔한 침략 전쟁의 연장선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독소전쟁은 파시즘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의 충돌, 게르만족슬라브족의 전면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중일전쟁은 루거우차오 사건이 발단이 되어 비교적 우발적으로 일어난 측면이 강한 반면,[33] 독소전쟁은 아돌프 히틀러를 위시한 나치 정권의 상부가 치밀하게 계획한 유례없는 전면전이었다. 게다가 소련군은 나치즘의 본거지인 베를린을 끝내 점령하면서 서사적인 마무리를 직접 이행한 반면, 일본 제국은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에 항복하였기에 중화민국은 일본의 항복 과정에서 독소전쟁의 소련만큼 존재감을 보이진 못했다.

교전국들의 위상 역시 차이가 크다. 일본 제국은 열강 중 말석이었고 중화민국은 중앙집권력이 붕괴된 군벌들의 이합집산 집단에 불과했던 반면, 나치 독일과 소련은 개전 당시 세계 GDP 2, 3위를 다투는, 구 대륙의 초강대국들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사적인 파장 역시 독소전쟁이 압도적이었다. 특히 나치와 일제를 비교할 경우 일제 역시 난징 대학살을 비롯한 십만 단위의 학살을 수도 없이 자행하며 극악무도한 전쟁범죄를 일삼았지만 나치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특정 민족의 몰살을 목적으로 기계적인 학살 시스템을 강구하였기에 세계인들에게 선사한 충격이 더욱 컸다.

물론 중일전쟁도 분명 중요한 건 사실이다. 전역 규모로는 태평양 전쟁에도 결코 뒤지지 않고, 태평양 전역은 인류가 전쟁을 벌인 전역 중 가장 넓은 지역이었다. 중일전쟁 사상자 숫자 또한 그때 당시 중국의 행정력 부족과 일본 측의 자료 폐기 등의 사료 인멸로 인해 적게 집계되었을 뿐이지, 실제론 중국에서 군민 포함 약 2,20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독소전쟁 당시 소련이 입은 피해 규모(2,600만 명)에 버금간다. 게다가 교전 기간은 8년으로 2차 대전 전역 중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8. 관련 문장 혹은 발언

"한 방울의 피는 한 치의 강토로, 10만의 청년은 10만의 정병으로!"
중일전쟁 당시 중국 정부의 슬로건[34]
"폭악(暴惡)한 지나(支那)를 응징하자(暴支膺懲)!"
중일전쟁 당시 일본 제국 정부의 슬로건[35]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국방을 대체하고 우리의 피와 살로 적의 총포에 저항한다면, 비록 모든 전투에서 패할지라도 나는 최후에는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류의 혁명전술을 사용한다면 그들이 중국의 1개 성을 점령하는데 최소한 1개월이 걸릴 것이고 통계적으로 그들이 중국의 18개 성을 점령하자면 최소한 18개월이 걸릴 것이다. 이 18개월의 시간 동안에 국제 정세의 변화가 (일본에게) 이익으로 돌아가겠는가? 하물며 그들은 1개월에 결코 우리의 1개 성을 신속하게 점령할 수도 없을 것인데..."
1934년 7월, 루산 군관훈련단에서의 장제스의 강연
"일본이 얻고자 하는 것은 전 태평양의 패권이지 일본과 중국의 양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중략) 우리가 능히 자강할 수 있다면 천하가 모두 우리의 우방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무력이 얼마나 강대하던가에 관계없이 사실상 그들은 이미 고립의 위치에 처해 있으며 전 세계의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장제스
"이번 사건은 완전히 중국 측의 계획적인 무력항일인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정부는 일본의 각의에서 중대결의를 행하여 북중국출병에 관해 정부로서 취해야 할 필요조치를 내릴 것을 결정한다."
1937년 7월 11일, 일본 제국 정부의 성명
"우리가 일개 약소국이긴 하나 만일 '최후의 관두'에 달했을 때에는 전 민족의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국가의 생존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약소국이므로 더 이상 타협의 기회란 없으며, 만약 한 치의 땅과 주권이라도 포기하게 된다면 곧 중화민족 천고의 죄인이 되는 것이다!"

"萬一真到了無可避免的最後關頭,我們當然只有犧牲,只有抗戰"
"만일 정말로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의 갈림길에 이른다면, 우리에게는 당연히 희생과 항전만이 있을 뿐이다!"
1937년 7월 17일, 장제스의 루산성명
"제가 어디로 가든지 간에 그곳이 바로 정부이자 저항의 중심지입니다. 제가 곧 국가입니다."
장제스
"현재 상황은 제국이 경험해 온 것과 전혀 다르다. 우리는 이 전쟁이 전면전으로 이행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937년 9월 4일, 스기야마 하지메 일본 제국 육군대신
"중화민국과의 제휴 협력에 의지하여 동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느라 불철주야 애썼으나 중화민국은 제국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일을 크게 만들어 결국 이번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짐은 이를 개탄하는 바이다. 이제 군인은 온갖 어려움을 물리치고 충성을 다해달라. 이로써 중화민국의 반성을 촉구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빨리 확립할 수 있으니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1937년 9월 4일, 쇼와 천황의 제국의회 개회식 칙어
"중일의 싸움은 본당 발전의 절호의 기회이며 우리 공산당의 기본정책은 전력의 70%를 자기 세력 확대에, 20%를 국민정부와의 대응에, 나머지 10% 항일에 사용한다."
1937년 9월 26일, 8로군 중대장 이상 모든 간부들을 모아서 실시한 마오쩌둥의 훈시
"상하이에서 내신을 통해 난징에서 보인 아군의 잔학상을 자세히 전해왔다. 약탈, 강간은 눈 뜨고는 못 볼 참상이다. 아아, 이것이 황군이란 말인가."
외무성 동아국장 이시이 이타로
"우리는 승리할 때까지, 우리의 두 다리가 정말로 부러질 때까지, 설령 우리의 아름다운 땅과 유구한 역사 그리고 중화의 갈망이 피로 물들고 화염에 삼켜져 멸망할지라도 계속 싸울 것입니다."
1937년 11월, 쑹메이링
"...굴복해서 멸망당하느니 차라리 전쟁을 벌이다 패배해서 멸망하는 편이 낫겠다."
1938년 1월 2일, 장제스
"...국민정부를 부인하며 이를 말살하는 것이다."
일본 제국 정부의 1938년 1월 18일 공식 성명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비록 우리가 18개 성 중에서 15개를 잃는다손 치더라도 오로지 쓰촨, 윈난, 구이저우를 지킬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적일지라도 물리칠 수 있으며 잃어버린 땅을 수복하고 국가를 재건하고 우리의 혁명을 이룰 수 있다.
1938년, 장제스의 난웨 군사회의에서의 발언
"나는 일부 도시들을 잃었다고 동요하지 않소. 만약 너무 많은 것을 잃는다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일으켜 세울 참이오."
장제스
"중국과 같은 대국이 나 따위에 팔릴 나라는 아니다. 비록 내가 조인하더라도 그것은 내 몸을 파는 계약에 지나지 않는다."
1939년 12월 30일, 친일정권을 수립하기 직전의 왕징웨이
"(중국에서의 최종 목적은) 군사적인 승리를 얻는 것 뿐 아니라 중국의 재생과 일본, 만주국, 중국의 상호협력을 기초로 하여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이 목표가 실현되지 않는 한 충돌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1940년 1월, 히라누마 기이치로
"우리는 항복하지 않고 앞으로, 반드시 앞으로 진군해야만 한다. 항복은 틀림없이 전 국가적인 참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1940년, 장제스
"적의 전의를 파괴하고 쇠망시키라."
1941년 12월 3일, 쇼와 천황의 대륙명 575호
"옌안은 끓어올랐다. 붉은 깃발이 곳곳에 내걸렸다. 중심가는 물론 주변의 산악도 마찬가지였다. 북이 울리고 폭죽이 터졌으며 사람들은 모자를 하늘로 던졌다. 농민들은 사과와 배를 내놓았고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얼싸 안고 춤을 추었다. 그날 밤 산과 들은 불이 바다를 이루었고 기쁨이 흘러넘쳤다. 8년에 걸친 일본과의 힘든 싸움은 마침내 승리로 끝났다. 축제는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마오쩌둥의 러시아어 통역 스저의 회고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공무원, 학생, 상인과 이른바 상류층이란 사람들은 환락의 소용돌이로 몸을 던졌다."
수필가 겸 극작가 루링
"이 100년에 가까운 굴욕의 역사는 마침내 끝났다. 신화일보 전 직원은 열광했다. 사실상 충칭의 모든 주민, 중국의 모든 국민이 열광했다."
신화일보 설립자이자 좌익작가연맹 작가 샤엔
"모든 사람은 오늘을 영광스러운 날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나는 홀로 커다란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낀다."
일본의 항복 직후, 장제스
"전국 군민 동포 여러분, 전세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인사 여러분, 오늘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정의는 필연적으로 강권에 승리한다는 진리는 마침내 최후의 증명을 얻어냈습니다."
장제스의 승전 연설. <항전 승리를 전국 군민과 전세계 인사들에게 고함/抗戰勝利告全國軍民及全世界人士書(항전승리고전국군민급전세계인사서)>

9. 기타

9.1. 기념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전승절(중국)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9.2. 전쟁 시작의 성격

일제는 선전포고도 하지 않고 침공해왔는데 이는 루거우차오 사건이 확대되어 교전이 발생했다는 일본측 시각에 의한 것으로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중사변' 또는 '지나사변'으로 낮추어 부르기도 했다.[38] 이렇게 명칭을 낮춘 이유는 꽤 여러가지 추론이 있다. 당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로 전쟁이 국제법상 금지되었기에 "나 전쟁 안했소" 하여 국제적 추궁과 일본 국민의 신뢰추락 회피, 중국을 인정치 않았던 일제의 정책 등이 있다. 결국엔 제국주의 침공을 면피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일제의 행각은 계속 유지되어 할힌골 전투를 노몬한 사건으로 축소했다.

