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을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인 비빔밥 | |
한국어 | 한국 요리 / 한식 |
영어 | Korean Cuisine / Hansik[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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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식 요리의 총칭. 한식(韓食)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한국의 전통식 요리를 뜻하며, 현대적으로 재창조된 한식은 '퓨전 한식' 등으로도 불린다.한식진흥법에서는 한국에서 사용되어 온 식재료 또는 그와 유사한 식재료를 사용하여 한국 고유의 조리방법 또는 그와 유사한 조리방법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음식과 그 음식과 관련된 유형·무형의 자원·활동 및 음식문화를 "한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식진흥법 제2조 제1호)
2. 역사와 분포
다른 여느 나라가 그렇듯이 한식은 여러가지 경로와 계층을 통해 발전했다. 가장 큰 갈래 위주로 분류하자면- 궁중 음식 - 삼국시대 이후 중앙 집권이 굳혀지며 이어져 내려온 화려한 상차림. 특별히 치우쳐진 바 없이 여러 지역의 식재를 골라 다양하게 섞어 쓴다는 특징이 있다. 개성 한정식은 반가 음식이긴 하나 옛 수도였기에 궁중 음식의 화려한 특징을 가졌으며 수도권 위주로 왕실의 영향을 받아 실질적으로는 궁중 음식에 가깝다.
- 반가 음식 - 삼국시대의 호족, 고려시대의 문벌 귀족과 조선의 양반가를 통해 이어진 가문의 전통적 음식. 대표적으로 전라도에서 발전한 남도 한정식이 있으며, 해당 산지의 음식을 신선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 제삿밥 - 한국식 제사에는 금기가 많기 때문에 일상적인 한식 식사에서는 다루지 않는 메뉴가 많아져 별개의 영역이 되었다. 탕국, 돔배기, 문어, 심지어 제주 지역에선 빵을 올릴 정도로 지역과 가문마다 조금씩 다른 구성인 경우가 많으며, 안동시의 헛제사밥이 유명하다.
- 사찰 음식 -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불교의 발전과 함께 빚어진 채식 중심 식단.[2] 그러나 조선의 숭유억불과 일제 강점기 토속 불교 억압, 6.25의 전란으로 인해 매우 많은 요소가 소실되었다.
- 서민 음식 - 지역별로 가장 많이 분포했던 서민들이 소박하게 먹었던 음식. 대체로 각 지역에 존재했던 양반가의 영향을 받았으나 다소 열화된 음식을 먹었으며, 조선 후기에 이르러 주막 문화의 발달과 함께 발전했다. 현재 우리가 즐기는 대부분의 음식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한정식의 유래는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크고 전통있는 한정식집에서는 대령숙수들이 궁중에 나와 차린 음식점이 기원이라고 하나... 실제로 고종 대에만 이르러서도 나라가 개판이 되며 대령숙수 없이 궁녀들이 땜빵으로 수라상을 차리던 일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3]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식문화 학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조선 후기의 대형 기생집에서부터 이어졌다는 의견이 많으며, 실제로 궁중 음식보다는 당시 수도권 양반가나 외교관들이 즐겼던 개성 한정식이 현대 한정식과 유사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측이 사실일 확률이 크다.
전통요리의 대부분은 궁중음식이거나 어느 집안에서 내려오는 요리들이 대부분이다. 궁중음식의 경우는 당연히 최고의 재료들만 사용하고, 대표적으로 음식디미방과 같이 문헌에 남기는 요리의 대부분은 어느 집안에서 내려오던 비법을 남긴 것이라 역시 재료가 상당히 비싼 경우가 많았다.
2.1. 고대
한국 요리의 뿌리를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한민족(韓民族)이 한반도와 만주 등지에 정착하여 살면서 원시적인 채집·수렵·어로 등으로 얻은 식재료를 불을 이용하여 조리해먹던 시절까지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원시적인 식습관에 현대 한국 요리만의 특수성이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 요리의 특징은 정주 생활이 시작되고 농경이 발달하면서 한민족이 만주 및 한반도의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한반도는 남북으로 뻗은 반도로 남부, 중부, 북부의 기온 구분이 뚜렷하여 농산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동, 서, 남 삼면이 바다에 면하여 좋은 어장을 가까이하고 있어 어로도 점차적으로 발달하였다. 수산물은 생선류를 비롯하여 새우, 소라, 굴, 해삼, 전복 등 매우 다양하고 해조류도 미역, 김, 파래, 다시마 등 그 종류가 많으며 높고 깊은 산맥에서 흐르는 수많은 강물에는 여러 종류의 담수어가 서식하고 있다. 수렵도 매우 활발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차차 가축을 길러 농경에 이용하였을 뿐 아니라 그 고기를 먹었고 나아가서는 돼지, 닭 등도 길러 고기 요리의 재료로 썼는데 그 조리를 매우 잘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채식으로 쓰는 재료는 주로 산야에 자생하는 각종 나물이었으며 밭에서 재배하는 채소도 종류가 많았다. 수륙(水陸)의 산물은 사계절의 뚜렷한 기후의 변화로 인해 각 작물의 재배기간이 짧은 형태를 띄지만 그만큼 다양한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기에 음식법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처럼 곡식, 육식, 채식의 재료가 다양하고 풍부한 동시에 이를 조미하는 간장, 된장 등의 양조법도 매우 발달하였다. 주재료와 부재료를 배합하고 맛을 보완하는 후추, 생강, 파, 마늘, 부추, 산초와 같은 향신료를 쓸 줄 알았다.
이러한 한국 요리 특유의 모습들이 이미 삼국시대의 기록에서부터 드러난다.
(신문왕이) 일길찬 김흠운(金欽運)의 작은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기로 하고, 우선 이찬 문영(文穎)과 파진찬 삼광(三光)을 보내 기일을 정하고, 대아찬 지상(智常)을 보내 납채(納采)[4]하게 하였는데, 예물로 보내는 비단이 15수레이고 쌀, 술, 기름, 꿀, 간장, 된장, 포, 젓갈이 1백3십5수레였으며, 벼가 1백5십 수레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문왕 3년(서기 683) 봄 2월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문왕 3년(서기 683) 봄 2월
신라 국왕의 혼례였으므로 음식의 양도 많았는데, 고대 한국인의 식습관은 쌀과 쌀을 기반으로 하는 술, 식혜가 주류에 음식 조리에 필요한 기름과 꿀, 간장, 된장을 많이 사용했다. '포'는 일반적으로 말린 고기(육포, 어포)로 보는데, 왕의 혼례에 공식적으로 등장할 정도면 단순한 보존식품 위상이 아니라 당시 일반화된 음식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동궁과 월지의 호수 아래 뻘에서도 이런저런 음식을 보관할 때 꼬리표로 사용한 목간이 다수 발견되어 고대 한국요리에 대해 유추할 수 있다. 기사 강원도 고성에서 운반해온 젓갈, 가물치, 살아있는 전복, 동물의 내장, 돼지고기 등의 식재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백제인들은 왕궁리 유적의 화장실 유적을 통해 확인한 결과, 육식보다는 채식과 민물고기를 즐겼다고 한다.
2.2. 중세
고려시대에는 고려가 불교국가인 탓으로 육식 문화가 쇠퇴하였다. 송나라 사신이 왔을 때 고기를 올려야 했던 때가 있었는데 도축하는 방법이 실전되어 불에 던져 넣거나 구타해 죽이는 방법을 썼고 그 결과 내장이 터지는 등으로 누린내가 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도경 제23권 잡속(雜俗) 도재(屠宰)편에 나오는 얘기다.고려는 정치가 심히 어질어 부처를 좋아하고 살생을 경계하기 때문에 국왕이나 상신(相臣)이 아니면, 양과 돼지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 또한 도살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다만 사신이 이르면 미리 양과 돼지를 길렀다가 시기에 이르러 사용하는데, 이를 잡을 때는 네 발을 묶어 타는 불 속에 던져, 그 숨이 끊어지고 털이 없어지면 물로 씻는다. 만약 다시 살아나면, 몽둥이로 쳐서 죽인 뒤에 배를 갈라 내장을 베어내고, 똥과 더러운 것을 씻어낸다. 비록 국이나 구이를 만들더라도 고약한 냄새가 없어지지 아니하니, 그 서투름이 이와 같다.
물론 이자겸의 생일날 들어온 고기가 너무 많아 썩어났다는 기록 등에서 보듯 육류를 아주 안 먹은 것은 아니지만 특정 재료를 사용한 요리가 발달하려면 소비 계층이 폭넓게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적성국에서 온 사신도 아닌 우방국에서 온 사신에게도 저 정도 밖에 안되는 요리를 대접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 고려의 고기조리법은 크게 후퇴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 때부터 맥적 등으로 알려진 요리의 맥도 고려 초 동안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금하다시피 하면서 많이 사라졌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맥적이나 너비아니는 전통적인 방식과 다른 요리다.
단, 해산물을 즐겨 먹었다는 기록으로 보아선 네 발 달린 동물만 안 먹었을 뿐이지 해산물 및 조류는 즐겨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위의 이자겸에게 바쳐진 고기도 닭, 꿩 같은 조류라고 보면 상호모순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본격적으로 고기 요리가 재부흥한 것은 고려 후기 원 간섭기부터였다.[5]
조선시대는 국가적으로 소의 도축을 법으로 일부 금했으나 사실상 상당한 수의 소를 도축하고 소비했다. 관련 기록에서 1844~1849년동안 일본으로 소가죽 수출량이 12만 714매로 연간 2만 119필의 소가 도축되었으며 1882년 이후 청나라로의 최대 수출품도 소가죽이었다. 박제가의 북학의에서 전국에서 하루에 소 5백필이 도축된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당시 조선은 소가죽은 수출하지만 쇠고기는 수출하지 않고 국내에서 소비한데다가 수출용 이외의 소의 도축량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의 소고기가 국내에 공급되고 있었다. 또한 중근세 일본에서도 쇠고기하면 조선이라는 인식이 있었을 정도다.