여기서 일제가 나중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다. 일단 선전포고 문제는 의외로 나라 간의 이해타산이 엮여들어간 문제였다. 전쟁 내내 중국은 선전포고를 안했다는 것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초기에는 일제가 하더라도 선전포고로서 받아들이지 말아달라고 미국에 타진하기도 했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었던게 미국의 중립법이었는데, 국내 기업이 전쟁을 벌이는 쌍방과 경제적 활동을 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법률이었다. 따라서 선전포고가 공식으로 받아들여져 공식적인 전쟁이 되면 중국은 미국에게 물자원조를 전혀 받을 수 없고, 오히려 몰래하려다가 일제에게 나포당할 수도 있으며 미국이 이 나포문제와 한창 노리고 있던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통한 이득에 손해를 볼 것 같다는 이유 등으로 피해가 우려되어 껄끄러워 했고 일제도 당시 경제의 태반을 미국에 의지하던 상황에서 미국과의 경제교류가 전쟁기간 동안 정지되던 상황이었다. 전후는 어쨌든 전쟁 시작 시에는 공식적인 전쟁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히려 일제의 침공군 중 고참급 인사들은 선전포고를 하고 싶었던 부류가 꽤 많아 비선전포고파와 아웅다웅했는데, 경제문제 따위가 뭔 상관이냐며 경시하는 시각과 함께 선전포고를 하는 편이 전후 패전국에게서 영토와 물자를 더 뜯어내고 점령시의 절차가 간단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선전포고파의 경우는 손해없이 이득을 끌어내자, 즉 어떤 방식으로 중국을 침탈하는가에 대한 방법론 문제였다.

그러나 이런 일본의 입장을 100% 인정해주더라도 엄연하게 선전포고를 하지도 않고 기습적으로 개전한 것은 국제법상으로 변명할 수 없는 전범행위다. 특히 일본에서 중국이 선전포고에 관련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랍시고 대는데, 가해자들이 흔히 하는 변명중 하나다. 피해자가 이론을 제기하던 안하건 간에 범죄로 엄연하게 성립되는 내용을 가지고 정당화를 시도하는 것이니 전혀 의미가 없다.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앞서 언급했듯이 선전포고 안하고 기습을 해서 개전하는 것을 당연시여기는 행적들을 보인데다가 그러나 그렇게까지 선전포고를 하고 싶었다면 나중에라도 하면 되는데 끝까지 안했다. 그 때문에 1941년 12월 9일 장제스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기 전까지 중일전쟁은 공식적으로는 사변, 영토 분쟁이었다.

9.3. 명칭

10. 관련 문서

10.1. 배경 관련

10.2. 전투, 사건

10.2.1. 화북전역

10.2.2. 주요 전투

10.3. 관련 인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중일전쟁/관련 인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0.4. 관련 단체

11. 대중매체

중국에서는 당연히 근현대 사극으로도 많이 제작되지만, 2010년대 전반기에 같은 중일전쟁을 우려먹으면서 시청률을 잡으려다 보니 항일신극(抗日剧)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을 정도의 초 막장 드라마양판소처럼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이들 드라마는 중국내에서도 고증이 막장인건 물론이고, 내용 전개도 무협지판타지로 전개되냐며 엄청나게 까이다보니 광전총국[44]에서조차 막장 고증으로 유명한 드라마에 대해서 과징금이나 방영 중지같은 제재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맛이 간 드라마는 줄어들었다. 이때 막장 고증이 어느 정도였는지 바이두 백과 항일신극 항목에서 화살로 일본군을 때려잡을려고 한다거나 맨손으로 일본군을 반으로 갈라낸다거나 일본군의 전쟁범죄 등 방영시간대에 걸맞지 않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이며 선정적인 장면들이 줄줄히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정작 중일전쟁 당시 연안에만 있다시피한 중국공산당을 의롭고 일본을 상대로 열심히 싸운 항일열사로 묘사하는 반면, 실제 역사대로 일본을 상대로 싸웠던 중국국민당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는 모지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45] 심지어 극 중 원래 국민당 소속이었던 주인공이 진정한 애국자인 공산당에 감화되어 당적을 옮긴다던지, 아예 공산당 소속의 스파이인 주인공이 중국국민당의 정보기관에 침투해서 오랫동안 국민당 관료 노릇을 하다가 마지막에 공산당으로 되돌아간다는 식의 묘사도 많이 나온다.

그나마 최근들어 <800> 등 중국국민당의 항일투쟁을 재조명하는 매체도 늘어나고는 있지만 사실 이 <800>만 하더라도 국민당군을 재조명했단 이유로 시진핑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인지 개봉이 수차례 연기된 적이 있었고, 의도 자체도 국민당을 재평가하려는 의도이기보단 중국 인민의 민족주의를 강조하기 위한 성향이 크다. 게다가 2019년을 기점으로 국가광파전시총국에서 아예 국민당을 공산당보다 더 유능하게 그리면 방영 허가를 내리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상태이기도 하다.

11.1. 영상물

11.2. 게임

12. 참고 자료

중일전쟁과 그 하위문서들은 다음과 같은 저서, 논문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12.1. 기세찬 교수의 중일전쟁 논저들

기세찬(국방대. 육군 장교) 교수는 한국 학계에서 중일전쟁 시기의 중국 국민혁명군에 대한 대표적인 전문가이자 선구자이다. 그동안 중일전쟁 시절, 국민혁명군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진했던 실정에서 중국의 연구를 인용, 연구하며 해외에서 재평가된 국민혁명군을 국내 학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또한 조지프 스틸웰의 실체를 분석해서 국내 학계에 비판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혁명군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이나 제대로 된 중일전쟁 통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논문으로서, 그것도 한국인의 입장에서 단편적인 시각을 담고 있으며, 교수들이 흔히 그러하듯 필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접근성과 가독성 면에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설명이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단점이 있다.

12.2. 평전, 회고록

12.3. 전쟁사 논저

12.4. 배경 및 체제 설명

12.5. 기타

13. 둘러보기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장.svg 중화민국의 대내외 전쟁 · 분쟁 파일:백일문.svg
{{{#!wiki style="color: #FFF;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전쟁·분쟁 교전국
<colbgcolor=#000096> 신해혁명
,1911 ~ 1912,
파일:청나라 국기.svg 청나라
계축전쟁
,1913,
파일:중국 국민당기.svg 국민당
호국전쟁
,1915 ~ 1916,
파일:중화제국 국기.svg 중화제국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북양군벌
호법전쟁
,1917 ~ 1918,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북양군벌 파일:봉천군벌 기.svg 봉천군벌
제1차 세계 대전
,1917 ~ 1918,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독일 제국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왕국 파일:오스만 제국 국기.svg 오스만 제국
러시아 내전
,1918 ~ 1920,
파일: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1918–1937).svg 소비에트 러시아
외몽골 출병
,1919,
파일:복드 칸국 국기.svg 복드 칸국
국민혁명
,1926 ~ 1928,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북양군벌 파일:봉천군벌 기.svg 봉천군벌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직예군벌
제1차 국공내전
,1927 ~ 1936,
<colbgcolor=#000096> 초공작전
,1930 ~ 1934,
파일:중국 공산당 당기.svg 중국공산당
반장전쟁
,1929 ~ 1930,
파일:대만 국기.svg 서산회의파 파일:대만 국기.svg 개조파 파일:대만 국기.svg 계계군벌 파일:대만 국기.svg 서북군벌 파일:대만 국기.svg 염계군벌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북양군벌
중국-티베트 전쟁
,1930 ~ 1932,
파일:티베트 국기.svg 티베트
만주사변
,1931 ~ 1932,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영릉가 전투
,1932,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제1차 상하이 사변
,1932,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쌍성보 전투
,1932,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만주국 국기.svg 만주국
열하사변
,1933,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만주국 국기.svg 만주국
경박호 전투
,1933,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만주국 국기.svg 만주국
사도하자 전투
,1933,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만주국 국기.svg 만주국
흥경성 전투
,1933,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만주국 국기.svg 만주국
동경성 전투
,1933,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만주국 국기.svg 만주국
대전자령 전투
,1933,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만주국 국기.svg 만주국
복건사변
,1934,
파일:중화공화국 국기.png 중화공화국
쿠물반란
,1931~1934,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파일:신강군벌 기.svg 신강군벌
신강 침공
,1934,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1937년 신강 전쟁
,1937,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제2차 세계 대전
,1937 ~ 1945,
중일전쟁
,1937 ~ 1945,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만주국 국기.svg 만주국 파일:왕징웨이 정권 국기.svg 왕징웨이 정권
태평양 전쟁
,1941 ~ 1945,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이저사변
,1944 ~ 1946,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파일: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 국기.svg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
제2차 국공내전
,1946 ~ 1950,
파일:중국 공산당 당기.svg 중국공산당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제1차 대만 해협 위기
,1954 ~ 1955,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진먼 포격전
,1958,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중국-버마 국경작전
,1960 ~ 1961,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파일:버마 연방 국기.svg 버마 연방
베트남 전쟁
,1965 ~ 1973,
파일:베트남 국기.svg 북베트남 파일: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기.svg 베트콩
태국 공산반란
,1965 ~ 1967,
태국 공산당
캄보디아 내전
,1967 ~ 1975,
파일:민주 캄푸치아 국기.svg 크메르 루주
대막계획
,1979 ~ 1990,
파일:남예멘 국기.svg 남예멘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제3차 대만 해협 위기
,1995 ~ 1996,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