또한 조선 중기를 기점으로 불을 쓸 때 물을 적게 써서 찌느냐, 많이 써서 삶고 끓이느냐, 아예 불을 쓰지 않고 말리느냐로 크게 구분되었던 한국의 요리법에 불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구이가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한식의 가장 널리 퍼진 조리방식이었던 찌는 누르미가 누름적으로 바뀌고, 갈비와 불고기로 대표되는 고기구이로 바뀌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2.3. 근현대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듯이 한국 요리 역시 현대에 흔히 먹고 맛볼 수 있는 요리들의 역사가 의외로 길지 않은 것이 많다. 전통 음식을 제외하고 오늘날 한국인들이 흔히 먹는 요리들은 대개가 산업화 이후에 형태가 정립된 것들이다. 예전에는 화력이 약해서 물에 담갔다가 굽는 것을 반복하여 고기가 질겨지지 않게 하던 것이 산업화 이후에 화력 좋은 설비와 가스, 냉장고의 보급과 육가공공장의 등장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먹는 고기 요리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특히 병천순대는 육가공업체가 등장하고 나서야 생긴 요리다.예를 들어 조선 초기까지는 고춧가루가 없었으니 조선 초의 요리에는 빨간 빛의 매운 요리도 없었다. 물론 매운맛을 내는 다른 재료를 쓰긴 했지만 맛은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고대의 식습관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기록들이 여럿 전해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다. 물론 근현대에 새로 만들어지거나 정립된 한국 요리도 엄연히 한국 요리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반드시 수백 년, 천 년 전부터 내려와야지만 한국 요리인 것은 아니니, 오늘날 한국인에게 익숙한 한식 요리들에 대해 그것들은 소위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하다며 너무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6]
한국에서 서민들이 고기를 제대로 먹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고도성장기부터이다. 근현대 이후로는 대략 1970년대까지는 서민들은 제대로 고기를 먹지 못하고 잔칫날처럼 특별한 때를 제외하면 고기 요리는 흔히 접하지 못하였다. 당장 구글로 1970년대 밥상이라고 쳐보면 당대에 어떻게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삼겹살 구이도 80년대 들어서 '로스 구이'란 이름으로 널리 퍼진 것이다.
유럽/아메리카/중동권에선 현대의 한국 요리는 고기를 많이 쓰고 자주 나오는 국물 요리에 소량이나마 고기를 넣는 경우가 많아
실제 채식주의자가 먹을 만한 한식 종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나물 반찬 몇가지를 넘어 하나의 식단 전체가 채식으로 이루어진 분야가 있는데, 바로 사찰음식이다. 한국은 대승불교문화권이므로 상좌불교와는 달리 채식을 권장하는데 이것이 현대의 채식주의 식단에 부합한다. 이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는 상대는 일본의 '쇼진료리'인데[8] 전반적으로 한국의 사찰요리는 쇼진요리에 비해 유명세가 덜하다는 것이 중론.[9] 이러나저러나 둘 중 어느쪽도 딱히 잘 알려진건 아니다. 양국에서 각자 이를 상품화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하는 중인데, 애초에 불교의 식품인만큼 미국에서 잘나가는 일본선불교가 한국 것에 비해 훨씬 압도적 공세를 펼치고있다. 또한, 한국인들에게 있어서도 사찰음식이란게 여전히 생소하며 저변확대가 되어있다 보기 어렵다보니 외국인 채식주의자가 이 정보에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아직 많은 애로사항이 있다.
조선의 밥상은 밥, 국, 김치, 장류를 기본으로 추가되는 찬 수에 따라 3첩, 5첩, 7첩, 9첩, 12첩으로 나눴다고 한다. 3첩은 서민밥상, 5첩은 중산층, 7첩 9첩은 양반밥상이라고 한다. 특히 9첩은 대갓집에서 먹는 밥상으로 각인될 정도이다. 오늘날의 보통 밥상은 3첩 또는 5첩이다.[10] 3첩 정도면 5대 영양소를 잘 갖춘 것이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 시의전서에 나와 있는 반상차림은 조선시대 후기에 생겨난 부의 집중과 양반사회의 붕괴 사치 및 요릿집 문화 발달로 인해 음식문화가 변한 결과로 보인다는 견해도 있다.
식재료 중 우유, 버터, 치즈 등 유제품의 비중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고려 및 조선 초기까지는 원 간섭기 몽골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유제품을 사용하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엔 거의 명맥이 끊긴 편. 한식에 유제품을 쓰는 경우는 현대에 새로 개발한 모던 한식을 제외하면 타락죽 정도가 전부이다.
튀김도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다소 부족한 편. 튀김 문서에도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전근대 요리서에는 튀김이 등장하지 않으며 식재료를 튀기는 요리기구도 나온 게 없다. 그나마 튀김 요리라고 할 수 있는건 튀김이라기보다는 기름에 데쳐낸 수준인 부각과 튀각 정도이고 약과와 유과처럼 기름에 튀겨 만드는 과자가 있었지만 재료값이 만만치 않고 만드는 것도 번거롭기 그지 없어 양반이나 부자들이나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산가요록에 세종이 즐겼다고 알려진 포계라는 치킨 비슷한 요리가 하나 기록되어 있긴 한데, 닭지짐에 가까워 본격적인 튀김이라고 하긴 민망한 수준. 양 옆에 튀김요리가 일찍부터 발달한 중국과 일본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의 기름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 수 있었던 부분이다.
쌀을 통한 식사량이 다른 두 나라보다 많아 열량을 채우기 위해 기름에 튀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거나, 상업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돈 대신으로도 쓸 수 있는 쌀[11]이 아닌 특용작물을 키우는 것은 리스크가 있어 쉽게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지형적인 영향도 있는데, 땅이 넓어 남쪽으로도 퍼져 있는 중국이나 전반적으로 남쪽에 있는 일본과 달리 한반도의 위치상 유채꽃을 재배하기 적절한 곳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제주도 정도인데 조선시대 당시 다른거 진상하기에도 허리가 휠 정도였다. 과거 한국은 밀가루+기름 모두가 부족한 지리적 특성상 튀김을 할 여유가 없었고, 그나마 재료를 비교적 덜 쓰고 만드는 전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외국에도 한국 요리가 많이 알려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 국적 불문하고 외국인에게 선호되는 것으로는 고기구이, 닭요리[12], 감자탕, 비빔밥 등이 있다. 추가로, 요리라고 할 순 없지만 쌈장, 김도 아주 좋아한다.
2.4. 고조리서
- 고사십이집
- 고종무진진찬의궤
- 고종정해진찬의궤
- 기해진연의궤
- 군학회등
- 규곤요람
- 규합총서
- 다신전
- 도문대작
- 동다기
- 동다송
- 사가집
- 산가요록
- 산림경제
- 수문사설
- 수운잡방
- 순조기축진찬의궤
- 술빚는법
- 시의전서
- 식료찬요
- 양주방
- 역주방문
- 영접도감의궤
- 영조갑자진연의궤
- 온주법
- 요록
- 우음제방
- 원행을묘정리의궤
- 윤씨음식법
- 음식디미방
- 음식방문
- 음식방문니라
- 음식보
- 이씨음식법
- 임원경제지
- 정청일기
- 주방문
- 주식시의
- 주찬
- 주초침저방
- 증보산림경제
- 최씨음식법
- 치생요람
- 풍정도감의궤
- 혜경궁진찬소의궤
3. 특징
3.1. 맵다
매운 맛에서 세계 최상위권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매운 맛 올림픽처럼 '매운 맛의 강도'가 가장 높다기 보다는, 식사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매운 맛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식사 내내 적당한 매운맛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편이다. 세계의 다른 요리들과 비교해봐도 한국 요리보다 훨씬 더 매운 요리는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후난 요리나 쓰촨 요리도 엄청나게 맵고, 인도나 동남아는 기후 때문에 전체적으로 맵다. 고추의 원산지인 멕시코에도 자국의 고추인 하바네로를 사용한 매운 요리들이 많다.[13] 그런데도 한국 요리가 매운 요리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은, 매운맛의 강도는 심하지 않을지 몰라도 많은 종류의 한국 요리가 맵기 때문이다.물론 맵지 않은 요리도 충분히 많다. 예를 들자면 불고기, 나물류나 전류, 그리고 평안도 요리는 대부분 맵지가 않다. 그리고 막상 한국 음식에 고춧가루 및 고추장 등을 팍팍 넣게 된 것은 몇십 년도 안 된 일이다. 현대의 한국요리가,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남한의 요리가 분단 이후 남부 지방 조리법을 중심으로 변모한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남북으로 뻗은 나라로써, 기후의 영향으로 인해 북부로 갈수록 동북부의 함경도를 빼고 보면 음식이 담백하고 남부로 갈수록 향신료를 다채롭게 써 자극적인 맛을 추구한다는 차이가 있다. 서울/경기 지역과 강원(관동) 지방은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음식들이 그다지 맵지 않은 편이었으나[14] 점점 호남/영남 지방 음식들의 영향으로 매워지는 변화를 겪었다. 따라서 맵지 않은 음식들도 많고, 평안도의 음식[15]은 여전히 별로 맵지 않기 때문에 한국 음식은 맵다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옛날에 한국에서는 고추나 고춧가루를, 그 전에는 생강, 초피 등을 사용하여 매운맛을 냈다. 삼국시대에 마늘이 전래되기 전에는 산채나 달래를 사용했고, 조선 중기에 고추가 전래되기 전에는 홍화씨로 매운맛을 냈다. 임진왜란 이후에 고추가 한반도에 전래되었고 고추의 매운맛을 이용해 비린내를 없앨 수 있게 되면서 김치에 젓갈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즐겨먹는 배추김치(남부지역식 김치)는 1700년대에 만들어졌고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다. 그 이전의 김치는 주로 소금에 절인 무로 지금의 백김치와 비슷한 형태였다.