파일:일본 황실.svg파일:투명.png일본의 대외 전쟁·분쟁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33.33%"
{{{#!folding [ 전근대 ]
{{{#!wiki style="margin: -5px -1px -10px"
<rowcolor=#FFF> 시대 전쟁·전투 교전 세력
고훈 시대 신라의 일본 침공 사례
291년~720년
파일:신라 상징 초승달(삼국사기 및 대구신문 기반 창작).svg 신라
신라-왜 전쟁
364년~404년
파일:신라 상징 초승달(삼국사기 및 대구신문 기반 창작).svg 신라
파일:고구려 군기.svg 고구려
아스카 시대 이와이의 난
527년
규슈 왜
파일:신라 상징 초승달(삼국사기 및 대구신문 기반 창작).svg 신라
관산성 전투
554년
파일:신라 상징 초승달(삼국사기 및 대구신문 기반 창작).svg 신라
가야멸망전
562년
파일:신라 상징 초승달(삼국사기 및 대구신문 기반 창작).svg 신라
백강 전투
663년
파일:신라 상징 초승달(삼국사기 및 대구신문 기반 창작).svg 신라
파일:tang_fel2.jpg
가마쿠라 막부 원나라의 1차 일본원정
1274년
파일:원나라 국기.jpg
파일:고려 의장기.svg 고려
원나라의 2차 일본원정
1281년
파일:원나라 국기.jpg
파일:고려 의장기.svg 고려
무로마치 막부 1차 대마도 정벌
1389년
파일:고려 의장기.svg 고려
2차 대마도 정벌
1396년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3차 대마도 정벌
1419년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임진왜란
1592년~1598년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파일:명나라 보.svg
에도 막부 사쓰마의 류큐 침공
1609년
파일:류큐 왕국 국장.svg 류큐 왕국
시모노세키 전쟁
1863년·1864년
파일:미국 국기(1863-1865).svg 미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사쓰에이 전쟁
1863년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33.33%"
{{{#!folding [ 근대 ]
{{{#!wiki style="margin: -5px -1px -10px"
<rowcolor=#FFF> 시대 전쟁·전투 교전 세력
메이지 시대 대만 출병
1874년
파일:청나라 국기.svg 대만 원주민
운요호 사건
1875년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동학 농민 혁명
1894년
파일:척왜양창의.svg 동학농민군
청일전쟁
1894년~1895년
파일:청나라 국기.svg 청나라
의화단 운동
1899년~1901년
파일:의화단 기.svg 의화단
파일:청나라 국기.svg 청나라
러일전쟁
1904년~1905년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 제국
남대문 전투
1907년
파일:대한제국 국기.svg 대한제국
남한 대토벌 작전
1909년
파일:대한제국 국기.svg 호남계 의병
다이쇼 시대 제1차 세계 대전
1914년~1918년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독일 제국
일본의 시베리아 개입
1918년~1925년
파일: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1918–1937).svg 소비에트 러시아
삼둔자 전투
1920년
파일:1280px-Korea_Independence_Army_Marching_Flag.svg.png 대한독립군
봉오동 전투
1920년
파일:1280px-Korea_Independence_Army_Marching_Flag.svg.png 대한독립군
청산리 전투
1920년
파일:1280px-Korea_Independence_Army_Marching_Flag.svg.png 대한독립군
쇼와 시대 만주사변
1931년~1932년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봉천군벌
영릉가 전투
1932년
한중연합군
파일:조선혁명군 군기.png 조선혁명군
파일:대만 국기.svg 중국 의용군
쌍성보 전투
1932년
한중연합군
파일:한국독립군 진군기.svg 한국독립군
파일:대만 국기.svg 중국 호로군
열하사변
1933년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경박호 전투
1933년
한중연합군
파일:한국독립군 진군기.svg 한국독립군
파일:대만 국기.svg 중국 호로군
사도하자 전투
1933년
한중연합군
파일:한국독립군 진군기.svg 한국독립군
파일:대만 국기.svg 중국 호로군
흥경성 전투
1933년
한중연합군
파일:조선혁명군 군기.png 조선혁명군
파일:대만 국기.svg 중국 의용군
동경성 전투
1933년
한중연합군
파일:한국독립군 진군기.svg 한국독립군
파일:대만 국기.svg 중국 호로군
대전자령 전투
1933년
한중연합군
파일:한국독립군 진군기.svg 한국독립군
파일:대만 국기.svg 중국 호로군
중일전쟁
1937년~1945년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소련-일본 국경분쟁
1932년~1939년
하산 호 전투
1938년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소련
파일:몽골 인민 공화국 국기(1924–1940).svg 몽골 인민 공화국
할힌골 전투
1939년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소련
파일:몽골 인민 공화국 국기(1924–1940).svg 몽골 인민 공화국
제2차 세계 대전
1939년~1945년
태평양 전쟁
1941년~1945년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자치령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뉴질랜드 자치령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소련-일본 전쟁
1945년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소련
파일:몽골 인민 공화국 국기(1940–1945).svg 몽골 인민 공화국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33.33%"
{{{#!folding [ 현대 ]
{{{#!wiki style="margin: -5px -1px -10px"
<rowcolor=#FFF> 전쟁·분쟁 교전국
이승만 라인 분쟁
1952년~1965년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대한민국
일본 해상보안청의 독도 무단침범 및 점령시도 사건
1953년~1956년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대한민국
라제즈드노이호 사건
1953년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소련
독도 대첩
1954년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대한민국
일본 순시선 괴선박 격침 사건
2001년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이라크 전쟁
2003년~2011년
파일:320px-Flag_of_Iraq_(1991-2004)_svg.png파일:투명.png파일:바트당 당기.svg 후세인 정권 이라크
파일:지하드 깃발.svg 알 카에다 및 저항 세력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15%"
{{{#!folding [ 정치 · 군사 ]
{{{#!wiki style="margin: -6px -1px"
상징 국기 · 국장 · 국가 · 국기가
정치·행정 정치 전반 · 오권분립 · 입법원 · 행정원(조직) · 사법원 · 헌법(중화민국 임시약법 ·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 · 정당(범람연맹 · 범록연맹) · 총통(총통부 · 대총통선거법 · 수정대총통선거법 · 총통 전용기) · 행정구역( · 미수복지구) · 행정조직 · 정부총통선거 · 총선 · 지방선거 · 국민대회
국가원수 쑨원 · 위안스카이 · 쉬스창 · 차오쿤 · 돤치루이 · 왕징웨이 · 탄옌카이 · 장제스 · 린썬 · 옌자간 · 장징궈 · 리덩후이 · 천수이볜 · 마잉주 · 차이잉원 · 라이칭더
국가원수(명단) · 총통(명단)
기타 정치인 옌시산 · 성스차이 · 우페이푸 · 리위안훙 · 장쭤린 · 후웨이더 · 옌후이칭 · 두시구이 · 구웨이쥔 · 펑위샹 · 마부팡 · 마훙빈 · 위유런 · 탕성즈 · 마훙쿠이 · 리쭝런 · 바이충시 · 룽윈 · 장쉐량 · 황싱 · 한궈위 · 장치천 · 주리룬 · 허우유이 · 쑹추위 · 커원저 · 쑤전창 · 셰창팅 · 천젠런 · 샤오메이친
부총통 · 행정원장 · 입법원장 · 감찰원장 · 대성지성선사봉사관
외교 외교 전반 · 여권 · 양안관계(하나의 중국 · 대만 해협 위기 · 92공식 · 양안통일 · 화독 · 대독) · 중화권 · 한국-대만 관계 · 대만-일본 관계 · 미국-대만 관계(타이완 관계법 · 타이완 동맹 보호법 · 대만 보증법 · 2022년 낸시 펠로시 대만 방문 및 중국 군사훈련 사태) · 한국-대만-일본 관계(자코타 삼각지대) · 재외공관
감정 친화 · 친대 · 반대 · 중화민국빠 · 대만빠
사법 · 치안 사법제도 · 경찰 · 국가안전국 · 소방 · 사형제도
군사 전반 국방부(역정서) · 대만군(육군 · 해군 · 공군 · 국민혁명군) · 계급 · 군복 · 보병장비 · 기갑차량 · 군함 · 항공병기 · 병역법 · 체대역 · 성공령 · 핵개발 · 군벌
}}}}}}}}}
[ 역사 ]
||<table width=100%><table bgcolor=#fff,#1f2023><table color=#373a3c,#ddd><bgcolor=#fe0000><width=15%> 역사 ||역사 전반(민국사 · 대만사) · 대만의 민주화 운동 · 등용제도 · 세금 제도 · 연호 · 역대 국명 · 군벌 · 대외 전쟁 및 분쟁 ||
시대 역사 전반 · 삼황오제 · · · (동주 · 서주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초한쟁패기) · (전한 · · 후한) · 삼국시대 · 서진 · 오호십육국시대 · 남북조시대 · · (무주 · 호연) · 오대십국시대 · (북송 · 남송) · · · 서하 · · (남명 · · · 동녕국) · (태평천국) · 일치시기 · 만주국 · 중화민국(임시정부 · 북양정부 · 국민정부 · 호법정부 · 우한정부 · 임시정부(괴뢰) · 유신정부 · 왕징웨이 정권 · 국부천대 · 대만)
관직 한나라의 공경 · 삼국지 관직 · 외명부 · 환관조직 · 후궁제도 · 연성공
사서 흠정이십사사(사기 · 한서 · 후한서 · 삼국지 · 진서(晉書) · 송서 · 남제서 · 양서 · 진서(陳書) · 위서 · 북제서 · 주서 · 수서 · 남사 · 북사 · 구당서 · 신당서 · 구오대사 · 신오대사 · 송사 · 요사 · 금사 · 원사 · 명사) · 오월춘추 · 여씨춘추 · 월절서 · 국어 · 전국책 · 열녀전 · 위서 · 위략 · 화양국지 · 후한기 · 양기 · 자치통감 · 동관한기 · 건강실록 · 정관정요 · 역대명화기 · 신원사 · 원조비사 · 만주실록 · 청사고 · 십국춘추 · 십육국춘추 · 사고전서