마늘은 한식의 가장 핵심 식재료로서 고추 없는 한식은 쉽게 찾아낼 수 있어도 마늘 없는 한국요리[16]는 거의 없다고 봐야할 수준이다. 이처럼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료다보니 일인당 마늘 소비량이 전 세계에서 1~2위를 다툰다.[17] 대다수 한국인들은 한국음식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 다른나라 요리에 비해 향신료를 적게 쓴다고 생각하는데 마늘은 향이 상당히 강렬한 향신료라서 향만 놓고 보면 한국음식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과장 좀 보태서 너무 익숙하다보니 향신료로 생각 못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당연히 무작정 매운 것이 아니라, 맛있게 매운 이라는 표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맛있게 매운 맛은 단순한 매운 맛의 조합인 것이 아니라 매운 맛에 더불어 단맛과 짠맛과 감칠맛, 때로는 신맛과 쓴맛, 떫은 맛까지 더한 맛의 집합체로 다른 국가의 맛내기 비법과 마찬가지로 조합과 밸런스의 예술이다.
뿐만 아니라 매운 음식에 매운 음식을 합쳐서 먹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고추장찌개에 반찬으로 생고추와 김치를 곁들이는 식. 거기에 생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 맵게 먹는 나라에서도 매운맛을 내는 재료를 생으로 먹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만 한국 요리에서 매운 맛은 고추의 캡사이신, 마늘의 알리신 같은 '뜨거운 매운맛'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고, 겨자류나 고추냉이 등의 시니그린이나 박하류의 멘톨 같은 '차가운 매운맛'은 그다지 광범위하게 활용되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겨자는 제법 사용되는 편이지만, 고추나 마늘 등에는 비할바가 못된다. 또한 쓰촨 요리에서 많이 쓰이는 초피의 '마비되는 듯한 매운맛'도 추어탕이나 지리산 주변 일부 지역 외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주로 짜거나 단 음식에 익숙한 반면 매운 음식엔 익숙하지 않아 비빔밥에서 고추장을 덜어내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대신 주로 젊은층 위주로 한국 요리의 매운맛에 익숙해진 사람도 없지 않으며, 한국 요리=매운 요리라는 인식 때문에 일본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일본 한식 식당들은 우리가 흔히 먹는 것보다 더 맵게 만든다.
외식산업에서 악용되기에도 좋다. 선도가 떨어져서 상하기 직전인 재료나 애당초 질이 떨어지는 수입 냉동육 같은 재료를 주재료로 넣어서 음식을 만들어도 웬만한 사람들은 매운맛에 가려져 그런 재료를 사용했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또한 최근 2010년 이후 한국의 음식문화는 사실상 소비자에게 매운 맛을 맛으로 즐기기보단 매워서 고통스러운 것 자체가 소잿거리라는 문제도 있다. 실제로 닭발, 떡볶이 등 외식 메뉴 중 상당수가 맛의 보편적 균형보다는 단순히 자극적인 매운맛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의견도 많다. 그냥 화학적으로 캡사이신을 추출해다 음식에 넣는 경우가 그런 것. 자세한 내용은 매운맛 문서로.
3.2. 뜨겁다
또 해외 요리에 비해 매우 뜨거운 요리를 선호하는 것 역시 특징이다. 돌솥비빔밥이 좋은 예이다. 물론 채소까지 무조건 익혀서 내놓는 중국 요리와 달리 나물 종류는 차게 해서 내놓는 경우도 있고 익혀서 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찌개, 찜, 국, 부침처럼 엄청 뜨겁게 푹 익힌 요리를 먹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의 평가는 혀에 화상을 입을 정도라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한국인도 가끔 혀에 화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일본과 달리 흙이나 돌로 집을 짓는 문화가 발달하였기 때문에 불 사용이 매우 자유로운 편이었고 후술하듯 길거리 음식보다는 점잖게 앉아서 먹는 것을 선호하는 것도 크다. 한국의 매우 추운 겨울 또한 이것에 일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들 알겠지만, 날씨가 더울수록 더더욱 뜨겁고 맵게 먹는다. 하지만 냉면이나 냉국 등 상온보다 차가운 요리[18]의 가짓수도 결코 적은 편은 아니고, 오히려 다른 나라 대비 많은 편에 속한다. 즉 뜨거운 것은 매우 뜨겁게 차가운 것은 매우 차갑게 먹는 것. 따라서 음식의 '온도'를 음식 맛의 한 요소로 적극 활용하는 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한 설명일 것이다.여기에 더해 한반도는 여름에 고온다습[19][20]하여 식중독균 번식이 용이하므로 음식을 반드시 뜨겁게 익혀야만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는 관념이 있어 그렇다는 말도 있다.[21] 흔히 식중독 예방 캠페인에서 반드시 익혀 먹어라는 말이 나온다는 걸 생각해 보자. 또한, 이 때문에 일본과 반대로 길거리 음식이 불량식품이라 하여 천시되던 역사도 있었다. 현재는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나아졌지만, 한동안 한국에서는 길에서 들고 다니며 먹는다는 개념 자체를 예의나 품위 문제 이전에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해서 꺼리는 경향이 있다.[22] 노점행위를 아예 불법으로 근절해서 퇴출시키려는 것과[23] 군대에서조차 장병들의 보행 중 취식을 규정으로 금하고, 학칙으로 보행취식을 금지하는 등, 처벌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도 사실 이러한 문화가 반영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3.3. 달다?
기본적으로 '매운 음식'의 이미지가 있는 한국 요리이지만 단맛이 안 들어가는 요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매운맛을 제외하고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맛인 '감칠맛'을 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양념에 설탕과 물엿이 들어가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특히 고기 요리에는 대부분 설탕이 들어가서 단맛이 난다. 설령 설탕을 넣지 않더라도 과일을 갈아 넣는 식으로 단맛을 첨가하는 경우가 많다. 또 고기를 연하게 하려고 사이다를 넣기도 한다. 오죽하면 외국 사이트의 불고기 레시피에 십중팔구 스프라이트 또는 7up이 적혀있을 정도.그 외 막걸리에도 설탕이 들어가는 등 현재 한국 음식에 설탕이 안 들어간 음식이 없을 정도이다. 이를 허영만의 식객에서 부분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고추장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는데 다른 문화권의 고춧가루가 들어간 유명한 매운 소스들, 이를테면 두반장이나 타바스코가 매운맛을 기반으로 짠맛이나 신맛으로 맛을 내는 반면 국산 고추는 매운맛 외에도 단맛을 가지고 있어서 이걸 가지고 만든 고추장은 매운 양념 가운데서도 단맛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맵다고 헉헉 거리면서도 그 매운 걸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단맛 때문에 매운맛이 중화되기 때문에 계속 먹을 수 있다고 몸이 말하는 것이다. 염분이 꽤 많은 장인데도 단맛 때문에 짜다는 느낌이 거의 안 들 정도. 이 때문에 단맛에 익숙하지 못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한국 요리는 너무 달다며 불평하기도 한다.
3.3.1. 반론
하지만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한식에 설탕이 들어가기 시작한 역사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고, 양식에서 설탕 쓰지 않고 비교적 쉽게 단맛을 낼 수 있는 재료인 양파도 조선시대에 고추보다도 더 늦게 들어왔다. 이외에 과즙이나 꿀, 조청 등의 감미료는 전부 귀하디 귀했을텐데 한식에서 단맛을 쉽게 찾아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감칠맛을 위해 단맛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단맛을 찾기 어렵기에 감칠맛에 집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채소나 당화된 곡식이 아닌 감미료에 의한 강한 단맛은 한식에서 매운맛 이상으로 그 역사가 짧을 수도 있다.더욱이 사실 세계적인 기준으로 미루어 볼 때 한국인의 설탕 섭취는 많지 않은 편이다.[24] 2000년대 후반부터 웰빙 바람이 불면서 당류 사용은 늘어났을 때의 기세보다도 급격히 줄어들었고,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선 명백히 평균 미만이다.
감미료 시장이 줄었다는 근거자료.
이러한 자료들을 미루어 보면 한식이 달다는 인식이 현재까지도 지배적인 까닭은 각종 건강방송 및 여러 음식비평 매체에서 당류의 과용을 지적하고 경고한 바가 대중의 정서속에 영향을 미쳤고, 근래의 웰빙 유행속에서 반성적인 여론으로 확대된 역설일 수도 있다.
3.4. 복합적인 맛을 추구한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한국 요리의 특성을 알 수 있다. 특히나 단상 구성으로 전채-본요리-디저트로 나누어져 코스마다 다른 맛을 추구할 수 있는 서양식 요리와 달리 밥상 한번에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 감칠맛 등 먹을 수 있는 모든 맛을 다 추구하고, 그러다보니 요리 하나하나에도 단일한 맛 위주의 요리를 낮게 평가한다. 즉 모든 요리에 복합적인 맛 구성을 요구하고, 이를 위해 반찬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것을 요구한다.한국인들이 "설탕을 싫어하고, 짠 음식 싫어한다, 까다로운 입맛이다"라고 정의하는 건 편견이다. 한국인들은 한가지 맛만 나는 요리를 싫어하는 것이다. 매운 음식이면 그냥 맵기만 하면 싫어하고 그 안에 단맛이 있어야 하고, 짠 음식이면 짜기만 한 음식이 아니라 단맛을 넣어 단짠을 만들거나 김치의 신맛을 넣거나 해서 복합적인 맛을 추구하는 것이다. 서양 요리처럼 전채-본요리-디저트 구성으로 각각 원하는 맛을 나누어 섭취할 수 있는 구성이라면 단일한 맛 위주의 요리 조합을 할 수 있지만, 한국 요리는 한상에서 끝나기 때문에 요리가 단순하고 1차원적인 맛만 추구해서는 제대로 먹히질 않는다.
3.5. 강한 향
음식은 그 향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데, 한국 요리는 대체적으로 향이 센 편으로,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어려울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발효음식으로, 된장찌개, 청국장 등이 대표적인 예다. 김치도 당연히 상당히 심한 편이라 위의 예시들보다는 덜하지만 김치찌개 역시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드는 냄새가 나기 쉽다.두 번째 이유는 바로 마늘이다. 자세한 것은 아래 문단으로.
그나마 마늘 향은 요리에 가까이 있거나 먹고 난 후 입냄새로 나는 경우가 아니면 괜찮은데, 된장찌개나 청국장은 아예 만드는 과정에서 집 밖까지 냄새가 퍼지다보니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기겁을 한다. 유럽/아메리카/중동권 국가에서는 아파트에서 된장찌개 요리를 하게 되면 집단으로 항의하기도 한다.
3.5.1. 마늘
대부분의 경우 외국인들은 한식에서 젓갈[25] 냄새 또는 특히 마늘 냄새가 강하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늘은 향취가 강하기로 유명한 향신료인데, 한국은 전세계에서 1인당 마늘 소비량이 1~2위로 어지간한 유럽/아메리카/중동/남아시아/동남아권 국가와 비교하면 소비량이 10배를 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마늘을 많이 먹는다는 이미지를 가진 나라인 이탈리아도 1키로 정도인데 한국은 7키로쯤 된다. 거의 모든 음식에 마늘이 들어가다보니...[26]
자세한 내용은 마늘 문서 참고하십시오.
3.6. 반찬
한국 요리는 옛날부터 반찬과 밥을 동시에 소비하는 체계가 시스템으로 굳어져 있었고 3첩 반상, 5첩 반상 등이 그 예이다. 밥과 반찬 사이엔 국과 장(간장 등)도 꼭 포함시켜 사람마다 자기 취향에 맞춰서 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김치류도 반찬에 포함되지 않았다.이렇게 맨밥과 같이 먹기 위해 설계된 반찬을 볼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다.
3.7. 반상
자세한 내용은 반상 문서 참고하십시오.4. 평가
현재 한국 요리의 보편적 상황 및 한식 요식업, 한국인들의 요리에 대한 관념에 대한 평가이다.4.1. 긍정적인 부분
- 다양한 채소, 임산물, 해조류 활용: 반도라는 지형과 높은 산지 비율, 사계절 등 여러 환경, 기후 요소로 인해 상당히 다양한 채소 요리 문화가 발달했으며 그러한 덕에 한국인의 1인당 채소 소비량은 세계 1위 수준이다. 송이버섯과 산나물로 대표하는 다양한 임산물을 사용함과 함께 파래, 매생이, 김, 미역 등 해조류 사용도 세계적으로 가장 폭넓은 편이다.
- 동물성 식재료의 깊이있는 활용: 육류와 수산물 등 동물성 식재료들도 다양하게 사용한다. 역사적으로는 기존의 한국식 육류문화에 더해 중원 및 북방식 육류문화 또한 첨가했고 반도라는 지형 특성상 수산물 요리 또한 크게 발달하였다. 쇠고기 문서에서 보듯이 세세한 부위 구분을 사용하며 중근세 일본에서도 쇠고기 하면 조선이라는 인식이 있었을 정도다. 수산물 역시 어류, 패류, 갑각류, 두족류, 복족류, 극피동물 및 멍게와 개불까지 가리지 않고 먹으며 애, 내장, 알 등을 구분하고 이를 활용한 알탕, 젓갈(명란젓, 창란젓 등), 반찬류가 발달했고 근세 일본으로도 전해져 현대 일식에 영향을 끼쳤다.[27]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다시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주춤했던 다양한 수산물 사용과 육류문화가 빠르게 복원되었다.
- 슬로우 푸드에 부합하는 발효식품 문화: 변화무쌍한 사계절로 인한 저장기술의 필요성 덕분인지 독특한 풍미를 가진 발효식품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여러 장류로 대표하는 간장, 된장, 고추장, 쌈장 등과 함께 각종 김치류, 절임채소류, 젓갈류 등을 사용하며 '슬로우 푸드(Slow Food)'와 많은 면이 부합한다.
- 다양한 조리법 발달: 여러가지 조리 방법을 활용해 같은 식재료로도 다양한 맛을 낸다. 날것[28]에서부터 삶기, 굽기, 절임, 조림, 튀김, 숙성, 발효, 우리기, 쌈(육회, 보쌈, 삼겹살, 불고기, 짜글이, 산적, 장조림, 삼합, 곰탕, 구절판) 등이 있다. 상기한 발효식품 문화와 다양한 식재료 활용이 결합하여 영양학적으로도 균형잡힌 음식이 많다.
- 맛있으면 된다는 개방적인 요리관: 한식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전세계적으로 봐도 매우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요리관을 가진 요리문화 중 하나다. 현대 한식의 여러 특징 중 하나는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 한국 사람들의 성향에 맞게 매우 빠르고 기민하게 변화해 왔고 그러한 과정에서 외국 음식의 요소 또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현지화하여 완전히 새로운 식문화를 창조하기도 했다. 당장 부대찌개나 양념치킨 같은 대한민국 대표 K-한식은 유래가 100% 한국이거나 오랜 역사적 사료가 충실한 전통적인 음식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의 식문화에 맞게 한국식 식재료 이용법과 조리법을 이용해 훌륭하게 현지화에 성공해 역수출까지 한 케이스다. 이것이 한식 세계화 정책과 외교를 가능하게 한 중요 원동력이다. 미국화된 이탈리아 요리처럼 세계화 과정에서 정체성을 상실해 이탈리아인들이 교조주의까지 될 정도로 식문화에 대한 국수주의로 광역어그로를 끄는 경우도 적으면서도 근본없다는 비평도 안받는 국가 정체성과 세계화를 고르게 잘하고 있는 드문 요리문화.[29]
- 한식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가는 것과 별개로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한식은 해외에서도 입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24년 뉴욕 최고 레스토랑 100곳'에서 한식당이 중식당 5곳, 일식당 4곳보다 많은 7곳이 선정됐다. #
4.2. 부족한 부분
- 발효식품에서 생기는 강한 향: 우리는 적응돼서 심각하게 느끼지 못할뿐 된장, 청국장 등 발효식품이 포함된 요리는 냄새가 상당하다.[30] 자주 먹는다는 김치 역시 한식을 처음 접하는 관점에서 보면 자극적인 냄새가 심하다. [31] 그러나 이 것은 개선해야될 문제점이라기 보다 발효음식이 많아서 생기는 특성으로 보는게 타당하다.[32]
- 과도한 향신료(특히 고추+마늘)와 양념의 사용: 한식이 본래부터 맵고 짠 요리들은 아니었으나 고추장이 등장한 조선 후기에서 시작해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전반적으로 과한 양념과 맵고 짠맛이 기본이 되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비교적 최근으로 갈수록 더 매워지고 있다. 원래 한국 음식도 맵게 먹지 않았다. 이런 풍토는 프랜차이즈의 경쟁으로 최근에 생긴 것. 전통 한식은 오히려 담백한 경우가 더 많다. 또한 이런 맵고 짠 음식을 과도하게 선호하는 풍토가 자리잡기 시작한 이래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나 장염, 대장암이나 위암 등과 같이 매운 걸 절대 먹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더욱 고생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음식이 죄다 매워지고 짜져서 먹을 수 있는게 거진 없어져 버렸기 때문. 과장 조금 섞자면 죽이랑 밥 말고는 먹을수 있는게 전무하다.
- 높은 탄수화물 비중과 대조적인 부족한 단백질 : 한식 정찬에서 탄수화물은 주식부터 반찬까지 거의 다 일 정도로 높은 반면 고기와 계란, 곧 단백질의 비중은 대체로 높지 않다. 동아시아권의 전체적인 공통적인 특징이긴 하나 주식이 엄연히 밥과 면이며 고기는 곧 반찬의 비중을 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 장기적인 정통 한식 위주의 식단은 단백질 섭취 부족을 유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신체노동이 줄어들고 사무직 등 3차 산업이 발달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과한 탄수화물 섭취는 마른비만 등 질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자.
- 초고급 호화 요리라고 할 만한 메뉴가 적고, 전통의 맛을 제대로 구현하는 곳이 적음: 상업을 천시하는 사농공상 이념과 조선 후기에나 시작된 상업 발달,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의 수난이 겹쳐서 대대로 내려오는 조리법이나 식당이 상당히 많이 사라졌다. 자식이 식당이라는 옛날에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일을 잇기를 바라지 않아서 스스로 문을 닫거나, 전쟁 때문에 닫아야 했다. 식당이 가장 많은 서울만 해도 3대 이상 명맥을 이어온 식당은 극소수다. 반면, 외국에는 100년 이상 이어져온 식당들이 즐비하며[33], 한국처럼 간판에 30년 전통을 내걸었다간 웃음거리가 될 게 뻔하다. 때문에, 일반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대다수의 요리는 대대로 이어져오는 그 맛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나마 제대로된 전통 요리라면 궁중요리와 일부 종가집에서 전수되거나 문서의 해석을 통해 특별히 구현한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요식업계의 경쟁이 극도로 강한 편이라 하나의 식당이 오래버티기 힘들다.[34] 또한 유교적 근검절약 탓에 전통적으로 고급 요리가 발달하지 않아 파인 다이닝의 개념이 약해서[35] , 고급 한식당인 한정식 집을 가도 집밥과 비슷한 메뉴들이 가짓수가 여럿 나온다는 느낌이지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특식은 생각보다 적다. 때문에 신식 호텔 한식당의 셰프들은 전통 레시피를 연구하는 것보다는, 한식 메뉴에 양식 기반 조리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국제 기준에 부족한 표준화,정량화: 본토인 한국에서조차 같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쓰는 레시피가 너무 제각각으로 표준화,정량화된 자료 가 부족해 요리사들이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제멋대로 만드는 음식이 많고, 이런 문제가 음식 상품으로써 품질 규격화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문에 이른바 복불복도 심하고, 하술할 해외 중국인들의 무차별적인 한식 도용으로 인한 이미지 왜곡이 발생한다. 백종원등 한국의 유명한 인플루언서등이 이런 문제를 자각하고 식재료의 표준화, 레시피의 정량화에 노력하고 있으나 세계적인 한식 소비속도가 표준화 속도보다 빨라서 이에 대한 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5. 한식 세계화
2020년 이후 한식은 뉴욕이나 런던같은 대도시에서 현지인들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2020년 전까지 한국 음식이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춘 개량식이 많았다면 2020년 이후부터는 역으로 한국 음식의 오리지널리티를 잘 살린 음식이 유행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예가 뉴욕에 생긴지 얼마 안된 '기사식당'이라는 식당인데 이름에서 예측할 수 있듯 한국의 아저씨들이 즐겨먹는 서민적인 한국 음식을 표방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한국 음식 식당이 현지인으로부터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웨이팅은 기본이고 심지어 몇몇 식당은 금새 자리가 차 예약하기 힘든 식당도 있다고 한다.