사건 신해혁명(계축전쟁 · 호국전쟁) · 선후대차관 사건 · 중화민국 국회 해산 · 홍헌제제 · 부원지쟁 · 장훈복벽 · 제1차 호법운동 · 호법전쟁 · 5.4 운동 · 하남독군 교체 파동 · 안직전쟁 · 제2차 호법운동 · 영풍함 사건 · 외몽골 출병 · 직봉전쟁(1차 · 2차) · 국민혁명(1차 · 2차) · 탕산회의 · 동북역치 · 편견회의 · 호남 사건 · 반장전쟁(제1차 장계전쟁 · 제1차 장풍전쟁 · 중동로 사건 · 봉소전쟁 · 제2차 장계전쟁 · 제2차 장풍전쟁 · 장당전쟁 · 중원대전) · 초공작전 · 중국-티베트 전쟁 · 신강 침공 · 중일전쟁(만주사변 · 열하사변 · 시안 사건 · 국공합작) · 국공내전 · 국부천대 · 제1차 대만 해협 위기 · 제2차 대만 해협 위기 · 국광 작전 · 대만 계엄령 · 2.28 사건 · 중화문명부흥운동 · 중리 사건 · 메이리다오 사건 · 제3차 대만 해협 위기 · 대만 여권운동가 피살 사건 · 천수이볜 암살 미수 사건 · 해바라기 운동 · TWICE 쯔위 청천백일만지홍기 논란 · 8.15 대만 블랙 아웃
[ 사회 · 경제 ]
||<table width=100%><table bgcolor=#fff,#1f2023><table color=#373a3c,#ddd><bgcolor=#fe0000><width=15%> 경제 ||경제 전반 · 재정부 · 경제부 · 중화민국중앙은행 · 신대만 달러 · 대만증권거래소 · 타이베이거래소 · 기업(메인보드 제조사) · 이동통신사 · 아시아의 네 마리 용 · ECFA ||
교육 교육부 · 대학 목록 · 재대복교
교통 교통 전반 · 대만의 철도 환경 · 교통부 · 중화민국국도(중산고속공로 · 포모사고속공로) · 타이완 성도 · 공항 목록 · 항공사(중화항공 · 에바항공 · 스타럭스항공) · 타이완철로유한회사(THSR · 쯔창하오 · 구간차) · 대만의 시외버스 · 첩운(타이베이 첩운 · 타오위안 첩운 · 신베이 첩운 · 타이중 첩운 · 가오슝 첩운) · 이지카드 · 아이패스 · 아이캐시
민족 한족 · 본성인(객가) · 외성인 · 대만 원주민(아미족 · 아타얄족 · 따오족) · 인도네시아계 대만인 · 일본계 대만인 · 한국계 대만인
화교 화교(쿨리) · 차이나타운(인천 차이나타운) · 중국계 한국인(재한 화교 · 화교협회) · 중국계 미국인 · 중국계 러시아인(둥간족) · 중국계 브라질인 · 중국계 필리핀인(상글레이) ·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 중국계 베트남인 · 중국계 싱가포르인 · 중국계 태국인 · 중국계 호주인 · 중국계 일본인 · 중국계 캐나다인 · 대만계 한국인 · 대만계 미국인 · 대만계 일본인 · 대만계 캐나다인
[ 문화 ]
||<table width=100%><table bgcolor=#fff,#1f2023><table color=#373a3c,#ddd><colbgcolor=#fe0000><width=15%> 문화 전반 ||문화 전반 · 영화(금마장) · 드라마 · TV방송(CTV · CTS · TTV) · 라디오 방송 · 스포츠 · 중국시보 · 빈과일보 · 미술 · 파룬궁 · 등려군 · 거류증 · 중화 타이베이 ||
요리 요리 전반(대만 요리) · 지역별 요리 · 산둥 요리 · 쓰촨 요리 · 장쑤 요리 · 저장 요리 · 후난 요리 · 광둥 요리 · 안후이 요리 · 푸젠 요리 · 베이징 요리 · 상하이 요리 · 후베이 요리 · 윈난 요리 · 만주 요리 · 청진 요리 · 한국식(종류) · 미국식(종류) · 일본식(종류) · 러시아식 · 중국술 · 대만 술(백주 · 황주 · 맥주 · 금문고량주) · · 팔진 · 만한전석
전통문화 전통악기 · 경극(변검) · 잡극(포대희) · 모란정환혼기 · 샹치 · 바둑 · 마작(국표마작 · 광동마작 · 사천마작 · 홍콩대만마작 · 홍콩마작) · 만만디 · 시누아즈리 · 한푸(여성 한푸) · 치파오 · 변발 · 인민복 · 전족 · 회회력 · 시헌력 · 한시 · 무협물(중국사대기서) · 토루 · 사합원 · 패방 · 얼후 · 고쟁 · 비파 · 싼시엔 · 쓰후 · 싼후
현대문화 만화(팬시 프론티어) · 민국기년 · 정가(傷感情歌)
종교 · 신화 삼교 · 대승 불교(선종 · 정토교 · 시왕) · 도교(종파 · 상제 · 서왕모 · 구천현녀 · 일관도 · 육갑비축 · 도술 · 태극패 · 연단술) · 유교(변천사) · 백련교 · 중국 신화 · 하백 · 관우(관왕묘) · 마조 · 산해경 · 삼황오제(복희 · 신농 · 황제 · 소호 · 전욱 · 제곡 · 제지 · 제요 · 제순) · 헌원검 · 누조 · 창힐 · 치우 · 환상종(사신 · 사령 · 오룡 · 사흉) · 동방번개
언어 중국티베트어족 · 중국어(중화민국 국어) · 관화 · 민어(대만어) · 객가어 · 오어 · 월어 · 상어 · 민어 · 객가어 · 둥간어 · 기타 방언 · 한문 · 대만 제어 · 백화문 · 한자(정체자 · 방언자 · 중문대사전) · 주음부호 · 병음(우정식 병음 · 웨이드-자일스 표기법 · 국어라마자 · 통용병음 · 국어 주음부호 제2식 · 대라병음 · 한어병음 · 팔라디 표기법 · 객가어병음방안 · 월병 · 예일식 광동어표기법) · 중어중문학과 · 제2외국어(교과)/중국어 · TOCFL · 거란 문자 · 여진 문자 · 서하 문자
관광 관광 전반 · 국립고궁박물원 · 국부기념관 · 대만의 성 · 중정기념당 · 충렬사 · 원산대반점 · 예류 · 진과스 · 핑시선 · 우라이 · 타이베이 101 · 가오슝 85 타워 · 지우펀 · 샹산 · 펑후 · 진먼
전시장 타이베이 세계무역센터 · 난강전람관 · 가오슝전람관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15%"
{{{#!folding [ 정치 · 군사 ]
{{{#!wiki style="margin: -6px -1px"
<colbgcolor=#ee1c25> 상징 국호 · 국기 · 국장 · 국가
정치 ·
행정
정치 전반(홍콩 · 홍콩 입법회 · 마카오 · 마카오 입법회) ·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 국무원(판공청 · 조성부서 · 국무원 직속기구) · 국가감찰위원회 · 홍콩 행정장관 · 마카오 행정장관 · 헌법(홍콩 기본법) · 행정조직(홍콩 · 마카오) · 국가주석 · 성급행정구 영도인 · 인민대회당 · 공무원 · 중국의 판다 소유권 정책
정당 ·
사상
중국공산당 규약 · 정당(중국공산당 · 민주당파 · 친중파 · 민주파 · 본토파) · 공산당의 파벌(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 태자당 · 상하이방) · 중국몽 · 마오주의 · 중국특색 사회주의 ·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 우마오당 · 공산당 중앙조직(중공당대회 · 중공중앙) · 신권위주의
역대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 · 화궈펑 · 덩샤오핑 · 장쩌민 · 후진타오 · 시진핑
역대 최고지도자
기타 정치인 류사오치 · 후야오방 · 자오쯔양 · 저우언라이 · 주더 · 쑹칭링 · 리셴녠 · 양상쿤 · 예젠잉 · 차오스 · 리펑 · 우방궈 · 장더장 · 리잔수 · 주룽지 · 원자바오 · 리커창 · 왕양 · 왕치산 · 쑨춘란 · 후춘화 · 류허 · 한정 · 샤오제 · 자오러지 · 장쥔 · 뤄룽환 · 자춘왕 · 둥비우 · 샤오양
부주석 · 전인대 상무위원장 · 정협 전국위 주석 · 총리 · 최고인민검찰원장 · 최고인민법원장 · 국감위 주임
외교 외교 전반(비판) · 외교부 · 여권(홍콩 · 마카오) · 비자 · 양안관계(하나의 중국 · 92공식 · 양안통일) · 중화권 · 한중관계(동중국해 · 이어도 · 6자회담 · 한한령) · 중일관계(센카쿠 열도 · 중일평화우호조약) · 한중일 · 중인관계(국경분쟁 · 아크사이친 · 아루나찰프라데시 · 평화공존 5원칙) · 난사 군도 · 둥사 군도 · 시사 군도 · 상임이사국 · G20 · G2 · 신냉전 · 일대일로 · 미중관계(패권 경쟁 · 전망) · 미중러관계 · 호주-중국 관계(무역분쟁) · 중국 제국주의 · BRICS · 중뽕 · 친중(대한민국) · 반중(대한민국) · 혐중(대한민국)
사법 사법 전반 · 최고인민법원 · 검찰원 · 사법부 · 엄타 · 사형제도 · 라오가이 · 민법 · 베이징 친청 교도소
공안 경찰(공안부 · 국가안전부 · 이민관리국 · 계급 · 경찰대학 · 경찰법 · 경찰차) · 응급관리부(소방구원대 · 국가소방구원국 · 계급 · 소방학원 · 소방법 · 소방차) · 해관총서(계급) · 홍콩 보안국(경무처 · 소방처 · 비행대 · 입경사무처 · 징교처 · 해관) · 마카오 보안부대(치안경찰국 · 소방국) · 청관 · 정보기관
군사 전반 중국 인민해방군 · 계급 · 중앙군사위원회(기능부서) · 국방부 · 퇴역군인사무부 · 역대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 역대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 전구(서부 · 중부 · 북부 · 남부 · 동부 · 구 편제) · 역사 · 초한전 · 사관학교 · SCO ·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
장비 장비(보병장비 · 기갑장비 · 항공병기 · 함선 · 둥펑 미사일) · 군복 · 군장 · 중국북방공업 · 중국선박집단 · 중국항공공업집단
군종 ·
부대
육군 · 해군(육전대) · 공군(공강병군) · 로켓군 · 전략지원부대(우주비행사대대) · 무장경찰(해경) · 연합참모부 · 주홍콩부대 · 주마카오부대 · 해외 주둔 중국군
}}}}}}}}}
[ 역사 ]
||<table width=100%><table bgcolor=#fff,#1f2023><table color=#373a3c,#ddd><colbgcolor=#ee1c25><width=16%> 역사 ||역사 전반(홍콩) · 등용제도 · 세금 제도 · 연호 · 역대 국호 · 백년국치 ||
시대 역사 전반 · 삼황오제 · · · (동주 · 서주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초한쟁패기) · (전한 · · 후한) · 위진남북조시대(삼국시대 · 서진 · 오호십육국시대 · 남북조시대 ·) · (무주 · 호연) · 오대십국시대 · (북송 · 남송) · · · 서하 · · (남명 · · · 동녕국) · (태평천국) · 중화민국(임시정부 · 북양정부 · 유신정부 · 왕징웨이 정권 · 우한정부 · 국민정부 · 만주국) · 중화인민공화국
관직 한나라의 공경 · 삼국지 관직 · 외명부 · 환관조직 · 후궁제도
사서 흠정이십사사(사기 · 한서 · 후한서 · 삼국지 · 진서(晉書) · 송서 · 남제서 · 양서 · 진서(陳書) · 위서 · 북제서 · 주서 · 수서 · 남사 · 북사 · 구당서 · 신당서 · 구오대사 · 신오대사 · 송사 · 요사 · 금사 · 원사 · 명사) · 오월춘추 · 여씨춘추 · 월절서 · 국어 · 전국책 · 열녀전 · 위서 · 위략 · 화양국지 · 후한기 · 양기 · 자치통감 · 동관한기 · 건강실록 · 정관정요 · 역대명화기 · 신원사 · 원조비사 · 만주실록 · 청사고 · 십국춘추 · 십육국춘추 · 사고전서