또한 한국 냉동식품 역시 유행하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비비고 브랜드의 제품이 잘 팔리고 있는 중이며 트레이더 조에서 한국식 김밥이 크게 유행을 타기도 했다.
이렇게 한식이 외국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비결은 한국 음식의 개성을 잘 살리면서 현지화를 잘 해낸 덕분이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셰프들이 한국의 맛을 잘 살리면서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춘 한국 음식을 수년간 연구한 덕분에 한식의 파인다이닝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으며, 비건의 비율이 높은 미국이나 유럽에 입맛에 맞춰 순수 비건 재료로만 음식을 제공하는 것도 한식의 인기 요인중 하나이다.
2010년 이후 한식은 빠르지는 않아도 서서히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중이며 미쉐린 가이드나 뉴욕 타임즈같은 유명한 매체에도 한국 음식이 소개되는 등 한국 음식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보여진다. 물론 이탈리아 음식이나 일본 음식같이 전세계에 대중적으로 한식이 퍼졌다고 보기엔 이른감이 있지만, 적어도 과거 서술처럼 한국 음식이 세계화 되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6. 한식에 대한 영양학적 평가
6.1. 과거 영양학의 관점
영양학계의 이론이 지속적인 검토와 수정에 의해 변화함에 따라, 한식에 대한 평가도 달라져왔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주류는 '탄수화물이 약이고 지방은 암이다'였으며, 그렇기에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인 동아시아의 밥 문화가 주목받았다. 이들 나라는 삼시세끼에 쌀밥이 거의 반드시 들어갔고, 육류의 소비량은 매우 적었으며, 동물성 단백질의 양도 매우 적었으며 그마저도 생선에서 주로 섭취했다. 이는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구미에서 원하던 좋은 식습관이였다. 초판이 20세기에 나온 미국산 다이어트 서적들을 집어보면, 당시 대세는 명백히 고탄수화물, 저지방 다이어트였고, 빌 클린턴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맥두걸 박사는[36] 한국과 일본의 식습관을 이상적으로 봤다. 심지어 미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권장하던 다이어트도,[37] 미국당뇨협회(ADA)의 권장 다이어트도[38] 모두 고탄수화물 저지방 다이어트였다.6.2. 현대 영양학의 관점
현대 영양학계는 탄수화물을 맹목적으로 지지했던 과거와 달리 탄수화물의 여러 부정적인 측면들을 조명하고 있다. 탄수화물을 안좋게 보는 영양학 관점에서는 한식에게도 부정적인 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2010 한국인 영양 섭취 기준에서는 성인 남성 기준으로 탄수화물 60~75%, 단백질 7~10%, 지방 15~25%의 비율로 섭취를 권장하며 미국영양정책센터 기준 Dietary Reference Intake에서는 성인 남성 기준으로 탄수화물 130g/d 및 45~65%, 단백질 56g/d 및 10~35%, 지방 20~35%의 섭취를 권장한다. 미국에선 최소치로 제시하는 단백질 섭취량인 ‘전체의 10%’가 한국에선 무려 최대치로 제시되는 상황이다. 지방 및 단당류의 함량 또한 적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단으로는 그럭저럭 좋을 수도 있으나 정작 탄수화물도 과도하게 섭취하면 살이 찌는 건 매한가지다.특히나 고탄수화물의 쌀밥이 주식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거기에 맞춰 반찬이나 국, 찌개등의 간이 강하도록 세팅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단시간내에 이 비율을 바꾸기가 어렵다. 특히 한국인은 유럽/아메리카/중동인에 비해 췌장 성능이 떨어져서 이러한 고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은 당뇨에 취약하게 만든다. 가뜩이나 당뇨에 약한 민족이 당뇨에 안 좋은 식단을 하고 있는 것. 물론 그렇다고 췌정이 좋은 유럽, 아메리카계 사람이 고탄수화물을 많이 먹는다고 건강해진다는 소리는 아니고, 유전학적으로 불리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케토제닉(저탄수-고지방&고단백) 다이어터에게 한식은 기피 식단이다. 사실 케토제닉은 거의 대부분의 동아시아 요리와는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케토제닉 자체가 완벽히 검증되지 않아 학계에서 비판도 받는 식이요법임을 감안해야한다.
단 오해해선 안 된다. 한식을 먹으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한식도 사실 다른 나라 음식과 그리 다를 것 없는 과하게 먹으면 안 좋은 그냥 보통 음식이라는 뜻이다.
일단 한국 요리가 건강에 좋다고 하는 논문이 많이 나오고는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 요리에 대한 영양학적 분석은 대부분 한국 내 연구자들이 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논문들이 국제적, 중립적 기준에서 신뢰할 만한 것인지는 부족한 경우도 많다.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논문이 프랑스 등 와인 소비국에서 집중적으로 나오는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물론 국내 학술지만이 아닌 외국의 SCI급 또는 그에 준하는 피인용 지수를 가진 학술지에도 실린 논문들이 소수 존재한다.
나물 문화는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말할 것도 없이 섬유질 섭취를 높이며, 채소 섭취량을 늘린다. 그러나 염지 과정 중 이용되는 나트륨 때문에 나물을 지나치게 먹으면 나트륨 과다 섭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
다만 현대 영양학 자체가 학파도 많고, 통일된 의견이 존재하지 않음도 유의해아한다. 각 영양학자마다 건강한 식단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심지어는 당연하다고 여겨진 식단이 추후 비판받으며 학설이 뒤집어지거나, 특정 식품 기업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한다.[39] 때문에 한식에 대한 평가는 고정적이라기보다는 다면적이고 지속적으로 변화해간다고 봐야한다.
6.3. 염분 섭취량에 대하여
통념상 한국 요리에 나트륨 함량이 높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해외 여행 경험자가 늘어나면서 해외 요리가 훨씬 더 짜다는 의견도 있어왔지만, 이러한 의견에는 "맛이 짠 것과 나트륨 함량이 높은 것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라는 반론이 제기되어왔고, "실제 나트륨 함량은 높지만 대부분이 국물, 찌개에 집중되어있어 짠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라는 설명이 덧붙어왔다. 그리고 다 식은 라면 국물을 마셔보면 알 수 있듯이, 음식의 온도가 높을수록 짠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40][41] 그리고 무엇보다 국물은 나트륨을 물에 희석하여 수분과 함께 섭취하는 섭취 방식이기 때문에 실제 소금의 함량에 비해 혀로 느껴지는 짠맛은 덜하지만 실제로 섭취되는 나트륨의 양은 매우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일본, 대만, 중국, 홍콩,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국물 요리 섭취가 잦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매우 높은 나트륨 섭취량이 나타났다.그런데 실제로는 한국인의 나트륨 섭취량이 세계 평균에 비해 오히려 낮은 편이다. 보건복지부에서 2018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3,255mg으로 나타났다. 출처 2005년 5,257mg을 정점으로 한 뒤 매우 줄어든 수치이며 현재는 중국[42], 일본보다 훨씬 낮고 영국,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세계 평균인 약 4,000mg 보다도 낮아서 세계적으로 볼 때 중하위권 수준이고 1인당 소득 3만 달러대 정도의 동일 소득대 국가중에서는 거의 하위권에 속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 나트륨 섭취 권고량 2,000mg의 1.7배에 달하는 높은 수준이라고 비판하는 기사나 매체들이 보이는데, 이 기준을 충족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저개발 국가들이다. 해당 국가들은 식품 섭취량 자체가 적기 때문에 나트륨 섭취량도 자연스럽게 적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43] 때문에 이를 근거로 최소한 2021년 현 시점에서는 한국 요리가 나트륨 함량이 세계적으로 매우 높고 한국인들의 나트륨 섭취가 타국에 비해 과도하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
국가별 평균 나트륨 섭취량과 각종 질병 유병률, 평균 수명에 큰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트륨 섭취를 무조건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권고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도 있는데, 나트륨 섭취량이 저개발 국가와 선진국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듯 질병유병률과 평균 수명도 소금 섭취량 그 자체보다는 의료 인프라 접근성과 의료 정책의 방향, 보건 교육 수준 등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해당 지표들을 바탕으로 한국인의 소금 섭취량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잘못됐다는 반박도 존재한다. 다만 절대적인 양과는 별개로 타 주요국에 비해 한국이 나트륨 섭취량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
근본적으로는 보건복지부의 연구 방식 자체가 동아시아식 식단에 있어서는 나트륨 섭취량 추적에 매우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많다. 보건복지부에서는 24시간 회상법을 사용하여 나트륨 섭취량을 측정한다. 24시간 회상법이란 개인이 기억하는 음식 섭취량에 대해 음식별 평균 함유량을 바탕으로 하여 최종 성분 섭취량을 통계적으로 추산하는 방법인데, 한국인의 경우, 실제 측정된 섭취량과의 상관관계가 매우 낮다는 것. 이 방법으로는 한식에 매번 들어가는 국물 요리는 얼마나 섭취했는지를 객관적으로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연구 결과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취약한 방식의 문제로 인해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나트륨 섭취량 계산에서 국물 요리가 적은 유럽 및 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해 측정이 매우 어렵고 실제 섭취량보다 나트륨 섭취량이 과다하게 집계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24시간 회상법 이외에는 조사 참여자들이 24시간 이내에 배변한 소변을 수집하여 조사하는 방법이 있으며, 이 방식이 가장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 때문에 해당 조사 방법으로의 변화를 대한민국 보건복지부에서 검토하기도 했으나 불특정 다수 인물이 24시간 동안 배뇨한 모든 소변을 수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서[44] 많은 국가들에서 나트륨 섭취량의 국가 연구시 24시간 회상법이 쓰이고 있다.