사건 신해혁명 · 국공합작 · 초공작전(대장정) · 중일전쟁(백단대전) · 국공내전 · 반우파 투쟁 · 중인전쟁 · 대약진 운동(7천인 대회 · 제사해 운동 · 신양 사태) · 문화대혁명(해서파관 사건 · 5.16 사건 · 내몽골 인민혁명당 숙청 사건 · 베이징 8월 폭풍 사건 · 경험 대교류 운동 · 상하이 1월 폭풍 사건 · 2월 역류 · 경서빈관 대소동 · 7.20 사건 · 주중 영국 대표부 점령 사건 · 9.13 사건 · 비림비공운동 · 상산하향 운동) · 중소 국경분쟁 · 닉슨-마오쩌둥 회담 · 중월전쟁 · 흑묘백묘론 · 중영공동선언 · 제3차 대만 해협 위기 · 홍콩 반환 · 천안문 6.4 항쟁 · SARS · 재스민 혁명 · 멜라민 파동 · 홍콩 우산혁명 · 2018년 중국 백신 파동 ·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 2019년 중국 우한시 환경 시위 · COVID-19(우한 봉쇄 · 상하이 봉쇄 · 2022년 중국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 · 2020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 · 정풍운동 · 2021년 헝다그룹 파산 위기
왜곡 중국의 역사왜곡 · 동북공정 · 만물 중국 기원설 ·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중국의 한복 왜곡 논란 · 중국의 김치 왜곡)
[ 사회 · 경제 ]
||<table width=100%><table bgcolor=#fff,#1f2023><table color=#373a3c,#ddd><colbgcolor=#ee1c25><width=16%> 경제 ||경제 전반(홍콩 · 마카오) · GDP · 경제성장률 · 상무부(투자촉진사무국) · 재정부 · 공업정보화부 · 중국인민은행 · 세무총국 · 중국 위안 · 중국증권 감독관리위원회(상하이증권거래소 · 선전증권거래소 · 베이징증권거래소) · 홍콩증권거래소 ·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 · ECFA · AIIB · FTAAP · 세서미 크레딧 · 차이나 머니 · 아시아의 네 마리 용(홍콩) ||
기업 ·
산업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중앙 관리 기업) · 은행 · IT 기업(바이두 · 알리바바 그룹) · 5대 자동차 제조사(상하이자동차의 계열사) · 건설사 · 만년필 회사 · BBK(산하 제조사) · Lenovo · 비야디 자동차 · HNA그룹 · 메이드 인 차이나 · 대기업
지리 지리 전반 · 자연자원부(임업초원국) · 수리부 · 중국 대륙 · 중국 본토 · 중원 · 오악 · 장강 · 황하(위수) · 요하 · 목단강 · 송화강 · 흑룡강 · 주강 · 회하 · 톈산 산맥 · 쿤룬 산맥 · 다오청 삼신산 · 루산 · 망탕산 · 북망산 · 티베트 고원 · 쿤룬 산맥 · 타클라마칸 사막 · 화북평야 · 만주 · 둥팅호 · 칭하이호 · 행정구역( · 지급시 · 부성급시 · 특별행정구) · 도시 목록 · 7대 고도 · 박물지 · 중국 석유 천연가스 공사(페트로차이나) ·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 · 국경통상구 · 환경오염
사회 사회 전반 · 신분증 · 주숙등기 · 민정부 · 중국사회과학원 · 인구 · 중국인(민족 · 한족) · 공휴일(국경일 · 홍콩) · 중국 표준시 · 국수주의 · 중화사상 · 중국 붕괴론 · 중국 위협론 · 인권 탄압 · 분청 · 황금방패 · 계획생육정책(소황제) · 양두혼 · 문명점수 · 동타이왕 · Shadowsocks · 탕핑족 · 노동법 · 민주화 운동 · 계투
정보 ·
통신
국가우정국 · 중국우정집단공사 · 홍콩우정 · 통신장비 제조사(화웨이 · ZTE · 다탕텔레콤) · 샤오미 · 이동통신사(차이나모바일 · 차이나유니콤 · 차이나텔레콤 · 중국광전네트워크) · 광전총국 · 중관춘 · 화창베이
과학 ·
기술
과학기술부 · 중국과학원 · 중국공정원 · 우주개발(국가항천국 · 창정 · 동방홍 위성 · 선저우 계획 · 창어 계획 · 톈궁) · 양탄일성 · 중국과학원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 양산 바이러스 연구소
교육 교육부 · 수학 교육과정 · 초급중학 학력시험 · 가오카오 · HKDSE · ARWU · 중국교우회망 대학평가(순위) · 구교연맹(목록) · BHUA · 세계일류대학 및 일류학과 건설 · 985공정 · 211공정 · 공자학원 · 천인계획 · 중국정부장학금 · 대외한어과
교통 교통 전반(홍콩 · 마카오) · 교통운수부(국가철도국 · 민용항공국) · 고속공로(강주아오 대교) · 철도(CRH · 도시철도 · 중국국가철도그룹 · 중국중차 · 중국철도박물관) · 항공사(중국국제항공 · 중국남방항공 · 중국동방항공 · 하이난항공) · 공항 목록 · 중국교통건설 · 교통카드(옥토퍼스 카드) · 차량 번호판
화교 화교(쿨리) · 차이나타운 · 중국계 한국인 · 중국계 미국인 · 중국계 러시아인(둥간족) · 중국계 브라질인 · 중국계 필리핀인(상글레이) ·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 중국계 베트남인 · 중국계 싱가포르인 · 중국계 태국인 · 중국계 멕시코인 · 중국계 칠레인 · 중국계 네덜란드인
[ 문화 ]
||<table width=100%><table bgcolor=#fff,#1f2023><table color=#373a3c,#ddd><colbgcolor=#ee1c25><width=16%> 문화 전반 ||문화 전반(홍콩 · 마카오) · 문화 검열(검열 사례 · 할리우드 블랙아웃) · 문화여유부(문물국) · 영화(목록) · 홍콩 영화 · 상하이물) · 드라마(목록 · 문제점) · 방송(CCTV · CETV · 라디오 방송 · 홍콩 · 마카오) · 신경보 · 중앙신문(인민일보 · 환구시보 · 광명일보 · 경제일보 · 해방군보) ·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 명보 · 미술 · 2021년 중국 규제 · 파룬궁 · 선전물 일람 ||
음식 음식 전반 · 지리적 표시제 · 지역별 요리 · 산둥 요리 · 쓰촨 요리 · 장쑤 요리 · 저장 요리 · 후난 요리 · 광둥 요리 · 구이저우 요리 · 안후이 요리 · 푸젠 요리 · 베이징 요리 · 상하이 요리 · 후베이 요리 · 윈난 요리 · 만주 요리 · 청진 요리 · 한국식(종류) · 미국식(종류) · 일본식(종류) · 러시아식 · 중국술(백주 · 황주 · 맥주) · · 팔진 · 만한전석
전통문화 전통악기(얼후 · 고쟁 · 비파 · 싼시엔 · 쓰후 · 싼후) · 경극(변검) · 잡극 · 모란정환혼기 · 샹치 · 바둑(중국기원 · 중국 바둑 기전 · 갑조리그 · 몽백합배 · 춘란배 · 바이링배 · 봉황고성배 · CCTV 하세배 · 황룡사배 · 천태산농상은행배 · 궁륭산병성배 · 오청원배) · 마작(국표마작 · 광동마작 · 사천마작 · 홍콩대만마작 · 홍콩마작) · 만만디 · 시누아즈리 · 한푸(여성 한푸) · 치파오 · 변발 · 인민복 · 전족 · 회회력 · 시헌력 · 한시 · 무협물(중국사대기서) · 토루 · 사합원 · 패방
현대문화 만화(웹코믹 · 홍콩) · 애니메이션 · 게임 · 텐센트 · 빌리빌리(빌리빌리 매크로 링크 VR) · 넷이즈 · miHoYo · SUNBORN · Hypergryph · X.D. Global · Gaea · Yostar · LPL · 차이나조이 · 차이나 인터내셔널 코믹 페스티벌 · COMICUP · ComiAi · 코미데이 · 선협소설 · VCT CN · 정가(傷感情歌)
종교 ·
신화
삼교 · 대승 불교(선종 · 정토교 · 시왕) · 도교(종파 · 상제 · 서왕모 · 구천현녀 · 일관도 · 육갑비축 · 도술 · 태극패 · 연단술) · 유교(변천사) · 백련교 · 중국 신화 · 하백 · 관우(관왕묘) · 마조 · 산해경 · 삼황오제(복희 · 신농 · 황제 · 소호 · 전욱 · 제곡 · 제지 · 제요 · 제순) · 헌원검 · 누조 · 창힐 · 치우 · 환상종(사신 · 사령 · 오룡 · 사흉) · 동방번개
스포츠 체육총국 · 올림픽 대표팀 · 패럴림픽 대표팀 · 전국운동회 · 중국축구협회 · 축구 국가대표팀(홍콩 · 마카오) · 풋살 국가대표팀 · 여자 축구 국가대표 · FA컵 · 슈퍼 리그 · 갑급 리그 · 을급 리그 · 여자 슈퍼 리그 · 홍콩 프리미어 리그 · 홍콩 퍼스트 디비전 · 홍콩 세컨드 디비전 · 차이나컵 · 홍콩 구정컵 · 축구굴기 · 공한증 · 중국 농구 협회 · 농구 국가대표팀 ·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 남자 배구 리그 · 여자 배구 리그 · 야구 국가대표팀 · 중국권법(실전) · 태극권 · 중국 그랑프리 · 상하이 인터내셔널 서킷 · 기아 서킷 · 베이징 올림픽 · 올림픽공원
언어 중국티베트어족 · 중국어(표준 중국어) · 관화 · 오어 · 월어 · 상어 · 민어 · 객가어 · 둥간어 · 기타 방언 · 한문 · 백화문 · 한자(간체자 · 방언자 · 측천문자 · 한어대사전) · 병음(우정식 병음 · 국어라마자 · 한어병음 · 팔라디 표기법 · 월병 · 예일식 광동어표기법) · 언어문자공작위원회 · HSK · BCT · TSC · 거란 문자 · 여진 문자 · 서하 문자
관광 관광 전반(홍콩 · 마카오) · 세계유산 · 구단팔묘 · 5A급 여유경구 · 중국국가박물관 · 중화민족원 · 유니버설 베이징 리조트 · 상하이 디즈니 리조트(상하이 디즈니랜드) · 홍콩 디즈니랜드 · 스튜디오 시티 워터파크 ·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 베이징 대관원
전시장 베이징 전시센터 · 전국농업전람관 · 중국국제전람센터 · 국가회의센터 · 국립전시컨벤션센터 · 상하이 국제엑스포센터 · 충칭 국제엑스포센터 · 수출입상품교역회전시관 · 선전세계전시컨벤션센터 · 선전전시컨벤션센터 · 우한 국제엑스포센터 · 난징 국제엑스포센터 · 쑤저우 국제엑스포센터 · 쿤밍뎬츠국제컨벤션센터 · 홍콩 컨벤션센터 · 아시아월드엑스포
}}} ||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관련 문서
]]
{{{#!wiki style="word-break:keep-all; margin:0 -10px -5px"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15%; min-height: 2em;"
{{{#!folding [ 정치 · 군사 ]
{{{#!wiki style="margin: -6px -1px -10px"
<colbgcolor=#fe0000><colcolor=#fff> 상징 천황 · 일본 황실(황실 관련 문서) · 일장기(니시키노미하타) · 국장 · 기미가요
국호 국호 · 니혼/닛폰 · 야마토 · 야시마 · 히노모토 · 재팬 · 지팡구 · 미즈호 · 시키시마 · ( · · ) · 부상국 · 동영 · (왜국)
정치 수상관저 · 일본 국회의사당 · 정치 전반 · 헌법 · 내각총리대신 · 정부 · 정당(사라진 정당) · 국회(참의원 · 중의원 (중의원 해산)) · 행정조직 · 55년 체제 · 우경화 · 정부홍보 온라인
선거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중의원 의원 총선거 · 통일지방선거 · 도쿄도지사 선거 ·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 (간접선거)