국가 연구 기간들에 비해 제한이 덜한 민간 연구 기관들은 정확도를 높이고 국가 기관 연구와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소변 분석법을 이용하나, 민간 연구기관들도 소변을 24시간 모으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 식사가 소변에 영향을 미치는 시간대의 소변을 수집 및 분석해 식사 중 나트륨 섭취량을 역산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 경우 24시간 소변 배출 추적에 비해서는 정확도가 크게 떨어지나 여전히 24시간 회상법에 비해서는 매우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민간 연구 기관들의 간소화된 소변 분석 기법 중 8시간 수시뇨 분석법을 적용하여 2014~2015년 측정 및 추정한 만 20세~69세 건강한 한국 성인의 평균 일일 소변으로의 나트륨 배출량은 남성 165.2±34.7 meq/day, 여성 178.1±33.6 meq/day이며, 남녀 통틀은 성인 평균은170.4±34.8 meq/day(3067.2mg)으로, 성인 평균 나트륨 섭취량을 역산하면 약 3773.3mg으로 나타났다. 2009년의 177.3±35.0 meq/day보다는 줄었으나 2010~2011년의 168.9±37.7 meq/day보다는 약간 높은 수치를 보였다. 또한 2009년, 2010~2011년, 2014~2015년 조사들에서 모두 남성보다 여성의 나트륨 배출량이 많았고,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나트륨 배출량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4~2015년 연구에서 나타난 결과값은 2000년대 및 2010년대 초중반에 실시된 보건복지부의 24시간 회상법 기반 나트륨 섭취량 추산에 비해서는 낮지만, 2018년의 추산에 비해서는 높은 수치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소변 분석을 바탕으로 나트륨 섭취량을 추적하는 경우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국가 기관들의 24시간 회상법 기반 조사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이며, 실질적으로 동아시아권 국가 간의 차이가 적고 동아시아와 서구권 지역의 나트륨 섭취량의 차이도 24시간 회상법에 근거한 추정치의 차이 만큼 크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일본의 경우 24시간 무작위로 선발한 3일 간 수집된 수시뇨를 이용한 소변 분석법을 적용한 도쿄 대학교의 2017년의 연구 결과가 있다. 이에 따르면 20~69세 건강한 일본 성인의 일일 24시간 평균 소변 나트륨 배출량은 남성 204.8 mmol(3686.4 mg), 여성 155.7 mmol(2802.6 mg)이었는데, 남녀 모두 통틀어 평균 180.0mmol(3240mg)이었다. 일본인의 소변 중 나트륨 배출량을 바탕으로 나트륨 섭취량을 산출하면 성인 남성은 약 4535 mg, 여성은 약 3449 mg이며 성인 평균은 약 3985.8mg이다. 해당 수치는 같은 시기 일본 후생노동성의 24시간 회상법 기반 추정 수치에 비해 낮은 수치이며, 2014~2015년 한국의 결과값보다는 오차범위 내에서 근소하게 높은 수치이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한국 음식의 높은 채소 섭취율이 높은 나트륨 섭취를 중화시킨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나 박류 채소나 배춧과를 많이 먹는 한국 식단이니 그만큼 칼륨-나트륨 중화로 배출이 된다는 측면도 있다는 것. 당장에 쌈을 싸 먹는 문화가 그렇다.
7. 종류
7.1. 한식의 후식/음료
자세한 내용은 한국의 전통음료 문서 참고하십시오.본래 한식의 곁들이는 후식/음료는 퍽 다양했으나, 굉장히 다양한 종류에 오랫동안 발전해온 유럽/아메리카/중동/남아시아의 후식에 비해서는 빈약한 편이다.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후식은 평소에는 그냥 간단하게 과일 정도로 때웠고 명절·잔치를 빼고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탓인 듯. 사실 현재의 한국 음식은 음식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달고 풍미가 강한 음식이 많아서[45] 단 후식을 먹는다면 솔직히 부담스러워지는 경우도 있다.[46]
종류로는 한과, 약과, 쌀과자, 꿀떡, 강정 등이 있으며 수정과, 식혜, 오미자, 매실차 같은 달콤한 음료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조선 후기까지도 설탕이 매우 귀했기 때문에[47] 한과는 대체로 양과자나 화과자[48]에 비해 담백한 편이다. 초콜릿이 처음 조선에 들어왔을 때 달콤한 맛에 반해 '우리는 언제 이런 과자를 만들 것인가!' 하고 한탄하는 이야기가 조선일보에 실린 적도 있다.
사실 의외로 꿀이나 엿이라든지 당밀에 절이거나 졸여낸 정과와 같이 달달한 후식도 충분히 있긴 한데, 고려 시기 까지는 불교의 차문화로 인해 달콤한 후식들이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조선 건국 이후 차문화가 쇠퇴하고[49], 이러한 차와 곁들여 먹는 달콤한 간식을 사치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풍조가 퍼지면서[50][51] 몇몇 후식류는 이름만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유명한 유밀과, 다식, 정과 등의 한식의 후식들은 삼국시대~고려시대 즉 불교가 융성하던 시대에 등장한 것이 많다. 특히 유밀과는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고려병이라는 이름으로 퍼져나가기도 했다. 다만 설탕의 수입이 원활해지고 양과자들이 유입된 시점에서는 확실히 단맛에서 밀렸던 것은 사실이다.
7.2. 한국의 전통주
자세한 내용은 한국의 전통주 문서 참고하십시오.한국의 전통주(酒)는 지역마다 다양한 종류가 있었으며, 관혼상제와 공동체 문화가 중시되었던 조선시대에 가장 발달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부터 쌀 수출을 위해 곡식의 사용을 절약한다는 명목으로 가양주, 즉 집에서 술을 자체적으로 제조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의 전통주가 소실되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국의 전통주는 대량생산형이 아닌 집에서 소규모로 빚는 가양주의 형태로 전승되어왔는데 여기에는 부여되는 세금이 없었다. 그런데 일제가 조선을 병합한 이후 주세법을 세워 가양주에 면허를 발급하고 세금을 물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연히 시장경쟁력이 떨어지는 가양주 제조주체들은 술을 제대로 빚지 못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가양주가 소실되었다. 무엇보다 신규면허발급 자체를 내주지 않아 가양주 제조 자체를 불법으로 만들어버리고 밀주단속을 실시했다.[52]
다만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에서는 여전히 상당량의 전통주가 유통되었다. 주세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시장경쟁력을 가졌던 업체들은 기업화되어 번창했던 것. 태평양전쟁 기간에야 일본의 점령지에서는 무지막지한 수탈이 일어났으니 한 톨이라도 아까운 쌀로 집에서 술 빚는 걸 허용할 리도 없었다. 아무튼 일제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통주의 종류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해방이 된 이후에도 전통주를 복원하려는 노력은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광복 이후에도 전쟁을 거치며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아 계속해서 가양주 제조를 금지하였으며 대신 일반인들의 술 소비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희석식 소주라는 대체재가 등장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나마 밀주의 형태로 존속해오던 몇 안되는 전통주들마저 상당수가 피해를 입었다.
현대 한국 일반인들의 술 소비량 중에선 희석식 소주와 맥주, 정확히는 '한국산' 맥주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두 가지 모두 술 자체로 보면 정상적인 술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술 문화는 술과 음식을 함께 천천히 즐긴다기 보다는 무조건 술을 많이 마시는 이상한 방향으로 정착되었다.[53] 전통주 중에서 그나마 양적으로 비중을 차지하는 술은 막걸리나 매실주, 청주 등 소수의 종류에 불과한 실정이며 이마저도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가양주의 쇠퇴와 양조의 편리성으로 인해 전통 누룩이 아니라 일본식 입국이나 인공감미료, 주정 등을 사용한 정체불명의 술이 흔한 편이다.[54]
다만 요즈음에는 민간 중심으로 전통주 복원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어 전통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었고, 더 나아가 남아있던 전통주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통주를 만들어내려는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아직 전통주에 눈길을 되돌린 기간이 짧아서 그렇지 이런 노력이 지속된다면 잃었던 전통주를 되찾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주 문화가 더욱 꽃피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많다.
7.3. 한국 요리/지역별
자세한 내용은 한국 요리/지역별 문서 참고하십시오.7.4. 한국 요리/종류별
자세한 내용은 한국 요리/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8. 한국 요리의 식사 문화와 위생 문제
- 원래 한식은 전통적으로 양반 및 중인 이상은 개인마다 소반을 사용하여 밥, 국, 반찬을 독상으로 받는 것이 기본이었다.[55]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빈곤과 물자 부족으로 반찬을 여러명이 공유하는 겸상 문화가 생겼다. 이런 겸상 문화는 다른 사람과 음식을 공유해 먹으면서 침이 섞이고 세균과 바이러스를 옮길 수도 있어 전염병에 취약하다. 2000년대 들어 후술할 반찬과 찌개를 공유하는 방식의 위생을 지적하는 인식이 퍼지고 전세계를 여러 차례 덮친 전염병 유행을 방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반찬과 찌개를 개인마다 따로 덜어먹는 방식으로 개선한 덕분에 요즘엔 입안에 들어갔던 숟가락, 젓가락으로 음식을 공유하며 집는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 찌개 공유: 과거에는 찌개를 테이블 가운데 하나를 두고 여럿이서 숟가락으로 떠 먹는 형태가 매우 흔했다. 그런데 이런 형태에 처음 큰 변화가 온 것이 바로 당시 세계를 강타했던 사스였다. 2002년 중국에서 시작해 2003년까지 이어진 세계적 사스 유행으로 당시까지 아무렇지 않게 여겨졌던 찌개 공유에 대한 경각심이 생겼고 2004년에는 식약청에서도 찌개를 같은 그릇에 놓고 먹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 이후 이러한 식문화는 점차 바뀌고 사람들의 인식도 개선되면서 식당에서도 찌개를 시키면 1인분씩 따로 나오거나 각자 덜어먹을 수 있도록 그릇이나 접시를 여러개 내어주는 등 지속적으로 변화하여 2010년대 들어서는 많이 사라졌다.
- 반찬 공유: 지금은 많이 개선된 찌개 공유와 달리 반찬은 여전히 같은 그릇에 놓고 먹는데, 그릇에 놓인 것을 개인 젓가락으로 집어가는 형태이기 때문에 자기 젓가락으로 반찬을 뒤적거리지 않는 한[56] 액체인 찌개와 달리 사람들도 별로 비위생적이라고 여기지 않아서인 것으로 보인다. 반찬마다 별도의 서빙 젓가락/서빙 스푼이 있어야 하지만, 한식당은 반찬 가짓수가 너무 많다보니 잘 지켜지지 않는다. 상술했듯이 한식도 전통적으로는 원래 '1명=완전한 1인분 제공'이 원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한식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한식이 국제화 하는데 명백한 방해 요소이다. 식판에 덜어 먹는 단체 급식 문화처럼 1명=완전한 1인분 제공 문화가 확립되어야 한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부정적인 선입견이 사라질 것이다.
- 고기를 구울 때 집게 대신 자기 젓가락을 대는 것과 상대방 그릇에 음식을 얹어 주는 것도 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상대방에게 호의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지만 받는 사람, 특히 외국인 입장에서는 비위생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식사 자리에서 윗사람의 수저를 대신 놓아주는 행위가 한국 문화에서는 예의이지만, 개인용 식기를 음식과 함께 제공하는 문화권의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개인 식기에 남의 손이 닿는 것 또한 찝찝하게 느낄 수도 있다.
- 이런 식사 문화들은 외국인들에게 비위생적으로도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요리가 외국으로 퍼지는 데 방해가 된다. "한국선 반찬 집기 망설여져요” 외국인들이 본 한국 식사문화 하지만 일부 한국인들은 이러한 식사 문화가 "한국 고유의 문화"라면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데 저항을 하기도 한다. 2004년 5월 식약청에서 찌개 그릇을 따로 쓰자는 캠페인을 벌일 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항의성 게시글이 여러 건 올라온 바 있었다.예시 1 예시 2 그러나 상술했듯이 엄밀히 따지면 이러한 식사 문화가 한국 고유의 문화인 것도 아니며 오히려 1인 1상 식사 문화를 따르는 것이 위생도 개선하고 전통적인 식사 문화 양식도 따르는 일석이조인 것이다.
- 뽑아 쓰는 휴지나 냅킨 대신 두루마리 휴지를 쓰는 것과 가위를 쓰는 것도 일부 외국인들이 비위생적이라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위생과 아무 상관없다. 두루마리 휴지는 보통 화장실에서 쓴다는 인식 때문에 그런 것이지 두루마리 휴지 자체가 비위생적인 것이 아니고, 가위의 경우도 한국에서는 주방용 가위라는 게 따로 있기 때문에 사실상 식칼과 마찬가지다.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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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관련 문서
[1] 한식의 위상이 높아지자 일부 해외 매체에서는 고유명사로 표기하기 시작했다.[2] 오신채는 제외.[3] 그런 부류의 사람 중 한 명이 황혜성의 은사 한희순 상궁이다.[4] 남자의 집에서 혼인을 하고자 예를 갖추어 청하면, 여자의 집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것[5] 물론 고려시대라고 해서 고기를 아주 안 먹은 것은 아니고 이규보의 문헌집 등을 보면 쇠고기를 섭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남아 있는 기록을 잘 살펴보면 사람들 몰래 암암리에 먹었지 대놓고 먹지는 못했다. 일본 역시 육식을 금기시하는 풍토가 7세기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이어졌지만, 기록을 보면 멧돼지고기, 사슴고기 등 온갖 고기를 약 등 온갖 은어를 대면서 몰래몰래 먹었던 것을 감안하면 똑같은 불교문화가 자리잡았던 고려시대 역시 약용으로 먹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어느 시대 어느 국가나 다 금기를 어기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돼지고기를 금한다는 중동 국가들도 알고 보면 돼지고기를 몰래 먹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 특히 중동에도 의외로 기독교도가 많이 살고 있기에 중동의 돼지고기 소비를 이들이 주도한다지만, 다 알면서 기독교도에게 돼지고기를 사서 먹고 자기는 몰랐다는 식으로 면피, 아니면 숲속에 몰래 돼지를 키워 먹는 등등 갖은 방법으로 돼지고기를 즐기는 무슬림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동 국가들이 돼지고기를 먹는다고는 말 안하는 것처럼 고려 역시 전반적으로 육류 섭취를 금기시하던 시대로 봐야 한다.[6]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떤 곳의 식문화든 수백 년 전 식문화와 똑같지는 않으며, 모두 시대 변화에 따라 모습이 바뀌고 조리법이 바뀌고 외국의 영향을 받아 새로 생기기도 하며 지금의 요리들이 나온 것이다. 당장 일본만해도 고기가 들어간 요리는 다 메이지 유신 이후 육식을 장려하며 발전한 요리들이며, 중국인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중국지역의 요리들을 접하게 된 것도 근대화 이후의 일이다. 유럽요리에서 여기저기 필수요소로 쓰이는 감자와 토마토도 원산지가 아메리카라는 걸 생각해보자.[7] 돼지, 소 등의 육류와 닭, 오리 등의 가금류 고기를 제외하고 그 외의 해산물과 채소만을 섭취하는 채식주의를 의미한다.[8] 중국도 대승불교문화권임에도, 공산권이라 종교관련 문화를 밀어주질 않는 것인지, 아니면 밀어주는데도 서방세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인지 딱히 세계 전방으로 잘 알려진 사찰요리분야가 없다.[9] 딱 일식 요리와 한식 요리 간 인지도의 차이[10] 핵가족이 7~12반첩이면 음식이 상하기 때문이다.[11] 조선시대 조정의 쌀 비축을 위한 노력은 엄청났으며, 대동법등의 세금제도로 인해 쌀의 가치가 돈과 동급 혹은 이상이었다. 쌀 때문에 화폐 유통이 널리 퍼지지 못했을 정도.[12] 프라이드 치킨, 삼계탕 등은 물론이고 닭갈비, 찜닭 같이 다소 매운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채식주의자가 아니고서야 닭요리는 어느나라에서든 무난하게 받아들이는 편.[13] 스코빌 척도에서 볼 수 있듯 프랏깨우(쥐똥고추)를 사용하는 태국 요리, 중국의 쓰촨 요리, 하바네로를 사용하는 중남미 요리, 인도 요리가 한식보다 훨씬 더 맵다. 이건 아예 스코빌 척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애초에 한식은 상대가 안 된다.[14] 실제 오래 전에 해외로 이민갔다가 오랜만에 한국으로 들어온 교포들은 한국음식들이 상당히 매워지고 달아졌다고 평가한다[15] 북한이 평양이 있는 평안도가 유명하고 실향민이 많아 함경도는 묻힌 면이 있으나, 함경도 음식은 함흥냉면의 원조인 회국수처럼 매운 것도 있다. 추운 곳은 짜고 매운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는 주장에 반하는 음식이 나오지만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함경도가 위치한 동해안의 생선은 그냥 먹으면 비리기에 양념을 많이 쓴다는 설이 있다. # 북한 조선향토대백과에서도 함경도 사람들은 마늘과 고추를 많이 쓴다고 언급하며#, 실제로 과반수가 함경도 지방 출신인 탈북민이 운영하는 북한 식당은 평안도로 굳어진 싱거운 북쪽 음식 이미지에 비해 맵고 짜서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다.[16] 해조류, 나물무침, 고기구이 등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반찬의 경우에는 마늘을 쓰지 않은 것들도 많다.심지어는 저기에도 마늘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지만[17] 한국과 중국이 1위와 2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데 중국은 마늘대와 마늘잎까지 포함된 수치다.[18] 그리고 이런 차가운 요리는 다른 나라에서 아이스크림 등의 차가운 요리와는 달리 물의 비중이 높다는 점도 차별화된다. 이는 한반도가 화강암 기반이라 수질이 단물이 된데다 험한 산세 지형이 역으로 물줄기가 잘 흐르도록 해줘서 물을 차갑게 다뤄도 충분히 식용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옆 일본도 같은 원인으로 수질이 좋은 편에 속하는데다 상대적으로 더 덥고 습해서인지 온도가 낮은 편인 요리가 심심찮게 보인다.