이념 · 사상 틀:일본의 이념 · 일본 좌파 · 일본의 자유주의 · 일본의 보수주의 · 일본 내셔널리즘 · 야마토 민족주의 · 천황제 파시즘
외교 외교 전반 · 친일 · 반일 · 지일 · 일뽕 · 친일파 · 탈아입구 · G7 · 6자회담 · G20 · G4 · Quad · IPEF · JUSCANZ · 한중일 · 한일관계 · 중일관계(중일평화우호조약) · 한미일관계 · 미일관계 · 미일 반도체 협정 · 러시아 제국-일본 제국 관계 · 러일관계 · 한러일관계 · 여권 · 비자 · 영토 분쟁(독도 · 쿠릴 열도 · 센카쿠 열도) · 옛 식민지 국가들과의 관계 · 일본 제국-나치 독일 관계 · 삼국 동맹 조약(추축국) · 왜관
군사 군사 전반(군사사) · 자위대(편성 · 역사 (일본군) · 계급) · 문제점(무기 관련) · 사건 사고 · 군복 · 교육훈련 · 전투식량 · 육상자위대 · 해상자위대 · 항공자위대 · 통합막료감부 · 방위대학교 · 방위의과대학교 · 재무장 문제 · 주일미군(미일안전보장조약) · 97식 중전차 치하 · 95식 경전차 하고/케고/규고 · 욱일기
사법 · 치안 사법 전반 · 재판소 · 최고재판소 · 일본 형법 · 일본 경찰(계급 · 일본 제국 경찰) · 일본 경찰청 · 경시청 · 나라현 경찰본부 · 공안조사청 · 엔자이 · 저작권법 · 사형제도 · 후추 형무소 · 도쿄 구치소 }}}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15%; min-height: 2em;"
{{{#!folding [ 역사 ]
{{{#!wiki style="margin: -6px -1px -10px"
<colbgcolor=#fe0000><colcolor=#fff> 시대 역사 전반 · 조몬 시대 · 야요이 시대 · 고훈 시대 · 아스카 시대 · 나라 시대 · 헤이안 시대 · 가마쿠라 시대 · 남북조시대 · 무로마치 시대 · 센고쿠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전국 3영걸 · 에도 시대 · 겐로쿠 · 막말 · 메이지 유신 · 메이지 시대 · 다이쇼 시대 · 쇼와 시대 · 헤이세이 시대 · 레이와 시대
정권 야마타이국 · 야마토 정권 · 소가 · 원정 · 겐페이토키츠 · 후지와라 · 헤이케 · 막부 · 쇼군 · 가마쿠라 막부 · 집권 · 무로마치 막부 · 관령 · 에도 막부 · · 조슈 번 · 사쓰마 번 · 일본 제국 · 에조 공화국 · 연합군 점령하 일본 · 류큐 왕국
기타 일본서기 · 육국사 · 신찬성씨록 · 관위 · 후궁제도 · 봉행 · 태정관 · 공가 · 사쓰마 번 · 사무라이 · 다이묘 · 닌자 · 공가 · 화족 · 데지마 · 카쿠레키리시탄 · 쿠로후네 사건 · 에조 · 에도 · 왜구 · 다이쇼 데모크라시 · 다이쇼 로망 · 대일본제국 헌법 · 중일전쟁 · 태평양 전쟁 · 일제강점기 · 과거사 청산 문제 · 역코스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 일본의 역사왜곡(일본의 전쟁범죄 · 해군선옥론 · 육군악옥론 · 일본 극우사관 · 일본의 피해자 행세 · 야스쿠니 신사 · 전범기업) · 오키나와/역사 · 전공투(적군파) }}}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15%; min-height: 2em;"
{{{#!folding [ 사회 · 경제 ]
{{{#!wiki style="margin: -6px -1px -10px"
<colbgcolor=#fe0000><colcolor=#fff> 경제 경제 전반 · 경제사 · 일본 엔 · 일본은행 · 무역 · 도쿄증권거래소 · 오사카증권거래소 · 닛케이 225 · 재벌 · 대기업 · 취업 · 일본제(목록 · 내수용) · 아베노믹스 ·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 플라자 합의 · 잃어버린 10년 · 일본국채 · 잽머니 · 갈라파고스화 · 블랙기업 · 자동판매기
지리 일본 열도 · 혼슈 · 규슈 · 시코쿠 · 홋카이도 · 난세이 제도 · 류큐 제도 · 오키나와섬 · 오가사와라 제도 · 쓰시마섬 · 지명 · 지역구분 · 간토 · 간사이 · 주부 · 주코쿠 · 도호쿠 · 오키나와 · 행정구역 · 도도부현 · 시정촌 · 도시 · 수도권 · 케이한신 · 주쿄권 · 내지 · 지진(대지진) · 후지산
사회 사회 전반(문제점 · 야쿠자 · 폭주족 · 한구레 · 옴진리교(알레프)) · 국수주의(인종차별 · 혐한 · 극우 미디어물 · 넷 우익 · 일본 대단해 · 애국 비즈니스) · 일본인 · 야마토 민족 · 조몬인 · 야요이인 · 류큐인 · 아이누 · 니브흐 · 윌타 · 오로치 · 재일 외국인(재일 한국-조선인 · 재일 중국인) · 성씨(목록) · 주거 · 주소 · 연호 · 공휴일 · 출산율 · 차량 번호판 · 메이와쿠 · 다테마에 · 오모테나시 · 이지메 · 니트족 · 히키코모리 · 중2병 · 잇쇼켄메이 · 초식남 · 건어물녀 · 여자력 · 야마토 나데시코 · 멘헤라 · 토요코 키즈
언어 일본어족 · 일본어(문법 · 발음) · 도호쿠벤 · 하치조 방언 · 에도벤 · 나고야벤 · 간사이벤 · 도사벤 · 하카타벤 · 우치나 야마토구치 · 일어일문학과 · JLPT · 가나 · 히라가나 · 가타카나 · 반복 부호 · 스테가나 · 오쿠리가나 · 후리가나 · 만요가나 · 역사적 가나 표기법 · 한자(신자체 · 목록) · 상용한자 · 일본식 한자어 · 류큐어 · 아이누어 · 니브흐어 · 훈독 · A라고 쓰고 B라고 읽는다 · 세로쓰기 · 일본어 위키백과 · 재플리시(목록) · 한자 문화권
과학 · 기술 해체신서 · 이화학연구소 · 물질·재료 연구기구 · 니호늄 · 아시모 · JAXA · QZSS · H-II · H-III · LE-7 · LE-9 · 엡실론 로켓 · 다네가시마 우주센터 · 가구야(탐사선) · 하야부사(탐사선) · 아카츠키(탐사선) · 카미오칸데 · KAGRA · 양산 바이러스 연구소
교육 대학 목록 · 대학 서열화 · 지잡대 · 제국대학 · 관립대학 · 슈퍼글로벌대학 · 학술연구간담회 · 대학 펀드 · 대학입학공통테스트 · 대학입시센터시험(폐지) · EJU · 편차치 · 관리교육 · 유토리 교육 · 일본 문부과학성 장학금 · 한일 공동 고등교육 유학생 교류사업 · G30 · 실용영어기능검정
교통 교통 전반 · 도로(고속도로 · 국도 · 도도부현도 · 시정촌도) · 교통 패스(홋카이도 · 동일본 · 도카이 · 서일본 · 시코쿠 · 큐슈 · 도서 지역 · 복수 지역) · 철도(철도 환경 · JR그룹 · 대형 사철 · 신칸센) · 공항 목록 · 전일본공수 · 일본항공 · 비짓 재팬 웹 · 좌측통행 · 차량 번호판
교포 일본계 · 일본계 한국인 · 일본계 브라질인 · 일본계 미국인 · 일본계 중국인 · 일본계 팔라우인 · 일본계 러시아인 · 일본계 대만인 · 일본계 멕시코인 · 일본계 인도네시아인 · 일본계 아르헨티나인 · 일본계 영국인 }}}
}}}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15%; min-height: 2em;"
{{{#!folding [ 문화 ]
{{{#!wiki style="margin: -6px -1px -10px"
<colbgcolor=#fe0000><colcolor=#fff> 예술 일본 음악 · 우타이테 · J-POP · 엔카 · 일본 아이돌 · 전통악기 · NHK 교향악단 · 일본 미술 · 일본 영화(역대 흥행 순위 · 도쿄 국제 영화제) · 일본 드라마 · 찬바라 · 일본 방송(NHK · 일본의 민영방송) · 일본 만화(만화잡지 · 걸작 만화) · 일본 애니메이션(심야 애니메이션) · 가부키 · 라쿠고 · 우키요에 · 하이쿠 · 센류 · 와카(만요슈 · 백인일수) · 모노가타리(겐지모노가타리 · 타케토리모노가타리) · 렌가 · 오리가미 · 노가쿠 · 조루리 · 가가쿠 · 만자이 · 오와라이 · 가레산스이 · 자포네스크 ·오키나와 음악
음식 음식 전반(지리적 표시제 · 급식) · 스시 · 사시미 · 가이세키 · 돈부리(가츠동 · 규동) · 우동 · 소바 · 덴푸라(새우튀김) · 돈가스 · 멘치 · 고로케 · 유부 · 낫토 · 우메보시 · 니쿠자가 · 타쿠앙즈케 · 일본의 술 · 라멘 · 나가사키 짬뽕 · 와규 · 카레라이스 · 오므라이스 · 오니기리 · 오코노미야키 · 몬쟈야키 · 나폴리탄 · 오뎅 · 샤브샤브 · 에키벤 · 카스텔라 · 화과자(모찌 · 만쥬 · 양갱 · 모나카 · 센베이 · 타코야키) · 이자카야 · 오토시 · 오키나와 요리
전통문화 일본학 · 국학 · 기모노 · 유카타 · 촌마게 · 게다 · 오하구로 · 훈도시 · 쥬니히토에 · 료칸 · 다다미 · 코타츠 · 마츠리 · 아마 · 화지 · 가라쿠리 · 부시도 · 일본 갑옷 · 일본도 · 천수각 · 다도 · 쇼기 · 화투 · 카루타 · 게이샤 · 마이코 · 오이란
종교 · 신화 일본/종교 · 신토 · 신사 · 신사본청 · 무녀 · 신궁 · 이세 신궁 · 덴만구 · 이치노미야 · 일본 신화 · 고사기 · 풍토기 · 요괴(오니 · 일본삼대악귀 · 텐구 · 유키온나 · 캇파 · 츠쿠모가미 · 오바케) · 정토교 · 일련종 · 부동명왕 · 창가학회 · 류큐 신토
스포츠 스포츠 전반(도쿄 올림픽) · 프로야구 · 고교야구 전국대회 · 야구 국가대표팀 ·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 · J리그 · 축구 국가대표팀 ·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 일본 그랑프리 · 검도 · 주짓수 · 유도 · 가라테 · 스모 · 아이키도 · 킥복싱 · 슛복싱 · 일본 고류 무술 · 발도술 · 궁도
서브컬처 오타쿠 · 특촬물(일본 3대 특촬물) · 괴수물 · 동인샵 · 아키하바라 · 오토메 로드 · 덴덴타운 · 코믹마켓 · 아키바계 · 코스프레 · 다키마쿠라 · 네코미미(고양이귀) · 이타샤 · 니코니코 동화 · 매드무비 · 5ch · 아스키 아트 · 후타바 채널 · 라이트 노벨 · 미연시 · 비주얼 노벨 · 오토메 게임 · JRPG · 탄막 게임 · 쯔꾸르 · 오락실/일본 · 모에 · 모에화 · 모에 그림 · 츤데레 · 데레 · 존댓말 캐릭터 · 갸루 · 로리타 패션 · 왕자계 · 고스로리 · 양산형 · 지뢰계 · 페어리계 · 데코라계 · 반쵸 · 스케반 · 버츄얼 유튜버(hololive 프로덕션 · 니지산지) · 보컬로이드 · MMD · 음성 합성 엔진 · 프라모델 · 소설가가 되자 · 이세계물 · 거대로봇물 · 슈퍼로봇 · 리얼로봇물 · 마법소녀 · 케모노 · 몬무스 · 메카무스메 · 여간부 · 세카이계 · 가상 아이돌 · 지하 아이돌 · 메이드 카페 · 집사 카페 · 동인녀 · 부녀자 · 상업지 · 에로 동인지 · 에로게 · 야애니 · 에로 라이트 노벨
기타 문화 전반 · 호칭 · 벚꽃 · 가쿠란 · 하쿠란 · 세라복 · 란도셀 · 관광 · 세계유산 · 국립 박물관(도쿄 · 교토 · 나라 · 규슈) · 도쿄 타워 · 도쿄 스카이트리 · 도쿄 디즈니랜드 · 오사카성 ·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 통천각 · 구마모토성 · 레고랜드 재팬 리조트 · 삿포로 눈 축제 · 온천 · 파친코 · 스도쿠 · 가라오케 · 이모지 · 스카잔 · 특공복 · 유루캬라 · 동영 · 왜색 · 와패니즈 }}}}}}}}}}}}