[19] 겨울에 한랭건조하여 음식이 빨리 식는 것도 음식을 뜨겁게 하는 원인이다. 밥은 겨울에 조금만 찬바람을 맞아도 금방 식고 마르고 딱딱해져 도무지 먹을 수가 없다. 쌀알 모양 돌이 된다. 그래서 뜨거운 국물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혹한기에 뜨뜻한 흰쌀밥을 냉면과 같이 먹는다고 한다면 생각만 해도 춥고 안 어울린다. 부대찌개&감자탕 등과 같이 뜨끈하고 짭짤한 국물은 탄수화물인 밥과 잘 어울리니 국을 선호하는 것은 결국 한반도 기후와 큰 연관이 있다.[20] 자포니카 계통의 단립종 쌀은 인디카 계통의 장립종 쌀에 비해 아밀로펙틴 함량이 높아 추위에도 쉽게 노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포니카 쌀은 인디카 쌀보다 훨씬 찰지고 기름지며 쉽게 딱딱해지지 않는다. 아밀로펙틴 100%인 찹쌀을 섞으면 금상첨화다. 물론 인디카에 비하면 이렇다는 것이지 찬바람에 직접 닿으면 아까 말한 것처럼 금새 밥돌이 된다.[21] 반면 분명 한국보다 더 여름에 고온다습한 일본은 한국보단 뜨거운 요리가 적은데, 이는 근본적으로 겨울보다는 여름의 덥고 습한 날씨를 버티기 위해 목조 건물이 많고, 이로 인해 식기까지 나무를 많이 사용하는 등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목조 건물은 당연히 화재에 약하고, 설상가상으로 육식이 국법으로 금지되던 시절이 길어 불을 이용한 조리가 널리 쓰일 고기 요리가 오랫동안 발달하지 못한 것도 크다. 즉 기후적 문제에 더해 실생활적인 문화가 영향을 준 것이다. 대신 절이거나 양념해서 먹는 방식이 발달했다.[22] 식사는 식탁에서 해야하며 뭔가를 들고 다니며 먹는 것은 여전히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하며 꺼리긴 한다. 과거보다 분위기가 나아졌을 뿐.[23] 위생도 위생이지만 노점 문화 자체를 일본의 잔재로 여기고 꺼리려는 정서도 한몫 했다. 다른 나라같았으면 정말로 문제되는 몇몇만 없애고 나머지는 기준 지키고 세금 내는 조건으로 허용했을 문제이다.[24] 다만 위 자료로는 한국 요리가 정말 달지 않은 편인지는 알 수 없다. 각 국마다 설탕함유량이 압도적인 디저트나 음료문화의 차이도 있기때문.[25] 사실, 젓갈에도 마늘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젓갈과 생마늘이 전부 들어가는 레시피면 마늘 비중이 자연히 폭증한다(...).[26] 참고로 물론 인구수의 차이로 인해 전체 마늘 소비량 1위는 중국이다. 중국 요리에도 마늘이 적잖게 들어가서 한국만큼 1인당 마늘 소비량이 많기도 하고. 근데 어쨌든 1인당 소비량은 한국이 1~2위고, 생산량도 그 큰 땅덩어리를 가진 중국, 인도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27] 대표적으로 멘타이코(명란젓), 야키니쿠(고기구이), 호르몬(곱창 등 내장요리) 등[28] 육고기와 생선을 둘 다 날것으로 먹는 식문화는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다.[29] 과거엔 한국도 2010년대 초반까지는 이런 식의 교조주의적인 인식이 꽤 있었어서 양념치킨이나 콘비프, 부대찌개 등 근대, 현대에 탄생한 음식들을 한식으로 인정해야 하느냐 아니냐로 논쟁하던 인식도 일부 존재하던 편이었다. 지금은 이런 음식들도 한식으로 인정하며 인식이 많이 변화한 상태.[30] 발효식품의 자극적인 냄새가 싫다는 거지 한국 요리의 강한 냄새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요리 중에도 고기나 생선구이 같이 외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냄새는 국적 불문하고 대체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31] 비단 구미권 뿐 아니라, 중동/남아시아/남미/아프리카 어디를 가도 비슷한 반응이다. 사실 김치는 갓김치를 비롯한 특정 김치는 같은 한국인들 중에도 못 먹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향이 강하다. 친한(親韓)인사 중 한 명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역시 한국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음식의 냄새는 못봐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다.[32] 잘 익은 자우어크라우트 냄새도 냉장고 전체를 장악하듯 서양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치즈만 해도 발효시킨 치즈의 꾸덕한 냄세는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버티기 힘들다.[33] 기네스북에 등재된 '보틴'이라는 스페인 식당은 1725년부터 계속 영업중이며, 개업시기만을 따지자면 더 오래된 식당도 있다.[34] 일단 치킨집이 전세계 맥도날드 점포수와 비빈다는 것만봐도 유독 음식점이 많은걸 알수있다. 번화가가 생기면 식당부터 퍼지는 느낌.[35] 임금조차도 백성들이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음식을 먹었다. 수라상 차림을 보면 가짓수만 다양하지, 오늘날의 가정식과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자기 영지 내에선 얼마든지 사치를 부릴 수 있었기에 고급 식문화를 주도한 서양의 귀족과 다르게 조선의 양반은 어디까지나 왕을 보필하는 관료였기에 마음대로 귀한 음식을 탐했다간 낭비가 심하고 향락적이라며 찍혀서 상소다발에 대관들의 잔소리 융단폭격을 맞고 파직되거나 파천되는 경우도 있었다.[36] 출처는 맥두걸 박사의 저서. 국내 번역명은 "살 안찌고 사는 법"[37] 이 다이어트를 따를 경우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지방으로 얻는 칼로리가 각각 70퍼센트, 15퍼센트, 15퍼센트가 된다.[38]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지방으로 얻는 칼로리 비율은 각각 60퍼센트, 20퍼센트, 20퍼센트[39]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특정 프로그램에 의하여 MSG가 악마 취급받았다.[40] 짠맛이 가장 잘 느껴지는 온도는 30~40℃이다.[41] 매운 맛은 일종의 통각이기 때문에 맵고 뜨거운 음식에 간을 맞출 때, 음식의 열기와 매운 맛으로 인한 통각으로 혀의 미각이 둔해지기 때문에 더 많은 양의 소금을 넣게 된다. 이는 회무침, 물회, 아이스크림과 같은 차가운 요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42] 중국은 통계상으로도 세계 최상위권 수준으로 나트륨을 많이 섭취한다.[43] 중앙아시아 국가같은 내륙국가들의 경우 중저소득 개발도상국들이 대부분이지만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염장 요리들이 많아서 나트륨 섭취량이 세계 최고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44] 참가자들을 24시간 동안 실험 환경에 가두어 놓으면 일상생활의 식생활 습관이 반영이 안 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상태에서는 소변 수집이 어렵다.[45] 닭갈비라던지. 삼겹살이라던지, 중화요리지만 사실상 한국음식인 짜장면도 기름맛과 단맛이 강하다.[46] 오히려 메인요리를 다 먹고 나면 풍미가 강하고 단 맛이 나는 부산물이 많이 남는 요리들이 있다면 그 부산물에 밥을 볶거나 비벼 먹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이것을 후식이라고 부른다[47] 일본의 경우 가고시마 아마미 군도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했기 때문에 비교적 설탕의 자체수급이 가능했지만, 한국은 위도상 사탕수수가 자랄 수 없었기 때문에 해방 직후에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설탕은 귀한 재료였다.[48] 씁쓸하고 다소 텁텁한 일본식 차인 말차와 곁들이는 용도로 먹었기 때문에 씁쓸함과 텁텁함을 씻어내기 위해 매우 단 편이었다. 애초 당시 화과자는 비싼 식재료인 설탕을 듬뿍 사용했기 때문에 다도문화를 즐기는 상류층 전용이었다.[49]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차를 섭식하였으나, 일본의 다도처럼 예식화된 문화 대신 손님 접대나 개인 기호식품 용도로 간소화되었다.[50] 당연하지만 설탕이 없었던 것이 제일 크다. 꿀은 채취하기도 어렵고, 조청이나 떡, 과자도 곡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결국은 주식과 경쟁하는 관계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 바삭함을 위해 기름에 튀겨내기도 했는데, 참기름과 같은 고가의 식물성 기름으로 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꿀과 곡식, 기름의 공납에 시달렸고 고려시대 조정에서 유밀과 금지령을 내린 적도 있다.[51] 추가적으로 고려 시대에 활발했던 교역 덕분에 이런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또한 팔관회 등 국가에서 종교행사를 주최하면서 이러한 과자류를 고임으로 올려두는(현대의 칠순잔치 등에서 그러하듯) 풍조가 유행했다고도 한다. 즉 재료의 수급도 비교적 쉬웠고 소비도 많았다는 것.[52] 물론 이같은 조치는 일본 본토에서도 시행하였으나 일본과 달리 조선은 가양주 형태가 주류였으므로 그에 따른 문화적 피해는 일본에 비하여 매우 심했다.[53] 《삼국지연의》같은 데서 장비 같은 무장들이 남자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항아리째로 술을 들이키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때는 발효나 여과 기술이 완성되지 못한 시기라 술에 부유물이나 침전물이 남던 시절이었고 도수도 그리 강하게 만들 수 없었으므로 지금 볼 때처럼 무리가 가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는 공장에서 완벽한 발효, 여과, 증류를 통해 20도가 넘는 술을 얼마든지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절이다. 한국의 1인당 술 소비량은 세계 11위로 러시아(4위)에 크게 꿀리지 않는 수준이다.[54] 사실 술의 국적성은 사용한 재료의 원산지보다는 제조방식에 더 큰 영향을 받기는 한다. 맥주순수령을 지키는 독일만 해도 맥주에 사용한 재료를 중시하지 재료의 원산지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55] 고구려 벽화에서 시녀들이 소반에 음식을 담아 독상 여러 개를 내어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식문화는 최소 고구려 때 부터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56] 뒤적거리는 행위는 이전부터 당연히 매우 예의 없는 행동으로 여겨왔다.