[[중화권|
파일:중국 대만 국기.svg
]] 중화권-일본 관계 관련 문서 [[중화권|
파일:일본 국기.svg
]]
{{{#!wiki style="color: #fff; 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공통
한자문화권
외교 대만-일본 관계, 한국-대만-일본 관계, 일본대만교류협회, 대만일본관계협회, 자코타 삼각지대
역사 대만일치시기, 타이완 민주국, 대만총독부, 우서 사건
<nopad> 사건사고 hololive 키류 코코-아카이 하아토 대만 언급 논란, 야스쿠니 신사/사건사고
외교 청일관계, 중일관계(2020년대), 한중일, 6자회담, 한중일 정상회의, 중일평화우호조약
<nopad> 사건사고 센카쿠 열도 중국 어선 충돌 사건, 선전 일본 초등학생 피습 사건
일본-홍콩 관계
일본-티베트 관계
기타
반중(일본), 반일, 친중, 친일, 혐중, 혐일, 중국/외교(홍콩/대외관계), 대만/외교, 일본/외교, 타이완 섬, 중화민족(중화사상), 중국/경제(홍콩/경제, 마카오/경제), 대만/경제, 일본/경제, 자위대 vs 중국군, 일본-만주 관계, 센카쿠 열도, 중일전쟁 }}}}}}}}}


[1] 기타 한자어 명칭은 명칭문단 참조.[2] First Sino-Japanese War는 청일전쟁이다.[3] 일본명: 1호작전(一號作戰) 중국명: 예상계 회전(豫湘桂會戰)[4] 9월 2일 일본 제국은 연합국에게 항복했지만, 9월 9일 중국군의 허잉친은 최고 통수권을 대표하여 오전 9시, 난징에서 만주를 제외한 전 지역의 지나파견군과 동남아시아 지역의 남방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만주는 소련군이 담당했고, 중국 공산당이 만주에서 소련의 협조를 얻어내며 국공내전에서의 기반 지역을 확보하게 된다.[5] 시안 사건으로 인한 2차 국공합작 이후 초공작전을 중단하고 본격적인 항일전을 시작함.[6] 1932년 4월에 일제에 형식적인 선전포고를 함, 2차 국공합작 후 국민혁명군 산하 팔로군으로 참전.[7] 이후 임시정부에 병합.[A] 이후 왕징웨이 정권에 흡수.[A] [10] 차관 제공과 태평양 전쟁 당시의 공동전선.[11] 차관과 군수물자 지원, 태평양 전쟁 당시의 공동전선.[12] 차관과 군수물자 지원, 비행의용군 파견 및 불가침조약 체결, 만주 전략 공세 작전으로 관동군만주국, 몽강연합자치정부를 붕괴시킴.[13] 소련과 함께 만주 전략 공세 작전에 가담.[14] 공산당 파괴를 위한 군수물자, 고문관 및 군수산업 건설을 위한 대규모의 차관 및 무기 제공.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 문서 참조.[15] 나치 독일은 일본 제국의 동맹국이었지만 동시에 거대한 시장 중 일부인 중화민국에 대한 군사적 고문 및 장비 지원을 했다. 이후 일본의 항의로 독일로 송환당했다.[16] 단, 비슷한 규모의 독소전쟁에서 소련군이 자국 영토에서 몰아내고 독일 베를린까지 입성한데 반해 달리 중화민국군은 일본군을 몰아내지 못했고, 오히려 미국과 소련이 일본 제국의 항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특히 소련의 만주 침공은 이후 전개되는 국공내전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허나 중화민국군은 유럽 전선에서의 소련처럼 일본 제국을 사실상 탱킹하고 있었기에 그 평가가 절하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17] 1971년에 중화인민공화국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18] 중화민국의 전쟁 전 인구(1936년 기준 4억 7,900만 명)과 전후 인구(1947년 4억 5,700만 명) 차이에서 발생한 수치로 가장 직관적이며 객관적인 수치이기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인구 자연증가율까지 고려해서 계산하자면 더욱 복잡해지긴 한다. 또한 이는 중국군, 민간인이 모두 포함된 수치이다.[19] 만주 전략 공세 작전은 생략되었다.[20] 전황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군은 그냥 만주에서부터 밀고 내려오는게 아니라 동부의 쓸만한 해안가나 항만들은 다 찔러보면서 점령했고, 남방작전으로 인도 일부와 버마까지 장악하며 중국의 뒤까지 틀어막았다. 그래서 중국군은 서쪽으로 밀려나 사천 땅을 중심으로 귀주와 운남 정도만을 틀어쥔 상태에서 항전을 해야 했다. 공산당 치하였던 섬서나 아예 독립국이었던 위구르, 티베트는 논외.[21] 중국공산당이 직접적으로 섬멸한 일본군은 10만 명도 안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백단대전 참고.[22] 283페이지 참조.[23] 이러한 경향은 국공내전이 재개되기 전인 중일전쟁 시절부터 심했다. 자기들이 민주적이고 혼자 싸우고 있다는 마오쩌둥의 낚시질에 미국 언론인, 외교관, 군인까지 속았는데다가 중국의 학생과 지식인들도 낚여 국민당은 싸우지 않는단 인식이 파다했다.[24] 당장 사상자 논란에서 보았듯이 자체 일본군 사살이 50만 명이 넘는다고 주장하는데 국민당과 싸우다 전사한 공식 전사자가 40만 명이다.[25] 그 유명한 난징 대학살이나 충칭 대공습조차도 중국에서는 한때 신경을 안썼다.[26] 미 육군을 중심으로 미국 참전 이전인 1937년에서 1941년까지의 무관심과 편견이 당시부터 심각했다. 참전 이후 이전까지의 국민당군의 승리한 전투들을 모조리 조작이라고 치부할 정도였다.[27] 주중 미국 대사 클레런스 가우스가 대놓고 국민당을 멸망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28] 일본 우익들 중에서도 만주사변까진 찬양해도 중일전쟁까지 찬양하는건 많이 답없는 자들이라 수가 적은 것도 있고, 중일전쟁의 당사자인 일본에선 중화인민공화국의 자화자찬 혁명사관을 진작부터 비판적으로 보아 중화민국 중심의 민국사관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산케이 신문에서 연재한 후, 출판된 《장개석비록》이다.[29] 이는 지상병력의 신속한 기동이 불가능한 해상/섬 지역이라는 특성과, 요새화된 곳은 가급적 건너뛰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곳만 골라서 찔러대는 미군의 전략에 의한 영향도 크다.[30] 물론 전쟁 후반에 가면 압도적인 질적, 양적 차이에 의해 지상 점령 전부터 제해/제공권이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전투가 시작되었지만, 지상에 안정된 기지를 확보한 상태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땅을 딛고 사는 존재이다.[31] 다만 대부분이 중국 연구에 관련된 학자나 중국 국적의 학자들이라는 특성이 있다.[32] 사실 자국사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보는 현상은 흔한 일이다. 일례로 스페인에서는 스페인 내전이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라고 주장하고, 아프리카에서는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 전쟁이 시발점이라고 주장하며, 반공학자의 일부의 러시아 내전 기원설까지 존재한다.[33] 중일전쟁은 일본 정부가 아닌 관동군이 독단적으로 벌인 전쟁이었고 사후 보고를 받은 정부는 후에 이러한 관동군의 독단 행위를 묵인하고 보조하였다. 당시 일본 제국이 관동군 및 군부를 컨트롤하지 못 하는 무능한 집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34] 대륙타통작전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중화민국은 그때까지 병역이 면제되어 있었던(1935년부터 중화민국은 징병제를 실시했다.) 중학교 졸업생 이상에게도 자원 입대를 호소했다. 이에 10만명의 목표는 12만 5천명으로 초과 달성을 이루는데 성공했고, 이들로 구성된 8만 6천명의 지식청년군은 빠른 전쟁 종결로 실전에는 투입되지 못했으나 당시의 높은 내셔널리즘을 짐작할만한 일화이다.[35] 1928년경부터 일본군이 중국에 출병할 당시의 구호.[36] 단, 자료에 따라선 마틴 B-10 폭격기인 것도 있다.[37] 1964 도쿄 올림픽(예정으로부터 20여년 뒤), 1972 삿포로 동계올림픽(예정으로부터 32년 뒤)[38] 한국에서도 1920~30년대생 상당수가 중일전쟁을 '지나사변'이라고 부른다.[39] 각각 위키백과 중어판#바이두 백과#에서 사용하는 표기이다.[40] 위키백과 중어판과 바이두 백과 모두 팔년항전을 리다이렉트시켜준다.[41] 웨이보 中日战爭 검색 결과 위키백과 중어판 中日战爭 문서[42] 일본의 극우 인사들이 현재 이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43] 일어판에만 있는 문서로 중일전쟁 문서와 별개로 작성되어있다.[44] 한국 방심위에 상응하는 기관[45] 그래도 2020년대를 기점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국민당의 본거지인 대만 드라마에서보다 중국 본토에서 제작되는 시대극에서의 국민당 묘사가 훨씬 나은 편이긴 하다. 대만에서는 2.28 사건의 만악의 근원으로 그려져서 오히려 국민당 치세의 대만이 일본 식민지 시절보다 더 암울하게 묘사되는 반면(그래도 1980년대 아직 계엄령이 떨어지고 중국국민당이 장기 독재하던 시절에는 오늘날 중국 본토에서 자주 제작되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항일 영화나 드라마들이 대만에서 많이 제작되기는 했다.), 어쨌든 중국 드라마에서는 나름 열심히 싸우고 항일 영웅으로 묘사되는 편이다. 아무래도 국민당이 공산당보다 패션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월하다보니 극 중 원래 공산당 스파이인 주인공이 오랫동안 국민당 관료처럼 멋있고 옷 맵시가 좋은 군복이나 중산복을 입는 걸로도 묘사되기도 한다.[46] 상하이 전투의 일부. 자세한 것은 상하이 전투 문서 참조.[47] 이러한 페널티들은 산업 국유화, 법폐개혁 등의 일련의 국가 집중을 완성시킨다면 없앨 수 있다. 다만 혼란한 상황을 다 고증해서 아예 일본 제국에 동맹국으로 붙지 않는 이상은 없애기가 더럽게 어렵다. 그리고 천리푸, 다이리 등이 반일파였다는 것을 고증하여 만약 일본 제국과 동맹을 맺는다면 이들을 고용할 수 없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국민당 강화 루트를 못 타서 정치적으로 망한다.[48] 여기 세계관에서 소련에 부하린스탈린을 이기고 집권했는데 그 때문에 FDR의 뉴딜 정책이 부하린의 NEP와 뭐가 다르냐며 퇴짜 맞았기에 대공황의 여파가 늦게 해결되었고, 진주만 공습도 현실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면서 미 해군 전력도 약화되었다.[49] 제작진도 추축의 승리를 위해 여러 무리수를 어쩔 수 없이 집어 넣었다고 인정했다.[50] 데므치그돈로브의 바람대로 외몽골까지 통일했다[51] 왕징웨이의 자리는 사후 천궁보를 거쳐 가오쭝우에게 넘어갔다.[52] 룽윈의 사촌. 룽윈은 과거 왕징웨이의 배신을 장제스에게 보고했기에 찍혔고 항복 후 권력을 뺏기고 한직을 전전했다.[53] 장즈중 세력은 신강성으로 도망쳤는데 대동아공영권이랑은 그냥저냥 지내는 중[54] 스즈키 데이이치를 행정장관으로 파견하고 이것저것 요구에 뭔가 하려면 일본의 승인도 지속적으로 필요하기에 풀어준게 아니라 정말 실험실 처지이다.[55] 본인의 고려대 박사학위 논문(2010)을 중심으로 보완, 개정한 책이다. 학사, 석사는 각각 육군사관학교와 국방대에서 취득했다.[56] 애초에 본업은 공무원이다.[57] 그러나 본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공부를 통해 책을 쓴 일반인을 20세기를 대표하는 전쟁사 연구가 중 한 사람이자 영국의 귀족 칭호까지 받은 사람과 비교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또한 이 서적은 구소련 및 동유럽권 자료가 뚫리기 전에 나온 책이라 서부전선에 대한 내용은 필요 이상으로 많지만 동부전선이나 태평양 전쟁에 관련한 내용은 서부전선에 비해 많이 부족한 면이 있다. 게다가 중일전쟁 관련 서술은 거의 의미없는 수준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